◈ 성경의 바른번역, 바른해석, 바른적용 137
2020/05/29 15:43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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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자야, 이 뼈들이 살겠느냐? (겔 37: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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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서에서 가장 많이 읽히고 관심을 갖는 성경 구절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에스겔서 37장의 마른 뼈가 살아나는 예언일 것이다. 골짜기에 쌓여있는 마른 뼈들을 보며 생각나는 것은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그 세력을 확장해가는 코로나 전염병에 희생되어 넘쳐나는 시신들의 모습이다. 화장장이 넘치고, 매장지가 모자라 심지어 무인도에 땅을 파고, 시신을 장작더미 쌓듯이 쌓아서 묻는 모습을 보면서 저들의 비참한 모습이 남의 일같이 생각되지 않는다. 에스겔서의 마른 뼈가 살아나는 환상은 우리에게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한다.
에스겔은 이스라엘이 망하여 바빌로니아에 포로로 잡혀갔을 때, 하나님께서 그를 선지자로 세워 바빌로니아에 잡혀온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그의 말씀을 대언하게 했던 자이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을 데리고 골짜기로 가셨다. 거기에는 온통 뼈로 가득하였고, 그 뼈들은 다 말라 있었다. 아마도 이스라엘의 공동 묘지였던 것 같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사람이 죽으면 일단 가매장을 하여 살이 썩기를 기다린다. 살이 다 썩은 후 뼈만 남았을 때 그들은 대대로 그들의 조상들의 뼈들 쌓아둔 무덤으로 가져온다. 그래서 지금도 예루살렘의 올리브 산에 있는 공동묘지에는 가족의 뼈를 안치하는 모습이 눈에 뜨인다. 성경에 아무개가 죽어서 그의 백성에게 합류했다는 표현들이 있는데 (창 25:8), 이는 물론 그의 영이 그의 백성이 있는 곳으로 갔다는 의미도 되겠지만, 지상에서 그의 뼈가 조상들의 뼈가 있는 무덤에 안치되었다는 의미도 된다.
에스겔이 본 뼈들은 우선 그 수가 심히 많았고, “아주 말랐더라”(2)고 했다. 생명이 다시 소생할 여지가 없는 그야말로 깡마른 뼈다귀였다. 생명이 움틀 틈이 없는 뼈들이었다. 뼈는 사람의 몸을 떠받치는 받침대이다. 하나님께서는 뼈를 먼저 만드시고 그 뼈에 살을 붙이시고, 핏줄과 신경을 연결하시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래서 뼈는 사람의 몸을 이루는 틀이고, 기본적인 요소이다. 따라서 뼈를 부수는 것은 생명의 모든 가능성을 제거하는 것이며, 부서진 뼈는 완전한 파괴를 의미한다. 뼈를 불태우거나 뼈를 파헤치는 일은 모독이며, 특별한 수치를 주기 위한 벌이었다. 죽은 자의 뼈는 항상 조심스럽고 엄숙하게 취급해야 하는 것이 동서고금의 관습이었다.
그렇다면 여호와께서는 왜 에스겔에게 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뼈를 보여주신 것일까?  11절에 보면 “인자야 이 뼈들은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 그들이 이르기를 우리의 뼈들이 말랐고 우리의 소망이 없어졌으니 우리는 다 멸절되었다”고 말한다. 이스라엘의 상태를 이 마른 뼈에 비유하고, 이들이 말라서 이제 소망이 없고, 멸절되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하다가 결국 나라가 망하고, 백성들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다. 그리고 이제 이들에게는 다시 회복될 소망이 없다. 이들에게는 나라도 없고, 왕도 없고, 제사장도 없고, 도와 줄 자도 없다. 자유도 없고, 기쁨도 없고, 역사도 없고, 미래도 없다. 이들은 마른 뼈가 쌓여 있는 공동묘지와 같은 신세가 되어있는 것이다.
과연 이러한 죽은 뼈들이 다시 살아날 수 있을 것인가? 여호와께서는 에스겔에게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고 물으신다. 에스겔은 여호와에게 “예”라고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주께서 아십니다”라고 대답했다. 자기는 모르고 주님은 아신다는 말이다.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알고 믿는 선지자라면 그 대답을 몰랐을 리가 없다. 에스겔의 대답은 이 뼈들이 다시 살아나느냐 하는 문제는 하나님의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지의 문제입니다라는 의미로 주님이 아십니다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이제 여호와께서는 에스겔에게 이 마른 뼈를 살리시는 환상을 보여주신다. 그리고 이 뼈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라고 명하신다. “내가 너희 안에 영(생기가 아님)이 들어가게 할 것이니, 너희가 살 것이다. 내가 너희 위에 힘줄을 두고, 살이 올라오게 하며, 피부로 덮고, 너희 안에 영( 생기가 아님)을 줄 것이니 너희가 살 것이다. 그러면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 것을 알 것이다”(5-6)고  명하시었다. 그래서 에스겔은 그대로 이 뼈들에게 하나님의 말씀 선포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선지자 에스겔이 말씀을 마른 뼈들에게 선포하고, 하나님께서는 영을 불러 그 속에 들어가게 한 것이다. 그러면 살게 된다는 것이다.
에스겔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대언했다. 그러자 그가 대언할 때에 뼈들 가운데 소리가 나고 움직이며 이 뼈와 저 뼈가 들어맞아서 뼈들이 서로 맞추어졌다. 그리고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가죽이 덮이었다. 선지자의 대언하는 말씀을 받은 뼈들이 살아나서 사람의 형체를 이루게 된 것이다. 마른 뼈에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심으로 뼈들이 인간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영(생기가 아니라)이 없었다(8)고 했다. 말씀이 이들의 육체를 살아나게 했지만 아직 이들에게는 영이 없었다.  여기서 한글 역본이 “생기”로 번역하고 있는 히브리어는 “영” 혹은 “영혼”이라는 의미를 가진 “루아흐”()이다. 이 루아흐”()는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영(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할 때에 사용하고 있는 “영”이다(창 1:2). 개역성경의 하나님의 “신”을 개역개정에서는 하나님의 “영”으로 고쳐 번역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실 때에 아담에게 불어넣은 것은 루아흐”()가 아니라 “니쉬마트 하임”()이라는 어휘를 사용한다(창 2:7). “생명의 호흡”(a breath of life)이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흙으로 만든 사람에게 그의 생명의 호흡을 불어 넣을 때, “내패쉬 하야”( living being, 생명체)가 된 것이다. 한글 성경에 “생명체”( living being)를 “생령”이라고 번역하고 있는데 잘 못된 것이다. 생령이 아니라 생명체이다. “내패쉬 하야”라는 말은 사람 뿐만 아니라 짐승들에게도 함께 쓰여졌다(창1:21, 24, 30; 2:19). 9절에 영()을 마치 (바람을) “불어넣다”()는 말과 연계하여 “생기”로 번역하는 것 같다. 창세기에서는  “니쉬마트 하임”()을 “생기”로 번역하고, 여기 에스겔에서는 “루아흐”()를 “생기”로 번역하고 있으므로 마치 “루아흐”(영)와 “니쉬마트 하임”( 생명의 호흡)이 같은 것으로 번역하고 있는데 혼란스럽다. 루아흐와 니쉬마트 하임은 전혀 다른 의미이다. 여기에서는 “영”이라고 번역해야 히브리어 본문과 맞다.
그러자 여호와께서는 에스겔에게 영을 향하여 예언을 하라고 말씀하신다. 9절을 다시 번역해보면 『그가 내게 말씀하셨다. “영에게 예언하라, 인자야 예언하라. 너는 영에게 말하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신다. 영()아, 사방으로부터 영들()을 데려오라. 그리하여 이 죽임을 당한 자들 안에 불어라(). 그러면 살 것이다.”』 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하나님께서는 영에게 사방으로부터 영들(복수)을 데려오라고 명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대로 에스겔이 그가 명하신대로 예언을 했더니 10절에 그 영이 그들 안으로 들어가서, 그들이 살아났다는 것이다. 여기서 영들이라는 복수는 한번 사용되고 있고, 죽인자들에게 들어간 영은 단수이다.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마른 뼈들에게 예언하라는 것이 아니고, 사방의 영들에게 말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에스겔이 영들에게 대언하자 영이 그 사람들에게 들어가 사람들이 살아 일어나게 되었는데, 그 수가 매우 매우 큰 군대를 이루었다는 것이다(10).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과 영을 받아야 만이 온전한 사람으로 재생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말씀과 영이 진흙과 같은 인생들, 마른 뼈와 같은 인생들을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게 하는 것이다. 이 영은 하나님의 영, 곧 성령이다. 그래서 말씀과 성령은 서로 별개의 것이지만 이 둘은 항상 함께 일한다. 말씀이 있는 곳에 성령이 임하시고, 성령은 말씀을 통하여 일 하신다. 이 둘이 함께 마른 뼈 속에 들어갈 때 비로소 진흙이나 뼈가 살아나게 되는 것이다.  
이 말씀은 나라가 망하여 바빌로니아에 죄수로 끌려와 소망이 없이 살아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골짜기에 가득한 마른 뼈에 비유하며,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과 영을 불어넣어 다시 살리실 것을 약속하고 예언한 말씀이다. 말하자면 이스라엘 민족을 다시 회복하여 그들의 고토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살게 할 것을 약속하시는 것이다. 특히 12절에 보면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서 나오게 하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게 하리라”라는 말씀은 여호와께서는 바빌로니아를 이스라엘이 묻혀있는 무덤에 비유하고 계심을 볼 수 있다. 마른 뼈가 쌓여 있는 이 골짜기가 다름 아닌 바빌로니아인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이 무덤을 열고 이스라엘을 그곳으로부터 구출해내서,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게 하시겠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회복을 약속하시는 말씀이다. 포로로 갇혀있는 상태, 그래서 자유를 잃고, 주권을 잃고, 종이 되어 있는 상태를 무덤에 갇혀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비유는 다만 이스라엘에게만 적용되는 말씀은 아니다. 어쩌면 우리 모두들, 곧 심령이 메마르고 그의 영혼이 곤비한 가운데 무기력하게 주저 앉아있는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여 죄의 종이 된 우리는 비록 육신은 살아 있으나 영혼은 하나님을 떠나 모두가 마른 뼈가 되어 무덤에 갇혀 있는 존재들이 되어 있는 것이다. 이들이 살아날 길은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뿐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임하고, 성령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실 때 반드시 재생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다음과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의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자는 영생을 가지고 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니, 그는 이미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기 때문이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죽은 자들이 하나님    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는 데, 지금이 바로 그 때이다. 듣는 자는 살아 날     것이다. 이는 아버지께서 자신 안에 생명이 있는 것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안에 있게 하셨기 때문이다.”(요한 5:2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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