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범 칼럼] 바리새파 사람과 세리
2020/10/20 12:09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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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범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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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다. 한 사람은 바리새파 사람이고 다른 한 사람은 세리였다.” 그렇게 시작하는 예수의 비유에서, 우리는 두 사람 가운데 어느 쪽과 공감하고 있는지를 자문해 보아야 하리라.

스스로를 가식하지 않고 경건을 드러내려 하지 않는 사람이라 여기는 이라면 의례히 세리와 공감한다 하고 말할 것이다. 그리고 속으로 말할 것이다. “하나님 내가 저 바리새파 사람과 같은 사람이 아닌 것을 감사합니다.”라고. 그러나 그렇게 기도함으로써 어는 틈엔가 우리는 바리새파 사람이 되어있는 것을 어쩌랴.

 

비유에서 두 사람 모두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다.” 바리새파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간다고 자신이나 다른 사람이 전혀 새삼스러운 일로 여기지는 않을 터. 그들은 하루에 일곱 차례나 성전에 갔다고 하지 않는가. 때론 밤중에도 그러기를 주저하지 않았다는 데야. 그러나 막상 세리가 성전에 나아가기는 그리 쉽지가 않았으리라. 비유에서 볼 수 있듯이 매사에 떳떳할 수 없는 세리는 성전 뒤쪽에서 얼굴을 가리고 서 있을 수밖에 없으리라. 그러나 하나님을 만나고 싶어 하는 심정은 서로 다를 바가 없을 터이다. 아니 세리의 심정이 더 간절할 수도 있으리라. 그러기에 세리가 기도하는 그 곳에서 바리새파 사람도 기도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그들이 함께 하는 자리가 그들의 거리를 더 멀게 하는 것 같다. 바리새파 사람의 기도는 그 거리가 절대로 단축되거나 사라질 수 없음을 보여준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나는 남의 것을 빼앗는 자나 불의한 자나, 간음하는 자와 같은 다른 사람들과 같지 않으며, 더구나 세리와는 같지 않습니다.”

 

바리새파 사람의 기도는 진실하다. 그의 기도와 삶은 서로 다르지 않기에. 바리새파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 그들을 도둑이라 말하는 사람이 없을 뿐 아니라, 스스로도 불의를 행하지는 않는다고 확신한다. 간음하거나 공금에 손을 대는 일은 없다. 도덕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또 종교적으로도 정당했다. 그러기 위해 가진 힘을 다해왔다.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때론 사람들의 비난을 감내해야만 했다.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내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바칩니다.”했다. 율법의 요구 이상의 열성이요 희생이었다는 진솔한 고백이 아니겠는가. 흔히 우리가 쉽게 바리새파 사람하고 욕하곤 하는 그런 바리새파 사람은 아니지 않는가. 그야말로 경건하다는 평가가 어울리는 삶을 살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유식자들은 그들 바리새파사람을 나무라기 위해서 많은 꼬투리를 찾아내려 애쓴다. 우선 바리새파 사람의 감사는 진정한 감사가 아니라 자기 정당화이고 자랑이라고. 하나님의 은총에 대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공로에 대해서 라면서. 실상 바리새파 사람의 기도는 나는...” “나는...”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자신의 죄와 뉘우침에 대해서는 입도 뻥긋하지 않는다. 실패나 부족에 대해서도 입을 다문다. 스스로의 장점만을 늘어놓을 뿐이다. 경건을 뒤집어 쓴 자랑과 교만이 전부라면서...

하나님하면서도 바리새파 사람의 눈은 같은 성전에서 기도 하고 있는 세리를 향한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나는 남의 것을 빼앗는 자나, 불의한 자나, 간음하는 자와 같은 다른 사람들과 같지 않으며 더구나 이 세리와는 같지 않습니다.” 스스로가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의 조건이기도 하다.

그것은 하나님이 그에게 베풀어 준 바를 뿌리째 뽑아 자신의 소유로 삼은 결과이기도 하다. 스스로의 생각대로 처리할 수 있는 자산이라 여긴다. 소유하게 된 모든 것은 자신의 업적에 따른 정당한 보수였다. 그의 소유와 가치는 형제와의 공감을 위해서라거나 사랑하고 돕기 위한 자료가 아니라 오히려 그들을 비난하고 심판하는 거리로 여긴다. 성전 뒤쪽에서 나름대로는 간절하게 기도하고 있는 타자를 인정해 주려하지 않는다.

 

거기에서 지배욕과 율법주의와 편협함이 움튼다. 나름대로의 새로운 율법이 발생한다. 블룸하르트의 말처럼 그 무엇에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고, 타자가 무슨 말을 해도 듣지 않고, 지상에서의 하나님의 대리인으로 그 자리에 홀로 서있다.”

더러 성전 뒤편에 웅크리고 서있는 세리의 존재가 고맙게 여겨진다고 한다면 그것은 세리의 초라함 때문일 것. 사람들의 따가운 눈초리를 받고 있는 그 초라함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예수는 말한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의롭다는 인정을 받고서 자기 집으로 내려간 사람은 저 바리새파 사람이 아니라 이 세리이다.”

enoin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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