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7(수)
 

강성률 목사.jpg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게 손을 댄 자가 누구냐.’ 하시니, 아니라.’ 할 때에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무리가 옹위하여 미나이다.”(8:45).

 

열두 해 동안이나 혈루병을 앓아 온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자기 병을 고치기 위하여 의사들에게 모든 재산을 썼지만, 아무도 그 여인의 병을 고쳐주지 못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걸어가실 때, 이 여자가 사람들을 비집고 예수님의 뒤로 다가와,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었습니다. 그 순간 하혈이 뚝 그쳤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누가 내 옷을 만졌느냐?” 물으셨습니다.

 

아무도 나서는 사람이 없자 베드로가 말하였습니다. “주여, 무리가 옹위하여 미나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아니다. 누군가 분명 내게 손을 댔다. 내게서 능력이 빠져나간 것을 내가 안다.” 그 여자는 더 이상 숨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두려워 떨면서 예수님 앞에 나아가 엎드렸습니다. 그런 뒤, 자신이 예수님의 옷을 만진 이유와 병이 즉시 나은 사실을 말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만원버스나 만원지하철처럼 수많은 인파가 예수님께 몰려왔습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의 몸에 자신의 몸이 닿아 체온을 느낀 사람도 있었을 것이며, 예수님의 소매가 자신의 옷에 닿은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호흡을 느낀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저런 사람들 모두 개인의 문제든, 가정의 문제든 문제들을 안고 온 사람들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 모두의 문제가 치료 된 것은 아닙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만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예수님을 만진 사람은 부정한 여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예수님의 몸에 손을 대지 못하고 다만 그의 옷자락에만 손을 댄 혈루 병에 걸린 여인이었습니다. 주님은 이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주님을 만진 사람으로 인정했습니다. 오늘날 신앙인들은 성경은 물론 수많은 신앙 서적을 읽고 교회에서 혹은 인터넷을 통하여 말씀을 듣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무리들이 주님을 옹위하고 있었지만 지금은 수많은 말씀이 우리를 옹위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두가 말씀이신 주님을 만진 것은 아닙니다. 혈루병에 걸렸던 여인이 주님을 만져 그의 병이 나았던 것처럼 우리가 참으로 주님을 만진다면 실제적인 변화가 일어납니다. 우리의 영적인 병, 환경적인 병 때로는 육적인 병까지 치료됩니다. 많은 성도들이 말씀을 듣고 보면서도 주님을 만나지 못하고, 만지지 못합니다. 주님을 만지는 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며, 주님을 만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요한은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라고 말합니다(요일1:1). 만졌다는 것은 주님이심을 직접 목격한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은 고기를 잡으러 갈릴리 바다에 갔습니다. 그 밤에 제자들은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누구신지도 모르는 사람이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얻으리라.”라고 말합니다. 그 말을 듣고 던져보니 그물을 들을 수 없을 만큼 고기가 많았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능숙한 어부쯤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요한은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주시라!”(21:7). 다른 제자들은 주님이심을 미처 몰랐지만 이 순간 요한은 주님을 듣고 보고 만진 것입니다. 한 번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묻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그러자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16:16). 베드로 역시 예수님을 엘리야나 예레미야나 선지자 정도로 본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본 것입니다. 베드로 역시 주님을 주님으로 만진 것입니다.

 

우리 역시 말씀과 나타나는 일들을 통하여 중심에서 주님이시다.”라고 외칠 수 있다면 주님을 만지고 목격하는 사람이 됩니다. 하지만 우연히 된 일로 생각한다면, 누구 때문에 벌어졌다고 생각한다면 수많은 말씀들이 우리를 옹위해도 주님을 만지지 못하고 문제는 치유되지 못합니다. 여인이 어떻게 주님을 만질 수 있었을까요?

 

여인이 예수님께 와서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댄 것은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얻으리라.’는 믿음 때문입니다(5:28). 이 믿음은 자신이 강할 때가 아니라 약할 때 생겼습니다. 낫기 위하여 많은 의원들을 의지하였지만 더 괴롭게 되자 할 수 없이 주님만 소망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 역시 주님을 만지려면 내가 그의 옷에만 대어도 구원을 얻으리라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성경을 읽을 때나 말씀을 들을 때 제게 한 말씀 주시옵소서. 주님의 말씀만 받으면 이 문제가 해결 될 줄 믿습니다.”하면서 말씀을 통하여 주님을 만나기를 고대하며 들을 때 주님을 만나게 되고, 주님을 만나게 되면 문제들이 치료될 뿐 아니라 바울처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라는 해석을 받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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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IC 칼럼] 강성률 목사의 ‘내게 손을 댄 자가 누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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