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5(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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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는 여호와가 주시는 땅을 차지하러 가기 전에 정탐꾼 두 명을 보내 그 땅, 특히 여리고를 정탐하도록 한다. 이 당시 이스라엘은 싯딤에 진을 치고 있었다. 이스라엘은 이 단계에서 요단 서쪽에 가본 적이 없으며,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전에 모세가 보냈던 정탐꾼 가운데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사람들이지만, 그들도 요단강을 건너 처음으로 만나게 될 장애물인 여리고 주위 땅에 대한 상세한 사항을 전혀 기억할 수 없었을 것이다. 정탐꾼을 보내는 것은 어떤 지역을 공격할 때 일반적으로 해 오던 일이었다. 이 시점에서 여호수아는 여호와가 기적적인 방법으로 여리고를 넘겨주시리라는 암시를 전혀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저 여리고를 점령하는 것이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차지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이 그 땅에서 마주하게 될 상세한 사항들 뿐 아니라 여리고 지역에 대해 정보를 얻기 위해 두 정탐꾼을 보낸 일은 너무도 정상적인 일이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여호수아서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중의 하나인 라합을 만나게 된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이 기적적인 수단보다는 일반적인 수단들을 통해 역사하신다고 믿는 것이 믿음이 적다는 표시는 아니다. 하나님은 기적적인 일을 하실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런 방식으로 역사하실 것이라고 우리 편에서 추정하는 것은 주제넘은 것이다.

 

여호수아가 정탐꾼을 뽑을 때 그들이 가진 어떤 특정한 기술을 근거로 뽑은 것 같지 않다. 그들이 정탐꾼의 자질이 없다는 것을 나타내는 가장 분명한 증거는 정탐꾼이라면 해야 할 일을 아무것도 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분명 그들은 여리고의 방어 시설에 대한 정보를 알아낼 생각이 없다. 대신 처음으로 나오는 것은 그들이 라합이라는 기생의 집으로 가서 거기서 유숙했다는 것이다. 정탐꾼들이 라합의 집에서 유숙했다고 나오지만 사용된 동사는 종종 함께 눕다라고 번역된다. 정탐꾼들이 도착했다는 말이 그 성읍 왕의 귀에 들어가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왕은 라합에게 관리들을 보내어 그 집에 들어온 사람들을 끌어내라고 명한다. 그런데 라합은 그 정탐꾼들의 존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명백하게 알았다. 라합은 그들이 숨어 있었지만 어디로 갔는지 모른다고 대답한다. 그리고 성문이 닫히기 전에 떠났다고 주장한다. 라합이 정탐꾼들을 위해 한 행동의 이유를 말하고 있다. 라합은 여호와가 하나님이라고 고백한다. 라합의 고백에는 두 개의 핵심 주제로 가득하다. 첫째, 라합은 여호와가 행하셨다고 들은 것을 말한다. 라합은 이스라엘이 출애굽한 이야기부터 모압광야에서 이스라엘을 반대했던 두 아모리 왕인 시혼과 옥을 물리친 것에 이르기까지 지난 역사를 이야기한다. 라합이 이 사건들을 알고 있었다는 것은 그 지역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둘째, 이것을 통해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라합이 여호와의 능력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여호와께 저항하면 멸망 당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라합은 여리고 뿐 아니라 그 땅에 사는 주민들까지도 두려움이 임했다고 강조하며 그래서 그들이 저항할 의지를 상실했다고 말한다. 라합은 이제 여호와의 편이다. 그래서 라합은 정탐꾼들이 라합에게 은총을 베풀기를 원한다. 라합은 정탐꾼들에게 친절을 베풀고, 그들도 라합에게 친절을 베풀어 달라고 요청한다. 자기와 자기 가족이 살아남을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다. 라합은 정탐꾼들에게 그렇게 할 것을 맹세해 달라고 청한다. 그 당시 문화에서는 맹세는 매우 진지하게 여겼다. 여호와께 맹세하라는 것은 하나님이 맹세 당사자임을 의미하며, 그럼으로써 그 맹세가 엄숙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따라서 라합에게 맹세는 정탐꾼들이 하는 약속의 신빙성을 보장하는 중대한 장치였다. 라합은 여호와에 대한 믿음을 나타내 보여서 사실상 여호와가 이스라엘에게 땅을 주실 때 심판을 받게 될 백성들에게서 빠져나와 이스라엘에 합류했다.

 

정탐꾼들이 여리고를 떠나면서, 나머지 이야기 부분이 빠르게 서술된다. 라합이 지시한 대로 정탐꾼들은 산지로 가서 관리들이 여리고로 돌아가기를 3일을 기다린다. 이 산지에는 동굴이 많아 숨기에 적합했다. 관리들은 요단강까지 갔으나 정탐꾼들을 찾지 못한다. 정탐꾼들은 요단 골짜기로 다시 내려와 강을 건너 여호수아에게로 돌아와서 그들이 겪은 모든 일을 말한다. 땅을 주시겠다는 여호와의 약속의 말씀이 확실히 이뤄진다고 그들이 보고할 때, 그것은 그들이 성공적인 정찰을 했기 때문이거나 혹은 심지어 그들이 주의 깊게 정보를 수집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의 보고는 라합의 고백에서 나온 것이다. 하나님은 이 이야기에서 라합을 통해 그런 증거를 제공하시기를 기뻐하신다.

 

우리 역시 전혀 예상치 못했던 사람들과 장소들에서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하신 약속을 성취하시는 것을 볼 때 하나님의 신실함에 대해 격려를 받게 된다. 하나님은 우리라면 배제 시켰을 사람들을 하나님의 목적 안에 포함하시기 때문이다. 선교지에서의 삶은 새로운 사람들과의 연속적인 만남이다. 그러나 우리는 경험적으로 우리가 믿을 만한 사람들보다 전혀 예상치 못한 사람들을 통해 도움을 받는 것을 보게 된다. 라합을 통해 역사하신 하나님, 라합의 입술을 통해 고백하게 하신 하나님, 무능한 정탐꾼이지만 그들을 사용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역사가 우리의 삶 가운데서도 일어나길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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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웅 교수의 선교칼럼] 여호수아와 선교3- 두 정탐꾼과 라합(수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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