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9(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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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돌이켜 해 아래서 보니 빠른 경주자라고 선착하는 것이 아니며, 유력자라고 전쟁에 승리하는 것이 아니며, 지혜자라고 식물을 얻는 것이 아니며, 명철자라고 재물을 얻는 것이 아니며, 기능자라고 은총을 입는 것이 아니니 이는 시기와 우연이 이 모든 자에게 임함이라.”(9:11).

 

올 봄에 옥상에 식물들을 심었습니다. 상추와 가지와 고추는 직접 모종을 하였고, 들깨와 백일홍 맨드라미는 작년에 꽃이 피고 열매가 맺은 후 화분에 떨어진 씨가 새싹이 돋고 자라서 핀 꽃과 잎들입니다. 봄에 가장 늦게 싹이 돋고, 늦게 자라고, 늦게 꽃이 핀 것은 맨드라미입니다.

 

다른 식물들이 앞다투어 새싹을 돋고 열매를 맺어갈 때, 맨드라미는 싹 돋을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작년에도 경험한 바여서 늦게라도 나오리라 생각은 하였지만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고 하나도 안 돋을 수 있다는 생각도 간혹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완전히 역전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가장 늦게 세미하게 싹이 돋더니 계속 위로 솟아오르면서 제일 큰 꽃나무가 되었습니다. 꽃 역시 두 손바닥만 하게 자라고 있습니다.

 

전도서는 솔로몬이 인생 막바지에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와 사람들이 기뻐하는 모든 부귀영화를 다 누리고 느낀 바를 쓴 책입니다. 내린 결론 가운데 하나는 빠른 경주자라고 해서 그보다 늦은 경주자보다 우월감을 가져서는 안 되며, 다른 사람보다 많이 처진다고 해서 열등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다. 모든 것이 시기와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각자의 때와 시기가 있는데 이를 무시하면 엉뚱한 일을 저지르거나 시기를 놓치고 맙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아들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굳게 믿지 못하고, 여종 하갈을 통하여 대를 이을 아들을 낳은 결과,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중동 분쟁의 씨앗이 되고 말았습니다(16:15-16). 사울은 사무엘이 올 때까지 이레를 충분히 채우지 못하여 제사장만 드릴 수 있는 번제를 자신이 직접 드린 결과 그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는 사무엘의 경고를 들어야 했습니다(삼상13:14). 둘 모두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고 기다리지 못한 결과입니다.

 

반면 부주의 방심하다가 기회를 놓친 예도 있습니다. 에서는 사냥놀이에 빠져서 동생 야곱에게 장자의 명분을 빼앗기더니(25:33), 아버지의 축복까지 도둑맞고 말았습니다(27:30). 그가 울면서 후회를 하였지만 회개할 기회를 놓쳤습니다. 등을 가진 열 처녀 가운데 미련한 다섯 처녀는 기름을 제때 준비하지 않은 결과 신랑을 맞이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이 기름을 사 왔을 때는 슬기로운 다섯 처녀가 신랑을 맞이하여 이미 문이 닫힌 후였습니다(25:10).

 

노아의 방주 때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노아는 주변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큰 홍수를 내려 사람들을 땅과 함께 모두 멸망시킨다.’라고 전파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와 가장 친했던 친구들조차 그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 가운데는 방주를 예비하는 데 참여한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조차도 자신들이 참여한 방주에 들어가지 못하고 홍수에 의하여 멸망 당하고 말았습니다. 허우적거리며 애원할 때는 이미 문이 굳게 닫힌 후였습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정녕 응하리라.”(2:3). 정한 때가 있습니다. 그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그때를 흘려보내서도 안 됩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에 집주인이 도적이 어느 경점에 올 줄을 알았다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24:42-44).

 

깨어 있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깨어 있는 것은 의를 행하는 것입니다(고전15:34). 깨어 있는 것은 근신하는 것을 의미합니다(벧전5:8). 깨어 있는 것은 기도와 감사를 의미합니다(4:2). 이렇게 깨어 있는 사람은 조급한 자를 기다리는 자로 만들고 나태한 자를 근신하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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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독연 WAIC 칼럼] 강성률 목사의 ‘시기와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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