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7(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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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즉 너희 마음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와 화합하여, 완전케 하여, 오늘날과 같이 그 법도를 행하며 그 계명을 지킬지어다.”(왕상8:61).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 같이 친구가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하지만(27:17),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방죽을 흐리게 하는 것처럼 연합이 잘못되면 함께 망하는 길로 가기도합니다. 우리는 지난 1980년대 구소련에 연합된 나라들의 종말을 보면서, 잘못된 연합의 해악을 똑똑히 목격했습니다. 심지어 우크라이나처럼 해악이 지금까지 이어지는 나라가 있습니다. 복되게도 지금 우리 앞에는 하나님과 연합하는 길이 펼쳐 있습니다.

 

화합이란 화동하여 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신앙인들의 평생소원 가운데 하나는 하나님과 연합함일 것입니다. 하나님과 연합하는 것은 하나님과 같은 마음을 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는 것입니다(2:5). 하나님과 같은 마음을 품은 사람 가운데 대표적인 인물은 비느하스입니다. “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나의 질투심으로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나의 노를 돌이켜 나의 질투심으로 그들을 진멸하지 않게 하였도다.”(25:10-11).

 

하나님께서는 비느하스에 대하여 나의 질투심으로 질투하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과 같은 질투심이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연합하려면 주님과 같은 마음이어야 합니다. 주님과 같은 마음을 품은 사람은 주님이 보시는 대로 봅니다. 주님이 싫어하면 자신도 싫어하고, 주님이 기뻐하면 자신도 기뻐합니다. 주님이 아파하면 자신도 아파하고, 주님이 만족하면 자신도 만족합니다.

 

주님과 같은 마음을 품으려면 주의 영이신 성령님을 모시고 살아야 합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어떻게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1:8). 이스라엘의 남북 시대에 북왕국 이스라엘의 초대왕 여로보암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금송아지를 만들었습니다(왕상12:25-33).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가까이 사는 벧엘에 있는 선지자를 보내시지 않고 멀리 있는 유다 선지자를 보내셔서 금송아지에게 제사를 지내는 여로보암을 책망하도록 하셨습니다(왕상13).

 

왜 가까이 사는 벧엘에 있는 선지자를 사용하지 않았을까요? 그가 비록 선지자라는 명칭은 있었지만 하나님과 같은 마음을 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같이 느끼지 않았고, 하나님과 같이 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쓰신 이유는 하나님과 마음이 합하였기 때문입니다(13:22). 사울은 하나님과 전혀 다른 마음을 썼습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대로 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그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게 한 것입니다(삼상15:22-23). 성경에서 에녹은 하나님과 300년간 동행하였습니다(5:22).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과 같은 마음을 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같은 마음을 품은 비느하스에게 하나님께서 다음과 같이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말하라. 내가 그에게 나의 평화의 언약을 주리니 그와 그 후손에게 영원한 제사장 직분의 언약이라. 그가 그 하나님을 위하여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속죄하였음이니라.”(25:12-13). 평강의 언약을 주신 것입니다. 영원한 제사장 직분의 언약을 주었습니다. 다윗도 하나님께 합한 마음을 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를 이스라엘 왕으로 삼아서, 다윗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행하였던 히스기야왕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였습니다(왕하18:6-7).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님과 같은 마음을 품을 수 있습니까? 예수님 안에 거하여야 합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15:5). 우리가 주님 안에 있을 때 주님과 연합하게 됩니다. 주님 안에 들어가려면 주님의 말씀을 지켜야 합니다(15:10). 지킨다는 것은 순종을 의미하며, 순종은 믿음을 전제로 합니다(1:5).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 순종하는 사람은 주님 안에 거하게 되며, 주님 또한 순종하는 사람 안에 거하십니다.

 

하나님과 연합하기 위해서는 마음이 새로워져야 합니다. 믿어 거듭났다고 하여도 여전히 믿지 않는 사람들과 같은 마음이라면 아직 마음이 새로워지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그들의 영은 새로워졌지만 마음까지는 새로워지지 않았습니다. 마음이 새로워지기 위해서는 하나님께 몸을 드려야 합니다(12:1-2). 하나님께서는 몸 드리는 사람의 마음을 새롭게 변화시켜 주십니다. 몸 드리는 것은 순종하는 것을 의미합니다(6:16). 하나님은 몸 드리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너는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하라. 그리하면 복이 네게 임하리라. 청컨대 너는 그 입에서 교훈을 받고 그 말씀을 네 마음에 두라. 네가 만일 전능자에게로 돌아가고 또 네 장막에서 불의를 멀리 버리면 다시 흥하리라.”(22:21-23). 하나님과 화목하기 위해서는 교훈을 받고 말씀을 마음에 두며, 장막에서 불의를 멀리 버려야 합니다. 보배를 진토에 버려야 하고, 하나님보다 더 귀중하게 여기는 것들, 우상을 멀리 버려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과 연합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과 연합” “예수님과 하나 됨생각만 해도 가슴 벅차오르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과 연합한 성도가 되어 예수님과 사귀고 예수님의 기쁨을 함께 누리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요일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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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독연 WAIC 칼럼] 강성률 목사의 ‘하나님과 화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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