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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욕설의 효능
    욕설을 즐기는 것은 그 효능 때문이라고 말 한다면, 효능을 염두에 두고 욕설을 내뱉기 보다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툭 쏘아붙이는 것이 욕설의 속성이라며 욕설 효능설을 못마땅해 하는 이도 있을 법하다. 효능을 위해서라면 욕설보다 “아첨”이 더 효과적이라는 토를 달아 줄 수도 있을 터. 그러나 욕설과 아첨은 진실과 펙트를 돌보지 않으려한다는 측면에서 한 통속인 경우가 많다. 여럿이 방담을 즐길 때, 욕을 먹어도 쌀 한 인사가 화제로 떠올라 있을 경우를 상정해 보자. 욕설의 효능을 만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칠세라 다투어 욕설을 늘어놓는 것은, 욕설이 지극히 안전하고 값싼 오락거리이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먼저, 욕설에는 그 욕설을 공유하는 인사들과의 소통을 원활하게 해 줄뿐만 아니라 서로를 결속시켜주는 효능이 있다. 욕설을 공유하는 노릇은 서로 마음을 허락하여 한 통속이 되었다는 느낌을 가지게 해주기 때문이리라. 또, 욕설에는 신뢰감을 높여주는 효능이 있다. “욕설”과 “신뢰감”은 서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뉘앙스를 풍기지만, 구체적인 상황에서는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호인으로 분류되는 인사가 입만 열면 늘어놓은 칭찬을 기뻐하는 사람은 얼빠진 사람일 가능성이 짙지만, 반대로 늘 신랄한 비판을 쏘아대는 인사가 뜻밖의 칭찬을 들려줄 때, 싫다할 사람은 많지 않을 터. 효과적인 아첨을 위해서는 예상되는 아첨 인플레이션을 이길만한 값이 요구되는 법이다.점잖은 인사는 비판과 욕설은 다르다고 한다. “비판은 정당하고 욕설은 요사스럽다”면서. 또는 “비판은 상대방의 결점이나 과오를 지적하는 행위이지만, 욕설은 상대방을 악의적으로 말하는 짓거리”라 정의하기도 한다. 그러나 구체적 사례는 그렇지만도 않다고 말해준다. 비판당하는 입장에서는 지적받은 결점이나 과오를 인정할 수 없어하는 경우가 대부분. 그러니까 비판받는 쪽으로서는 그 비판을 상대방의 곡해나 왜곡으로 인정하고, 중상과 욕설에 불과하다고 보는 것이 예사이다. 욕설과 비판은 그 경계를 정하기가 무척 어렵다. 굳이 정해야한다면, 악의가 있는지 없는 지와, 많고 적음의 차이에서 그 선을 그어볼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욕설은 악의로 뭉쳐 있고 비판은 악의가 전혀 없다고 주장할 수도 없는 노릇. 오히려 욕설은 악의를 감추지 않고 능동적으로 드러내는 자세를 취하므로 악의 자체를 즐기는 놀이라고 한다면, 비판은 적어도 겉으로라도 악의를 감추는 척하면서 은폐하는 방법과 과정을 즐기고 있는 놀이로 보면 어떨지. 다시 말해서, 욕설과 비판의 차이는 노출과 위선 사이의 다름일 뿐이라고 한다면, 이 또한 욕설이라며 욕을 할지도 모르지만. 욕설이라 할지라도 일단 내뱉어진 이상은 많은 사람 사이에서 통용될 수 있어야 하리라. 그러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공감을 불러일으킬 만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니까 욕설이라 할지라도 어느 정도는 정당한 비판으로서의 구실을 구비하고 있지 않으면, 설 자리를 마련하기 어려울 것이다. 욕설에는 스트레스를 날려버리는 효능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여기에도 대가는 따르게 마련. 심리학자나 뇌 과학자들의 지적을 따르면, 욕설이 뇌 속에 데미지를 쌓는다고 한다. 뇌에는 “이것이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를 이해하는 부분과 그렇지 못한 부분이 있어서, 주어가 이해되는 한에서는 분명하게 느낄 수도 있지만, 대체로 뇌는 자신이 공격받는 것으로 이해하고 스트레스를 축적한다는 것. 내가 한 말을 가장 가까이에서 듣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나의 귀이고 나의 뇌. 남에게 한 욕설이 되돌아 자신을 향하여 공격해오게 되는 것이다. 오스트리아의 정신분석학자 하인즈 코흐트는 “인간은 자기애를 충족하고자 하는 생물”이라 정의하면서, 자기애가 충족되지 못하면 상처를 입었다며 불쾌감을 느낀다고 했는가 하면, 정신과 의사 아르프레드 아들러는 ”인간은 열등감을 극복하려는 생물“이라 정의하면서 그 열등감을 극복하고 우월감을 가지려는 것이 인간 성장의 원동력이 된다고 했다. 욕설을 통해서 자기애가 충족되고, 열등감을 극복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일시적일 뿐이라는 것이 학자들의 주장이고 보면, 다시 불만과 불안이 쌓이는 일이 반복되는 사이, 어느덧 우리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욕설을 내뱉고 있을지도 모른다. enoin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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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범
    2017-03-30
  • “사형수에게서 그리스도교를 배웠다”
    정신과 의사이자 소설가인 가가(加賀乙彦,1929-)가 일인칭으로 쓴 글을 본란에 어울리도록 조심스럽게 옮겨보았다. “내가 사형수 쇼타 아키라(正田 昭)와 만난 것은, 구치소의 의무관이었을 즈음이었다. 증권사 사원이던 그가 사건을 일으켜 사형선고를 받지만, 옥중에서 한 신부에게 세례를 받았고, 정신과의사로서의 경력이 일천했던 나는 자주 그의 독방에서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구치소 근무를 그만두고 몇 해가 지난 후, 나는 다시 쇼타와 편지를, 그것도 한 달에 두어 차례 두터운 편지 봉투를 주고받는 사이가 된다. 문학과 신학, 그리고 옥중생활에 대해서 의견을 나누면서, 살인범에서 가톨릭교도로 변신한 쇼타에게서 나는 많은 것을 배웠다. 성서를 진지하게 읽게 된 것도, 나름대로 절대자를 생각하게 된 것도 모두 그의 덕택이었다...구치소에 근무하고 있었을 때는, 의무관과 죄수 사이의 보이지 않는 골이 있었으나, 이제 둘은 대등한 친구가 된 것이다. 쇼타가 사형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2, 3일이 지난 후, 알고 지내던 수녀의 전화를 통해서였고, 나는 수화기에 대고 마구 울음을 터트렸다. 쇼타와 같은 사람을 죽이는 사형제도의 잔혹성을 참을 수 없어하면서. N으로부터 편지를 받은 것은 그로부터 1, 2개월이 지나서였다. 그녀는 옥중의 쇼타와 편지를 주고받던 사람인데, 고인의 유품을 맡아있다는 것. 쇼타의 소설 원고가 있으니 보아줄 수 있겠느냐는 내용이었다. 그의 원고를 받아 가지게 되었고, N과 나는 편지를 매개로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얼마 후 나는 히메지로 가서 그녀를 만났다. N은 히메지에 있는 여자 고교의 영어교사. N과 쇼타는 3년에 걸쳐 자그마치 3백통의 편지를 주고받았다. 말이 쉬워 3백 통이지, 한 주간에 두터운 편지뭉치가 두 차례 꼴로 배달되었다니... 쇼타의 편지를 읽으면서, 내가 알고 있던 쇼타와는 완전히 다른 한 인간을 보게 되어 매우 놀랐다. 내가 알던 쇼타는 착실한 성격에 사색가요 경건한 신자였지만, N에게 편지를 쓰는 쇼타는 익살맞고 유머러스해서 거침없는 농담으로 희로애락을 드러내는 그런 사나이였다. 이틀에 걸쳐 방대한 편지를 읽고 나자, 인간이란 참으로 멋진 존재가 아닌가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한 관점으로만 타인을 판단하는 노릇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를 알게 되었고, 한편 N의 유연하고 여성스런 인품에서도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 N과 쇼타의 만남이, 나와 쇼타의 만남보다, 인간적으로나 우정에서 몇 갑절이나 깊이가 더 하다는 사실을, 나는 떨리는 감명과 더불어 수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N이 쇼타의 죽음을 알게 된 것은 그의 편지를 통해서였다. 익살맞고 유머러스한 편지를 기대하고 개봉한 N의 눈에 ‘...참으로 슬픈 일이지만, 마침내 이별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농담이 아닙니다. 실은 내일이 ”그 날“이라는 것을 아침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라는 문자가 눈을 찌르는 것이었다. 이 마지막 편지가 여느 편지보다 길뿐 아니라, 죽기직전(형장에 가기 10분전)까지 쓴 편지였다는 사실로 해서, 그녀의 상심은 더 했던 것이다. 눈물을 흘리며 편지를 읽는 N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N이 근무하는 여고에서 식사모임을 가졌다. 가톨릭계 학교 교장인 수녀와 쇼타와 편지를 주고받던 또 한 사람 Y수녀도 동석했다. 이런저런 이야기에서, 쇼타가 크게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서로 떨어져 살고 있었던 네 사람이, 한 사람이 죽은 후에, 한 자리에서 만나 친밀하게 이야기를 나눈다는 사실이 참으로 묘한 일이 아닌가. 장난기 넘치는 쇼다가 천국에서 웃고 있을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러나 주고받은 이야기는, 쇼타의 신앙에 대해서 가톨릭교회 내부에는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는 이들이 없지 않다는 뜻밖의 사실도 알게 했다. 한 신부는, 사형과 같이 임박한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 받아들인 신앙에는 무리가 있기에 진정한 신앙일 수는 없다하고 말했고, 또 다른 신자는 쇼타의 신앙은 이성적 신앙일 뿐 영적인 의미에서는 결함이 있다고 했단다. 나는 생각했다. 그들이 ‘쇼타와 만나서 사귀었다면 이런 오해를 하지 않았을 터인데’하고...N은 교사를 사직하고 수녀가 되었고, 가가는 1979년에 쇼타를 모델로 한 소설 <선고>(宣告)를 발표했다. enoin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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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범
    2017-03-24
  • “아빠가 자주 잊어버리고 있는 일들”
    오래전에 한 외국잡지에 실려 있는 글을 오려서 읽던 책 사이에 끼워두었었는데, 최근 우연히 그 쪽지를 다시 보게 되었다. D. Carnegie의 <How to win Friends and Influence People> 이라는 제목이 붙은 글 중의 일부로 “아빠가 자주 잊어버리고 있는 일들”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었다. “잠들어 있는 아들 곁에서, 조용히 아버지가 중얼거린다. ‘미안하다 아가야. 오늘 조반을 먹으며, 마치 일과처럼 너에게 잔소리를 했었지. ‘버터를 너무 발랐어!’ ‘또 우유를 엎질렀군!’ ‘식사를 하는 자세가 그게 뭐람!’하고. 그런데도 오늘 아침, 내가 출근할 때, 너는 버스정류장까지 나를 바래다주었다. ‘잘 다녀오세요.’하고 손을 흔들어 주는데도 나는 너에게 ‘자세가 좋지 않아, 어깨를 쭉 펴야지!’하고 화를 냈었지. 저녁 때, 회사에서 돌아오는 아비를 본 너는, 친구들과 신나게 놀고 있는 중이었는데도, 내게로 달려와서는 ‘아빠, 우리가 이겼어요!’ 하고 기쁨이 넘치는 목소리로 일러주었을 때, 나는 ‘너 또 양말을 찢었군. 양말은 공짜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야!’ 하고 다시 잔소리를 늘어놓았었지. 저녁식사 후, 서재에서 석간을 읽고 있을 때, 가볍게 문을 노크해준 너에게 “지금 왜?...”하며 귀찮은 듯이 잔소리를 쏟아 부었었지. 그래도 너는 잠깐 멈칫하는가 싶더니, 계면쩍은 듯이 달려와서는 나의 목을 껴안아주면서 ‘아빠 편히 쉬셔요.’하고 미소로 키스해주었지. 그 순간, 마음이 아파왔단다. 읽고 있던 신문이 손에서 떨어지고 나서 한 참이나 멍하니 벽을 바라보면서 생각했단다. 나는 나쁜 아버지였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은 것이야. 그래서 이렇게 사과하러 왔단다. 미안해. 지금도 내가 옳았다고는 믿고 있지만, 나는 가장 중요한 것을 잊고 있었던 거야. 네가 아직 어린아이라는 것을 미처 헤아리지 못했어. 나의 마음을 너에게 전해줄 수 있을 만큼의 따뜻한 마음씨를 미처 준비하지 못했던 것 같아. 앞으로도 혹 너를 엄하게 꾸짖어줄지 모르지만, 이전과는 다르게 더 오래 너와 같이 있어주면서 같이 놀고, 같이 웃자고. 미안했어, 아가야‘“ 얼마 전, 10여명의 4,50대 남녀가 모인 자리에서 이 이야기를 들려준 적이 있었는데, 반응은 의외였다. 요즘의 대한민국이라면 그런 아버지는 흔해빠졌지만, 그런 아이는 눈을 부비며 찾아도 없을 것이라는 것. 이야기꾼의 말솜씨가 서툴러서인지 전혀 기대와는 다른 반응을 불러오고 만 것이다. TV나 신문 그리고 인터넷을 통해서 많은 지식을 얻을 수 있게 되어 정보가 넘치고 있는 세상을 살고 있는 현실, 바로 여기에 함정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자주 생각하게 된다. 너무나 손쉽게 무엇이든지 알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이 알지 못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 알려고 하는 노력을 등한히 할 수가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지나칠까. 우리의 앎은 넓은 것 같지만 그 넓이라고 하는 것은 평균적인 넓음일 뿐, 조금만 관심을 돌리거나 깊이를 지닌다면 아직 알지 못하고 있는 그리고 반드시 알고 있어야할 영역이 많이 널려 있는 것은 아닐까. 누구에게나 통하는 보편적인 정보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사람마다 그 사람만이 가지고 있거나 처해있는 사정이 있게 마련이고 그 사정을 감안한 대처가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말이다. 토마스 만의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에 다음과 같은 삽화가 있다. 회사의 경영주 토머스에게 양해를 구하지 않은 채, 어머니 엘리자벳이 자신의 지참금에서 꽤 많은 금액을 토마스의 아우 크리스천에게 송금해주었대서, 대노한 토머스가 어머니에게 대드는 것이었다. 사장에게 아무런 의논도 없이 제멋대로 대금을 빼돌린 어머니의 처사에 화가 난 것이다. 어머니로서는 자신의 돈을 아들에게 주었을 뿐인데, 토마스로서는 사장인 자신에게 의논도 하지 않고 대금에 손을 댄 어머니의 처사가 참을 수 없는 모욕으로 느껴졌던 것이다. 요즘 들어 이따금 <바울의 사랑노래>(고린도전서 13장)를 읊게 되었다. 한동안 읊기를 등한했던 것을 뉘우치면서... “내가 비록 내 모든 소유를 나누어 주었다 하더라도 그리고 내 몸을 내주어 불사르게 한다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는 유익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을 전해주는 여유도 사랑의 일부일 터. enoin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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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범
    2017-03-17
  • 치킨 게임 감상법
    게임(game)에는 플레이어가 서로 협력하는 게임과 협력하지 않는 것이 있어서, “게임이론”을 논하는 이들은 전자를 “협력게임”, 후자를 “비협력게임”이라 부르고 있다고 한다. 치킨 게임은 비협력게임의 대표 격이라 할 수 있다는데, 1950년대 미국 켈리포니어의 젊은이들이 즐기던 폭주족끼리의 깡다구(배짱) 겨루기에서 그 원조를 찾을 수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제임스 딘이 주연한 1955년의 영화 〈이유 없는 반항(Rebel without a Cause)〉은 치킨 게임의 발생신화를 보여주는 영화였던 셈이다. 치킨 게임이란, 중앙에 흰 선을 그어 놓은 직선도로상에서 수백 미터 거리를 사이하고 마주선 2대의 승용차가 신호와 동시에 액셀을 밟아 전속력으로 달리게 하는 게임. 어느 쪽이 되었든지 중앙선에서 벗어나면 패자가 되고 겁 없이 완주한 쪽은 승자가 된다. 불과 수초 내에 정면충돌 할 위험이 닥칠 것은 너무나 분명한 상황에서, 어느 쪽 하나가 선을 벗어나 상대를 피하지 않으면 큰 사고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참사를 피하기 위해서 피하는 쪽은 치킨(chicken=겁쟁이)이 된다는 것이 치킨 게임의 룰이다. 상대가 계속 달릴 것으로 판단한다면 이쪽 편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책은 선을 벗어나는 길밖에 없다. 반대로 이쪽이 계속 달린다면 상대가 취할 수 있는 최선책 또한 피하는 길 뿐이다. 다시 말해서 치킨 게임에서 가장 합리적인 해결은 한 쪽이 달리고 다른 한 쪽이 피하는 길 말고는 있을 수가 없다. 양편 모두가 달려서 정면충돌 한다는 것은 너무나 비합리적인 결말이 되기 때문이다. 영화 <뷰티풀 마인드>로 우리에게도 간접적으로 알려지고 있는 소위 “나쉬의 이론”을 따르면, 어느 쪽이 달리고 다른 쪽이 피하는 균형적인 해법이 가장 합리적인 해법이 된다고 했다. 그런데 문제는 어느 쪽이 달리고 어느 쪽이 피하느냐이다. “나쉬 이론”도 그 언저리에서 머물지 더 이상은 파고들지 않고 있단다. 그러나 묘하게도 현실적인 치킨 게임에서는 이성적이지 않는 주자가, 그러니까 막무가내로 달리는 쪽이 이득을 차지하게 된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라고 한다. 이제 막 치킨 게임이 시작된다고 가정해보자. 당신이 차에 올라 앉아 액셀을 밟으려 하고 있는데, 그 순간 맞은편 플레이어가 핸들을 뽑아 창밖으로 내던지는 광경을 목격했다고 하자. 그 때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상대가 절대로 피할 수 없다는 판단을 했을 때, 피하는 쪽은 이성적인 쪽이 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그러면 아니 그래서 이성적이지 않는 쪽이 승자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치킨 게임에서 가장 합리적인 균형이란 어느 편이 되었든지 상대 차를 피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에서, 상대방으로 하여금 피할 수밖에 없도록 위협하기 위해 가장 비합리적인 전략을 취하는 노릇이 되는 셈이다. 뒤집어 놓고 보면 이성을 버리는 쪽이 이성적인 결단을 한 셈이 되는 것이다. 진정한 의미에서 이성적인 사람의 눈에는 선을 벗어나서 패자가 된 쪽 만이 치킨이 아니라, 게임에 참여한 양쪽이 모두 치킨으로 보일 터이지만 말이다.치킨 게임이 개인 대 개인의 대결일 경우에는 최악의 경우 두 게이머가 죽게 되는 결과가 되지만, 사회적 치킨 게임에서는 누군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의 이익을 위해 희생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경우가 없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만약 아무도 희생이 되지 않으면 모두가 엄청난 피해를 입게 되는 경우 말이다. 내 눈에는 치킨 게임으로 밖에는 볼 수 없는 정치 게임에 깊이 참여하고 있는 한 인사에게 “왜 치킨 게임에 몰두하느냐?”하고 물었더니, 돌아오는 대답은 이랬다. “정의를 위해서!”... 맞은편 게이머는 정의를 저해하는 자라는 편견에다, 그와 맞서고 있는 자신은 최악의 경우 의사(義士)나 열사(烈士)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더해진 확신의 소유자로 보아도 좋지 않을까. 에리히 프롬이 <자유로부터의 도주>에서 말했다. “억압된 적의(敵意)나 질투의 감정은 직접적으로 표현되기보다는 합리화를 거쳐 변형된 모양으로 표현 된다. 적의가 간접적으로 나타난다는 것은 이를테면, “도덕적 분노”이거나 “정의라는 가면을 쓴 공분(公憤)”이 되기도 한다. 또 말했다. “적의가 합리화된 또 하나의 표현은 양심이라든가 의무라는 가면을 쓰고 나타난다.” enoin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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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범
    2017-02-24
  • 경청과 경청
    경청(傾聽)은 글자 그대로 ‘귀를 기울여 듣다’라는 뜻. 그러나 엿듣거나 비뚠 자세로 듣는다는 뜻은 아니란다. 경청을 “敬聽”으로 해석하는 이가 있다고 들었다. 하긴 들을 청(聽)자의 오른쪽 부분은 큰 덕(德)자의 생략형이고, 德의 본래 글자는 悳으로, 곧은(直) 마음(心)이란 뜻이라지 않는가. 그러니까 聽은 처음부터 편견이나 선입견을 가지지 않고, 곧은 마음으로 듣는 자세를 말하고 있다. 聽의 오른 쪽 아래 부분을 한 일(一)과 마음심(心) 으로 본다면 “마음을 하나로 모으다”라는 뜻이 된다고 한다. 오늘날 경청은, 자신이 듣고 싶은 것이 아니라, 상대가 말하고자 하는 바에 공감하면서 진지하게 들을 줄 아는 ‘기법’으로 발전하여, 상담사, 교육가, 의료인이 훈련을 통해서 익히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교육을 받고 나름대로 경청술(傾聽術)을 익힌 전문가가 되었노라면서도, 상대에 공감하는 대신 충고와 판단 비판을 일삼게 되는 것은 왜일까? 경청(傾聽)이 경청(敬聽)으로 이어지지 못한 채, 상대를 ‘고장 난 마이크’ 쯤으로 인정해버리는 습성에 젖어 있어서가 아닐까.M. 엔데의 동화 <모모>는 마음으로부터 이웃의 말에 귀 기울일 줄 아는 소녀의 이야기. 철학자 데이빗 로이와 문학교수 린다 굿휴는 <모모>가 “20세기 후반에서 가장 주목 받아야 할 소설 가운데 하나일 뿐만 아니라, 1973년에 출간 되었으면서도 ‘오늘날의 악몽적인 상황’을 가장 잘 예언한 작품”이라 평가했다. ‘오늘날의 악몽적인 상황’이란 각박해진 인성과 함께 소통기술 발달의 역작용을 염두에 둔 것일지도 모른다. <모모>에서, ‘시간저축은행’의 직원 회색 사나이들이 시간을 훔쳐 가버리자 사람들의 마음에 여유가 사라진다. 그러자 이웃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방법으로 자신을 되찾게 해주는 이상한 능력을 가진 소녀 모모가 나서서 시간을 되찾아 준다는 이야기에서, 독자의 마음을 감동케 하는 대목은 모모에게 상담 해본 사람들이 경청하는 모모에게서 자신이 소중한 존재임을 새삼 깨닫게 되었노라 고백하는 장면이다. 에리히 프롬은 상대의 이야기에 집중하다 보면 피로를 느끼기 보다는 스스로의 의식이 뚜렷해지고 난 다음에야 자연스럽게 쾌적한 피로가 찾아오는 것을 느끼게 된다고 했는데, 들어주는 쪽도 행복을 맛보게 된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우리 이웃에 모모와 같은 사람이 왜 없겠는가. 이웃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이따금 적당한 질문으로 응답해주는 그런 사람 말이다. 누군가가 말했다. “모모의 들음은 기다림”이라고. 기다림이란 상대의 존재를 마음속에 담아두면서도 응답을 재촉하거나 제멋대로의 결론을 서두르지 않고 그냥 기다리는 몸짓이란다. 상대의 페이스에 자신의 시간을 내주는 것이 기다림이란다. “나도 모모와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미 모모를 닮아가고 있는 사람이 아닐까. 그렇다고 그게 쉬운 노릇만은 아니라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을 터. 이쪽 사정은 아랑곳 하지 않고, 시도 때도 없이 나의 시간에 끼어들려 하거나, 나의 관심을 독점하려 드는 그런 이웃을 공감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그럼에도, 아니 그럴수록, 그런 친구에게 지극히 작은 공감을 보여줄 수 있다면 하고 생각해보자. 그것은 나로 하여금 아무나 함부로 할 수 없는 값진 일을 하게 했다는 보람을 안겨 주는 사건이 되지 않을까. 나에게 그런 충실감을 가져다주는 일이 그런 일 말고 또 어떤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이웃에게 일방적으로 요구하기만 하는 흔하디흔한 다수 중의 하나가 되는 대신, 스스로 그의 소중한 이웃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신나는 일일까. 그렇게 우쭐해져 보는 나는 혹 나르시시스트가 아닐까 하고 스스로를 돌아보게도 하지만, 나의 나르시시즘이 소중한 나의 이웃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다면야... 월터 아이작슨이 쓴 <스티브 잡스>의 전기에서는, 잡스의 연인이 여태까지 잡스가 만나본 그 어떤 사람보다도 자신을 가장 잘 이해해 주는 사람이었으면서도 한편 자신을 ‘자기애성 인격 장애자’로 인정하고 있었다는 고백을 읽을 수 있다. 잡스의 애인이 잡스를 나르시시스트로 인정했듯이 그 누구라도 어느 정도는 나르시시스트일 것이고, 또 그런 나를 가장 잘 이해해주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 같아 마음이 흐뭇해진다. enoin34@naver,com
    • 칼럼
    • 이상범
    2017-02-10
  • ‘악령들’에 등장하는 스테판 베르호벤스키 교수
    “귀신들이 그 사람에게서 나와서, 돼지들 속으로 들어갔다. 그래서 그 돼지 떼는 비탈을 내리달아 호수에 빠져서 죽었다”(누가복음서 8장 33절).도스토예프스키는 <악령들>에 등장하는 혁명가들에 대해서 위에 인용하고 있는 <복음서>의 기사를 밑에 깔아두고 이야기를 전개해나간다. 다만 “귀신들”이 “악령”혹은 <악령들>로 바뀐 것은 일본번역의 영향 때문이거나 역자들의 취향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야기는 1869년 러시아의 한 지방도시를 무대로 하고 있다. 전직 대학교수 스테판 베르호벤스키는 부유한 지주의 미망인 바르바라 페트로브나 스타브로긴의 저택에 머물러 있다. 부인의 외아들 니코라이 스타브로긴이 어렸을 적에 가정교사로 들어왔으나 니코라이가 성장해서 도시로 간 이후로는 전제군주적인 성격의 바르바라 부인의 페트가 되어 세월을 보내고 있는 터였다. 이 초로의 지식인은 후한 가정교사의 사례금 때문에 지방 도시로 왔고, 그 덕으로 지금은 술이나 마시고 내기 카드놀이에 찌들어 지내게 되었으면서도, 자신은 진보적인 사상가였기에 학계에서 밀려나 수난을 당하고 있노라 포즈를 취하며 우쭐대고 있었다. 이 공허한 나르시시스트 스테판 베르호벤스키의 아들 표트르 베르호벤스키는 아비의 모습에 신물이 났던 것일까, 표트르는 어엿한 혁명가가 되어 스위스에서 돌아온다. 다섯으로 구성된 비밀결사를 조직해서 혁명정부수립을 꽤하게 되면서 이야기는 영글어간다.때맞추어 니코라이 스타브로긴이 스위스에서 돌아오는데, 둘은 어렸을 때 가정교사와 아비인 스테판 베르호벤스키의 가르침을 받고 자랐다. 표트르는 스타브로긴을 신처럼 떠받들며 혁명이 성사되는 날 그를 한 나라의 지도자로 모실 것이란 신념을 굳혀가고 있는데...... 표트르, 비밀결사를 통해서 거짓선동과 방화 등으로 민중의 불안을 부추기며 소동을 조장해서 지배 권력을 넘어뜨리려 계획하고 있는 표트르는, 그러나 이제 철저하게 아비를 멸시하고 미워하게 된다. 여기에 지난날 스타브로긴 집안의 농노의 아들 샤토프가 끼어든다. 그도 이 집안의 도련님인 니코라이 스타브로긴과 귀족의 딸 리자베타 곁에서 사이비 이상주의자 스테판 스타브로긴의 가르침을 받으며 자랐다. 대학에서는 사회주의를 공부하고 표트르 베르혼스키의 비밀결사에 참여했다. 그러나 곧 전향해서 지금은 “러시아 국민만이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신으로부터 선택받은 백성”이라는 러시아 메시아니즘의 신봉자가 되어 있었다.샤토프의 친구 킬리로프는 기술자이면서도 일종의 무신론자가 되어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인간이 모든 것을 결정할 수 있다” “인간이 죽음의 공포만 극복한다면 신과 같은 ‘인신(人神)’이 될 수 있다“는 이론을 신봉하고 있다.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살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망상이 그를 따라다니고. 이들 모두의 생각은 그들이 어렸을 때, 가정교사 니코라이 스타브로긴의 가르침에서 비롯된 것. 정작 그들을 그렇게 가르친 당자 니코라이는 어느 쪽도 믿지 않고 있지만, 샤토프와 키리로프는 가르침을 따라 열광적으로 니코라이를 받들어 그가 언젠가는 위대한 지도자가 될 것이라 믿어 의심하지 않고 있었다. 잠잠했던 이 지방도시에 차례로 끔찍한 사건들이 줄을 잇게 되는데, 표트르는 전향한 샤토프가 경찰에 비밀조직을 밀고할 염려가 있다며 조직의 일원을 부추겨 지난날의 동지 사토프를 밤중에 공원으로 유인해서 살해하게 한다. 거기에는 조직의 멤버를 살인 공모자로 만들어서 결속을 강화하려는 의도가 감추어져 있었고.한편 표트르는 “인신론”을 증명하기 위해서 자살한 킬리로프를 샤토프를 죽인 범인으로 꾸며낸다. 또 그는 탈옥수 페치카를 종용해서 스타브로긴의 비밀의 처 마리아와 그의 오빠를 죽이고 집에 불을 지르게 한다. 이어지는 살인과 방화로 도시가 어지러워지는 가운데, 표트르는 자취를 감추어버린다. 그리고 악령들의 우러름을 받아오던 스타브로긴은 아무 것도 이루어 놓는 일 없이 목매어 자살한다.<악령들>에서 스테판 베르호벤스키는 주인공이 아니다. 그러나 그가 없는 <악령들>의 이야기는 설득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 또한 분명하다. enoin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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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범
    2017-02-03
  • 10초마다 손뼉을 치는 사나이-저주와 신탁에서 벗어나는 길-
    심리학자 파울 바츨라비크는 <희망의 심리학>에서 “10초마다 손뼉을 치는 사나이”를 소개한다. 10초마다 손뼉을 치는 사나이에게 왜 그런 짓거리를 하는지를 물었더니, “코끼리를 쫓아버리기 위해서”라고 대답한다. “코끼리라 했소? 코끼리는 아무데도 없지 않소?”하고 되묻자, “내가 쫓아버렸기 때문이지요. 그들이 다시 오지 못하도록 나는 손뼉을 치고 있다오.” 이야기에서 손뼉을 치는 사나이 자신도 코끼리의 존재를 부인하고 있다. 다만 자신이 치는 손뼉의 효과만을 이야기할 뿐이다. 주술 행위의 효능을 믿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동작 뒤에 숨어있는 것이다. 그것은 자신의 강압관념이나 망상 혹은 예언의 터전을 끌어안고 있으려는 노림수에 다름 아니다. 손뼉을 치지 않는다면 나타나지 않을 코끼리를 손뼉을 침으로써 불러들이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귀를 막는다. 바츨라비크 왈: “스스로 희생자라 생각하고 발버둥 치면서도 그 상황에서 빠져 나올 수 없다고 생각하면 당신은 자신에게 죄를 범하는 셈이다.” 그리스 신화도 “신화가 인간을 그 속에 가두어두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저주성 주술”이 화를 가져다준다는 사실을 그들이라고 모르고 있지는 않았을 터.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만 해도 그렇다. 이야기는 디바이 왕 라이오스가 신탁을 받는데서 시작된다. “그대의 아들은 자라서 아버지를 죽이고 어미를 범할 것이다.” 왕은 양치기를 시켜 핏덩이(오이디푸스)를 키타이론 산 속에 버리고 오라고 명한다. 양치기는 키타이론에 가긴 했어도 아기를 지나가는 다른 양치기에게 넘겨주고 돌아온다. 아기를 넘겨받은 양치기는 아기를 가질 수 없어 애태우고 있는 코린토스와 포리포스에게 아기를 맡겼기에, 오이디푸스는 코린토스의 왕자로 자란다. 어느 연회에서 “저 녀석은 포리포스의 자식이 아니야”하는 쑥덕거림을 듣게 되자 불안해진 오이디푸스는 신탁으로 진위를 가려보려 해보지만, 무녀들은 “너는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어울린다.”만을 되풀이할 뿐. 신탁이 두려워진 오이디푸스는 코린토스를 벗어나 포키스 삼거리에서 마차를 탄 사나이와 대수롭지 않는 일로 다투다가 죽여 버린다. 훗날 알게 된 일이지만, 그 사나이야말로 그의 아버지 라이오스였다. 그러나 아직 우리의 주인공은 그러한 사실을 알지 못한다. 나그네가 된 오이디푸스는 그의 고향 디바이로 가는데, 스핑크스라는 괴물이 자신의 수수께끼를 풀지 못하는 백성들의 목숨을 빼앗고 있었다. 오이디푸스가 이 수수께끼를 풀어서 스핑크스를 물리친다. “아침에는 네 발, 낮에는 두발, 밤에는 세발”은 곧 인간이라는 수수께끼 말이다. 그 공로로 디바이의 왕이 된 오이디푸스는 과부인 이오카스테와 혼인한다. 그녀가 바로 오이디푸스의 어머니. 시간이 흘러 디바이는 큰 재앙을 만난다. 땅이 메마르고 가축이 죽고 사람이 역병에 시달린다. “모든 재앙은 선왕(라이오스)을 죽인 사나이가 디바이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란 신탁이 내리고. 오이디푸스는 라이오스를 죽인 자를 찾아내려 애쓴 끝에, 자신이 살인자란 것을 알게 되자 스스로 두 눈을 찔러 자결한다. 만약에 오이디푸스가 무녀를 매수해서 자신과 조국에 덕이 될 신탁을 말하게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니면…. 기원전 480년, 페르시아 함대가 아테네를 위협하고 있을 때, 그리스 의회는 적극적으로 방어할 것인지, 소극적으로 대할 것인지를 두고 의견이 엇갈렸다. 적극파 데미스토클래스가 무녀를 매수해서, 먼저 그리스의 패배를 예언하는 불길한 신탁으로 의회를 공포분위기에 휩싸이게 한 후, 곧 “나무 벽을 세워 싸우면 승리할 수 있다”는 신탁을 얻어낸다. “나무 벽”은 “선단”이란 해석을 덧붙여 의회의 분위기를 적극항쟁 쪽으로 돌리는데 성공한 데미스토클래스는 사라미스에서 페르시아 함대를 크게 무찔렀다. 오늘날에도 “10초마다 손뼉을 치는 사나이”는 기이한 그의 몸동작으로 있지도 않는 코끼리를 움직이고 있다며 민중들을 호리고 있을 지도 모른다. enoin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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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범
    2017-01-24
  • 체호프 ‘6호실’이야기
    안톤 체호프(1860-1904)의 단편소설 <6호실>은 러시아의 한적한 시골에 있는 한 정신병동에서 일어난 이야기. 작가의 다른 단편들이 그렇듯이 줄거리는 그리 복잡하지 않다. 그러나 1892년에 발표된 체호프의 단편의 제목 <6호실>은 그대로 보통명사가 되어 오늘날에도 러시아 사회에서는 ‘비정상적인 상태’를 비꼬아서 하는 말로 유통되고 있다고 한다. 어쩐지 그게 남의 이야기만은 아닌 것 같아 <6호실>을 다시 뒤져보게 된다. 주위를 살피노라며 여기저기에 <6호실>은 산재해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아니다 내가 이미 그 <6호실>에 수용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고 생각해보게 되는 요즘이기도 하다. 한적한 시골에 병원이 하나 있다. 좀 떨어져서 “6호실”이라 부르고 있는 격리병동이 있는데, 가시 울타리로 둘러쳐져 있지만, 별로 시설도 없고 언제나 드러누워서 빈둥대는 감시인 말고는 이렇다 할 것이 없어 보이는 초라한 시설이다. 의사 안드레이 예피모치 라긴이 이 시립병원에 원장으로 부임해온다. 환자를 대하는 라긴의 태도는 여느 의사들과는 사뭇 달랐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병동의 살균과 소독을 하도록 지시하는가 하면, 환자들과는 많은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그럼에도 의사로서의 안드레이 예피모치 라긴의 노력은 점차 한계를 보이게 된다. 라긴 원장은 젊어서 신학대학에 가려고 뜻을 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부모의 강요로 의사가 된 것이었다. 부임 초에는 나름대로 열심히 환자를 돌보았다. 그 결과 병원의 분위기와 상태는 몰라보리만큼 개선되었다. 그러나 자신이 몸을 아끼지 않고 진료를 했어도 현실에는 아무런 변화를 가져 오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관리들은 회계장부를 속이고, 사람들은 명예도 모르고, 삼갈 것을 삼갈 줄도 몰라라 하면서, 오직 자신을 위해서만 살아가는 바보들로 보였다. 마침내 진료는 거의 하지 않으면서 격리병동도 내버려 둔 채 날마다 좋아하는 독서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철학을 말할 상대도 없는 한직에 내몰린 것을 슬퍼하고 있는 원장은 의학공부를 하지 않았어야 했다고 후회한다. 신학을 공부했더라면 지금은 지식인이 되어 있었을 것이라며 아쉬워하기도 했다.  병원과 격리되어 마음의 병이 있는 사람들을 돌보고 있는 “6호실”에는 다섯 사람이 입원해 있었다. 어느 봄날 밤, 라긴이 우연하게도 6호실을 방문하게 되는데, 그로부터 그의 6호실 방문이 무척 잦아지기 시작한다. 그것은 라긴이 6호실에서 말벗을 찾았기 때문. 이반 드미트리치 글로모프 33세는 귀족출신이었으나 몰락하여 현청에서 집달 리의 직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그러나 타고난 신경질에다 과민한 소심성 탓으로 피해망상증에 사로잡혀 발광하고 만 것이다. 그런데 원장 라긴이 이 환자의 지성과 교양에 감동하여 격리병동에 살다시피 하며 그와 철학을 논하게 된 것이다. 때로는 환자가 흥분해서 광기어린 언동을 연출하기도 했지만 그것조차 라긴의 가슴에는 신선한 기쁨으로 다가오는 것이었다. 의사 라긴은 환자의 일거수일투족에 진리와 공감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그러는 동안, 의사 라긴은 이제 주변 사람들에게서 “치료가 필요한” 상황으로 비추어지고 있었다. 그러다 마침내는 자신이 환자가 되어 격리병동에 수용되게 된 것이다. 결과는 언제나 누워서 뒹굴기나 하는 게으름뱅이 직원에게 매 맞은 다음날 아침, 사늘한 주검이 되고 만다. 미라 잡이가 미라가 된다했던가. 원은 격리병동에 환자를 입원시키는 쪽에 있었던 의사가 역전하여 환자가 되어 격리병동에 갇히게 된다는 을씨년스러운 스토리전개는 동서고금을 통해 흔하게 볼 수 있는 이야기 전개법이 아니던가. 그렇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는 대수롭지 않게 그냥 귀를 스칠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대수롭지 않게 들린다는 것은 그런 이야기가 이미 내게 익숙해져 있다는 것은 아닐는지. enoin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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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범
    2017-01-13
  • 나비와 벌 그리고 풍뎅이
    식물은 곤충에게 꿀이나 꽃가루를 주는 대신, 꽃가루를 나르게 한다. 식물과 곤충의 공생관계가 이루어지면서 최초로 꽃가루를 운반한 곤충은 풍뎅이. 그러나 풍뎅이는 눈치나 행동이 민첩하지 못한 탓으로, 식물이 꽃이란 것을 만들게 되면서는, 꽃과 꽃 사이를 재빠르게 날아다니는 나비와 벌에게 밀려나고 만다. 나비와 벌 중에서 어느 쪽을 더 좋아하느냐고 묻는다면 많은 사람은 나비 편을 들 것이다. “나비 효과”라 했던가. 베이징에서 나래 짓을 하면 지구 반대편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게 한다는 나비가 아니던가. 로렌츠의 과장도 나비의 우아한 몸짓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을 터이지만, 나비가 화사한 날개 짓을 하며 꽃으로 다가 와서는 긴 다리로 사뿐히 내려 빨대와 같은 긴 입술로 우아하게 꿀을 빨아들이는 모습은 가히 나비효과를 일으킬 만하다할 것이다. 그러나 벌은 그렇지가 못하다. 쉴 틈도 없이 윙윙 소리를 내는 벌의 날개 짓은 귀찮고 성가시기만 하다. 그러나 나비가 밥을 먹여주는 사람의 수는 그리 많지 않다. 기껏해야 나비학자 정도가 아닐까. 반면에 벌은 많은 사람에게 밥을 먹여준다. 벌의 덕을 보지 못한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나비는 식물에게 우호적인 존재는 아니란다. 우아한 나비의 모습과는 달리, 아니 나비를 우아하게 해주는 그 긴 다리는 정작 꽃가루는 묻히려 하지 않는다. 나비는 식물에게 꽃가루는 옮겨다 주지 않으면서도 꿀만 빨아가는 얌체요 도둑인 것이다. 우아한 몸짓과는 달리. 식물에게 없어서는 안 될 파트너인 꿀벌이 부지런한 일꾼이란 사실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꿀벌처럼 사회성이 있는 곤충은 가족을 부양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꽃에서 꽃으로 분주하게 날아다니지 않으면 안 된다. 이와 같이 자신을 위해서 애쓰는 벌의 노력이 식물에게도 큰 도움이 되어주고 있다니 묘하기만 한 자연의 이치가 아닌가. 그러나 벌이 꽃에서 꽃으로 날아다닌다지만, 다른 종류의 꽃으로 날아 가버리면 식물이 꽃가루를 받아 열매를 맺을 수가 없게 된다. 그러나 벌은 식물을 배신하지 않고 충실히 같은 종류의 꽃들에게 날아다녀 준다. 벌의 작업 효율이 뛰어난 것은 그 때문이다. 그것은 식물이 벌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인 결과이기도 하다. 벌이 조금이라도 더 아름답게 꽃을 장식하려 하는 것도 그 때문이고. 또 찾아온 벌이 실망하지 않도록 많은 꿀을 준비해두는 것도 그렇다. 그렇게 해서 벌을 불러들이는 것이다. 왜 문제가 없겠는가. 벌을 위해서 준비한 꿀을 탐해서 다른 곤충들이 꽃으로 모여들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다른 곤충은 거부하고 벌에게만 꿀을 줄 수가 있을까를 궁리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받아들이는 노릇은 거부하는 짓거리와 서로 등을 맞대고 있는 것을. 아마도 식물과 벌은 함께 머리를 맞대지는 않았어도 서로의 문제로 여기고 궁리했을 것이다. 궁하면 길이 있다 했던가. 화사하기만 한 나비나 어설픈 풍뎅이와는 달리, 벌은 머리가 좋을 뿐만 아니라, 매사에 정성을 쏟는 습성이 있다는 사실을 터득하고 있는 식물인지라, 꽃 깊은 곳에 꿀을 감추어두는 묘수를 고안해낸다. 꽃 모양을 복잡하게 해서 어설픈 곤충이 쉽게 꿀에 닿지 못하도록 구조를 발전시킨 것이다. 대신 꽃잎에는 꿀을 감추어 둔 곳을 일러주는 무늬를 붙여두어, 이 수수께끼를 풀어내는 머리가 좋은 곤충만이 꿀을 빨아갈 수 있도록 주선했다. 벌은 좁은 꽃길을 기어들었다가도 뒷걸음 쳐서 용하게 밖으로 나올 수 있지만, 그게 다른 곤충들에게는 어림도 없는 노릇. 벌이 뒷걸음을 익힌 것이 먼저였는지, 꽃이 먼저 좁은 모양으로 진화한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지만,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서로의 필요를 따라 앞서거니 뒤서거니 진화한 것이 아닐까싶다. 벌은 다른 꽃에는 눈길을 주지 않고 같은 종류의 꽃으로만 날아다니는데, 이를 공생관계라 한다. 그러나 공생관계란 서로 돕는 관계는 아니란다. 자연계의 생물은 남을 위한다는 덕목을 내세우지 않는다. 꽃도 벌도 이기적으로 자기에게 이롭도록 만 행동하고 있을 뿐. 제멋대로의 생물이 서로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도 덕을 얻어내는 그들의 삶은 신비롭기만 하다. enoin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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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범
    2017-01-06
  • 요세푸스의 ‘유대전쟁사’에서 보는 유대전쟁의 단초
    정의란 들고 나서는 이들에게 모든 것이 허락되고 있다는 망상을 갖게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힘이 더해지면 사태는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갈 수도 있고. 2천 년 전 로마의 지배로부터 동포를 구해낸다는 대의를 내걸었던 유대인이 그랬고, 성지를 탈환하겠다는 대의를 내건 십자군이 그랬다. 독일의 히틀러가 그랬고, 러시아의 스탈린이 그랬다. 요세푸스의 <유대전쟁사>를 더듬어 보노라면, 유대인의 로마에 대한 항전기록은 그대로 오늘 우리의 현실에서도 낯선 것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된다. 신정체제(데오크라티아)라는 대의를 기치로 내걸고 동포를 로마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서 일어났다는 제로타이(과격파)나 시카리오리(단도파=암살과격파)들이 동포를 약탈하고 탄압 학살한 기록 말이다.여기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안될 일은 당시 유대민족들로 하여금 과격파들이 내건 기치에 따라나설 수밖에 없게하는 안성맞춤의 빌미를 제공한 인물이 있었는데, 그게 로마의 악덕 총독 프로로스였다는 사실이다. 요세푸스는 치를 떨며 그의 저서 중, <파멸의 길>의 첫머리를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총독 아르비노스의 후임으로 네로가 파견한 후임 게시어스 프로로스는 유대인에게 많은 불행을 가져다주었다. 그는 크라조메나이(소아시아)출신으로 교활하기로는 그에게 지지 않을 아내 클레오파트라와 함께 부임해왔다. 그가 총독이 될 수 있었던 것도 그녀가 네로의 애첩 포페아와 가까운 사이였기 때문이었고.”증언은 이어진다. “프로로스는 유대인에게 너무나도 악랄하게 권력을 남용했고, 그 결과 곤궁의 밑바닥에 떨어진 유대인들은 전임자 아르비노스를 은(銀)이었다고 칭찬할 지경에 이른다. 아르비노스는 적어도 악행이 드러나지 않게 세심한 주의를 기울일 줄은 알았던 것이다. 그러나 프로로스는 마치 악덕의 쇼를 연출하기 위해서 파견된 양, 우리들 유대민족을 이것 보라는 듯이 불법으로 다루고 약탈과 불법처형을 남김없이 자행했다... 이 이상 내가 무엇을 더 말할 필요가 있으랴. 우리는 로마인과 싸우지 않으면 아니 되게 한 것은 프로로스였다.”로마로부터의 해방이라는 명분을 반대하고 나설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이 구호를 내걸고 있는 자들이 그 구호를 위해서라면 서민들의 삶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면, 그들도 서민에게는 별 수없이 도적 떼나 폭력집단이 되고 만다. 투쟁자금을 조달하기 위해서라면 은행을 털어도 좋고 인민의 지갑을 가로채도 그만인 그들. 보잘 것 없는 사건 혹은 불가항력적이던 사건이 부풀어 올라 마침내는 자신들에게 큰 박해를 불러오게 되는 일은 인류의 역사에서 여러 번 경험해온 터. 게다가 그것이 신성과 연결되면 사건은 걷잡을 수 없어지게 마련. 사건은 가이사리아에서 터진다. 항구 가이사리아에서는 그리스인들의 이민이 많아서 유대인과의 사이에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이런 일이 있었다. 시너고그에 인접해서 그리스인의 소유지가 있어 유대인이 매수하려했으나 소유주가 2, 3배나 되는 값을 요구할 뿐만 아니라, 거의 통행이 불가능할 정도의 좁은 길만 남겨놓고 공사를 시작했다. 분개한 젊은이들이 나서 공사방해를 했고, 법을 어겼기로 체포된다. 이에 프로로스 총독에게 뇌물을 주고 건축을 그만두게 하려했고, 총독은 협력을 약속한다. 그러나 안식일이 되어 유대인이 시너고그에 모여들자 가이사리아인들 일부가 입구에서 새를 잡아 희생제물을 드리고 있는 것이었다. 유대인이 격노한다. 그것은 곧 그들의 하나님을 모독하는 행위였기에. 분별 있는 사람들은 관헌에게 호소하자고 했으나 싸우기를 좋아하는 무리는 기를 쓰고 싸우자고 나서자 이내 충돌은 격화한다. 기병대가 나서보지만 양편의 폭력을 진정시킬 수는 없었다. 요세푸스의 증언은 계속된다. “총독 프로로스는 마치 전쟁의 불씨를 부채질 할 의무라도 있는 듯이, 성전의 보물창고에서 가이사에게 바친다는 구실로 17달란트를 빼앗아갔다.” 분노한 민중이 폭동을 일으키자, 프로로스는 군대를 거느리고 예루살렘으로 왔다. 요세푸스는 적는다. “성전에서는 대제사장의 아들 엘리아자로스가 성전의 호위를 맡고 있다가, 외국인들로 부터의 희생제물을 받아들이지 않도록 했다.” 이것은 로마제국에 대한 선전포고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과격파의 영향은 지도계층의 자녀들에게도 미치고 있었던 것이다. enoin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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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범
    2016-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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