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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범 칼럼] 당나귀의 유언장 - 루터의 유머-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가 교황을 가리켜 “친애하는 당나귀”라며 신랄하게 비판한 사실은 너무나 유명하다. 또 루터는 교황제도를 “레비아탄”에 비유하기도 했다. 욥기에 나오는 짐승 말이다. 종교개혁운동에 등 돌린 에라스무스를 향한 루터의 <투쟁의 서>나 <노예의지론>에서 읽을 수 있는 설득력은, 날카로운 논리에 풍자적인 웃음이 종횡으로 교차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루터 자신에 대한 아이러니가 큰 몫을 했다고들 말한다. 그가 동지들을 격려하고 위로하기 위해서 쓴 수많은 편지들을 읽노라면 안팎으로 닥쳐오고 있는 위험으로부터 불안과 긴장을 풀어보려는 그의 마음씨가 배어난단다. “이 성 창문 아래 있는 작은 숲에서, 큰 까마귀 작은 까마귀들이 회의를 열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끊임없이 드나들며 술주정뱅이 모양 떠들어 댄다.....까마귀들은 마치 설교를 하고 글을 쓰는 스콜라 학자들이나 교황파 사람들과 흡사하다. 다만 시간을 보내고자 형편없이 땅을 더럽히면서 떠들어대고 숨을 내뿜어대다니 진정 유익한 종족이 아닌가.” 익살꾼 루터의 집에는 언제나 방문객들이 그치지 않았고, 그들은 음악에 더해 루터의 유머도 즐겼다. 함께 했던 학생들 중에 루터의 이야기나 함축 있는 언급을 기록해두는 이들이 있어서 훗날 <탁상담화>로 출판되었다. 이런 글이 있다. “당나귀는 유언장에서, 교황들에겐 머리를, 추기경들에겐 귀를, 가수들에겐 목소리를, 농민들에겐 똥을, 배우들에겐 다리를, 군인들에게는 큰 북과 작은 북을 만들 가죽을 남겼다!” 어느 날, 루터가 기르던 개가 식탁 곁에서 주인이 던져 줄 한 조각의 고기에 신경을 모으고 있었다. 입을 벌리고 가만히 주인을 바라보면서. 개의 모습을 가리키며 루터가 말한다. ‘던져줄 고기를 바라보고 있는 개처럼만 기도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오직 한 쪽의 고기를 간절한 심정으로 바라보고 있기에 그것 말고는 다른 것을 생각할 수도 바랄 수도 없어하는 저 개처럼 말이다.’ “ 루터의 집에는 지베르거라는 도우미가 있었다. 그에게는 새를 잡는 취미가 있어서 틈이 날 때면 그 일에 열중했다. 루터는 새들이 괴로워하는 것을 보는 것이 싫었다. 자신이 솔직하게 지베르거에게 그 일을 그만두라고 명령할 수도 있었을 터이지만, 루터는 유머러스한 경고의 문서를 그에게 보냈단다. 문서 겉봉에는 “도우미 지베르거에 대해서, 루터 박사에게 보내는 새들의 호소” 라는 제목이 붙어있었다. 문서의 양식과 내용도 흡사 고발장과 같았다. “우선 새들이 지베르거에 의해서 자유를 빼앗기고, 생명과 신체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을 명백히 하는 바이다. 그에 더해서 루터에게 새들에 대한 지베르거의 행위를 중지하게 할 것을 요구한다. 적어도 오전 8시까지는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게 함으로, 새들이 안전하게 비텐베르크의 하늘을 날아다닐 수 있게 할 것을 탄원하는 바이다. 그러나 루터가 중지시키지 못할 경우라면 새들은 대항수단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는 반 협박조의 말도 이어진다. 또 하나님에게 부탁해서 지베르거가 새들 대신 낮에는 개구리나 메뚜기들을 쫓아다니고, 밤에는 쥐나 벼룩이나 모기나 빈대에게 둘러싸이기를 빈다는 저주성 발언으로 끝을 맺는다. 결론적으로 이 호소문은 지베르거로 하여금 “땅에 떨어진 작은 곡식알을 찾을 뿐인 작은 새들 대신 사람들에게 큰 피해를 주고 있는 까마귀나 시궁창 쥐를 잡는 것은 어떨까 하는 권면이기도 했다. 실제로는 지베르거가 잠꾸러기어서 아침 여덟시까지 일어나지 말기를 바란다는 청원은 그러니까 야유였던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마음은 명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 않다면 그는 악마의 유혹을 받고 있는 것”이라 했다는 루터의 말이 모든 그의 기행의 참 뜻을 설명해줄 수 있으리라 루터가 발트부르크 성에 숨어서 성서번역에 열중하고 있을 때, 나타난 악마를 향해서 잉크병을 던져서 쫓았다는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다. 성서가 민중의 언어로 번역되어서 하나님의 말씀이 널리 퍼지는 것을 두려워한 악마가 루터의 일을 방해하려고 했기 때문이란 것. 오늘 날 그 방 벽에서는 잉크 흔적을 볼 수 없다고 한다. 이미 그 옛날에 사람들이 회벽을 긁어갔기 때문이라나. enoin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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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범
    2022-01-22
  • [이상범 칼럼] 지도자의 자질 -비느하스와 여호수아-
    이스라엘이 출애급 후 싯딤에 있었을 때, 제사장 비느하스는 한 이스라엘의 남자와 미디안 여자가 음행하는 현장에서 창을 들어 남녀의 배를 꿰뚫어 징벌했다. 비느하스의 결단은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일이었다. 하나님은 이방여인들과 음행하는 이스라엘 남자들에게 벌로 내렸던 염병을 거두어들였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비느하스와 언약을 맺어 그와 그를 잇는 자손에게 영원한 제사장 직분을 보장했다.(민수기 25장). 해결사적 결단력은 비느하스로 하여금 스타가 되게 했다. 그는 아론의 손자이자 엘르아살의 아들이어서 혈통적으로도 나무랄 데가 없었다. 모세는 은근히 그를 후계자로 낙점하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상을 하직할 날이 가까워지진 모세는 후계자 선택을 위해 더더욱 간절하게 기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모든 사람에게 영을 주시는 주 하나님, 이 회중 위에 한 사람을 임명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가 백성 앞에서 나가기도 하고, 백성 앞에서 들어오기도 할 것입니다. 백성을 데리고 나가기도 하고, 데리고 들어오기도 할 것입니다. 주님의 회중이 목자 없는 양 떼처럼 되지 않도록 하여 주십시오” (민 27:16-17). 왜 모세는 비느하스를 후계자로 결정하기를 주저했을까? 모세와 아론이 역할분담을 해온 것처럼, 정치적 지도자와 종교지도자를 분리하려는 의도가 한몫했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치더라도, 초비상시에 한 민족을 이끌어갈 수 있는 지도자를 선택하는 일에서 모세는 더 높은 차원의 고민을 했던 것은 아닐까 싶어진다. 성서에는 모세가 “지도자가 갖추어야할 보다 높은 수준의 덕목”을 두고 기도했음을 짐작케 하는 단서들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랍비 콕의 해석에 따르면, 노련한 모세는 모든 사람의 이목을 집중케 한 비느하스의 과감성이 오히려 지도자로서의 자질에 누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 보았다는 것이다. 비느하스의 행동은 하나님으로부터도 인정받은 바 있지 않는가. 모세도 비느하스를 좋아했고 그의 과감성에 대해서 칭찬한 바 있었다. 그러나 성공을 맛보게 한 자신의 과감성에 취해있는 열광주의자가 이스라엘의 새 지도자가 되어도 좋을 지에 대해서 모세는 재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백성을 데리고 나가기도 하고, 데리고 들어오기도 할…”지도자를 주십사 하는 기도문에서 우리는 어느 정도 모세가 안타까워하는 속사정을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백성을 전투로 이끌어나가는 것만이 지도자의 능사가 아니지 않는가. 싸움터로부터 백성을 무사히 이끌고 돌아오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지도자의 책무인 것을. 실제에 있어서 후자의 경우가 전자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을 모를 사람은 없을 터. 진정한 지도자는 데리고 나가는 일과 데리고 돌아오는 일을 다 할 수 있어야만 한다. 정통적 유대인 성서학자 럿시는 모세의 기도를 이렇게 주석했다. “…주님께서는 모든 사람의 마음을 아시고, 사람들의 마음이 각각 다르다는 것을 아십니다. 원하오니, 주님의 모든 자녀들의 마음들을 두루 살필 수 있는 지도자를 세워 주십시오.” 마침내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기도에 응답하여 말씀하셨다. “너는 눈의 아들 여호수아를 데리고 오너라. 그는 영감을 받은 사람이다. 너는 그에게 손을 얹어라”(민 27:18). 럿시는 풀이한다. “영감을 받은 사람이란, 백성들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에 대응할 수 있는 인물”이라고. 또 “대응한다.”는 말은 언제나 수동적인 자세를 취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고도 덧붙인다. 훌륭한 지도자란 자기의 생각을 주장할 줄 알 뿐만 아니라, 자기의 마음을 바꿀 수도 있고, 선입견을 버릴 수 있는 사람이라야만 한다는 것이 “영감을 받은 사람”의 내용이라고.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모세의 측근으로서 모세의 장막을 떠나본 적이 없는 젊은이였지만, 하나님께서 “그에게 손을 얹어라”하실 때까지 후계자가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위인이다. 그러나 모세는 주께서 말씀하신 대로 했다. enoin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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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범
    2021-09-05
  • [이상범 칼럼] ‘힘센 장사 기드온’ 의 제 모습
    답답하다. 날씨 탓만은 아닌 것 같다. ‘성서 점’이라도 쳐보기로 한다. 도스토옙스키가 자주 시도했었다는 수순을 따랐더니, <사사기> 6장이 떨어진다. 기왕이면 하고 난청치료를 겸해 소리 내어 읽는다. 약간은 후련해지는 것 같다. 내친 김에 7장까지 내리 읽는다. 참고 서적을 뒤졌더니 러시아정교회에서는 9월 26일(현대력=10월9일)을 <기드온의 날>로 기린단다. 기드온을 성자로 받들고 있다는 뜻일 터. 그런데 러시아 정교회가 제공하는 자료들에서는 번듯하고 힘찬 기드온의 ‘이콘’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사연이 있을 터이다. “미디안 사람의 세력이 이스라엘을 억누르니, 이스라엘 자손은 미디안 사람들 때문에 산에 있는 동굴과 요새에 도피처를 마련하였다.” “이스라엘 자손이 씨앗을 심어 놓으면, 미디안 사람과 아말렉 사람과 동방 사람들이 쳐 올라오는 것이었다.” “그들은 이스라엘을 마주보고 진을 쳐놓고는, 가사에 이르기까지, 온 땅의 소산물을 망쳐 놓았다. 그리고 이스라엘에 먹을 것을 하나도 남기지 않았으며, 양이나 소나 나귀까지도 남기지 않았다.” 너무나 초라한 이스라엘의 모습이 아닌가. 초라하긴 하나님이 지도자로 선택한 기드온도 못지않아 보인다. 기드온이 “포도주 틀에서 몰래 밀 이삭을 타작하고 있었다.” 에서 포도주 틀이란 바위를 뚫어 만든 구멍이라지 않는가. 그 속에서라면 적의 눈데 뜨이지 않게 몸을 감출 수 있을지는 몰라도 사나이가 몰래 숨어서 밀을 타작할 수 있는 공간은 못 되었던 것 같다. 기드온은 남달리 겁이 많은 사람이었음을 은근히 일러주자는 속셈일까. 그러나 하나님은 이 사나이를 미디안 사람들과의 싸움을 이끌 지도자로 내세운다. 당시 이스라엘을 포위하고 있는 것은 미디안 사람만이 아니었다. 아말렉 족속과 동방의 여러 민족들의 연합군 13만 5천. 그들이 이스라엘을 공략하고자 집결하고 있었는데도. “이스라엘이 미디안 때문에 전혀 기를 펴지 못하게 되자, 마침내 이스라엘 자손이 주께 울부짖었다.” 사태가 달라지는 것은 이제부터.”주님의 천사가 그에게 나타나서 “힘 센 장사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 하신다. 바위구멍에 숨어있는 기드온을 일컬어 “힘 센 장사”라 부른다. 기드온이 의용군을 모집하지만, 모인 사람은 겨우 3만 2천. 누구의 눈에도 이스라엘은 열세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말씀하신다. “네가 거느린 군대의 수가 너무 많다. 이대로는 내가 미디안 사람들을 네가 거느린 군대의 손에 넘겨주지 않겠다. 이스라엘 백성이 나를 제쳐 놓고서, 제가 힘이 세어서 이긴 줄 알고 스스로 자랑할까 염려된다. “그러니 너는 이제라도 그들에게 말하여, 두려워서 떨리는 사람은 누구든지, 길르앗 산을 떠나서 돌아가게 하여라." 기드온이 두려워서 떠는 자를 돌아가게 하니, 그들 가운데서 이만 이천 명이 돌아가고 만 명이 남는다. “주께서 또 기드온에게 말씀하셨다. "군인이 아직도 많다. 그들을 물가로 데리고 내려가거라. 내가 너를 도와 거기에서 그들을 시험하여 보겠다. 내가 너에게 '이 사람이 너와 함께 나갈 사람'이라 일러주면, 너는 그 사람을 데리고 가거라. 내가 또 너에게 '이 사람은 너와 함께 나가지 못할 사람'이라 일러주면, 너는 그 사람은 데리고 가지 말아라." 하나님이 병사들의 능력을 판별하는 기준은 활솜씨나 칼솜씨가 아니라 물을 마시는 자세였다. “기드온이 군대를 물가로 데리고 내려가니, 주께서 기드온에게 이렇게 일러주셨다. "개가 핥는 것처럼 혀로 물을 핥는 사람과 무릎을 꿇고 물을 마시는 사람을, 모두 구별하여 세워라." 얼핏 “개처럼 혀로 물을 핥는 사람”보다는 “무릎을 꿇어 물을 마시는 쪽”의 폼이 더 나아 보일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주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셨다. "손으로 물을 움켜 입에 대고 핥아먹은 삼백 명으로 너희를 구원하겠다.” 정리를 해본다. 항상 전투에 대비해서 물을 손으로 떠서 핥는 사람만을 전투요원으로 선택한 것이다. 그 결과 남은 인원은 불과 3백 명. 수량 놀음에 익숙해진 현대인에게는 무의미해진 교훈일까? enoin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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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범
    2021-07-18
  • [이상범 칼럼] 마리아는 좋은 몫을 택했다.
    여성신학자 몰트만 벤델은 누가복음 10장의 <마르다와 마리아>이야기를 두고 “대조적인 두 타입의 여성을 대표하는 이야기”로 보았다. 마르다는 적극적인 여성을, 마리아는 명상적인 혹은 소극적인 여성을 대표하는 것으로 일단 못을 박는다. “일반적으로 남성들은 소극적인 마리아를 선호한다.”하고 시비를 걸면서, 복음서의 저자들이 모두 남성들이었기에, 적극적인 마르다를 폄하하고, 이른바 소극적이고 여성적인 마리아를 일방적으로 높여주고 있다. ”라고 목청을 드높인다. 그는 말한다. 요한복음서 11장에서의 예수가 죽은 나사로를 무덤에서 살려내신 이야기에서, 마르다가 예수님에게 “그렇습니다. 주님, 주님은 세상에 오실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제가 믿습니다.”하고 고백했다는 기록을 내세우면서, 마태복음서 16장의 베드로의 그리스도 고백과 비교해서도 마르다의 고백이 훨씬 더 우월한데도 불구하고, 이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남성우월주의적인 수작이고 같은 이데올로기가 <마르다와 마리아의 이야기>를 잘못 이끌어가고 있다고 강변했다. (<예수 주변 여인들>) 즉, 누가복음서의 <마르다와 마리아>이야기에서, 예수가 마리아는 칭찬하고, 마르다는 나무란 것으로 그리고 있는데, 이는 마리아형의 소극적인 여성을 좋아하는 남성 누가의 속내가 그대로 드러나고 있는 기록이라고 주장했다. 민중 신학자 안병무는 자신의 개인잡지 <현존> 109호에 실은 <일상성과 비일상성>에서, “누가기자는 ‘예수의 이 방문이 예루살렘에로의 결행, 곧 수난의 도상에서 된 것으로 보도한다.” 는 전제를 깔고 해석해야한다고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접대하는 일에 분주한 마르다의 행동은 일상에서는 어울리는 행동이지만, 십자가의 죽음을 앞둔 예수의 비일상적인 결단을 앞둔 시점에서는, 마리아의 행동이 평가받아야한다는 해석을 덧붙였다. 그러니까, 마리아와 같은 소극성은, 극히 제한적인 특정상황에서만, 인정받을 수 있는 일일지언정, 적극성이 주류가 되어야할 일상에서는 비난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니까 누가 10장의 기록을 풀이하기 위해서는 요한 12장 1절 이하에 등장하는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가셨다. 그 곳은 예수께서 죽은 사람 가운데에 살리신 나사로가 사는 곳이다.....”로이어지는 이야기를 덧붙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소위 <마르다와 마리아>의 이야기로 알려지고 있는 이야기에서 누가가 의도적으로 생략했거나 무시해버린 기록이라고 믿는 콘텐츠를 다른 복음서에서 이끌어오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누가기자의 기록의도와는 아주 다른 멋진 해석이라기보다는 나름대로의 개작을 선보인 셈이다. 신학자들이야 어떻게 둘러대고 무엇을 갖다 붙인들 그들의 소신을 주장할 수 있으면 그만일지 모른다. 그러나 설교꾼은 그게 쉽지 않다. 심정적인 거부감을 어쩔 수 없기 때문이리라. 이 이야기를 <마르다의 고백>이라 읽으면 어떨까 싶다. 이 이야기를, 복음서 기자에게 들려준 장본인이 누구였을까 하고 생각해보면서 얻어진 결론이라고나 할까. 물론 전승으로 전달되었어도 종자이야기가 있었을 테니 말이다. 다시 말해서 마르다가 훗날 처음교회의 리더로 활약하게 되었을 때, 마르다는 자주 그 때 있었던 일을 회상했을 뿐만 아니라, 뉘우치며 회개하는 마음으로 교인들 앞에서 고백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어지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이야기는 제삼자가 객관적인 눈으로 관찰해서이거나, 아니면 동생 마리아가 자랑삼아 전해 준 이야기가 아니라, 마르다 자신이 그 때 예수에게서 나무람의 말씀을 듣게 된 경위를 솔직하고 겸손하게, 당시의 교인들에게 이야기한 것이, 전승이 되어 전해졌고, 그것이 누가 기자의 손에 들어간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아르베르 카뮈의 소설 <전락>에서, 주인공 크래망스가 자신의 허위의식과 위선에 대해서 솔직히 고백한 다음 청중들에게 말한다. “여러분은 나의 고백을 하나의 그림을 보듯이 듣고 있습니다. 그러나 과연 이 이야기가 그림일까요? 그림이 아니라, 거울일지도 모릅니다.” enoin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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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범
    2021-06-15
  • [이상범 칼럼] 마르다는 “들떠있었다”
    누가복음 10장 38절 이하에 등장하는 “마르다와 마리아”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그들이 길을 가다가, 예수께서 어떤 마을에 들어가셨다.” 그 길이 어떤 길인지에 대해서는 암시조차 주지 않는다. 그 길이 십자가로 이어질 길인 것은 틀림없어 보이지만, 누가복음서는 그에 대해서조차 함구한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해야 할 이야기를 특정화해서 어떤 특정한 의미를 부여하려는 의도는 없어 보인다. 요한복음서에 보도되고 있는 비슷한 이야기, 즉 “유월절 엿새 전 예수께서 베다니에 가셨다.”와는 집필동기가 사뭇 다른 것 같다. 다만 “마르다라고 하는 여자가 예수를 모셔들였다”에서 마르다가 그 집의 주인임을 암시한다. 어떤 해석자들은 동생 마리아를 이전에 가출한 적이 있어 가버나움 언저리에서 창녀로 있었을 때에, 이미 예수를 만난 적이 있는 막달라 마리아와 동일인물로 다루기도 한다. 그러나 적어도 이 본문에서는 마리아와 마르다의 오라비이고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나사로의 집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는다. “이 여자에게 마리아라고 하는 동생이 있었는데, 마리아는 주님의 발 곁에 앉아서 말씀을 듣고 있었다.”를 말할 수 있는 정황이면 충분했던 것 같다. 다음 구절 “그래서 마르다가 예수께 와서 말하였다.”에서는 “그래서”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마르다가 예수께 와서 말하게 된 동기가 “마르다는 여러 가지 접대하는 일로 분주하였다”에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적어도 마르다 자신에게만은 나름대로의 동기가 갖추어져 있었다는 것이다. 다시 당시의 상황을 정리해보자. 마르다의 집에 존경하는 예수가 일행과 더불어 갑자기 찾아주셨다. 발을 씻을 물을 길러오고, 잡수실 것을 준비하는 일이 어찌 수월했으랴. 마르다는 이리 뛰고 저리 뛰었을 것이다. 당연히 그래야만했다. 에서는 이 구절을 이렇게 번역하고 있다. “all the work she has to do.” 접대하는 일은 그녀가 마땅히 하지 않으면 안 될 일이었다. 원어의 diakon 은 집사 혹은 봉사라고 번역할 수 있지 않는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은 정당할 뿐만 아니라 반드시 해야만 할 일이었다는 그런 자신감이, 마르다로 하여금 자신이 주라 부르는 예수에게 달려가게 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예수께 물었다. "주님,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십니까? 가서 거들어 주라고 내 동생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형식으로는 의문문. 그러나 그 내용까지도 의문문이랄 수 있을까?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십니까?” “그럴 수는 없지 않소?” 따지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힐난하는 말투인 것은 누구라도 알 수 있다. 마르다는 예수를 윽박지른 것이다. “아무렇지 않게 생각합니까?” “도대체 정의감이나 균형감각은 두었다 어디에서 쓰실 것인가요?” 하는 말이다. 좀 더 리얼하게 그리고 극적으로 다듬어본다면 “그래 내 동생 마리아와 희희낙락하시느라 나 혼자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수고하는 모습은 안중에도 없단 말씀이에요?” “아니, 동생은 철이 없다 손치더라도, 그래 선생님까지 그래서야 되겠소?”하는 듣기에 따라서는 퍽 민망스러울 수밖에 없는 말이 된다. 인간의 뇌를 연구하는 이들의 말에 따르면, 인간의 뇌는 배신자로 분류할 만한 부류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사소하게나마 사회적 룰에서 벗어나고 있다고 인정되는 손쉬운 공격대상자를 찾아내 벌주는 일에서 쾌감을 느낀다고 한다. 타자에게 정의의 제재를 가하노라면 뇌의 쾌락중추가 자극을 받아 도파민을 발생하기 때문이란다. 이런 쾌락에 끼어들게 되면 쉬 벗어날 수 없어서 적극적으로 처벌대상을 찾아 나서게 될 뿐만 아니라, 대상을 절대로 용서할 수 없게 된다고 한다. 또 우리는 마르다가 그녀의 시선을 어디에 두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관찰해보지 않으면 안 된다. 마르다는 그렇게도 분주한 가운데서도 시선을 동생 마리아와 더불어 희희낙락하고 있는 예수에게 집중하고 있었기에. 어쩔 수 없이 인간의 봉사라고 하는 것은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완전히 자기를 희생하는 봉사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지 모른다. 위인이나 성자들의 희생과 봉사도 신화화되기 이전까지는 모두 마르다의 그것과 별로 다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주께서는 마르다에게 대답하셨다. “마르다야, 마르다야, 너는 많은 일로 염려하며 들떠 있다.” 그랬다. 마르다는 들떠있었다. 스스로의 정의감에 중독된 나머지 들떠 있었던 것이다. enoin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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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범
    2021-05-13
  • [이상범 칼럼] “나에게 미움을 품게 할 수는 없습니다.”
    “나는 결단코 그대들에게 미움이라는 ”선물“을 안겨주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폭력에 대해서 분노로 응답하게 되면 그대들과 똑같은 무지에 굴복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안뜨완느 레이리스- 2015년 11월 13일 발생한 동시다발 테러는 130명의 소중한 목숨을 앗아갔다. 그로부터 3일이 지나서, 파리에 살고 있는 안뜨완느 레이리스가 페이스 북에 “당신들은 나에게 미움을 품게 할 수는 없습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린다. “금요일 밤, 그대들은 나에게 아주 특별한 사람의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그녀는 나의 생애를 걸고 사랑하는 나의 아내이고, 내 아들의 어머니였습니다. 그러나 그대들은 나에게 증오를 품게 할 수는 없습니다. 나는 그대들이 누군지 알지 못합니다. 또 알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대들은 영혼을 잃어버린 사람들입니다. 그대들은 신의 이름으로 무차별적으로 사람을 죽였습니다. 만약 신이 자신의 모습을 따라 인간을 지었다고 한다면, 아내의 몸에 쏘아붙인 총탄 하나하나는 그 신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흠집이 되어 있을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나는 결단코 그대들이 원하는 대로 증오라는 “선물”을 안겨드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대들이 바라는 대로 증오에 대해서 분노로 응답한다면, 지금의 그대들과 같이 무지의 희생자가 될 뿐입니다. 그대들은 내가 두려움에 떨며 이웃을 의심의 눈으로 대하며, 안전을 위해서 자유를 희생하기를 바라고 있겠지요. 그러나 그대들은 졌습니다. 나는 변하지 않습니다. 오늘 아침에 나는 아내를 만났습니다. 여러 날 기다리던 끝에. 금요일 밤에 외출했을 때와 다름없이, 그리고 12년 이상 내가 사랑에 빠져있었던 때와 똑 같이 아름다웠다오. 물론 나는 그 아픔으로 인하여 거의 죽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그대들은 어느 정도 승리를 얻어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아픔은 오래 지속되지 않습니다. 아내는 앞으로도 우리와 같이 살아갈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들은 다시 자유롭게 사랑할 수 있는 낙원에서 만날 것입니다. 그 곳은 그대들이 들어올 수 없는 곳입니다. 나와 아들은 두 사람일 뿐이지만, 세계 어떤 군대보다 강하답니다. 더 이상 그대들을 위해 사용할 시간은 없습니다. 막 낮잠을 깬 멜빌(아들)에게 가야하겠기에. 태어난 지 17개월이 되는 그는 늘 그랬듯이 간식을 먹고 나와 놀아줄 것입니다. 그리고 행복하고 자유로운 인생을 살아갈 것입니다. 그로써 그대들에게 승리할 것이고 그대들을 부끄럽게 할 것입니다. 그대들은 그의 미움을 얻어내지 못할 것이기에. “ 레이리스는 길지 않는 자신의 글이 세계에 얼마만큼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게 될지는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가 속해있는 나라 프랑스의 대통령 올란드는 테러 주모자들에게 “용서 없는 보복”을 선언했고, 정부는 비상사태로 들어갔다. 이에 대해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없지 않았다는 사실 또한 기억해야 할 것이다. 또 세계는 여전히 테러와 폭력 앞에서 떨고 있다는 사실도. BBC 취재진에게 레이리스는 말했다. “내가 그 편지를 쓴 것은 자기방어이기도 했습니다. 그 누구도 견딜 수 없는 공포를 체험하고 암흑 속에 갇히게 되면서, 자신 속에서 ‘빛’과 같은 무엇을 찾아내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을 것 같았습니다. 나는 본능적으로 미움과 결별하고 미래를 향하기를 결정했던 것 같습니다.” 테러리스트에게 편지를 쓴 그날, 레이리스는 병원 시신안치소에서 아내를 만났다. 차디 찬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할 수만 있다면 일생을 여기에서 보내고 싶소.” enoin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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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범
    2021-03-29
  • [이상범 칼럼] 모세, 미켈란젤로, 프로이드
    심리학자 프로이드가 여러 차례 로마를 방문한 것은 미켈란젤로가 제작한 <모세 상>이 로마의 ‘성 베드로 빈콜리 성당(San Pietro in Vincoli)’에 안치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1895년 <히스테리의 연구>를 발표했던 프로이드는 1900년 <꿈의 판단>을 발표하게 되기까지 학문적으로 큰 고비에 처해 있었다. 그것은 유대인으로서의 자신의 정체성과도 관계되는 일이었다. 로마에서 만난 미켈란젤로의 <모세 상>은 프로이드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내다보게 하는 그 무엇이었다. 프로이드는 말했다. “도대체 몇 차례나 이 성당을 찾아왔던가... 나는 모세가 모욕을 느끼며 노여워하고 있는 저 눈초리를 온 몸으로 느껴보려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도 왜 이 조각상이 수수께끼에 싸여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일까... 아마도 모세의 영혼상태에 대해서, 또 모세의 자세가 보여주고 있는, 얼른 보기로는 평온해 보이는 고요와, 그지없이 격렬하게 요동치고 있는 내면의 대립에 대해서, 더 깊이 파고든다면 더 잘 설명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어서였을 것이다.” ‘성 베드로 빈콜리 성당’이라는 이름만 해도 그렇다. ’빈콜리‘란 사슬이란 뜻으로 베드로가 예루살렘 감옥에서 매여 있었던 사슬과 로마의 감옥에서 매여 있던 사슬이 하나로 연결되어 제단을 지키고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그리고 이 교회는 미켈란젤로와 특별한 관계였던, 그러니까 미켈란젤로로 하여금 수많은 걸작을 남겨 놓을 수 있게 했던 교황 율리우스 2세 묘역의 일부이기도 하다. 미켈란젤로의 <모세 상>을 바라보는 이들은 의례히 <출애굽기> 34장 29-30절을 떠올리게 마련. "모세가 손에 두 증거 판을 들고 시내 산에서 내려왔다. 그가 산에서 내려 올 때에, 그의 얼굴에서는 빛이 났다. 주님과 함께 말씀을 나누었으므로 얼굴에서 그렇게 빛이 났으나 모세 자신은 전혀 알지 못하였다.“ 이 기록을 근거로, 대부분의 감상자들은, 미켈란젤로의 <모세 상>이 모세가 시내 산에 올라가 있는 사이, 타락한 이스라엘 민족이 율법 판을 들고 산을 내려온 모세 앞에서, 황금으로 만든 우상을 둘러싸고 광란의 춤을 추고 있는 광경을 바라보고 있는, 그래서 ‘진노하고 있는 모세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권위의 상징인 수염을 휘날리는 격노한 모세가 손에 들고 있는 율법 판을 막 내던지려 하는 모습을 다듬은 작품으로 알려지고 있었다. 그런데 고민 끝에 새로운 가능성에 눈을 뜨게 된 프로이드는 말했다. “이 <모세 상>은 모세가 뛰어내리거나 손에 들고 있는 율법 판을 내던지려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상에서 읽을 수 있는 것은 노여움에의 전주곡이 아니라, 오히려 지나가버린 한 동작의 흔적이다.” 미켈란젤로가 모세의 머리에 “빛”이 아니라 “뿔”을 새겨놓은데 대해서는 구구한 설명들이 있어왔다. 성서에 기록된 히브리어로는 “빛”이지만, 자칫 “뿔”로 새길 수도 있는 여지가 없지 않는 터라, 많은 사람들이 뿔로 오해하고 있었고, 미켈란젤로도 그 해석을 따랐다는 설명이다. 다른 설명도 있다. 11세기 언저리, 유대인의 사회적 지위가 부정적으로 바뀌게 되면서, 유대인을 악마와 연결하려는 경향이 나타나게 되는데, 모세의 머리에 뿔이 새겨진 것은 악마를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층도 생겨났다는 설명. 그러나 프로이드는 모세가 시내 산에서 십계를 받은 예언자이면서도 자기중심적인 욕구를 앞세워 민중들 위에 군림하려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명 밑에서 민중들과 동일하게 자신을 다스림으로써 자기중심적인 욕구를 억제했다는 해석도 있다. 그러니까 프로이드는 미켈란젤로의 <모세 상>을 세심히 관찰했고, 그 결과 분노를 터뜨리는 모세가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초인적인 인내력으로 자제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모세라는 영웅의 참모습이었다는 것. 미켈란젤로는 <모세 상>을 조각할 대리석 앞에 섰을 때, 이미 그 돌덩어리 가 지니고 있는 모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자신은 다만 모세를 돌덩어리로 부터 풀어놓기 위해서 연장을 잡았다고 하지 않는가. enoin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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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범
    2021-01-28
  • [이상범 칼럼] 밀레의 [晩鐘] 그리고 달리의 재해석
    한 월간지에 실려 있는 밀레의 <만종>에 눈이 끌리면서 문득 생각이 들었다. ‘어쩌다가!’ 어쩌다가 내가 <만종>과 이렇게도 멀리 떨어져서 살게 되었을까 하고. 1940,5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보통사람들에게 그래도 익숙한 서양화가 있었다고 한다면, “밀레”의 “만종”이 고작이었을 것. 내가 자란 인구 3만5천의 읍(邑)에서는 적잖은 집들에서 <만종>이나 <이삭줍기>를 만날 수 있었다. 아니다 밀레의 <만종>과 <이삭줍기> 말고는 서양미술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지도 모르겠다. 물론 서울이나 일본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명색이 인텔리겐챠들은 자신이 그러한 고장에 살고 있다는 불편함을 기껏 수치스럽다는 표정을 지어보이는 것으로 자위했을 터이고. 더러 손끝이 야무진 아낙들은 당시 막 유행하기 시작했던 서양자수 수법으로 한 뜸, 한 뜸 정성을 기울여 자수 작품으로 환생시켜놓곤 했다. 또 화가 지망생이었지만 간판 집 심부름꾼으로 머물고 있어야하는 젊은이는 합판 자투리나 캔버스 조각에 제법 그럴듯한 <만종>의 모작을 그려놓기도 했다. 그것들은 나름대로 그림을 걸 수 있는 공간을 가진 집 벽을 차지하게 되고. <인간의 조건>, <동서미술론>등으로 우리에게도 익숙한 프랑스의 작가 로망 롤랑은 말했다. “<만종>에는 <만종>만이 가지고 있는 음악적인 매력이 있다.” 그리고 그 배경을 이렇게 설명해준다. “밀레는 시골 저녁의 소리, 멀리서 들려오는 종소리를, 그 그림에서 들려주려했다. 인간과 대지의 투쟁이 끝나고, 평화가 찾아올 즈음의 고즈넉한 시적미각과, 석양의 광막한 들판에서 기도하는 소박하고 엄숙한 분위기를 감명 깊게 표현하고 있다.” 월간지에서 본 <만종>이 로망 롤랑의 글을 읽으면서 얻었던 그 감명을 되살려 준 것이리라. 그림 오른 편 멀리 지평선에 보이는 교회로부터 잔잔하게 울려 퍼지면서 화면을 채워주고 있는 그 소리, 그로부터 수십 년의 세월이 흘러간 지금, 보청기의 도움으로도 제대로 듣지 못하는 이 귀로, 다시 그 종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된 것이리라. 밀레가 어렸을 적, 저녁 종소리가 울리면, 할머니는 농사짓던 손을 멈추고 모자를 벗어 죽은 자를 위하여 안젤러스(L'Angelus)의 기도를 드리는 것이 습관이었다고 했다. 그런 추억을 그린 것이 이 <만종>이었다는 해설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던가. 회중시계나 손목시계가 없었던 시절, 아침, 낮, 저녁에 울리는 교회의 종소리는 나날의 삶에서 길잡이 역할을 했다지 않는가. 스페인에서 살바도르 달리가 태어난 것은 <만종>이 그려진 후 40년의 세월이 흐르고 나서이다. 달리의 생가에도 <만종>의 모작이 걸려 있었다. 화가지망생 달리는 틈이 나는 대로 <만종>을 들여다보았다. 그러던 달리도 어느덧 <만종>의 마력에 사로잡히게 되었다는 데. 훗날 기행을 즐기는 슈르레알리스트 화가가 된 달리는 밀레의 <만종>을 모티프로 숱한 오마주 작품을 발표한다. 또 “밀레 만종의 비극적 신화”라는 논설도 발표한다. 거기 이런 대목이 있단다. “부부의 발밑에 있는 감자 광주리는 부자연스럽다. 사실인즉 처음에는 어린아이의 관을 그렸다. 매장하기 전에 기도하는 부모의 모습을 그리려 했던 것을 밀레는 생각을 바꾸어 지금 우리가 보는 모습으로 바꾼 것이다.” 달리가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모습”이라고 일컬어 말하려는 것은 <만종>에 그려진 남자와 여자는 부부가 아니라 어머니와 아들이라는 것. 어머니의 자세는 ‘비는 벌레’라는 별명을 가진 사마귀(당랑)가 공격하기 직전에 취하는 자세와 같다는 것. 다시 말해서 그녀는 곧 아들에게 덤비려하고 있다는 것. 미리 이를 눈치 챈 아들은 근친상간이라는 에로틱한 기대로 해서 이미 발기해버린 터라 모자를 벗어 앞을 가리고 있다는 것. 또 사마귀의 암컷이 교미를 마친 후에는 수컷을 물어 죽인다는 사실도 알고 있기에 공포에 떨고 있다는 것... 인간의 상식과 이성을 허물고 잠재의식이 만들어내는 이미지를 작품화하기에 골몰하고 있었던 달리에게 밀레의 <만종>이 창작의욕을 불러 일으켜주는 쏘시개가 되어 준 것은 사실일 지도 모른다. 그러나 달리는 <만종>을 자료로 삼아 덧칠하고 비틀어 통째로 주제까지 바꾸어버린 것이다. 그런 유의 모작들이 수도 없이 남아있다니. 달리는 달리 찾아볼 수 없을 기상천외한 상상력을 동원해서 <만종>을 비틀었어도, 결코 밀레의 <만종>에 결정적 손상을 입힐 수는 없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enoin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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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범
    2020-12-19
  • [이상범 칼럼] 갈대와 떡갈나무 -이솝, 파스칼, 라퐁텐-
    이솝의 이야기 가녀린 갈대가 자라고 있는 시냇가에 떡갈나무가 서있었습니다. 바람이 불 면 튼튼한 떡갈나무는 수많은 팔들을 하늘로 뻗치며 자랑스럽게 버티지만, 갈대는 머리를 낮게 드리우고 애처롭게 슬픈 노래를 불렀습니다. 떡갈나무가 말합니다. “너희들이 불평하는 것은 어쩔 수 없겠지. 수면에 일렁이는 산들바람에도 머리를 숙이는 것을. 그렇지만 힘이 센 나는 큰 바람에도 꼿꼿이 버틸 수 있다네. “ 갈대들이 응수합니다. “우리 걱정일랑은 하지 마셔요. 바람은 우리에게 아무 짓도 하지 않는답니다. 우리는 바람 앞에서 절을 하기 때문에 꺾이지는 않는답니다. 당신들은 긍지와 힘을 앞세워 지금까지 바람에게 저항해왔지요. 그러나 목숨이 다할 때가 곧 올 텐데요. “ 미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북쪽에서 큰 허리케인이 불어왔습니다. 떡갈나무는 자랑스럽게 바람과 맞섭니다. 한편 양보할 줄 아는 갈대는 낮게 머리를 드리웁니다. 바람이 맹위를 떨치며 더 세게 불어오자 그 큰 나무는 뿌리째 부러져서 동정어린 말을 나누어오던 갈대들 틈으로 굴러 떨어집니다. 떡갈나무가 강물에 떠내려가며 갈대에게 묻습니다. “너희들은 약해서 비실비실하는 터에 어떻게 강한 바람에 뿌리가 뽑히지 않은 거지?” 갈대가 대답합니다. “당신네들은 바람에 맞섰기 때문에 뿌리째 뽑힌 것이지요. 우리는 어떤 바람에도 머리를 숙이기 때문에 무사할 수 있다오.” 파스칼의 <팡세> “인간은 갈대에 지나지 않는다. 자연 가운데서 가장 약한 존재이다. 그러나 그는 생각하는 갈대이다. 그를 뭉개 죽이기 위해 우주가 무장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약간의 증기나 한 방울의 물이라도 그를 충분히 죽일 수 있다. 그러나 설사 우주가 그를 눌러 뭉갠다 해도 인간은 그를 죽이는 자보다 더 귀하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이 죽는다는 것과 우주가 자신에 비해 우세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주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라퐁텐의 <참나무와 갈대> 라퐁텐은 이솝의 <갈대와 떡갈나무>를 바탕으로 해서 <갈대와 참나무>라는 이야기를 썼다. 어느 날 참나무가 갈대에게 말했습니다. “그대에게는 자연을 나무랄만한 까닭이 있지 않겠소? 그대의 가지에 머물기에는 새가 너무 무겁기 때문이지요. 제멋대로 부는 미풍도 수면에 잔잔한 너울을 일으켜서는 당신이 머리를 숙이지 않으면 안 되게 하는 걸요. 그런데 나의 가지는 풍성해서 코카사스 산맥처럼 태양빛을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강한 폭풍의 힘도 받아들인다오. 그대에게는 격하기만 한 북풍도 나에게는 순풍이랍니다. 그러니 만약 그대가 숲속 나의 나무그늘에서 자라고 있다면 나는 이웃의 정의로 그대를 보호할 것입니다. 그러면 그대는 그렇게 괴로워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폭풍으로 부터 그대를 방어할 것이니까요. 그러나 그대는 늘 바람의 왕국 변두리 습지에서 자라고 있지 뭡니까. 그대에 대한 자연의 처사는 부당하다고 나는 생각한다오.” 작은 목소리로 갈대가 대답합니다. “당신의 동정은 선의에서 온 것일 터이지요. 그렇다고 하더라도 염려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나에게는 바람이 당신보다 는 훨씬 덜 귀찮답니다. 나는 흔들리긴 하지만 꺾이지는 않거든요. 지금까지 당신은 강풍에게 등을 굽히며 견디어 왔습니다. 그러나 끝이 올 때를 기다려봅시다. “ 갈대가 미처 말을 끝내기도 전에 지평 끝에서 부터 가장 무서운 소용돌이가 불어 닥치더니 북풍이 참나무 한 가운데로 맹렬하게 몰아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참나무는 잘 견디어냈지만 갈대는 스러졌습니다. 그러나 다시 바람이 불어 닥치자 마침내 참나무가 뿌리째 뽑혀버렸습니다. 머리가 하늘에 닿을 만큼 큰 나무는 그 발이 죽음의 나라에 닿아 있었습니다. 갈대를 동정해서 보호하겠다는 참나무의 실상은 자기중심적이어서 갈대를 멸시하고 자신의 강함을 자랑했을 지도 모릅니다. 갈대는 겉보기와는 달리 강풍에도 잘 대처할 줄 알았습니다. enoin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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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범
    2020-11-22
  • [이상범 칼럼] 바리새파 사람과 세리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다. 한 사람은 바리새파 사람이고 다른 한 사람은 세리였다.” 그렇게 시작하는 예수의 비유에서, 우리는 두 사람 가운데 어느 쪽과 공감하고 있는지를 자문해 보아야 하리라. 스스로를 가식하지 않고 경건을 드러내려 하지 않는 사람이라 여기는 이라면 의례히 세리와 공감한다 하고 말할 것이다. 그리고 속으로 말할 것이다. “하나님 내가 저 바리새파 사람과 같은 사람이 아닌 것을 감사합니다.”라고. 그러나 그렇게 기도함으로써 어는 틈엔가 우리는 바리새파 사람이 되어있는 것을 어쩌랴. 비유에서 두 사람 모두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다.” 바리새파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간다고 자신이나 다른 사람이 전혀 새삼스러운 일로 여기지는 않을 터. 그들은 하루에 일곱 차례나 성전에 갔다고 하지 않는가. 때론 밤중에도 그러기를 주저하지 않았다는 데야. 그러나 막상 세리가 성전에 나아가기는 그리 쉽지가 않았으리라. 비유에서 볼 수 있듯이 매사에 떳떳할 수 없는 세리는 성전 뒤쪽에서 얼굴을 가리고 서 있을 수밖에 없으리라. 그러나 하나님을 만나고 싶어 하는 심정은 서로 다를 바가 없을 터이다. 아니 세리의 심정이 더 간절할 수도 있으리라. 그러기에 세리가 기도하는 그 곳에서 바리새파 사람도 기도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그들이 함께 하는 자리가 그들의 거리를 더 멀게 하는 것 같다. 바리새파 사람의 기도는 그 거리가 절대로 단축되거나 사라질 수 없음을 보여준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나는 남의 것을 빼앗는 자나 불의한 자나, 간음하는 자와 같은 다른 사람들과 같지 않으며, 더구나 세리와는 같지 않습니다.” 바리새파 사람의 기도는 진실하다. 그의 기도와 삶은 서로 다르지 않기에. 바리새파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 그들을 도둑이라 말하는 사람이 없을 뿐 아니라, 스스로도 불의를 행하지는 않는다고 확신한다. 간음하거나 공금에 손을 대는 일은 없다. 도덕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또 종교적으로도 정당했다. 그러기 위해 가진 힘을 다해왔다.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때론 사람들의 비난을 감내해야만 했다.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내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바칩니다.”했다. 율법의 요구 이상의 열성이요 희생이었다는 진솔한 고백이 아니겠는가. 흔히 우리가 쉽게 “바리새파 사람”하고 욕하곤 하는 그런 바리새파 사람은 아니지 않는가. 그야말로 경건하다는 평가가 어울리는 삶을 살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유식자들은 그들 바리새파사람을 나무라기 위해서 많은 꼬투리를 찾아내려 애쓴다. 우선 바리새파 사람의 감사는 진정한 감사가 아니라 자기 정당화이고 자랑이라고. 하나님의 은총에 대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공로에 대해서 라면서. 실상 바리새파 사람의 기도는 “나는...” “나는...”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자신의 죄와 뉘우침에 대해서는 입도 뻥긋하지 않는다. 실패나 부족에 대해서도 입을 다문다. 스스로의 장점만을 늘어놓을 뿐이다. 경건을 뒤집어 쓴 자랑과 교만이 전부라면서... “하나님”하면서도 바리새파 사람의 눈은 같은 성전에서 기도 하고 있는 세리를 향한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나는 남의 것을 빼앗는 자나, 불의한 자나, 간음하는 자와 같은 다른 사람들과 같지 않으며 더구나 이 세리와는 같지 않습니다.” 스스로가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의 조건이기도 하다. 그것은 하나님이 그에게 베풀어 준 바를 뿌리째 뽑아 자신의 소유로 삼은 결과이기도 하다. 스스로의 생각대로 처리할 수 있는 자산이라 여긴다. 소유하게 된 모든 것은 자신의 업적에 따른 정당한 보수였다. 그의 소유와 가치는 형제와의 공감을 위해서라거나 사랑하고 돕기 위한 자료가 아니라 오히려 그들을 비난하고 심판하는 거리로 여긴다. 성전 뒤쪽에서 나름대로는 간절하게 기도하고 있는 타자를 인정해 주려하지 않는다. 거기에서 지배욕과 율법주의와 편협함이 움튼다. 나름대로의 새로운 율법이 발생한다. 블룸하르트의 말처럼 “그 무엇에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고, 타자가 무슨 말을 해도 듣지 않고, 지상에서의 하나님의 대리인으로 그 자리에 홀로 서있다.” 더러 성전 뒤편에 웅크리고 서있는 세리의 존재가 고맙게 여겨진다고 한다면 그것은 세리의 초라함 때문일 것. 사람들의 따가운 눈초리를 받고 있는 그 초라함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예수는 말한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의롭다는 인정을 받고서 자기 집으로 내려간 사람은 저 바리새파 사람이 아니라 이 세리이다.” enoin34@naver.com
    • 칼럼
    • 이상범
    2020-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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