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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브루투스는 로마시민도 배신했다
    단테는 <신곡> “지옥편”에서 가장 밑바닥에 유다와 브루투스와 카시우스를 배치했는데, 셋은 모두 저들을 믿었던 이를 배신한 자들이라는 것. 셰익스피어는 <주리어스 시저> 3막 2장에서, 시저를 살해한 브루투스가 로마 시민들에게 시저를 살해한 정당성을 호소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여러분은 시저 혼자가 살고, 다른 모든 사람은 노예로 죽기를 바라는가, 시저를 죽여 만인을 자유인으로 살게 하기보다도?” 하며 딜레마(dilemma) 논리를 동원했다. “있을 수 있는 두 경우를 검토해서, 두 경우가 모두 바람직하지 못한? 결론으로 인도되도록 하는 수사법”으로 알려지고 있는. 그러니까 상황이 2자 택일적이라면, 필연적인 것을 택한다는 논법이다. 그럴 경우 두 선택지 중에서 손해가 덜한 편을 택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딜레마 논법과 부닥치면, 먼저 그 상황이 진정 양자택일적인지 아닌지를 물어보지 않으면 안 된다. 다시 말해서 제3의 선택이 가능한지도 물어보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이다. 브루투스는 다그쳐, “시저가 죽느냐 우리가 죽느냐”하는 양자택일을 밀어붙인다. 그러나 “시저를 죽여서...” 할 때의 “죽임”은 문자 그대로의 죽음을 말하지만, “다른 모든 사람이 노예로서 죽는다.”에서의 “죽음”은 비유적인 죽음일 뿐이다. 형식은 비슷하지만 내용은 전혀 다른 단어를 마치 같은 의미인 양 대구가 되게 틀에 짜 맞춘 것이다. 속임수로 시민들의 입을 다물게 했다. 브루투스는 연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다음과 같이 시민에게 묻는다. “설마 여러분 가운데, 스스로 노예가 되기를 바라는 비열한 인간이 있을까? 있다면 이름을 말하시라. 그 사람에게 나는 죄를 지은 것이 된다. 로마인이기를 바라지 않는 불손한 사람이 있는가? 있다면 있다고 말해다오. 그 사람에게 나는 죄를 범한 것이다. 누가 조국을 사랑하지 않을 만큼 비열한 사나이가 있는가? 있다면 있다고 말해주오. 그 사람에게 나는 죄를 지었으니. 자 대답을 기다려 보기로 하자. “브루투스의 질문 자체가 수상하다. “노예로 살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도 아니고, “로마인이기를 원하지 않는 불손한 사람”도 아니고, “조국을 사랑하지 않을 만큼 비열한 사나이”는 아니지만, 부루투스가 시저를 죽인 행위에 대해서는 반대한다는 시민은 있게 마련인데, 그 사람들은 “예”로도 “아니요”로도 대답할 수 없지 않으냐 말이다. “네”하고 대답하면 스스로 최하의 인격임을 인정하는 것이고 “아니오”하면 브루투스를 지지한 꼴이 되기 때문이다 .수사학에는 “다문의 허위(complex question)” 이란 속임수가 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 으레 내세우는 예문이 있다. “이제 그대는 아내를 때리지 않게 되었는가?”라는 물음을 “네”와 “아니요”로 대답하기를 강요한다면 어떻게 대답할 수 있을까. “네” 하면 “전에는 구타했지만 지금은 그러지 않는다.”가 된다. “아니”하고 대답하면 “아내를 구타하지 않는다.”가 아니라, “아직도 구타하고 있다”가 된다. 어느 쪽으로 대답해도 아내를 구타하는 사람이 된다. 질문을 작성한 쪽이 상대가 “이전에 아내를 구타했다”는 사실을 전제로 해서 만들어 낸 것이기 때문이다. 부루투스의 물음이 그랬다. 자신의 행동을 지지하지 않는 자는 “노예의 삶을 바라는 비열한 인간”이고, “로마인이기를 원하지 않을 만큼 불손한 인물”이고, “조국을 사랑하지 않을 만큼 비열한 사나이”로 제멋대로 결정하고, 질문을 던진 것이다. 시민들은 “자 대답을 기다리겠소.” 하고 여유를 보이는 브루투스에게 “아무도 없소” 하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던 것. 이를 받아 브루투스는 “그렇다면 나는 시저를 살해함으로 그 누구에게도 죄를 범하지 않았소.”라는 결론을 만들어 낸 것 이다. 브루투스는 자신을 평가해달라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시민들에게 판단의 기회를 주지 않았다. 평론가 케네스 버크(Kenneth Burke)의 말. “그는 시민들에게 선택을 몰아세우면서도 실제로는 선택의 여지를 주지 않는 방법으로 문제의 답을 조작해 낸 것이다.” 시민들이 브루투스를 “우리의 시저가 되게 하자!” 하고 반응하게 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그의 성공은 안토니오가 연단에 등장하기 전까지였고, 마침내 는 쫓겨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된다. 브루투스는 시저만이 아니라 로마시민마저 배신 한 것이다. enoin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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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범
    2017-07-26
  • ‘이야고’ 이야기
    나이 70~80대의 영화 팬이라면, 1952년, 오손 웰스가 감독 주연한 흑백영화 <오셀로>를 기억할 터. 얼마 전 한 TV 방송이 오래 전의 감동을 되새기게 해주어서 고마웠다. 장례행렬로 시작하는 영화 <오셀로>에는 주검이 된 무어인 오셀로(오손 웰스)와 데스데모나의 얼굴이 클로즈업 되는 장면이 무척 인상적이다. 이야고는 옆으로 움직이는 장례행렬을 가로질러 수직으로 드리운 새장 안에 갇혀 흔들리는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죽은 것도 아니고 산 것도 아닌 이야고는 오셀로와 데스데모나의 장례행렬을 무표정하게 내려다본다. 셰익스피어 연극에서 악역들은 대부분 회개하고 죽음을 맞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여기 이야고에게는 회개도 없고 죽음도 없다. 단지 악역일 뿐. 오셀로는 데스데모나를 살해한 후, 이야고의 간계에 놀아나면서, 죄 없는 아내를 죽였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자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그러나 이야고는 오셀로의 칼을 맞고도 죽지 않는다. 살아 있다고는 하나,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상태인 것은 그가 처형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오셀로처럼 자신의 행위에 책임을 지고 깨끗하게 죽지도 못할 뿐 아니라, 그가 갇혀있는 새장 안에서는 모든 것이 투명한 상태인지라,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다른 인격으로 변장할 수도 없다. 교묘히 선과 악 사이를 오가며, 우직한 오셀로를 파멸로 몰아갈 수는 있었지만, 이제 자신은 공중에 매달려 삶과 죽음 사이를 오가고 있다. 이야고, 그는 오셀로와는 달리 백인이었고 당시의 강대국 베네치아 공화국의 떳떳한 시민이었지만, 굴러들어온 무어인 오셀로의 부하여야 했고, 바라던 부관의 자리마저도 경쟁자 캐시오에게 빼앗기고 만다. 이야고를 시기의 화신으로 그린 셰익스피어의 솜씨가 다시 주목을 받는 것은, 이야고의 간교한 수법이 시대를 넘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현실감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일 것이다. 이야고는 오셀로의 질투를 부추기기 위해서 “질투심을 조심하세요.” 하는 경구를 가지고 다가선다. “질투는 무서운 거랍니다. / 푸른 눈을 가진 괴물이지요. / 그렇다마다요, 이놈은 사람의 마음을 먹이로 하여 / 괴롭히며 가지고 논답니다.”경고하는 척 은근히 질투의 불씨를 심어준다. 한 인간을 질투에 사로잡히게 하려고, 먼저 질투란 것이 얼마나 무서운 가를 철저하게 인식하게 하는 수법. 질투는 이제 그의 불안을 타고 자기증식을 시작하고. “증거를 보이라!” 질투의 화신이 된 오셀로는 아내가 부정을 저지른 증거를 내놓으라며 이야고의 가슴팍을 움켜잡고 소리친다. 이야고는 오셀로에게 그 손수건을 먹이로 던져 주며 읊조린다. “공기처럼 가벼운 것이라 할지라도 질투에 취해있는 자에게는 성경 말씀처럼 무거운 것이 되는 걸.”마침내 오셀로는 한 장의 손수건 때문에 아내의 목을 조르게 되는데... 이야고가 오셀로에게 건네준 정보는 정보이기 보다는 오셀로의 질투를 부추기는 먹이가 된다. 이야고가 발신한 정보는 제 발로 돌아다니며 발신자가 보게 하는 정보만을 보게 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절대적으로 객관적인 증거라 여겼던 손수건은 오셀로의 눈을 가리는 수건이 되고. 그는 상전 오셀로를 미워하면서도 충실한 부하처럼 처세했다. 캐시어에게는 충실한 친구인 척 다가가서는 오셀로의 질투를 부추기는 도구로 이용하는가 하면, 로드리고에게는 데스데모나와 결혼시켜 주겠다며 금전을 뜯어낸다. 상대방이 바라는 모습으로 변신하는 장기를 가진 이야고는 상대의 욕망을 부추겨서 깊은 나락으로 떠밀어버리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선과 악은, 이야고의 손바닥에서 때를 묻히며 굴러가는 사이, 그 다름이 분간할 수 없을 만큼 두루뭉술해지는 것이었다. 사랑은 사랑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혹을 심어 받은 오셀로가, 어느 틈엔가 사랑은 사랑이 아니란 확신을 가지게 되었듯이, 서로 대립되는 개념의 의미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었다. 오손 웰스의 <오셀로>에서, 죽은 것도 산 것도 아니게 된 이야고의 모습은 스스로가 만들어낸 모습일 지도 모른다. enoin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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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7-07
  • 마녀사냥
    오죽했으면 ‘사냥’에다 비유했을까. 귀족들이 즐기던 사냥이야 길들인 사냥개를 풀어 기껏 토끼나 여우 같은 들짐승을 노리는 것이 고작이었다지만, 16, 17세기에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 유럽의 엘리트들이 즐긴 사냥은, 사냥개 대신 지성과 학문체계를 풀어 지지리도 못사는 무지몽매한 시골 여인들을 몰아서 화형대에 올려놓았다니. 16, 17세기의 유럽은 르네상스, 종교개혁, 그리고 과학혁명이 근대의 새벽을 이끌어오는 시기. 바로 그런 시기에 어떻게 참혹하고 무지하기 그지없는 마녀사냥이 판을 칠 수 있었을까. 여러 학자들이 말하는 결론을 빌리자면, 그것은 교황과 수도자 그리고 프로테스탄트 개혁주의자, 또 대항 종교개혁을 외치는 가톨릭의 성자와 신학자, 법률인 의사와 같은 당시를 대표하는 엘리트들이 서로 어울려서 “마녀”를 만들어냈다는데... 16, 17세기는 유럽이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했던 거대한 사회변동과 지적변동을 경험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시기였기에, 이념들이 서로 다투는 가운데, 그 다툼의 희생양이 된 것이 소위 ‘마녀’였다는 설명이다. 농촌 지역에서는 예부터 내려오는 몽매한 미신이 남아있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 함부로 저주하는가 하면, 영과 대화를 한다며 우쭐대고, 공감 주술을 구사해서 풍작을 기원하곤 했다. 또 병이 낫기를 기도하는 노릇이 예사로웠던 분위기에서, 그런 일을 전업으로 하는 늙은 여인들이 여기저기서 판을 벌이고 있었다. 교회와 국왕이 이를 내버려두었던 것은 아니란다. 칼 대제의 칙령이 있었고, 교회의 사교법전(司敎法典)이 발표되기도 했단다. 그러나 이들 권력 측의 태도는 이렇다 할만 한 체계도 세우지 못하고 여기저기 제멋대로의 모습으로 산재해있는 “이교적 미신의 현실성을 부인하는” 정도에 머물러 있었기에, 적어도 “마녀”를 생산해내지는 않았다나.중세 말이 되면서 교회가 완전히 그 태도를 바꾸게 된다. 지금까지는 “있을 수 없는” 정도로 간주해오던 미신의 내실을 실재하는 진실로 인정해버린 것이다. 악마의 하수인인 마녀가 인류를 파멸하기 위해서 벌이고 있는 짓거리로 인정하게 되면서, 그때까지는 나름대로 농촌 일각에서 무질서하게 시행되던 악마의 짓거리를 학술적으로 체계화해 줌으로서, 오히려 마녀의 모습과 윤곽을 뚜렷하게 만들어 버린 것이라나. 악마학을 체계화함으로써 대규모적인 마녀사냥을 정당화하고자 했던 당시 지식인들의 의도가 현실화된 것이라지 뭔가. 이렇게 교회가 방향전환을 함으로써 악의 힘이 자생하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교회는 그 존재의 보증인인 동시에 숙청자가 된 것이란다. 그것은 교회의 권력 기반을 튼실하게 굳히고자 했던 노력의 결과이기도 했고. 상 중류층의 엘리트들은, 종교적 대립으로 말미암아 중세적인 안정된 영적 질서와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가 무너지는 소용돌이 속에서 생겨난 사회적 불안을, 악마와 악마의 왕국이 힘을 늘리고 있는 탓으로 돌리려 했단다. 가톨릭이나 프로테스탄트 할 것 없이 적대적인 지역에 선교사를 파송해서 판도를 넓히려는 경쟁은 지금까지 그 땅에서 나름대로 신앙의 터전을 다져 오던 장본인들은 아웃사이더로 내몰았고... 중세의 도미니크회 못지않게 프로테스탄트 복음주의자도 각지에 체계적인 이단 심문의 신화학을 들고 가서는 농촌에 스며있던 갖가지 색깔의 미신들을 악의 원리가 통괄하는 체계적인 것으로 드러내는 일에 힘을 보탰다. 공동체가 해체되어 위기의식에 내몰리게 된 농촌에서는 상호부조의 정신이 사라진다. 가난한 자는 가진 자를 미워하고 부자는 가난한 자를 저주하고... 재액(災厄)이 일어나면 희생양을 찾아내어서는 “마녀”라는 라벨을 붙여주었다. 그녀들은, 지난날 공동체 의식이 건전했을 시절이라면, 자선의 대상이 되었음직한 가난한 여성들이었다는데. 인쇄술의 발달이 이러한 현상을 부추기는데 큰 몫을 했다고도 하니... 에덴에서도 수요가 있었다는 희생양이 아주 사라지기야 할까마는 새 단장을 하고 나선 신판 마녀사냥이 지구촌 여기저기에서 극성을 부리고 있다는 요즘, 병 주고 약 준다 했던가, “인터넷 기술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능하게 해주었지만, 예전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부작용을 일으키며 사람들에게 깊은 상처를 남기고 있다”는 애플의 CEO 팀 쿡의 한 마디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enoin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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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범
    2017-06-23
  • 솔로몬 왕과 스바의 여왕
    이스라엘 왕 솔로몬을 위한 스바 여왕의 찬사가 성서에 기독 되어 있다. “임금님께서 이루신 업적과 임금님의 지혜에 관한 소문을, 내가 나의 나라에서 이미 들었지만, 와서 보니, 과연 들은 소문이 모두 사실입니다. 내가 여기 오기 전까지는 그 소문을 믿지 않았는데,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보니, 오히려 내가 들은 소문은 사실의 절반도 안 되는 것 같습니다. 임금님께서는, 내가 들은 소문보다, 지혜와 복이 훨씬 더 많습니다.”(열왕기상 10장 6-7)예루살렘 측의 기록이긴 하지만, 여왕의 외교 사령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여왕은 수많은 수행원을 데리고 또 여러 가지 향료와 많은 금과 보석을 낙타에 싣고 예루살렘으로 왔다.” 고도 기록하고 있다. 두 왕이 구체적으로 주고받은 거래내용은 기록되지 않고 있지만, 오늘날이라면 경제사절단이라 할 수 있을 법한 여왕 일행은 육로와 해로를 이용해서 유향과 몰약과 같은 물픔을 교역해보자는 것이 아니었을까 짐작해본다. “여왕은 금 일백이십 달란트와 아주 많은 향료와 보석을 왕에게 선사하였다. 솔로몬 왕은, 스바 여왕에게서 받은 것처럼 많은 향료를, 어느 누구에게서도 다시는 더 받아 본 일이 없다.”하는 성서의 기록은 선물이기보다는 교역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양국 간의 무역교섭은 좋은 타결을 본 듯싶다. “솔로몬 왕은 스바의 여왕에게 왕의 관례에 따라 답례품을 준 것 외에도, 여왕이 요구하는 대로, 가지고 싶어 하는 것은 모두 주었다. 여왕은 신하들과 함께 자기 나라로 돌아갔다.”<열왕기>는 솔로몬과 여왕의 거래를 솔로몬의 국제적 위상을 들어내기 위해서와 기껏 국가 간의 무역 정도로 기록하고 있지만, 에티오피아 측에서 흘러나오는 정보는 솔로몬과 재색을 겸비한 스바의 여왕의 관계가 더 깊은 데 까지 이르렀음을 전해준다. 임도 보고 뽕도 따자는 작전이었을까. 아니면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한 나라를 번영으로 이끌어갈 수 없는 당시의 국제정세 때문이었을까. 스바의 여왕이 “여러 가지 어려운 질문으로 시험해 보려고,” 솔로몬을 찾아왔다는 열왕기의 기록이 그럴듯해지는 것도 에티오피아로 부터 흘러나온 정보가 마무리를 해주기 때문이다. 여왕은 솔로몬의 별궁에서 일 년 가까이 머물러 있었다는 것이 아닌가. 여왕이 고국에 돌아가겠다고 하자 솔로몬이 수를 쓴다. 이별잔치 요리에 소금을 듬뿍 섞어둔 것이다. 그리고는 너무 밤이 깊었기로 별궁까지 가기가 번거로울 터이니 솔로몬의 궁에서 쉬시라고 권한다. 그렇다고 일국의 여왕이 너무 쉽게 외간남자의 궁에서 밤을 보낼 수는 없는 노릇. 그래서 조건을 붙여서 승낙한다. “자신의 침실을 침범해서는 안 된다는...” 이번에는 솔로몬이 조건을 단다. “여왕께서 나의 소유에 손을 대서는 안 된다”고. 잠이 들자 목이 말라온 여왕. 솔로몬이 듬뿍 섞어 둔 소금이 발효한 것이다. 물 주전자가 놓여있기에 모르는 척 주전자를 집어서 들이키자, 커튼 뒤에서 지켜보던 솔로몬이 기다렸다다는 듯이 “우리나라에서는 물이 아주 소중한 것이라오.” 하며 침실로 들어온다. 이튿날 솔로몬은 금반지를 여왕에게 주면서 말했다. “우리 사이에 왕자가 생산되면 이 반지를 끼워주시오. 왕자의 아버지의 궁전은 언제나 왕자에게 열려 있을 것입니다.” 스바의 여왕에 대한 <열왕기> 이외의 기록으로는 에티오피아 설과 예멘 설이 있다. 예멘 설에서는 여왕의 이름이 빌키스이지만, 에티오피아 설에 따르면 여왕의 이름은 마키다이고, 둘 사이에 태어난 아들이 메넬리크이다. 여왕 마키다가 낳은 아들 메넬리크는 성년이 되자, 예루살렘으로 가서 부왕솔로몬으로 부터 제왕 학을 전수받는데, 그가 곧 에티오피아 솔로몬 왕조의 창시자 메넬리크 1세. 전설이 전하는 메넬리크 1세로 부터 오늘의 메넬리크 2세 사이에는 300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다. 19세기 말, 이탈리아의 침략을 물리치고 독립을 달성한 메넬리크 2세(1844-1913)는 1975년 혁명의 희생자로 비극적인 최후를 마친 최후의 황제 하이에 세라셰의 외조부가 된다. 또 스바의 여왕은 솔로몬이 딸려 보낸 많은 제사장들과 동행하는데, 그들이 몰래 법궤를 가져 와서 지금까지도 에티오피아에 보관되고 있다는 설도 전해지고 있다. enoin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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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범
    2017-06-09
  • ‘모두의 눈’과 세편의 이야기
    1. 첫째 이야기: 초등학교 5학년 여자아이가 <모두의 눈>이라는 시를 썼다. “아빠의 눈으로 본다면어떤 경치로 보일까. 엄마의 눈으로 드라마를 본다면금방 눈물을 흘릴 테지….” “오빠의 눈으로야구시합을 본다면아주 재미있을 거야누이동생의 눈을 빌린다면어디서나 금방 잠이 들 거야” 2. 둘째 이야기: 옛날 어느 곳에 아주 덕이 높은 성녀(聖女)가 있었다. 그녀의 덕에 대해서 아시게 된 하나님께서 그녀에게 상을 주시겠다며 무엇을 갖고 싶은지를 물으셨다. 그러나 성녀는 성녀답게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다고 대답했다. 하나님께서는 기특히 여기시고, 그 후로도 여러 차례 무엇을 상으로 주면 좋겠는지를 물으셨다. 그때마다 성녀는 “저에게는 아무것도 필요한 것이 없습니다.”하고 대답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너무 집요하게 상을 주시겠다고 하시기에 못 이기는 척 성녀가 간직하고 있는 소원을 아뢰었다. “정 그러시다면 저의 마음을 보게 해주십시오.” 이번에는 하나님께서 거절하셨다. “절대로 그것만은 보여줄 수 없노라”고. 성녀는 막무가내로 “저의 마음을 보여주시는 것이 저에게는 최상의 상이 됩니다.” 하고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더 버틸 수 없어지신 하나님께서 그녀에게 그녀의 마음을 보여주셨다. 그 순간, 성녀는 “악!” 하고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쓰러지더니, 아주 미쳐버렸다. 3. 셋째 이야기: “비롯할 창”(創)자는 “창조(創造)”할 때도 쓰이지만, “다치다”라는 뜻으로도 쓰인다. 어떤 시인이 말했다: “창조다운 창조를 하려면, 그 일에서 어떤 상처를 입고, 스스로 그 상처를 낫게 해보려는 노력을 기울이면서 비로소 진정한 창조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 아닐까”하고. 꺾꽂이하려면 나무의 줄기나 가지를 잘라 상처를 낸 다음에야 비로소 그 상처에서 새로운 뿌리나 가지가 자라나는 것을. 4. 넷째 이야기: 전쟁을 위한 무기는 강할수록 좋은 법. 그런데도 무기를 깨어지기 쉽게 만들기 위해서 애를 썼다는 역사가 있다. 고대 로마 사람들이 사용하던 “비르므”로 일컬어지던 창은 그 길이가 자그마치 2미터에, 무게만 해도 2.5킬로그램이나 되었다고 하니 어떤 무기였는지를 가히 짐작할 만하지 않은가. 적에게 이 창들을 던져서 적세가 한풀 꺾일 무렵, 검을 빼 들고 백병전을 전개하노라면 영락없이 백전백승을 가져다주던 그런 명창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이편이 던진 그 창을 적이 주워서 도로 이편으로 던지는 것이었다. 이를 막기 위한 대책으로 생각해낸 것이 깨어지기 쉬운 창을 만드는 것. 창의 한 부분을 깨어지기 쉬운 약한 재질로 바꾸어서 상대편에게 던졌을 때 창끝이 쉬 굽어지도록 개량한 것이다. 그 결과, 이편에서 던진 창을 그쪽 편이 다시 던지지 못하게 할 수 있었다. enoin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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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범
    2017-06-02
  • 기브아 언덕을 적시는 바람
    예루살렘 북쪽 6㎞, 기브아 언덕에는 짓다만 건물 하나가 오랜 세월 풍우를 견디며 을씨년스러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중근동의 한 국왕이 별장을 짓고자 했으나 전쟁으로 공사가 중단된 것이란다. 그러나 저녁 바람이 스산하게 건물을 빠져나가는 소리를 듣는 나그네들은, 2천년도 전에 불운하게 죽은 한 여인의 울음소리일 것이라는 시인의 해설에 의미를 주고 싶어 한다. <사사기> 19장은 아래와 같은 이야기를 전해준다. 에브라임 산골에 사는 한 레위남자가 친정으로 돌아간 첩을 데려오고자 베들레헴에 갔다. 첩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당시는 여부스로 불리던 외국인의 거리 예루살렘을 피해 동족이 살고 있는 기브아에 이른 일행은, 잠자리를 찾다 우연히 만난 노인의 호의로 그 집에서 밤을 지나게 된다. 밤중에 불량배들이 와서 나그네를 내어달라고 떼를 쓰는 그들은 소도미였을까. 바깥 사태가 험악해지는 것을 알아차린 나그네는 선듯 불량배에게 대신 첩을 내주고 만다.“여자의 남편이 아침에 일어나서, 그 집의 문을 열고 떠나려고 나와 보니, 자기 첩인 그 여자가 두 팔로 문지방을 잡고 문간에 쓰러져 있었다(사사기19:27). 문맥만으로는, 사나운 사내들에게 첩을 넘겨주었으면서도, 그녀의 안부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도 없었다는 듯이, 레위남자는 가던 길이나 가려 했던 것 같다. “자신의 첩이 두 팔로 문지방을 잡고 문간에 쓰러져 있는 것”을 보고도, 사나이는 “일어나서 같이 가자”하고 말했을 뿐이다. 땅을 치고 통곡하기는커녕 눈물을 흘리거나 놀란 기색도 보이지 않는다. 누가 그의 침묵을 자신을 대신해서 처참하게 죽어간 여인에게 복수를 다짐하는 그런 침묵이었다고 보아 줄 것인가. 지나치리만큼 격정적인 히브리 사람이 아니라 할지라도, 이런 경우를 당한다면 어떤 모양으로든지 슬픔이나 격정을 드러내지 않고 평정을 유지할 수는 없을 터. 처참하게 죽은 불쌍한 여인, 그것도 자신을 대신해서 죽은 여인의 시신을 앞에 둔 남편이란 자는 아예 감동이란 것을 모르는 냉혈한이었을까? 사나이는 친정으로 돌아간 여인을 사랑하기는커녕 미워하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첩을 데려오기 위해 베들레헴까지 간 것도 여인을 위해서라기보다는 남의 이목을 위해서, 다시 말해서 레위남자의 체면을 위해서였을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모든 과정은 미운 털이 박힌 첩을 없애기 위한 수순이었단 말일까? 싫어지던 참에, 여인은 친정으로 돌아가 주었고, 체면치레로 그녀를 되찾아 오는 길에, 불량배를 만나자, 기다렸던 기회가 왔다며, 내심 좋아하면서, 망설이지도 않고, 첩을 내어준 것일까. 비참한 몰골이 되어 집 앞에 쓰러져 있는 여인을 보고도 평정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그래서였을까. 그래도 그렇지, 목숨을 걸지는 못할 지라도, 헛기침 정도는 뱉어보는 것이 정상이 아니었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외국인의 거리 예루살렘을 피해 동족의 땅 기브아에서 하룻밤을 묵으려 했던 것은 잘못된 판단이었고, 그 판단의 탓을 지지리도 기구한 운명을 타고 난 여인에게 돌리고자 했던 것일까. 사사기는 궁금증을 풀어주지 않는다. 집으로 돌아온 사나이는 나귀등에 싣고 온 시신을 열둘로 토막처서 이스라엘부족에게 보내어 복수를 호소한다. 레위남자의 권위를 위해서인지는 몰라도, 기브아에서 그가 취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로서 치르게 된 복수전은 처참한 결과를 가져온다. 뒷짐만 지고 있던 자신 대신 분노하고 복수하는 동족들에 대해서 사나이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의 뜻에 맞는 대로 하였다.” 사사기는 구차한 설명만을 남긴다. 그러나 비극을 목격하고 전해들은 보통사람들이 그런 기록에 공감할 수 있었을까. 얼마 후 이스라엘 최초의 왕 사울이 왕국의 터를 잡은 곳이 하필이면 기브아. 악령이 사울을 사로잡아 왕답지 못한 짓을 하게 했던 땅이 하필이면 기브아였다니. 어쩌면 사울을 사로잡은 악령은 기브아에서 억울하게 죽은 베들레헴 여인의 혼령이었을지도 모르지 않는가. 보통사람에게는 객관적 진실보다는 가슴을 달래주는 전설이 필요할 수도 있으리라. enoin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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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범
    2017-05-19
  • 사이코패스가 터 잡기 좋은 사회
    일본 잡지 <분게이 순주(文藝春秋)> 3월호에서 읽은 <트럼프는 사이코패스다>라는 글이 재미있었기에, 필자 나가노 노부코(中野信子)라는 뇌과학자를 기억하게 되었는데, 서점에서 그녀가 쓴 <사이코패스>를 만나자 바로 사고 말았다. 군데군데 그어놓은 옆줄이 제법 많아 진 것은 미처 알지 못하고 있었던 심리학이나 정신분석학 내지는 뇌과학에 관련된 많은 인용과 소개들이 흥미로웠기 때문. 그 중에서도 4장 “사이코패스와 진화”에서, 한국사회는 사이코패스가 터 잡기가 좋은 환경일 지도 모른다고 암시하는 대목에서는 약간 어리둥절해졌다. “한국은 전통적 유교사회로 집단을 유지하는 기능이 발달했다. 그러나 급속한 경제성장과 더불어 이기적이고 경쟁적인 생활양식이 환영받는 사회로 변화가 진행되었다. 맹렬한 수험경쟁도 그 하나로 볼 수 있다. 유전자는 사회나 과학기술의 변화보다는 변화의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1세대에서 2세대로는 생리적인 쾌(快)와 불쾌(不快)의 기준이 완전히 바뀌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머리로는 타자를 앞지르려는 생활양식에 적응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인식하면서도, 정서적으로는 그런 사람을 용서할 수는 없다고 느끼게 된다. 그런 갈등이 지나칠 정도로 사이코패스 와 집단적 비난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닐까“ 하고 썼다. 그에 앞서 일본은 자연재해가 심하기 때문에 사이코패스가 자리 잡기 어려운 환경이라면서 저자의 논리를 뒤받침 할 자료들을 제시하고 있다. 야노마미족은 하루 3시간가량의 노동으로도 살아갈 수 있는 풍요로운 땅에서 살지만, 다툼이 잦아, 남성의 30% 이상이 폭력으로 사망하고, 25세를 넘기는 남성 44%는 살인경험이 있는 부족. 살인 동기는 거의 성적 질투이고, 살인을 해야 집단 내에서 지위가 올라간다. 살인으로 지위를 획득한 남자와 그렇지 못한 남자의 아내 수를 비교하면, 전자는 평균 1.68명, 후자는 0.63명. 살인 하는 쪽이 여자를 얻기 쉽다. 아이들의 수는 살인을 한 경험이 있는 쪽이 평균 4.91명이고 그렇지 못한 쪽은 1.59명에 불과하다. 일부일처보다는 난혼이 대세라는데, 태어난 아기를 양육할지 죽일 지는 출산한 어미가 판단한다. 죽이고 싶으면 배꼽 줄이 달린 채로 개미총에 버려서 흰개미가 먹게 한다. 대조적으로, 군족은 아프리카의 칼라하리 사막에서 수렵채집으로 겨우 연명하고 있다. 식량이 부족하고 생존이 어려운 생활조건이 협력 체제를 요구하게 된 것일까, 공동으로 사냥해서 성과는 평등하게 분배한다. 거짓말은 엄격하게 금지되고, 일부일처제는 배우자 선택에 신중을 기하게 하고 있다. 양친만이 아니라, 일족이 힘을 모아 육아를 보살핀다. 젖을 떼고 난 후에도 계속 양육 관리한다. 아이들이 부모에게 의존하기 때문에 양육비용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따라서 출생률이 저조하다. 눈을 문명국으로 옮겨보자. 워싱턴 대학이 여학생 128명을 대상으로 실험을 한 결과 소위 “다크 트라이어드(Dark Triad)”라고 불릴만한 인품이 인기가 있었단다. “다크 트리아어드”란 “자기애 경향 (Narcissism)”과 “마키아벨리어니즘(Machiavellianism) 그리고 사이코패스적 경향 (Psychopathy)을 총칭해서 부르는 이름. 이상 3 요소를 갖춘 남성들은 겉모양에서도 여성의 인기를 끌지만, 이와는 대조적으로 “일반적”이라고 분류되는 남성들은 여성 칭찬하기를 부끄러워하거나 주저하고, 긴장한 나머지 제대로 말도 건넬 수 없어한다. 그러나 사이코패스는 불안감정이 저조하기 때문에 입에 발린 소리를 자연스럽게 쏟아 내며 사뭇 자연스러운 자세를 취한다. 속내를 눈치 채지 못하는 여성이 쉽게 꼬임에 넘어간다는 것. 더러 “왜 그따위 되지 못한 남자를 택하느냐?”하고 묻는다면 “그럴 수 있는 쪽이 번식에 성공하기 쉬우니까”하는 답이 돌아온다는 것. 여성은 “강한 남성의 유전자를 가진 아이의 생존율이 높을 것”이라는 직감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면, 결코 부자연스러운 선택이라고만은 말할 수는 없지 않겠느냐는 것. “강하기만 할 뿐 공감성이 낮은 남성은 여성에게도 위해를 가할 수 있다는 리스크가 있을 수 있지만, 그런 남성을 택하는 것은, 훗날 리스크가 발생할지언정, 당장에는 번식에 성공하기 쉬운 혹은 아이가 생존할 확률이 높다는 판단이 크게 작용할 지도 모른다”는 데야. enoin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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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범
    2017-05-02
  • 스티브 잡스는 사이코패스
    사이코패스하면 <양들의 침묵>에 등장하는 한니발 렉터박사와 같이, IQ가 높고 냉혹해서 예사로 살인도 저지르는 범죄형으로 알고 있을지 모르나, 현실적으로 우리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거나, “어쩌면 나도?” 하고 생각해보아야할 인품이란다. 미국의 산업심리학자 폴 바비악은 출세한 사람 중에는 사이코패스가 많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사이코패스가 반드시 일을 잘한다는 평가는 아니라고 토를 달면서. 사이코패스는 프레젠테이션 무대에서 발군의 능력을 발휘한다. 상대가 좋아할만한 말로 교묘하게 심리를 조종하거나 상대의 약점을 잡아 흔들어대는 따위의 화술을 장기로 삼고 있기 때문이란다. 급격한 변화를 먹이로 성공을 쟁취하는 것이 사이코패스. 언제나 스릴을 필요로 하는 그들에게 조직의 혼란을 기회로 삼을 줄 안다. 주저하거나 망설일 이유가 없다. 바로 새로운 변혁을 위한 도전에 나선다. 혼란을 틈탄 부정행위는 쉬 발각되지도 않는 법, 긴급한 상황은 자신의 자질을 살릴 수 있는 안성맞춤의 장이 되어 주는 것이다. 사이코패스는 대체로 성실하지 않는 편이어서 비판을 수용하지 않는다. 약속은 미루거나 어기기가 일수. 충동성은 자상함을 필요로 하는 협조와 인내를 요구하는 팀워크에는 어울리지 못하는 법. 날카로운 혀를 놀려 존재감은 드러내지만 결과적으로 평가를 견디어 내는 경우는 많지 않다. 바비악의 결론에 따르면, 대체로 사이코패스가 처음 기대만큼은 일을 해내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지만, 기업을 일으키는 센스는 남달라서 성공하는 예가 적지 않다고 했다. 위험을 즐겨하고 아이디어나 비전을 매력적으로 설명할 줄 아는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라나. 성공한 사이코패스 중에서도 애플의 공동창설자 스티브 잡스야말로 가장 세련되고 성공한 사이코패스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남달리 빼어난 컴퓨터지식의 소유자도 아니고, 디자인이나 실무적인 경영기술도 갖추고 있지 못하지만, 프레젠테이션과 네고시에이션에서 천재적인 재능을 보여 이목을 사로잡은 인물이 잡스다. 세상은 그가 제시하는 비전에 취해, 제품의 실제 기능 이상의 것에 현혹되었다는 것. 잡스를 에워싸고 있는 “현실왜곡 필드”에 휘둘린 사람들이 크게 한 방 먹은 셈이라고 바비악은 말한다. 잡스는 애플의 다른 기술자나 가족에는 가차 없이 대했는데, 다그치는 수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한다. 이용할 만한 사람에게는 입에 발린 찬사로 다가 가지만 일단 이용이 끝나거나 대립했던 상대에 대해서는 날카로운 공격을 가하는 것이 그의 경영 자세. 필요에 따라 교제대상을 바꾸고 오래된 지인은 스스럼없이 목을 잘랐다. 아직 하급 기술자였던 젊은 잡스가 주어진 일을 감당할 수 없어 친구 스티브 워즈니악(애플의 공동창시자)에게 일을 대신해주기를 부탁한 적이 있었다. 친구는 어렵잖게 처리했고, 잡스는 대가로 5천 달러를 받는다. 그러나 “보수가 700 달러였다”며 친구에게는 3천 5백 달라만 건네주었다. 애플이 성공해서 조직이 커지자 사무적인 일이나 노무관리에서 자상한 인간관계가 요구되고 상호 신뢰가 요긴해지면서 잡스는 애플에서 밀려난다. 그런 모양으로 발전한 조직은 잡스의 입맛과는 거리가 있었던 것일까. 그러다 애플이 위기를 맞자 다시 잡스가 필요하게 된 것이다. 바비악은 “기업가로 위장하고 있는 사이코패스”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1. 변화를 즐기고 흥분하기 때문에, 다시 말해서 항상 스릴을 구하고 있기 때문에, 끊임없이 여러 일들이 발생하는 상황에 매력을 느낀다. 2. 질서와 순서를 깨뜨리기 좋아하는 사이코패스는 자유로운 회사 분위기와는 쉬 익숙해지고, 룰을 무시하는 거칠고 평면적인 의사결정이 허용되는 상황을 잘 이용할 줄 안다. 3. 스스로 일을 처리하기보다는 스탭에게 일을 시키는 능력이 중시되는 리더의 자리야말로 타인을 이용하는 뛰어난 자질을 가지고 있는 사이코패스에게 안성맞춤. 빠른 속도가 요구되는 업종이나 환경일수록, 자신의 도금이 벗겨지기 전에 상황과 직위가 바뀌거나 변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선호한단다. enoin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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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범
    2017-04-21
  • 사랑이 있는 곳에 하나님이
    톨스토이에게 있어 부활은 죽음에 이어지는 생명 순환의 고리가 아니었다. <부활>의 주인공 네프류드가 그랬듯이, 죄를 뉘우치고 사랑으로 헌신하는 삶을 시작하는 곳이면,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는 그런 것이었다. 부활은, 커튼이 열리자, 뼈가 이어지고 살이 생겨나는 것과 같은, 피안에서의 기적이 아니라, 지금 여기 그리스도의 말씀을 사는 이들의 숨결 속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마르틴 아브제이치’는 가난한 구두 수선공. 작업실이 비좁은 지하실에 있긴 했지만, 큰 길 쪽으로 나있는 창문을 통해서 틈틈이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볼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으나, 창문을 통해서 볼 수 있는 것은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과 신발이 고작. 그러나 그들이 신고 있는 신발만으로도 그가 누구인지를 알 수 있었다. 사랑하던 아내를 잃더니, 세 살난 아들마저 잃는다. 모든 희망을 잃어버린 그는 하나님을 원망하며 차라리 자신의 목숨도 거두어 달라고 푸념한다. 교회와도 멀어지고 있는 터에, 어느 날 8년이나 성지순례를 했다는 한 노인이 찾아와서 타이르는 말은 이랬다. “마르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인간이 다 이해할 수는 없다오. 그러나 하나님이 허락하신 목숨은 하나님을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그날부터 성서를 읽게 된다. 어느 날 죄 많은 여인이 예수에게 기름을 바른 대목을 읽고 있을 때, 예수께서 그 집 주인 시몬에게 물으시는 물음과 마주치면서 그 물음이 자신을 향한 물음으로 살아나는 것을 깨닫는다. “너는 내게 입을 맞추지 않았으나, 이 여자는 들어와서부터 줄곧 내 발에 입을 맞추었다. 너는 내 머리에 기름을 발라 주지 않았으나, 이 여자는 내 발에 향유를 발랐다.” (누가 7: 45-46) 마르틴 아부제이치는 자문한다. “만약에 예수께서 나에게 오셨다면 나 역시 그렇게 할까?” 그리고 잠이 들었는데, “마르틴! 내일 창밖 큰 길을 보아라. 내가 너를 찾아 올 것인 즉”하는 음성을 듣는다. 이튿날 예수는 오지 않았다. 창문 밖에는 누덕누덕 기운 펠트부츠를 신고 있는 스테파누치 노인이 있을 뿐. 추위에 지쳤는지 떨며 쉬고 있는 그를 집안으로 불러들여 난롯가에 앉히고 따뜻한 차와 과자를 대접한다. 스테파누치는 마음과 몸이 따뜻해졌다면서 십자를 그으며 감사하고 떠나갔다. 아푸제이치가 다시 일을 하면서 그리스도를 기다리는데, 어린아이를 안고 추위에 떨고 있는 한 여인이 벽에 기대어 서성이고 있는 것을 본다. 군인의 아내인 그녀는 남편이 8개월 전에 전선에 불려 간 후로 소식이 없는 터에, 3개월 전에 아기를 낳은 지라 직장을 잃었다는 사연. 그녀에게 따뜻한 수프를 대접한다. 깨끗하게 손질해 두었던 낡은 코트로 아기를 덮어주고 그녀에게는 새 옷을 사라며 약간의 돈도 주어 보냈다. 여인은 십자를 긋고 감사하며 떠났다. 다시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는데, 사내아이의 머리칼을 움켜잡고 경찰에게 끌고 가고 있는 한 노파가 나타난다. 아이가 그녀의 사과를 훔쳤다는 것. 둘 사이에 아부제이치가 끼어든다. “할머니 그 녀석을 보내주세요. 그리스도를 보아서요.” 달아나려던 사내아이를 붙들어서는 “할머니에게 빌어요.”하고 타이른다. “너희가 남의 잘못을 용서해 주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해 주실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남을 용서해 주지 않으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잘못을 용서해 주지 않으실 것이다.”(마태 6:14-15) 할머니도 마음이 풀려 녀석을 용서한다. 밤늦게까지 아푸제이치에게 끝내 그리스도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 때 소리를 듣는다. “마르틴! 마르틴! 나를 모르는가?” “누구십니까?” 그가 묻자 “나다”하는 대답을 듣는데, 마르틴의 어둑한 방 한 구석에 눈을 쓸던 노인 스테파누치가 나타나 미소를 짓고는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이 사람이 나였어.”하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굶주려 떨던 여인이 아이와 함께 걸어오고, 사과를 손에 쥐고 웃고 있는 소년이 나타나는 것이었다. 그들의 웃는 얼굴을 보는 마르틴의 마음은 너무나 기쁜데. 성호를 긋고 펼쳐진 신약성서를 읽는다. “너희는, 내가 주릴 때에 내게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나그네로 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병들어 있을 때에 돌보아 주었고, 감옥에 갇혀 있을 때에 찾아 주었다”(마태 25: 35-36) enoin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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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범
    2017-04-14
  • 샤일록 재판-'베니스의 상인' 다시 읽기
    <베니스의 상인>하면, 중 3 학예회 무대에서, 훗날 성우 구민이 될 구교문(본명)이 포샤를 연기하면서, 그 유명한 대사 “살을 베는 것은 좋지만, 피는 한 방울도 흘려서는 안 되오. 이 증서에는 살 한 파운드라고만 기록되어 있소!”를 외치자, 다들 환성과 박수로 열광했던 일을 기억하게 된다. 그날 뇌리에 새겨진 극악인 유대인 샤일록의 표상은 오랜 세월 지워지거나 묽어지는 일이 없었다. 적어도 지난해 셰익스피어 서거 300년을 기해서 심심찮게 나돌게 된 자료들을 참고하게 되기까지는 그랬다. 샤일록이 인종차별의 희생자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못해보며 살아왔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는 것이다. 1막1장, 베니스의 상인 안토니오가 우울하다. 친구 밧사니오가 포샤에게 구혼을 했고, 그 비용을 융통해 주어야 했으나, 모든 재산이 항해중인 선박에 실려 있어 어떻게 할 수 없기 때문. 2장에서는 벨몬트에서 포샤가 우울해한다. 아버지의 유언 때문에 혼인 상대를 마음대로 정할 수가 없기에. 3장에서야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이 등장하면서, 크리스천과 유대인이 대립하는 테마를 띠워 올리는데, 안토니오가 밧사니오의 구혼비용을 장만하기 위해 3천 다캇을 꾸어달라고 요청하자, 샤일록은 안토니오의 비위를 맞추면서도 고리대금업을 방해하며 유대인을 차별하는 크리스천 안토니오에 대한 미움을 드러낸다. 결국 기일 안에 3천 다캇을 갚지 못할 경우 안토니오의 살 1파운드를 잘라낸다는 조건으로 거래는 성사된다. “밧사니오와 포샤 사이에 펼쳐지는 낭만적 러브스토리”와 “안토니오와 샤일록 사이에서 진행되는 인육재판 법정스토리”. 두 플롯이 병행하며 하나의 주제를 일구어가는 구조이다. 상반되는 두 풀롯을 연결하는 인물이 밧사니오. 가상도시 벨몬트(아름다운 산이란 뜻)로 포샤를 찾아간 밧사니오는 포샤의 아버지의 유언을 따라, 금 은 납 상자 중에서 납 상자를 택하여 포샤를 아내로 맞는다. 그 기쁨의 순간, 안토니오가 빌린 돈을 갚지 못해 위기에 처해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장면은 베니스로 옮겨진다. 포샤도 몰래 베니스로 들어오고. 4막1장 법정장면. 증오하던 크리스천 안토니오의 생명을 노리는 샤일록. 남장한 변호사 포샤는 일단 샤일록의 주장을 인정하면서도 <신약성서>적 자비로 샤일록을 달래보지만, 샤일록은 <구약성서>적인 정의를 내세우며 완강히 맞서는데. 그러나 잘 읽어보면, 셰익스피어는 합법적으로 안토니오의 생명을 노리는 샤일록과, 인종차별의 피해자 샤일록의 모습을 동시에 그리고 있다는 낌새를 알아차릴 수 있으리라. 샤일록을 두둔하는 것도 반유대인적인 입장을 지키는 것도 아닐 수 있다는 해석이다. 셰익스피어는 샤일록 또한 한 사람의 인간으로 그리기에. 포샤. 법을 방패로 삼는 교조주의적인 샤일록에 맞서, 살 한 파운드는 정확한 무게로 베어야 하고 한 방울의 피도 흘려서는 안 된다며, 계약서의 허점을 최대한으로 이용하는 것은 그렇다 치고, 베니스의 법을 따라 샤일록을 몰아 그에게 베니스인의 목숨을 노린 죄목을 적용하려 드는 포샤는 누구인가. 또 유대인에게 개종을 요구한 것은 포샤가 아니라 샤일록에게 자비를 보이고자 하는 안토니오의 호의일 수도 있지만, 유대교인을 그리스도교로 개종하도록 강요하는 장면은 비인도적이라고 나무라는 평자들도 없지 않다는 현실은 수십 년 전 학예회 무대에서의 감흥과는 상당한 거리를 느끼기 한다. 1594년 6월, 엘리자베스 1세의 주치의 유대인 로페스가 여왕을 독살하려했다는 죄목으로 처형되는 사건이 유대인에 대한 영국인의 감정을 언짢게 했다. 덩달아 1594년에는, 크리스토프 말로가 쓴 <말타 섬의 유대인>이 인기리에 상연되는데, 유대인 부호가 주인공으로 등장해서 고명딸의 목숨보다 재산을 더 중하게 여기는 희극. 셰익스피어가 이와 같은 상황을 고려해서 <베니스의 상인>을 창작했을 수도 있으리라.한편, 당시 런던에는 유대인의 수가 지극히 적었다는 사실에, 유대인 샤일록이 <구약성서> 뿐만 아니라 <신약성서>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더하면, 셰익스피어가 그린 것은 유대인이 아니라, 프로테스턴트인 엘리자벳 1세 치하에서, 연극공연을 싫어하고 가톨릭을 적대시하는 당시의 퓨리턴을 비꼬았을 가능성이 있다는 이도 있다는 데야. enoin34@naver.com
    • 칼럼
    • 이상범
    2017-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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