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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 이상범목사
    - 오리버 색스 -책가게에서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The Man Who Mistook His Wife for a Hat, 1985)라는 아주 별난 제목의 책이 있어 집어 들고 읽기 시작한 것이 그 자리에서 24 꼭지 중 첫째꼭지 <아내를...>를 모두 읽었다. 그리고 책의 저자가 오리버 색스(Oliver Sacks)라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 작가를 처음 만나게 된 계기였다고 생각했었다. 그게 나의 ‘착각’이었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은 책을 사들고 집에 와서다. 책상에는 한 저널리스트가 그를 인터뷰해서 쓴 책이 펼쳐져 있었고, 그 책에는 이미 여기저기 밑줄이 그어져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아내를 모자로 착각”할 정도는 아닐지는 몰라도, 나에게서 이미 진행되고 있는 기억상실증(?)이 한몫을 했던 것은 틀림없다. 그리고 그와 같은 사정이 거들어서 신경증환자들을 애정 어린 눈으로 관찰하고 있는 저자의 기록에 특별한 흥미를 느끼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동병상련이라 했던가.그의 글에는 지성과 교양미,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간애를 감지할 수 있게 하는 무엇이 있다. 절제에 절제를 더하여 과장과 허식을 용납하지 않는 필치가 오히려 독자를 끌어들이고 있는 것일까. 며칠 전, 외신에서 그의 부음을 접하게 되었을 때는 마침내 올 것이 왔구나 했는데, 그때에야 그가 나와 동갑내기란 것도 알게 되었다. 2015년 2월, 색스는 한 신문에, “눈에 생긴 멜라노마(melanoma)가 간으로 전이되어 말기 암 후기단계에 접어들었다”면서 쓴 그의 소감을 읽었기 때문이다. “남아있는 세월을 어떻게 살 것인지는 자신에게 달려 있다. 두려움이 없다고는 말하지 않겠다. 그러나 내가 가장 크게 느끼고 있는 것은 감사의 마음이다. 나는 사랑하고, 사랑받았다. 많은 것을 받았기에 뭔가를 돌려주었다고도 생각한다. 독서하고, 여행하고, 사색하고, 그리고 책을 썼다. 작가들과 독자 여러분과 깊이 사귀었다.” 영국출신의 유대인 오리버 색스(1933-2015)는 지난 40년 동안 앨버트 아인슈타인 의과대학에서 신경과의사로 환자를 대하면서, 많은 글을 썼다. 거의가 그가 다룬 환자의 ‘병력’들이지만, 그의 것은 한 마디로 차원이 다르다. “병력은 개인에 대해 그리고 그 개인의 ‘역사’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말해주지 않는다...질병에 걸렸지만 그것을 이기려고 싸우는 당사자 그리고 그 과정에서 겪는 경험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전해주지 못하는 것이다. 이러한 좁은 의미의 ‘병력’ 속에는 주체가 없다...인간이라는 주체 즉 고뇌하고 고통 받고 병과 맞서 싸우는 주체를 중심에 놓기 위해서는 병력을 한 단계 파고들어 하나의 서사,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 필요가 있다.” “환자에게 생리학적으로도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알아야하지만, 동시에 한 ‘사람’을 안다는 것도 중요하다...우리는 세포조직 레벨에서는 거의 다를 것이 없지만, 뇌는 일란성 쌍둥이라 할지라도 태어날 때부터 이미 다르기 때문이다.”<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의 주인공 P는 음악학교의 교사. 상대방의 얼굴은 식별하지 못하지만 말을 듣고 누구인지를 안다. 색스는 이런 증상과 더불어 구체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환자의 고충을 군소리 없이 그러나 소상하게 묘사한다. P는 소화전이나 파킹미터를 보면, 어린 아이의 머리로 착각하고 쓰다듬어 주는가하면, 가구 손잡이의 조각상을 향해서 정답게 말을 걸어주기도 했다. 오죽했으면 모자를 아내로 착각할까. 그러나 음악적 재능에서 P는 여전히 뛰어난 예술성을 들어낼 줄 알았다. 색스는 자신을 상실하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알뜰하게 말해줌으로 오히려 인간의 뇌 그 자체의 보편적인 가소성, 유연성, 가능성을 부각해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를 포함하는 누구나 어느 정도는 뇌장애를 가지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절실한 이야기가 되게 한다. 역자가 쓴 후기에서 몇 구절을 옮겨본다. “‘영혼’은 과학적인 용어가 아니기 때문에...그러나 이 단어로 밖에 표현할 수 없는 현상이 있음을 그는 믿고 있다. 우리는 24편의 이야기 가운데 어느 것을 읽어도 그의 환자에 대한 애정이 가슴 찡하게 전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는데, 이것도 ‘영혼’ 이라는 개념을 굳게 신뢰하는 그의 신념과 깊은 관계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그는 병보다는 인간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인간적인 의사이기 때문이다.”enoin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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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범
    2015-10-10
  • 유방(劉邦)의 경역학
    나라가 어지러워지면 영웅호걸들이 발호(跋扈)하는 법. 중국의 진 왕조(秦王朝) 말기가 그랬다. 이름이 알려진 영웅들에게는 자신의 꿈이나 앞날을 맡겨 보려는 인재들이 모여들었지만, 크고 작은 영웅들 가운데서 최종적으로 가장 많은 인망을 모아드린 영웅이 바로 유방(劉邦)이었던 셈이다.인망이 유방에게 쏠린 것은, 첫째로 그가 가진 “들을 귀” 때문이었다고들 말한다. 다른 영웅들이 자존심을 앞세워 사람들의 말을 귀담아 들으려하지 않는 반면, 유방은 아랫사람의 말을 잘 들어주었다. 그것이 가장 강력한 경쟁자 항우(項羽)에게는 없는 장점이었기에...항우가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던 것은 자신의 탁월한 능력 때문이었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아랫사람의 도움을 받아드릴 여지를 내줄 수 없었던 것이다. 명 참모로 알려진 진평(陳平)과 가장 뛰어난 무장 한신(韓信)도 원래 항우의 사람이었지만, 주공을 버리고 유방의 사람이 된 것은 항우와는 달리 유방이 “들을 귀”를 가진 영웅이었기 때문. 경청(傾聽)이란 “남의 말을 공경하는 태도로 듣는 것”. 들을 청(聽)자의 자원(字源)을 보면, “聽”의 오른쪽 부분이 덕(德)의 생략형으로 되어 있다. “德”의 원래 글자는 덕(悳). “곧은 직(直)” “마음(心)”이 곧 덕이라는 뜻이란다. 그러니까 “聽”은 편견이나 선입견을 가지지 않고 곧은 마음과 귀로 듣는 자세이다. 또 “聽”의 다른 쪽 하단을 보면, 한 일“一”과 마음 심“心” 으로 읽을 수 있는데, “마음을 하나로 모으다.” 는 뜻인즉, 들을 마음이 없으면 들어도 들리지 않는다는 말이 된다. 올바른 마음가짐으로 정신을 집중해서 들어야 제대로 들을 수 있다는 것. 당시 중국은 의협(義俠)을 중시하는 풍조였다. 유방이 많은 신하를 통솔할 수 있었던 것은 “들을 귀”를 가진 “의협”의 사나이였기 때문. 유방이 존경하는 인물 중에 위(魏)나라의 신릉군(信陵君)이 있었다. 이웃 조(趙)나라가 진(秦)의 공격을 받아 존망의 위기에 처했을 때, 신릉군의 형은 진의 보복이 두려워 동맹국인 조나라에 명목상의 원군만을 보내면서도, 부하 장군에게는 적극적으로 전투에 참여하지 않도록 당부한다. 신릉군은 의협심을 배신하는 형의 태도에 화가 나서, 원군을 이끄는 장군을 죽이고 스스로 장군이 되어 진나라와 싸워 대승한다. 그의 의협심과 군사적 재능이 세인의 신뢰를 얻게 했던 것이다. 유방은 그러한 신릉군을 이상적인 지도자로 마음에 두었다. 자신은 신릉군과 같은 명문출신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힘없는 자들을 도와, 힘 있는 자들을 누르는” 인간이 되겠다고 다짐한 것이다. 유방은 패공(沛公)이라는 지방관원으로 있다가 거병하여 반란의 첫 걸음을 내딛게 되는데, 의협심은 그의 일생을 같이 한다. “패공은 이해득실로 군을 움직이지 않는 의협의 사람”이라는 평판이 늘 그를 따라주었다. 인재가 모여들면 용인술이 요구된다. 유방의 인재등용 법은 남달랐다. 소개도 없이 불쑥 나타난 인물이라 할지라도 쓸 만하다 싶으면 당장에 큰 자리를 주곤 했다. 장량(張良)과 한신(韓信)의 경우가 그랬다. 그러한 “유방 표” 용인술의 배경은 무엇이었을까? 한 역사 소설가는, 이미 자리 잡기 시작한 유교적 가치관에 사로잡히지 않았기 때문이라 풀이한다. 조직을 정리하고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 유교적 예법이나 사상이 편리한 도구가 될 수 있는 반면, 노장사상과 같이 무위자연(無爲自然)하는 이념은 조직을 흐트러지게 한다는 풍조 속에서, 유교적 이념이 조직을 경직화할 가능성이 있다는 단점을 직시할 수 있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닌가. 경서를 깡그리 암기하고 있는 수재만이 요직을 차지하는 조직은 보신과 선례주의가 판을 치게 마련인 것을. 장량이나 한신이 발탁되는 것을 지켜보는 거병 초기부터 그를 따른 중신들이 불만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터. 그러나 그들이 불평을 드러내지 않았던 것은 근본적으로는 자신들이 주군의 신뢰를 받고 있다는 자신감 때문이었으리라. 어찌 주군의 뜻을 속속들이 알 수 있으랴만, 거의 언제나 바람직한 결과로 이어져왔었다는 신뢰가 있었기에, 맡기고 기다릴 수 있었으리라. 경영학이 되었거나, 용인술이 되었거나, 밑바닥을 흐르는 것은 소통과 신뢰이고, 그 둘은 별개의 것이 아닌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enoin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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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범
    2015-10-02
  • 임이라 부르리까. 당신이라...
    1960년대, 경향의 레코드 가게를 달구었던 이미자의 노래 <임이라 부르리까. 당신이라 부르리까>의 노랫말의 대강은 이렇다. “...사랑을 하면서도/마음으로만 그리워/그 무슨 잘못이라도 있는 것처럼/울어야만 됩니까” 거의 비슷한 시기, 극장가에서는 이성구 감독, 신영균, 윤정희 주연의 <당신>이 ‘고무신부대’의 발길을 사로잡았는데, “여자 고등학교 수학 교사 영재(신영균 분)와 새로 부임한 젊은 여교사 수진(윤정희 분)이 서로 사랑하게 되지만, 영재에게는 이미 가정이 있는지라, 두 사람은 고민하다 헤어진다는 멜로드라마. 거기에 <당신>이란 제목이 붙여진 것은 수진이 영재에게 마음 놓고 ‘당신’이라 불러보고 싶어 했던 사연을 클로즈업한 것이다.” 그럴 즈음, 바다건너 일본에서는 남극 관측소에 가있는 남편에게 써 보낸 여인의 편지 한 통이 세인의 감동을 불러일으키는데, 편지지를 채운 글자는 단지 “아나타(=당신)”하는 세 글자였다는 것.그러니까 “당신”은 알뜰한 사랑의 심정을 담은 부부간의 호칭으로 쓰여 온 단어이다. 그럼에도, 아니 그렇기 때문에 “당신”은 남들이 보는 앞에서 대놓고 쓸 수 있는 호칭은 아니었다. 그래서 “자기”라든가 “이녁”이란 말로 대신하기도 했던 것이다. 이렇게 어법이 비슷한 우리나라와 일본사람들은 “당신”이라는 호칭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해왔다. 이런 경우, “당신”이나 “아나타”는 영어로는 “you”가 아니라, “darling”으로 번역된다는 사실에 주목하지 않으면 안 된다.우리나라나 일본에서는 일반적으로 호칭(呼稱)으로 “당신” “너” “그대”와 같은 인칭대명사를 쓰지 않는다. 집안 어른들에게 “당신”과 같은 대명사를 쓰는 사람은 없다. “형”, “누나” 대신으로도 쓰지 않는다. 학교 선생님이나 직장 상급자와의 대화에서도 “선생님”이라거나 “과장님” 이라 부르지 “당신”이나 “그대”라는 인칭대명사로는 부르지 않는다. 그러니까 “당신”이란 말은 “너” “그대”와 비교해서 경어에 가까운 호칭이지만, 실제로는 손위에게 쓰기가 불편한 말이다. “당신”에다 “님”을 덧붙여보아도 비꼬거나 장난스러운 말은 될지언정 경어는 될 수 없다. 우리에게는 윗사람에게 사용할 만한 인칭대명사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가정을 벗어나서도 “아저씨, 아주머니”로 부를지언정 “당신”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시비가 붙었을 때가 아니면 “당신”이라 부르는 경우는 거의 없다. 직장상사가 부하 직원에게 “너”하고 부른다면 어떤 의미에서는 도전이라 간주해도 좋을 것이고, “너” 대신 “당신”이라 한다 해도 달라질 것은 없다.혹 현장에 있지 않는 제3자를 아주 높여 “당신”이란 대명사를 사용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그 자리에 계시지 않는, 이를테면 돌아가신 부모를 지칭하여 “당신께서 평소 아끼시던 물건 …” 등으로 표현할 수 있지만, 삼인칭인 경우에 지극히 한정적으로 쓰일 뿐이다. 그런데도, 공중기도에서 하나님에 대한 호칭으로 “당신”을 쓰는 이들이 적지 않은 것이 교회들의 현실이다. 우리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던 선교사들의 말버릇을 받아들인 탓으로 여기는 이들이 있지만, 대체로 선구자의식이 강한 지도자들이 즐겨 쓰고 있는 것으로 보아 나름대로의 성찰과정은 거쳤으리라 믿어본다. 아이가 엄마에게 화를 낼 때, 영어로서는 “I hate you”할 수 있다. 그렇다고 이를 우리말로 번역하면서 “나는 당신이 미워” 할 수는 없지 않을까. 기껏 “엄마 미워” 정도로나 번역할 수 있을 터. 인칭대명사의 발달과정이 우리와는 너무나 다른 유럽언어를 우리말로 번역할 때,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되는 대목이 인칭대명사, 중에서도 호격(Vocative)이라는 사실은 번역작업에 손을 대본 사람이라면 경험적으로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왕 우월한 문화권에서 들어온 종교이니 되도록 그쪽 언어에 동화하는 편이 여러 가지로 편리하지 않겠는가 하는 의미로 “하나님” 호칭을 “당신”으로 고집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또 다른 각도에서 논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거추장스럽게 “하나님의 이름을 망연되이...”운운하면서 얼굴을 붉힐 필요는 없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쓰고 있는 평균적인 우리말과 교회용어 사이의 골을 메꾸기 위해 애써보는 것은 나무랄 일이 아닐 지도 모른다. enoin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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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범
    2015-09-18
  • 레아 이야기
    “아름다움, 매력, 열정은 라헬 몫이지만, 강하고 친밀한 끈, 다시 말해서 성실하고 지속적인, 그래서 영원으로 이어지는, 사랑은 레아의 몫이었다.” 랍비 아딘 스타인잘츠(Adin Steinsalts 1937~ )의 해설에 대해서 평균적인 유대인들은 공감을 표하는 것 같다.그러니까, 눈의 아들 여호수아나 사울과 같이, 한 때 강력한 인상을 심었어도, 단명하거나 허무한 일생을 살다간 라헬의 자손들 보다는, 세대와 세대를 연결하여 다윗의 가문을 이어온 레아의 자손을 꼽는다는 말일 터. 그러나 레아가 족장들의 처첩들 중 가장 불행했던 여인이었다는 사실을 누가 부인할 수 있으랴!<창세기>에서 레아는 라헬의 언니로 등장한다. 그런데도 야곱이 쌍둥이 형에서의 노여움을 피해 외가의 땅 하란으로 왔을 때, 처음으로 만나게 되는 쪽은 언니 레아가 아니라 동생 라헬. 우리가 대하는 대부분의 <창세기>는 ‘라헬의 눈빛이 레아의 것보다 훨씬 빛나고 매력적’이라 번역하고 있지만, 그 대목을 ‘레아의 시력에는 결함이 있다’로 읽을 수도 있단다. 그래서 양들을 이끌고 우물가로 가는 일은 동생 라헬이 맡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면, 야곱이 언니 레아 보다 동생 라헬을 먼저 만나게 되는 것은 필연적인 일이었고, 야곱과 라헬이 첫 눈에 서로 반하고 사랑에 빠지게 된 것은 운명이 정해놓은 수순이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그 모든 불리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레아가 야곱의 첫째부인이 된다. 거기에는 야곱의 외삼촌이자 레아와 라헬의 아비인 라반의 음모가 끼어들기는 했어도, 신방에 들어온 여인이 7년이나 기다리던 라헬이 아님을 알아차리지 못한 야곱의 실수인들 결코 가벼운 것은 아니지 않는가. 적어도 고대인의 운명론을 탐탐하게 여길 수 없어하는 현대인의 시각으로는 말이다. 그러고 보면 레아가 야곱의 첫 부인이 된 책임은 야곱 자신이 질 수밖에 없는 노릇. 레아에게는 동생 라헬이 지닌 그런 매력이 없기에 라헬처럼 야곱과 더불어 천의무봉의 애정을 즐길 수는 없었다. 그녀는 야곱의 사랑을 얻고자 그녀의 모든 것을 바치고 수모를 인내할 수 있을 뿐이었다. 슬픈 여인 레아는 막무가내로 야곱을 차지하려했다. 그녀의 자식들조차도 그녀의 목적을 위한 수단일 뿐. 어쩌면 많은 유대인이 라헬보다 레아를 받들려하는 데에는, 그녀의 슬프고도 인고에 찬 일생에 대한 동정 때문인지도 모른다.야곱이 무려 7년 동안의 종살이를 마치고 고대하던 첫날 밤을 치를 때, 외삼촌이자 장인인 라반은 몸매가 아름답고 용모도 예쁜 라헬이 아니라, 못생긴 언니 레아를 신방으로 들여보냈고, 야곱은 레아와 황홀한 ‘밤’을 보낸다. 그것은 야곱의 실수이기도 하지만, ‘밤’이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이라는 것이 토마스 만의 익살이다. 만은 그의 명작 <요셉과 그의 형제>에서 ‘밤’에 대해서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그러니까 야곱의 실수는 역사상 처음 있은 일이 아니라는 것. 이집트 신화에서, 아눕(그리스 이름으로는 아누비스)의 이야기에서 그것을 증명하려한다. 아눕은, 아버지 우시르가 아내 에세트를 찾아간 다는 것이, 어두운 ‘밤’이라 엉뚱하게 동생 세트의 아내 넵토트와 동침한 결과로 태어난 아들이란 것. 그 모든 것은 ‘어둠’ 탓이었다는 것.“밤에게는 집착이란 것이 없지 않는가. 낮이 일깨워주는 편견이란 밤이면 아무것도 아니게 되거든. 밤이 어떤 진실을 아느냐고? 여자의 몸이라는 게 다 같아서, 사랑을 나누고 아이를 생산하기에는 그만한 게 없다는 게 진실이지. 여자가 구별되는 건 얼굴뿐. 그런데도 얼굴만 보고 이 여자한테서 자식을 생산해야지, 저 여자한테서는 자식을 생산할 생각이 없다는 둥 지껄이지. 그런데 얼굴이란 온갖 착각과 상상으로 가득한 낮의 얼굴이거든. 하지만 진실을 아는 밤 앞에서 그 얼굴은 아무것도 아닌 것을.”(1권 6부 역겨운 것)” 얼굴과 밤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했다. 밭은 씨를 뿌리기만 하면 되는 것. 그 씨가 르우벤이란 힘센 장사를 태어나게 했을 뿐. 급한 성질 탓에 ‘마구 쏘아 대는 물’, ‘아무데서나 넘치는 물’이라 불리던 그도 아버지의 첩과 잠자리를 함께하는 실수를 저지른다. 패일언, 결국 야곱 곁에 묻힌 것은 라헬이 아니라 레아였다. <창세기>가 읽히는 것은... enoin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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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범
    2015-09-03
  • 자유의 길 4단계
    예루살렘 탈무드(BC 50-AD 30)의 랍비들은, 유월절 만찬에서 네 차례나 건배하며 포도주잔을 기울였다고 한다. 그것은 그리스인들의 심포지엄 만찬을 모방한 것이란 견해가 있기는 하지만, 그보다는 출애굽기 6장 6-7절에서 그 동기를 찾으려는 경향이 오늘날의 유대인들이 대체적인 자세인 것 같다. 하나님이 히브리인들을 종살이로부터 구해낸 것은 단 한 번의 사건이 아니라, 네 개의 ‘동사’로 표현되는 ‘네 단계’로 진행된 사건이라 읽으면서, 그 고비마다를 기념하는 행위로 네 번 건배한다는 뜻으로. 출애굽기 6장 6-7절. “그러므로 너(모세)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라. ‘나는 주다. 나는 이집트 사람들이 너희를 강제로 부리지 못하게 거기에서 ‘너희를 이끌어 내고’, 그 종살이에서 ‘너희를 건지고’, 나의 팔을 펴서 큰 심판을 내리면서, ‘너희를 구하여 내겠다. 그래서 ‘너희를 나의 백성으로 삼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될 것이다.” 아랫 줄로 표시한 네 동사, ‘이끌어 내고’ ‘건지고’ ‘구하고’ ‘삼고’ 하는 구체적인 하나님의 행위를 되새기자는 것이 곧 유월절 만찬이었던 것이다. 랍비 모르데하이 코헨의 고전적 명저 <토라에 대해서>에는, 그들의 조상이 종살이하던 이집트를 벗어나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과정에 대한 멋진 해석이 기록되어 있다. “첫째로: ‘나는 너희를 이집트의 고역으로부터 이끌어내겠다’는 선언은, 나 너희의 하나님이 너희가 자각적으로 종살이는 견딜 수 없는 고역임을 인식하고, 스스로 벗어나야겠다고 깨닫게 하려는 의도라는 것. 히브리어 ‘고역’은 ‘인내’를 의미할 수도 있다. 인간이 인내할 수 있는 한계를 넘는 상황이라 판단할 때, 비로소 제 2의 단계가 준비된다는 것이다. 둘째 단계: ‘구원’은 실제적인 노동으로 부터의 구원을 말한다. 그러니까, 마음의 자유가 물리적인 자유에 앞서야하는 것이 구원의 필수조건이라는 말인 것이다. 자유를 사랑하는 사람은 타자의 도시나 궁전을 건설하기 위해 땀 흘려 자신을 소모하는 대신, 자신의 노력을 자신의 필요를 위해서 바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 그래서 하나님은 ‘종살이에서 너희를 건진다.’하고 약속하시는 것. 셋째 단계: ‘나의 팔을 펴서 큰 심판을 내리면서, 너희를 구하여 내겠다.’ 는 말씀은 긍지를 가지고 자급자족할 수 있는 민족만이 스스로의 권리를 위해 결연히 일어설 수 있고, 독립 국가를 건설할 수 있다는 뜻. 그리하여 그들이 자유를 누리며 독립하는 자가 되었을 때, 비로소 마지막 넷째 단계 ‘너희를 나의 백성으로 삼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될 것이다.’의 준비가 완료되는 것’이라 했다.”출애굽기 5장이 기록하고 있는 상황은, 바로가 얼마나 이스라엘을 괴롭혔으며, 그 상황은 이스라엘이 분연히 일어서지 않으면 안될 상황임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현장감독이나 간수, 그리고 경멸받아 마땅한 이스라엘의 내통자들조차도 바로의 요구는 너무 지나쳐서 그 요구에 응하기는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바로에게 보고할 지경이었으니. “저희 종들은 짚도 공급받지 못한 채로 벽돌을 만들라고 강요받고 있습니다. 보십시오, 저희 종들이 이처럼 매를 맞았습니다. 잘못은 틀림없이 임금님의 백성에게 있습니다. 그러자 바로가 대답하였다. ‘이 게을러터진 놈들아, 너희가 일하기가 싫으니까, 주께 제사를 드리러 가게 해 달라고 떠드는 것이 아니냐!”(출 5: 16-17)바로는 달라지지 않았다. 논리가 먹혀들지 않는 바로의 대답은 채찍과 모욕뿐이었다. 낙망한 모세는 주님에게 대든다. “왜 이 백성을 이렇게 못살게 하시는 것입니까? 왜 저를 그들 가운데로 보내신 것입니까? 저가 바로에게 가서 주님의 이름으로 항의했기 때문에 그가 이 백성을 더 고통스럽게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출 5:22-23)바로 그때, 모세는 ‘자유의 길은 멀고, 수많은 장애를 겪지 않으면 안 되는 법. 억압받는 민중이 일어서기만 하면 당장에 얻어지는 자유는 결코 있을 수 없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 우리는 히브리인과 똑 같은 역사를 살아온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음미하노라면 뭔가를 깨닫게 하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enoin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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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범
    2015-08-28
  • “조크는 작자가 없는 문학”
    “조크는 작자가 없는 문학”이라 했다. 자신은 독자라고만 여겼는데, 어느덧 작품 형성에 관여하고 있다면 작가가 될 수박에 없지 않는가. 그래서 모든 조크의 겉모양은 엇비슷해 보일 수 있지만, 그 알맹이는 늘 새로워지고 있는 것이다. 시대와 국경을 넘나들며 다듬어진 작품일지라도 ‘해석과 적용 과정’을 거쳐 완성하는 책임은 전적으로 독자의 몫으로 남아있다. “조크는 작자가 없는 문학”이란 말은 단순히 표절에서 자유롭다는 사정만을 두고 함부로 해본 말이 아닌 것이다. 길거리에 개를 동반한 거지가 서있다. 개목에는 “눈이 보이지 않습니다.” 하는 표지판이 걸려 있고, 땅바닥에 놓인 깡통 속에는 몇 푼의 동전이 들어있다. 가까이에 있는 전화 부스에서 한 사나이가 튀어나오더니, “잘 보시오. 내가 백원짜리 동전 넷을 가지는 대신 오백원짜리 동전 한 개를 넣었다오.”했다. 거지 : “이 사기꾼 녀석, 네놈이 넣은 것은 백원짜리 동전이잖아!”사나이 : “사기꾼은 네놈이지. ‘눈이 보이지 않는다.’ 했으면서.”거지 : “이 멍청아, 눈이 안 보이는 것은 개지 내가 아니지 않는가. 표지판 은 개목에 걸려있는 걸.”이같은 유형의 조크를 생산해내는 작자는 여의도 언저리라면 어렵잖게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조크에는 작가가 따로 없다고는 했지만, 더러 작자를 밝힐 경우 효능이 커진다고 판단된다면, 이름을 밝힐 수도 있다는 것이 조크계의 불문율이 되어 있다. 출처를 밝힐 수는 있지만, 풋 노트를 달지 않아도 처벌은 받지 않는다.A “아침 일찍 낚시를 가시는가 보지요.”B “아닐세, 낚시하러 가는 길일세.” A “그래요? 나는 낚시하러 가시는 줄만 알았네요.”프랑스의 극작가 마르셀의 <웃음에 대해서>에 있는 걸작이라 알려지고 있다. ‘귀가 들리지 않는 사람들의 우월감’을 표현한 조크라던가? 그렇지만 요사이 토크 쇼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장면들이라 굳이 작자의 이름까지 들추지 않아도.... 어느 겨울 오후, 버스정류장에 남자 둘이 서있다. 한 사람은 평범한 시민 같아 보이나, 다른 한 사람은 약간 이상한 느낌을 주는, 이를테면 초능력자이거나 예언자, 아니면 정신이상자일 수도 있다는 느낌을 준다. 침묵이 불안했던지 평범한 쪽이 먼저 입을 연다. “저기 저 할머니는 눈 속에서 뭔가를 찾고 있는가 봐요.”눈이 질펀한 길바닥에서 할머니 한 분이 뭔가를 찾고 있었던 것이다. “열쇠라도 떨어뜨린 모양이지요.” 응대가 없자 멋쩍은 듯이 말을 이었다. 그 말을 받아 초능력의 사나이가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연다. “아니라오.”평범한 시민이 놀라 사나이를 쳐다보는 순간, 보아서는 안될 것을 보아버린 듯 섬뜩한 느낌이 등줄기를 흐르는 것이었다. 그래서 약간은 두려운 어조로 물었다. “어떻게 그걸 아시지요?” 사나이가 입가에 미묘한 웃음을 띠며 말했다. “할머니가 찾고 있는 동전은 내가 벌써 주은 걸요!”아무나 알 수 없는 일을 알고 있는 것으로 보아 특별한 능력을 지니고 있는 인물일 것 같지만, 미리 돈을 주었기 때문에 할머니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 그러니까 제 삼자처럼 구는 당사자... 정치인의 기자회견에서...부동산 소개사의 언변“이 집으로 말씀드리자면, 솔직히 좋은 면과 나쁜 면이 있습니다.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손님께서 정확하고 객관적인 평가를 하실 수 있게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먼저 나쁜 면부터 말씀드리자면, 환경문제입니다. 이쪽에는 양돈장이 있고, 저쪽에는 암모니아 공장, 그리고 맞은편에는 사격장이 있다는 정도입니다. 이제 좋은 면을 말씀 드리자면, 언제나 생활을 위한 지적인식이 가능하다는 점이지요. 그것은 뛰어난 현대적 특징이랄 수 있지요. 창문을 완전히 닫고 있어도 풍향을 인식할 수 있다는 것도 그 중의 하나이구요. 이렇게 훌륭한 특징을 갖춘 집은 그리 흔하지 않습니다.”여기서도 해석과 적용, 그리고 책임은 오로지 독자의 몫으로 남아 있다. enoin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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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범
    2015-08-14
  • 유대인의 조크와 ‘페이소스’
    조크 1: 네덜란드 동부지역에 폭우가 쏟아져 일대가 물에 잠겼다. 경건한 유대인 모세의 집이 물에 잠기기 시작하자, 하나님께 기도했다. 반드시 지켜 줄 것이라 믿고 기도했지만, 물은 점점 불어나기만 했다. 그렇게 아내와 아이들이 함께 기도하고 있는데, 이웃에 사는 마르크가 와서 피난가기를 권했다. 모세는 거절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지켜 줄 것”이라면서. 아래층에 물이 차자 처자를 데리고 이층에서 기도했다. 이층도 물이차자 지붕으로 올라가서 기도했다. 이제 기도 소리는 절규에 가까웠다. 그 때 친구 암논이 작은 배를 저어 와서는 소리쳤다. “이대로 있다가는 곧 빠져 죽을 것이니 어서 배에 오르라!” 그러나 모세는 암논의 호의도 거절했다. 친구의 보트는 멀리 사라졌다. 모세 일가는 집과 더불어 떠내려가다가 익사하고 말았다. 모세가 하늘나라 입구에서 하나님께 불평을 토로했다. “그렇게도 열심히 기도했는데 왜 구해주시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이 응답했다. “나는 그대의 기도를 듣고 두 차례나 구원의 손길을 보네지 않았던가. 그런데도 그대는 듣지 않았네.” 조크 2: 랍비 솔로몬의 삶은 경건했다. 언제나 자신에게 엄격했던 그는 토라를 어기는 일도 없거니와, 날마다 기도와 경전 연구에 몰두했다. 그야말로 유대교 성직자의 모범이었다. 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랍비 솔로몬이 죽어서 하늘나라로 영접되었다. 하늘나라에서 그에게 배당된 집은 아주 소박해서 속세에서 살던 집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바로 길 건너에는 향기로운 꽃동산으로 둘러싸인 궁궐 같은 저택이 있었다. 어느 날 저택의 유리창 너머로 그 집에 살고 있는 사람을 보게 되면서 솔로몬은 소스라치게 놀란다. 자기의 눈을 의심했다. 그 사람은 생전에 택시 운전사를 하던 벤이었기에. 그가 천사들에게 둘러싸여 노닥거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벤은 고급스러워 보이는 와인을 마시며, 감미로운 하프 소리를 즐기고 있는 것이었다. 음악소리에 섞여 벤의 호방하고 야비한 목소리가 길 건너 자신의 집에 까지 들려왔다. 벤이란 녀석은 한 마디로 돼먹지 못한 파락호였다. 폭주를 들이키며 도박과 여자 후리기를 주저하지 않는 위인이었다. 시너고그에 얼굴을 들이미는 일도 거의 없었다. 생전의 두 사람의 삶은 너무나 다른 것이었다. 랍비는 생각했다. 필시 착오 때문일 것이라고. 그래서 하나님께 불평을 털어놓았다. “하나님 왜 나는 이렇게도 허술한 집에서 겨우 비바람을 피하며 초라하게 살고 있는 데, 저 되지 못한 파락호 벤은 궁전 같은 대저택에 살고 있는 것입니까?” 하나님이 대답했다. “그대가 시너고그에서 설교할 때에는 모든 사람이 잠을 잤다. 그러나 벤이 운전하는 택시의 승객들은 그 누구도 예외 없이 열심히 기도했다.”조크 3: 러시아의 숲에서 어린 소녀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이런 경우, 유대인의 짓이라면서 유대인 마을은 습격을 받아 불타고 재산을 약탈당하는 것이 예사로웠다. 이것을 “포그롬(pogrom)”이라 했다. 아니나 다를까, 러시아인 거리에서는 유대인이 소녀를 죽였다면서 격분했다. 총과 칼을 꺼내들고 유대인 마을을 습격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거리에서 일하고 있던 한 유대인이 소식을 전했다. 늙은이 젊은이 할 것 없이 모든 유대인이 시너고그에 모여 랍비를 중심으로 하나님께 간구하고 있었다. 바로 그 때, 한 유대인 청년이 달려와서 말했다. “좋은 소식이요! 좋은 소식이요! 좋은 소식이요!” 모두가 기도를 멈추고 청년을 바라보았다. 청년이 말했다. “죽은 것은 유대인이었어!” 양념: 그리스어 ‘파토스’는 영어의 ‘페이소스’가 되면서 약간 함축이 달라지는 것 같다. ‘승화된 아픔’이랄까. 유대인의 조크에서는 거의 언제나 ‘페이소스’를 읽을 수 있다.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찰리 채플린의 과장된 몸짓이 관객에게 와 닿는 것은 그 페이소스 때문이 아닐까. 그가 말했다. “인생은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enoin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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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범
    2015-07-31
  • 브루투스와 카시우스
    마르쿠스 브루투스는 8세에 아비를 잃는다. 폼페이우스가 죽인 것이다. 로마가 정쟁이 일상이었던 세월을 어린 브루투스는 어머니 세르빌리아의 손에서 자란다. 당시 로마에서는 미망인의 재혼이 당연시되고 있는 터였으나, 그의 어머니는 아들의 교육에 정성을 다한다. 어머니의 배경에는 카이사르가 있었다. 세르빌리아가 재혼하지 않은 것은 정부 카이사르 때문이란 소문이었지만, 카이사르에 대한 그녀의 일편단심을 어떻게 할 수는 없었다. 그런 어머니를 보며 자라는 사춘기 브루투스의 심정을 헤아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먼 훗날 브루투스로 하여금 카이사르를 살해하게 하는 동인의 일부가 되었다고 보는 것은 무리일까. 청년 브루투스는 학업에 몰두한다. 아테네, 페르가몬, 로도스 섬 등, 당시의 최고학부를 모두 거친다. 여느 청년처럼 정치와 군사에 관심을 보이는 일은 없었다. 30세가 될 무렵 금융업에 뛰어들지만 오래가지 못한다. 카이사르가 루비콘 강을 넘었기에 로마가 내전에 휩쓸렸기 때문. 36세가 되어서는 삼촌 카토에게 동조하여 폼페이우스에게 가담했다. 폼페이우스가 누구였던가. 어머니의 간절한 만류도 들으려 하지 않았다. 그는 그런 정서의 젊은이가 되어 있었다. 그러다 파르살로스 회전에서 포로가 된다. 어머니가 나설밖에. 카이사르의 주선으로 용하게 살아난 브루투스는 이후 카토와는 손을 끊는다. “브루투스는 석학 키케로의 총애를 받을 만큼 해박한 지식과 교양을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지식과 교양이 반드시 지성과 일치하지는 않는 법, 그는 언제나 누군가의 영향 아래 있지 않으면 안 되었다.“(로마인 이야기) 키케로가 브루투스의 연설원고를 두고 한 말이 있다. “문장구성은 치밀하고 논리적이지만, 정열이 부족하다. 남에게 자기 뜻을 전달시키고 싶다는 의욕이 모자란다.” 카이사르도 그의 연설을 듣고 평가한 적이 있다. “그 젊은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무언가를 강렬히 원하고 있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키케로와 카이사르의 눈에는 그가 그리 탐탁스럽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러나 카이사르는 평생을 함께해준 애인의 아들이 정계에 나갈 수 있도록 길을 터준다. 브루투스가 처음부터 카이사르 살해음모의 주모자였던 것은 아니다. 진짜 주모자는 매제 카시우스. 그런데도 그가 주모자로 떠받들린 것은 브루투스의 명성을 이용해서 한 사람이라도 가담할 인사가 불어나게 하려는 카시우스의 책략 때문이었고, 그것은 어느 정도 맞아 떨어졌다. 그에게 그만한 지도력은 있었다는 것도 확인된 셈이다. 롱기누스 카시우스는 브루투스와 동갑내기. 30세에 크라수스의 파르티아 원정에 종군하지만, 크라수스군의 궤멸로 끝이 난다. 그런데 카시우스는 총사령관 크라수스를 버리고 500명의 기병과 함께 도망쳐서 목숨을 건진 뼈아픈 경력을 남기게 된다. 또 내전이 일어나자 폼페이우스에게 가담하는가 하면, 파르살로스 회전에서 승리한 카이사르가 폼페이우스를 추격하여 다르다넬스 해협을 건너 소아시아에 도착하자, 카시우스는 싸워보지도 않고 투항했다.카이사르의 관용으로 거주선택의 자유를 얻은 그는, 이집트로 망명한 폼페이우스도, 북아프리카로 망명한 동지도 마다한다. 그렇다고 브루투스가 그랬던 것처럼 한 동안 근신하는 척도 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카이사르에게 협력하고 나섰다. 그에게 군사적 재량은 있었던지,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로 알려진 전투에서는 군단장에 임명된다. 이제 카시우스가 카이사르의 충복이 되었다는 사실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브루투스의 누이를 아내로 맞고, 브루투스와 함께 법무관이 된다. 41세. 앞길이 훤하게 트이는 듯 했다. 그러나 카시우스는, 옛날 크라우스를 버리고 500기병과 함께 뺑소니 쳤던 부끄러운 과거사에 대한 자책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주군 카이사르도 밑바닥에서는 자신을 믿어주지 않으리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도 없었으리라. 카이사르가 권력을 잡고 있는 한 자신의 장래는 없다고 판단했던 것일까. <로마인 이야기>의 시오노 나나미가 말했다. “카시우스는 자기가 저지른 잘못의 본질을 깨닫지 못했다.” 카이사르의 잔머리는 잘 돌아갔다. 브루투스 뒤에는 카이사르의 비호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원로원 의원은 없는 터에, “나 브루투스가 찌른 것은 사랑하는 카이사르가 아니라, 그의 야심이었노라!”하는 브루투스의 수사법은 성공을 거두는 것 같았다. 그러나 성공은 하루를 버티지 못하고 무너졌다. 그것이 역사이다. enoin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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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범
    2015-07-24
  • 무지개
    1. 오래된 미국영화 <오즈의 마법사(1939)>를 알고 있는 이가 얼마나 될까? 그러나 도로시역을 맡은 주디 갈랜드(Judy Garland)가 부른 <Over The Rainbow>의 멜로디와 가사는 아직도 많은 이의 입술에 남아 있을 터. Somewhere, over the rainbow, way up high,There's a land that I heard of once in a lullaby.Somewhere, over the rainbow, skies are blue,And the dreams that you dare to dream really do come true.Some day I'll wish upon a starAnd wake up where the clouds are far behind me.(어딘가 무지개 넘어 높이/자장가에서 듣던 나라가 있지오.//어딘가 무지개 너머, 푸른 하늘에선/그대가 꿈꿔오던 일이 이루어지지요.//언젠가 별에게 소원하면/저 멀리 구름위에서 깨어나겠지요.//)2. 김요섭(1927-1997)의 동시 <무지개>를 읽어본다. 어머니도 아버지도어린 날 무지개를 보시면서 자랐다내가 제일 처음무지개를 본 것은그림책에서다이상하다왜우리들의 하늘에서무지개가 뜨지 않을까?우리들이 과학자가 되면우주선 타고 여행 가기 전에하늘에 무지개를 걸어 놓겠다하늘과 땅무지개로 이어 놓겠다3. 이쯤해서 영국의 시인 워즈워스(William Wordsworth,1770-1850))의 <무지개>를 읽어보자. 하늘의 무지개를 볼 때내 가슴은 뛰노라. 나의 삶이 비롯했을 때도 그랬고어른이 된 지금도 그렇다. 내가 늙어서도 그렇기를 바라노라.그렇지 못하다면 차라리 죽으리라!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바라노니 나의 하루하루가자연에 대한 경건으로 이어지기를. 요사이 무지개가 보고 싶다는 이들이 많은 것 같아.... enoin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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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범
    2015-07-09
  • 헤르부르거 ‘오사카의 예수’
    소비사회와 효능지상주의를 고발하는 작품들로 주목을 끌고 있는 독일 작가 헤르부르거(G?nter Herburger, 1932)는 모택동, 체 게바라, 호치민, 마르크스와 같은 소위 혁명꾼들의 우상이 밀려난 공동(空洞)에서 피어난 작가라는 평을 듣는다. 그는 “교회의 예수’에 맞서 ”팝(pop)의 예수“를 그리려 했다. 1970년 작 <오사카의 예수>는 히피나 언더그라운드풍의 이미지로 예수를 그린 것인데, 대충 아래와 같은 내용이다. ‘예수는 누구였나?’ ‘그는 무엇이 되고자 했나?’ ‘미래사회의 예수는 어떤 모습일까?’ 등의 물음을 전제로 <오사카의 예수>는 모든 전통을 뒤집어 놓았다. 긴 머리의 예수는 구멍 난 바지와 앞이 트인 셔츠에 바람에 나부끼는 합성수지 망토를 걸친다. 가족은 한물간 사회조직이라며 그룹으로 생활하며 정규직을 거부하는 예수는 한 때 건축현장의 인부로 일했다. 이력서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대학에 들어갔지만 졸업은 하지 않았다. 많은 것을 배우기 위해 여러 해 여러 곳을 여행했고, 새로운 일을 경험했다. 레이더기술자, 신문사특파원, 풀장의 감시원 등. 인공두뇌학자가 되려다 포기했지만,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많은 희망을 가지고 있다.” 그의 눈에는 노동이란 ‘날조된 도덕주의’이고 ‘무의미한 것’이었다. ‘돈과 도덕’은 ‘억압의 도구’, ‘교회는 공포를 들먹이는 장치이며, 하나님은 노동이 날조된 것인 것처럼 날조된 것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날조는 인간이 안심감을 얻을 수 있게 한다는 의미에서 필요하다.’고도 너스레를 떤다. 경박스럽기 그지없는 ‘팝의 예수’는 점입가경으로 이어진다. 그가 손을 높이 들어 “그대들은 크리스천인가?”하고 소리치면 무리는 “네”하고 합창으로 응답한다. “믿고 있는가?” “아니오.”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까?” “그렇소!” 모두가 화답한다. “그래도 즐거운가?” “즐겁소! 즐겁소! 즐겁소!”감동으로 연호하며 손뼉치며 뛰고 뒹군다. 무리는 한 묶음이 되어 예수의 앞장을 선다.미래사회의 ‘쓰레기와 인간으로 가득 채워진 양철통 같은 도시’ 한 가운데에서, 예수는 자유와 사랑에 대한 메시지 ‘직접민주주의의 사랑’을 말한다. 십자가의 해프닝. 그가 십자가를 지고 언덕을 오른다. 젊은 남녀가 끝이 뾰족한 모자나 플라스틱 헬멧을 쓴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한 그를 둘러싼다. 예수가 말한다. “나는 나를 선전하려 한다. 그러기 위해 높은 곳으로 올라간다. 안 그러면 눈에 뜨이지 않을 테니까.” 십자가를 진 그를 둘러싸고 웃고 있는 무리에게 큰 소리로 말한다. “나는 예수가 아니다. 나는 예수가 되려 하지 않는다. 예수는 오래전에 죽었다. 누군들 죽는 것이 당연하지 않는가? 그러나 내게는 당연할 수가 없다. 그런 것은 믿지 않는다. 두렵다. 죽을 생각은 없다.” 또 소리친다. “나는 모범이 될 생각은 없다. 너희와 같이 사는 것이다.”여인들이 둘러싼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안기면서 아래위가 뒤집히고 뒤틀리면서 그는 여자들 사이를 벗어나 위로 올라간다. 십자가에 도착하자 몸들로 이루어진 피라미드는 가라앉으며 붕괴한다. 십자가 주변에 밀집한 여인들은 “예수, 우리 예수”를 합창하며 뜨겁게 단 숨을 뿜어댄다. ‘높이 올려 진 예수’는 기분이 좋다. 십자가위에서 소리친다. “나는 죽음을 통한 구원을 믿지 않는다. 나는 나를 사랑한다. 나를 존경하기를 배웠다. 나는 타자를 존경하는 것도 배웠다...우리는 스스로를 사랑한다.”그가 십자가에서 일어나 두 번 손뼉을 치자, 무리도 “우리는 스스로를 사랑한다!” 화답하며 두 번 손뼉친다. “우리는 2천년 동안 십자가에 못 박혔었다. 꼴불견 십자가 때문에 괴로워하기는 싫다. 십자가는 인간을 굴종케 하는 불안의 질서를 확립했다. 더는 불안도 십자가도 없다. 나는 십자가를 버린다.” 또 “내가 만든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너희를 괴롭힌 복종을 자유와 사랑으로 바꾸기 위해 나는 너희들에게 온다.”하고 소리친다. 입은 것을 벗어던진다. 군중도 따른다. “뭔가를 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으니 이제 간다! “면서 두 팔을 벌리고 뛰어내린다. 군중이 팔을 뻗쳐 그를 받는다. 그는 밑으로 가라앉아 군중 틈으로 사라진다. 젊은 남자들이 십자가에 휘발유를 끼얹고 불을 지른다. 끔찍하기까지 한 한 판의 놀이이긴 하지만, 어쩌면 부분적으로는 이미 보수 아니면 진보의 탈을 쓰고 현실교회 깊숙이 자리 잡고 있을 지도 모른다. enoin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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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범
    2015-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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