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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링 효과”와 맥도날드 소송
- 1992년 2월 27일, 뉴멕시코 앨버쿼키의 한 맥도널드 드라이브 드루 창구. 79세의 여성 스텔라 리백이 49센트짜리 커피를 구입하는 지극히 일상적인 일에서, 많은 미국인을 놀라게 하는 사건이 시작한다. 스텔라가 스티로폼 컵에 담아 나오는 맥커피를 받아 드라이브 드루를 나오자, 운전석의 손녀에게 크림과 설탕을 넣겠다며 차를 멈추게 했다. 허벅지 사이에 컵을 끼워 놓고 뚜껑을 여는 순간 커피가 운동복 바지에 쏟아진 것이다. 엎질러진 뜨거운 커피가 그녀의 허벅지 안쪽과 엉덩이, 사타구니 등 신체의 6% 이상에 3도 화상을 입게 했다. 손녀는 차를 몰아 병원으로 달려갔다. 피부이식을 받기 위해 8일간 병원에 입원해야만 했고, 꼼짝 못하고 집에서 3주간을 지내야만 했다. 또한 피부이식수술을 받아야 했기에, 제대로 치유에 이르기까지 2년이라는 시간이 걸렸고, 치료비는 1만 1천 달러였다. 치료를 받는 동안 그녀의 딸이 회사에 휴가를 내야 했으며 그녀의 가족들은 높아진 보험료를 내야만 했다. 퇴원한 스텔라는 “맥도날드의 커피가 너무 뜨거웠다”는 사실이 원인이라 주장하면서 치료비와 위자료 2만 달러를 청구했다. 맥도날드 측에서는 “책임은 인정하지 않으나 위로금으로 800달러를 제공하겠다.”고 응했다. 그녀의 가족은 변호사를 고용했다. 1986년에 맥도날드 커피로 3도 화상을 입은 여성의 변호를 맡아 2만7천 달러의 배상금을 따낸 경력의 변호사 리드 모건 변호사였다. 사실 그 소송에서 컵을 엎지른 것은 맥도날드 직원이어서 스텔라 사건과는 차이가 없지 않지만, 모건 변호사는 맥도날드에게 그녀의 치료비 10만 달러와 함께 징벌적 손해배상금 조로 30만 달러를 요구한다.모건은 먼저 맥도날드의 품질관리담당자로부터 “맥도날드 커피는 통상 화시 82도에서 88도로 제공하게 되어있다“는 증언을 얻어내어 동업 타사에 비해 맥도날드 커피가 너무 뜨겁다는 사실을 배심원에게 제시했다. 다음으로 고령의 부인이 고통 속에서 피부의식 수술을 받고 1만 1천 달러나 되는 치료비를 지불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화상에 대해서 맥도날드 측의 태도가 너무 냉담했다는 점과, 고작 8백 달러라는 위자료가 얼마나 부인에게 상처가 되었을까를 배심원들에게 호소하는 작전을 썼다. 원고 측과 피고 측의 주장과 증언을 들은 배심원은 무려 4시간에 걸쳐 심의 한 결과 맥도날드의 책임을 인정하고 자그마치 286만 달러의 손해배상을 명하는 평결을 내렸다. 행동경제학자들은 과거의 판례에서 종업원이 커피 컵을 엎었어도 고객이 2만 7천 5백 달러밖에 배상받지 못했음에도, 스스로 컵을 뒤엎은 스텔라가 그 많은 배상금을 따낸 데에는, 모건 변호사가 과거의 판례는 덮어두고 전혀 다를 “앵커링 효과”를 이용한 결과라고들 풀이하고 있다. “앵커”란 배를 정박시킬 때 붙들어 매는 닻을 일컫는 명사. 소비자는 어떤 수치에 묶여서 의사결정을 하기 쉽다는 상황을 설명하는 말이 되고 있다. 이를테면 “정가 2만원”이란 표찰 대신 “50% 세일가 1만원”이란 표찰을 내거는 상술과 관계되는 술어이다. 먼저 “맥도날드의 커피가 지나치게 뜨겁다“는 사실이 동업 타사와의 비교에서 입증되는 이상, 맥도날드에게 책임이 있기 때문에, 징벌적 손해배상을 물어야한다 하고 배심원들을 설득한다. 그렇다면 그 배상액은 얼마여야 할까? 모건 변호사는 “맥도날드의 모든 점포에서의 커피 판매액”을 기준으로 하면 어떻겠느냐 하고 제안했다. 그러니까 뜨거운 커피로 노부인을 손상했으니, 그 커피 매상액의 하루치나 이틀치 정도는 제공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는가. 더욱이 상대가 다국적 대기업이라면 징벌적인 의미를 포함해서 다소 고액이라도 괜찮지 않겠는가. 하는 논법이 배심원들을 움직인 것이다. 전 세계의 맥도날드 영업점의 하루 커피 매상액은 약 135만 달러이니 이틀 치는 270만 달러가 된다. 배심원은 여기에 의료비, 경비 등을 더해 286만 달러를 스텔라에게 지불하도록 평결을 내렸다. 맥도날드가 불복 항소했지만 스텔라가 81세가 된 시점에서 양자가 화해하는데, 금액은 공표되지 않았기에 다만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어쩌면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판례를 보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요즘이 아닌가. enoin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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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대성당에서 알게 된 것들
- 유럽여행의 백미는 대성당 감상이 아니겠는가.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놀랄 일이 한 둘일까 마는, 인파에 떠밀리며 번번이 놀라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미사가 진행 중인데도 관광객이 몰려들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교회를 찾아오는 이들을 붙들고 방문목적을 따지는 노릇도 쉽지 않을 터이지만. 규모가 큰 성당은 미사가 진행되는 내진(內陣)이 아니라면 구경꾼도 돌아다닐 수 있다. 종교적인 건축물에서 가장 안쪽 뒷벽에 제단이나 유사한 장치가 되어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가톨릭교회, 적어도 로마네스크 이후의 가톨릭성당은, 그렇지가 않다. 제단과 내진 옆이나 뒤편에 걸어 다닐 수 있는 측랑(側廊)이 있어서 성당에 들어선 사람은 측랑을 통해서 교회 안을 한 바퀴 돌아 볼 수가 있게 되어 있다. 지난날에는 사교나 다른 성직자가 관리할 수 있는 범위는 내진에 한정되어 있었고 나머지 공간은 교구를 대표하는 신자들이 관리를 맡고 있었다나. 그러니까 상황에 따라서는 신앙행위와 직접적으로 관계가 없어 보이는 행사도 열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시청사가 없을 경우, 관리들이 성당에서 집무하거나 회의를 열기도 했단다. 교권과 왕권이라는 두 기둥이 국가를 떠받치고 있었을 시절인데 어찌 그러지 않았을까 싶어진다. 성당의 공간이 비어있으면 마음대로 출입할 수 있었고, 더러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이도 없지 않았다는데, 포도주에 취해서 낮잠을 자는 이도 있었다니. 문이 닫힐 때까지 나름대로 명상도 하고 휴식도 할 수 있는 공간이 되어 주었던 것이다. 지금은 관광객들이 대신하고 있는 지도. 한 도시나 마을에서 성당은 시민회관의 역할도 감당했던 것이다. 고딕 시대에 들어서면서 여러 도시마다 대성당 건축 붐이 일어 난 데에는 이러한 당시의 사정이 한몫했을 지도 모른다. 건축비를 염출하는 것은 시민이었으니 말이다. “다른 도시의 성당에 밑지지 않는 훌륭한 성당건축을!” 하는 구호에 공감할 수 있는 동기에 불을 붙여주었을 지도 모르지 않는가. 그래서 높이 100미터가 넘는 뾰족탑을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았을까. 자금이 모자라 한껏 마음먹고 시작한 공사가 중단되는 수도 없지 않았다. 그런 때면 자금을 염출한 시민은 그나마 자신들의 힘으로 해낸 것 까지를 바라보면서 나머지는 후세들에게 미루면서 마음의 위로를 얻을 수 있었다. 오늘날 대부분의 건축과는 달리 당시의 건축은 한 번에 모든 것을 완성하지 않고, 부분별의 완성을 예상하고 건축에 임했다고 한다. 그래서 완성한 부분만을 이용할 줄도 알았다. 또 뒤를 이어 착공하는 쪽에서도 그 선이 분명하기 때문에 이제부터 그들이 이어갈, 그리고 그들의 주머니를 풀어서 해야 할 작업이 어떤 부분 어떤 모양이 될 것인지를 어느 정도 내다 볼 수 있었다. 밀라노 대성당은 착공에서 완성까지 무려 400년 이상이 소요되었다. 여러 대를 이어가면서 그 어떤 다른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호화판 건축물을 완성하려는 시민들의 집념이 만들어낸 기념비적 건축물로서도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 스테인드글라스로 유명한 샤르트르 대성당을 들여다보기로 하자. 보속 건물을 제외하고서도 스테인드글라스가 무려 170장이나 된단다. 기증한 이들은 국왕, 사교, 봉건영주와 같은 지배자를 제하고도, 제빵업자, 고깃간, 어물전, 술가게, 모피상, 대장간, 석공, 목수 구둣방,....그리고 직공들의 조직인 길드들이 그들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눈에 쉽게 들어오는 위치에 배치된 작품들은 길드가 기증한 것들이었고, 지배층의 것들은 높이 올려 져 있어서 쉽게 쳐다 볼 수 없다는 사실. 유리마다에는 기증자를 표시하는 무늬가 있어 알만한 이들은 그 유리를 기증한 것이 누구인지를 알게 되어 있다. 이를테면 짐승을 도살하는 그림이 끼어있는 글라스는 푸줏간 조합이 기증한 것. 그러니까 기업의 선전을 의식한 배열이요 작품이었던 셈이다. 오늘날 유럽 여러 곳에서 볼 수 있는 성당 앞의 광장은 대체로 르네상스 이후에 생겨났다는 것. 그 이전에는 성당 앞까지 민가가 들어차 있었다. 파리의 노트르담 성당의 광장도 19세기 후반 혁명재발을 두려워한 나폴레옹 3세가 바리케이드를 치지 못하게 낡은 구역을 부수고 조성한 것. 이 글을 쓰게 된 것은 유럽여행을 마친 후가 아니라, 우리나라 한 지방 도시를 다녀와서이다. 너무나 웅장한 교회건물들이 다투고 있어 좀스러운 마음에 걱정이 되어 그쪽 사정을 더듬어 본 것이다. enoin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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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대성당에서 알게 된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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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알드 달의 ‘남쪽에서 온 사나이’
- 노르웨이 출신의 영국 작가 로알드 달(Roald Dahl, 1916-1990)은 교훈적인 내용을 재미있고 깜찍한 캡슐에 담아내는 이야기꾼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대표작 중의 하나 <남쪽에서 온 사나이>는 오래전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이 영화로 만들어 세인의 주목을 끈 바 있지만, 히치콕은 이렇게 말했단다. “아무렇게 다루어도 괜찮을 일은 모두 잘라 버리고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있는 것에만 집중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단편 <남쪽에서 온 사나이>는, 제목 달기에 따라서, 오늘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까지도 웃어줄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소개해본다. “나”라는 스토리 텔러가 등장한다. “나”는 그야말로 스토리 텔러, 다시 말해서 방관자이다. 작가는 등장인물들의 짓거리를 그냥 바라보기만 하는 방관자의 눈을 빌어 이야기를 꾸려간다. 오늘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을 나나 내 이웃의 눈을 통해서가 아니라, 나와 내 이웃을 그냥 바라보고 있는 한 방관자의 눈을 빌어 또 그의 어법을 따라 이해해보는 것은 어떨지. 해질 무렵 자메이카의 한 호텔의 수영 풀. 거의 여섯시가 되어갈 즈음이라 맥주라도 사서 풀 가에 있는 덱 체어에 기대 앉아 지는 해를 바라보면 좋을 것이라 나는 생각했다. 노란 파라솔 아래, 의자 넷이 비어 있는 테이블까지 걸어가서 자리를 잡는다. 컵에 맥주를 따르고 담배를 입에 문다. 등받이에 길게 몸을 맡긴다. 저녁 햇빛을 받으며 맥주와 담배를 손에 들고 오래 앉아있는 노릇은 아주 기분 좋은 일. 게다가 옅은 녹색 물속에서 물장구를 치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 또한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그 때 풀 저쪽을 몸집이 그리 크지 않는 초로의 사나이가 힘차게 걸어오는 것을 본다. 새하얀 슈트에 챙이 넓은 크림 색 파나마모자를 쓴 그는 곧게 허리를 펴고 마치 리듬을 타듯 잰 걸음으로 걸어오는 데, 한 치의 틈도 없어 보인다. 나와 노인이 풀 가에서 쉬고 있자니, 풀에서 올라온 젊은 미국 해군병사와 그의 걸프렌드가 다가왔다. 노인이 시거를 뽑아 물자 “불을 붙여드릴까요” 하며 라이터를 내민다. “바람이 부는데” 하고 노인이 말하자 청년은 문제없다고 응수했다. “그렇군, 음, 그렇군, 이게 ‘틀림없이 불이 붙는다.’는 그 유명한 라이터로구먼?” 그러더니 노인은 청년에게 내기를 하면 어떻겠느냐고 운을 뗀다. 노인의 호텔 방에서 청년이 이 라이터로 열 번 연달아 불을 붙일 수 있는 지를 내기해보자는 것이다. 청년이 이긴다면 저기 세워 둔 캐딜락을 주겠다고 노인이 말한다. 반대로 노인이 이기면, 그러니까 연달아 열 번 불붙이는 데 실패한다면, 노인은 청년의 왼손 새끼손가락을 가지겠다는 것이다. 이야기는 막바지로 내 닫는다. 노인의 호텔 방. 청년의 왼손은 노끈으로 테이블에 묶여 있고, 노인의 손에는 식칼이 들려 있다. 청년이 아홉 번 불을 붙이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아홉 번째는 불꽃이 작았다. “과연 성공할 수 있을지?” 독자가 잔뜩 긴장을 하고 있는 터에, 느닷없이 노인의 아내가 돌아온다. 아내는 노인을 야단치고, 청년에게는 사과한다. “저 양반에게 또 고약한 버릇이 도졌나 봐요.” 아내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우리는 남쪽 나라에서 살았답니다. 저 양반은 거기에서 여러 사람에게서 무려 마흔 일곱 개의 손가락을 빼앗았고, 또 자동차는 열 한 대나 빼앗겼답니다. 마침내 사람들이 감금해버리겠다고 어르는 통에 내가 저 양반을 이곳으로 데리고 온 거랍니다.”이렇게 약간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노인의 정체가 드러나면서 이야기는 약간 누그러진다. 독자는 캐딜락도 실은 부인의 것이란 사실을 알게 되면서 노인의 모습은 약간 어릿광대처럼 비치기 시작한다. 그렇게 독자가 한숨 돌리는 데, “내가 열쇠를 잡으려 내뻗는 부인의 왼손을 보게 된다. 지금도 그녀의 손이 뚜렷하게 눈앞에 어른거리는, 그 손에는 엄지 와 또 하나의 손가락만이 붙어있는 것이었다.”혹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달의 다른 작품 <맛>을 맛보는 것은 어떨는지. enoin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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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알드 달의 ‘남쪽에서 온 사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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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메르자코프와 이반
- 자수성가한 호색한 표도르 카라마조프가 죽임을 당하고 맏아들 드미트리가 범인으로 체포된다. 그러나 독자들은 스메르자코프가 진범임을 알고 있다. 카라마조프가의 하인이요 요리사 스메르자코프는 가장인 표도르가 떠돌이 여인에게서 낳은 아들이지만, 카라마조프가의 삼형제로부터는 하인으로만 대접받아왔다. “24세 전후의 남자 스메르자코프는 무척 사람을 싫어하고 과묵한 편, 사람을 가리거나 수줍어하기 보다는 오히려 거만한 편이어서 모든 사람을 멸시하는 것 같아 보였다... 그를 양육해준 그리고리의 말대로라면 “도대체 감사란 것은 모르고 자라서인지 늘 구석에서 세상을 내다보며 얼굴을 가리는 소년이었고. 고양이 목을 졸라 죽여서 장사해주는 일을 즐기곤 했다.” 무신론적 실존주의자를 자칭하는 둘째 아들 이반은 대학을 나온 수재. 신분으로나 지성으로나 감히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우위에 있는 이반이지만 내심 스메르자코프를 두려워한다. 비굴한 녀석이라며 얕잡아 보면서도 두려워하고 있다는 사실은 얼른 납득이 가지 않을 터이지만 나름대로의 까닭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스메르쟈코프는 이반이 지닌 지성에 대해서, 특히 신을 부정하는 냉소적인 자세에 대해서, 일종의 존경심을 가지고 있었다. 스메르자코프가 상전의 아들 에게 다가 오려하는 것을 이반은 자신이 하인과 한 통속이 되는 것 같아 싫어했지만, “이반은 하인 녀석이 자신의 마음 한 구석에 이미 자리를 잡고 있음을, 그러면서도 그 사나이의 마음을 견디지 못해하는 자신을 알고 있었다.”어디서나 쳐들어가기를 좋아하는 스메르자코프는 이반이 몰래 가지고 있는 생각, 다시 말해서 아버지를 죽이고 싶어 하는 그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뿐만 아니라 맏아들 드미트리가 아버지를 죽이겠다고 소리치고 다니는 노릇을 이용할 줄도 알았다. 이반이 사건 현장을 떠나가게 한 후, 드미트리가 아버지의 집으로 들어간 시기를 교묘히 이용해서 스메르자코프가 표도르를 살해한 것이다. 그러니까 실제로는 스메르자코프에게 아버지를 죽여 달라는 암시나 사주를 하지 않았음에도, 발생한 살인이 빌미가 되어, 이반은 스메르자코프에게서 자신이 살인범이라는 협박을 받고 있는 것이다. “나에게 살인을 위탁한 당신은 모든 것을 알고 떠나간 것이잖아요. 그날 밤 나는 살인 사건의 주범은 당신이란 사실, 비록 내가 직접 손을 썼다할지라도, 내가 주범은 아니라는 사실을 얼굴을 맞대고 당신에게 증명하려했던 것입니다. 당신은 법적으로도 살인범입니다.”이반이 뚜렷하게 아비를 죽이라고 지시한 것은 아니지만, 미묘하게 암시했다는 것. 그러니까 아버지가 죽임을 당하기 직전에 여행을 떠난 일이 스메르자코프에게는 ‘내가 없는 사이에 처리해다오’ 하는 메시지로 받아들여 졌다는 것, 그러니 이반이 여행을 떠나지 않았다면, 설사 사건이 일어나기를 바라고 있었다 하더라도, 스메르자코프는 일을 서두르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이반을 협박한다. 둘의 관계는 완전히 뒤바뀌고 만다. 비굴한 겁쟁이의 화신이라 여겼던 스메르자코프에게 “하나님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이론을 들먹였던 이반이 이제 그 녀석 앞에서 떨고 있다. 스메르자코프를 그렇게 교육한 것은 이반 자신이었다. 이반의 메시지 “모든 것은 용서받을 수 있다”속에 포함되어 있었다. 표도르에게서 훔친 대금을 앞에 두고 스메르자코프는 말한다. “이만한 거금을 가지고 모스크바로? 아니 욕심대로라면 외국에서 살아볼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그것은 ”모든 것은 용서받는다!“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당신이 그렇게 가르쳐주었지요. ‘영원한 하나님이 없다면 그 어떤 선행도 존재할 수 없으니, 그따위는 전혀 필요하지 않다’하고 말했고, 나도 그렇게 생각했지요.”이반은 차별받는 민중 스메르자코프를 계몽했고, 이론을 앞세우는 지식인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인 스메르자코프는 거침없이 실행에 옮겼다. 그 스메르자코프가 스승을 몰아친다. “모든 것은 용서 받는다 했던 당신이 이제 와서 왜 그렇게 떨고 있는 것입니까.” enoin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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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메르자코프와 이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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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베에와 호리병박’ -시가 나오야-
- 일본 사람들이 ‘소설의 신’이라 일컫는 시가 나오야(志賀直哉,1883-1971)가 1913년에 발표한 ‘세이베에와 호리병박’은 작가 자신의 경험이 묻어있는 작품이란 평이 붙어있다. 열두 살 난 초등학생 ‘세이베에’가 호리병박에 반해버린다. 날마다 박을 보러 다니다 눈에 띠는 것이 있으면 용돈을 털어 사 모았다. 박 주둥이를 잘라 열흘 쯤 물에 담가두었다가 물러진 속을 파내 말린 후 술을 담아서 수건을 둘러 통에 넣어서는 아랫목에 묻고 나서야 잠이 들곤 했다. 아침에 꺼내든 “호리병박은 땀을 흘려 살결이 흥건히 젖어” 있곤 했는데, 술을 담아 문지르면 윤이 더해지는 것이었다. 세이베에가 정성들여 가꾼 박들은 어른들의 눈에는 그렇고 그렇게만 비쳤던 지, 아비의 친구들은 세이베에가 열심히 닦고 있는 박을 보고는 “어쩌자고 지지리도 못생긴 것들만 골랐을까?”라며 나무라곤 했다. 그럼에도 소년은 “이게 좋은 걸요.”하며 손질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세이베에에게는 확신이 있었다. 어른들이 품평회에서 본 박에 대해서 감탄할라치면 소년은 속으로 코웃음 치며 “별로에요. 덩치만 컸지” 하는 것이었다. 그러는 아들을 보는 아비의 마음은 편치 않을 뿐만 아니라 화가 치밀어 오르곤 했다. “쇠뿔도 모르는 녀석이!”하고 역정을 냈다. 그러나 그 누구의 어떤 말로도 그러는 소년을 타이를 수는 없었다. 어느 날 뒷골목에서 “소름을 돋게 할 만한 멋진 박을 발견”하자 대금 10전을 주고 사온다. 이후 소년은 한시도 그 박과 떨어져 있을 수 없게 된다. 학교에 가지고 가서 수업 중에 책상 밑에 감추어서 손질하다가 담임교사에게 들킨다. 그 시간이 수신(修身)시간이었기에 교사의 노여움은 대단했다. 박을 빼앗아 쳐들어 보이면서 “이따위 것에 정신을 팔고 있는 녀석에게는 앞날이 없다!”하고 소리치는 선생. 무서워 떨며 집에 와서도 한구석에 처박혀 있는 소년. 아니나 다를까 화를 삭이지 못한 교사가 세이베에의 집을 찾아와서는 소년의 어머니에게 잔소리를 퍼부었고, 이를 알게 된 아비는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 아들을 두들겨 패고 나서 모아둔 박을 모조리 깨어버렸다. “파랗게 질린 세이베에는 아무 말도 못했다.” 이게 고작 작자가 그 순간의 소년을 묘사한 문장의 모든 것. 소년이 용돈을 털어 장만해 정성들여 가꾸어온 박들이 순식간에 박살이 나고, 소년이 아껴 마지않던 그 박마저 교사가 앗아가 버렸는데도... 그래 그거면 충분했다.아비는 소년의 마음의 세계만은 어쩌지 못했다. 교사도 소년의 마음속에 형성되고 있는 아름다움의 세계에는 손을 댈 수가 없었다. 수난 중의 소년은 그로서 승리를 맛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소년이 변명도 반항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을 수 있었던 것은 자신 속에 자리 잡고 있는 확고한 세계 때문이었으리라. 아비나 어른들이 그리고 교사가 공들여 갈고 다듬은 박들은 박살낼 수는 있었지만, 소년의 마음 세계까지는 쳐들어 올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으리라. 소년의 손에는 붓이 들려 있었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 작가는 소설의 말미를 이렇게 닫고 있다. “그러나 그의 아비는 이제 그가 그림을 그리는 일에도 잔소리를 하게 되었다.”훗날 주인공 세이베에와 독자들은 다음과 같은 후일담을 듣는다. 소년에게서 박을 빼앗은 교사가 그것을 학교 소사에게 주어버리자 소사는 그 박을 들고 골동품가게를 찾았다. 가게 주인이 선심이라도 쓰는 척 “5원”을 주겠다고 하자 영리한 소사가 머리를 가로 저었고, “10원”도 물리치자 끝내 가게 주인은 “50원”에 사들였다가 얼마 후 어떤 부자에게 “600원”에 되팔았다나. 이 이야기가 최근에 경영기법에 인용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하기야 “선택과 집중”, 그리고 “가치의 창조”등, 유행하는 투자기법 풀이에 안성맞춤의 자료가 아니겠는가. 그러나 주인공 세이베에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이야기이고 보면, 당시의 “600원”의 가치를 환산해본다고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enoin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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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베에와 호리병박’ -시가 나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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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과 권력
- 건축물을 포함하는 미술작품은 보는 이를 압도할 수는 있지만, 음악처럼 복종을 강요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키프로스의 제논이 말했듯이 “사람에게 귀는 둘이지만 입은 하나뿐”이라는 교훈은 이런 경우에도 적용이 가능한 말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일본의 물리학자이며 수필가 데라다니(寺田寅彦)는 <감 씨>라는 수필집에서 “눈은 언제든지 감을 수 있지만 귀는 자신이 자신을 닫지 못하게 되어 있다. 왜 일까?”하고 묻고 있다. 인간의 감각 중에서 시각은 눈을 감으면 차단되지만, 귀는 닫을 수 없다. 그러니까 인간은 듣지 않을 수 없게 되어 있다. “귀를 막는다”는 말은 듣지 않아야할 악한 말이나 야한 말을 듣지 않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행하는 행위이거나, 수련을 위한 훈련이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 두렵고 무서운 무엇으로부터 도망쳐보려는 의도를 나타내기도 했다. 인간의 귀는 원래 몸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감각기관으로 생겨났단다. 중력을 느끼고 몸이 기울어지는 것을 감지하는 평형감각기관은 생물이 진화해온 역사 중에서 가장 오래된 감각기관의 하나라고 한다. 물의 흐름이나 진동을 감지하는 감각 세포가 더해져서 육지로 올라온 척추동물에게 공기의 진동을 전달하기 위한 중이(中耳)가 생겨났다는데 그 중이를 만들기 위해서 사용된 것이 아가미였다나. 육지에서는 쓸모가 없어진 아가미와 그 주변의 뼈의 일부가 귀로 발전했다고 한다. 숲이나 들판에서 생존에 골몰하던 원시인에게는 적의 움직임이나 기색을 알게 하는 정보를 감지하는 것이 곧 생존의 수단이었다. 그랬을 때 귀는 위험을 알아차릴 수 있는 가장 소중한 기관이 되어주었다. 눈을 감고 휴식을 하거나 잠을 잘 때라도 귀는 열어두도록 진화했다는 것이다. 프랑스의 작가 파스칼 키냐르 (Pascal Quignard)는 <음악에 대한 미움>이라는 책에서 “듣는다는 것은 복종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라틴어로 “오바우디레(obaudire)”는 “듣다”를 의미하는 말인데, 바로 이 단어가 프랑스어 “obeir”(복종하다)로 발전했다고 한다. 키냐르는 말한다. “음악을 대하면 귀를 닫을 수가 없어진다. 음악은 권력이고 모든 권력과 결합한다. 음악은 본질적으로 불평등하다... 플라톤은 철학강의에서 훈련과 음악, 전쟁과 음악, 사회적 히에르라키와 음악을 결코 분리해서 생각하지를 않았다.”리듬과 선율에 인간의 움직임을 싱크로(동조)시켜서 단체의 움직임을 통솔하기는 아주 쉽고 또 많은 권력이 그렇게 해왔다. 종교도 마찬가지였다. 싱크로 시킨다고 하는 노릇은 조종하고 복종케 하는 것과 연결된다. 이러한 음악과 리듬의 성질을 이용해서 전쟁마당에서 군대의 음악이 군의 규율을 유지할 뿐만 아니라, 때로는 병사들을 싸움터로 내보내는 흥분제로 사용되었다. 많은 군가나 행진곡, 그리고 국민을 고무하기 위한 국가나 애국가요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예술의 나라요 선진국으로 알려지고 있는 프랑스의 국가 <라 마르세예즈>만 해도 그렇다. “무기를 들라, 시민들이여!/ 대열을 갖추라! 전진, 전진!/놈들의 더러운 피로 우리의 밭고랑을 적시도록!”음악은 전쟁과 혁명의 도구였다. 민중과 군인들의 감정을 고양시키고 혁명 사상을 불어넣기 위해서 이용되었다. 노랫말이 없는 북 소리 만으로도 민중을 공포에 몰아넣을 수도 있었다. 이를테면 오스만 터키군의 위협 앞에 노출된 동유럽에서는 터키군의 북소리만 들고도 민중이 벌벌 떨어야만 했다. 그 효과를 충분히 알고 있는 오스만 군은 아예 군 선봉을 군악대가 맡게 했다. 악기는 무기이상으로 심리적인 위력을 가지고 있다. 파스칼 기냐르는 말했다. “모든 예술 가운데서 음악만이 1933년부터 1944년에 걸쳐 독일군이 행한 유대인 복멸운동에 협력한 유일한 예술”이라고. 우리는 그런 음악을 호로코스트의 음악이라 한다. 호로코스트란 “구운 희생제물”이란 뜻의 그리스어. 독일이 약 600만의 유대인을 죽이는 과정에서 음악은 큰 몫을 했다. 또 전쟁을 평화로 위장하기 위해서 음악이 사용된다고 해서 이상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을 지도 모른다. 그래서 귀를 가지게 된 인간에게 소리는 무서운 흉기가 되기도 했다는데, 예수가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들으라.”고 말했을 때, 들을 귀는 한층 더 깊은 의미를 품고 있는 말일 것이다. enoin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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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과 권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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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란 모두 더러운 돼지!”-서머셋 몸의 '비'에서
- 영국인 선교사 데이비슨 내외가 선교지로 항해하는 중 전염병 검역을 위해 열대 지방의 한 섬에 머물게 되면서 <비>는 시작된다. 배에서 알게 된 의사 부부와 함께 하선한 일행은 하나밖에 없다는 허름한 숙박업소에 도착한다. 창녀로 보이는 미스 톰슨도 같은 집에 머무르게 되는데, 밤낮을 가리지 않고 축음기로 음악을 틀어대는가 하면 사내들을 불러들여 “장사”를 하고 있는 눈치다. 그녀의 짓거리는 데이비슨 목사를 참기 어렵게 했다. 그렇지 않아도 막 우기에 접어든 섬은 소나기가 큰 북을 울리 듯 요란하게 허술한 지붕을 내리쳤고 폭포 같은 물줄기가 시야를 가리는 나날이 이어지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미스 톰슨은 데이비슨 부부가 고깝다는 듯이 적의에 찬 눈길을 쏟는 것이었다. 참다못한 선교사는 회개시켜보려 이손저손 써보지만 상대조차 해주지 않는 그녀였다. 선교사가 지사에게 압력을 가해 그녀를 샌프란시스코로 강제로 송환하는 길을 택하자, 해볼 테면 해보라며 기고만장이던 창녀도 두 손을 든다. 송환되면 감옥이 기다리고 있었다. 마음을 돌려 그녀가 목사에게 다가선다. 기특하게 여긴 목사는 그녀의 회개를 위해 갖은 애를 쓴다.집요하게 퍼부어대는 열대의 빗줄기. 마치 그 비에 동조하기라도 하듯 목사는 그녀의 방에서 열심히 기도했고, 미스 톰슨의 자세도 달라지기 시작한다. 목사는 “거듭나고 있구나. 밤과 같이 어둡던 영혼이 이제 눈처럼 청순해지고 있다.”하고 의사에게 자랑한다. 강제송환 전야, 목사는 밤늦게 까지 그녀의 방에서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이튿날 아침 바닷가에서 목을 베어 자살한 데이비슨 목사의 시신이 발견된다. 시신을 검진한 의사 맥펠이 미스 톰슨을 찾아갔더니, 놀랍게도 이전보다 더 진하게 화장을 한 그녀가 크게 음악을 틀어놓고 흐트러진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무라는 의사를 증오에 찬 눈길로 노려보며 소리치는 것이었다. “사내란 더러운 돼지! 이놈이나 저놈이나 모두 같아. 돼지! 돼지!” 맥펠이 숨을 몰아쉰다. “모든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알아차린 것이다.”로 이야기는 끝이 난다. 그러나 무엇을 알아 차렸는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창녀가 목사를 유혹한 것인지 아니면 그 반대인지. 그녀가 여전히 회개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목사가 실망한 끝에 스스로 죽음을 택한 것으로 읽지 말란 법도 없으리라. 연일 퍼부어대는 비에다가 모든 것을 돌릴 수는 없기에. 독자들은 작품에 깔려 있는 교묘한 복선들과 만난다. 이를테면, 목사가 창녀를 회개시키고자 한참 열을 올리고 있을 즈음, 의사 맥펠에게 꿈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네브래스카의 산들이 자주 꿈에 나타난다는 것. 그러자 의사 또한 그 산들을 본 기억이 난다면서, “그 모양을 보면서 어쩐지 여성의 유방을 연상하곤 했노라”고 회상한다. 그런저런 복선을 거친 결말은, “하나님을 섬기는 목사도 본능 앞에서는 신앙이 혹은 이성이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한다는 인간의 한계와 죄의 깊이를 그리고 있다” 정도로 받아들이는 것이 상식일지 모르지만, 어쩐지 비아냥거림이 감지되는 것 같다. 작가는 이야기의 끝 부분을 우정 블랙박스에 담고 있는 것일까. 블랙박스 속에 감추어져 있는 진실은 언제나 스캔들의 자료가 되게 마련이 아니던가. 선교사와 창녀의 게임에서 승리한 쪽은 창녀일 지도 모른다. 그러나 창녀의 승리는 창녀로 하여금 영영 창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남자는 모두 돼지!”라는 앙칼진 창녀의 부르짖음은 승리의 함성일까, 아니면 어쩔 수 없는 자신의 운명에 대한 절망의 푸념일까. “스캔들”의 사전적 의미는 “매우 충격적이고 부도덕한 사건. 또는 불명예스러운 평판이나 소문”이라 정리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어원을 더듬다 보면 성서에까지 거슬러가야 한단다. “나에게 걸려 넘어지지 않는 사람은 복이 있다." (마태 11:6)는 예수의 어록에서, ”걸려 넘어지다“는 그리스어 ”스캔다론“에서 왔다는 것. ”나에게 걸려 넘어지지 않는 사람...“에서 ”나“는 곧 예수 자신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어야할 대상은 지금 예수를 증거 하려다가 감옥에 있는 세례자 요한이었다니. enoin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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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란 모두 더러운 돼지!”-서머셋 몸의 '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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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고갱의 ‘노란 그리스도가 있는 자화상’
- 인상파 그림에 관심을 가지는 이라면, 파리 오르세 미술관이 <노란 그리스도가 있는 자화상>을 포함하는 고갱의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다는 것쯤은 알고 있을 터이고, 기회가 되면 가서 감상해보리라는 꿈을 지니고 있을 만도 하리라. 그러나 막상 밀려드는 관람자들 틈에 끼어들어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다 보면, 제대로 감상할 수 없을 지도 모른다는 지레 짐작에, 낡아빠진 화첩이면 어떻고 넷에서 찾은 사진인들 어떠랴 하고 자위해보기도 할 것이다. 폴 고갱(1848-1903)이 마흔 한 살 나던 해에 그렸다는 <노란 그리스도가 있는 자화상> 앞에 있다 치자. 그림 왼쪽에서 그가 이전에 그린 <노란 그리스도>를 다시 보게 된다. 고갱의 그림에서 또 하나의 고갱의 그림을 보게 되는 셈.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좌우가 바뀌어져 있음을 쉬 알아차리게 되면서, 고갱이 거울 속에 비치는 자신을 그리듯 작품을 구성했음을 알게 되리라. 그림 오른 편에 있는 흉물스러운 얼굴이 있는 항아리. 알만 한 감상자라면 고갱이 제작한 <항아리>를 재현한 것이라는 사실도 알아차리리라. 서너 해 전 생활비를 벌어보려고 시도했던 도예작품이란 배경까지 알고 있다면 더욱 많은 것을 짐작하게 하는 건더기가 되어 줄 것이고. 그러니까 <노란 그리스도>나 <항아리>는 우연히 거울에 비쳐진 것들이 아니라, 고갱이 의도적으로 자신의 자화상을 구성하기 위해 이용한 자료로 그려 넣은 것이다. 서둘러 말해본다면, 고갱은 <노란 그리스도>와 도자기, 그리고 거울에 비치는 자신의 얼굴을 아울러 자신의 심정을 나타내보려 한 듯하다. 화가로서 미술적으로 색채와 구성을 궁리하기 이전에 자신의 파편과도 같은 세 자료를 통해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탐구하려 했던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다. 어떤 이는 그림 중의 그리스도는 유럽인 고갱을, 항아리의 험상궂은 얼굴은 제 2의 고향이 될 타이티의 야만인 고갱을 상징했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유럽인과 야만인 사이에서 어느 쪽에서 속할 수 없는 자신의 자화상을 그린 것으로 보자는 것이다. 폴 고갱(1848-1903)이 <노란 그리스도가 있는 자화상>을 그린 것은 그의 나이 41세가 되는 해. 타이티로 떠나기 6년 전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갱은 저널리스트로 정치에 관심이 많았던 그로비스의 장남으로 파리에서 태어나지만, 당시의 정치 상황에 떠밀려 망명하는 아버지를 따라, 외가가 있는 남미 페루로 떠난다. 그러나 아버지는 도중에 세상을 떠나고, 어머니가 남매를 데리고 리마까지 간다. 고갱이 7세가 되었을 때, 오를레앙에 살던 친 할아버지가 다소의 유산을 남겨주었기로 프랑스로 돌아온다. 어머니는 파리에서 옷 가게를 꾸리며 고갱을 오를레앙의 기숙학교에 보낸다. 리마에서 자란 고갱은 프랑스에 정을 붙일 수 없었던지 졸업하자마자 선원이 되어 돌아다니다가, 23세가 되어서야 파리에 있는 한 증권회사에서 자리를 잡는다. 실크헤트에 프록코트를 걸친 증권사 직원으로 프디 브루조아의 딸과 결혼해서 다섯 아이의 아비가 되어 있는 고갱을 상상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그게 화가가 되기 직전의 고갱의 모습이었다. 수입도 좋았던 모양으로 당시 유행하던 인상파의 그림들을 수집하는 한편 일요화가라는 취미를 지닌 어엿한 신사. 수집품 중에는 마네, 세잔느, 피사로, 르노아르. 모네의 작품이 있었다니. 취미로 그린 그림이 싸롱에 입선하더니, 1881년에는 인상파전에 참여한다. 그러던 참에 증권이 폭락하고 금융공황이 시작되자 고갱은 가족과 의논하지도 않고 회사를 그만두고 화가가 되겠노라 선언했다는데... 화가지망생이 된 남편을 버리고 친정 네덜란드로 돌아간 아내를 찾아가 화해를 청해보지만 아내는 황당한 남편을 용서하려하지 않았다나. 그가 갈 수 있는 곳이라고는 그나마 생활비가 적게 드는 타이티 밖에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젊었을 시절의 선원경험을 내세워 배 삯을 때운다면 타이티 행은 문제없을 것이라 계산했을 수도. 이쯤해서 다시 그림으로 돌아가 보자. 오른 편에 있는 야만스런 모습의 사나이를 본 딴 <항아리>가 어렸을 때 리마에서 만났던 토인이자 앞으로 가서 살아야할 타이티인의 모습이라면, 유럽을 대표하는 그리스도와 야만인에 끼인 자신의 모습을 그린 마흔 한 살의 사나이의 심정을 알 것도 같지 않는가. enoin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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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고갱의 ‘노란 그리스도가 있는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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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멘’ 타령
- <카르멘>하면 스페인을 떠올리게 마련이지만, 소설 <카르멘>을 쓴 프로스펠 메리메는 물론, 그를 바탕으로 오페라를 작곡한 조르주 비제도 프랑스인. 두 작품은 프랑스어로 쓰여 졌다. 스페인은 작가와 작곡자가 무대로 빌려 쓰고 있을 뿐이다. 스페인 사람들은 <카르멘>을 못마땅해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게다가 주연 카르멘도 스페인 사람이 아니다. 집시로 불리는 방랑민족이고, 그 상대역 돈 호세도 엄밀하게는 스페인 사람이 아닌 나바라 사람. <카르멘>이 발표된 1845년에서 몇 해만 거슬러 올라가면 엄연한 외국인이었다. 소설<카르멘>에서 호세는 이렇게 말하는 대목이 있다. “만약 스페인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대해서 나쁘게 말한다면 그냥 두지 않을 테야!” 분명하게 자신을 스페인 사람과 구별 짓고 있다. 최근에도 우리는 나바라를 포함하는 바스크와 스페인의 관계가 순탄하지 않다는 소식을 접하지 않았던가. <카르멘>의 주인공은 누가 뭐래도 카르멘이란 이름의 집시 여인. 강렬한 개성과 매력을 내뿜는 팜파타르의 대표라 할 만한 여인이다. 오페라에서는 소프라노가 아니라 메조소프라노의 몫이 되어 있다. 팜파타르에게 휘둘리고 있는 상대역 호세는 바리톤이나 베이스가 아닌 테너. 그리고 청순한 이미지의 여인을 대표하는 호세의 약혼녀 미카엘은 소프라노이고, 호세의 라이벌 투우사 에스카밀리요는 바리톤이나 베이스가 맡아서 사내다움을 뽐낸다. 참고로 알아 둘 일은 메리메의 원작에서는 청순의 이미지 미카엘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사실. 그러니까 오페라에서만 박력 있는 메조소프라노로 테너 호세를 휘두르는 카르멘과 대조적으로 가냘픈 소프라노를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원작자 메리메는 한 여인이 미인일 수 있기 위해서는 서른 가지 조건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고 했다. 메리메는 한 스페인인에게서 얻어들은 정보라면서, 이를테면, “세 가지 검은 것”을 가져야하는데, 그것은 눈, 눈썹, 속눈썹이고, 세 가지 화사한 것을 가져야 하는데, 그것은 손가락, 입술, 머리칼과 같은 것들이란다. 그러면서도 정작 메리메 자신이 스페인 코르토바에서 만날 수 있었던 칼멘은 결코 그와 같은 미인의 조건을 충족하고 있지는 못했다고 했다. “살갗이 매끄럽긴 했지만, 구리 빛에 가까웠다. 눈은 사시이긴 해도, 눈 꼬리가 길고 총총해서 아름다웠다. 약간 두터운 듯 싶은 입술은 단정해서 가끔 껍질을 벗긴 아몬드보다 더 흰 이빨을 드러내곤 했다. 약간 굵어 보이는 머리칼은 칠흑빛으로 까마귀 날개처럼 푸른빛이 돌고 있었다...”이만했으면 독자는 메리메가 그리고자하는 요염한 카르멘의 모습을 짐작하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한 여인이 아름답다는 찬사를 충족하기 위해서는 서른 가지나 되는 조건을 갖추어야 하기 보다는 메리메가 쓴 것처럼 “그녀에게는 이상한 야생적인 아름다움이 있었다. 첫 눈에도 놀라웠지만, 이후 오래토록 결코 잊을 수 없는 그런 얼굴”이었다. 그렇다면 순진하기만 한 병사 돈 호세는 카르멘의 무엇에 혹한 것일까. 세빌리야 담배공장의 여공 카르멘이 호세를 사로잡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작가 메리메는 호세의 입을 빌어 이렇게 표현한다. “눈을 들어 그녀를 보았습니다. 그녀는 빨간 치마를 입고 있었지만 너무 짧아서 하얀 비단 양말이 그대로 보였는데, 양말에는 구멍이 몇 개나 나 있는 것이었습니다. 빨간 모로코 가죽으로 만든 신발은 불꽃같이 진한 빨간색 리본으로 묶여 있었습니다...”병사 호세는 호송하던 범인 카르멘을 도망시키고 만다. 그리고 철창신세가 된다. “내가 왜 이런 벌을 받게 되었던가. 나를 가지고 논 저 보헤미아 계집 때문이 아닌가! 지금쯤 그녀는 어디에서 도적질을 하고 있을 터. 그딴 여자 때문에 내 일생을 망치려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럼에도 그는 그녀를 잊어버리지 못한다. “코앞에서 보여준 구멍 뚫린 양말이 늘 눈앞에 아롱거리는 것을.” 여인을 미인으로 만드는 서른 가지 조건이 한 사나이를 사로잡은 것이 아니라, 구멍난 양말이 한 사나이의 운명을 가른 것이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카르멘>을 읽은 것은 막 중학생이 되었을 무렵, 당시 유일하게 접할 수 있었던 문학전집인 일본 “신초사”판을 통해서였다. 오페라에 밀려서인지 지금은 거의 읽혀지지 않고 있는 소설로 알고 있다. enoin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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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예프스키의 ‘악어’
- 자료를 뒤지다가 우연히 도스토예프스키의 단편소설 <악어>를 펴들게 되었는데, 몇 줄 더듬다가 끝까지 읽고 말았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나”는 그 이야기가 1865년 1월 13일 12시 30분에 시작되었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니까 150년 전, 러시아 페테르부르크에서 일어난 일로 그리고 있지만, 어느덧 최근 우리나라에서 출간된 주간지를 읽고 있다는 착각을 맛보게 된 것이다. 페테르부르크, 멋진 아케이드들이 즐비한 거리, 큰 악어를 수조에 넣어 두고 약간의 입장료를 받고 구경시켜주고 있는 독일인의 가게가 있다기에, 나의 교양 있는 친구이며 먼 친척이기도 한 이반 마토베이치와 미모의 그의 아내 엘레나 이바노브나와 더불어 그 악어를 보러 갔습니다. 이 이야기는 그 가게에서 일어난 세상에도 진기한 사건의 보고입니다. 이반 마토베이치가 금속 그물을 쳐들고 악어를 놀려대다가 그만 악어에게 먹혀버린 것입니다. 놀란 우리가 가게 주인에게 악어의 배를 갈라 달라고 호소했지만, 이 독일인은 우리의 요구를 들어주기보다는 사람을 삼킨 악어가 죽기라도 한다면 자기 가족이 밥을 굶게 될 형편이라며 사정을 봐달라는 것이었다. 처음 한동안 주인은 악어의 배가 찢어질 것을 두려워하는가 싶더니, 안전하다는 것이 확인되자, 입장료를 배로 끌어올릴 수 있다며 기뻐하는 것이었습니다.게다가 “악어의 배를 가르다”할 때, “가르다”라는 러시아말은 농노를 매로 “때리다”라는 뜻이기도 하기 때문에, 그 아케이드 거리를 지나가던 진보사상가들이 모여들어서 “그런 반동적인 언동을 일삼다니 용서할 수 없다.” 하고 항의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그 때,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졌습니다. 악어 뱃속에서 이반 마토베이치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날에는 경제적인 손해배상을 하지 않고 악어의 배를 가르기는 어려울 터이니, 먼저 돈을 구해야한다.”하고 말하더니, 이어서 경제학적이거나 사상적인 문제들을 뇌까리는 것이었습니다.악어의 뱃속은 텅 비어 있어 약간 구리기는 하지만, 지내기가 어렵지는 않은 것 같기에, 나와 엘레나는 일단 집으로 돌아가서 사후대책을 강구하기로 했습니다. 흥분하자 더 아름다워진 엘레나는 “남편이 집에 있어야하지 악어 뱃속에 있다니...”하면서 넌지시 이혼을 암시하기도 했습니다.“나”는 동료 치모페이 세미요니치와 의논해 보았습니다. 그는 이반 마토베이치가 진보사상을 떠들고 다니다가 이 사건에 휘말리게 되었다면서 자업자득이라 했습니다. 그러나 직장에는 당분간 악어 뱃속에 출장 중이라고 보고하는 것이 좋겠다는 충고도 해주었습니다. 이 사건을 눈치 챈 여러 신문들이 러시아에는 동물애호 사상이 터 잡지 못하고 있다는 비난 기사를 싣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이 색다른 사건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알아보려고 조심스럽게 외투의 깃을 세우고 아케이드 거리로 나가봤더니, “악어 집”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이상이 <악어>라는 소설의 줄거리. 주인공 이반 마토베이치라는 공무원은 악어 뱃속에서 죽은 것이 아니라, 그 곳의 삶에 익숙해지고 만족스러워하기조차 하고 있다. 이반은 모든 인류의 운명을 바꾸어 놓을 수 있는 완벽한 사회 체계를 구축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고, 드디어 그 진리에 다가가고 있다고 확신하게 된다. “지금 진리와 빛이 비춰지고 있다. 틀림없이 나는 새로운 경제관에 대해서 독자적인 새 이론을 만들어 낼 것이다. 그리고 이 이론에 긍지를 느끼게 될 것이다. 나는 모든 것을 말할 것이고, 새로운 사상의 영도자가 될 것이다.” 하고 바깥세상을 향해 선언했다.이반으로 하여금 “야만인들만이 자유를 추구할 뿐 현명한 사람은 질서를 사랑한다.” 라고 떠들게 하면서도, 작가 도스토예프스키는 자유가 박탈된 인간은 악어 뱃속처럼 캄캄한 암흑세계에서 살 수 밖에 없을 것이라 말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이반이 고안해낸 유토피아는 악어뱃속처럼 폐쇄된 공간에서만 가능할 뿐 현실 사회와는 거리가 멀다고 말하고 싶어 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 어느 시대나 세상은 다 그렇고 그럴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게 하는 작품으로 읽었다. enoin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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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예프스키의 ‘악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