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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교칼럼] 기독교 영성으로 치유선교
    닐 엔더슨은 인간이 겪은 다양한 문제들 중심에는 영적 문제와 신체적 문제로 구분한다. 따라서 신체적 문제는 의사를 찾아갈 것을 권유하고 있으며 비통함, 죄책감, 수치와 같은 문제는 영적인 문제에 속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문제의 본질과 해결책이 영적이고 심리적인 영역에 관여 되어 있는데도, 자연적인 치유 방법으로 신체적인 증세를 치유하기 때문에 계속 영적 싸움에 시달리고 있다고 주장한다. 영성이라고 말할 때에 모든 종교들 속에는 나름대로의 영성이 존재한다. 어느 학자의 정의에 의하면 영성은 “어떤 문화 현상의 중심적인 경향이나 분위기”를 의미하며, 성경적 영성 이해란 “성경의 중심 메시지가 무엇이냐를 해명하고 그것을 삶에 적용하는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영성이라는 말보다는 ‘영적 성숙, 영적 훈련’의 개념이 훨씬 더 구체적이고 성경적이다. 참된 기독교 영성을 소유하고 그것을 훈련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차원에 대한 심도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 닐 앤더슨은 영적 현상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난 세계 서구인들은 과학적으로 입증되거나 인간의 오감을 통해서 경험할 수 있는 것 이상의 많은 것들이 인간의 삶에 존재 한다고 생각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새로운 갈망는 기독교세계관을 가진 성도들에게도 고무적인 것처럼 들릴지 모른다. 그러나 사실은 물질적인 세계에 환멸을 느낀 현대인은 기존종교들에게서도 등을 돌리는 현상을 가져오게 되었다. 그대신 초심리학이라는 현대적 의복을 걸친 구식 신비주의나 전인건강(holistic health), 동양의 신비주의, 뉴에이지운동의 깃발아래 행진하는 무수한 이교 등으로 영적 공허감을 채우고 있다. 이러한 현상 속에서 기독교 영성을 통해서 인간의 삶의 모든 영역을 회복시켜야 한다. 그럼 기독교영성은 어떻게 규정할 수 있는가? 기독교의 영성은 무엇보다 그리스도 중심적이어야 한다. 로버트 풀러가 출판한 Spiritual, But Not Religious (2002)에 의하면 오늘날 종교는 거부하지만 영성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그 예로 미국의 약 20%가 이러한 그룹 안에 속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우리 안에 그리스도와의 연합과 일치를 추구함이 없다면 그것은 죽은 영성이 될 뿐이다. 만약 영성개발이나 훈련 프로그램들이 그리스도 없이 진행된다면, 그것들은 또 하나의 “새로운 율법주의 (new legalism)”가 될 위험성을 지니고 있다. 특별히 명상이라는 획일화된 프로그램의 방법을 통해 모두에게 획일적인 훈련을 강요할 경우, 획일적인 영성을 요구할 수 있는 위험이 내포되어 있다. 비록 명상을 행함에 있어 최선의 길이 존재하지 않고, 각자가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것을 찾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 기본적인 수행 방법이나 단계 그리고 최종 목표와 목적에 있어서 일치성을 보이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또한 기독교 영성은 기록된 말씀인 성경에 기초한다. 우리가 영성을 이해할 때 어떠한 초월적인 영적 체험으로만 이해한다면 그것이 현실적인 변화의 힘을 제대로 발휘할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말씀을 중심으로 거룩한 영의 운동이 일어나고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을 알아가는 과정이 바로 참된 영성의 훈련 방법이 된다. 많은 사람들이 영성을 논하고, 또한 그것을 추구하지만, 영성의 혼돈 속에서 진정한 영성을 추구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는 명상 수행에서도 마찬가지 현상이다. 명상 수행은 혼이나 육의 측면에서 시작하지만, 그 안에 영이 죽어 있기 때문에 영의 차원에서 이해될 수 없다. 명상은 집중을 통해 깊은 차원으로 들어가 신과의 합일을 추구하고, 범아일여를 꿈꾸지만, 그것은 참다운 영성의 모습이 아니다. 신비주의적 영성 계발은 신비적 합일의 체험을 강조하여 이러한 체험이 “몰아경, 무아경, 황홀경, 삼매경과 같은 변성의식 (trance) 상태로 묘사되어 제시”된다. 필자의 제자 가운데 김천대학에서 교수 하시는 이충웅 교수가 있다. 그의 박사학위 논문이 “크리스챤 요가에 대한 복음주의 선교신학적 비판”이었다. 논문을 지도하면서 인도의 요가가 지닌 종교 혼합과 신비주의를 통한 인간과 신의 합일에 대한 잘못된 종교성을 보았다. 결국 우리가 그리스도의 참 영이신 성령님을 통해서 인간의 모든 문제가 근본적으로 치유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하겠다. www.worldcan.co.kr(세계로선교신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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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1-17
  • [선교칼럼] 한원주 선생님 편안히 쉬세요
    필자는 오늘 한원주 선생님과의 짧은 만남 속에서 얻은 선교적 교훈을 기술하고자 한다. 선교지에서 어렵게 귀국한 나에게는 특별한 수입이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선교지에서의 경험을 학문으로 정리하고 싶어서 아세아연합신학대학원에 입학한 터라 날마다 힘든 생활을 해야 할 때였다. 나 자신이 아픈 것은 참으면 되지만 어린 자녀들이 몸이 아파 힘들고 어려울 때는 부모로서의 마음이 무너진 때였다. 그 때에 서울의 서대문 아세아연합신학대학원 교정 한쪽에 선교병원을 여시고 한원주 선생님은 진료를 담당하였다. 그리고 어느 날 아픈 자녀들을 대리고 한 선생님을 방문 하였을 때에 선교사의 호주머니 사정과는 상관없이 치료를 해 주셨다. 그 후 지속적으로 도움을 받았고, 독립문 근교로 선교병원이 옮겨간 이후 까지 선생님의 진료를 받았다. 세월이 흘러서 언젠가 TV를 통해서 얼굴을 뵈었지만, 오늘 아침 그 분이 소천하신 것을 매스컴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여러 기관에서 한원주 선생님에 관한 기사들이 많이 실렸다. 이를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은 분이셨다. 한원주 선생님은 1926년 일제 강점기에 의사이자 독립운동가인 부친 한규상과 대한애국부인회원으로 독립운동자금을 모으며 항일 투쟁을 도운 모친 박덕실의 여섯 자매 중 셋째로 태어났다. 부친의 영향을 받은 한원주 선생님은1949년 고려의대 전신인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를 졸업, 의사의 길을 걸었다. 1959년 산부인과 전문의 자격을 취득한 뒤에는 물리학자이자 국비 연수생으로 발탁된 남편을 따라 미국 유학 길에 올랐다. 시카고병원에서 인턴을, 메릴랜드병원에서 내과 레지던트를 마치고 원호병원에 취직했다. 1968년 10년 동안의 미국생활도 청산했다. 가난한 조국의 부국강병을 위해 먼저 귀국한 남편을 따랐다. 10년 동안의 서울 개원의 생활은 탄탄대로였다. 하지만 1978년 남편의 갑작스런 죽음은 지난 생을 다시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한 선생님의 고백은 "배움이 없던 때 저에게 의학을 공부하게 한 것은 이웃을 위해 살라는 뜻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때부터 아버지와 같은 삶을 살기로 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한원주 선생님은 1979년 한국기독교의료선교협회 부설 의료선교의원에 터를 잡고 의료봉사에 나섰다. 1982년부터는 환자의 정서나 환경까지도 치료의 영역으로 포괄하는 당시로서는 선진 개념인 '전인 치유진료소'를 열었다. 가난한 환자들의 생활비는 물론 장학금까지 지원하며 온전한 자립을 도왔다. 부와 명예를 내려놓고 소외된 이웃들을 위한 삶을 살다보니 마음이 행복했다. 30년 가까이 의료선교의원에서 봉사의 길을 걸었다. 팔순을 훌쩍 넘긴 2008년,은퇴를 결심했다. 치매·중풍·파킨슨병 등 거동이 불편한 노인을 돌보고 있는 매그너스요양병원이 한 회원을 초청했다. 한 선생님의 마지막 봉사 기관이었던 매그너스요양병원은 "생의 마지막까지 환자들과 더불어 하늘나라로 가고 싶은 게 작은 소망"이라는 한 회원을 위해 원하는 그 날까지 진료하며 환자를 돌볼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했다. 평일에는 병원에서 숙식하며 환자들 곁에서 눈 높이를 맞췄다. 손수 노래도 가르쳤다. 작은 배려와 관심은 환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한 선생님은 요양병원에서 받는 월급의 대부분을 사회단체에 기부했다. 지금껏 기부하고 있는 단체가 10곳이 넘는다. 2017년 JW그룹 공익재단인 중외학술복지재단이 수여한 제5회 성천상 상금 1억원도 기꺼이 내놨다. 성천상 시상식에서 한 회원은 "남은 생도 노인환자가 희망을 잃지 않도록 현역 의사로 그들 곁에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사랑만 가지고도 병이 나을 수 있습니다. 큰 의사는 역시 정신적인 부분까지도, 말하자면 토털 힐링을 하는 그 상태가 큰 의사의 직분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 길이 비록 힘들고 수입이 적을지 몰라도 역시 우리 의사가 가야할 길은 그 길이 아닌가 싶습니다." 한 선생님은 9월 7일까지도 환자를 진료했다. 노환으로 서울아산병원에 입원했지만 "평소 있던 곳으로 돌아가겠다"는 뜻에 따라 9월 23일 매그너스요양병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9월 30일, 추석을 하루 앞두고 영면했다. 별세 전 자녀들과 영상통화에서 '힘내, 가을이다, 사랑해' 세 마디를 남겼다"고 덧붙였다. 한원주 선생님! 그동안 선교사 가족들을 위해서도 수고하셨습니다. 이제 천국에서 준비된 면류관과 함께 편히 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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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0-08
  • [선교칼럼] 느헤미야 리더십과 한국교회의 리더
    무척 혼란스럽다. 갈피를 잡을 수 없다. 영적 지도자들 사이에서도 서로가 나뉘어서 타인을 공격하고 있다. 이러한 환란을 수습하는 길은 어디에 있는가? 작금의 현실을 보면서 필자는 느헤미야의 리더십을 생각했다. 느헤미야는 탁월한 행정력과 조직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는 “여호와의 위로”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민족에 대한 애정, 그리고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의 회복을 향한 피나는 노력의 소유자였다. 이스라엘은 주전 722년에 앗시리아에 의하여 멸망하여 포로가 되었고 남쪽 유다는 주전 586년에 바벨론에 의하여 포로로 잡혀가게 되었다. 주전 538년에 포로로 잡혀 갔던 제 1진이 스룹바벨의 인도아래 유다로 돌아왔다(스 1:1-2:2). 수 년이 넘도록 사마리아인들의 방해를 받으면서도 귀환자들은 결국 주전 515년에 예루살렘에 제 1차 성전을 재건하였다. 수년이 지난 후에 주전 458년에 유대인의 두 번째 귀환이 있었다. 그리고 에스라가 귀환한지 14년이 지난 주전 444년에 느헤미야가 귀환을 하였다. 그리고 하나님의 음성을 통해서 유대인들로 하여금 성벽을 재건하고 백성들의 사회적 경제적 삶을 정돈 하였다. 느헤미야의 리더십은 무기력하고 흩어진 백성들을 조직하고 그들에게 동기를 부여하여 외부의 반대와 백성 내무의 중상모략을 이겨내고 52일 만에 예루살렘성을 중수한 과업지향적인 리더십이었다. 그러나 그는 또 관계지향적인 리더십 요소와 변혁적 리더십 요소도 모두 갖춘 인물이었다. 느헤미야는 소명을 받은 후에 자신이 이스라엘을 위하여 무었을 해야 하고, 어떻게 해야 되며, 누가 그 일을 해야 할 것인지를 알게 되었다. 따라서 그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특성의 지도력을 겸비 하였다. 첫째는, 느헤미야는 사실을 직시하고 용감하게 이에 대하여 대처 하였으며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지켰다. 어떤 일을 처리하는데 있어서 문제의 본질을 직시하고 분석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두 번째 특징은, 느헤미야는 계획하고 기도하였다. 그에게서 기도는 선택과목이 아니고 필수 과목이었다. 예루살렘의 형편을 듣고 그는 하나님 앞에서 금식하며 기도하였다(느 1:4). 세 번째 특징은 느헤미야는 관심을 표명 하였고 용기를 보였다. 이와 같은 태도는 그가 아닥사드다왕 앞에서 지혜롭게 모든 불합리한 요소들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꾸는 모습 속에서 볼 수 있다. 하급자가 상급자 앞에서 자신의 의견을 표현한다고 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이상이 느헤미야의 리더십 특성이라면 한국교회는 어떤가? 코로나 사태 이후에 한국교회는 방향을 잃어버린 배처럼 보인다. 즉 망망대해에 성도들을 놓아두고 한가히 낚시질이나 하는 지도자들의 모습이다. 필자가 듣기로는 최근에 대형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어느 목사님 말씀에 “코로나 이후에 비대면의 예배가 진행되는 동안에 교회의 헌금이 더 늘었다”라고 자랑스럽게 이야기 하더라는 이야기를 듣고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처럼 성도들을 교회에 헌금이나 하는 사람들로 취급하는 한 교회의 리더십은 존재할 수 없다. 어느 통계에 의하면 한국에서 자립을 하지 못한 교회가 70% 이상이라고 한다. 자립하지 못하는 교회의 형편은 비참한 것이다. 가정의 문제, 자녀의 문제, 건강의 문제, 대인관계와의 문제 등에서 균형을 잃고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다. 적어도 자신이 참다운 교회의 지도자라면 같은 동료의 어려움을 먼저 생각할 수 있는 지도력을 지녀야 한다. 성도들의 피와 땀이 어린 헌금을 갖고 빠징꼬에서 거금을 잃고 감옥에 가있는 경우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주님 앞에서 성결한 목회자가 되어야 한다. 돈 몇 푼 주면 모두를 출연 시켜주는 기독교 TV에 나와서 그리스도의 구속의 복음과 생명력이 없이 거들먹거리는 것으로 자신의 사역을 효과적으로 하고 있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느헤미야 선지자는 적어도 다섯 가지의 기술을 가졌다. 이는 문제점을 아는 방법, 문제점에 대해 생각하는 방법, 문제점을 바라보는 방법, 문제해결을 시작하는 방법, 문제해결을 끝마치는 방법이다. 한국교회의 지도자들은 지금이라도 겸손하게 주님의 십자가를 지고 묵묵히 걸어가면서 느헤미야의 리더십을 생각해야 하겠다. 그렇게 행동할 때에 그동안 잃어 버렸던 존경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www.worldcan.co.kr(세계로선교신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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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9-24
  • [선교칼럼] 혼돈의 시대 속의 선교
    모든 환경들이 혼란스럽다. 어쩌면 질서를 잡을 수 없을 만큼 생활의 패턴이 망가진 느낌이다. 이러한 패닉 상태는 몇가지 요인에서 찾아볼 수 있다. 첫째는 코로나 19로 인한 것이다. 중국의 우한에서 시작된 코로나 19는 전 세계적인 전염병이 되었다. 날마다 귀중한 생명이 낙엽처럼 떨어져 지하에 매장 되고 있다. 졸지에 부자간, 현제간, 동료간에 이별을 고해야 하고 장송곡으로 슬픔을 달래야 한다. 국내의 상황은 어떤가? 지난 4월 신천지 속의 확진자를 슬기롭게 극복 하는가 했더니 이태원 술집사건 그리고 급기야는 사랑제일교회와 광화문 집회로 인한 확진자가 급속히 확산 됨으로 국가적 비상이 걸리고 국민들의 마음은 불안과 공포로 일관되고 있다. 코로나 19의 사태는 다양한 분야에서 분열과 갈등을 만들어 내고 있다. 특히 정치권의 분열이다. 여기에서 정치권이란 정치적인 성향을 통틀어서 하는 말이다. 즉 현재 대통령과 민주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광화문 집회가 가진 부당성과 사랑제일교회의 전광훈 목사가 가진 사고들이 철저히 잘못되어 오늘의 사태가 이르 럿다고 주장한다. SNS 같은 매체를 모면 심한 폭언과 함께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만큼의 욕설들이 난무하고 있다. 다른 한편인 통합당을 중심으로 형성된 보수 정당 성향의 사람들은 전광훈 목사야 말로 현 정권의 대항마로서 할 말을 하는 의인으로 칭송을 하는 분위기 이다. 필자는 양 쪽의 어느 한편을 거들고 싶은 생각은 없다. 또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고 본다. 왜냐 하면 “선교칼럼”의 성격이 그러한 행동을 용인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판단된다. 다만 이러한 갈등을 지켜보면서 점점 이 땅에 소망이 소멸되어져 가는 기분은 어찌할 수 없다. 두 번째 요인은 지도자들의 일탈이다. 불행스럽게도 최근에 대한민국의 최대 도시인 서울과 부산의 시정을 책임지고 있는 분들이 성추행으로 낙마를 하게 되었다. 특히 서울시장님이신 박원순 변호사는 스스로 목숨을 끊어 버리는 극단의 선택을 하였다. 이처럼 지도자의 행동은 보편적인 삶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는 충격이 아닐 수 없다. 박원순 시장의 삶의 여정은 많은 분들의 존경을 받는 위치에 있었다. 인권 변호사로서 힘들고 어려운 이들의 친구가 되고, 어려움 속에 있는 사람들을 변화하여 권익을 되찾게 만들어 내는 일을 하였다. 서울 시장으로 3선을 하는 동안에도 많은 일들을 몸소 실행 하면서 시정을 펼쳤다. 필자는 이 글을 통해서 박원순의 자살 사건을 생각해 보고 싶다. 비록 그는 사회적으로 존경을 받는 위치에 있었지만 성자나 더구나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신성과 인성을 모두 가진 존재가 아니다. 그는 다만 인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에게서 인간의 본질을 벗어난 것들을 요구할 수가 없다. 어쩌면 너무나 인간적이기 때문에 그 한계를 벗어날 수 없는 존재였을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의 일탈은 사람들로 하여금 방향성을 잃게 만들었다. 세 번째는 비대면 정황이 갖는 교회의 현실성이다. 코로나 19의 위기는 교회의 집합이 법적으로 금지되고, 성도들을 대면하여 신앙 지도를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교회를 통한 신앙의 유지 및 성장은 함께 모여서 기도하고, 찬송하고, 말씀을 들음을 통해서 이루어 진다. 그러나 성도와 목자간의 교제가 끊어진 상태가 지속되어 감에 따라서 신앙의 위기가 점점 더해지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혼동의 시간일지라도 야훼 하나님을 찾고 은혜를 구하는 신앙으로 돌아가야 하겠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약속을 하셨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의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하실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내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 꽃이 너를 사르지 못하리니, 대저 나는 여호와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요, 네 구원자임이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 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를 대신하여 주었노라(사 43:1-3).” 결국 이 말씀이 우리 교회를 지켜서 혼돈을 극복할 수 있기를 기도해 본다. www.worldcan.co.kr(세계로선교신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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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8-26
  • [선교칼럼] 말레이시아 선교 제언
    말레이시아는 이슬람 국가이다. 한세대학교 교수 시절에 말레이시아를 방문하여 학생들엑 선교의 꿈을 키워준 적이 있다. 특히 수도인 쿠알라룸푸르의 쌍둥이 빌딩은 한국 사람으로서는 자부심을 느낄 만한 작품 이었다. 이는 일본 기겁과 경쟁한 삼성이 속도전으로 승리를 한 것으로 유명하다. 말레이시이가 이슬람을 받아들이게 이유는 지정학적 위치와 상업적 이유이다. 말레이시아는 말라카 해협을 가지고 있다. 1511년 포르투칼과 1641년 네덜란드에 점령되면서 그 영향력이 줄어들기전까지 1400년경의 말라카는 사업과 이슬람교의 중심지가 되었다. 파라메스와라(Parameswara)에 의해 세워진 말라카 왕국은 먼저 이슬람으로 개종한 수마트라 지역의 파새(Pasai)와 페디르(Pedir)와 쌀 교역을 하였다. 교역을 하면서 새로운 신앙에 호감은 가진 파라메스와라는 이슬람 상인들에게 편의를 주고 그들이 메카를 향해 예배를 할 수 있도록 모스크를 지어 주었다. 이후 1414년 파새의 술탄(Sultan)이 자신의 딸을 말라카의 왕에게 주게 되고, 이때 말라카 왕은 이슬람으로 개종을 하게 된다. 이와 함께 말라카 해협을 통해서 동쪽으로는 중국, 서쪽으로는 페르시아, 인도와의 무역이 이루어지고 동시에 문화가 유입이 되었다. 태국과 중국을 외교파트너로 삼고 확장해 나갔다. 말라카 제국은 이슬람을 받아들여 동남아에서 이슬람 전파의 중심지가 되었다. 말라카 군주는 술탄과 마호멧의 계승자라는 뜻인 샤(Shah)라는 호칭을 받았다. 이후 말레이 전역에 이슬람이 확산이 되었다. 1475년에는 파항(Pahang)주의 군주가 이슬람이 되었고, 말라카 해협의 건너편에 존재하였던 로칸(Rokan), 캄파(Kampar), 인드라지리(Indragiri)국에도 영향을 주어 이슬람이 되게 하였다. 불교와 힌두교의 영향력을 축소시켰으며 말레이인의 일상에 깊이 뿌리를 내리게 한 것이다. 이맘(Imam)을 중시하는 시아파와는 달리 이슬람의 기본적인인 코란이나 예언자 마호메트의 언행록을 신앙의 기초로 하는 수니파 계열인 말레이시아 이슬람은 신앙 고백, 예배, 단식, 희사, 순례와 함께 알라에 대한 절대적인 복종귀의를 목표로 하는 신앙을 가지고 있다. 또한 음주와 돼지고기를 금하고, 할례를 하며, 금요일에 모스크에서 진행되는 예배에는 성지 메카의 방향인 키블라를 향해 알라에게 기도를 한다. 금요일 되면 말레이시아는 교통 대란이 일어난다. 이유는 메카를 향해 모든 차들이 진행하기 때문이다. 또한 상점도 문을 닫는다. 심지어는 축구경기도 중단이 된다. 그러나 토속신앙, 터부, 미신에 대한 신앙이 강하다. 여기에 신에 대한 절대적인 의존으로 모든 것을 신의 뜻으로 받아들이는 숙명론적인 태도가 있어서 의욕이나 목표가 삶에서 부족하게 드러나기도 한다. 말레이시아는 말레이시아인, 중국인, 인도인들이 인구를 구성하고 있고, 이외에도 중동국가와 동양과 서양에서 온 다양한 국적을 가진 인종들이 공존하고 있다. 각국에서 온 인종만큼 언어도 다양하다. 공식 공용어는 말레이시아어(Bahasa Malaysia)이지만 제2의 공용어로서 영어가 통용이 된다. 말레이시아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영어를 배우기 때문이다. 여기에 말레이시아의 경제를 주름 잡는 중국인들로 인해 중국어 역시 사용이 된다. 또한 말레이시아 내의 인도인들로 인해 인도어도 쉽게 접할 수 있는 곳이다. 이외에도 중동국가에서 유입되는 이들로 인해 중동의 언어들도 쉽게 접할 수 있다. 말레이시아는 가깝게는 싱가폴, 브루나이, 인도네시아, 필리핀, 캄보디아, 베트남, 태국이 위치해 있고 호주까지도 항공편이 상시로 연결이 되어 있다. 쉽게 다양한 나라로 갈 수 있다는 지적학적 위치를 가지고 다문화, 다종교의 사회를 이루는 특징과 함께 선교에 있어서 가장 어려운 분야인 이슬람 선교를 위한 발판으로도 큰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 특히 수많은 중동의 젊은이들이 말레이시아에 유학, 이민, 취업, 관광으로 들어오고 있다. 그들은 말레이시아에 있는 동안에 히잡을 쓰지 않기도 하고, 본국에서 금기되었던 일들에 대해서도 자유를 가지기를 원한다. 외국인들을 만나기를 원하고, 새로운 문화와 종교에 대해서 큰 관심을 가지고 열린 마음으로 접해 보려는 성향을 가지기도 한다. 따라서 코로나가 진정 되면 동남아시아 무슬림의 중심 국가인 말레이시아를 집중적으로 선교하여 주변 이슬람 국가들의 선교를 향한 교두보를 건설할 것을 기대해 본다. www.worldcan.co.kr(세계로선교신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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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8-18
  • [선교칼럼] 새싹삼 과 생명력 있는 선교
    필자는 요즈음 새싹삼을 재배하고 있다. 2년 전 은퇴한 사람에게 가장 적합한 활동이 무엇인가 고민할 때가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저녁 MBC TV에서 새싹삼 수경 재배에 관한 프로그램을 시청하게 되었다. 시청을 끝내고 문의한 결과 인천의 열우물협동조합에서 촬영한 것이라고 하였다. 때마침 수경 재배법 교육이 있다고 하여 필자와 저의 아내 두사람이 참석하여 교육을 받았다. 그리고 2년이 흘렀다. 코로나로 인해서 전 세계가 건강 문제로 걱정이 가중된 시기에 건강과 삶의 활력을 찾는 비결이 무엇일까 생각하던 중에 새싹삼 재배를 통해서 돌파구를 찾기로 하였다. 마침 은퇴 즈음에 퇴직금 중에서 안양의 호피스텔 지하에 있는 식당을 구입하였다. 그때의 계산은 늙어도 식당을 하면 굶지 않으리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식당을 잘 운영하던 새입자가 나가더니 이내 공실로 2여년을 비워 두게 되었다. 따라서 매월 관리비만 납부하게 됨으로 은퇴하여 수입이 없는 필자는 경제적인 어려움을 당하게 되었다. 결국 올 초에 2년 전 수경재배를 강의해준 “열우물협동조합”의 이사장을 찾아 뵙고 전후 사정을 말했더니 흔쾌히 도와 주시기로 하여 결국 몆 주 전부터 새싹삼을 재배하게 되었다. 필자는 요즘 출근하면 가장 먼저 들리는 곳이 새싹삼 농장이다. 그리고 생명력 넘치는 새싹삼을 보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새싹삼은 흙에 1년을 심은 후에 가을에 캐어내서 차거운 얼음속 냉장고에서 꺼내어 재배를 하게 된다. 얼음을 뒤집어 쓴채로 몇 달을 보내면서도 죽지 않고 움이 튀어지는 모습은 생명의 경이함을 찬탄하게 만든다.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처럼 작은 겨자씨 하나가 새들이 깃들일 곳을 만들어 내는 비유가 얼마나 귀한 메시지인지를 알게 만든다. 새싹삼에 포함된 사포닌 연구 결과에 의하면 뿌리는 작아도 사포닌이 6년근 보다 많고 잎에는 뿌리보다 8∽9배나 많이 들어 있다고 한다. 경희대 한방재료학과 새싹인삼의 사포닌 연구결과에 의하면 “3년 근 인삼이 싹을 튀운지 50일 지난 잎에서 진세노사이드가 뿌리보다 더 많이 검출 되었다”라고 보고되었다 한다. 즉 저 년생 인삼에는 뿌리보다도 잎에 사포닌 성분이 더 많이 함유되어 “트리올게 사토닌”이 뿌리만 먹던 인삼보다 잎에 더 많이 들어 있는 것을 섭취하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연세대와 강원대학의 생화학과 논문에 의하면 “새싹인삼은 심혈관 질환을 유발하는 콜레스테롤 농도를 저하시켜 주는 효과가 있다”는 연구가 발표 되었다. 즉 새싹 인삼에 풍부하게 함유된 진세노사이드는 세포내부에서 콜레스테롤 대사를 촉진시켜 세포내의 콜레스테롤 농도를 저하시킴으로서 콜레스테롤의 LDL 수용체 합성 억제를 완화시켜 준다고 한다. 요즈음 코로나 19로 인해서 세계가 긴장되고 날카로워 졌다. 그리고 지구촌 어디에도 안전한 장소는 없어지게 되었다. 그동안 우리는 미국을 세계에서 가장 안정되고 안전한 장소로 여겼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시간에도 수없이 많은 미국인들이 유명을 달리하고 있다. 이제 건강은 우리 스스로 지키지 않으면 안된다. 단순한 논리는 우리가 건강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것이다. 물론 내세를 소망해온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은 다른 견해를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건강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즉 우리의 사명을 완수 하는 것이 주님의 뜻이다. 부름을 받을 때 까지 건강을 최우선시 해야 할 당위성이 바로 그것이다. 필자의 생각은 새싹삼은 우리의 건강을 분명히 증진 시킬 것이다. 아울러 죽음을 이길 것이다. 그리고 선교의 대열에서 더욱 굳건하게 행진할 것이다. 새싹삼을 재배 하면서 우리의 건강 증진 이외에도 또 하나의 바램이 있다. 이는 직업 창출이다. 지금 기르고 있는 새싹삼 장소가 다문화인들의 직업 교육의 장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필자는 10여년 전 “세계다문화진흥원”을 창설하여 운영하고 있다. 사역을 하는 동안에 다문화인들이 한국에 와서 가장 고민하는 것 중의 하나가 직업을 얻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교수 사역을 하고 있는 나로서는 늘 한계가 있었다. 새싹삼의 잎이 활력이 넘칠수록 나에게는 희망이 솟구친다. 모든 사람이 죽고 자신만이 유아독존하기를 열망하는 세상 속에 함께 건강하고, 함께 선교할 수 있는 장이 되기를 바란다. www.worldcan.co.kr(세계로선교신학원)
    • 칼럼
    • 선교
    2020-08-11
  • [선교칼럼] 일본 선교의 어려움
    일본의 아베신조 총리는 오늘도 한국에 대해서 적대적인 행동을 일삼고 있다. ‘한국과 일본, 일본과 한국’ 이 둘의 관계를 정의하는 것만큼 쉬운듯하며 어려운 것은 없을 것이다. 제3국에 나가서 볼 때는 거의 차이가 나지 않을 정도로 겉모습이 닮은 두 민족이며, 지리적으로 조금만 멀어져도 예민하게 되는 문화 또한 상당부분 맥을 같이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청산’이라는 말이 너무나 요원해 보이는 과거 역사 문제 때문에 생물학적으로 가장 ‘피’를 많이 섞은 두 나라가 어떤 경우에는 가장 멀어 보인다는 ‘가깝고도 먼 나라’로 서로를 인식하고 있다. 아베와 험한파의 준동에도 일본은 점점 침몰해 가도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왜냐 하면 일본인들에게 첫째는 꿈이 없다는 것이다. 장래 소망에 대해 물어 보니 99%의 여학생들이 빨리 결혼해서 공부도 안하고 일도 안하고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편하게 살길 원한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결국 꿈이 돈 많은 배우자와의 결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결혼은 누구나 하는 당연한 것이며, 더군다나 그러한 가치관에 기초한 결혼은 ‘꿈이 될 수 없다’ 라고 가르쳐도 자신의 꿈을 발표하는 학생이 없었다. 이러한 젊은이들의 물질주의화, 개인주의화, 출산 기피 현상 등은 기성 세대의 고민거리로 대두되고 있다. 둘째는 예의를 상실해 가고 있다는 것이다. 외국인들이 일본에서 일본어를 배우면 상대를 배려하는 존경어나 겸양어 등을 배우게 됨으로 ‘일본인은 상당히 친절하고 예의가 바르다.’ 라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교과서에서나 나오는 표현일 뿐 지금의 일본 젊은이들은 그러한 말들을 점차 잊어가고 있다. 오히려 외국인 보다 모르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일본 선교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일본 선교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 잘 알고 있다. 국민 소득 세계 2위, 국토는 대한민국의 4배이고 전체 인구도 대한민국의 3배에 달하는 거대한 복음의 사각지대 일본. 그러나 그들의 정신 문화와 역사적 배경을 보다 적극적으로 알고 이해하고자 하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통해 일본 선교의 지름길을 제시해 보고 싶다. 최근 한 대중 가수의 친일 발언이 큰 사회적 이슈가 되기도 했는데, 다분히 시기적·방법적 문제가 있기도 하였지만, 그의 주장도 결국은 일본에 대한 근본적 인식 전환, 적극적 재검토를 통한 패러다임 전환이라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어느 곳, 어느 때나 그러하였지만, 일본, 일본인에게서 만큼 ‘예수’란 캐릭터가 인기가 없는 지역, 민족이 또 있을까? 물론 과장이 조금도 섞여 있지 않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자유주의 국가 중 크리스마스조차 공휴일이 아닌 나라가 유일하게 일본이라는 것만 보아도 이 말에 어느 정도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거리에서 만나는 대다수의 청년들이 크리스마스는 ‘산타클로스의 생일’ 내지는 선물을 주고 받는 날이나 이성과 함께 근사한 호텔에 가는 날 정도로 치부해버릴 정도로 영적으로 무지한 나라가 일본이다. 또한 여러 가지 신(神)을 동시에 받아들이는 범신주의가 그들의 진정한 가치이며,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우상들은 서로가 서로를 비난하지도 의식하지도 않으며 사이 좋게 공존하고 있다. 이와 같은 토양 속에서 ‘유일신’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일본인의 의식 구조 자체에 적합하지 않은 하나님(카미사마-神樣)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다. 일본 선교의 해법은 성경에서 선교 전략과 힌트를 얻을 수 있다. “그 땅의 어떠함을 탐지하라. 곧 그 땅 거민의 강약과 다소와 그들의 거하는 땅의 호불호와 거하는 성읍이 진영인지 산성인지와 토지의 후박과 수목의 유무니라” (민 13 : 18 ~ 20) 이것은 하나님이 이미 허락하신 가나안 땅임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이 그 땅을 정탐할 때에 모세를 통해 내리신 하나님의 전략이었다. 그 땅과 토질을 알기 위해 모세는 “그 땅 실과를 가져오라”고 까지 12정탐꾼에게 명령 하였다. 이와 같이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정복되지 않은 가나안 땅 일본을 탐지하라고 명령하신다. 사단의 견고한 진영의 함락을 위해 그 땅에 사는 백성들의 강점과 약점, 많고 적음, 국토의 크기와 토질도 파악하라고 명령하고 계시는 것이다. 이것은 전쟁 경험이 없는 신세대가 중견 시민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는 21세기 일본의 선교를 위한 의식 전환의 대 전제가 될 것이며, 일본 선교를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의 출발을 위한 제시가 될 줄로 믿는다. www.worldcan.co.kr(세계로선교연구원)
    • 칼럼
    • 선교
    2020-07-20
  • 티스토리(tstory)와 선교 칼럼
    필자는 거의 26여년 동안 “교회와 연합” 신문의 “선교칼럼”을 기술하였다. 글을 쓴다는 것이 쉽지 않지만 이것도 주님을 향한 선교의 마음이라고 생각되어 매주 한 번씩 기고하기 위해서 몇 시간씩 마음고생을 하였다. 되돌아보면 잘 쓴 글도 있고, 시간이 바빠서 대충 쓰는 경우도 있었다. 이 시간에 부족한 사람의 허물을 이해해 주었으면 한다. 최근에 포털 사이트에서 “선교학 박사의 선교이야기”라는 블로그를 마련하였다. 그곳은 “선교칼럼” “선교학 강좌” “선교사의 현장소개” “성지순례” 같은 소제목들이 있다. 그리고 그동안 교회와 연합신문에 기고하였던 “선교칼럼”의 글들을 포함해서 280여개나 올리게 되었다. 이제 아침에 눈을 뜨면 티스토리에 나의 블로그를 찾아주시는 분이 몇 분이나 되는가가 중요한 일과가 되었다. 어떤 날은 180여명이나 되는 날도 있지만 최근에는 50여명이 꾸준히 나의 글을 찾고 있고 개설한지 얼마 안 되어 2,000여명을 상회 했다. 참으로 감사하고 행복한 시간 들이다. 매스 미디어의 활용은 선교의 동기를 주는데 매우 유용한 도구인 것 같다. 이는 대학의 교수직에서 은퇴한 나에게 할 일을 주시는 하나님의 크나큰 선물인 것 같기도 하다. 왜냐 하면 필자의 하루 일과 중에서 매스 미디어에의 활용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의 하루 일과 중에서 매스미디어를 활용하여 하나님의 말씀과 선교에 도전을 주는 시간이 가장 귀중한 시간이 되었다. 첫 번째의 일은 아침에 기상하여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성경 속에서 선교의 말씀(mission Word)를 찾는 것이다. 그리고 묵상하고 선교의 마음으로 충만하게 해 주시도록 기도하는 일이다. 이후 나의 모바일 폰의 페이스북을 통해 올리는 것이다. 감사 한 것은 오랫동안 소식이 없던 제자들로부터 “좋아요”를 눌러 주고 뎃 글 까지 달아주고, 때로는 퍼다가 나르는 일 까지 해주고 있다. 이는 날마다 싸우고, 자신의 불만을 폭발하여 분위기를 어둡게 만드는 공간 속에서 등대와 같은 역할을 하는 일이 될 줄 믿는다. 두 번째는 그동안 필자가 연구했던 각종 선교학의 자료를 티스토리의 “선교학 강좌 ”에 올리는 일이다. 최근에는 사도 바울에 대한 자료들을 많이 올렸다. 선교의 이론을 정립해 놓은 자료들에서 사도 바울의 위치가 가장 크기 때문에 많이들 읽혀지는 것 같다. 세 번째는 오늘처럼 교회연합신문의 “선교칼럼”을 위해서 글을 쓰는 일이다. 무보수 봉사의 일이지만 나에게는 선교의 사명으로 알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 필자의 바램과 비전이 있다면 매스 미디어의 활용을 위해서 더욱 노력하고 싶다. 앞으로 “선교학 박사의 선교이야기” 코너를 통해서 세계의 선교 현장에서 복음을 증거하는 선교사들의 이야기를 나 나름대로 분석하여 독자들에게 알리고 싶다. 선교는 절대 혼자 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의 기도와 후원과 그리고 관심이 필요하다. 따라서 성경은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어라!”라고 과감히 말씀하고 있다. 또한 성지순례의 길을 소개 하고 싶다. 필자는 20여년동안 제자들과 함께 매년 적어도 1회씩 성지순례를 다녀왔다. 이는 학생들에게 살아 있는 성경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구약의 출애굽 현장을 통해서 모세의 기적을 보여 주었고, 예수님이 초림 하셔서 사역 하셨던 이스라엘의 갈릴리 호수 가에서는 산상수훈의 말씀을 가슴에 담게 만들었다. 사도 바울의 사역지였던 터키와 그리스 그리고 로마와 스페인을 통해서는 선교의 열정을 체험 하도록 만들었으며, 종교 개혁지인 독일과 스위스 그리고 북유럽을 포함한 유럽 지역을 여행하면서는 개신교회의 생성과 발전을 목도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모든 경험들이 티스토리에 ㅤㅆㅗㅌ아 놓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은 문명의 이기를 다룰 수 있도록 힘을 주는 사람이 있다. 이는 나의 막내딸 이다. 70을 먹는 사람이 첨단의 기계 속에 있는 프로그램을 다룬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여기에서 나이의 갭이 존재하는 것 같다. 비록 박사이고 아버지 이지만 막내딸에게 읍소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때 마다 아빠에게 좋은 정보를 제공해 주어 이토록 매스컴 선교를 할 수 있도록 해 준 자녀에게 감사할 뿐이다. 우리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을 증거 해야 하겠다. 복음 증거의 기회는 우리가 살아 있을 때만이 가능한 일이다. 어쩌면 내일은 없는 것이다. 하루의 일과를 어떻게 보내고 있는가? www.worldcan.co.kr(세계로선교신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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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교
    2020-07-07
  • 5·18 나도 그곳에 있었다.
    벌써 시간이 많이 흘렀다. 그러고 보니 40년이 넘었나 보다. 한번쯤 이야기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이제 하고 싶다. 오늘의 제목처럼 “5·18 나도 그곳에 있었다” 이다. 그 때에 필자는 광주 기독병원의 원무과에서 근무를 하였다. 광주 기독병원은 당시 500병상 규모의 종합병원 이었다. 그 병원에서 나에게 주어진 과업은 모든 환자들이 진료를 받거나 입원을 하기 위해 접수를 하면 처리하는 일을 맡았다. 따라서 모든 환자는 다 필자의 손을 거쳐야 한다. 5·18 사건을 우리의 역사 속으로 끌고 들어와서 광주 시민과 대한민국을 어렵게 만든 장본인은 전두환 전 대통령인 것 같다. 1980년 5월 17일 전두환은 전군 주요 지휘관 회의를 열고 계엄을 확대했다. 김대중·김영삼·김종필 등 정계를 대표하는 3김을 체포하거나 가택 연금하고 그외 정치세력을 모두 체포했다. 계엄이 확대되고 김대중 등의 정치인이 체포되자 광주에서 학생과 시민들이 대대적인 시위를 벌이며 저항했다. 광주시민들의 저항이 시작되기 전날 광주의 금동 126번지에 위치한 광주제일교회에서 지방회 주관으로 성경암송대회가 열렸다. 광주제일교회는 선교사였던 배유지 목사가 창립하였고, 이루에게 잘 알려진 이기풍 목사가 목회하였던 역사적인 교회 이다. 성경암송대회를 마치고 광주시내로 나아가는 길에 경찰들이 대열을 갖추고 행진을 하고 있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직감하는 시간이었다. 5월 18일. 그날도 여느날 처럼 병원에 출근하였다. 그런데 갑자기 시내에서 소란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였다. 멀리 보이는 세무서에서 불길이 치솟아 오르면서 하얀 연기가 하늘에 닿았다. 급기야 총소리가 들리고, 총상을 입은 환자들이 병원에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하루 이틀이 지나면서 사태는 더욱 복잡하게 얽혔다. 소총으로 무장한 젊은이들이 뚜껑 없는 차량을 통해서 병원에 환자들을 실어 나르고, 시내의 상공에는 헬리곱터 소리와 “뚜뚜뚜뚜” 하는 연발이 발사되는 총소리로 뒤범벅이 되었다. 이미 사망한 시신들이 병원의 영안실을 채우고 있었다. 병원은 총상을 입거나 다쳐서 입원한 환자들을 입원실이 모자라 수용할 수 없었다. 임시 방편으로 복도의 작은 공간이라도 비집고 간이침대를 놓고 환자들을 치료할 수 밖에 없었다. 전쟁도 이 보다는 못하리라고 생각할 만큼 처참하였다. 수술을 해야 하는 데 피가 모자랐다. 그 때에 멀리서 들려오는 확성기 소리는 헌혈에 대한 호소 였다. 헌혈자들이 병원에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대부분 학생들이 주류를 이루었다. 필자의 기억으로는 그 당시 춘태여상고 학생인 윤금희 라는 학생도 헌혈에 참여 하였다. 그러나 헌혈을 마치고 되돌아가는 차량이 공격을 당하여 다시 시신으로 병원으로 돌아 왔다. 그렇게 죽은 그녀는 지금은 망월동 5·18 기념 묘지에 안장 되었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때 광주는 사방이 봉쇄 되었다. 필자의 고향이 고흥이다. 어머님이 자녀들이 걱정이 되어서 광주로 와야 하는데 교통이 통제됨으로 화순을 넘지 못했다고 하였다. 광주는 고립되었고, 방송에서는 광주는 폭도들이 난동을 일으켜서 치안 세력과 충돌하여 몇 명이 죽었다는 뉴스를 내어 보내기 시작하였다. 심지어 야구 경기 같은 스포츠 중계를 집중적으로 방송하면서 국민의 관심을 호도하기도 하였다. 잠시 시간이 정지된 것 같았다. 무엇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알 수 없었다. 일단의 시민군들은 도청에 모여 있었고, 치안을 담당할 경찰과 군인들은 광주 외곽에 주둔하였다. 그러던 중에 마지막 진압의 시간이 왔다. 그날도 필자는 병원에서 밤 세워 일을 하고 있었다. 깊은 밤에 확성기에서 여성의 외침을 들을 수 있었다. “광주시민 여러분 지금 도청으로 나와 주십시요! 진압 부대가 처들어 와서 무고한 시민을 죽이려 합니다”라는 멘트였다. 처절한 외침 이었다. 몇 분 후에 먼 곳에서부터 개짖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 소리는 점점 가까이 들렸다. 밖에 나가서 병원의 담장을 보니 머리에 힌 댕기를 두른 군인들이 빠르게 움직여 가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진행하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 현기증이 날 정도였다. 얼마 후에 사직 공원과 도청에서 “우당탕탕” 하는 총성이 지속적으로 들리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조용해 졌다. 필자는 왜 이 글을 ㅤㅆㅓㅅ는가? 이것은 역사이기 때문이다. 총에 맞아 죽은 자도, 총상을 입고 불구의 몸이 되었던 사람도, 나의 손을 거쳐서 접수되고 퇴원되었다. “나는 그 자리에 있었다.” www.worldcan.co,kr(세계로선교신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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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교
    2020-06-12
  • 복음은 여성의 지위를 변화시킨다.
    요즈음은 남녀평등을 주장하는 용어로 성평등이 강조되고 있다. 그러나 선교사들이 한국에 와서 선교하던 추장기만 하더라도 여성의 지위는 남성보다 훨씬 뒤떨어진 위치에 있었다.사실 그때에는 여성이 자신의 이름을 갖는다는 것이 호사스러운 시기이기도 했다. 즉 여성의 호칭을 이름 대신에 ‘아무개 딸’, ‘아무개 댁’, ‘아무개 어미’, 등으로 호칭되는 남성과의 관계의 어떤 상태를 의미하는 철저한 예속 상태였다.여성들은 또한 계급의 차이에 의해서도 차별받는다.. 미 감리교의 선교사인 헐버트는 상류계층인 양반, 중인 층의 평민, 하층계급인 무당, 노예 등으로 분류하고 있다. 이들 계급의 상태에 따라 여성들은 경제력에 있어서나 은둔의 정도에 있어서 현저한 차이를 보이고 있음을 지적한다. 낮은 계급의 여성들은 생활고에 시달리고, 삶은 거칠고 또한 이름 모를 질병에 시달리고 있었다.또한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상류계급의 여성들에게는 안 주인으로서 외부세계의 활동을 배재당하여 조그마한 자유도 허용되지 않은 채 일생을 사회로부터 격리되어 살아갔다. 선교사들의 눈에 비친 한국인 여성상은 남성의 지배구조와 이념으로 억압과 소외를 당했을 뿐 아니라 같은 여성이면서도 세습적으로 내려오는 신분적 차이로 인해 또다시 경제적 사회적 불평등을 겪는 이중고를 당하고 있었다.그러나 이러한 땅에 선교사들이 복음을 들고 왔다. 그리고 여성들의 지위가 점차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여인네들은 적극적으로 기독교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집안에서의 조상 숭배 예식 등 중요한 예전에 여자들이 참석할 수 없는 반면에 교회 내의 예배에는 여자들이 참석하면 큰 환영을 받는다. 죽은 후의 천당은 현실의 힘들고 단조로운 삶에 대한 큰 위로였으며 교회와 성경공부는 여인들에게도 새롭게 공동체 의식을 심어 주었고 공동의 목적을 가지고 사회적으로 모임을 가질 수 있게 했다. 동시에 남자들과도 공동으로 일을 할 수 있게 하는 무엇인가를 갖게 했다.여인들은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창조의 법칙을 깨닫기 시작하였다. 성경 속에서 예수님의 친구가 되고 돕는 자로 등장한 여인들을 보았고, 빌립보 성의 루디아 같은 여자는 교회를 창설하고 인도해 가는데 큰 공헌을 했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이러한 말씀들은 지금까지 여자들에게 허락되었던 어떤 역할보다도 더 긍정적인 것으로서 기독교가 전래됨으로써 여인들은 자신들의 이미지와 그들이 무엇을 할 수 있으며 무슨 가치를 지녔는지를 파악하고 새롭게 가치관을 수정했다. 문자 그대로 수천에 달하는 한국 여인들은 교회를 통해서 새로운 이름을 얻었고 새로운 자아를 정립하며 새 희망을 얻었다. 이들은 변화된 새 자아의 모습으로 가정은 바뀌었고, 그들의 동네와 사회를 바꾸는 교회의 공동체가 되었다. 그들이 받은 복음의 역동성을 숨기지 아니했고, 빛으로 드러나 어둠을 밝혀 주었다.복음이 사회 속에 뿌리를 내리면 환경이 변화되기 시작한다. 사회적으로는 1890년대 중반 이후 우리 사회에서는 한민족의 절반이 되는 여성을 계몽시켜야만 자주독립이 성취된다는 주장이 높아지고 있었다. 이에 선교사들의 여학교 사업은 이 같은 한민족의 개화 열망의 돛을 달고 더욱 발전 확대될 수 있었다. 한국의 전통적 문화와 사회 구조론을 존중하면서 복음을 전파하여야 한다는 선교정책은 한국인으로 하여금 기독교에 대하여 친근감을 갖게 했다. 언더우드 부인도 한국 여성 선교의 목표는 ““소용 있는 실제적인 기독교 영성” 이 되게 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아울러 선교사들은 한국사회에 나타나는 가장 비합리적인 것만을 개혁하는 정도였으므로 여성 개종에 큰 저항은 없었다. 그들이 내세운 개혁되어야 할 생활 습관의 예로는 조혼, 축첩, 여아 매매 등이었다.. 이러한 선교사들의 공헌 덕택에 억압 상태에 놓였던 한국 여성들에게 기독교는 남성과 여성의 대등한 관계에서 대등한 위치를 회복시키고 신분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우월감과 비천함을 해소시키는 빛으로 다가왔다.선교사님들이 전해준 예수 복음의 결과는 오늘날 어떠한 변화를 가져왔는가? 필자가 보기에는 동양의 어느 나라보다도 여권 신장과 여성의 지위가 향상되었다고 말하고 싶다. 즉 신분적으로,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심지어 종교적으로도 여성은 이제 남성과 동등한 위치에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이 한반도에서 진행되었던 복음의 수용 결과가 아니겠는가.
    • 칼럼
    • 선교
    2020-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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