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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타산지석의 북미회담
    타산지석의 어원적 의미 ‘다른 산에서 난 나쁜 돌도 자기의 구슬을 가는데 소용이 된다는 뜻으로, 다른 사람의 하찮은 언행일지라도 자기의 지덕을 연마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말’이다. 필자가 이런 거창한 고사성어를 들고 나온 데는 북미회담이 주는 큰 뜻을 기독교계가 깨달아야 한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사실 기독교의 최고의 덕목은 사랑이다. 특히 고린도전서 13장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들이 가져야 할 최고의 가치를 말씀하셨다. 주님은 우리에게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라고 하셨다. 이러한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왜 교계는 그토록 시끄러운가? 나누어지고, 싸우고, 서로 시기하고, 심지어 철천지원수처럼 행동하기도 한다. 그뿐인가? 교회도 속내를 들여다보면 각종 파벌로 말미암아 상대방을 저주하고 떠나는 경우도 비일비재 하다. 이는 참된 리더십의 부재라고 할 수도 있겠다. 정말 모범을 보여주어야 할 기독교의 어른들이 기득권에 연연하여 이런 비참한 결과를 만들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사랑으로 가득차야 할 기독교에게 오히려 본을 보여주는 사건이 최근에 있다. 이는 북미회담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미국과 북한은 전쟁으로 말미암아 70여년동안을 적대적 관계 였다. 그러나 이러한 관계를 해소해 보고자 6월12일 싱가폴에서 양국의 정상들이 만났다.필자는 트럼프와 김정은 두 지도자가 손을 맞잡는 장면을 보기 위해 TV 앞에서 기다렸다. 이러한 마음은 남과 북 그리고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기대한 것일 것이다. 언론에 소개된 내용은 대전시민과 충남도민의 눈과 귀도 하루종일 싱가포르 센토사섬의 카펠라 호텔로 향했다. 시민들은 오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회담이 한반도 평화시대를 여는 첫걸음이 되길 간절히 바랐다. 시민들은 두 정상이 첫 악수를 교환하자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대전역에서 만난 김원숙(51)씨는 “북미정상회담이 열리는 걸 보면서도 믿기지 않는다. 분단된 60여년 동안 쌓인 문제를 푸는 회담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시민들은 이어 두 정상이 짧게 환담하는 과정에서 김 위원장이 “발목잡은 과거가 있어 여기까지 오는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고 말하자 “생각보다 솔직하고 거침없다. 트럼프와 만만치 않은 협상을 할것 같다”고 분석했다.어렵게 추진된 북미 회담을 마친 두 정상의 표정은 어둡지 않았다. 그동안 70여년 동안을 적대 관계 속에서 서로를 용납하지 못하고 싸웠던 얼굴이 아닌 듯하다. 그리고 평화를 위한 선언문을 공동으로 발표 하였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김정은을 다음과 같이 평가하였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12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 대해 “협상할 가치가 있는 분”이라고 높게 평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에 대해 가장 놀랐던 점으로 “좋은 성격을 갖고 계시고 똑똑한 분이라는 점이 그랬다”라고 답했다. 그는 김 위원장에 대한 인상을 묻는 질문에 “재능이 많은 분이고 조국인 북한을 사랑하는 분이라는 걸 알게 됐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의 다음 만남시기를 묻는 질문에 “저희는 여러번 만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 합의문에 서명직후 기자들이 ‘백악관에 초대하냐’는 질문에 “물론이다(absoulutely)”답했다. 회담을 지켜본 문 대통령은 “이번 합의를 바탕으로 우리는 새로운 길을 갈 것”이라며 “전쟁과 갈등의 어두운 시간을 뒤로하고 평화와 협력의 새 역사를 써 갈 것이다. 그 길에 북한과 동행할 것”이라고 밝혔다.이러한 일련의 회담을 보면서 우리 기독교계의 현실을 생각하게 된다. 기독교 연합기관인 한기총의 분열과 반목, 총신대학교의 기득권 싸움, 세습으로 말미암아 지탄을 받는 어느 대형 교회의 문제들을 보면서 가슴이 미어지는 듯하다. 우리는 이번에 싱가폴에서 진행된 북미 대화의 대화와 용기 그리고 화해의 모습들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하겠다. www.worldcan.co.kr(세계로선교신학원)
    • 칼럼
    • 선교
    2018-06-21
  • 한반도의 봄을 통한 선교의 길
    최근의 뉴스에 근거한 남북 관계만 보면 한반도에도 봄이 오는 것 같다. 작년까지만 해도 극한 대립의 구도에서 해빙의 무드로 전환된 속도가 가이 급진적이다. 평창 동계 올림픽 이후로 남과 북의 지도자들이 판문점을 통해서 대결에서 화해 무드의 환경을 조성하였고, 최근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의 6월12일 싱가폴 회담의 취소를 발표한 이후에도 양국의 두정상은 한반도의 봄을 이어가자고 결의하였다. 이러한 남과 북의 화해는 필자의 입장에서는 무척 잘된 일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남과 북의 화해의 장을 열었던 판문점은 이제 세계 뉴스의 현장이 되었다. 판문점이 어떤 곳인가? 이는 전쟁과 갈등의 상징이었던 곳이다. 어쩌면 세계의 유일한 분단국가의 상징적인 장소에서 통일의 봄을 기대하게 만든 장소가 되었다. 필자가 이 글을 기술하고 있는 순간에 국내의 포털에 “남북정상회담 이어 북미 접촉…대화의 장으로 뜨는 판문점”라는 기사가 올려져 있다. 한반도 대화 분위기와 맞물려 한때 총성이 오갔던 판문점이 ‘대화의 장’으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해 11월에만 해도 북한군 병사 귀순 사건이 있었던 곳이다. 필자도 TV를 통해서 총탄을 피해서 도망해 오는 병사를 보면서 용케도 살았구나 하는 마음을 갖기도 했다. 이제 판문점은 대결과 총탄이 난무한 장소가 아니다. 한 달 사이 두 차례 열린 남북 정상회담에 이어 북미 정상회담을 위한 실무 접촉도 판문점에서 진행되었다. 4·27 남북 정상회담이 판문점 우리 측 ‘평화의집’에서 열린 데 이어 깜짝 개최된 5·26 남북 정상회담 장소도 판문점 북측 ‘통일각’이었다.이제 판문점은 남북한 지도자가 만나는 장소를 넘어서 북미의 미팅 장소가 되었다. 사실 판문점은 외부로부터의 접근이 차단되는 특성상 경호와 보안에 용이하다는 점이다. 동국대 북한학과 김용현 교수는 “북미 정상회담의 장소로도 거론됐던 판문점에서 (북미가) 실무 접촉을 통해서 문제를 풀어간다는 것은 대결이 아닌 평화, 화해를 한다는 차원에서의 의미도 있기 때문에…”라고 언급하고 있다. 판문점에서의 대화는 이제 국외인 싱가폴로 옮겨 갈 것 같다. 큰 변수가 없는 한 미국의 트럼프와 북한의 김정은이 핵 문제를 놓고 회담을 이어 갈 것으로 보인다. 싱가폴은 조그만 도시국가 이지만 세계 평화를 위해서 준비된 장소가 되었다. 몇 년 전에 제자들과 함께 그곳을 방문 하면서 느낀 것은 잘 정돈되고, 다원화 되고, 수준 높은 곳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특히 필자의 유학 시절에 싱가폴에서 유학 온 학생들의 명석함에 놀라기도 하였다. 결국 북한과 미국의 최고 지도자의 만남은 한반도의 봄을 노래하기에 충분하다. 남북의 화해 무드는 경제 심리에도 변화를 가져온 듯하다. 소비심리 6개월 만에 반등하고 있다고 한다. 이는 남북 화해 분위기 ‘가계 심리 개선에 영향’으로 평가한다. 한국은행이 29일 발표한 ‘2018년 5월 소비자동향조사 결과’를 보면 이달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107.9로 한 달 전보다 0.8포인트 상승했다. 이로써 소비자심리지수는 작년 12월〜올해 4월까지 이어지던 하락 행진에 마침표를 찍은 것이다. 한은 관계자는 “남북 정상회담의 성공적인 개최, 북미 정상회담 개최 합의 등으로 가계의 경기 기대감이 개선됐다”며 “미·중 무역전쟁을 둘러싸고 양측 정상의 우호적 발언이 이어진 점, 4월에 비해 평균 환율과 주가가 상승한 점도 소비자심리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남북의 화해는 사회의 각 분야에 활력을 불어 넣고 있는 듯한 분위기다. 특히 북쪽이 열리면 부산에서 시작한 관광열차는 강릉과 원산을 넘어서 유라시아를 통해 유럽에 이르는 길을 갈수 있다는 희망이 마음을 들뜨게 하고 있다. 이러한 환상은 필자의 마음뿐만이 아닐 것이다. 이제 한반도에 모처럼 불어오는 봄바람을 통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겠는가? 비로 선교의 길을 개척해야 하겠다. 초대교회 시절에 세계적 강국이었던 로마는 “모든 길은 로마로...”라는 슬로건을 우리에게 주었다. 사실 선교사 바울은 로마가 닦아 놓은 길을 따라 아세아와 유럽으로 종횡하면서 복음을 증거하였다. 우리는 바울이 가르쳐준 선교전략을 활용해야 하겠다. www.worldcan.co.kr(세계로선교신학원)
    • 칼럼
    • 선교
    2018-06-01
  • 선교를 통해 살만한 세상을 만들자
    세속주의를 비판하고 있는 교회들 일부에서는 세상에서 찾는 즐거움들이 하나님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상이 극대화 될 때에는 세상에서의 삶 자체를 부인하는 결과를 가져 올 수 있다. 그러나 어느 일간지의 코너에는 [아직 살만한 세상] 이라는 코너 가 있다. 즉 세상에는 나쁜 소식만 있는 것이 아니라 좋은 소식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최근 그 코너에 실린 ‘헬피엔딩’ 없다… 투스카니 의인의 즐거운 결말이라는 내용은 우리의 마음을 훈훈하게 만든다. 그 기사를 잠시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투스카니 의인 한영탁(46)씨는 고속도로에서 의식을 잃은 운전자 A씨를 구조한 자신의 선행을 “누구나 했을 행동”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아무나 할 수 있는 행동이 아니었다. 제한속도 110㎞인 이 고속도로에는 사고 당시 비가 내리고 있었다. 고속도로는 언제나 그렇듯 연쇄추돌의 위험이 도사리는 곳이다. 한씨에게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 주변을 지나던 운전자들은 한씨를 보고 감속해 차량을 세웠다. 하나둘 차에서 내려 크고 작은 일손을 보탰다. 유리를 깰 때 사용됐던 망치는 한씨를 돕던 트럭운전사의 것이다. 이 모든 선행 하나하나를 모은 힘은 결국 한씨에게서 나왔다.한씨는 지난 12일 제2서해안고속도로 하행선에서 중앙분리대를 들이받으며 전진하는 A씨의 코란도 차량을 발견, 앞을 가로막고 접촉사고를 내 세웠다. 이로 인해 한씨의 차량 뒤쪽 범퍼와 비상 방향등이 깨졌다. 차체에 작은 흠집 하나만 나도 시비가 붙는 교통사고를 고의적으로 낸 한씨의 기지는 용기 없이 발휘될 수 없는 것이었다.그렇게 선량하고 용감하게 A씨를 구하고 다중추돌 참사를 막았다. 우리 사회에서 학습된 무관심과 이기심은 ‘헬피엔딩(헬조선식 결말)’이라는 조어를 만들었지만 ‘투스카니 의인’의 결말은 그야말로 해피엔딩이 됐다. 한씨는 지금 국민적 찬사와 기업의 후원을 한몸에 받고 있다.한씨가 탑승했던 투스카니 제조사 현대차는 당초 계획했던 수리비 지원을 확대했다. “차량이 크게 망가지지 않았다”며 수리비 지원을 고사한 한씨의 선량한 마음에 감동해 올해 출시된 신형 벨로스터 차량을 선물하기로 했다.LG복지재단은 한씨를 ‘LG 의인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이 상은 “국가와 사회정의를 위해 희생한 의인에게 보답해야 한다”라는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뜻을 반영해 2015년 제정된 민간 표창이다. 지금까지 72명이 이 상을 받았다.한평생 평범하게 살아왔을 한씨에게 이 모든 관심과 후원은 어쩌면 낯선 경험일지도 모른다. 한씨는 15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 가진 전화 인터뷰에서 “누구나 했을 당연한 행동일 뿐인데 너무 관심을 가져주니 고맙기도 하지만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한씨는 세 자녀를 둔 크레인 기사다.“오늘 필자가 이러한 기사를 들어서 글을 엮고 있는 데는 이유가 있다. 몇 년 전의 일이었다. 부천의 세종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직장인 한세대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고속도로에서 타고 갔던 자동차가 문제를 일으켰다. 급기야 엔진에서 연기가 나오면서 고속도로 옆길에 차를 주차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셀폰의 밧데리가 다 되어 보험사를 부를 수 없게 되었다. 쌩쌩 달리는 고속도로 한편에서 도와줄 사람을 기대하면서 옷을 벗어 흔들어 위기를 알렸다. 30여분 동안을 이렇게 고생하면서 구조를 요청했지만 도움을 줄 차량을 멈춤게 할 수 없었다. 그 때에 수 없이 지나가는 차량들 속에는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도 계실 텐데 ...”라고 생각했다. 결국 반대편으로 지나던 도로공사 고속도로 순찰대의 차량이 필자의 흔들어 대는 옷을 발견하고 먼 길을 돌아서 필자 앞에 나타나 전화 통화를 도와주어 보험사를 연결하여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오늘 “투스카니 의인의 즐거운 결말”이라는 기사를 보면서 그 때의 일을 생각했다. 이런 일을 하신분이 기독교인 이었으면 참 좋겠다. 왜냐 하면 요즈음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고 있는 교회의 모습들을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어서 선교의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선교는 말이 아니라 행동임을 강조하고자 한다.www.worldcan.co.kr(세계로선교신학원)
    • 칼럼
    • 선교
    2018-05-18
  • 기부 천사를 모십니다
    “기부 천사를 모십니다”라는 주제는 필자가 시도하는 캠페인의 주제어 이다. 말이 주제어 이지 실제적으로는 돈 좀 달라는 이야기 이다. 왜냐 하면 다문화 사역을 하는데 무척 힘이 들기 때문이다. 필자는 지금부터 12년 전인 2006년에 캐나다 에드먼튼에서 열렸던 국제 디아스포라 학술 포럼에 “한인 디아스포라의 현상과 선교전략”이라는 주제로 발표를 하였다. 이 대회는 세계에서 모여든 80여명의 학자들이 참석하면서 국제적 이슈가 되고 있는 디아스포라 문제를 신학과 선교적인 관점에서 다룬 시간이었다. 학술 대회를 마치고 귀국하는 날 하루 전에 셀폰을 켜 놓고 잠이 들었다. 나는 평상시 아침 6시에는 기상을 위해서 알람을 고정시켜 놓은 습관이 있다. 그런데 그곳 시간으로 새벽 3시가 되자 알람이 시끄럽게 울리기 시작하였다. 어쩌면 기계는 너무 정확하게 한국시간으로 6시에 알람이 울렸던 것이다. 그러나 에드먼튼의 새벽은 너무나 조용한 시간이었다. 침대에서 기상한 필자는 많은 생각들 속에서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하였다. 내용은 “하나님 왜 나에게 한인 디아스포라를 보여주셨습니까”였다. 왜냐 하면 한인 디아스포라들은 이미 문화적응이 끝난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들에게 시대적인 사명을 부여한 선교에의 도전을 드릴 수만 있다면, 그래서 그들을 통해서 자신의 위치 속에서 선교사역을 감당해 준다면 세계선교의 큰 흐름을 바꿀 수 있다는 계산이 머릿속에 스쳤기 때문이었다. 결국 가슴속에 끊어 오르는 한인디아스포라를 통한 선교에의 비젼으로 기도의 목소리는 점점 높아가게 되었다. 그러나 필자의 침대 옆에는 외국인 교수님께서 곤하게 잠을 자고 있었다. 잘못하면 안면방해를 하지 않을까 우려되는 상황이 되었다. 호텔 룸을 벗어나 밖으로 나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러나 11월달의 에드먼튼은 2m 정도의 엄청난 눈으로 인해서 야외에서의 기도를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결국 밖에서의 기도를 포기하고 룸으로 리턴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때에 하나님은 나에게 지혜를 주셨다. 룸 속의 샤워실을 이용하라는 것이었다. 왜냐 하면 약간의 물을 틀어 놓음으로서 기도 소리를 희석 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샤워실을 기도굴로 여기고 기도를 시작하였다. 하나님의 뜻을 묻는 시간은 집중 되었고, 디아스포라를 통한 선교는 더욱 구체화 되었다. 그곳으로 새벽 6시가 되지 함께 잠자리에 들었던 외국인 교수가 샤워실 문을 두드렸다. 귀국 하는 동안에도 디아스포라 선교로 가득 챤 시간이었다. 어느날 강의 시간에 필자가 에드먼튼에서 겪은 내용을 소개하자 어느 학생이 “교수님 우리가 그 일을 하기 위해서 모임을 갖는 것이 좋겠습니다”라고 제안 하였다. 이렇게 하여 만들어 진 것이 세계다문화진흥원 이라는 기관이다. 이후 2009년에 경기도에서 NGO 기관으로 허락을 받아서 지금까지 많은 일들을 감당해 오고 있다. 그동안 1,300여명에게 다문화 이해를 통한 사회통합의 교육을 실시하였다. 그리고 결혼 이주 다문화인들(베트남 결혼 이주민)의 직업 교육을 통해서 직업전선에서 성공적인 가정을 꾸릴 수 있도록 교육 하였다. 그 뿐만이 아니라 세계로선교신학원을 설립하여 전문인 선교사를 육성해 가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최근 이 일을 혼자 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왜냐하면 은퇴라는 무서운 벽을 넘었기 때문이다. 결국 “세계다문화진흥원은 기부 천사를 통해 함께 일하고 싶습니다”라고 기독교 포털과 회원들에게 광고를 하였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기부처는 세계다문화진흥원(행정안전부 기부금 처리기관)이다. 기부 구좌는 국민 264401-04-211876 (세계다문화진흥원)이며, 기부 금액은 1,000원 이상 자유(일시 및 매월 정기 기부)롭다. 기부자에게는 년말 정산을 통해 소득세 감면의 혜택을 받으며 세계다문화진흥원 및 자매 기관(세계로원격평생교육원, 세계로선교신학원)의 교육 프로그램 활인 혜택이 주어진다. 그리고 다움 까페 “세계다문화진흥원”을 통해서 기부금과 사용처가 공개된다. 그동안 필자는 20여년을 이 지면을 통해, 독자들께서 사랑해 주시는지 아니면 배척 받는지도 모른 채 “선교 칼럼”을 써왔다. 그러나 필자의 간절한 소망은 오늘 이 글은 여러분의 사랑을 받고 싶다. 왜나 하면 선교는 혼자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www.worldcan.co.kr(세계로선교신학원)
    • 칼럼
    • 선교
    2018-05-11
  • 하나님과 함께 하는 출근길
    필자의 제자 가운데 한 분이 김민정 박사다. 박사학위를 끝내고 멀리 미국에 가서 공부를 보충하여 지금은 성주그룹의 사목으로 사역을 하면서 저술과 다양한 영적 훈련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김 박사님의 저서가 쌓여 가는 것을 보면서 선생으로서의 자부심이 대단할 때가 많다. 오늘은 김 박사의 사역 가운데 하나인 “하나님과 함께 하는 출근길”이라는 프로그램을 소개 하고자 한다. 이는 출근길에 하나님을 만나고 기도할 수 있도록 돕는 글을 페이스북을 통해서 올리는 일이다. 그 분의 의도는 수 많은 사람들이 하루를 희망차게 시작하기 위해서 달려가는 출근길에 하나님을 만나는 기회를 주기 위함일 것으로 판단된다. 4월11일자로 소개된 “선하신 하나님 아버지”라는 제목의 기도문은 다음과 같다. “선하신 하나님 아버지, 새로운 아침과 좋은 하나님과 하루를 시작하게 하신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 이 아침에도 주님으로 인해 더 상쾌하게 하시고, 어제의 모든 지친 마음과 몸이 완전히 회복되는 하루 되게 하소서. 오늘은 모든 무거운 짐을 벗어버린 것처럼 새로운 마음으로 출발하는 하루 되게 하소서. 하나님께 의지함으로 나의 하루가 가벼워지게 하소서. 오늘은 모든 두려움을 떨쳐버리고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믿음으로 출발합니다. 주님 안에서 모든 것이 예스임을 고백합니다. 내가 주님 안에 있기 원합니다. 그리고 주님이 내 안에 계심을 믿습니다. 이 믿음으로 오늘도 주님과 동행합니다. 나의 가는 길을 선하게 인도하시는 아버지께서 나의 발걸음을 인도하소서. 때로 내가 잘못된 길을 선택한다 할지라도 그것은 악의로 한 것이 아니 실수임을 고백합니다. 나의 실수를 선으로 인도하실 주님을 믿습니다. 오늘 나의 선택 가운데 하나님 선하게 임하여 주소서. 내가 어리석어 주님의 뜻을 잘못 분별할 때에 주님 도와주소서. 내가 가는 길의 끝에는 언제나 주님의 선하심이 있음을 믿습니다. 이 믿음이 고난의 때에 나를 버티하게 하셨습니다. 오늘 나의 하루가 고난의 하루여도, 행복의 하루여도 언제나 그 끝에는 하나님의 선하심이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가볍게 하루를 시작합니다. 결국 나를 인도하실 주님을 사랑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필자가 젊은 시절 어느날 미국에서의 기도 운동에 대해서 들은 기억이 있다. 이는 “7-Up” 기도라는 것이다. 언든 듣기에는 무슨 사이다 이름 같은 용어 같기도 하다. 그러나 이 용어의 의미는 7분 동안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다. 즉 삶 속에서 쫓기는 시간에 하나님을 만날 것을 요청하는 사역의 일환이다.필자는 김민정 박사의 사역을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시기를 기도한다. 김 박사가 페이스북 페이지가 함께한 사람들이 늘어났으면 한다. 아무리 바쁜 생활 속에서도 결코 주님의 음성을 외면하는 성도들이 없기를 바란다. 세속적인 생각들과 아귀타툼의 현장들이 주님의 평안과 은혜의 찬송이 넘치기를 기도해 본다. 김 박사의 “하나님과 함께 하는 출근길글”을 통해서 삶에 찌들어 희망을 잃은 많은 사람들이 소망의 주님을 만났으면 한다. 이제 출근길은 두려움과 무한 경쟁의 약육강식의 세상이 아닌 영적인 생활에 활기를 주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우리는 직장과 가정 그리고 인간관계들 속에서 얼마나 지치고 힘드는 일이 많은가. 엉크러진 인간관계들이 풀리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특히 사랑을 잃어버리고 허둥대는 가정들이 회복되었으면 한다.www.worldcan.co.kr(세계로선교신학원)
    • 칼럼
    • 선교
    2018-04-26
  • 원심력 선교를 통한 한국교회의 해외 역할
    필자는 오늘 원심력 선교 구조가 가지고 있는 특성을 통해서 한국의 선교를 이야기 하고자 한다. 원심력의 선교는 예수님의 선교를 위한 지상명령(마 28:18-20)과 누가의 증언을 통해본 선교의 역사(사도행전)를 연구해 보면 알 수 있다. 즉 예루살렘과 유다와 사마리아 그리고 땅 끝으로 확산되는 복음의 확산이다.원심력 선교가 갖는 특성은 무엇인가? 이는 지리적 확산이다. 필자는 선교는 “지리적 정치적 문화적 경계를 넘어서 하나님을 알지 못한 사람들에게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여 제자화 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즉 선교가 갖고 있는 요소는 지리적 경계를 넘어 가는 것이다.초대교회의 모든 사도들이 원심력적 선교사역을 감당하였다. 그 중에서도 특히 바울에 의한 지리적 확산은 원심력 선교의 대표라고 볼 수 있다. 사도 바울은 유대 디아스포라 였다.그의 출생지는 작은 성읍이 아닌 길리기아 다소에서 베냐민 지파의 가정에서 태어났다(빌 3:5, 행 21:39; 22:3). 유대인 디아스포라인 바울은 헬라문화 속에 위치한 이곳 다소에서 자신들의 신앙과 혈통 밖에 있는 사람들을 이방인이라고 부르면서 그들과 교제하지 않았다. 제롬은 그 양친이 처음에 기쉬아리(Gischala)라고 불리는 갈릴리의 한 마을에서 이주해 왔으며 기원전 제1세기에 로마가 팔레스타인을 점령하고 지배할 때에 이곳 다소로 피난을 왔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따라서 선교사 바울은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유대땅을 벗어나지 못했던 다른 사도들과는 달리 타문화의 경험은 태어나면서부터 가졌다고 볼 수 있다.바울은 비록 이방 땅인 다소에서 출생하고 회당교육을 통해서 헬라어철학, 수사학을 공부 했지만 교육은 예루살렘의 가말리엘 문하에서 받았다. 물론 어떤 경로에 의해서 예루살렘에서 거주하게 되었는지는 학자들에 의해서 논쟁이 되고 있다. 김세윤은 R.Bultmann 같은 학자는 갈라디아서 1:22절을 근거로 바울이 가말리엘 문하생으로 교육을 받았다는 기사의 신빙성을 부인하지만,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이 성(예루살렘)에서 자라 가말리엘 문하에서 우리 조상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고...(행 22:3절)”을 근거로 하여 예루살렘에서 가말리엘 문하생으로 교육 받았음을 논증해 주고 있다. 여기에서 바울은 타문화권인 다소에서의 출생과 구심력의 예루살렘에서 가말리엘 문하 속에서의 종교 교육 그리고 원심력 구조 속에서 세 차례의 선교 사역을 감당하였다. 바울의 1차 선교 여행의 지리적 특징은 오늘날 터키 땅인 소아시아 지역이었다. 바울은 수리아 안디옥에 돌아와서 그들은 사역 보고를 하면서 말하기를 “...이방인에게 믿음의 문을 여신 것을 고하고...(행 14:27)”라고 사역을 보고하고 있다. 이 말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고 볼 수 있다. 첫째는 복음이 이미 이방인에게 들어갔음을 말해준다. 둘째는 유대인과 이방인의 간격을 헐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2차 선교여행의 지리적 특성은 유럽에의 확산이다. 아시아 땅인 드로아에서 환상사건을 통해서 유럽으로 넘어간 복음은 다신교의 소굴인 아덴과 고린도에서의 생명의 진리인 복음을 확산시켰다. 3차 선교 여행은 두란노 서원에서의 제자화 사역에 많은 시간을 가장 길게 보내게 되었다. 이후 죄인의 몸으로 로마를 가게 된다. 이는 바울의 생각으로는 로마를 통해서 복음의 지리적 확산이 세계화 될 것이라는 전략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추정된다. 원심력 선교는 초대교회 이후에 지리적 확산이 어떻게 이루어지는 가를 알 수 있다. 김은수 교수는 원심력의 구조를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다. 즉 로마 제국(주후 30~500), 이후에는 유럽 땅(500~ 1200년)을 그리고 가톨릭에 의한 남미(1200~1700년)와 청교도에 의한 미국 땅(17~18세기)으로의 지리적 확산은 선교가 시대를 달리하면서 어떻게 지리적 경계를 넘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원심력의 선교에 의해서 19세기중엽에 한국에 도착한 선교는 오늘도 한국 선교사들에 의해서 지구촌에 3만명이 넘는 선교사들을 이방 땅에 파송하고 있다. 참으로 행복한 민족이 아닐 수 없다. 이에 대해서 우리는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원심력의 구조를 가진 선교는 항상 역동성을 일으키고 있다. 역동성이 갖는 힘은 사단의 세력을 십자가의 능력으로 무력화 시키고 변화를 가져오게 한다. 우리 모두는 주님이 오실 때까지 원심력적 선교를 감당해야 하겠다. www.worldcan.co.kr(세계로선교신학원)
    • 칼럼
    • 선교
    2018-04-11
  • 신 한류와 선교환경
    21세기 지구촌 상황 안에는 극단적 문명의 충돌이 상존한다. 특히 선교사 타이틀로서는 이슬람교 지역에서는 거주하기가 불가능하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 하는 삶을 사는 선교의 전략은 생활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나타내는 길 밖에 없다. 신 한류와 선교 환경을 이야기 하면서 존재 선교의 무기는 한류가 가진 장점을 활용하는 길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는 것이 요리이다. 인간은 먹지 않고는 살 수 없다. 따라서 김치, 불고기, 떡볶이 같은 한국 요리를 가지고 접촉점을 삼는 계기를 마련해야 하겠다. 필자의 제자 가운데 서울의 이태원 골목에서 무슬림들을 위한 사역을 하고 있는 이가 있다. 가끔 그곳을 방문할 때면, 다양한 음식을 마련해 놓고 한국 문화 체험을 유도하면서 선교하는 모습을 본다. 참으로 좋은 선교전략이라고 생각 된다신 한류 속에서의 선교전략 가운데 하나는 한국어의 활용이다. 한국어라는 우리문화유산에는 생활양식, 전통문화, 대중문화, 역사 등의 다양한 요소들이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한국어는 다언어주의의 관점에서 존재하는 모든 언어와 동등하게 존귀한 가치를 지니는 인류의 무형 문화 유산이다. 김세진은 CIS지역 국가들 중에서도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은 한국의 영상물에 대해서 관심이 높은 편이라고 하였다. 특히 2000년도 이후 그루지아와 우크라이나 등에서 국민들의 민주화열망과 함께 키이블 TV와 위성방송 같은 방송 시장의 확대와 함께 한국드라마의 인기과 한국어 및 한국문화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고 있다고 하였다. 해외의 한국어 학습자들을 크게 두가지 관점에서 구분하여 볼 수 있다. 첫째는 실용적, 실리적 목적으로 공부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을 우리는 실재적 학습자라고도 할 수 있으며 학습 관심도는 매우 높다. 둘째는 한국문화에 대한 호감으로 인한 학습자이다. 이들을 잠재적 학습자라고 표현해 볼 수 있다.잠재적 학습자들의 특성은 한류 콘텐츠에 호감을 갖는다는 것이다. 즉 TV 드리마, K-Pop, 게임, 에니메이션 등이다. 특정한 국가의 문화에 익숙한 수용자들은 해당 국가에 대한 친밀감을 갖게 된다,. 아시아 국가들은 한류라는 문화적 흐름을 통해서 한국에 대한 국가적 이미지를 제고시켰으며, 경제적으로는 한국에 대한 외국 관광객 유치, 한국 상품에 대한 수출 증대를 통해서 문화 산업이 지닌 경제적 효과를 증대되고 있음을 증명해 주고 있다. 오문경은 한국어의 국외 보급에 있어서 “한국어 국외 보급과 연계 할 수 있는 ‘타 산업’과의 연계를 통해서 한국어의 국외 보급의 생태계를 확장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라고 정책 기조의 전환을 주장하고 있다. 이는 매우 적절한 지적이다. 여기에서 ‘타 산업’이라는 부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를 선교에 적용해 보면 사역자들의 선교를 위한 도구로 자리매김 할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오게 된다.한국어를 통한 한류의 확장은 구심력의 유학생들을 한국에 불러 올 수 있다. 즉 잠재적 한국에 학습자들을 계발하고, 교육하며, 훈련하여 국내의 대학 현장에 유입시킴으로서 국내 선교 현장을 확충 시킬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가 있다. 국내의 유학을 통해서 선교사역자로 훈련된 유학생을 자국에 귀국 시켜 사역자로 활용함으로서 원심력의 선교를 달성하수 있게 될 것이다. 한국어의 선교적 활용을 위해서는 먼저 한국어교원자격을 가진 선교사를 양성해야 한다. 한국어교원양성 기관은 국립국어원이다. 이 기관은 2급과 3급 자격과정의 교육을 주관하고 있다. 특히 3급 과정은 120시간의 강의와 실습을 통한 교육을 실시한다. 참고로 필자의 사역기관인 세계로원격평생교육원 에서는 3급과정의 교원 수료증을 수여하고 있다. 요즈음 이 기관에 많은 문의들이 오고 있다. 목회를 마무리할 즈음에 자신이 가진 삶의 자원을 선교지에서 보내면서 하나님 나라의 상급을 기대하는 목사님들과 선교를 준비하는 예비 선교사 그리고 국내의 다문화 사역을 위한 분들이 한국어를 가르치기 위한 준비를 하는 듯하다. 결국 한국어는 선교사들을 위한 준비된 도구임을 알 수 있다. 우리민족의 고유 언어를 쓰신 하나님을 찬양한다. www.worldcan.co.kr(세계로선교신학원)
    • 칼럼
    • 선교
    2018-03-30
  • 선교 리더십의 필요성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른 리더십 이다. 리더십이 잘 발휘되는 사회는 다방면에서 발전을 거듭한다. 그러나 리더십이 확립되지 못한 사회이든지, 잘못된 리더십 혹은 사회의 지탄이 되는 리더가 자리하고 있는 곳에서는 공동체의 파괴는 물론 나쁜 이미지로 말미암아 불행한 결과들을 가져 온다. 최근 성 폭행 문제로 낙마한 충남 지사를 지낸 안 지사의 경우는 양반 고을인 충청도의 얼굴에 먹칠을 하기도 했다. 리더십의 문제는 비단 정치계 뿐만이 아니다. 사실 영적 세계를 책임지고 있는 교회도 바른 리더십을 필요로 한다. 어떤 사역은 그 리더십에 따라 흥하기도 하고 쇠하기도 한다. 교회는 효율적이고 영적인 지도력을 재생산하는 만큼 성경적인 성장을 기대할 수 있다. 이처럼 리더십을 개발시키지 못한다면 침체의 근원이 된다. 따라서 교회성장에서 가장 중요한 요인인 그 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목사의 리더십은 그 교회성장과 비례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교회의 적재적소에서도 리더십을 필요로 한다. 학자에 따라서는 리더십을 정의할 때 “영향”보다는 “관계”를 더 강조하기도 한다. 리차드 허치슨에 의하면 리더십은 책임을 맡은 자와 자발적으로 따르는 자들 사이에 일어나는 관계의 기능(a function of relationship)이라 했다. 즉 리더십은 지도자(leader)와 추종자들(followers)이 어떤 구체적인 상황(situation)에서 가지게 되는 역동적인 관계이다. 그러므로 리더십의 기본 요소인 지도자, 추종자, 그리고 상황 이 세 가지가 잘 조화되어야 영향력이 나온다. 기독교적 관점에서 볼 때 리더십의 기본 요소는 기독교적 혹은 성경적인 영향력을 끼치는 교회라는 상황에서 중점적으로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 필요한 리더십은 어떤 것일까? 이는 봉사의 리더십이라고 볼 수 있다. 봉사적 리더십은 기독교에서 강조하는 섬기는 리더십 혹은 종의 리더십 (servant leadership) 이다. 봉사적 리더십은 1970년 그린리프(Greenleaf)의 <지도자로서의 하인> (The Servant as Leader> 이라는 책에서부터 그 개념이 시작되었다. 그 개념은 하인과 함께 가던 여행 그룹이 하인이 없음으로써 여행이 불가능해지는 체험을 통해서 하인이 바로 여행단의 진정한 지도자임을 발견하게 된다는 헤르만 헤세의 <동방기행>이라는 소설에서 비롯되었다. 여기서 그린리프는 진정한 지도자는 남을 돕고 섬기는 자이며, 남을 돕고자하는 욕구가 바로 진정한 리더십의 동기라고 주장했다.봉사적 리더십은 일시적이고 즉각적인 조치가 아니다. 삶을 통한 장기적이고 변혁적인 접근방식이다. 지도자 이론가인 스피어스 (Sprears)는 봉사적 리더십의 제 특징을 10가지로 정리했다. 즉 “말하기 보다 경청한다. 다른 사람의 입장을 생각하는 감정이입 (empathy) 에 능하다. 사람들의 상처를 치유하는 능력이 있다. 자신의 존재와 가치를 자각한다. 설득을 통한 의사결정을 한다. 이상과 꿈을 이루기 위한 자기개발에 힘쓴다. 문제해결을 위한 통찰력과 미래에 대한 예견이 탁월하다. 다른 사람을 섬기기 위한 청지기적 봉사정신이 강하다. 다른 사람들의 성장에 관심을 가진다. 진정한 공동체를 건설하려고 힘쓴다”이다. 올해는 국가적으로 많은 일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대표적인 것은 6월달에 있을 선거이다. 우리에게 봉사를 해 주실 지도자를 선출해야 한다. 그들 모두는 섬기는 리더십을 발휘 하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들의 말을 다 믿을 수 없음이 안 지사의 성추행 사건으로 들어 났다. 결국 이럴 때 일수록 영적 지도력을 발휘해야 하는 교회는 선교적 리더십을 지닌 목자들이 필요하게 되었다. 즉 성도를 위해 봉사하는 리더자를 말할 수 있다. 봉사적 리더십을 성경의 어느 부분에서 찾아 볼 수 있는가? 우리는 선교사 바울에게서 찾아 볼 수 있다. 바울은 필요에 대한 민감성이 있는 리더십을 가졌다. 바울은 교회의 리더가 지녀야 할 태도를 자녀를 돌보는 인자하고 욕심 없는 유모에 비유하였다. 유모가 아이의 필요에 따라 반응하고 행동 하듯이 리더는 다른 사람의 필요를 정확하게 판단하여 적절하게 대응하는 사람이었다. 또한 바울은 성실함을 통해서 리더십을 보여 주었다. 생활의 신실성이 있어야 한다. 바울이 강조하는 리더는 생활 속에서 모범을 보이는 리더로서 생활 속에서 솔직한 감정의 교류를 가질 수 있는 사람이다. 특별히 교회 조직의 리더는 먼저 자신이 본을 보일 때 추종자들에게 성실을 요구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바울은 부르심(소명)에 대한 분명한 확신과 사명을 깨닫는 리더였다. 이루는 바울이 가진 리더십을 소유해야 하겠다. www.worldcan.co.kr(세계로선교신학원)
    • 칼럼
    • 선교
    2018-03-22
  • Me too운동과 거룩한 삶
    Me too(나도...)라는 어휘가 한국의 모든 영역을 휩쓸고 있다. 외국에서 시작된 이 운동은 한국에서 한 검사가 자신의 상관에게 성 추행을 당했다는 고백을 필두로 사회,문화,교육을 뛰어 넘어 심지어 종교계를 비롯한 모든 영역에서 약자가 외칠 수 있는 “나도 당했다”라는 소리를 내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운동은 그동안 거룩한 척, 힘 있는 척, 고상한 척, 신성 불가침의 영역을 갖고 있는 척 하면서 거들먹 거리던 인간들이 줄줄히 TV에 얼굴을 들어 내면서 가족은 물론 앞으로 대대로 이어지는 지울 수 없는 부도덕의 대명사의 흔적을 지니게 되었다. 이들이 이처럼 불명예를 떠 안게 된 요인은 성(sex)의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사실 인간은 성적 관계성을 가진 존재이다. 성이란 남성과 여성으로 태어난 독립된 인간을 의미한다. 우리말의 성(性)은 마음(心)과 몸(生)이 결합된 것을 의미하는데, 이는 정신과 육체를 총칭하는 이른바 전인적 인간을 말한다. 이처럼 어원으로 볼 때 성이란 인간, 이성 또는 전인적 인간을 총칭하는 것이며 단순한 성행동이나 육체적인 성의 결합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김미영 박사가 연구한 성의 다양한 정의를 살펴보면 첫째는 생물학적 성(sex)이다. 생물학적 성은 남성과 여성의 성기를 비롯하여 성관계와 생식에 관한 모든 것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생의 초기 단계에서 남녀의 몸은 잘 구별되지 않는다. 두 살 정도의 여아와 남아의 몸에는 오직 작은 차이만 존재한다. 성인 남녀의 신체는 생식적 특성 면에서 대조적이지만, 이러한 차이가 생애주기에 따라 변한다는 접도 간과할 수 없다. 남녀의 신체와 그 생리적 특성들은, 특히 생식 기능이 끝난 노년기에 이르면 더욱 비슷해진다. 두 번째는 사회적 성(gender)이다. 태어나면서 신체적으로 남자 혹은 여자로서의 성별을 인정받은 개개인은 성장과정 속에서 자신의 성별에 적절한 역할을 학습하면서 남성성과 여성성을 발달시키기에 적합한 역할을 수행하도록 기대를 받는다. 이러한 역할은 생의 초기부터 학습되며 성장과정에서 그 개인이 속한 사회의 기대에 맞추게 된다. 이처럼 젠더는 선천적인 성의 의미를 가진 것이 아니라 양육과 사회화의 결과로서 이해하며 사회문화적인 요인을 바탕에 둔다. 성역할 발달에 영향을 주는 사회문화적인 요인으로는 가족적 요인, 교육적 요인, 대중매체 요인 등이 있으며 이는 성별에 따른 역할 수행 기대를 당연시하게 만들며 성별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발달시키게 된다. 이처럼 인간은 성장과정에서 자신이 태어난 사회적, 문화적, 심리적 환경에 따라 성역할을 학습한다. 즉 사회 문화적으로 또는 환경에 의해 후천적으로 학습되고 인지되는 성을 사회적 성, 혹은 후천적 성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남성답다’고 하면 적극적이고 강하고 크고 용감하고 이성적인 것을 생각하고, ‘여성답다’라고 하면 소극적이고 연약하고 아담하고 아름답고 의존적이고 감성적인 것을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자신의 성에 적절하다고 규정되는 성적 특성, 태도와 행동양식을 습득함으로써 남성적 또는 여성적 특성을 내면화하게 된다. 세 번째는 성정체성의 문제 이다. Jung은 남자의 무의식에는 여성적 심혼이, 여성의 무의식에는 남성적 심혼이 존재한다고 주장하였는데 이는 인간이 이성인 배우자와 원만하게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는 것은 남자든 여자든 생물학적으로나 심리학적으로 자신의 성 고유의 특징만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이성의 특징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성정체성은 한 사람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요소 중의 하나로 문화, 민족성, 성(性), 그리고 개인적인 특성 등 다른 많은 요소들과 함께 복합체의 한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성경은 성을 어떻게 활용하도록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는가? 이는 창조 질서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야훼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창 2:18)”라고 말씀 하였다. 이로 보건데 성은 부부간에 하나님의 명령인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한” 뜻을 이루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지 자신 보다 약하다고 생각한 사람들을 함브러 취하는 것이 아님을 가르치고 있다. 성도들은 거룩한 삶을 통해서 존재적 선교를 이루어야 하겠다. www.worldcan.co.kr(세계로선교신학원)
    • 칼럼
    • 선교
    2018-03-08
  • 졸업을 시키는 감정
    졸업 시즌이 되었다. 졸업은 어떤 과정을 마무리하는 요소를 지니고 있다. 사실 졸업이란 용어는 다양한 관점에서 해석을 만들기도 한다. 인생에 있어서 졸업은 이세상과의 작별을 통해서 미지의 세계로 전이 되는 과정일 수도 있다. 그러나 보편적인 의미에서의 졸업이란 일정한 학습과정을 마치는 경우라고 볼 수 있다. 이번 시즌에도 필자의 제자 한 사람이 박사학위를 받았다. 목회학 석사(M.Div), 일반대학원에서 전공 석사 학위(Th.M) 그리고 박사 학위(Ph.D)를 받았으니까 시간을 따지면 거의 10여년을 나와 함께 수업과 연구를 한 샘이다. 제자의 모습에 그저 감동적이고 특히 외조를 아낌없이 해준 남편 목사님께 말 할 우 없는 감동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필자의 아내는 참으로 지겹도록 긴 시간을 고생한 끝에 이번에 박사학위(Ph.D in SW)를 받게 된다. 시간을 계산해 보니 박사과정을 입학한지 10여년이 걸렸으니 말이다. 조금은 빨리 마쳤으면 좋은 학교에 교수도 될 수 있는 길이 있었지만 졸업이 길어짐으로 모든 것이 무산되어 여간 서운한 것이 아니지만 그래도 졸업을 하게 되니 한결 마음이 가볍게 된 것 만은 숨길 수 없다. 졸업을 하는 아내를 위해 졸업에 관련된 명언집의 사이트를 통해 찾아보았다. “늘 갈망하며, 우직하게 나아가세요.” -스티브 잡스. “좋아하는 일을 하라. 그러면 도전에 더 많은 목적 의식이 생긴다.” -마크 저커버그.“다른 사람을 돕는 것은 결국 당신을 돕는 것과 같다.”-나탈리 포트만.“현실을 뒤쫓으라!” -크리스토퍼 놀란, “친구 수가 아니라, 우정이 중요하다.” -에릭 슈미트. “실패가 두려워 아무 시도도 하지 않는다면, 실패한 것이 없어도 삶 자체가 실패다.” -J. K 롤링.“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면서도 실패할 수 있다. 그러니 사랑하는 일에 도전하는 게 낫다.” -짐 캐리.“열심이 일하고 주변에 겸손하면, 놀라운 일들이 벌어질 거다.” -코난 오브라이언. “이런 일이 왜 인생에서 일어나지? 라고 묻지 말고, 이것이 나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 라고 물어라!”-오프라 윈프리. 이상에 언급한 모든 글들은 한 세상을 풍미했던 사람들의 삶의 철학이 담긴 명언이고, 대대로 깊이 간직해야할 글이다. 사실 필자는 지금도 두명의 자녀가 대학에 다니고 있다. 이미 두 명을 졸업시켰으니 반타작은 끝났으나 나머지 50%가 아직 미완의 과제로 남아있는 셈이다. 한 달 전에도 자녀의 입학 등록금으로 필자의 쥐 꼬리 만한 계약 년봉 의 반을 등록금 계좌에 넣고 났더니 살길이 막막해 지는 현실을 보면서 교육을 시키는 과정이 얼마나 힘 드는 것인가를 실감하기도 했다. 사실 교육비 대납의 힘든 과정은 성경에 나타난 욥의 고난과 비슷하다. 욥기는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다. 즉 인간은 삶을 통해서 고난이 올 수 있으며, 이를 극복하는데 있어서 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람이 필요한지를 가르쳐 주고 있다. 그 뿐만 아니라 신학적인 문제도 다루고 있다. 즉 하나님, 인간, 창조, 사탄, 죄, 의, 고난과 정의, 회개, 믿음을 성경적 관점에서 가르쳐 주고 있다. 그리고 욥의 고난을 그릇되게 해석하고 있는 세 친구들을 통해서 의인의 고난을 보고 정죄하는 자들의 잘못을 지적해 주기도 한다. 필자는 오늘 교육비 부담에서 오는 조그만 고통을 거룩한 하나님의 종인 욥의 경우를 들어서 참으로 부끄럽기도 하다. 그러나 욥의 고통이 어쩌면 삶 속에서 나오는 당연한 고통이라고 보여 진다. 욥은 말하기를 “어찌하여 고난당하는 자에게 빛을 주셨으며 마음이 아픈 자에게 생명을 주셨는고, 이러한 자는 죽기를 바라도 오지 아니하니 땅을 파고 숨긴 보배를 찾음 보다 죽음을 구하는 것을 더하다가 무덤을 찾아 얻으면 심히 기뻐하고 즐거워하나니, 하나님에게 둘러싸여 길이 아득한 사람에게 어찌하여 빛을 주셨는고, 나는 음식 앞에서 탄식이 나며 내가 앓은 소리는 물이 쏟아지는 소리 같구나, 내가 두려워 하는 그것이 내게 임하고 내가 무서워 하는 그것이 내 몸에 미쳤구나, 나에게는 평온도 없고 안일도 없고 휴식도 없고 다만 불안 만이 있구나(욥기 3:20-26). 욥의 경우가 필자가 지닌 환경이 다르고, 의미가 다르지만 성직을 수행해 가는 한사람의 목회자가 지닌 경제적 어려움은 보편적으로 같은 고통을 지니고 있다고 해도 그렇게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기도하기는 이렇게 어렵게 공부 시켜 놓았으니, 열심히 선교해서 하나님 앞에서 쓰임 받는 삶이되기를 소원해 본다. www.worldcan.co.kr(세계로선교신학원)
    • 칼럼
    • 선교
    2018-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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