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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잘산다는 의미
    의학박사 이시형박사의 책 ‘인생은 참 맛이 있다’라는 글을 보면 그의 절친한 친구의 이야기가 있는데 깊은 감동을 준다. “이 사람아 우리 자주 좀 만나세 우리 집에도 좀 놀러오라고 자네 책 쓸 일이 있으면 우리 별장에서 지내게 거긴 조용해서 글이 아주 잘 될 걸세” 오랜만에 나를 찾아온 동창이 간곡하게 부탁을 했다. 자기 집에 놀러오라는 말은 그냥 하는 인사치레가 아니었다. 한 동안 연락이 없던 그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 틀림이 없었다. 학생시절부터 성실했던 그는 비록 가난했지만 열심히 사는 친구였다. 그러나 졸업 후 통 소식이 없었다. 소문에 의하면 작은 공장을 경영하느라 바쁘게 살고 있다고 했다. 최근에는 사업이 번창해 상당한 실력자가 되었다는 소문도 있었지만 웬일인지 동창 모임에는 얼굴도 비추지 않았다. 그런 친구가 봄비를 맞으며 느닷없이 내 사무실을 찾아온 것이다. “산다는 게 뭔지 바삐 쫓겨 다니다 보니 친구를 만나는 것도 쉽지 않네” 이렇게 시작된 이야기는 오랫동안 이어졌다. 성실하게 일한 덕분에 돈은 좀 모았다는 그는 별장을 지었다고 했다. 하지만 살만해지니 새로운 고민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말벗이 그리워진 것이다. 그의 주변에는 대부분 사업관계로 만나는 사람들뿐이라 허심탄회하게 마음을 터놓은 상대가 없었다. 찾아오는 친지도 모두 이해에 얽힌 관계라 부담스러웠다. 모두들 자기한테 기대려는 사람뿐이니 불편하고 피로했던 것이다. 그의 별장을 지은 것도 사람을 피해 조용히 지내고 싶었기 때문에 부지를 물색하고 건물을 짓는 동안 오랜 꿈을 이루게 되었다는 장말 신나는 일이라고 외치고 싶었다. 드디어 완공의 날 그는 성취감과 삶의 보람에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이런 감격과 흥분이 차츰 수그러들기 시작했다. 앞마당의 연못을 봐도 그저 그렇고 뒷산의 수풀에도 별 감흥이 없었다. 나는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세상말로 말하자면 그는 꽤 성공을 했는데 왜 만족감과 기쁨을 갖지 못하고 그렇게도 자신을 잃고 허탈감과 고독감에 빠져 있었을까를 깊이 생각해 보다가 나름대로 한 깨달음을 가졌다. 그것은 그가 복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감사하지 않았고 또 하나님이 기뻐하는 선을 어려운 이웃들에게 행하지 않았기 안았기 때문에 만족과 기쁨이 없었던 것을. 이처럼 사람이 욕망과 소유욕에 빠지면 만족도 없고 즐거움도 없다. 그리고 나는 마아겔 프루우스트의 ‘욕망과 소유‘욕에 빠지면 이라는 글을 읽는다. “욕망은 꽃을 피우나 소유는 모든 것을 시들게 한다. 정말 우리가 무엇인가 갖고 싶었을 때 그리고 무엇인가 하고 싶었을 때 그리고 무엇인가를 갖기까지와 무슨 일을 하기까지의 과정이 아름답고 보람된 것이지, 일단 소유한 뒤나 일을 성취하고 난 뒤에는 흐뭇한 감정이란 대체로 순간적이기 쉽고 그런 감정이 사라지면 아름답던 우리의 꿈이 시들기 쉬운 것이 아닐까. 시들면 추한 것이다. 추하면 버려지는 것이다. 우리의 삶이 어디까지 왔는가? 우리의 소유한 삶이 진정 소유한 자의 삶인가?” 꿈을 잃지 않고 산다는 것 그것은 인간의 삶의 값어치를 말하는 것인데 참으로 의미심장한 말이다 그러면 우리는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면 즐겁고 만족하게 살 수 있을까?‘ 이 한마디는 세계적인 동기부여자 엔서 와빈스가 뉴욕의 메디슨이 가든에서 2만여 명의 청중들에게 깊은 감동을 준 말이다 이제라도 더 가진 자들은 주변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선을 베풀며 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선한 본성을 주었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에게 전해주는 이야기가 생각난다. 한 부인이 점심 식사 즈음에 세 명의 노인을 만났다. 그녀는 노인들에게 “시장하실 덴데 집에 들어가서 간단히 요기라도 하시지요” 그러자 노인들은 “우리는 함께 집안으로 들어 수 없답니다” 라고 대답했다. 부인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왜 들어갈 수가 없나요” 그중 한 노인이 두 명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친구는 ’성공’ 이라하고 저 친구는 ‘재물’이지요. 나는 ‘선’ 이에요. 우리는 함께 당신의 집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부인께서 지금 집에 들어가서 가족들과 상의를 해보시고 우리 중 누구를 들일지 결정하시지요” 이 말을 들은 그녀는 집으로 들어가서 식구들과 이야기를 한 후 ’선‘을 초대하기로 했다. 잠시 집 밖으로 나온 그녀는 ‘선’에게 말했다. “부디 집으로 들어오시기 바랍니다” 이에 ‘선’ 은 집으로 들어갔고 ‘성공과 재물’도 그 뒤를 따라 들어왔다. 이상하게 여긴 부인은 그들에게 물었다. “두 분은 왜 들어오시나요?” “노인들은 ‘선’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성공과 재물’이 있기 때문이죠”라고 대답 했다고 한다.
    • 칼럼
    • 목회자
    2020-02-14
  • 한 은퇴자의 이야기
    어느 날 그와 함께 정년퇴직한 박 부장과 차 부장 두 사람한테서 만나자는 연락이 와서 강의를 마치고 시내에서 두 사람을 만났다. 퇴직한 지 두 달이 조금 지났는데 두 사람 다 눈에 띄게 수척했다. 우리는 저녁을 먹으면서 퇴직 후에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울 태생의 박 부장이 입을 열었다. 아침이면 정해진 시간에 꼬박꼬박 자기를 데리러 오던 회사 차는 그림자도 안 보이고 대문까지 배웅을 하던 식구들은 그 시간에 마루방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자기를 불쌍히 여기는 것 같아서 죽을 지경이라고 했다. 그리고 대문을 나서면 동네 사람들의 시선이 자기한테 집중되며 마치 성축여석처럼 하찮게 보이는 것 같아서 속이 뒤집힌다고 했다. 월급봉투를 내놓으면서 ‘내가 이렇게 가족들을 먹여 살린다, 고 의기양양했는데 이제 조락의 신세가 되어버린 것 같아서 자꾸만 슬퍼진다고 했다. 무료함을 달래 보려 해도 갈 곳이 없고 옆에서 하도 권해서 노인정이란 데를 가봤더니 술이나 마시고 화투나 치고 대화 상대가 되는 노인이 없어서 그만두었다고 했다. 바둑, 장기, 낚시는 할 줄 모르고 여행은 돈이 많이 들어서 못 가고 찾아오는 친구도 없으니 사는 것이 유배생활이나 진배없다고 했다. 이번에는 차 부장이 털어놓았다. 이북에서 피난 온 친구로 소심 한 데가 있었다. 딸만 넷인데 맏이만 출가시키고 셋을 데리고 사는데 자나 깨나 딸들 시집보낼 걱정에 피가 마른다고 했다. 경비원 자리를 찾아보는데 아직 구하지 못했으며 옷가게 점원으로 있는 둘째딸 월급으로 겨우 살아가는데 퇴직금도 바닥이 보인다고 했다. 그놈의 체면 때문에 행상이나 노점상은 못하겠고 구멍가계를 하려 해도 밑천이 없다고 하면서 요즈음은 불면증에 시달린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년퇴직 연령이 너무 이르다고 핏대를 세웠다. 두 사람과 헤어진 나는 많은 것을 생각했다. 인생에서 새 출발하겠다는 신념이 없다면 그 인생은 불행할 것이다. 나는 새 출발하겠다는 신념을 가지고 내 늙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려야 하겠다고 다시 한번마음을 먹었다고 했다.나는 이 글을 읽으면서 은퇴한 노년의 나의 모습을 보았고 또 나의 남은 인생을 어떻게 아름답게 살아갈 것인가, 또 어떻게 늙어가야 할 것인가를 다시 한 번 진지하게 생각을 했다. 그리고 오늘 날 노인들의 삶을 소개한 어르신 사랑연구 모임 어 사연 유경 대표가 쓴 글을 읽었다.그 내용을 보면 그는 노인의 삶을 두 가지로 이렇게 말한다. 물질의 풍족함이나 건강 여부와 무관하게 어르신들의 삶을 대신하는 모습을 보면 긍정적인 모습과 부정적인 모습으로 나뉘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어떤 어르신들은 항상 밝은 미소와 작은 것에도 감사하며 남을 돕고 배려하는 마음을 가진 분들이 있는 반면 몇몇 어르신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만을 아는 이기적인 분들도 있다. 전자 같은 어르신들은 젊은 사람들에게도 힘을 심어주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어떻게 나이 들어가야 하는 지를 몸소 보여주는 교과서라고 할 수 있다. 반면 후자와 같은 어르신들 역시 좋은 교훈을 주고 있는데 최소한 이렇게 나이 들어가는 것은 본인들만 아니라 모든 사람을 힘들게 한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반면교사라고 할 수 있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긍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어르신들은 자녀들과의 관계도원만하며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녀들의 도움으로 노년을 슬기롭게 잘 대처해 가고 있다. 반면 그렇지 못한 어르신들은 대게 자녀가 있어도 연락이 끊이거나 도움을 받지 못해 곤란을 겪는 경우가 비일 비재하며 사회적으로 관계가 거의 전무한 편이다고 했다.나는 이글을 읽으면서 사람의 마음가짐의 중요성 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마음가짐이란 성격과 태도를 함께 일컫는 말이고 성격은 사람마다 독특하게 자리 잡은 개성을 말한다. 그런데 마음가짐은 사람의 생각, 감정, 필요, 욕망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준다고 한다. 왜냐하면 마음가짐은 생각을 만들고, 생각은 행동을 낳고. 행동이 습관적으로 굳어지면 곧 성격이 되며, 성격은 인생을 좌우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마음가짐이 인생을 만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부터라도 우리가 바로 긍정적으로 자신을 바로보고 긍정적인 마음을 가진다면 우리의 의 몸과 마음은 용기와 지혜로 가득하게 만들 것이다. 그래서 ‘학자들은 성공한 사람의 중요한 특징이 바로 그의 마음가짐이라고 말 했다. 그러니 긍정적인 마음가짐과 낙관적인 태도로 인생을 대하고 도전을 받아들여 어려움을 마주한다면 남은 인생을 즐겁게 살 수 있을 것이다.
    • 칼럼
    • 목회자
    2020-01-31
  • 조난당한 두 사람의 운명
    항해 중 조난당한 배의 생존자 두 명이 천신만고 끝에 무인도에 도착했다. 다행히 이 무인도의 나무에는 과실이 주렁주렁 열려있었다. 이를 본 첫 번째 생존자는 무척 기뻐하며 두 번째 생존자에게 말했다. “정말 잘 됐어 구조대가 올 때까지 굶주리지는 않겠군” 그는 즐거운 마음으로 과일을 따서 맛보았다. 하지만 두 번째 생존자는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체념한 듯 말했다. “곧 겨울인데 과일이 떨어지면 우리는 굶어 죽겠지” 얼마 후 겨울이 다가오면서 과일이 주러들자 두 번째 생존자는 겨울 날 준비를 했다. 그는 부지런히 움직여 작은 움막을 짓고 그 안에 음식물을 저장하기 시작했다. 그는 근처 바다를 지나가는 배가 그들을 발견해서 구조되길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하루하루 가 흘러도 배는 오지 않았다. 화물선 한두 척이 지나가기는 했지만 너무 멀어서 아무리 소리쳐도 두 사람을 발견하지 못했다. 어느 날 음식물을 구하러 갔다가 돌아온 두 사람은 움막에 불이 붙은 것을 발견했다. 움막은 순식간에 짙은 연기와 불길에 휩싸였으며 그 안에 저장해 놓았던 음식물 역시 모두 타고 말았다. 이 모습을 본 두 번째 생존자는 순간적으로 충격을 받아 그 자리에 쓰러지더니 다시는 깨어나지 못했다. 첫 번째 생존자도 무척 슬프고 가슴이 아팠다. 그러면서도 어쩌면 지나가던 배가 높이 치솟은 검은 연기를 보고 자신을 구하러 올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다음 날 아침 뱃고동 소리가 그를 깨웠다. 드디어 구조선이 온 것이다. 그는 구조원에게 물었다. “혹시 연기를 보고 왔습니까?” “그렇습니다. 짙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보고 이쪽으로 왔습니다”. 그러니까 바로 절망적인 큰불이 그를 구원하는 셈이다. 두 생존자는 마침내 무인도를 떠났다. 한 가지 다른 점이라면 낙관적인 첫 번째 생존자는 건강한 상태인 반면 두 번째 생존자는 주검이 되어 구조선에 오른 것이다.우리는 이 실화를 통해 두 생존자의 운명을 본다. 즉 낙관적인 사람과 부정적인 사람의 모습이다 그럼 낙관적인 사람과 부정적인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먼저 낙관적인 사람은 어떤 일을 할 때 항상 투지를 보이며 적극적으로 뛰어 든 사람이다 설령 그것이 힘들고 실현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인생에 불가능한 일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어려움에 부딪혀도 낙관적인 마음가짐을 잃지 않는다. 그들은 “할거야” “할 수 있어” “다시 한 번 해보자” “반드시 방법이 있을 거야” 라고 생각하며 용기를 불어 넣는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 해결방법을 생각하고 끊임없이 전진하여 마침내 성공에 이르는 것이다. 한 멕시코 여성이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하기 위해 길을 떠났다. 그런데 텍사스 주와 인접한 국경선 엘 파 소에 도착을 했을 때 뜻밖에도 남편이 아무 말도 없이 가족을 버리고 떠났다. 그녀는 배고프다고 칭얼 되는 아이 두 명을 데리고 어떻게 해서든지 살길을 찾아야 했다. 하지만 22세이었던 그녀는 가난하고 배운 것이 없었으며 영어도 할 줄 몰랐다. 그녀는 잠시 당황했지만 포기하지 않았고 허드렛일을 해서 차표 살돈을 모았다. 아이들을 데리고 간 캘리포니아에서도 수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녀는 결코 더 나은 삶에 대한 희망과 비전을 버리지 않았다. 낮에는 식당에서 접시를 닦고, 밤에는 멕시코 식당에서 새벽 6시까지 일했다. 이렇게 일해도 수입이 많지는 않았지만 타고 음식점을 열기 위해 최선을 다해 한 푼, 한 푼, 모았다. 그녀는 500달러가 모이자 은행에 가서 대출을 신청했다. “가게를 얻으려고 해요. 타고를 파는 멕시코 음식점을 낼 생각이거든요. 제 꿈을 실현하려면 대출이 필요합니다” 변변한 담보나 보증인도 없고, 성공 여부도 불확실했지만 은행 지점장은 그녀의 과감함과 자신감을 믿고 대출을 승인했다. 20세에 마침내 자신의 음식점을 연 그녀는 이후 15년 동안 최선을 다해서 사업을 확장에서 미국에서 가장 성공한 멕시코 요리재료 도매상이 되었다. 이 여성이 나중에 미국의 재무장관이 된 로마나 바누엘로스다. 마음이 부정적인 사람들은 대부분 마음가짐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어려움에 부딪히면 그저 쉽게 물러날 길만 찾으려고 든다. “나는 못해” “그냥 가만히 있는 것이 낫겠어”; 이런 마음가짐은 결국 실패의 늪에 빠져들게 만들 뿐이다. 미국 하버드대 마이클 샌델 정치학 교수는 사람의 마음가짐에 대해 이렇게 말을 했다. “마음가짐은 인생의 관제탑과 같다” 부정적인 마음가짐은 실패, 질병, 그리고 고통이지만, 긍정적인 마음가짐은 성공, 건강, 즐거움의 보증수표다. 이처럼 마음가짐은 성공과 실패를 결정한다. 그러므로 상황이 좋든 나쁘든 절대 패배감이 당신의 열정을 대신하게 만들어서는 안 되며 언제나 긍정적인 마음을 유지해야 한다. 인생의 가치는 올라갈 수도 있고, 떨어질 수도 있다. 그리고 이 두 가지 선택은 오로지 우리 자신의 선택에 달려있다.
    • 칼럼
    • 목회자
    2020-01-06
  • 자살을 극복한 베토벤
    한 작가의 슬픈 어머님의 자살의 이야기이다. 어느 날 한 셋집 단칸 방안에 하얀 분 대신 연탄 가루를 바른 엄마가 쓰러져 있었다. 죽음이 무엇인지 모르는 네 살 난 그녀는 어느 날 자살한 어머니의 시체를 붙들고 “엄마 죽지마” 하면서 엉엉 울었다고 한다. 고생을 타고난 그녀의 어머니는 눈만 트면 바람을 피우고 술독에 빠져 개망나니 짓을 하는 아버지에게 복수하는 심정으로 온 동네 약방에서 사서 모은 수면제를 한 줌에 털어 넣었다고 한다.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집으로 돌아온 초등학교 6학년 큰 오빠는 흰 거품을 가득 물고 비틀거리며 죽어가는 엄마를 등에 업고 비지땀을 흘리면서 병원으로 갔다. 하지만 엄마는 옆에서 울고 있는 그녀와 큰오빠를 버리고 깊은 잠속으로 도망쳐 버렸다. 그녀는 어머니의 시체 앞에서 “다시는 이런 썰렁한 곳에서 혼자 울지 않을 거야” “독한 소리를 듣더라도 눈물을 흘리지 않을 거야! 그 대신 마른 눈 똑바로 뜨고 내 삶을 찾아갈 거야. 아무리 삶이 나를 포기해도 지레 겁먹고 항복하는 쪼다가 되어 삼십육계 줄행랑을 치지는 않을 거야” 이야기는 오늘 날 우리 가정의 이야기가 아닐까? 최근에는 유감스럽게도 자살과 안락사를 너무 쉽게 긍정하는 풍조가 강해진 듯하다. 이제는 우리 아이들, 청소년, 중년 가장들, 장년들과 노인들의 자살을 더 이상 외면 할 수 없는 사회적인 문제가 된 것 같다. 날마다 전국에서 평균 60 여명이 자살한다는 통계가 있고, 이 숫자는 교통사고, 사망자의 2배와 맞먹는다고 한다. 게다가 자살을 시도했으나 다행히 목숨을 건진 사람의 수는 적게 잡아도 실제로 자살한 사람의 10 배가 넘는다고 하니 정말 놀랍다. 그리고 절친했던 사람이나 가족의 자살 또는 자살시도 때문에 정신적 충격을 받는 사람은 자살 행동 한 건당 최소한 5명은 된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자살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약 2만 명만의 문제가 아니라 누군가의 자살 행동으로 좋지 않은 영향을 받고 백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에게도 심각한 문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는 자살하는 사람 본인의 문제가 아니라 그의 가족과 지인도 얽히게 되는 심각한 정신보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헌데 우리나라에서는 자살 예방에 대한 관심이 그다지 높지 않는데 이제는 더 이상 미루지 말고 자살 예방에 대한 중앙 정부와 지방정부의 특별한 대책이 있어야 하겠다. 자살이란 무엇인가? 사전상의 정의를 보면 더할 나위 없이 간명하게도 “고의로 스스로를 죽이는 행위” 라고 했고 성경에는 생명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인데(창2;7) 사람이 온 천하를 얻고도 제목을 잃으면 아무 유익도 없고 죽음 후에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다고 했다.(히9;27) 그러기에 우리는 자살을 택하지 말고 생명을 택해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자살 원인을 알아야 한다. 학자들에 의하면 첫째 우울울증, 가족에게, 경제적으로 짐이 된다. 소속감이 없다. 충동성(느닷없이 큰 실망 갈등에 반응) 정신 장애(자살자 약95퍼센트가 사망 전 정신장애 경험) 등이라고 한다. 이 정의는 모든 자살하는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듯하다. 그럼 자살을 어떻게 극복할까? 실례로 자살을 극복한 베토벤을 소개한다. 음악인으로서는 최고의 경지에 이르러 악성이라고 불리는 프리드리히 베토벤은 작품의 수준 못지않게 고난에 찬 삶의 역경을 극복하고 위대한 업적을 이루었다는 점에서 의지의 표상이자, 인간 승리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다. 베토벤은 1802년 여름 의사의 권유에 따라 하 일리 겐 슈타트에 머물렀다. 하지만 그는 기대했던 청력이 회복되지 않았고 근처 미하엘 교회의 종소리마저 들리지 않자 그해 10월 절망한 나머지 남동생 앞으로 유서를 쓴다. 그가 사망한 후 발견되어 ‘하일리겐 슈타뜨의 유서로 널리 알려진 이 글은 현재 그의 기념관에 복제본이 전시되어 있고 원본은 함부르크 국립대학 도서관에 소장 되여 있다고 한다. “자살로 내 생명을 끊지 못한 것은 예술의 덕택이었다. 죽음이 나를 끊임없는 고뇌의 상태에서 해방시켜 주겠지, 잘 있거라, 내가 죽더라도 나를 완전히 잊지 말아다오” 그러나 그는 자살하지 않았다. 자살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리 고통 중에도 비상한 작품들들 속속 작곡하고 발표했다. 그는 많은 작품 중에서도 6년간 힘을 기우려 다듬고 다듬어 38세 때 고뇌와 좌절을 극복하고 교향곡 제5장을 완성했다. 그리고 그는 마지막 교향곡인 제9번’ 합창을 병마와 싸우며 혼신의 힘으로 작곡했다. 그는 1824년 5월 비엔나의 케른트 국립극장에서 작품을 초연 했을 때 연주가 끝나고 청중의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를 듣지 못했다. 그는 한 가수가 그를 지휘대에서 청중석으로 돌려 세우자 청중들의 반응을 보고 고개 숙여 인사할 정도였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일어서서 박수를 보냈다. 인간은 단 한번 주어진 생애를 살기에 베토벤처럼 절망을 극복하며 살아야 한다.
    • 칼럼
    • 목회자
    2019-12-23
  • 사랑하면 행복합니다
    저명한 시인 정 호승님의 산문집 을 보면 큰 수술을 여덟 번이나 받은 한 여인이 건강을 회복한 이야기가 있다. 그녀는 큰 수술을 여덟 번이나 받았다고 한다. 자궁암을 비롯해 위암, 대장 함 등 암이 전이될 때마다, 위험한 큰 수술을 되풀이해서 받았지만 비교적 건강해 의사들조차도 놀라워했다. 그녀에게는 항상 누워서 지내는 정신 지체 아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20세가 되어도 지능은 3세 정도밖에 안되어 대소변까지 받아내야 하지만 그녀에게는 소중한 아들이었다. 그런 아들 때문에 남편과 이혼까지 하게 되었지만 그녀는 그런 아들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 하는 데에만 온 정신을 쏟았다. 그녀가 밖에서 일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하루 종일 혼자 누워 있던 아들은 이불 속에서 그녀를 보고 웃음을 가득 띠며 좋아 어쩔 줄 몰랐다. 그녀는 그런 아들을 대할 때마다 하루의 피로도 잊고 어떻게 해서든지 이아들을 위해 살아야 한다는 결심을 하곤 했다. 수술한 몸이 너무 아파 차라리 죽었으면 하고 자살을 몇 번, 결심 하곤 했으나 이 아들을 혼자 남겨두고 죽을 수 없다. 내가 살지 않으면 저 아이 혼자는 도저히 살아 갈 수 없다는 생각에 자신의 고통조차 생각할 여우가 없었다. 이것이 그녀가 여덟 번이나 암 수술을 받고도 살아 있는 까닭이었다. 정신지체 아들을 보살피는 어머니의 지극한 정성이 어머니 자신의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기게 되었다. 이와 같이 우리들도 그녀처럼 우리의 마음에 사랑이 있다면 어떤 곤경에 처하더라도 끝까지 즐거운 마음을 잃지 않고 더 밝은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랑은 우리들의 마음과 고통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능력이자 신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마음속에 사랑이 있다면 거센 풍랑이 몰아치는 현실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주변의 모든 것에 감사한다. 하지만 마음속에 사랑이 없는 사람은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닌 무의미한 생활을 할 것이다. 사랑이야 말로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진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까? 성경에는 사랑이 제일이라(고전13;13) 말씀하셨고, 한 심리학자는 사랑 없이 살 수 없다. 사랑이 없으면 세상에 존재할 수 없다고 했다. 왜 사랑이 제일인가? 사랑이 없는 삶은 고독, 적막, 아니면 초조함과 인생의 모든 고통 등이 사랑이 없는데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마음속에 사랑이 있으면 어떤 환경에서도 행복할 수가 있고, 다른 사람도 사랑할 수도 있다. 그러면 우리가 타인을 사랑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다른 사람과 고통을 나누어야한다. 상대방의 어려움을 줄어주고 걱정을 덜어주어야 한다는 말이다. 예를 들면 상대방이 100킬로그램에 달하는 무거운 짐을 지고 있다면 그중 50킬로그램을 들어주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행복과 평안을 얻을 것이다. 다음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기쁘게 해주어야한다. 사실 인생을 살아보면 작은 일에서도 큰 기쁨을 얻을 때가 있다. 이 세상에는 결혼 전과 후의 생활이 너무 달라 고민하는 사람들이 이 많다. 이것은 바로 그들에게 기쁨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우리가 진정한 사랑을 계속 유지하고 싶다면 반드시 상대방을 기쁘게 해야 한다. 상대를 기쁘게 하는 것은 나 자신을 기쁘게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은은하게 오래 사랑해야 한다. 사랑은 불타오르는 뜨거운 사랑도 있고 어떤 사랑은 봄비처럼 조용한 사랑도 있다. 하지만 불타오르는 사랑은 식어지기 쉽고 봄비처럼 조용한 사랑은 부드러운 봄비처럼 영혼을 촉촉이 적셔준다. 한 부부의 사랑의 이야기이다. 아내의 해산 후 두 부부는 각각 다른 침대를 사용했다. 고 한다. 낮에는 일이 너무 힘들고, 밤에는 아이들 돌보느라 기진맥진해진 그들은 점점 대화가 줄어들었다. 아내가 먼저 그들 사이의 위기를 느끼고 남편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 당신에게 바라는 거 있어요” 그러자 남편은 심드렁한 본능을 보이며 대꾸했다. “뭐가 필요한데?” “하루에 1분씩만 안아줘요” 남편은 아내를 흘끗 보고 웃으며 말했다. “노부부처럼? 그런 게 필요할까?” “내가 말했을 때는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에요. 당신이 하는 질문을 보니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드네요” “사랑은 꼭 표현해야 하나?” “결혼 전에 당신이 사랑을 표현하지 않았다면 나는 당신과 결혼하지 않았을 거에요” “그때는 그때지 오히려 표현하지 않는 편이 더 깊은 사랑이 아니야” “표현하지 않는다고 해서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표현한다고 해서 또 나쁠 것은 없잖아요” 두 사람은 결국 싸우기 시작했고, 이 전쟁을 끝내기 위해 남편은 어서 잠자리에 들자고 말했다. 그리고 아내를 1분 동안 꼭 안아주고 웃으면서 말했다 “이렇게 표현하는 게 꼭 필요하단 말이야” “여자들은 모두 사랑을 확인 받고 싶어 해요” 이후 남편은 매일 아내를 일분, 삼분, 십분, 동안 안아 주었다 한다. 다음으로 사랑은 우리들에게 메아리처럼 돌아오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모두 상대의 사랑을 갈망한다.
    • 칼럼
    • 목회자
    2019-12-06
  • 고난은 성공을 부른다
    미국 하버드 대학 데릭 복은 교수는 ‘고난은 성공을 부른다’라는 글에서 이런 말을 했다. “무슨 일을 하듯 항상 돛 단 듯이 잘 풀리고 별 문제없이 편하게 산다면 투지가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고난을 마주하고 어떻게 하든지 그것에서 벗어나려고 모든 잠재능력을 사용하며 저항하는 사람은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인생은 반드시 고난과 함께해야 한다” 이에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역경은 사람을 단련시키는 최고의 학교’라고 했고, 우화 작가인 이솝은 ‘고난을 겪었다면 신에게 감사하라. 그것은 당신에게 새롭게 살아갈 힘을 줄 것’이라고 했으며, 프랑스의 소설가 오노레드 발자크는 역시 ‘고난은 천재에게 성공의 발판이며, 상인에게 재물이며, 약자에게 힘이라’고 말했다. 이제 나는 존경하는 독자님들과 함께 고난을 극복한 위인들의 성공적인 삶을 펼쳐보고 같이 산책에 보고자 한다.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는 2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9살 때 아버지마저 돌아가셨으며, 아버지가 세상을 떠 난지 9개월 만에 할머니마저 세상을 떠났다. 톨스토이 5남매는 하루아침에 고아가 된 것이다. 이들은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가정교사에게 교육을 받을 수도 없었다. 그래서 그는 독서를 통해 학교에서 배우는 이상의 지혜와 지식을 얻을 수 있었다. 또한 그는 글쓰기를 좋아해 ‘안나 카레다’ 등의 대작을 남긴 세계적인 작가가 되었다. 일본의 신화적 경영자 혼다 쇼이치로는 한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홉 형제 중 5명이 영양실조로 조사할 정도로 가난했다. 그의 아버지는 길에서 자전거를 수리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혼다 쇼이치로의 환경은 그가 처음으로 오토바이를 제작할 때 매우 유리하게 작용했다. 그의 아버지는 그에게 기계적 문제를 가르쳐 주었고 오토바이의 기초적 작동 원리에 데해 자세히 알려주었다. 그는 학교 다닐 때 공부를 매우 싫어했지만 실험실만은 좋아했기 때문에 항상 실험 방법을 제일 잘하는 학생으로 손꼽혔다. 그는 항상 기계와 기계장치 등을 좋아했으며 처음으로 자동차를 봤을 때 완전히 매료되었다. “다 잊고 차 뒤꽁무니를 따라가야지, 정말 신날 거야 내가 어른이 되지 않았지만 언젠가 최고의 자동차를 만들고 말겠어” 당시 그는 자신이 이런 기계를 가지게 될지도 몰랐을 뿐만 아니라 산업계의 거목이 될지도 몰랐다. 혼다 쇼이치로는 다른 사람에 비해 더욱 오토바이와 자동차 산업에 힘을 기울었다. 1950년대 초기 혼다 자동차 회사는 마침내 오토바이 사업에 뛰어들었고 5년 안에 250개 경쟁 상대를 물리쳤다. 그는 어렸을 때의 더 멋진 자동차를 만들겠다는 환상을 마침내 실현한 것이다 그 후 미시간 대학의 명예박사 학위를 받고 이렇게 연설했다. “그간의 일들을 돌아보았을 때 실수와 실패 후회할 것을 제외하면 나는 아무 것도 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자랑스런 것은 비록 연이어 잘못을 저지르기는 했으나 그래도 이 잘못과 실패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것이지요. 많은 사람이 성공한 삶을 살고자 합니다. 내 경우 성공은 여러 차례의 실패 후, 그리고 실패에 대한 반성을 한 후에 비로소 얻어지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성공은 그저 내가 한 일의 1%밖에 되지 않았고 99%가 실패였죠” 라고 겸손하게 말했다. 미국의 젊은 사업가 사이러스필드(Cyrus W. Field)는 영국과 미국을 잇는 대서양 해저 케이블을 설치한 사람이다. 그는 이 엄청난 규모의 사업을 구상한 단계에서부터 수많은 어려움과 실패에 부딪혔다. 그는 대규모 전함 아가멤논 호화5천 톤 급의 선박나이가라 호를 각각 영국과 미국 정부로부터 빌려서 야심차게 해저 케이블 건설 작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케이블이 서로 엉키거나 끊어지는 등 크고 작은 실패가 계속되면서 사람들은 모두 대서양 해저 케이블 건설 자체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성공을 확신했기에 우려와 반대의 목소리가 들리는 중에도 자신의 뜻을 밀고 나갔다. 그는 700마일이나 되는 케이블을 새로 구매 하였으며 건설 작업에 투입될 기계를 새로 제작했고, 전문가들을 초빙해서 완전히 새로운 건설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공사는 여전히 순조롭지 않았으며 급기야 대부분의 투자자가 손을 떼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여러 방법을 시도하는 필드는 마침내 케이블이 끊어지지 않고 완벽하게 설치했으며 시험통신에도 성공했다. 하지만 그를 비롯한 관계자들이 샴페인을 터뜨리려고 준비하던 때 해저 케이블에 다시 문제가 발생했다는 절망적인 소식이 들려왔다. 이 때 다른 사람들은 모두 절망했지만 필드는 여전히 담담했다. 필드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새로운 투자자를 찾았으나 실패로 돌아갔고 해저 케이블 건설 사업은 문 닫기 일보직전이었던 그는 새로운 회사를 세우고 다시 새롭게 투자자를 물색해 공사 재개를 위해 열심히 뛰었다. 후에도 수많은 실패와 난관에 부딪혔지만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모두 극복했다. 1866년 7월 필두는 해저 케이블 건설에 성공했고, 그는 “신께 감사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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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1-25
  •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의 핵 이야기
    영국의 저명한 세계적인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의 핵 이야기이다. 러셀은 평화 운동의 구체적인 목표를 핵 반대 운동에 두고 있었다. 그는 오늘의 현실을 마치 강당 안에 위험하기 그지없는 폭탄을 배치해 놓은 것으로 비유했다. 누군가 돌을 던지거나 담뱃불을 던지면 폭탄은 폭발하게 되고 우리는 모두 죽음을 모면할 수 없게 된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협의한 끝에 큰 종이에 이 폭탄에 돌이나 담뱃불을 던지면 우리는 모두 죽게 될 테니 던지지 말라고 쓴 후에 ‘UN’이라는 도장을 찍어 붙여 놓았다. 그리고는 이제 안심해도 된다며 한숨을 돌렸다. 우리는 그런 식의 평화를 유지하고 있다는 경고를 했다. 지금 보유하고 있는 핵무기를 다 쓴다면 인류의 문화권은 모두 사라지고 말 거라며 절망적으로 호소했다고 한다. 무슨 말인가? 오늘 날 세계의 지도자들에게 치졸한 정권의 야욕을 위해 위험한 핵전쟁을 삼가하고 두려워하라는 말이다. 핵전쟁은 자연을 초토화하고 인류를 멸망시키기 때문이다. 나는 요즘 한 통계에서 1, 2차 세계대전의 사망자 수를 읽고 큰 충격을 받았다. 내용을 보면 1차 세계대전의 사망자 수는 거의 900만 명에 이르고, 부상자 수는 2000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이토록 많은 희생자를 내고도 사람들은 정신을 못 차렸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지 21년 만에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2차 세계대전의 사망자 수는 5,200만 명에 이른다고 하니 1차 세계대전의 사망자 수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다. 우리나라 2015년도 인구수 보다 많다고 한다. 2차 대전 동안 한 나라의 인구가 통째로 없어진 것이다. 인류는 1, 2차 세계대전 이전에도 끊임없이 전쟁을 했고, 그 후에도 전쟁을 했으며 지금도 한 쪽에서는 크고 작은 전쟁을 하고 있다. 아인슈타인이 이런 말을 했다. 만약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난다면 어떤 가공할 무기가 사용될지 나도 모른다. 하지만 그다음 전쟁에서 무엇을 가지고 싸울지 나는 확신할 수 있다. 인류는 돌을 가지고 싸울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말이 의미심장하다. 만일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난다면 인류는 다시 석기시대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 3차 세계대전은 인류가 오랜 시간 동안 목숨을 걸고 얻어낸 문명을 모조리 전쟁의 잿더미로 만들 것이라는 뜻이다. 혹 겨우 살아남은 소수의 사람들도 문명 이전에 석기시대로 돌아가 돌을 가지고 싸울 거라는 아인슈타인의 말은 섬뜩하다. 그렇다면 다시 석기시대로 돌아간 소수의 사람들은 싸우지 않을까? 그들이 돌로 싸울 거라고 아인슈타인은 예언했는데 그들 또한 밥그릇, 싸움을 할 거라고 아이슈타인은 생각한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 인류가 어떻게 하면 핵전쟁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 이제라도 세계의 지도자들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말을 기억하고 그 정신을 실천해야 한다. 이 말은 ‘직위’에 따른 도덕적 의무를 의미한다. 보통 부와 권력 명성은 사회에 대한 책임과 함께 해야 한다는 의미로 쓰인다. 하지만 사회지도층들이 국민의 의무를 실천하지 않는 문제를 비판하는 부정적인 의미로도 쓰인다. 원래 노블레스는 ‘닭의 볏’을 의미하고 오블리주는 ‘닭의 노른자’라는 뜻이다. 이 두 단어를 합쳐서 만든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닭의 사명이 자기의 벼슬을 자랑함에 있지 않고 알을 낳는데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이 말의 어원을 보면 14세기 백년전쟁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프랑스의 도시 ‘갈레스’는 영국군에게 포위를 당했다. 갈레스는 영국군의 거센 공격을 막아내지 못하고 결국 항복을 하게 된다. 그 후에 영국 왕 에드워드 3세에게 자비를 구하는 갈레시의 항복에 사절단이 파견된다. 그러나 점령자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모든 시민의 생명을 보장하는 조건으로 누군가가 그동안의 반항에 대해 책임을 져야한다. 이 도시의 대표 6명이 목을 매 처형 받아야 한다. 갈레 시민들은 혼란에 처했다. 누가 처형을 당해야 하는 지를 논의하게 되었다. 모두가 머뭇거리는 상황에서 갈레시에서 가장 부자인 와스타슈드 생피에르가 처형을 자청하였고 이어서 시장, 상인, 법률가 등의 귀족들이 처형에 동참하게 되었다. 그들은 다음 날 처형을 받기 위해 교수대에서 모였다. 하지만 임신한 왕비의 간절한 간청을 들은 영국 왕 에드워드 3세는 죽음을 자초했던 시민 6명의 희생정신에 감복하여 살려주었다. 이 이야기가 역사에 의해 기록되고 높은 신분에 따른 고귀하게 하게 태어난 사람은 고귀하게 행동해야 한다는 뜻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라는 말이 생겼다. 과거 로마 귀족들은 자신이 노예와 다른 점은 신분이 다르다는 점이 아닌 사회적 의무를 실천할 수 있다는 사실이라고 생각할 만큼 명장 한니발의 카르타고와 벌인 포에니 전쟁에 참여하였고 16년간의 제 2차 포에니 전쟁 중에는 13명의 집정관이 전사하게 되었다. 이러한 정신이 있었기에 로마제국은 1000년의 역사를 자랑하며 찬란한 문화의 꽃을 피워 후손들에게 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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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9-27
  • 향기의 원천을 찾아다닌 사향노루 한 마리
    사향노루 한 마리가 있었다. 그 노루는 코끝에 스며드는 향기에 늘 마음이 끌렸다. 어디서 나는 향기일까? “으음 난 이 향기가 너무 좋아!” 사향노루는 그 향기가 자신의 몸에서 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사향샘이 있는 사향주머니가 배꼽과 생식기 사이에 있어 암컷이 그리울 때면 거기서 향기가 난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세월이 흐를수록 그는 그 향기에 더욱 매혹되었다. 이 향기는 정말 어디에서 나는 것일까? 난 이 향기가 나는 곳에 가보고 싶어! 사향노루는 향기의 원천을 찾고 싶다는 열망을 억누르지 못하고 멀리 길을 떠 떠났다. 산을 넘고 물을 건너고 사막을 가로질러 갔으나 그 향기가 어디에서 나는지 알 수 없었다. ‘세상 끝까지라도 찾아갈 거야’! 이윽고 경계선까지 다다랐지만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하루는 높은 절벽 위로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절벽 어디에선가 향기가 계속 나긴 나지만 향기의 원천이 어디인지 여전히 알 수가 없었다. 어쩌면 저 아래인지도 몰라 사향노루는 향기를 찾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그만 절벽 아래로 힘껏 뛰어내리고 말았다. 순간 처참하게 부서진 그의 몸에서 짙은 향기가 퍼져나갔다. 헌데 사향노루가 자기 몸에서 향기가 난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런데도 자기 몸에서 그토록 상쾌한 향기를 나는 줄 모르고 일생동안 그 향기의 원천을 찾아다니다가 결코 죽음을 맞이했다. 참으로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사향노루가 자기를 바라보고 그 몸에서 향기가 나는 것을 알았더라면 그런 불행한 삶을 살지 않았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 인생들은 어떠한가? 우리들도 내 몸에서 나오는 향기의 원천을 모르고 외적조건에서 찾으려고 방황하고 있지는 않았던가? 여기서 이 향기는 창조주께서 우리가 세상에 태어날 때 주신 은사, 혹 재능이나 강점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재능이나 강점을 발화하면 인생의 향기를 주위에 날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우리는 자신에게 있는 향기, 지능, 강점을 발견하여 선용하고 있을까? 나는 솔직히 말해 하나님께서 이미 주신 은사 즉 향기를 내 자신에게 찾지 않고 외부 조건에서 찾기 위해 얼마나 시간을 낭비했는지 모른다. 그럼 나뿐일까? 아니다. 많은 사람이 이 시간에도 나처럼 이미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를 자신에게 찾지 않고 외적조건에서 찾으려고 세월을 허송하는 것을 본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요즘 서정현 작가의 저서 인생편집에서 소개하는 미국 하버드대 교수이자 심리학자 ‘하워드 가드너, 박사의 다중 지능 8가지 이론을 읽고 큰 깨달음을 얻었다. 그리고 그 책의 내용을 존경하는 독자들에게 알리면 큰 교훈이 될 것 같아 이를 소개한다. 먼저 대인관계 지능이다. 이는 사람관계를 능숙하게 만들어가는 지능인데 이는 리더십이 강한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상대방의 몸짓, 말투, 표정만으로 기분을 민감하게 예측한다고 한다. 다음으로 내면 지능이다. 이는 자신을 잘 아는 능력, 장단점을 인식하고 스스로 결정을 내리는 능력, 자신의 감정, 기분을 잘 조절하는 능력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지능이 높으면 최악의 환경에서도 최선을 일구어 낸다. 자기주도 학습을 잘 할 수 있다. 다음으로 공간지능이다. 색깔, 선, 모향, 형태 등 시공간 세계를 정확하게 인식하는 능력, 사물을 도표, 지도, 그림으로 묘사하는 능력이다. 다음으로 논리수학지능이다. 숫자 규칙 명제 등의 상징체계에 익숙하다. 창조하며 해결하는 능력, 패턴을 잘 발견하는 능력이다. 다음으로 신체 운동 지능이다. 이 지능은 유연한 몸의 움직임을 말한다. 이 지능이 높으면 학창시절 엉덩이를 붙일 수 없다. 가만히 있지 못하는 이유는 에너지가 높은 탓이다. 주로 경찰, 군인, 스포츠, 모델, 엔터테인 계통으로 나갈 사람들이다. 다음은 음악지능이다. 이 지능은 단어의 소리, 리듬, 곡조의 멜로디, 음질에 민감한 능력, 음악을 이해하고 연주하는 능력이다 이 지능이 높으면 학창시절 음악을 하겠다고 한 번씩 나선다. 다음은 언어 지능이다. 언어 지능은 살아가는데 논리수학지능만큼 중요하다. 우리가 듣고, 읽고, 말하고, 쓰고 하는 모든 것들이 여기에 해당된다. 다른 조기교육은 다 반대해도 언어 지능은 논리수학 지능만큼 중요하다. 다음은 자연탐구지능이다. 이 지능은 과학에 대한 호기심이나 식물, 동물들에 관찰을 포함한다. 과학책을 즐겨 읽거나 박물관, 과학캠프, 실험 관찰에 대한 호기심을 갖는 아이는 이 지능이 높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다중 지능 연구를 하는 서정현 작가는 그의 저서에서 이런 말을 했다. 나는 다중지능 연구를 하면서 여러 가지 재능을 가진 사람이 꼭 원하는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오히려 한 가지에서 뚜렷하게 못하다보니 다른 재능으로 갈아타기 쉬웠다. 이들은 가끔 인생을 제로섬으로 만들었는데 그럴 때 원하는 인생을 만날 수 있을까? 시간이 소모적으로 흐른다면 우리 인생은 모래성 쌓기와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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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9-06
  • 한 아버지의 아들 대학 등록금 이야기
    오늘 이야기는 어떤 저명한 시인과 그의 아들 대학등록금의 미담이다. 내용을 보면 그의 아들이 군에서 제대하고 복학 준비를 할 때였다고 한다. 복학 신청을 하려면 무엇보다도 등록금을 내야 하는데 납부 기간이 지나도록 아들은 등록금 낼 생각을 하지 않더라는 것이다. ‘왜 등록금을 내야 한다는 말을 안 하니?’ 라고 궁금해서 묻자 아들은 복학 신청을 했는데 학교 인터넷 사이트에 등록금 고지 내용이 뜨지 않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은근이 걱정이 되어 자세히 알아보라고 했다는 것. 아들은 ‘학교 회계 부서에 전화해보니 등록금을 내지 않아도 복학이 된다고 염려하지 말라’고 하더라는 것이다. 군에 입대하기 전 이미 등록금을 내고 입대했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럴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는 것이다. 아들이 군 입대 휴학을 하려고 하자 학교 측에서 그 학기 등록금을 미리 내야 한다고 해서 냈다가 되돌려 받은 기억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집안 형편상 등록금 내기 힘들어 군에 먼저 가려는 학생은 어떡하느냐, 이건 재고해봐야 할 문제다’ 그는 그때 학교 측이 일 처리를 잘 못한다고 항의 전화를 해서 되돌려 받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했다. 그 후 학교 측에서는 복학할 때 등록금과 인상분은 받지 않는다는 취지에서 그렇게 한 것이라고 해명하면서 반환해 주었다는 것이다. 그래도 혹시 그가 잘못 기억하는 게 아닐까 싶어 지난 통장을 찾아보자 분명 입금이 돼 있었다. 아들이 입대한 뒤 입금이 되었기 때문에 아들은 그런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아니다. 돌려받은 게 분명하다. 등록금을 내야한다’는 말을 그렇게 했지만 한순간 그 마음이 흔들리더라는 것이다. 학교에서 내라고 하지도 않는데 이대로 그냥 지나가 버릴까? 그때 아들은 말을 하지 않았지만 한 순간 굳이 낼 필요가 없지 않느냐 하는 듯 하는 표정이었다고 했다. 그렇지만 그는 이내 그런 생각을 버렸다. 아버지인 내가 부정한 모습을 보이면 아들이 앞으로 부정을 긍정하면서 살아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용기를 내어 아들한테 분명한 태도로 이렇게 말 했다고 한다. ‘이건 담당자의 실수다. 네가 복학해서 다시 공부하는데 아버지인 내가 그런 잘못을 저지를 수 없다. 항상 올바른 태도를 지니고 사는 게 중요하다’ 그는 아들에게 담당자를 찾아가 언제 얼마가 학교 측 명의로 제 통장에 입금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하고 다시 등록금을 납부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그는 지금도 그때 일만 생각하면 아찔하다고 했다. 당연한 결정이지만 얼마나 잘한지 참 다행이다 싶을 때가 있다고 회상을 했다고 하면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런 사실을 숨긴 채 등록금을 내지 않고 복학하게 했다면 아들 앞에 두고두고 얼마나 부끄럽겠습니까? 그렇게 속여 대학을 졸업하게 해서 아들이 사회에 나가 무엇을 해주기를 바랄 수 있겠습니까?’ 한때 그것은 일상의 사소한 일로 여겼지만 세월이 갈수록 인생의 중요한 일로 느껴진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요즘 아들 앞에 항상 떳떳하고 당당하다고 한다. 아들 또한 자기 자신과 이 사회 앞에 늘 당당한 태도로 지니고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언젠가 그는 지나가는 말로 아들에게 ‘너라면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 것이냐’ 물어보자 아들은 ‘당연히 등록금을 내야지요’ 하더라는 것이다. 그는 그 말을 듣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고 했다. 나는 이글을 읽으면서 장하고 정직한 한 아버지의 떳떳하고 아름다운 아버지 상을 보았다. 그리고 나는 자녀들 앞에서도 떳떳하게 살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자녀들 앞에서만은 정직하게 살았는지 왠지 나는 자신이 없는 것 같다. 그럼 나만이 그럴까? 아니다. 오늘 날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아버지들의 모습에서 정직함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거짓과 불의가 난무하는 시대라는 것이 차라리 옳은 표현인 것 같다. 거짓을 말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나의 이익을 내세워 상대를 짓밟으려 하며, 위선으로 가장하는 것이 비일비재한다. 이제는 어떤 분의 말대로 등불이라도 켜들고 정직한자를 찾아야 할 것 같다. 그러나 아무리 세상이 거짓되며 악한 자들로 가득할지라도 우리 아버지들만은 하나님의 성품을 본받아 정직하게 바르게 살아야 하지 않을까? 하나님이 정직을 원하시는 까닭이요, 또한 그것이 진정한 우리 그리스도인의 참 모습이자, 도리이고 축복의 통로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정직한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않고 주시며(시 84:11) 환난 가운데에서도 그를 보호해 주시며 정직한 자의 집을 흥하게 하시고(잠 14:11) 대로(잠 15: 19)를 열어 주신다. 뿐만 아니라 정직한 사람은 주안에서 마음이 평안해 늘 즐겁고, 걱정이 없어 깊은 잠을 잘 수도 있기 때문이다(시 1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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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8-21
  • 철학자 키에르 케고르의 신앙 이야기
    많은 철학자 중에는 무신론자도 있고 신앙을 가진 이들도 있다. 그 중 키에르 케고르는 참 독실한 그리스도인이다. 그의 저서를 읽어 본 독자라면 그를 철학자보다는 기독교인에 가깝다고 한다. 이제 그의 향기 나는 신앙을 생각해 본다. 그는 자신이 유년기에 엄격한 기독교 교육을 받았고 평생 그것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고 술회 한바 있다. 한때 성직자가 되려 했고 수많은 종교 관련 책도 집필했다. 키에르 케고르는 어떻게 그리스도인이 되었을까? 아마도 그의 출생의 비밀과 연관성이 있어 보인다. 그의 어머니는 아버지 미카엘의 집 하녀였다고 한다. 그의 어머니는 요즘 말로 아버지 미카엘에게 성폭행을 당했고 그를 임신했다. 훗날 아버지는 그의 모친과 결혼하지만 독실한 기독교인으로서의 죄책감에 시달렸다. 게다가 자신보다 먼저 떠난 자식들의 죽음을 보면서 많이 괴로워했고 자신의 죄책감을 상쇄하기라도 하듯 키에르 케고르에게 엄격한 기독교 교육을 시켰다. 성년이 된 키에르 케고르가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었을 때 ‘큰 혼란’을 겪게 되었다. 기독교인 가정의 환경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혼란이 더 컸을 것 같다. 그의 머릿속을 가득 채운 것은 허무, 죄, 벌, 죽음, 신, 우울한 징조였다. 그렇다고 키에르 케고르가 하나님께 달려간 것은 아니었다. 그는 감각적이고 세속적인 즐거움을 추구하며 살았다. 아버지에 대한 심리적인 반발인지 모를 일이다. 세월이 흘러 그의 아버지는 죽음을 맞게 된다. 이 사건은 키에르 케고르로 하여금 삶과 죽음을 깊이 있게 생각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출생의 비밀, 어머니에 대한 연민, 아버지에 대한 혐오와 반발심, 증오의 대상으로서의 죽음을 생각했던 것이다. 그리고 삶과 죽음의 의미에 대한 탐구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키에르 케고르의 모습으로 만든 단서로 작용했을 것 같다. 우리는 어떠한가? 죽음이 우리 주변에 나타나지도 않고 찾아오는 일도 없을 것으로 생각하고 살고 있지 않는가? 이에 철학자 하이데거는 사람들에게 ‘죽음을 선취하라’ 즉, 죽음에로 앞당겨 달려가 보라고 권했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영원한 삶은 인류의 오랜 꿈인데. 그런데 나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하고 피하고 싶어 한다. 자발적인 안락사, 순교자, 목숨을 던지는 전쟁영웅이 아닌 이상 그의 말처럼 인간은 죽음 앞에서 도피한다. 왜 하이데거는 죽음에로 미리 앞서 달려 가보라고 말하는 것일까? 이제 내가 죽음 앞에 서 있다고 상상해 보자. 10년 혹은 20년 후 나의 죽음이라는 사건을 생각해 보자는 말이다. 나는 어떤 모습으로, 어떤 흔적을 남긴 채 어떤 죽음으로 타자에게 받아들여질 것인가? 죽음의 순간에 내가 현재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고 에너지를 다 쏟아 부었던 일들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죽음에로의 선구란 미래의 사건으로서 나의 죽음을 미리 앞당겨 생각해 보는 것이다. 그러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나의 미래의 죽음의 사건이 현존재인 나의 세계와 존재를 새롭게 바라보는 계기로 제공해 줄 것이다. 하이데거가 말하는 죽음에의 선구는 본래적인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기 위해 스스로 미리 죽음과 직면해보는 실존의 중요한 사건이다. 자기 삶을 새롭게 조명하고 재규정하는 위와 같은 실존적 사건을 내적으로 감행할 때 지금과 다른 삶의 여정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이제 던져진 존재에서 스스로 자신을 던지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죽음을 생각지 않고 살다가 불시에 종말을 맞이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후회한다. 철학자 알베르 카뮈(Albert Camus)의 이야기이다. 식민지 알제리의 이민 2세인 카뮈는 포도 농장의 가난한 노동자의 아들로 출생했다 출생한지 1년 만에 그의 아버지는 1차 대전에 징집되어 29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뜨고 말았고 그의 어머니는 청각 장애인이었고 문맹인 이었다. 그는 부성을 그의 외삼촌과 초등학교 교사 루이 제르맹에서 찾았다. 이후 ‘이방인’ 그는 스스로 이 소설로 하루아침에 유명인사가 되었다고 술회한바 있다. 이후 출간된 ‘시지프신화, 페스트, 반항하는 인간‘ 등은 그를 실존 소설의 대가로 각인시켰고 마침내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하지만 그의 명성은 오래 허락되지 않았다. 그것이 그의 운명이었을까? 그가 자전소설 ’최초의 인간‘을 쓰던 해 그의 인생에서 가장 화려한 시기 중의 한 해에 그만 자동차 사고로 유명을 달리하고 말았다. 이것도 그가 말한 삶의 부조리일까? 키에르 케고르도 질랜드(zaeland)로 불리는 경험이 인생의 중대한 터닝 포인트였다. 대학 시절 그는 코펜하겐을 떠나 덴마크인들이 자주 찾는 질랜드 등 섬을 두루 여행했다. 먼 바다와 아득한 풍경을 보고 절벽 위에서 맞는 바람의 소리를 들으며 사색했고 깊은 내면의 소리를 들었다. 질랜드 사건은 자신의 내면을 알고 자신을 발견하고자 한 ‘실존적’ 사건이었다. 그의 삶은 이 사건 이전과 이후로 분명히 나뉜다. 그는 마침내 성경의 탕아처럼 주님의 품으로 돌아왔다. 우리도 키에르 케고르처럼 세미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체험을 하자.
    • 칼럼
    • 목회자
    2019-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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