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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일을 저지 하는 자들(출 10:20-23)
- 바로 왕은 마지막 타협안으로 양과 소는 두고 너희들만 떠나라고 합니다. 여기서 양과 소는 누구를 의미하는 것입니까? 그 희생 제물은 다름 아닌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상징하는 희생제물이 없이 어떻게 속죄를 위한 희생을 드릴 수 있겠습니까?사단의 음모는 그들의 삶에서 예수님을 제외시키려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거짓 선지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제외하고 자기가 예수님의 자리에 앉아 내가 그로라고 선전하고 있는 것이나 흡사하지 않습니까? 결단코 이 희생이 없이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출애굽 할 수도 없습니다.거듭난 그리스도인은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 흘림을 통하여 출애굽하였으며, 그 희생과 함께 동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24절을 보십시다. 바로의 제의에 한 마리도 남길 수 없다. 이것이 모세의 신앙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되어야 하고 바쳐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소유이고 그들이 소유한 가축도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한 마리도 애굽에 남겨 둘 수 없다는 것입니다.“삼림의 모든 짐승들과 천산의 생축이 다 내 것이며 산의 새들도 나의 것이며 들의 짐승도 내 것임이로다(시 50:10-12). 이 세계는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여러분이 가진 모든 것은 다 주께로부터 온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고전 6:20).너희 몸은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20). 바로가 제시한 네 가지 타협안을 생각해 봅시다. 이 땅에서 희생을 드리라(8:25). 너무 멀리는 가지 말라(28). 너희 남정만 가서 섬기라(10:11). 양과 소는 머물러 있게 하고 갈지니라. 이 타협안에 대하여 모세가 한 것처럼 단호히 거부할 수 있겠습니까?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받기를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들과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 했다고(히 11:24) 말씀하고 있습니다.모세가 어리석어서 그러했습니까? 어려서 철이 없어서 그러했습니까? 그는 애굽의 모든 호화로운 문물을 다 몸에 익힌 장자의 권위를 가진 자였습니다.성도 여러분 우리는 사단과 타협할 필요가 없습니다. 단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고 행하면 하나님께서 불기둥과 구름 기둥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성도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세상과 죄악의 유혹이 오고 사단의 타협이 있어도 결코 타협은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시작하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루실 것을 믿고 말씀 의지하고 사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신앙으로 살아 갈 때에 당하는 어려움이나 고통이나 내 힘으로 감당 할 수 없는 무능력 감당할 수 없는 부조리한 현실의 모든 문제가 생겨도 낙심하지 말고 포기하지 맙시다.결국에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가 실현되며 하나님의 나라는 실현 되어 갈 것입니다. 무엇인가 여러분을 향하여 시작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니 그 분께서 끝을 맺게 해 주실 것입니다.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 할 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약 4:7). 하나님은 우주 만물의 통치자이십니다. 하나님은 자연과 우주를 지배하고 계십니다. 오늘날 과학의 발달로 급속도로 자연이 개발되고 하나님이 주신 인간 두뇌까지 점령해 가는 추세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것은 하나님이 지으신 지배력과는 다른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지배력은 그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며 영원불변의 원천적 힘이시지만 인간의 공은 하나님께 부여받은 힘에 불과합니다.따라서 생명과 우주의 주인공이 되시는 그 분께서 지나온 과거도 그러 하였거니와 앞으로도 역사를 진행하여 가실 것입니다. 우리는 바로와 같이 하나님의 역사와 권위에 맞서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이제 하나님을 대적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그의 뜻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성도 여러분들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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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일을 저지 하는 자들(출 10: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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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적 어두움의 재앙(출 10:1-20)
- 본문은 여덟 번째 재앙인 메뚜기 재앙에 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일곱 번의 재앙을 당하고도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듣지 않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메뚜기 떼가 온 애굽 지역에 가득하여 우박에 상하지 않은 모든 채소와 나무를 먹어치우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바로는 재앙이 지나자 다시 마음이 강팍하게 되었습니다.하나님은 큰 권능과 능력으로 당신의 뜻을 이루시는 절대 주권자이십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하나님께로부터 구원의 약속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하는데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강하게 하심으로 인하여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떠나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강케 하셨을까요?첫째는 바로 왕이 이스라엘을 끝까지 해방시키는 것을 지연시켰고, 둘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아니함이었고, 하나님 편에서는 하나님의 하나님 됨을 알리기 위함 이었습니다. 즉 하나님의 권능을 나타내시고자 함이었습니다. 본문 1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내가 그의 마음과 그의 신하들의 마음을 완강하게 함은 표징을 그들 중에 보이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권능을 알게 하시며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 해도 결국은 하나님의 말씀같이 되게 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 이십니다(출 7:13).주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심으로 그가 그들에게 듣지 아니하였으니 주께서 말씀 하신대로 되었더라. 이방인들에게 드러내 보이시고 영광 받으시기를 원하십니다.하나님께서 당신의 권능을 보이시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직접 기적을 행하시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백성을 도구로 사용하여 권능을 보이시는 것입니다. 모세와 아론을 애굽에 파송한 이유는 애굽에서 인도해 내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바로가 이스라엘을 보내지 않은 것은 곧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는 행위가 됩니다. 바로 왕은 메뚜기 떼로 인한 엄청난 재앙을 당하고도 계속 불순종합니다. 메뚜기 떼들은 애굽 사람의 영혼을 황폐케 하는 악령의 모형이며 그림자에 불과합니다. 메뚜기를 통한 재앙의 무서운 점은 우박으로 인한 재앙으로부터 운좋게 남아있는 애 굽의 모든 채소나 푸른 것을 쓸어 버린다는데 있습니다. 즉 앞선 재앙에서 하나님의 자비로 남겨놓은 것을 이번에는 쓸어버린다는데 있습니다.메뚜기 떼들은 오늘날 영생의 말씀이 아닌 인본주의 신앙 비성경적인 모든 학문과 사상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흑암이 온 애굽을 덮은 것은 구원을 받지 못한 영혼들의 캄캄한 어두운 상태를 보여주는 것입니다.“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 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곧 구속 죄 사함을 얻었도다”(골 1:13). 흑암은 지옥의 또 다른 명칭 입니다(유다 1:13-16).중세시대를 흑암의 시대(계6:12)라고 부르는 것은 영적인 캄캄한 어두움이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캄캄한 어두움은 진리가 왜곡되고 말씀을 떠난 심령은 어두움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아직 잠시 동안 빛이 너희 중에 있으니 빛이 있을 동안에 다녀 어두움에 붙잡히지 않게 하라. 어두움에 다니는 자는 그 가는 바를 알지 못하느니라”(요 12:3). 애굽 온 땅에 흑암의 재앙을 내리신 것은 태양이 신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심과 동시에 사단이 잠시 어둠의 깊은 곳인 무저갱에 갇힐 것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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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적 어두움의 재앙(출 1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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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굽과 타협하지 말라(출 8:16-22)
- 애굽은 중생하지 못한 자의 영역 곧 사단의 지배아래 있는 땅이다. 우리는 그곳을 멀리멀리 탈출해야만 한다. 하나님께서는 홍해를 경계로 이스라엘 민족과 애굽인을 구별하셨다.그리고 홍해를 건너는 것을 세례의 모형이라고 하셨다(고전 10:1-2). 세례받기 전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기 전 우리는 모두 이방인이었고 애굽의 백성들이었다. 누구든지 거듭나고 변화받기 전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열심이 없는 사람들과 다를 바 없다. 바로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 곁에서 멀리 떠나기를 원치않았던 것같이 사단은 언제나 성도들이 자기 곁에서 멀리 떠나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것을 원치 않는다.‘우리는 멀리 가지 말라’는 이 사단의 미혹을 물리쳐야 한다. 하나님을 가까이 해야 한다. 왜 그러해야 하나?결혼 할 때 부부는 배우자에게 인생 전체를 놓고 헌신을 약속한다. 서로를 위해 살기로 다짐하는 것이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도 이와 같다. 따라서 우리는 사사로운 욕심 때문에 하나님께 드린 헌신을 잊지 말자.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거느리고 홍해를 건너온 후에 그들에게 “너희가 오늘 본 애굽인을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출 14:12)고 외친다.홍해를 건넌 후 앞을 향하여 3일 길을 간 사람은 가나안 약속의 땅이 더욱 눈앞에 가까이 다가오지만 애굽에서 멀리 떠나지 아니한 사람은 어떤 어려운 고난이 닥쳐올 때에 애굽으로 되돌아 갈 위험성이 많다. 이것은 너무 멀리 가지 말라는 사단의 미혹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애굽을 조금 떠나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애굽을 단절하고 가나안으로의 행진을 계속해야 한다.마지막 때는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차지도 않고 덥지도 않은 미온적 상태로 배교자가 나타나는 것은 사단의 세속주의 유혹 때문인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바로가 모세와 아론을 불러 아뢰되 너희는 이 땅에서 너희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라. 다급해지자 타협안을 제시한다.만일 이 타협안을 받아 드린다고 가정해 보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워주신 언약이 무엇 이었나? ‘구원자 메시야를 보내리라. 땅 (가나안)을 주리라.’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구원)을 얻으리라는 세 가지로 요약이 된다.이는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그리스도를 보내심으로 천하 만민을 구원하시려는 계획을 이루시기 위해서 이스라엘을 그리스도가 태어나실 가나안 땅으로 인도 하시려는 하나님의 섭리를 거스리는 것으로 사탄은 악착같이 애굽에 붙잡아 두려고 발악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모세는 한 마디로 “그리함은 불가하니이다”고 거절을 한다. 애굽에 머물면서 바로와 하나님을 주로 섬기는 것은 불가능함을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다(출 8:27). 11절 애굽은 이 세상의 모형이고 이스라엘 민족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모형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애굽 땅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감사와 찬양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애굽에 있어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분은 하나님의 선민들이다.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말로는 출애굽 한다고 하면서 마음은 데마처럼 세상에 속해 있다. 우리는 애굽을 떠나 사흘 길(출 8:27)을 걸어야 한다.모세가 “그리함은 불가하니이다.”라고 말한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이 자기들의 죄를 버리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이고 그들이 옛날부터 내려오는 관습들을 타파할 만한 결심을 나타내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알려주신 방식대로 예배를 드려야만 한다. 세상도 사랑하고 하나님도 사랑하는 이 중 생활은 불가능하다.불완전한 예배를 탈피하고 하나님의 명령대로 우리가 하나님의 섬기기로 다짐하는 자만이 불 기둥과 구름 기둥의 인도를 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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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굽과 타협하지 말라(출 8: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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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협 하지 말라(출 8:1-15)
- 바로가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하자 하나님께서는 개구리를 하수에서 올라오게 하여 애굽 온 땅에 개구리로 덮이게 하는 재앙을 내리심으로써 권능을 나타내셨다.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겠다고 약속하여 모세가 개구리 떼를 물러나게 하였으나 바로는 마음을 걍팍케 하여 다시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지 아니했다.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첫 번째 기적으로 지팡이가 뱀이 되게 하신 것은 애굽의 모든 신들은 그 뿌리가 사단임을 암시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기적들이 나일강에서 시작하신 것은 애굽 사람들이 나일강을 신으로 섬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의 신이 오히려 사망을 가져다주는 것임을 알려 주시는 것이다.애굽의 술사들이 하나님의 기적을 모방하였는데, 지팡이가 뱀이 되게 하는 것, 물이 피가 되게 하는 것, 물에서 개구리가 올라오게 하는 것이다. 애굽의 술사들도 그러한 기적을 행하였지만 그러한 재앙을 그치게 할 수는 없었다. 온 세상에 개구리 같은 재앙을 퍼뜨릴 수는 있어도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함을 만천하에 들어낸 것이다.오늘날도 애굽의 술사 같은 종교들이 주님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기도 한다(마 7:21-22). 그러나 그들이 하는 일은 사단을 기쁘게 하고 사단을 추종하는 자들이다. 결국은 가증하고 더러운 저주의 심판만 가져오게 할 뿐이다.그들이 섬겼던 모든 신들은 복을 주기는커녕 그들에게 저주를 가져왔다. 우리도 육신을 쫓아가거나 세속을 쫓아가면 그들과 같이 멸망으로 갈뿐 이다. 왜냐하면 심은 대로 거두기 때문 이다(갈 6:8).개구리로 인하여 고통을 당하게 되자 바로는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이스라엘 백성으로 광야에 나아가 희생을 드리도록 하겠다고 약속한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개구리를 죽게 하시므로 개구리 재앙이 우연이 일어난 것이 아닌 하나님의 역사였음이 증명되었다.그러나 개구리가 제거되어 숨을 통할 수 있게 되자 바로는 다시 마음을 완강하게 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다시 거역하게 된다. 이와같이 어리석은 자는 고통 속에 있을 때에 정신을 차리지만 그 고통이 물러가면 다시 교만하여져서 멸망을 자초하는 죄악을 범하게 되는 것이다. 애굽의 바로왕은 두 번째 타협으로 광야에 나아가 하나님께 희생을 드리되 ‘너무 멀리는 가지 말라’고 하였다. 이 말은 세속주의를 끊지 말라는 사단의 유혹인 것이다. 멀리는 가지 말라는 바로의 말은 가기는 가는데 애굽 경내만은 벗어나지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면 왜 애굽만은 벗어나지 말라는 것인가?애굽은 사망의 그늘진 땅이요 우상의 도시다. 그곳에는 빛이 없고 생명이 없다. 말씀이 없고 안식일이나 경배의 장소나 성전이 없다. 사단의 지배아래 있는 곳이다. 이러한 곳에서 하나님께 경배를 드릴 수 없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그 땅을 속히 멀리 떠나야 하는 것이다.하나님께 바른 경배를 드리고 하나님을 바로 섬기기를 원하는 모든 사람은 모두 애굽을 탈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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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협 하지 말라(출 8: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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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을 모방 하는 자들(출 7:14-25)
- 애굽의 술객들이 모세를 대적한 것은 (딤후 3:1-9참조) 모세가 무엇을 하든지 그들이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단순히 모방한 것에 불과 하다.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증거에 대하여 세상에서 가장 악랄하게 대적하는 사단의 저항이 진리의 효과를 모방함으로써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들에 의해 행해진다는 엄숙한 사실을 배우게 된다. 이 부류에 속한 사람들은 선을 행하는 사람과 동일한 일들을 행할 수 있고 선한사람들이 말하는 동일한 언어를 구사하며 동일한 생각을 가질 수 있다.그러나 우리는 올바르게 분별해야 한다. 그런 부류의 사람들은 “얀네와 얌브레”가 모세를 대적한 것 같이(딤전 3:8) 자기를 사랑하며 세상을 좇아 진리를 대적하는 자들이다.그들에게는 “경건의 모양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들에게도 경건의 모양은 있다. 그런데 이 모양이 단지 습관적인 것이라는 데 있다. 여기서 경건의 능력은 하나님의 요구를 올바르게 인식 한다는 것이며 마음속에 하나님의 나라를 온전히 이루는 것이고 그 나라를 모든 삶과 성품을 통하여 일관성 있게 성취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과 같이 형식주의자들은 능력에 대하여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또한 알고자 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자신의 감정이 절제되고 자신의 마음이 순화되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들이 멸망에 이를 때까지 악한 성품 그대로를 내버려 두신다.그 예로 헤스본 왕 시온을 멸하시기로 작정하시고 그의 영혼을 방임하셨다. 결국 그는 강팍해져 이스라엘을 대적하다가 멸망하고 만다(삼상 2:22-21). 사실 우리도 원래 바로 왕처럼 완악한 존재들 이었다(엡 2:1-2). 그러나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끝까지 우리를 그 본래대로 버려두지 않으시고 그 크신 은혜로 붙들어 주심으로 강팍하여 멸망에 이르지 않게 하신 것이다(딛3:45).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에 늘 감사 하며 우리의 악한 본성을 십자가에 못 박고 날마다 온전하신 품성에 이르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점점 더 강팍해져 가는 것은 현대판 바로가 역사하는 이 영적인 전쟁에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을 더욱 힘있게 해주시기 위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참된 신앙을 추구해야만 하는 이유를 알 수 있게 된다. 사람들은 참된 신앙이 거짓된 신앙을 삼켜 버리는 그 순간까지 헛된 열정으로 그 거짓된 신앙을 추구 한다.아론의 지팡이가 다른 모든 자팡이를 무력화 시킨 이유 가 무엇일까 복음서는 우리에게 무서운 위험을 보여 주고 있다. 이 무서운 위험을 피할 유일한 길을 보여주고 있다. 복음서는 우리에게 저 너머의 진주 문을 보여주고 천사와 영광 받은 성도들을 바라보라 하신다. 그뿐만 아 니라 천국에서나 지옥에서나 아론의 지팡이가 다른 지팡이들을 무력화 시키도록 명한다.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사랑이 우리의 정신을 사로 잡기를 명하신다. 우리는 거룩한 신앙에서 전개되어 지고 있는 사랑에 대해서 듣고 배운바 있다.영광의 왕자를 죽음의 문으로 내려가게 할 사랑이 어디 있으며 수치와 조롱 속에서 문을 나서게 할 사랑이 어디 있겠는가? 우리는 이와 같은 사랑을 우리 마음속에 조금이라도 간직하고 있는가? 돌이켜 보자.사도 바울은 갈라디아 6장 4절에 “각 각 자기의 일을 살피라”고 권면하고 있다. 유다서에는 이런 자들을 향하여 이렇게 경고하고 있다. “바람에 불려가는 물 없는 구름이요 죽고 또 죽어 뿌리까지 뽑혀진 열매 없는 가을 나무요 영원히 예비 된 캄캄한 흑암에 돌아갈 유리하는 별들”이라고(유 12) 했다. 무엇을 말하는가? 자기 위치를 떠나 선을 가장하는 자들에 책망이시다. 이제 자기의 서야 할 바 위치로 돌아와 참 구원자시요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바로 인식하고 그를 따르는 자들이 되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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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을 모방 하는 자들(출 7: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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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강팍케 하셨나?(출 7:1-7)
- 오늘 성경은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강팍하게 하셨다’고 말씀한다. ‘강팍하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아케쉐’인데 목이 곧아 오직 자신의 주장만을 절대적인 것으로 아는 안하무인격인 모습을 말한다.영적으로 ‘강팍’하다는 뜻은 두 가지가 함축되어 있는데, 인간의 자유 의지와 하나님의 은총 사이에서 갈등이 생겨나고 있음을 의미하고 또 하나는 하나님의 뜻에 대적하여 인간의 의도적이고도 완전하게 저항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강팍해진 마음은 무지와 오류가 있는 곳에서는 생겨날 수 없다. 하나님의 역사를 가로막는 사단의 역사가 그 마음에 가득 차 있는 것을 의미하고 하나님의 역사에 일보의 양보도 할 수 없는 메마른 심령의 상태이다. 여러분은 인간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하는 이유를 아시는가?물론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하나님 앞에서 죄를 범했을 지라도 그 죄를 회개치 않음으로 멸망당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범죄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시기까지 하시며 사랑하셨다. 그리고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가 하나님께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원하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개를 마다함으로써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을 받은 자들이 성경에 많이 나와 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본문의 바로이다. 오늘 본문에 하나님께서 회개치 않은 바로와 그 백성들에게 무서운 재앙을 내리시기를 작정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점점 더 강팍하게 하시는 것은 믿는 이들로 신이 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또 다시 바로 앞으로 가는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 하신다‘볼찌어다 내가 너로 바로에게 신이 되게 하였은즉’이라고 말씀하신다. 여기서 신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가리키는 말로서 바로에 대한 모세의 우월성을 한 마디로 압축해 놓는다. 모세와 아론은 바로에게 ‘하나님의 백성을 보내라고’. 아무리 바로가 강팍해져서 서슬이 시퍼렇게 역사하는 것 같아도 결국 사단의 역사는 하나님의 능력 앞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고로 바로 앞에서 신이 되게 하시겠다는 의미는 모세에게 하늘에 속한 권능을 주시겠다는 것이다. 사람이 어떻게 신이 되겠는가? 그 당시 애굽 사람들은 사자같이 용맹스럽고 그 나라의 왕인 바로는 자신을 신으로 여겼고 신하와 백성들은 바로 임금을 신처럼 받들었다. 그러나 모세가 그들이 알지 못하는 신 곧 하나님을 소개하자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이다.바로의 마음을 강팍케 하였다는 말씀은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면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께서 독재자 하나님으로 전락하고 만다. 여기서 우리는 영적인 의미를 알아야 한다.만약 하나님께서 사랑과 공의로 다스리지 않으셨다면 처음부터 바로의 왕자를 죽이고 애굽 백성의 장자와 짐승들의 첫 새끼를 죽였을 것이고 그렇게 하였더라면 바로왕은 즉시 이스라엘 자손을 보냈을 것이다.그러나 하나님은 사랑과 공의로 다스리는 분이시므로 두려워서 억지로 복종하는 것을 원하시지 않으시고 마음의 문을 열고 순종하기를 원하신다.그러므로 단계적으로 역사 하시면서 깨우침을 주시면서 자기 자신을 발견 할 수 있도록 인도 하신다. 그런데 애굽의 바로는 강팍한 마음을 끝까지 버리지 않고 계속하여 악을 행하므로 결국은 멸망을 당하게 된다.바로는 10재앙을 당하고 나서야 비로소 무서움과 두려움 속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인정하고 이스라엘 자손을 출애굽 시켰던 것이다. 그러나 바로는 또 다시 이스라엘 백성을 뒤 쫓아간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도 더 이상 용서하지 않으시고 홍해에 수장시켜 죽게 하신다.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않는 자에게는 관계하지 않으신다. 우리에게 들려주는 확실한 교훈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마음이 무서운 심판을 믿게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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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강팍케 하셨나?(출 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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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구원(출 6: 6~9)
- 혼자 어떤 어려운 일을 결단하기 힘들 때가 있다. 일을 어떻게 해야 하나? 이 일을 계속해야 하나? 이 질문은 필자의 경험이기도 하다. 다문화 센터를 운영하노라면 여러 민족들과 대면하고 교류하다보면 이러한 생각을 할 때가 많다.누구를 만나 나의 어려움을 호소해 볼까? 상대가 떠오르면 만나서 나에게 부딪친 난감한 문제들을 호소해 보기도 한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실망만 않고 돌아설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때로는 힘겨운 일을 성급하게 처리하려고 하다가 감정을 상하기도 한다. 진정으로 나를 도울 상대가 누구일까? 사람보다 하나님이 강하시다는 사실을 본문은 일깨워주신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해방을 약속하셨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해 주시겠다고 하신다. 6절 “무거운 짐 아래서 데리고 나오며.” 이는 마치 대적으로부터 탈취물을 빼내듯이 애굽의 고역으로부터 이스라엘을 빼앗아 낸다는 것이다. 이 같은 하나님의 구속 활동은 곧 우리 영혼을 죄와 사망의 굴레에서 탈취해 내어 영광과 기쁨을 얻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총이다. “속박에서 자유롭게 하여.” 노예에게는 자유가 없다. 이와 같이 신약 시대에 와서는 하나님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하여 죄와 사탄의 속박아래 있던 우리를 자유롭게 하신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다른 사람에게 넘어갈 위험에 처해있는 자에게 종의 대가를 무를 수 있는 가까운 친척이 대가를 치르고 노에의 신분에서 자유케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가장 가까운 혈족이 되어 애굽의 고역에서 벗어나게 해 주신다는 것이다.이러한 복된 소식이 이스라엘 자손에게만 주신 것은 아니다. 오늘 우리들에게도 이러한 복된 소식이 선포되어진다. 낙망한 자에게 희망을 불안에 떠는 자에게 안식을 억눌린 자에게 자유를 주시는 복된 소식 곧 복음의 복된 소식은 오늘날에도 죄와 사망의 멍에를 메고 신음하는 우리 인간들에게 선포되고 있다. 죄와 죽음의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메시지보다 더 복된 소식이 또 어디에서 들을 수 있을까? 그러나 무지한 인간 들은 이 복된 소식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본문에 그러한 복된 소식에 대해 이스라엘 백성들의 태도를 보자. “모세를 듣지 아니 하니라”(9). 여기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듣기를 거부한 것은 단순한 인간 모세의 말이 아니라 모세에게 말씀 하시고 그를 보내신 하나님 자신을 거부한 것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기록했다. “전에는 선지자 들을 통하여 우리 조들에게 다양한 방법으로 말씀 하셨다고.” 하나님께서 이 마지막 날 들에 그의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히 1:1).모든 우상 종교의 신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는 사신(死神)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사신은 우상이요 죽은 신이 되는 것이다.그러나 우리가 믿고 섬기는 하나님은 친구와 같이 다정하신 아버지와 같이 자애로우신 분으로 우리를 품으시고 낙심에 빠졌던 엘리야를 어루만져 주시던 그 하나님은 자비와 긍휼을 베푸시며 말씀 하시는 아버지 하나님 이시다. 그러므로 계19:10절에는 “예수의 증거는 대언의 영이라 말씀하신다. 모세가 대언을 해야 할 대상은 첫째는 백성들이요 둘째는 바로입니다. 모세가 이와 같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하니 그들이 마음이 상함과 역사의 혹독함을 인하여 모세를 듣지 아니했다. 오늘날은 어떤가? 그분은 인간에게 구원과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하늘 영광을 버리시고 친히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말씀으로서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를 영접하기는커녕 십자가에 못 박기까지 했다(잠18:1).우리는 복음을 거부한 이스라엘 백성이나 바로처럼 되지 말고 우리의 육욕을 극복하고 이로 인한 영광된 미래 가나안을 소망 삼고 앞으로 나아가는 성도들이 되자(욥 2:10).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거역하는 영을 따르지 말고 순종하는 영을 좇아 하나님께서 예수를 믿는 자들에게 허락하신 가나안의 축복의 주인공들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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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
- 출애굽의 은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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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구원(출 6: 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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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안의 여정에서 (출 6:1-9)
- 가나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꿈에도 소원하던 하나님의 약속의 땅입니다. 왜냐하면 이 땅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허락하신 축복의 땅이기 때문입니다.이스라엘 백성들은 오랫동안 생각만 해도 지긋지긋한 고난과 역경의 노예생활로 인간 대접을 받지 못하고 천대 받으며 애굽의 종살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이 고통의 삶에서 벗어나 볼까? 하는 염원이 그들의 삶 속에 깔려 있었습니다. 그러한 그들에게 이제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가 왔습니다.가나안은 하나님을 믿는 자에게 주실 천국의 모형입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천국 백성이요. 하늘나라 시민들입니다. 그러면 왜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을 허락하시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첫째는 주시기로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출 6:4).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을 선민으로 택하시고 구원하시겠다는 아브라함 이후부터 계속되어온 바로 그 언약을(창 15:13 ~14) 기억하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본문에는 ‘여호와’란 이름으로 언약을 맹세하시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스라엘을 속박으로부터 구원해 주시겠다는 것과 이스라엘을 하나님백성으로 삼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언약을 끝까지 지키시는 하나님임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부르짖음을 듣고 계셨습니다. 그 하나님은 오늘 우리의 부르짖음도 들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둘째는 그들의 노예의 멍에를 벗겨주기 위해서입니다. 6절에 ‘무거운 짐 아래서 데리고 나오며’ 라고 했습니다. 주의 백성이 절대로 애굽의 노예생활하는 것을 하나님이 원치 않으십니다. 복음은 노예의 삶에서 자유의 삶을 누리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진리로 자유케 되기를 기뻐하십니다. 죄악의 멍에에서 벗어나기를 원하시며 질병과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기뻐하시는 우리 하나님 이십니다.셋째는 거룩하게 성별해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4절에 보면 “내가 또한 그들과 더불어 언약을 세워 가나안 땅 곧 그들이 타국인이 되었던 그들의 조상의 땅을 주기로 하였으며 이 구절에서 ‘여호와’란 이름으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세 가지 언약을 맹세하시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이스라엘을 애굽의 속박으로부터 구속하시겠다는 것이고, 이스라엘을 하나님 백성으로 삼으시겠다는 것이며, 이스라엘 백성을 조상들에게 약속한 땅으로 인도하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종교성을 주셨는데 인간들이 하나님을 바로 찾지 못했기 때문에 쓸데없는 우상 사신들 악령에 사로잡혀 영도, 육도, 불행에 빠지고 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게 된 것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우리는 땅에 발을 붙이고 살지라도 주의 백성이요. 우리 생명이 세상을 떠날 때에도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의 시민들입니다.5-7절을 주의깊게 살펴보면 이스라엘 자손들의 신분이 다음과 같이 바꾸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본래 그들은 “이스라엘 자손 즉 야곱의 자손이었습니다. 그들이 이제 애굽 사람의 종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야곱의 12 아들들로 출생 신분이 별 볼일 없는 신분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현재 노예 신분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그들을 구속하여 하나님 백성삼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하나님께서 애굽인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어내어 그 고역에서 너희를 구속하여 너희로 내 백성을 삼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니.” 바로의 종의 신분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바뀌게 되어진다는 것입니다. “너희를 하나님의 친 백성”삼아 주시겠다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여기에 출애굽의 목적이 있고 구속사역을 이루시려는 하나님의 경륜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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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안의 여정에서 (출 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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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 길쯤 가서(출 5:1-11)
- 성경에 보면 3일에 대한 기사가 여러 번 나옵니다(창 22:4). 삼일째 되던 날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멀리 있는 그곳을 보고 아브라함은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모리아 산에 제물로 드리기 위해 3일 길을 간 최초의 사람입니다.아브라함은 3일 길의 신앙을 통해 자기가 사랑하는 독자 이삭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자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이 3일 길 신앙을 통하여 복의 근원이 되고 3대 종교의(유대교 이슬람교 기독교)의 신앙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야곱의 3일(창 31:21-22), 요셉의 3일(창 42:17-18), 요나의 3일(욘 3:30), 호세아의 3일(호 6:2), 예수님의 3일 예언입니다(마 17:23). 그들이 그를 죽일 것이나 그가 셋째 날에 다시 일으키리라(마 17:22).하나님 자신의 강력한 손길을 보이시기 위함입니다.우리는 하나님께 경배를 드리되 인간의 자율적인 행위에 의해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리는 경배는 반드시 하나님의 명령하신 규범에 의해 드려야 참된 경배가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번제와 다른 제사를 드리는 것보다 그 분의 말씀 듣는 것을 더 좋아 한다고 하셨고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말씀 하셨습니다(삼상 15:22).바른 경배를 드리기 위해서 입니다. 3일 여정을 가서 하나님께 희생을 드리기를 원하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게 하심입니다. 제3일 여정을 통해 본 세 종류의 경배자들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1) 하루 길을 간 사람(애굽의 경내) 이 사람들은 이집트에서 떠나기는 했지만 홍해를 건너지 못했기 때문에 애굽 경내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입니다.성령으로 거듭나지 못한 자의 모형입니다. 애굽 경내의 경배는 바로 왕이 원하는 경배입니다. 바로는 하나님께 경배를 드리되 멀리는 가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많은 고기와 수확을 얻기 위하여 깊은 데로 가서 그 물을 내리라고 하셨습니다. 큰 고기는 물이 깊은 곳에 살기 때문입니다. 많은 고기를 잡기 위해서는 물이 깊은 바다로 가야 합니다.하나님께 참된 경배에도 깊은 감사, 깊은 말씀, 깊은 기도, 깊은 찬양이 수반되어야 합니다.(2) 이틀 길을 간사람이 사람들은 홍해를 건너기는 했지만 광야 초기에 원망과 불평을 일삼고 애굽을 동경하는 과거에 머문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나중에 우상 숭배와 간음 죄 등 범죄로 인해 경배에 실패하고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모두 광야에서 멸망하고 말았습니다.그들은 앞으로 광야를 통과할 때 마다 많은 어려움과 고통이 닥칠 때마다 불신앙을 드러내었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본보기가 된다고 하였습니다(고전 10:7-11). (3) 삼일 길을 간 사람3일 길을 가기 위해서는 바로 왕의 술책에 넘어가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많은 신자들이 이 사단의 4대 술책을 모르기 때문에 하나님께 바른 경배를 드리지 못하는 중요 원인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나의 신앙의 여정이 약 3일 길이 되어야 합니다. 3일 여정을 마친 후에 경배 드린 자들은 신령과 진리로, 3일 여정을 마친 후에 드린 경배는 영과 진리로 경배를 드린 자의 모형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3일 길을 가기에 피곤하고 고난이 많다 하더라도 하나님께 바른 경배를 드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가야 할 성도의 좁은 길입니다.(4) 삼일 길을 가는 비결3일 길을 가기 위해서는 바로와의 4대 술책을 거부해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바른 경배를 못하게 하려는 사탄의 술책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단의 술책을 이긴 자만이 애굽을 탈출하여 3일 여정을 갈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됩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날 바로와 같이 하나님을 조롱하고 성도를 업신여기는 일이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낙심치 말아야 합니다. 그들은 머지않아 피할 수 없는 하나님의 징계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우리는 그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불상한 그들의 영혼을 위하여 기도하고 그리고 어떤 조롱과 멸시를 받더라도 견딜 수 있는 믿음을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삼일 길을 묵묵히 걸어가 가나안의 축복의 주인공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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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
- 출애굽의 은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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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 길쯤 가서(출 5: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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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수하에 무엇이 있느냐?(출 4:1-15)
- 목동 다윗이 골리앗 거인을 물리치실 때 다윗은 손에 들려진 막대기를 사용하여 거인 골리앗을 쓰러트렸습니다. 또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를 3년 6개월 동안 굶주림에서 구원코자 하실 때 하나님은 엘리야를 사렙다 과부에게 보내셔서 그녀가 갖고 있던 마지막 밀가루와 기름으로 구원을 받게 하셨습니다.많은 사람들은 지금 자기의 손에 쥐어져 있는 것만 가지고서는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없다고 속단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어떤 경우이든 그에게 그 무엇을 쥐어주고 일하라고 하시지 않습니다.지금 자기가 들고 있는 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일을 하라고 불러 주셨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예수님께서 열두제자를 부르사 둘씩 짝을 지어 보내실 때 그들에게 당부하신 말씀입니다.“여행을 위하여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가지지 말라”(막 6:8-9) 전도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양식과 돈과 의복을 준비하여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것들을 가지고가지 말라고 명령하십니다.왜 그러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일을 하기 위해서는 일꾼이 전적으로 하나님만을 의지해야함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일 하고자 할 때 무엇을 생각합니까? ‘나는 돈이 없다’. ‘나는 가진 것이 없다’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것을 의지하고 사는 사람을 쓰시지 않습니다.네 손에 가진 것이 무엇이냐 지팡이 입니다. 보리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뿐입니다.적은 것을 가졌으나 가진 것을 활용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귀한 사명을 맡겨주십니다. 나는 주님의 일을 하고 싶으나 가진 것이 없습니다.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은 너무나 작은 것입니다. 보잘 것 없습니다. 라고 생각하는 분이 계십니까?주님께서는 지난날 지팡이 하나 들고 있는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무한한 가능성을 발견 하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적은 일에 충성된 자에게 큰일을 맡기시는 분이십니다. 다윗이 그러했습니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나님을 의지하며 믿음을 가지고 전능하신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타났습니다. 물맷돌을 골리앗 용사에게 힘껏 내 던졌을 때 그를 쓰러트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가끔 우리는 다른 사람이 가진 것들이 부럽고 상대적으로 자신은 참으로 초라해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리석은 인간의 생각일 뿐 하나님께서는 그것이 크든, 작든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요구되는 바는 내가 무엇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이 어디에 사용되어 질 수 있는가를 먼저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럴때 마침내 우리는 베토벤의 남은 한 줄의 바이올린으로도 우리가 생각 할 수 없을 만큼의 훌륭한 연주를 하게 될 것입니다. 모세에게는 지팡이가 유일한 재산이었습니다. 값어치 있는 것도 아니었고 단지 양치는 막대기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그 지팡이가 하나님의 손에 들려질 때 능력의 지팡이가 되었던 것입니다.막대기는 모세 자신을 나타냅니다. 우리도 또한 모세와 같고 지팡이와 같습니다.손에 쥐고 있는 것을 의지하고 있는 것을 주님께 맡겨 드립시다. 사랑하는 우리는 우리 힘으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존재들 입니다. 그러나 이 손을 주님 앞에 내어밀 때 주님께서는 우리의 손을 통하여 놀라운 일을 하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예수님이시니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 일을 이루실 것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삶 지체를 주님께로 드리십시오. 그리고 믿음으로 사십시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놀라운 축복을 내리어 주실 것입니다. 특별한 재능도 실력도 없는 나도 이 믿음을 가지고 다문화 센터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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