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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위대한 헌신을 우리 모두의 가슴에
- “당신의 희생 위에 오늘의 우리가 있습니다. 나라를 지켜낸 위대한 헌신, 그 숭고한 정신이 지금도, 여기에 새겨져 있습니다.”(내레이션) “나의 무덤엔 묘비가 쓸데없다. 고향에 묻히어 한 줌 흙 되면 그뿐. 이름 없는 꽃이나 한 그루 심어다오. 나는 썩어 거름이 되리니 고향의 봄에 한 송이 더 많은 꽃이 되리라.”(애국지사 노성원 묘비), “결코 뒤돌아보지 않는 강한 정신력으로 군인의 명예와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굴욕적인 삶 대신 명예로운 죽음을 택한 고인의 숭고한 군인 정신은 바로 우리들의 살신성인의 정신이었습니다.”(애국지사 육군 중령 장철부 묘비), “여기는 민족의 얼이 서린 곳 조국과 함께 영원히 가는 이들, 해와 달이 이 언덕을 보호하리라...”(국립서울현충원 현충탑) 윗 글은 지난 6월 6일 제70회 현충일 추념식에서 있었던 애국지사들의 묘비를 성우가 내레이션한 내용입니다. 글로 보면 평범할지 모르지만 남자 성우, 여자 성우가 번갈아 가며 낭독하였을 때 가슴이 먹먹하고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우리 대한민국의 자유와 번영을 위해 아낌없이 자신의 몸을 불사른 참전용사들의 희생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가 19년째 해오고 있는 참전용사 초청행사야말로 얼마나 고귀하고 가치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특별히 1951년 강원도 정선 전투에서 총상을 입고 전사하신 고 송영환 일병의 이야기를 듣고 마침내 눈물이 터져버리고 말았습니다. 고 송영환 일병의 딸 송재숙 님은 아버지가 어머니와 혼인신고를 하지 못하고 입대하셔서 큰아버지의 호적에 올리고 평생을 살아왔던 이야기를 들었을 때 너무 애처롭기 그지없었습니다. 73년 만에 시신이 발굴이 되고 복원된 아버지의 영정 사진을 뵈니 너무나 알 수 없는 반가움에 눈물이 났다는 이야기를 듣고 참 많이 울었습니다. 성우가 이런 묘사를 할 때는 더더욱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고 송영환 일병은 세 살배기 외동딸을 남겨두고 6·25전쟁에 참전했습니다. 내가 지켜낸 국토 어딘가에 쓰러져 돌아갈 수 없게 될지라도 긴 세월 그리움과 아픔을 남기게 되더라도 기꺼이 총탄과 맞서며 나아갔던 이유, 반드시 지켜야 할 소중한 나의 나라, 소중한 나의 가족이 있기 때문입니다. 목숨을 아끼지 않았던 희생 위에서 대한민국이 다시 일어나 빛나고 있을 때 가족의 품으로, 국민의 곁으로 돌아온 고 송영환 일병, 당신의 위대한 헌신을 우리 모두의 가슴에 새깁니다.” “(송영환) 사랑하는 나의 빵구 재숙아, 아빠가 미안하다. 언제나 너를 사랑한다.” “(성우) 새하얀 꿈처럼 기억이 가물합니다. 너무도 그립고 보고 싶은 아버지의 얼굴이 도무지 떠오르지 않아 울먹이며 지내온 긴 세월이었습니다. 아버지, 오랜만에 인사를 드립니다. 할머니께 자주 듣곤 했어요. 고된 일 마치시고 집에 오시면 밤이 늦도록 저를 업고 동네를 다니시며 빵구 재숙아, 우리 빵구 재숙아 부르셨다지요. 아버지의 얼굴도 목소리도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버지가 저를 얼마나 예뻐하고 아끼셨는지 알 것만 같습니다. 저는 풀잎만 보아도 아버지 목소리가 듣고 싶고 꽃잎만 보아도 아버지의 목소리가 듣고 싶은 세 살 아이 빵구 재숙입니다. 1951년 아버지가 전사하셨을 때 엄마와의 혼인신고가 되어 있지 않아 큰아버지의 호적에 제 이름을 올렸습니다. 그렇게 70년이 넘는 아득한 시간을 살아오다 이제라도 아버지를 다시 만나게 되어 형언할 수 없는 반가움에 눈물만이 흐릅니다. 이제 조금 알 것 같아요. 죽음이 두렵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목숨을 바쳐서라도 지키고 싶은 게 있으셨겠지요. 아버지가 지켜내신 것, 대한민국이었고 엄마였고 할머니였고 빵구재숙이었겠지요. 그래서 그렇게 쏟아지는 포탄과 총탄에 아버지를 내던지셨겠지요. 지난달 어버이날에 그립던 아버지의 얼굴을 처음으로 보았습니다. 복원된 아버지의 영정 사진 앞에서 저는 다시 옛날로 돌아가 아버지가 그렇게 안아주시던 아이가 된 듯했습니다. 매년 비어 있는 아버지의 묘역에 저는 아버지께 드린 것 하나 없는 것 같아서 심심한 마음을 담아 하얀 카네이션 한 송이를 드렸습니다. 아버지의 희생으로 남겨지고 지켜지고 새롭게 태어난 수많은 생명들이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으로 오늘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참 감사합니다. 참 고맙습니다. 다시 뵈올 그날까지 편히 쉬세요.”(고 송영한 일병의 딸 송재숙) 참전용사 초청행사를 위하여 기도해 주시고 헌신해 주신 모든 성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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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위대한 헌신을 우리 모두의 가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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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이제부터는 기도해 주세요”
- 저는 국민일보 이사를 하다가 어찌어찌해서 CBS 이사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CBS에서 이사장이 될 뻔도 했는데 저보다 더 훌륭한 분이 하시고 싶다고 해서 제가 양보를 했죠. 그런데 얼마 전부터 들려오는 소식에 의하면, CBS 내부에서도 그렇고 또 주변 이사님들이 저를 지원해 주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사장 후보로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총회장도 그렇고 한번도 선거를 해 본 적이 없고 다 추대로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양보하지 않는 한 분이 계셔서 어쩔 수 없이 선거를 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단 한 번이라도 누구를 만나서 밥을 먹은 적이 없습니다. 한마디로 선거 운동을 하나도 안 했다는 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CBS 이사장이 된 것입니다. 우리 합동 교단에서는 임시 이사장은 몰라도 정식으로 이사장으로 선출된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초유적인 사건이죠. 제가 당선될 수 있었던 것은, 정말 하나님의 은혜요 수준 높은 이사님들께서 선견지명을 가지고 저를 선출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저는 사실 우리 교인들에게 CBS 이사장 나간다고 아무런 말도 안 했거든요. 기도해 달라고 부탁도 안 했습니다. 더 많은 기도거리가 있는데 이걸 위해서 기도해달라고 하기에는 너무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혼자만 기도하고 나갔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CBS 이사장으로 섬기게 되었습니다. CBS는 1954년 출범한 우리나라 최초의 민영 방송사로 ‘올바름’(흔들림 없이 진실과 정의를 전하는 정도 언론), ‘따뜻함’(어두운 사회를 밝히고 약자를 감싸 안는 따뜻한 방송), ‘새로움’(미디어 혁신을 이끌어가며 다양한 소통창구 역할을 하는 미디어4.0)을 핵심 가치로 하며 기독교 선교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사랑과 자유, 정의를 구현하는 명실상부한 최고의 방송사입니다. 특히 군사독재 권력에도 흔들리지 않았던 민주언론으로 한국 민주주의 발전과 자유 언론 창달에 크게 기여하며 방송 저널리즘의 꽃을 피웠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CBS는 시사·뉴스 채널(표준 FM)과 음악전문 채널(음악 FM)로 전문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다채널 특성화 전략을 펼치게 되었고 2000년 중반 이후부터 인터넷 뉴스, 지상파DMB, OBS 투자, 무료 신문, 스마트미디어 등 다양한 매체에 투자하며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CBS는 순수 복음을 전하면서도 공정한 뉴스와 시사, 음악을 통해서 기독교적 가치와 정신을 세상에 실현해 가고 교회와 세상과의 교량 역할을 하는 방송입니다. CBS의 장점은 기독교인들뿐만 아니라 믿지 않는 비기독교인들도 CBS를 신뢰하고 많이 보고 경청하면서 대사회적 영향력이 지대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꾸 특정 이념이나 진영의 시선으로 CBS를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공정한 뉴스 보도와 시사 프로그램도 결국은 CBS가 직간접적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를 실현하며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소 목사가 CBS 이사장이 되면 CBS가 너무 보수적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물론 그렇다고 CBS가 너무 진보 쪽으로만 가는 것도 안 됩니다. 너무 극좌나 극우로 가면 중도로 와야 할 것입니다. 아니, 성경적 가치관과 세계관에 뿌리를 내리고 사회적, 문화적 다양성을 추구해야 할 것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 성도들을 섬기듯이, CBS 이사장의 직함이 있을 때 오히려 CBS를 더 잘 섬기고 직원들도 잘 섬기겠습니다. 우리 교회에서도 어떻든지 CBS가 우리 교회가 섬기는 선교의 대상지라고 생각하면서 많은 사랑의 기도와 후원이 필요하겠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제부터 제가 CBS 이사장으로 잘 섬길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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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이제부터는 기도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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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윤동주처럼, 이육사처럼
- 저는 윤동주를 만나본 적도 없고 그에 대한 연구를 집중적으로 한 적은 없습니다. 다만 윤동주에 관한 책을 두루두루 읽었습니다. 그리고 윤동주의 삶의 흔적이 묻어 있는 용정 명동촌, 그가 다니던 교회, 용정학교, 연희전문학교, 일본 후쿠오카 감옥, 릿쿄대학까지 다 방문했습니다. 그곳에서 제가 “윤동주 특강”까지 했고요. 그리고 ‘별빛 언덕 위에 쓴 이름’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리고 제 안에 윤동주 시심이 들어오고, 제가 윤동주 시 속에 들어가서 시적 대화를 하며 차마 윤동주가 말하지 못한 내용을 시적 화자가 되어 ‘다시, 별 헤는 밤’이라는 시집을 썼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누구에게 미안함이 들었냐면, 이육사 시인에게 죄송한 마음이 드는 것입니다. 이육사 시인은 아주 강인한 성품을 지닌 실천적인 시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시만 쓴 것이 아니라 독립운동을 하였습니다. 그의 막내딸 이옥비 여사에 의하면, 20년 동안 총 17번이나 수감 생활을 했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육사의 원래 본명은 이원록인데, 그가 처음으로 감옥에 갔을 때 수감번호가 264번이었습니다. 그래서 일제에 저항하는 의미로 이름을 이육사로 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독립운동을 하면서도 시를 썼습니다. 그런데 그 시를 쓰게 된 문학적 영감과 독립운동의 정신적 동기가 성경에서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의 딸 이옥비 여사의 증언에 의하면 그는 중국어 성경을 늘 품고 다니며 틈틈이 성경을 읽었다고 합니다. 결국 그는 독립운동을 하다 베이징 감옥에 수감 되어 견딜 수 없는 고문과 매를 맞다가 1944년 1월 16일, 40세의 나이로 순국을 합니다. 윤동주의 시가 개인적이고 보편적 인류의 가치를 읊었다면, 이육사는 그야말로 민족적이고 국가적인 차원에서 시의 지평이 더 넓고 웅장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시는 잔인하다 할 정도로 생명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미안한 마음에 몇 년 전에 안동에 있는 이육사 문학기념관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시를 다시 한번 보았습니다. 그는 독립운동을 하면서 역사를 기록하거나 서술한 게 아니라 어떻게 자신의 애국적 혼을 시적으로 웅장하게 담아낼 수 있었는가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특별히 ‘광야’ 같은 시를 보면 그 광활한 시 세계에 경탄하게 됩니다. “까마득한 날에 / 하늘이 처음 열리고 /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 모든 산맥(山脈)들이 / 바다를 연모(戀慕)해 휘달릴 때도 / 차마 이곳을 범(犯)하던 못하였으리라 / 끊임없는 광음(光陰)을 /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 지금 눈 나리고 / 매화(梅花) 향기 홀로 아득하니 /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 백마 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 이 광야(曠野)에서 목 놓아 부르게 하여라.” 그의 시는 원시적 광야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합니다. 처음 하늘이 열리고 닭 우는 소리가 들리는 광야는 바다로 향하는 산맥마저 차마 범하지 못하는 순결한 땅이었습니다. 그 위로 끊임없는 세월이 흐르고 사계가 흐르면서 드디어 역사의 강물이 길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그 광야에 지금 눈이 내립니다. 그런데 겨울 광야에 매화가 필 수 없지만 매화 향기가 가득하다는 것은 그 어떤 폭압과 압제에도 굴하지 않는 독립운동가들의 지조와 자신의 내면의 절개를 보여줍니다. 또한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은 기독교의 메시야와 같은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백마 타고 오는 초인에 대한 여망이야말로 조국의 독립과 광복의 축복을 염원하고 있는 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그가 옥고를 치렀던 중국 북경 감옥도 한번 방문해 보고 싶습니다. 문학뿐만 아니라 목회도 그렇다고 봅니다. 때로는 윤동주처럼 따스하고 푸른 빛처럼 설교도 하고 사역도 해야 하지만, 때로는 이육사처럼 승부 근성을 갖고 장엄하고 또 잔인스러울 정도로 광폭적 공공 사역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는 윤동주처럼, 눈 내리는 겨울 광야를 백마 타고 달리는 이육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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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윤동주처럼, 이육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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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그 청년 바보 의사처럼”
- ‘안수현, 그 청년 바보 의사’라는 책이 있습니다. 제가 원래 이 책을 읽은 것은 아니고 몇 달 전에 국민일보에 나온 기사를 보고 이 책을 구해봤습니다. 故 안수현 님의 삶은 정말 짧았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지 모릅니다. 이분은 예수님처럼 만 33살 나이로 죽었습니다. 세상에 직업이 의사, 그것도 내과 전문의였는데 33살에 죽은 것입니다. 그분이 영락교회를 다녔는데 장례식장에 4천 명이나 왔다고 합니다. 어떻게 그 많은 사람이 왔느냐 하면, 의사들은 말할 것도 없고 병원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다 왔습니다. 그는 군의관이었는데 유행성 출혈열로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그런데 병원에 입원하였을 때 자기가 환자였음에도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와 사랑과 희망을 주었습니다. 그 청년의사는 환자와 눈이 마주치면 많이 아프냐고 묻기도 하고 빨리 치료를 못 해줘서 미안하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간호사들을 보면 왜 그렇게 예쁘냐고, 잘생겼냐고 덕담을 건넸다고 합니다. 그는 입원 첫날부터 한밤중이면 살며시 찾아와 환자의 침대 곁에서 기도를 해드렸습니다. 자기 것을 하나도 아끼지 않고 나누고, 누군가가 필요하면 자기 시간을 내주고, 찬양 테이프와 신앙 서적을 따뜻한 선물로 주었습니다. 그는 주변인들로부터 ‘청년 예수’로 불릴 정도로 신실한 청년이었습니다. 돈이 없는 환자의 검사비를 대신 내주고 시한부 환자들의 말동무가 되어 주었습니다. 군의관 시절엔 풀밭에서 사병들과 함께 지내며 부하들의 건강을 먼저 챙겼습니다. 그가 사망한 이후에 안 씨 유가족은 책 수익금 전액을 그가 활동했던 누가회에 기부했고 이를 통해 의사를 양성하는 “안수현 장학회”가 설립되었습니다. 그 장학회를 통해 15년간 의대생 60명이 장학금을 수여 받았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바보 의사라고 불렀습니다. 최근 의료 위기를 맞을 때 그 바보 의사의 말과 삶이 더 빛나게 다가왔습니다. 지난 용기총에서 주최한 용인시복음화대성회를 하는데 5월의 햇빛이 7, 8월의 땡볕 못지않게 작열하였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 종이 모자도 쓰지 않고 앉아 있는 분들이 참 대단하게 느껴졌습니다. 저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설교도 한 4분 정도 했을 것입니다. 땡볕 아래 앉아 있는 우리 성도들에게 너무너무 미안한 것입니다. 진짜 제가 바보 목사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많은 분들이 이석을 한 걸로 들었습니다마는, 끝까지 그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는 분이 있었습니다. 우리 교회 이시영 집사님이십니다. 그분은 진짜 바보 집사님이세요. 이시영 집사님은 마을버스를 운전하시는 기사님이신데, 하루는 버스 운행 중에 단국대를 다니는 중국 유학생 승객이 의식을 잃고 바닥에 쓰러진 것입니다. 이 집사님은 곧바로 차를 몰아 우리 교회 이재훈 의료목사님이 원장님으로 계시는 다건연세내과로 갔습니다. 집사님은 의식을 잃고 축 늘어진 환자를 등에 업고 정신없이 뛰었습니다. 이재훈 목사님 역시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응급처치를 바로 시작했습니다. 환자는 의식이 없고 혈압도 낮은 상황이었습니다. 조금만 더 늦으면 심정지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초위기의 상황이었습니다. 그때 이재훈 목사님께서 급히 수액을 처방하고 혈압을 올릴 수 있는 조치를 취해서 5분쯤 후 신음과 함께 여성의 의식이 돌아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20~30분이 지나서야 완전히 정신이 돌아왔으니까 만약에 응급실을 찾아서 헤매고 다녔다면 심정지가 왔을 수도 있었던 급박한 상황이었습니다. 다행히 이시영 집사님과 이재훈 목사님의 침착하고 신속한 응급 구조가 한 학생의 생명을 살리게 된 것이죠. 이시영 집사님은 병원비까지 다 결재를 하고 다시 버스 운행을 재개했다고 합니다. 이 아름다운 미담이 여러 공중파 방송에 보도가 되어 큰 감동을 주었고 유학생은 나중에 이시영 집사님을 찾아와 치료비를 갚고, 감사 인사와 함께 홍금기를 선물했다고 합니다. 중국에서는 생명을 살린 의인에게 붉은 비단 깃발, 홍금기를 준다고 합니다. 바로 그 이시영 집사님께서 용기총 집회에서 끝까지 자리를 지켰고 소형자동차 경품에 당첨이 된 것입니다. 진짜 그분은 바보 집사죠. 그런데 그 바보 집사님에게 하나님께서 담임목사를 대신하고 또 우리 성가대를 대신해서 경품 선물로 위로하시고 칭찬하신 것 같았습니다. 일주일 내내 이런 생각을 하며 살았습니다. “나도 더 기도하는 바보가 돼야 되겠구나. 더 바보 목사로 살아야 되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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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그 청년 바보 의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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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초절제가 초감탄을 이룬다
- 지난주 화요일 부산에서 총회가 주관한 전국목사장로기도회에 저녁설교를 하였습니다. 제가 화상을 입기 전에 저녁 강사로 초청을 받았는데, 지금까지 합쳐 보니까 목사장로기도회에서 8번 설교를 했더라고요. 총회 역사에 이런 유례가 없었을 것입니다. 사실 첫날 저녁 시간은 목사장로기도회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거든요. 그런데 이상하게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그런 적이 한 번도 없었거든요. 먼저는 거리가 너무 멀었습니다. 그리고 처음에는 설교도 40분 이상 해도 된다고 문자가 와서 넉넉하게 준비를 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설교자가 두 명이 있다는 것입니다. 투트랙으로 기도회를 하고 투트랙으로 설교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설교를 30분으로 줄여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30분 정도 하자 하고 거기에 맞게 준비를 하고 갔습니다. 오랜만에 KTX를 타고 부산으로 갔습니다. 집회 장소에 도착하니까 여러 목사님, 장로님들이 인사를 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중에서 한 임원이 이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너무나 강의가 많아서 좀 피곤하고 힘듭니다. 좀 졸립니다. 목사님, 제발 설교를 좀 재미있게 해 주세요.” 이 말은 좀 짧게 해달라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고 느껴졌습니다. 게다가 동행한 송종호 안수집사가 열차를 놓치지 않기 위해선 설교를 짧게 해야 한다고 압박감을 주었습니다. 사실은 한국기독교 140주년 기념 칸타타 ‘빛의 연대기’ 곡도 몇 곡 소개하고, 6.25 참전용사 초청행사에 대한 영상 등 다채롭게 준비해 왔습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가서 보니까 순서들이 너무 많은 것입니다. 제 설교 후 많은 분들의 특별기도, 그다음에는 또 제가 아끼는 후배 목사님의 설교가 있었습니다. 더구나 설교 중에 나와야 할 영상이 제때 나오지 못한 것입니다. “안 되겠구나...” 저는 영상 시스템이 우리 교회와 비슷한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저의 설교와 함께 영상이 따라오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기왕 절제한 김에 확실하게 절제를 하자” 생각하고 정말 과감하게 설교를 짧게 끝냈습니다. 끝나고 보니까 설교를 딱 21분 했더라고요. 그러면서도 전하고 싶은 말씀은 거의 다 했습니다. 그렇게 설교를 마치고 나오자 여러 사람들이 이렇게 얘기하는 것입니다. “목사님, 최고였습니다!” 다음날 이종민 목사님도 이렇게 이야기하시는 것입니다. “목사님, 설교를 짧게 하시기를 너무나 잘하셨습니다. 그리고 후배를 아끼는 마음이 너무나 들었습니다. 목사님 설교가 짧고 간결하면서도 할 얘기는 다 전했다고 여러 사람들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저도 젊은 날에는 시간을 초과하면서 많이만 듬뿍듬뿍 전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생각해 봤습니다. 초절제가 초감탄을 이룬다고 말입니다. 성령의 은사 중에 하나가 절제입니다. 교회는 혼자서만 신앙생활하는 곳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때로는 절제와 양보할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합니다. 또 하나 생각난 것이 있었는데요. 지난번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공연했던 한국기독교 140주년 기념 칸타타 공연을 안 하기로 한 것은 너무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럴만한 시간도 없었고, 상황이 안되었기 때문이죠. 사실은 제가 그렇게 결정했다는 것보다는 하나님께서 그렇게 결정을 하도록 은혜를 베풀어주신 것입니다. 저는 다시 한번 감격했습니다. "초절제 초감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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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초절제가 초감탄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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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쑥 캐는 소녀는 어디 있는가?
- 4월부터 제 밥상에 어김없이 오르는 음식이 있습니다. 그것은 쑥국입니다. 저는 쑥국이 맛있기도 하지만 쑥국을 먹을 때마다 쑥 캐는 소녀가 생각납니다. 초등학교 시절 제가 좋아했던 소녀가 있었습니다. 봄이면 화사한 옷을 입곤 하던 그 아이의 모습이 너무 예뻤습니다. 하지만 좋아한다는 말을 차마 하지 못했습니다. 우리 마을 뒷동산을 넘으면 냇가가 하나 있는데 소녀는 냇가 건너편 마을에 살았습니다. 하루는 우리 동네 한 친구가 쑥을 캐러 간다고 해서 따라가 보니 그 소녀가 쑥을 캐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훔쳐보면서 제 가슴이 쿵쾅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사랑이었을까요, 그저 막연한 동심의 연모였을까요. 지금 생각해 보면 황순원의 <소나기>에 나오는 소년과 같은 순정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날 밤, 쑥 캐는 소녀의 모습이 머릿속에 필름처럼 장착되어 떠나지를 않았습니다. 제 가슴에 사랑의 씨가 싹트면서 밤새 뒤척이며 그 아이를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을지, 도와줘야 할 일은 없는지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애를 괴롭히는 아이는 없었습니다. 공부도 제법 잘했고 인기도 좋아 모든 친구와 사이좋게 지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사실이 못내 아쉬웠습니다. 얼마 후, 시험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가 시험을 망쳐서 1등을 못했다고 울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저는 그 소녀를 보며 ‘다음 시험에는 일부러 몇 문제를 틀려서 그 아이에게 1등을 양보해 줘야지’ 하고 다짐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소녀를 위해 다음 시험을 일부러 망쳤는데도 다른 아이가 시험을 잘 보아서 그 소녀가 또 1등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예상치 못했던 일이 벌어져 그 소녀보다 제가 더 속상하고 분했습니다. 몇 년 뒤 중학교에 들어갔습니다. 그때 남자아이들은 자전거를 타고 학교를 다녔지만 여자애들은 버스를 타거나 걸어 다녔습니다. 저는 외향적이고 사교적인 성격이었는데도, 영어 단어를 외우고 다니는 여학생에게 말 한마디도 건네지 못했습니다. 세월은 강물처럼 흐르고 저도 어느덧 중년을 넘긴 목회자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쑥 캐는 소녀가 어디에 사는지,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지도 못합니다. 또 알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오직 그 시절의 순수한 마음으로 기억을 간직할 뿐입니다. 저는 예수님을 영접하고 목회를 한 후 쑥 캐는 소녀를 생각할 겨를도 없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이후에는 오직 주님이 나의 주인이시고 목양 사역으로 바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4월, 5월이 되면 쑥국을 먹을 때마다 쑥 캐는 소녀가 떠오르고 나이와 상관없이 다시 청춘, 아니 소년으로 돌아갑니다. 너무 삭막하고 강퍅한 시대 속에서 순수의 시대를 떠올리게 됩니다. 지금 우리 사회가 얼마나 순수를 잃어버리고 온갖 야욕과 음모, 위선과 권모술수로 혼란과 갈등을 겪고 있습니까? 한국교회마저도 너무 이념화, 정치화되어 사회 갈등과 분열을 일으키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러한 때에 우리 모두 다시 순수의 시대를 회복해야 합니다. 순수한 십자가의 복음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저는 우리 모든 성도들을 쏙 캐는 소녀, 쑥 캐는 소년으로 생각하며 언제 어디서나 순수한 마음을 잃지 않고 목양 사역에 전념할 것입니다. 비록 빛바랜 추억의 흑백 앨범 같은 것일지라도 저의 가슴에 쑥 캐는 소녀와 같은 순수한 추억과 그리움이 남아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그런 기억마저 망각한 채 거친 세상을 살아간다면 얼마나 차갑고 삭막한 삶일까요. 저는 우리 교회에 오시는 모든 성도들이 쑥 캐는 소녀라고 여기며 반깁니다. 새로운 4월, 5월이 되면 한 살, 한 살 나이는 더 먹어 가지만 변함없이 저는 다시 소년으로 돌아갑니다. 천국 갈 때까지 저는 콘크리트 도시의 경쟁과 야욕, 망상을 떠나 그 눈부셨던 순수 시대의 봄의 길을 걷고 봄의 사역을 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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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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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쑥 캐는 소녀는 어디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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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빛의 나라에서부터 빛의 연대기까지
- 지난주 수요일 오전에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빛의 연대기’ 공연을 하였습니다. 남들은 그냥 지켜보는지 모르지만 저는 앉아만 있어도 땀이 줄줄 흘러내렸습니다. 제가 작사를 할 뿐만 아니라 영상 하나하나, 멘트 하나하나까지 다 체크를 해야 했거든요. 사실 제가 영상 내레이션을 몇 번을 보면서 “이렇게 고쳐라, 이렇게 편집하라”고 수정하고 또 수정했습니다. 영상 실무를 담당하는 나유진 자매가 우리 교인이 아니었다면 엄청난 시험에 들었을지도 모릅니다. 제가 마지막 순간까지 꼼꼼하게 체크를 하고 지적을 했거든요. 사실 장소를 허락해 주신 여의도순복음교회 이영훈 목사님께 참으로 감사를 드립니다마는. 아쉬운 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아직도 한국교회 연합기관이 하나 되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애당초 한교총과 한기총이 합하여 이 칸타타를 공연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실무선에서부터 반대가 심하고 어떤 적대감, 증오심 같은 것이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같이 하고 싶었습니다. 그 뜻을 이루지 못해서 아쉬웠습니다. 또 하나는 사실 ‘빛의 연대기’ 공연을 더 넓은 광장에서 하고 싶었지만, ‘광장’하면 긍정적이라기보다 부정적 이미지가 떠오를 수 있잖아요. 그래서 잠실에 있는 체조경기장이나 기타 다른 곳도 찾아봤지만, 대여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본당 2층을 가득 메운 우리 교회 성도들의 그 뜨거운 열기는 강단으로까지 전해졌고 저의 제스처에 따라서 다 움직이는 성도들이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음악감독을 맡은 류형길 지휘자가 너무 수고가 많았습니다. 사실은 총 9곡인데 제가 과감하게 한 곡을 뺐습니다. 저라고 아쉬움이 있는 걸 왜 모르겠습니까마는, 저는 항상 시간을 예측하는 사람입니다. 만약에 한 곡을 더 불렀으면 그 한 곡 때문에 지루함을 느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류형길 지휘자에게 서곡을 한번 멋지게 만들어 보라고 했습니다. 지역 차량이 돌기 때문에 12시까지 예배를 마쳐야 되거든요. 그런데 정확하게 행사가 끝나는 시간이 12시 1분 30초였습니다. 제가 7번 곡을 뺀 것이 너무 정확한 판단이었습니다. 특별히 서곡에서부터 시작하여 피날레에서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할 때는 그야말로 모든 청중이 감동을 받고 다 일어서서 함성과 박수를 보냈습니다. “태초의 밤하늘에 떠오르던 별 / 달빛 아래에 잠든 꽃들이 깨어나고 / 구속사의 푸른 장강이 흐르고 / 한라에서 백두까지 그 길을 따라가 / 눈물과 상처로 얼룩진 역사 / 길고 길었던 시간들 / 하나님 섭리로 이겨냈네 / 빛의 나라 고요한 아침의 나라 / 이제 어두웠던 역사 그치고 / 밝은 빛의 향해를 시작하네 / 우린 진정한 하나가 되어서 / 이 빛을 지켜가리라 / 우린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 빛의 선민으로 나아가리라 / 우린 진정한 한민족 되어서 / 이 빛을 지켜가리라 / 거룩한 환상 생명의 언어로 / 새로운 역사를 열어가리라 / 어둠을 뚫고 밝아오는 찬란한 / 찬란한 새벽빛이여 /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 아멘 아멘 아멘 아멘!” 행사가 끝나고 나니까 어느 국회의원은 “이거 목사님이 진짜 쓴 거 맞습니까?”라고 묻는 것입니다. 또 어떤 총회장은 “목사님이 시인이라는 걸 이제 알았네요.” 그래서 제가 그랬습니다. “아니 국민일보도 안 보십니까?” 사실 이 공연은 한 교회에서만 하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유튜브에 올릴 수 있기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이 시청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본다 한들 현장에서의 느낌과 감동을 그대로 전해주기는 힘들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이 유튜브를 시청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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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빛의 나라에서부터 빛의 연대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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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기독교가 융성하고 과학이 발전하는 나라
- 저는 이분을 개인적으로 만난 적이 없습니다. 송봉현 선생님이신데 과학기술부에서 국장까지 지내신 분이십니다. 이분이 ‘두뇌자원 나라’라는 책을 쓰셨는데 직접 사인을 해서 저에게 보내 주셨습니다. 제가 이 책을 읽고 감탄을 하였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모르는 부분들이 너무 많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분이 책에서 이런 얘기를 하셨습니다. 5천 년 전 빈곤을 말끔히 씻고 천국과 같은 선진국의 삶을 누리는 나라가 우리나라라는 것입니다. 유엔 설립 후에 새로 가입한 150여 국가 중 우리나라만이 최고로 올라선 유아독존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된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아마르티아 센 교수의 주장처럼 기독교가 융성한 것이고, 두 번째는 과학자들, 첨단기술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게 어디서부터 시작이 됐냐하면, 미국의 원전 대가 워커리 시슬러가 경무대를 방문하셔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이승만 대통령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우라늄 1g은 석탄 3톤과 맞먹는 에너지가 있습니다. 석탄은 땅에서 캐내지만 원자력은 사람의 머리에서 캐내는 자원입니다. 과학자들을 기르십시요.” 그래서 이승만 대통령이 200명의 우수 과학자들을 선발해서 1인당 6천 달러씩 지급하여 선진국으로 유학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그 과학 인재 투자의 열매를 박정희 대통령이 근대화, 산업화의 자산으로 거두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중에 한 사람이 정근모 박사였습니다. 이분이 산파 역할을 해서 69년도에 키스트(KIST)가 생겼고 그 이후에 카이스트(KAIST)대학이 세워지게 된 것입니다. 그곳에서 우리 교회 최진경 장로님과 같은 우수한 과학 기업인이 나온 것이죠. 우리나라는 키스트와 카이스트 설립 후에 원자력 발전 국산화, 고속전철 개발연구원, 자체 인공위성 발사, 농약 신물질 창출, 제약 국산화 기반 구축, 화학연구원 등이 생겨났고 비약적인 경제발전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심지어는 진보 진영이었지만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도 경제정책, 과학기술 업무는 박정희 대통령 때부터 이어져 오던 정책 기조를 뒤집지 않고 그대로 이었다는 것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반원전을 표방했다가 완전수용, 과학기술부 승격, 정보화 고속도로 구축, 과학 훈장제를 신설하였고, 노무현 대통령도 과학기술부 장관을 부총리로 격상시키면서 과학기술 발전을 향한 확고한 국정철학과 의지를 보여 주었습니다. 저는 이런 역사를 몰랐는데 이번에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됐습니다. 앞으로 과학 계통의 노벨상도 우리 한국이 받아야 할 차례라고 생각해 봤습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아, AI 기술도 대한민국이 앞장서야 하는데, 아니 우리 한국교회도 정말 미래 인재를 키워내야 되겠구나...”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앞으로 저의 사역도 인재를 키우는데 앞장 서려고 합니다. 개척교회 목회자들을 교육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방학 중에 신학생들을 선발하여 장학금을 주면서 교육하고 인재를 양성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앞으로의 대통령입니다. 다음 정권이 과학기술정책을 뒤집지 말고 계속 이어가야 합니다. 특별히 AI 부분을 국가가 통제하지 말고 자발적 창의성을 발휘하도록 하는 환경과 지원을 해 주어야 합니다. 삼성 반도체가 대한민국의 보물창고였다면 AI산업이 미래의 보물창고 역할을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요즘은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 촉발로 인하여 세계가 얼마나 혼란스럽고 위기감에 휩싸여 있습니까? 우리나라의 정치 역시 너무 이념과 정파적 이익에 치우지기 보다는 미래 경제발전을 위한 과학기술의 진보를 위해 투자하고 관심을 가져야 할 때입니다. 앞으로 그런 국가지도자가 나와서 온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고 다시 한번 선진 대한민국으로 비상할 수 있기를 기도하며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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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기독교가 융성하고 과학이 발전하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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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빛의 연대기, 사랑의 하모니
- 우리가 생일을 맞으면 서로 축하해 주고 기념을 합니다. 어머니, 아버지께서 70세를 맞으면 고희연을 열어서 감사 인사를 전하고 무병장수와 가정의 화목을 기원하지 않습니까? 올해는 한국교회가 140주년을 맞는 해입니다. 어쩌면 140의 생일과 같은 것인데 100주년 이후로 뚜렷한 행사나 기념대회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한국기독교 140주년의 역사를 결코 잊지 않아야 합니다. 역사를 망각하는 민족은 희망이 없습니다. 역사 속에는 역사를 세우고 만들어 갔던 사람들의 땀과 눈물과 피가 스며있습니다. 그래서 역사를 기념하고 기억하는 것은 그 역사 속에 담긴 땀과 눈물과 혼을 가슴에서 가슴으로 전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에 한국기독교 140년의 역사를 기억하고 계승하는 대대적 행사를 광장에서 해 볼까도 생각했는데 워낙 광장 하면 많은 국민들의 인식에 나쁜 이미지로 각인이 되어서 고민 끝에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하기로 했습니다. 특별히 직접 제가 대본과 작사를 한 칸타타 ‘빛의 연대기’가 공연될 것입니다. 그날 행사에는 한국교회 지도자들 뿐만 아니라 정관계의 주요 지도자들과 기자들을 초청하여 다시 한번 우리 사회에 사랑과 빛의 하모니를 전하는 한국교회의 이미지를 새롭게 하려고 합니다. 아무리 유창한 연설이나 말이라 할지라도 언어는 반론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음악은 무조건 하나를 만듭니다. 영국 황실에서 음악회를 하면 여야를 다 초청하여 음악 안에서 하모니를 이룬다고 하지 않습니까? 지금 우리 사회가 이념과 정파에 따라 얼마나 갈라지고 대립하고 있습니까? 심지어 한국교회마저도 사랑과 화해의 중재자가 아니라 분열과 갈등의 한 중심에 서는 듯한 모습을 보이며 심각하게 이미지가 훼손당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 ‘빛의 연대기’를 통하여 우리나라 역사의 고난과 위기의 순간마다 나라를 위해 눈물로 기도하고 사랑과 희망의 빛을 발하였던 한국교회의 역사를 다시 한번 되새기고 우리 사회를 하나로 만드는 빛의 파동을 일으키게 될 것입니다. 흑암의 땅에 선교사들이 복음을 전해 주기 전 예수님을 알았던 믿음의 선진들, 우상과 미신, 가난과 차별의 어둠으로 가득하였던 한반도에 복음의 빛을 전해준 푸른 눈동자들의 사랑과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는 복음의 빛으로 가득한 나라에서 경제 번영과 신앙의 자유를 누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이라는 참혹한 역사의 밤이 찾아왔지만 그 어둠 속에서도 별빛 언덕에 빛의 서시를 쓰며 아침을 노래하였던 순교자들의 피와 눈물의 희생이 있었고, 한국교회 성도들은 새벽마다 차디찬 교회 마룻바닥에 뜨거운 눈물을 쏟으며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한국교회는 우리나라가 세계 속의 경제강국, 문화강국으로 우뚝 비상하는데 사상적, 문화적, 영적 토대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한국기독교 140년의 역사야말로 빛의 연대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교회의 격동의 역사, 감동의 기록, 눈물의 시가 담겨 있는 ‘빛의 연대기’ 공연을 통하여 분열과 갈등으로 상처 입은 한국 교계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를 하나로 만드는 사랑과 빛의 하모니로 쓰임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일정을 미리 조정하여 다가오는 4월 23일 수요일 10시 30분 여의도순복음교회에 모입시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빛이 되어 함께 빛의 연대기를 씁시다. 한국기독교 140년의 역사를 시적으로 표현한 서정적 해설과 더불어 장엄한 오케스트라의 연주와 감동의 노래로 빛의 대서사시가 연출될 것입니다. ‘빛의 연대기’ 공연은 여러 방송과 일간지를 통해서 보도가 되고 기사화될 텐데 우리 모두가 역사의식을 가지고 함께 기도하며 협력하고 헌신도 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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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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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빛의 연대기, 사랑의 하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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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새벽 미명처럼, 봄의 햇살처럼”
- 다시 한 번 우리는 가슴 아픈 비극의 역사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대통령의 계엄선포와 탄핵, 그리고 파면으로 이어진 극도의 혼란과 분열은 우리 모두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습니다. 저는 지난해 12월 발뒤꿈치에 저온 화상을 입은 이후에 거의 외부 활동을 하지 않은 채 고요한 기도와 묵상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어수선한 시국과 극단으로 치닫는 사회 갈등과 혼란을 보면서 참으로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특히 한국교회가 사랑과 화해의 중재자가 아니라 오히려 사회 분열과 대립의 중심에 서는 듯한 모습들이 미디어를 통해서 보도될 때는 ‘정말 한국교회의 이미지가 이렇게 각인 되어서는 안 되는데... 교회의 본령과 방향성은 이런 모습이 아닌데...’ 하는 탄식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물론 광장에 나와 외치고 저항하는 분들의 그 안타까운 마음이야 어찌 헤아리지 못하겠습니까? 저 또한 의분이 일어날 때도 있고 저항하고 싶은 마음이 불쑥불쑥 솟아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한국교회 전체를 생각해야 합니다. 저는 십수 년 전부터 ‘한국교회 생태계’라는 말을 처음으로 쓰면서 반기독교 세력의 실체와 전략을 알리고 반이슬람, 반동성애 운동에 앞장섰던 사람입니다. 아마 대형교회 목사로서는 최초로 수많은 집회와 세미나, 언론 기고 뿐만 아니라 광장에서 반동성애 운동을 이끌면서 저항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한국교회의 본질과 가치를 위협하는 치명적인 문제였기 때문에 앞장섰던 것입니다. 결코 어떤 이념이나 정치적인 아젠다를 가지고 어느 진영이나 정파에 서서 외치거나 활동한 적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정관계 지도자들을 만나고 언론인들과의 네트워크를 구축하며 사회적 외연을 확장해 갔던 공적 사역 역시 한국교회의 영광성과 거룩성을 지키기 위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한국교회가 너무 극단적인 이념과 정치에 매몰되어 있는 현상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제 다시 한국교회는 복음의 본질과 가치로 돌아가야 합니다. 십자가의 사랑과 용서, 화해의 정신으로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고 희망의 미래를 열어가야 합니다. 남북으로 나뉜 현실만도 비극인데, 교회가 앞장서서 보수와 진보, 우파와 좌파로 나뉘어 극단적인 분열과 충돌을 계속하면 어떻게 새로운 미래를 향해 걸어갈 수 있겠습니까? 정치인들 역시 더 이상 대립과 갈등을 부추기거나 선동하지 말고 국민의 안위와 행복, 공공의 선을 이루는 정치 본연의 자리로 돌아가야 합니다. 진보 진영이 되었건 보수 진영이 되었건 간에 국민의 행복과 공공선을 이루기 위한 이상과 가치를 펼쳐가야 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다시는 국가 분열과 혼란의 비극적 역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비전과 상생의 정치를 복원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교회가 우리 사회의 가장 높은 산이 되어 진리와 가치, 비전을 제시하고 가장 깊은 바다가 되어 사랑과 용서, 화해의 정신으로 분열된 마음을 하나로 만들어야 합니다. 교회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 진실과 진리 그 자체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겨야 합니다. 결코 지도자의 위치에서 혼란과 분열, 파괴와 갈등을 부추겨서는 안 됩니다. 최근 국민 힐링 드라마라고 불리는 ‘폭싹 속았수다’가 방영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다시 한번 가족 사랑과 인간애의 따스함을 일깨워 주고 있다고 합니다. 저는 최근에는 될 수 있으면 슬픈 영화, 슬픈 소설은 안 읽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폭삭 속았수다’라는 드라마도 1회를 보고 더 이상 안 봤습니다. 인생의 과정 과정에 너무나 눈물이 많이 나올 것 같고, 그 슬픔을 다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서 결론만 물어봤습니다. 애순이는 요양원에서 시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고, 관식이는 병들어 죽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드라마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고 합니다. 금명이가 인생에서 가장 힘든 일을 겪고 나서 고향 제주도를 찾아왔을 때 아버지가 새벽에 배를 타고 나가자고 합니다. 금명이는 안 그래도 힘든데 무슨 새벽에 배를 타고 나가냐고 짜증을 내지만 아버지의 순애보적 사랑을 거부 못하고 겨우 따라 나갑니다. 아버지는 묵묵히 배를 띄우고 딸 금명이에게 서서히 밝아오는 새벽 여명을 보여줍니다. 그런 아버지를 보며 금명이는 고백합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추웠을 때 가장 따뜻했던 사람...” 훗날 아버지 관식은 딸이 힘겨운 여정을 보낼 때마다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아니다 싶으면 빠꾸, 아빠가 뒤에 있을게.” 한국교회도 집단적 상처와 아픔을 겪으며 가장 차가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우리 사회에 가장 따뜻한 사랑을 보여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끝내 어둠을 뚫고 밝아오는 새벽 미명처럼, 봄의 햇살처럼 따스한 희망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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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새벽 미명처럼, 봄의 햇살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