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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그때도, 지금도 목양일념 뿐입니다.”
    지난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강원도 델피노리조트에서 전반기교역자정책수련회를 하였습니다. 첫날은 제가 강의를 했는데, 핵심 포인트는 “어떻게 하면 우리가 팬데믹의 안개를 뚫고 엔데믹을 딛고 서서 새로운 영토를 확장시켜나갈 것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한국교회는 팬데믹을 맞아 생존형 교회가 되었고 엔데믹 단계에서는 생계형 교회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생계형 교회로만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되면 목회자가 목양 마인드보다는 경영 마인드에 더 비중을 두게 됩니다. 어찌 대형교회를 이끌어가는 목회자에게 목양적 마인드만 있겠습니까? 당연히 경영적 마인드도 있어야겠지요. 그러나 정말 교회를 지탱하며 살리고 부흥시키기 위해서는 목회자에게 먼저 목양 마인드가 가득해야 생계형 교회에서 부흥하는 교회로, 이륙하는 교회로 발돋움할 수 있습니다. 저는 첫날 이런 강의를 했습니다. 둘째 날은 외부강사 강의와 교구별 사례 발표가 있었습니다. 발표 내용은 우리 교회가 어떻게 팬데믹을 뚫어왔고 엔데믹 시대에 어떻게 다시 새롭게 부흥하고 이륙하게 할 것인가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사실 부교역자들끼리 발표하고 토론하게 할 수 있지만, 저는 수요일 오후까지 참석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수요일 오전에 제니퍼 안 권사님으로 부터 사진이 왔습니다. 윤석열 대통령과 찍은 사진, 미국의 마크 팬스 전 부통령과 찍은 사진이었습니다. 사실은 저도 ‘아시안 리더십 컨퍼런스’에 초청을 받았습니다. 제가 그곳에 참석을 하면 마크 팬스와 조용한 룸에서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배려를 해 준다고 했습니다. 저는 참석 여부를 놓고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우리 새에덴의 영향력의 지경을 넓히고 글로벌한 영토를 개간하기 위해서는 마크 팬스 부통령을 만나서 이야기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저는 우리 교회, 우리 부교역자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가져야겠다는 마음이 들어 왔습니다. 또한 교무국장인 이종민 목사님과 의논을 해보니까 이렇게 대답하는 것입니다. “목사님, 그쪽보다는 우리 내부의 역량강화가 더 중요할 듯합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이 목사님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쪽으로 가지 않고 수련회 장소에 남아서 교구 교역자들의 사역발표를 들어보니 정말 대단했습니다. 오늘날 새에덴교회의 예배가 회복되고 내부 역량이 강화되며 생계형을 넘어서 부흥하는 교회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부교역자들의 놀라운 헌신과 발런티어 성도들의 자원하는 섬김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달았습니다. 글을 쓰다 보니까 옛날 일이 떠올랐습니다. 몇 분의 교계 지도자들과 함께 대통령의 초청을 받았지만 제가 가지 못한 적이 있습니다. 똑같은 날 지방 신학대학교에서 집회를 하기로 했었는데 그쪽에서 절대로 양해를 안 해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선약을 지키기 위해서 지방 신학대학교로 갔습니다. 그리고 집회를 인도하면서 “오늘 이 시간 대통령의 초청을 받고 청와대에 가기로 했는데 이쪽에서 양해를 해주지를 않아서 이곳으로 와서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라고 했더니 집회가 끝나고 학생들과 교수님들이 더 큰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제가 보통 때라면 우리 교회 교역자수련회이기 때문에 팬스 부통령을 만나러 갈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엔데믹을 딛고 거룩한 플랫폼 처치를 세워야 할 위중한 시기이기 때문에 우선순위를 우리 교회 교역자 수련회에 둔 것입니다. 제가 교역자수련회 첫날 저녁에 강의 한 것을 행동으로도 보여줘서 조금이라도 뿌듯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저는 새에덴교회만을 목양하는 목사가 아닙니다. 지금 한국교회 전체를 아우르며 연합사역을 하기 위해서 정무적 활동도 해야 하는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항상 초심의 신앙을 잃지 않고 목회의 본질과 내실을 귀히 여기는 사람입니다. 경영적 마인드보다는 목양적 마인드를 우선순위로 삼는 사람입니다. 그래야만 우리 새에덴교회가 더 견고하게 세워지고, 새로운 부흥의 동력으로 한국교회를 섬기며 글로벌한 리더십을 펼쳐나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 자신을 되돌아보니, 그때나 지금이나 목양일념으로 초지일관한 것 같아서 제가 제 자신에게 다행이라는 이야기를 주고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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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2-07-17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팬데믹을 뚫고 새로운 영토를 향하여”
    2년 반 전 즈음,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되었습니다. 팬데믹으로 인해 비종교인이 증가하였고 탈종교화 현상이 많아졌습니다. 특별히 기독교인의 감소가 더 많아졌고 교회는 심각한 이미지 타격까지 입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실상 팬데믹은 지나갔고 에피데믹 단계(비교적 넓은 지역의 많은 사람들에게 전염을 증가시키는 유행병)를 거쳐 지금은 엔데믹 단계(한정된 지역에서 주기적 혹은 국부적으로 발생하고 퍼지는 전염병)를 맞고 있습니다. 팬데믹은 생존적 상황을 일으켰고 엔데믹은 생계적 상황으로 전환되고 있습니다. 팬데믹 단계와 에피데믹 단계까지만 해도 소극적이고 방어적인 태도로 목회를 해야 했습니다. 더구나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 교회마저도 이념주의와 체제주의로 극명하게 갈렸습니다. 그래서 아군끼리의 다툼과 내부총질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그런 와중에 많은 풀뿌리 교회가 뽑혔다고 합니다. 이러한 때, 한국교회는 대안적, 진취적 의식 전환이 필요합니다. 모든 사회가 생계적 상황으로 전환되는 때에 교회는 더 선제적으로 대안을 제시하며 합리적이면서도 영적이고, 영적이면서도 전략적 정책 수행을 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팬데믹의 안개 속에 갇혀 있는 목회자와 교인들이 많습니다. 지난주에 제주도 서귀포 지역은 10m 앞이 안 보일 정도로 안개가 자욱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안개를 뚫고 제주시내로 오니까 날씨가 정말 청명한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도 팬데믹의 안개를 뚫고 나가 거룩한 플랫폼 처치를 세워야 합니다. 플랫폼이라는 말은 과거에 나온 말이지만, 지금 제가 제시하는 플랫폼 교회상은 전혀 새로운 교회 모습입니다. 첫째, 신앙과 신학적 본질 위에 초대교회적 원형교회를 추구하는 교회입니다. 원형교회는 신앙과 교회의 본질을 말하는 것이지, 앞으로 도래하는 교회 제4물결을 배격하라는 말은 아닙니다. 엔데믹 시대에는 좀 더 다양한 듀얼 스타일의 교회나 하이브리드형 교회가 신생아처럼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엔데믹 시대일수록 성경적 신앙과 신학의 본질 위에 서서 정통교회를 중심으로 하면서도, 교회 제4물결이 몰고 오는 신생아적 교회의 모습도 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둘째, 주님의 강력한 임재와 운행하심이 있는 교회입니다. 교회는 건물이 아닙니다. 그리고 시스템이나 경영도 아닙니다. 물론 건물이 예배의 중요한 역할을 하고 교회도 시스템과 경영적인 면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주님의 운행하심과 임재가 빠져버린 교회는 아무리 건물이 화려해도 교회가 아닙니다. 아무리 시스템이 잘 되어 있어도 매너리즘에 빠져 있으면 죽은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오죽하면 하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겠습니까? “매너리즘에 빠져 드린 예배를 받고 싶지 않아서 누군가가 성전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입니다.(말1:10) 그러므로 엔데믹을 맞고 있는 지금도 팬데믹의 안개에 갇혀서 소극적이고 형식적인 매뉴얼만 작동시키는 교회가 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작은 교회가 됐건, 큰 교회가 됐건 정말로 중요한 것은 주님의 임재와 운행하심이 가득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코로나 기간에 시나치(Sinach)가 작곡한 ‘주 여기 운행하시네’라는 찬양을 부르고 또 부르면서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강력한 임재와 운행하심을 갈망하고 경험하도록 하였습니다.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강력한 퍼펙트 스톰과 불의 역사가 가슴 뭉클하게 느껴지도록 몸부림을 쳤습니다. 그렇게 하였을 때, 현장예배가 놀랍게 회복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셋째, 새로운 차원의 연합운동을 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연합운동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대형교회들이 생존형의 풀뿌리 교회들을 도와주는 일부터 해야 합니다. 또한 팬데믹 시기에 서로를 비판하고 공격하고 정죄하던 마음이 다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아니 분열된 연합기관을 하나로 만들어야 합니다. 서로 정죄하는 모습과 연합기관의 분열은 우리 스스로에 저주를 대물림 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런 어두움의 실체를 바로보지 못하고 여전히 분열의 정치와 파괴적인 정치공작을 일삼는 행위는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안개와 흑암 속에 스스로를 가두는 상태일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자욱한 안개와 흑암을 뚫고 다시 일어서서 한국교회의 새로운 영토를 확장해 나가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다시 새로운 부흥과 목회 해방 일지를 써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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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2-07-10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싱그러운 7월을 위하여”
    “얼마나 아팠을까. 얼마나 그리웠을까. 얼마나 가슴이 저렸을까. 오랜 기간 비가 오지 않았으니 가뭄이 깊어 산행을 할 때마다 내 발자국에 흙먼지가 포삭포삭 일었지요. 가보진 않았지만 시골 논바닥은 쫙쫙 갈라지기 시작하였으니... 논밭이 갈라지는 것은 땅의 가슴이 그만큼 타고 대지의 마음이 쪼개지는 것, 거기에다 산녘의 나무들은 한숨을 짓고 아우성을 쳤어요. 그러나 지금은 온 대지가 그토록 갈망했던 단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습니다. 타던 대지가 환호성을 지르고, 아프고 그립다고 아우성을 치던 나무들은 꿀비가 내린다고 대합창으로 노래하고 있네요. 지금 밖에 내리고 있는 꿀비는 온 들녘과 산을 푸르르게 하며 말라버린 계곡마저 물이 소리치며 흐르게 하고 있으니, 모두가 싱그러운 7월을 맞게 하고 있지요.” 지난 수요일 밤, 서재 반대쪽에 있는 저 만의 자그마한 공간에서 빗소리를 들으며 쓴 글입니다. 서재 안방에 누워 있는데 습도가 높아 눅눅했습니다. 욕실의 창문을 열어 놓으니 지나가는 자동차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습니다. 그래서 이따금씩 산 공기를 마시며 시도 쓰고 독서를 하는 자그마한 뒷 공간으로 가보았습니다. 이 자그마한 공간은 건물을 설계할 때 제가 주문한 곳이기도 합니다. 이곳에서 창문을 열면 바람 소리, 풀벌레 소리, 나뭇잎 소리, 빗소리를 그대로 들을 수 있습니다. 그날은 제 안방에서는 잘 들리지 않는 천둥소리를 마음껏 듣기도 했습니다. 천둥소리는 6월의 소낙비를 더 풍성하게 해주고 그 비를 맞은 대지는 모두 환호하고 함성을 지르는 듯 느껴졌습니다. 7월이 오기 전 6월 말에 때마침 폭우가 쏟아짐으로써 싱그러운 7월을 맞을 수 있다고 말입니다. 아니, 이 소낙비는 싱그러운 7월을 위하여 꿀비처럼 내리고 있는 것이라고요. 물론 지금은 이 단비가 꿀비이지만 더 이상의 폭우가 쏟아져 수재가 일어나서는 아니 되겠지요. 그러나 지금의 단비는 열어 놓은 유리창을 두드리며 저에게 말을 걸어왔습니다. 저기 멀리에 있는 그리움의 언덕으로 가보자고 말입니다. 이런 감상에 젖어 있을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나의 가슴은 이 가뭄처럼 척박하고 황폐하지는 않았을까. 이토록 척박하고 황폐한 우리의 가슴에도 단비는 내려야 하지 않을까. 코로나19로 인해 우리의 심령이 척박해졌고 교회들도 황폐한데... 이런 심령과 교회에 저 창밖에 내리는 단비와 꿀비처럼, 그런 폭우가 우리에게 내릴 수는 없을까. 주여, 우리 마음에도 단비를 내려주소서. 우리 마음에도 꿀비 같은 폭우가 쏟아지게 하소서. 잠들어 있는 우리의 마음 안에도 천둥이 치게 하소서. 모두가 이런 천둥소리에 영적 각성을 하게 하시고 철을 따라 내리는 우로를 인하여 심령이 부흥되고 교회가 부흥되게 하소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올해는 어느 때보다 싱그러운 7월을 맞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니, 우리 교회는 더 그럴 것 같습니다. 우리 심령, 우리 교회에 단비가 풍성하게 내린다면 코로나19의 볼모로 잡혀 있던 영적 라이언 일병들이 해방되어 교회로 많이 찾아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싱그러운 7월을 위해 우리 모두 각성하고 영적 부흥을 경험하며 예배와 교회를 힘껏 세워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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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2-07-03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다시 하나 된 원탁의 기사들처럼
    최근에 우리 교회 교무국장인 이종민 목사님이 총회 교회자립개발원 선진복지 기관 탐방을 하러 독일에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저를 위해 ‘원탁의 기사 조각상’을 선물로 사 온 것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원탁의 기사는 아더왕의 전설로부터 시작합니다. 아더왕은 브리튼 섬은 물론 아일랜드, 아이슬란드, 오크니 제도를 정복하여 제국을 건설했고 이후 노르웨이, 덴마크, 갈리아를 정복하며 제국을 확장시켜 나갔던 왕 중의 왕이며, 수많은 무공을 세운 최고의 영웅이자 중세 기독교 위인이었습니다. 아더왕의 초기 설화들을 보면 아더왕은 브리튼의 영웅으로 이민족의 침입에 맞서고 초자연적인 존재와 싸우는 신화적인 면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당시 브리튼인들의 멸족과 망국에 대한 위기감과 구원자에 대한 열망이 아더왕 전설의 바탕이 되었던 것이죠. 아더왕과 관련하여 우리가 가장 잘 알고 있는 이야기가 바로 엑스칼리버 전설입니다. 잦은 이민족들의 침략으로 인하여 브리튼이 혼란에 빠지자 사제들이 모여서 나라를 구해 달라고 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하늘에서 바위가 내려왔는데 거기에 엑스칼리버가 꽂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검에는 이런 신탁이 쓰여 있었습니다. ‘이 검을 뽑는 자야말로 진정한 브리튼의 왕이 되리라.’ 이에 브리튼의 내로라하는 용사들이 검을 뽑기 위해 나섰지만 다 실패했습니다. 그런데 마침내 아무 이름도 없었던 어린 아더가 나와서 그 검을 한 번에 뽑아 버린 것입니다. 브리튼의 흩어진 나라들을 하나로 통합하여 이끌 위대한 영웅의 전설이 탄생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더가 바위에 꽂힌 성검을 빼내어 브리튼의 왕이 되고, 침략자인 색슨족을 쳐부술 때 즈음의 일이었습니다. 아더를 따르는 기사와 제후들이 어느 날, 식사 시간에 서로 상석에 앉겠다고 자리다툼을 하면서 경쟁을 벌이기 시작했습니다. 이 언쟁은 결국 서로에게 검을 뽑아 드는 싸움으로 변하고 사상자까지 내고 말았습니다. 아더왕이 보니까 너무 가슴 아픈 것입니다. 기독교 제국인 브리튼을 지키기 위해서 함께 힘을 모아야 할 기사들이 자리다툼을 하다 서로 죽고 죽이는 비극을 맞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그때 아더왕의 아버지 액터가 원탁을 선물하며 이렇게 조언을 합니다. “모두의 의견을 평등하게 포용하고 연합하는 성군이 되거라.” 바로 이런 전설을 배경으로 원탁의 기사가 나오게 된 것입니다. 그 이후로 아더왕을 중심으로 한, 원탁의 기사들은 상하의 차이 없이 서로를 인정하게 되고 더 이상 싸움은 일어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원탁의 기사들이 힘을 모아 이민족들의 침략을 물리치고 강력한 기독교 국가를 지켜 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원탁의 기사는 연합과 평등을 의미하는 상징물로 전해져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종민 목사님이 독일에서 ‘원탁의 기사 조각상’을 보고 “분열되고 흩어진 한국교회를 하나로 만들기 위해서 애쓰시는 담임목사님이 생각이 나서 선물로 사왔다”는 것입니다. 저는 원탁의 기사 조각상을 보면서 한국교회의 현실이 떠올랐습니다. 한국교회도 서로 자리의 싸움을 하면 절대로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지금 한국교회가 얼마나 많은 반기독교 세력의 공격과 악법들로 인하여 위기를 맞고 있습니까? 어떻게든지 우리가 한마음이 되고 연합하여 한국교회를 지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도 처음의 원탁의 기사들처럼 왜 자리를 위해 칼을 뽑고 겨루려고만 하고 있습니까? 서로 간의 자리다툼으로 인해 왜 분열의 칼을 휘두르려 합니까? 지금 이때를 놓치면 다시 기회가 오지 않을 수도 있는데 말입니다. 분열의 최후는 비참한 공멸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이제라도 하나 된 원탁의 기사들처럼 다시 함께 마주 앉아 한마음을 이루고 연합하여 반기독교 세력의 공격을 막아 내고 한국교회의 새로운 부흥의 미래를 설계하였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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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6-19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휠체어가 날개가 되다”
    제가 지지난 주에 설교를 하러 명성교회에 갔는데 대통령 취임식에서 지휘하셨던 차인홍 교수님께서 지휘를 하고 바이올린 연주도 하며 미니콘서트를 하는 것입니다. 차인홍 교수님은 어린 시절 소아마비를 앓으셔서 걸을 수 없고 휠체어를 타고 다녀야만 했습니다. 더구나 가난한 집안 형편으로 부모님이 도저히 키울 수 없어서 재활원에 보낼 정도로 그의 어린 시절은 불우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재활원에서 극적으로 하나님을 만나고 바이올린을 접하게 됩니다. 끝없는 고난과 시련의 연속이었지만, 춥고 냄새나는 연탄 광에서 하루 10시간씩 연습을 하며 꿈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24세의 나이에 미국 신시내티음악대학에 유학을 가게 되었고 라이트주립대학교의 오케스트라 지휘자 겸 교수가 되었습니다. 제가 그분의 간증과 연주를 듣는데 너무 감동이 되는 것입니다. 그날 예배를 마치고 인사를 나누는데, 저에게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목사님은 저를 잘 모르시겠지만 저는 목사님을 잘 압니다. 미국에서도 코로나로 인해 교회에 갈 수 없었는데 새에덴교회 유튜브로 함께 예배 드리며 목사님의 설교 말씀에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제가 그런 말을 들으니 더 감동이 되어서 “저희 교회에도 한번 초청을 하고 싶으니 다음 주에 당장 오시라”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약속을 잡고 교회로 돌아와 집사람에게 얘기를 했더니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목사님, 왜 그렇게 급하게 약속을 잡았어요? 다음 주일은 그다음 날이 6월 6일 현충일이어서 적지 않은 성도들이 금요일부터 여행을 가거나, 아니면 주일예배만 드리고 오후에 휴일을 즐기러 갈 수 있는데 저녁예배에 성도들이 얼마나 오겠습니까? 교회 체면도 있는데 어떻게 하시려고요.” 생각해 보니까, 집사람 말도 일리가 있었습니다. 순간 저도 흔들렸습니다. 그래서 차인홍 교수님께 양해를 구하고 날짜를 옮겨 볼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러나 ‘은혜받을 사람은 따로 있는 것이지’하는 생각을 하며 그냥 계획한 대로 추진하기로 했습니다. 물론 차인홍 교수님께는 한 말씀도 하지 않고요. 드디어 차인홍 교수님께서 저희 교회에 오셔서 성가대 지휘를 하시고 간증도 하고 연주를 하시는데 정말 큰 은혜와 감동이 되었습니다. 이상하게 저는 그분이 바이올린 연주만 해도 눈시울이 젖고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입니다. 장애인이기 때문에 더 그런지 몰라도 그분의 연주에는 삶의 애환이 느껴지고, 깊고 여리고 뭉클한 감동이 있습니다. 특별히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연주할 때는 더 가슴이 뜨거워지고 눈동자가 촉촉하게 젖었습니다. ‘아, 어쩌면 저렇게 아름다운 연주를 할 수 있는가.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놀라운가. 정말 위대한 인생 역전이요, 한 편의 드라마와 같은 삶이다.’ 차인홍 교수님은 간증하시는 내내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었으면 자신은 오늘 이 자리에 설 수 없었고,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자신의 인생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차인홍 교수님의 일생은 하나님 은혜와 그분의 최선이 만남으로써 위대한 걸작품을 이룬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분은 달변가도 아니고 뻥을 치는 것도 아니지만 정말 순수하고 진지하게 자신의 삶에 임한 하나님의 은혜를 간증하였습니다. 그분이 쓰신 저서 ‘휠체어는 나의 날개’라는 제목처럼 두 다리를 못 쓰는 약함이 오히려 강함이 되었고, 휠체어가 하늘을 날아오르게 하는 날개가 된 것입니다. 그날은 아무래도 연휴가 있는 주일 저녁이라 더 많은 성도들이 오지 못한 것은 아쉬웠지만, 그래도 많은 성도들이 오셔서 은혜를 받았고 주일 저녁이었지만 유튜브로 3,400명 내외가 참여해 은혜를 받았습니다. 이 세상에 약점이 없고 절망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분에게는 연약한 다리가 삶을 반전시키는 힘이 되었고, 휠체어가 오히려 인생의 날개가 된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약점이 강함이 되고 휠체어와 같은 불편함이 날개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간증하며 날아오르는 삶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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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2-06-12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연합이라는 새 역사를 쓰고 싶을 뿐입니다”
    그때가 몇 년도였을지, 2010년이나 2011년일 텐데요. 한국교회 선배 어른들 몇 분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도저히 몇몇 사람들과 함께할 수가 없다고, 한기총말고 새로운 연합기관을 만들어야 되겠으니 좀 도와 달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제가 그때 그분들의 손을 잡으면서 진심을 담아 눈물을 글썽이며 부탁을 드렸습니다. “제발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1년만 참으면 됩니다. 아니 7~8개월만 참으면 됩니다. 그때까지 참으셔야 합니다. 한번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버리면 돌아오고 싶어도 못 돌아옵니다. 나누는 건 쉽지만, 다시 합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그분들은 제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저는 “동로마교회가 망했던 것은 끊임없는 싸움과 분열 때문이었다”고 말하며 끝까지 말리고 말렸습니다. 한국교회는 2007년 상암월드컵 경기장에서 ‘1907년 평양대부흥 100주년 기념대회’를 했습니다. 저는 그때 집회를 주관할 정도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 아니어서 그냥 성도들과 함께 참석만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느낀 바에 의하면, 그때 좀 더 회개의 눈물이 강물처럼 흐르도록 했으면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너무 축제적인 성격이 좀 있지 않나 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 후 아프가니스탄 사건을 통해서 한국교회는 엄청난 시련을 겪게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한국교회 지도자들은 경각심을 갖지 못하고 계속 서로 충돌하고 싸우다가 마침내 2012년에 연합기관이 분열하게 된 것입니다. 아니, 분열하다가 또 다시 분열을 거듭하게 된 것이죠. 그런 가운데 한국교회는 차별금지법을 비롯한 각종 반기독교 악법에 도전을 받았고 종교인과세법으로도 위협을 느꼈습니다. 모든 사상과 문화는 결국 입법화로 가게 되는데, 네오막시즘, 문화막시즘의 사상이 문화라는 옷으로 갈아입고 입법화로 가게 된 것입니다. 그렇지만 한국교회 연합기관은 이런 흐름과 움직임을 알지도 못하고 계속 싸우면서 분열하기만 연속했습니다. 어느 시대, 어느 역사를 보아도 분열하면 반드시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되어 있습니다. 이번 지방선거를 통해서 보더라도 각자 다른 소리를 내고 분열한 조직은 분열의 대가를 혹독하게 치르지 않습니까? 우리 한국교회도 연합기관 분열의 혹독한 대가를 지금까지 치러왔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누가 뭐라 해도 대연합의 기치를 올리고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작년에 기관 통합을 하려고 했지만 이런 일, 저런 일로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저도 힘겨운 길을 걸어왔고 고달픈 여정을 헤쳐 온 것이죠. 어떨 때는 ‘왜 기관 통합을 해야 되느냐’에 대한 이유를 설명할 힘조차 없을 때가 있습니다. 같은 말을 계속 반복하다 보면 정체성이 혼미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 오기 전에 조금씩 조금씩 구름이 몰려오는 것처럼 때때로 뭉게구름이 피어올랐습니다. 조금 늦었기는 하지만, 한기총에서 통합을 하기로 임원회에서 결정을 하고 실행위원회에서 통과되고 마침내 지난 목요일 오후에 있었던 임시총회에서 한교총과의 통합 안건이 가결된 것입니다. 참으로 기적 같은 역사였습니다. 이제 공은 한교총으로 넘어왔는데, 한교총 통합추진위원장인 저는 결코 서두르지 않을 것입니다. 정당한 절차를 밟아서 차분하게 추진해 갈 것입니다. 지금까지도 인도하신 하나님께서 선한 길로 인도하시고 한국교회를 세우는 방향으로 역사하시겠지만, 다시 한번 깨닫고 깨달은 건, 분열하기는 쉬워도 하나 된다는 건 너무나 힘들고 험난하고 어렵다는 것입니다. 이 글을 쓰는 순간 동로마교회가 아주 지난 한 싸움을 하던 모습이 저절로 상상이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들이 서로마교회의 도움을 받았으면 망하진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서로마교회, 즉 교황청의 -당시는 종교개혁 이전의 일임- 도움을 받느니 차라리 술탄의 터번을 쓰겠다고 끝까지 연합을 반대하다가 오스만 튀르크족에게 전멸을 당하고 말았거든요. 그러므로 제가 언제까지, 그리고 어디까지 하나님께 쓰임 받을지 모르지만 한국교회 하나 됨을 위해서 온몸을 불사르는 희생을 감내하겠습니다. 그리고 하나 됨을 위해서는 포용과 용서와 화목뿐이라는 사실을 외치며 뚜벅뚜벅 걸어가겠습니다. 선배들이 써 놓은 분열의 역사를 연합이라는 새 역사로 쓰고 싶은 마음뿐이기 때문이지요. 한국교회 연합기관은 누구를 위한 자리나 특정인들의 활동 무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교회 공교회를 세우고 지키기 위해 존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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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2-06-05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분리불안, 언제쯤 끝날까요”
    몇 년 전부터 제주도에 크루즈 배를 타고 가보는 게 소원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옛날 신학생 시절에 제주도로 수련회를 가는데 비행기 값이 없어서 완도에서 배를 타고 갔거든요. 그때 3-4시간 정도 걸린 걸로 아는데요, 저는 어디 앉을 데도 없고 그냥 갑판에 있으면서 갔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갑판에서 보니까 방이 있더라고요. 신혼부부라든지, 아주 부티가 나는 양복쟁이들은 방에서 쉬다가 나오고 또 들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언제쯤이나 저런 방을 이용해 보나’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몇 년 전, 북유럽에 갔을 때 2박 3일 동안 크루즈를 탔을 때 스위트룸을 이용했거든요. 그러니까 더더욱 인천에서 배를 타고 제주도에 가보고 싶은 것입니다. 월요일 저녁에 배를 타면 화요일 아침에 제주도에 내리고, 또 그날 저녁에 배를 타면 수요일 아침에 인천에 도착을 하니까 수요예배에도 지장이 없습니다. 그래서 몇 주 전부터 예약을 해놨습니다. 물론 조그마한 집회도 하나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광주5.18유네스코 등재 기념재단에서 특별상을 준다고 하는 것입니다. 또 서울에서는 세계방송인클럽에서 축사를 좀 해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무조건 사양했습니다. 저 혼자 가는 게 아니고 몇몇 부목사들과 수행비서들이 같이 가기로 했는데 모두가 한 목소리로 “목사님, 마음먹은 김에 이쪽으로 선택하시죠”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차마 취소를 못하고 제주도로 가게 되었습니다. 저는 가방을 들고 갔는데, 거기에는 책이 몇 권 들어 있었습니다. 저는 어디를 가든 그냥 가지 않습니다. 반드시 책을 가지고 가거나, 원고를 가지고 갑니다. 책을 읽든지 안 읽든지, 그것은 뒷일이고 꼭 그걸 갖고 다녀야 든든합니다. 그것을 안 갖고 다니면 스스로 불안해합니다. 그런데 막상 제주도에 가려니 왜 그렇게 하나님께 죄송하고 교회와 성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드는지 모릅니다. 제가 난생 처음으로 이런 일을 경험하는 것이거든요. 보통 목사님들은 안식년도 하고 또 안식월을 갖습니다. 그런데 저는 안식년은 고만두고 안식월도 한 번 못해 본 사람입니다. 그런데 딱 이틀 교회를 떠난다고 너무 죄송하고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입니다. 사실 저도 좀 회복을 위한 쉼이 있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저는 무조건 직진으로 달려왔거든요. 그런데도 교회를 나와서 차를 타고 인천 연안부두로 가는데 왜 그렇게 어색하고 불안한지 모릅니다. 일종의 ‘분리불안 증세’가 오는 것입니다. “내가 이런 일로 교회를 비우다니...” 배를 탔는데도 설렘보다는 분리불안이 더 강하게 저를 억압하는 것 같았습니다. “내가 없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아야 되는데... 삼십 수년 동안 목회를 하면서 단 한 번도 이렇게 이틀을 비워 본 적이 없는데... 왜 나는 이렇게 마음이 편치를 못한단 말인가.” 제주도에 도착하여 오름길을 걷는데도 순간순간 교회 생각, 사역 생각이 떠나지를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것이 ‘소평 소도’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순간 언뜻 저에게 위로가 되는 사도 바울의 고백이 생각이 났습니다.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아직도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고후11:28) 사도 바울도 일종의 강박이 있었고 분리불안 장애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교회만 생각하면 염려가 되고 불안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어쩌면 바울처럼 저에게만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오름길을 걸으니까 또 굉장히 창의적인 설교거리와 사역을 위한 하이 콘셉트를 얻게 되었습니다. 화요일에 배를 타고 올라오는데 그날따라 배가 늦게 도착을 하고 차까지 막혀서 교회에 늦게 도착을 했습니다. 그래서 박승혁 목사님이 설교를 끝내고 통성기도를 하고 있을 때, 남방 차림으로 올라가서 예배를 마무리하고 축도를 하였습니다. 제가 올라가니까 교인들이 깜짝 놀란 얼굴로 보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은 열린예배를 드렸다고 생각하세요. 미국 같은 경우에는 열린예배를 드리잖아요. 양해하시기 바랍니다. 아니, 여러분을 너무나 보고 싶어서 예배가 끝나기 전, 남방 차림으로 달려왔습니다.” 과연 저의 이 강박과 분리불안 증세는 언제나 사라질까요. 은퇴를 하면 사라질까요. 그것도 장담하지 못하겠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오름길을 걸으며 깨달은 것은 ‘이것은 하나님이 저한테만 주시는 축복일지도 모른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코로나 상황에서도 우리는 공동체가 와해되지 않고 더 굳건한 영적 역설적 부족 공동체로서의 교회를 이루었던 것입니다. 사역을 하다 보면 긴장과 릴렉스가 균형을 이루어야 하지만, 저는 이번의 쉼마저도 긴장이 함께했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이 축복이라면, 저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은퇴 이후까지도 계속 달리고 또 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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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2-05-29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내 마음이 원하는 길
    우리 교회에 임서희 권사님이 계십니다. 제 고향 후배이기도 하고 한동안 정금성 권사님의 비서도 했었습니다. 고향 후배여서 제가 좀 편하게 대했다고 할까요, 아니면 저도 모르게 좀 가볍게 대한 면이 있었다고나 할까요. 그런데 임 권사님이 상처하고 혼자 사시는 목사님과 재혼을 하셨습니다. 그 목사님은 전 세계를 다니며 선교를 하시는 목사님이신데, 그 분도 제 고향 대선배이시고 저의 중매로 임 권사님과 재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최근에야 임 권사님이 실력 있는 화가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문학성이나 예술성이 깊은 사람들은 무조건 좋아하고 우러러보는 경향이 있거든요. 더구나 이분이 그냥 취미로 그림을 그리는 게 아니라 국전에 입선을 한 화가였습니다. 저에게 단 한 번도 그런 이야기를 하신 적이 없으니 모를 수밖에요. 그런데 얼마 전에 개인전을 한다고 기도를 받으러 오셨습니다. 그리고 도록에 들어갈 축사를 부탁하시는 것입니다. 제가 그 도록을 보고 입이 벌어졌습니다. 얼마나 그림들이 순백의 미를 지니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제가 정식으로 사과했습니다. “권사님, 솔직히 과거에 권사님을 좀 무시할 때가 있었어요. 용서해 주세요.” 그리고 기도를 해 드렸더니 권사님께서 펑펑 우시는 것입니다. 저는 기도를 해 드린 후, 도록을 보고 그림 하나를 찍었습니다. 그 그림은 자작나무 숲길에 벤치 두 개가 놓여 있는 그림이었습니다. 언젠가 제가 ‘꿈’이라는 노래를 대중가요 스타일로 작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당신이 불편해 할까 봐 / 마음으로만 고백해요 / 꿈속에서 당신과 손을 잡고 자작나무숲을 거닐고 있을 때 / 별빛이 부서지고 스러지는 밤 / 하늘도 우릴 축복했어요 / 마주치면 피하지만 혼자 있을 땐 꿈을 꿔요 / 이제 고백해도 되나요 피하지 않아도 되나요 / 당신 앞에 서도 되나요 / 꿈속에서 깨어나야 하나요” 저는 도록에 나와 있는 그림들이 다 마음에 들었습니다. 꽃도 마음에 들고 시골 풍경과 나무와 숲길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자작나무숲 그림이 좋았습니다. 왜냐면 제 마음이 원하는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흙길을 좋아하고, 하늘이 나무로 가려지는 원시림과 같은 울창한 숲길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가끔 길을 걷다가 벤치가 있어서 앉아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면 더 좋고요. 살다 보면 혼자 외롭고 쓸쓸하게 걸을 때도 있지요. 하지만 때로는 사랑하는 사람, 또 아끼는 사람들과 함께 길을 걷다 벤치에 앉아 음료수나 간식을 먹으면서 대화도 나누고 또 쉬었다가 걸어가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그런 길이 제 마음이 원하는 길이거든요. 그만큼 제 마음이 휴식을 원하는 것이겠죠. 그런데 그 그림의 제목도 ‘휴식’이어서 제가 당장 찍었습니다. 대부분의 그림이 해바라기, 무궁화, 동백꽃, 장미 등 꽃을 그린 그림이었습니다. 장미는 국전에 입상을 한 작품이고요. 이분이 홍대 미대를 나온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천부적으로 화가의 재능을 가지고 태어나서 그림을 그린 것입니다. 저는 무슨 일을 시킬 때 지혜롭고 빠릿빠릿하게 처리하지 못하면 막 나무라는 스타일인데, 과거에 우리 정 권사님의 비서를 하실 때 아무래도 제가 너무 일방적으로 말을 할 때도 있었거든요. 그래서 정말 죄송하다고 했습니다. “저는 권사님이 이런 대 화가인 줄 몰랐습니다. 진작 말씀 좀 하시지 그러셨습니까?” 그런데 우리 임권사님이 이렇게 순수한 풍경과 꽃그림을 그릴 수 있는 것은 임 권사님의 마음속에 이미 순수의 꽃이 피어 있고 꽃향기가 진동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임 권사님의 꽃 그림은 정말 생화처럼 향기가 느껴지고, 풍경 그림은 마음의 평안함을 줍니다. 마치 저와 같이 쉼을 원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꿰뚫어보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5월 21일부터 31일까지 수지 ‘갤러리썬’에서 개인전을 하는데, 휴식이 필요한 사람, 꽃을 좋아하는 분들은 가셔서 마음이 원하는 길을 찾아보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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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2-05-22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아름다운 라일락 향기의 역사를 만드신 분”
    이 글은 우리 교회 장로님이자 단국대학교 명예 이사장이신 장충식 장로님의 ‘아름다운 인연’과 ‘학연가연’이라는 책의 출판기념회에서 한 축사를 게재합니다. 존경하는 장충식 단국대 명예총장 겸 이사장님의 출판기념회를 진심으로 경하드립니다. 장충식 이사장님은 저희 교회 장로님이시기도 합니다. 장로님께서는 워낙 거산과 같으셔서 끊임없이 맑은 물과 산소를 공급하시는 분이십니다. 이렇게 큰 거산과 같은 장로님을 저희 교회 장로님으로 모시게 된 것이 너무 감사하여 주일날 교회에 오실 때마다 저는 항상 허리 숙여 존경과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혹 여러분은 이런 이야기를 아십니까? 어느 날 경비행기에 기장과 목사와 과학자, 어린아이, 총 4명이 타고 가는데 그만 엔진이 고장이 나서 3분 안에 급하게 탈출을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낙하산은 3개 밖에 없는 것입니다. 맨 먼저 기장이 무책임하게 낙하산을 타고 탈출을 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자 유전공학을 연구하는 과학자가 “나는 인류의 생명과 번영을 위해 먼저 탈출합니다”하고 낙하산을 타고 내려가는 것입니다. 그러자 목사와 어린아이는 마지막 하나 남은 낙하산을 보고 눈치를 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목사는 어린아이에게 “어차피 목회자는 섬기고 희생하는 사람이다. 어서 빨리 낙하산을 타고 탈출을 하거라.” 그러자 어린아이가 “목사님도 함께 탈출할 수 있어요” “이 녀석아 시간 없어. 지금 거의 1분도 안 남았어.” 그러자 어린아이가 뭐라고 말한 줄 아세요? “목사님, 아닙니다. 낙하산이 아직 2개가 있어요. 아까 제가 보니까 과학자 아저씨가 낙하산을 타고 내려간다는 게 제 보이스카웃 가방을 메고 뛰어내려 버리더라구요.” 이게 지도자론에서 흔히 쓰는 유머 예화입니다. 여기서 기장은 있으나 마나 하는 지도자입니다. 과학자는 자신의 욕심만 부리다가 죽음을 자초하는 지도자입니다. 목사는 희생하는 사람의 모형입니다. 어린아이는 역사와 미래를 내다보는 눈을 가지고 있는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장충식 장로님 안에는 목사와 같은 섬김과 희생의 정신, 그리고 어린아이와 같은 역사와 미래를 내다보는 눈을 가지고 계신 분이십니다. 인간은 역사 속에 태어나고 역사를 만들며 역사를 남깁니다. 존경하는 장충식 이사장님은 정말 역사의 격변기에서 독립운동가 장재 선생님의 아드님으로 태어나셔서 수많은 역사를 일구셨습니다. 그는 30대에 단국대학교 최연소 총장이 되셨고 36년 동안이나 총장으로서 단국대를 대한민국 최고의 명문 사학으로 일구신 분이십니다. 북경아시안게임 한국선수단 단장, 남북체육회담 수석대표, 세계 청소년 축구선수권대회 남북 단일팀 단장, 백범 김구 선생 기념사업회 회장, 대한적십자사 총재, 세종문화회관 이사장 등을 역임하셨습니다. 특히 대한적십자사 총재 시절에는 남북 이산가족 상봉 사업을 성사시키는 등 남북 화해의 새 장을 열어가는 자리에 서셨던 분입니다. 그런데 위대한 역사를 일구어도 그것이 기록되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자칫하면 그 역사가 흙무더기 속에 고서로 묻혀버리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장충식 이사장님은 역사를 기록할 수 있는 사관 중에 사관이 되고, 사초의 사초를 쓰셨던 분입니다. 그런데 역사는 혼자 이루는 게 아니라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아니, 그냥 사람을 만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인간애와 진실한 삶이 위대한 역사를 이룰 수 있습니다. 장충식 장로님은 정말 생명을 존중할 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을 존중하고 품에 안으신 분입니다. 이 어른은 음악에도 재능이 있으셔서 노래도 성악가 못지않게 잘하시고 바이올린 등 많은 악기를 다루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가끔 저희 교회에서 특송자로 모시기도 하고 바이올린 연주자로 모시면서 아주 작지만, 사례비를 드리면 그 사례비를 제자들에게 모두 나누어주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어르신은 정말로 사람을 아끼고 섬기시는 분이시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래도 강물은 흐른다’, ‘아름다운 인연’이라는 책을 보면 그의 진정한 인간애의 삶이 배어있고 천의무봉과 같은 필력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번에 쓰신 회고록 ‘학연가연’에도 학교를 통해서 이루어진 수많은 아름다운 인연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책이 한 편의 드라마처럼 얼마나 재밌고 감동적이던지, 저는 밤을 새우며 단숨에 다 읽어버렸습니다. 특별히 후농 김상현 의원과의 인연의 스토리가 가슴 뭉클한 감동을 주었습니다. 몰래 도둑 강의를 듣던 불우한 청년 김상현을 가슴으로 품어주고, 훗날 그 청년 김상현이 국회의원이 되어 단국대학교가 종합대학교로 승격하는 데 조력을 하는 거룩한 부메랑의 스토리가 진한 감동의 여운을 주었습니다. 성경 말씀대로라면 심는 대로 거두는 법칙을 보여주신 것이죠. 이렇듯이, 장충식 장로님은 인간을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함으로써, 잔인한 상황 속에서 아름다운 라일락 향기의 역사를 만드신 분입니다. 모쪼록 이 책이 우리 사회에 인간에 대한 진심 어린 사랑의 큰 울림이 되어 또 다른 가연, 아름다운 인연의 꽃을 피워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옥체가 강건하시고 문은 장수하시어 더 많은 집필을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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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2-05-15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길고양의 눈빛이 지금도 아련합니다."
    월요일 저녁 영광에 있는 ‘청아’라고 하는 한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숙소로 왔습니다. 그런데 호텔 주차장에서 내리자, 길고양이 한 마리가 야옹, 야옹하면서 다가오는 것입니다. 저를 보고 무섭지도 않은지 도망가지도 않고 오히려 애처롭게 울면서 다가오는 것입니다. 언뜻 보니까 암고양이인데 새끼를 밴 것입니다. 그런데 그 순간 호텔의 정문 불빛에 반사되어 고양이의 눈빛과 제 눈빛이 마주친 것입니다. 그런 고양이의 눈동자가 애틋하게 구걸을 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아마도 고양이가 배가 고픈 것 같았습니다. 아니, 배 속에 있는 새끼를 위해서 모성애가 발동하여 어떻게든 먹이를 구하려고 밤거리를 이리저리 떠돌아 다녔던 것 같았습니다. 그러다가 호텔 숙소로 들어가는 저와 마주친 것입니다. 원래 길고양이는 사람을 만나면 무서워서 도망을 가는데 어떻게 안 도망가고 오히려 야옹, 야옹하며 다가온단 말입니까? 그래서 고양이에게 줄 게 있나 보았더니 마침 한정식집에서 다음날 아침에 먹으라고 준 갈비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갈비를 주니까 그냥 “땡큐, 땡큐, 굿, 굿” 하는 듯 하면서 먹는 것입니다. 그냥 먹는 것이 아니라 배 속의 새끼를 위해서 더욱더 간절하게 뼈까지 쪽쪽 빨아 먹는 것입니다. 고양이가 너무나 허겁지겁 먹는 것을 보니까 “갈비를 몇 개만 줘서는 안 되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어서 플라스틱 통에 있는 갈비를 더 주었습니다. 수행하는 비서들이 “목사님 드실 것은 남겨 놓으세요”라고 했지만 하나도 남김없이 다 주어 버렸습니다. 제가 갈비를 줄 때마다 고양이가 구애를 하는 애절한 눈빛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이지요. 그런 고양이를 이렇게 축복했습니다. “많이 먹고 새끼들 낳아 잘 키우거라.” 그러자 고양이가 꼭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주인에게 버림을 받아 본 적이 있지요. 그러나 정말 제가 사람을 잘 봤습니다.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는 모르지만, 저에게 해를 가하지 않고 따뜻한 정을 줄 거라고 짐작했죠. 제 감이 옳았습니다. 고맙습니다.” 플라스틱 통에 든 갈비를 하나도 남김없이 다 주니까 고양이가 다 먹은 후에 포만감을 즐기듯이 감사의 눈빛으로 저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저와 처음으로 마주쳤던 눈빛은 애절하고 간절했는데 먹이를 먹고 난 후에는 만족하고 고맙다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저는 애완동물을 키우지 않습니다. 그래서 옛날에는 애완동물을 키우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아마 정권사님이나 집사람의 영향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애완용 개나 고양이의 털이 빠져 날리면 건강에 안 좋다는 인식을 심어 주었거든요.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애완용 개나 고양이를 키우는 걸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왜냐하면 누군가에게 사랑을 주고 싶은 애정의 대상이 생기는 것이 아닙니까? 물론 자식이 없는 사람들은 더 그렇지만, 자식이 있고 남편이 있다 하더라도 이기적이지 않고 계산적이지 않은 정말 순수한 애정을 주고 싶은 대상이 생기는 것이니까요. 요즘은 애완용 개보다는 고양이로 많이 바뀌어 간다고 합니다. 그날 밤, 저는 제가 키우는 반려묘는 아니었지만 고양이에게 처음으로 사랑을 나누어 줬습니다. 계획된 사랑도 아니고, 예정된 사랑도 아니었지만 그날 저녁에 마주친 길고양이의 간절한 눈빛을 통해서 저도 모르게 마음이 움직였던 것입니다. 배 속에 밴 새끼를 먹여 살리기 위한 모성애로 가득한 길고양이를 사랑했다는 것도 보람이 있지만, 정말 반려견이나 반려묘를 키우는 사람들의 마음을 더 이해하게 되었고 공감하게 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하찮은 미물이지만 저를 알아보고 잠시나마 의지했던 고양이가 고마웠고 생명 사랑의 마음을 더 느끼게 되었습니다. 아직도 그 길고양이의 눈빛이 아련하게 보이는 듯합니다. 오늘은 어버이날입니다. 하찮은 미물도 자기 배 속에 있는 새끼를 보호하기 위해서 목숨을 걸고 음식을 달라고 구걸을 하는데, 하물며 만물의 영장인 인간은 어떻겠습니까? 우리의 부모님은 우리를 먹이고 입히고 돌보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희생과 사랑을 쏟으셨는지 모릅니다. 그 어버이의 은혜 앞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그 어버이의 은혜를 무조건 추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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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2-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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