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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낙엽에 내 마음을 새긴다. 부디 사랑의 엽서가 되어다오.”
- 그렇지 않아도 바쁜 제가 총회와 한국교회의 여러 사역을 감당하다 보니 세월이 화살처럼 날아가는 듯합니다. 금세기 최고의 인문학자인 이어령 박사님의 표현대로 새가 이 나뭇가지에서 저 나뭇가지로 날아가는 듯, 1년이 빠르게 느껴집니다. 벌써 가로수의 나뭇잎들이 단풍이 되어 거리에 나부끼고 있지 않습니까? 이젠 구르몽의 시처럼 낙엽 밟는 발자국 소리를 느낄 새도 없습니다. 그냥 낙엽이 지고 있구나 하며 차창 밖으로 낙엽을 바라보고 지나갈 뿐입니다. 그럴 때면 저도 모르게 이선희 선생님의 ‘청춘’이라는 노래를 흥얼거리게 됩니다. ♪봄과 여름 사이 어디쯤에 있을 아 아 그 시절 노래 부른다 사랑 노랠 불러본다 보석처럼 빛나던 나의 꽃다운 날들 혼돈과 열정 사이 어디쯤이었을 청춘 노랠 불러본다” 이토록 청춘이 빨리 지나가고 벌써 가을이 되어 낙엽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면 삶이 허전할 수 있잖아요. 그래서 떨어지는 낙엽에다 저의 마음을 새겨보고 싶었습니다. 지난 5월에 우리 교회는 예배 회복을 위하여 ‘보랏빛 초청 주일’을 지냈잖아요. 제가 그때 눈물을 훔치면서 설운도 선생님의 ‘보랏빛 엽서’라는 노래를 개사해서 불렀습니다. ♪보랏빛 엽서에 실어온 향기는 목자의 눈물인가 이별의 마음인가 한숨 속에 묻힌 사연 지워 보려 해도 떠나버린 성도 마음 붙잡을 수 없네 오늘도 가버린 성도의 생각에 눈물로 써 내려간 얼룩진 일기장엔 다시 돌아올 성도 모습 목자의 사연 이 노래를 부르며 저도 울고 성도들도 많이 울었습니다. 유튜브를 통해서 보았던 수만 명의 성도들도 눈물을 훔쳤다고 합니다. 그런데 제가 부른 노래 영상을 임청화 권사님과 유송근 장로님이 설운도 선생님한테 찍어 보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설운도 선생님으로부터 전화로 얼마나 칭찬을 받은 줄 아십니까? “목사님, 어쩌면 그렇게 보랏빛 엽서를 잘 부르세요. 목사님이 가수인지 알고 깜짝 놀랐잖아요.” 지금 떨어지는 가을낙엽은 노란빛, 붉은빛 색깔이지요. 저는 보랏빛 엽서 대신에 가을낙엽을 노란빛, 붉은빛 엽서로 생각해 봤습니다. 그리고 제 마음을 잎사귀마다 새겼습니다. “낙엽들아, 내가 얼마나 하나님과 자연을 순백하게 사랑하는지 알고 있지. 그리고 내가 얼마나 교회를 사랑하고 성도들을 사랑하는 것도... 이런 내 마음을 너의 마음에 새겨본다. 부디 사랑의 엽서가 되어 우리 성도들에게 전해 줄 수 없겠니.” 제가 얼마나 예배 회복과 만남의 공동체를 그리워하면 이런 생각을 해 봤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이런 심정으로 지난주엔 ‘러블리 주일’을 기획하고 전자엽서를 만들어서 성도들 폰으로 이런 글을 보내드렸습니다. “어디 있나요? 얼마나 힘들었나요? 혼자 보낸 시간이 너무 아프진 않았나요? 함께 모여 예배드리던 시간이 그리워 울지는 않았나요? 우리의 시간은 그냥 흐른 것이 아니겠지요.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시간만큼 그리움이 쌓이고 사모함이 쌓이고 열망이 쌓여 더 새롭고 애틋한 사랑이 가슴에 꽃처럼 피어나지 않았나요? 이제 그 꽃송이를 들고 오세요. 러빙파더이신 하나님이 당신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랬을 때 주일예배가 웃음과 눈물이 함께 파도치는 경험을 하였습니다. 사실 우리 교회는 어떤 면에서 코로나 때문에 더 강력한 부족공동체가 되었습니다. 코로나가 기승을 부릴수록 더 모이고자하고 교회를 사모하는 열망이 더 커졌으니까요. 그리고 성도를 향한 저의 심장의 온도, 눈빛과 언어의 온도를 느낀 성도들도 눈물 젖은 헌신적 희생의 제물을 드렸고 오히려 더 강력한 영적 부족공동체를 이루어 주었습니다. 금주도 노란빛, 붉은빛 단풍엽서가 성도들 가슴 속에 잘 전달되어지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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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낙엽에 내 마음을 새긴다. 부디 사랑의 엽서가 되어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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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러블리 주일, 상사화가 되어 만나요”
- “태초부터 시작된 숨바꼭질을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 / 눈 뜨면 사라지는 당신의 꽃잎 / 뒤돌아서면 흩날려버리는 너의 나뭇잎 / 별빛 내려앉은 꽃잎도 / 새벽이슬 젖은 나뭇잎도 / 서로를 보고 싶어 하지만 / 스칠 듯, 닿을 듯 지나가 버리는 / 그리움 속에서만 만날 수 있는 아련한 비련 / 당신을 그리워라도 해야 살 수 있을 것만 같아서 / 나는 오늘도 상사화로 피어난다.” 이는 제가 쓴 ‘상사화’라는 시입니다. 상사화는 봄이 되면 잎이 먼저 나는데 꽃줄기가 올라오기 전에 잎이 다 말라 죽어버립니다. 그래서 잎은 꽃을 볼 수 없고, 꽃도 잎을 볼 수 없는 애달픈 그리움의 꽃입니다. 우리 교회는 코로나 초기 때부터 현장예배를 한 번도 쉰 적이 없습니다. 물론 고위험군이나 기저질환자들은 감염병으로부터 보호를 해야 하기 때문에 온라인예배를 드리도록 했습니다. 그러다가 코로나가 조금 진정되고 정부에서 생활방역으로 전환하였을 때 저는 ‘한국교회 예배회복의 날’을 주도하였습니다. 우리 교회는 정말 90% 이상 예배가 회복 되었고, 3박 4일간 본당 3층까지 가득앉아서 여름수련회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우리교회 주변의 고등학교 및 한 교회에서 집단감염이 일어난 것입니다. 저는 중세의 사제들처럼 실수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인들을 보호하고 지역 감염을 막기 위해 자진해서 화상 줌 예배를 도입하고 예배를 축소해서 드렸습니다. 중대본도 전국적인 재확산을 막기 위해서 예배 인원을 20명, 50명 단위로 제한을 하였습니다. 시간이 지나자 용인 지역은 코로나 확산세가 멈추고 잡혔습니다. 그런데도 중대본에서 예배 인원을 풀어주지 않는 것입니다. 저는 어떻게든지 예배를 회복하기 위해서 한교총과 함께 백방으로 노력을 하였습니다. 마침내 예배당 좌석의 30%까지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발표 전에 미리 알고 교인들에게 ‘러블리 주일’을 선포하고 한 주간 특별저녁기도회를 하면서 꿈같은 한 주간을 보냈습니다. 하루 종일 바깥에서 활동하고 저녁에 교회로 와서 밤 특별집회를 인도했습니다. 목요일 같은 경우는 새벽부터 나가서 몇 건의 회의를 하고 총회 임원회는 마라톤 회의를 하였습니다. 몸도 지치고 마음도 힘들었지만 교회에 와서 저녁기도회를 인도할 때는 정말 꿈꾸는 것처럼 행복했습니다. 저는 저녁집회를 하면서 성도들을 한 송이의 꽃으로 생각했습니다. 러블리 주일을 맞아 1부부터 저녁예배까지 올 성도들이 꽃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가을에 피는 국화나 코스모스가 아니라 상사화로 말입니다. 아니, 저 자신부터 한 송이 상사화가 되었습니다. 10개가 넘는 교육관에 50명씩 모였다고 해도 예배가 끝나면 얼굴도 못보고 헤어지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러블리 주일에는 1부부터 저녁예배(6부)까지 30%의 성도들이 오면 꼭 반갑게 대면인사를 하려고 합니다. 러블리 주일은 현장예배를 사무치도록 그리워하며 갈망하는 분들이 상사화로 피어나는 주일입니다. 마치 술람미 여인이 솔로몬을 그리워하듯, 아니 상사화의 꽃과 이파리가 서로를 사모한 것처럼 그런 상사화의 그리움으로 만나고 피어나는 주일입니다. 이번 러블리 주일에 새에덴의 상사화들이 모여서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예배를 드렸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글을 쓰는 제 자신부터 가슴이 찡하고 코끝이 시큰해집니다. 러블리 주일, 우리 모두 상사화로 만나고 상사화로 피어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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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러블리 주일, 상사화가 되어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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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우리는 영적 역설적 슈퍼 처치를 이루어야 할 때입니다“
- 마케팅 전문가이신 최명화 교수의 ‘지금 팔리는 것들의 비밀’(리더스 북)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최명화 교수는 저에게 일정영역에서 자문역할을 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분은 책에서 코로나 사태 때부터 이 세상은 새로운 부족사회를 이루게 될 것이라고 예견을 했습니다. 언택트 온라인 시대가 오면서 취향에 맞고 어떤 사상이나 제품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커뮤니티가 형성이 된다는 말입니다. 그는 마켓컬리를 실례로 듭니다. 마켓컬리의 샛별 배송을 560만명이나 이용하는데, 이거 역시 새로운 부족사회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20만명이 골수 팬덤을 이루면서 마켓컬리의 직원처럼 홍보를 하고 충성을 한다고 합니다. 옛날에는 파레토의 법칙이 대세였다면 지금은 골수 팬덤의 원리가 대세라는 것이지요. 나심 탈레브에 의하면 골수 팬덤은 고객 중 2% 내외가 된다고 하는데, 그 2%가 전체를 움직여 간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요즘은 고객 중 2%만 확실하게 잡으면 2%가 20%를 움직이고 20%는 80%를 움직인다고 합니다. 이런 대세에 따라 최근에 CEO는 먼저 제품을 팔려고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제품을 믿게 하고, 제품을 중심으로 한 커뮤니티를 이루려고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커뮤니티와 단톡방을 통해서 많은 시간을 소통하고 대화한다고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핵심고객과 골수 팬덤을 길러내고, 그 골수 팬덤은 지속적으로 그 회사에 스토리를 만들어주고 홍보까지 해준다고 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죠. 교회도 코로나 사태가 벌어지면서 이미 공간의 권위, 전통과 제도의 권위가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중세 때 흑사병이 닥쳐서 사람들이 모이지를 못하니까 공간과 전통의 권위가 무너지면서 르네상스 시대가 열린 것처럼 말입니다. 저는 코로나 초기 때부터 이러한 현상을 간파하고 공간 공동체를 넘는 역설적 영적 공동체를 세우려고 했습니다. 코로나가 광풍처럼 몰아칠 때 당연히 현장예배를 지키면서도 한국교회 최초로 화상 줌 예배를 도입했습니다. 공간을 초월한 역설적 영적 커뮤니티를 이룬 것이죠. 그러자 유튜브로 예배에 참여한 성도들이 유튜브 예배에 동화되지 않고 오히려 교회와 현장예배를 사무치도록 그리워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중대본의 지침과 방역수칙을 잘 지키면서도 평일에 끊이지 않고 새벽부터 저녁까지 자유롭게 릴레이 기도회를 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성도들 스스로 온라인으로 성전사모헌금을 드리기 시작하였습니다. 평일에 온 분들은 평일에 교회에 와서 드리고, 어떤 분은 교회 주차장 입구까지 와서 헌금을 드린 후 교구 교역자들의 기도를 받고 돌아가서 유튜브로 예배에 참여를 하였습니다. 현장에 모인 공간 공동체를 이루지는 못했지만 더 뜨거운 영적 역설적 공동체를 이룬 것이죠. 그러니까 이 어려운 코로나 상황에서도 우리 교회는 결코 재정이 마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리교회 운영뿐만 아니라 총회를 준비하고 한국교회를 섬기는 일에 부족함이 없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때, 저는 클래식한 설교만 한 것이 아니라 저의 온몸으로 설교의 온도와 몸짓, 눈짓을 다하여 몸부림치며 설교를 하였습니다. 그러자 우리교회의 골수 팬덤 성도들이 모든 성도들을 움직인 것입니다. 굳이 퍼센트로 나눈다면 제가 보기에는 우리교회 골수 팬덤은 2%가 아니라 최소한 30~40%이상인 것 같습니다. 아니, 어찌 보면 80~90%이상이 골수 팬덤으로 보입니다. 예배 때면 화상 줌과 유튜브를 통하여 온 성도들이 함께 웃고, 울고, 감동하는 영적 역설적 공동체를 이룬 것입니다. 최명화 교수의 말대로 새로운 부족사회 혹은 뉴 커뮤니티 시대가 온다면, 그럴수록 저는 변하지 않는 하나님과 그 분의 말씀을 붙잡으면서 우리 교회를더 응집력이 강한 새로운 영적 역설적 공동체를 이룬 것이지요. 그런데, 제가 여전히 꼰대의식에 사로잡혀서 코로나 이전의 모습만을 지키려고 했더라면 우리 교회는 오늘의 살아 움직이는 교회를 이룰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런 영적 역설적 교회를 이룬 우리 교회는 코로나가 종식되고 대면사회가 오게 되면 코로나 이전의 교회보다 훨씬 더 폭발적인 강력한 슈퍼 처치로 재탄생될 것입니다. 부디 우리 교회가 그런 슈퍼 처치의 모델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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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우리는 영적 역설적 슈퍼 처치를 이루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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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가을산에서 겨울산을 봅니다··· ”
- 추석을 맞아 오랜만에 기도원에 갔습니다. 기도원에 가니까 홍장로님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교회에서 본 홍장로님과 기도원에서 본 홍장로님이 너무 다르게 보였습니다. 홍윤기 목사님이 기도원에서 한 달 동안 있었는데, 홍목사님에게 “자네가 너무 부럽다”고 했더니 이런 대답을 하는 것입니다. “인자요산(仁者樂山) 이라고 했는데 담임목사님은 정말 인자이기 때문에 산을 좋아하시지만 저는 산에 질려버렸습니다. 저는 인자가 아닌 듯합니다.” 정말 저는 원 없이 한 달 동안 그런 곳에서 자유롭게 살아보고 싶습니다. 가을산을 생각하면 저는 장석주 시인의 ‘대추 한 알’이라는 시가 떠오릅니다.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번개 몇 개가 들어서서 붉게 익히는 것일 게다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한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날이 들어서서 둥글게 만드는 것일 게다 대추야 너는 세상과 통하였구나 저는 기도원에서 하룻밤을 머물고 다음날 알밤을 주우러 갔습니다. 고요한 가을산에서는 알밤이 익어가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습니다. 가을산의 알밤에도 햇볕이 스미고 이슬이 젖고 별빛이 담겨 있을 것입니다. 아니, 태풍 몇 개, 천둥 몇 개, 초승달 몇 날이 남겨서 둥글게 익어갔을 것입니다. 가을산에서 알밤을 주우면서 유년시절의 추억이 떠올랐습니다. 정신없이 알밤을 줍고 나니까 허리가 아팠지만, 그래도 재미있었습니다. 알밤 안에 담겨 있을 햇볕을 느끼고 이슬을 만지고 천둥과 벼락, 초승달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제 인생도 그렇습니다. 저는 잘 정돈된 정원에서 핀 꽃이 아닙니다. 거친 광야에서 비바람에 젖고 천둥을 맞고 초승달을 바라보며 피어난 외로운 야생화와 같습니다. 농부들이 작물로 키운 알밤이 아니라 야산에서 혼자 이슬에 젖고 벼락을 맞고 초승달을 바라보며 익어간 산밤과 같습니다. 변방의 비주류로 출발해서 세계 최대 장로교단을 대표하는 총회장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가을산의 알밤 속에 햇볕과 이슬이 담겨 있고, 천둥과 벼락, 초승달의 기억이 다 담겨 있는 것처럼, 제 안에도 인생의 희로애락이 다 담겨 있습니다. 아니, 야생마처럼 거친 황야를 달려온 사명자의 땀과 눈물과 혼이 담겨 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오로지 주님만 바라보고 교회만 바라보고 성도만 바라보며 달려왔습니다. 앞으로도 오직 주님의 영광과 한국교회 세움을 위해서 저의 모든 것을 다 바칠 것입니다. 아직 중년이긴 하지만 더 깊은 가을로 접어들고 언젠가 제 인생에도 겨울이 올 것입니다. 그때 눈 내리는 겨울산을 바라보면서 이런 고백을 하고 싶습니다. “하나님, 제 안에는 햇볕이 스며있고 이슬이 젖어있고 천둥과 바람이 담겨 있습니다. 아니, 외로운 초승달의 기억이 있습니다. 그 모든 인내와 아픔, 슬픔과 기쁨, 희로애락은 주님의 영광과 교회 세움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제 제 인생에도 겨울이 오고 눈이 내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행복합니다. 제 안에는 오직 주님 한 분만으로 충만하고, 저의 인생은 주님 한 분만을 위한 사명의 길이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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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가을산에서 겨울산을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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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저는 병을 앓고 있어요. 심한 강박증이죠.”
- 지난 주 우리 교단은 우리 새에덴교회에서 사상초유의 화상 총회를 개최했습니다. 다행히 우리는 6.25 참전용사 때부터 화상 행사를 경험했고, 몇 주간 화상예배를 드렸기 때문에 노하우가 있었습니다. 아니, 처음 시작할 때 ‘미스터 트롯’팀에서 지원해 주었기 때문에 기술적으로는 거의 완벽한 화상총회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상으로는 한계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원래 큐시트 상에는 선거 시간이 20분으로 되어 있는데 예기치 않은 사고가 발생해 한 시간 반 가까이 소모를 하였습니다. 그나마 제가 장로 부총회장 선거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함으로써 그렇게 끝나게 된 것입니다. 정말 아쉽게 끝날 총회였는데도, 다행히 그날 저녁 총회 역사 다큐가 총대들의 답답한 마음을 덮어 버린 것입니다. 정말 제가 100여 통이 넘는 칭찬 문자를 받았을 정도니까요. 이튿날부터 저는 하루 종일 총회 임원회의를 주관했습니다. 얼마나 피곤했겠습니까? 그런데 타교단의 화상 총회를 총괄했던 분이 과로사 했다는 소식을 듣고 겁이 났습니다. 우리 총회 직원들도 혹시 그런 사건이 나면 큰 일 난다는 생각에 저녁에 바로 끝내 버렸습니다. 저녁 늦게 교회로 돌아와 보니까 교계에서 뿐만 아니라 정부의 주요 인사들까지 총회장 취임 축하 난을 보내온 것입니다. 그 분들의 마음이 감사하기는 하지만, 저는 우리교단과 한국교회가 가장 어려운 때 총회장이 되었다는 부담감 때문에 저녁 내내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아, 예배가 이렇게 초토화되고 한국교회가 무너져가고 있는데 나는 1년 동안 어떻게 예배를 회복하고 한국교회를 세울 수 있을까.” 다음날 총회 첫 일정으로 양화진을 갔습니다. 그리고 교회로 와서 국가조찬기도회 녹화에 참여했고 각 교계 방송과의 인터뷰를 줄줄이 하였습니다. 이어서 일간지 인터뷰까지 했습니다. 기자들이 저에게 총회장 소감을 물어봤을 때 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한 마디로 두려운 영광이고, 영광스러운 두려움입니다. 제 얼굴을 보십시오. 눈이 쏙 들어가고 얼굴은 반쪽이 되지 않았습니까? 잠을 못자서 그런 것입니다.” 그날도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이런 저의 형편을 알고 강남에서 줄기세포 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저희 교회 신현순 권사님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목사님, 면역력을 증강시켜야 합니다. 면역이 떨어지면 코로나에 노출이 됩니다. 제가 부탁드릴 것도 있고 기도 받을 내용도 있으니 병원 심방 좀 와 주세요.” 그래서 서울에서 점심 약속을 끝낸 후 병원 심방을 했고 이어서 면역력을 높이는 시술을 받았습니다. 제가 시술을 받는 동안 원장님은 신경 쓰지 않도록 수면마취를 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수면마취마저도 곧바로 되지 않는 것입니다. 한참 동안 있다가 가까스로 잠이 들면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는 것입니다. “아, 우리 총회가 잘 되어야 하는데, 임원회도 다시 해야 하고 미진한 부분들을 빨리 결정해야 되고, 실행위원회도 소집을해야 하는데... 그리고 한국교회도 잘 세워야 하는데...” 그런 이야기를 하며 잠시 잠이 들더라는 것입니다. 잠이 든 후에도 “아, 내가 총회장을 잘 해야 하는데...” 그런 잠꼬대를 하더라는 것입니다. 옆에서 지켜보던 강인철 안수집사가 그 이야기를 해주는데 저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입니다. “아, 나는 병을 앓고 있구나. 심한 강박증을 앓고 있구나.” 그날 밤도 잠들기 전 앉아서 이런 기도를 계속 했습니다. “하나님, 저 좀 도와주세요.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반전과 역전의 종이 되게 하소서. 제 마음을 짓눌러 오는 이 강박이 꼭 총회를 세우고 한국교회를 세우는 일로 반전이 되게 하소서. 역전의 역사를 쓰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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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저는 병을 앓고 있어요. 심한 강박증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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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광야를 걷는 사이에 꽃이 피지요··· ”
- 스티브 도나휴가 쓴 ‘사막을 건너는 여섯 가지 방법’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저자 스티브 도나휴는 20대에 사하라 사막을 건넜던 경험을 통해서 책을 쓰기 시작하였습니다. 저는 코로나 시대를 어떻게 헤쳐 나가야할까를 생각하다가 이 책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특히 저는 코로나 상황 속에서 목회하며 공적 사역도 해야될 총회장을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남들은 꽃길을 걸어간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저는 거친 바람이 몰아치는 외롭고 험난한 길을 걸어갈 것입니다. 이럴 때 성도들과 함께 어떻게 잘 이겨내고, 교단 총회장으로서 총회와 한국교회를 섬길 것인가를 묵상해 보았습니다. 첫째, 과거를 돌아보고 앞으로 가는 삶입니다. 출애굽기에서 신명기까지 쭉 보면 모세의 설교는 새삼 과거를 기억하고 돌이키며 동시에 앞으로 전진하는 말씀을 반복해서 했습니다. 저는 코로나가 있기 전부터 어떤 상황에서도 예배를 가장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광주5.18사건 때도, 백암교회 때도 예배만큼은 물러서는 법이 없었습니다. 지금도 저를 모르는 사람들이 예배를 쉽게 포기하는 사람처럼 보는데 천만의 말씀입니다. 우리 교회는 한 번도 예배를 멈춘 적이 없습니다. 오죽하면 코로나의 상황에서도 우리교회는 여름수련회를 꽉꽉 채워놓고 하였지 않습니까? 그리고 한국교회 예배회복을 위해 얼마나 애를 썼는지 하나님이 아십니다. 그런데 갑자기 코로나가 재확산 되면서 저희 교회 인근 고등학교와 한 교회에서 다수의 확진자가 발생한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바로 판단하고 결단을 한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성도들의 건강과 예배를 지킬 것인가를 생각하다가 화상 줌까지 도입한 것입니다. 둘째, 어떤 상황에서도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년 동안 광야에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으면 살 수가 없었습니다. 매일매일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만나를 주시고 메추라기를 주시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을 의지해야 반석에서 샘물이 나오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므로 우리도 코로나 상황 속에서 더 바라볼 분은 오직 예수님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광야에서 40일 금식할 때 얼마나 하나님만 바라보셨습니까? 저는 현장예배냐, 온라인예배냐 논란에 휩싸이고 싶지도 않습니다. 저는 코로나 초창기부터 예배를 포기한 교회에 불만이 많았지만 단 한 번도 비판한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비판한 사람들을 아울렀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어떤 형식보다도 우리가 어떻게 예배의 본질을 지키고 하나님을 바라보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셋째, 광야를 지나다보면 어느새 우리의 삶에 꽃이 피고 풍성해 진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교회는 코로나 상황에서도 성도들의 헌신과 성전 사모 운동이 더 뜨거워졌습니다. 무엇보다 오히려 제 자신이 하나님을 더 사모하며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 가까워진 것입니다. 이런 저의 간절함과 진정성이 성도들에게 전달되어서 교구마다 구역마다 아름다운 꽃이 피고 삶이 풍성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코로나 상황은 우리 모두에게 시험이기도 하였지만 더 큰 기회이기도 하였습니다. 우리 함께 코로나라는 광야를 잘 걸읍시다. 광야를 지날 때 곧 꽃이 피는 날이 올 것입니다. 그 꽃이 피면서 우리의 삶이 더 성숙해지는 날이 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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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광야를 걷는 사이에 꽃이 피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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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그립고 보고픈 성도님들··”
- 그립고 보고픈 성도님들, 코로나 재확산으로 인하여 온라인 예배로 전환한지도 어느덧 네 번째 주가 되어 갑니다. 한국교회 예배를 회복하는데 우리교회가 가장 앞장섰고, 우리 교회는 90% 이상 예배가 회복되었습니다. 대부분의 한국교회도 60~70%이상 회복되었다고 했는데, 갑작스런 코로나의 재 확산으로 인하여 어쩔 수 없이 온라인 예배를 드리는 것을 생각하면 너무 분통이 터집니다. 한두 주만 지나면 여러분들과 함께 현장예배를 드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시간이 길어지면서 여러분들을 향한 저의 그리움은 더 깊어만 갑니다. 화상 줌에 비춰지는 여러분들을 볼 때마다 얼마나 반갑고 한 편으로는 미안한 마음이 드는지 모릅니다. 텅 빈 예배당에서 홀로 첫 예배를 인도할 때 저는 하나님께 너무나 죄송하고 성도 여러분들에게도 죄송한 마음이 가득하였습니다. 이것이 다 교회 지도자들의 잘못이라고 생각하니 더 죄송하고 송구하기만 하였습니다. “아, 우리 성도들이 얼마나 현장예배로 달려오고 싶을까. 비록 마스크를 쓰고 예배를 드리더라도 얼마나 교회로 달려오고 싶을까...”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얼마나 제 가슴이 미어지고 아팠는지 모릅니다.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화상 줌에 비춰지는 성도들을 향하여 반갑게 손을 흔들고 인사를 하고 축복을 하였지만 제 가슴에는 뜨거운 눈물이 흐르고 또 흘러내렸습니다. 우리가 지금은 갈대처럼 헤어져 있지만, 반드시 꽃으로 다시 만나는 날을 기다리며 기도하고 또 기도하였습니다. 더 주님의 약속과 은혜를 사모하며 온 힘을 다하여 말씀을 외치고 외쳤습니다. 저는 새에덴교회를 개척한 이후부터 교회가 저의 집이었으며, 성도들이 저의 가족이었습니다. 교회가 제 생명이요, 성도가 제 목숨이었습니다. 새에덴교회가 저였고 제가 새에덴교회였습니다. 성도들이 아프면 저도 아팠고, 성도들이 힘들어하면 저도 힘들어했고, 성도들이 울면 저도 울었습니다. 단 한 순간도 교회와 저는 뗄 수 없었고, 제 인생에서 여러분들을 떼어낼 수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이런 저를 제 집사람이 이해하지 못하였지만, 지금은 얼마든지 이해를 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정작 여러분과 만나지 못하고 함께 예배를 드리지도 못합니다. 그러나 저는 믿습니다. 지금 우리가 함께 만날 수 없는 이 그리움의 시간이 오히려 우리의 사랑을 더 깊고 강하게 해 주리라고 말입니다. 이런 시간을 통해서 저에게 여러분들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 여러분도 저를 그리워하며 교회를 사모하고 있는 줄로 압니다. 목사가 텅 빈 예배당을 바라보며 설교한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 아십니까? 지난날 이 성전의 자리를 채워주신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얼마나 귀한 존재였는지 새삼스럽게 느껴지고 깨닫고 있습니다. 그래도, 이 어려운 시간 속에서 더 역설적인 헌신을 드리며 하나님과 교회를 위하여, 부족한 종을 위하여 눈물겨운 사랑과 성원을 해 주신 성도들을 보며 저는 주님 앞에 이렇게 외치고 외칩니다. “주님, 이 부족한 종에게 이토록 아름다운 성도들을 만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새에덴의 성도들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겠습니다. 새에덴의 찬란한 약속과 축복이 이루어지는 그 날까지, 저는 한 영혼, 한 영혼을 끌어안고 제 모든 기도와 눈물과 희생을 주의 제단에 바치겠습니다. 하루속히 지금의 위기가 지나가게 하시고 우리가 다시 꽃처럼 만나 예배드리는 날이 오게 하옵소서. 주여, 우리 성도들을 끝까지 지켜 주옵소서.” 그리운 사람은 아무리 멀리 있어도 보인다고 하지 않습니까? 지금 제 두 눈동자에는 여러분들의 얼굴이 보입니다. 아니, 제 모든 인생을 다 끝내고 주님 앞에 가는 마지막 순간까지, 저는 오직 주님만 바라보고, 교회만 바라보고 여러분만 바라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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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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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그립고 보고픈 성도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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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저는··· 주님이 부르셔서 세워주신 목사입니다.”
- 저는 누가 뭐라 해도 하나님의 종, 목사입니다. 누가 아무리 저에게 돌을 던진다 할지라도 저는 목사입니다. 물론 저도 한 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지금 코로나 시대 속에서 우리 한국교회가 얼마나 부끄러운 모습을 보였는지, 목회자가 서로 공격하며 비난하는 모습을 보였는지...’ 그러나 목사가 목사를 공격하고, 성도가 목사를 공격하고 교회가 사회를 공격하고 사회가 교회를 공격하는 이 야만의 시대 속에서, 다시 생각하고 또 생각해 보아도 저는 목사였습니다. 저는 불신가정에서 태어나 교회를 다니겠다고 생각을 해 본적도 없었습니다. 더구나 교회를 다닌 후에도 목사가 되겠다고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그 불가항력적인 소명을 받아 신학교에 간다고 얼마나 많은 박해를 받았는지 모릅니다. 오죽했으면 그 차가운 겨울 눈보라가 몰아치는 어느 날, 저를 낳아주신 부모님으로부터 버림을 받고 내쫓김을 받아야 했겠습니까? 그러나 저는 오직 주님 한 분 바라보며 선지동산의 문을 두드렸고 온갖 모진 고생과 어려움 속에서 고학을 하며 오늘의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오직 주님, 오직 교회를 위한 삶을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목사가 된 행복감에 젖어 주님을 태우는 군마가 되어 말갈기를 휘날리며 거친 광야를 달리고 삭막한 황야도 마다하지 않고 여기까지 달려왔습니다. 그러나 지난 주간에는 주님 앞에 엎드려 이런 기도를 드려보았습니다. “주님, 저는 지금 전혀 기쁘지 않습니다. 목사로서의 행복감도 사라져버리고 말았습니다. 아니, 주님 앞에 너무 부끄럽고 죄송할 뿐입니다. 어찌하여 목사라는 이름이 이렇게 부끄러운 이름이 되었단 말입니까? 교회라는 이름이 이렇게 부끄러운 이름이 되어버리고 말았단 말입니까? 휘몰아치는 잔인한 폭거와 비난의 화살 앞에 오늘따라 왜 이렇게 주님의 종으로서 초라하게 느껴진단 말입니까” 저는 이런 기도를 드리며 하염없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집에서 쫓겨나며 흘렸던 그때의 눈물보다 더 뜨거운 눈물을 흘렸습니다.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아무 것도 해 드리지 못하고 교회의 영광성과 거룩성이 훼손당하는 현실 앞에 너무 송구하고 죄송하기만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울다가, 다시 생각해 보며 이렇게 기도드렸습니다. “주님, 저는 그래도 주님이 불러주셔서 세우신 당신의 종입니다. 이 시대의 목회자가 수많은 사람들의 조롱과 공격을 받는다 할지라도, 저 땅바닥에 떨어져 사람들의 발길에 밟히고 또 밟혀 누더기가 된다 할지라도, 저는 당당하게 목사라는 이름을 다시 둘러 입고자 합니다. 제가 지금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여도, 그러나 다시 일어나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져가는 교회를 다시 일으켜 세워보겠습니다. 왜냐면 주님, 저는 목사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목사가 되고자 해서 목사가 되었다면 얼마든지, 언제든지 목사라는 직분을 버릴 수 있겠지요. 그러나 주님이 저를 거부할 수 없도록 불러주셔서 주님이 피 흘려 세우신 교회를 지키며 세우는 목사가 되게 하셨기에 저는 이 이름을 버릴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불러주시고 소명의 옷을 입혀주신 그 이름을 제가 어찌 부끄럽다 할 수 있겠습니까? 주님, 저에게 다시 한 번만 힘을 주옵소서. 이 모든 시련을 이겨내고 무너져가는 한국교회를 다시 세우는 이 시대의 진정한 목사가 되게 하옵소서.” 코로나로 인하여 전 사회가 셧다운 되며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잔인한 말들과 야만의 폭거가 소용돌이치는 이 혼돈의 시대 속에서도, 목사의 말과 순명을 지키며 길을 걸어갈 것입니다. 아니, 목사라는 이름이 다시 숭고하고 교회가 존엄하고 거룩하다 불릴 날을 위하여, 저의 마지막 땀과 눈물과 혼을 바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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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저는··· 주님이 부르셔서 세워주신 목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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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우리의 계절은 희망입니다··· ”
- “지금은 우리가 갈대처럼 헤어져 / 그리워도 만날 수 없고 / 마음껏 소리 내어 말할 수 없지만 /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 이 세상에서 가장 따스한 빛은 / 당신의 눈빛이라는 것을, /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은 / 말없이 짓는 희미한 미소라는 것을! / 아무리 멀고 험해도 참고 섬기며 기다리겠습니다. / 우리의 외로운 사랑이 /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이겨내고 / 다섯 번째 계절인 희망의 들녘에 / 꽃으로 피어나는 그날을!” 코로나19로 인하여 고통당하고 있는 모든 분들을 생각하며 짧은 시를 한 편 써 보았습니다. 지금 한국교회는 코로나19로 인하여 참 많은 어려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저는 지난 목요일 청와대를 다녀왔습니다. 저는 대통령의 모두 발언에 촉각을 곤두세웠습니다. “한국교회에 대해서 어떤 말씀을 하실까...” 물론, 특정교회에 대한 발언은 예견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대통령께서 처음에는 오늘날 대한민국이 있기까지 기독교의 눈부신 역할을 치하하는 것으로 시작했습니다. “한국교회가 우리 민족의 근대화 과정에서 교육과 언어, 독립운동에 큰 역할을 하였고 해방 후에도 주도적으로 사회복지 역할을 하는데 정말 공이 크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깊이 감사드립니다. 이번 수해 복구에도 한국교회가 앞장서서 방문을 했고 성금까지 기탁해 주셨고 코로나 방역에도 대다수의 교회가 앞장서준 것에 대해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저는 지금까지 청와대를 수없이 방문하였지만 이번처럼 대통령이 한국교회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치하한 적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 언론의 기사를 보니까 어쩌면 이럴 수 있단 말입니까? 완전히 언론이 프레임을 만들어 싸움을 붙여 놓은 느낌이었습니다. 어떤 언론은 “가톨릭 사제들에게는 대통령이 감사와 찬사를 전하였지만 교회 지도자들에게는 대놓고 사과만 하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왜 한교총 대표회장의 발언도 대통령과 각을 세우는 부분만 보도하느냔 말입니다. 얼마나 한국교회가 싫었으면 그랬을까요. 그렇지 않아도 국민이 교회를 향하여 분노의 화살을 쏘고 있는데 언론까지 가세를 하니 말입니다. 다행히 제가 페북에 균형 있는 글을 올리니까 그 내용을 여기저기서 퍼다가 인용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제가 일찍 페북에 글을 올릴 걸 그랬습니다. 그날 저녁 내내 생각하고 또 생각해 봤습니다. “이렇게 한국교회가 인심을 얻지 못하고 있는가. 정말 우리 한국교회가 정신 차려야 되겠구나. 국민과 기자들의 시각에서 볼 때 교회가 신앙적 양심으로 방역을 잘 지키면서 현장예배를 드리는 것까지도 이기적인 면으로만 보이고 교회의 이너서클이나 종교적 카르텔의 모습으로 보이고 있으니... 교회가 정말 정신차려 다시 이미지 축적을 해야겠구나. 아니, 나부터 더 분발하리라.” 다행히도 다음날 대통령께서 시민사회수석으로 하여금 진의가 담긴 보도자료를 내놓게 함으로써 어느 정도 중화가 되긴 했습니다마는. 아무튼 이럴때엔 지금 한국교회는 막말이나 극단적인 언어와 행동을 자제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극단적인 말이 아니라 따스한 눈빛이고 말없이 짓는 희미한 미소이지 않을까요? 우리는 따스한 눈빛과 희미한 미소로 안부를 전하며 함께 힘을 모아 이 고통을 이겨나갔으면 좋겠습니다. ‘♪맘 같지 않은 세상 / 그 맘 다 알아줄 수는 없지만 / 늘 곁에 함께 있다오...’ 우리의 외로운 사랑이 희망의 들녘에 꽃으로 피어나길 바라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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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우리의 계절은 희망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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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지금은 사랑하고 치유해야 할 때입니다”
- 저는 요즘 같으면 명대로 살지 못할 것 같습니다. 지난번에 설교 때 말씀드린 ‘꾀꼬리 틀의 단장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조선 중종 때 ‘어숙권’이라는 식물학자가 꾀꼬리 어미와 새끼를 칸을 막아놓고 분리를 시켜놨다지 않습니까? 게다가 새끼들을 굶기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배고프다고 울어대는 꾀꼬리 새끼들의 울음소리를 듣고 꾀꼬리 어미는 밤낮으로 구슬프게 울기만 했습니다. 얼마가 지난 후에 어미와 새끼를 만나게 해줬습니다. 그랬더니 어미 꾀꼬리는 곧바로 쓰러져 죽었다고 합니다. 그러고 나서 어미 꾀꼬리 배를 갈라보니까, 창자가 18토막이나 나 있더라는 것입니다. 어미 꾀꼬리의 애간장이 녹고 녹아 창자가 잘라져 버린 것이죠. 저도 몇 주 동안 애간장을 끓이며 살았습니다. 지금 언론이 얼마나 교회를 향하여 공격적 포문을 쏟아내고 있습니까? 더더욱 참담한 것은 국민의 분노의 화살이 한국교회 전체를 향하여 빗발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최근 애드립 문제로 공격받은 것에는 신경 쓸 여유도 없었습니다. 그저 총회와 한국교회를 지키기 위하여 온 애를 끓으며 전심전력을 다 해 투혼을 불살랐습니다. 저는 그동안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14년 동안 참전용사들을 초청해 왔고 이슬람 스쿠크, 포괄적 차별금지법, 종교인 과세 등의 문제를 위하여 전면에서 일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총회와 한국교회 목사님들이 저에게 이렇게 전화가 온 것입니다. “소 목사님, 지금 뭐 하고 있습니까? 6.25전쟁 때도 총칼을 두려워하지 않고 예배를 드렸는데 우리가 순교를 각오하고 현장예배를 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것도 공적 사역이니 소 목사가 총대를 메고 정부와 싸워 주세요.” 다짜고짜 화를 내며 퍼부어대는 목사님께 참고 인내하면서 이렇게 답변을 드렸습니다. “저도 목사님과 생각이 똑같습니다. 만약 공산당이 총칼을 들고 와서 예배를 못 드리게 한다면 목숨을 걸고 예배를 지킬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온 국민이 전염병 때문에 불안해하고 분노하고 있는 때가 아닙니까? 우리 교회 역시 주변 교회에서 집단감염이 일어나 지역이 초비상인데, 우리가 일상적인 예배를 강행했다가 우리 교회에서 집단감염이 일어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최소한의 숫자가 예배를 드리면서 동시에 온라인예배를 드리도록 저는 정부와 끊임없이 소통하며 설득하고 있습니다.” 저는 깊이 성찰해 보았습니다. “아, 나는 정말 용기가 없는 목사인가, 정말 비굴한 사람인가. 아니, 나만큼 예배를 사랑하는 사람도 없을 텐데... 그리고 예수님도 하나님을 사랑하며 이웃을 사랑하라고 했잖아. 지금은 전염병을 막고 국민건강을 지키기 위해서 옳고 그름을 따지기보다 한국교회가 사회적 상처와 시대적인 아픔을 품고 애통하며 기도하고 사랑해야 할 때야. 감염병 때문만 아니라면 얼마든지 정부와 싸울 수도 있다.” 이런 생각을 하며 저는 먼저 제 자신의 부족함부터 회개하고 가슴을 치며 애통하였습니다.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우리는 먼저 자성하면서 서로 하나 되어 한목소리를 내야 할 때입니다. 그러면서 시대의 아픔을 치유하고 전염병 확산을 막고 퇴치하는 데 앞장서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분명히 다시 선교와 재부흥의 기회가 오게 될 것입니다. 아무리 힘들고 멀어도 예배를 생명처럼 여기면서도, 국민 보건을 위해 그리스도가 보여주신 사랑의 길도 포기해서는 안 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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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지금은 사랑하고 치유해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