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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당신의 검은 눈동자가 사라지지 않네요”
- 래리 래딕 어르신, 2007년 1월 21일 주일 저녁을 기억하시죠? 그때 어르신께서는 마틴 루터 킹 퍼레이드와 어떤 연고가 있어서 오셨는지 모르지만 전야제에 초청을 받아 오셨습니다. 제가 마틴 루터 킹 퍼레이드 재단에서 주는 국제평화상을 받기 위하여 그 자리에 있을 때 어르신께서 오셔서 허리와 엉덩이 사이에 총을 맞은 흉터를 보여 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나는 6.25전쟁 때 한국을 위해 싸운 참전용사입니다. 동두천, 의정부, 수원 등에서 전투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뒤로 한국을 한 번도 가보지 못했습니다. 죽기 전에 꼭 한 번 방문하고 싶지만 누가 초청해 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꼭 한 번 한국에 가고 싶습니다.” 그때 저도 모르게 어르신께 큰절을 하였습니다. 누군가가 큰절을 하라고 밀어뜨린 것 같았습니다. 큰절을 하고 나서 제가 이렇게 말씀을 드렸지요. “어르신, 제가 초청해 드리겠습니다. 혼자 오시기가 서먹서먹하시면 친구 어르신들과 함께 오십시오.” 저는 대여섯 명 정도 오실 줄 알았는데 친구들과 가족들까지 50여명이 오신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렇게 판이 커지면서 제1회 참전용사 초청행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어르신께서 우리 교회에 오셔서 너무 크고 아름다운 교회라고 놀라시던 모습이 기억납니다. 제 손을 꼭 잡아주시면서 “나도 교회를 나간다”고 좋아하시던 모습도 떠오르고요. 그런데 어르신께서 한 번 더 오시고 싶다고 해서 다시 초청을 해 드렸을 때는 휠체어를 타고 오셨지요. 군제복을 입고 오셔서 “땡큐, 땡큐, 패스터 소! 땡큐, 새에덴 처치” 말하며 눈물을 흘렸던 그 젖은 검은 눈동자가 지금도 제 가슴에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다음에 미국에 가서 인서비스를 할 때 어르신을 초청하려고 했는데 하늘나라에 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때 제가 얼마나 가슴이 먹먹하고 서글펐는지 아십니까? 지금도 어르신이 저에게 보였던 젖은 눈동자는 제 가슴 속에서 떠나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 주변에서 10회 정도만 해도 훌륭하니 이제 그만해도 된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그래도 당신의 눈동자가 떠나지 않고 계속 어른거려서 14년째 하게 되었습니다. 올해는 코로나19 때문에 줌 프로그램으로 화상 초청행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당신은 하늘나라에 계시기에 첨단의 줌을 넘는 영적 줌이 있겠지요. 저는 이런 일을 하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대한민국의 평화를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래딕 어르신, 당신의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어르신 때문에 참전용사 초청행사를 14년째 할 수 있었기 때문이지요. 천국에서 이 모습을 보시고 영원한 안식을 누리세요. 저는 참전용사 중 마지막 한분이 살아계실 때까지 찾아가서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기도해 드릴 것입니다. 저 영원한 천국에 가는 그날까지 당신의 검은 눈동자를 기억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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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당신의 검은 눈동자가 사라지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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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빈손 들고 앞에 가 십자가를 붙듭니다”
- 저는 요즘 사람을 만나고 여러 회의를 주관하거나 행사에 참석하는데 시간을 많이 보내고 있습니다. 특별히 9월에 있을 교단 총회를 준비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지요. 지난 목요일 오전에는 총회준비위원회 모임을 주관했습니다. 이번에 총회 슬로건(표어)은 “세움”(planting)으로 삼았습니다. 반달리즘 현상으로 셧 다운된 교회의 예배를 세우고 신앙의 본질을 세우며 동시에 총회를 세우자는 것이지요. 요즘 제 머릿속에는 언제나 신앙을 세우고 총회와 한국교회를 세우는 “세움”이라는 단어로 꽉 차있습니다. 지난 목요일 오후에는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과 몇몇 상임위원을 만나 포괄적 차별금지법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를 분명하게 표명하였습니다. 이처럼 요즘 자타가 공인하는 총회와 교계의 정무적 활동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사실 저는 정무적인 사람이기보다는 목양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제가 과거에는 오로지 성경을 연구하고 기도하고 목양하며 영혼을 케어하고 보듬는 즐거움 밖에 몰랐습니다. 그러나 요즘 제가 정무적 활동을 하면서 고 김종필 총리가 말씀하신, “정치는 허업(虛業)이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그는 평생을 정치에 쏟으며 한 시대의 역사를 장식하신 분이었습니다. 그러나 인생말년에 돌이켜보니까 정치는 허무하더라는 것입니다. 왜 허무했을까요? 제가 보기에는 정치의 목적이 권력 지향적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정말로 나라를 섬기고 국민의 행복을 위해서 정치를 했다면 그런 말씀을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고 김영삼 대통령께서도 다시 젊은 시절로 돌아가면 정치를 안했을 것이라고 말씀했지요. 돌이켜보니 그가 대통령의 자리에 올라가기까지 많은 권모술수를 부렸을 것입니다. 그리고 대통령의 자리에서 물러났을 때 그 많은 공격과 비난으로 인하여 회의와 허무감을 느끼다보니 그런 말씀을 하신 듯합니다. 그래서 저도 “허업을 하고 있지 않나” 순간순간 돌아봅니다. 물론 저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권모술수를 써 본 적이 없습니다. 저 자신의 권력욕을 위해서 단 한 번도 정무적 활동을 하지도 않았고 권력 지향을 위해서 정무활동을 한 적이 없습니다. 오로지 한국교회 세움을 위해서일 뿐입니다. 잠꼬대를 할 때도 한국교회 세움을 외칠 정도니까요. 그러나 사람을 만나는 시간이 많다보니 제 몸과 마음에 때가 묻을 수는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몸과 마음을 정화하기 위하여 산행을 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리고 주님 앞에 빈손 들고 홀로 나아가 십자가를 붙드는 시간을 갖습니다. 얼마 전 정권사님이 지쳐 있는 저의 얼굴을 보며 이런 찬송이 나오신다는 것입니다. “빈손 들고 앞에 가 십자가를 붙드네...” 저는 그런 정권사님을 보고 “아, 저 분은 80이 넘으셨어도 영감이 살아 있는 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장담컨대, 저는 앞으로도 권력욕에 빠진 정치를 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로지 교회 세움을 위한 활동만을 할 것입니다. 그리고 저의 활동이 허업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매 순간순간 빈손 들고 주님 앞에 나아가 십자가를 붙들 것입니다. 그러면서 훗날 저는 이렇게 고백할 것입니다. “한국교회를 지키려고 했던 나의 정무적 활동은 결코 허업이 아니었습니다. 나의 활동은 한국교회 세움과 등불이 되는 카타콤의 푸른 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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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빈손 들고 앞에 가 십자가를 붙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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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소나무가 된다면 솔방울부터 맺겠어요···”
- 오랜만에 바다를 보았습니다. 총회 남전도회가 주최하는 전도대회 첫날 밤 저녁집회를 인도하기 위해서 부안 격포를 갔던 것입니다. 격포 해변의 바다는 옥구슬처럼 맑았습니다. 물결도 잔잔했습니다. 저는 푸른 바다를 낀 산길을 걸었습니다. 그런데 걸어가면서 자세히 보니까 산딸기가 제법 익어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 따 먹던 산딸기의 추억에 매료되어 손이 가시에 찔리도록 따 먹었습니다. 배고파서가 아니라 추억을 먹고 싶어서였지요. 그런데 바다와 바로 인접한 나무들 가운데 유독 소나무가 지쳐 보였습니다. 얼마나 바람을 많이 맞았는지 잎사귀 뿐만 아니라 가지도 상한 곳이 많았습니다. 그런 소나무 가지에는 유달리 솔방울이 많이 달려 있었습니다. 같이 길을 걷던 서광수 장로님께 물어 보았습니다. “장로님, 왜 저 소나무만 저렇게 솔방울을 많이 달고 있을까요” 그랬더니 서장로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소나무도 자기 죽을 날을 알고 종족을 보존하기 위해서 저렇게 솔방울을 많이 맺는다고 합니다.” 저는 서장로님의 말을 듣고 “아 그렇구나”하고 깨달았습니다. 같은 지역에 있던 소나무중에 바람을 좀 덜 맞거나 지쳐 있지 않은 소나무는 솔방울을 그리 많이 달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해풍을 직접적으로 맞고 솔잎과 가지가 상한 소나무는 솔방울을 많이 달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소나무를 바라보며 깊은 상념에 잠겼습니다. “그래. 우리 교계도 마찬가지다. 반기독교적 사상의 바람, 교회 생태계를 공격하는 해풍을 느끼는 사람일수록 저 소나무처럼 활동을 많이 하며 교회를 세우는 사역을 많이 하겠구나.” 그런 생각을 하니까 소나무가 더 기특하게 보이고 위대하게 보였습니다. 해풍을 전면에서 맞으며 행여라도 자신이 너무 힘들어 지쳐 쓰러지게 되면 솔방울을 통해서 다음세대를 이어가도록 하려고 하니 말입니다. 과연 솔방울을 통해 다시 태어난 소나무는 어미 소나무를 대신해서 그 자리를 지킬 것입니다. 그리고 또 그 소나무가 지치고 힘들게 되면 많은 솔방울을 맺어서 또 그 자리에 소나무 숲을 이루게 할 것입니다. 그 순간 제 자신이 그 자리에 서 있는 소나무처럼 느껴졌습니다. 저 역시 누구보다 반기독교적인 해풍과 교회 생태계를 공격하는 폭풍을 많이 겪은 목사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판소리의 고장인 남원에서 태어나 자랐기 때문인지 어릴 때부터 풍류의 즐거움과 문학적 감성, 예술적 멋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저도 이 거친 바람을 직접 느끼지 않았다면 제 목회만 성실히 하면서 개인적으로는 문학적 감성과 고고한 예술적 향취에 취해 살았을 것입니다. 저 바다와 제법 떨어져 해풍을 적절하게 맞고 아름다운 바다의 정취를 느끼며 지내는 나무들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전면에 서 있는 소나무들은 얼마나 바닷바람에 시달렸겠습니까? 가지와 솔잎들은 잔뜩 지쳐 있고 솔방울만 주렁주렁 맺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도 제 삶과 목회 사역에 솔방울을 더 많이 맺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저 뿐만 아니라 한국교회와 목회자들을 향하여 계속해서 솔방울을 맺는 사역 캠페인을 할 것을 다짐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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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소나무가 된다면 솔방울부터 맺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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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그리운 사람은 아무리 멀리 있어도 보여요···”
- “그리운 사람은 아무리 멀리 있어도 보여요 / 숲의 기억은 흐릿해 가도 / 당신을 처음 만난 날의 아침 안개와 / 수풀을 흔드는 서늘한 바람과 / 볼을 스쳐가는 따스한 햇살을 어찌 잊겠어요 / 당신 품에 안겨 산을 내려왔을 때 / 왜 아프지 않았겠어요 / 왜 산이 그립지 않았겠어요 / 그러나 숲의 기억마저도 / 당신을 사랑하는데 허물이 된다면 / 모든 것 다 잊고 / 오직 당신만을 바라보겠어요.” 제가 쓴 ‘난(蘭)’이라는 시입니다. 코로나 이후에 많은 성도들이 국민보건과 방역을 위해서 온라인예배를 드려왔습니다. 물론 우리 교회는 정부의 생활방역 방침과 더불어 보랏빛 사랑주일, 새에덴 예배 회복 D-day, 슈퍼 선데이를 거치면서 많은 분들이 현장예배에 참석하며 예배가 회복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오지 못하는 10~15% 성도들을 그리워하고 보고픈 마음을 담아 쓴 시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사회 전 분야가 셧 다운되고 한국교회 역시 큰 타격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2개월여가 넘도록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 되다가 점차 진정 국면으로 들어서자 정부에서도 생활방역으로 전환하면서 출구전략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한국교회 역시 무너진 예배를 회복하는 것이 가장 급선무라고 생각해서 한교총을 통해서 5월 31일을 ‘한국교회 예배 회복의 날’로 선언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이후에 갑자기 이태원 게이클럽 집단감염 사태가 터지면서 전국적으로 확진자가 발생하였고 몇몇 교회에서도 확진자가 나오면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한교총이 한국교회 예배 회복의 날 보도자료를 통해서 제시한 80% 출석의 수치는 이태원 게이클럽 집단감염 사태 이전에 제시한 수치입니다. 그런데 계속해서 확진자가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교회 예배 회복의 날 역시 방향성을 달리하게 된 것입니다. 한국교회 예배 회복의 날은 예배의 본질과 가치, 생명을 회복하자는 선언과 방향성에 초점을 맞추어야지 단기적 총동원 주와 같은 개념으로 생각하면 안 되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한국교회 예배 회복의 날을 통하여 한국교회가 하나 되어 원 메시지를 내 보내게 되었고, 원 리더십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일반 사회와 타종교에서도 역시 “한국교회는 살아 있다”는 평가가 나오면서 도전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하버드대학교 로고프 교수의 말대로 한국은 단기방역에는 성공했지만, 코로나가 장기화 되면서 방역당국의 물리적 방역만으로는 불가능하게 되었습니다. 비가 온다고 언제까지 방안에만 갇혀서 숨어 지내겠습니까? 우산을 쓰고 우비를 입고서라도 나가서 사람을 만나고 일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장기전이 되면 경제회복도 중요한데, 경제가 활성화 되려면 우리 사회 속에 심리적 정서적 문화적 영적 종교적 방역이 더 중요합니다. 이제는 우리가 장기전을 대비해서 방역에 최선을 다하면서도 예배를 회복해야 합니다. 그래야 사막화되어가는 정신세계와 황폐화된 영적 세계를 살릴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사람의 내면적 저항인자와 사회적인 항체가 형성이 되는 것입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난(蘭)의 마음으로 이번 주는 성도들이 얼마나 올까 기다려집니다. “기존에 왔던 성도들이 안 나올까, 아니면 더 많은 성도들이 나올까.” 그런 난초의 마음으로 한국교회 예배 회복의 날 예배를 인도하고 설교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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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그리운 사람은 아무리 멀리 있어도 보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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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거룩한 변종 목사가 되겠습니다”
- 우리 교회가 유튜브 사역을 한지 7개월 남짓 된 것 같습니다. 박성호 영상팀 간사가 개인 계정으로 조금씩 사역을 했지만 저는 거의 관심이 없었습니다. 물론 유튜브가 대세라는 것은 알았지만, 너무 자극적이고 분노를 일으키는 선정적인 영상들이 많아서 저까지 그런 대열에 끼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반면에 저는 신문에 글을 쓰는 것을 선호하였습니다. 글에는 유튜브가 줄 수 없는 고고함과 강력한 힘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글은 우리 사회를 이끌어가는 지성인들, 즉 오피니언 리더들이 많이 보고 관심을 갖지 않습니까? 그래서 저의 글을 읽고 많은 지성인들이 “아, 이 분이 시대 흐름을 간파하는 예리한 통찰력이 있고, 시대 지성을 가지고 있는 분이구나”라고 저를 알아보는 것입니다. 그러한 글쓰기로 인하여 저의 이미지 개선에 많은 득을 얻었습니다. 사실 저의 외모는 포효하는 야수 같고 광야에서 메아리치는 소리꾼 같은 모습인데, 시를 쓰고 글을 쓰면서 이미지가 많이 개선되었습니다. 그런데 주변에서 많은 사람들이 “목사님 그래도 유튜브를 하십시오”라고 권면을 하는 것입니다. 물론 TV방송이나 라디오를 포함해 최소한 일주일에 100만 명이 훨씬 넘게 저의 설교 방송을 시청하고 청취해 왔습니다. 어쩌면 온라인 사역을 해오고 있는 셈이었지요. 그런데 주변의 권유로 새에덴교회 공식채널을 만들어 유튜브에 제 설교를 올리니 의외로 반응이 폭발적이었습니다. 제가 무슨 정치 논평을 하는 것도 아니고 순수한 설교만을 내 보내는 방송인데도 구독자 수가 몇 달 만에 2만 명이 되었습니다. 물론 우리 교인들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겠지만, 7개월 만에 2만여 명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저의 유튜브 설교 방송을 일주일에 13만~14만명이 시청을 하고, 어떤 설교는 20만 건도 넘습니다. 게다가 코로나 위기 상황에서 온라인예배를 드릴 때 우리 교회 예배 조회수가 거의 1,2위를 다툴 정도가 되었습니다. 늦깎이 지각생이 1,2위를 선점한 것입니다. 그만큼 유튜브 조회수가 최상위권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물론 유튜브를 잘 관리하는 윤동현 목사님과 새에덴교회 인터넷 선교팀의 성도들 덕분이기도 하지만요. 그래서 요즘 와서는 유튜브를 늦게 시작한 것을 후회 합니다. 이유는 제가 저의 틀만 고집하며 변화와 혁신에 게을렀기 때문입니다. 시대 변화를 알면서도 그 흐름을 거부하며 막연한 저의 주장과 소신에만 머문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이렇게 변화하고 대응하기를 참 잘했지요. 사람은 끊임없이 시대 흐름을 간파하고 변화하며 앞장서야 합니다. 앞으로도 유튜브가 몇 년간은 대세를 이루겠지만, 또 다른 대세가 온다면 저는 그때도 민감하게 변화할 것입니다. 저는 보수주의를 추구하는 목사이지만 자기 것만 옳다고 고집하며 변하지 않는 것이 보수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자신의 정체성과 가치는 확실히 붙잡으면서도 시대 흐름과 변화에는 발 빠르게 대응하며 끊임없이 자신을 혁신해야 진정한 보수요, 리더가 될 수 있다고 깨달았습니다. 미스터트롯이라는 프로그램이 이 사실을 더 방증해주었지요. 요즘도 저는 시대가 어떻게 변하고 있고 그 변화에 따라 제 자신을 어떻게 혁신해야 할 것을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지난주부터 예배 포맷도 새롭게 혁신을 한다고 했고, 앞으로의 목회도 더 많은 변화와 혁신을 할 것입니다. 생태계에서도 변종만이 살아남는다고 하지 않습니까? 제 자신부터 우리 교회를 새롭게 하고 한국교회를 세우기위해서라도 거룩한 변종목사가 되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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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거룩한 변종 목사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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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5월의 문용동은 웃고 있지만, 소강석은 울고 있어요”
- 5월이 오면 제 머릿속에는 항상 5.18민주항쟁이 떠오릅니다. 저는 주님의 소명을 받고 집에서 쫓겨나 난생 처음 광주로 가서 광주신학교에 입학하였습니다. 그런데 그해 5월에 5.18민주항쟁을 맞았습니다. 그때 나이 만 19세였습니다. 당시 저는 뚜렷한 역사의식 같은 것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저 하나님의 종으로 부름 받은 감격과 믿음, 성령 충만한 삶 자체가 목적이었습니다. 그래서 공수부대가 광주를 점령하여 금남로에 개미 새끼 한 마리도 보이지 않을 때 총에 맞아 죽을 각오를 하고 그 길을 걸어서 조선대학교 앞에 있는 광주서광교회를 다니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한때 그것이 저의 젊음의 자랑거리라고 생각을 했지요. 그런데 저와 동시대에 호남신학교를 다니던 문용동 전도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저보다 여덟 살 많은 호남신학교 4학년생이었습니다. 그는 길을 지나가다 공수부대 군인들에게 진압봉으로 맞은 시민을 업어서 기독병원 응급실에 데려다주고 그날부로 시민군에 참여합니다. 그의 일기를 보면 얼마나 그가 의협심에 불타고 정의감으로 가득 찼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수도경비사에서 헌병으로 근무하면서 화약과 탄약에 익숙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가 전남도청을 지키고 있을 때 도청 지하실에는 화순탄광에서 가져온 8톤짜리 트럭 네 대 분량의 다이너마이트가 있었습니다. 그때 시민군 강경파에서는 공수단이 도청으로 진격해 오면 다이너마이트를 폭발시키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었습니다. 만약에 그렇게 되면 광주시의 3분의 1 가까이 희생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문용동은 광주전투교육사령부의 김기식 부사령관을 찾아가서 탄약을 제거하자고 제안을 합니다. 그래서 김기식 장군은 탄약 분해 전문가인 배승일 군무관을 비밀리에 급파하여 문용동과 함께 다이너마이트를 분해했습니다. 그 이후, 문용동은 도망가면 살 수 있었는데 끝까지 그곳을 지키다가 헬기 사격으로 죽습니다. 광주시민들의 안전을 끝까지 지키려다가 죽은 것입니다. 불행하게도 훗날 그는 군 정보사의 공작에 의해 프락치로 오해를 받습니다. 그러나 함께 있던 사람들의 증언과 그의 일기장에 의해서 그는 프락치가 아니고 거룩한 의인이요, 순교자로 드러나게 된 것이죠. 호남신학대 교정에는 그의 추모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그는 죽었으나 믿음으로 말하고 있느니라.” 5월이 오면 그는 천국에서 저를 향해 항상 웃고 있는 듯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의 미소를 바라볼 때마다 마냥 부끄럽기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죽기를 각오하고 금남로 길을 다녔던 광주신학생 소강석은 살려 주시고 탄약고를 지키던 호남신학생 문영동은 왜 의로운 죽음을 당하게 하셨을까. 나는 과연 산 자의 값을 치르고 있는 것일까.” 그는 새벽길을 간 사람이고 저는 지금 살아서 캄캄한 암흑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그는 죽어서 웃고 있고 저는 살아서 울고 있습니다. 그때는 역사의식이 없었지만, 지금은 문용동의 역사혼을 가지고 산 자의 값을 치르려고 울며 고뇌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저는 제가 가야 할 길을 바로 걸어가고 있는 것입니까? 산 자의 값을 제대로 치르고 있는 것입니까.” 그러기에 저는 그 해 5월의 하늘을 생각하며 고개를 떨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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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5월의 문용동은 웃고 있지만, 소강석은 울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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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직책이 있어야 일 하나요?···”
- 제가 한국교회를 걱정하는 열심은 특심이라고 할 것입니다. 어쩌면 이때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저를 부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일반대학을 졸업하고 신대원을 입학한 후 유학을 다녀왔다면 지금의 저는 결코 아닐 겁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광주신학교로 갔고 백암교회를 개척하며 온갖 야성훈련을 받았기 때문에 오늘의 제가 있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사실 저는 우리 교회 목회하기도 버거운 사람인데 한국교회를 염려하고 섬기는 것은 특별한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언제부턴가 한국교회는 사회로부터 무차별한 공격을 받고 미움의 대상이 되어 왔습니다. 그러다가 한국교회는 코로나19로 인해 최대 위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교회도 반달리즘의 어두운 그림자가 덮어버렸고 예배가 셧다운이 될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나마 온라인예배라도 드릴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만, 현장 공동체로서의 기능이 아닌 가상 공동체의 모습으로 명맥만 유지해 왔습니다. 생활방역으로 전환하였는데도 예배가 제대로 회복된 교회가 없습니다. 이런 일을 대비해서 제가 책을 내고 세미나를 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교회와 몇 교회만 잘 해서는 안 됩니다. 한국교회 전체가 진정한 예배로 회복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일은 한국교회 대표 연합기관인 한교총을 통해서 주도를 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지난 목요일에 생전 처음으로 한교총 상임회장단이 모이는 회의에 참석을 했습니다. 물론 그러기 전에 몇 교단장들에게 개인적으로 만나서 설득을 하였습니다. “한국교회가 D-day를 선포하고 스팟 광고도 하고 교계 신문은 물론 일간지까지 광고를 내서 이 날은 ‘한국교회가 새 출발하고 예배가 회복되는 날’이라고 알려야 합니다. 마치 유다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오는 축제같은 감격의 날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한국교회를 일깨우기도 하고 우리 사회에는 한국교회가 여전히 살아 있음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저는 간절한 의지가 담긴 발언을 하였습니다. 사실 저는 아직은 교단의 총회장도 아니고 연합기관을 대표하는 목사도 아닙니다. 우리 교단의 부총회장이긴 하지만 부총회장은 연합기관에 가서 발언을 할 위치도 못 됩니다. 그래서 한교총의 사회정책위원장의 자격으로 참석하여 간곡하게 발언을 한 것입니다. 한국교회 집회가 먼저 회복 되어야 그 다음에 중장기 전략을 세울 수 있다고 말입니다. 다행히 연합기관 대표분과 교단장, 총무들이 허락해 주셔서 통과가 되었습니다. 회의가 끝나고 그분들과 악수를 하면서 이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총회장님들, 정말 고맙습니다. 저도 왜 이런지 모르겠습니다. 저도 편안하게 살 수 있는데, 왜 이렇게 극성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러자 몇 분들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정말 미친 사람, 극성스러운 사람이 있어야 일이 되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소목사님께 특별한 마음을 주신 것입니다.” 회의를 다 마치고 올라오면서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내가 무엇인데 이렇게 극성을 부리는 걸까. 나는 아직 연합기관장도 총회장도 아닌데... 그러나 아니야. 직책이 있어야 일 하나? 직책 보다 중요한 것은 부름 받은 감격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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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직책이 있어야 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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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보랏빛 초대장을 받으셨나요?”
- 저는 두어 주 전 갑자기 책을 한 권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책을 쓰게 된 동기는 이렇습니다. 제가 부활절 예배를 앞두고 코로나로 중단된 예배를 부활절만큼은 꼭 드려야 한다고 국민일보에 특별기고를 하였거든요. 그런데 몇 군데 전화를 드려보니 성도들의 반응이 너무 냉담하더라는 것입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듣고, “이건 아니다. 정말 큰일이다.”라고 생각하고 빨리 코로나 이후 한국교회 미래에 대한 책을 쓰고 세미나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생명나무 목회연구소 선 목사님께 빨리 책을 한 권 쓰자고 제안을 했더니 시간이 너무 촉박하지 않느냐고 머뭇거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우리 인생의 마지막 작품이라고 생각하고 신들린 사람처럼 한 번 받아쳐 보세요.”라고 설득을 하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작업을 시작하였습니다. 시간이 촉박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미 저는 코로나 이후를 깊이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와 선 목사님은 기존의 설교, 저서, 칼럼, 학술연구 등 데이터베이스가 다 구축이 되어 있기 때문에 1박 2일 동안 구술로 책 작업을 할 수 있었습니다. 정신없이 받아치는 선 목사님은 어깨가 굳어가는 느낌이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초고가 나오고 두어 번의 보완 작업을 해서 마침내 ‘포스트 코로나 한국교회의 미래’라는 책이 출간된 것입니다. 또 책 출판과 동시에 ‘코로나19 이후 직면할 위기 분석과 한국교회 세움 세미나’도 하였습니다. 홍보를 일주일도 못하고 급하게 열게 된 세미나였지만, 800여명의 목사님이 참석하는 대성황을 이루었습니다. 제가 세미나를 한 이유는 교계 TV나 신문에서 한국교회가 코로나 이후를 대비해야 한다고 하면서도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대안이나 방법을 소개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라도 나서서 한국교회를 향한 시그널을 전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저의 시그널을 교계연합기관과 더불어 한국교회에 구체적으로 전하고 실행하고 싶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 교회가 조금은 앞서서 시뮬레이션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5월 3일 보랏빛 초청주일, 5월 10일 보랏빛 사랑주일, 5월 17일 D-day주일을 해 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5월 24일은 교계 연합기관에 건의하여 한국교회의 공적 D-day로 슈퍼 선데이를 실행해 보려고 합니다. 제가 보랏빛 초청주일을 착안하게 된 것은 최근 미스터트롯 우승자 임영웅씨가 부른 ‘보랏빛 엽서’에서 연상하게 된 것입니다. 보랏빛 하면 7-8월의 잘 익은 포도송이가 연상되지 않습니까? 또한 고대 근동에서 보랏빛은 왕들이 애호하는 색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라색은 왕권을 상징하기도 했고 성직자의 참회에 대한 이미지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보랏빛 엽서를 생각하자 왕 같은 제사장(벧전2:9)이 떠오르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랏빛 초청주일은 왕의 자녀들, 혹은 왕적 제사장들이 귀환하는 날의 의미가 있습니다. 이 축복을 우리 교회만 누리는 것이 아니라 한국교회 전체가 함께 누리고 경험했으면 좋겠습니다. 나비의 작은 날갯짓 하나가 바다를 건너 반대편 대륙에서 태풍을 일으키듯이, 저와 우리 교회의 시그널이 원 메시지가 되어 한국교회 전체에 전달되고 코로나 이후에 한국교회를 다시 회복시키는 퍼펙트 스톰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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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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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보랏빛 초대장을 받으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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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오지도 않은 내일을 걱정하지 마세요”
- 저는 원래 호탕한 기질과 대범한 성격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그러니까 작은 일 따위에 신경을 잘 쓰지도 않았습니다. 옷이 구겨지거나 옷에 뭐가 묻어도 별로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한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났지만 제 큰 형님은 어릴 때부터 성격이 아주 꼼꼼하고 까칠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정반대였습니다. 밥 속에 머리카락이 있거나 밥 먹다가 돌을 몇 번을 씹어도 씹은 돌까지 맛있게 먹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목회와 연관되는 일에는 아주 예민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신문에 글을 쓴다든지, 설교 원고를 정리할 때는 성격이 보통 까칠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게다가 한국교회 생태계를 지키고 공적 사역을 하면서부터 불면증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주로 저 혼자 있는 저녁에 많은 생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한 가지에 집중하고 몰두하면 그 생각의 성에 갇히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극우적인 이념에 빠진 사람들은 지금 곧 대한민국이 무너지고 공산화된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러면서 끝까지 특정집회를 고집하거나 이어갑니다. 저도 다를 바가 없습니다. 한국교회를 생각하면 오지도 않은 내일을 지나치게 걱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되어도 한국교회는 과연 얼마나 모일 것인가, 예배가 언제쯤, 얼마만큼 회복될 것인가.” 우리 새에덴교회나 걱정할 일이지, 한국교회를 지나치게 염려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다 마침내 지난주는 날밤을 새어가며 ‘포스트 코로나, 한국교회 미래’라는 책을 썼고, 돌아오는 월요일에 세미나까지 하겠다고 결심을 한 것입니다. 목요일 저녁에도 불면의 밤과 싸우는 중 갑자기 제가 쓴 ‘청연’이라는 시가 생각났습니다. ‘밤새 잠 못 들며 그리움에 뒤척이다 / 홀로 일어나 걷는 새벽바다 / 발끝을 적시는 하얀 파도의 포말은 / 모래 해변에 써 놓은 너의 이름을 지우고 / 나의 그리움은 푸른 청연이 되어 / 파도에 쓸려 멀리 멀리 사라져가리 / 새벽녘 밀물처럼 밀려오는 그리움을 … (중략) … 잊으려 할수록 더 목마름이 되어 / 나를 온통 덮어버리는 당신 / 아무리 떨쳐버리려 해도 끈질긴 인연의 끈으로 / 마음까지 동여매는 그대 / 아, 그대와 나의 푸른 청연이여’ 여기서 청연이라는 말은 ‘맑고 숭고한 인연 혹은 관계’라는 뜻입니다. 시란 시인이 쓰지만 이미 발표를 해버리면 시인의 것이 아니라 독자의 것이 됩니다. 그래서 저도 독자의 눈으로 그 시를 다시 한 번 읽어보았습니다. 저와 한국교회 공적사역은 청연의 관계라고 느껴졌습니다. 그렇다면 한국교회를 향한 저의 걱정은 지나친 듯 하면서도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최악을 대비하지 않는 사람은 앉아서 최악을 기다리는 상황을 맞게 되기 때문이죠. 그렇습니다. 부질없는 걱정, 오지도 않은 내일을 염려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청연의 관계라면 지나치리만큼 걱정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최악을 대비할 수 있는 거죠. 그러니 저는 코로나 이후에 한국교회가 회복되는 미래를 놓고 걱정하고 또 걱정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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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오지도 않은 내일을 걱정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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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상처를 주께 가져오면 꽃이 되어요···”
- 15일 늦은 밤, 총선 결과를 보며 “아쉽게 낙선한 분들은 얼마나 상처가 클까”하는 생각해 봤습니다. 우선 우리교회에서 출마하신 분들도 여야를 막론하고 낙선을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당선된 분들보다 낙선자들에게 더 많은 전화를 돌려 위로를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쓴 “꽃과 예수”라는 시를 읽어봤습니다. “너의 상처를 내게로 가져오면 꽃이 되고/ 너의 눈물을 내게로 가져오면 진주가 되고/ 너의 한숨을 내게로 가져오면 노래가 되리니/ 아무리 힘들어도 너를 버리지 마라/ 피투성이가 되었더라도/ 너를 끌어안고 내게로 오라/ 세상이 너를 버렸을지라도/ 나는 너를 꽃처럼 껴안고…하략…” 시를 읽으며 이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낙선자들이 자신의 상처를 예수님께 가져가면 얼마나 좋을까, 그 눈물과 한숨을 예수님께 가져가면 꽃이 되고 진주가 되고 노래가 될 텐데…” 하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특히 저는 기독자유통일당의 결과를 보고 많은 상처를 받았습니다. 4년 전에는 제가 기독자유당을 직·간접적으로 도왔습니다. 왜냐면 보수정권도 한국교회에 대한 목소리를 듣지 않고 할랄식품산업이나 종교소득과 세법안을 추진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독교가치관과 세계관을 실현할 정당과 국회의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상황은 한국교회가 너무 많은 정치적 리스크를 입었기 때문에 그때의 상황과는 달랐습니다. 지금의 정치적 지형, 기후, 바람의 방향을 살펴볼 때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경기를 하는 것과 같지요. 만일 병법의 대가인 손자가 한국교회의 지도자였다면 승산이 없는 싸움이라고 말리고 또 말렸을 것입니다. 물론 신앙적으로만 보면 패배했다고 할 순 없죠. 순수하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한국교회를 지키기 위한 동기로 노력했다면 말입니다. 저는 앞장서서 일했던 그분들의 신앙을 존중합니다. 하지만 사회적 포지션에 있어서 교회 위상이 추락되고 이미지와 브랜드가 실추됐다는 점은 인정해야 합니다. 더구나 한국교회는 코로나19 때문에 상처투성이가 되어있습니다. 그러나 피투성이가 되었더라도 그 몸 그대로 주님께 나아가면 주님께서는 여전히 꽃처럼 껴안아주신다는 저의 시구절이 참으로 위로가 되었습니다. 상처투성이, 피투성이가 된 한국교회가 자신을 끌어안고 주님 앞에 나아갈 때 꽃처럼 껴안아주시는 주님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요즘 저는 코로나19를 맞으며 잠 못 이루는 밤을 더 많이 겪고 있습니다. 우리교회 때문이 아닙니다. 저는 지금 한국교회를 염려하고 걱정할 뿐입니다. 제가 이따금씩 탈모방지를 위해 병원에 가서 수면 마취를 하면서 두피 영양주사를 맞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마취 상태에서도 제가 그대로 소리를 지른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한국교회여 일어나라. 아멘!” 오죽하면 몇 년 전 성대수술 후에 마취에서 깨어나는 중에도 주님을 부르짖고 교회를 향한 저의 사명을 외쳐댔겠습니까. 그러나 저도 한국교회를 사랑하고 염려하기 때문에 상처를 입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꿈에서라도, 그 상처와 아픔을 주님께 가져가고 싶습니다. 꽃과 진주와 노래를 선물로 받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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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상처를 주께 가져오면 꽃이 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