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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시간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기사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당신의 뒷모습을 본 적이 있나요?
    지난 주 월요일 성도 몇 사람과 식사를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식사 중에 지난주일 설교 시간에 권사님의 간증을 하다가 갑자기 제가 강단에 나와서 춤을 추던 이야기가 화제가 되었습니다. 그때 많은 분들이 웃기도 하였지만 눈물을 흘렸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제가 춤추는 중에 뒤로 돌았을 때 저의 등을 보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는 것입니다. 왜 저의 앞모습 보다 뒷모습에서 눈물이 왈칵 터졌느냐고 물어보니까, 제가 새에덴교회 뿐만 아니라 복음의 가치와 한국교회의 영광성을 위해 등에 짐을 지고 가는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순간적으로 저의 어깨가 감당하고 있는 무거운 짐이 느껴져서 눈물이 났다는 것입니다. 사실 그랬습니다. 저는 근래에 다른 것은 그만두고 정권사님 일로 얼마나 무거운 짐을 졌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새에덴교회는 물론 한국교회를 위해 많은 짐을 지었습니다. 저도 우리 교회 안에서 우물 안의 개구리식 사역을 할 수 있지만 교회 생태계와 공적 사역에 대한 경종을 듣고 스스로 짐을 지고 십자가의 길을 간 것입니다. 그런데 힘들고 어려운 때 가끔 돌아가신 아버지의 꿈을 꿀 때가 있습니다. 어머니 꿈은 전혀 안 꾸는데 아버지의 꿈을 꿉니다. 그것도 아버지와 정면에서 마주보는 꿈이 아니라 쟁기를 짊어지고 논으로 가신다든지, 괭이나 삽을 들고 걸어가는 뒷모습을 보는 꿈을 꿉니다. 솔직히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서먹서먹하고 불편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까? 더구나 저의 아버지는 어렸을 적부터 소리를 잘 지르셨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습니다. 그러나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의 모습은 항상 희생하는 이미지로 기억되어 왔습니다. 아무리 뙤약볕이 비추고 비가 오는 날에도 괭이나 삽을 들고 논으로 가셨거든요. 저는 마루에 앉아 그런 아버지의 뒷모습을 많이 봤습니다. 그런데 힘들 때마다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는 꿈을 꾸곤 했지요. 그런 꿈을 꾸고 나면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아, 나도 쟁기를 들고 논으로 가야 한다. 괭이나 삽을 들고 사역의 현장으로 가야 한다.” 그런 저의 뒷모습을 우리 교회 성도님들이 보고 느낀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성도들의 앞모습보다도 사명의 짐을 지고 가는 뒷모습을 볼 때 더 은혜스러울 때가 있을 것입니다. 마치, 억지로라도 십자가를 졌던 구레네 시몬의 등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훗날 구레네는 십자가를 졌던 어깨와 등을 사도들과 모든 성도들에게 자랑했다고 합니다. 이 시대에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기 위해 사명의 짐을 짊어지고 가는 여러분의 어깨가 자랑스럽습니다. 여러분의 등 뒤가 오늘처럼 아름답고 듬직하게 느껴진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어깨와 등을 생각하니 왠지 눈물이 쏟아지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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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0-02-09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살아줘서 고맙습니다···”
    지난 월요일 저녁, 정권사님 기관지 내시경과 조직검사를 앞두고 거의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습니다. 한편으로 불안하고 초초하기도 했지만 기도만 하면 평안의 감동과 확신이 왔습니다. 그렇게 뜬 눈으로 밤을 새우고 새벽기도 1,2부를 다 인도하였습니다. 마침내 오전에 권사님은 검사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하나님이 주신 감동대로 전혀 암이 아니었습니다. 너무 기침을 많이 하셔서 염증이 결석으로 굳어진 것입니다. 권사님이 깨어나셨을 때 제가 손을 잡고 이렇게 말씀 드렸습니다. “어머니, 살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새해에 최고의 상을 수상하셨습니다. 모르셨죠? 하나님께서 생명대상을 주셨어요. 권사님, 무등산에서 저와 처음 만났던 때를 기억하시죠? 제가 앞으로는 더 잘 모실 테니 이제 날마다 세상을 늘 첫날처럼 살아가세요.” 이는 나태주 시인의 표현을 일부 인용한 말이기도 한데요. 정권사님을 무등산에서 처음 만났을 때 저는 누구하나 도와주지 않던 떠돌이 신학생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감동과 응답으로 권사님께서는 저의 기도후원자가 되어 주셨고, 훗날 장모님이 되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개척 초창기부터 지하실에서 주무시면서 오직 저와 우리 교회를 위해 기도의 눈물을 쏟고 쏟아오셨습니다. 무등산의 첫날이 권사님을 그렇게 만든 것이죠. 그래서 제가 남은 세상을 무등산의 첫날처럼 살아주시라고 부탁드린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권사님 뿐만이 아니라 우리 새에덴 성도 모두도 살아주셔서 고맙기 그지없습니다. 우리가 살아 있는 것 자체가 하나님께 생명대상을 받은 것이 아닐까요. 우리 중에는 연초부터 여러 가지 시련에 봉착한 분들도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로부터 생명대상을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나름 가슴 설렜던 첫날이 있지요. 교회로 돌아와 잠시 서재의 문을 열어놓으니 상큼한 바람이 난초 사이를 흔들고 들어왔습니다. 그 바람은 난초 잎사귀를 흔들 뿐만 아니라 생의 찬가를 부르며 지나가는 듯 했습니다. 모든 생명은 세상을 첫날처럼 살아야 한다고 말입니다. 지금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세계를 강타하면서 사람들이 불안에 떨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루하루를 첫날처럼 살아간다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도 우리에게 어떻게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하루하루를 첫날처럼 가슴 설레게 살아가고, 숨 쉬는 순간마다 생명 대상을 허락하신 주님께 감사하고 살아간다면 어떻게 바이러스가 우리를 이길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생명대상을 받은 사람이라면 세상을 가슴 설레는 첫날처럼 살아가야 합니다. 각자의 삶의 첫날은 다르겠지만 그 소중한 첫날을 생각하면서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살아가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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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0-02-02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내가 살고 있는 오늘은···”
    지난 주 화요일도 야간산행을 했습니다. 저의 기도의 어머니 정 권사님을 병원에 모셔두고 야간산행을 하니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정 권사님은 저에게 영적인 거산이요 마음의 기둥 같은 분이십니다. 아니, 신비적 존재로 느껴질 정도로 제 신앙과 목회에 대부분의 스토리를 만들어 주신 분입니다. 신적 소명의 길을 가기 위해 집에서 쫓겨나온 이래 저의 영적인 스승이요 멘토가 되어주셨습니다. 더구나 권사님은 영권이 얼마나 강하시던지 귀신들린 자들을 보는 족족 쫓아내시고 수많은 환자들을 기도로 고쳐준 분이 아닙니까? 그러나 그 분도 사람인지라 나이를 이길 수 없고 육신이 노쇠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작년 9월부터 기침을 많이 하셔서 서울대 병원도 가고 C.T 촬영을 해 봤지만 별 이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입원을 해서 검사를 해 보니 예후가 그리 밝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의사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저는 월요일, 화요일 계속해서 눈물만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다른 의사선생님이 예후가 좋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하자, 저는 또 어린애처럼 껑충껑충 뛰기도 했고요. 저는 어머니 정 권사님께 최선을 다하여 효도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작년에 총회 부총회장 출마와 서울 어느 교회 화해 문제로 많은 시간을 사용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권사님께서 기침하실 때 손 한 번 따뜻하게 잡고 병원에 가서 정밀검사를 시켜 드리지 못한 아쉬움과 자책감이 드는 것입니다. 더 잘 모시지 못한 제 자신을 한탄하며 죄송한 마음에 눈물이 흘러나왔습니다. 물론 우리 권사님이 의외로 90세 이상 사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정 권사님과 헤어질 것을 생각해 본 것입니다. 정 권사님이 이 세상을 떠나시더라도 그 영혼은 그토록 사모하고 소원했던 천국에 가시니까 얼마나 행복하시겠습니까? 그러나 그 분의 육신은 부활 때까지 땅에 잠들어 계실 것입니다. 그래서 그날 야간산행은 그냥 산행이 아니었습니다. 정 권사님도 언젠가는 돌아가실 것이고 우리도 이 땅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그래서 흙을 함부로 밟을 수도 없었고 무심코 가래침을 뱉을 수도 없었습니다. 겨울바람에 여기 저기 나뒹굴고 있는 가랑잎들도 나의 죽음 이후의 모습으로 보인 것입니다. 참으로 적막과 적막이 만나고, 고요함과 고요함이 만나며, 슬픔과 슬픔이 만나는 산행이었습니다. 그러나 적막, 고요, 슬픔만으로 끝나는 산행이 아니었습니다. 그 속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고 하나님의 뜻이 보이는 창조적 산행이었습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내가 살고 있는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살기 원했던 내일이다. 그러니까 지금 살아 있는 이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가, 그리고 정 권사님을 5년을 모시든, 10년을 모시든, 우리 권사님이 얼마나 소중한 분인가.” 당연히 우리의 삶 자체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깨달았습니다. 그러니 오늘 우리 하루하루를 하나님을 잘 섬기고 받은 사명을 신실히 감당하며 소중하게 살아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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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0-01-26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꽃으로 만나 갈대로 헤어져선 안돼요···”
    지난 화요일 늦은 밤에 교회 뒷산을 혼자 산행을 하였습니다. 진짜 오랜만에 하는 저녁산행이었습니다. 나 홀로의 저녁산행은 봄철 이후 처음으로 한 것 같습니다. 그때는 봄철이라 저녁에도 진달래가 보이고 철쭉도 보였습니다. 그런데 겨울저녁에 홀로 산행을 하면서 보니까, 꽃은커녕 풀잎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낙엽이 가랑잎이 된지 오래 되었고, 그 가랑잎도 밟혀서 짓이겨져 있었습니다. 모든 산들이 눈을 감고 있었습니다. 멀리 흐르는 강물들도 귀를 막고 있었겠지요. 달도 숨을 죽이고 별 몇 개 떠서 하늘에 있는 것 같았습니다. 문득 지난 늦가을 여의도 한강변에 심겨진 갈대와 억새 숲 사이를 걷던 생각이 났습니다. 바람이 스쳐가는 갈대밭 사이로 서 있었는데, 그때 인생은 꽃으로 만나 갈대로 헤어지는가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이 다시 꽃으로 만날 수는 없을까하는 생각을 하며 혼자 산행을 했습니다. 모든 산들이 숨을 죽이자 산새 한 마리 울음소리조차 들리지 않고 저 혼자 걸었습니다. 우리 교회도 수많은 사람이 찾아왔지만 또 수많은 사람이 떠나기도 했습니다. 그들이 몰려왔을 때는 꽃으로 만난 것 같지만, 어떤 이유든지 간에 우리 교회를 떠날 때는 갈대로 헤어졌던 것입니다. 그 분들을 생각하며 제가 이런 노래를 흥얼거렸습니다. “J 아름다운 여름날이 멀리 사라졌다해도 / J 나의 사랑은 아직도 변함없는데/ J 난 너를 못 잊어 J 난 너를 사랑해 / J 우리가 걸었던 J 추억의 그 길을 / 난 이 밤도 쓸쓸히 쓸쓸히 걷고 있네.” 몇 달 있으면 적막한 겨울산도 봄을 맞이할 것이고 그때 다시 봄꽃들이 피어날 것입니다. 봄철에는 혼자 저녁산행을 해도 야화(夜花)를 만날 것이며 달도 환하고 별들도 총총하겠지요. 겨울밤에 꽃 없는 산을 가니까 꽃이 그리운 것처럼, 저에게도 떠난 성도들이 있기에 그들이 더 그리워지는 것입니다. 물론 남아 있는 더 많은 성도들이 고맙기 그지없고 그들이 얼마나 저에게 소중한 존재인지 모릅니다. 송구영신예배 때 본당에도 들어오지 못하고 비전홀과 교육관에서 예배드린 그분들에게 너무 죄송하고 또 그분들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느꼈습니다. 봄이 오면 갈대는 사라지고 다시 꽃으로 만나는 것처럼, 저의 목회현장도 갈대로 헤어졌지만 꽃으로 다시 만나는 날이 있기를 기도하였습니다. 이따금씩 지방에 가도 이렇게 인사하는 분들을 봅니다. “아, 저 옛날에 새에덴교회 다녔습니다. 저는 대학강사였는데 지방대로 임용이 되어서 왔습니다.” 심지어는 해외에 가서 집회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아, 저 옛날에 새에덴교회 다녔었는데 이민을 왔네요.” 이 역시 순간순간 꽃으로 만나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저 영원한 천국에서 다시 꽃으로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 땅에서도 갈대로 헤어지지 말고 순간순간 꽃으로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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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0-01-19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잃어버린 것들 때문에···”
    새해 첫 아침이 지나고 벌써 우리는 두 번째 주일을 맞고 있습니다. 송구영신예배와 신년축복성회, 특별새벽기도회로 이어지는 말씀과 은혜의 잔치 속에서 웃고, 울고, 가슴 치고, 새롭게 희망을 다짐하며 새해를 맞았습니다. 우리가 탄 기차는 어느새 레일 위에 들어섰고 서서히 달려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기차가 흔들리지만 저는 그 안에서 잠 좀 푹 자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송구영신예배에서부터 신년특별새벽기도회까지 너무 피곤하게 달려왔기 때문이죠. 사람이라면 누구나 축복의 이면에 고난이 있고, 영광의 뒤편에 쓸쓸한 외로움과 절망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을 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어쩌면 축복과 고난, 영광과 절망의 낯선 간이역들을 스쳐지나가는 기차여행인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우리는 축복보다는 고난을, 영광보다는 절망의 순간들을 더 오래 기억할 때가 많습니다. 감사보다는 상처를, 기쁨보다는 슬픔을 더 가슴에 간직하며 상처받고 아파합니다. 하지만 고난도, 절망도, 사실은 우리를 축복과 영광의 길로 인도하는 안내자들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면 아무리 쓰라린 고통과 상처일지라도 사랑으로 껴안으며 내일을 향해 걸어갈 수 있습니다. 저는 지난주 정말 존경하는 분으로부터 갑작스런 전화를 받고 너무 당황하여 두려운 행복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도 살다보면 예고도 없이 갑자기 걸려온 한 통의 전화처럼 사랑과 이별, 기쁨과 슬픔, 희망과 절망의 소식들이 들려올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 전화기를 붙들고 웃고 울고 소리치고 좌절하기도 합니다. 어떨 때는 너무도 당황하여 말 한마디 못하고 전화를 끊을 때도 있고, 많은 말을 하고서도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도 못하는 순간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길을 잃었기에 새로운 길을 다시 찾을 수 있고, 말을 잃었기에 정말 하고 싶은 사랑의 말을 찾을 때가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도 선악과를 선택한 이후에 생명나무의 소중함과 가치를 절실하게 깨달았을 것이고, 실낙원 이후에 에덴의 축복을 평생 잊지 않고 그리워하였을 것입니다. 인도 속담에 “잘못 탄 기차가 때론 목적지에 도착하게 해 준다”는 말이 있습니다. 지난 한 해 동안 무엇을 잃어버렸습니까? 그 잃어버린 것 때문에 주저앉아 울고 있지는 않나요? 그러나 잃음이 없었다면 소중함도 모르고 그것을 찾기 위한 그리움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은 오히려 우리를 더 위대한 축복의 길로 인도해 주는 별이 되어 빛나고, 꽃이 되어 피어날 것입니다. 2020년 새해, 그 꽃과 별을 가슴에 품고 잃어버린 것을 찾아 함께 걸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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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0-01-12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혼자 있으면 춥지만···”
    제 서재에는 벽난로가 있습니다. 추운 겨울, 벽난로에 장작을 쌓고 불을 붙이면 화르르 불이 타오릅니다. 불이 주는 따뜻함은 전기히터나 난로가 주는 따뜻함과는 비교가 안 됩니다. 불은 몸 뿐만 아니라 영혼까지 안아주는 따스함이 있습니다. 사람은 모닥불을 보면 마음 가장 깊은 곳에 숨겨져 있는 원시적 감성을 느낀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벽난로 앞에 앉아 성경을 묵상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시간을 좋아합니다. 수많은 사람들과의 만남, 모임, 일정을 보내다보면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정도로 분주합니다. 그러나 깊은 밤, 홀로 벽난로 앞에 앉아 불을 쬐고 있노라면 내 영혼 깊은 곳에 잠재해 있던 또 다른 나를 만나게 되고 영혼의 깊은 따스함을 느끼게 됩니다. 저는 아무리 오랜 시간동안 회색빛 콘크리트 도시에서 목회를 하더라도, 마음은 언제나 모닥불 가에 앉아 이야기하고 노래하는 목가적 목회를 할 것만 같습니다. 벽난로 앞에서 추운 몸을 녹이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혼자 있으면 춥지만 함께 있으면 춥지 않겠구나. 장작들도 함께 모여 있으니까 활활 타오르고 있잖아. 나도 누군가의 차가운 몸을 따뜻하게 해 주는 장작이 되어야지...” 2020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올해는 우리 모두 더 따뜻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어딘가에서 홀로 추위에 떨고 있는 분이 있나요? 상처와 아픔 때문에 울고 계신 분이 있나요? 혼자 있으면 춥지만 함께 있으면 춥지 않습니다. 새에덴 안에서 함께 따뜻하게 살아요. 제가 쓴 ‘불의 사연’이라는 시를 새해 첫 인사로 드립니다. “홀로 타오를 수 없습니다 / 장작개비가 되어 내 곁으로 와 주세요 / 나는 당신을 품에 안고 / 바람을 기다립니다 / 당신은 / 바람이 불면 재가 될 줄 알면서도 / 내 품에 안긴 채 / 바람을 기다립니다 / 나는 불 / 당신은 어느 겨울 숲에서 꺾여 / 내게로 온 장작개비 / 난 당신의 차가운 몸을 껴안고 / 바람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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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0-01-05
  • [소강석 목사의 목양칼럼] 힘이 있어야 선(善)도 행한다
    한해가 저물어 올해 마지막 목양칼럼을 쓰게 되었습니다. 올해 같은 해가 또 있었을까요? 수많은 사람이 천지개벽이라도 벌어질 것 같은 급박함을 가지고 집회를 하고 시위를 했지 않습니까? 양 진영이 촛불을 들고 태극기를 휘두르며 서로가 공의를 실현하겠다고 소리친 한해, 종교마저도 이념으로 나뉘어져 버린 아픔을 겪어왔습니다. 그러니 교수신문에서 올해의 사자성어로 ‘공명지조(共命之鳥)’를 뽑았겠습니까? 몸은 하나인데 머리는 둘인 새가 서로 시기하고 질투하다 그만 독초를 먹고 둘 다 죽어버리고 말았다는 이야기가 아닙니까? 정말 이러다가 우리나라가 절단나지 않나 생각도 했는데 그러지 않은 것이 감사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뿐만 아닙니다. 북한에서는 김정은 위원장이 핵을 가지고 위협하며 미사일을 쏘아 왔고, 중국과 일본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저 멀리 미국의 트럼프는 말폭탄을 매일 터트려 왔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대통령과 정부는 착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강대국의 강성 지도자들에 둘러싸여 있는데, 대통령부터 성품이 모질지 못하니 정부도 그럴 수밖에요. 그러나, 착함은 자칫 무능함으로 연결될 수도 있습니다. 세계는 국가이기주의로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항상 우리에게 도움이 될 듯싶었던 미국마저도 자국의 이익에 함몰되어 한반도를 흥정의 대상으로 전락시키고 있는 것을 봅니다. 물론 우리 정부가 미국에 신뢰를 잃은 면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요. 이런 것을 볼 때 결국 선하고자 하면 힘이 있어야 한다는 대명제를 다시 한 번 실감하게 됩니다. 약한 선은 언제든지 짓밟힐 수밖에 없음을 다시 한 번 깨닫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나라도 더 큰 힘을 길러야합니다. 저는 연말이 되면 정신이 없습니다. 누군들 빡빡한 일정을 보내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저는 그 빡빡한 일정 속에서도 8개의 신년축복성회의 말씀을 준비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교회는 31일날 저녁 10시부터 송년집회를 합니다. 한 해 동안 묵은 심령의 때를 벗기고 말씀과 기도로 새마음을 준비하여 새해를 맞이하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새해 0시가 되면 영신예배를 드리고 신년소원예물을 드리며 교역자들의 안수기도와 함께 약속의 말씀을 뽑아갑니다. 그런데 갈수록 이런 일을 하기에 힘이 듭니다. 성도들이 공평하게 부교역자들에게 안수를 받고 가면 좋을 텐데 저에게 몰려드니 말입니다. 그래도 지금까지 한 번도 못해본 적이 없습니다. 올해는 10시 반부터 시작하고 싶었지만 버스 사정 때문에 또 10시부터 시작합니다. 이것으로만 끝나면 또 얼마나 좋겠어요. 1월 1일부터 3일까지 계속 신년축복성회를 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성도들에게 영육간의 힘을 길러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영육 간에 복을 받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 세상에서 나약한 선은 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우리 교회가 이만하니까 정부와 사회와 교계를 향해 목소리를 낼 수 있었고, 제법 큰 역할도 할 수 있었잖아요. 세상에선 나약한 선이 통하지가 않습니다. 힘이 있어야 선도 행할 수 있고 복을 받아야 더 큰 사명도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매년 새해가 되면 신년축복성회를 합니다. 여름이 되면 장년여름수련회를 합니다. 이제 주일을 보내고 이틀만 있으면 새해를 맞게 됩니다. 저부터도 신년소원예물을 얼마 해야 할까하는 생각이 이따금 들어올 때가 있습니다. 아무래도 작년보다는 더 많이 할 것입니다. 아니, 성령의 감동 안에서 내년의 축복을 위해 작년과는 비교할 수 없이 더 많이 심을 것입니다. 저도 내년에는 더 많은 복을 받고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해야하기 때문이죠. 여러분도 더 많이 복을 받고 더 큰 사명을 감당하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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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19-12-29
  • [소강석 목사의 목양칼럼] 잠 못 드는 밤의 연서
    지난 2019년 6월에 경기도 한 도의원이 성평등조례 개정안을 발의하였습니다. 내용인즉, 성평등위원회를 공공기관 및 사용자, 즉 민간단체까지 설치하도록 개정한 것입니다. 여기서 성평등위원회는 양성평등이 아니라 젠더로서의 사회적 성평등을 의미하거든요. 그런데 이러한 성평등위원회를 설치할 시에는 운영비 전액과 사업비 일부를 도비로 지원하도록 개정한 것입니다. 그래서 경기총(경기도기독교총연합회)은 성평등이라는 용어에 동성애 및 제3의 성이 포함되었다는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강력하게 반대하였습니다. 수차례 그 법을 발의한 도의원을 설득하고 문제되는 조항을 삭제, 수정하도록 요청 하였지만 결국 개정 원안대로 통과 시켜 버렸습니다. 그래서 경기총은 31개 시군연합회와 긴급 모임을 갖고 7월 28일 출범식과 함께 1차 도민규탄대회를 도청 앞에서 실시하였습니다. 또 8월 25일에 2차 도민규탄대회를 하였습니다. 이 일에 우리 교회도 앞장을 섰지요. 그 이후로도 계속 1인 시위, SNS, 영상 홍보 등을 통하여 성평등 조례의 문제점을 알렸습니다. 그러면서도 도의회 대표단과 7차에 걸쳐 재개정을 위한 간담회를 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안에는 두 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성평등 조례를 전부 개정하자는 안과 경기도 의회가 개정할 수 있는 최대치로 개정하자는 견해죠. 그러나 전부를 원하는 견해가 더 강하여 7차 간담회가 결렬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러자 경기총 대표회장과 증경회장들이 나서서 현실적인 대화에 들어간 것입니다. 이번에 완전 개정은 못하더라도, 성의 의미를 생물학적 성으로 정의하고 사용자에 종교단체는 제외하며 강제조항으로 보이는 “하여야 한다”를 “할 수 있다”로 고쳐 종교와 교육, 기업까지도 자유를 준 것 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내용이 어느 일간지에 보도되니까 아주 원론적인 분들이 강력한 반대를 하는 것입니다. 내부에서만 반대 하는 것이 아니라 언론을 동원해서까지 반대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도의원들이 기사 내용을 보고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부결시켜 버린 것입니다. 물론 강성인 분들의 주장대로 총선을 앞에 두고 최대한 압박해 우리의 의견을 100% 수용하게 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저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때는 피해를 최대한 줄이는 선에서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원리와 목표는 같지만 방법은 다를 수 있잖겠습니까? 만약 이번에 경기도 성평등 조례를 어느 선에서라도 개정 했으면 다른 조례도 유보되거나 철회 됐을텐데 말입니다. 또 어느 선까지 개정하고 그 다음에 더 완벽하게 개정할 수도 있는데 말이죠. 가치는 훌륭하지만 우리끼리 순교하겠다고 소리치면 무슨 소용 있겠습니까? 일이 조금이라도 되게 해야지요. 더 큰 화를 막아야지요. 현장의 사역은 관념적인 생각과 구호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너무 직선적으로만 가면 될 일도 그르치고 오히려 피해를더 확대시키는 결과를 낳게 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완전히 개정할 수 있으면 저 역시 더할 나위 없이 기쁘겠습니다. 종교인 과세 대처 때도 우리끼리 관념적이고 원론적 구호만 외치고 있었더라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우리는 일단 둑을 지켜야 합니다. 그런데 둑이 무너지면 배를 건조해 그 안에서 순교의 공동체를 이루어야 되겠지요. 둑은 지킬 수 있을 때 지켜야 합니다. 과거에는 교회 생태계를 지키기 위해 외부의 세력을 차단하고 막는데 급급했다면 지금은 우군끼리의 조율과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것이 더 우선순위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정말 밤은 깊고 갈 길은 먼데, 목회하랴, 교계 안에서는 우군끼리 소통하고 설득을 하랴, 밖으로는 교회 생태계 지키랴, 잠 못 이루는 나날이 연속되고 있습니다. 아니 요즘은 저를 주사파라고 공격하는 코미디까지 연출되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하나님이 은혜 주시면 길이 보이고 깊은 밤이 지나 아침이 오리라 믿습니다. 그 아침을 기다리며 잠 못 드는 이 밤도 아픈 기도와 연서를 띄웁니다.
    • 칼럼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19-12-22
  • [소강석 목사의 목양칼럼] 약속보다 중요한 진심
    저는 작년 연말 무렵에 아침편지문화재단 이사장이신 고도원 장로님이 운영하는 ‘깊은 산속 옹달샘’에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향기명상, 통나무명상, 걷기명상 등을 배우고 산책도 하였습니다. 산책길이 너무 좋아 저도 모르게 고도원 장로님께 내년 봄에 꼭 다시 오겠다고 약속해 버렸습니다. 그리고 벌거벗은 나무들을 향하여도 “꽃 피는 봄이 오면 꼭 다시 오겠다”고 약속 했습니다. 하지만 올해 제가 총회 뿐만 아니라 한국교회 공적 사역 때문에 너무나 바빠서 도저히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교회 뒷산의 봄꽃들을 보면서 ‘깊은 산속 옹달샘’에 핀 꽃들이 생각나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입니다. “꽃들아, 너는 내 사정을 알지? 풀잎들아 너희도 내 마음을 알지? 오죽하면 내가 해질녘에 올 시간도 없어 주로 저녁에 뒷산에 오지 않느냐.” 그러던 중 속리산 국립공원 관리사무소 소장으로 근무하시는 윤덕구 안수집사님의 사무실에 심방을 갔다가 장로님들과 비로산장에서 하룻밤을 머물렀습니다. 그러나 그 곳에서도 ‘깊은 산속 옹달샘’에 가지 못한 미안함과 부담스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9월에는 제가 우리 총회 선거 직선제 역사상 37년 만에 처음으로 무투표로 부총회장에 당선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더 바빠졌고 또 가을도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제가 얼마나 미안했으면 교회 뒷산의 나무들을 바라보며 그곳에 있는 나무들을 J라고 생각하면서 이런 노래를 불렀겠습니까? “♪ J~ 아름다운 여름날이 멀리 사라졌다 해도 / J~ 나의 사랑은 아직도 변함없는데 / J~ 난 너를 못 잊어 J~ 난 너를 사랑해” 그러다가 ‘아, 이래선 안되겠다. 내가 잘못하면 사기꾼이 되겠구나...’ 그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아무리 바빠도 하루 코스로라도 다녀오려고 당장 일정을 잡았습니다. 그래서 지난 11월 22일에 우리 교인들 100여 명과 함께 ‘깊은 산속 옹달샘’을 다녀온 것입니다. 그곳에서 고도원 이사장님께 걷기 명상과 나무명상을 배웠습니다. 그런데 사방이 쭉쭉 뻗은 전나무로 가득한데 오로지 한 그루가 꾸불텅꾸불텅하게 자라고 있었습니다. 저는 거기서 그 나무를 바라보며 명상을 하고 갑바도기아의 신학자 닛사의 그레고리처럼 나무와 무언의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야, 너는 어쩌면 그렇게 꾸불텅꾸불텅하게 자랐느냐, 험악한 세월을 견뎌내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았니? 내 인생도 돌아보면 너랑 똑같구나. 그러나 우리가 살아 있는 게 하나님의 축복이고 은혜잖아. 죽어 쓰러진 나무는 바람이 불어도 전혀 흔들리지 않고 떨어져 버린 가랑잎은 찬 서리가 내려도 떨지도 않잖아. 그러므로 다가오는 겨울에 아무리 눈보라가 불어 닥친다 하더라도 함께 잘 견뎌내 보자꾸나. 그래야 우리는 내년에 아름다운 봄을 맞이할 수 있잖아.” 저는 다행히 이렇게라도 ‘깊은 산속 옹달샘’을 다녀와서 거짓말쟁이는 안 되었습니다. 그러나 약속은 지켰다고 하지만 이미 가을꽃 하나 보이지 않는 삭막한 산이었습니다. 그러니 제 마음 한켠에서 아쉬움을 느꼈습니다. “아, 꽃들이 얼마나 나를 기다렸을까, 나무들이 나를 얼마나 기다렸을까. 산에게도 이런 미안함이 있는데 하물며 수 많은 사람들과 약속을 하고 지키지 못한 것이 있었다면 얼마나 큰 죄인가. 또한 무심코 한 나의 언행으로 인하여 상처를 받은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송구하고 미안한 일인가.” 산책을 통해서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된 것입니다. 어쩌면 제가 ‘깊은 산속 옹달샘’을 다녀온 것은 나무와 풀과 꽃잎들을 향해 약속을 지키려고 한 것이 아니라 제 자신을 위해 다녀온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너무 설레어 고도원 이사장님과 나무들을 향하여 “내년 봄에 다시 꼭 오겠다”고 약속을 하려다가 꾹 참았습니다. 그냥 제 자신과 소리 없이 이렇게 다짐했습니다. “내년 봄에는 꼭 와야지, 진짜 와야지.” 나태주 시인이 “시는 연애편지와 같고 시인은 서비스맨”이라고 하는 말이 생각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나태주 시인의 말처럼, 숲속의 나무들을 향하여 연애편지를 몇 장 흩날리고 온 셈이죠. 약속보다 중요한 것이 진심이라고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물론 내년 봄에는 우리 교회 장로님들과 함께 ‘깊은 산속 옹달샘’에 꼭 가자는 이야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제 진심이 담긴 연애편지가 ‘깊은 산속 옹달샘’ 숲속에 바람으로 나부끼고 있을 것입니다.
    • 칼럼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19-12-15
  • [소강석 목사의 목양칼럼] 첫눈은 언제 내릴까?
    우리 교회에 김포공항에 근무하는 전영모 안수집사님이 계십니다. 제가 국내선을 거의 안 타지만 가끔 제주도를 갈 때는 탑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공항에 들렀더니 손녀 현주에게 갖다 주라고 하면서 조그마한 ‘눈 내리는 관제탑’ 장난감 선물을 주는 것입니다. 그 선물을 보자 ‘첫눈은 언제 내릴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갑자기 시가 하나 찾아와서 ‘눈 내리는 관제탑’이라는 시를 썼습니다. “하얀 눈은 수신호가 없네요 아직 크리스마스가 멀었는데도 교회 종탑과 성당의 예수상 서울역 노숙자의 헝클어진 머리 위에도 소리 없이 눈이 내리고 비행기의 이착륙을 관장하는 관제탑엔 천사가 눈세례를 주고 있어요 외로운 관제사는 하얀 눈송이들을 보며 첫사랑의 몽상에 빠져 있어 이륙을 착륙으로, 착륙을 이륙으로 착각하여 마음대로 수신호를 해 버려요 관제사 때문에 비행기들이 더 이상 이륙도 착륙도 못하고 기체가 서로 부딪치고 얽히고 박살이 날 상황이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무엇이 그리 좋은지 눈송이들을 손바닥으로 받으며 마냥 행복해 하네요.” 아직 크리스마스가 멀었는데 공항에 첫눈이 펑펑 내리니까 난리가 난 것입니다. 그 첫눈은 천사의 눈세례였죠. 그러니 첫눈의 눈세례를 맞고 관제사가 첫사랑의 몽상에 빠져버린 것입니다. 그로 인해 공항이 난리가 났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무엇이 그리 좋은지 눈송이들을 손바닥으로 받으며 마냥 행복해하죠. 갑자기 이런 따뜻한 시가 떠오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첫눈이 내리면 사람들은 첫사랑이나 옛 시절을 추억하면서 마냥 행복해 합니다. 요즘 세상이 많이 삭막해 졌다고 하지만 그래도 첫눈이 내리면 사람들은 들뜨고 행복해합니다. 연인들이 서로 팔짱을 끼고 다니면서 여전히 군고구마나 군밤을 사 먹고 가족들은 즐거운 외식을 하기도 합니다. 옛날 시골에서는 눈이 많이 오면 동네 아이들이 모여서 산에서 토끼몰이를 하기도 했습니다. 눈이 내리는 날은 하늘에서 마치 축복을 해주는 것 같은 마음이 들기도 하지요. 그래서 저는 ‘눈’이라는 시를 쓰기도 하였습니다. “하늘에서 눈이 내리네 하나님이 보내신 사랑의 편지가 새하얀 꽃잎이 되어 내려오네 사랑하는 이들에게 오늘은 모두들 사랑하라고 하나님의 사랑이 하얀 편지되어 꽃잎으로 떨어지는 날은 너와 나는 무조건 하나.” 저는 지금 날씨가 추워져도 서재에 있는 벽난로를 피우지 않고 있습니다. 첫눈이 오는 날 난로를 피우려고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날은 벽난로에 고구마를 구워 먹고 싶습니다. 만약에 첫눈이 펑펑 내려서 눈이 쌓이면 군고구마를 몇 개 싸들고 무조건 산길을 걷고 싶습니다. 평소 토요산행을 하던 장로님들과 함께 남들이 밟지 않은 눈 덮인 산을 먼저 가고 싶습니다. 아니, 한없이 다리가 아프도록 산길을 걷고 싶습니다. 눈 덮인 산길을 걸으며 옛날에 토끼몰이를 하던 일과 썰매를 타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더듬으면서 말입니다. 또 눈사람을 만들어보고 싶기도 하고요. 그리고 또 걸을 것입니다. 제가 제일 먼저 앞장서서 하얀 눈밭 위에 발자국을 찍으면서 말입니다. 그러면서 저는 남이 가보지 않은 길을 상상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제가 걸어온 길이 남이 가지 않는 길이었지 않습니까? 남이 하지 않은 공교회와 공적 사역의 길을 열어 왔으니까요. 그래서 더욱 눈 덮인 산길에 저의 발자국을 찍으며 걷고 또 걷고 싶습니다. 과연 첫눈은 언제나 내릴까요? 토요일에 내리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주일날 첫눈이 내리면 산행은 절대 불가능하겠지요. 요즘은 나이가 먹어 가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왠지 더 동심을 꿈꾸게 되고 마음이 더 순수해지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첫눈이 오는 날 밤은 하얗게 떨어지는 눈송이가 제 가슴을 포근하게 덮어주는 하얀 솜이불이 되어 눈부신 설원의 꿈을 꾸며 잠들고 싶습니다. 이런 하얀 꿈의 축복이 우리 모든 새에덴의 성도들에게도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아니, 이 글을 읽는 모든 사람에게도 첫눈이 오는 날 이러한 행복이 가득하기를 빕니다.
    • 칼럼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19-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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