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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연합이라는 새 역사를 쓰고 싶을 뿐입니다”
- 그때가 몇 년도였을지, 2010년이나 2011년일 텐데요. 한국교회 선배 어른들 몇 분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도저히 몇몇 사람들과 함께할 수가 없다고, 한기총말고 새로운 연합기관을 만들어야 되겠으니 좀 도와 달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제가 그때 그분들의 손을 잡으면서 진심을 담아 눈물을 글썽이며 부탁을 드렸습니다. “제발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1년만 참으면 됩니다. 아니 7~8개월만 참으면 됩니다. 그때까지 참으셔야 합니다. 한번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버리면 돌아오고 싶어도 못 돌아옵니다. 나누는 건 쉽지만, 다시 합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그분들은 제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저는 “동로마교회가 망했던 것은 끊임없는 싸움과 분열 때문이었다”고 말하며 끝까지 말리고 말렸습니다. 한국교회는 2007년 상암월드컵 경기장에서 ‘1907년 평양대부흥 100주년 기념대회’를 했습니다. 저는 그때 집회를 주관할 정도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 아니어서 그냥 성도들과 함께 참석만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느낀 바에 의하면, 그때 좀 더 회개의 눈물이 강물처럼 흐르도록 했으면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너무 축제적인 성격이 좀 있지 않나 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 후 아프가니스탄 사건을 통해서 한국교회는 엄청난 시련을 겪게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한국교회 지도자들은 경각심을 갖지 못하고 계속 서로 충돌하고 싸우다가 마침내 2012년에 연합기관이 분열하게 된 것입니다. 아니, 분열하다가 또 다시 분열을 거듭하게 된 것이죠. 그런 가운데 한국교회는 차별금지법을 비롯한 각종 반기독교 악법에 도전을 받았고 종교인과세법으로도 위협을 느꼈습니다. 모든 사상과 문화는 결국 입법화로 가게 되는데, 네오막시즘, 문화막시즘의 사상이 문화라는 옷으로 갈아입고 입법화로 가게 된 것입니다. 그렇지만 한국교회 연합기관은 이런 흐름과 움직임을 알지도 못하고 계속 싸우면서 분열하기만 연속했습니다. 어느 시대, 어느 역사를 보아도 분열하면 반드시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되어 있습니다. 이번 지방선거를 통해서 보더라도 각자 다른 소리를 내고 분열한 조직은 분열의 대가를 혹독하게 치르지 않습니까? 우리 한국교회도 연합기관 분열의 혹독한 대가를 지금까지 치러왔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누가 뭐라 해도 대연합의 기치를 올리고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작년에 기관 통합을 하려고 했지만 이런 일, 저런 일로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저도 힘겨운 길을 걸어왔고 고달픈 여정을 헤쳐 온 것이죠. 어떨 때는 ‘왜 기관 통합을 해야 되느냐’에 대한 이유를 설명할 힘조차 없을 때가 있습니다. 같은 말을 계속 반복하다 보면 정체성이 혼미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 오기 전에 조금씩 조금씩 구름이 몰려오는 것처럼 때때로 뭉게구름이 피어올랐습니다. 조금 늦었기는 하지만, 한기총에서 통합을 하기로 임원회에서 결정을 하고 실행위원회에서 통과되고 마침내 지난 목요일 오후에 있었던 임시총회에서 한교총과의 통합 안건이 가결된 것입니다. 참으로 기적 같은 역사였습니다. 이제 공은 한교총으로 넘어왔는데, 한교총 통합추진위원장인 저는 결코 서두르지 않을 것입니다. 정당한 절차를 밟아서 차분하게 추진해 갈 것입니다. 지금까지도 인도하신 하나님께서 선한 길로 인도하시고 한국교회를 세우는 방향으로 역사하시겠지만, 다시 한번 깨닫고 깨달은 건, 분열하기는 쉬워도 하나 된다는 건 너무나 힘들고 험난하고 어렵다는 것입니다. 이 글을 쓰는 순간 동로마교회가 아주 지난 한 싸움을 하던 모습이 저절로 상상이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들이 서로마교회의 도움을 받았으면 망하진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서로마교회, 즉 교황청의 -당시는 종교개혁 이전의 일임- 도움을 받느니 차라리 술탄의 터번을 쓰겠다고 끝까지 연합을 반대하다가 오스만 튀르크족에게 전멸을 당하고 말았거든요. 그러므로 제가 언제까지, 그리고 어디까지 하나님께 쓰임 받을지 모르지만 한국교회 하나 됨을 위해서 온몸을 불사르는 희생을 감내하겠습니다. 그리고 하나 됨을 위해서는 포용과 용서와 화목뿐이라는 사실을 외치며 뚜벅뚜벅 걸어가겠습니다. 선배들이 써 놓은 분열의 역사를 연합이라는 새 역사로 쓰고 싶은 마음뿐이기 때문이지요. 한국교회 연합기관은 누구를 위한 자리나 특정인들의 활동 무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교회 공교회를 세우고 지키기 위해 존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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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연합이라는 새 역사를 쓰고 싶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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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분리불안, 언제쯤 끝날까요”
- 몇 년 전부터 제주도에 크루즈 배를 타고 가보는 게 소원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옛날 신학생 시절에 제주도로 수련회를 가는데 비행기 값이 없어서 완도에서 배를 타고 갔거든요. 그때 3-4시간 정도 걸린 걸로 아는데요, 저는 어디 앉을 데도 없고 그냥 갑판에 있으면서 갔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갑판에서 보니까 방이 있더라고요. 신혼부부라든지, 아주 부티가 나는 양복쟁이들은 방에서 쉬다가 나오고 또 들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언제쯤이나 저런 방을 이용해 보나’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몇 년 전, 북유럽에 갔을 때 2박 3일 동안 크루즈를 탔을 때 스위트룸을 이용했거든요. 그러니까 더더욱 인천에서 배를 타고 제주도에 가보고 싶은 것입니다. 월요일 저녁에 배를 타면 화요일 아침에 제주도에 내리고, 또 그날 저녁에 배를 타면 수요일 아침에 인천에 도착을 하니까 수요예배에도 지장이 없습니다. 그래서 몇 주 전부터 예약을 해놨습니다. 물론 조그마한 집회도 하나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광주5.18유네스코 등재 기념재단에서 특별상을 준다고 하는 것입니다. 또 서울에서는 세계방송인클럽에서 축사를 좀 해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무조건 사양했습니다. 저 혼자 가는 게 아니고 몇몇 부목사들과 수행비서들이 같이 가기로 했는데 모두가 한 목소리로 “목사님, 마음먹은 김에 이쪽으로 선택하시죠”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차마 취소를 못하고 제주도로 가게 되었습니다. 저는 가방을 들고 갔는데, 거기에는 책이 몇 권 들어 있었습니다. 저는 어디를 가든 그냥 가지 않습니다. 반드시 책을 가지고 가거나, 원고를 가지고 갑니다. 책을 읽든지 안 읽든지, 그것은 뒷일이고 꼭 그걸 갖고 다녀야 든든합니다. 그것을 안 갖고 다니면 스스로 불안해합니다. 그런데 막상 제주도에 가려니 왜 그렇게 하나님께 죄송하고 교회와 성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드는지 모릅니다. 제가 난생 처음으로 이런 일을 경험하는 것이거든요. 보통 목사님들은 안식년도 하고 또 안식월을 갖습니다. 그런데 저는 안식년은 고만두고 안식월도 한 번 못해 본 사람입니다. 그런데 딱 이틀 교회를 떠난다고 너무 죄송하고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입니다. 사실 저도 좀 회복을 위한 쉼이 있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저는 무조건 직진으로 달려왔거든요. 그런데도 교회를 나와서 차를 타고 인천 연안부두로 가는데 왜 그렇게 어색하고 불안한지 모릅니다. 일종의 ‘분리불안 증세’가 오는 것입니다. “내가 이런 일로 교회를 비우다니...” 배를 탔는데도 설렘보다는 분리불안이 더 강하게 저를 억압하는 것 같았습니다. “내가 없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아야 되는데... 삼십 수년 동안 목회를 하면서 단 한 번도 이렇게 이틀을 비워 본 적이 없는데... 왜 나는 이렇게 마음이 편치를 못한단 말인가.” 제주도에 도착하여 오름길을 걷는데도 순간순간 교회 생각, 사역 생각이 떠나지를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것이 ‘소평 소도’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순간 언뜻 저에게 위로가 되는 사도 바울의 고백이 생각이 났습니다.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아직도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고후11:28) 사도 바울도 일종의 강박이 있었고 분리불안 장애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교회만 생각하면 염려가 되고 불안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어쩌면 바울처럼 저에게만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오름길을 걸으니까 또 굉장히 창의적인 설교거리와 사역을 위한 하이 콘셉트를 얻게 되었습니다. 화요일에 배를 타고 올라오는데 그날따라 배가 늦게 도착을 하고 차까지 막혀서 교회에 늦게 도착을 했습니다. 그래서 박승혁 목사님이 설교를 끝내고 통성기도를 하고 있을 때, 남방 차림으로 올라가서 예배를 마무리하고 축도를 하였습니다. 제가 올라가니까 교인들이 깜짝 놀란 얼굴로 보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은 열린예배를 드렸다고 생각하세요. 미국 같은 경우에는 열린예배를 드리잖아요. 양해하시기 바랍니다. 아니, 여러분을 너무나 보고 싶어서 예배가 끝나기 전, 남방 차림으로 달려왔습니다.” 과연 저의 이 강박과 분리불안 증세는 언제나 사라질까요. 은퇴를 하면 사라질까요. 그것도 장담하지 못하겠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오름길을 걸으며 깨달은 것은 ‘이것은 하나님이 저한테만 주시는 축복일지도 모른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코로나 상황에서도 우리는 공동체가 와해되지 않고 더 굳건한 영적 역설적 부족 공동체로서의 교회를 이루었던 것입니다. 사역을 하다 보면 긴장과 릴렉스가 균형을 이루어야 하지만, 저는 이번의 쉼마저도 긴장이 함께했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이 축복이라면, 저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은퇴 이후까지도 계속 달리고 또 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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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분리불안, 언제쯤 끝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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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내 마음이 원하는 길
- 우리 교회에 임서희 권사님이 계십니다. 제 고향 후배이기도 하고 한동안 정금성 권사님의 비서도 했었습니다. 고향 후배여서 제가 좀 편하게 대했다고 할까요, 아니면 저도 모르게 좀 가볍게 대한 면이 있었다고나 할까요. 그런데 임 권사님이 상처하고 혼자 사시는 목사님과 재혼을 하셨습니다. 그 목사님은 전 세계를 다니며 선교를 하시는 목사님이신데, 그 분도 제 고향 대선배이시고 저의 중매로 임 권사님과 재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최근에야 임 권사님이 실력 있는 화가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문학성이나 예술성이 깊은 사람들은 무조건 좋아하고 우러러보는 경향이 있거든요. 더구나 이분이 그냥 취미로 그림을 그리는 게 아니라 국전에 입선을 한 화가였습니다. 저에게 단 한 번도 그런 이야기를 하신 적이 없으니 모를 수밖에요. 그런데 얼마 전에 개인전을 한다고 기도를 받으러 오셨습니다. 그리고 도록에 들어갈 축사를 부탁하시는 것입니다. 제가 그 도록을 보고 입이 벌어졌습니다. 얼마나 그림들이 순백의 미를 지니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제가 정식으로 사과했습니다. “권사님, 솔직히 과거에 권사님을 좀 무시할 때가 있었어요. 용서해 주세요.” 그리고 기도를 해 드렸더니 권사님께서 펑펑 우시는 것입니다. 저는 기도를 해 드린 후, 도록을 보고 그림 하나를 찍었습니다. 그 그림은 자작나무 숲길에 벤치 두 개가 놓여 있는 그림이었습니다. 언젠가 제가 ‘꿈’이라는 노래를 대중가요 스타일로 작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당신이 불편해 할까 봐 / 마음으로만 고백해요 / 꿈속에서 당신과 손을 잡고 자작나무숲을 거닐고 있을 때 / 별빛이 부서지고 스러지는 밤 / 하늘도 우릴 축복했어요 / 마주치면 피하지만 혼자 있을 땐 꿈을 꿔요 / 이제 고백해도 되나요 피하지 않아도 되나요 / 당신 앞에 서도 되나요 / 꿈속에서 깨어나야 하나요” 저는 도록에 나와 있는 그림들이 다 마음에 들었습니다. 꽃도 마음에 들고 시골 풍경과 나무와 숲길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자작나무숲 그림이 좋았습니다. 왜냐면 제 마음이 원하는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흙길을 좋아하고, 하늘이 나무로 가려지는 원시림과 같은 울창한 숲길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가끔 길을 걷다가 벤치가 있어서 앉아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면 더 좋고요. 살다 보면 혼자 외롭고 쓸쓸하게 걸을 때도 있지요. 하지만 때로는 사랑하는 사람, 또 아끼는 사람들과 함께 길을 걷다 벤치에 앉아 음료수나 간식을 먹으면서 대화도 나누고 또 쉬었다가 걸어가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그런 길이 제 마음이 원하는 길이거든요. 그만큼 제 마음이 휴식을 원하는 것이겠죠. 그런데 그 그림의 제목도 ‘휴식’이어서 제가 당장 찍었습니다. 대부분의 그림이 해바라기, 무궁화, 동백꽃, 장미 등 꽃을 그린 그림이었습니다. 장미는 국전에 입상을 한 작품이고요. 이분이 홍대 미대를 나온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천부적으로 화가의 재능을 가지고 태어나서 그림을 그린 것입니다. 저는 무슨 일을 시킬 때 지혜롭고 빠릿빠릿하게 처리하지 못하면 막 나무라는 스타일인데, 과거에 우리 정 권사님의 비서를 하실 때 아무래도 제가 너무 일방적으로 말을 할 때도 있었거든요. 그래서 정말 죄송하다고 했습니다. “저는 권사님이 이런 대 화가인 줄 몰랐습니다. 진작 말씀 좀 하시지 그러셨습니까?” 그런데 우리 임권사님이 이렇게 순수한 풍경과 꽃그림을 그릴 수 있는 것은 임 권사님의 마음속에 이미 순수의 꽃이 피어 있고 꽃향기가 진동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임 권사님의 꽃 그림은 정말 생화처럼 향기가 느껴지고, 풍경 그림은 마음의 평안함을 줍니다. 마치 저와 같이 쉼을 원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꿰뚫어보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5월 21일부터 31일까지 수지 ‘갤러리썬’에서 개인전을 하는데, 휴식이 필요한 사람, 꽃을 좋아하는 분들은 가셔서 마음이 원하는 길을 찾아보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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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내 마음이 원하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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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아름다운 라일락 향기의 역사를 만드신 분”
- 이 글은 우리 교회 장로님이자 단국대학교 명예 이사장이신 장충식 장로님의 ‘아름다운 인연’과 ‘학연가연’이라는 책의 출판기념회에서 한 축사를 게재합니다. 존경하는 장충식 단국대 명예총장 겸 이사장님의 출판기념회를 진심으로 경하드립니다. 장충식 이사장님은 저희 교회 장로님이시기도 합니다. 장로님께서는 워낙 거산과 같으셔서 끊임없이 맑은 물과 산소를 공급하시는 분이십니다. 이렇게 큰 거산과 같은 장로님을 저희 교회 장로님으로 모시게 된 것이 너무 감사하여 주일날 교회에 오실 때마다 저는 항상 허리 숙여 존경과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혹 여러분은 이런 이야기를 아십니까? 어느 날 경비행기에 기장과 목사와 과학자, 어린아이, 총 4명이 타고 가는데 그만 엔진이 고장이 나서 3분 안에 급하게 탈출을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낙하산은 3개 밖에 없는 것입니다. 맨 먼저 기장이 무책임하게 낙하산을 타고 탈출을 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자 유전공학을 연구하는 과학자가 “나는 인류의 생명과 번영을 위해 먼저 탈출합니다”하고 낙하산을 타고 내려가는 것입니다. 그러자 목사와 어린아이는 마지막 하나 남은 낙하산을 보고 눈치를 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목사는 어린아이에게 “어차피 목회자는 섬기고 희생하는 사람이다. 어서 빨리 낙하산을 타고 탈출을 하거라.” 그러자 어린아이가 “목사님도 함께 탈출할 수 있어요” “이 녀석아 시간 없어. 지금 거의 1분도 안 남았어.” 그러자 어린아이가 뭐라고 말한 줄 아세요? “목사님, 아닙니다. 낙하산이 아직 2개가 있어요. 아까 제가 보니까 과학자 아저씨가 낙하산을 타고 내려간다는 게 제 보이스카웃 가방을 메고 뛰어내려 버리더라구요.” 이게 지도자론에서 흔히 쓰는 유머 예화입니다. 여기서 기장은 있으나 마나 하는 지도자입니다. 과학자는 자신의 욕심만 부리다가 죽음을 자초하는 지도자입니다. 목사는 희생하는 사람의 모형입니다. 어린아이는 역사와 미래를 내다보는 눈을 가지고 있는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장충식 장로님 안에는 목사와 같은 섬김과 희생의 정신, 그리고 어린아이와 같은 역사와 미래를 내다보는 눈을 가지고 계신 분이십니다. 인간은 역사 속에 태어나고 역사를 만들며 역사를 남깁니다. 존경하는 장충식 이사장님은 정말 역사의 격변기에서 독립운동가 장재 선생님의 아드님으로 태어나셔서 수많은 역사를 일구셨습니다. 그는 30대에 단국대학교 최연소 총장이 되셨고 36년 동안이나 총장으로서 단국대를 대한민국 최고의 명문 사학으로 일구신 분이십니다. 북경아시안게임 한국선수단 단장, 남북체육회담 수석대표, 세계 청소년 축구선수권대회 남북 단일팀 단장, 백범 김구 선생 기념사업회 회장, 대한적십자사 총재, 세종문화회관 이사장 등을 역임하셨습니다. 특히 대한적십자사 총재 시절에는 남북 이산가족 상봉 사업을 성사시키는 등 남북 화해의 새 장을 열어가는 자리에 서셨던 분입니다. 그런데 위대한 역사를 일구어도 그것이 기록되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자칫하면 그 역사가 흙무더기 속에 고서로 묻혀버리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장충식 이사장님은 역사를 기록할 수 있는 사관 중에 사관이 되고, 사초의 사초를 쓰셨던 분입니다. 그런데 역사는 혼자 이루는 게 아니라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아니, 그냥 사람을 만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인간애와 진실한 삶이 위대한 역사를 이룰 수 있습니다. 장충식 장로님은 정말 생명을 존중할 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을 존중하고 품에 안으신 분입니다. 이 어른은 음악에도 재능이 있으셔서 노래도 성악가 못지않게 잘하시고 바이올린 등 많은 악기를 다루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가끔 저희 교회에서 특송자로 모시기도 하고 바이올린 연주자로 모시면서 아주 작지만, 사례비를 드리면 그 사례비를 제자들에게 모두 나누어주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어르신은 정말로 사람을 아끼고 섬기시는 분이시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래도 강물은 흐른다’, ‘아름다운 인연’이라는 책을 보면 그의 진정한 인간애의 삶이 배어있고 천의무봉과 같은 필력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번에 쓰신 회고록 ‘학연가연’에도 학교를 통해서 이루어진 수많은 아름다운 인연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책이 한 편의 드라마처럼 얼마나 재밌고 감동적이던지, 저는 밤을 새우며 단숨에 다 읽어버렸습니다. 특별히 후농 김상현 의원과의 인연의 스토리가 가슴 뭉클한 감동을 주었습니다. 몰래 도둑 강의를 듣던 불우한 청년 김상현을 가슴으로 품어주고, 훗날 그 청년 김상현이 국회의원이 되어 단국대학교가 종합대학교로 승격하는 데 조력을 하는 거룩한 부메랑의 스토리가 진한 감동의 여운을 주었습니다. 성경 말씀대로라면 심는 대로 거두는 법칙을 보여주신 것이죠. 이렇듯이, 장충식 장로님은 인간을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함으로써, 잔인한 상황 속에서 아름다운 라일락 향기의 역사를 만드신 분입니다. 모쪼록 이 책이 우리 사회에 인간에 대한 진심 어린 사랑의 큰 울림이 되어 또 다른 가연, 아름다운 인연의 꽃을 피워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옥체가 강건하시고 문은 장수하시어 더 많은 집필을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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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아름다운 라일락 향기의 역사를 만드신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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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길고양의 눈빛이 지금도 아련합니다."
- 월요일 저녁 영광에 있는 ‘청아’라고 하는 한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숙소로 왔습니다. 그런데 호텔 주차장에서 내리자, 길고양이 한 마리가 야옹, 야옹하면서 다가오는 것입니다. 저를 보고 무섭지도 않은지 도망가지도 않고 오히려 애처롭게 울면서 다가오는 것입니다. 언뜻 보니까 암고양이인데 새끼를 밴 것입니다. 그런데 그 순간 호텔의 정문 불빛에 반사되어 고양이의 눈빛과 제 눈빛이 마주친 것입니다. 그런 고양이의 눈동자가 애틋하게 구걸을 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아마도 고양이가 배가 고픈 것 같았습니다. 아니, 배 속에 있는 새끼를 위해서 모성애가 발동하여 어떻게든 먹이를 구하려고 밤거리를 이리저리 떠돌아 다녔던 것 같았습니다. 그러다가 호텔 숙소로 들어가는 저와 마주친 것입니다. 원래 길고양이는 사람을 만나면 무서워서 도망을 가는데 어떻게 안 도망가고 오히려 야옹, 야옹하며 다가온단 말입니까? 그래서 고양이에게 줄 게 있나 보았더니 마침 한정식집에서 다음날 아침에 먹으라고 준 갈비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갈비를 주니까 그냥 “땡큐, 땡큐, 굿, 굿” 하는 듯 하면서 먹는 것입니다. 그냥 먹는 것이 아니라 배 속의 새끼를 위해서 더욱더 간절하게 뼈까지 쪽쪽 빨아 먹는 것입니다. 고양이가 너무나 허겁지겁 먹는 것을 보니까 “갈비를 몇 개만 줘서는 안 되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어서 플라스틱 통에 있는 갈비를 더 주었습니다. 수행하는 비서들이 “목사님 드실 것은 남겨 놓으세요”라고 했지만 하나도 남김없이 다 주어 버렸습니다. 제가 갈비를 줄 때마다 고양이가 구애를 하는 애절한 눈빛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이지요. 그런 고양이를 이렇게 축복했습니다. “많이 먹고 새끼들 낳아 잘 키우거라.” 그러자 고양이가 꼭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주인에게 버림을 받아 본 적이 있지요. 그러나 정말 제가 사람을 잘 봤습니다.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는 모르지만, 저에게 해를 가하지 않고 따뜻한 정을 줄 거라고 짐작했죠. 제 감이 옳았습니다. 고맙습니다.” 플라스틱 통에 든 갈비를 하나도 남김없이 다 주니까 고양이가 다 먹은 후에 포만감을 즐기듯이 감사의 눈빛으로 저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저와 처음으로 마주쳤던 눈빛은 애절하고 간절했는데 먹이를 먹고 난 후에는 만족하고 고맙다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저는 애완동물을 키우지 않습니다. 그래서 옛날에는 애완동물을 키우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아마 정권사님이나 집사람의 영향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애완용 개나 고양이의 털이 빠져 날리면 건강에 안 좋다는 인식을 심어 주었거든요.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애완용 개나 고양이를 키우는 걸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왜냐하면 누군가에게 사랑을 주고 싶은 애정의 대상이 생기는 것이 아닙니까? 물론 자식이 없는 사람들은 더 그렇지만, 자식이 있고 남편이 있다 하더라도 이기적이지 않고 계산적이지 않은 정말 순수한 애정을 주고 싶은 대상이 생기는 것이니까요. 요즘은 애완용 개보다는 고양이로 많이 바뀌어 간다고 합니다. 그날 밤, 저는 제가 키우는 반려묘는 아니었지만 고양이에게 처음으로 사랑을 나누어 줬습니다. 계획된 사랑도 아니고, 예정된 사랑도 아니었지만 그날 저녁에 마주친 길고양이의 간절한 눈빛을 통해서 저도 모르게 마음이 움직였던 것입니다. 배 속에 밴 새끼를 먹여 살리기 위한 모성애로 가득한 길고양이를 사랑했다는 것도 보람이 있지만, 정말 반려견이나 반려묘를 키우는 사람들의 마음을 더 이해하게 되었고 공감하게 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하찮은 미물이지만 저를 알아보고 잠시나마 의지했던 고양이가 고마웠고 생명 사랑의 마음을 더 느끼게 되었습니다. 아직도 그 길고양이의 눈빛이 아련하게 보이는 듯합니다. 오늘은 어버이날입니다. 하찮은 미물도 자기 배 속에 있는 새끼를 보호하기 위해서 목숨을 걸고 음식을 달라고 구걸을 하는데, 하물며 만물의 영장인 인간은 어떻겠습니까? 우리의 부모님은 우리를 먹이고 입히고 돌보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희생과 사랑을 쏟으셨는지 모릅니다. 그 어버이의 은혜 앞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그 어버이의 은혜를 무조건 추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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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길고양의 눈빛이 지금도 아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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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우리, 서로 추앙하며 살아요.”
- 지난주는 총회 선관위 워크숍 차 제주도를 다녀왔습니다. 물론 제주도 가서도 신경 쓸 일이 있지만 선관위 서기 되시는 김한성 목사님이 회의 때마다 모든 걸 빈틈없이 준비를 해오기 때문에 저는 그냥 놀고먹는 거나 다름없었습니다. 제주도에서 이틀 있었는데 진짜 잠을 잘 잤습니다. 그리고 저녁에는 목사님, 장로님들하고 산책도 했습니다. 그런데 동행한 원태윤 장로님이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목사님, 화요일날에 함평 나비 축제 강사로 오시는데 영광에 좋은 새 호텔이 있으니까 전날 밤 그곳에서 모시겠습니다. 하루 전날 내려오셔서 주무세요.” “아니, 미리 가서 잘 이유가 있습니까? 함평 집회도 오후 2시에 하는데요.” 그랬더니 또 이런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전날 오전에 군산에서 행사가 있고 오후에는 김제에서 행사가 있지 않습니까? 행사 끝나고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오는 건 너무 시간 낭비입니다. 그러니까 영광에서 주무시고 함평 나비 축제에서 설교하시면 되지 않습니까?” 그때 제가 조건을 걸었습니다. “그러면 그 호텔에 개구리 우는 소리도 나고 뻐꾸기나 소쩍새 소리도 들립니까?” “시골이니까 당연히 개구리 우는 소리가 안 들리겠습니까?” “그러면 제가 가겠습니다.” 이런저런 대화를 하면서 바닷가 산책을 하고 숙소로 돌아오는데 작은 연못에서 개구리들이 얼마나 많이 울어대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제가 그랬습니다. “저놈들이 지금 암컷에게 구애하기 위해서 사랑의 세레나데를 부르고 있습니다.” 그랬더니 몇 목사님과 장로님들이 이런 말을 하시는 것입니다. “이건 실제 개구리 울음소리가 아닙니다. 호텔에서 녹음기로 틀어 놓은 겁니다.” “아닙니다. 자연을 믿으세요. 설사 녹음기라 하더라도 우리가 그저 낭만으로 느끼고 듣는 게 좋은 것이지요.” 그때 강인철 집사가 달려오길래, 제가 가서 이것이 녹음기 소리인지, 아니면 실제로 개구리가 세레나데를 부르고 있는지, 가까이 가서 제대로 조사를 해 보라고 했습니다. 강인철 집사가 연못에 갔다가 확인해오더니 “이건 실제 자연의 개구리 소리입니다. 돌을 던지니 개구리들이 도망을 가더라구요.” 하는 것입니다. 그때 마침 우리 일행 옆에서 개구리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그랬습니다. “목사님들, 장로님들, 그냥 믿고 사세요. 그래야 우리 귀가 즐겁고 마음에 낭만이 느껴지는 겁니다.” 제가 방으로 들어오면서 이런 말을 하기를 너무나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의 말이 옳았고 저는 역시 시인의 감성과 낭만이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되었습니다. 이 시대는 너무 분석하고 예단하고 무언가를 자꾸 캐내려고만 합니다. 그러면 순수시대의 낭만과 감성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누군가의 말마따나 ‘여자는 이해하려 하지 말고 그냥 받아들여야 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아니, 여자를 넘어서 아티스트들은 진짜 이해가 안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걸 이해하고 분석하려고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줄 때 그 사람들의 예술성이 창의성으로 발전하게 되는 걸 봤습니다.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나의 해방일지’라는 드라마에 나오는 대사처럼 서로 추앙하며 살아야 합니다. 무조건 믿어주고 높이 받들어주고 우러러볼 때 상대방도 상처가 치유되고 자기 자신도 행복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드라마에서도 주인공 염미정과 구씨가 서로를 추앙해 주면서 상처와 아픔을 치유하고 회복해가지 않습니까? 그날 저녁은 창문을 열어놓고 개구리 울음소리를 들으면서 잠이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때로는 이성적으로 의문하고 회의하며 분석과 통찰을 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아니, 정말 냉철하게 문제를 파고들고 감정에 치우침이 없이 판단을 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메시지 자체는 예리하게 분석하고 논리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람과의 관계성을 유지하고 발전시킬 때는 무조건 믿어주고 높이 받들어주고 우러러보며 추앙해 줄 필요가 있습니다. 그럴 때 그 사람도 따뜻한 사랑과 진심을 이해하게 되면서 치유되고 회복되는 것입니다. 아니, 추앙하는 내 자신이 먼저 행복해지고 순수시대의 낭만과 유희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서로 추앙하며 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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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우리, 서로 추앙하며 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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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여의도의 하늘을 열게 한 부활절연합예배
- 지난주 부활절연합예배의 여운이 아직도 가시지를 않습니다. 원래는 부활절연합예배를 우리 교회에서 드리고 설교도 다른 분이 하는 걸로 예정을 했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이런 제안을 했습니다. “저는 얼마든지 우리 교회를 부활절연합예배 장소로 협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부 측 주요 인사나 만일 대통령 당선인이 오신다면 주일날 경부고속도로까지 통제해야 하는데 국민들에게 불편함이 너무 크고 당선인이 오시기에도 부담이 클 것입니다. 그러나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한다면 VVIP나 정부 측 인사들이 오시는 데 불편함이 많이 없어질 것입니다.” 바로 이런 제 의견이 받아들여지게 되었고 어찌어찌해서 설교도 제가 맡게 될 뿐만 아니라 찬양대도 우리 교회에서 하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여의도순복음교회와 연합찬양대를 이루었습니다만. 저는 류형길 지휘자에게 ‘WAY MAKER’ 찬양을 부활의 내용에 맞게 개사하고 편곡까지 해서 웅장하게 했으면 좋겠다고 하였습니다. 감사하게도 우리 교회 찬양대원들이 얼마나 많이 갔는지 찬양대 지정 좌석이 부족해서 어쩔 수 없이 일반 좌석에 앉은 분도 계셨다고 합니다. 예배가 시작되고 2000여 명의 찬양대원이 찬양을 하기 시작하는데 정말 여의도의 하늘이 열리는 것 같았습니다. 아니, 구약적인 표현에 의하면 하나님의 거룩한 영이 빽빽하게 임재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후문에 의하면 이영훈 목사님께서도 “지금까지 이렇게 은혜스러운 찬양을 들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저의 예측이 맞았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예배를 드렸다면 아마 거리 때문에 많은 부담이 되었을 텐데 예배장소를 여의도순복음교회로 정하니까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까지 오시게 된 것입니다. 이번 예배를 참석하고 가신 대통령 당선인께서도 엄청나게 감동을 받고 가셨습니다. 물론 저 역시 설교 준비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제가 강단에 서니까 찬양대에 앉은 우리 성도들과 극성스러운 여의도순복음교회 교인들이 우렁찬 환호성과 박수를 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의 첫 설교의 톤이 ‘솔’ 음으로 시작된 것 같습니다. 조명 빛이 저의 얼굴을 쏘아 댈 뿐만 아니라 찬양의 열기가 이미 제 가슴에 전달이 되어 설교 초반부터 땀방울이 맺히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따라 최선을 다해 설교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제 설교에 만족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주최 측에서 25분까지는 설교를 할 수 있도록 배려를 해주었지만, 다음 순서들이 많아서 21분으로 끝냈습니다. 그렇게 마치고 나니까 적어도 설교 원고의 1페이지 분량은 스킵을 한 것 같았습니다. 그래 봤자 24분일 텐데 시간에 대해 부담을 많이 가졌거든요. 그리고 저도 사람인데 어떻게 전하고 싶은 내용을 100% 다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 하나님이 주신 은혜 안에서 최선을 다할 뿐이죠. 주최 측에서 설교자에게 당선인을 배웅하도록 임무를 주셔서 당선인을 배웅하였는데, 가시면서도 설교에 큰 감명을 받고 간다는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 대답을 했습니다. “제가 더 잘 할 수 있고 더 감동스럽게 할 수 있었는데 부족함이 많았습니다.” 설교가 끝나자 많은 분들이 문자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CBS방송과 유튜브를 통해서 설교를 들은 많은 분들이 지금까지 격려 문자를 보내고 있습니다. “소 목사님, 정말 최고였습니다. 이런 부활절연합예배는 없었습니다. 이런 찬양과 설교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예배 녹화 방송을 봤습니다. 제가 봐도 정말 후회함이 없을 정도로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최선을 다했다고 하지만, 다른 분들이 칭찬하고 칭송하는 만큼의 설교는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찬양대는 거의 완벽하게 했던 것 같습니다. 찬양을 통하여 여의도의 하늘을 열어서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린 게 아니라 청중들을 완전히 은혜와 감동의 전율로 압도하였습니다. 그날의 은혜와 감동의 여진은 지금도 제 마음을 흔들고 있습니다. 다시 생각해 보아도, 한 가지 보람된 것이 있습니다. 저의 예측과 감각으로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부활절연합예배를 드렸기 때문에 더 많은 성도들이 올 수 있었고 대통령 당선인이 직접 오셨으며 많은 VIP인사들이 함께 예배드림으로써 그분들 모두가 다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감동의 찬양과 설교를 들었으니 말입니다. 저를 통하여 이런 판단과 기획을 제안했던 것도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돌이켜 보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닌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 은혜 안에서 저는 앞으로 어떤 일을 해도 후회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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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여의도의 하늘을 열게 한 부활절연합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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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공공재로 쓰임 받아 감사할 뿐입니다”
- 지난주 주일 저녁예배는 정말 가슴 설레는 밤이었습니다. 저희 교회에서 합동 교단의 164개 노회 관계자들과 신학교, 총회임원 600여 명과 성도들을 합하여 4천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아름다운동행기도운동 마지막 전국기도회가 열렸기 때문입니다. 사실 저는 기도회를 앞두고 많은 부담감이 있었습니다. “과연, 성도들이 얼마나 올 것인가. 우리 총회 목사님들과 장로님들이 정말 큰 은혜와 감동을 받는 기도회가 되어야 할 텐데...” 그런데 저의 염려와는 달리, 기도회가 시작하는 7시가 되기도 전에 본당 3층까지 자리가 꽉 차는 것입니다. 나중에는 본당에 자리가 없어서 교육관까지 가서 예배를 드릴 정도로 기도회 현장은 은혜를 사모하는 열기로 가득하였습니다. 총회 목사님과 장로님들이 채워야 할 자리에 빈자리가 있으면 우리 성도들이 즉시 자리를 다 채우고도 남을 정도로 성도들은 은혜를 사모하며 최선을 다해 모였습니다. 특별히 저희 교회 연합찬양대가 부른 ‘Way Maker’의 웅장함과 장엄함은 청중을 압도하며 거대한 은혜의 파동을 일으켰습니다. 그러자 기도회에 참석하신 총회 목사님들과 장로님들이 다들 입을 벌리고 감탄을 하시는 것입니다. “코로나 상황에서 어떻게 이렇게 집회를 할 수가 있습니까? 찬양대의 웅장한 찬양에 은혜 받았습니다. 정말 새에덴교회 성도들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큰 은혜를 받고 갑니다.” 사랑의교회 오정현 목사님께서도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런 행사는 직접 섬겨본 교회만이 그 어려운 사정과 희생을 알 수 있습니다. 정말 소 목사님과 새에덴교회 성도들이 정성껏 준비를 잘 했습니다. 정말 아름다운 기도회였습니다. 앞으로도 동지의식을 가지고 우리 교단과 한국 교회를 잘 섬겨 나갑시다.” 저도 그날 밤, 우리 교회가 총회의 회복과 세움을 위한 공공재로 쓰임 받은 것이 너무 하나님께 감사하고 우리 성도들에게도 감사했습니다. 이번 주 부활주일에는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열리는 한국교회 부활절연합예배에서 1천여 명의 성도들이 찬양대로 섬기게 됩니다. 이 또한 새에덴교회가 공공재로 쓰임 받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교회가 크고 작은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각자의 교회론이 있겠지만 공공재로 쓰임 받는 교회는 공적 교회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지난주에 저희 교회가 총회를 위해서 공공재로 쓰임 받았다면, 이번 부활주일에도 한국교회를 위한 공공재로 쓰임 받으면 좋겠습니다. 특별히 한국교회 부활절연합예배는 국가조찬기도회와 더불어서 한국교회가 교단을 초월하여 연합하여 드리는 역사와 전통이 있는 기도회입니다. 교계 언론 뿐만 아니라 일반 언론에서도 관심을 갖고 보도하였고, 여러 주요한 인사들이 많이 참석한다고 들었습니다. 사망권세를 깨뜨리시고 죽음의 법칙을 박살내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영광과 감격을 1천여 명의 찬양대가 장엄하게 찬양을 한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감격을 하겠습니까? 믿지 않는 세상을 향해서, 또한 그날 외빈으로 오는 분들에게 예수님의 부활의 소식을 외치고 한국교회의 위상과 영향력을 보여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저도 한국교회를 위한 공공재로 쓰임 받는다는 자세로 설교를 열심히 준비하였습니다. 주어진 시간 안에 마쳐야 하는 부담감도 있지만, 정말 극화적이고 영적, 역설적 메시지를 담으면서도 국민 화합과 희망을 선포하는 설교를 준비했습니다. 저의 설교가 공공재로 쓰임 받을 뿐만 아니라 찬양대도 한국교회를 위한 공공재로 쓰임 받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새에덴교회는 계속 한국교회와 민족의 미래를 위한 공공재로 쓰임 받으면 좋겠습니다. 50년이 아니라 100년 후에도 더 부흥의 횃불을 드높이는 공공재 교회로 쓰임 받으면 좋겠습니다. 항간에는 교회 건물을 너무 크게 짓는 것을 터부시하거나 비판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물론 일리 있는 측면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예전에 동구권에 갔을 때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동구권의 나라들 폴란드, 루마니아, 헝가리, 체코 등이 공산화 되었다가 30년, 50년 후에 다시 자유화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건물이 있었던 가톨릭교회는 재기를 하였지만, 건물을 중요시하지 않았던 개신교회는 일어설 엄두조차 내지 못하더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선교사를 파송하고 전도를 해도 마땅히 모여서 예배드릴 공간조차 없으니 선교에 큰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새에덴교회 뿐만 아니라 수많은 한국교회들이 더 부흥하고 더 아름다운 교회를 이루어서 50년, 100년 후의 한국교회와 민족을 섬기는 아름다운 공공재 교회로 쓰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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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공공재로 쓰임 받아 감사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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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봄보다 먼저 꽃을 만났습니다”
- 지난 목요일 오후는 완연한 봄 날씨였습니다. 새벽부터 바쁜 일정을 보내고 오후 4시 이후로는 일정을 비워놨습니다. 왜냐하면 한 가지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습니다. 우리 교회 새 가족 가운데 박시은 성도님이 계시는데, 죽전 카페거리에서 ‘Cielo(씨엘로)’라는 카페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카페를 개업하니까 여기저기 수많은 교회에서 전도를 하러 오는 것입니다. 그때마다 “저는 골수 타 종교인입니다”라고 거절하며 카운터에 불경과 염주를 놔두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누가 전도를 하러 오면 불경하고 염주를 내밀면서 “제발 내게 전도만은 하지 말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새에덴교회 전도단은 전도부터 하지 않고 와서 커피부터 마시더라는 것입니다. 그냥 차를 마시면서 이렇게 말을 하더래요. “요즘 같은 때 장사는 되세요? 인생의 힘든 문제 있으면 저희들이 도와드릴게요” 그러니까 마음의 문이 열어지더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관계를 설정한 후에 “사장님은 교회 안 다니시죠?”라고 묻더라는 거예요. 그래서 “어느 교회인데요?”라고 되묻자 그제야 “새에덴교회입니다”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교회 오라는 소리는 한사코 안하고 좋은 관계를 맺어갔습니다. 그러자 오히려 자기가 그동안 인간관계를 통해 상처받고 속상했던 것들을 교역자와 성도들에게 털어놓고 상담 아닌 상담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저렇게 따뜻한 분들이 다니는 교회라면 나도 한번 가봐야 되겠다”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 교회에 온 것입니다. 생전 처음으로 교회에 오니까 얼마나 어색하겠습니까? 찬양도 익숙하지 않고 설교도 진부하게 느껴질 수 있는데 담임목사가 설교 중에 하모니카로 ‘고향의 봄’을 연주하고 건전한 대중가요를 개사해서 설교와 매칭해서 부르는데 어린 시절의 아련한 추억과 자신의 인생이 돌아봐지면서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고 합니다. 특별히 제 설교가 자신의 삶을 포근하게 에워싸고 둘러싸는 것처럼 느껴지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다음 주에도 나오고 새벽기도도 나오고 성경이 읽는 것이 너무나 즐겁고 기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주일예배 시간에 영상 간증을 하였습니다. 저도 그 영상 간증을 보고 감동을 받아 “이분이 경영하는 카페를 꼭 한번 가보겠다”고 강단에서도 이야기를 하고 박시은 성도에게 개별적으로도 약속을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조매 바쁩니까? 제가 그렇게 좋아하는 산도 낮에는 거의 못가고 야간산행을 하지 않습니까? 이래저래 해서 못 가다가 한 해를 넘겨버렸지요. 그래서 이번에는 제가 아예 교구 목사에게 “이번 주 목요일 오후 4시 이후로 가겠다”고 선언을 해버렸습니다. 약속대로 제가 그곳에 가니까 벌써 우리 교인들이 와서 차를 마시고 있고 제가 온다고 박시은 성도는 아예 손님을 안 받고 문을 잠그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말렸습니다. “그러지 마세요. 다른 손님도 와서 차도 마셔야지 목사가 온다고 문을 닫아버리면 얼마나 상처받겠어요. 문 여세요.” 마주 앉아 있는 박시은 성도의 모습이 주일 간증영상에 비췄던 그 모습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분이 우리 교회에 나오는 한 명의 새가족 성도를 넘어서 영혼의 꽃으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이분이 교회를 나온 이후로 30여 명을 전도했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항상 프런트에다가 우리 교회주보와 교회신문까지 놓아두고 오가는 사람마다 “나는 예수님을 믿고 너무 행복해졌어요. 새에덴교회를 다니면서 너무 마음이 평안해졌어요”라고 이야기를 한다는 것입니다. 이민식 교구 목사가 제 옆에 앉아 그 얘기를 하니까 진짜 그 여성도의 모습이 아름다운 영혼의 꽃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제가 교회 돌아오니까 오후 산행을 하기가 딱 좋을 때였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곳에서 느꼈던 필과 감동을 써놓지 않으면 글이 안 나올 것 같아서 오자마자 글을 썼습니다. 오늘 저는 진짜 한 영혼의 꽃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 꽃잎에다가 예수님의 사랑 이야기를 새겼습니다. 비록 석양녘을 바라보며 산행을 하진 못했지만 봄보다 먼저 꽃을 만나고 싶어 그리한 것입니다. 그 영혼의 꽃잎에 쓴 예수님의 사랑 이야기를 온 성도들에게 보내고 싶었습니다. 사실 우리 교회는 이렇게 전도가 되어 등록교인 5만여 성도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코로나 상황 중에도 결코 흔들리지 않고 현장예배가 견고하게 회복되어 가는 교회가 된 것이죠. 앞으로도 저는 어떤 상황이 와도 봄보다 먼저 꽃을 만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영혼의 꽃들에게 예수님의 사랑 이야기를 써서 러브레터로 보내겠습니다. 한국교회가 코로나로 인해 상처받고 마음을 닫고 있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소통과 공감의 사랑으로 다가가서 영혼의 꽃을 피웠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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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봄보다 먼저 꽃을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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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코로나의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 당신에게”
-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 것은 너만이 아니다 눈보라가 치고 거센 폭풍이 몰아치는 날 허리가 부러지는 것도 너뿐 아니지 거센 눈보라와 칼바람에 마디마디가 꺾이고 찢겨질 때가 오면 나도 그때 상한 갈대가 되어 강바람에 쓰러지리니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고 그냥 서 있는 것은 죽은 것이 아닌가 너도 나도 살아 있기에 바람에 흔들리며 상한 갈대가 되는 거지. 이는 제가 한 겨울에 갈대밭을 거닐며 쓴 ‘갈대 앞에서’라는 시입니다. 갈대가 되었건 억새가 되었건 푸르른 날 하늘을 향하여 칼을 갈기도 하고, 갈바람에 춤을 추기도 하고, 눈보라 속에서 허리가 꺾이고 백설에 자취를 감춘다 할지라도, 바람에 흔들리며 춤을 추는 모습은 참으로 아름답기만 합니다. 오히려 흔들리지 않는 것들은 죽은 것입니다. 상처 받지 않는 것들도 죽은 것입니다. 전문가들의 예측에 의하면 오미크론 확진자가 하루 60만이 넘는 숫자로 정점을 찍고 이제 조금씩 감소세로 간다고 하지만, 아직도 여전히 20만~30만명이 된다고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직도 여전히 코로나의 바람은 불고 있습니다. 이미 코로나 확진을 받아 치료를 받았다 한들 항체가 100% 형성된다는 보장도 없고, 또 항체가 형성이 되어도 오래 가지는 않는다는 뉴스를 접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는 여전히 코로나의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잘 버텨왔던 사람들 가운데도 어느 날 갑자기 코가 맹맹하고 목이 아프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아닐 거야. 절대로 코로나가 아닐 거야” 그런데 여전히 코가 맹맹하고 목이 아프며 기침까지 해서 자가진단키트로 검사해보니까 두 줄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두 줄 중에 한 줄은 희미하게 나오기 때문에 “이건 코로나가 아닐 거야”하면서 퀴블러 로스가 말한 ‘부정의 단계’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래도 행여나 해서 병원에 가서 신속 항원 검사를 해보니 양성이 나와요. 그래서 다시 퀴블러 로스의 이론대로 ‘분노의 단계’로 들어갑니다. “아니 어떻게 내가 코로나에 걸릴 수 있어! 감히 코로나 바이러스가 나에게 틈타다니! 하나님께서 불담과 불성곽으로 지켜주실 줄로 믿었는데 어떻게 하나님이 나를 안 지켜주실 수 있단 말인가!” 그 분노가 심하게 되면 깊은 우울감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나서 마지막에 ‘수용하는 단계’에 이르기까지 시간이 짧아야 되는데 우울감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우리의 몸 뿐만 아니라 마음까지도 해칩니다. 그래서 제가 코로나로 인하여 치료를 받거나 격리 중에 있는 분들에게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시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시는 분이라고 말입니다.(마12:20) 아니, 오히려 상한 갈대를 일으켜 주시고 꺼져가는 심지에 기름을 공급해 주시고 사랑과 희망의 불꽃을 타오르게 해 주시는 분이라고 말입니다. 물론 코로나에 안 걸리면 더 좋죠. 그러나 그 코로나 때문에 생명이 얼마나 소중하고 건강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닫게 해주는 계기가 되고, 현장예배가 이렇게 소중하고 귀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이 모든 것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이지요. 또 코로나에 걸리지 않았지만 코로나의 바람에 겁이 나고 흔들리고 있는 분도 많으실 겁니다. 그분에게는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죽어 쓰러진 나무는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고 시들어 떨어져버린 꽃잎은 찬이슬이 내려도 떨지 않는 것처럼, 우리도 살아있으니까 겁이 나기도 하고 흔들리게 되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나무도 고난이 나이테를 만들어주고 대나무도 겨울에 혹한의 바람이 마디를 만들어 준다고 하지 않습니까? 특별히 로키산맥의 해발 4,500m 이상에서 혹한의 바람으로 무릎을 꿇는 나무를 가지고 최고의 바이올린을 만든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코로나의 바람에 흔들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코로나의 바람 때문에 우리의 육체가 더 강력하게 되고 생명력이 더 질기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고난의 바람 때문에 우리의 신앙이 더 강인해지고 그 어떠한 혹한의 바람과도 맞설 수 있는 전천후 신앙이 될 겁니다. 코로나로 인하여 격리되어 있는 분들, 그리고 그 바람 때문에 흔들리고 있는 당신을 하나님은 결코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비록 당신이 상한 갈대와 같은 모습이고 꺼져가는 심지의 모습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은 다시 일으켜 세워주시고 불꽃처럼 타오르게 해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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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코로나의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 당신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