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12-12(목)

칼럼
Home >  칼럼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실시간뉴스

실시간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기사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이별이 아름다우면, 아쉬움도 눈물에 씻겨져요”
    저는 원래 지난 수요일 오전에 조선일보 주최로 신라호텔에서 열린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 개막식에 참석하기로 했습니다. 그 자리는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VVIP들만 초청 받은 자리였습니다. 제가 교계 대표로 초청 받았는데 그 행사는 아침 8시까지 입장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오늘의 저와 새에덴교회가 있기까지 가장 큰 사랑과 헌신을 해 주신 문정남 장로님께서 투병 중 의식을 잃은 채 위독해지셨다는 소식을 그 전날 오후에야 들었습니다. 제가 그날 오후까지 예정된 총회일정을 마치고 광주를 가게 되면 밤을 새워 다녀와야 하기 때문에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에 못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만약에 두 곳을 다 다녀와 다음날 일정을 소화한다면 저는 아마 쓰러질지도 모릅니다.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 개막식은 엄청난 자리입니다. 대한민국 정재계, 학계, 문화예술계 최고의 분들만 초청되는 자리입니다. 그래서 저도 참석하고 싶었지만 만일 문 장로님이 돌아가시면 제 가슴에 천추의 한을 담게 될 것입니다. 문 장로님께서는 저희 개척시절 때부터 매주 광주에서 서울로 교회를 오시며 분당 구미동에 땅을 사고 예배당을 지을 때 건축비의 3분의 1 가까이 헌신하셨던 분입니다. 그리고 제가 교회부흥을 위해 밤낮을 모르고 뛸 때 장로님은 제 어린 아들을 데리고 여러나라 해외여행을 시켜주신 분입니다. 마침내 광주로 내려가서 중환자실로 들어가 장로님의 이마에 손을 얹고 기도를 하자 세상에, 한 달 동안이나 의식이 없었던 장로님이 눈을 뜨시고 저를 알아보시는 것입니다. 목에 호스를 꼽아 말은 못하지만 눈물을 비 오듯 쏟으시며 “목사님, 목사님…”을 수십 번을 불러대는 것입니다. 나중에 알았는데 장로님은 의식을 잃기 전까지 저를 그토록 찾고 기다렸다고 합니다. 그러나 장로님 가족들은 제가 총회 사역과 연합기관을 하나로 만드는 사역에 불철주야로 뛰고 있는 것을 너무 잘 알아 제게 연락을 못 하셨다고 합니다. 제가 장로님의 흐르는 눈물을 닦아드리며 복받치는 울음소리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장로님, 늦게 와서 죄송합니다. 이렇게 심하게 아프신지 몰랐습니다. 저를 원망 많이 하셨죠? 지난날 장로님의 헌신과 희생 때문에 오늘의 교회를 이루었고 제가 총회장이 되었으며 지금은 연합기관을 하나로 만들기 위해 밤낮을 모르고 뛰고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장로님. 이제 하나님이 다시 살려주시면 제가 아무리 바빠도 장로님을 모시고 고향인 제주도에서 한 주 동안 함께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제발 일어나주세요.” 그러자 장로님은 눈물을 계속 흘리셨습니다. 저와 함께 간 아들도 엉엉 울어대니까 울지 말라고 고개를 흔드셨습니다. 그리고 아들의 손을 꼭 잡으셨습니다. 제가 하나님께 장로님을 살려달라고 기도하는데도 고개를 흔들어대셨습니다. 이제 빨리 천국에 가고 싶다는 표현을 하신 것입니다. 저는 장로님의 얼굴에 눈물방울을 떨어뜨리고 손으로는 가슴과 얼굴을 만지며 기도를 하였습니다. 이러기를 한 시간, 정말 한 시간 내내 장로님과 저 그리고 김현숙 권사님과 제 아들은 그렇게 눈물을 흘렸습니다. 다음 날 수요일 저녁 미국 FMC(전직연방의원협회) 초청 한미우호증진예배를 드리는 시간에 장로님이 천국으로 가셨다는 문자를 받았습니다. 그 문자를 받고 예배시간 내내 계속 눈물을 참지 못했습니다. 저는 다음 날과 그 다음 날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광주로 가서 상주가 되어 장로님의 빈소를 지켰습니다. 뿐만 아니라, 마지막 발인예배를 드리고 화장장을 거쳐 대전 국립 현충원에서의 안장예배까지 다 인도했습니다. 장례식 일정 내내 이런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아, 내가 그날 밤 장로님께 가기를 너무나 잘했지. 만약에 장로님께 가지 않았다면 한을 가슴에 깊이 품고 살게 되었을 거야. 그러나 그 아름다운 이별의 순간이 있었기에 지난날의 아쉬움과 섭섭함들을 눈물로 씻겨낼 수 있었던 거지. 나는 몰랐지만 그때 장로님은 아셨던 거지. 바로 그 순간이 아름다운 이별의 순간인 줄을...” 사실 저는 장로님이 아프실 때 자주 곁에 있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한국교회의 예배 회복과 연합, 세움을 위한 일 때문에 너무 바빴습니다. 정말 살인적인 스케줄을 다 소화했습니다. 그래도 장로님 입장에서는 섭섭한 마음이 있을 수 있었지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정말 바빴던 저에게 장로님과 아름다운 이별의 순간을 주시고 그 깊은 이별의 순간을 통해서 서로의 섭섭함을 화해로 풀고 모든 아쉬움을 눈물로 씻어버리는 은혜를 주신 것입니다. 그 한 시간의 깊은 기도와 소통은, 하나님의 사역 때문에 분주했던 저에게 하나님이 역설적인 보상으로 주신 최고의 선물이었습니다. “문 장로님, 천국에서 편히 쉬세요. 저는 이번처럼 앞으로도 세상의 화려한 곳보다 저의 위로와 사랑이 필요한 곳으로 달려가는 삶을 살겠습니다.”
    • 칼럼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1-07-0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뼈를 깎고 피를 찍어 원고를 쓰다”
    지난 목요일 총신대에서 총신 교수님들이 개혁 신학적 관점에서, 혹은 개혁신학 중심으로 66권 성경 주석 집필을 시작하는 감사예배를 드렸습니다. 우리 총회의 굵직한 교회들이 후원을 하고 저희 교회에서는 이사야서 주석 작업을 위한 후원을 하기로 했습니다. 제가 총회장의 자격으로 설교를 하였고 이어서 박성규 목사님이 축사를 하셨는데 스위스 신앙고백에 나오는 내용을 인용하면서 하나님 말씀을 세 가지로 설명하였습니다. 첫째는 기록된 성경의 말씀, 둘째는 설교로 선포된 말씀, 셋째는 보이는 성찬의 말씀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설교가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설교자도 믿어야 하고 설교를 듣는 성도들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설교가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이 되려면 설교자가 뼈를 깎고 피를 찍어 설교 원고를 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 가슴에 “뼈를 깎고 피를 찍어 원고를 쓴다”는 표현이 너무 임팩트 있게 다가왔습니다. 저 역시 지금까지 그렇게 설교 원고를 써 왔기 때문입니다. 신학교에 막 입학하였을 때는 너무나 간절히 설교하고 싶어 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목회 내공이 깊어지고 시간이 지날수록 왜 그렇게 설교가 부담이 되고 어려워지는지 모릅니다. 설교가 무엇인가를 알면 알수록 더 두려워지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두려운 영광의 세계 속에 빠져드는 것이지요. 그 두려운 영광을 알기에 설교 한 편, 한 편을 준비할 때마다 고통의 산실을 통과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나만 이렇게 힘들어하는가? 내가 너무 무능해서 그런 것일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 때도 있습니다. 이 고통은 마침내 열등의식으로 다가오기도 하고 우울증으로 변색되기도 하며 여러 가지 콤플렉스적인 심리현상으로 둔갑하기도 합니다. 이런 기나긴 산고 끝에 어렵사리 해산한 한 편의 설교를 가지고 주일 아침에 가슴을 두근거리며 강단에 올라가면 충만히 임재하신 성령의 권능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성도들이 은혜 받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그때부터 제가 먼저 은혜를 받기 시작하지요. 어떤 사람은 마음에 찔림을 받고, 어떤 사람은 고개를 끄떡거리며 아멘하면서 기뻐하고, 그 반짝거리는 눈동자와 영적 생명이 소생하는 모습들을 보노라면 이때야 말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이 온 세상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이 세상 최고의 행복으로 느껴집니다. 이런 의미에서 설교 한 편을 준비하기까지 겪어야 하는 고통의 산실은 곧 영원한 축복의 산실이요, 은총의 산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산실에서 영감을 사모하고 빛을 찾아 몸부림치다가 영광스런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되고 거기서 바로 옥동자와 같은 생명의 설교 한 편이 해산되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스무 대여섯 권의 책을 쓰기까지 뼈를 깎고 피를 찍어 쓰는 마음으로 모든 원고를 제가 직접 손으로 다 썼습니다. 그러다 문서사역 담당자인 선광현 목사님이 오면서부터는 전화로 불러 주어서 컴퓨터 워드 작업을 했습니다. 물론 제가 미리 아우트라인을 메모해서 불러주지요. 그리고 원고가 나오면 그것을 수없이 읽고 고치며 뼈를 깎고 피를 찍는 마음으로 수정합니다. 그러다보면 토요일 밤은 너무 긴장하여 불면과 싸우기도 합니다. 저는 앞으로도 뼈를 깎고 피를 찍어 쓰는 심정으로 설교 원고를 작성 할 것입니다. 언젠가 어느 유명한 가수 분과 식사를 하는데, 그 분은 교회 문화에 익숙지 않으니까 “목사님께서도 기도문을 작성하는데 참 힘드시겠어요.”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사실은 설교문인데 기도문이라고 표현하신 것이죠. 저는 앞으로도 호흡하고 숨쉬는 마지막 날까지, 제 사역이 멈추는 그날까지, 뼈를 깎고 피를 찍는 심정으로 설교문을 쓸 것입니다. 고통의 산실에서 옥동자를 낳는 해산의 고통으로 설교자의 길을 갈 것입니다.
    • 칼럼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1-06-27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우리의 삶에는 하나도 우연이 없습니다”
    지난 화요일 오후 3시에 제58회 목사장로기도회 역사 갈라콘서트 ‘불의 연대기’가 공연 되었습니다. 저는 공연 내내 혹시 실수가 나타나지 않을까 얼마나 긴장을 하며 손에 땀을 쥐고 몸을 흔들며 기도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다가 저도 모르게 제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흐르는 것입니다. 나중에 보니까 저 뿐만 아니라 다른 목사님, 장로님들도 감동을 하여 눈물을 흘리고 계시는 것입니다. 마침내 공연이 끝났을 때, 저는 주체할 수 없는 감동에 가슴이 벅차올라 눈을 감고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 혼자 앉아 있고 주변의 목사님과 장로님들이 다 일어나서 환호성을 지르며 기립박수를 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제야 저도 일어나서 박수를 쳤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제 핸드폰으로 여기저기 문자가 쇄도하는 것입니다. “총회장님, 너무 감격입니다. 총회장님의 한계는 어디까지 입니까? 지금까지 이런 총회장님은 없었습니다.” “이런 목장기도회는 없었습니다. 정말 총회장님의 말씀처럼 음악예술 안에서는 반론이 없고 하나가 된다는 것을 다시 느꼈습니다.” “이번 갈라콘서트 우리 총회뿐만 아니라 한국교회 음악공연의 새장을 여시는 대서사시와 같은 불후의 명작을 남기셨습니다.” 공연이 끝난 후, 후문에 의하면 “그 어떤 설교보다도, 백번의 설교보다도 한 시간의 갈라콘서트가 큰 감동을 주었다. 정말 총회장님 말씀대로 얼마나 총회를 사랑하고 총신을 사랑하는지 그 진심을 예술적 감동으로 보여 주었다”는 이야기가 회자되었다고 합니다. 사실 저는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하고 싶었습니다. 이미 대관도 다 해 놓았는데 코로나 팬데믹이 장기화되면서 도저히 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목장기도회 때 하게 되었습니다. 이마저도 정말 힘들었습니다. 정부와 조율하고 지자체와 소통한다는 게 정말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참석자 전원 코로나19 신속 진단 키트 검사를 하고, 개인별 QR 명찰 배부 및 수시 발열 체크 등 철저하게 방역을 지키면서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하나님의 은혜로 정말 은혜스럽게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공연은 끝났지만 제 머리와 가슴에는 아직도 그 날의 감동의 여운과 환호의 잔상이 계속 맴돌고 있습니다. “아, 어떻게 내가 이런 작품을 기획하여 대본을 쓰고 작사를 할 수 있었는가. 또 어떻게 그 어려운 여건 중에도 공연을 결단하고 추진할 수 있었는가.” 저는 어느새 어린 시절의 회상으로 돌아갔습니다. 저는 수학과목에는 소질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글 쓰고 노래하는 것은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고전읽기도 하고 백일장이 있으면 학교를 대표해서 군 대회에 나가고, 군을 대표해서 도 대회에 나가 상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물론 저는 글쓰기보다 표딱지 따먹기나, 구슬치기 같은 노는 것을 더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큰 형님께서 저를 붙들고 책 읽기를 시키고 글쓰기를 하게 해서 필력을 갖추게 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마을 콩쿠르에 나가 노래를 불러 인기상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우리의 모든 삶의 순간순간은 우연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저를 쓰시려고 어린 시절부터 문화예술적 감성과 소양을 갖추게 하신 것입니다. 또한 위기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일을 추진하는 과감한 결단력과 추진력을 갖게 하려고 백암교회에 가서 뜨거운 영성과 내공을 쌓게 하신 것입니다. 글을 쓰는 지금도 너무 감동 받았다는 문자가 간간히 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 가슴에는 “나의 사랑 합동 총회, 나의 눈물 총신··· 울게 하소서···”의 여운이 감돌고 있습니다. 우리 교단이 ‘불의 연대기’의 노래처럼 더 이상 반목과 분열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고 더욱 더 하나가 되어 비상하고 웅비했으면 좋겠습니다.
    • 칼럼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1-06-06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그리움과 애태움이 메말라가고 있지는 않는지··· ”
    가락동에서 교회를 개척할 때에는 제가 직접 전도를 하였습니다. 그때는 우리 교회를 출석하는 한 사람 한 사람 대부분이 제 손에 의해서 이끌려졌습니다. 그런데 출석교인이 100여명쯤 되었을 때, 지금은 우리 교회 장로님과 권사님이시지만, 당시 김창환 집사와 유추자 집사님이 미국으로 이민을 가게 되었습니다. 아들과 딸까지 데려가니 성도 4명이 교회를 떠나버리는 것입니다. 제가 봉고차로 공항까지 배웅해 주었는데요, 공항에서 헤어질 때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공항에서 교회로 돌아오면서도 눈이 퉁퉁 붓도록 울고 왔습니다. “아, 그들은 꼭 이민을 가야 했을까. 내가 가지 못하도록 더 붙잡고 말릴 걸...” 사실 김창환 집사님 부부는 가락시장에서 장사해서 십일조도 잘하고 봉사와 헌신도 잘했습니다. 그런데 미국으로 먼저 간 형제가 자꾸 미국으로 오라는 바람에 꼬임을 받아 LA로 간 것이거든요. 저는 그들을 떠나보내는 아쉬움 때문에 몇 주일 동안이나 일이 손에 안 잡힐 정도였습니다. 그들이 떠난 지 1년 반쯤 되었을 때 제가 미국에 가서 보니까 사는 형편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김창환 집사님 손을 잡고 울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집사님, 여기서 이렇게 고생하지 말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세요. 한국에 오면 얼마든지 가락시장에서 다시 장사를 시작할 수 있잖아요?” 저의 말에 설득을 당하여 그들은 다시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그 부부가 다시 교회로 돌아왔을 때 얼마나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교인 한 부부가 돌아오는 게 얼마나 가슴이 벅찼는지요. 이런 그리움과 애태움은 코로나로 인하여 저의 가슴 속에 다시 가득하기 시작했습니다. 오죽하면 제가 ‘보랏빛 엽서’라는 노래를 개사해서 불렀겠습니까? “♪ 보랏빛 엽서에 실어온 향기는 목자의 눈물인가 이별의 마음인가... / 오늘도 가버린 성도의 생각에 눈물로 써내려간 얼룩진 일기장엔 / 다시 돌아올 성도 모습 기다리는 목자의 사연” 또 ‘J’라는 노래도 사랑하는 성도를 향한 연가로 개사해 불렀습니다. “J 아름다운 교회 생활이 멀리 사라졌다 해도 / J 나의 사랑은 아직도 변함없는데 / J 난 성도들을 못 잊어 / J 난 성도들을 사랑해...” 그러나 공간대비 20% 예배를 드리는 기간이 너무 오래 되다보니까 이것이 너무 당연시 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이 글을 쓰며 깊은 상념에 잠겨봅니다. “개척교회 시절에 성도 한 명을 보낼 때의 애태움과 그리움이 내게 아직도 남아 있는가. 한 성도를 떠나보내며 성도를 사무치게 그리워하고 애타는 마음이 나도 모르게 메말라가고 있지는 않는가.” 그래서 지난 주 저는 김부겸 국무총리님께 이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총리님, 언제 교회 예배 때문에 확진자가 나온 적이 있습니까? 예배를 통해서는 코로나 감염이 안 되었잖아요. 그러니 어서 빨리 예배가 더 원활하게 회복될 수 있도록 도와 주십시오.” 그래서 언론보도에 나온 것처럼, 김부겸 총리님께서는 “목사님들이 백신을 많이 맞도록 권면해 주십시오. 그러면 7월부터는 예배 제한이 좀 더 풀어지지 않겠습니까?”라는 긍정적인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랬지요. “총리님, 저는 예배 회복을 위해서 이미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맞았습니다. 화이자나 모더나도 맞을 수 있었지만 저는 아스트라제네카를 선택해서 맞았습니다. 이렇게 예배 회복을 위하여 노력하고 있는 저 같은 사람의 열정도 알아주시고 예배 회복 뿐만 아니라 문화예술활동도 회복되도록 도와주십시오.” 그러나 공간 대비 비율 예배 회복의 퍼센트가 높아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목사의 가슴에 성도들을 향한 그리움과 애태움이 메말라가고 있지 않는가하는 것입니다.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쩔 수 없이 집에서 유튜브로 예배에 참여한다 하더라도 교회를 향한 애태움과 그리움이 메말라가서는 안 됩니다. 교회를 나오지 않는 것을 당연시해서는 절대로 안 되지요. 오늘밤은 아무리 하늘을 봐도 구름이 꽉 끼어서 별 하나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저 구름 너머에 별이 반짝이고 있는 것처럼, 비록 코로나의 먹구름이 성도들과 저를 갈라놓고 있다할지라도 저는 지금도 여전히 성도들의 영혼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 영혼이 다시 예배의 감격으로 불태울 그 모습을 상상하고 있습니다.
    • 칼럼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1-05-30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아직껏 총회장 명함을 써 보지 못했습니다”
    예전에 청와대 대통령 관저에 초청을 받아 갈 때였습니다. 한 번은 우리 교회 대외협력국장이신 김문기 장로님과 함께 갔는데, 제가 잠깐 화장실에 다녀온 순간에 김 장로님이 대통령께 자기 명함을 건네주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당장 그 자리에서 김 장로님에게 주의를 줬습니다. “장로님, 이미 장로님의 신상에 대해서 대통령님이 다 보고를 받으셨을 텐데 대통령께 직접 명함을 드리는 게 얼마나 실례인지 아세요?” 그러자 대통령께서 “괜찮습니다. 명함을 주면 어떻습니까?”하면서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시는 것입니다. 관저에서 나온 후에도 여러 차례 김 장로님을 나무랐습니다. “일개 교회의 대회협력국장이 대통령께 직접 명함을 드리다니요. 이런 걸 가리켜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지 모른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저는 총회장이 되고 나서도 아직껏 누구에게도 한 번 명함을 건네주지 못한 것 같습니다. 사실 총회장은 제 자신의 명예이기도 하지만 우리 교회의 영광이기도 합니다. 1만 2천여 교회 가운데 총회장을 배출한 교회는 정말로 드물기 때문이죠. 그것도 무투표로 당선이 되었고 5만 교회 이상의 한교총 대표회장까지 역임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총회장 명함뿐만 아니라 한교총 대표회장의 명함도 누구에게 건네준 기억이 없습니다. 사실 만나는 사람들 대부분이 저를 아는 사람들입니다. 평소에 제 얼굴이 명함이고, 지금까지 닦아놓은 인간관계 속에서 저의 존재 자체가 명함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자랑삼아 명함을 건네줄 수도 있지요. 많은 사람들이 자기 직책을 과시하기 위해서 명함을 건네지 않습니까? 물론 저는 총회장과 한교총 대표회장이 되기 이전에도 명함을 거의 가지고 다니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총회장과 한교총 대표회장이 되었다고 명함을 건네주는 것이 너무 어색하고 부자연스러웠습니다. 저의 삶을 돌아보면 저는 지금까지 성을 쌓는 삶 보다는 길을 내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제가 교단과 교계의 역사를 지켜볼 때, 자기 성을 쌓았던 사람은 다 말로가 좋지 않았습니다. 부끄러운 오욕의 역사만 남긴 채 삶과 명예가 함몰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자기를 헌신하고 희생하여 길을 낸 사람은 찬란한 역사를 남길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 길을 걸어가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까지 절대로 성을 쌓지 않고 길을 내는 삶을 살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우리 교단도 총회 전후로 갈등의 암초들이 숨어 있었지만 그 암초들을 깨거나 덮어버리고 화해와 상생의 길을 닦았습니다. 제 성만 쌓으려고 했다면 남들이 다투고 싸운들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저는 우리 총회와 한국 교계 안에 화합의 길, 협치의 길, 비전의 길을 내고 싶었습니다. 진정한 지도자라면 자기를 희생해서라도 대의와 화합의 길을 열어야지요. 저는 요즘 한국교회 연합기관을 하나로 묶는 일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뛰고 있습니다. 이 역시 공교회를 세우고 공적 교회를 지켜내기 위해서 한 것입니다. 또한 후대를 위한 세움과 새로운 부흥의 길을 열기 위해서 하는 것이죠. 그러나 이 일은 시대적 사명감과 희생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옛날 경부고속도로를 낼 때 얼마나 많은 분들이 논밭을 희생하고 많은 회사도 희생을 했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럴 때 훗날 그 고속도로를 통하여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해택을 받고 꿈을 이루게 되었던가요. 그래서 저 또한 꿈을 꾸며 부지런히 뛰고 있습니다. 저와 우리 교회 성도들의 눈물어린 헌신으로 한국교회 안에 화합과 협치와 세움의 길이 열리는 꿈을 꾸면서 말입니다. 저는 역사 속에 이런 기록을 남기고 싶습니다. “소강석 목사는 자기 성을 쌓는 사람이 아니라 길을 낸 사람이었다고, 새에덴교회는 한국교회 안에 다툼과 분열을 종식시키고 연합과 세움의 길을 낸 교회였다고.”
    • 칼럼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1-05-23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길이 없으면 길을 만들고 벽이 있으면 벽을 타고 오르겠습니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된다. 희망도 처음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다. 희망이 있다고 믿으면 희망이 있고, 희망 같은 것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실제로 희망이 없다.” 위의 글은 고도원의 아침편지 1호에 실린 글입니다. 지난주 화요일에 한국 교계의 초미의 관심사인 총신 재단이사회가 열려서 마침내 재단이사장이 선출되었습니다. 저도 한동안 총신 관계자의 간곡한 부탁을 받고 암묵적 동의를 한 채 총신의 세움과 비전을 잠시 꿈꾸어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첫 이사회를 가보니까 “이건 내가 걸어야 할 길이 아니구나!”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역사적 진실과 대의적 명분을 가지고 찬란하게 사퇴할 것인가를 고심했습니다. 그러다가 저는 제가 십자가를 져야 한다는 몇 사람들에게 깊은 밤에 전화해 눈물을 흘리며 저를 제발 놔 달라고 사정했습니다. 물론 재단이사 후보를 사퇴해도 총회장으로서 총회 전체 여론이나 절대다수의 정서를 읽어야 하고 그것을 대변해야 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저는 “총신은 하나님의 소유이고 총회의 지도와 감독을 받아야 하기에 총회 절대다수의 여론을 감안해야 한다”는 역사에 기록될 발언을 하고 양해를 구한 후 이석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아주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전에도 연합기관을 하나 되게 하기 위하여 물밑에서 여러 관계자들을 많이 만나서 소통을 하였지만, 그 후 더 본격적으로 그 행보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재단이사회가 있었던 그 날 저녁에 만났던 교계 원로 어르신께서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정말 소 총회장이 바른 행보를 했습니다. 그리고 화려한 명분도 얻었습니다. 만약에 소 목사가 그 자리에 연연했다면 연합운동을 하는 데 있어서 발목이 잡히게 될 것이고 자리나 탐하는 사람으로 비추어졌을 것입니다. 비록 총회 절대다수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았지만, 하나님께서는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주실 것입니다. 이제, 소 총회장은 한국교회를 진정으로 하나로 만들고 앞으로도 계속 하나 됨의 지도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그 길이 아닌 바로 이 길을 걸어가세요.” 그런데 사람들을 만나면 만나볼수록 미궁 속에 빠져들어 갔습니다. 진흙탕이 아니라 완전히 수렁 속에 빠져드는 것 같았습니다. 주요 인사들을 만나서 들어보면 도저히 제힘으로는 할 수가 없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그런 고민을 하고 있을 때, 또 다른 분들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복잡해야 하나님이 일을 하십니다. 소 목사님은 그냥 믿음으로 희생하고 헌신하며 이 길을 가면 돼요. 그러면 하나님이 길을 만드시고 분위기를 만드시고 역사하실 것입니다. 하나 되자는 일에는 거의 다 동의를 하고 있기 때문에 그냥 묵묵하게 화합과 희생의 리더십을 발휘하며 그 길을 걸어가 주세요.” 또 어느 교계 기자분은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번에 총신 재단이사회를 대하시는 목사님의 화합의 정신과 대의를 보았습니다. 목사님은 사적 이해관계나 이익을 탐하지 않고 총회 화합과 총신의 비전을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으며 정도를 걷는 대인의 리더십을 보여 주셨습니다. 이것은 우리 기자들이 다 알고 교계 오피니언 리더들 모두 인식하고 있습니다. 목사님은 지금까지도 사적 이해관계를 넘어 교계 공익을 위해서라면 언제든지 양보하고 희생을 해 왔지 않습니까? 그러나 이제부터는 한국교회 연합을 위해서 더 오해를 받고 욕먹을 각오를 하셔야 합니다. 그런 희생과 헌신을 하면 하나님이 반드시 연합을 이루어주실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면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얼마 안 남은 총회장의 임기 동안 총회의 일도 최선을 다하면서 본격적으로 한국교회 연합사역의 길을 가려고 합니다. 코로나 상황 중에도 한국교회가 하나 되지 못하고 원 메시지를 내지 못함으로 인해서 예배가 초토화되는 등 얼마나 혹독한 댓가를 치렀습니까? 이런 참혹한 현실을 보면서도 한국교회가 연합하지 못하고 원 메시지를 내지 못하면 더 이상 희망이 없습니다. 어쩌면 지금이 한국교회 연합을 위한 마지막 골든타임일지도 모릅니다. 앞으로 옥죄어 오는 교회 생태계의 위험이나 반기독교 악법을 막아내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저는 이 일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욕도 먹고 오해도 받겠습니다. 그러나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냥 최선을 다해서 이 길을 걸어갈 뿐입니다. 길이 막혀도 길을 걷다 보면 길이 열릴 것이고, 담이 막고 있으면 담쟁이처럼 가파른 언덕과 벽을 타고 올라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주님이 이끌어주시면 저는 기꺼이 길을 만들고 벽을 오르겠습니다.
    • 칼럼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1-05-16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목사에겐 앓아야 할 병이 있습니다”
    “외롭게 울지 않으면 너도 그저 한 마리의 새에 지나지 않는다 그토록 구슬프게 울지 않으면 너도 그저 여느 한 마리의 새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 울음을 터뜨려 밤을 밝히거라 울음을 터뜨려 아침을 맞이하거라 차라리 밤엔 / 웃는 자보다 우는 자가 복이 있나니 우는 자에게 숨은 별들이 얼굴을 내밀며 총총히 내려오고 울음을 터뜨린 자에게 환희의 불새가 먼 곳에서 숨 가쁘게 날아오나니...” <시집 ‘갈릴리여, 첫사랑의 추억이여’ 중 - 소강석 저> 지난주 수요일 저녁예배 후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밤늦게 서재 창문을 여니 소쩍새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날따라 소쩍새 울음소리가 깊은 의미로 들려왔습니다. 실존주의 문학자인 우나모노 교수는 인간이란 사람이기에 반드시 앓아야 할 병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 병은 영원한 생을 갈구하는 소망이요 진실하기 위해 몸져눕는 병이고 자기실현을 위해 애써 몸부림치는 고통이라는 것입니다. 자기 혼돈 속에서 아파하는 것, 자기 필요와 욕구만을 위해 아파하고 슬퍼하는 것, 자존감과 자괴감 속에서 방황하는 고민 같은 것은 이런 류의 병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이 병은 오직 참과 진리를 위해 혹은 진정한 자기실현을 위해 드리고 영혼을 위해 슬퍼하고 아파하는 것입니다. 진실을 위해 아파하는 모습, 참과 진리를 위해 고통 하는 몸부림, 참된 자아실현과 영원한 삶의 세계를 목말라하며 버둥대는 모습... 이런 것들이 사람이기에 앓아야 할 병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이기에 앓아야 할 병도 있을 것이 아닙니까? 아니, 목사이기에 앓아야 하는 병이 있을 것입니다. 나를 비우고 내안에 그리스도를 채우기 위한 몸부림,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며 살아가려는 삶,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내 생각을 포기하고 내가 싫어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섬기고 포용하고 인정하는 삶, 사일로 이펙트(조직, 집단 이기주의), 자기 공동체의 한계성을 초월하려고 몸부림치는 삶이 아닐까요. 아니, 다른 사람을 위해 아파하고 울며 몸부림치는 것들이 목사이기에 앓아야 할 병일 것입니다. 이 병을 앓지 않으면 욕망의 성이나 자기 편견의 성에 갇혀 살고 신념의 높은 바벨탑을 쌓을 수 있습니다. 남의 부족함을 위해 결코 울고 통곡하는 삶을 살 수가 없습니다. 제 주변에는 총신 재단이사와 관련하여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한 부류는 “소 목사가 총회장으로서 과도기에 재단이사장을 반드시 맡아야 하는데 어떤 경우에도 투표는 하지 말고 합의추대로 가야 합니다”라는 부류와 또 한 부류는 “합의추대가 안 되면 무조건 투표를 통해서라도 재단 이사장이 되어 총신을 살리고 세워야 한다”는 강행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들을 설득해 왔습니다. 투표에서 이긴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제가 어떻게 대립구도에서 총신을 살리고 세울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 날 저녁 소쩍새 울음소리는 저의 가슴 속에 큰 파문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날 밤, 저를 가장 극단적으로 충동하시는 목사님에게 전화를 걸어 간절히 사정을 했습니다. “목사님, 아니, 형님 목사님, 저를 사랑하고 기대하고 응원하는 건 좋지만 이제 저에게 좀 자유를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제가 괴로워 죽을 지경입니다. 이러한 대결구도 상황에서 제가 무엇을 얻으라는 말입니까? 어떻게 총신을 이끌어가고 세울 수 있단 말입니까? 저는 이 일이 아니래도 앞으로 10년 이상을 교단과 한국교회를 섬겨야 할 사람입니다.” 이런 말을 하자 얼마나 눈물이 쏟아져버리는지 저도 모르게 그냥 엉엉 울어버렸습니다. 울음에 막혀 더 이상 말을 하지를 못했습니다. 저의 통곡하는 울음에 그 분도 더 이상 우기지를 못했습니다. 이제는 오히려 다음날부터 그 분이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설득해 주었습니다. 그 덕분에 이튿날 총신재단이사장 후보를 사퇴하는 글을 올렸습니다. 어쩐지 슬픈 마음도 들었고 동시에 몸과 영혼이 얼마나 가볍든지 하늘로 날아가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이미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또 한 번 읽어보며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였습니다. 지금 이글을 쓰는 목요일 밤은 구름 사이사이로 몇 개의 별이 반짝였습니다. 구름사이의 별들처럼 내 양심도 저렇게 반짝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교회 뒷산에서 소쩍새는 밤이 깊은 줄도 모르고 구슬프게 울어대고 있습니다. 나 자신을 위해 아파하는 고통을 넘어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까지 울고 보듬어주는 지도자의 병을 더 앓아야 한다는 시그널로 들립니다. 하긴, 이 소쩍새의 시그널을 받기 전에도 금번 우리 교단 목사장로기도회의 주제를 ‘울게 하소서’라고 정했던 것이지만요. 저는 저 자신에게 이렇게 외쳤습니다. “아, 목사여, 지도자여. 나와 그대가 앓아야 할 때론 슬프고 때론 기쁜 거룩한 병이여!”
    • 칼럼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1-05-09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강물이 되고 싶지 않나요, 바다가 그립기 때문이죠.”
    “내 마음 강물 되어 흐르고 있습니다 멈추라 하여도 흘러야만 합니다 보냄을 아쉬워 않고 돌아옴을 반기지 않고 다시 옴을 그리워하지도 않습니다 (중략) 멈추고 붙잡는 것이 속절없는 것을 흘러야 행복인 줄 알기에 끊임없이 흘러갑니다” 이 노래는 제가 꽤 오래 전에 쓴 시에 작곡을 한 것입니다. 아주 오랜 시절 제가 마음속으로 정말 깊이 존경했던 목사님이 어느 특별한 상황에서 저를 인정해 주지 않고 모른 척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제가 얼마나 큰 상처를 받았는지 모릅니다. 과거 TV문학관이라는 드라마에서 어느 제자가 그토록 스승님을 존경하고 따랐는데 정작 결정적인 순간에 스승이 자신을 인정하지 않고 버렸을 때 탄식하는 장면이 머리에 떠올랐습니다. 세월이 지나 저는 그분의 영정 앞에서 독백으로 물어 보았습니다. “목사님, 왜 그러셨어요? 제가 무엇이 그토록 목사님 마음에 안 드셨나요?” 하룻밤 내내 장례식장에서 밤을 새우면서도 “목사님, 왜 왜 왜...”를 계속 물어 보았습니다. 장례식이 끝나고 마침내 이 가사를 작시하고 노래까지 작곡을 한 것입니다. 저는 마음에 아픔과 상처가 있을 때마다 이 노래를 부르면 그냥 마음이 강물처럼 씻겨가는 것을 느낍니다. “♪내 마음 강물 되어 흐르고 있습니다 / 멈추라 하여도 흘러야만 합니다...” 저는 원래부터 총신 재단이사나 재단이사장에 애착을 갖지 않았습니다. 제가 총회장이지만 총신정상화위원장도 총회장으로 모셨던 분이 하시도록 양보하였고, 위원들도 대부분 그 분의 사람들로 구성을 하였습니다. 저는 이 일보다는 한국교회 연합기관을 하나로 만들고 한국교회 예배회복과 공적사역을 하는데 힘을 쏟았습니다. “총신이야 누가 해도 잘하지 않겠는가” 하는 마음으로 말입니다. 그런데 예상치 않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전 총회장님께서 정 이사에서 탈락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만일의 경우를 대비하기 위해서 이사장 후보로 염두에 두었던 오〇〇목사님까지도 제외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한동안 많이 당황했지만 후에라도 그 분을 정이사로 추천해 보려고 했는데, 여러 얽히고설킨 상황으로 인해 그 뜻을 이루지는 못했습니다. 그래도 저는 전혀 총신 재단이사장 자리에 애착을 두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연합기관의 하나됨과 공적 사역을 하는데 치중을 하였습니다. 더구나 총회 행사들이 조금씩 많아지면서 그 행사에 찾아가서 설교를 하거나 블레싱을 하는 사역도 만만치가 않았습니다. 그러나 총회와 총신의 관계 회복, 총회가 총신을 후원하는 일을 위해서라도, 잠시나마 저더러 총신을 위하여 십자가를 지라는 주문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심지어는 총신 관계자까지도 그런 부탁을 해 왔습니다. 그 분들은 저에게 합의추대를 해 줄 터이니 부디 안 한다는 소리만 하지 말아달라고 거듭거듭 요청해 왔습니다. 그러나 현장에 가보니까 예상과는 달리 너무 대결구도로 가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저와 함께 밖에서 대기 중이던 모 이사님께, 저도 내려 놓을테니 목사님도 내려놓고 총신의 발전을 위해 누가 되든지 합의추대로 가도록 하자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나 저와 생각이 다르자 저는 다음 일정도 있고 해서 부득이 이석을 하였습니다. 이석 후 생각해 보니 안에 계신 이사님들께는 송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후에 제 3의 후보라도 뽑힌 줄 알았는데, 이사장을 뽑지 못하고 산회하였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또한 믿기지 않는 이야기들이 들려왔지만 저는 애써 흐르는 강물이 되고 싶었습니다. “♪미움도 원망도 슬픔도 고통도 고일 길이 없어서 흐르고 흘러가고 있습니다” 강물의 첫 번째 특징은 흐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멈추라 하여도 흘러야 하는 것이죠. 두 번째 특징은 바다를 사모하는 것입니다. 왜 바다를 사모합니까? 바다에는 욕망의 높낮이가 없기 때문입니다. 거기에는 그저 충일함만 넘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강물에게는 하나의 사명이 있습니다. 모든 오물이나 쓰레기를 씻기며 다 바다로 가져가는 것입니다. 지난 수요일 오전예배 때 한 집사님이 대표기도를 하셨는데, 저와 재단이사장과의 관계되는 기도를 하였습니다. 저는 기도가 끝나자 강단에서 “여러분, 앞으로 공적인 자리에서 그런 기도를 하지 말아 주세요”라고 부탁을 하였습니다. 그 기도마저도 어색하고 부담스럽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저는 자리에 연연하지 않을 뿐 아니라, 총회장 임기가 끝난다 할지라도 온 진심을 다해 총신을 사랑하고 섬길 것입니다. 지금의 총신은 섬기고 희생하는 지도력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혹 계속되는 혼란을 막기 위해 또한 저의 희생과 섬김이 필요하다면 어쩔수 없이 댐에 잠시 머물러, 몇 바퀴를 돌다가 다시 바다로 흘러갈 것입니다. 바다로 흐르는 것이 강물의 목표이기 때문이지요.
    • 칼럼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1-05-02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미얀마에는 민주화의 봄, 우리나라엔 화합과 회복의 봄!”
    최근 미얀마 군부 쿠데타로 인하여 800명이 넘는 희생자가 나온 것으로 보도되고 있습니다. 과거 80년대에 우리나라와 미얀마는 비슷하게 민주화운동이 일어났는데 우리나라는 성공을 했고 미얀마는 실패를 하였습니다. 과거에는 미얀마의 승려들이 앞장을 섰는데 지금은 기독교인들이 앞장서고 있다고 합니다. 저도 광주신학교 1학년 시절에 광주민주화운동을 몸으로 겪었기 때문에 희생의 아픔이 얼마나 큰가를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교총에서 일찍이 ‘미얀마에 민주주의의 봄이 오기를 바란다’는 성명서를 내었습니다. 그리고 한교총 사회정책위원장이신 오정호 목사님께서 우리나라에 있는 미얀마 대표들을 불러서 격려를 했습니다. 우리 교회 역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박요셉 목사님을 통해서 우리나라에서 활동하는 미얀마 대표들에게 재정적 지원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미얀마 만 윈 카이 딴 국무총리와 화상전화로 격려하고 기도해 줄 수 없냐고 제안이 왔습니다. 그래서 수요일 오후에 한교총 사무실에 가서 미얀마 국무총리와 화상통화를 했습니다. 물론 그냥 안부전화만 할 수 없어서 미얀마 대표들과 먼저 시간을 갖고 국무총리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고, 한국교회가 무엇을 도와야 하는가에 대한 선 대화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만 윈 카이 딴 총리와화상통화를 하였습니다. “존경하는 만 윈 카이 딴 총리님, 총리님을 화상으로 만나 뵙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특별히 총리님이 하나님을 독실하게 섬긴다는 말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한 형제임을 알고 더 반갑기 그지없습니다. 우리 대한민국도 민주화의 봄이 이루어지기까지는 많은 희생자들이 있었는데, 미얀마에도 민주주의를 위하여 수많은 희생자들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 가슴이 아팠습니다. 특별히 기독교인들이 앞장서고 희생했다는 소식을 접하니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그러나 그런 희생자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고 민주화의 봄이 확실하게 올 것을 믿고 기도합니다. 더 이상 안타까운 희생자들이 나오지 않기를 기도하며 유가족들에게 심심한 위로를 드리고 싶습니다. 한교총에서 미얀마의 민주주의와 평화를 위해서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습니다.” 사실 우리 정부나 미국도 개입하기가 난감한 상황입니다. 왜냐면 자칫 군부가 중국편에 서 버리면 더 큰 혼란에 빠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계 여러 나라들이 애매하게 대처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토록 안타까운 희생자들이 계속 나오고 있는데 한국교회가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한국교회는 당연히 미얀마의 민주주의를 지원해야 하고, 더 이상 희생자가 나오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서 제가 지금까지 닦아놓은 여러 국제적 네트워크와 인맥을 통해서 미얀마의 민주주의와 평화를 위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결코 정파적이거나 이념에 치우치면 안 됩니다. 물론 신앙에도 보수가 있고 진보가 있습니다. 여기서 진보는 종북좌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성경적 가치, 진리를 지키는 데는 당연히 보수여야 하고 유물론적 공산주의를 배격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사회적 약자, 그늘지고 소외된 이들을 섬기며 민주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진보적일 수 있지요. 교회가 정파적이고 좌우이념에 치우쳐서는 안 되지만 그래도 사람이 사람답게 살고, 사람으로서 누려야 할 정상적 인권을 갖도록 하는 데는 앞장서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정치적인 마인드가 아닌, 우리나라의 경제회복과 분열된 국론통합을 위해서 삼성 이재용 부회장과 전직 대통령들의 사면을 위해서도 노력할 것을 한교총 이사회에서 논의한 적이 있습니다. 부디 미얀마뿐만 아니라 우리 대한민국에도 코로나가 물러나고 예배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문화예술 모든 영역에 봄이 오기를 기도합니다.
    • 칼럼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1-04-25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우리 함께 꽃밭 여행자가 되어요”
    ‘사막에 숲이 있다’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방송작가이자 독립프로덕션 허브넷 대표인 이미애 작가가 쓴 책입니다. 죽음의 사막에 나무를 심어 생명의 숲으로 만든 인위쩐의 기적 같은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그녀의 이야기는 2006년 식목일, KBS1TV ‘수요기획’에서 ‘숲으로 가는 길’이라는 제목으로 방영되기도 했습니다. 인위쩐이라는 여인이 1985년 바이완샹과 결혼하였는데, 인위쩐의 아버지는 죽음의 땅, 중국의 마오우쓰 사막에 그녀를 내려놓고 가 버렸습니다. 그녀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사막이라 돌아가는 길도 알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남편 바이완샹의 순한 눈을 보고 차마 떠날 수가 없어서 정착을 하게 됩니다. 대신 그녀는 바이완샹에게 사막을 사람 사는 곳으로 만들자고 제안하고 친척이 준 양 한 마리를 팔아 나무 600그루를 사서 심기 시작합니다. 정말 누가 보면 말도 안 되는 바보 같은 행동이었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은 묵묵히 한 그루, 한 그루 나무를 심기 시작하였고, 어느덧 20여 년의 세월이 지나 사막 1400만 평을 온갖 나무와 채소가 자라는 믿을 수 없는 생명과 기적의 땅으로 만든 것입니다. 이미애 작가가 인워쩐의 이야기를 듣고 감동을 받아 직접 책을 쓰고 다큐멘터리로 방송 제작까지 하면서 우리나라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인위쩐도 대단하지만 이걸 연구해서 책으로 엮고 다큐로 제작까지 한 이미애 작가도 참 대단한 분이시죠. 저는 이 책을 몰랐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우연히 이 책을 알게 되어서 송구한 마음과 기대감이 겹쳐 단숨에 다 읽어버렸습니다. 문장 하나 하나가 그림처럼 펼쳐졌고, 인위쩐의 이야기가 제 앞에 영화처럼 한 장면 한 장면 펼쳐졌습니다. 저 역시 ‘사막으로 간 꽃밭 여행자’라는 시집을 낸 적이 있는데, 그 책에 보면 이런 내용의 시가 있습니다. 꽃밭을 여행했으면 사막으로 가라 사막을 다녀왔으면 다시 꽃밭으로 가라 꽃밭의 향기를 사막에 날리고 사막의 침묵을 꽃밭에 퍼뜨리라 꽃밭에는 사막의 별이 뜨고 사막에는 꽃밭의 꽃잎이 날리리니 그런데 저도 예장합동 총회장, 한교총 대표회장으로서 사막으로 간 꽃밭 여행자가 되어 공교회와 공적 사역을 위해 열심히 일을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바쁘기만 하였지 아무 흔적도 없이 다람쥐 쳇바퀴 도는 것만 같아 허전함을 느낄 때도 있었습니다. 높은 탑을 쌓든지 넓은 도로를 내든지 해야 하는데 눈에 보이는 일을 아무 것도 하지 못한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러나 보이지는 않지만 한국교회와 민족의 광야에 꽃씨를 심고 나무를 심는 사역을 해 왔습니다. 어쩌다 고향에 가면 어린 시절에는 거의 벌거숭이산이었지만 지금은 울창한 무덤산이 된 것을 보며 느끼는 일이 있습니다. 어린 시절 벌거숭이산에 식목일마다 나무를 심었는데 그때 심은 나무가 지금은 울창한 숲을 이루었거든요. 저 역시 인위쩐처럼 오늘도 사막에 나무를 심고 꽃씨를 심고 있습니다. 총회장, 한교총 대표회장이 끝나도 저는 계속 이 일을 할 것입니다. 십 수 년 전부터, 이슬람, 동성애, 종교인과세 문제를 대처하고, 한국교회 연합과 생태계 보호사역을 위해서 눈물로 씨를 뿌려왔습니다. 저는 이념적 세계관을 가지고 공적 사역을 해 온 것이 아니라 순수한 신앙적 가치와 신념을 가지고 이런 일을 해 왔습니다. 그래서 부족하지만 이 정도라도 한국교회를 지키고 건강한 사회를 보호할 수 있었다고 스스로 위무를 받기도 합니다. 코로나 이후에는 한국교회 예배 회복을 위해서 애간장이 타도록 전면에서 활동을 하였습니다. 성가대 회복을 비롯하여 좀 더 온전한 예배 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던 중, 제4차 대유행이 오고 있어 또 다시 잠 못 이루고 있습니다만. 그래도 저는 절절포(절대로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의 정신으로 사막에 꽃씨를 뿌릴 것입니다. 저의 시처럼 사막으로 간 꽃밭 여행자가 되어 방역에 힘쓰고 안전한 예배운동을 위해 앞장설 것입니다. 우리가 함께 사막으로 간 꽃밭여행자가 되어 꽃씨를 뿌리면 코로나19와 반달리즘이 쓸고 간 폐허 속에 예배 회복뿐만 아니라 문화예술 모든 영역에 다시 새 풀이 돋고 꽃이 피어나게 되지 않을까요?
    • 칼럼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1-04-18
비밀번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