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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성령의 페르소나가 되고 싶다
    지난주는 무척이나 바빴습니다. 광주에서 있었던 전국장로회 모임에서 설교를 하고 대구에 가서 영남협의회에서 설교를 하고 또 대전에서는 전국호남협의회 설교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금요일은 글로벌 에듀 신년하례회에서 설교를 하였습니다. 각기 다른 곳이지만 같은 설교를 하면 안 됩니다. 왜냐면 중복해서 참석한 분도 계시고 또 기자들이 오기 때문에 재탕 설교를 한다고 할까 봐서이기 때문이죠. 그런데 목요일에 대전 유성에서 설교를 했는데 많은 분들이 은혜를 받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또 축사나 격려사를 하러 오신 분들이 대놓고 저의 설교를 막 극찬해주셨습니다. 특히 강태구 목사님은 매주 저의 설교를 듣는데 “소 목사님이 논리적이고 법리적 설교를 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 성도들이 은혜를 받고 눈물 흐르는 모습을 보면 자기도 가슴에서 눈물이 젖어온다”는 것입니다. 왜 그런가 봤더니, “소 목사님의 설교에 진심이 있다”는 것입니다. 진심과 진심이 통하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지요. 순간 저는 성령의 페르소나로서의 설교자상이 생각났습니다. 이것은 얼마 전에 칼빈대학교 설교학 교수인 김덕현 목사님이 발표한 논문이기도 한데요, 그는 설교자의 상을 세 가지로 나눴습니다. 첫 번째는 명제적 설교자상입니다. 이 설교 형식은 본문에서 추출한 신학적 명제 혹은 중심 사상을 기반으로 작성된 설교입니다. 이 설교는 전통적일 뿐 아니라, 굉장히 논리적이고 권위주의적입니다. 거의 전통적인 설교가 이렇다고 봐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설교의 단점은 성경의 의도보다는 설교자의 의지와 사상이 앞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설교자의 권위에 무게를 실을 수가 있습니다. 두 번째는 서사 중심적 설교자상이 있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이야기설교를 말하는 것인데요. 이 설교는 신학적 명제나 교리적 내용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것에 집중하지 않습니다. 어떻게든지 본문의 의도를 이야기나 스토리 중심으로 전달하려고 합니다. 한마디로 이야기꾼 설교자죠. 성경은 원래 이야기였습니다. 그런데 이게 압축된 문장으로 기록된 것이죠. 그러므로 오늘날 설교자는 성경에 숨어 있는 이야기를 끌어내서 회중에게 스토리텔링을 잘해야 합니다. 이것은 명제적 설교보다는 진일보하고 청중과 더 소통이 되는 설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도 한동안은 이야기 설교에 심취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야기 설교에 대한 강의도 많이 하고 다녔습니다. 세 번째로 김덕현 교수님은 성령의 페르소나의 설교자상을 논했습니다. 제가 쓰는 용어에 의하면 극화적 설교라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트리니티신학교에서 조직신학을 가르치는 벤후저 교수는 설교를 ‘거룩한 극장에서의 거룩한 공연’, 혹은 ‘교리의 드라마’로 표현을 하기도 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설교도 거룩한 공연의 차원으로 이야기를 하는 거죠. 그러기 위해서 설교자는 하나님, 곧 성령의 페르소나가 돼야 됩니다. 영화에서 작가나 감독은 영화에 등장인물로 출연하지는 않지만, 청중에게 표현하고 싶은 감독의 의도를 주연 배우를 통해서 드러나도록 하지 않습니까? 예컨대 봉준호 감독의 의도를 송강호라고 하는 배우가 잘 연기한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연기는 그냥 되는 게 아닙니다. 그 작가와 감독이 의도하는 바에 진실한 감정과 전심을 담아야 제대로 연기가 가능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전달하고 표현하는 성령의 페르소나가 되기를 원합니다. 한때는 이러한 설교를 제가 광대설교라고 표현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광대라는 말이 별로 그렇게 좋은 어감이 되지 않아서 극화적설교라고 표현한 거죠. 그러니까 성령의 페르소나 역할을 잘하기 위해서는 먼저 설교자가 성경 말씀을 전심으로 연구해야 됩니다. 그리고 그 성경에 나타난 이야기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희로애락의 감정을 잘 표현하고 전달해야 됩니다. 옛날에는 성언운반 일념의 사상이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만 전하면 된다고 했습니다. 틀린 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하려면 성경 속에 숨어 있는 하나님의 감정도 함께 수반이 돼야 됩니다. 아마 강태구 목사님이 제 설교에 “진심이 있다.”는 말은 전문적인 용어로 제가 성령의 페르소나로서의 설교자의 모습을 보였주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도 저는 필요에 따라 명제적 설교도 하고, 때로는 이야기 설교도 하지만,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성령의 페르소나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인격적으로 전하는 설교자가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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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4-01-21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설산에 가서, 설산이 되다
    지난 화요일 저녁에 야간산행을 했습니다. 저는 머리가 복잡할 때나 아니면 모든 일을 다 끝내고 나면 산행을 합니다. 그날은 다음 날 있을 수요설교, 그리고 금요 철야기도와 다음주 주일설교까지 다 준비를 하고 아주 홀가분한 마음으로 산으로 향하였습니다. 그런데 산 초입에 누군가가 눈사람을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눈이 조금 녹아 흐른 것 같아서 제가 머리 부분에 눈을 덮어서 쓰다듬어 놨습니다. 표정도 미소 짓는 모습으로 단장시켜 놨습니다. 그리고 산행을 시작하였습니다. 산 초입에는 여러 발자국이 있었습니다. 그 발자국마저도 눈이 쌓여 희미하게 덮여져 있었지만 산으로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점점 발자국이 없어졌습니다. 나중에는 정말 발자국 하나 없는 산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저는 설산이 너무 좋아서 끝없이 걷고 싶었습니다. 배가 고파서 더 이상 걸을 힘이 없으면 눈밭에 그대로 눕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순간, 얼마 전에 읽었던 문정희 시인의 ‘설산에 가서’라는 시가 생각이 났습니다. “소리 내지 말고 / 눈물 흘리지 말고 / 한 사흘만 설산처럼 눕고 싶다 / 걸어온 길 / 돌아보지 말고 / 걸어갈 길 / 생각할 것도 없이 / 무릎 꿇을 것도 없이 / 흰 옷 입고 흰 눈썹으로 / 이렇게 가도 되는 거냐고 / 이대로 숨 쉬어도 되는 거냐고 / 이렇게 사랑해도 되는 거냐고 / 물을 것도 없이 / 눈빛 속에 나를 널어 두고 싶다 / 한 사흘만 / 설산이 되고 싶다.” 저는 정말 설산이 되고 싶었습니다. 저는 실제로 눈밭에 가면 너무 좋아서 눕기도 하고 저수지 얼음 위에 가면 얼음 위에서도 막 누워버립니다. 그 자체가 동심 천국이 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발자국 하나 없는 평평한 눈밭에 가서 누워 있으려고 하는데, 동행하던 유송근 장로님이 “목사님, 내일 수요일인데 너무 많이 걸으면 예배에 지장이 됩니다.” 하면서 손을 잡고 자꾸 내려가자고 하시는 것입니다. 사실 저는 무덤이 있는 곳으로 더 향하고 싶었습니다. 거기에도 누구의 발자국도 찍혀있지 않을 것 같아서요. 그런데 유 장로님이 더 이상 가지 말자고 하도 사정을 해서 그냥 내려왔습니다. 산에서 내려오면서 너무 아쉬운 마음을 가지니까 제 마음에 마침내 눈이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제 마음이 설산이 된 것입니다. 제가 눈밭에 누울 것도 없고 제 마음 자체가 설산이 된 것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설산을 내려왔는데 세상에 그 사이에 산 초입에 있었던 눈사람을 누군가 발로 차서 부서뜨려 버린 것입니다. “도대체 누가 그랬을까? 어떤 억한 심정으로 발로 차서 부서뜨렸을까? 눈사람이 그냥 녹아 흘러내리는 것도 안타까운데 어떻게 발로 차서 눈사람을 망가뜨린단 말인가.” 너무 마음이 안타까웠습니다. “아, 세상에는 눈사람을 만든 사람도 있지만 무너뜨리는 사람도 있구나. 도대체 눈사람을 무너뜨리는 사람은 어떠한 마음일까? 과연, 그 마음에 설산이 있는 사람인가, 없는 사람인가...” 박살 난 눈사람의 모습을 보면서 저는 제 마음 안에 다시 눈사람 하나를 만들어 보았습니다. 언제나 하얗게 미소 짓고 있는 모습으로요. 그러면서 마음속으로 주님께 이렇게 속삭여 봤습니다. “주님, 사흘이 아니라 언제나 이처럼 백야 같은 세상이 되면 좋겠습니다. 달빛 하나 없어도 온 땅이 하얀 세계가 되는 세상, 눈사람을 발로 차서 엎어버린 사람도 설산을 그리워하고 갈망하는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실수로 눈사람을 부서뜨렸던 사람도 그 마음 안에 눈사람 하나를 만드는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한 사흘이 아니라 평생 눈사람 같은 사람, 설산 같은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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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4-01-1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후회함 없이, 물러섬 없이, 아낌없이”
    드디어 우리는 새해 첫 주를 맞이하였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성도들은 송구영신 예배를 드려서 새해 첫날을 주님과 함께하였습니다. 그런데 주일로는 우리가 첫 주를 맞는 것입니다. 누구나 할 것 없이 새해 첫날을 맞을 때는 설렙니다. 그것도 성도라면 첫 주일이 더 설레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저는 새해를 앞두고는 엄청난 부담감이 들어옵니다. 그것은 35년간 해왔던 송구영신 예배와 신년축복성회 때문입니다. 보통 대부분의 교회는 0시에 한 번 예배를 드리거나 아니면 밤 10시 정도에 미리 예배드리고 끝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성도들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하는 교회도 있습니다. 저도 얼마든지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교회는 송구영신 예배와 신년축복성회가 새에덴의 브랜드가 되었고, 저의 목회의 거의 절대적인 가치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송구영신 예배를 한 번 드리니까 본당에 접이의자를 놓고, 빈 통로까지 앉아야 하고, 비전홀과 교육관까지 넘쳐서 성도들에게 불편을 주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몇 년 전부터 송구영신 예배를 1부, 2부로 나누어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1부 예배부터 꽉꽉 차는 걸 보면서 성도들을 배려하기 위해 앞으로는 3부로 나누어서 드려야 하나 그런 고민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물론 송구영신 예배로만 끝나면 또 얼마나 좋겠습니까? 신년축복성회 설교를 적어도 7편, 8편을 준비해야 합니다. 똑같은 성경 내용이지만 어떻게 새롭게 접근하고 옷을 입혀서 성도들의 마음에 어프로치를 할 수 있는가, 이런 창의적 설교를 준비한다는 게 보통 힘든 게 아닙니다. 신년축복성회 뿐입니까? 그게 끝나고 나면 당장 장년여름수련회 설교에 대한 부담이 오는 것입니다. 이게 우리 교회를 지탱해 주는 큰 두 기둥이지만요.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 그렇게 힘들게 하지 말고 외부강사를 초청하면 되잖아요!" 그러나 그러기에는 너무 멀리 와버렸고, 어색한 집회가 될 것입니다. 저는 이미 새에덴의 린치핀(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존재)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지난 연말은 너무 바빴습니다. 왜냐하면 한꺼번에 ‘뉴트로 전략, 핵 처치’, ‘너라는 계절이 내게 왔다’라는 두 권의 책을 냈습니다. 그리고 북콘서트까지 했습니다. 이런 와중에 총 9편의 설교를 준비한다는 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저는 또 욕심이 많아가지고 원고를 작성하면 넘쳐서 흐릅니다. 그러니까 원고를 줄이고 짧게 전하려고 하니까 수정작업이 또 필요한 것입니다. 요즘 현대인은 시간이 길어지면 자칫 지루할 수 있잖아요. 그래서 원고를 줄이고 줄이며 계속 수정하였습니다. 게다가 두 번의 송구영신 예배 때 제가 개인적으로 안수기도해 준 사람만 수천 명이 넘을 것입니다. 또 예배 중간중간에 특별기도 받으러 온 사람들 수십 명을 위해 기도해 주고 강단에 올라가면 진짜 마지막 날은 심장이 뻐근하고 현기증이 팍 돌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여러 설교를 했는데 머릿속에 사라지지 않는 제목이 하나 있습니다. 그게 바로 “후회함 없이, 물러섬 없이, 아낌없이”라는 제목입니다. 영신예배 설교 제목인데, 선교사 윌리엄 보든의 말이기도 합니다. 그는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지만 그래도 선교지에서 후회함 없이 물러서지 않고 아낌없이 자신의 인생을 바치겠다고 했습니다. 그런 짧은 인생을 살면서도 그런 말을 했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었지 않습니까? 이게 지금도 계속 머릿속에 맴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많은 기회를 주셨다면 우리도 후회 없이, 물러섬 없이, 아낌없이 살면 좋겠습니다. 저도 생명이 있고 건강이 있는 한 후회 없이, 물러섬 없이, 아낌없이 새에덴의 린치핀이 되어 송구영신 예배와 신년축복성회, 장년여름수련회를 끝까지 이어나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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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4-01-07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나만의 유레카, 파이팅”
    저는 34년 동안 한 번도 안 빠뜨리고 신년축복성회를 해왔습니다. 초창기에 신년축복성회를 하는데 저의 의욕감이 얼마나 불탔는지 모릅니다. 더구나 어떤 분이 말씀에 은혜를 받고 천만 원을 헌금하신 것입니다. 그때 돈 천만 원이면 지금 우리 교회로서 10억이 넘는 큰 헌신입니다. 그렇게 말씀의 은혜와 헌신의 역사가 일어나면서 처음에는 열정과 패기와 의욕감으로 시작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묵직한 집회가 된 것입니다. 어느새 장년여름수련회와 더불어서 우리 교회의 문화가 되고 기둥이 된 거죠. 그런데 오래 하다 보니까 점점 부담감이 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끔 두 가지 마음이 생겼습니다. “내가 꼭 이렇게 해야 되는가. 외부강사를 모셔서 얼마든지 할 수 있는데...” 그런데 그러기에는 너무 멀리 와버렸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문화를 바꾸기에는 너무 어설프고 어울리지 않는 시기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제가 모든 집회를 인도하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런데 은혜인 것은 신년축복성회 전에는 몸살이 와도 신년축복성회 때는 몸살이 나아 버린 것입니다. 안면마비도 신년축복성회가 끝나고 왔습니다. 몇 년 전 장년여름수련회 때 신장결석이 왔지만 마약진통주사를 맞으면서까지 고통을 이겨내고 제가 집회를 끝까지 마쳤습니다. 앞으로도 제가 어떻게, 언제까지 직접 인도할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가 없습니다. 인간이 장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5년 후가 마지막일지 10년 후가 마지막일지, 누구도 장담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끝까지 할 것입니다. 올 연말은 왜 그렇게 바빴는지 모릅니다. 저는 현 총회장도 아니고 연합기관 대표회장도 아니었는데 그렇게 바쁠 수가 없었습니다. 특별히 이번에는 연말에 두 권의 책을 냈지 않습니까? ‘뉴트로 전략, 핵처치’라는 미래목회 전략서와 ‘너라는 계절이 내게 왔다’라는 감성 시집을 냈습니다. 감사하게도 교보문고 시집 부문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며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연말 교역자정책수련회를 하고 그 와중에도 신년축복성회 말씀을 다 준비했습니다. 말씀을 준비하면서 제 스스로 “유레카!”를 외친 것입니다. 유레카는 고대 수학자인 아르키메데스가 부력의 원리를 깨닫고 난 후에 했던 외침인데요, 저는 말씀을 준비하면서 “유레카!”를 외쳤습니다. 그런데 고민은 차량 임차 문제도 있고 해서 설교 분량을 어떻게 압축해서 짧게 할 것인가입니다. 원고를 줄이고 줄이고 또 줄이는 노력을 했습니다. 그런데 원고를 줄이려고 읽고 또 읽으면서도 계속 “유레카!”를 외친 것입니다. “아, 내가 이런 설교를 준비하다니...” 늘 우리가 읽고 알고 배우는 말씀이지만 새삼스럽게 말씀을 준비하고 정리하다 보니까 “유레카!”의 탄성이 저절로 터져 나왔습니다. 이번 송구영신예배와 신년축복성회에도 우리 성도들에게 유레카가 터지고 유레카의 탄성을 자아내는 집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성도 여러분, 한 주간 방학했다 생각하시고, 또 교육받고 훈련받는다 생각하시고, 아프지도 말고 꼬박꼬박 참석하시기 바랍니다. 무슨 일이 생기지 않도록 제가 기도하겠습니다. 대신 여러분들은 방심하고 아무 사람이나 만나러 다니고 분주한 모임을 갖다가 독감이나 코로나에 걸리지 않길 바랍니다. 여러분 모두 꼭 참석해 보세요. 새해에는 새로운 태양이 뜨고 여러분의 삶을 새롭게 하는 유레카의 은혜, 유레카의 축복이 임하도록 기도하겠습니다. “새에덴 성도들이여, 나만의 유레카 파이팅! GO 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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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3-12-31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예수님 사랑, 나라 사랑
    언제부터 그랬는지는 몰라도, 저는 저에게 은혜를 베풀어 줬던 사람들을 잊지 않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어쩌면 이것은 하나님이 저에게 주신 성품인지도 모릅니다. 지금까지도 역대 대통령들이 보내온 선물을 한 번도 뜯어본 적이 없습니다. 제가 올챙이 시절에 은혜를 베풀어주신 분들에게 다 보내드렸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나름 품격 있는 삶을 살아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보은(報恩)이란 한 개인의 품격을 나타내주기 때문이죠. 그런데 우리 교회는 해마다 6월이 되면 해외에서 한국전 참전용사들을 초청해 왔습니다. 비행기 표와 숙박비 일체를 우리 교회가 담당하며 5박 6일 동안 섬겼습니다. 또한 국내 참전용사들도 우리 교회로 모셔서 식사 대접을 하고 금일봉을 드렸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교회는 국가의 품격을 높이는 교회로 쓰임 받아 왔습니다. 보은(報恩)이 한 개인의 품격이라면 보훈(報勳)은 한 국가의 품격을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선진국일수록 보훈정신과 문화가 함양되어 있습니다. 미국의 보훈청이나 보훈병원에서는 새에덴교회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입니다. 우리 교회의 초청을 받고 다녀간 참전용사들이 하도 입소문을 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가 미국에 가서 참전용사 초청행사를 할 때는 그 지역의 보훈병원을 꼭 방문하고 오거든요. 이러한 보훈 사역의 공적을 평가받아서 2015년에는 제가 개인 자격으로 보훈문화상을 받았고, 이번에는 우리 교회가 단체로 받게 되었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목사로서 보훈문화상을 받은 사람도 최초이지만, 교회가 단체상을 받은 것도 최초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더구나 제가 개인상을 받았을 때는 보훈처장의 이름으로 받았지만, 이번에는 보훈부로 승격이 되어 보훈부 장관 이름으로 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물론 매경미디어그룹 회장과 함께 공동으로 주는 상이지만요. 박민식 보훈부 장관님과 장대환 매경미디어그룹 회장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해마다 참전용사 초청행사를 위하여 헌신해 주시고 기도해 주신 성도들께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참전용사 초청행사 준비위원들, 특히 김종대 장로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 장로님은 후두암에 걸려서 행사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 중에도 이메일을 사용하여 지금까지 행사를 섬겨 오셨습니다. 저는 이런 수상소감을 하였습니다.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와 평화를 위해서 피와 땀과 눈물을 쏟으며 희생하신 애국선열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우리는 오늘의 경제 번영과 자유를 누리며 살아갈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런 보훈 의식을 가지고 한국교회 최초로 참전용사 초청행사를 시작하여 17년간 해 왔으며, 보훈 정신을 고양하는 다큐멘터리 제작과 캠페인을 선도해 왔습니다. 저희 새에덴교회는 정말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섬겨왔는데, 국가보훈부에서 보훈문화상 단체상이라는 큰 상을 주셔서 너무나 감사하고 영광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앞으로도 보훈문화를 선양하고 확산시키는 일에 더욱 앞장서겠습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지금까지 물심양면으로 함께해 주신 새에덴교회 성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행사가 끝나고 나니 수상을 축하해 주는 듯 하얀 눈발이 날리고 있었습니다. 17년 동안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묵묵하게 저와 함께 참전용사 초청행사를 섬겨준 새에덴 성도들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애국이라고 하는 것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행동으로 실천하고 삶으로 보여줘야 합니다. 애국은 이념 논리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순수한 애국은 편 가르기에 앞서 보훈 사상을 높이고 실천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이념적 애국보다는 성경적 애국, 예수님의 가치관과 세계관에 의한 애국이 절실하다고 봅니다. 그래서 옛날에는 예수 믿는 것이 곧 나라를 사랑하는 것이고, 나라를 사랑하는 것은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가르쳤지 않습니까?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을 사랑해서 나라를 사랑하고, 나라를 사랑하니까 예수님을 사랑하는 새에덴교회가 되고 성도가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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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3-12-2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너라는 계절
    저는 제 생애 처음으로 북콘서트를 해보았습니다. 사실 북콘서트를 많이 다녀본 경험도 없고, 또 저도 처음이라 많은 부담을 가졌습니다. 물론 제가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샘터사 사장님께서 저의 시집 원고를 받아 보시더니 “목사님, 이번 시집이 너무 좋습니다. 이번에는 북콘서트도 하고 베스트셀러에 오를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때 제가 샘터사 사장님께 북콘서트를 하겠다고 약속을 드리고 제 생애 처음으로 북콘서트를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저의 ‘스펙을 넘어 스토리를 만들라’라는 책이 중국어 번역본으로 출판되었을 때, 감사예배를 드린 기억이 납니다. 그렇지만 그때는 북콘서트가 아니었죠. 그런데 저의 13번째 시집 ‘너라는 계절이 내게 왔다’ 북콘서트를 기획하는데 너무나 부담이 되는 것입니다. 왜냐면 시기가 연말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연말에 얼마나 많은 미팅과 약속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더더욱 심적인 부담이 많았습니다. 그날 당일도 오전부터 몇 개 일정을 마치고 차에서 도시락을 먹고 도착을 하니까 저보다 손님들이 먼저 와 계셨습니다. 제가 현장을 점검할 시간도 없이 북콘서트가 시작되었습니다. 에츠하임 앙상블의 연주부터 시작해서 저의 소개 영상까지 너무나 아름답게 잘 준비가 된 것입니다. 특별히 북콘서트 사회를 맡은 이동준, 차유주 아나운서의 진행이 너무나 세련되고 품격이 있었고, 성수현, 김예령 집사님, 기연호 장로님, 박승혁 목사님, 이경희 전도사님으로 이어지는 시낭독이 너무나 시의 향기를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또한 제갈수영 집사님이 작곡한 노래들을 뮤지컬 배우 박은석, 테너 박주옥 교수, 소프라노 임경애 교수가 너무나 멋지게 잘 불러주었고 바이올리니스트 김이슬 집사님, 지휘자 이종진 집사님 부부의 축하 연주도 환상적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이 시대 최고의 문학평론가 김종회 교수님과 정호승 시인님께서 저와 함께 시인 토크를 진행해 주신 것이 큰 영광이었습니다. 김종회 교수님께서는 저의 시집 해설에서 ‘춘풍추우(春風秋雨)의 시적 형상’이라는 글을 통해서 “인간과 자연,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마음을 종교적 언어가 아닌 시의 은유와 함축, 낯설게 하기를 통해서 그려 내었다”고 서평해 주셨습니다. 정호승 시인님께서는 “소강석 목사님의 시집을 통해서 봄, 여름, 가을, 겨울만 있는 줄 알았는데 또 하나의 계절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너라는 계절’입니다. 제가 알고 있는 한 목회자 시인은 문익환, 고진하 목사님 정도로 알고 있는데, 소강석 목사님께서 시 창작활동을 하시는 것은 너무나 값지고 아름다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라는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또한 문화일보 선임기자이신 장재선 시인님께서 객석토크로 함께 해 주셨는데 이런 귀한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요즘처럼 말이 거칠어진 시대에 이토록 아름다운 사계의 서정과 말의 품격을 가진 시집이 나온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모릅니다. 사실 신앙과 예술의 영역이 함께 조화를 이룬다는 것은 쉽지가 않습니다. 왜냐면 신앙의 진정성과 언어 예술의 탁월함을 가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소강석 목사님의 북콘서트는 그 가능성을 보여주는 시간이었습니다. 앞으로 꼭 소강석 목사님께서 그런 시의 지평을 열어주시기를 기대합니다.” 저는 북콘서트 현장에 있으면서 내내 그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지금까지 난 하나님밖에 모르고 하나님의 영광만을 앞세우며 걸어왔는데 내가 이런 예술적 호사를 누려도 되나...” 그러면서 마지막 청중 질문 시간에 나온 “인간에게 왜 시는 필요하고, 목사님께 시는 어떤 의미인가요?”라는 질문이 생각이 났습니다. 저는 이런 대답을 하였습니다. “제가 얼마나 분주한 사람입니까? 또 저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 사이에 둘러싸여 있습니까? 그런데 시를 쓰는 순간만큼은 저만의 케렌시아 같은 공간이 되고 창의적 슈필라움을 이루게 됩니다. 저는 한 편의 시를 쓸 때마다 다시 태어나고 새로운 자아를 보는 것 같아 너무 행복합니다.” 북콘서트 모든 순서들마다 진심 어린 환호와 박수가 쏟아지며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저는 우리 새에덴교회 장로님들과 성도님들이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부족하지만, 지금까지 담임목사의 의중을 누구보다 잘 알아주고 무조건 기도해주고 지지해 주었던 장로님들과 성도님들의 얼굴 하나하나가 눈송이처럼 스쳐 지나갔습니다. 특히 최소한의 초청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많은 분들이 와서 자리가 부족해 뒤에서 모니터로 본 성도님들을 생각하면 너무나 죄송하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이번 시집에 실린 ‘겨울5’의 마지막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별 하나 뜨지 않은 / 밤하늘에 / 별 하나 떠 있다면 / 그건 아마 / 내 가슴 속에 들어와 잠든 / 너의 이름이겠지 / 사람들은 보지 못해도 / 내 눈에만 보이는 / 너의 얼굴이겠지.” 저는 앞으로도 사계뿐만 아니라 너라고 하는 계절을 만들면서 계속해서 빚진 자의 마음으로 성도들을 섬기며 또 부지런한 창작활동을 지속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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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3-12-17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아쉽지만 후회하지 않습니다
    제가 잘 알고 오랜 지기로 존경해 온 목사님이 계십니다. 그 분은 주중에는 대부분 기도원에서 말씀을 묵상하시고 영적 수련을 깊이 하시는 내면적 영성이 가득한 분이십니다. 저는 그 분을 생각하고 뵐 때마다 부러운 마음이 가득합니다. 저 역시 태생적으로 외향적인 면도 있지만 의외로 사색하며 홀로 있기를 좋아할 때도 있거든요. 그래서 신학교 다닐 때는 여러 사람과 잘 어울리기도 했지만, 시간만 나면 무등산 기도원에 올라가서 혼자 무릎 꿇고 기도하며 내면적 영성을 수련하였습니다. 특별히 백암교회를 개척할 때는 발이 닳아지도록 헐몬수양관을 다니며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신학교에 다닐 때 수도원적 영성이나 수도사들의 삶에 대한 책들을 즐겨 읽었습니다. 그러다가 정 권사님을 만났습니다. 정 권사님은 대중적 구원운동을 일으키는 분이라기보다 수도원적 영성, 내면적 영성에 몰입을 했던 분입니다. 그러면서도 성령운동, 은사운동을 했던 분입니다. 그러니까 저도 정 권사님의 영향을 안 받을 수가 없지요. 정 권사님을 만날 때 늘 어둠을 씻고, 빼고, 항상 빛을 마시고 빛을 쐬는 영적 수련을 많이 했죠. 하마터면 저도 수도원적 영성가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기독교 역사를 보면 크게 두 부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수도원 중심의 신비 혹은 경건의 영성입니다. 또 하나는 대중 구원의 역사를 이루는 교회 운동이었습니다. 한 사람의 영혼도 중요하지만, 다수가 구원받고 다수가 부흥 운동에 동참하는 계보를 이루어왔지요. 저는 신학교 시절 이 두 사이를 왔다 갔다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저는 조용기 목사님과 여러 선진 목사님들의 영향을 받아서 대중 구원과 대중 목회를 지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한동안은 저도 교회 성장 지상제일주의에 빠져 있었습니다. 40대 중반까지는 여기에 함몰이 되어서 내 교회만 성장하면 되고 내 교회만 부흥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여기까지만 해도 죽기 살기로 뛰어왔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공적사역에 눈이 뜨여지게 되고 연합사역에도 눈이 뜨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교회 부흥과 더불어서 이쪽 사역도 같이 하게 된 것입니다. 교회부흥과 공적사역의 두 날개를 펴고 달려온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도 저는 끊임없는 창작활동을 하고 저술활동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지난번에 ‘뉴트로 전략, 핵처치’라는 책을 썼고 바로 이어서 ‘너라는 계절이 내게 왔다’라는 시집을 썼습니다. 제가 앞서 언급했던 그 목사님을 만나서 “목사님, 저는 목사님이 너무 부럽습니다”라고 했더니, 그분이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소 목사님은 앞장서는 사람이고 우리는 뒤를 따라가는 사람이지 않습니까? 그러니 소 목사님의 어깨가 무겁고 더 힘든 사역이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저는 그 말씀에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사실 오늘 저녁에도 ‘CBS와 함께 하는 출산돌봄 2주년 감사예배’를 드리는데 조용히 드릴 줄 알았더니, CBS 방송국에서 판을 크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너무 주요한 분들이 외빈으로 많이 오시거든요. 물론 이 또한 한국교회와 이 시대를 울리는 공적사역의 시그널이라고 할 수 있지만 제 마음은 부담이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양 날개를 펴고 대내외 사역을 하다 보니 참 힘들고 부담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아쉬움은 있어도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저대로의 삶의 비밀이 있습니다. 저는 이동하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달리는 차 안에서 성경을 보고 묵상을 하며 설교 메모를 하고 설교를 불러줍니다. 분주한 삶 속에서도 내 마음 안에 외딴방 하나를 만들어 놓고 혼자 사유하고 상념의 시간을 갖습니다. 그리고 주님과 나만 소통하는 사닥다리가 연결된 골방이 있습니다. 산속은 아니지만 저는 저만의 골방에서 주님이 주신 안경을 쓰고 사회와 시대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스스로 외로워하며 고독해하며 외딴방에 있을 때, 창의적 사고가 생기게 되고 한 권의 책을 읽으면 3권, 4권의 책을 쓸 수 있을 정도로 하나님이 적용적 지혜를 주십니다. 그리고 어느 문장 하나를 보든지 그 한 문장을 통해서 한 편의 글이 나오고, 또 흰 구름과 푸른 숲과 흐르는 물을 바라보면 창의적 시의 언어들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저도 목회 은퇴를 하면 저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으리라고 기대합니다. 그러나 오늘도 부족하지만, 퍼스트 리더로서의 삶이 좀 버겁고 힘들다 할지라도 내 마음 안의 외딴방, 내 마음 안의 골방으로 인해 내면과 영성을 관리하며 삽니다. 때때로 아쉬움은 있지만 결코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외딴방 하나와 골방이 저의 삶과 사역을 지탱해 주고, 아니 창의적 공간으로 저를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너라는 계절이 제게 안 올 수가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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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3-12-10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너라는 계절이 내게 왔다
    저는 지난주 목요일 황순원문학촌을 방문했습니다. 김종회 황순원문학촌 촌장님께서 여러 가지를 설명해 주시는데 제가 이런 질문을 해 보았습니다. “교수님, 제가 국문과나 문창과를 전공했으면 어떻게 됐을까요?” 그랬더니 김종회 교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어쩌면 목사님께서 그런 전공을 하셨으면 그 틀에 갇혀 있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목사님은 문학을 전공하지 않았기에 더 폭넓은 문학적 잠재력과 가능성, 암시의 진폭이 커지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 말씀을 들으니, 저의 어린 시절이 생각났습니다. 저는 지리산 자락 아래 한 학년에 두 반밖에 없는 시골학교에서 자랐습니다. 대부분 담임선생님이 교대 출신이 아니라 양성소 출신이어서 글쓰기나 웅변을 배워본 적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글쓰기대회를 나가거나 웅변대회를 나가면 상을 받았습니다. 제 안에는 천부적으로 마음속의 연필이 있고, 마이크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 이후로도 꾸준하게 시를 썼습니다. 그러다가 1994년 월간 문예사조로 시인 등단을 하였고, 윤동주문학상, 천상병문학대상을 수상하면서 중견시인으로 자리매김을 할 수 있었습니다. 처음 쓴 시를 보면 그것도 나름 제 시의 순수 문학적 가치가 있다고는 하지만, 너무 너저분하고 불필요한 서사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 시집을 불태워버리고 싶지만 그러나 그것도 제 시의 역사고 발전 과정의 하나라고 할 수 있죠. 그런데 이번에 ‘너라는 계절이 내게 왔다’라는 13번째 시집을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은 누구나 다 시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시가 얼마나 전문성이 있냐의 차이일 뿐이지 사랑하는 사람은 다 시를 쓰고 있는 중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시는 사랑이고 사랑은 시이기 때문입니다. 저 또한 시를 쓰는 순간만큼은 봄, 여름, 가을, 겨울 어느 계절이든 사랑의 계절을 걷고 있음을 느낍니다. 꽃이 피고 바람이 불고 소나기가 내리고 낙엽이 지고 하얀 폭설이 내리는 날이라도, 그 모든 계절은 사랑으로 물듭니다. 그래서 이번 시집의 제목을 ‘너라는 계절이 내게 왔다’라고 정하였습니다. 어렵고 난해한 시 보다는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감성시들을 써 보고 싶었습니다. 한 줄 한 줄 사람과 자연,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마음을 담아 순수한 고백의 언어를 남겨보고 싶었습니다. 독자들의 마음에 봄날의 꽃이 되고 여름날의 소나기가 되고 가을날의 낙엽이 되고 겨울의 눈송이가 되어 닿았으면 좋겠습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꽃이 필 때도 있고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릴 때도 있습니다. 아니, 언젠가는 낙엽이 되어 떨어지고 폭설에 갇혀 길을 잃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랑하는 이와 함께 한다면 그 모든 날들이 상처의 계절이 아닌 사랑의 계절이 되어 감싸주리라 믿습니다. 단 한 사람이라도 제 시집을 읽고 슬픔과 절망, 상처를 딛고 다시 사랑과 희망의 마음을 찾을 수 있다면 너무 행복할 듯합니다. 아무리 세상이 힘들고 추운 바람이 분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서로를 아껴주고 사랑으로 감싸준다면 우리의 계절은 언제나 찬란한 빛으로 가득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이 시대 최고의 평론가인 김종희 교수님께서 성도들 앞에서 이런 말씀을 해 주시는 것입니다. “소강석 목사님은 윤동주, 정호승, 나태주, 이해인 계열의 감성 시인이십니다. 흔히 말하는 전형적인 한국교회 목회자의 시의 계보에서 벗어나서 새로운 문학의 지평을 여시는 시집을 쓰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소 목사님은 대중적 호소력과 전파력을 가지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정말 과분한 시 해설에 몸 둘 바를 모를 정도였습니다. 황순원 선생님이 6.25 전쟁 중에 ‘소나기’라는 소설을 쓴 것은 전쟁 중에도 없어서는 안 될 순수한 인간의 서정과 사랑 이야기를 쓰고 싶으셨던 것처럼 저의 시집 ‘너라는 계절이 내게 왔다’라는 시집도 겨울왕국과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계절을 선물로 주고 또 사랑의 계절을 가슴 속에 전달해 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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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3-12-03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내 생의 마지막까지 기도의 사명을“
    저는 지난 11월 16일 목요일에 모교인 광신대에 가서 ‘해원(故 정규오 목사님) 17주기 기념 예배’에서 설교를 하였습니다. 사실 그 날은 수능 시험 날이기 때문에 광주에 내려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친구인 한기승 목사님이 내려오라고 하고 스승이신 故 정규오 목사님의 사상과 정신을 기념하는 행사이기 때문에 내려갔습니다. 저는 그냥 설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제가 총회장 시절 총회 역사를 주제로 갈라콘서트를 했던 ‘불의 연대기’ 중 정규오 목사님과 관련된 부분을 편집하여 보여주며 말씀을 전했습니다. ‘불의 연대기’는 제가 105회 총회장 시절 각본을 쓰고, 총감독을 하여 목사장로기도회 때 공연했던 작품입니다. 이를 두고 일부에서는 역사를 왜곡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있었습니다만 그런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51인 신앙동지회에 대한 역사적 팩트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51인 신앙동지회(회장 정규오 목사님)가 있었기에 당시 좌경화된 신학을 바로 잡을 수 있었고, WCC를 반대했으며 故 박형룡 박사님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었습니다. 실제로 박형룡 목사님의 아들인 박아론 박사님께서 「나의 아버지 박형룡」이라는 책에서 아버지께서 가장 큰 도움을 받았던 분이 정규오 목사님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정통 보수 신학의 횃불을 들도록 가장 가까운 곳에서 도와준 분이 바로 정규오 목사님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정규오 목사님도 교단 분립이라는 오점을 남겼지만, 그는 공식적으로 회개하고 다시 하나됨의 기치를 들었던 분입니다. 자신의 오점과 과오를 공개적으로 사과하고 회개할 수 있는 분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칼빈의 제자 베자의 이야기처럼 ‘비방하기는 쉬우나 본받기는 어려운 법’입니다. 그 분의 사과와 회개로 저도 합동 총회의 일원이 되었고 105회 총회장까지 역임을 하였습니다. 그분의 지고지순한 신학적 사상과 신앙을 추모하는 마음으로 내려가서 극화적 설교를 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당일 오후 2시에 정읍 내장산에서 글로벌 에듀 이사들과 임원들이 모이기로 했습니다. 잠시라도 들렀다가 오려고 했는데 갑자기 비가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이 괜히 심란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원래는 내장산 안까지 차를 갖고 가서 케이블도 한번 타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자꾸 떠오르는 것이 있었습니다. 집사람이 교회에서 열리고 있는 수능 현장 기도회 모습을 동영상으로 계속 찍어서 보내주었기 때문입니다. 그걸 보고, 제가 늦게라도 가서 수능생들을 위해 기도해야 되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내장산 모임에는 양해를 구하고 바로 올라가기로 했습니다. 물론 차 안에서도 기도 할 수 있고 내장산에서도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조금이라도 빨리 가서 기도에 동참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냥 올라오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비가 내리니깐 차가 막혀서 교회에 도착하니 5시가 되었습니다. 대부분 다 기도를 마치고 돌아가고 마지막 제2 외국어 시험 시간인데 그래도 그 기도에 참여를 했습니다. 저는 글로벌 에듀 이사장이기 이전에 새에덴교회 담임목사입니다. 그래서 저는 수능생 자녀들을 위해 기도하기 위해 빗속을 뚫고 달려왔던 것입니다. 저는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다른 어떤 모임이나 일보다도 새에덴교회 담임목사로서 성도들과 우리 자녀들을 위해 기도하는 자리를 지킬 것입니다. 아니, 내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기도의 사명을 감당할 것입니다. 그 자리가 바로 저의 자리이고, 가장 가슴 설레는 자리이고, 한 점의 부끄러움 없이 눈을 감을 수 있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늦가을의 스산한 가을비가 내리는 오후였지만 제 가슴만큼은 다시 한번 목양과 기도의 사명으로 뜨겁게 타올랐던 어느 멋진 가을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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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3-11-19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11월의 가을 단상
    지난 목요일 점심에 몇 분의 목사님과 장로님들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제가 그 기관의 회장은 아니지만 어느 기관의 정기총회 일로 저를 찾아와 의논을 한 자리였습니다. 그런데 그들 모두가 입을 모아 저에게 위로의 말씀을 건네주는 것입니다. “소 총회장님, 요즘 얼마나 힘드세요. 과거에 소 총회장님이 배려하고 베풀어 주었음에도 그 은혜를 모르는 사람들의 모습을 다 보고 있을 텐데요. 어쩌면 소 목사님의 영향력이 여전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는 손사래를 쳤습니다. “아닙니다. 누가 저에게도 문자 메시지를 보내주고 전화도 했지만, 전혀 일말의 관심도 없습니다. 그 뒤로는 전화도 안 받고 그런 문자도 보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런 일에 신경 쓸 여지도 없고 어떻게 하면 우리 교회와 한국교회를 세울 것인가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아직도 한국교회는 코로나의 상흔이 있고 후유증이 있는데 이 상흔과 후유증의 안개를 뚫고 어떻게 교회의 새로운 영토를 확장해 나갈 것인가. 어떻게 한국교회를 세우는 데 도움이 될까 고민하며 ‘뉴트로 전략, 핵처치(사도행전적 원형교회)’라는 책을 쓰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도대체 언제 그런 책을 쓰셨습니까? 어떻게 그렇게 빨리 책을 쓸 수가 있습니까?” “저는 원래 아침형이 아니라 저녁형이어서 날밤을 새워서 책을 썼지요.” 이런 덕담을 나누면서 식사를 같이했습니다. 그들을 교회 정문까지 배웅해드리고 나서 잠시 거리를 걸었습니다. 얼마 안 남은 가로수의 나뭇잎들이 하나하나 떨어져 내렸습니다. 문득 이런 시상이 떠올랐습니다. “가을나무 한 그루 / 차가운 바람에 떨어지는 나뭇잎들을 / 어떻게든 붙잡으려고 / 애타는 얼굴로 / 팔을 휘젓고 서 있다 / 햇빛 쏟아지는 / 거리에서 / 바닥에 떨어진 / 나뭇잎들과의 추억을 떠올리며 / 하나 하나 / 이름을 부르고 있다.” 제가 부총회장에서 총회장으로 올라가려고 할 때 어떤 분이 집요하게 반대를 하였습니다. “어떻게 개혁측 출신이 그렇게 쉽게 총회장을 하느냐. 좀 어렵게 총회장을 만들어야 되겠다”는 생각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제가 그분이 어느 노회 소속인가 알아봤더니, 파악한 바에 의하면 21 당회도 갖추지 못한 미조직 노회라는 것입니다. 교회 실사위원회를 맡았던 분이 저에게 그걸 알려줘서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원칙적으로는 총회에 나올 수도 없고 총대 자격도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어찌어찌해서 제가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다는 걸 그분이 알고 먼저 총회에 고소했던 것부터 취하하고 부랴부랴 저의 접견실로 찾아와서 이렇게 말을 하는 것입니다. “사실은 어떤 분이 소 총회장님이 너무 잘나가고 쉽게 총회장이 되는 거 같아 곤경을 선물로 줘야 된다고, 그래야 소 총회장이 날뛰지 않고 겸손하게 될 거라고 저를 뒤에서 컨트롤을 했습니다. 어쩌면 자격지심일지도 모르죠.” 그러면서 녹음된 통화 내용을 저한테 들려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당장 책상을 치면서 호통을 쳤습니다. “선배님, 도대체 나이를 어디로 먹었습니까? 왜 이렇게 나이답지 않은 행동을 하십니까? 그런 걸 들려준다고 제가 들을 사람입니까? 그런 일로 왔으면 어서 가십시오. 저는 그런 거 개의치도 않습니다.” 그러면서 그분에게 교통비까지 줘서 보냈습니다. 지금도 그렇게 행동했던 저를 생각하면 스스로 대견스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저를 수행하는 유송근 장로님이 전철역까지 그분을 태워다 드렸는데 그분이 차 안에서 들려주더라면서 유 장로님이 그 내용을 저에게 보고하겠다는 것입니다. 제가 장로님께 그랬지요. “장로님, 저한테 보고하지 마세요. 저도 사람인지라 그런 얘기 들으면 편견이 생길 수 있습니다. 장로님, 편견과 선입견이라는 게 얼마나 무서운 줄 아십니까? 그 편견과 선입견이 잘못 표현되면 꼴불견이 된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난 꼴불견이 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때 유 장로님이 오히려 저한테 감동받았던 모습이 지금도 기억납니다. 저도 그때를 생각하면 “아, 내가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었는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생각을 하며 떨어진 낙엽을 밟는데 지난 여름 푸르른 나뭇잎들과의 추억이 떠올랐습니다. 그렇게 무성하고 푸르렀던 나뭇잎도 결국 가을이 되니까 떨어지잖아요. 그래서 제가 떨어지는 낙엽 하나하나의 이름을 부르며 격려를 해주었습니다. 어찌 낙엽뿐이겠습니까? 지금까지 저와 관계했던 사람들, 얽히고설켰던 사람들의 이름이 떠올랐습니다. 그 사람들의 이름을 한 사람, 한 사람씩 생각하며 축복을 하였습니다. 저를 정말로 사랑하고 존경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저에 대해서 편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이름까지도 생각하며 축복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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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3-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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