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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레드와 그린 사이에 있지만···
    지난 수요일 우리 교회 김미화 집사님이 개소한 하은상담소에 심방을 갔습니다. 김미화 집사님은 ‘내 마음의 별똥별’이라는 책의 저자이기도 한데요. 4년간 우리 교회 상담실에서도 봉사를 했고 학교에서 아동 상담교사로 근무를 하신 분입니다. 가서 예배를 드리고 축복 기도를 해 주었는데, 김미화 집사님께서 갑자기 “CPTI라고 하는 비채컬러 성격 유형 검사가 있는데 검사 좀 받아보고 싶지 않으시냐”는 것입니다. “받아보면 뻔할 텐데요. 시간이 얼마나 걸립니까?” 그랬더니 얼마 안 걸린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검사지를 받고 체크를 했습니다. 검사하는 시간 보다 해설하는 시간이 더 많이 소요되더라고요. 비채컬러, 성격 유형 검사는 색깔을 통해서 성격을 나타내는 것인데, MBTI의 축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검사 결과가 어떻게 나왔는가 하면, 레드(빨간색)가 64점으로 제일 많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린(초록색)이 56점으로 두 번째로 나왔습니다. 레드는 적극적이며 진취적이고 실행력을 갖고 활기차며 자신의 감정에 솔직할 뿐만 아니라 통솔력과 결단력으로 리더십을 발휘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개방적이고 외향적이며, 현실감이 높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역작용으로 나타나는 부분이 있습니다. 충동적이며 단순한 감정을 드러낼 수 있고 상황에 따라서 남의 말을 듣지 않고 자기중심적일 수도 있습니다. 지나치게 솔직하여 상대방에게 불편을 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으로 많이 나온 색깔이 그린이었습니다. 그린의 특징은 모범적이며 원칙에 공정하고 책임감과 충성심이 높은 성격을 가진 사람입니다. 주변과의 균형과 조화를 추구하며 배려심과 관대함으로 인정을 받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린이 반대급부로 나타날 때는 이따금씩 인색하거나 냉담하며 관망의 성향을 갖고 보수적일 뿐만 아니라 감정을 억압하여 잘 드러내지 않는 특징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김미화 집사님에 의하면 제가 검사지에 체크를 하는 모습이나 태도, 중얼거리는 모습을 볼 때 타고난 기질은 오히려 그린이라는 것입니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기질은 그린이라고 볼 수 있는데, 삶의 환경과 상황이 레드를 만들어 냈다고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그린이 선천적으로 타고난 기질이고 레드는 후천적으로 길러진 성격이라는 것이죠. 그런데 기복의 차이가 큰 사람도 많이 있는데 저 같은 경우는 다른 색깔도 거의 원만하게 나온 것입니다. 엘로우(노란색)도 54점, 퍼플(자주색)도 54점이 나왔습니다. 뿐만 아니라 블루(청색)도 50점이 나왔습니다. 다 거기서 거기입니다. 레드가 주도적이긴 하지만 다 비슷하게 나온 것입니다. 엘로우는 명랑하고 낙관적이고 호기심이 강하며 관찰력이 높습니다. 사교적으로 수용하며 친절하고 희망과 기대로 변화를 지향하는 사람입니다. 퍼플은 창의적이며 상상력이 풍부하고 천성적으로 높은 직관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독창적 사고와 예술적 재능을 보입니다. 우아하고 고상한 품위로 격을 높이는 사람입니다. 엘로우와 퍼플은 같고 가장 적게 나온 게 블루였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큰 차이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제 성격은 주도적이긴 하지만 모나지 않고 또 충돌하지 않으며 원만한 성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해심과 배려심도 많고 창의적이며 상상력이 풍부합니다. 또 높은 직관력도 갖고 있습니다. 대체로 검사 결과에 저는 동의를 했습니다. 나름 성실하게 기록을 한 결과라고 믿어졌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저 자신을 돌아보고 성찰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어떤 색깔이 좋고 나쁘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좋은 것이 있는가 하면 나쁜 것이 있으니까요. 가령 보라색에서 창의적이고 상상력이 풍부하며 천성적으로 높은 직관력을 갖는 반면에 현실 도피 내지는 개인적인 우울감과 교만함을 갖게 할 수 있는 것이니까요. 블루 같은 경우는 안정적이며 신뢰감을 갖고 인내심이 깊고 강한 의지력이 있지만, 반면에 엄격한 자신이 부동의 상태를 만들고 비사교적이며 내향적 관계의 도피를 갖게 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나름 제 자신을 돌아보는 데 유익하였지만 더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러한 성격과 기질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성격과 기질이 성령에 의해서 다스림을 받고 통제를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의 소신이기도 하지만 일찍이 팀 라헤이가 ‘성령과 기질’이라는 책을 통해서 그런 주장을 한 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기질과 성격이 아무리 좋아도 그것이 성령의 지배를 받지 않고, 성령의 다스림을 받지 못한다면 얼마든지 부정적 감정으로 표출되고 행위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저는 레드와 그린 사이에 있고, 또 다른 색깔도 대부분 원만한 균형을 이룬다고 하지만, 성령의 지배를 받고 다스림을 받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달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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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3-11-05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아무 일도 없었던 어느 가을날
    한 달 전쯤 신델라 교수님으로부터 연락을 받았습니다. 국립극장에서 본인이 단독 공연을 하는데 저를 특별히 VVIP로 초청을 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공연 중에 제가 작사한 노래 ‘주님 없이는 살 수가 없습니다’를 하면서 저를 소개해 주겠다는 것입니다. 공연장에는 교계 방송에 관계된 분들, 그리고 교계 주요 인사들이 초청되었을 뿐만 아니라 믿지 않는 사람이 3분의 2가 넘을 정도인데 이런 자리에서 목사님 딱 한 분만 소개를 해 드리는 것은 자신에게도 영광이라고 하면서 말이죠. 그래서 제가 기꺼이 가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 교회 프라미스 청소년 오케스트라가 그날 같은 시간에 포은아트홀에서 공연을 하기게 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만약 제가 새에덴교회 프라미스 청소년 오케스트라 공연을 가지 않고 딴 곳으로 갔다고 하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섭섭해 하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마음은 신델라 공연 쪽으로 향했습니다. 그분이 어떤 분입니까? 서울대 음대를 수석으로 입학하고 수석으로 졸업하셨습니다. 그리고 이태리 국립 음악원인 산타체칠리아를 최단기 코스로 마치고 졸업을 한 후, 유명 팝페라가수로 활동을 하신 분입니다. 그래서 저는 당일 점심까지 고민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결국 새에덴교회 담임목사로서 프라미스 청소년 오케스트라 공연 쪽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집사람이 대신해서 우리 교회 총여선교회 회장이신 김옥경 권사님과 함께 그쪽으로 간 것입니다. 포은아트홀에서 진행된 청소년 오케스트라도 얼마나 연습을 많이 했는지 정말 공연을 잘했습니다. 그리고 정중앙 VIP석에서 바라보니까 아이들도 아이지만, 김연정 집사님의 지휘하는 뒷모습이 너무 품격 있고 우아하게 보였습니다. 이윽고 공연이 끝나자, 제가 집사람에게 어땠느냐고 전화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집사람 입에서 감탄이 나오는 것입니다. “공연이 너무 훌륭하고 품격 있고 감동이 되었습니다. 목사님이 이곳에 와서 공연을 봤으면 집회를 하고 설교를 하는데 많은 영감과 지혜와 착상을 얻었을 것입니다. 대중가요 콘서트와는 또 다른 격과 결이 있고 감동이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신델라 교수님께서 저희 집사람을 일어나라고 해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소 목사님께서 꼭 오시려고 했는데 다른 일이 있어서 사모님이 대신 오셨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 작사를 소 목사님이 하셨습니다. 소 목사님 대신 사모님께 박수를 쳐 주세요.” 그 많은 사람들 중에 유일하게 저희 집사람만 소개를 하며 따뜻하게 맞아 주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넓은 공연장이 단 한 자리도 비지 않고 꽉 채워져 있었는데, 후문에 의하면 신델라 교수께서 가장 좋은 자리에 직접 앉아보고 그 중에서 제일 좋은 자리를 저와 집사람에게 내어 줬다는 것입니다. 나중에 몇 몇 교계 인사들이 저한테 전화가 왔습니다. “목사님, 무슨 일이 그렇게 바빠서 못 오셨습니까? 오셨으면 완전히 목사님 자리가 될 뻔 했습니다.” 그날은 정말 많은 아쉬움이 있는 날이고 또 대견스러운 날이기도 했습니다. 제가 청소년 오케스트라 공연에 갔다는 건 담임목사로서 대견스러운 일이고, 또 신델라 교수 공연에 가지 못했다는 것은 아쉬운 일이죠. 그래서 그런지 저는 다음날 다른 교회 집회를 갔는데, 그만 모르고 설교 원고를 안 가져가 버렸습니다. 물론 원고 없이 얼마든지 설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원고가 있어야 든든한 마음이 생겼습니다. 혹시라도 실수하지 말아야 할 텐데... 그래서 비서실에 그 원고를 찾아서 인터넷으로 보내라 했습니다. 일어나보니 꿈이었습니다. 물론 다음날은 제가 다른 교회 집회에도 가지 않고 우리 교회에서 설교하지도 않았습니다. 오전 예배 때도 외부 강사가 오셨고, 저녁예배 때도 외부 강사가 오셨습니다. 저는 혹시 무슨 일이 있을까 했지만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두 분이 오셔서 다 은혜를 끼쳤습니다. 두 분을 모두 베드로 동상까지 배웅했습니다. 그때 교회 직원이 가로수의 낙엽을 쓸고 있는 것을 봤습니다. 제가 그분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어르신, 그 낙엽 안 쓸어내셔도 됩니다. 어차피 오늘 쓸어봤자 내일 또 떨어질 거 아닙니까? 그리고 지나가는 분들이 낙엽 밟는 낭만도 있어야지요.” 저녁까지 아무리 돌아봐도 아무 일도 없었던 어느 가을날이었습니다. 저는 그냥 조그마한 일이라도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아직 쓸지 않은 낙엽을 밟으며 길을 걸어보았습니다. 그토록 아쉬웠던 마음과 대견했던 마음이 잘 융합이 되었는지 그날은 그저 낙엽을 밟는 일 외에는 아무 일도 없었던 하루였습니다. 그 일 외에도 연말이 다가오고 할 일이 많아서 그런지 이따금씩 꿈속에서 뭔가 강박 같은 것을 느끼곤 합니다. 새 시집을 탈고하고 또 한 권의 책을 준비하고 있어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만, 잠에서 깨고 나면 아무 일도 없는 나날이 계속됩니다. 부디 성도들의 가을도 행복했으면 좋겠고, 아무 일 없이 좋은 소식만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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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3-10-29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생명은 그 자체로 존귀한 것입니다”
    지난주에 CBS가 주최한 순천 전도 부흥회를 다녀오는 길에 순천만 갈대숲을 갔다 왔습니다. 문득 제가 쓴 ‘꽃으로 만나 갈대로 헤어지다’라는 시 구절이 생각이 났습니다. “우린 꽃으로 만나 갈대로 헤어지나니 / 풀잎으로 만나 낙엽 되어 이별하나니 / 산은 눈을 감고 / 강물은 귀를 막고 / 달은 소리 없이 걷고 있나니 / 새 한 마리 울어 청산이 울리고 / 꽃송이 하나로 봄이 오고 / 별 하나 떠서 온 밤이 환해지나니 / 바람이 스쳐가는 갈대 사이로 / 내가 서 있어요 / 갈대로 헤어진 우리 / 다시 꽃으로 만날 순 없을까.” 지금은 은갈색의 갈대꽃이 춤을 추고 있는 계절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아름다운 은갈색 꽃으로 만났지만 이제 12월이 되고 혹한의 겨울 추위가 오면 갈대들이 부러지고 상하게 될 것입니다. 더더구나 폭설이 내리면 그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서 모두가 다 쓰러져버리고 아쉽게 헤어지고 말 것입니다. 그렇지만 다시 또 봄이 되면 그 속에서 다시 싹이 나고 또 여름이 되면 푸른 잎사귀가 돋고 가을이 되면 은갈색의 꽃이 피잖아요. 이런 걸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모든 생명은 존귀하다는 사실을 생각합니다. 가을 들판에서 바람에 몸을 흔들고 있는 억새도, 산기슭의 구절초도, 어두운 구석에서 울고 있는 귀뚜라미도 하나님의 창조 안에서 존귀한 생명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생명이라고 발음할 때마다 저는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느낍니다. 생명은 언제나 신비롭고 눈부시며 그 신비스러움과 눈부심 앞에 때로는 울컥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지금 중동은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발단은 무장단체 하마스의 공격과 민간인 학살로 시작이 되었지요. 또 이스라엘은 응징을 하게 되고요. 이것이 또 민족과 인종, 종교 간의 갈등으로 확전되고 중동 전쟁으로 확전이 될 수도 있습니다. 사망자만 해도 수 천명에 달합니다. 그런데 서로 간의 앙금이 있어서 군 시설은 파괴할 수 있고 공격할 수 있다 하더라도 어떻게 민간인을 학살하고 병원을 공격하느냔 말입니다. 그것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기독교 병원을 말이죠. 누구의 공격으로 시설이 파괴되었는지 명명백백하게 밝혀지겠지만 미국과 이스라엘에서는 하마스의 공격이라고 하고 하마스는 이스라엘의 공격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이건 있을 수가 없는얘기입니다. 어떻게 군사시설도 아닌 병원을 공격할 수 있습니까? 생명 그 자체로 존중해야 하지요. 여기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종교란 무엇입니까? 특별히 종교는 생명에 대한 궁극적인 질문에 해답을 제시해 주어야 합니다. 내세에 대한 궁극적인 길을 안내하는 게 종교입니다. 그리고 이 땅의 평화를 지켜내고 생명을 존중해야 되는 것입니다. 종교는 어떤 경우에도 살인을 조장하거나 전쟁을 조장해서 평화를 깨면 안 됩니다. 어떻든지 화해와 평화의 분위기를 조성해야 합니다. 우리는 결코 꽃으로 만나 갈대 헤어져서는 안 됩니다. 헤어진다 하더라도 우리는 이듬해 다시 태어날 세상에 대한 희망을 갖고 소망을 가져야 됩니다. 그리고 다시 갈대꽃들이 피는 꿈을 꿔야 합니다. 순천만의 갈대숲을 거닐며 이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아무리 혹한의 겨울에 갈대가 부러져 있고 쓰러져 있더라도 우리는 다시 새 생명의 꿈을 꾸고 은갈색 갈대꽃의 꿈을 꿔야 한다”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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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3-10-22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나와 안 맞으면 선을 긋는 사회
    저는 4.19혁명 국가조찬기도회 설교를 몇 번 하러 갔습니다. 그때마다 농림부장관을 지내고 국회의원 5선을 하신 김영진 장로님이 “4.19혁명의 기록은 역사 속의 고서로 감춰져 있으면 안 된다”고 하시면서 4.19혁명을 유엔 유네스코에 등재하기 위해서 정말 애를 많이 썼습니다. 우리 교회도 약간의 도움은 드렸지만 그분은 온몸을 다 바쳐서 그 일을 했습니다. 4.19혁명이야 말로 대한민국을 새로 거듭나게 한 고통의 산실이었습니다. 부정과 불의를 추방하고 정의와 인권을 회복시킨 위대한 혁명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민주화의 불길을 활화산처럼 타오르게 한 불씨 혁명이고 점화 혁명이었습니다. 당시 독재 정부는 자유와 민주의 팔을 묶고 목을 죄었지만 4.19 혁명은 검은 군홧발에도 굴하지 않는 민주와 자유를 향한 인권 운동의 함성이었으며 고독한 새벽별의 피눈물과 처절한 절규로 독재의 성벽을 무너뜨렸던 타오르는 민주의 혼이었습니다. 그 민주화의 횃불은 민족의 가슴마다 들불로 번지고 조국 근대화와 자유 민주주의의 향기로운 꽃이 필 때까지 자유와 인권, 민주화의 정신적 보고요, 폭풍의 진원지가 되었습니다. 급기야 4.19의 정신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불쏘시개가 되고 그 불멸의 꽃은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의 꽃을 만발하게 하는 한 알의 밀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4.19정신을 기억하고 계승시켜야 합니다. 4.19의 대가없는 희생으로 대한민국은 지금 자유민주주의가 꽃을 피우고 모든 국민이 자유와 행복을 누리며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김영진 장로님께서 몇 년을 고생한 끝에 드디어 4.19혁명이 유엔 유네스코에 등재가 되게 하였습니다. 마침내 4.19묘역에서 유엔 유네스코 등재 헌정식을 하고 기념식을 하려고 하는데 4.19에 속한 어느 단체에서 그걸 문제 삼은 것입니다. “왜 우리하고 의논을 안 하고 당신들끼리 추진을 했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묘역 앞에서 행사를 하지 못하고 장소를 옮겨서 하기로 했습니다. 제가 그 이야기를 듣고 정말 탄식을 하였습니다. “우리의 자랑스러운 역사인 4.19혁명이 유엔 유네스코에 등재된 것이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 일인가. 그런데 그런 일을 자기들과 의논하지 않았다고 그렇게 기분 나쁘게 생각할 일인가. 우리 사회가 언제부터 이렇게 극단적 왜곡 편향 사회가 되었는가. 혹시 소통이 조금 부족했어도 그렇게 노력해서 유네스코에 등재가 되었으면 서로 칭찬하고 격려하며 감사한 일이 아닌가...” 그런데 너무 다행스럽게도 누군가의 중재로 조정을 하고 화해를 하게 해서 4.19에 속한 여러 단체가 함께 4.19묘역에서 헌정식과 기념식을 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참 얼마나 다행입니까? 저는 그 소식을 듣고 너무 다행이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교회라고 예외이겠습니까? 지난번에 제가 아프리카에서 선교사님들을 모아놓고 세미나를 하고 난 후 몇 분이 저에게 찾아와서 이렇게 사과를 하는 것입니다. “소 목사님, 지난날 유튜브의 헛소문을 듣고 목사님을 한동안 오해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목사님의 강의를 듣고 보니 그것이 전혀 아닌 걸 알았습니다. 한국교회를 위해서 그토록 애를 쓰셨는데... 정말 죄송합니다.” 또한 부산 엑스포 유치를 위한 홍보 활동이야말로 아름다운 공공외교의 일환입니다. 그런데 이걸 또 다른 방식으로 오해하는 사람이 제 주변에 있다는 것을 알고 깊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언제부터 우리 사회가 무조건 자기하고 안 맞으면 선을 긋고, 아무리 아름다운 가치와 정신, 숭고함을 계승해도 자기와 의논 없이 하면 이렇게 반대를 해 버리는가. 또는 자기 확증편향성과 맞지 않으면 이렇게 해 버리는가?” 요즘 주변을 보면 진짜 뜻하지 않는 오해와 확증 편향적 사고에 갇혀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아무리 설명을 하고 이해를 시키려고 해도 자기만의 생각에 갇혀 남들을 판단하고 왜곡된 시각으로 보려고 합니다. 교회는 결코 싸움과 다툼, 분열의 종교가 아닙니다. 사랑과 화해, 용서의 종교입니다. 전쟁을 막고 자유와 평화를 선도하며 국민 모두가 행복한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어가는 것이 종교의 사회적 책임과 환원 사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새에덴교회가 목회적 대형교회로서 사회적 순기능과 선순환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도록 섬겨나갈 것입니다. 아니 저부터 분열과 다툼이 있는 곳에 사랑과 평화, 연합과 일치의 중재적 역할을 해 나가는데 앞장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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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3-10-15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아프리카에 꽃씨를 뿌리러 갑니다.”
    저는 10여 년 전에 아프리카 선교를 간 적이 있습니다. 그때 마사이족들이 사는 곳으로 가서 선교를 하였습니다. 몇 년 후에는 ‘월드비전’과 함께 에티오피아에 가서 선교와 구호 활동을 하였습니다. 이번에는 ‘글로벌에듀’에서 아프리카에 가자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냥은 가지 말고 학교를 하나 짓자는 것입니다. 제가 사실은 ‘글로벌에듀’의 이사장이 아닙니까? 그러나 한 주 동안에 아프리카를 갔다 온다는 게 너무 엄두가 안 나고, 또 학교를 하나 짓는 것도 재정적 부담이 들어서 안 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글로벌에듀’ 상임 이사님이 “아프리카에 학교 하나 짓고 부산 엑스포 유치대에 가서 아프리카의 정상과 외교부 장관에게 부산 엑스포 유치를 위한 스피치를 해주라”는 것입니다. 저는 갈등이 많았습니다. “이것도 공공외교 중의 하나인데 김진표 국회의장님께서 가시지만 나 같은 것이 가서 스피치를 한다고 얼마나 효력이 있겠는가...” 그런데 제가 강요하지도 않았는데 김철수 장로님이 학교 짓는 돈을 자기가 감당하겠다고 연락이 오고, 또 안영준 집사님이 행사비 일부를 감당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마음에 고민이 생긴 것입니다. 제가 가면 아프리카 전역에서 선교사들이 오실 텐데 선교사들에게 식사 대접을 하고 세미나를 하고 또 교통비를 지원하고 섬겨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각국 정상과 외교부장관들이 삼성 스마트폰 폴더 폰을 선물 받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먼저 힘겹게 헌신하는 성도들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그렇지만 결국 개미군단의 헌신자들이 생겨나서 어쩔 수 없이 가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제 아들이 국제정치학을 전공하였는데 “아빠가 한 살이라도 젊을 때 폼 나게 가서 공공외교를 하고 오라”고 하는 것입니다. 제가 그 말 한마디에 마음이 움직였던 거죠. 그래서 요즘 영어 연설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가서 이런 요지의 스피치를 하려고 합니다. “우리나라가 눈 떠보니 선진국이 되었습니다. 선진국이 그냥 된 게 아니라 선교사들이 와서 복음을 전하고 신문명을 전달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왕에 이 자리에 선 김에 우리 대한민국을 자랑하고 싶습니다. 대한민국은 6·25전쟁 때 딸랑 부산밖에 안 남았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낙동강 전선을 사수하여 오늘의 대한민국을 이루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원조받은 나라에서 최초로 원조를 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저는 부산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부산은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최후의 보루였고 대한민국의 혼과 정신이 아직도 숨 쉬고 있는 곳입니다. 더구나 부산은 세계 최고로 아름다운 항구도시입니다. 부산은 태고적의 신비로움과 현대 문화가 조화를 이루는 얼마나 아름다운 바다의 도시인지 모릅니다. 마치 모든 소리가 세이렌의 노래로 들릴 정도로 아름답고 고혹적인 항구도시입니다. 저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대한민국 종교 지도자로서 여러분이 2030년도 엑스포에 부산으로 오시면 좋겠다는 마음이 강렬합니다. 만약에 여러분들이 2030년도 부산 엑스포에 오시게 된다면 여러분은 환상의 도시에 오시는 듯 착각을 하게 될 것이고 세이렌의 앞바다를 지나가는 듯한 매혹적인 여행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부산을 응원해 주십시오. 부산을 사랑해 주십시오. 부산 엑스포를 위하여 박수를 쳐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아프리카에 복음과 선교, 그리고 공공외교의 꽃씨를 뿌리러 가는데 얼마나 싹이 나고 줄기가 자라고 꽃이 피어날지 모르겠습니다. 오직 기도하는 마음으로 다녀오겠습니다. 성도님들께서 저의 건강과 숙면 그리고 선교와 공공외교 활동을 위하여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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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3-10-01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은혜를 기억하는 사람과 잊는 사람
    요즘 저는 씁쓸한 기분을 느끼고 있습니다. 사실 이런 일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죠. 아쉬울 때는 그렇게 도와달라고 하고 살려달라고 하다가 나중에 일이 끝나고 나면 확 돌아버리는 사람을 볼 때 말이죠. 저는 원래 빚을 한 번 지면 10배로 갚는 사람이고 절대 받은 은혜를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살아온 사람이기 때문에 더 그렇습니다. 요즘 뉴스를 보면 그렇게 자기를 키워주고 은혜를 베풀어준 스승을 나 몰라라 하고 배은망덕한 일도 보지 않습니까? 그런 일을 겪는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아플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저도 총회와 교계를 섬기면서 제게 힘이 있을 때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찾아왔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정치적으로 생매장이 되어갈 사람들이 와서 제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얼마나 통사정을 했는지 모릅니다. 그럴 때면 한 번도 거절하지 않고 도와 드렸지요. 그런데 그런 일이 지나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싹 돌아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더구나 세월이 흘러 교권을 가진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 옛 시절을 기억하지 못하고 안하무인으로 행동하는 것을 보면 참 마음이 씁쓸합니다. 하긴 제 자신도 마찬가지일지도 모릅니다. 총회 기간 중에 저를 총회장으로 만들고 천국에 가신 고 박정하 장로님 묘소를 한번 찾아가려고 했습니다. 한동안 우리 총회가 너무 어수선할 때 저는 교단을 옮겨버릴까도 생각한 적이 있었거든요. 그랬는데 그때 그분이 나서서 교단법을 고쳐서 57세에 저를 부총회장이 될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57세에 부총회장이 되고 만 58세에 총회장이 되게 만들어준 것입니다. 그리고 천국을 가셨습니다. 저는 여러번 그분이 잠들어 있는 묘소를 찾아가 꽃다발을 헌화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묘소를 한번 찾아갈까 했는데 시간이 여의치가 않았습니다. 제가 아쉬워하자 옆에 있는 분들이 “그러지 말고 차라리 그 분 기일 때 찾아가자”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마음은 잊지 않았지만 가지를 못했습니다. 그러고 보면 저도 똑같은 사람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제가 언젠가는 한번 꽃다발을 들고 묘소에 찾아가려고 합니다. 모름지기 사람은 기억을 해야 합니다. 받은 은혜를 기억할 뿐 아니라 잘못을 기억하고 뉘우쳐야 합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가면 유대인들보다 독일인들이 더 많이 찾아온다고 합니다. 지난 과거를 잊지 않고 다시는 그런 실수를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이번에도 대통령께서 추석 선물을 보내주셨습니다. 이걸 저는 먼저 김현숙 권사님께 보내 드렸습니다. 저를 그렇게 사랑해 주신 고 문정남 장로님을 생각하면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대전에 갔는데 대전 현충원에 잠들어 계신 문 장로님 묘소라도 찾아갔어야 되는데 가지를 못했습니다. 이런 말을 하는 제 자신이 너무나 부끄럽습니다. 한 번은 날을 잡아서 문 장로님의 묘소도 찾아가고 박정하 장로님의 묘소도 찾아가야 되겠습니다. 그것이 저다운 삶이고 소 목사다운 삶이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도 저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삶을 살고 힘을 가질수록 목에 힘을 빼고 더 겸손하고 더 많이 안고 품겠습니다. 그리고 은혜를 베푼 사람을 끝까지 기억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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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3-09-2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그것은 편지였고, 시와 노래였다”
    지난 월요일 우리 교회 몇 목사님들과 산행을 하던 중에 천국에 가신 조용기 목사님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저는 조용기 목사님이라는 말씀에 갑자기 조 목사님이 보고 싶고 그리워졌습니다. 그래서 당장 다음 날 모든 일정을 미루고 조용기 목사님 묘소를 찾아가기로 했습니다. 마침 그때가 2주기 즈음이었거든요. 그래서 의전하는 장로님들에게 꽃다발을 준비해서 미리 도착하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도착했더니 장로님들이 안 계시는 것입니다. 알고 봤더니 오산리기도원으로 내비게이션을 쳤는데 원주로 가버렸다는 것입니다. “왜 원주로 갔냐”했더니 “오산리를 오살리로 쳐서 원주로 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시간이 넘게 차 안에서 기다렸습니다. 제가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서 혼자 묘소를 찾아갈 수도 있지만 어떻게 빈손으로 갈 수 있겠습니까? 꽃다발을 들고 가야죠.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차에서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장로님들이 도착을 하자 꽃다발을 들고 갔습니다. 아직 가을이지만 한낮이라 땡볕이 이마를 찡그러지게 했습니다. 그 땡볕 아래서 묘소 앞에 꽃다발을 드리고 잠시 묵념을 하며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제가 장례위원장으로 목사님의 장례식을 섬긴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2주기가 되었네요... 목사님이야 하나님의 품에 안식하고 계시겠지만 그래도 목사님이 그리워서 왔습니다. 그리워서 꽃다발 하나 들고 왔습니다.” 그 순간에 조 목사님과의 지난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습니다. 특별히 국민일보 31주년 기념예배 때의 일이 생각이 났습니다. 이영훈 목사님께서 통성기도를 인도하셨고 저도 강단에 서서 손을 들고 기도하는데 누가 제 손을 잡는 것입니다. 눈을 뜨고 보니까, 조용기 목사님이 제 손을 목사님의 머리에다 얹으며 안수기도를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지금 소 목사님 같은 패기와 용기 그리고 영력을 다시 회복하고 싶어요. 소 목사가 내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를 해주세요.” 저는 순간적으로 조 목사님을 꽉 끌어안고 기도를 하였습니다. 제가 어떻게 감히 조 목사님의 머리에 손을 얹고 안수기도를 할 수 있단 말입니까? 저는 조 목사님 귀에 대고 큰 소리로 기도를 하였습니다. “하나님, 조 목사님이 젊은 날 얼마나 체력을 소진하셨습니까? 여의도순복음교회를 세계 최대의 교회로 키우고 5대양 6대주를 다니며 주님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얼마나 온 몸의 진액을 짜내며 희생하셨습니까? 또한 위태로울 한국교회 수십 년 후를 바라보시며 공적 교회를 지키고 보호하는 대변지 국민일보를 창간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 조 목사님은 몸을 축내고 축내셨습니다. 부디, 조 목사님의 수고를 보상해 주시고 건강을 회복시켜 주옵소서. 청년의 몸과 두뇌와 혀와 기백을 주시옵소서” 조 목사님께서도 기도하는 내내 어린아이처럼 제 품에 안겨서 “아멘, 아멘” 하시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동안 정말 제 몸과 마음이 불덩이가 되었습니다. 얼마나 저를 사랑하고 또 저의 젊음이 부러웠으면 그러셨을까... 그런 분이 흙으로 돌아가 땅속에 누워 계시니 제 자신도 흙이 되는 것 같았고 흙과 제가 동일체라는 생각이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저도 언젠가는 흙 속에 묻히게 될 터인데, 흙이 그냥 흙으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흙의 원소가 내 몸 안에 있고 나도 언젠가 저 흙 속에 묻힌다는 걸 생각하니까 이 땅에 살아있는 동안 주신 사명에 더 충성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돌아오는 그날 저녁에 빗소리가 나서 창문을 열어봤습니다.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문득 시상이 떠올라 펜을 들어서 ‘가을’이라는 시를 썼습니다. “문득 / 가을비가 내리고 / 바람이 불고 / 나뭇잎들이 허공 위로 날아가다 / 나의 발 앞에 떨어졌을 때 / 그건 / 나뭇잎이 아니라 / 편지였다 / 쓰고 싶은 시였다 / 불 꺼진 창문 아래서 / 혼자 부르고 싶은 노래였다 / 눈을 감아도 보이고 / 귀를 막아도 들리고 / 숨을 참아도 부르게 되는 / 사랑이었다.” 그날 내린 비는 그냥 비가 아니었습니다. 그 가을비는 아직은 초가을이지만 바람을 몰고 왔고 나뭇잎들을 떨어지게 하는 비였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떨어진 나뭇잎은 그냥 나뭇잎이 아니라 편지였고 시였고 노래처럼 느껴졌습니다. 아무리 눈을 감아도 보이고 아무리 귀를 막아도 들리고 아무리 숨을 참아도 부르게 되는 가을 사랑이었습니다. 늘 그렇겠지만, 매년 가을이 오면 저는 천국에 가신 조용기 목사님을 그리워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을 생각하며 묘소를 찾아갈 것입니다. 그분을 그리워하는 편지를 쓰고 시를 쓰고 노래를 부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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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3-09-18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당신의 가을이 더 행복하길...”
    “주여, 때가 왔습니다. 여름은 참으로 길었습니다. 해시계 위에 당신의 그림자를 얹으십시오. 들에다 많은 바람을 넣으십시오. 많은 과실들을 익게 하시고 이틀만 더 남극의 햇볕을 주시어 그들을 완성시켜 마지막 단맛이 짙은 포도주 속에 스미게 하십시오...(하략)” 이는 릴케의 ‘가을날’이라는 시입니다. 여름이 그토록 길고 폭염의 나날들이었지만 정작 가을 문턱에 서니까 그래도 남극의 여름의 햇빛을 그리워하고 있는 시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폭염으로 얼굴을 찡그리고 어떻게든지 여름 햇빛을 피하려고 하였지만, 아직도 푸른 나뭇잎들은 여름 햇빛에 환호성을 지르고 있습니다. 햇빛이 강렬할수록 더 부지런히 광합성 작용을 하며 과일들은 단맛을 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뜨거운 햇빛이 여름의 꽃들을 피어나게 하였습니다. 지금 어디를 가든지 길가엔 과꽃, 패랭이, 초롱이 꽃들로 한창입니다. 아니, 제가 산행하는 길에는 벌써 앙증맞게 코스모스꽃이 피기 시작했습니다. 웬 시골 처녀가 분홍색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수줍은 듯 서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화려하고 흠모할 만한 미의 자태를 갖춘 모습은 아니지만 가을바람에 흔들리는 순결한 작은 몸짓으로 저에게 이렇게 말을 하는 듯 느껴졌습니다. “지난, 8월의 뜨거운 햇빛이 없었더라면 나는 이렇게 시원하게 될 수 없었노라고... 살아있는 모든 이들은 여름을 사랑해야 한다. 가을이 오면 올수록 지난 여름이 그리워질 것이라고...” 산행을 한 후 책상에 앉아 아까 전에 본 코스모스의 모습을 생각해 봅니다. 아니, 산 녘에 피어난 이름 모를 작은 꽃들의 모습을 생각해 봅니다. 초가을에 피어난 꽃들의 미소가 제 가슴속에 다가왔습니다. 그들이 말을 할 수는 없지만 하나님이 주신 침묵의 모국어로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지난 여름이 폭염의 계절이었다면 지금 맞는 가을은 당신에게 정염의 계절이 되기를 바래요. 지난 여름의 폭염이 오늘의 우리들을 아름답게 피어나게 하듯이 이번에 맞는 가을은 당신에게 꼭 행복한 계절이 되기를 바래요. 가을을 행복하게 지낼 수 있어야 다시 오게 될 불볕더위도 사랑할 수 있을 거라고... 그리고 마침내 그 불볕더위가 그리워지고 그 더위 속에서도 얼굴을 찡그리지 않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거라고...” 갑바도기아 대교부 중 한 사람인 닛사의 그레고리가 했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예수님이 가르치신 산상 보훈을 보면 마음이 청결한 자가 하나님을 볼 것이라고 했는데(마5:8), 닛사의 그레고리는 이 청결한 마음이란 에덴동산에서 창조되었을 때의 본래 마음을 회복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마음을 회복하면 자연과 교감하게 될 뿐만 아니라 저절로 아름다운 시가 나오고 음악이 나오며 천재적 예술성을 발휘하는 영감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제가 이 신학자의 말이 아니었으면 어떻게 감히 이런 글을 쓸 수가 있겠습니까? 제가 다시 산행을 한다면 이번에는 제가 꽃들에게 말을 건네고 싶습니다. “그래, 너희들도 여름을 잘 견뎌냈지. 지난 여름에 불볕더위가 있었기에 오늘의 아름다운 꽃을 피워내지 않았느냐. 너희들도 가을이 오면 지난 여름을 더 그리워하게 될 거야. 그러나 짙은 가을이 온다고 아쉬워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거라. 아직은 가을이지만 여전히 폭염을 일으키는 저 태양의 불꽃처럼 너희들도 이글거리는 삶을 살거라. 우리 모두 함께 가을이 행복했으면 좋겠구나.” 정말 올 가을은 모두가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여름 햇볕으로 인해 모두에게 가을의 열매가 주렁주렁 맺히고 좋은 소식의 열매를 따 먹는 계절이 되면 좋겠습니다. 특별히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가을이 행복한 계절이 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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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3-09-10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인문신답 시리즈를 시작하며
    주일설교의 ‘한 말씀 시리즈’를 시작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22회를 했습니다. 물론 앞으로도 해야 할 내용도 많습니다. 그런데 너무 한 주제로 오래 하면 약간 정체되거나 고착화 될 수 있다는 예감이 들었습니다. 이런 강박 때문에 새로운 주제로 말씀을 전할 수는 없을까,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하나님 말씀은 다 진리이고 변함이 없는 말씀인데 같은 말씀이지만 새로운 주제를 가지고 새로운 언어와 옷을 입혀서 설교한다는 것은 목회자에게 큰 관심이자 일종의 강박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코로나 엔데믹 시기에 잠언을 강해 할까, 전도서를 강해 할까 고민을 하였습니다. 언젠가 잠언을 전공했던 교수님이 저에게 찾아온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분에게 물어봤습니다. “코로나 엔데믹 시기에 잠언서를 기반한 설교를 하면 좋겠습니까? 아니면 전도서를 기반한 설교를 하면 좋겠습니까? 제가 인문신답 시리즈를 하려고 합니다.” 그랬더니 교수님이 이렇게 말씀하는 것입니다. “목사님, 제가 잠언을 전공했지만 코로나 엔데믹 시기에는 전도서가 훨씬 더 나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전도서를 택하게 된 것입니다. 14세기 중엽에 페스트가 유럽을 휩쓸었습니다. 그래서 유럽 인구의 1/3이 죽었습니다. 적어도 1억 명 이상이 죽었습니다. 페스트는 우리나라 말로는 흑사병이라고 하는데, 사람이 시커멓게 변해서 죽는 병입니다. 어른뿐 아니라 아이들도 죽었습니다. 태어난 지 몇 달 안 된 아이들도 이 병에 걸리면 새까맣게 타서 죽었습니다. 그때 가톨릭에서는 무조건 성당으로 모이라고 했습니다. 그때 클레멘스 6세 교황은 “우리가 모여서 예배를 드리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이 페스트를 물리쳐주실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사제들의 명령에 따라서 다 교회로 모였습니다. 그러나 지내놓고 보니까 성당이 흑사병의 진원지가 되고 감염의 원천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어른과 아이, 노인 할 것 없이, 그리고 심지어는 성직자들까지도 흑사병에 걸려 죽었습니다. 그러자 교회의 권위가 무너지고 성직자의 권위가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많은 사람들이 신의 존재를 부인하거나 교회를 희화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도대체 하나님이 살아있다면 왜 저 사람들이 저렇게 죽어가도록 놔두신단 말인가? 하나님은 무엇을 하고 계신 까닭에 아무 죄도 없이 태어난 어린아이가 새카맣게 타서 죽는 걸 놔두고 계신단 말인가? 심지어는 기도하는 성직자까지도 페스트에 걸려 죽게 놔둔단 말인가?” 그러면서 르네상스, 곧 인문주의가 성행하게 된 것입니다. 인문주의를 하다 보니까 당연히 인문학이 중심이 될 수밖에 없지요. 그래서 사람이 묻고 사람이 답하는 것입니다. 신의 존재를 부인하기 시작하고 신의 자리에 인간이 서고 인간 스스로 학문의 상아탑을 쌓기 시작하는 것이죠. 그런데 그러면 그럴수록 거기에 진리가 있고 행복이 있고 참 만족이 있었을까요? 아니죠. 오히려 사람이 중심이 되는 인문주의가 성행할수록 삶의 회의론자들이 생기게 되면서 실존주의 철학이 나오게 된 것이 아닙니까? 그렇지만 거기에서도 진정한 답이 있을 수 없지요. 답이 없으니까 인생 회의론에 빠지든지 아니면 쾌락주의로 빠지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마약, 동성애, 알코올, 성, 게임 중독 등 사람들이 다 어디에든 중독이 되어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도 코로나를 맞았습니다. 정말 현대의학이 발달하지 않았으면 엄청난 인구가 죽었을 것입니다. 이쯤 돼서 ‘인간이 묻고 하나님이 답하다’라는 주제로 한번 설교를 해보고 싶었습니다. 그 주제가 딱 맞는 게 전도서였습니다. 그래서 ‘인문신답 시리즈’를 준비하게 됐습니다. 첫 설교도 이미 몇 주 전부터 준비를 했는데요, 이 설교를 준비하느라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는지 모릅니다. 앞으로 20회 전후로 ‘인문신답 시리즈’ 설교를 할텐데요, 저는 매 주가 기대되고 매 주가 설레게 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들도 많은 기대와 관심을 가져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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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3-09-03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진심을 다했을 뿐입니다”
    지지난주 금요일에는 한교총 상임회의가 열렸습니다. 저는 이미 총회장도 지냈고 한교총 회장을 지냈지만 지금까지 줄곧 한국교회 연합기관 통합을 외쳐오고 활동을 해왔습니다. 제가 한교총 대표회장일 때도 연합사업을 추진해 왔지만 그때는 한기총이 결정을 미루는 바람에 최종적으로 이루지 못했었습니다. 대표회장 임기가 지난 후에도 연합기관 통합위원장 직을 맡아 세부합의서까지 도출해 냈습니다. 그런데 일부 교단과 교단장의 이견으로 인해 어그러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분들의 요구사항을 다 합의 도출해서 완전히 되는 줄 알았습니다. 현재 대표회장인 이영훈 대표회장님을 비롯해서 대다수의 주요 교단장들이 내부적으로 합의를 하였기 때문에 다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일부 몇 교단장들의 이견이 표출된 것입니다. 사실 그런 이견은 옛날에 교단장들이 똑같이 주장한 것입이지요. 그래서 저는 한교총 실무자에게 한기총에서 이단자들을 어떻게 제명했거나 행정보류를 시켰는가 등을 다 드러내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잘 될 거라고, 일부러 세세한 걸 드러낼 필요가 없고 선통합 후에 해도 나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진짜 생각지도 못한 교단에서 또 생각지도 못한 주장들이 제기된 것입니다. 저는 어떤 의미에서 앞서서 연합기관 대표회장을 한 사람으로서 많은 말을 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해서 통합위원회 서기로 하여금 발표하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저런 이견들이 나오게 되자 어쩔 수 없이 제가 일어나서 얘기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러분, 저도 연합기관을 하나로 만들고 싶은 마음이 100% 있는 게 아닙니다. 저도 하고 싶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우리끼리만이라도 얼마나 만족하고 행복한 케슬과 같습니까? 서로 마음이 맞지 않는 사람끼리 모여서 의견 다툼을 하는 건 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세계 기독교 역사를 보십시오. 아니, 한국 기독교 역사를 보십시오. 왜 기독교가 무너지고 망했습니까? 그건 분열과 다툼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누구보다도 반기독교 악법을 막기 위해 가장 최후의 전선에서 싸워본 경험이 있는 사람입니다. 코로나 상황 때도 정부와 맞서서 예배 조율과 협상에 나선 사람입니다. 그런데 서로 이견이 있을 때 앞서서 일하는 사람이 얼마나 곤혹스럽고 당황스러운지 아십니까? 기독교가 분열할 때 좋아하는 사람이 누군 줄 아십니까? 반기독교 정서를 갖는 사람이거나 아니면 종교를 길들이기를 좋아하는 편일 것입니다. 저는 보수주의와 청교도 개혁신학을 공부한 사람입니다. 결코 이단을 용납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한국교회 공적교회와 공익을 위해서는 이단을 제외하고 하나로 뭉쳐야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줄기차게 연합사업을 강조해 온 사람입니다.” 그러자 여기에 대해서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시기를 언제 할 것인가를 논의하였는데, 원래는 9월 총회 전에 마무리를 짓고 총회 때 보고 하려고 했지만, 통합은 하되 결의는 총회 후에 하자고 하였습니다. 지난주는 비서들이 휴가를 갔기 때문에 다른 부목사님이 운전하고 갔습니다. 오면서 하는 말이 “정말 왜 저렇게 연합에 대한 이해와 인식이 부족할까요? 정말 제 심장도 쪼여 가는데 목사님은 얼마나 답답하셨습니까?” 그래서 제가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게 말이오. 그러나 이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닙니다. 선과 악의 문제도 아닙니다. 이것은 이해와 인식 그리고 의식의 차이일 뿐이죠. 얼마나 많은 걸 보고 얼마나 넓은 걸 보느냐에 대한 사고의 차이입니다. 나는 지금까지 선악을 넘어서, 옳고 그름을 넘어서 진심을 다했을 뿐입니다. 여기까지 온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다음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나는 주님 앞에 최선을 다했고 진심을 다했음을 감사할 뿐입니다.” 사실 교계 연합기관이 분열을 안 했으면 이렇게 다시 연합을 하려고 몸부림을 칠 이유도 없습니다. 그러나 분열을 하였기 때문에 계속 또 다른 분열이 연쇄작용을 일으킨 것입니다. 저는 영화 ‘오펜하이머’가 떠올랐습니다. 주인공 오펜하이머가 가장 고민하고 우려했던 것은 자신이 만든 원자폭탄으로 인한 파멸의 연쇄작용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수소폭탄 제작을 반대하고 원자력 무기 확산 방지를 위해서 노력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교계 분열의 연쇄작용을 막기 위해서는 다시 연합을 하는 길 밖에 없습니다. 늦은 여름밤인데도 숫매미들의 노랫소리가 무성합니다. 저 매미소리와 함께 저는 주님 앞에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한국교회 공적교회와 공적사역을 위해서 부족하지만 최선을 다했노라고, 그리고 진심을 다 바쳤노라”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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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3-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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