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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그립고 보고픈 성도님들··”
- 그립고 보고픈 성도님들, 코로나 재확산으로 인하여 온라인 예배로 전환한지도 어느덧 네 번째 주가 되어 갑니다. 한국교회 예배를 회복하는데 우리교회가 가장 앞장섰고, 우리 교회는 90% 이상 예배가 회복되었습니다. 대부분의 한국교회도 60~70%이상 회복되었다고 했는데, 갑작스런 코로나의 재 확산으로 인하여 어쩔 수 없이 온라인 예배를 드리는 것을 생각하면 너무 분통이 터집니다. 한두 주만 지나면 여러분들과 함께 현장예배를 드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시간이 길어지면서 여러분들을 향한 저의 그리움은 더 깊어만 갑니다. 화상 줌에 비춰지는 여러분들을 볼 때마다 얼마나 반갑고 한 편으로는 미안한 마음이 드는지 모릅니다. 텅 빈 예배당에서 홀로 첫 예배를 인도할 때 저는 하나님께 너무나 죄송하고 성도 여러분들에게도 죄송한 마음이 가득하였습니다. 이것이 다 교회 지도자들의 잘못이라고 생각하니 더 죄송하고 송구하기만 하였습니다. “아, 우리 성도들이 얼마나 현장예배로 달려오고 싶을까. 비록 마스크를 쓰고 예배를 드리더라도 얼마나 교회로 달려오고 싶을까...”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얼마나 제 가슴이 미어지고 아팠는지 모릅니다.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화상 줌에 비춰지는 성도들을 향하여 반갑게 손을 흔들고 인사를 하고 축복을 하였지만 제 가슴에는 뜨거운 눈물이 흐르고 또 흘러내렸습니다. 우리가 지금은 갈대처럼 헤어져 있지만, 반드시 꽃으로 다시 만나는 날을 기다리며 기도하고 또 기도하였습니다. 더 주님의 약속과 은혜를 사모하며 온 힘을 다하여 말씀을 외치고 외쳤습니다. 저는 새에덴교회를 개척한 이후부터 교회가 저의 집이었으며, 성도들이 저의 가족이었습니다. 교회가 제 생명이요, 성도가 제 목숨이었습니다. 새에덴교회가 저였고 제가 새에덴교회였습니다. 성도들이 아프면 저도 아팠고, 성도들이 힘들어하면 저도 힘들어했고, 성도들이 울면 저도 울었습니다. 단 한 순간도 교회와 저는 뗄 수 없었고, 제 인생에서 여러분들을 떼어낼 수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이런 저를 제 집사람이 이해하지 못하였지만, 지금은 얼마든지 이해를 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정작 여러분과 만나지 못하고 함께 예배를 드리지도 못합니다. 그러나 저는 믿습니다. 지금 우리가 함께 만날 수 없는 이 그리움의 시간이 오히려 우리의 사랑을 더 깊고 강하게 해 주리라고 말입니다. 이런 시간을 통해서 저에게 여러분들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 여러분도 저를 그리워하며 교회를 사모하고 있는 줄로 압니다. 목사가 텅 빈 예배당을 바라보며 설교한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 아십니까? 지난날 이 성전의 자리를 채워주신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얼마나 귀한 존재였는지 새삼스럽게 느껴지고 깨닫고 있습니다. 그래도, 이 어려운 시간 속에서 더 역설적인 헌신을 드리며 하나님과 교회를 위하여, 부족한 종을 위하여 눈물겨운 사랑과 성원을 해 주신 성도들을 보며 저는 주님 앞에 이렇게 외치고 외칩니다. “주님, 이 부족한 종에게 이토록 아름다운 성도들을 만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새에덴의 성도들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겠습니다. 새에덴의 찬란한 약속과 축복이 이루어지는 그 날까지, 저는 한 영혼, 한 영혼을 끌어안고 제 모든 기도와 눈물과 희생을 주의 제단에 바치겠습니다. 하루속히 지금의 위기가 지나가게 하시고 우리가 다시 꽃처럼 만나 예배드리는 날이 오게 하옵소서. 주여, 우리 성도들을 끝까지 지켜 주옵소서.” 그리운 사람은 아무리 멀리 있어도 보인다고 하지 않습니까? 지금 제 두 눈동자에는 여러분들의 얼굴이 보입니다. 아니, 제 모든 인생을 다 끝내고 주님 앞에 가는 마지막 순간까지, 저는 오직 주님만 바라보고, 교회만 바라보고 여러분만 바라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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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그립고 보고픈 성도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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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저는··· 주님이 부르셔서 세워주신 목사입니다.”
- 저는 누가 뭐라 해도 하나님의 종, 목사입니다. 누가 아무리 저에게 돌을 던진다 할지라도 저는 목사입니다. 물론 저도 한 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지금 코로나 시대 속에서 우리 한국교회가 얼마나 부끄러운 모습을 보였는지, 목회자가 서로 공격하며 비난하는 모습을 보였는지...’ 그러나 목사가 목사를 공격하고, 성도가 목사를 공격하고 교회가 사회를 공격하고 사회가 교회를 공격하는 이 야만의 시대 속에서, 다시 생각하고 또 생각해 보아도 저는 목사였습니다. 저는 불신가정에서 태어나 교회를 다니겠다고 생각을 해 본적도 없었습니다. 더구나 교회를 다닌 후에도 목사가 되겠다고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그 불가항력적인 소명을 받아 신학교에 간다고 얼마나 많은 박해를 받았는지 모릅니다. 오죽했으면 그 차가운 겨울 눈보라가 몰아치는 어느 날, 저를 낳아주신 부모님으로부터 버림을 받고 내쫓김을 받아야 했겠습니까? 그러나 저는 오직 주님 한 분 바라보며 선지동산의 문을 두드렸고 온갖 모진 고생과 어려움 속에서 고학을 하며 오늘의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오직 주님, 오직 교회를 위한 삶을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목사가 된 행복감에 젖어 주님을 태우는 군마가 되어 말갈기를 휘날리며 거친 광야를 달리고 삭막한 황야도 마다하지 않고 여기까지 달려왔습니다. 그러나 지난 주간에는 주님 앞에 엎드려 이런 기도를 드려보았습니다. “주님, 저는 지금 전혀 기쁘지 않습니다. 목사로서의 행복감도 사라져버리고 말았습니다. 아니, 주님 앞에 너무 부끄럽고 죄송할 뿐입니다. 어찌하여 목사라는 이름이 이렇게 부끄러운 이름이 되었단 말입니까? 교회라는 이름이 이렇게 부끄러운 이름이 되어버리고 말았단 말입니까? 휘몰아치는 잔인한 폭거와 비난의 화살 앞에 오늘따라 왜 이렇게 주님의 종으로서 초라하게 느껴진단 말입니까” 저는 이런 기도를 드리며 하염없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집에서 쫓겨나며 흘렸던 그때의 눈물보다 더 뜨거운 눈물을 흘렸습니다.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아무 것도 해 드리지 못하고 교회의 영광성과 거룩성이 훼손당하는 현실 앞에 너무 송구하고 죄송하기만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울다가, 다시 생각해 보며 이렇게 기도드렸습니다. “주님, 저는 그래도 주님이 불러주셔서 세우신 당신의 종입니다. 이 시대의 목회자가 수많은 사람들의 조롱과 공격을 받는다 할지라도, 저 땅바닥에 떨어져 사람들의 발길에 밟히고 또 밟혀 누더기가 된다 할지라도, 저는 당당하게 목사라는 이름을 다시 둘러 입고자 합니다. 제가 지금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여도, 그러나 다시 일어나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져가는 교회를 다시 일으켜 세워보겠습니다. 왜냐면 주님, 저는 목사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목사가 되고자 해서 목사가 되었다면 얼마든지, 언제든지 목사라는 직분을 버릴 수 있겠지요. 그러나 주님이 저를 거부할 수 없도록 불러주셔서 주님이 피 흘려 세우신 교회를 지키며 세우는 목사가 되게 하셨기에 저는 이 이름을 버릴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불러주시고 소명의 옷을 입혀주신 그 이름을 제가 어찌 부끄럽다 할 수 있겠습니까? 주님, 저에게 다시 한 번만 힘을 주옵소서. 이 모든 시련을 이겨내고 무너져가는 한국교회를 다시 세우는 이 시대의 진정한 목사가 되게 하옵소서.” 코로나로 인하여 전 사회가 셧다운 되며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잔인한 말들과 야만의 폭거가 소용돌이치는 이 혼돈의 시대 속에서도, 목사의 말과 순명을 지키며 길을 걸어갈 것입니다. 아니, 목사라는 이름이 다시 숭고하고 교회가 존엄하고 거룩하다 불릴 날을 위하여, 저의 마지막 땀과 눈물과 혼을 바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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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저는··· 주님이 부르셔서 세워주신 목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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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우리의 계절은 희망입니다··· ”
- “지금은 우리가 갈대처럼 헤어져 / 그리워도 만날 수 없고 / 마음껏 소리 내어 말할 수 없지만 /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 이 세상에서 가장 따스한 빛은 / 당신의 눈빛이라는 것을, /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은 / 말없이 짓는 희미한 미소라는 것을! / 아무리 멀고 험해도 참고 섬기며 기다리겠습니다. / 우리의 외로운 사랑이 /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이겨내고 / 다섯 번째 계절인 희망의 들녘에 / 꽃으로 피어나는 그날을!” 코로나19로 인하여 고통당하고 있는 모든 분들을 생각하며 짧은 시를 한 편 써 보았습니다. 지금 한국교회는 코로나19로 인하여 참 많은 어려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저는 지난 목요일 청와대를 다녀왔습니다. 저는 대통령의 모두 발언에 촉각을 곤두세웠습니다. “한국교회에 대해서 어떤 말씀을 하실까...” 물론, 특정교회에 대한 발언은 예견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대통령께서 처음에는 오늘날 대한민국이 있기까지 기독교의 눈부신 역할을 치하하는 것으로 시작했습니다. “한국교회가 우리 민족의 근대화 과정에서 교육과 언어, 독립운동에 큰 역할을 하였고 해방 후에도 주도적으로 사회복지 역할을 하는데 정말 공이 크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깊이 감사드립니다. 이번 수해 복구에도 한국교회가 앞장서서 방문을 했고 성금까지 기탁해 주셨고 코로나 방역에도 대다수의 교회가 앞장서준 것에 대해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저는 지금까지 청와대를 수없이 방문하였지만 이번처럼 대통령이 한국교회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치하한 적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 언론의 기사를 보니까 어쩌면 이럴 수 있단 말입니까? 완전히 언론이 프레임을 만들어 싸움을 붙여 놓은 느낌이었습니다. 어떤 언론은 “가톨릭 사제들에게는 대통령이 감사와 찬사를 전하였지만 교회 지도자들에게는 대놓고 사과만 하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왜 한교총 대표회장의 발언도 대통령과 각을 세우는 부분만 보도하느냔 말입니다. 얼마나 한국교회가 싫었으면 그랬을까요. 그렇지 않아도 국민이 교회를 향하여 분노의 화살을 쏘고 있는데 언론까지 가세를 하니 말입니다. 다행히 제가 페북에 균형 있는 글을 올리니까 그 내용을 여기저기서 퍼다가 인용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제가 일찍 페북에 글을 올릴 걸 그랬습니다. 그날 저녁 내내 생각하고 또 생각해 봤습니다. “이렇게 한국교회가 인심을 얻지 못하고 있는가. 정말 우리 한국교회가 정신 차려야 되겠구나. 국민과 기자들의 시각에서 볼 때 교회가 신앙적 양심으로 방역을 잘 지키면서 현장예배를 드리는 것까지도 이기적인 면으로만 보이고 교회의 이너서클이나 종교적 카르텔의 모습으로 보이고 있으니... 교회가 정말 정신차려 다시 이미지 축적을 해야겠구나. 아니, 나부터 더 분발하리라.” 다행히도 다음날 대통령께서 시민사회수석으로 하여금 진의가 담긴 보도자료를 내놓게 함으로써 어느 정도 중화가 되긴 했습니다마는. 아무튼 이럴때엔 지금 한국교회는 막말이나 극단적인 언어와 행동을 자제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극단적인 말이 아니라 따스한 눈빛이고 말없이 짓는 희미한 미소이지 않을까요? 우리는 따스한 눈빛과 희미한 미소로 안부를 전하며 함께 힘을 모아 이 고통을 이겨나갔으면 좋겠습니다. ‘♪맘 같지 않은 세상 / 그 맘 다 알아줄 수는 없지만 / 늘 곁에 함께 있다오...’ 우리의 외로운 사랑이 희망의 들녘에 꽃으로 피어나길 바라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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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우리의 계절은 희망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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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지금은 사랑하고 치유해야 할 때입니다”
- 저는 요즘 같으면 명대로 살지 못할 것 같습니다. 지난번에 설교 때 말씀드린 ‘꾀꼬리 틀의 단장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조선 중종 때 ‘어숙권’이라는 식물학자가 꾀꼬리 어미와 새끼를 칸을 막아놓고 분리를 시켜놨다지 않습니까? 게다가 새끼들을 굶기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배고프다고 울어대는 꾀꼬리 새끼들의 울음소리를 듣고 꾀꼬리 어미는 밤낮으로 구슬프게 울기만 했습니다. 얼마가 지난 후에 어미와 새끼를 만나게 해줬습니다. 그랬더니 어미 꾀꼬리는 곧바로 쓰러져 죽었다고 합니다. 그러고 나서 어미 꾀꼬리 배를 갈라보니까, 창자가 18토막이나 나 있더라는 것입니다. 어미 꾀꼬리의 애간장이 녹고 녹아 창자가 잘라져 버린 것이죠. 저도 몇 주 동안 애간장을 끓이며 살았습니다. 지금 언론이 얼마나 교회를 향하여 공격적 포문을 쏟아내고 있습니까? 더더욱 참담한 것은 국민의 분노의 화살이 한국교회 전체를 향하여 빗발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최근 애드립 문제로 공격받은 것에는 신경 쓸 여유도 없었습니다. 그저 총회와 한국교회를 지키기 위하여 온 애를 끓으며 전심전력을 다 해 투혼을 불살랐습니다. 저는 그동안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14년 동안 참전용사들을 초청해 왔고 이슬람 스쿠크, 포괄적 차별금지법, 종교인 과세 등의 문제를 위하여 전면에서 일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총회와 한국교회 목사님들이 저에게 이렇게 전화가 온 것입니다. “소 목사님, 지금 뭐 하고 있습니까? 6.25전쟁 때도 총칼을 두려워하지 않고 예배를 드렸는데 우리가 순교를 각오하고 현장예배를 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것도 공적 사역이니 소 목사가 총대를 메고 정부와 싸워 주세요.” 다짜고짜 화를 내며 퍼부어대는 목사님께 참고 인내하면서 이렇게 답변을 드렸습니다. “저도 목사님과 생각이 똑같습니다. 만약 공산당이 총칼을 들고 와서 예배를 못 드리게 한다면 목숨을 걸고 예배를 지킬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온 국민이 전염병 때문에 불안해하고 분노하고 있는 때가 아닙니까? 우리 교회 역시 주변 교회에서 집단감염이 일어나 지역이 초비상인데, 우리가 일상적인 예배를 강행했다가 우리 교회에서 집단감염이 일어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최소한의 숫자가 예배를 드리면서 동시에 온라인예배를 드리도록 저는 정부와 끊임없이 소통하며 설득하고 있습니다.” 저는 깊이 성찰해 보았습니다. “아, 나는 정말 용기가 없는 목사인가, 정말 비굴한 사람인가. 아니, 나만큼 예배를 사랑하는 사람도 없을 텐데... 그리고 예수님도 하나님을 사랑하며 이웃을 사랑하라고 했잖아. 지금은 전염병을 막고 국민건강을 지키기 위해서 옳고 그름을 따지기보다 한국교회가 사회적 상처와 시대적인 아픔을 품고 애통하며 기도하고 사랑해야 할 때야. 감염병 때문만 아니라면 얼마든지 정부와 싸울 수도 있다.” 이런 생각을 하며 저는 먼저 제 자신의 부족함부터 회개하고 가슴을 치며 애통하였습니다.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우리는 먼저 자성하면서 서로 하나 되어 한목소리를 내야 할 때입니다. 그러면서 시대의 아픔을 치유하고 전염병 확산을 막고 퇴치하는 데 앞장서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분명히 다시 선교와 재부흥의 기회가 오게 될 것입니다. 아무리 힘들고 멀어도 예배를 생명처럼 여기면서도, 국민 보건을 위해 그리스도가 보여주신 사랑의 길도 포기해서는 안 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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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지금은 사랑하고 치유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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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저를 마지막으로 끝내야 합니다"
- 지난 목요일에 섬진강 둑이 터져서 완전히 마을이 호수처럼 되어버렸던 남원시 금지면 귀곡리에 가서 150여명의 성도들과 함께 피해복구 작업 및 봉사활동을 하고 왔습니다. 그리고 적지만 이환주 남원시장님께 1억원의 구호성금을 전달하였습니다. 원래는 그날 오후 2시에 경주에서 총회 일정이 있었는데 그 일정을 저녁으로 미루고 새벽에 남원으로 가기로 한 것입니다. 그것도 수요일 저녁에 결정을 한 것이죠. 남원이 제 고향이기에 더욱 가슴이 아파서 저도 직접 내려가서 그릇도 닦고 삽질을 하였습니다. 옛날에 삽질을 해 봤기 때문에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땀이 비 오듯 쏟아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여러 곳에서 전화가 오고 문자가 오는 것입니다. 제가 남원에 내려왔다는 단신기사가 인터넷에 뜨니까 많은 사람들이 제가 남원에 온 걸 다 알고 이렇게 연락이 온 것입니다. “목사님, 벌써 남원에 가셨네요. 목사님의 열정은 못 말립니다. 정말 목사님은 행동으로 보여주는 분입니다. 이제 지난일은 잊어주세요.” “목사님, 별거 아니에요. 목사님의 진정성을 압니다. 목사님이 사람을 높이려고 했겠습니까? 그분을 아군으로 선용하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이죠. 목사님만큼 한국교회 공적 사역을 해 온 분이 어디 있습니까? 그 분도 목사님의 공적 사역에 열렬한 우군이지 않았습니까? 그만 잊으세요.” 이런 등등의 내용이었습니다. 저는 이미 잊어 버렸는데 이런 연락들이 오니까 지난 주간의 일들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물론 저도 사람인데 일부 사람들로부터 인신공격에 가까운 극렬한 공격을 받았을 때 왜 스트레스를 안 받았겠습니까? 그런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여름수련회를 다 인도하고 주일설교도 다 했습니다. 지난 월요일, 화요일에는 총회 목사님들을 많이 만나고, 수요일에는 한교총 주관으로 온누리교회에서 열린 ‘위장된 차별금지법 반대와 철회를 위한 한국교회 기도회’에 참석하였습니다. 그리고 목요일 새벽에 남원에 내려온 것입니다. 제 진의와 상관없이 덕담을 가지고 비판한다면 얼마든지 사과하지요. 그러나 악의적으로 단어 하나가지고 비판하는 것은 좀 그렇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도 예수님의 말꼬투리 하나 가지고 그랬지 않습니까? 요즘 더 가슴 아픈 것은 설교자에게 있어서 복음의 본질이 중요한 것인데 복음논리가 아닌 이념논리를 가지고 비난하고 공격하는 것입니다. 신학교 교수들 가운데도 이념논리로 가득 차 있는 것을 봅니다. 우리는 복음논리, 성경논리, 교회세움 논리가 중요하지요. 진보진영에서도 하나님의 복음이 중심이 돼야 하고, 보수에서도 하나님의 복음이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복음은 뒷전으로 하고 이념을 앞세워버리면 교계 안에서도 상처와 분열과 파멸을 조장하는 파괴적 문화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저도 존경 받는 목사가 되고 싶습니다. 하지만 존경을 받는다고 공적 사역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존경도 중요하지만 지금은 한국교회를 지키고 보호하고 세우는 공적사역을 잘해야 합니다. 존경만 받으려면 자기 이미지 관리만 하고 개교회 목회만 잘하면 되지요. 그러나 저는 다른 동역자들과 함께 교계와 정재계, 사회문화 분야를 다 아우를 수 있는 크리스천 탑 리더십을 구사하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교회 지도자들의 일부 말 한 마디를 왜곡 편집하여 악의적으로 공격하거나 이념의 색깔을 씌워 분열시키는 파괴적 문화는 끝내야 합니다. 이것은 꼭 제가 마지막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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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저를 마지막으로 끝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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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그 떨림은 거룩한 부담감이 되었고요“
- 몇 달 전 저는 30년 전통을 이어온 새에덴 장년여름수련회를 앞두고 고심 하였습니다. 예전처럼 오크밸리에서 할 것인가, 아니면 코로나 여파로 중단 할 것인가를 놓고 말입니다. 그런데 김종대 장로님과 이종민 목사님이 교회에서 할 것을 계속 건의하는 것입니다. 오크밸리에서 하면 몇 가지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첫째, 사회적 분위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저희가 방역의 모범을 보였는데, 집단생활을 하다가 한 사람이라도 확진자가 나와 버리면 사회에 얼마나 부정적 파장을 주겠습니까? 둘째, 우리 내부에서도 숙소를 남의 가족과 함께 쓴다는 것이 너무나 불편하고 부담이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셋째, 아이들 방학이 너무 짧아 5천여 명이 멀리 함께 이동을 한다는 것이 무리였습니다. 결국은 제가 그 제안을 수용하였고, 오크밸리와 계약한 것은 내년으로 연기해 놓았습니다. 그래서 여름수련회를 교회에서 하게 되었는데, 결정을 잘 했다고 봅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여름수련회를 처음 하기에 과연 얼마나 모일까 걱정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첫 예배 때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이렇게 많이 모일지는 저도 생각을 못 했고, 준비팀에서도 생각을 못했습니다. 물론 생활속 거리두기를 지키긴 했지만 본당 1,2,3층을 가득 채우고 비전홀까지 가득 앉아서 성도들이 영상으로 집회에 참석했다는 것입니다. 동탄지성전은 지성전대로, 기도원에서 참여 한 분도 계셨고, 또 지하 주차팀들은 지하에서 영상으로 집회에 참석한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교회 주차장이 가득 차 단국대에 수백 대가 넘는 차를 주차 한 것입니다. 그런데 미리 예상을 못한 결과 단국대를 오가는 셔틀버스 준비가 많이 안 돼 교인들에게 얼마나 불편을 끼쳤는지 모릅니다. 그런데도 성도들이 계속 모여드는 것입니다. 모여드는 성도들의 모습을 보고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를 모르겠습니다. 너무 감사하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고 너무 송구스러운 마음도 들었습니다. “바쁜 가운데도 최선을 다해 설교 준비를 했지만 이럴 줄 알았으면 내가 더 밤을 새워 말씀을 더 잘 준비했어야 하는데, 그리고 말씀을 더 잘 전했어야 하는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김요한 안수집사님에게 소독을 철저히 잘하고 있느냐, 이종민 목사님에게 QR코드는 잘 체크를 하고 있느냐 점검을 했습니다. 그런데 목요일 새벽에는 폭우가 쏟아졌습니다. 그런데도 본당이 가득 찬 것입니다. 오히려 짧은 시간에 준비한 설교를 다 전할 수 없어서 너무나 아쉽고 시간이 너무 빨리 가는 것이 속상했습니다. 폭우 속에서도 새벽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본당을 가득 채운 성도들을 보며 경이롭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는 이 글을 쓰는 순간도 마음이 떨리기만 합니다. 금요일 오전에 쓰고 있는데 새벽에도 정말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말씀을 전했습니다. 오늘 저녁은 마지막 타임을 맞게 될 텐데 마지막 시간이 더 거룩한 부담감으로 가득해집니다. 아니 새에덴교회 성도들에게 더 빚진 자의 마음이 들기만 합니다. 그렇게 많이 모이기도 하지만, 감사헌금을 열심히 하는 성도들이 참 존경스럽기 그지없습니다. 그 존경심과 부담감으로 저는 은퇴하는 날까지 신실하게 성도들을 말씀으로 섬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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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그 떨림은 거룩한 부담감이 되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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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고요한 정적이 삶을 덮어오기 전···”
- 저는 지지난주, 9월에 있을 총회 준비를 위한 지역 간담회를 했습니다. 지방을 내려가면서 갑자기 고(故) 박정하 장로님이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그 분의 아들인 박희태 집사님께 전화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박집사님 말씀이, “아버지가 살아계시면 내일이 팔순”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머니랑 산소에 가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저도 대구에서 오전 행사를 마치고 올라가는 길에 금산에 있는 묘소를 들리기로 하였습니다. 저는 약속대로 다음날 오후 박정하 장로님의 묘지에 꽃다발을 헌화하고 권사님과 집사님을 위로하고 왔습니다. 저에게 있어 박정하 장로님은 정말 하나님의 섭리와 인도하심으로 만나게 된 은인이십니다. 저는 젊은 나이에 총회장을 할 것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박정하 장로님께서는 뭐가 그렇게 급하다고, 총회장 후보 나이를 낮추도록 법을 바꾸고 직선제로 바꾸는데 앞장서셨습니다. 그렇게 하고 나서 돌아가신 것입니다. 그 분이 돌아가실 날을 알고 그렇게 서두르셨는지 참으로 의아하기만 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우리 총회와 한국교회에 정말 시기적으로 제가 꼭 필요한 상황인 듯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잠시 이런 인문학적 상념에 젖어 들었습니다. “아, 인생은 무엇인가. 삶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삶과 죽음 사이에는 무엇이 있는가. 몇 년 만 더 사셨어도 팔순예배를 함께 드리며 축하해 드릴 텐데... 누가 시키지도 않고,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장로님은 왜 그리도 나를 위해 열심히 뛰다 가셨는가.” 그렇게 보면 저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저 역시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우리 교단과 한국교회 세움을 위해서 이렇게 열심히 뛰고 있으니 말입니다. 묘소에서 내려오는데 눈을 뜨지 못할 정도로 흠뻑 땀을 흘렸습니다. 땀을 흘리는 것은 살아 있다는 증거요, 살아 있으니까 저는 사명의 길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박정하 장로님처럼 저를 위해 길을 열어주시고 도와주신 분도 계시지만, 간혹 저를 힘들게 하고 괴롭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다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런 사람은 그런 사람대로 저로 하여금 겸손하게 저의 길을 가게 합니다. 돌아오는 길에 이런 기도를 드렸습니다. “주님, 저는 지금 여름과 가을 사이를 지나고 있습니다. 조금 있으면 가을과 겨울 사이를 거닐 것이고 마침내 저도 박정하 장로님처럼 저의 사명을 다 마치고 겨울강을 건널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은 여름입니다. 저기 맑고 푸른 강이 풀잎처럼 누워 흐르고 있지 않습니까? 저 강을 건너야 오곡백과 풍성한 가을을 맞게 될 것입니다. 저는 가을에 그 풍요의 열매를 제 손으로 직접 거두고 싶습니다. 그리고 제 손으로 그 영글 영글한 열매를 주님께 드리고 싶습니다. 그 열매를 거두고 나면 들녘의 풍요를 나르던 가인들의 노래도 멈출 것이며 저문 광야에 찬 서리가 내리고 나면 홀연히 고요한 정적이 저의 삶을 덮어올 것입니다. 그리고 억새들의 하얀 머리털들이 바람에 부딪치며 겨울 맞을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저도 마침내 겨울강을 건널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여름에 더 충만한 은혜를 부어주옵소서. 엘리야 때처럼 숨겨 놓은 7천 명의 동역자들을 저에게 붙여 주셔서 함께 당신의 도성을 지키게 하소서. 당신의 나라를 더욱 강성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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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고요한 정적이 삶을 덮어오기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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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봄과 여름 사이를 지나 여름과 가을 사이에서 부르는 노래’
- 저는 지난 주 9월에 있을 총회 준비를 위한 지역별 순회를 했습니다. 마지막 날 오후는 서울에서 서북지역협의회 리더들과의 간담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간담회만 한 후 식사도 못한 채 자리를 떠야 했습니다. 왜냐면 63빌딩에서 있는 남진 장로님 55주년 헌정 앨범 콘서트에 가서 축사를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헌정 앨범 콘서트 자리에 본인이 새에덴교회 장로라고 소개하고, 가장 사랑하고 존경하는 담임목사님으로부터 유일하게 축사를 받고 싶다고 하는 남진 장로님의 신앙이 그날따라 더 별처럼 빛나게 느껴졌습니다. 제가 무대에 올라가서 “불멸의 전설, 영원한 오빠, 노래하고 또 노래하는 남진의 55주년을 함께 축하합시다”고 하자 축사가 끝나기도 전에 청중석에서 “오빠”하는 환호성과 박수가 터져 나왔습니다. 헌정 콘서트가 시작되자 남진 장로님의 젊은 시절부터 영상이 나오며 우리나라의 내로라하는 후배 가수들이 남진 장로님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조항조씨가 ‘울려고 내가 왔나’를 부르자, 제 옆에 있던 미연방하원의원을 지낸 김창준 장로님이 옛날 사귀던 여자가 생각나서 눈물이 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이어서 가수협회 회장 이자연씨와 알리, 서문탁, 육종완 밴드 등이 남진 장로님의 노래를 재해석하여 각양각색의 느낌으로 부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들이 어찌 트로트의 제왕, 남진을 따라갈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순간적으로 저는 남진 장로님의 노래를 가장 근사치의 감성으로 부르고 싶은 주책없는 욕구가 솟아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설운도씨가 나와서 ‘모르리’라는 노래를 부르는데 역시 트로트의 레전드답게 정말 잘 부르는 것입니다. 정말 고마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 헌정 콘서트의 주제는 ‘당신을 노래합니다’입니다. 후배들이 선배에게 헌정 앨범을 헌정해 드리는 것은 우리나라 가요계 역사상 최초의 일입니다. 그런데 저의 가슴을 더 찡하게 하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팬들의 축하 영상 시간에 한 중년의 여인이 축하를 하는 것입니다. 그분은 젊은 시절부터 남진 장로님의 광팬이 되어 좋아하자 남편분이 무던히도 시샘하고 싸웠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남편이 그녀를 인정해주고 이해하게 된 것입니다. 이번 헌정 콘서트에 남편과 같이 오고 싶었는데 얼마 전 남편이 하늘나라에 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늘나라에 있는 당신도 마음으로 함께 축하해 주기를 바란다”고 하는데 가슴이 찡한 것입니다. “음악에는 이처럼 아름다운 힘이 있구나”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마지막 순서에 남진 장로님이 후배 가수들과 함께 ‘나에게 여러분이 있다면’ 노래를 부르는데 그 모습이 그렇게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교회 안수집사님들이 ‘나에게 새에덴이 있으니’, ‘나에게 목사님이 있으니’ 노래를 부르던 모습이 오버랩 되었습니다. 그 순간 가수 이선희씨가 부른 ‘청춘’이라는 노래의 가사 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또 봄과 여름 사이 어디쯤에 있을 그 시절 노래 부른다 / 청춘 노랠 불러본다” 저도 봄과 여름 사이의 시절,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질주를 하던 청춘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덧 그런 시절을 지나 지금은 여름과 가을 사이에 있고, 또 언젠가 가을과 겨울 사이에 서 있을 것입니다. 과연, 그때에도 교인들과 후배들이 나를 이렇게 사랑해주고 아껴주고 존경해줄 것인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때를 대비해서라도 저도 지금, 여름과 가을 사이에서 인생의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고 마음껏 사랑하며 섬기는 삶의 노래를 불러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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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봄과 여름 사이를 지나 여름과 가을 사이에서 부르는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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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돌다리도 두들겨가라는 시그널을 받았습니다”
- 저는 작년 이맘때 노회에서 부총회장 후보로 추천을 받고 총회에 등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단독후보가 되어 38년 만에 무투표로 부총회장에 당선되었습니다. 부총회장이 되어 지나온 1년 동안 총회장님을 잘 모시고 총회 운영을 배웠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2주 전에 노회에서 총회장 후보로 추천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노회에서는 ‘후보’라는 말을 빼 버리고 총회장을 추천한다고 해 버린 것입니다. 저는 분명히 소감을 발표하면서 ‘총회장 후보’라고 했는데 노회 준비팀에서 너무 들떠서 그랬는지 ‘후보’라는 단어를 빼 버린 것입니다. 저는 성격이 소탈하여 와이셔츠나 바지에 뭐가 묻어도 전혀 상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신문에 글을 쓴다든지 설교 원고를 작성할 때는 완벽증에 가까울 정도로 예민합니다. 그런데 저의 총회장 후보 추천을 위한 임시노회에서 총회장 후보 추천이 아닌 총회장 추천을 해 버렸던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다시 임시노회를 소집하여 지난번에 빠진 ‘후보’자를 넣어 총회장 후보 추천을 받았다는 회의록을 본 임시노회에서 채택하게 하였습니다. 이런 일에 대해 거의 10일 동안 신경 쓰지도 않았는데 임시노회를 앞둔 전날 밤은 속이 상하기도 하고 자존심이 상하기도 해서 잠이 안오는 것입니다. 더구나 임시노회를 한 후 총회 사무실에 가서 등록 하고 17개 광역시도회의에서 설교한 후 또 다시 총회임원회를 위해 목포까지 가야 하는 스케줄을 생각하니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잠이 안 오는 것입니다. 불면의 밤을 지내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저에게 해 주었던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소 목사 주변에는 장비처럼 밀어붙이는 충성꾼은 많지만 제갈량같이 치밀한 사람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전날 밤, 불면의 시간을 보내면서 “아,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가야한다”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번 일도 반드시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가라는 하나님의 시그널이었습니다. 임시노회를 마치고 총회 사무실에 가는 동안 이것 역시 하나님이 주신 기회요 고귀한 선물이라고 다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앞으로 총회장뿐만 아니라 한국교회 전체를 섬기고 가야할 위치에 있을지도 모르는데 한순간에 판단을 잘못하면 더 큰일이 나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회의를 하고 결정 할 때 정말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가야 한다는 시그널을 준 것이라고 생각하며 다시 제 자신을 가다듬게 되었습니다. 정말 중요할 때는 제갈량처럼 치밀한 사람을 옆에 두고 그런 사람 말에 귀를 기울려야 되겠다는 학습을 한 것이죠. 그런 학습이 축적이 되어서 제가 우리 교단과 한국교회를 섬기는 동안 한 치의 오차나 실수가 없이 잘 섬기도록 하기 위한 기회요 선물임을 깨닫고 감사하고 또 감사했습니다. 목포로 내려가면서 이 글의 초안을 쓰고 있는데 서해안 고속도로 가에 문득문득 보이는 도로 표지판이 오늘따라 새롭게 느껴집니다. 앞으로도 하나님께서 저와 성도들의 삶의 순간순간마다 때로는 파란불로 때로는 빨간불로 시그널을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보여주신 이정표대로 멈춰야 할 때는 멈추고 달려야 할 때는 달리면서 순종하며 살기를 소원할 뿐입니다. 우리의 삶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시그널이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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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돌다리도 두들겨가라는 시그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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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물 위에 비친 달을 잡으려다 물에 빠져 죽으려합니까?”
- 지난 7월 8일 중대본에서 전국 교회를 대상으로 정규예배 외 교회 내의 모임과 행사를 금지한다고 하면서 이를 위반 시 벌금 조치를 하겠다고 발표하였습니다. 저는 그 전날 저녁에 총회 임원회를 할 때 중대본에서 이런 발표 계획이 있다는 소식을 연합 기관을 통해 들었습니다. 제가 어떻게 하면 되겠냐고 하니까, 연합기관에서 한 번 지켜보자 해서 저도 일단 지켜보았습니다. 그런데 얼토당토 않는 발표를 한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후에라도 이곳저곳 연락을 해서 교회가 방역수칙을 잘 지키고 솔선수범하며 앞장서야 되겠지만 중대본의 발표는 너무 한 것이니 해제를 촉구 하였습니다. 그렇게 설득도하고 항의도 하였지만, 마음이 너무 분하고 허탈했습니다. 코로나 초기부터 우리교회는 얼마나 방역을 잘했습니까? 의료 전도사님을 세워서 메디컬 처치를 운영하였고, 정부의 7대방역 수칙을 철저하게 지켰으며, 지금도 특허청 허가를 받은 열 온도기와 항균 소독기 수십 대를 교회 입구와 교육관까지 설치하여 방역에 만전을 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중대본의 발표가 있는 당일에 청와대 게시판에 취소 청원이 20만 건이 넘었고 이 글을 쓰는 지금도 34만4천여 명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아, 한국교회가 살아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교회가 방역에 최선을 다해야 하지만, 중대본이 너무 극단의 조치를 한 것입니다. 중대본이 교회로 하여금 방역을 잘 지키는 쪽으로 선도를 해야지, 물리적 제약만 하려고 하면 되겠습니까? 저는 ‘착월선후 낭패지경’(捉月獮猴 狼狽之境)이란 고사성어가 생각이 났습니다. 어리석고 눈 먼 원숭이가 물 위에 비친 달을 잡으려다가 물에 빠져 죽었다는 말입니다. 그런 것처럼 정부와 중대본이 한국교회를 물에 비친 달로 착각한 것 같습니다. 방역 당국은 힘들게 물리적 방역을 지키면서도, 우리 사회의 정신적, 영적 방역에 최선을 다하고 항체와 저항인자가 되려고 노력하는 한국교회를 마치 물 위에 비친 달처럼 착각을 한단 말입니다.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라는 그림처럼 한국교회가 그나마 어둠속에 불을 밝히고 있는데, 그 불마저 끄려고 하고 있습니다. 지금 남북관계가 얼마나 교착상태고 경제가 파탄 지경에 놓였습니까? 코로나로 인하여 힘들고 어렵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한국교회가 위로와 위무, 희망의 메시지를 주고 있는데 이것마저도 막으려고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남북이 극단적 대립을 할 때 정주영 회장처럼, 한국교회가 소떼라도 몰고 의약품도 싣고 가서 얼어붙은 남북관계에 평화의 길을 열어야하는데 이렇게 교회를 옥죄기만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저는 비교적 열려 있는 사람이어서 일부 수용하고 지킬 것은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한쪽에서 청와대나 광화문 집회를 하자고 해도 극단적으로 행동하지 말자고 말렸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번 중대본의 발표에는 아주 섭한 마음이 듭니다. 중대본이 어리석은 원숭이 같은 판단을 해서는 안 됩니다. 한국교회를 물 위에 비치는 달처럼 착각해서 보지말기를 바랍니다. 청와대 게시판에 청원을 올린 성도 여러분께 감사를 드리면서 중대본이 조속하게 시정하고 해제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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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물 위에 비친 달을 잡으려다 물에 빠져 죽으려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