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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다시 꽃으로 만날 순 없을까요”
    올봄에 시집을 내려고 작년 가을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19 사태가 일어난 것입니다. 그래서 시집 출간을 당분간 미루고 있었는데 시선사에서 연락이 온 것입니다. 시선사는 한국 서정시들만을 다루고 문학 계간지를 내는 중량감 있는 출판사입니다. 그런데 제가 한국 서정시인 100에 선정이 되어 ‘한국대표서정시 100인선’의 47번째 시집으로 출판하고 싶다고 연락이 온 것입니다. 사실 처음에는 고민이 많았습니다. 선광현 목사님도 시집을 내자고 했다가 다시 조금 더 생각해 보자 하고 고심을 많이 했습니다. 이유는 작년 가을부터 정말 어렵게 시집을 준비했는데 서점가에서 반응이 얼마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샘터에서 ‘꽃씨’, ‘다시, 별 헤는 밤’, ‘사막으로 간 꽃밭 여행자’ 등을 냈을 때는 일반 서점가에서도 상당한 인기를 얻었거든요. ‘다시, 별 헤는 밤’으로는 윤동주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한국대표서정시 100인선에 들어가도 샘터처럼 대중적 시를 출판하는 출판사가 아니기 때문에 서점에서 반향을 일으키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결국 고심 끝에 시집을 내기로 했습니다. 왜냐면 서점가의 반응을 떠나 한국대표서정시 100인선에 수록된다는 것 자체가 역사에 남는 것이고 전문 직업 시인도 아닌데 목회자로서 한국 서정시인 100인에 들어가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존 시 뿐만 아니라 ‘코로나19’, ‘손 소독제’, ‘마스크’,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기도시 ‘갈대가 별이 되게 하소서’ 등을 새롭게 써서 ‘꽃으로 만나 갈대로 헤어지다’라는 시집을 출판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코로나 때문에 문화예술계가 다 정지되어 버린 상황에서 무슨 시집을 내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암울한 일제강점기 때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청록파 시인들의 서정시를 읽으며 상처를 치유 받고 새로운 희망을 품었습니다. 우리도 코로나19로 인하여 우울하고 암울한 상황일수록 오히려 시집을 읽으며 감성의 정화와 정서의 순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트로트나 발라드 같은 대중음악은 대중예술이라고 볼 수 있지요. 그런데 시는 고급예술입니다. 그렇지만 시는 고급예술을 하는 사람만 읽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하고 위로하는 제사장적인 마인드가 있어야 하고 동시에 희망을 주는 선지자적인 예언적 메시지가 들어가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사람들이 코로나의 고통 속에서 제 시를 읽으며 위로와 치유를 받기를 바라지만, 코로나 이후를 준비하고 내다보는 시를 썼습니다. 지금은 코로나19 때문에 꽃같은 영혼들이 갈대로 헤어졌잖아요. 꽃같이 만난 우리가 갈대로 헤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잠시 갈대로 헤어져 있더라도 코로나가 물러가면 다시 꽃으로 만나자는 염원을 담은 것입니다. 코로나 위기 때 저의 시를 통해서 한 사람이라도 위로와 치유를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꽃으로 만나 갈대로 헤어지지 말고 갈대로 헤어진 사람들이 다시 꽃으로 만나는 회복과 축복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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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0-03-29
  • 4.15 총선에 부쳐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세계는 바이러스와 전쟁을 선포하고 몸부림을 하고 있다. 한국정부는 이러한 바이러스 예방책과 치료에 있어서 최선을 다 하고 있다. 국민 모두는 이러한 성실한 정부 정책에 협력하고 각자 자신들의 예방책을 잘 실행하여 지혜롭게 극복해 나갔으면 한다. 이런 와중에서도 미래한국당 이라는 가짜 꼼수정당을 만들어 국회의원 쟁탈전을 벌이고 있는 정당은 빼고 선거에 임했으면 한다. 친일과 군부독재, 사기와 국정농단의 잔재 세력을 이 번 기회에 청산하지 못하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 이러한 반역사적이고 사기 가짜 정당과 합일하는 소위 기독교 개신교 사이비 이단 세력들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창조주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상품화 하여 창조의 완성에 반하는 사탄과 암흑의 역사에 동참하고 성직자의 이름을 팔아서 세속적 이익을 추구하는 반기독교 교회 세력들의 정체를 분명하게 파악해서 엄하게 경계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거짓되고 악한 세력들은 바이러스보다 더 추악하다. 평화는 진실과 정직의 토대 위에서 시작된다. 평화는 악의 본질을 잘 파악하고 단호하게 물리칠 때 이루어질 수 있다. 평화는 역사적 정의와 진정한 생명 사랑과 진리를 왜곡하지 않는 실천에서 존재할 수 있다. 역사와 교회 안에는 거짓과 어둠의 세력들의 바이러스가 범람하는 가운데 생명의 온전함을 위협한다. 국가의 바이러스 예방과 치료를 위해 사투하는 가운데서도 거짓된 세력들은 대규모 시위를 통해서 이러한 정부의 흠집 내기를 위한 광란의 굿을 벌인다고 한다. 이번 바이러스 사태로 많은 민중들이 고통르 당하고 어려움을 살고 있다. 재난과 재앙이 오며 가난하고 어려운 민중들의 고달픔은 가중된다. 서로가 위로하고 격려하며 필요한 물품과 마음을 나누는 진정한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이 필요하다. 살고 죽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은 아무리 말하여도 부족함이 없다. 한 생명에 대한 사랑과 나눔의 실천이 필요하다. 봉준호의 기생충이 아카데미 4관왕이 되었다. 그 영화의 유명세보다 영화의 내용이 시대적인 양극화를 잘 연출하고 표현함으로써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게 되고 오만함 미국 영화계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가치를 수용하게 되었다고 본다. 배우들의 연기력과 표현력도 훌륭한 것이었지만 특히 작품상을 수상한 것이 바로 시대적 성격을 잘 알게 해 준 것이라 본다. 오늘날 세계와 대한민국의 문제는 경제적 문화적 삶의 양극화가 심화 확대 재생산되며 그 골을 메꿀 수가 없다는 것이다. 가진 자와 힘 있는 자가 없는 자와 약한 자들을 더욱 착취하는 사화와 삶의 구조가 우리 시대의 문제이며 역사적인 문제임을 잘 지적하고 밝힌 점에서 기생충의 영화가 하나의 큰 문화적 공헌임을 알게 된다. 자한당은 봉준호 감독과 배우 송강호 등을 문화적 블랙리스트에 올려서 어려움을 겪게 한 역사를 모른 채 하며 기생충과 봉준호 감독을 총선에서 이용하려는 몰염치하고 파렴치한 행위들을 하고 있다. 권력의 쟁취를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이러한 반역사적 세력들을 청산하는 일이 4.15 총선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가라지와 알곡은 함께 자란다. 그러나 가리지를 무성하게 하면 알곡은 얻을 수가 없다. 진실과 거짓은 함께 공존한다. 그러나 거짓을 그대로 방치하면 진실이 거짓과 동일시되고 묻히게 된다. 하나님은 정의와 사랑의 완성을 통해서 그의 나라를 이루어 가신다. 자본과 권력에 공생 기생하며 살아 온 교회와 종교 세력이 썩으며 그 냄새를 감당하기 어렵다. 중세 천 년의 교회가 불의하고 부패하며 독단적인 세력이 되자 그러한 타락한 세력으로부터 구원과 해방을 외치며 종교개혁이 시작되고 혁명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30년의 종교전쟁은 수많은 핍박과 억압, 죽음들 피를 요구하였다. 오늘도 그 생명의 진리가 지켜지도록 우리는 기도를 멈추어서는 안 된다. 공중권세의 암흑 세력은 교묘하고 간교하게 하나님의 나라를 파괴하려 든다. 겉으로는 비단 옷을 걸치고 하려하게 때로는 겸손 한 채로 은밀하게 다가온다. 죽음의 영적 바이러스는 우리들의 신실한 믿음과 삶의 지성소를 파괴하고자 한다. 4.15 총선이 코로나 바이러스 문제로 우리의 영적 믿음과 정의로운 역사적 판단을 흐리게 해서는 안 된다. 인간들의 유한함이 신이 될 것처럼 해서도 안 되며 신이 역사적 저 너머의 나라의 왕인 것처럼 호도해서도 안 된다. 그리스도인들은 역사의 삶 한 복판의 문제에 적극적인 책임적 존재로 살아야 하고 특히 어려움을 당하고 고통을 사는 사람들과 함께해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여기서부터 시작되고 살게 되며 주께서 다시 오시는 날 완성될 것이다. 우리의 희망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반역사적 바이러스의 재앙을 미리 예방하려면 4.15에 대한 현명하고 지혜로운 판단이 매우 중요한 역사적 기로에 서 있다. 4.15의 주인의 자격은 첫째로 국민과 민중들에 있으며, 나랏일을 하고자 하는 봉사의 심부름꾼 공복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은 정직과 진실, 정의와 사랑의 토대 위에 서야 한다. 거짓을 밥 먹듯이 살아 온 사람들, 광주민중들을 학살한 세력과 군부 독재 잔재와 국정 사기와 국정농단 세력들의 후예들에게 다시 권력을 주어서는 안 된다. 세월호 사건을 통해서 그들을 죽음으로 몰아 간 세력들에게 정권과 권력의 발판을 주어서는 안 된다. 어린 생명들의 살고자 몸부림하는 모습들을 필자는 아직도 잊을 수 없고 영원히 잊을 수 없다. 한 생명을 천하보다 귀하게 생각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 사랑을 잊는 사람들을 그리스도인이라 말할 수 없다. 권력 쟁취를 위해서 하나님의 이름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파는 파렴치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은 주님을 욕되게 하는 것이다. 깨어서 정신을 바짝 차리고 하나님이 명하시는 시대적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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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0-03-27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코로나 이후를 생각해 보셨나요?···”
    지지난주에 저는 CTS ‘한국교회를 논하다’라는 프로그램에서 ‘주일예배가 회복되어야 한다’는 주제로 생방송 토론을 하였습니다. 그때 사회자가 저에게 갑자기 “코로나 사태 이후에 우리 사회와 한국교회가 어떻게 달라지겠습니까?”라고 물어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답변을 했습니다. “코로나 이후에 우리 사회의 라이프 스타일이 많이 바꿔질 것입니다. 집단공동체 생활 보다는 재택근무나 개인주의 사회로 변모할 것이고, 사회적 거리두기 분위기는 더 높아질 것입니다. 그 영향이 교회로도 들어올 것입니다. 먼저 교회관과 예배관이 투철한 성도는 코로나로 인하여 그동안 공동체예배를 드리지 못한 목마름과 갈망 때문에 예배가 얼마나 소중하고 귀중한 것인가를 절실하게 깨닫고 예배를 더 사모하게 될 것입니다. 애가 아프고 나면 더 건강해지고 쑥쑥 잘 크듯이 더 건강하고 성숙한 신앙인으로 돌아와서 교회 부흥의 불쏘시개가 되고 헌신적인 사명자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관과 예배관이 투철하지 못한 성도는 온라인예배를 드리면서 ‘아, 이렇게 예배를 드려도 되는 것이구나’라는 생각을 하기도 할 것입니다. 그래서 더 교회에 거리를 두고 가정이나 콘도 같은 곳으로 가서 온라인예배를 드리는 영적 병리 현상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저는 지금 온라인예배가 정당한가, 정당하지 않는가를 이야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온라인예배가 최선은 아니지만, 국민보건과 사회공익을 위해서 과도기적으로 전환한 한 방법일 뿐입니다. 그런데 정말 더 큰 문제는 코로나 이후에도 성도들이 온라인예배의 매너리즘 빠져서 공동체 예배를 회복하지 못할까 하는 것입니다. 최근에 경기도에서 ‘종교집회 전면금지 긴급명령’ 여론조사를 했을 때 기독교인들 가운데도 찬성하는 사람들이 많더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부끄러운 민낯이 드러난 것 같아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정말 한국교회가 그동안 성경공부나 제자훈련을 열심히 한다고 했지만 무엇이 남았습니까? 이번 코로나 위기를 계기로 한국교회는 다시 건강한 교회관과 예배관을 회복해야 합니다. 성도들의 심장에 교회가 얼마나 소중하고 예배가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가를 다시 새겨주어야 합니다. 거대한 폭풍이 일고 나면 바다가 깨끗하게 정화되듯이 코로나 이후에 한국교회가 다시 정화되고 새롭게 태어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이번 신천지 사태를 보면서 진리 전파와 사수의 사명도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깨달아야 합 니다. 우리가 얼마나 안일하고 사람들의 영적인 욕구를 해결해 주지 못했으면 신천지 같은 이단들이 잘못된 욕망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폐허로 만들고 상처를 주었겠습니까? 그동안 한국교회는 우리 사회의 영적인 빈 공간을 채워주지 못했던 것을 자성해야 합니다. 그런데 한국교회 중 몇몇 교회마저도 집단 감염사태를 일으켜 버려 저는 한동안 멘붕상태에 빠졌습니다. 한국교회는 일제감정기에도 민족의 소망이 되었고 근대화, 산업화의 정신적, 사상적 지주 역할을 하였습니다. 지자체 단체장 뿐 아니라 대통령께서 교회 예배의 강력 저지까지 시사한 상황에서 우리는 예배의 가치를 더 소중히 여겨야 하겠습니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코로나 위기 속에서 한국교회가 예배의 내공을 더 축적하고 우리 사회를 일으켜 세우는 영적, 정신적 동력을 준비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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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0-03-22
  • [소강석 목사의 영혼의 아포니즘] “그렇게 사라질 불꽃이었다면··· ”
    지난 수요일 오후,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면담을 하고 왔습니다. 저 뿐만 아니라 경기도 기독교 총연합회 대표회장 김수읍 목사님을 비롯하여 여러 목사님들과 함께 참석했습니다. 요즘 같은 위기 시대에는 위기를 과감하게 돌파할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그런 면에서 이재명 지사께서 과천 신천지 총회 본부까지 가서 신도 명단을 제출받고 가평에 있는 신천지 평화의 궁전까지 직접 가셨던 결기 있는 행동은 높이 평가해야 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페북에 ‘종교집회 전면금지 긴급명령’을 검토하고 있다는 글을 올려서 논란을 촉발시켰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저는 개인적으로 전화를 해서 설득을 했습니다. “지사님,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결기 있는 행동은 좋지만 너무 흥분하신 것 아닙니까? 지자체장으로서의 심각한 고민은 인정하지만 그렇게 쉽게 발언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경기도를 대표하는 목사님들과 함께 수요일 오후에 만나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제 나름대로는 원만하게 서로 소통하고 우려하는 부분들을 잘 해소하였다고 보았습니다. 그런데 또 너무 극단적인 원칙론자들은 야합을 했다느니 굴복을 했다느니 하면서 비판을 하는 것입니다. 저는 뒤에서 그렇게 반대의 소리만 하는 분들을 보면 참 부럽습니다. 그 분들은 자기 소리만 내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전면에 나서서 소통하고 설득하며 협의를 하다보면 욕을 먹기도 하고 비난을 받기도 하지요. 더 중요한 문제는 감염에 대한 사회적 우려입니다. 그런데 경기도 부천의 몇몇 교회에서 확진자들이 나오는 상황이 발생해 버렸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교회가 더 자발적으로 대처를 잘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크게 느껴지고 전날 지사님과 면담을 잘 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국회의원은 대통령이 명을 내리고 자치단체장이 그것을 받아서 종교집회를 제한하도록 하고, 부득이 신청을 하는 교회만 허락하도록 하자는 주장도 했습니다. 우리나라가 무슨 공산국가도 아니고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입니까? 그렇게 복음의 진리와 예배의 가치가 사라질 불꽃이었다면 진작 사라져버리고 말았을 것입니다. 로마시대의 성도들은 카타콤베 지하동굴에 들어가 죽기를 각오하고 신앙을 지켰습니다. 동구의 교회, 중국과 북한의 지하교회와 가정교회 등 그 어떤 핍박과 역경 속에서도 예배의 불꽃은 꺼지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에 스페인 독감이 번져서 20여만 명이 죽어나가는 상황에서도 주일예배를 드렸고 오히려 거리로 나가 3.1운동을 일으켰습니다. 6.25전쟁 중에도 예배를 드렸고 광주민주화운동 중에도 예배를 생명처럼 지켰습니다. 다만 지금 우리는 국민보건과 공적 교회로서의 책임 때문에 예배의 정신과 가치는 지키되, 방법을 달리하여 온라인예배로 전환한 것일 뿐입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든, 가정에서 온라인예배를 드리든 하나님과의 관계와 예배의 가치는 생명을 걸고 지켜야 합니다. 설사 한국교회를 향하여 어떠한 행정명령이나, 법적 조치가 내려지든, 예배는 그렇게 쉽게 사라질 불꽃이 아닙니다. 아니 한국교회는 그럴수록 더 모이고 성도들은 더 결기 있는 저항과 연합정신을 발휘할 것입니다. 여러분 안에 있는 예배를 향한 불꽃, 하나님을 사모하는 거룩한 불꽃이 더 활활 타오르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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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0-03-15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예배를 취소할 수는 없지요···”
    예배는 기독교의 본질이요 최고의 가치입니다. 로마의 박해가 극심할 때 초대교회 성도들은 카타콤베의 지하 동굴에 숨어 들어가서 예배를 드렸고, 중국과 북한의 공산당 치하에서도 성도들은 가정교회, 지하교회를 구축하며 끝까지 예배를 지켰습니다. 우리나라 역시 6.25전쟁 때도 예배는 중단되지 않고 계속 지켰습니다. 그런데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인하여 대형교회가 너무 예배를 쉽게 포기한다는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쉽게 비난을 해서도 안 됩니다. 교회는 국민보건과 사회공익에 앞장서야 하며 공적인 교회로서의 책임도 감당해야하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교회가 전염병 확산의 거점이 되어 버린다면 그 비난을 어떻게 감당하겠습니까? 그러니 정상적인 목회자라면 고민을 안 할 수가 없지요. 예배를 위한 신적 소명 앞에서는 반드시 예배를 드려야 하고, 또 국민보건에 앞장서기 위해서는 예배를 취소해야 합니다. 유럽에서 흑사병이 창궐할 때 천주교에서는 믿음으로 이기자고 하면서 성도들을 성당으로 강제로 불러내었습니다. 그러다가 2천 만 명 이상의 유럽 사람이 죽고 말았지요. 그때 루터는 교회의 원래 근본은 가정교회였으니 우선은 가정에서 예배를 드리라고 했습니다. 루터가 지혜롭게 판단을 한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대형교회가 예배를 포기하거나 축소하는 것을 함부로 비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배는 근본적으로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중직자를 중심으로 한 최소한의 숫자가 모여서 온라인 예배를 드리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럴 때 일수록 저는 예배를 더 소중히 여기고 교회를 사모하는 역설적인 신앙을 외쳤습니다. 왜냐면 사회 심리학적으로 볼 때 3-4주만 예배를 안 드려도 탈예배화 될 수 있기 때문이죠. 예배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영적인 만족만을 위해서 드려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예배는 하나님 앞에 드려지는 제물이고 이 시대와 사회의 영적 보건의 저수지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뉴욕 맨해튼에 센트럴파크를 만들자고 했을 때, 수많은 사람들이 그 비싼 땅에 무슨 공원을 만드냐며 차라리 높은 건물을 지어 수익을 내자고 극심한 반대를 했습니다. 그때 센트럴파크를 설계한 옴스테트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지금 이곳에 공원을 만들지 않는다면, 100년 후에는 이 넓이의 정신병원을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 것처럼 한국의 모든 교회가 예배를 중지하게 된다면 이 사회는 산성화가 되어 버릴 것입니다. 어떤 지방에서는 예배를 드리면 벌금을 낸다고 행정명령을 내린다고 하는데 그것은 정말 하나만 알고 둘, 셋을 모르는 것입니다. 물론 교회가 국민보건에 앞장서는 측면에서는 일상적으로 드리는 예배처럼은 할 수는 없겠지요. 그렇지만 적어도 예배 자체가 취소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이번 주도 교역자와 중직자들을 중심으로 최소한의 숫자가 모여서 예배를 드리되, 대부분의 성도들에게는 유튜브로 온라인예배를 드리게 할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우리가 예배와 관련한 순혈적 신앙의 정체성도 지키고, 동시에 국민보건과 공적교회로서의 책임도 지킬 수 있기 때문이죠. 가까운 날 코로나19로부터 우리 모두가 자유하게 될 때, 부디 온라인예배 습관에 길들여지지 말고 한국교회 모든 성도들이 예배를 더 간절히 사모하고 더 많이 모이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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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0-03-08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보혈을 지나 하나님 품으로 가게 하옵소서”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고,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않으시는 하나님, 아직도 우리의 기도가 부족합니까? 아직도 우리의 회개가 부족합니까? 우리의 마음이 어두운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가 불안과 두려움에 휩싸이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주님, 우리의 상한 심령을 부여안고 주님 앞에 나아가 참회의 눈물을 쏟게 하옵소서. 어둠 속에서 흔들리는 불빛일지라도 주님의 사랑과 평화가 가득한 빛의 임재 속에 거하게 하옵소서.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치리라(대하7:14)고 말씀하신 주님, 우리의 땅을 고쳐 주옵소서. 우리의 몸과 마음을 치료하여 주옵소서. 한국교회는 그동안 나라가 위기를 당할 때 마다 차가운 교회 마룻바닥에 뜨거운 눈물을 쏟으며 민족의 아픔을 끌어안고 기도하였습니다. 한국교회가 제사장의 뜨거운 가슴으로 지치고 상한 이들의 마음을 위로하게 하시고, 선지자의 눈빛으로 새로운 희망의 길을 열어가게 하옵소서. 주님, 우리가 코람데오의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함께 모여 예배를 드려야 하지만, 국민 보건의 위기를 당한 사회를 배려하고 확산 저지를 위해서는 모임을 절제해야 하는 깊은 고뇌와 갈등의 나날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미 많은 교회들이 최소한의 모임만 갖으며 최선을 다해 방역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루 속히 코로나19의 확산이 저지 되게 하시고 잠잠하게 하여 주옵소서. 불안과 두려움의 밤이 지나가게 하시고, 상처와 고통의 시간이 물러나게 하옵소서. 저 애굽의 땅에 재앙이 덮쳤을 때, 어린양의 피를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바른 이스라엘의 고센 땅은 그냥 넘어갔던 것처럼,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우리 마음의 문설주에 바르게 하옵소서. 우리 마음의 인방과 문설주에 영혼의 우슬초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바르게 하옵소서.(벧전1:2) 불안과 두려움이 우리를 에워싼다 할지라도 더욱 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을 믿게 하옵소서. 영적으로 우슬초의 가지를 들고 골고다 언덕에서 흐르는 예수님의 보혈의 피를 영혼의 문설주에 바르게 하옵소서. 그 보혈의 능력으로 아버지의 품으로 가까이 더 가까이 나가게 하옵소서. 보혈을 지나 하나님의 품으로 나아가게 하옵소서. 존귀한 주님의 보혈이 우리의 영을 새롭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가정과 직장과 사업장을 성역화 시켜 주옵소서. 우리의 행동반경을 성별시켜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성도들에게 은혜와 평강이 임하게 하옵소서. 주님, 우리의 밤이 깊습니다. 우리의 겨울이 너무 시리고 차갑습니다. 불안과 두려움의 밤을 보내고 있습니다. 상처와 고통의 겨울광야에서 떨고 있습니다. 그러나 밤이 아무리 길어도 아침이 오고, 겨울이 아무리 길어도 봄이 오듯, 우리의 아침을 기다리게 하옵소서. 우리의 봄을 소망하게 하옵소서. 우리 앞에 놓인 도전 앞에 포기하지 않게 하시고 더 담대한 믿음과 사랑으로 함께 힘을 모아 이 위기를 극복하게 하옵소서. 상처 입은 치유자로 오셔서 우리의 아픔을 체휼하시고 위로해 주신 주님의 옷자락을 붙잡게 하옵소서. 우리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우리 앞에 발걸음을 멈추어 주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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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0-03-01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당신의 소원이 무너졌을 때 어떤 마음이었나요?
    작년에 제가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미국 국가조찬기도회 개막 기도회인 ‘런천 프레이어’에서 메시지를 전하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봐도 미국 상·하의원들과 세계 각국의 대사들 앞에서 메시지를 전한 것은 대단한 일이었죠. 강단에 서기전에는 엄청나게 긴장을 했지만 그래도 제 영어를 알아듣고 박수를 쳐 주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한 번 하고 나니까 자신감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왕 이렇게 한 김에 다음 해에는 미국 국가조찬기도회 메인 기도회에서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메인 기도회에는 상·하의원은 물론이고 세계의 수많은 기독교 지도자들, 특별히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참석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메시지를 전하면 한미관계와 남북평화에 대해서 상당히 공헌을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국 목사가 미국 교회 목사들뿐만 아니라 정재계 지도자, 트럼프 대통령과 마이크 펜스가 참석한 자리에서 스피치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이겠습니까? 그래서 저를 대신해서 우리 교회 영어 목사인 브라이언 조 목사님이 많이 뛰었습니다. 그리고 미국 국가조찬기도회 측에서도 어느 정도 긍정적인 사인을 주었습니다. 미국 국가조찬기도회 메인 기도회에서 메시지를 증거할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설레고 뛰었습니다. 강사를 선정하는 마지막 단계에서도 -물론 저 혼자만 하는 것은 아니지만- 조금만 더 기다려보라는 메시지가 왔습니다. 그러나 최종 3배수까지 올라갔는데 아쉽게도 탈락되었습니다. 아직 한국 목사가 하기는 이르다는 이유였습니다. 은근하게 마음에 섭섭함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미국 국가조찬기도회 스텝 중의 한 명이 직접 한국에까지 와서 저에게 설명을 하고 양해를 구했습니다. 그들이 건네는 말이 위로가 되었습니다. “목사님이 이번에 국가조찬기도회 강사는 안 되었지만 목사님은 미국의 영적 지도를 바꾼 분입니다. 목사님은 브라이언 조를 통해서 백악관의 신앙데스크와 미국 국무부 담당자들에게 전략적인 설명과 설득을 함으로써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의 모든 공립학교로 하여금 존 에프 케네디가 금지한 기도를 자유롭게 하도록 한 것입니다. 목사님은 대단한 일을 하신 것입니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국가조찬기도회에서도 지난 60년 동안 공립학교에서 종교탄압을 받아왔던 기독교가 자유롭게 기도하고 해방이 되게 하겠다고 선포를 하였습니다. 저는 강사로 서지 못했지만 이러한 일로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보다 더 큰 선물은 저희 기도의 어머니 정금성 권사님의 건강을 선물로 받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다보면 다 되리라고 생각했던 꿈과 소원이 무너질 때가 있습니다. 그때의 심정은 너무 실망스러울 수 있지요. 그러나 그 꿈은 무너져도 더 좋은 길이 열리고 더 기쁜 소식을 들을 수 있습니다. 한 길이 막히면 또 다른 길이 열립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이루지 못한 소원과 꿈이 계속해서 더 반짝이고 있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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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0-02-23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꽃씨가 기지개를 펴고 있네요···”
    올 겨울은 유난히도 길었던 것 같습니다. 폭설이 내리고 한강이 얼지는 않았지만 겨울이 지난하게 느껴졌습니다. 초갈등의 사회 때문이었을까요, 최근에 닥친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일까요. 그래서인지 모두가 봄을 더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우한 폐렴을 제일 먼저 발견했던 리원량 의사도 그토록 봄이 오기를 기다리다 떠났지요. 아직 봄이 오지 않았는데도 봄을 애타게 기다렸던 개구리들이 나와 추워서 죽었다는 보도도 있었습니다. 그만큼 올해는 우리 모두가 봄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실 이맘때면 꽃씨가 기지개를 펼 때입니다. 아니 꽃씨는 한 겨울에도 꿈을 꾸지요. 눈보라가 치고 온 땅이 얼어붙어 있을 때에도 꽃씨는 파란 잎의 꿈을 꿉니다. 또 붉고 화사하고 향기로운 꽃의 꿈을 꾸고요. 그 사이로 나비 떼가 날아오는 꿈, “아, 꽃을 피우는 건 꿈꾸는 나비지”라는 독백도 할 것입니다. 그런 꽃씨를 땅에 뿌릴 때 꽃씨는 마침내 자신의 꿈을 이루게 되는 거지요.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초갈등 사회입니다. 모두가 내편 네편으로 나누고 서로가 서로를 공격하는 분위기입니다. 지난 주 지방에서 목회를 잘 하시는 목사님이 저를 긴히 만나자고 하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소 목사가 보수 우파인줄 알았는데 요즘은 좌파 성향을 보인다는 루머가 있어서 염려하는 마음으로 만나자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그 목사님에 이렇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목사님, 염려할게 뭐가 있습니까? 목사에게는 좌우보다 중요한 게 중심이죠. 목사님이야 특정지역에서 목회를 하셔서 잘 모르겠지만 수도권에서 목회하는 사람은 좌우를 다 품어야 할 상황이 많습니다. 자칫하다가 목사마저 진영논리로 편가르기를 할 수 있습니다. 목회자는 사람들의 심령 속에 생명의 꽃씨를 뿌리고 성경적 세계관과 가치관의 꽃씨를 뿌려주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도들이 스스로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되지요. 그러므로 진보적이고 좌편향적인 사람도 하나님의 사랑으로 품으며 그 마음에 사랑의 꽃씨를 뿌려주면 스스로 시대에 합당한 성령의 열매를 맺는 것을 봅니다.” 많은 이야기가 오갔지만 저도 제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고, 그 목사님도 저에게 많은 부분을 공감하고 가셨습니다. 당연히 기독교는 나라를 지키고 세우는 종교입니다. 그렇다고 목회자가 지나치게 이념만을 가르치고 정치를 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지요. 목사는 먼저 성도들에게 생명의 꽃밭을 일구어주고 초갈등 사회일수록 화해의 꽃씨를 뿌려줘야 합니다. 봄이 오기를 고대하는 마음이다 보니 마치 꽃씨가 기지개를 켜고 있는 듯 느껴집니다. 겨우내 꾸었던 꿈을 이루고 싶어서죠. 저는 한결같이 꽃밭을 일구며 꽃씨를 뿌리는 사역을 해 왔습니다. 세종도서문학나눔에 선정된 제 에세이 책의 제목도 ‘꽃씨 심는 남자’입니다. 여러분 안에는 꽃밭이 어떻게 일구어져 있는가요. 사방이 비난과 공격, 증오와 분열, 에덴의 동쪽의 가시들로 가득한 때에 이제 우리 안에 있는 생명의 꽃씨, 꿈의 꽃씨, 화해의 꽃씨가 깨어나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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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0-02-16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당신의 뒷모습을 본 적이 있나요?
    지난 주 월요일 성도 몇 사람과 식사를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식사 중에 지난주일 설교 시간에 권사님의 간증을 하다가 갑자기 제가 강단에 나와서 춤을 추던 이야기가 화제가 되었습니다. 그때 많은 분들이 웃기도 하였지만 눈물을 흘렸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제가 춤추는 중에 뒤로 돌았을 때 저의 등을 보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는 것입니다. 왜 저의 앞모습 보다 뒷모습에서 눈물이 왈칵 터졌느냐고 물어보니까, 제가 새에덴교회 뿐만 아니라 복음의 가치와 한국교회의 영광성을 위해 등에 짐을 지고 가는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순간적으로 저의 어깨가 감당하고 있는 무거운 짐이 느껴져서 눈물이 났다는 것입니다. 사실 그랬습니다. 저는 근래에 다른 것은 그만두고 정권사님 일로 얼마나 무거운 짐을 졌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새에덴교회는 물론 한국교회를 위해 많은 짐을 지었습니다. 저도 우리 교회 안에서 우물 안의 개구리식 사역을 할 수 있지만 교회 생태계와 공적 사역에 대한 경종을 듣고 스스로 짐을 지고 십자가의 길을 간 것입니다. 그런데 힘들고 어려운 때 가끔 돌아가신 아버지의 꿈을 꿀 때가 있습니다. 어머니 꿈은 전혀 안 꾸는데 아버지의 꿈을 꿉니다. 그것도 아버지와 정면에서 마주보는 꿈이 아니라 쟁기를 짊어지고 논으로 가신다든지, 괭이나 삽을 들고 걸어가는 뒷모습을 보는 꿈을 꿉니다. 솔직히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서먹서먹하고 불편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까? 더구나 저의 아버지는 어렸을 적부터 소리를 잘 지르셨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습니다. 그러나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의 모습은 항상 희생하는 이미지로 기억되어 왔습니다. 아무리 뙤약볕이 비추고 비가 오는 날에도 괭이나 삽을 들고 논으로 가셨거든요. 저는 마루에 앉아 그런 아버지의 뒷모습을 많이 봤습니다. 그런데 힘들 때마다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는 꿈을 꾸곤 했지요. 그런 꿈을 꾸고 나면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아, 나도 쟁기를 들고 논으로 가야 한다. 괭이나 삽을 들고 사역의 현장으로 가야 한다.” 그런 저의 뒷모습을 우리 교회 성도님들이 보고 느낀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성도들의 앞모습보다도 사명의 짐을 지고 가는 뒷모습을 볼 때 더 은혜스러울 때가 있을 것입니다. 마치, 억지로라도 십자가를 졌던 구레네 시몬의 등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훗날 구레네는 십자가를 졌던 어깨와 등을 사도들과 모든 성도들에게 자랑했다고 합니다. 이 시대에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기 위해 사명의 짐을 짊어지고 가는 여러분의 어깨가 자랑스럽습니다. 여러분의 등 뒤가 오늘처럼 아름답고 듬직하게 느껴진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어깨와 등을 생각하니 왠지 눈물이 쏟아지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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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0-02-09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살아줘서 고맙습니다···”
    지난 월요일 저녁, 정권사님 기관지 내시경과 조직검사를 앞두고 거의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습니다. 한편으로 불안하고 초초하기도 했지만 기도만 하면 평안의 감동과 확신이 왔습니다. 그렇게 뜬 눈으로 밤을 새우고 새벽기도 1,2부를 다 인도하였습니다. 마침내 오전에 권사님은 검사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하나님이 주신 감동대로 전혀 암이 아니었습니다. 너무 기침을 많이 하셔서 염증이 결석으로 굳어진 것입니다. 권사님이 깨어나셨을 때 제가 손을 잡고 이렇게 말씀 드렸습니다. “어머니, 살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새해에 최고의 상을 수상하셨습니다. 모르셨죠? 하나님께서 생명대상을 주셨어요. 권사님, 무등산에서 저와 처음 만났던 때를 기억하시죠? 제가 앞으로는 더 잘 모실 테니 이제 날마다 세상을 늘 첫날처럼 살아가세요.” 이는 나태주 시인의 표현을 일부 인용한 말이기도 한데요. 정권사님을 무등산에서 처음 만났을 때 저는 누구하나 도와주지 않던 떠돌이 신학생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감동과 응답으로 권사님께서는 저의 기도후원자가 되어 주셨고, 훗날 장모님이 되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개척 초창기부터 지하실에서 주무시면서 오직 저와 우리 교회를 위해 기도의 눈물을 쏟고 쏟아오셨습니다. 무등산의 첫날이 권사님을 그렇게 만든 것이죠. 그래서 제가 남은 세상을 무등산의 첫날처럼 살아주시라고 부탁드린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권사님 뿐만이 아니라 우리 새에덴 성도 모두도 살아주셔서 고맙기 그지없습니다. 우리가 살아 있는 것 자체가 하나님께 생명대상을 받은 것이 아닐까요. 우리 중에는 연초부터 여러 가지 시련에 봉착한 분들도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로부터 생명대상을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나름 가슴 설렜던 첫날이 있지요. 교회로 돌아와 잠시 서재의 문을 열어놓으니 상큼한 바람이 난초 사이를 흔들고 들어왔습니다. 그 바람은 난초 잎사귀를 흔들 뿐만 아니라 생의 찬가를 부르며 지나가는 듯 했습니다. 모든 생명은 세상을 첫날처럼 살아야 한다고 말입니다. 지금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세계를 강타하면서 사람들이 불안에 떨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루하루를 첫날처럼 살아간다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도 우리에게 어떻게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하루하루를 첫날처럼 가슴 설레게 살아가고, 숨 쉬는 순간마다 생명 대상을 허락하신 주님께 감사하고 살아간다면 어떻게 바이러스가 우리를 이길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생명대상을 받은 사람이라면 세상을 가슴 설레는 첫날처럼 살아가야 합니다. 각자의 삶의 첫날은 다르겠지만 그 소중한 첫날을 생각하면서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살아가야죠.
    • 칼럼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0-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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