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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아쉽지만 마음은 함께 합니다
    제가 탈진을 하여 링거를 맞고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 부산 세계로교회를 섬기시는 손현보 목사님이 찾아오셨습니다. “목사님, 큰일 났습니다. 이러다가 한국교회가 큰 일을 당할 것 같습니다. 10월 27일 종교개혁주일 오전 11시에 광화문에서 한국교회를 지키는 연합예배를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누워 있는 채로 말했습니다. “그렇게 긴박한 상황인가요? 아직은 그 정도의 상황은 아닌 것 같지만, 그래도 목사님이 함께하자고 하면 해야지요. 제가 주일날 예배를 포기하면서라도 기꺼이 가겠습니다. 그러나 주일 오후에는 제가 참석할 수 없습니다. 한국 기독교 선교 140주년을 기념하여 일간지 기자들과 함께 초기 내한 선교사들이 자라고 배운 신학교, 교회와 역사관을 방문하기 위해 미국을 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한국교회를 위한 염려와 걱정은 같았고 의견이 동일했습니다. 그 분도 단순하고 저도 단순하게 쉽게 약속하고 헤어졌습니다. 사실 말이 그렇지 주일 낮 예배를 포기하고 광화문으로 모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더구나 우리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주일 오전에 광화문에서 모인다는 것은 다른 집회와 괜한 혼선을 빚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저는 그런 복잡한 계산보다는 순수한 마음으로 동의를 한 것이죠. 저의 몸은 많이 지쳐서 계속 휴식을 취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집회 시간이 오전에서 오후로 바뀌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기자단과 순례하는 일정을 조정하기 위하여 담당 목사에게 날짜를 조정해 보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러나 다각도로 노력해봤지만, 기자단의 출장 날짜와 선교사들의 출신 신학교 총장과 교수, 역사관 예약 등의 변경이 어렵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아펜젤러 선교사의 후손도 어렵게 시간을 마련했다고 해서, 이를 어찌할까 고민에 빠졌습니다. 이때 손현보 목사님께서 저에게 공동대회장을 맡아 달라는 간절한 문자를 보내 주셨습니다. 저는 이 일을 놓고 제 주변에 있는 동역자들과 의논을 하였습니다. 저는 비록 참여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제 이름만은 넣는 게 좋지 않느냐고 설득을 했습니다. 그러나 저와 함께한 동역자들이 만류를 하는 것입니다. “담임목사님, 동기와 목표는 참 좋은 것이지만 일회성 집회로는 대처할 수 없는 부분도 있으니 기도회 후에도 있을 일을 감당해도 되지 않겠습니까? 적지 않는 재정적 부담도 있을거구요. 더구나 참석 못하면서 이름을 올리는 것은 좀 그렇습니다. 날짜가 안 맞아서 출국하시는데도 하나님의 뜻이 있을 것입니다. 저희가 담임목사님을 대신해서 희망하는 성도들과 함께 다녀오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아직은 여당이나 야당에서도 차별금지법이나 동성애법이 발의된 게 없습니다. 그러니 조금만 더 차분하게 지켜봐 주시면 좋겠습니다.” 솔직히 저에게도 어떤 직책을 맡으면 재정적 부담이 클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왔습니다. 그렇지만 그 이후 저는 잠들어도 10.27, 일어나도 10.27 생각뿐이었습니다. “집회가 잘 되어야 할 텐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이든지 간에 순수한 진의가 잘 전해져야 할텐데...” 저는 개인적으로 손현보 목사님께 죄송한 마음이 많습니다. 그러나 갑자기 집회 시간이 오후로 변경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참여를 못하게 되었지만요. 물론 한 번의 큰 기도회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전략적으로 반기독교의 흐름과 공격을 막아내는 것입니다. 장수는 앞서서 전투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전선을 보아야 하기 때문이죠. 어쨌든 큰 기도회에 참여하지 못하게 된 것을 아쉽게 생각합니다. 한국교회가 방식의 차이일 뿐이지 생각은 다 똑같을 것입니다. 저는 앞으로도 전략적으로 계속해서 반기독교 악법을 막아내는데 앞장설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저런 이유로 인해 참여하지 못하는 사람도 정죄를 해서는 안 됩니다. 어떤 집회나 기도회를 통해서도 한국교회를 갈라치기 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 기도회를 우려하고 너무 비판을 하는 분들도 자제해야 합니다. 칭찬은 못할망정 비판을 하는 것은 그 또한 한국교회를 갈라치기 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아쉬운 마음을 전하면서 기도회가 순탄하게 잘 이루어지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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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4-10-27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꼭 지켜내야 할 것들”
    지지난주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발표가 났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정말 대한민국 문학계에 큰 경사요 쾌거이지요. 사실 아시아 여성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으면 좀 들떠야 되지 않겠습니까? 일반적으로라면 본인이 언론에 나와 기자회견도 하고 들뜬 소회를 밝혀야 되지요. 그러나 그녀는 전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고향에서 잔치를 하려고 하는 아버지에게 “지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전쟁이 치열해서 날마다 주검이 실려 나가는데 무슨 잔치를 하느냐”며 만류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노벨문학상을 준 것은 즐기라고 하는 게 아니라 더 냉철해지라고 준 것 같다”고 밝혔다는 것입니다. 그녀는 왜 그렇게 해야만 했었을까요? 그녀는 애당초 유명 스타가 되기 위해서 글을 쓴 게 아니라 자기만의 문학 세계를 열어가기 위하여 글을 썼기 때문일 겁니다. 영국 가디언지에서도 “매우 중요한 목소리와 놀라운 인간성을 가진 작가”라고 평가를 하였습니다. 그래서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에도 자기만의 정체성과 세계를 지켜내기 위해서 한동안 두문불출해 온 것 같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지켜왔던 문학성 또 앞으로 전개해 나갈 밝고 새로운 문학의 세계를 지켜내기 위해서 힘을 자랑하지 않고 한동안 자기 자신을 조심스럽게 관리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정말 들뜨지 않았을까요? 들뜨지 않았으면 인간이 아니겠지요. 자신이 말하기를 “심장 속 불꽃이 타는 곳, 그게 내 소설”이라고 했다면 왜 가슴이 타오르지 않고 뛰지 않았겠습니까? 그렇지만 앞으로는 자신이 밝은 글을 쓰고 싶다고 한 것처럼, 자신의 문학성과 새 문학의 미래를 지키기 위해 은둔을 했지 않나 싶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지난 목요일에 공개석상에서 “지난 일주일 특별한 감동이었지만, 이전과 일상이 달라지지 않길 바란다”고 했습니다. 또한 수상 소식을 통고받을 때 “믿어지지 않는 현실처럼 느껴졌다”고 했지요. 사실 인문학이란 잃어버린 존재의 질문을 다시 찾아주는 것이지만, 스스로 답을 주지는 못합니다. 그 대답은 오직 성경만이 해주지요. 글을 쓰는 한 사람으로서 이제부터는 한강 작가가 하나님을 만나고 더 밝고 희망찬 작품을 써 주기를 기대도 해 봅니다. 저도 산책을 하면서 생각을 해보니까 앞으로 이루어야 할 일도 많이 있지만 지금까지 해낸 일들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생각해 봤습니다. 저는 십수 년 전부터 한국교회 대형교회 목사로서는 최초로 이슬람의 전략과 문제를 한국교회에 알려서 경각심을 일깨우고 각 교단마다 이슬람 대책 위원회를 생기게 하는 불씨가 되었습니다. 또한 빌헬름 라이히의 성 혁명에 기반한 동성애 운동의 폐해를 설교와 강연, 오피니언을 통해서 알리고 한국교회동성애대책협의회(한동협)의 초대 회장을 맡으며 반동성애 운동에 앞장섰습니다. 실제로 지금까지 수 차례 차별금지법 입법화 시도가 있었지만, 최전선에 서서 막아낼 수 있었습니다. 종교인 과세 문제가 대두 되었을 때도 ‘종교소득 과세’가 될 위기에서 ‘종교인 과세’가 될 수 있도록 대처를 하였습니다. 코로나 시국에서도 이미 정부에 예배의 주도권을 빼앗겨 버린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한국교회의 사회적 이미지를 지키면서도 예배를 회복하기 위해서 얼마나 애를 썼는지 모릅니다. 그 모든 일들은 단 한 번에 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용기와 의협심도 있어야 하지만, 정말 치밀하고 전략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한강 작가의 소회처럼, 저도 지금까지 너무 은밀한 영역에서 전략적으로 활동을 했는데 앞으로는 좀 더 선구적이면서도 격이 있는 사역을 해 나가야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걸 해 나가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해온 일들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도 듭니다. 꼭 지켜야 할 일이 너무 많습니다. 저의 건강과 목회, 교회와 성도들, 한국교회 생태계, 또한 개인적인 지성, 감성, 영성, 예술과 문학의 세계를 지켜나가야 하리라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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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4-10-20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독수리는 참새와 같이 날지 않는다”
    저는 교회를 다니며 신학교를 가겠다고 해서 집에서 쫓겨난 사람입니다. 혈혈단신으로 광주신학교에 갔습니다. 저는 광주신학교를 다니면서 1등을 한 번도 놓쳐본 적이 없습니다. 1등으로 입학을 해서 1등으로 졸업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저의 상대는 나를 뒤쫓아 오는 동료 신학생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적어도 전남대생들과 경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많이 다니는 서점을 다니며 부지런히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불타는 소명감에 백암교회를 개척하러 갔습니다. 그때 얼마나 핍박을 받고 고생을 했는지 모릅니다. 교회를 나가는 사람들한테 벌금을 만 원, 1만 2천 원씩 매겼습니다. 그래도 교회가 망하지 않으니까 부락 주민들은 허구한 날 술을 먹고 150명 200명이 떼를 지어 와서 저에게 멱살을 잡지 않나요, 침을 뱉지 않나요, 천막 예배당에 똥을 싸 놓고 가고, 차임벨 줄을 끊어버리고, 온갖 핍박을 다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한 이웃 교회 어느 목회자가 우리 동네 이장한테 와서 “저 전도사는 사이비라고, 자격증도 없는 놈이 와서 전도사 하고 있다”고 험담을 하였습니다. 순간 저도 그를 원망하고 싶었지만, 하지 않았습니다. 적어도 저는 그런 목회자를 상대하지 않고, 당시 광주중앙교회나 서울 영락교회, 여의도순복음교회와 경쟁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 서울로 신학교를 왔습니다. 서울에 있는 개혁신학연구원에 와서도 SKY 대학 다니는 사람들과 경쟁을 했습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당시 종로서적에 가서 SKY 대학생들이 보는 책들을 따라서 보기도 하였습니다. 세월이 흘러 생각해 보니까 사람은 마음의 크기만큼, 생각의 크기만큼, 믿음의 크기만큼 성장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새도 그런 것 같습니다. 새도 날개가 커야 높이 납니다. 참새나 제비 같은 경우는 낮게 날면서 곤충이나 잡아먹고 벌레나 잡아먹습니다. 그러나 독수리는 참새나 비비새나 제비와 함께 날지 않습니다. 바람이 불건 비가 오건 태풍이 불건 하늘을 날면서 산짐승들을 노립니다. 어쩌면 독수리는 비행기와 경쟁할지도 모릅니다. 저도 이따금씩 그런 생각을 합니다. “나는 독수리가 돼야지, 절대로 남이나 헐뜯으며 재잘거리는 참새나 제비는 되지 말아야지. 나는 오늘도 푸른 창공을 나는 독수리가 되어야지.” 오늘 저녁에는 광신대학교 70주년 기념 선교대회가 우리 교회에서 열립니다. 독수리의 꿈을 꾸던 가난하고 외로운 신학생이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대형교회 목회자가 되어 동문 선교사님들을 섬기게 되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해마다 광주에서 선교대회가 열려서 설교를 여러 번 하러 갔지만 올해는 우리 교회에서 하고 싶다고 해서 섬기게 된 것입니다. 저는 50대에 이미 국가조찬기도회 설교를 두 번이나 했고 교단 총회장과 연합기관 대표회장을 했지만, 앞으로 한국교회를 향해 더 많이 섬기려고 합니다. 물론 앞장서서 나설 때도 있지만 때로는 은밀하고 전략적으로 반기독교 악법을 막아왔습니다. 오늘 저녁은 지방 신학교에서 독수리의 꿈을 꾸다가 해외로 가서 선교사역을 감당하는 분들을 섬기는 날입니다. 특별히 오늘은 제가 축사를 하고 교단 총회장(김종혁 목사)이 설교를 하십니다. 우리 모두 독수리의 꿈을 이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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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4-10-13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셈, 함, 야벳
    이번 주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은 국민일보 10월 1일 자에 게재되었던 소강석 목사의 성경 인물 시로 대체합니다. <작가 주> 셈, 함, 야벳 왜 그랬을까 포도주에 만취하여 벌거벗을 정도로 그를 혼미케 하였던 것은 살아남은 자의 슬픔인가 살아남아야 하는 자의 고뇌인가 겉옷을 벗어 고개를 돌린 채 사실을 덮어 복의 문을 열었던 셈과 야벳 담요 한 장 덮어주지 못할망정 사실을 까발려서 오고 오는 세대에 저주의 문을 연 함 그대 손에는 무엇이 들려 있는가 흉악하고 증오스러운 사실의 날카로운 칼날인가 아니면 지금이라도 고개를 돌려 겉옷으로 허물을 가려주는 따스한 침묵인가. 詩 소강석 목사 (새에덴교회) 해설 : 김종회 교수(문학평론가, 전 경희대 교수) 셈과 함과 야벳은 노아의 세 아들들이다. 노아는 포도주에 취해 벌거벗을 정도로 혼미하여 잠들었다. 시인은 방주 사건 이후 살아남은 자의 슬픔 또는 고뇌로 그를 이해했다. 문제는 이 아버지를 대하는 아들들의 태도다. 셈과 야벳은 아버지의 나신을 겉옷으로 덮고 함은 이를 ‘까발렸다.’ 노아가 깨어나서 모든 사실을 알게 되자, 두 아들을 축복하고 한 아들의 후손을 그 종으로 지명했다. 이 엄중한 경험칙은 오늘의 신앙생활에 있어서나 또 세속적 삶에서나 매한가지다. 시인은 이 아들들의 두 가지 태도를 두고 ‘날카로운 칼날’과 ‘따스한 침묵’의 양자로 구분하여 묘사했다. 성경의 고색창연한 문면에서 만나는 여러 일화와 그 교훈이 지금 우리의 일상 가운데서도 여전히 상존함을 적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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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4-10-06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하나님의 걸작품 지구
    저는 요 몇 주 동안 이번 주 설교를 준비하기 위해 많은 책들을 봤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창조와 절대 섭리를 알지 못하는 천문학자들에 의하면 지구는 은하계와 초은하계에서 볼 때 점 하나에 불과하다고 표현한 것을 보았습니다. 물론 크기로 볼 때는 그렇게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지구의 환경과 세계로 볼 때는 절대로 그렇게 말할 수가 없습니다. 저는 김동찬 박사님이 쓴 ‘천문학적 관점에서 본 창조론’이라는 책을 접했습니다. 그는 NASA 제트추진연구소에서 근무를 하다가 지금은 미국 국립 전파천문대에서 근무하고 있는 이 시대에 석학 중의 석학입니다. 그런데 그는 지구를 하나님의 걸작품으로 표현했습니다. 천문학적으로 볼 때 지구에는 10가지 정도의 중요한 요소를 갖추고 있다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먼저 태양으로부터 적당한 거리에서 공전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을 하기 때문에 지구에는 물이 존재하고 생물들이 살기에 적당한 온도를 갖추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자전축이 적당히 기울어져서 사계절이 존재하고 극심한 기상 이변이 없는 온화한 기후를 가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지구의 자전축이 23.5도로 기울어지지 않고 90도로 기울어져 있다면 지구촌에는 극심한 더위와 추위만 있을 것입니다. 또한 지구는 적당한 자전과 공전의 속도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구의 자전 속도는 24시간으로 낮과 밤이 12시간씩 나뉘어 있습니다. 그래서 하루에 8시간 내외로 일을 하고 8시간 정도는 여가생활을 하며 8시간 정도의 수면을 취할 수 있게 아주 이상적인 시간 체제를 마련해 주고 있습니다. 또한 지구는 너무 작지도 않고 크지도 않는 적당한 공간으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 지구가 지금보다 반으로 작아진다면 지구의 질량은 8분의 1로 줄어들 것이고 지표면의 중력도 반으로 줄어들고 만다고 합니다. 공기가 줄어드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요. 그뿐일까요? 지구에는 해로운 자외선을 걸러내는 방패막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지구는 우주 공간으로부터 끊임없이 쏟아지는 자외선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걸러지지 않으면 우리 안에 있는 세포가 파괴되고 돌연변이를 일으키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구는 거대한 자기 방패막인 밴앨런 복사대(Van Allen radiation belt)라는 자기권을 형성하여 온갖 우주의 해로운 자외선을 막아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예외적으로 지구에는 큰 달을 하나 가지고 있습니다. 이 달이 조석 현상을 일으키고 밀물과 썰물을 발생시킵니다. 이 밀물과 썰물 때문에 플랑크톤과 산소를 공급하여 어류들이 살 수 있게 합니다. 특별히 지구는 진공청소기인 목성에 의해 보호를 받고 있다고 합니다. 거기에다가 지구는 판구조론에 의한 자동 온도 조절 장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적당한 크기의 에너지원인 태양을 가지고 있고 은하계의 중심으로부터 최적의 위치에 존재하고 있다고 합니다. 저자에 의하면 이 모든 것을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주관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는 그의 저서를 통해 진화론을 철저히 부인하고 창세기에 나타난 하나님의 창조론을 주장하는 것을 봤습니다. 그는 창세기에 근거하여 지구는 하나님의 걸작품이라고 천명합니다. 이런 크리스천 과학자들이 있어 주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김동찬 박사뿐만 아니라 크리스천 과학자들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가득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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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4-09-29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걷는 한 절망이 없다
    정말 올해만큼 더운 여름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제 생에 몇 년 동안 흘려야 할 땀을 올여름에 다 쏟은 것 같습니다. 저는 열대야 기후를 지닌 나라에 가는 걸 좋아하지 않습니다. 어쩔 수 없이 집회 때문에 가더라도 아예 에어컨을 틀어 놓고 호텔에서 방콕 하다가 돌아오죠. 그런데 올여름에는 가만히만 있어도 땀이 줄줄 흘렀습니다. 정말이지 에어컨을 틀어 놓고 뭔 일을 해도 땀이 났습니다. 여름수련회 전후로 땀을 얼마나 많이 흘렸으면 제가 탈진을 겪었겠습니까? 그래도 제가 쉬지 않는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먼저는 기도와 성경 연구죠. 그런데 그 외에 멈추지 않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산책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말이 산책이지 정말 산에 오르면 숨이 가쁠 뿐만 아니라 땀이 소낙비 내리듯이 흘러내립니다. 산을 오르다가 멈추어서 땀을 닦고 또 걸어가면 또 흐르고 또 땀을 닦고 어떨 때는 아예 벤치에 앉아서 땀이 다 식은 후에 또 걸어갔습니다. 그런데 50m, 100m만 걸어가면 또 땀이 줄줄줄 흘러내립니다. 그래서 동남아에 가서는 방콕을 하지만 여기서는 제가 방콕을 할 수가 없습니다. 산책은 저의 습관이기 때문입니다. 아니, 저의 건강을 위해서라도 산책은 꼭 해야 하지요.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시간은 금요일입니다. 일기예보 상으로는 오늘부터 비가 온 후 기온이 뚝 떨어진다고 합니다. 과연 그 말이 얼마나 맞을지 아직도 참 믿어지지가 않지만요. 10월이 가까이 오는데도 이런 찜통더위가 말이나 된단 말입니까? 그래도 저는 끊임없이 산책을 했습니다. 목이 마르면 물을 마시고 계속 산책을 하였습니다. 프랑스말로 뚜렷한 목적 없이, 그저 도시의 흐름 속에 자신을 맡기고 서서히 걷는 산책을 ‘플라느리(flanerie)’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런 플라느리를 즐기는 사람을 ‘플라뇌르(flaneur)’라고 합니다. 저 역시 플라뇌르라고 할 수 있지요. 저는 산책을 하면서도 숨이 가쁠 때마다 저도 모르게 “주여”를 외쳤습니다. 그런데 목요일 저녁, 산에서 들리는 귀뚜라미 소리가 참 처량한 것 같았습니다. 아직 가을이 먼 것 같은데도 한 달 전부터 귀뚜라미가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귀뚜라미가 한 달 전부터 노래했는데 언제 가을이 올까요. 언젠가는 오겠죠. 가을이 올 걸 생각하니까 찜통더위에 산책을 하는 것보다 단풍 옷을 입은 나무 사이를 걸을 생각에 맘이 설렙니다. 정말 가을이 오긴 오겠죠. 자크 레다가 말한 것처럼 “걷는 사람에게는 절망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걷는 자에게 절망이 없다면 오르는 자이겠습니까? 그런데 생각해 보니 가을보다 더 좋은 계절이 있네요. 그 계절은 바로 ‘너라는 계절’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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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4-09-22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참된 쉼은 하나님 품에서만
    제 인생 처음으로 휴식 기간을 가져보려 했습니다. 물론 사역적으로야 해외를 많이 왔다갔다 했고, 부모님을 전도하기 위해 고향을 왔다갔다 한 적은 있지만 진정한 휴식과 쉼을 위해 휴가를 가져본 적은, 성지순례를 제외하고는 없습니다. 지금까지 부교역자들이 다 휴가를 갔을 때도 저 혼자 남아서 교회를 지켰고 모든 사역을 다 감당했습니다. 그런데 여름수련회 이후 지친 몸이 쉽사리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체력이 번아웃되니 마음도 지치는 걸 느꼈습니다. 그래서 어디론가 멀리 떠나 한 주간을 쉬어보려고 했습니다. 이런 제 마음을 알고 집사람이 강원도의 한 호텔을 예약해 줬습니다. 그곳은 깊은 산속에 계곡을 끼고 있는 호텔입니다. 그런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참된 쉼과 안식은 주님이 허락해야 되고 주님의 품 안에서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제가 가는 도중에도 유튜브로 교역자수련회를 다 지켜봐야 했거든요. 게다가 도착을 했는데 세상에 설악산 그 깊은 계곡에도 무슨 찜통더위가 머물러 있는지, 바람 한 줄기도 없는 무더위가 앉아만 있어도 땀을 흘리게 하였습니다. 후레시를 켜고 계곡길을 걸었는데 땀이 온몸을 적실 뿐만 아니라 땀이 눈에 들어가서 도저히 끝까지 가지를 못했습니다. 그래도 내일은 시원해지겠거니, 에어컨 바람에 마음을 달래며 우선해야 할 철야기도 설교 원고 기초를 준비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은 늦게까지 늦잠을 자겠거니 하고 맑은 공기를 마시려고 창문을 열어놓고 잤습니다. 그런데 웬일입니까? 이른 아침부터 요란한 경고신호 소리와 드르렁 드르렁 하는 소리가 막 들려오는 것입니다. “삐삐삐삐~ 드르르르 드르르르~” 잠시 그러고 말겠지 했는데 계속 소리가 났습니다. 창문 밖으로 보니까 마침 호텔이 비수기라 보수공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가던 날이 장날이라고 이삿짐센터 같은 차가 와서 막 드르렁거리며 긴 사다리를 놓고 침대를 바꾸고 있었습니다. 하루 종일 이 요란한 소리가 저의 심경을 거슬렸습니다. 그렇다고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길을 걸을 수도 없고요. 그래서 다음 날은 일찌감치 약을 먹고 잠을 청했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은 더 이른 아침부터 삑삑 소리가 나고 드르렁 드르렁 소리가 나는 것입니다. 호텔 측에 항의할 수도 없고, 게다가 띵동 소리가 나서 가보니까 호텔 청소하는 분이 수건을 가지고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밥을 먹고 우산을 들고 계곡길을 걸어갔습니다. 그런데 옛날에는 계곡길이 대부분 흙길이었고 자연 길이었는데, 얼마나 폭우가 쏟아졌는지 길이 다 허물어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국립공원에서 길을 새로 만들어줬는데 대부분이 돌길이었습니다. 물론 그날은 비 오듯 쏟아지는 땀을 닦으며 목표 지점까지 다녀왔습니다. 이게 건강에 보탬이 되었는지 해가 되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강원도까지 간 게 너무 아까워서 깡을 발휘하며 다녀온 것입니다. 제 생애 처음으로 휴식과 안식의 낭만을 가지려고 했는데 그 낭만이 깨져버린 것이 참 안타까웠습니다. 그래도 그나마 계곡길을 완주한 것은 보람스러웠긴 했습니다만. 그날 저녁부터 강원도에도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짐을 싸들고 교회로 왔습니다. 돌아오면서 어거스틴의 말이 생각 났습니다. “하나님, 당신께서는 우리를 당신을 위한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마음은 주님 안에서 쉬기 전까지는 결코 쉼을 누릴 수 없습니다.”그렇습니다. 쉼도 하나님이 허락하셔야만 하는 것입니다. 아니 참된 쉼은 하나님 안에서만 있는 것입니다. 물론 환경도 중요하고 분위기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나와의 대상관계가 잘 돼야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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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4-09-15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황순원문학상(시인) 수상소감
    금주 아포리즘은 9월 6일(금) 황순원문학상 수상소감으로 대체됩니다. <작가 주> 황순원 문학상 수상 통보를 받고 심장이 멎는 듯하였고, 현기증이 날 정도로 놀랐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팩트였고, 마침내 오늘 수상 자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갑작스러운 일로 제가 정말 올 수 없는 형편이었지만 너무나 오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오면서 상을 받는 기대감도 있었지만, 부담감이 더 컸습니다. “내가 『너라는 계절이 내게 왔다』라는 시집보다 더 등급된 시를 써야 하는데 과연 내가 해낼 수 있을까?” 이런 부담감이 마음을 눌렀지만 차 창문을 여니 양평에서만 맡을 수 있는 풀잎과 가을 꽃잎들의 향기가 너무나 시원하게 느껴졌습니다. 양평에 사는 분들이 너무 부러워 보였습니다. 왜냐하면 저도 황순원의 ‘소나기’에 나오는 소년처럼 지리산 자락에서 태어나 자랐거든요. 그런 제가 대기권 밖의 별처럼 마음속으로 흠모하고 동경하던 황순원 선생님의 문학상을 받게 되어서 큰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황순원의 문학정신은 순수와 절제의 서정적 미학이라고 생각합니다. 황순원 선생님께서는 글을 쓰실 때 함부로 칼을 휘젓듯이 쓰지 않고 순수하면서도 절제의 조화를 이루는 문학 세계를 추구하셨습니다. 지금도 한국문학은 황순원 선생님께서 일구신 문학의 지평 위에서 더 새로운 세계를 넓혀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문학 세계가 탐미주의이든, 해체주의이든, 초월주의이든, 어떤 다채로운 빛깔을 채색하더라도 황순원 선생님께서 지켜가신 순수와 절제의 서정성은 사라지지 않고 등불이 되어 앞길을 밝혀줄 것입니다. 저는 전문 문학인도 아니고 시를 전문적으로 쓰는 전업 시인도 아닙니다. 한 사람의 목회자로서 하나님과 사람, 자연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의 마음을 담아 한편, 한편 시를 썼습니다. 저의 시들이 별처럼, 꽃처럼, 햇살처럼 사람들의 마음에 닿아 사랑과 위로, 희망의 노래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황순원 문학상의 순수와 절제의 서정성을 가슴에 새기며 사랑과 용서, 화해와 평화가 가득한 세상을 열어가는 꽃씨와 같은 시들을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부족한 저에게 이처럼 의미 있고 큰 상을 주신 심사위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특별히 시집 『너라는 계절이 내게 왔다』의 표사를 써 주신 정호승 시인님과 늘 격려해주신 문인들께도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이 자리에 참석하여 축하해 주신 모든 분과 새에덴교회 성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모든 영광 하나님께 올려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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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4-09-08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이미와 아직 사이에 사는 우리”
    제가 두어 주 동안 설교하고 축도만 했지 바깥에 나가서 일일이 성도들과 악수를 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수요설교를 부목사님들께 맡겼습니다. 그런데 수요일 저녁예배 때 장로님과 권사님 부부가 저한테 와서 인사를 하는 것입니다. “목사님, 저는 종암중앙교회 장로이고 권사였습니다. 그런데 용인 쪽으로 이사를 와서 한동안 종암중앙교회를 다니다가 너무 멀어서 가까운 교회를 다니게 되었어요. 그런데 새에덴교회가 우리 동네에 있다는 걸 몰랐습니다.” 장로님 부부는 그걸 알고 나서부터 우리 교회로 오기로 작정을 하고 등록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저는 2주 동안 새가족 영접도 못 했거든요. 그래서 저도 몰랐습니다. 그런데 수요일 저녁에 본인들이 저에게 와서 부부뿐만 아니라 자녀들까지 다 등록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그분들에게 이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정말 하나님은 심기도 하시고 거두게 하시는 하나님이시네요. 종암중앙교회로 가는 게 맞지만 거리상 거리가 너무 머셔서 어쩐대요. 하나님께서 저에게 큰 선물을 주셨네요. 제가 얼마나 조경대 목사님을 잘 섬긴 줄 아세요? 교회 오실 때마다 축도로 모셨고 평일에 오셨을 때도 한 번도 빈손으로 보내본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 바쁜 중에도 조경대 목사님의 천국환송예배를 제가 인도했습니다. 그런데 조경대 목사님께서 살아생전에 애써 심고 양육하고 훈련시켰던 이런 중직자를 저에게 보내주시네요. 정말 우리 하나님은 너무나 세심하시고 정확하신 분이셔요.” 제 방에 들어가서 생각해 보니 아인슈타인이 발견한 ‘물질과 에너지의 등가원리’라는 글을 읽은 게 기억이 났습니다. 물질과 에너지의 등가원리는 물질과 에너지가 동전의 양면과 같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질량과 에너지가 서로 동일하다는 원리를 말합니다. 이 법칙에 의하면 질량으로 규정되는 모든 보이는 물질은 그 안에 보이지 않는 일정한 양의 에너지를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물질은 물질 자체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창조주의 은혜, 창조주가 제정해 놓은 에너지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심는 대로 거둔다고 했지 않습니까?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거둔다는 것입니다. 육체를 위해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해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둔다는 것입니다.(갈6:7-8)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을 잊어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하나님이 약속하시고 응답하셨다 하더라도 그 약속이 이루어지는 데는 하나님의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인간에게는 크로노스의 시간으로 나타나지만 하나님에게는 카이로스의 시간에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잉태되는 순간부터 어느 누구든지 1개월이나 2개월 만에 태어난 사람이 없습니다. 예수님도 10개월 동안 마리아의 몸에 계시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일반적인 창조의 법칙입니다. 사과 씨를 심으면 그것이 싹을 틔우고 자라서 사과 열매를 맺을 때까지 과수원 지기에게는 크로노스적인 시간과 인내가 필요한 것처럼 우리의 영적인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주어졌다는 사실 자체는 이미 영적으로 하나님의 결재가 나타난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제원호 교수님에 의하면 이미(already)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인간의 현실 가운데 나타나는 데는 시간이 걸립니다. 이걸 아직(not yet)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러니까 우리는 이미와 아직 사이에 산다는 것입니다. 그 이미와 아직 사이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영적인 강도가 있습니다. 그게 사탄입니다. 사탄이가 자꾸 하나님을 의심하게 만들고 하나님의 말씀을 교묘하게 변형을 시키거나 의심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우리가 선을 행하되 절대로 낙심하지 말라.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반드시 거둘 것이라”고 말씀하지 않습니까?(갈6:9) 저는 장로님과 권사님 부부를 통해서 심고 거두는 법칙, 물리학적으로는 물질과 에너지의 등가원리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에게 정말로 위로가 되고 희망이 된 것은 저 역시도 이미와 아직 속에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도 이미와 아직 사이에 살고 계십니다. 우리에게는 아직이라고 하는 희망이 있습니다. 함께 이 글을 읽으면서 한번 이렇게 외쳐보면 좋겠습니다. “내게 아직의 축복이 남아 있어. 내게 아직의 은혜가 남아 있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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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4-08-25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잠을 자도 주일예배, 일어나도 수련회
    지난 목요일에는 다건연세내과에 가서 수액을 맞았습니다. 며칠 동안 죽을 먹어도 설사를 해서 몸을 가눌 힘이 없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주일 밤예배까지는 하나님께서 붙들어 주신 것 같았습니다. 물론 주일 1부 예배 설교를 2부 예배 때 영상으로 전했지만요. 오죽했으면 그랬겠습니까? 주일에도 설사를 했지만 설교 때는 참을 수 있는 은혜를 허락하셨습니다. 그런데 주일 밤부터 본격적으로 그동안에 쌓였던 긴장과 스트레스를 온몸으로 쏟아낸 것 같습니다. 오죽하면 자다가도 침대에 설사를 했겠습니까? 그래서 다건연세내과에 가서 영양수액을 맞고 피검사도 해봤습니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검사 결과가 영양실조 혹은 영양 불균형이라는 것입니다. 다른 데는 다 문제가 없는데 탈수로 인한 영양실조, 영양 부족이라는 것입니다. 참 어이가 없었습니다. 하긴 며칠 동안 탈수를 해버렸으니 그럴 수밖에 없지요. 지금까지 이런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제 평생 처음입니다. 너무나 기진맥진해서 잠을 잤는지 눈을 감고 있었는지 저도 몰랐습니다. 그런데 비서인 송종호 안수집사가 와서 저를 깨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다짜고짜 물어봤습니다. “지금 몇 시요?” 그랬더니 “1시가 넘었습니다.” “왜 이제 나를 깨워! 주일예배는 어떻게 하고? 주일예배 드려야 되잖아!” 송 집사가 대답을 했습니다. “오늘은 주일이 아니라 목요일입니다.” “그러면 수련회 준비해야지! 왜 이제 깨워요?” 송종호 안수집사도 어이가 없다는 듯이, “수련회는 지난주에 했잖아요.” “아, 그런가...” “2시에 손님도 오기로 약속이 되어 있습니다.” 송종호 집사의 말에 약속된 일정이 생각이 났습니다. 비틀거리며 차에 타는 순간 “아, 나는 잠을 자도 주일예배, 일어나도 온통 수련회 생각뿐이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마 제 무의식상에서 주일 2부 예배를 영상으로 설교한 것이 마음의 짐이 된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만큼 여름수련회에 대한 긴장감이 아직도 가시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수련회 기간 동안 말할 순 없지만, 저에게 스트레스를 준 몇 가지 원인이 있었거든요. 성도들에게 은혜를 끼치려니 악한 영이 저를 흔들려고 했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요나처럼 욱할 수도 없고요. 욱할수록 저는 더 사명을 붙잡았습니다. 그래서 자다가도 주일예배, 일어나도 여름수련회를 외쳤던 것이죠. 그렇습니다. 우리는 욱하는 성질을 이겨내야 합니다. 욱할수록 사명을 붙잡아야 합니다. 내 안에 요나 콤플렉스를 이겨야 합니다. 요나보다 더 큰 분을 만나며 요나서 5장의 사명 감당을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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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4-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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