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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심장이 뛰는 한 희망은 있다.”
    제가 여름수련회를 앞두고 심장이 빠르게 뛰었습니다. 아니, 여름수련회 중에도 심장이 계속 두근거렸습니다. 물론 코피도 쏟았고요. 지혈이 잘 안되었습니다. 지혈이 되었다가 또 터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병원 응급실로 가서 지혈을 했습니다. 그런데 난데없이 김문기 장로님이 단국대 병원 예약을 해놨다고 빨리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하고 의논도 안 하고 자기 혼자 일방적으로 병원으로 오라는 것입니다. 단국대 병원의 친절한 배려로 심전도, 심장 초음파, 심장 CT까지 다 찍었습니다. 그러나 전혀 문제가 없대요. 피검사도 했지만 문제가 없대요. 심장내과 교수님께서 물어보시는 것입니다. “어떨 때 심장이 빠르게 뛰고 심장이 두근거리시나요?” “제가 큰 행사를 앞두거나 설교 준비를 하거나 예배를 인도하러 갈 때 심장이 뜁니다. 또 가만히 누워 있어도 뭔가를 골똘하게 생각하고 창의적 연구를 해야 할 때는 심장이 뛰는 것 같습니다.” 그러자 심장내과 교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건 누구나 다 그런 겁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저도 논문을 쓰거나 학회에 가서 논문 발표를 할 때는 심장이 두근거립니다. 이 땅에서 살아있는 한 모든 사람이 다 그럴 것입니다. 심장이 뛰고 있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분이 목사님처럼 느껴졌습니다. 저에게 마치 한편의 설교를 해 주시는 것 같았습니다. 또 한마디를 해 주셨습니다. “너무 심장이 가쁘게 뛴다고 느껴질 때는 아무 생각도 하지 마시고 편하게 정서적 쉼을 가져보세요.” 제가 해야 할 말을 그분이 저에게 대신 해 주시는 것입니다. 교회로 오는 길에 제가 작사, 작곡한 노래가 생각이 났습니다. “인생의 무거운 짐이 그대 삶을 짓누를 때 / 막다른 절벽 끝에서 삶을 포기하고 있나요 / 아무리 외쳐도 외로운 기다림뿐 / 잠 못 드는 밤 가슴 치며 울고 있나요 / 삶의 무게와 슬픔이 어깨를 짓누르고 / 바람 부는 거리에 홀로 주저앉히려 해도 / 그 목마른 사랑과 기나긴 그리움 끝에서 / 누군가 다가와 그대 손을 잡아 줄 거예요 / 심장이 뛰는 한 포기하지 마세요 / 눈시울이 젖어 있는 한 좌절하지 마세요 / 산을 보세요 / 변함없이 그댈 향해 서 있잖아요 / 달빛을 보세요 / 언제나 그댈 바라보고 있잖아요 / 포기하지 마세요 / 다시 일어나세요 / 다시 저 새벽길을 걸어 보세요 / 그대라는 아름다운 꽃이 피어날 거예요” 그렇습니다. 심장이 뛰는 한 희망이 있는 것입니다. 심장이 뛰는 한 포기하시면 안 됩니다. 심장이 느리게 뛰건 빠르게 뛰건 그것은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희망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오늘 도 우리 모두가 심장이 뛰어서 감사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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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5-08-17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주신 은혜 안에서 최선을 다한 여름수련회
    우리 교회는 전통적으로 8월 초만 되면 여름수련회를 해 왔습니다. 이 여름수련회는 저에게 고통과 희열, 부담감과 사명의 완수감이 함께합니다. 일단은 여름수련회를 생각하면 준비 과정에서부터 막중한 부담감이 있습니다. 본문을 정하고 전체적 주제를 정한 후에 각 장에서 제목을 뽑는 일이 우선이죠. 그리고 본문을 현대적 언어와 실생활에 적용이 되도록 설교 내용을 구성해 나가는 일입니다. 이번에도 총 8번의 설교를 준비해 가는 과정에서 제 자신부터 얼마나 기대하고 사모했는지 모릅니다. 때로는 내용이 바로바로 풀리지 않아서 무릎을 꿇으며 말씀을 준비했습니다. 얼마나 오랫동안 무릎을 꿇었는지 왼쪽 발가락이 삐어버릴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말씀을 잘 준비한다 하더라도 잘 전달해야 합니다. 한 번은 강원도 하이원리조트에서 시편 51편을 주제로 수련회를 인도하는데 신장결석의 고통이 왔습니다. 워낙 고통스러워서 근처에 있는 병원에서 마약성 진통제를 놔 주었는데 그 병원에서는 달리 해볼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 진통제를 맞으며 새벽 수련회와 저녁 수련회를 인도했습니다. 그다음 날은 원주에 있는 비뇨기과에 가서 아무리 결석을 깨뜨리려고 해도 그 병원에서도 깨지를 못했습니다. 저는 결국 진통제를 맞으며 끝까지 여름수련회를 인도하였습니다. 참으로 잔인할 정도로 고통스러운 수련회였습니다. 그래도 성도들은 그 고통 속에서 수련회 말씀을 전한 것 자체가 은혜가 되고 도전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번 여름수련회도 순탄치가 않았습니다. 폭염이라 낮에 산행을 할 수도 없고 실내에서 자전거를 타며 대체 산행을 하였습니다. 얼마 정도 탔다 싶어서 내리려는데 왼쪽 발에 페달이 벗겨지지 않았나 봅니다. 그래서 저는 어쩔 수 없이 맨바닥에 넘어졌습니다. 괜찮겠거니 그냥 지나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계속 발가락이 쑤시고 아픈 것입니다. 너무 쑤시고 아파서 보니까 발톱에 피멍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소독을 하고 드레싱을 하고 어쩔 수 없이 발을 저으며 여름수련회를 인도했습니다. 세상에 그 발톱 하나가 상처를 입어도 온몸을 불편하게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흔히 운동선수들이 발가락 부상을 입어도 그런가보다 생각했는데, 막상 발가락 부상이라는 걸 제가 경험해 봤습니다. 아무리 작은 지체라도 그곳에 상처를 입으면 온몸이 불편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 불편한 상황 속에서도 여름수련회를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인도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마귀가 어떤 방법으로 저를 공격하고 시험한다 할지라도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는 저를 더 일으켜 세워서 더 최선을 다하게 하셨습니다. 토요일에 있을 임직식, 그리고 주일 낮과 저녁에 있을 마지막 수련회까지 하나님께서 저에게 전적인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최선의 말씀을 전하게 해 주실 것으로 믿습니다. 바울이 자기 안에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역사 안에서 자기도 온 수고를 다 하겠다고 고백한 것처럼(골1:29) 저도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 안에서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폭염 속에서도 일주일 동안 본당을 가득 채우는 교회가 어디 있을까요? 이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요, 성도들의 자발적이고 열정적인 참여 때문이라고 할 것입니다. 이 모든 영광 하나님이 받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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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5-08-11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아낌없이, 물러섬 없이, 후회함 없이”
    드디어 폭염의 여름을 뚫고 새에덴의 대표 브랜드라고 할 수 있는 장년여름수련회가 시작됩니다. 해마다 그렇지만, 정말 이번 여름수련회의 말씀은 저의 땀과 눈물과 영혼으로 준비한 말씀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말라기서의 말씀을 전혀 새로운 프레임과 내러티브로 준비하기 위해서 얼마나 진액을 짜내며 준비했는지 모릅니다. 도저히 안 될 때는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지혜와 영감을 간구하며 설교 한 편, 한 편을 준비하였습니다. 저는 문득 지난 신년축복성회 때 말씀드렸던 윌리엄 화이팅 보든(William Whiting Borden) 선교사님의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그는 백만장자 보든가의 상속자였습니다. 그는 고등학교 때 예수님을 만나 구주로 영접하였고, 부모는 그에게 졸업 선물로 전 세계를 여행할수 있는 기회를 주었습니다. 그는 복음을 듣지 못하고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세계선교를 위해 자신의 삶을 드리겠다는 결단을 합니다. 그래서 그는 성경에 "No Reserves(아낌없이)"라고 썼습니다. 그는 예일대학에 진학하여 최고의 교육을 받습니다. 대학 졸업 후에 얼마든지 좋은 직장에 취업하여 안락하고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었지만, 그 모든 것을 포기하고 선교사로 가기로 결단합니다. 그는 선교사로 나가기 위해 백만장자의 상속권도 포기했습니다. 그리고 프린스톤신학교 졸업 후 중국에 있는 모슬렘 선교를 위해 중국 선교사로 떠납니다. 그는 성경에 "No retreats(물러섬 없이)"라고 썼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집트 카이로에서 모슬렘 선교를 위해 아랍어를 공부하는 도중 척추 뇌막염에 걸려 25세의 짧은 나이로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그는 제대로 선교도 못해 보고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나게 된 것입니다. 어쩌면 그의 인생은 너무나 허무하고 공허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삶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어떤 사람의 인생보다 더 뜨거운 불꽃으로 타올랐고 아름다운 꽃을 피운 것입니다. 그는 죽기 전 성경 맨 앞장에 "No regrets(후회함 없이)"라고 썼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을 위하여 타오르는 불꽃처럼 살아간 그의 인생을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아낌없이, 물러섬 없이, 후회함 없이”일 것입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번 수련회를 앞두고 소회를 한마디로 표현하라고 한다면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아낌없이, 물러섬 없이, 후회함 없이” 정말 아낌없이 물러섬 없이 후회함 없이 준비한 수련회입니다. 특별히 이번 수련회는‘블루타이드 올라타기’라는 주제로 열립니다. 구약 성경의 마지막 장인 말라기서는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불어닥친 블랙 타이드(Black Tide, 검은 물결 – 불신앙, 절망, 두려움, 죄와 죽음) 현상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과의 참된 사랑과 예배의 감격을 잃어버리고 욕됨을 당하고 재앙과 심판의 나락으로 떨어진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새로운 길을 열어주시고 치유와 역사의 새판짜기를 이루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풀어 주시는 블루타이드(Blue Tide, 푸른 물결 – 믿음, 은혜, 소망, 축복과 생명)에 올라타야 합니다. 그럴 때 진정한 행복과 축복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부름을 받고서도 첫사랑의 감격과 예배, 사명을 잃어버리고 세상의 검은 파도에 휩쓸려 고난과 시련 가운데 있지는 않습니까? 이제 다시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 향하고 은혜와 생명의 블루타이드에 올라타야 합니다. 이번 수련회를 통하여 우리 삶을 무너뜨리려는 어둠과 재앙이 물러나고 축복과 생명의 푸른 물결이 가득 넘쳐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새에덴의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 회개하며 성령의 임재와 운행하심 속에서 기도 응답과 치유와 회복을 경험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모두 죄와 죽음의 블랙타이드를 벗어나 축복과 생명의 블루타이드에 올라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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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5-08-03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한나’
    성전 창문 밖으로 들려오는 외로운 아이의 울음소리에 당장이라도 괴나리봇짐을 싸서 달려가고 싶었지만 달빛 눈물 쏟으며 잠 못 드는 의로운 사사 한 명이 없어 암전되어 버린 시대 아들을 주시면 주의 제단에 바치겠다는 처절한 서원의 기도 그녀의 눈물이 강물 되어 흐르던 성전에서의 외롭고 차가운 나날들 누구도 알아듣지 못한 비탄의 시를 밤의 꽃으로 피어나게 하신 당신 오늘도 아무도 모르게 홀로 기도하는 자들의 두 볼에 흐르는 눈물방울 끝에서 빛나는 이름, 한나. - 어머니의 참된 사랑은 어디서나 위대하다. 인류 역사에는 모정의 미덕을 보여주는 담화들이 지천으로 널려 있다. 성경에서도 다를 바 없다. 예수와 그 어머니 마리아를 봐도 그렇다. 전혀 평범하지 않은 이 모자 간에도 곡진(曲盡)한 사랑은 매한가지다. 어머니 한나의 사랑은 아들 사무엘을 위대한 신앙의 인물로 키워냈다. 그 뒷면에는 ‘눈물이 강물 되어 적셨던 성전에서의 외롭고 차가운 나날들’이 있다. 시인은 그 간절함이 있었기에 한나가 기도의 승자가 됐고, 기도로 승부했기에 아들의 영예를 일궜다고 본다. 그래서 ‘아무도 모르게 홀로 기도하는 자들의 두 볼에 흐르는 눈물방울 끝에서’ 한나라는 이름이 빛나고 있다고 언명(言明)한다. 한나는 위대한 아들 뒤에 숨어 있는 모든 훌륭한 어머니의 대명사다. - 해설 : 김종회 교수(문학평론가, 전 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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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5-07-27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별세 지도자를 추모합니다
    존경하는 별세의 지도자 이중표 목사님이 소천을 한 지 20년이 되었습니다. 제가 서울 아산병원에서 존경하는 이중표 목사님 앞에 엎드려 하나님께 눈물로 간구하였던 때가 기억납니다. “제가 15년을 덜 살 테니까 부디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셔서 이중표 목사님께 15년의 삶을 돌려 주옵소서...” 그만큼 한국교회에 이중표 목사님의 지도력이 중요하였기 때문 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저의 기도를 응답하지 않고 이중표 목사님을 불러 가시고 저는 난처스럽게도 멀쩡하게 살아서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이중표 목사님께서는 부족한 종이 1만 평이 넘는 예배당을 짓는다고 하였을 때 너무 기뻐하시고 축하를 해 주셨습니다. 당시에 저는 너무나 어린 종이었지만 양수리수양관에서 전국목회자세미나를 하실 때 몇 번이나 강사로 세워주셨습니다. 목사님께서는 진정한 별세의 지도자셨습니다. 그분은 세상에 사셨지만 진정한 별세의 삶을 사셨고 별세의 사역을 하셨습니다. 목사님께서는 별세란 죽어서 가는 세상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자만이 누리는 은혜의 세계를 별세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물론 예수님께서는 수많은 가난하고 병들고 버림받고 권력으로부터 소외당한 천대받은 사람들에게 빵을 주시고 병자들을 고쳐 주셨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예수님을 정치적인 왕으로 삼으려고 했지만, 예수님은 그들을 위하여 진정으로 하실 일이 있었다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그들을 위하여 십자가에 죽는 일이었습니다. 민중들은 예수님을 정치적 메시아의 왕으로 모시려고 하였지만 예수님은 그들을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성령님을 보내주셔서 진정한 별세 공동체인 당신의 몸된 교회를 이루셨습니다. 저는 지금도 존경하는 이중표 목사님의 말씀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어느 토요일 오후 갈라디아서 2장 20절의 말씀을 본문으로 삼아 설교를 준비하는데 도대체 설교문이 안 풀려 종이를 여러번 찢고 찢으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성전에 들어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 하나님은 이런 감동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종아, 너는 이 말씀을 설교하지 못한다.” 결국은 그 말씀이 목사님의 신앙고백이요 별세신앙과 신학의 초석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중표 목사님 20주기 추모예배 강단에 서기 전에 자문해 보았습니다. “내가 도대체 어떤 목사이길래 이 강단에 설 수가 있단 말인가?” 너무나 두렵고 떨렸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그 자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목사님께서는 별세 목사만 별세 교회를 만들고, 별세 목사가 되어야 별세 목회를 할 수 있고, 별세 목사만이 교인들을 행복하게 하고, 별세 목사만이 사회를 변화시키고, 별세 목사만이 민족 평화의 사도가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목사님의 별세 신앙에 견주어 볼 때 너무나 부족하고 초라했습니다. 그래서 가지 않으려고 갖은 노력을 다했지만, 그래도 성령께서 감동을 주셨습니다. “그래도 민족성전에 가 이 말씀을 전하는 것이 너의 도리다.” 한국교회에 진정한 별세 신앙과 별세 신학을 외친 분이 과연 어디에 있을까요? 어쩌면 존경하는 이중표 목사님만이 별세 신앙을 이루고 별세의 삶을 사시고 별세 목회를 하셨고 별세 지도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별세의 삶을 사시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셔서 한편으로는 너무나 감격과 희열이 있으셨겠지만, 또 한편으로는 얼마나 힘들고 고독하셨을까? 우리는 이중표 목사님을 보낼 준비를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목사님은 영원하고도 궁극적인 별세의 세계로 가셨습니다. 목사님은 가셨지만 별세의 교훈과 가르침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이중표 목사님의 피와 땀과 눈물로 세운 민족성전을 통하여 별세의 신앙과 별세 신학의 영향력이 많이 많이 확장되시길 바랍니다. 존경하는 이중표 목사님, 천국에 가셔서 얼마나 행복하십니까? 저 영원한 별세의 세상에서 얼마나 행복한 별세의 은혜를 누리고 계십니까? 우리가 어르신의 별세 신앙을 조금이라도 지켜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의 가르침 그리고 그 예수님의 가르침을 가르치는 이중표 목사님을 통하여 전달된 별세 신앙과 별세 신학이 저와 여러분을 통해서 잘 지켜지고 확장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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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5-07-21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CBS 라디오 이야기와 행복 스토리
    제가 광주신학교를 다니며 화순 백암교회를 개척할 때였습니다. 저는 매일 저녁 잠들기 전에 CBS 라디오 방송을 들었습니다. ‘라디오 강단’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거든요. 그때 유명한 목사님들의 설교를 들으며 푸른 꿈을 꾸며 잠들었습니다. “주여, 저도 저런 목사님들처럼 크게 쓰임 받을 줄로 믿습니다” 어릴 때부터 제 고향 남원에 CBS 방송이 송출되었다면 제가 CBS를 청취하였을 텐데, 아쉽게도 우리 고향에는 방송이 송출되지 않았습니다. 세월이 흘러 CBS에 남원중계소가 필요하다고 해서 우리 교회가 선뜻 중계탑을 설치하는데 후원하였습니다. 그런데 웬 은혜로 제가 CBS 재단 이사장이 된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저는 CBS 이사장이 되기 위해서 어느 누구도 개인적으로 만나 식사를 모시며 표를 구걸하지 않았습니다. 최인 이사님을 비롯하여 여러 이사님들의 적극적인 지지와 현명한 선택 때문에 제가 이사장이 된 것입니다. CBS는 한국교회의 공공재로 쓰임 받아 왔습니다. 먼저는 설립자 감의도 선교사님의 선교 정신을 지켜서 라디오와 TV를 통해서 하나님의 복음을 잘 전해 왔습니다. 동시에 빠르고 신속한 뉴스를 통해서 이 땅에 하나님 나라의 정의를 실현하는 데 기여를 하였습니다. CBS는 그 어떤 군사 독재의 압박에도 굴하지 않고 신속하고 공정한 뉴스를 전하는데 앞장서는 방송이었습니다. 물론 한동안 군사 독재에 의해서 뉴스를 전하지 못하는 아쉬움도 있었지만, 다시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셔서 이 세상에서 가장 빠르고 공정하고 정확한 뉴스를 전하는 방송이 되었음에 감사를 드립니다. 앞으로 뉴스뿐만 아니라 교양, 시사, 음악 프로그램을 통해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다가가고 또 수많은 설교나 메시지를 통해서 많은 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가길 기도합니다. CBS는 진보와 보수를 넘어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 그리고 복음의 가치를 추구하는 방송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는 시가 있습니다. “하루가 끝나면 /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둔다 / 저녁이 식기 전에 / 나는 퇴근을 한다...(중략) / 서랍에 넣어 둔 저녁을 꺼내면 / 하루의 무게가 가벼워진다 / 나는 퇴근을 한다 / 퇴근을 하면서 / 저녁을 꺼내어 / 따뜻한 한 끼를 먹는다 / 하루의 끝에서” CBS 방송이 몸과 마음이 지치고 외로운 사람들의 서랍에 들어 있는 한 끼의 밥이 되고, 사랑이 되고, 희망이 되기를 바랍니다. 부족한 종도 작지만 그러한 일에 기여를 하고 섬기겠습니다. 특별히 지금까지 재단 이사회를 잘 이끌어 주신 육순종 전 이사장님께 감사드리고 육순종 목사님의 지도를 받아 CBS를 잘 섬기겠습니다. 이사회뿐만 아니라 CBS 나이영 사장님을 비롯하여 모든 임원과 직원들을 잘 섬기겠습니다. 특히 취임식에 참석하신 수많은 국회의원님들, CBS 이사님들, 교단 총회장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우리 성도들도 CBS를 통해 하나님 나라가 더 크게 확장되기 위해서 기도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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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5-07-13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두려운 영광, 설레임”
    지난 목요일 오후에 황순원문학관 소나기마을에서 ‘영혼을 담은 시 쓰기’라는 주제로 강의를 하였습니다. 어린 시절 백일장대회에 가는 것만큼 두렵고 떨렸습니다. 그러면서도 가슴이 설레기도 하였습니다. 시를 쓰는 것은 시상을 갖고 순간순간 시가 찾아올 때 쓸 수 있지만 시 창작 강의를 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 교회에서도 저명한 시인들을 초청하여 강연을 들었지만 ‘시란 무엇인가? 시를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해서 정확하게 설명한 분은 못 봤습니다. 그냥 자기 시 몇 편을 소개하고 삶의 이야기로 마감하는 걸 봤습니다. 물론 저도 그렇게 할 수가 있죠. 저에게도 많은 스토리가 있기 때문이죠. 그렇지만 저는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이 기회에 ‘시는 무엇이고 어떻게 시를 쓸 것인가’ 정리를 해보고 싶었습니다. 적지 않는 시간이 소요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강의안을 준비해도 왠지 낯설고 두려운 느낌이 들었습니다. 성도들이나 일반인 앞에서 강의를 한다면 그렇게 두렵고 떨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시대 최고의 문학평론가인 김종회 교수님 앞에서 강의를 한다는 것이 엄청난 부담이고 스트레스였습니다. 잘해야 본전이고 잘못하면 큰 우를 범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렇지만 꼭 두려움과 불안만은 아니었습니다. 사실 영광스럽고 가슴이 설레이기도 하였습니다. 강의에서 언급한 것처럼 저는 국문과나 문창과를 전공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소나기마을 촌장이신 김종회 교수님께서 어느 정도는 저의 필력과 구술력을 인정하셨기에 저를 강사로 부르셨지 않나 싶어 더 가슴이 뛰었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에 엿장수, 사탕장수의 이야기로 시작하였고 상여의 만가 소리를 시연하며 시 강의를 접근 했습니다. 결코 녹록한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제가 앉아서 할 수도 없고 일어서면 강의안이 안 보일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원고가 보이고 안 보이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원고를 이미 그림 언어로 거반 외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강의를 했는지, 무슨 꽃으로 내 가슴을 문질렀는지 땀이 눈속으로 들어 갈 정도였습니다. 종교적 언어, 신앙의 언어를 쓰지 않아도 시는 에덴을 향한 원형 혹은 근원을 향한 향수적 갈망이라고 자연스럽게 이야기했습니다. 그리움에 대한 향수를 이미지 언어로 쓰는 것이 시라고 강조했습니다. 제가 그런 이야기를 해도 어느 누구도 저항을 하거나 반발을 하는 분이 없었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설교를 하는 목사이기 때문에 가끔 억양이나 설교의 이미지가 보였을지 모르지만 그마저도 강의 흐름 상 모두 수용하고 용납하는 듯했습니다. 강의가 끝난 후 김종회 교수님께서 “이곳이 대학 강의실이라고 한다면 교수로서도 99점을 줄 정도라”고 하셨습니다. 강의가 끝나도 그 설렘이 싹둑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미련과 아쉬움이 컸습니다. 왜냐하면 준비한 내용을 절반도 못 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제가 1시간 40여 분 동안 강의했다고 합니다. “어떻게 그런 많은 시간을 할 수 있었단 말인가...” 그럼에도 준비한 내용을 절반도 못했습니다. 아쉬움은 미련을 낳았지만 그럼에도 참으로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그 두려움과 설레임은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여전하기만 합니다. 좀 더 잘할 수도 있었다 싶었는데 저희 장모님이자 기도의 어머니이신 정금성 권사님이 오셔서 부담감이 더 커져 갔습니다. “아니 지금 젊은 연세도 아니신데 왜 여기까지 오시는가...” 그래도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이 계기를 통해 저의 시가 한 단계 더 발전하고 다 하지 못했던 저의 시론이 활자화 되기를 바래 봅니다. 함께 기도해 주시고 성원해 주신 김종희 교수님, 참석해 주신 주민들, 그리고 성도님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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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5-07-06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저 푸르지만, 아직 연약한 잎새들”
    저는 이따금 머리를 식히기 위해 창문의 커튼을 열고 푸른 나무들을 바라봅니다. 보기만 해도 마음에 푸르름의 기운이 들어오듯 하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오늘따라 바람에 퍼덕이는 잎들이 가여워 보입니다. 서로 바람에 부딪혀 상처받지 않을까 해서요. 그렇지만 바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푸르름을 반짝이는 나뭇잎들이 대단해 보입니다. 바람이 불어도 새들은 날아다니고 지저귑니다. 제가 창문으로 다 보고 있는데, 새들은 누구도 보지 않는 것처럼 자유롭게 지저귑니다. 도대체 저 새들의 보금자리는 어디일까요? 어렸을 적에는 새들의 보금자리에서 알도 훔쳐먹은 시절이 까마득한데, 저 습자지처럼 얇고 부드러운 나뭇잎 사이에 둥지를 틀리는 만무할 것이고... 우리 교회가 지어질 때만 해도 오동나무가 그리 크지 않았지만, 지금은 거목이 되어 있습니다. 하긴 거의 20년이 흘렀으니까요. 나무는 자라서 모든 날아다니는 새들의 쉼터가 되고 있습니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정말 여리고 부드럽게 느껴지던 것이 제법 푸르름의 빛을 반짝여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푸름보다 여림이 더 강하다고 할 것입니다. 얼마 전 심방을 했던 한 성도가 떠올랐습니다. 얼마나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지, 저의 첫사랑과 첫 열정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보통은 처음부터 그렇게 열심을 내기가 쉽지 않거든요. 얼마나 교회 생활에 몰두했냐면, 학업보다 교회 일을 더 중히 여겼습니다. 그런 세월이 거의 반세기, 안식년이나 안식월을 한 번도 갖지 못하고 푸르름이라고 하는 페달을 밟고 왔지요. 하나님이 지켜주시지 않으셨다면 이미 저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저 오동나무는 가을이 되면 스스로 낙엽이 되지만, 교회 뒤편에 있는 소나무들은 겨울도 쉬지 않고 푸르름을 자랑하죠. 낙엽으로 떨어질 때는 떨어지더라도, 이 순간 푸르름으로 발화하고 있는 저 넓적한 활엽수들을 축복합니다. 겨울에 폭설이 내리면 저 넓은 잎사귀가 그 무게를 어찌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저 푸른 잎들을 바라보며, 얼마 전 심방 했던 새 가족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가을이 온다고 푸르름을 포기하지 않으시겠지... 아직은 푸르름보다는 여린 면이 더 많지만, 가을이 와도, 겨울이 와도 더 단단하겠지.” 부족하지만 저처럼 말이죠. 푸르지만 아직은 여린 그 성도님에게 하나님의 은총과 가호가 그분에게 가득하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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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5-06-29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평화에 이르는 새 길”
    명지대학교 정성철 교수께서 쓰신 ‘국가는 왜 싸우는가?’라는 책이 있습니다. 거기 보면 한반도 평화로 가는 길에 대해서 로버트 저비스의 이론을 소개하고 있습니다.(국가는 왜 싸우는가, 사회평론 아카데미) 로버트 저비스에 의하면 나선형 모델(Spiral 모델)과 억제 모델(Deterrence 모델)이 있습니다. 나선형 모델은 안보 딜레마에 기초하여 충돌에 이르는 길을 보여준다고 합니다. 두 국가가 모두 자국의 안보를 위해 방어적 행동을 취하지만 이는 상대의 안보 불안을 야기 시킨다고 합니다. 결국 두 국가는 위기의 고조를 막지 못한 채 충돌에 이른다는 것이죠. 이러한 모델은 유화와 관용의 중요성을 일깨워 준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남북한 모두 평화를 희망하더라도 오해와 불신으로 상대의 방어적 행위를 공격적으로 바라보게 될 수 있다는 것이죠. 그러한 경우 남북한은 번갈아 가며 그러한 오해에 따른 대응을 취하면서 소용돌이에 휘말린 채 충돌로 치닫게 되고 맙니다. 바로 그러한 비극은 상호 인정을 바탕으로 신뢰를 쌓아갈 때 피할 수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억제 모델의 관점에서 평화는 상대의 공격에 맞서 싸울 결연한 의지를 보일 때 가능합니다. 그렇지 못하고 상대의 도발에 미온적으로 대처한다면 결국 양측은 대규모 분쟁에 휩싸이고 맙니다. 상대방이 군사적 수단 자체를 고려하지 못하도록 적극적으로 압박하고 봉쇄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이 모델에 따르면 평화는 역설적이게도 싸울 준비를 마치고 결의에 찬 국가들 사이에서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이죠. 상대를 공격하여 압도할 수 있다는 믿음이 없어야 한다고 합니다. 과거 6.25 전쟁의 발발도 김일성이 승리할 수 있다는 오판에 따른 결과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한국과 미국이 적극적으로 북한의 공격이 엄청난 피해를 불러올 것이라는 메시지를 다양한 방법으로 전달하였을 때 한반도의 평화가 보장되어왔다는 것이죠. 이러한 두 가지의 주장은 모두 한반도 평화를 지향해 왔습니다. 하지만 상반된 가정에서 기초한 두 입장의 정책제안은 상이하다고 합니다. 나선형 모델에서 국가는 현상 유지를 희망하는 불안한 행위자이지만, 억제 모델에서 상대국은 불만족으로 현상 변경을 노리는 도전적 행위자입니다. 그래서 정성철 교수에 의하면 우리는 북한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가 중요하다고 합니다. “북한은 오랜 경제 실패와 외교 고립으로 생존을 갈구하는 국가인가? 이라크 전쟁과 후세인 처형을 바라보며 두려움에 사로잡힌 실패 국가로 바라볼 것인가? 아니면 반대로 핵과 미사일 개발을 지속하면서 체제 안정이 위협받을 경우 모험적 도발도 감행할 준비가 된 도전 국가인가? 그것도 아니면 주체사상에 기초하여 외부 세력의 영향을 차단하며 정권 안보에 사활을 건 공격적 행위자로 볼 것인가?” 저자에 의하면 북한을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우리의 대북 통일정책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북한은 안보 불안에 시달리는 국가인가? 아니면 정권 안보를 추구하는 불만족 국가인가?” 이에 대한 우리 안에서 열린 토론이 합의에 이를 때 저자는 장기적 관점에서 지속 가능한 대북 통일 정책이 가능하다고 예측하고 있습니다. 다소 전문가적이고 어려운 글이긴 하지만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대한민국의 자유와 번영이 얼마나 아슬아슬했던가를 느낄 수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그리고 6.25 참전용사들의 헌신과 희생이 아니었으면 우리는 지금의 번영과 자유와 민주주의를 누릴 수 없을 것입니다. 다시 생각해 봐도 우리가 누리는 이 자유와 평화는 절대로 공짜로 얻은 것이 아닙니다. 6.25 참전용사들의 수고와 지금도 우리나라를 지키고 있는 안보의 힘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국민 모두가 서로 단합하고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평화에 이르는 새 길입니다. 그러한 연장선상에서 우리 교회는 6.25 참전용사 초청행사를 19년째 맞이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행사들이 거룩한 낙수 효과를 이루며 나비효과가 이루어지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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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5-06-22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위대한 헌신을 우리 모두의 가슴에
    “당신의 희생 위에 오늘의 우리가 있습니다. 나라를 지켜낸 위대한 헌신, 그 숭고한 정신이 지금도, 여기에 새겨져 있습니다.”(내레이션) “나의 무덤엔 묘비가 쓸데없다. 고향에 묻히어 한 줌 흙 되면 그뿐. 이름 없는 꽃이나 한 그루 심어다오. 나는 썩어 거름이 되리니 고향의 봄에 한 송이 더 많은 꽃이 되리라.”(애국지사 노성원 묘비), “결코 뒤돌아보지 않는 강한 정신력으로 군인의 명예와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굴욕적인 삶 대신 명예로운 죽음을 택한 고인의 숭고한 군인 정신은 바로 우리들의 살신성인의 정신이었습니다.”(애국지사 육군 중령 장철부 묘비), “여기는 민족의 얼이 서린 곳 조국과 함께 영원히 가는 이들, 해와 달이 이 언덕을 보호하리라...”(국립서울현충원 현충탑) 윗 글은 지난 6월 6일 제70회 현충일 추념식에서 있었던 애국지사들의 묘비를 성우가 내레이션한 내용입니다. 글로 보면 평범할지 모르지만 남자 성우, 여자 성우가 번갈아 가며 낭독하였을 때 가슴이 먹먹하고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우리 대한민국의 자유와 번영을 위해 아낌없이 자신의 몸을 불사른 참전용사들의 희생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가 19년째 해오고 있는 참전용사 초청행사야말로 얼마나 고귀하고 가치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특별히 1951년 강원도 정선 전투에서 총상을 입고 전사하신 고 송영환 일병의 이야기를 듣고 마침내 눈물이 터져버리고 말았습니다. 고 송영환 일병의 딸 송재숙 님은 아버지가 어머니와 혼인신고를 하지 못하고 입대하셔서 큰아버지의 호적에 올리고 평생을 살아왔던 이야기를 들었을 때 너무 애처롭기 그지없었습니다. 73년 만에 시신이 발굴이 되고 복원된 아버지의 영정 사진을 뵈니 너무나 알 수 없는 반가움에 눈물이 났다는 이야기를 듣고 참 많이 울었습니다. 성우가 이런 묘사를 할 때는 더더욱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고 송영환 일병은 세 살배기 외동딸을 남겨두고 6·25전쟁에 참전했습니다. 내가 지켜낸 국토 어딘가에 쓰러져 돌아갈 수 없게 될지라도 긴 세월 그리움과 아픔을 남기게 되더라도 기꺼이 총탄과 맞서며 나아갔던 이유, 반드시 지켜야 할 소중한 나의 나라, 소중한 나의 가족이 있기 때문입니다. 목숨을 아끼지 않았던 희생 위에서 대한민국이 다시 일어나 빛나고 있을 때 가족의 품으로, 국민의 곁으로 돌아온 고 송영환 일병, 당신의 위대한 헌신을 우리 모두의 가슴에 새깁니다.” “(송영환) 사랑하는 나의 빵구 재숙아, 아빠가 미안하다. 언제나 너를 사랑한다.” “(성우) 새하얀 꿈처럼 기억이 가물합니다. 너무도 그립고 보고 싶은 아버지의 얼굴이 도무지 떠오르지 않아 울먹이며 지내온 긴 세월이었습니다. 아버지, 오랜만에 인사를 드립니다. 할머니께 자주 듣곤 했어요. 고된 일 마치시고 집에 오시면 밤이 늦도록 저를 업고 동네를 다니시며 빵구 재숙아, 우리 빵구 재숙아 부르셨다지요. 아버지의 얼굴도 목소리도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버지가 저를 얼마나 예뻐하고 아끼셨는지 알 것만 같습니다. 저는 풀잎만 보아도 아버지 목소리가 듣고 싶고 꽃잎만 보아도 아버지의 목소리가 듣고 싶은 세 살 아이 빵구 재숙입니다. 1951년 아버지가 전사하셨을 때 엄마와의 혼인신고가 되어 있지 않아 큰아버지의 호적에 제 이름을 올렸습니다. 그렇게 70년이 넘는 아득한 시간을 살아오다 이제라도 아버지를 다시 만나게 되어 형언할 수 없는 반가움에 눈물만이 흐릅니다. 이제 조금 알 것 같아요. 죽음이 두렵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목숨을 바쳐서라도 지키고 싶은 게 있으셨겠지요. 아버지가 지켜내신 것, 대한민국이었고 엄마였고 할머니였고 빵구재숙이었겠지요. 그래서 그렇게 쏟아지는 포탄과 총탄에 아버지를 내던지셨겠지요. 지난달 어버이날에 그립던 아버지의 얼굴을 처음으로 보았습니다. 복원된 아버지의 영정 사진 앞에서 저는 다시 옛날로 돌아가 아버지가 그렇게 안아주시던 아이가 된 듯했습니다. 매년 비어 있는 아버지의 묘역에 저는 아버지께 드린 것 하나 없는 것 같아서 심심한 마음을 담아 하얀 카네이션 한 송이를 드렸습니다. 아버지의 희생으로 남겨지고 지켜지고 새롭게 태어난 수많은 생명들이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으로 오늘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참 감사합니다. 참 고맙습니다. 다시 뵈올 그날까지 편히 쉬세요.”(고 송영한 일병의 딸 송재숙) 참전용사 초청행사를 위하여 기도해 주시고 헌신해 주신 모든 성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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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5-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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