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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허공 속에 떠도는 홀씨일까요?”
    지지난 주 목요일에는 국회의장 공관에 가서 식사를 했습니다. ‘글로벌 투게더’ 임원진과 ‘글로벌 에듀’ 대표 몇 사람이 참석하는 자리였습니다. ‘글로벌 투게더’는 지구촌 후진국가에 주로 의료와 보건시설을 후원하는 단체이고, ‘글로벌 에듀’는 아프리카를 비롯해서 후진국들에게 학교를 지어주고 교육 프로그램을 지원해 주는 기관입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글로벌 에듀의 이사장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갔더니 저명한 사회 인사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저에 대한 예우와 의전이 깍듯했습니다. 특히 김진표 국회의장님의 모두 발언에서 거의 절반 가까이가 새에덴교회와 소강석 목사의 섬김에 대한 감사였습니다. “부산 엑스포 유치 경쟁은 원래부터가 힘든 출발이었습니다. 1년 반이나 늦게 출발을 했고 또 사우디와의 애매한 경제적 관계 때문에 정부가 직접 나서서 경쟁하는 건 무리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봉사기관인 글로벌 투게더와 글로벌 에듀가 나서서 아프리카의 표를 얻기 위한 러브 아프리카 운동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국회의장인 저와 소 목사님이 스피커로 나서게 되고 각국의 장관들을 일일이 다 팀별로 만나서 유치 운동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정말 감명 깊었던 것은 소강석 목사님이 최신 삼성 스마트 폴드폰을 사서 31개국 장관들에게 다 나눠준 것입니다. 거기다가 ‘한국을 사랑해 주세요’ ‘부산 엑스포를 유치해 주세요’라는 글씨까지 써서 준 것입니다. 그리고 아프리카의 선교사들을 100여 명이나 초청해서 모든 숙박비를 대주고 1인당 500불씩 선교비로 전달해주는 걸 보고 다시 한번 새에덴교회와 소강석 목사님의 섬김의 본에 놀랐습니다. 비록 부산 엑스포 유치에 성공은 못했지만 새에덴교회의 섬김과 소강석 목사님의 헌신은 절대로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아프리카 장관들과 선교사들의 가슴 속에 아름다운 꽃씨로 뿌려져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헌신과 수고는 언젠가 다시 싹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소 목사님과 새에덴교회의 헌신은 결코 헛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사랑이고, 나라 사랑이고 인류애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래서 저도 선교사들에게 아침 식사를 대접하고 왔습니다마는, 다시 한번 소강석 목사님과 새에덴교회에 감사를 드립니다. 제가 알기로 소강석 목사님은 이 시대 최고의 감성 설교자이십니다. 저는 평생 교회를 다녔지만, 소 목사님의 아가서 설교는 정말 듣도 보지도 못한 새로운 설교였습니다. 여러분도 새에덴교회에 한 번씩 다 방문해 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김진표 의장님도 존경하고 또 김진표 의장님께서도 저를 하나님의 종이자 동생처럼 친근하게 대해주십니다. 여러 저명인사들 앞에 그런 치하의 말씀을 해주니까 너무 감사했습니다. “내가 안 왔으면 너무 미안했겠구나. 오기를 잘했구나.” 김진표 의장님은 저하고 떼려야 뗄 수 없는 분입니다. 반기독교 악법을 막아내는 데 제가 앞장서 일을 할 때 저를 도와주셨고 특별히 종교인과세 대처를 할 때 제일 앞장서서 수고하신 분입니다. 그 일 때문에 김진표 의장님이 한동안 일부 극단적인 진보 진영으로부터 엄청나게 공격받았습니다. 그러나 결국 진실과 진심이 왜곡된 오해를 이길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그는 국회의장이 되었고 앞으로도 더 이 시대와 사회의 섬김이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솔직히 제가 아프리카를 다녀온 후 허전함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에 국가정보기관이나 관련 기관에서도 어느 정도의 가능성을 예측했고 국무총리까지 나서서 가능성을 가늠했잖아요. 그래서 작지만 애국의 일환으로서 아프리카를 갔습니다. 그곳에 김철수 장로님의 헌신으로 학교도 지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수많은 선교사님들의 숙박비, 여비를 제공하였습니다.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아프리카의 31개국 장관들을 움직이고 부산 엑스포를 유치하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결국 결과는 너무 허전하고 허탈하게 끝났습니다. 교인들 보기에 너무 죄송하고 면목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프리카만 생각하면 풀이 죽고 기가 죽었습니다. 그런데 국회의장 공관에서 김진표 의장님이 치하와 격려의 말씀을 해 주시는 것을 보고 다시 생각해 봤습니다. “그래 맞아, 내가 아프리카에 뿌리고 온 씨는 허공 속에 떠돌아다니는 홀씨는 아닐 거야. 분명히 그들의 가슴속에 꽃씨로 떨어졌을 것이고 이번에는 안 됐지만 다음에라도 싹이 나고 꽃이 피어 열매를 맺게 될 거야. 특별히 아프리카에 학교를 짓고 선교사들을 섬겼던 꽃씨는 반드시 그들의 가슴속에 싹이 나서 줄기가 자라고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날 거야.” 그런 생각을 하며 교회로 돌아왔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무엇으로 심든지 주님의 이름으로 심고 결코 낙심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러 반드시 열매를 거두게 될 것입니다.(갈6:7-8) 러브 아프리카의 꽃씨는 허공에 떠도는 홀씨가 아니라 아름다운 꽃씨로 뿌려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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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4-05-05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시간 앞에 서글프지 않은 것은 없다구요?
    지난 화요일 오전에는 총회 은급부에서 주최하는 은퇴목회자 위로회 모임을 저희 교회에서 가졌습니다. 그런데 시작이 10시 반인데 한 8시 반부터 오신 분들이 계시고 9시가 되니까 비서들이 출근하기도 전인데 제 방에 찾아오는 어르신들이 계셨습니다. 저와 정말 관계를 끊을 수 없는 분들이 오셨기 때문에 거절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몇 분들을 만나고 교통비나 격려비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10시 반이 되어서 본당에 가보니까 정말 천 수백 명이 앉아 계신 것입니다. 그것도 저 멀리 부산, 대구, 광주 등지에서 새벽차를 타고 오신 것입니다. 대부분 백발의 면류관을 쓰시고 얼굴도 쭈글쭈글한 분들이셨습니다. 심지어는 90이 넘는 분들도 오셔서 하마터면 큰일 날 뻔도 했다는 것입니다. 코피가 터지고 어떤 분은 쓰러지기도 하구요. 메디컬 처치에서 응급처치를 안 했더라면 큰일 날 뻔 했다는 것입니다. “아, 이런 모임을 우리 교회에서 다시는 안 해야 되겠다.” 이런 생각까지 해봤습니다. 왜 그분들이 왔을까요? 저희 교회에서 대접하는 점심 식사와 총회에서 주는 몇 푼 안 되는 위로비 때문에 오셨을까요? 물론 그런 부분도 없지 않아 있겠지만 아마 외로웠기 때문에 동기들을 만나보고 싶어서 오셨을 것입니다. 제가 설교를 하기 전에 앞에서 보니까 꽃으로 말하자면 지는 꽃이고, 나무로 말하자면 낙엽이 되어 곧 떨어질 잎사귀처럼 보였습니다. 저분들에게도 왕년에 한가락 했던 젊은 청춘의 시절이 있지 않았겠습니까? 힘깨나 쓰고 혈기도 부리고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설교를 했던 시절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혈기도, 패기도 잃어버리고 겨우 지친 몸을 이끌고 오신 것 같았습니다. 제가 강단에 섰을 때 조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습니다. 멀리서 오셨는데도 조는 사람 한 명도 없이 그렇게 설교를 뚫어져라 듣는 것입니다. 그들이 말씀은 안 하시지만 제 젊음이 부러운 것 같았습니다. 저는 젊은 나이에 총회장도 했고, 한교총 대표회장도 했거든요. 그리고 지금도 젊은 패기로 설교하는 걸 보면서 저의 젊음이 부러운 듯한 눈동자로 저를 보는 것입니다. 저는 설교를 하기 전에 잠시 그분들을 바라보며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살아있는 것들은 모두 늙는다. 잔인한 시간은 쓰러져 가는 모습을 지켜볼 뿐이다. 한때 벌어진 일들은 시간과 싸우지 못한다. 일일이 흔적을 남기기엔 너무 빨리 스쳐 지나간다.” 이는 윤광준의 ‘심미안 수업’ 중에서 나오는 말인데요. 육신적으로만 볼 때는 시간 앞에 서글프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저도 20년이 지나면 백발의 면류관을 쓰고 은퇴 목회자가 되어 은퇴 목회자 모임에 나타날지도 모릅니다. 갑자기 서글픈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제 설교의 주제처럼 저는 전제와 같이 부어진 삶이 아닙니까? 전제는 한마디로 “부어드리는 제사”입니다. 제물이 거의 타갈 무렵에, 제단 위에 제사장이 포도주를 붓고 기름 섞은 고운 가루를 뿌리는데, 그것을 “전제”라고 합니다. 제사가 끝나갈 무렵, 너무나 행복하고 즐겁게 제사를 드렸다는 의미에서, 포도주를 붓고 제물 위에 기름 섞은 고운 가루를 뿌립니다. 그러면 마지막 타는 향기가 얼마나 진동하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죽음의 날이 임박하여 순교적 사명 앞에 자신이 전제와 같이 부어졌다고 고백을 했습니다. 어차피 모든 살아있는 것은 늙어갑니다. 꽃도 시들고 나무도 메말라갑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미모를 가진 여인도 시들고 건강한 청년도 늙어갑니다. 그러나 우리는 늙어가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어차피 우리는 전제와 같은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시간 앞에 서글퍼 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시간이 깃든 모든 것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시간은 기억일 뿐만 아니라 미래를 생각하게 하기 때문이죠. 특별히 우리 그리스도인은 영원한 미래를 붙잡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영원한 소망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죽음은 천국으로 가는 한 과정이고 방법일 뿐입니다. 이런 마음을 갖고 설교를 하니까 저도 은혜가 되고 은퇴 목사님들도 고개를 끄떡끄떡하며 은혜를 받으시는 것입니다. 어차피 우리는 제한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100세를 살건, 120세를 살건 그 역시 제한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 자체만 생각하면 시간 앞에서 서글프지 않은 것은 없겠죠. 그러나 우리는 결코 서글플 수가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새로운 미래가 있고 영원한 미래가 있기 때문입니다. 죽음 이후의 또 다른 삶, 영원한 부활의 삶, 영생의 삶이 있기 때문이죠. 그런데도 시간 앞에서는 모든 게 서글프다고요? 아닙니다. 시간 앞에서 오히려 우리는 소망이 있고 희망만 있을 뿐입니다. 행사가 끝나자 역시 어른들께서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구요. “우리가 천국에서 만날 줄 알았는데 여기서 다시 만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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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4-04-28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꽃잎을 물고 나는 새”
    “새 한 마리가 지는 꽃잎을 물고 날아 간다 / 입에 문 꽃잎이 떨어질까 봐 / 소리를 지르지도 못하고 / 눈물을 흘리며 날아 간다 / 새 둥지로 날아가나 살펴보니 / 둥지를 지나 머나먼 세계로 간다 / 저 아득한 그리움의 세계로 / 구겨진 사랑의 편지 한 장 물고 날아간다.” 이 시는 지난주 목요일 오후에 갑자기 생각나서 쓴 짧은 시 구절인데요. 지난 주는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2박 3일이라도 어디라도 가서 좀 푹 쉬어보려고 하였습니다. 제주도는 왔다 갔다 하기에 너무 멀고 곤지암에 있는 기도원으로 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기도원에서 일하고 있던 김요한 안수집사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목사님, 기도원에 오시면 안 됩니다. 정화조가 고장이 나서 수리한 다음에 오셔야 합니다.” 그래서 기도원도 가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중 부고 문자를 받았습니다. 다른 분이 아니라 장희철 장로님의 어머니, 이계순 권사님의 소천 소식이었습니다. 그분은 그냥 어느 한 장로님의 어머니가 아니었습니다. 우리 교회 동탄 지성전을 확장 이전할 때 큰 헌신을 하신 분이시죠. 원래는 장희철 장로님이 어머니에게 기도실을 마련해 드린다고 했는데 그 돈으로 동탄 지성전 확장 이전에 헌신하면 안 되겠느냐는 정 권사님의 영적 권면을 받아들이시게 된 것입니다. 여기에는 이계순 권사님의 동의와 허락이 필요하였는데, 이계순 권사님께서 흔쾌히 허락해 주셨지요. 그래서 저는 어디 가는 것을 포기하고 월요일 저녁에 위로예배를 드려주었고, 화요일에는 입관예배, 수요일 오전에는 발인예배를 집례 하였습니다. 어느 부교역자가 그러더라고요. “목사님은 어디 가서 쉴 팔자가 못 되시나 보네요. 그저 사역의 축복을 너무 많이 받으셨나 봐요.” 화요일 저녁이나 수요일 저녁에도 산행을 하려고 했는데 미세먼지가 너무 많다고 해서 주변 사람들이 만류를 했습니다. 그래서 목요일 오전에는 다건연세내과에 가서 정기검진을 하고 마침내 목요일 오후 늦게 산행을 하였습니다. 산행하는 길에 보니까 먼저 핀 철쭉은 벌써 지려고 하더라고요. 저는 그 지는 꽃잎을 바라보면서 갑자기 한 마리 새가 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냥 새가 아니라 시들어 떨어진 꽃잎을 물고 멀리 날아가는 새 한 마리가 되었습니다. 엘리야가 그랬지 않습니까? 그는 하늘을 향하여 외치면 비가 내리고, 불이 떨어지고, 폭풍이 불게 했던 선지자였죠. 사르밧 과부의 남루한 등잔 불빛 아래서 솔솔 쏟아지는 밀가루와 마르지 않는 기름이 부어지게 하고 죽은 아들을 다시 살려 주었던 능력의 종이 아니었습니까? 더구나 그는 갈멜산에서 홀로 맞서 싸워 850명의 이방 선지자들을 불로 사르고 검으로 찢었던 사자의 이빨과 독수리의 날개를 가진 야수의 전설을 가졌던 하나님의 사자였죠. 그러나 이세벨의 말 한마디에 간이 쪼그라져 저 브엘세바 남단 끝으로 도망가 로뎀나무 아래에서 모든 걸 끝내고 싶었던 사람이기도 하였죠. 그러나 그 로뎀나무 아래에서 천사가 가져다 준 숯불에 구운 떡과 물 한 병을 들고 다시 호렙산 굴까지 찾아가서 다시 사명자의 길을 걸어갔던 하나님의 종이었습니다. 저도 갑자기 엘리야가 달려갔던 저 그리운 브엘세바 남단에 있는 로뎀나무 그늘이 생각이 났습니다. 그때 엘리야는 로뎀나무 그늘로 얼마나 감사했을까요? 그런데 그런 로뎀나무 그늘에 주님이 찾아오셔서 그의 심신을 어루만져주셨고, 그분이 가져다주신 구운 떡과 물 한 병으로 힘을 얻고 다시 호렙산으로 걸어갔던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어디론가 떠나려고 해도 갈 수가 없었습니다. 더구나 수요일 오전예배 후에는 칼빈대학교와 전도사 인턴십 MOU 체결이 있었거든요. 목요일 오후 늦게 서야 산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가까운 교회 뒷산이었지만 제 마음은 한 마리 새가 되어, 지는 꽃을 입에 물고 멀리멀리 날고 있었습니다. 저 곤지암을 지나 제주도를 넘어서 엘리야가 누웠던 네게브 광야의 로뎀나무까지 날아가고 있었습니다. 구겨진 사랑의 편지, 희망의 편지 한 장 물고 날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주님께서 제 안에 로뎀나무 한 그루를 심어주셨고, 주님께서 오셔서 저를 어루만지고 구운 떡과 생수 한 병을 주셨습니다. 봄이 꿈처럼 깊어 가는 저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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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4-04-21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내 마음 흙이 되어”
    제가 옛날에 쓴 ‘내 마음 강물 되어’라는 시가 있습니다. “내 마음 강물 되어 흐르고 있습니다 / 멈추라 하여도 흘러야만 합니다 / 보냄을 아쉬워 않고 돌아옴을 반기지 않고 / 다시 옴을 그리워하지도 않습니다 / 멈추지 않고 흐르는 것만이 행복이고 기쁨인 것을 흐르고 또 흐릅니다 / 미움도 원망도 슬픔도 고통도 고일 겨를 없어서 / 흐르고 흘러가고 있습니다 멈추고 붙잡는 것이 속절없는 것을 / 흘러야 행복인 줄 알기에 끊임없이 흘러갑니다” 까마득한 신학생 시절, 하늘처럼 우러러 존경했던 분으로부터 받은 상처를 회상하며 쓴 시입니다. 이 시는 내 마음이 어떤 것에 미련을 두지도 않고 집착하지도 않고 그냥 유유하게 흘러가듯 하는 심정을 표현한 것입니다. 무슨 대단한 문학적 귀족성이 있거나, 함축된 이미지로 표현된 것이 아니고 그냥 제 마음의 서정을 그대로 그려놓은 것입니다. 그런데 며칠 전에 갑자기 떠오르는 시가 하나 있었습니다. ‘흙’이라는 제목의 시인데요. “사랑하기 때문에 / 아무런 말을 하지 않습니다 / 아무리 파고 덮고 짓눌려도 / 침묵할 뿐입니다 / 나무가 뿌리를 내리고 / 고층 빌딩의 지하 콘크리트가 깊이 박혀져도 / 첫눈이 고이 드리워지듯 / 사뿐히 받고 또 받겠습니다 / 언젠가 당신이 내 곁으로 올 때는 / 생명의 언어로 맞이해 드리지요 / 아니, 그대 옆에 누워 있을 게요 / 하늘의 허락을 빌 뿐입니다.” 제가 잠시 사색하는 시간에 시 구절이 떠올라서 낙서하는 마음으로 문자를 쳐서 선광현 목사님께 보냈습니다. 아무런 반응이 없어서 기억도 안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총선 전날인 9일 저녁부터 이유를 모르는 불면과 투쟁을 했습니다. 저나 제 아들이 국회의원 후보자가 된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불면과 싸워야 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수요 저녁예배 전 출구조사를 보고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대략 예상한 바였지만, 맨 먼저 한국교회와 대한민국의 미래가 떠올랐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개표방송을 보다가 나라와 민족, 한국교회를 위해서 기도하면서 늦게야 잠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새벽에 일어나서 보니까 출구조사와는 조금은 달랐지만 그래도 근사치로 나온 것입니다. 지금까지도 그랬지만, 앞으로 더 차별금지법이나 반기독교 악법들이 쓰나미처럼 밀려올지도 모릅니다. 이런 때에 한국교회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여야를 모두 아우르며 소통하고 설득도 해야 되는데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저는 코로나 때 총회장과 한교총 대표회장으로 섬기면서 예배 지킴과 국민 보건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고 했습니다. 또한, 교회 생태계를 지키기 위해 전면에서 노력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쪽에서는 괜히 딴지를 걸며 험담을 하고, 온갖 가짜뉴스를 생산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총회장과 한교총 대표회장 임기가 끝난 후로는 진짜 내 마음 강물이 되고, 흙이 되어 살아왔습니다. 정말 초야에 묻혀 절대 전면에 나서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도 교인들에게 오해받지 않기 위하여 정말 두문불출했습니다. 물론 오는 손님들은 따뜻하게 맞아주었지만, 교회 안에 숨어서 흙처럼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에 써 놓은 ‘흙’이라는 시가 생각나는 것입니다. 다시 생각해 보니 이 세상에는 흙이 없이는 존재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흙이 있어야 나무도 있고, 농사도 짓고, 집도 짓는 것처럼 흙이란 우리 모든 삶의 공간의 기본이 되고 바탕이 되는 것입니다. 흙은 아무 말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 생명의 토대가 되고 근원이 되는 거죠. 저는 지금까지 저의 목소리를 높이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사랑하기 때문에 말을 못해 왔습니다. 그리고 한국교회의 공공의 덕을 세우기 위해서 하고 싶은 말을 꾹 참아 왔습니다. 흙처럼 살아온 거죠. 그런데 그런 흙이라 할지라도 하늘에서 비를 내리고 생명의 씨앗을 떨어뜨려줘야 싹이 나고 뿌리를 땅속으로 박을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흙이 하나님의 손에 잡혔을 때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곧 만물의 영장인 아담과 하와가 지어지게 됐고 온갖 생물이 다 만들어지게 된 것입니다. 저는 최근 2, 3년 동안 초야의 흙처럼 살아왔지만, 하나님이 명하시고 하나님의 손에 잡힌 흙이 될 때 당신의 위대한 도구로, 당신의 위대한 꽃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사실도 새삼스럽게 생각해 봤습니다. 다만 흙은 흙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하지요. 자칫 흙이 바람에 잘못 나뒹굴 때 온갖 미세먼지가 되어 사람들에게 해악이 되지만 하나님의 손에 붙들리면 하나님의 위대한 그릇으로 빚어질 수 있기 때문이죠. 오늘도 여전히 저는 ‘내 마음 흙이 되어’ 살아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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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4-04-1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우리들만의 아주 특별한 밤
    저는 故 이어령 교수님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이어령 교수님이 누구이십니까? 천의무봉의 필력으로 끝없는 지식을 거대한 산맥처럼 이어가셨고 '디지로그' '젊음의 탄생' '생명이 자본이다' 등과 같은 고정관념의 틀을 깨뜨리는 창조적 신지식의 세계를 보여주신 분입니다. 그런데 그런 분이 저의 문학세계를 인정해 주시고 시집 ‘꽃씨’ 추천사에서 이런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한국시사의 첫장으로 알려진 육당 최남선의 ‘바다에서 소년에게’에서는 파도가 네까짓께 뭐야라고 바위와 뭍을 몰아세우며 우르르 쾅 덤벼들지만 소강석 목사의 그리움에서는 오히려 파도와 뭍의 절벽은 서로 친화의 사랑과 그리움으로 어울린다.(중략) 불교에 한용운 스님의 임의 침묵이 있었던 것처럼 기독교의 지도자들도 시를 쓰는 계기를 마련해 주시기를 빌면서 이만 말을 거두려한다.” 특별히 이어령 교수님께서 저의 시에 대해서 애착심이 많으셨습니다. 언젠가는 전화를 주셔서 “내가 하늘나라 갈 날이 얼마 안 남은 것 같습니다. 내가 뭐 추천서 쓸 거 없습니까? 작품 있으면 마지막으로 선물을 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시집 ‘외로운 선율을 찾아서’를 썼을 때 추천사를 써 주셨습니다. “소강석 목사는 예향(藝鄕)의 마을 남원 출신으로서 목회자이면서 동시에 시문(詩文)에 능하고 풍류와 흥이 있으며 거친 남도 사내의 야성도 있다. 그의 특유의 친화력과 열정, 사람을 웃게 하고 행복하게 하는 풍모를 잊을 수가 없다. 그래서 그에게 나의 언어를 마지막 선물처럼 주고 이 시집의 추천사는 어쩌면 나의 마지막 도움의 말이 될지 모른다.(중략) 나는 그가 그리울 것이다. 그의 시가 그리울 것이다. 그와 나누었던 추억과 순간들이 그리울 것이다. 소년 같은 그의 웃음과 미소도…” 결국 이어령 교수님은 돌아가셨고 저는 코로나 상황에서도 그 분의 장례식에 직접 가서 조문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에 이 시대 최고의 문학평론가인 김종회 교수님께서 저의 시를 인정해 주시고 평가해 주셨습니다. 저에게는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모릅니다. 사실 목사들의 시가 문단에서 잘 인정을 못 받습니다. 일반 서점에서도 잘 팔리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목회자의 시가 이미지나 낯설게 하기, 은유와 함축, 반전 같은 것들이 없고 그냥 고백적이고 서사적으로 드러나게 쓰다 보니까 논외로 두는 것입니다. 그러나 김종회 교수님께서는 저의 시를 접하시더니 목회자 시의 테두리를 넘어서 문학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지난번에 ‘너라는 계절이 내게 왔다’ 시집 원고를 보내 드렸더니 “몇 군데 좀 수정하면 안 되겠느냐” 하셔서 다시 표현을 했더니 확실히 더 돋보이는 것을 느꼈습니다. 작년에 한강 세빛섬에서 북 콘서트를 했을 때도 직접 참석하셔서 시 토크를 진행해 주셨습니다. 후문에 의하면 우리 교인들 가운데 그때 세빛섬에 초청받지 못한 분들이 정말 부러워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정말 예상을 초월한 북 콘서트였습니다. 이번에는 책을 파는 북 콘서트가 아니라 봄을 맞아 꽃과 관련된 저의 시를 이해하고 감상하고 느끼는 ‘꽃소리 들리는 밤’의 시 콘서트입니다. 물론 김종회 교수님을 초청하지 않고 우리끼리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영광스럽게도 문단에서 가장 위대한 평론가 중에 한 분이신 김종회 교수님을 모시고 시 콘서트를 할 수 있어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먼저 짧게 1부 예배를 드린 후, 우리 교인들과 함께 시 낭송과 노래, 연주, 토크를 진행하며 꽃향기가 보이고 꽃소리가 들리는 특별한 밤을 갖는 것은 우리들만이 누리는 특권입니다. 저녁에 오신 분들을 정말 예의를 갖춰서 모시겠습니다. 오늘 밤, 우리 모두에게 잊을 수 없는 ‘꽃소리 들리는 밤’이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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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4-04-07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험한 세상 사잇꾼 되어”
    이어령 선생님은 생전에 '사잇꾼'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어느 조직이든 이쪽과 저쪽의 사이를 좋게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조직은 망하지 않아. 개발부와 영업부, 두 부서를 오가며 서로의 요구와 불만을 살살 풀어주며 다리 놓는 사람, 그 사람이 인재고 리더야. 리더라면 그런 '사잇꾼'이 되어야 하네. 큰소리치고 이간질하는 '사기꾼'이 아니라 여기저기 오가며 함께 뛰는 '사잇꾼'이 돼야 해.”(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에서) 역시 언어의 연금술사요 천재적 통찰력이 빛나는 말씀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 시대를 보면 사잇꾼은 보이지 않고 사기꾼들이 많은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정치도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만들고 행복하게 하는 본령을 벗어나서 자기 진영과 정파의 이익만을 위해 온갖 협작과 비난을 앞세워 공격하는 것을 봅니다. 그러면서 사회는 이념, 계층, 지역 갈등을 일으키며 분열하고 충돌하고 있습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종교마저도 어느 한쪽에 서서 진영과 정파에 치우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입니다. 종교는 어느 한쪽으로 서는 게 아닙니다. 특별히 종교 지도자는 여기도 품고 저기도 품는 사잇꾼이 돼야 합니다. 코로나 때 저는 이미 정부에 주도권을 빼앗겨 버린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교단 총회장과 한교총 대표회장을 하면서 어떻게든지 현장 예배를 지키면서도 국민 보건을 도모하기 위해 몸부림쳤습니다. 제 나름대로는 어떻게든지 션샤인 처치가 되고 허들링 처치가 되도록 나날이 애를 태우며 하루하루를 살아갔습니다. 특별히 초갈등 사회를 맞이하여 진보와 보수 사이의 간격을 좁히려고 최선의 노력을 다했습니다. 우리나라는 남북으로 대치하고 있어서 특별한 상황이지만, 그렇지 않은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진보와 보수, 좌우가 서로 잘 조화를 이루어가는 것을 봅니다. 저도 지금까지 사잇꾼의 지도력을 발휘해 왔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은 저의 스탠스를 지지해주고 응원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극단적 진영에서는 저를 얼마나 공격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특별히 코로나 시기에 만약 제가 어느 한쪽 말만 듣고 잘못된 판단을 하였다면, 한국교회는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데드크로스의 깊은 수렁에 빠질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한국교회가 션사인 처치가 되어 사회적 순기능 역할을 하기는커녕, 오히려 사회에 초갈등을 유발하고 심화시키는 우를 범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코로나 시기에 예배 회복을 위하여 정부와 맞서서 싸울 때는 싸우면서도 동시에 사회의 아픔과 상처를 어루만지고 치유하는 교회의 역할을 호소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코로나로 인하여 상처를 입은 한국교회의 사회적 이미지도 점점 회복할 수 있었고, 분열과 갈등이 아닌 협력과 상생의 길을 열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 이후로도 저는 여전히 이런 사잇꾼의 리더십을 발휘하려고 했습니다. 분열된 교계 연합기관을 하나로 묶으려고 엄청 노력을 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지나치게 여(與)도 아니고, 야(野)도 아닌 중도적 균형을 지켰습니다. 성경적 본질과 가치를 지키는 데는 철저하게 보수적이지만 사회적 약자와 동서 화합, 남북 화해에 있어서는 진보적인 가치도 추구했습니다. 물론 자신의 태도를 극명하게 표현하는 게 가장 쉬운 일이죠. 누구를 비판하든지, 누구 한 사람을 치켜세우든지 이런 건 아주 쉬운 일입니다. 그러나 양쪽을 다 품고 양쪽과 함께 같이 가는 사잇꾼의 역할은 쉬우면서도 어려운 일입니다. 종교가 무엇입니까? 영혼 구원과 함께 사회에서는 순기능이 되고 선순환 역할을 하는 것이죠. 그런데 오히려 종교가 사회 분열과 갈등을 심화시키는 기폭제가 되어야 하겠습니까? 무엇보다 종교는 영생의 길을 안내하면서도 갈등하고 충돌하는 사회로 하여금 숨통을 트이게 해줘야 합니다. 종교 지도자가 사기꾼이 되면 사이비가 되고 이단이 되어 자기 욕망과 욕구만 채우게 되죠. 그런 사이비나 이단은 사회에 더 큰 해악을 가져다주고 악순환을 일으키며 인간의 삶을 오염시키고 파멸의 길로 인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저도 애당초 종교를 잘못 만났으면 잘못된 종교 지도자가 됐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소속 목사이고, 그 교단의 총회장과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한교총 대표회장으로 섬기게 된 것을 정말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저는 단 한 번도 양극단에 서서 대척점을 두는 행동을 하지 않고 저만의 정체성 위에서 화합꾼과 사잇꾼이 되어왔던 것이 너무 감사합니다. 저의 욕망보다는 하나님의 명예와 영광을 위해서 살아온 것이 너무나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저는 험한 세상의 사잇꾼 되어 하나님과 성도들, 그리고 우리 교계와 사회에 사랑과 용서, 화해와 연합의 다리를 놓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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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4-03-17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그대, 웃으라고 꽃피지요”
    언제부터인가 저희가 지하철역과 분당선 전철, 교회 외벽에 교회 이미지 광고를 했습니다. 아름다운 문구를 새겨서 제 사진도 넣고 예배 시간도 안내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생각이 좀 바뀌었습니다. 대형교회가 자꾸 개교회주의적 홍보에 너무 치우치지 않나하는 생각이 들어서 공익적 홍보로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제 사진도 빼고, 예배 시간도 뺐습니다. 다만 어떤 이단이나 사이비 단체의 홍보가 아니라는 의미로 작게나마 새에덴교회 이름은 넣어놨습니다. 누군가가 말했듯이 문명이 발달할수록 인간은 더 많은 상처를 받기 때문이죠. 그리고 그 상처는 그 사람을 절망의 바닥으로 이끌어갑니다. 그래서 이 작은 한 문구를 통해서 정서적, 사회적 위무를 해 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헤밍웨이는 그의 소설 ‘노인과 바다’에서 현대인에게 질문을 하나 합니다. “인간에게 가장 큰 죄가 어떤 죄인가? 그것은 희망을 잃는 죄”라고 했습니다. 다른 죄는 다 용서받아도 희망을 잃은 죄는 하나님께 용서를 받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제가 쓴 ‘꽃으로 만나 갈대로 헤어지다’라는 시집에 수록된 ‘꽃과 예수’라는 시가 있습니다. “너의 상처를 내게로 가져오면 꽃이 되고 / 너의 눈물을 내게로 가져오면 진주가 되고 / 너의 한숨을 내게로 가져오면 노래가 되리니 / 아무리 힘들어도 너를 버리지 마라 / 피투성이가 되었더라도 / 너를 끌어안고 내게로 오라 / 세상이 너를 버렸을지라도 / 나는 너를 꽃처럼 껴안고 / 이 추운 밤을 지나 / 봄날의 아침을 맞으리니.” 시적화자가 말하는 것처럼 예수님은 우리의 상처도 꽃이 되게 하고 우리 눈물을 진주가 되게 하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한숨을 가져와도 노래가 되게 하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힘들어 피투성이가 되고 세상에서 버림받은 존재가 되더라도 희망만큼은 버리지 말라는 거지요.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우리의 상처와 아픔을 꽃이 되게 하시며 또한 우리에게 꽃처럼 다가오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인생이 한 밑바닥에 있어도 그 밑바닥에서 한 송이 꽃으로 피어나게 하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다 보면 바닥을 경험하지 않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아니, 지금도 인생 밑바닥에서 절망과 탄식을 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 인생의 밑바닥에서 꽃이 피어나게 하는 분이십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에게 희망을 갖다 주기 위해서죠. 우리로 하여금 다시 한번 웃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제 봄이 왔으니 곧 꽃이 피게 될 겁니다. 매화와 목련, 진달래, 개나리 순으로 꽃이 피겠지요. 그런데 그 꽃은 언덕 위에서만 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밑바닥에서도 피어납니다. 아니, 바위틈 밑바닥에서도 피어납니다. 꽃 피는 모습을 보고 기분 나빠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기암절벽 위에서나 언덕 아래 밑바닥에 피어 있는 꽃은 더 아름답고 귀하게 보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항상 예수님은 우리 마음속에 꽃 한 송이로 피어난다는 것입니다. 봄이 와서 꽃이 피는 게 아니라 그 꽃송이 하나로 봄이 오도록 하기 위해서이지요. ‘꽃과 예수’라는 시에서 “너를 꽃처럼 껴안고 이 추운 밤을 지나 봄날의 아침을 맞겠다”고 한 것처럼 저 역시 인생의 맨 밑바닥에서 절망하는 사람들에게 한 송이 꽃으로 다가가고 싶습니다. 실제로 저는 그렇게 웃으며 살죠. 제가 진지한 설교를 하거나 사색에 잠길 때를 빼놓고는 항상 웃는 얼굴입니다. 누구를 만나든지 웃으며 악수를 하고 반갑게 맞습니다. 그때 제 얼굴에는 웃음꽃이 활짝 피어나 있죠. 희망의 꽃이 화사하게 피어납니다. 왜냐하면 저 역시 주님의 종이기 때문입니다. “그대, 한 번 더 웃어보라고요. 밑바닥에서도 다시 한번 희망을 가져보라고요. 눈 한번 돌려보세요. 온 세상이 다 꽃피는 봄이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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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4-03-10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저녁형 인간이 아침을 깨우다”
    저는 원래 저녁형 인간으로 태어난 것 같습니다. 어린시절 시험공부를 해도 주로 날을 새기도 했고 낮에 잠을 잤습니다. 낮에 공부를 하는 것보다 밤을 새워 저녁에 공부하면 서너 배 이상 효과가 나타났습니다. 광주신학교를 다니며 백암교회를 개척할 때도 깊은 저녁에 공부를 했습니다. 오후에 학교를 마치고 오면, 부지런히 동네 구석구석을 다니며 전도를 하고 깊은 밤이 돼서야 레포트를 작성하고 공부했습니다. 깊은 밤에 공부를 하면 그렇게 머리에 쏙쏙 잘 들어오는지 모릅니다. 저녁에는 그렇게 온몸에 활기가 넘치고 총명스러운데 새벽이 되면 맥을 못 추었습니다. 그런데도 제가 새벽기도를 인도해야 하잖아요. 어떨 때는 저를 깨우는 정 권사님께 “왜 나를 깨우냐고, 권사님이 새벽기도 좀 인도하시면 안되냐”고 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면 정 권사님이 천막교회당으로 가 버리세요. 그러자 또 교인들이 와서 깨우는 것입니다. “전도사님, 어서 일어나씨오. 새벽기도 설교해 주셔야지요.” 그럴 때 저도 모르게 짜증을 내는 경우가 있어요. 그런 짜증을 받아주신 교인들이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그래도 단 한 번도 새벽기도를 빠져본 적이 없습니다. 한동안 새벽형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책들이 많이 나왔지 않습니까? 저는 그런 책을 읽고 “나는 왜 이러지? 새벽형 인간이 성공을 한다는데 나는 왜 저녁형인가?” 그런데 나중에 보니까 저뿐만 아니라 정말 저녁형 인간이 많이 있더라구요. 저녁을 아주 유용하게 쓰고 효과적으로 쓰는 사람을 봤습니다. 저녁이 되면 가슴에 별이 들어오고 달이 들어와서 시를 쓰는 사람도 있고, 작곡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저녁에는 은하수의 별들이 이야기를 가지고 와서 밤을 새워 소설을 쓰게 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저는 그런 사람들을 보며 많은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언젠가 ‘저녁형 인간도 성공한다’라는 책을 써 보고 싶은 생각을 하곤 합니다. 그런데 그분들은 저녁에 일을 하고 낮잠을 잡니다. 그러나 저처럼 저녁에 독서를 하고 새벽에 일어나려면 얼마나 몸이 무겁겠습니까? 그래도 제가 구미동 목회시절까지는 모든 새벽기도를 직접 다 인도했습니다. 한얼산기도원에 가서 새벽 4시까지 철야기도회를 인도하고, 우리 교회에 와서 또 5시 새벽 기도를 인도한 적도 많았습니다. 목포에서 집회를 마치고 야간열차를 타고 와서 또 새벽기도를 인도하기도 했습니다. 또 옛날에는 부흥회를 가도 저녁집회, 새벽집회, 낮집회를 다 인도했습니다. 젊을 때는 그걸 다 감당할 수 있었던 거죠. 그런데 언제부턴가 왜 그렇게 새벽이 힘든지요. 그래서 저는 새벽집회 대신 밤 특별집회를 인도하게 됐습니다. 밤 특별집회를 인도하면 저는 펄펄 납니다. 그러니까 특별새벽기도 대신 밤 작정 기도회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신학기를 맞아 자녀들과 함께 해야 한다고 해서 특새를 하게 된 것입니다. 자녀들이 주로 저녁 시간에는 학원을 가니까요. 진짜 저는 잠과의 전쟁, 새벽과의 전쟁을 해야 했습니다. 평소에 늦게 자던 사람이 일찍 잔다는 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늦게 자는데도 기본이 3시에 깨는 것입니다. 어떨 때는 2시에도 일어났습니다. 그러면 그때부터 성경을 보고 기도를 합니다. 그때 만약에 누워서 자버리면 더 몸이 무거울 것이기에 책상에 있거나 또 복도를 걸어 다니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맑은 정신으로 새벽기도를 인도할 수 있었습니다. 요즘은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라고 한 다윗의 고백이 더 다가옵니다.(시108:2) 이러기를 반복하면 몸이 축나겠죠. 그래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그렇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사랑을 받았던 다윗도 70세에 죽게 된 것입니다. 어쨌든, 그래도 이번 한 주간은 야행성이고, 저녁형인 제가 새벽을 깨우고 새벽을 울리는 한 주간이었습니다. 아이들이 새벽에 일어나 교회에 오니 얼마나 눈가에 잠이 오겠습니까? 그래도 제가 설교를 워낙 쉽게 하고 짧게 하니까 제 눈에 조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아이들이 그렇게 은혜를 받고 감동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지난 한 주간은 저녁형 인간이 새벽을 비추고, 깨우고, 울리는 역설적 주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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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4-03-03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순수하면서도 광활하렵니다.”
    작년 연말쯤이었던가요? 유럽 코스테 측으로부터 강사 요청 공문을 받았습니다. 저는 송원석 비서목사를 통해 일언지하에 거절을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멀리 비행기를 타고 다녀오는 것도 부담스럽고, 젊은이에게 말씀을 전하는 것도 역시 어색함이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몇 주가 흘렀는데 갑자기 코스테 대표이신 한은선 목사님이 생각이 났습니다. 그래서 목소리라도 들어보려고 안부 전화를 드렸죠.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강사 결정이 다 되었습니까? 지금이라도 간다면 제가 설 자리가 비어 있습니까?” 그랬더니, “아이고, 소 목사님이 오신다고 말하면 얼마든지 자리를 만들겠습니다.” 제가 그 말씀을 듣고 갑자기 제 안에서 멋진 오해 혹은 거룩한 착각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코로나 때문에 몇 년 동안 쉬다가 작년부터 코스테가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내가 한번 가봐? 젊은 유학생들에게 말씀을 전하면 얼마나 소통이 되고 내 가슴속의 정열이 얼마나 전달이 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자 며칠 후 송원석 목사님을 통해 가겠다고 하였습니다. 대신 저는 밤 집회 한 번 하고 낮 특강 목회자 세미나를 하는 대신에, 유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낮 특강은 홍윤기 목사님이 맡는 조건을 걸었습니다. 코스테 본부에서는 얼마든지 좋다고 해서 홍윤기 목사님과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갔습니다. 제가 바쁜 중에도 말씀을 많이 준비해 가지고 갔습니다. 준비한 말씀을 잘 전달하게 된다면, 저나 유학생들에게 인생의 플롯 트위스트(plot twist, 인생의 새로운 전환점)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서로 간에 리부트(reboot)가 터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아니, 저도 오랜만에 가는 집회이기 때문에 제 사역의 신세계를 이루고 원정 V로그(Vlog)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가서 보니 시간의 제약이 있었습니다. 저 다음에 또 한 분의 스피커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최 측에서는 저에게 미안했는지 10분 이상 더 하셔도 된다고 이야기를 하였지만, 그게 얼마나 큰 의미가 있었겠습니까? 아마 제가 늦게 간다고 해서 그렇게 스케줄이 짜였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마는, 어쩔 수 없이 준비해 간 말씀을 축약해서 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도 오랜만에 젊은 유학생들과 소통을 나눌 수 있어서 의미가 있었습니다. 아니 어쩌면 첫날 저녁, 제가 집회의 포문을 열었던 것입니다. 제 안에 있는 젊음의 야성과 열정이 그들에게 순수하면서도 고스란하게 전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저는 너무 피곤해서 집회가 끝나자마자 바로 나왔지만, 제 메시지를 듣고 오래까지 남아 기도하는 학생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이튿날 저는 목회자 세미나를 통해 아무래도 닫혀 있을 수 있는 목회자와 성도들에게 현대 목회 트렌드와 미래의 흐름을 이야기하며 그럴수록 생명을 붙잡고 가치를 붙잡고 무너져 가는 교회를 세워보자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기회가 되는 대로 다른 분들의 메시지도 들었습니다. 역시 후배 목사들이기 때문에 그들의 메시지는 대부분 단순하고 순수한 면이 많았습니다. 그 단순함과 순수함이 젊은이들의 감성을 자극시키는 것도 보았습니다. 물론 순수하다 보면 앳되게 보이는 면이 있기도 했습니다. 순수함과 함께 폭이 넓고 지경이 광활한 면도 있어야겠다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제가 생각한 대로 좀 연륜이 많은 목사님들의 메시지를 들어보면, 역시 앳된 면은 보이지 않고 나름 노련하고 지경이 넓고 깊은 면을 볼 수 있었습니다. 목요일 오전에는 홍윤기 목사님이 유학생들에게 특강을 하였는데, 아주 젊고 단순함을 유지하면서도 폭이 넓고 지경이 광활한 면이 있음을 새삼스럽게 느꼈습니다. 제가 첫 안타를 쳤다면, 홍 목사님은 홈런을 친거죠. 저는 이번 코스테 집회를 통해서 “내가 더 젊어져야 되겠구나. 더 순수한 메시지를 전해야 하겠구나”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그러면서도 계속해서 장엄하고 폭이 넓고 더 지경이 광활한 설교를 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보았습니다. 젊고도 웅장하며 순수하고 단순하면서도 지경이 넓고 광활한 설교 말입니다. 아쉬움도 있었지만, 수년 동안 가지 못했던 코스테 집회에 오랜만에 가서 젊은이들과 소통하며 그들에게 강렬한 도전을 주었던 것도 나름 의미가 있었고, 후배 목사님들의 설교를 듣고 또 선배 목사님들의 설교를 들으면서 다시 한번 다짐을 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더 순수하면서 깊이 있고 폭이 크며 광활하고 웅장한 설교를 하겠다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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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4-02-25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살아 있기에 글을 쓴다”
    확실히 요즘은 옛날 총회장 시절보다는 달리 조금 덜 바쁩니다. 총회장과 한교총 대표회장으로 섬길 때는 분초를 쪼개가며 살았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마음은 바쁩니다. 마음이 바쁘다 보니까 때로는 불안을 느낄 때도 있습니다. 흔히 말하는 존재적 불안은 아니고 뭔가를 준비하지 못하고 미리 할 것을 해놓지 않았을 때 불안한 마음이 찾아옵니다. 예를 들어 설교 준비가 안 되었다든지 강의안이나 칼럼 등 써야 할 글을 미리 쓰지 않으면 심리적 불안이 오게 되는 거죠. 요즘 돌이켜 보니 시를 많이 못 쓴 것 같았습니다. 물론 ‘문학나무’에 성경인물 시를 계속 쓰고 있습니다마는. 이번 주 같은 경우는 시를 많이 못 쓴 것에 대한 불안감이나 압박감 같은 것이 들어 왔습니다. 일반적으로 시는 고독해서 쓰기 시작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물론 고독해서 시를 쓰는 단계가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본인이 살기 위해서 시를 쓰는 경우도 있습니다. 시 뿐만 아니라 일반 글도 마찬가지입니다. 심심해서 쓰다가 보니까 나중에는 살기 위해서 글을 쓰고 그 시와 글이 자신을 이끌어가는 단계가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시인이 시를 안 쓰고 문인이 글을 안 쓰며 가수가 노래를 안하고 목회자가 설교를 안 하면 불안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 것처럼 글을 쓸 때 자기 인식을 하게 되고 내가 누구인가에 대한 존재감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글과 삶은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글을 쓰면서 자신이 살아있음을 확인하고 자신의 존재가 어떠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코 죽은 자는 글을 쓸 수가 없습니다. 불안을 느끼는 것 자체가 살아있는 것입니다. 죽어 있으면 이런 불안도 느끼지 못합니다. 이 불안이 끊임없이 창의적 세계로 가게하고 또 끊임없이 생명의 글을 쓰게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글 쓰는 사람은 글을 쓰는 게 아니라 글을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니 글을 살고 있는 사람이 글이 안 써지면 얼마나 불안하고 초조해지겠습니까? 저는 전업 시인이 아니기에 시를 써도 되고 안 써도 됩니다. 이번 주는 시는 그만두더라도 목양 칼럼(아포리즘)이 잘 떠오르지가 않았습니다. 물론 먼저 칼럼을 써 놓았습니다. 국제정치학을 전공한 아들과 ‘건국전쟁’에 대해 서로 대화하고 토론하는 글을 썼는데, 아들에게 보여 주었더니 좀 어색한 것 같다고 해서 다른 글을 쓰기로 했습니다. 다시 새로운 글을 쓰려고 하니까 깊은 사유(思惟)를 해야 했습니다. 문득 저는 글과 시, 시와 생명, 그리고 삶과 시간을 연결하는 이야기를 구상해 보았습니다. 분명히 저는 시 때문에 사는 것은 아닙니다. 시를 써도 되고 안 써도 됩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니까 반드시 시를 써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니 시가 아니라도 반드시 글을 써야 하지요. 설교문이 됐건 칼럼이 됐건 기고가 되었건 글을 써야 합니다. 제가 글을 쓸 때 창의적인 존재가 됩니다. 창의가 없는 한 저는 죽은 존재와 다름없기 때문이죠. 그러니까 글을 써야 합니다. 아니 글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 글이 어느 때부터 인가는 저를 창의적인 세계로 인도하고 창의적인 공간으로 이끌어주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 사는 생명은 영원한 생명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한도 내에서 제한적으로 사는 게 육신의 삶입니다. 물론 우리는 부활을 하고 예수 믿는 자는 영원히 천국에 거하지만요. 그러니까 우리는 이 땅에 사는 동안 글을 써야 합니다. 이런 사람이 글과 함께 사는 사람이고 글을 사는 사람이고 글의 인생이 되고 글의 생명이 됩니다. 살아있으나 사유하지 못하고 글을 쓰지 못하는 것은 죽은 존재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저는 살기 위해서 오늘도 글을 쓰고 시를 씁니다. 그런 마음으로 오늘도 목양 칼럼을 쓰게 되고 새로운 시를 써야겠다는 도전을 받게 되었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써야 할 글이 많습니다. 제가 목사가 되어서 적어도 제 키만큼의 책은 써야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도 아직은 턱없이 모자란 것 같습니다. 물론 출판되지 않는 글 분량이야 제 키보다 훨씬 많지만요. 하여간 저는 앞으로도 창의적인 글을 쓰고 끊임없이 시를 쓸 것입니다. 살아 있는 한 생명의 글을 쓸 것입니다.
    • 칼럼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4-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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