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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생명은 그 자체로 존귀한 것입니다”
    지난주에 CBS가 주최한 순천 전도 부흥회를 다녀오는 길에 순천만 갈대숲을 갔다 왔습니다. 문득 제가 쓴 ‘꽃으로 만나 갈대로 헤어지다’라는 시 구절이 생각이 났습니다. “우린 꽃으로 만나 갈대로 헤어지나니 / 풀잎으로 만나 낙엽 되어 이별하나니 / 산은 눈을 감고 / 강물은 귀를 막고 / 달은 소리 없이 걷고 있나니 / 새 한 마리 울어 청산이 울리고 / 꽃송이 하나로 봄이 오고 / 별 하나 떠서 온 밤이 환해지나니 / 바람이 스쳐가는 갈대 사이로 / 내가 서 있어요 / 갈대로 헤어진 우리 / 다시 꽃으로 만날 순 없을까.” 지금은 은갈색의 갈대꽃이 춤을 추고 있는 계절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아름다운 은갈색 꽃으로 만났지만 이제 12월이 되고 혹한의 겨울 추위가 오면 갈대들이 부러지고 상하게 될 것입니다. 더더구나 폭설이 내리면 그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서 모두가 다 쓰러져버리고 아쉽게 헤어지고 말 것입니다. 그렇지만 다시 또 봄이 되면 그 속에서 다시 싹이 나고 또 여름이 되면 푸른 잎사귀가 돋고 가을이 되면 은갈색의 꽃이 피잖아요. 이런 걸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모든 생명은 존귀하다는 사실을 생각합니다. 가을 들판에서 바람에 몸을 흔들고 있는 억새도, 산기슭의 구절초도, 어두운 구석에서 울고 있는 귀뚜라미도 하나님의 창조 안에서 존귀한 생명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생명이라고 발음할 때마다 저는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느낍니다. 생명은 언제나 신비롭고 눈부시며 그 신비스러움과 눈부심 앞에 때로는 울컥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지금 중동은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발단은 무장단체 하마스의 공격과 민간인 학살로 시작이 되었지요. 또 이스라엘은 응징을 하게 되고요. 이것이 또 민족과 인종, 종교 간의 갈등으로 확전되고 중동 전쟁으로 확전이 될 수도 있습니다. 사망자만 해도 수 천명에 달합니다. 그런데 서로 간의 앙금이 있어서 군 시설은 파괴할 수 있고 공격할 수 있다 하더라도 어떻게 민간인을 학살하고 병원을 공격하느냔 말입니다. 그것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기독교 병원을 말이죠. 누구의 공격으로 시설이 파괴되었는지 명명백백하게 밝혀지겠지만 미국과 이스라엘에서는 하마스의 공격이라고 하고 하마스는 이스라엘의 공격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이건 있을 수가 없는얘기입니다. 어떻게 군사시설도 아닌 병원을 공격할 수 있습니까? 생명 그 자체로 존중해야 하지요. 여기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종교란 무엇입니까? 특별히 종교는 생명에 대한 궁극적인 질문에 해답을 제시해 주어야 합니다. 내세에 대한 궁극적인 길을 안내하는 게 종교입니다. 그리고 이 땅의 평화를 지켜내고 생명을 존중해야 되는 것입니다. 종교는 어떤 경우에도 살인을 조장하거나 전쟁을 조장해서 평화를 깨면 안 됩니다. 어떻든지 화해와 평화의 분위기를 조성해야 합니다. 우리는 결코 꽃으로 만나 갈대 헤어져서는 안 됩니다. 헤어진다 하더라도 우리는 이듬해 다시 태어날 세상에 대한 희망을 갖고 소망을 가져야 됩니다. 그리고 다시 갈대꽃들이 피는 꿈을 꿔야 합니다. 순천만의 갈대숲을 거닐며 이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아무리 혹한의 겨울에 갈대가 부러져 있고 쓰러져 있더라도 우리는 다시 새 생명의 꿈을 꾸고 은갈색 갈대꽃의 꿈을 꿔야 한다”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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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3-10-22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나와 안 맞으면 선을 긋는 사회
    저는 4.19혁명 국가조찬기도회 설교를 몇 번 하러 갔습니다. 그때마다 농림부장관을 지내고 국회의원 5선을 하신 김영진 장로님이 “4.19혁명의 기록은 역사 속의 고서로 감춰져 있으면 안 된다”고 하시면서 4.19혁명을 유엔 유네스코에 등재하기 위해서 정말 애를 많이 썼습니다. 우리 교회도 약간의 도움은 드렸지만 그분은 온몸을 다 바쳐서 그 일을 했습니다. 4.19혁명이야 말로 대한민국을 새로 거듭나게 한 고통의 산실이었습니다. 부정과 불의를 추방하고 정의와 인권을 회복시킨 위대한 혁명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민주화의 불길을 활화산처럼 타오르게 한 불씨 혁명이고 점화 혁명이었습니다. 당시 독재 정부는 자유와 민주의 팔을 묶고 목을 죄었지만 4.19 혁명은 검은 군홧발에도 굴하지 않는 민주와 자유를 향한 인권 운동의 함성이었으며 고독한 새벽별의 피눈물과 처절한 절규로 독재의 성벽을 무너뜨렸던 타오르는 민주의 혼이었습니다. 그 민주화의 횃불은 민족의 가슴마다 들불로 번지고 조국 근대화와 자유 민주주의의 향기로운 꽃이 필 때까지 자유와 인권, 민주화의 정신적 보고요, 폭풍의 진원지가 되었습니다. 급기야 4.19의 정신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불쏘시개가 되고 그 불멸의 꽃은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의 꽃을 만발하게 하는 한 알의 밀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4.19정신을 기억하고 계승시켜야 합니다. 4.19의 대가없는 희생으로 대한민국은 지금 자유민주주의가 꽃을 피우고 모든 국민이 자유와 행복을 누리며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김영진 장로님께서 몇 년을 고생한 끝에 드디어 4.19혁명이 유엔 유네스코에 등재가 되게 하였습니다. 마침내 4.19묘역에서 유엔 유네스코 등재 헌정식을 하고 기념식을 하려고 하는데 4.19에 속한 어느 단체에서 그걸 문제 삼은 것입니다. “왜 우리하고 의논을 안 하고 당신들끼리 추진을 했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묘역 앞에서 행사를 하지 못하고 장소를 옮겨서 하기로 했습니다. 제가 그 이야기를 듣고 정말 탄식을 하였습니다. “우리의 자랑스러운 역사인 4.19혁명이 유엔 유네스코에 등재된 것이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 일인가. 그런데 그런 일을 자기들과 의논하지 않았다고 그렇게 기분 나쁘게 생각할 일인가. 우리 사회가 언제부터 이렇게 극단적 왜곡 편향 사회가 되었는가. 혹시 소통이 조금 부족했어도 그렇게 노력해서 유네스코에 등재가 되었으면 서로 칭찬하고 격려하며 감사한 일이 아닌가...” 그런데 너무 다행스럽게도 누군가의 중재로 조정을 하고 화해를 하게 해서 4.19에 속한 여러 단체가 함께 4.19묘역에서 헌정식과 기념식을 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참 얼마나 다행입니까? 저는 그 소식을 듣고 너무 다행이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교회라고 예외이겠습니까? 지난번에 제가 아프리카에서 선교사님들을 모아놓고 세미나를 하고 난 후 몇 분이 저에게 찾아와서 이렇게 사과를 하는 것입니다. “소 목사님, 지난날 유튜브의 헛소문을 듣고 목사님을 한동안 오해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목사님의 강의를 듣고 보니 그것이 전혀 아닌 걸 알았습니다. 한국교회를 위해서 그토록 애를 쓰셨는데... 정말 죄송합니다.” 또한 부산 엑스포 유치를 위한 홍보 활동이야말로 아름다운 공공외교의 일환입니다. 그런데 이걸 또 다른 방식으로 오해하는 사람이 제 주변에 있다는 것을 알고 깊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언제부터 우리 사회가 무조건 자기하고 안 맞으면 선을 긋고, 아무리 아름다운 가치와 정신, 숭고함을 계승해도 자기와 의논 없이 하면 이렇게 반대를 해 버리는가. 또는 자기 확증편향성과 맞지 않으면 이렇게 해 버리는가?” 요즘 주변을 보면 진짜 뜻하지 않는 오해와 확증 편향적 사고에 갇혀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아무리 설명을 하고 이해를 시키려고 해도 자기만의 생각에 갇혀 남들을 판단하고 왜곡된 시각으로 보려고 합니다. 교회는 결코 싸움과 다툼, 분열의 종교가 아닙니다. 사랑과 화해, 용서의 종교입니다. 전쟁을 막고 자유와 평화를 선도하며 국민 모두가 행복한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어가는 것이 종교의 사회적 책임과 환원 사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새에덴교회가 목회적 대형교회로서 사회적 순기능과 선순환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도록 섬겨나갈 것입니다. 아니 저부터 분열과 다툼이 있는 곳에 사랑과 평화, 연합과 일치의 중재적 역할을 해 나가는데 앞장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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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3-10-15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아프리카에 꽃씨를 뿌리러 갑니다.”
    저는 10여 년 전에 아프리카 선교를 간 적이 있습니다. 그때 마사이족들이 사는 곳으로 가서 선교를 하였습니다. 몇 년 후에는 ‘월드비전’과 함께 에티오피아에 가서 선교와 구호 활동을 하였습니다. 이번에는 ‘글로벌에듀’에서 아프리카에 가자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냥은 가지 말고 학교를 하나 짓자는 것입니다. 제가 사실은 ‘글로벌에듀’의 이사장이 아닙니까? 그러나 한 주 동안에 아프리카를 갔다 온다는 게 너무 엄두가 안 나고, 또 학교를 하나 짓는 것도 재정적 부담이 들어서 안 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글로벌에듀’ 상임 이사님이 “아프리카에 학교 하나 짓고 부산 엑스포 유치대에 가서 아프리카의 정상과 외교부 장관에게 부산 엑스포 유치를 위한 스피치를 해주라”는 것입니다. 저는 갈등이 많았습니다. “이것도 공공외교 중의 하나인데 김진표 국회의장님께서 가시지만 나 같은 것이 가서 스피치를 한다고 얼마나 효력이 있겠는가...” 그런데 제가 강요하지도 않았는데 김철수 장로님이 학교 짓는 돈을 자기가 감당하겠다고 연락이 오고, 또 안영준 집사님이 행사비 일부를 감당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마음에 고민이 생긴 것입니다. 제가 가면 아프리카 전역에서 선교사들이 오실 텐데 선교사들에게 식사 대접을 하고 세미나를 하고 또 교통비를 지원하고 섬겨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각국 정상과 외교부장관들이 삼성 스마트폰 폴더 폰을 선물 받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먼저 힘겹게 헌신하는 성도들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그렇지만 결국 개미군단의 헌신자들이 생겨나서 어쩔 수 없이 가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제 아들이 국제정치학을 전공하였는데 “아빠가 한 살이라도 젊을 때 폼 나게 가서 공공외교를 하고 오라”고 하는 것입니다. 제가 그 말 한마디에 마음이 움직였던 거죠. 그래서 요즘 영어 연설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가서 이런 요지의 스피치를 하려고 합니다. “우리나라가 눈 떠보니 선진국이 되었습니다. 선진국이 그냥 된 게 아니라 선교사들이 와서 복음을 전하고 신문명을 전달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왕에 이 자리에 선 김에 우리 대한민국을 자랑하고 싶습니다. 대한민국은 6·25전쟁 때 딸랑 부산밖에 안 남았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낙동강 전선을 사수하여 오늘의 대한민국을 이루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원조받은 나라에서 최초로 원조를 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저는 부산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부산은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최후의 보루였고 대한민국의 혼과 정신이 아직도 숨 쉬고 있는 곳입니다. 더구나 부산은 세계 최고로 아름다운 항구도시입니다. 부산은 태고적의 신비로움과 현대 문화가 조화를 이루는 얼마나 아름다운 바다의 도시인지 모릅니다. 마치 모든 소리가 세이렌의 노래로 들릴 정도로 아름답고 고혹적인 항구도시입니다. 저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대한민국 종교 지도자로서 여러분이 2030년도 엑스포에 부산으로 오시면 좋겠다는 마음이 강렬합니다. 만약에 여러분들이 2030년도 부산 엑스포에 오시게 된다면 여러분은 환상의 도시에 오시는 듯 착각을 하게 될 것이고 세이렌의 앞바다를 지나가는 듯한 매혹적인 여행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부산을 응원해 주십시오. 부산을 사랑해 주십시오. 부산 엑스포를 위하여 박수를 쳐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아프리카에 복음과 선교, 그리고 공공외교의 꽃씨를 뿌리러 가는데 얼마나 싹이 나고 줄기가 자라고 꽃이 피어날지 모르겠습니다. 오직 기도하는 마음으로 다녀오겠습니다. 성도님들께서 저의 건강과 숙면 그리고 선교와 공공외교 활동을 위하여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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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3-10-01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은혜를 기억하는 사람과 잊는 사람
    요즘 저는 씁쓸한 기분을 느끼고 있습니다. 사실 이런 일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죠. 아쉬울 때는 그렇게 도와달라고 하고 살려달라고 하다가 나중에 일이 끝나고 나면 확 돌아버리는 사람을 볼 때 말이죠. 저는 원래 빚을 한 번 지면 10배로 갚는 사람이고 절대 받은 은혜를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살아온 사람이기 때문에 더 그렇습니다. 요즘 뉴스를 보면 그렇게 자기를 키워주고 은혜를 베풀어준 스승을 나 몰라라 하고 배은망덕한 일도 보지 않습니까? 그런 일을 겪는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아플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저도 총회와 교계를 섬기면서 제게 힘이 있을 때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찾아왔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정치적으로 생매장이 되어갈 사람들이 와서 제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얼마나 통사정을 했는지 모릅니다. 그럴 때면 한 번도 거절하지 않고 도와 드렸지요. 그런데 그런 일이 지나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싹 돌아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더구나 세월이 흘러 교권을 가진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 옛 시절을 기억하지 못하고 안하무인으로 행동하는 것을 보면 참 마음이 씁쓸합니다. 하긴 제 자신도 마찬가지일지도 모릅니다. 총회 기간 중에 저를 총회장으로 만들고 천국에 가신 고 박정하 장로님 묘소를 한번 찾아가려고 했습니다. 한동안 우리 총회가 너무 어수선할 때 저는 교단을 옮겨버릴까도 생각한 적이 있었거든요. 그랬는데 그때 그분이 나서서 교단법을 고쳐서 57세에 저를 부총회장이 될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57세에 부총회장이 되고 만 58세에 총회장이 되게 만들어준 것입니다. 그리고 천국을 가셨습니다. 저는 여러번 그분이 잠들어 있는 묘소를 찾아가 꽃다발을 헌화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묘소를 한번 찾아갈까 했는데 시간이 여의치가 않았습니다. 제가 아쉬워하자 옆에 있는 분들이 “그러지 말고 차라리 그 분 기일 때 찾아가자”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마음은 잊지 않았지만 가지를 못했습니다. 그러고 보면 저도 똑같은 사람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제가 언젠가는 한번 꽃다발을 들고 묘소에 찾아가려고 합니다. 모름지기 사람은 기억을 해야 합니다. 받은 은혜를 기억할 뿐 아니라 잘못을 기억하고 뉘우쳐야 합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가면 유대인들보다 독일인들이 더 많이 찾아온다고 합니다. 지난 과거를 잊지 않고 다시는 그런 실수를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이번에도 대통령께서 추석 선물을 보내주셨습니다. 이걸 저는 먼저 김현숙 권사님께 보내 드렸습니다. 저를 그렇게 사랑해 주신 고 문정남 장로님을 생각하면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대전에 갔는데 대전 현충원에 잠들어 계신 문 장로님 묘소라도 찾아갔어야 되는데 가지를 못했습니다. 이런 말을 하는 제 자신이 너무나 부끄럽습니다. 한 번은 날을 잡아서 문 장로님의 묘소도 찾아가고 박정하 장로님의 묘소도 찾아가야 되겠습니다. 그것이 저다운 삶이고 소 목사다운 삶이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도 저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삶을 살고 힘을 가질수록 목에 힘을 빼고 더 겸손하고 더 많이 안고 품겠습니다. 그리고 은혜를 베푼 사람을 끝까지 기억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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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3-09-2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그것은 편지였고, 시와 노래였다”
    지난 월요일 우리 교회 몇 목사님들과 산행을 하던 중에 천국에 가신 조용기 목사님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저는 조용기 목사님이라는 말씀에 갑자기 조 목사님이 보고 싶고 그리워졌습니다. 그래서 당장 다음 날 모든 일정을 미루고 조용기 목사님 묘소를 찾아가기로 했습니다. 마침 그때가 2주기 즈음이었거든요. 그래서 의전하는 장로님들에게 꽃다발을 준비해서 미리 도착하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도착했더니 장로님들이 안 계시는 것입니다. 알고 봤더니 오산리기도원으로 내비게이션을 쳤는데 원주로 가버렸다는 것입니다. “왜 원주로 갔냐”했더니 “오산리를 오살리로 쳐서 원주로 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시간이 넘게 차 안에서 기다렸습니다. 제가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서 혼자 묘소를 찾아갈 수도 있지만 어떻게 빈손으로 갈 수 있겠습니까? 꽃다발을 들고 가야죠.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차에서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장로님들이 도착을 하자 꽃다발을 들고 갔습니다. 아직 가을이지만 한낮이라 땡볕이 이마를 찡그러지게 했습니다. 그 땡볕 아래서 묘소 앞에 꽃다발을 드리고 잠시 묵념을 하며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제가 장례위원장으로 목사님의 장례식을 섬긴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2주기가 되었네요... 목사님이야 하나님의 품에 안식하고 계시겠지만 그래도 목사님이 그리워서 왔습니다. 그리워서 꽃다발 하나 들고 왔습니다.” 그 순간에 조 목사님과의 지난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습니다. 특별히 국민일보 31주년 기념예배 때의 일이 생각이 났습니다. 이영훈 목사님께서 통성기도를 인도하셨고 저도 강단에 서서 손을 들고 기도하는데 누가 제 손을 잡는 것입니다. 눈을 뜨고 보니까, 조용기 목사님이 제 손을 목사님의 머리에다 얹으며 안수기도를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지금 소 목사님 같은 패기와 용기 그리고 영력을 다시 회복하고 싶어요. 소 목사가 내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를 해주세요.” 저는 순간적으로 조 목사님을 꽉 끌어안고 기도를 하였습니다. 제가 어떻게 감히 조 목사님의 머리에 손을 얹고 안수기도를 할 수 있단 말입니까? 저는 조 목사님 귀에 대고 큰 소리로 기도를 하였습니다. “하나님, 조 목사님이 젊은 날 얼마나 체력을 소진하셨습니까? 여의도순복음교회를 세계 최대의 교회로 키우고 5대양 6대주를 다니며 주님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얼마나 온 몸의 진액을 짜내며 희생하셨습니까? 또한 위태로울 한국교회 수십 년 후를 바라보시며 공적 교회를 지키고 보호하는 대변지 국민일보를 창간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 조 목사님은 몸을 축내고 축내셨습니다. 부디, 조 목사님의 수고를 보상해 주시고 건강을 회복시켜 주옵소서. 청년의 몸과 두뇌와 혀와 기백을 주시옵소서” 조 목사님께서도 기도하는 내내 어린아이처럼 제 품에 안겨서 “아멘, 아멘” 하시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동안 정말 제 몸과 마음이 불덩이가 되었습니다. 얼마나 저를 사랑하고 또 저의 젊음이 부러웠으면 그러셨을까... 그런 분이 흙으로 돌아가 땅속에 누워 계시니 제 자신도 흙이 되는 것 같았고 흙과 제가 동일체라는 생각이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저도 언젠가는 흙 속에 묻히게 될 터인데, 흙이 그냥 흙으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흙의 원소가 내 몸 안에 있고 나도 언젠가 저 흙 속에 묻힌다는 걸 생각하니까 이 땅에 살아있는 동안 주신 사명에 더 충성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돌아오는 그날 저녁에 빗소리가 나서 창문을 열어봤습니다.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문득 시상이 떠올라 펜을 들어서 ‘가을’이라는 시를 썼습니다. “문득 / 가을비가 내리고 / 바람이 불고 / 나뭇잎들이 허공 위로 날아가다 / 나의 발 앞에 떨어졌을 때 / 그건 / 나뭇잎이 아니라 / 편지였다 / 쓰고 싶은 시였다 / 불 꺼진 창문 아래서 / 혼자 부르고 싶은 노래였다 / 눈을 감아도 보이고 / 귀를 막아도 들리고 / 숨을 참아도 부르게 되는 / 사랑이었다.” 그날 내린 비는 그냥 비가 아니었습니다. 그 가을비는 아직은 초가을이지만 바람을 몰고 왔고 나뭇잎들을 떨어지게 하는 비였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떨어진 나뭇잎은 그냥 나뭇잎이 아니라 편지였고 시였고 노래처럼 느껴졌습니다. 아무리 눈을 감아도 보이고 아무리 귀를 막아도 들리고 아무리 숨을 참아도 부르게 되는 가을 사랑이었습니다. 늘 그렇겠지만, 매년 가을이 오면 저는 천국에 가신 조용기 목사님을 그리워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을 생각하며 묘소를 찾아갈 것입니다. 그분을 그리워하는 편지를 쓰고 시를 쓰고 노래를 부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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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3-09-18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당신의 가을이 더 행복하길...”
    “주여, 때가 왔습니다. 여름은 참으로 길었습니다. 해시계 위에 당신의 그림자를 얹으십시오. 들에다 많은 바람을 넣으십시오. 많은 과실들을 익게 하시고 이틀만 더 남극의 햇볕을 주시어 그들을 완성시켜 마지막 단맛이 짙은 포도주 속에 스미게 하십시오...(하략)” 이는 릴케의 ‘가을날’이라는 시입니다. 여름이 그토록 길고 폭염의 나날들이었지만 정작 가을 문턱에 서니까 그래도 남극의 여름의 햇빛을 그리워하고 있는 시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폭염으로 얼굴을 찡그리고 어떻게든지 여름 햇빛을 피하려고 하였지만, 아직도 푸른 나뭇잎들은 여름 햇빛에 환호성을 지르고 있습니다. 햇빛이 강렬할수록 더 부지런히 광합성 작용을 하며 과일들은 단맛을 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뜨거운 햇빛이 여름의 꽃들을 피어나게 하였습니다. 지금 어디를 가든지 길가엔 과꽃, 패랭이, 초롱이 꽃들로 한창입니다. 아니, 제가 산행하는 길에는 벌써 앙증맞게 코스모스꽃이 피기 시작했습니다. 웬 시골 처녀가 분홍색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수줍은 듯 서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화려하고 흠모할 만한 미의 자태를 갖춘 모습은 아니지만 가을바람에 흔들리는 순결한 작은 몸짓으로 저에게 이렇게 말을 하는 듯 느껴졌습니다. “지난, 8월의 뜨거운 햇빛이 없었더라면 나는 이렇게 시원하게 될 수 없었노라고... 살아있는 모든 이들은 여름을 사랑해야 한다. 가을이 오면 올수록 지난 여름이 그리워질 것이라고...” 산행을 한 후 책상에 앉아 아까 전에 본 코스모스의 모습을 생각해 봅니다. 아니, 산 녘에 피어난 이름 모를 작은 꽃들의 모습을 생각해 봅니다. 초가을에 피어난 꽃들의 미소가 제 가슴속에 다가왔습니다. 그들이 말을 할 수는 없지만 하나님이 주신 침묵의 모국어로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지난 여름이 폭염의 계절이었다면 지금 맞는 가을은 당신에게 정염의 계절이 되기를 바래요. 지난 여름의 폭염이 오늘의 우리들을 아름답게 피어나게 하듯이 이번에 맞는 가을은 당신에게 꼭 행복한 계절이 되기를 바래요. 가을을 행복하게 지낼 수 있어야 다시 오게 될 불볕더위도 사랑할 수 있을 거라고... 그리고 마침내 그 불볕더위가 그리워지고 그 더위 속에서도 얼굴을 찡그리지 않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거라고...” 갑바도기아 대교부 중 한 사람인 닛사의 그레고리가 했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예수님이 가르치신 산상 보훈을 보면 마음이 청결한 자가 하나님을 볼 것이라고 했는데(마5:8), 닛사의 그레고리는 이 청결한 마음이란 에덴동산에서 창조되었을 때의 본래 마음을 회복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마음을 회복하면 자연과 교감하게 될 뿐만 아니라 저절로 아름다운 시가 나오고 음악이 나오며 천재적 예술성을 발휘하는 영감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제가 이 신학자의 말이 아니었으면 어떻게 감히 이런 글을 쓸 수가 있겠습니까? 제가 다시 산행을 한다면 이번에는 제가 꽃들에게 말을 건네고 싶습니다. “그래, 너희들도 여름을 잘 견뎌냈지. 지난 여름에 불볕더위가 있었기에 오늘의 아름다운 꽃을 피워내지 않았느냐. 너희들도 가을이 오면 지난 여름을 더 그리워하게 될 거야. 그러나 짙은 가을이 온다고 아쉬워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거라. 아직은 가을이지만 여전히 폭염을 일으키는 저 태양의 불꽃처럼 너희들도 이글거리는 삶을 살거라. 우리 모두 함께 가을이 행복했으면 좋겠구나.” 정말 올 가을은 모두가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여름 햇볕으로 인해 모두에게 가을의 열매가 주렁주렁 맺히고 좋은 소식의 열매를 따 먹는 계절이 되면 좋겠습니다. 특별히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가을이 행복한 계절이 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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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3-09-10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인문신답 시리즈를 시작하며
    주일설교의 ‘한 말씀 시리즈’를 시작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22회를 했습니다. 물론 앞으로도 해야 할 내용도 많습니다. 그런데 너무 한 주제로 오래 하면 약간 정체되거나 고착화 될 수 있다는 예감이 들었습니다. 이런 강박 때문에 새로운 주제로 말씀을 전할 수는 없을까,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하나님 말씀은 다 진리이고 변함이 없는 말씀인데 같은 말씀이지만 새로운 주제를 가지고 새로운 언어와 옷을 입혀서 설교한다는 것은 목회자에게 큰 관심이자 일종의 강박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코로나 엔데믹 시기에 잠언을 강해 할까, 전도서를 강해 할까 고민을 하였습니다. 언젠가 잠언을 전공했던 교수님이 저에게 찾아온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분에게 물어봤습니다. “코로나 엔데믹 시기에 잠언서를 기반한 설교를 하면 좋겠습니까? 아니면 전도서를 기반한 설교를 하면 좋겠습니까? 제가 인문신답 시리즈를 하려고 합니다.” 그랬더니 교수님이 이렇게 말씀하는 것입니다. “목사님, 제가 잠언을 전공했지만 코로나 엔데믹 시기에는 전도서가 훨씬 더 나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전도서를 택하게 된 것입니다. 14세기 중엽에 페스트가 유럽을 휩쓸었습니다. 그래서 유럽 인구의 1/3이 죽었습니다. 적어도 1억 명 이상이 죽었습니다. 페스트는 우리나라 말로는 흑사병이라고 하는데, 사람이 시커멓게 변해서 죽는 병입니다. 어른뿐 아니라 아이들도 죽었습니다. 태어난 지 몇 달 안 된 아이들도 이 병에 걸리면 새까맣게 타서 죽었습니다. 그때 가톨릭에서는 무조건 성당으로 모이라고 했습니다. 그때 클레멘스 6세 교황은 “우리가 모여서 예배를 드리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이 페스트를 물리쳐주실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사제들의 명령에 따라서 다 교회로 모였습니다. 그러나 지내놓고 보니까 성당이 흑사병의 진원지가 되고 감염의 원천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어른과 아이, 노인 할 것 없이, 그리고 심지어는 성직자들까지도 흑사병에 걸려 죽었습니다. 그러자 교회의 권위가 무너지고 성직자의 권위가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많은 사람들이 신의 존재를 부인하거나 교회를 희화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도대체 하나님이 살아있다면 왜 저 사람들이 저렇게 죽어가도록 놔두신단 말인가? 하나님은 무엇을 하고 계신 까닭에 아무 죄도 없이 태어난 어린아이가 새카맣게 타서 죽는 걸 놔두고 계신단 말인가? 심지어는 기도하는 성직자까지도 페스트에 걸려 죽게 놔둔단 말인가?” 그러면서 르네상스, 곧 인문주의가 성행하게 된 것입니다. 인문주의를 하다 보니까 당연히 인문학이 중심이 될 수밖에 없지요. 그래서 사람이 묻고 사람이 답하는 것입니다. 신의 존재를 부인하기 시작하고 신의 자리에 인간이 서고 인간 스스로 학문의 상아탑을 쌓기 시작하는 것이죠. 그런데 그러면 그럴수록 거기에 진리가 있고 행복이 있고 참 만족이 있었을까요? 아니죠. 오히려 사람이 중심이 되는 인문주의가 성행할수록 삶의 회의론자들이 생기게 되면서 실존주의 철학이 나오게 된 것이 아닙니까? 그렇지만 거기에서도 진정한 답이 있을 수 없지요. 답이 없으니까 인생 회의론에 빠지든지 아니면 쾌락주의로 빠지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마약, 동성애, 알코올, 성, 게임 중독 등 사람들이 다 어디에든 중독이 되어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도 코로나를 맞았습니다. 정말 현대의학이 발달하지 않았으면 엄청난 인구가 죽었을 것입니다. 이쯤 돼서 ‘인간이 묻고 하나님이 답하다’라는 주제로 한번 설교를 해보고 싶었습니다. 그 주제가 딱 맞는 게 전도서였습니다. 그래서 ‘인문신답 시리즈’를 준비하게 됐습니다. 첫 설교도 이미 몇 주 전부터 준비를 했는데요, 이 설교를 준비하느라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는지 모릅니다. 앞으로 20회 전후로 ‘인문신답 시리즈’ 설교를 할텐데요, 저는 매 주가 기대되고 매 주가 설레게 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들도 많은 기대와 관심을 가져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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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3-09-03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진심을 다했을 뿐입니다”
    지지난주 금요일에는 한교총 상임회의가 열렸습니다. 저는 이미 총회장도 지냈고 한교총 회장을 지냈지만 지금까지 줄곧 한국교회 연합기관 통합을 외쳐오고 활동을 해왔습니다. 제가 한교총 대표회장일 때도 연합사업을 추진해 왔지만 그때는 한기총이 결정을 미루는 바람에 최종적으로 이루지 못했었습니다. 대표회장 임기가 지난 후에도 연합기관 통합위원장 직을 맡아 세부합의서까지 도출해 냈습니다. 그런데 일부 교단과 교단장의 이견으로 인해 어그러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분들의 요구사항을 다 합의 도출해서 완전히 되는 줄 알았습니다. 현재 대표회장인 이영훈 대표회장님을 비롯해서 대다수의 주요 교단장들이 내부적으로 합의를 하였기 때문에 다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일부 몇 교단장들의 이견이 표출된 것입니다. 사실 그런 이견은 옛날에 교단장들이 똑같이 주장한 것입이지요. 그래서 저는 한교총 실무자에게 한기총에서 이단자들을 어떻게 제명했거나 행정보류를 시켰는가 등을 다 드러내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잘 될 거라고, 일부러 세세한 걸 드러낼 필요가 없고 선통합 후에 해도 나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진짜 생각지도 못한 교단에서 또 생각지도 못한 주장들이 제기된 것입니다. 저는 어떤 의미에서 앞서서 연합기관 대표회장을 한 사람으로서 많은 말을 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해서 통합위원회 서기로 하여금 발표하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저런 이견들이 나오게 되자 어쩔 수 없이 제가 일어나서 얘기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러분, 저도 연합기관을 하나로 만들고 싶은 마음이 100% 있는 게 아닙니다. 저도 하고 싶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우리끼리만이라도 얼마나 만족하고 행복한 케슬과 같습니까? 서로 마음이 맞지 않는 사람끼리 모여서 의견 다툼을 하는 건 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세계 기독교 역사를 보십시오. 아니, 한국 기독교 역사를 보십시오. 왜 기독교가 무너지고 망했습니까? 그건 분열과 다툼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누구보다도 반기독교 악법을 막기 위해 가장 최후의 전선에서 싸워본 경험이 있는 사람입니다. 코로나 상황 때도 정부와 맞서서 예배 조율과 협상에 나선 사람입니다. 그런데 서로 이견이 있을 때 앞서서 일하는 사람이 얼마나 곤혹스럽고 당황스러운지 아십니까? 기독교가 분열할 때 좋아하는 사람이 누군 줄 아십니까? 반기독교 정서를 갖는 사람이거나 아니면 종교를 길들이기를 좋아하는 편일 것입니다. 저는 보수주의와 청교도 개혁신학을 공부한 사람입니다. 결코 이단을 용납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한국교회 공적교회와 공익을 위해서는 이단을 제외하고 하나로 뭉쳐야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줄기차게 연합사업을 강조해 온 사람입니다.” 그러자 여기에 대해서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시기를 언제 할 것인가를 논의하였는데, 원래는 9월 총회 전에 마무리를 짓고 총회 때 보고 하려고 했지만, 통합은 하되 결의는 총회 후에 하자고 하였습니다. 지난주는 비서들이 휴가를 갔기 때문에 다른 부목사님이 운전하고 갔습니다. 오면서 하는 말이 “정말 왜 저렇게 연합에 대한 이해와 인식이 부족할까요? 정말 제 심장도 쪼여 가는데 목사님은 얼마나 답답하셨습니까?” 그래서 제가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게 말이오. 그러나 이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닙니다. 선과 악의 문제도 아닙니다. 이것은 이해와 인식 그리고 의식의 차이일 뿐이죠. 얼마나 많은 걸 보고 얼마나 넓은 걸 보느냐에 대한 사고의 차이입니다. 나는 지금까지 선악을 넘어서, 옳고 그름을 넘어서 진심을 다했을 뿐입니다. 여기까지 온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다음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나는 주님 앞에 최선을 다했고 진심을 다했음을 감사할 뿐입니다.” 사실 교계 연합기관이 분열을 안 했으면 이렇게 다시 연합을 하려고 몸부림을 칠 이유도 없습니다. 그러나 분열을 하였기 때문에 계속 또 다른 분열이 연쇄작용을 일으킨 것입니다. 저는 영화 ‘오펜하이머’가 떠올랐습니다. 주인공 오펜하이머가 가장 고민하고 우려했던 것은 자신이 만든 원자폭탄으로 인한 파멸의 연쇄작용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수소폭탄 제작을 반대하고 원자력 무기 확산 방지를 위해서 노력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교계 분열의 연쇄작용을 막기 위해서는 다시 연합을 하는 길 밖에 없습니다. 늦은 여름밤인데도 숫매미들의 노랫소리가 무성합니다. 저 매미소리와 함께 저는 주님 앞에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한국교회 공적교회와 공적사역을 위해서 부족하지만 최선을 다했노라고, 그리고 진심을 다 바쳤노라”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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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3-08-27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보람과 아쉬움은 항상 공존한다”
    로마는 보병을 통해서 세계를 정복했다고 하지요. 그다음에 칭기즈칸은 기마병으로, 영국은 함대로, 미국은 에어포스 공군을 통해서 세계 최강 국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에어포스보다 더 무서운 힘이 있습니다. 그게 바로 ‘미디어’입니다. 그래서 저는 미디어 사역에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요즘 미디어를 통해서 자극적이고 충동적 영상들이 얼마나 많이 배포되고 있습니까? 이런 때에 건강한 정신과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저는 교회가 공적 미디어 사역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건강한 미디어 영상 속에 인류의 보편 가치인 인간애와 인류애뿐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기독교적인 선한 이미지도 첨가하고 싶은 선한 욕심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단일 교회로서 공영방송에 십수 차례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하여 방영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러시아의 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을 중심으로 다큐를 만들기로 했는데 제작사를 바꿨습니다. 한마디로 다큐의 질은 훌륭하고 신선했습니다. 그런데 다큐가 끝나고 여러 문자가 왔는데 대표적으로 두 종류의 문자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대학교수님이 보내오신 문자인데요. “역사는 기억하는 사람들에 의해 발전한다는 목사님의 말씀이 가슴에 가장 크게 남습니다. 흉상과 기념비 세우기에 앞장서신 사실도 처음 알았습니다. 저는 다큐를 보면서, 한국기독교의 사회적 책임과 역할이 무엇인지도 잠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외람되지만, 기독교 목회자의 공적 사역은 교회와 교인들의 영적, 사회적 성장과 발전을 촉진하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목회자는 영적 지도와 가르침 못지않게, 사회적 봉사와 영향력이 매우 중요한 소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역사에 대한 의식을 높이고, 변화를 주도하시는 목사님의 활동은 존경스러웠습니다. 목사님이 그동안의 종교적 역량과 활동을 기반으로, 훌륭한 ‘종교적 평화주의자’로서 족적을 남겨주시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이를 통해 종교 공동체 내에서 평화와 헌신, 사랑의 가치를 강조하는 문화를 형성하시고, 사회적 모범을 보여주시길 기대합니다. 저는 청년 시절, 제가 다니던 교회로부터 신학을 공부해서 목사 되기를 권유받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만일 그때 권유를 받아 신학을 했더라면, 지금쯤 어떤 목사가 되어 있을까 상상해 봅니다. 아마 소강석 목사님의 ‘창의성과 혁신’, ‘사회적 변화에 기여하는 공적사역’의 모습은 아마 저의 롤모델 이었을겁니다.” 이분은 우리 교회가 공공성과 사회 발전을 촉진하는 일을 한다는 걸 치하해 온 문자였습니다. 이런 면에서는 이번 다큐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 나라 사랑, 숨어 있는 역사를 재조명해 줌으로 인해 아주 만족스럽고 절대적 보람과 가치가 있었습니다. 반면에 이런 문자들이 더 많았습니다. “목사님, 10교구 이00 집사인데요, 최재형 선생 다큐를 보며 광복절에 즈음하여 너무나 의미 있는 사역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잊혀져가는 역사를 기억하고 기독교적 세계관으로 바라보는 위인의 모습은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특히 이전 다큐와 다른 세련된 촬영과 앵글 그리고 객관적 시각으로 진행되는 스토리 전개 등이 폭넓게 접근해서 시청자의 시선을 사로잡았습니다. 역시 허브넷이구나, 동네 한 바퀴가 그냥 만들어지는 게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은 평소에 목사님이 강조하시던 양부모로부터 전수받은 최재형 선생님의 기독교 정신과 가치가 배어나지 않았다는 것이 참 아쉬웠습니다.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애국, 애민했던 선생님의 정신이 덜 드러나지 않았는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후손들의 제사 예식도 그렇고요. 그래도 목사님의 시를 통해서 충분히 세계관 전달이 되어서 감사했습니다. 그 먼 길을 돌아 돌아서 가신 보람이있었네요. 주님께서 기뻐하실 다큐로 기억되기를 기도합니다.” 저라고 왜 이런 마음이 없겠습니까? 꼬마 아이가 아버지를 따라 연해주로 가고, 그리고 집을 나가 포시에트 항구에 쓰러져 있던 그를 발견하고 양아들로 삼아 공부를 가르치고 기독교 신앙을 심어준 양부모, 세계를 항해하며 식견을 넓혀서 블라디보스토크의 거상이 되어 학교를 짓고 교회를 세운 감명 깊은 이야기, 흙수저 출신이었지만 대부호가 되고, 특별히 기독교 신앙의 정신인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신념으로 고려인들에게 페치카(벽난로)가 되어주고 독립운동을 했던 스토리로 풀어가도 정말 휴머니티 하면서도 감동적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제작자가 아니고 감독이 아니기 때문에 조금의 아쉬움은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는 성도들에게는 송구한 마음을 전합니다. 그러나 꼭 아쉬움만 남는 것은 아닙니다. 보람과 가치도 있습니다. 이런 일을 어느 목회자가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어느 교회가 발상이라도 했겠습니까? 인간이 살아가고 일을 하면서 모든 것에 만족할 수는 없습니다. 또 아쉬움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보람과 아쉬움은 항상 공존하고있는 것이 아닐까요?
    • 칼럼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3-08-20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시설보다 중요한 것들
    저는 지난주부터 한교총 사무총장에게 “폭염 때문에 잼버리 대회가 난항을 겪고 있으니 한국교회에서 해야 할 게 뭐가 있는지 찾아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우선 ‘생수 5만 병 보내기’를 시작했습니다. 우리 교회도 1만 병을 지원했는데 이것 가지고는 너무 허전한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마침 주최 측으로부터 “교회에서 아이들에게 숙식을 제공할 수 있느냐”고 연락이 왔습니다. 그래서 제가 “수용은 수천 명도 할 수 있지만 샤워시설이 따르지를 못합니다. 더더구나 우리 교회는 지금 여름수련회 집회 중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관을 개방하면 바닥에 침구를 깔고 500명 이상은 수용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야간작업을 해서 화장실을 샤워시설로 개조하겠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다음날 480명이 입소를 했습니다. 애들이 교회 들어오자마자 “야, 이렇게 시원할 수가 있느냐. 여기가 바로 천국이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거기에다가 교회에서 밥만 제공한 게 아니라 간식까지 제공을 해줬습니다. 그리고 다음날은 캐리비안베이를 갈 수 있도록 해 주었습니다. 새만금에서 흘린 땀을 캐리비안베이에서 다 식혀 버리도록 한 것입니다. 물론 교회에서 모든 경비를 다 제공했고요. 그런데 다음날 연락이 왔습니다. 교회보다는 용인시를 비롯해서 다른 숙박 시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곳은 2인 1실이고 샤워 시설도 제대로 돼 있었습니다. 그런데 인솔하는 대장들이 사진까지 보여주면서 그쪽으로 가고 싶은지 설문조사를 하니까 10분의 9가 교회에 남겠다는 것입니다. 물론 청소년 수련원이나 기업체 연수원에 가면 훨씬 시설이 좋죠. 그렇지만 캐리비안베이를 비롯해서 교회에서 하는 행사와 프로그램이 너무 좋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화요일부터 마지막날까지 이재훈 목사님 주도로 메디컬처치를 오픈하였습니다. 실제로 의사와 간호사들이 직접 하얀 가운을 입고 무료 진료를 해 주고 약을 주니까 아이들이 더 감동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저도 이종민 목사님을 비롯해서 모든 스텝들에게 “최대한으로 잘 섬겨 주세요. 특별히 중국에서 온 아이들은 새만금 잼버리의 폭염의 기억들을 다 지워버리고 우리 교회에서 새로운 추억을 만들어 가도록 교회에서 최선을 다해 주세요”라고 당부를 하였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아이들이 교회에 남기로 결정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방송에서 우리 교회라고 콕 집어서 말하지는 않았지만 아이들을 강당 바닥에서 잠을 자도록 했다는 부정적 보도를 한 것입니다. 그러자 아침을 먹으러 나온 아이들이 핸드폰을 켜들고 이렇게 말했다는 것입니다. “이 기사 뭐래요? 왜 이렇게 썼대요? 아무것도 모르면서 이렇게 쓰면 안 되는 것 아닌가요?” 단장님들도 서류 뭉치를 들고 와서 걱정스럽게 말했다고 합니다. “이런 기사는 대응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저희가 기자회견이라도 할까요?” 그러나 우리 스텝들은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일단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합시다”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런 보고를 받고 생각을 해봤습니다. 빠른 뉴스와 정확한 보도를 하는 것이 언론의 사명입니다. 그런데 뉴스를 할 때 심층 취재를 좀 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아니 우리가 원해서 아이들을 숙박하게 한 것도 아니고 갈 데가 없으니까 우선 종교시설과 여러 교육시설을 알아보고 우리한테 요청해서 온 것이 아닙니까? 우리는 밤을 새워서 샤워시설을 만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편한 점이 있었겠지만. 그런 부분만을 보도하는 것이 언론의 사명인가, 언론은 균형이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더 좋은 시설이 있으니까 가지 않겠느냐고 묻고 그들이 가면 정말로 환송을 잘 해주려고 했는데 그들은 끝까지 교회에 남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MZ세대와 기성세대의 차이가 대단한 줄 알았는데 MZ세대라고 별 차이가 없구나. 그들도 시설보다 중요한 게 친절이고 환대고 섬김이구나”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순간도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습니다. 지금 바깥에선 아무 행사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지금 시원한 실내 공간에서 재미있는 레크레이션을 하고 심지어는 CCM 율동까지 하면서 완전히 디쇽(영원한 불꽃은 없으니 빛날 때 만끽하라)의 삶을 즐기고 있습니다. 어떤 청소년은 진짜 어렸을 때 교회에 나갔었는데 처음으로 교회로 와서 숙식을 해봤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진정성을 다해서 사랑해 주고 섬겨주는 것을 보면서 교회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교회를 나가고 안 나가고를 떠나서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인간애와 인류애를 실천하는 것이 교회이기 때문에 교회는 반드시 이런 일을 해야 됩니다. 저는 수련회 집회 중에도 비전홀과 각 교육관 시설을 개방하여 화장실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 성도들에게 너무 죄송한 마음이 들고 또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어지간히 급하지 않으면 교회 화장실을 들리지 않고 집회를 마친 후에 집에 가서 용변을 보신 성도들에게 한없이 송구하고 추앙합니다. 그리고 의결 절차를 거치지 않고 재정을 투자하여도 모든 걸 잘했다고 박수를 쳐주신 장로님들과 성도님께 정말 감사를 드립니다. 역시 우리 교회뿐만 아니라 한국교회가 살아남는 길은 처치 션샤인을 해야 합니다. 무조건 예수 믿으라고 전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런 일이 있을 때 교회가 앞장서서 사회적 돌봄과 시대적 아우름에 앞장서야 교회가 산다고 생각합니다. 퇴소하는 마지막 날까지 그들이 행복한 시간을 갖기를 바라는 마음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간의 부정적 성향의 보도를 한 언론은 이런 것을 알고나 있을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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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3-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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