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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아쉽지만 후회하지 않습니다
    제가 잘 알고 오랜 지기로 존경해 온 목사님이 계십니다. 그 분은 주중에는 대부분 기도원에서 말씀을 묵상하시고 영적 수련을 깊이 하시는 내면적 영성이 가득한 분이십니다. 저는 그 분을 생각하고 뵐 때마다 부러운 마음이 가득합니다. 저 역시 태생적으로 외향적인 면도 있지만 의외로 사색하며 홀로 있기를 좋아할 때도 있거든요. 그래서 신학교 다닐 때는 여러 사람과 잘 어울리기도 했지만, 시간만 나면 무등산 기도원에 올라가서 혼자 무릎 꿇고 기도하며 내면적 영성을 수련하였습니다. 특별히 백암교회를 개척할 때는 발이 닳아지도록 헐몬수양관을 다니며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신학교에 다닐 때 수도원적 영성이나 수도사들의 삶에 대한 책들을 즐겨 읽었습니다. 그러다가 정 권사님을 만났습니다. 정 권사님은 대중적 구원운동을 일으키는 분이라기보다 수도원적 영성, 내면적 영성에 몰입을 했던 분입니다. 그러면서도 성령운동, 은사운동을 했던 분입니다. 그러니까 저도 정 권사님의 영향을 안 받을 수가 없지요. 정 권사님을 만날 때 늘 어둠을 씻고, 빼고, 항상 빛을 마시고 빛을 쐬는 영적 수련을 많이 했죠. 하마터면 저도 수도원적 영성가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기독교 역사를 보면 크게 두 부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수도원 중심의 신비 혹은 경건의 영성입니다. 또 하나는 대중 구원의 역사를 이루는 교회 운동이었습니다. 한 사람의 영혼도 중요하지만, 다수가 구원받고 다수가 부흥 운동에 동참하는 계보를 이루어왔지요. 저는 신학교 시절 이 두 사이를 왔다 갔다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저는 조용기 목사님과 여러 선진 목사님들의 영향을 받아서 대중 구원과 대중 목회를 지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한동안은 저도 교회 성장 지상제일주의에 빠져 있었습니다. 40대 중반까지는 여기에 함몰이 되어서 내 교회만 성장하면 되고 내 교회만 부흥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여기까지만 해도 죽기 살기로 뛰어왔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공적사역에 눈이 뜨여지게 되고 연합사역에도 눈이 뜨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교회 부흥과 더불어서 이쪽 사역도 같이 하게 된 것입니다. 교회부흥과 공적사역의 두 날개를 펴고 달려온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도 저는 끊임없는 창작활동을 하고 저술활동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지난번에 ‘뉴트로 전략, 핵처치’라는 책을 썼고 바로 이어서 ‘너라는 계절이 내게 왔다’라는 시집을 썼습니다. 제가 앞서 언급했던 그 목사님을 만나서 “목사님, 저는 목사님이 너무 부럽습니다”라고 했더니, 그분이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소 목사님은 앞장서는 사람이고 우리는 뒤를 따라가는 사람이지 않습니까? 그러니 소 목사님의 어깨가 무겁고 더 힘든 사역이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저는 그 말씀에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사실 오늘 저녁에도 ‘CBS와 함께 하는 출산돌봄 2주년 감사예배’를 드리는데 조용히 드릴 줄 알았더니, CBS 방송국에서 판을 크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너무 주요한 분들이 외빈으로 많이 오시거든요. 물론 이 또한 한국교회와 이 시대를 울리는 공적사역의 시그널이라고 할 수 있지만 제 마음은 부담이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양 날개를 펴고 대내외 사역을 하다 보니 참 힘들고 부담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아쉬움은 있어도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저대로의 삶의 비밀이 있습니다. 저는 이동하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달리는 차 안에서 성경을 보고 묵상을 하며 설교 메모를 하고 설교를 불러줍니다. 분주한 삶 속에서도 내 마음 안에 외딴방 하나를 만들어 놓고 혼자 사유하고 상념의 시간을 갖습니다. 그리고 주님과 나만 소통하는 사닥다리가 연결된 골방이 있습니다. 산속은 아니지만 저는 저만의 골방에서 주님이 주신 안경을 쓰고 사회와 시대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스스로 외로워하며 고독해하며 외딴방에 있을 때, 창의적 사고가 생기게 되고 한 권의 책을 읽으면 3권, 4권의 책을 쓸 수 있을 정도로 하나님이 적용적 지혜를 주십니다. 그리고 어느 문장 하나를 보든지 그 한 문장을 통해서 한 편의 글이 나오고, 또 흰 구름과 푸른 숲과 흐르는 물을 바라보면 창의적 시의 언어들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저도 목회 은퇴를 하면 저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으리라고 기대합니다. 그러나 오늘도 부족하지만, 퍼스트 리더로서의 삶이 좀 버겁고 힘들다 할지라도 내 마음 안의 외딴방, 내 마음 안의 골방으로 인해 내면과 영성을 관리하며 삽니다. 때때로 아쉬움은 있지만 결코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외딴방 하나와 골방이 저의 삶과 사역을 지탱해 주고, 아니 창의적 공간으로 저를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너라는 계절이 제게 안 올 수가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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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3-12-10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너라는 계절이 내게 왔다
    저는 지난주 목요일 황순원문학촌을 방문했습니다. 김종회 황순원문학촌 촌장님께서 여러 가지를 설명해 주시는데 제가 이런 질문을 해 보았습니다. “교수님, 제가 국문과나 문창과를 전공했으면 어떻게 됐을까요?” 그랬더니 김종회 교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어쩌면 목사님께서 그런 전공을 하셨으면 그 틀에 갇혀 있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목사님은 문학을 전공하지 않았기에 더 폭넓은 문학적 잠재력과 가능성, 암시의 진폭이 커지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 말씀을 들으니, 저의 어린 시절이 생각났습니다. 저는 지리산 자락 아래 한 학년에 두 반밖에 없는 시골학교에서 자랐습니다. 대부분 담임선생님이 교대 출신이 아니라 양성소 출신이어서 글쓰기나 웅변을 배워본 적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글쓰기대회를 나가거나 웅변대회를 나가면 상을 받았습니다. 제 안에는 천부적으로 마음속의 연필이 있고, 마이크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 이후로도 꾸준하게 시를 썼습니다. 그러다가 1994년 월간 문예사조로 시인 등단을 하였고, 윤동주문학상, 천상병문학대상을 수상하면서 중견시인으로 자리매김을 할 수 있었습니다. 처음 쓴 시를 보면 그것도 나름 제 시의 순수 문학적 가치가 있다고는 하지만, 너무 너저분하고 불필요한 서사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 시집을 불태워버리고 싶지만 그러나 그것도 제 시의 역사고 발전 과정의 하나라고 할 수 있죠. 그런데 이번에 ‘너라는 계절이 내게 왔다’라는 13번째 시집을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은 누구나 다 시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시가 얼마나 전문성이 있냐의 차이일 뿐이지 사랑하는 사람은 다 시를 쓰고 있는 중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시는 사랑이고 사랑은 시이기 때문입니다. 저 또한 시를 쓰는 순간만큼은 봄, 여름, 가을, 겨울 어느 계절이든 사랑의 계절을 걷고 있음을 느낍니다. 꽃이 피고 바람이 불고 소나기가 내리고 낙엽이 지고 하얀 폭설이 내리는 날이라도, 그 모든 계절은 사랑으로 물듭니다. 그래서 이번 시집의 제목을 ‘너라는 계절이 내게 왔다’라고 정하였습니다. 어렵고 난해한 시 보다는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감성시들을 써 보고 싶었습니다. 한 줄 한 줄 사람과 자연,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마음을 담아 순수한 고백의 언어를 남겨보고 싶었습니다. 독자들의 마음에 봄날의 꽃이 되고 여름날의 소나기가 되고 가을날의 낙엽이 되고 겨울의 눈송이가 되어 닿았으면 좋겠습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꽃이 필 때도 있고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릴 때도 있습니다. 아니, 언젠가는 낙엽이 되어 떨어지고 폭설에 갇혀 길을 잃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랑하는 이와 함께 한다면 그 모든 날들이 상처의 계절이 아닌 사랑의 계절이 되어 감싸주리라 믿습니다. 단 한 사람이라도 제 시집을 읽고 슬픔과 절망, 상처를 딛고 다시 사랑과 희망의 마음을 찾을 수 있다면 너무 행복할 듯합니다. 아무리 세상이 힘들고 추운 바람이 분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서로를 아껴주고 사랑으로 감싸준다면 우리의 계절은 언제나 찬란한 빛으로 가득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이 시대 최고의 평론가인 김종희 교수님께서 성도들 앞에서 이런 말씀을 해 주시는 것입니다. “소강석 목사님은 윤동주, 정호승, 나태주, 이해인 계열의 감성 시인이십니다. 흔히 말하는 전형적인 한국교회 목회자의 시의 계보에서 벗어나서 새로운 문학의 지평을 여시는 시집을 쓰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소 목사님은 대중적 호소력과 전파력을 가지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정말 과분한 시 해설에 몸 둘 바를 모를 정도였습니다. 황순원 선생님이 6.25 전쟁 중에 ‘소나기’라는 소설을 쓴 것은 전쟁 중에도 없어서는 안 될 순수한 인간의 서정과 사랑 이야기를 쓰고 싶으셨던 것처럼 저의 시집 ‘너라는 계절이 내게 왔다’라는 시집도 겨울왕국과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계절을 선물로 주고 또 사랑의 계절을 가슴 속에 전달해 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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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3-12-03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내 생의 마지막까지 기도의 사명을“
    저는 지난 11월 16일 목요일에 모교인 광신대에 가서 ‘해원(故 정규오 목사님) 17주기 기념 예배’에서 설교를 하였습니다. 사실 그 날은 수능 시험 날이기 때문에 광주에 내려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친구인 한기승 목사님이 내려오라고 하고 스승이신 故 정규오 목사님의 사상과 정신을 기념하는 행사이기 때문에 내려갔습니다. 저는 그냥 설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제가 총회장 시절 총회 역사를 주제로 갈라콘서트를 했던 ‘불의 연대기’ 중 정규오 목사님과 관련된 부분을 편집하여 보여주며 말씀을 전했습니다. ‘불의 연대기’는 제가 105회 총회장 시절 각본을 쓰고, 총감독을 하여 목사장로기도회 때 공연했던 작품입니다. 이를 두고 일부에서는 역사를 왜곡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있었습니다만 그런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51인 신앙동지회에 대한 역사적 팩트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51인 신앙동지회(회장 정규오 목사님)가 있었기에 당시 좌경화된 신학을 바로 잡을 수 있었고, WCC를 반대했으며 故 박형룡 박사님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었습니다. 실제로 박형룡 목사님의 아들인 박아론 박사님께서 「나의 아버지 박형룡」이라는 책에서 아버지께서 가장 큰 도움을 받았던 분이 정규오 목사님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정통 보수 신학의 횃불을 들도록 가장 가까운 곳에서 도와준 분이 바로 정규오 목사님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정규오 목사님도 교단 분립이라는 오점을 남겼지만, 그는 공식적으로 회개하고 다시 하나됨의 기치를 들었던 분입니다. 자신의 오점과 과오를 공개적으로 사과하고 회개할 수 있는 분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칼빈의 제자 베자의 이야기처럼 ‘비방하기는 쉬우나 본받기는 어려운 법’입니다. 그 분의 사과와 회개로 저도 합동 총회의 일원이 되었고 105회 총회장까지 역임을 하였습니다. 그분의 지고지순한 신학적 사상과 신앙을 추모하는 마음으로 내려가서 극화적 설교를 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당일 오후 2시에 정읍 내장산에서 글로벌 에듀 이사들과 임원들이 모이기로 했습니다. 잠시라도 들렀다가 오려고 했는데 갑자기 비가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이 괜히 심란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원래는 내장산 안까지 차를 갖고 가서 케이블도 한번 타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자꾸 떠오르는 것이 있었습니다. 집사람이 교회에서 열리고 있는 수능 현장 기도회 모습을 동영상으로 계속 찍어서 보내주었기 때문입니다. 그걸 보고, 제가 늦게라도 가서 수능생들을 위해 기도해야 되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내장산 모임에는 양해를 구하고 바로 올라가기로 했습니다. 물론 차 안에서도 기도 할 수 있고 내장산에서도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조금이라도 빨리 가서 기도에 동참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냥 올라오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비가 내리니깐 차가 막혀서 교회에 도착하니 5시가 되었습니다. 대부분 다 기도를 마치고 돌아가고 마지막 제2 외국어 시험 시간인데 그래도 그 기도에 참여를 했습니다. 저는 글로벌 에듀 이사장이기 이전에 새에덴교회 담임목사입니다. 그래서 저는 수능생 자녀들을 위해 기도하기 위해 빗속을 뚫고 달려왔던 것입니다. 저는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다른 어떤 모임이나 일보다도 새에덴교회 담임목사로서 성도들과 우리 자녀들을 위해 기도하는 자리를 지킬 것입니다. 아니, 내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기도의 사명을 감당할 것입니다. 그 자리가 바로 저의 자리이고, 가장 가슴 설레는 자리이고, 한 점의 부끄러움 없이 눈을 감을 수 있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늦가을의 스산한 가을비가 내리는 오후였지만 제 가슴만큼은 다시 한번 목양과 기도의 사명으로 뜨겁게 타올랐던 어느 멋진 가을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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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3-11-19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11월의 가을 단상
    지난 목요일 점심에 몇 분의 목사님과 장로님들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제가 그 기관의 회장은 아니지만 어느 기관의 정기총회 일로 저를 찾아와 의논을 한 자리였습니다. 그런데 그들 모두가 입을 모아 저에게 위로의 말씀을 건네주는 것입니다. “소 총회장님, 요즘 얼마나 힘드세요. 과거에 소 총회장님이 배려하고 베풀어 주었음에도 그 은혜를 모르는 사람들의 모습을 다 보고 있을 텐데요. 어쩌면 소 목사님의 영향력이 여전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는 손사래를 쳤습니다. “아닙니다. 누가 저에게도 문자 메시지를 보내주고 전화도 했지만, 전혀 일말의 관심도 없습니다. 그 뒤로는 전화도 안 받고 그런 문자도 보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런 일에 신경 쓸 여지도 없고 어떻게 하면 우리 교회와 한국교회를 세울 것인가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아직도 한국교회는 코로나의 상흔이 있고 후유증이 있는데 이 상흔과 후유증의 안개를 뚫고 어떻게 교회의 새로운 영토를 확장해 나갈 것인가. 어떻게 한국교회를 세우는 데 도움이 될까 고민하며 ‘뉴트로 전략, 핵처치(사도행전적 원형교회)’라는 책을 쓰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도대체 언제 그런 책을 쓰셨습니까? 어떻게 그렇게 빨리 책을 쓸 수가 있습니까?” “저는 원래 아침형이 아니라 저녁형이어서 날밤을 새워서 책을 썼지요.” 이런 덕담을 나누면서 식사를 같이했습니다. 그들을 교회 정문까지 배웅해드리고 나서 잠시 거리를 걸었습니다. 얼마 안 남은 가로수의 나뭇잎들이 하나하나 떨어져 내렸습니다. 문득 이런 시상이 떠올랐습니다. “가을나무 한 그루 / 차가운 바람에 떨어지는 나뭇잎들을 / 어떻게든 붙잡으려고 / 애타는 얼굴로 / 팔을 휘젓고 서 있다 / 햇빛 쏟아지는 / 거리에서 / 바닥에 떨어진 / 나뭇잎들과의 추억을 떠올리며 / 하나 하나 / 이름을 부르고 있다.” 제가 부총회장에서 총회장으로 올라가려고 할 때 어떤 분이 집요하게 반대를 하였습니다. “어떻게 개혁측 출신이 그렇게 쉽게 총회장을 하느냐. 좀 어렵게 총회장을 만들어야 되겠다”는 생각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제가 그분이 어느 노회 소속인가 알아봤더니, 파악한 바에 의하면 21 당회도 갖추지 못한 미조직 노회라는 것입니다. 교회 실사위원회를 맡았던 분이 저에게 그걸 알려줘서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원칙적으로는 총회에 나올 수도 없고 총대 자격도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어찌어찌해서 제가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다는 걸 그분이 알고 먼저 총회에 고소했던 것부터 취하하고 부랴부랴 저의 접견실로 찾아와서 이렇게 말을 하는 것입니다. “사실은 어떤 분이 소 총회장님이 너무 잘나가고 쉽게 총회장이 되는 거 같아 곤경을 선물로 줘야 된다고, 그래야 소 총회장이 날뛰지 않고 겸손하게 될 거라고 저를 뒤에서 컨트롤을 했습니다. 어쩌면 자격지심일지도 모르죠.” 그러면서 녹음된 통화 내용을 저한테 들려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당장 책상을 치면서 호통을 쳤습니다. “선배님, 도대체 나이를 어디로 먹었습니까? 왜 이렇게 나이답지 않은 행동을 하십니까? 그런 걸 들려준다고 제가 들을 사람입니까? 그런 일로 왔으면 어서 가십시오. 저는 그런 거 개의치도 않습니다.” 그러면서 그분에게 교통비까지 줘서 보냈습니다. 지금도 그렇게 행동했던 저를 생각하면 스스로 대견스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저를 수행하는 유송근 장로님이 전철역까지 그분을 태워다 드렸는데 그분이 차 안에서 들려주더라면서 유 장로님이 그 내용을 저에게 보고하겠다는 것입니다. 제가 장로님께 그랬지요. “장로님, 저한테 보고하지 마세요. 저도 사람인지라 그런 얘기 들으면 편견이 생길 수 있습니다. 장로님, 편견과 선입견이라는 게 얼마나 무서운 줄 아십니까? 그 편견과 선입견이 잘못 표현되면 꼴불견이 된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난 꼴불견이 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때 유 장로님이 오히려 저한테 감동받았던 모습이 지금도 기억납니다. 저도 그때를 생각하면 “아, 내가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었는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생각을 하며 떨어진 낙엽을 밟는데 지난 여름 푸르른 나뭇잎들과의 추억이 떠올랐습니다. 그렇게 무성하고 푸르렀던 나뭇잎도 결국 가을이 되니까 떨어지잖아요. 그래서 제가 떨어지는 낙엽 하나하나의 이름을 부르며 격려를 해주었습니다. 어찌 낙엽뿐이겠습니까? 지금까지 저와 관계했던 사람들, 얽히고설켰던 사람들의 이름이 떠올랐습니다. 그 사람들의 이름을 한 사람, 한 사람씩 생각하며 축복을 하였습니다. 저를 정말로 사랑하고 존경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저에 대해서 편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이름까지도 생각하며 축복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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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3-11-12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레드와 그린 사이에 있지만···
    지난 수요일 우리 교회 김미화 집사님이 개소한 하은상담소에 심방을 갔습니다. 김미화 집사님은 ‘내 마음의 별똥별’이라는 책의 저자이기도 한데요. 4년간 우리 교회 상담실에서도 봉사를 했고 학교에서 아동 상담교사로 근무를 하신 분입니다. 가서 예배를 드리고 축복 기도를 해 주었는데, 김미화 집사님께서 갑자기 “CPTI라고 하는 비채컬러 성격 유형 검사가 있는데 검사 좀 받아보고 싶지 않으시냐”는 것입니다. “받아보면 뻔할 텐데요. 시간이 얼마나 걸립니까?” 그랬더니 얼마 안 걸린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검사지를 받고 체크를 했습니다. 검사하는 시간 보다 해설하는 시간이 더 많이 소요되더라고요. 비채컬러, 성격 유형 검사는 색깔을 통해서 성격을 나타내는 것인데, MBTI의 축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검사 결과가 어떻게 나왔는가 하면, 레드(빨간색)가 64점으로 제일 많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린(초록색)이 56점으로 두 번째로 나왔습니다. 레드는 적극적이며 진취적이고 실행력을 갖고 활기차며 자신의 감정에 솔직할 뿐만 아니라 통솔력과 결단력으로 리더십을 발휘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개방적이고 외향적이며, 현실감이 높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역작용으로 나타나는 부분이 있습니다. 충동적이며 단순한 감정을 드러낼 수 있고 상황에 따라서 남의 말을 듣지 않고 자기중심적일 수도 있습니다. 지나치게 솔직하여 상대방에게 불편을 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으로 많이 나온 색깔이 그린이었습니다. 그린의 특징은 모범적이며 원칙에 공정하고 책임감과 충성심이 높은 성격을 가진 사람입니다. 주변과의 균형과 조화를 추구하며 배려심과 관대함으로 인정을 받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린이 반대급부로 나타날 때는 이따금씩 인색하거나 냉담하며 관망의 성향을 갖고 보수적일 뿐만 아니라 감정을 억압하여 잘 드러내지 않는 특징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김미화 집사님에 의하면 제가 검사지에 체크를 하는 모습이나 태도, 중얼거리는 모습을 볼 때 타고난 기질은 오히려 그린이라는 것입니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기질은 그린이라고 볼 수 있는데, 삶의 환경과 상황이 레드를 만들어 냈다고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그린이 선천적으로 타고난 기질이고 레드는 후천적으로 길러진 성격이라는 것이죠. 그런데 기복의 차이가 큰 사람도 많이 있는데 저 같은 경우는 다른 색깔도 거의 원만하게 나온 것입니다. 엘로우(노란색)도 54점, 퍼플(자주색)도 54점이 나왔습니다. 뿐만 아니라 블루(청색)도 50점이 나왔습니다. 다 거기서 거기입니다. 레드가 주도적이긴 하지만 다 비슷하게 나온 것입니다. 엘로우는 명랑하고 낙관적이고 호기심이 강하며 관찰력이 높습니다. 사교적으로 수용하며 친절하고 희망과 기대로 변화를 지향하는 사람입니다. 퍼플은 창의적이며 상상력이 풍부하고 천성적으로 높은 직관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독창적 사고와 예술적 재능을 보입니다. 우아하고 고상한 품위로 격을 높이는 사람입니다. 엘로우와 퍼플은 같고 가장 적게 나온 게 블루였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큰 차이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제 성격은 주도적이긴 하지만 모나지 않고 또 충돌하지 않으며 원만한 성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해심과 배려심도 많고 창의적이며 상상력이 풍부합니다. 또 높은 직관력도 갖고 있습니다. 대체로 검사 결과에 저는 동의를 했습니다. 나름 성실하게 기록을 한 결과라고 믿어졌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저 자신을 돌아보고 성찰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어떤 색깔이 좋고 나쁘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좋은 것이 있는가 하면 나쁜 것이 있으니까요. 가령 보라색에서 창의적이고 상상력이 풍부하며 천성적으로 높은 직관력을 갖는 반면에 현실 도피 내지는 개인적인 우울감과 교만함을 갖게 할 수 있는 것이니까요. 블루 같은 경우는 안정적이며 신뢰감을 갖고 인내심이 깊고 강한 의지력이 있지만, 반면에 엄격한 자신이 부동의 상태를 만들고 비사교적이며 내향적 관계의 도피를 갖게 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나름 제 자신을 돌아보는 데 유익하였지만 더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러한 성격과 기질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성격과 기질이 성령에 의해서 다스림을 받고 통제를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의 소신이기도 하지만 일찍이 팀 라헤이가 ‘성령과 기질’이라는 책을 통해서 그런 주장을 한 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기질과 성격이 아무리 좋아도 그것이 성령의 지배를 받지 않고, 성령의 다스림을 받지 못한다면 얼마든지 부정적 감정으로 표출되고 행위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저는 레드와 그린 사이에 있고, 또 다른 색깔도 대부분 원만한 균형을 이룬다고 하지만, 성령의 지배를 받고 다스림을 받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달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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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3-11-05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아무 일도 없었던 어느 가을날
    한 달 전쯤 신델라 교수님으로부터 연락을 받았습니다. 국립극장에서 본인이 단독 공연을 하는데 저를 특별히 VVIP로 초청을 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공연 중에 제가 작사한 노래 ‘주님 없이는 살 수가 없습니다’를 하면서 저를 소개해 주겠다는 것입니다. 공연장에는 교계 방송에 관계된 분들, 그리고 교계 주요 인사들이 초청되었을 뿐만 아니라 믿지 않는 사람이 3분의 2가 넘을 정도인데 이런 자리에서 목사님 딱 한 분만 소개를 해 드리는 것은 자신에게도 영광이라고 하면서 말이죠. 그래서 제가 기꺼이 가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 교회 프라미스 청소년 오케스트라가 그날 같은 시간에 포은아트홀에서 공연을 하기게 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만약 제가 새에덴교회 프라미스 청소년 오케스트라 공연을 가지 않고 딴 곳으로 갔다고 하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섭섭해 하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마음은 신델라 공연 쪽으로 향했습니다. 그분이 어떤 분입니까? 서울대 음대를 수석으로 입학하고 수석으로 졸업하셨습니다. 그리고 이태리 국립 음악원인 산타체칠리아를 최단기 코스로 마치고 졸업을 한 후, 유명 팝페라가수로 활동을 하신 분입니다. 그래서 저는 당일 점심까지 고민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결국 새에덴교회 담임목사로서 프라미스 청소년 오케스트라 공연 쪽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집사람이 대신해서 우리 교회 총여선교회 회장이신 김옥경 권사님과 함께 그쪽으로 간 것입니다. 포은아트홀에서 진행된 청소년 오케스트라도 얼마나 연습을 많이 했는지 정말 공연을 잘했습니다. 그리고 정중앙 VIP석에서 바라보니까 아이들도 아이지만, 김연정 집사님의 지휘하는 뒷모습이 너무 품격 있고 우아하게 보였습니다. 이윽고 공연이 끝나자, 제가 집사람에게 어땠느냐고 전화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집사람 입에서 감탄이 나오는 것입니다. “공연이 너무 훌륭하고 품격 있고 감동이 되었습니다. 목사님이 이곳에 와서 공연을 봤으면 집회를 하고 설교를 하는데 많은 영감과 지혜와 착상을 얻었을 것입니다. 대중가요 콘서트와는 또 다른 격과 결이 있고 감동이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신델라 교수님께서 저희 집사람을 일어나라고 해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소 목사님께서 꼭 오시려고 했는데 다른 일이 있어서 사모님이 대신 오셨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 작사를 소 목사님이 하셨습니다. 소 목사님 대신 사모님께 박수를 쳐 주세요.” 그 많은 사람들 중에 유일하게 저희 집사람만 소개를 하며 따뜻하게 맞아 주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넓은 공연장이 단 한 자리도 비지 않고 꽉 채워져 있었는데, 후문에 의하면 신델라 교수께서 가장 좋은 자리에 직접 앉아보고 그 중에서 제일 좋은 자리를 저와 집사람에게 내어 줬다는 것입니다. 나중에 몇 몇 교계 인사들이 저한테 전화가 왔습니다. “목사님, 무슨 일이 그렇게 바빠서 못 오셨습니까? 오셨으면 완전히 목사님 자리가 될 뻔 했습니다.” 그날은 정말 많은 아쉬움이 있는 날이고 또 대견스러운 날이기도 했습니다. 제가 청소년 오케스트라 공연에 갔다는 건 담임목사로서 대견스러운 일이고, 또 신델라 교수 공연에 가지 못했다는 것은 아쉬운 일이죠. 그래서 그런지 저는 다음날 다른 교회 집회를 갔는데, 그만 모르고 설교 원고를 안 가져가 버렸습니다. 물론 원고 없이 얼마든지 설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원고가 있어야 든든한 마음이 생겼습니다. 혹시라도 실수하지 말아야 할 텐데... 그래서 비서실에 그 원고를 찾아서 인터넷으로 보내라 했습니다. 일어나보니 꿈이었습니다. 물론 다음날은 제가 다른 교회 집회에도 가지 않고 우리 교회에서 설교하지도 않았습니다. 오전 예배 때도 외부 강사가 오셨고, 저녁예배 때도 외부 강사가 오셨습니다. 저는 혹시 무슨 일이 있을까 했지만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두 분이 오셔서 다 은혜를 끼쳤습니다. 두 분을 모두 베드로 동상까지 배웅했습니다. 그때 교회 직원이 가로수의 낙엽을 쓸고 있는 것을 봤습니다. 제가 그분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어르신, 그 낙엽 안 쓸어내셔도 됩니다. 어차피 오늘 쓸어봤자 내일 또 떨어질 거 아닙니까? 그리고 지나가는 분들이 낙엽 밟는 낭만도 있어야지요.” 저녁까지 아무리 돌아봐도 아무 일도 없었던 어느 가을날이었습니다. 저는 그냥 조그마한 일이라도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아직 쓸지 않은 낙엽을 밟으며 길을 걸어보았습니다. 그토록 아쉬웠던 마음과 대견했던 마음이 잘 융합이 되었는지 그날은 그저 낙엽을 밟는 일 외에는 아무 일도 없었던 하루였습니다. 그 일 외에도 연말이 다가오고 할 일이 많아서 그런지 이따금씩 꿈속에서 뭔가 강박 같은 것을 느끼곤 합니다. 새 시집을 탈고하고 또 한 권의 책을 준비하고 있어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만, 잠에서 깨고 나면 아무 일도 없는 나날이 계속됩니다. 부디 성도들의 가을도 행복했으면 좋겠고, 아무 일 없이 좋은 소식만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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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3-10-29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생명은 그 자체로 존귀한 것입니다”
    지난주에 CBS가 주최한 순천 전도 부흥회를 다녀오는 길에 순천만 갈대숲을 갔다 왔습니다. 문득 제가 쓴 ‘꽃으로 만나 갈대로 헤어지다’라는 시 구절이 생각이 났습니다. “우린 꽃으로 만나 갈대로 헤어지나니 / 풀잎으로 만나 낙엽 되어 이별하나니 / 산은 눈을 감고 / 강물은 귀를 막고 / 달은 소리 없이 걷고 있나니 / 새 한 마리 울어 청산이 울리고 / 꽃송이 하나로 봄이 오고 / 별 하나 떠서 온 밤이 환해지나니 / 바람이 스쳐가는 갈대 사이로 / 내가 서 있어요 / 갈대로 헤어진 우리 / 다시 꽃으로 만날 순 없을까.” 지금은 은갈색의 갈대꽃이 춤을 추고 있는 계절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아름다운 은갈색 꽃으로 만났지만 이제 12월이 되고 혹한의 겨울 추위가 오면 갈대들이 부러지고 상하게 될 것입니다. 더더구나 폭설이 내리면 그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서 모두가 다 쓰러져버리고 아쉽게 헤어지고 말 것입니다. 그렇지만 다시 또 봄이 되면 그 속에서 다시 싹이 나고 또 여름이 되면 푸른 잎사귀가 돋고 가을이 되면 은갈색의 꽃이 피잖아요. 이런 걸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모든 생명은 존귀하다는 사실을 생각합니다. 가을 들판에서 바람에 몸을 흔들고 있는 억새도, 산기슭의 구절초도, 어두운 구석에서 울고 있는 귀뚜라미도 하나님의 창조 안에서 존귀한 생명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생명이라고 발음할 때마다 저는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느낍니다. 생명은 언제나 신비롭고 눈부시며 그 신비스러움과 눈부심 앞에 때로는 울컥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지금 중동은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발단은 무장단체 하마스의 공격과 민간인 학살로 시작이 되었지요. 또 이스라엘은 응징을 하게 되고요. 이것이 또 민족과 인종, 종교 간의 갈등으로 확전되고 중동 전쟁으로 확전이 될 수도 있습니다. 사망자만 해도 수 천명에 달합니다. 그런데 서로 간의 앙금이 있어서 군 시설은 파괴할 수 있고 공격할 수 있다 하더라도 어떻게 민간인을 학살하고 병원을 공격하느냔 말입니다. 그것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기독교 병원을 말이죠. 누구의 공격으로 시설이 파괴되었는지 명명백백하게 밝혀지겠지만 미국과 이스라엘에서는 하마스의 공격이라고 하고 하마스는 이스라엘의 공격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이건 있을 수가 없는얘기입니다. 어떻게 군사시설도 아닌 병원을 공격할 수 있습니까? 생명 그 자체로 존중해야 하지요. 여기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종교란 무엇입니까? 특별히 종교는 생명에 대한 궁극적인 질문에 해답을 제시해 주어야 합니다. 내세에 대한 궁극적인 길을 안내하는 게 종교입니다. 그리고 이 땅의 평화를 지켜내고 생명을 존중해야 되는 것입니다. 종교는 어떤 경우에도 살인을 조장하거나 전쟁을 조장해서 평화를 깨면 안 됩니다. 어떻든지 화해와 평화의 분위기를 조성해야 합니다. 우리는 결코 꽃으로 만나 갈대 헤어져서는 안 됩니다. 헤어진다 하더라도 우리는 이듬해 다시 태어날 세상에 대한 희망을 갖고 소망을 가져야 됩니다. 그리고 다시 갈대꽃들이 피는 꿈을 꿔야 합니다. 순천만의 갈대숲을 거닐며 이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아무리 혹한의 겨울에 갈대가 부러져 있고 쓰러져 있더라도 우리는 다시 새 생명의 꿈을 꾸고 은갈색 갈대꽃의 꿈을 꿔야 한다”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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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3-10-22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나와 안 맞으면 선을 긋는 사회
    저는 4.19혁명 국가조찬기도회 설교를 몇 번 하러 갔습니다. 그때마다 농림부장관을 지내고 국회의원 5선을 하신 김영진 장로님이 “4.19혁명의 기록은 역사 속의 고서로 감춰져 있으면 안 된다”고 하시면서 4.19혁명을 유엔 유네스코에 등재하기 위해서 정말 애를 많이 썼습니다. 우리 교회도 약간의 도움은 드렸지만 그분은 온몸을 다 바쳐서 그 일을 했습니다. 4.19혁명이야 말로 대한민국을 새로 거듭나게 한 고통의 산실이었습니다. 부정과 불의를 추방하고 정의와 인권을 회복시킨 위대한 혁명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민주화의 불길을 활화산처럼 타오르게 한 불씨 혁명이고 점화 혁명이었습니다. 당시 독재 정부는 자유와 민주의 팔을 묶고 목을 죄었지만 4.19 혁명은 검은 군홧발에도 굴하지 않는 민주와 자유를 향한 인권 운동의 함성이었으며 고독한 새벽별의 피눈물과 처절한 절규로 독재의 성벽을 무너뜨렸던 타오르는 민주의 혼이었습니다. 그 민주화의 횃불은 민족의 가슴마다 들불로 번지고 조국 근대화와 자유 민주주의의 향기로운 꽃이 필 때까지 자유와 인권, 민주화의 정신적 보고요, 폭풍의 진원지가 되었습니다. 급기야 4.19의 정신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불쏘시개가 되고 그 불멸의 꽃은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의 꽃을 만발하게 하는 한 알의 밀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4.19정신을 기억하고 계승시켜야 합니다. 4.19의 대가없는 희생으로 대한민국은 지금 자유민주주의가 꽃을 피우고 모든 국민이 자유와 행복을 누리며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김영진 장로님께서 몇 년을 고생한 끝에 드디어 4.19혁명이 유엔 유네스코에 등재가 되게 하였습니다. 마침내 4.19묘역에서 유엔 유네스코 등재 헌정식을 하고 기념식을 하려고 하는데 4.19에 속한 어느 단체에서 그걸 문제 삼은 것입니다. “왜 우리하고 의논을 안 하고 당신들끼리 추진을 했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묘역 앞에서 행사를 하지 못하고 장소를 옮겨서 하기로 했습니다. 제가 그 이야기를 듣고 정말 탄식을 하였습니다. “우리의 자랑스러운 역사인 4.19혁명이 유엔 유네스코에 등재된 것이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 일인가. 그런데 그런 일을 자기들과 의논하지 않았다고 그렇게 기분 나쁘게 생각할 일인가. 우리 사회가 언제부터 이렇게 극단적 왜곡 편향 사회가 되었는가. 혹시 소통이 조금 부족했어도 그렇게 노력해서 유네스코에 등재가 되었으면 서로 칭찬하고 격려하며 감사한 일이 아닌가...” 그런데 너무 다행스럽게도 누군가의 중재로 조정을 하고 화해를 하게 해서 4.19에 속한 여러 단체가 함께 4.19묘역에서 헌정식과 기념식을 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참 얼마나 다행입니까? 저는 그 소식을 듣고 너무 다행이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교회라고 예외이겠습니까? 지난번에 제가 아프리카에서 선교사님들을 모아놓고 세미나를 하고 난 후 몇 분이 저에게 찾아와서 이렇게 사과를 하는 것입니다. “소 목사님, 지난날 유튜브의 헛소문을 듣고 목사님을 한동안 오해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목사님의 강의를 듣고 보니 그것이 전혀 아닌 걸 알았습니다. 한국교회를 위해서 그토록 애를 쓰셨는데... 정말 죄송합니다.” 또한 부산 엑스포 유치를 위한 홍보 활동이야말로 아름다운 공공외교의 일환입니다. 그런데 이걸 또 다른 방식으로 오해하는 사람이 제 주변에 있다는 것을 알고 깊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언제부터 우리 사회가 무조건 자기하고 안 맞으면 선을 긋고, 아무리 아름다운 가치와 정신, 숭고함을 계승해도 자기와 의논 없이 하면 이렇게 반대를 해 버리는가. 또는 자기 확증편향성과 맞지 않으면 이렇게 해 버리는가?” 요즘 주변을 보면 진짜 뜻하지 않는 오해와 확증 편향적 사고에 갇혀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아무리 설명을 하고 이해를 시키려고 해도 자기만의 생각에 갇혀 남들을 판단하고 왜곡된 시각으로 보려고 합니다. 교회는 결코 싸움과 다툼, 분열의 종교가 아닙니다. 사랑과 화해, 용서의 종교입니다. 전쟁을 막고 자유와 평화를 선도하며 국민 모두가 행복한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어가는 것이 종교의 사회적 책임과 환원 사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새에덴교회가 목회적 대형교회로서 사회적 순기능과 선순환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도록 섬겨나갈 것입니다. 아니 저부터 분열과 다툼이 있는 곳에 사랑과 평화, 연합과 일치의 중재적 역할을 해 나가는데 앞장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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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0-15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아프리카에 꽃씨를 뿌리러 갑니다.”
    저는 10여 년 전에 아프리카 선교를 간 적이 있습니다. 그때 마사이족들이 사는 곳으로 가서 선교를 하였습니다. 몇 년 후에는 ‘월드비전’과 함께 에티오피아에 가서 선교와 구호 활동을 하였습니다. 이번에는 ‘글로벌에듀’에서 아프리카에 가자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냥은 가지 말고 학교를 하나 짓자는 것입니다. 제가 사실은 ‘글로벌에듀’의 이사장이 아닙니까? 그러나 한 주 동안에 아프리카를 갔다 온다는 게 너무 엄두가 안 나고, 또 학교를 하나 짓는 것도 재정적 부담이 들어서 안 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글로벌에듀’ 상임 이사님이 “아프리카에 학교 하나 짓고 부산 엑스포 유치대에 가서 아프리카의 정상과 외교부 장관에게 부산 엑스포 유치를 위한 스피치를 해주라”는 것입니다. 저는 갈등이 많았습니다. “이것도 공공외교 중의 하나인데 김진표 국회의장님께서 가시지만 나 같은 것이 가서 스피치를 한다고 얼마나 효력이 있겠는가...” 그런데 제가 강요하지도 않았는데 김철수 장로님이 학교 짓는 돈을 자기가 감당하겠다고 연락이 오고, 또 안영준 집사님이 행사비 일부를 감당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마음에 고민이 생긴 것입니다. 제가 가면 아프리카 전역에서 선교사들이 오실 텐데 선교사들에게 식사 대접을 하고 세미나를 하고 또 교통비를 지원하고 섬겨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각국 정상과 외교부장관들이 삼성 스마트폰 폴더 폰을 선물 받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먼저 힘겹게 헌신하는 성도들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그렇지만 결국 개미군단의 헌신자들이 생겨나서 어쩔 수 없이 가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제 아들이 국제정치학을 전공하였는데 “아빠가 한 살이라도 젊을 때 폼 나게 가서 공공외교를 하고 오라”고 하는 것입니다. 제가 그 말 한마디에 마음이 움직였던 거죠. 그래서 요즘 영어 연설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가서 이런 요지의 스피치를 하려고 합니다. “우리나라가 눈 떠보니 선진국이 되었습니다. 선진국이 그냥 된 게 아니라 선교사들이 와서 복음을 전하고 신문명을 전달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왕에 이 자리에 선 김에 우리 대한민국을 자랑하고 싶습니다. 대한민국은 6·25전쟁 때 딸랑 부산밖에 안 남았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낙동강 전선을 사수하여 오늘의 대한민국을 이루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원조받은 나라에서 최초로 원조를 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저는 부산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부산은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최후의 보루였고 대한민국의 혼과 정신이 아직도 숨 쉬고 있는 곳입니다. 더구나 부산은 세계 최고로 아름다운 항구도시입니다. 부산은 태고적의 신비로움과 현대 문화가 조화를 이루는 얼마나 아름다운 바다의 도시인지 모릅니다. 마치 모든 소리가 세이렌의 노래로 들릴 정도로 아름답고 고혹적인 항구도시입니다. 저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대한민국 종교 지도자로서 여러분이 2030년도 엑스포에 부산으로 오시면 좋겠다는 마음이 강렬합니다. 만약에 여러분들이 2030년도 부산 엑스포에 오시게 된다면 여러분은 환상의 도시에 오시는 듯 착각을 하게 될 것이고 세이렌의 앞바다를 지나가는 듯한 매혹적인 여행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부산을 응원해 주십시오. 부산을 사랑해 주십시오. 부산 엑스포를 위하여 박수를 쳐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아프리카에 복음과 선교, 그리고 공공외교의 꽃씨를 뿌리러 가는데 얼마나 싹이 나고 줄기가 자라고 꽃이 피어날지 모르겠습니다. 오직 기도하는 마음으로 다녀오겠습니다. 성도님들께서 저의 건강과 숙면 그리고 선교와 공공외교 활동을 위하여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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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3-10-01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은혜를 기억하는 사람과 잊는 사람
    요즘 저는 씁쓸한 기분을 느끼고 있습니다. 사실 이런 일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죠. 아쉬울 때는 그렇게 도와달라고 하고 살려달라고 하다가 나중에 일이 끝나고 나면 확 돌아버리는 사람을 볼 때 말이죠. 저는 원래 빚을 한 번 지면 10배로 갚는 사람이고 절대 받은 은혜를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살아온 사람이기 때문에 더 그렇습니다. 요즘 뉴스를 보면 그렇게 자기를 키워주고 은혜를 베풀어준 스승을 나 몰라라 하고 배은망덕한 일도 보지 않습니까? 그런 일을 겪는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아플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저도 총회와 교계를 섬기면서 제게 힘이 있을 때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찾아왔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정치적으로 생매장이 되어갈 사람들이 와서 제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얼마나 통사정을 했는지 모릅니다. 그럴 때면 한 번도 거절하지 않고 도와 드렸지요. 그런데 그런 일이 지나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싹 돌아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더구나 세월이 흘러 교권을 가진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 옛 시절을 기억하지 못하고 안하무인으로 행동하는 것을 보면 참 마음이 씁쓸합니다. 하긴 제 자신도 마찬가지일지도 모릅니다. 총회 기간 중에 저를 총회장으로 만들고 천국에 가신 고 박정하 장로님 묘소를 한번 찾아가려고 했습니다. 한동안 우리 총회가 너무 어수선할 때 저는 교단을 옮겨버릴까도 생각한 적이 있었거든요. 그랬는데 그때 그분이 나서서 교단법을 고쳐서 57세에 저를 부총회장이 될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57세에 부총회장이 되고 만 58세에 총회장이 되게 만들어준 것입니다. 그리고 천국을 가셨습니다. 저는 여러번 그분이 잠들어 있는 묘소를 찾아가 꽃다발을 헌화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묘소를 한번 찾아갈까 했는데 시간이 여의치가 않았습니다. 제가 아쉬워하자 옆에 있는 분들이 “그러지 말고 차라리 그 분 기일 때 찾아가자”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마음은 잊지 않았지만 가지를 못했습니다. 그러고 보면 저도 똑같은 사람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제가 언젠가는 한번 꽃다발을 들고 묘소에 찾아가려고 합니다. 모름지기 사람은 기억을 해야 합니다. 받은 은혜를 기억할 뿐 아니라 잘못을 기억하고 뉘우쳐야 합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가면 유대인들보다 독일인들이 더 많이 찾아온다고 합니다. 지난 과거를 잊지 않고 다시는 그런 실수를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이번에도 대통령께서 추석 선물을 보내주셨습니다. 이걸 저는 먼저 김현숙 권사님께 보내 드렸습니다. 저를 그렇게 사랑해 주신 고 문정남 장로님을 생각하면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대전에 갔는데 대전 현충원에 잠들어 계신 문 장로님 묘소라도 찾아갔어야 되는데 가지를 못했습니다. 이런 말을 하는 제 자신이 너무나 부끄럽습니다. 한 번은 날을 잡아서 문 장로님의 묘소도 찾아가고 박정하 장로님의 묘소도 찾아가야 되겠습니다. 그것이 저다운 삶이고 소 목사다운 삶이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도 저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삶을 살고 힘을 가질수록 목에 힘을 빼고 더 겸손하고 더 많이 안고 품겠습니다. 그리고 은혜를 베푼 사람을 끝까지 기억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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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3-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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