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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바보가 될 바에는 더 큰 바보가 되라”
    류시화 시인이 쓴 ‘신이 쉼표를 넣은 곳에 마침표를 찍지 말라’는 책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어느 밀림 속에서 모든 동물들이 평화롭게 지내고 있었습니다. 사건은 당나귀가 풀의 색깔을 파란색이라고 우기는 데서 시작됩니다. 당나귀가 자기 혼자 “풀이 파란색”이라고 소근 거렸으면 좋았을 텐데 아예 모든 동물들 앞에서 풀의 색깔이 파란색이라고 소리쳐 대는 것입니다. 이때 호랑이가 으르렁거리며 “풀은 파란색이 아니라 초록색이야”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당나귀는 더 소리를 높였습니다. “풀은 초록색이 아니라 파란색이라니까!” 그러자 동물들이 덩달아 편 가르기를 하였습니다. ‘초록색파’와 ‘파란색파’로, 혹은 호랑이파와 당나귀파로 나뉜 것이죠. 호랑이는 포식동물의 왕답게 으르렁대기 시작했고 당나귀는 분수를 모르고 계속 소리를 지르고 있었습니다. “초록색이 아니라 파란색이라니까!” 누군가의 중재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동물들은 밀림의 왕 사자를 초청하여 판결을 부탁하자고 하였습니다. 호랑이도 동의를 하였습니다. 왜냐면 사자는 고양이과 동물로서 당연히 자기편이 되어줄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사자가 나타났습니다. 먼저 당나귀의 주장에 귀 기울였습니다. 그리고 호랑이의 주장도 잘 들었습니다. 그러더니 사자는 당나귀의 말이 옳다고 판결을 내렸습니다. 풀은 초록색이 아니라 파란색이라고 말이죠. 판결 후에 호랑이가 사자에게 으르렁대며 “왜 그따위 판결을 하느냐”고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냈습니다. “너도 풀이 초록색이라는 걸 잘 알고 있으면서 왜 그렇게 오판을 했느냐”고 말입니다. 그리고 오른발로 사자를 치려고 하였습니다. 그때 사자가 지혜롭게 말을 했습니다. “어이, 호랑이. 물론 나도 풀이 초록색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어. 하지만 숲의 제왕이 되어가지고 저 하찮은 당나귀와 논쟁을 벌이다니. 논쟁을 벌이려면 적어도 자네보다 훨씬 지식과 지혜가 높은 자와 해야지. 자네는 어리석은 자와 무의미하게 논쟁을 했어. 이미 호랑이다움을 잃어버렸고 소중한 시간과 기운을 낭비한 채 오히려 세상을 더 시끄럽게 만들었다네··· ” 저도 어릴 때부터 우김질을 많이 했던 사람입니다. 한번 우기면 그것이 잘못된 주장인 줄 알면서도 끝까지 우김질을 했던 기질이 있었습니다. 개척교회 때는 물론, 중형교회가 되었을 때도 스티븐 코비의 주장대로 “언제나 주도적으로만 살아야 한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그 주도적 의미를 아전인수(我田引水)격으로 생각을 했던 면도 있었겠지만요. 이런 제가 언제부터인가 한국교회 연합사역과 공적사역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앞에서 일을 하다 보니까 좋은 일을 하면서도 비판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공교회를 위하여 옳은 일을 하면서도 불필요한 공격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마다 제 안에 있는 호랑이 본성이 발동하려고 했습니다. 게다가 코로나가 극심한 상황에 이르러서는 방역 당국과 예배 퍼센티지를 협상하는 것을 신사참배로 규정을 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어떻게든지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목회를 포기하지 말라”고 하며 격려비를 지원하는 것을 두고 차마 입에 담기에도 창피스러운 프레임으로 공격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저는 제 안에 있는 호랑이의 입을 다물도록 하였습니다. 제 스스로 말을 했죠. “기왕 바보가 될 바에야 더 큰 바보가 되자. 그리고 논쟁을 하려면 너보다 훨씬 더 유능하고, 능력 있고, 지혜 있는 현자와 하자.” 어떻게 풀이 파란색이란 말입니까? 당나귀의 주장은 말도 안 되죠. 풀은 당연히 초록색이지요. 그러나 호랑이는 호랑이답게 놀아야 했습니다. 당나귀와 논쟁을 하는 그 순간부터 호랑이는 호랑이의 자존심과 체면을 구겨버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제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공격을 받을 때 많은 분들이 저를 충동질 하였습니다. “소 목사님, 왜 가만히 계십니까? 허락만 해주시면 제가 나서서 대리 고발을 해드리겠습니다.” 그럴 때마다 제 안의 호랑이가 으르렁대려고 했습니다. 아니, 제가 나서서 법적조치를 하면 당연히 실형을 받게 할 수 있죠. 그러나 저는 저 다움과 한국교회 진정한 리더다움을 지키기로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저보다 훨씬 능력이 있고 지식이 넘치는 현자들을 찾아 토론하려고 했습니다. 그런 분들의 글을 읽고, 그런 분들과 만나 말씀을 듣고 때로는 토론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저만이 걸어가는 바보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마침내 제 앞에 골드오션(Gold Ocean)이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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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3-02-19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2월에 연둣빛 봄을 꿈꾸다”
    올 겨울은 정말 겨울다운 겨울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강추위도 있었고, 눈도 많이 내렸거든요. 난방비 폭탄만 없었으면 올 겨울은 정말 완벽하게 행복한 겨울이 될 뻔 했습니다. 정말 눈도 유난히 많이 내렸습니다. 그리고 체감온도가 영하 25도라는 경이적인 추위를 기록했습니다. 그날, 저녁에 산에 올라가니까 체감으로는 영하 25도를 훨씬 넘긴 것 같았습니다. 마스크를 벗어서 5,6초만 두면 바로 굳어버렸고 호주머니에 넣고 간 생수도 꽁꽁 얼어버릴 정도였으니 말입니다. 겨울나무에 하얀 눈이 쌓여 있는 것을 보면 앙증맞게 피어난 에델바이스를 보는 것 같았고 인동초 처럼 보였습니다. 히말라야산맥이 따로 없었습니다. 저는 그때 우리 교회 외벽에 붙어 있는 “한 겨울에도 연둣빛 봄을 꿈꾸다”라는 문구를 생각했습니다. 이 문구는 지하철 분당선에도 글판으로 걸려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보았을 것입니다. 겨울이 겨울다워서 좋지만 아무리 추운 겨울도 봄을 이길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하얀 눈을 지탱하고 있는 나뭇가지들이 추위에 고통스러워하겠지만 저의 눈에는 또 다른 꿈을 꾸고 있는 모습으로 보였습니다. 그것은 바로 봄의 연둣빛 꿈이죠. 지금은 하얀 눈으로 덮여있지만 봄의 햇살에는 당연히 녹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홍매화, 백매화가 가장 먼저 필 것이고 뒤를 이어 진달래와 목련이 함께 피고 눈으로 덮였던 설원의 대지는 연둣빛과 연분홍 세상으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더구나 봄의 따뜻한 아지랑이가 올라오고 봄비까지 내리게 되면 4월의 풀은 겨울의 황막한 대지를 뚫고 솟아나서 지평선의 푸른 소나타를 노래하게 됩니다. 특별히 바람이 부는 들판에서 흔들리는 풀은 환상적인 봄의 교향곡을 연주하는 생명의 마에스트로가 되지요. 그 역동하는 생명의 박동, 푸른 생명의 펌프질을 보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우리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경기 침체와 난방비 폭탄, 재난, 재해 등 얼마나 많은 사건, 사고와 힘겨운 일들이 많이 있습니까? 겨울의 추위는 한풀 꺾였지만 마음의 추위와 삶의 추위는 여전합니다. 그래도 아니, 그러면 그럴수록 우리는 연둣빛 꿈을 꾸어야 합니다. 그래서 푸시킨도 이렇게 노래하지 않았습니까?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중략) 슬픔의 날을 참고 견디면/ 즐거운 날이 오고야 말리니….” 우리 역시 아직은 겨울이지만 연둣빛 꿈을 꾸어야 합니다. 그리스 철학자 소포클레스가 말한 것처럼 “내가 헛되이 보낸 오늘 하루는 어제 죽어간 이들이 그토록 바라던 내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맞는 봄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겨울에 죽어간 이들이 그토록 간절하게 맞이하고 싶었던 봄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어떻게든지 이 어려운 삶을 견뎌야 합니다. 겨울의 추위는 견뎌냈지만 이제 마음의 추위와 삶의 추위를 견뎌내고 삶의 봄을 맞이해야 합니다. 푸시킨의 말대로 슬픔의 날을 참고 견디면 즐거운 날이 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경우에도 우리는 절망하거나 낙심하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생(生)이란 명(命)이기 때문입니다. 아직 겨울이지만, 매화가 벌써 꽃 몽우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면 연분홍 진달래와 하얀 백목련이 필 것이고 그 뒤를 이어서 개나리와 벚꽃들이 만개를 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듯 우리의 삶에도 반드시 봄이 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영국의 시인 셀리의 “추운 겨울이 오면 따뜻한 봄 또한 멀지 않으리”라는 시처럼 말입니다. 그러므로 삶의 추위가 매섭게 느껴지면 느껴질수록 우리는 연둣빛 봄의 꿈을 꾸어야 합니다. 연분홍의 꽃 몽우리를 준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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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3-02-12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가슴이 뛰기만 한다면···”
    ‘문학나무’라고 하는 아주 오래되고 권위 있는 문예지가 있습니다. 작년 말에 저에게 ‘성경 인물시리즈 5편’을 써달라고 공문을 보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저에게 공문이 전달되지 않았습니다. 비서실에서 공문을 안 챙겨 줬든지 아니면 제가 그 공문을 못 봤던지 둘 중에 하나일 것입니다. 그래서 지지난주 금요일 날 “왜 원고를 안 보내 주냐며 빨리 시를 써서 보내달라”고 문자를 받았습니다. 급한 맘에 성경 인물시를 쓰려고 하는데 그날이 금요일 오후였습니다. 금요일 오후는 주보 글도 점검하고 철야기도 설교 준비도 해야 해서 가장 바쁜 날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한 번도 써보지 않은 성경 인물시를 쓰려니까 멘붕이 왔습니다. 사실 제가 지난번 시집 ‘너의 이름을 사랑이라 부른다’를 쓴 이후에 시에 관한 한 절필을 했습니다. 제가 여러 목회일정과 연합사역 일로 얼마나 바쁜 시간을 보냈습니까? 그리고 또 신년축복성회 준비를 해야 되고 마음의 여유가 없었습니다. 시인에게 있어서 절필을 한다는 게 얼마나 큰 재앙인지 모릅니다. 물론 제가 여러 가지 산문이나 글은 계속 썼죠. 또 일반 서정시나 제가 자유롭게 정한 제목의 시는 얼마든지 쓸 수 있지만, 아담에서부터 하와, 가인, 아벨, 셋, 이런 식으로 인물시를 쓰려고 하니까 시상이 금방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오죽하면 토요일날 주일학교 교사 순회 기도회와 청년부 집회를 하면서 국문과생이나, 문창과 출신들은 한 문구라도 떠오르면 저에게 보내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누구도 보내주지 않았습니다. 또 토요일날도 바쁘지 않습니까? 그래서 제가 그냥 선광현 목사에게 기본적인 시의 구성을 엮도록 좀 불러줬더니 선목사님이 이런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 “목사님, 좀 종교시 냄새가 나는데요. 일반 문예지에 게재하는 것이니 현대시로 구성을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 얘기를 들으니까 더 멘붕이 왔습니다. “시인이 돼가지고 이렇게 시상이 떨어지면 어떻게 되느냐...” 그 순간 한비야의 글이 생각이 났습니다. 그가 쓴 ‘바람의 딸, 지구의 세 바퀴 반’이라는 책이 있는데, 거기 보면 케냐의 한 의사 이야기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가 운영하는 병원은 나이로비에서 정말 잘 되는 병원인데 이 의사는 1년 중 6개월만 병원을 오픈하고 6개월은 오지로 가서 의료봉사를 한다고 합니다. 그때는 대통령이 초청을 해도 대통령조차도 만나주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비야가 그 의사를 만나기 위해 오지로 찾아가서 이렇게 물어봤대요. “선생님, 여기서 왜 의료봉사만 하세요? 나이로비에서 병원을 가면 더 많은 사람을 고칠 수가 있고 돈도 정말 많이 벌 수 있는데요.” 그러자 의사는 이렇게 대답을 했답니다. “사람이 어떻게 돈만 벌고 삽니까? 돈을 벌면 가슴이 뛰지를 않아요. 이곳에 와서 봉사를 해야 가슴이 뜁니다. 사람이 가슴 뛰는 일을 하며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문득 이 이야기가 생각이 났습니다. “좋다. 가슴만 뛰면 된다. 내 가슴이 뛰는 한, 시는 반드시 나에게 찾아온다. 정호승 시인처럼 결사적으로 시를 쓰려고 하면 반드시 시는 찾아온다.” 그리고 안도현의 시인의 ‘너에게 묻는다’라는 시도 생각이 났습니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나중에 연탄재가 될망정 지금 타오르는 연탄처럼 내 가슴이 뜨거우면 반드시 시는 찾아온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뜨거운 가슴으로 시를 간절히 사모하고 사모한 것입니다. 그랬더니 어느 순간 시적 언어가 생각이 나고 성경 인물에 대한 시적 이미지가 떠오르게 된 것입니다. 하나가 떠오르니까 계속해서 연결이 되고 또 연결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담’이라는 시를 먼저 썼습니다. “내 안에 유리거울 하나 빛났지 / 당신이 나를 흙으로 빚고 / 코에 생기를 불어 넣었을 때... / 그 거울에 비친 당신의 얼굴 / 산짐승과 날짐승들의 이름을 부르는 바람의 호명 / 태양빛도 숨죽이던 날 / 하와의 하얀 손바닥 위에서 빛나던 / 빨간 선악과의 미혹 / 금단의 열매를 깨물었을 때 / 내 안에 유리거울이 깨지고 / 깨진 유리 파편 위로 / 검은 소나기가 세차게 내렸다 / 에덴을 잃어버린 후 / 지금도 소나기가 내리면 / 슬픈 소년이 된다.” 아담을 쓰고 나니까 하와, 가인, 아벨, 셋으로 연결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마침내 월요일에 원고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편집장님과 월요일 오후에 통화를 했는데 “어떻게 이렇게 빨리 써서 보내셨습니까? 이건 정말 소목사님만이 쓸 수 있는 시입니다. 그리고 이런 기획을 하기를 얼마나 잘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금방 피드백을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뜨거운 가슴만 있다면 못할 것이 없습니다. 문제는 우리의 가슴이 뜨거운가, 안 뜨거운가의 차이입니다. 영어의 정열이라는 말이 Enthusiasm이라는 말인데, 헬라어 ‘앤 데오스’에서 나온 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속으로 들어가고 하나님이 우리 안에 들어올 때 정열의 삶을 살고 가슴 뛰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가슴이 뛰고 불타오를 때 글도 쓰고 시도 쓰고 새로운 골드오션의 세계를 열어갈 수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의 가슴입니다. 여러분의 가슴은 얼마나 뜨겁습니까? 얼마나 불태우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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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3-02-05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눈이 내리면 무조건 시를 쓴다
    올겨울은 눈이 많이 오는 편이지요. 저는 어릴 때부터 눈이 오면 너무 좋았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보면 하얀 눈이 온 세상을 따뜻한 이불처럼 덮고 있는 듯 보였습니다. 저는 눈이 왔다고 좋아서 난리인데 아버지께서는 “무슨 눈이 이렇게 많이 왔냐”고 투덜거리시며 눈을 치우기에 바쁘셨습니다. 옛날이건 지금이건 눈이 많이 쌓이면 빗자루로 쓸 수가 없습니다. 제가 살았던 고향에서는 ‘당그래’(당거래)라는 기구로 눈을 밀기도 하고 긁어서 당기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눈이 어느 정도 쌓이면 다시 삽으로 퍼서 옮겼습니다. 아버지께서는 가장으로서 눈 치우는 의무감이 많았지만, 저는 의무감 없이 눈을치우는 것도 재미와 즐거움으로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정도 눈을 치우고나면 눈사람도 만들며 신나게 놀았습니다. 왜 그랬는지는 몰라도 눈 오는 아침에는 아무 발자국이 없는 곳에 저의 발자국을 제일 먼저 찍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남이 잘 다니지 않는 뒷동산으로 가는 길에다가 저의 발자국을 제일 먼저 찍었습니다. 그리고 어떨 땐 하얀 눈 밭 위에 누워서 실눈을 뜨고 눈부신 햇살을 바라보기도 했습니다. 너무 행복해서였는지 이유 없이 눈물이 날 때도 있었습니다. 철인(哲人)도 아니고 시인도 아니었는데 말입니다. 지금 생각해봐도 이해가 되지 않는 일들입니다. 그런데 이런 추억이 쌓이고 쌓여서, 아니 이런 사건들이 무의식 속에 저장이 되고 되어서 회갑이 넘는 나이에도 눈이 오면 무조건 좋은 듯합니다. 그래서 산행을 하다가도 눈이 녹지 않는 곳을 보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습니다. 신이 나서 썰매를 타듯 일부러 미끄러지지요. 눈이 오면 끝없는 설원의 세계를 걷고 싶습니다. 그리고 무조건 시를 씁니다. 그 시는 글로만 쓰는 시가 아니라 마음으로 쓰기도 하고, 눈 위에 발자국을 찍는 것 자체가 저의 시가 되기도 합니다. 이번 목요일 저녁에도 설산을 걷고 또 걸었습니다. 비가 오면 황순원의 소나기 소년이 되고, 눈이 오면 그렇게 좋다가도 문득문득 슬퍼질 때가 있습니다. 그날 저녁에도 산행을 하다 갑자기 슬퍼지는 감정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깊은 밤에 눈밭에서 한동안 누워 있었습니다. 눈 쌓인 벤치에 앉아서 상념에 잠기기도 했고요. 그날 밤 슬퍼지는 이유는 어린 시절의 아버지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소년 시절 눈 내리는 어느 날, 제가 가래토가 생겨서 온몸이 불덩이가 되었을 때 아버지가 저를 업고 단숨에 2㎞ 가까이나 되는 범실약방으로 달려가셨습니다. 저를 업고 가시면서 눈이 많이 쌓였다고 한 번도 불평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눈 내리는 날에는 아버지가 저를 엎고 달려가는 모습이 보이곤 합니다. 목요일 저녁 산행할 때는 눈이 내리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왜 아버지 생각이 났냐면, 내 발자국보다 먼저 찍힌 발자국이 몇 개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발자국이 마치 옛날 아버지가 찍어놓은 발자국처럼 느껴진 것입니다. 바로 그 몇 개의 발자국이 저에게는 위대한 시가 되고 추억이 되고 노래가 되었습니다. 그날도 많은 시를 썼습니다. 발자국으로 쓰기도 하고 마음으로 쓰기도 하였습니다. 제가 시를 쓰면 어떤 시를 쓰겠습니까? 마음속에 주님을 향한 에델바이스를 피워내고 성도들을 향한 목양 연가, 그리고 저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향한 애상의 연가를 쓰지 않겠습니까? 다시 문득 백암교회를 개척하던 때 무등산 헐몬 수양관에서 쌓인 눈 위에 엎드려 기도하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그 생각이 나자마자 저는 당장 눈 위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였습니다. 무릎에 냉기가 들어와 오래 꿇지는 못했습니다. 그래도 잠시라도 ‘주여’를 외치며 통성 기도를 했습니다. 그 모습을 동행하던 박주옥 목사님이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었는데, 사진을 보니 바로 그 모습이 바로 한 편의 시와 같았습니다. 발자국으로 쓴 시보다 눈 위에 무릎으로 쓴 시가 더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그렇다면 저의 젊음의 때는 하나님께 드리는 눈물의 헌시를 많이 썼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눈구덩이 속에서 무릎 자국을 남기며 쓴 시는 더 그렇고요. 책상에 앉아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지난날, 젊음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갑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끝이 보이지 않는 하얀 대지에 저의 시를 남겨놓고 싶은 마음이 가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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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3-01-29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덤으로 사는 인생이라면...”
    저는 남원에서 태어나서 그곳에서 초등학교, 중학교를 다녔습니다. 초등학교 때는 온 마을이 떠들썩하도록 유명한 소년으로 자랐습니다. 그런데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대나무 뿌리로 때려가며 억지로 공부를 하도록 했던 큰 형님이 군대를 가서 그때부터는 제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중학교 3학년이 되어서 정신이 들었습니다. 그때는 시험을 쳐서 고등학교를 들어갔거든요. 그런데 제가 가까운 전주로 고등학교를 가야 되는데 후기도 아닌 전기 때부터 군산제일고를 들어갔습니다. 물론 그때 군산제일고는 전라북도에서 굉장히 뜨는 학교였습니다. 원래 군산제일고등학교의 전신은 영명고등학교였는데 고판남 회장님께서 학교를 인수하셔서 전라북도와 충청남도의 유망한 학생들을 모집한 학교였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 학교에 입학을 해서 저의 가정과 전혀 관계가 없는 교회를 다니게 되었고, 나중에는 하나님의 불가항력적인 소명을 받고 신학교를 가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는 전혀 몰랐는데 먼 훗날에서야 제 모교를 전킨 선교사가 세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전킨 선교사는 유니온 신학교를 졸업하고 1892년 12월 3일 한국에 선교사로 도착을 했습니다. 서울에서 10개월간 한국어 공부를 한 후에 전라도 지방으로 내려갔습니다. 내려가자마자 그는 노방전도를 하고 축호전도를 했습니다. 그렇게 전도를 하다가 급류에 빠져 죽을 뻔하기도 하고 연탄가스 중독으로 쓰러지기도 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주막에서 밤에는 모기나 빈대에 시달리기도 했지만 온갖 고생을 감내하면서 호남지방에 선교의 길을 열었습니다. 그는 군산에서 선교를 하고자 군산포구에 거처를 정하고 전도로 결실을 얻은 몇 명의 교인들과 함께 자신의 집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곳이 바로 군산 구암교회와 개복교회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저의 모교를 세운 것입니다. 그의 열정은 군산 지방의 선교로만 국한하지 않고 옥구, 익산, 김제 등 여러 곳을 다니면서 선교를 하였습니다. 그러던 그가 마침내 풍토병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자신만 풍토병에 걸린 것이 아니라 세 아들을 낳았는데 세 아들 모두 풍토병에 죽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그는 단 한 번도 하나님을 향하여 절망하거나 원망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오히려 이렇게 고백을 하며 감사했다고 합니다. “선교사가 풍토병에 걸린 것은 선교사의 영광이고 특권입니다. 그리고 자녀 셋을 다 잃은 것도 시험이 아니라 시련일 뿐입니다. 이것은 재앙이 아니라 선교사의 영광 중의 영광이고 사명자의 영광이 아니겠습니까? 이것이야말로 선교사가 하늘에 쌓은 상급과 면류관이 더 많아지고 영광스러운 것이 아니겠습니까?” 전킨 선교사가 풍토병이 걸린 병든 몸으로도 쉬지 않고 계속해서 선교를 하자, 전라도 지역 선교사들이 회의를 해서 이분을 강제로 사역지를 전주서문교회로 옮겨 버렸습니다. 당시 전주서문교회는 제법 부흥이 되어 있어서 교회가 안정적이고 자립을 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전킨 선교사로 하여금 20리 밖으로는 절대 나가지 못하도록 선교사들이 결의를 해 놓았습니다. 그러나 전킨 선교사님은 다시 몸이 근질근질해서 전주서문교회를 재건축하기 시작합니다. 당시 전국에서 가장 큰 교회를 건축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선교사들이 정한 20리 밖을 나가서 여섯 교회를 개척하고 고아원까지 설립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1907년 12월 마침내 그는 풍토병으로 인한 급성 폐렴이 찾아와서 몸져눕게 되었고 1908년 1월 2일 43세의 젊은 나이로 땅에 묻히고 맙니다. 저의 삶이 어찌 전킨과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마는. 분명한 것은 젊은 시절부터 전킨의 영성과 스피릿이 제 안에 어느 정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신학교를 간다고 집에서 쫓겨나던 일, 백암교회를 개척하던 일, 가락동에서 몸부림치던 야성의 나날, 분당과 죽전까지 이어지는 폭풍의 질주, 성대를 두 번이나 수술하던 일 등 일련의 사건들이 그걸 증명한다고 할 수있겠지요. 이걸 칼 융의 집단 무의식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아니죠.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전킨이 뿌린 열매를 하나님이 거두셨다고 설명할 수밖에 없지요. 그런데 전킨은 43세에 죽었잖아요. 문득 이런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전킨 선교사님께서 자기가 세운 학교 출신인 소 목사가 지금의 사역을 하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을까. 어쩌면 나도 전킨처럼 43세의 나이에 죽었다면 더 순수하고 더 깨끗하고 더 맑은 영혼으로 천국에 갔을 텐데... 전킨과 나를 비교해 본다면 43세 이후부터의 삶은 덤으로 살고 있지 않는가. 그렇다면 나는 43세 이전의 맑은 영혼을 그대로갖고 있을까. 43세 이전에 그 순수함이 나에게는 얼마나 가득 배어 있을까. 덤으로 사는 인생이라면 하루하루가 더없이 소중할 텐데... 불붙는 소명감뿐만 아니라 더 깨끗한 영혼으로 주를 섬기고 목양일념에 빠져 살아야지.” 전킨이 세운 학교를 나왔기에 전킨 같은 삶을 살아야 하고, 그것도 덤으로 사는 삶이라면 더욱더 전킨의 스피릿으로 살아야 하겠다는 부담감이 마음 깊은 곳까지 파고 들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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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3-01-22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작은 거인 앞에 큰 절을 드렸습니다
    올해는 정전 70주년입니다. 연초부터 한국전 참전용사들에 대한 보은과 보훈의 정신을 함양시키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수요일 오전에는 저희 교회가 진행한 제16회 참전용사 초청행사가 주 내용으로 소개되는 ‘워싱턴에 새겨진 한국전쟁의 별’ 다큐 시사회를 하였습니다. 사실 저희 교회 참전용사 초청행사는 KBS와 SBS방송을 통해서 여러 번 방영이 되었고 재방, 삼방까지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방송사에는 유튜브에 올려주지 않고 우리도 저작권에 걸려서 유튜브에는 올리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가 저작권을 갖는 유튜브 영상을 하나 만들었습니다. 시사회에 참석한 우리 교인들뿐만 아니라 여러 기자들이 가슴이 울컥하였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후에는 중앙보훈병원에 있는 참전용사들을 위로하기 위하여 방문을 하였습니다. 보훈병원을 갔는데 너무 미안한 것입니다. 미국에 있는 보훈병원은 여러 군데를 찾아다녔지만 정작 한국에 있는 보훈병원은 처음 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가서 들은 바에 의하면, 저만 처음 간 것이 아니라 교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고 합니다. 보훈병원 관계자분들께 너무 감사했습니다. 보통 수요예배에는 코로나 여파로 인해서 20~30명밖에 안 모였지만 제가 간다고 하니까 병원 측에서 협조를 해 주셔서 보훈가족들이 많이 모인 것입니다. 그리고 사실 위문품이 대단한 것도 아닌데 병원 측에서 위문품 전달식까지 할 수 있도록 해 주셨습니다. 또한 전광판에 “소강석 목사님 방문을 환영합니다”라고 글까지 올려 주셨습니다. 참 몸 둘 바를 몰랐습니다. 막상 국가유공자나 가족들 앞에서 설교를 하려니까 너무 감사할 뿐만 아니라 송구한 마음이 그지없었습니다. 한국전 참전용사, 베트남 참전용사들이 휠체어를 타고 참석을 했는데 그 순간을 버티질 못해서 기관지에 가래가 걸려서 기침을 하고, 또 보호자가 가래를 뱉어 내는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10분, 15분 내외로 짧게 설교를 끝내려고 했는데 위문품 전달식 행사 시간 때문에 설교를 좀 길게 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저의 간증도 하면서 설교를 하였습니다. 예배가 끝나고 저는 98세 되시는 김석규 선생님께 다가갔습니다. 그분은 6.25 참전용사이신데 지금은 워낙 고령이셔서 휠체어에 의해서만 움직이실 수 있었습니다. 저는 휠체어에 앉은 어르신을 보는 순간 우리나라 한국전쟁의 모습이 오버랩 되었고 그 모든 역사가 그 어르신의 얼굴에 다 새겨져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분은 체구도 아주 작으시고 키도 작으신 분입니다. 그런데도 제 앞에는 작은 거인으로, 아니 작지만 위대한 거인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그냥 맨바닥에 엎드려서 큰 절을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누군가가 같이 맞절을 하는 것입니다. 봤더니 그분의 아드님이셨습니다. 그분의 아드님도 교회 장로님이라는 것입니다. 그 장로님께서 아버지에게 절만 해주지 마시고 아버지를 위해서 기도해달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왼손으로는 그분을 보듬고 오른손으로는 퉁퉁 부은 다리가 가라앉고 떨리는 다리는 진정되도록 기도를 했습니다. 간절히 기도를 해드리고 나오는데 갑자기 17년 전에 사건이 생각이 났습니다. 제가 2007년 1월 15일에 마틴 루터킹 국제평화상을 수상하기 위해 전야제에 참석하였는데, 한 흑인 노병이 와서 왼쪽 허리에 총상 흉터를 보여주면서 누가 초청해 주는 사람이 없어서 전쟁 후에 한국을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며 울먹이는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듣자 저도 모르게 그 분께 무릎을 꿇고 큰절을 하며 “제가 꼭 한국으로 초청하겠다”고 약속을 하였습니다. 저는 많아야 예닐곱 명 데리고 오실 줄 알았는데 50명 가까이 데리고 오신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참전용사 초청행사가 시작되었고 16년 동안 한번도 빠짐없이 해 오게 된 것입니다. 저는 본능적으로 흑인 노병에게 큰절을 했던 순간이 떠올랐습니다. 저는 매년 6월이 되면 외국에서 초청한 참전용사들과 함께 현충원을 방문합니다. 그분들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의 내가 있고 대한민국의 자유와 번영, 심지어는 자유로운 목회 활동까지 할 수가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참전용사 어르신들이 고령이 되셔서 갈수록 돌아가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정전 70주년을 맞아 한 분이라도 더 우리 교회에서 초청하고, 또 한 번이라도 더 많이 만나 보은과 보훈의 정신을 나타내고자 합니다. 보은을 행하는 것이 한 사람의 인격과 품격을 가늠한다고 한다면, 보훈의 정신이 가득하고 그 가치를 함양 하는 것은 한 국가와 국민의 품격을 가늠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교회는 지난 16년 동안 보은과 보훈의 정신을 함양해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올해는 17년째인데 이 땅에 참전용사 어르신이 한 분이라도 살아계실 때까지 그분들을 찾아뵙고 초청하여 보훈의 행사를 하려고 합니다. 이 또한 품격 있고 격조 있는 애국운동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디 이 땅에 참전용사들이 하나님께서 건강 주셔서 오래 사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보훈가족들에게도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가득하시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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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3-01-15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길었지만 뜨겁고 알찬 신년성회
    저는 지금까지 33년째 직접 신년축복성회를 인도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기간 때문에 적지 않은 고민을 했습니다. 금요일 저녁 철야기도회를 하고 토요일부터 송구영신예배를 드려야 했거든요. 그리고 나서 주일예배에 이어 신년축복성회를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기간으로 하면 화요일 저녁까지 하면 적당하다고 할 수 있겠죠. 그런데 다음날이 수요일이잖아요. 그래서 수요일까지 신년축복성회를 인도하기로 한 것입니다. 특히 송구영신예배 다음날이 주일이기 때문에 예전처럼 저와 부목사님들이 모든 성도들에게 전부 안수기도를 해 드리면 시간이 많이 지체될 거고, 그러면 저만 힘든 게 아니라 성도들도 힘들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송구영신예배를 1, 2부로 나누어서 드렸고 안수기도 대신 원격 축복기도를 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1부예배에 예배당이 꽉 차서 “2부에는 좀 적게 오겠구나”, 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웬 걸요? 2부는 성도들이 더 많이 온 것입니다. 순간 저는 감격하였습니다. “아, 이게 바로 우리 교회의 저력이구나.” 저는 주일1부예배 부터 5부예배까지 마치고, 저녁집회부터 신년축복성회를 인도하였습니다. 그런데 정말 토요일부터, 아니 그 전날인 금요일 저녁부터 수요일까지 낮과 밤으로 계속 참석한다는 게 보통 힘든 게 아니잖아요. 저는 목사이기 때문에 금요일부터 16번이나 강단에 선다고 하지만, 성도들의 입장에서 보면 보통 열정이 아니면 참으로 힘든 여정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성도들은 앞을 다투어 헌신을 하고 최선을 다해, 아니 어쩌면 힘에 지나도록 헌신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집회를 인도하면서 성도들에게 좀 미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성도들은 전혀 지치고 피곤한 기색을 보이지 않고 열심으로 참석하는 것입니다. 마치 성도들이 드라마를 보고, 공연을 보듯이 그런 눈동자로 저를 쳐다보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 신년축복성회를 33년째 해왔습니다. 또한 여름에 있는 장년여름수련회도 올해로 33년째 인도할 것입니다. 사실 신년축복성회와 장년여름수련회만 없다면 어느 정도는 목회를 할 만하겠습니다. 저는 9월, 10월이 되면 벌써부터 신년축복성회에 대한 거룩한 부담감을 가집니다. 그리고 신년축복성회가 끝나면 벌써부터 장년여름수련회에 대한 부담감을 갖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매년 다른 주제와 다른 본문으로 설교를 한다는 게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매주하는 주일설교와 금요철야기도회 설교, 수요예배 설교도 그렇지만, 신년 초와 8월 초에 8, 9편의 부흥회 스타일의 새로운 내용으로 설교를 한다는 게 얼마나 심리적으로 압박이 되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그것이 우리 교회의 두 기둥이고 두 날개입니다. 많은 분들이 “새에덴교회는 어떻게 저렇게 예배가 빨리 회복이 됩니까? 코로나 상황 속에서도 전혀 흔들리지 않습니까? 또 연합사역을 하다 보니까 온갖 가짜뉴스와 악의적 인포데믹의 공격이 있는데 교인들이 전혀 흔들리지 않습니까?”라고 물어봅니다. 당연히 그 이유는 우리 교회에 ‘신년축복성회’와 ‘장년여름수련회’라는 두 기둥이 있고 두 날개가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분기별로 하는 ‘사명자 기도회’도 한 몫을 하고요. 그것도 모자라 저는 ‘특별새벽기도회’와 ‘특별 밤 작정 기도회’를 합니다. 저는 총회장을 하고 한교총 대표회장을 할 때도 코로나 기간이기 때문에 단 한 번도 해외를 나가본 적이 없습니다. 어떤 행사 때문에 수요예배를 거의 빠져본 적이 없습니다. 그만큼 목회에 올인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번 집회는 정말 힘들 줄 알았습니다. 왜냐하면 기간이 길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저부터 뜨겁고 알찬 집회로 느껴졌고, 우리 성도들도 어느 때 보다 더 뜨겁게 은혜를 받고 헌신하는 알찬 성회였습니다. 한 번도 강조하지 않았는데도, 마지막 날 헌신하는 숫자도 가장 많을 정도로 시작부터 끝까지 뜨겁고 알찬 성회였습니다. 제가 언제까지 이렇게 할 수 있을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건강이 있는 한은 제가 은퇴할 때까지 계속 해나갈 것입니다. 저는 어떤 사상이나 이념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그리스도의 복음을 집중적으로 전할 것입니다. 그럴 때, 신년축복성회와 장년여름수련회는 여전히 우리 교회의 두 기둥이고 날개가 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강력한 결속력을 가져다주는 거룩한 본드 역할을 해 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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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3-01-08
  • [소강석 목사의 신년시] 황무지에서 라일락꽃을 피우는 새에덴의 소네트여
    코로나 팬데믹의 후유증이 여전히 드리운 중에도 동해의 붉은 태양은 장엄한 몸짓으로 솟구치고 황홀한 태양의 눈동자로 다시 시작하는 새해의 일출은 생명나무 꽃향기로 번지며 뉴 블레싱의 빛을 비추고 있거니 이제 우리 모두 2023년의 찬란한 일출과 함께 절망과 비난, 혼란과 분열의 비가(悲歌)를 그치고 다시 하늘순례자의 발걸음으로 신발끈을 동여매며 새벽 하얀 서리 내려앉은 강물 소리를 따라 가슴 벅찬 희망과 부흥의 행진을 시작해야 하리라 어두울수록 별은 빛이 나고 절벽 끝에 피어난 꽃은 잔인할 정도로 향기를 발하나니 지난해 거친 광야의 절망과 어둠의 시간을 이겨내고 맞은 우리의 새해는 더욱 더 눈부신 꿈으로 빛나야 하리니 주여, 2023년은 생명나무 신앙으로 팬데믹의 후유증을 극복하고 온전한 예배 회복을 넘어 거룩한 초연결 생명공동체를 이루게 하소서 민족의 들녘에 분열을 조장하는 파괴적 외침은 사라지고 서로가 서로를 연모하고 그리워하는 세레나데가 울려 퍼지게 하소서 한국교회가 먼저 가슴을 치며 주의 제단에 눈물을 쏟고 신 사도행전의 아리아를 부르게 하소서 아, 2023년 엔데믹의 한계를 넘어 비상하는 눈부신 아침이여 거친 황무지에서 라일락꽃을 피우는 잔인한 생명과 사랑의 소네트여 그 한 중심에서 다시 한번 한국과 세계로 생명신앙의 빛을 확장해 갈 새에덴의 무지갯빛 약속과 푸른 꿈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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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3-01-01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얼마나 비우고 낮아져야 할까요?
    “... 얼마나 비워야 하겠습니까 / 얼마나 낮아져야 하겠습니까 / 얼마나 가슴 저려야 하겠습니까 / 아무리 눈물을 흘려도 캄캄하기만 한 밤 / 언제쯤 그 별빛을 비추어 주시겠습니까 / 평강의 왕으로 오셨던 아기 예수여 / 증오와 분노가 가득한 어두운 이 세상에 / 다시 맨살의 아기 예수로 오셔야 하겠나이다... (중략) 상처와 아픔, 분노와 증오가 가시지 않는 / 조국 대한민국에 하늘의 별을 들고 오시옵소서 / 벌거벗은 사람들의 영혼을 위하여 / 따스한 화해의 등불을 켜고 오시옵소서...” 이는 제가 국회 성탄트리 점등식에서 낭송한 시의 일부분입니다. 점등식에 앞서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성탄감사예배가 있었습니다. 제가 거기서 ‘성탄절, 대화해의 절기’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하였습니다. “우리나라만큼 평화와 화해가 절실한 사회가 어디 있겠습니까? 여야가 대화하고 협치를 해야 하는데 오히려 전쟁터를 방불케 할 정도로 극한 갈등과 대치를 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여야 크리스천 의원들은 정쟁을 하다가도 예배실에서 기도하다 만나면 손을 잡고 함께 극한 대립의 문제를 놓고 기도를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몇 사람이 극적 대화와 화합, 협치의 길을 만들어낸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우리 국회조찬기도회도 그래야 합니다. 기독 의원들이 하나 되어 예수님의 화해와 화목의 정신을 펼쳤으면 좋겠습니다.” 김진표 국회의장님도 이런 축사를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오신 성탄절을 맞아 우리 국회가 대립과 갈등을 넘어 대화와 타협의 국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채익 의원(국회조찬기도회 회장 국민의힘)과 김회재 의원(국회조찬기도회 부회장, 민주당)를 비롯하여 수십 명의 국회의원들이 함께 모여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어 국회 분수 대광장에서 진행된 성탄트리 점등식에서는 혹한의 추위 속에서도 여야의 국회의원님들과 성도들이 함께 모여 아기 예수의 성탄을 축하하며 사랑과 평화의 불빛이 온 세상에 전해지기를 기원하는 불을 밝혔습니다. 성탄절은 사랑과 평화의 구주, 예수님이 오신 날입니다. 성탄이야말로 온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영원한 러브 스토리요, 러브 레터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우리만의 화해를 이루신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화해 사건이 되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그러니까 아기 예수님야말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구원의 선물일 뿐 아니라, 대화해의 선물입니다. 그런데 너무 안타까운 것은 우리 사회가 여전히 초갈등사회를 이루고 있으며 미움과 증오의 매서운 칼바람이 부는 겨울왕국이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온갖 거짓과 증오의 말들이 난무한 세상입니다. 터무니없는 유언비어와 인포데믹을 남발하며 미움과 증오를 부추기고 갈등과 분열을 일으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아니, 입에 담기에도 부끄러운 거짓과 증오의 욕설을 쏟아내며 갈등과 분노를 부추깁니다. 여기에 피해자 중의 한 사람이 바로 접니다. 그렇지만 저는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제 자신이 피해자가 되는 것은 얼마든지 견딜 수 있지만 한국교회에 불이익을 주고 공적 피해가 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참 가슴이 아프다”고 말입니다. 우리 교회신문 신년인터뷰를 할 때 김재일 장로님이 이런 질문을 하시는 것입니다. “목사님께서는 시인으로서 감성이 여리고 상처 받기가 쉬우실 텐데 어떻게 이런 것을 극복하십니까?” “당연히 그런 것만 생각하면 여린 마음에 상처를 받을 수 있지만,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주님을 바라보고 저의 마음을 주님께 연결하려고 합니다. 주님과 연결된 아픔, 주안에서 느끼는 아픔이라고 생각하며 스스로 위무를 하고 위안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그럴수록 제 자신을 얼마나 비워야 하고 낮아져야 하는가를 생각해 봅니다. 그러니까 마음이 꺾이지 않고 오히여 긍정에너지로 승화시키지요.” 사실, 아기 예수님께서 다시 이 땅에 오셔서 이런 모습을 보신다면 얼마나 가슴 아파하시겠습니까?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도 헤롯왕이 자신의 사욕과 탐욕에 눈이 멀어 무고한 아기들을 희생시켰지요. 2000여 년이 지난 지금의 거리에도 여전히 차가운 겨울바람이 불고 우리의 영혼을 얼어붙게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더 낮아지고 비워야 할까요. 얼마나 더 가슴 저려야 할까요. 교회의 본질은 가장 낮은 자리에서 사랑하고 섬기며 상처받은 영혼을 치유하고 회복하며 정상화를 이루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마저도 이념으로 나누어지고 분열의 카르텔을 쌓으며 동질집단의 권력화를 이루고 다툼과 분열을 일으켜야 하겠습니까? 이러한 트러스트화를 보이는 것은 낮아지지 못하고 비우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성탄절을 맞아 우리가 예수님의 비하의 탄생과 삶을 묵상하며 더 낮고 비우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교회가 앞장서서 초갈등사회를 화목사회로 변화시켜야 하겠습니다. 사랑의 진실이 전해지고, 진실한 사랑으로 가득한 복된 성탄절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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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2-12-25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날아가는 새는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 다시는 묻지 말자. 내 마음을 지나 손짓하며 사라진 그것들을, 저 세월들을,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을,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는 법이 없다. 고개를 꺾고 뒤돌아보는 새는 이미 죽은 새다.” 이는 류시화 시인의 산문집에 나오는 글입니다. 류시화 시인 역시 시를 쓰는 것도 힘들 뿐만 아니라 더 자신을 힘들게 하는 것은 자신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는 세월에 대해서 말하고 싶지 않고 가슴에 피를 묻히고 날아간 새(세월)에 대해 꿈꾸어서는 안 될 것들을 꿈꾸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죽을 때까지 시간을 견뎌야 하는 것이 가장 두려운 일이었다고 하죠. 요즘 많은 사람들이 과거에 매여 살고 미래를 두려워한다고 합니다. 특별히 송년을 보내며 새해를 맞을 것을 부담스럽게 여긴다고 합니다. 원래는 새해를 맞는 것을 가슴 설레고 두근거려야 하는데 말이죠. 그 이유는 과거에 메어 살기 때문입니다. 과거에 매여 있으면 절대로 내일이 보이지 않고 미래가 보이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은 자신의 가슴에 피를 묻히고 날아간 새(세월)때문에 괴로워하는 거지요. 죽을 때까지 시간을 견뎌야 하는 것이 두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마음을 가지면 내일을 맞는 것이 두렵습니다. 특별히 새해를 맞는 게 아주 부담스럽습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오로지 과거만 보이고 미래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의 글은 새로운 반전이 시도되고 있습니다. 다시는 지나간 세월을 묻지 말고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을 되새기지 말자는 것입니다. 날아가는 새가 뒤를 돌아보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 모든 것들은 상처 때문에 그렇습니다. 아픈 상처는 반드시 상흔을 남기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상처가 있는 사람은 상흔의 후유증을 앓게 되고 그 세계에 머물려고 합니다. 그러니까 내일이 두렵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바로 뒤를 돌아보다 목이 꺾인 새와 같은 것입니다. 우리가 상처가 크면 클수록 상흔은 더 크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상흔은 생각에 따라서 다를 수 있습니다. 그 상흔 때문에 더 멀리, 더 높게 날아간다면 그 상흔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제 얼굴에도 저만 아는 상흔이 하나 있습니다. 청년 시절 오토바이를 타고 야성의 질주를 하다가 사고가 나서 왼쪽 광대뼈 위에 얼굴을 다쳤습니다. 저를 보는 사람마다 “어떻게 이렇게 피부가 좋으시냐?”고 하지만, 제 얼굴을 자세히 보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가까이에서 얼굴을 보면 아직도 그때의 상흔이 있습니다. 그 상흔이 저를 저 되게 하고 겸손하게 해 줍니다. 대형교회 목사로서 제가 선택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많은 것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다보면 저도 모르게 나라는 성 안에 갇혀서 안일과 나태와 자만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제 자신이 그렇게 할 수 없었던 것은 제 왼쪽 광대뼈 위에 있는 상흔 때문입니다. 그걸 볼 때마다 과거의 상처와 아픔이 기억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상흔 때문에 계속 날아가는 것입니다. 앞장서서 일하다 보니까 얼마나 많은 마음의 상처를 입고 상흔이 있겠습니까? 그때마다 저는 그 상흔을 보며 뒤를 돌아보지 않고 계속 날아갔습니다. 장자는 잘생긴 나무가 먼저 죽는다고 했습니다. 잘생긴 나무는 주로 상처 없이 자라는 나무고, 못 생긴 나무는 험한 세파에 구부러지고 휘어지고 온갖 상흔을 지닌 나무입니다. 그런데 잘 생긴 나무는 먼저 다 베임을 당하고 결국은 못생긴 나무들이 산을 지킵니다. 지난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 아니 지난 한 해 동안 많은 아픔과 상처를 당한 사람일수록 요긴하게 쓰이고 미래의 영산(靈山)을 지킬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난날의 아픔이 아무리 크고 상흔이 많다 할지라도 무조건 날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안 날아가더라도 세월이라는 바람에 떠밀려 억지로라도 날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떠밀려 가는 게 아니라 능동적으로 날개를 펴며 미래를 향해 날아가야 합니다. 주저하면 안 됩니다. 뒤를 보면 목이 꺾입니다. 다만 바라볼 것이 있다면 말씀의 거울을 통하여 우리의 상흔을 바라보며 나의 부족함을 깨닫고 하나님의 은혜를 되새겨 보아야 합니다. 이런 사람은 새해에 주실 하나님의 은혜를 더 기대하게 되는 것입니다. 미래에 나에게 주실 하나님의 눈부신 축복을 기대하게 되어 있습니다. 비록 내 삶에 어떤 고난과 역경이 오더라도, 폭풍과 맞서 싸우는 저 독수리처럼 우리는 날고 또 날아야 합니다. 결코 뒤를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계속 날갯짓을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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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2-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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