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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투지와 절제가 조화를 이루는 지혜”
    원래는 지난주에 제주도에 가서 쉬려는 계획을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월요일에 총회 선관위 워크숍이 있고 저녁에는 오산리기도원에서 집회를 인도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다음날 오전에 비행기로 제주도로 가서 목요일 저녁에 크루즈로 인천으로 오려고 했습니다. 사실은 오산리 집회만 아니었으면 월요일에 크루즈로 갔다가 목요일에 크루즈로 오는 것이 계획이었는데요, 월요일에 종일토록 총회 선관위 워크숍을 인도하고 저녁에 오산리 집회를 인도한 후, 돌아오는 길에 이어령 전 장관님의 조문소를 방문하였습니다. 그날 무리를 해서 그런지 이상하게 몸이 으슬으슬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집에 오니까 식은땀도 나고 몸살 기운이 느껴졌습니다. 이거 혹시 오미크론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어 자가진단키트를 해 보았더니 음성으로 나온 것입니다. 다음날, 선 목사님에게 “산이나 갈까?”라고 물었더니 가자는 것입니다. “몸살 기운이 있으시면 쉬시죠” 했으면 쉬었을 텐데 가게 되었습니다. 그날은 시간이 좀 여유가 있어서 교회 뒷산인 한성산이 아니라 불곡산으로 간 것입니다. 산을 오르는데 땀이 비 오듯 쏟아졌습니다. 그래도 끝까지 땀을 닦으면서 올라갔습니다. 육신적으로는 쉬는 게 훨씬 더 좋았던 것 같은데, 그래도 산이 좋아서 올라갔습니다. 몸살 기운이 오는데도 산에 올라가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였기 때문이고 등반가 엄홍길 씨의 말마따나 산이 허락했기 때문에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 몸이 좀 부대끼고 힘들었지만, 그래도 땀을 비 오듯 쏟으며 올라갔습니다. 그것은 바로 저와의 싸움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불곡산 중턱까지만 갔다 오고 싶은 마음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거기서 머무르면 저와의 싸움에서 스스로 포기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숨이 차고 땀이 비 오듯 쏟아졌지만 가고자하는 목적지까지 갈 수 있었습니다. 목적을 달성했다는 보람과 무언가를 해냈다고 하는 성취감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음날은 수요일인데 오전에 온몸이 땅 속으로 들어가는 듯했습니다. 정신력으로 이기고 수요오전예배를 인도했습니다. 그리고나서 드디어 꿈나라로 가 버렸습니다. 일어나니까 저녁 9시 반이었습니다. 제 평생에 이런 적은 없었습니다. 그만큼 저는 무리하게 살고 고단한 삶을 연속해 왔다는 증거죠. 제가 워낙 곤히 자고 있으니까 비서실에서 저를 깨우지도 않고 오전에 했던 설교를 영상으로 방영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비서실 직원들에게 “이 사람들아 왜 나를 깨우지 안 깨웠느냐”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너무 곤하게 주무셔서 차마 깨울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수면제도 안 먹었는데 이렇게 깊은 잠을 잔 것입니다. 아마 화요일에 등산을 했기 때문에 수요일 오후에 깊은 잠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날 수요저녁예배에 나가지 못한 것을 생각하니 너무 아쉬웠습니다. 그래서 비서실 직원들에게 “이놈, 저놈”하면서 “왜 나를 깨우지 않았냐”고 했습니다. 그렇게 나무랐던 모습도 일종의 저의 투지였을 것입니다. 투지가 없었으면 산에도 안 올라갔을 것이고 엄살이나 부리며 아무런 의미 없이 그냥 누워 있었겠지요. 그러나 저는 몸살 중에도 산행을 하였고 계획된 일정을 소화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월요일에 하루종일 선관위 워크숍을 하고 오산리에서 너무 진을 뺐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오산리기도원에 가서 그렇게 진을 빼며 말씀을 전함으로 말미암아 거기 모인 목사님들이 엄청나게 은혜를 받고 말씀에 꼬꾸라지는 것을 경험하였습니다. 그래도 다시 한 번 깨달은 것은, 투지도 중요하지만 절제도 중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왜냐면 제가 그날 임계점을 넘을 정도로 체력을 소진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절대로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또 하나 깨달은 것은, 투지와 절제가 조화를 이루는 지혜도 중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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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2-03-06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아쉬움의 밤에 다시 새벽을 기다린다”
    지난 목요일 11시에 인천 숭의감리교회에서 전국17개광역시도기독교연합회 주최로 ‘제103주년 3·1운동 전국교회 연합기도회’가 열렸습니다. 실무적인 준비는 전부 박요셉 목사님이 하시고 저는 기념사를 준비하면 되었습니다. 기념사 내용이야 탄탄하게 준비를 했죠. 그리고 기념사에 필요한 영상도 방송실에 준비를 하도록 이야기했습니다. 그날 아침에 다시 방송실에 확인을 해보니까 그쪽 교회에다가 단단히 부탁해놨다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직접 직원이 한 명 오지 그랬느냐, 다시 한번 확인을 하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차 안에서 이런저런 일로 전화하기 바빴습니다. 보통의 경우는 차에서 원고를 다시 한 번 체크를 하거든요. 그런데 그날 기념사 내용은 제가 KBS 3.1절 다큐를 제작하면서 여러 번 인터뷰를 한 내용이기 때문에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일로 바빠서 원고를 볼 여유도 없었습니다. 행사장에 정시에 도착을 했는데 화장실에 들렀다가 올라갔습니다. 화장실만 안 들렀어도 좋았는데 제가 본당에 들어가자마자 제 순서 시간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장의자와 장의자 사이의 통로를 눈썹이 날리도록 달려갔습니다. 숨도 못 쉬고 강단으로 올라갔는데 숨이 차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고 너무 급하게 올라가니까 원고 글씨가 흐릿하게 보였습니다. 진짜 이런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처음 대목에서 버벅거릴 수밖에요. 게다가 영상이 나와야 할 대목에서 영상을 보니까 자료 영상이 나와야 할 부분에서 영상이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또 거기에서 멈칫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너무 빨리 읽어나가서 그러는가 해서 영상을 기다려도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정말 그 영상은 귀한 영상이었거든요. 장롱 속의 고서가 될 뻔한 3.1운동의 역사를 전 세계에 알린 스코필드 선교사의 사진과 편지들, 미국 장로교 선교역사박물관을 방문하였을 때 수북이 쌓여 있었던 선교사들의 기록과 편지들, 3.1운동 당시 영명학교의 교장이셨던 린튼 선교사의 편지를 보고 제가 감격해 하는 영상 등 정말 희귀하고 가치 있는 영상들을 준비했는데 보여주지 못한 것입니다. 그 영상들이 나갔으면 기념사의 격이 더 올라가고 가치 있게 되었을 텐데 말입니다. 우리 방송실이 너무 방심을 한 것입니다. 진짜 제 사역에 이런 경우는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기념사가 끝나고 나니까 박수가 우렁차게 나왔지만, 저는 너무 화도 나고 아쉬운 것입니다. 제가 방송실로 전화를 해서 “그쪽 방송실만 믿지 말고 나를 수행한 강인철 수행비서도 있고 미리 먼저 가 있는 윤동현 목사도 있고 우리 교역자들이 몇 명이나 가 있었는데 한 번만 크로스 체크를 했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것이 아니냐”고 야단을 쳤습니다. 그랬더니 무조건 송구하고 죄송하다는 것입니다. 그 날의 아쉬운 마음이 왜 그렇게 가라앉지를 않는지 하루 종일 아쉬웠습니다. 행사가 끝날 무렵에 ‘제1회 독립운동 선양상’을 수상하였는데도 왜 그렇게 어색하기만 한지요. 오후에도 마치 머릿속에 머피의 법칙이 연상이 될 정도로 하루 종일 삐꺽거리듯이 보냈습니다. 글을 쓰는 저녁에도 아쉬운 마음이 떠나지 않습니다. 그러자 문득, 제가 작사 작곡한 ‘내 마음 강물 되어’라는 노래가 떠올랐습니다. “내 마음 강물 되어 흐르고 있습니다 / 멈추라 하여도 흘러야만 합니다 (중략) 미움도 원망도 슬픔도 고통도 고일 길이 없어서 / 흐르고 흘러가고 있습니다 / 멈추고 붙잡는 것이 속절없는 것을 / 흘러야 행복인 줄 알기에 끊임없이 흘러갑니다” 그런데 이 노래를 떠올려도, 아쉬운 마음이 흘러가지 않고 계속 머무르는 것입니다. 사실은 저에게 더 큰 책임이 있었는데요. 행사 끝나고 전화해도 될 일을 뭐가 그렇게 조급해서 행사장에 가기 전에 계속 전화만 하고 갔거든요. 영상이 준비 안 됐더라도 제가 원고를 더 보며 마음을 가다듬었으면 그러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아쉬움의 동기는 제 자신에게 있었습니다. 그래서 글을 쓰는 이 밤은 정말 아쉬움의 밤입니다. 그런데 다시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이처럼 뼈저리게 아쉬움의 깊은 밤을 경험해야 내일의 신선한 새벽의 여명을 맞이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만약에 제가 아쉬움을 느껴야 하는데도 아쉬움을 느끼지도 않고 하루를 보내왔다면 저는 더 이상 내일의 찬란하고 눈부신 새벽을 맞이할 수 없지 않겠습니까? 오늘의 아쉬움을 깊은 밤까지 보듬고 있어야 다시 여명의 눈동자로 눈부신 새 아침을 맞이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아쉬움의 밤에 다시 새벽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미련의 황무지를 걷다가 이제 아쉬움의 강을 건너려고 신발끈을 동여매고 다시 시린 가슴으로 새벽길을 떠나는 순례자가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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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2-02-27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어색한 자리였지만 의미도 있었습니다”
    몇 달 전 개신대학원대학교 조성헌 총장님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목사님, 개신대학원대학교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드리고 싶으니 부디 좀 받아 주십시오.” 저는 전화상으로 확실하게 거절을 하였습니다. 물론 제가 개신대학원대학교를 졸업한 건 사실이죠. 그러나 저는 이미 개혁교단을 떠났고 합동교단에서 총회장까지 지낸 사람이 개혁교단 신학교인 개신대학원대학교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는 게 어울리지가 않고 부담스럽다고 말씀 드리며 거절을 하였습니다. 그래도 조성헌 총장님은 “좀 생각이라도 해 주십시오. 오히려 명예박사학위를 받아주시는 것이 모교를 빛내는 것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라면서 요청을 하는 것입니다. 그 뒤로도 두어 번 연락이 왔습니다. 그래서 생각은 해본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생각해 보니 두 가지 측면이 있습니다. 먼저는 그 학위가 영광스럽고 명예스러운 학위이기 전에 정말 부담되고 어색한 학위일 수 있습니다. 제가 그 교단에 있으면 당연히 받아야지요. 그런데 2005년 개혁교단과 합동교단이 하나 될 때 저는 이미 합동측으로 왔고 합동교단의 총회장까지 지낸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그 학교에서 학위를 받는다는 건 참 어색한 면이 많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제가 그 교단에 없더라도 그 학교는 제 모교입니다. 그러니까 저로서는 소중한 학교가 아닐 수 없습니다. 국적은 바꾸어도 학적은 바꿀 수 없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저는 모교를 잊을 수 없어서, 20년 가까이 단 한 번도 모교를 지원하는 일을 중단한 적이 없습니다. 매월 후원금을 보냈고 또 모교가 필요하다고 할 때는 수 천 만원씩 보내기도 하였습니다. 또 설립자이신 조경대 목사님께서 저희 교회를 방문하실 때마다 단 한 번도 빈손으로 보내드린 적이 없습니다. 이것은 제 마음속에 모교를 향한 추억의 토포필리아가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더구나 개신대학원대학교는 저의 모교인 동시에 제가 걸어온 인생의 한 부분이요, 소중한 과정입니다. 이걸 계속 거절한다는 건 제가 모교를 스스로 부인하는 것이고 제 걸어온 삶의 중요한 부분을 스스로 부인하는 것이 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제 안에는 두 생각이 충돌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계속해서 연락이 오는 것입니다. 결국은 제가 주변 여러 사람들에게 의논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그냥 받는 것이 훨씬 더 좋겠다고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제가 정말 존경하는 백석교단의 장종현 총회장님과 의논을 했습니다. 그분 역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소 목사님의 모교가 아닙니까? 그러니 모교에서 주는 것을 거절하지 말고 받는 것이 소 목사의 겸손이고 겸양지덕한 모습이지요.”장종현 총회장님의 말씀을 듣고 조성헌 총장님께 받겠다고 통보를 하였습니다. 조 총장님은 개신대학원대학교 후배일 뿐만 아니라 제가 신학교에서 도시목회와 설교학 강의를 할 때 수업을 들은 제자이기도 합니다. 물론 제가 교단을 옮긴 후 강의를 그만뒀지만요. 수여식 날짜가 되어서 제 시간 안에 가야 되는데 그날도 연합기관 통합문제로 중요한 분과 점심 약속이 있어 식장에도 지각을 하는 실례를 범하였습니다. 마침내 저는 명예박사학위를 수여 받았습니다. 조성헌 총장님이 졸업생들에게 훈사를 할 때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저는 개신대학원대학교를 다니며 소 목사님의 도시목회 강의를 들었을 때 얼마나 재미있고 깊이 들었는지 지금까지도 빼곡빼곡 정리한 강의안을 보관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교단에서 소 목사님을 잃은 것은 참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오늘날 한국교회를 대표적으로 섬기는 소 목사님을 우리 개신대학원대학교가 배출했다고 하는 것은 참으로 큰 영광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학교로서도 소 목사님께 명예박사학위를 수여할 수 있어서 감사드리고 이 명예박사학위를 받아주신 소 목사님께도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마음이 아슬아슬하기만 합니다. 그 자리에 앉아 있었던 한 시간 남짓의 시간이 너무 가시방석 같았고 어색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렇지만 돌이켜 보면 정말 의미 있고 영예스러운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다시 생각해 보니 제 마음이 36-7년전의 신학생 시절로 되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개신대학원대학교의 전신인 개혁신학연구원을 고학으로 다니며 깊고 푸른 꿈과 청운의 이상을 가졌고, 저는 계속해서 미국 낙스 신학교와의 공동운영과정을 통하여 목회학 박사학위까지 받았습니다. 이런 일련의 삶의 여정과 걸어온 길이 생각이 났습니다. 지금 생각해 봐도 어색하고 가시방석 같은 자리였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저의 걸어온 길이 너무나 소중하였다는 걸 새삼스럽게 깨닫는 의미 있는 자리였고 영예스러운 자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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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2-02-20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겨울은 한 번도 쉽사리 간 적이 없지만···”
    지난 화요일에는 인천에서 전국 17개광역시도기독교연합회 회장과 사무총장 모임이 있었습니다. 어쩌면 제가 이 모임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저는 경기도기독교총연합회 회장을 하면서 어떤 특별한 의도를 갖지 않고 그냥 정기적인 모임을 주도하였습니다. 그래서 당시는 회장도 없었고 그냥 지역별로 돌아가면서 초청을 하는 모임을 갖도록 했습니다. 다만 제가 그 모임의 운영경비를 대부분 후원하고 섬길 뿐이었습니다. 여기에 실무적인 역할을 박요셉 목사님이 했고요. 그런데 그때 갑자기 종교소득과세 문제가 대두되며 한국교회가 들썩들썩 할 때 17개광역시도기독교연합회가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 때 교계 연합기관은 서로 세 다툼을 하느라 신경 쓸 여유도 없었고 17개광역시도연합회 대표회장과 사무총장들이 당시 여당의원들에게 항의를 하고 설득을 해서 ‘종교인소득과세’로 바꾸게 된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막고 너무 래디칼하게 가려고 하는 지방인권조례를 균형 있게 연착륙하도록 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인천기독교총연합회 윤보환 대표회장님의 초청으로 인천에서 모였는데, 제가 상임의장 자격으로 가서 설교를 했습니다. 저는 설교를 하고 다음 일정 때문에 조금 일찍 이석을 해야 했는데 어느 지역의 대표회장님께서 잠깐만 저를 좀 만나자고 하며 할 얘기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분께서 저에게 어려운 부탁을 하려고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저에게 가까이 오셔서 이런 얘기를 하시는 것입니다. “소 목사님, 교계의 절대 다수의 목사님들이 소 목사님을 응원하고 있습니다. 앞에서 일하다 보면 이런 말도 듣고 저런 말도 들을 수 있습니다. 또 생각이 다른 극소수의 사람들로부터 비난도 받고 공격도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목사님은 절대 상처받으면 안 됩니다. 그런 소리에 절대로 마음 쓰지도 말고 일체의 반응도 하지 마십시오. 그냥 목사님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십시오. 그리고 마음의 건강도 중요하고 육체의 건강도 중요합니다. 목사님이 건강해야 계속해서 한국교회를 섬길 수 있습니다. 영육간의 건강을 위하여 마음 관리, 몸 관리를 잘 하셔야 합니다.” 생각해 보니 그분의 말씀이 너무 고맙게 느껴지고 큰 위로와 힘이 되었습니다. 돌아오면서 생각해 보니, 저도 지난 날 힘든 겨울 광야 길을 걸어온 것 같았습니다. 아니, 아직도 제가 걸어가야 할 겨울 광야길이 남아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자 이런 문구가 떠올랐습니다. “겨울은 한 번도 쉽사리 간 적이 없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정말 그랬습니다. 어느 해도 봄이 한 번도 쉽게 온 적은 없었습니다. 봄이 오는 듯하더니 또다시 추워지고 봄이 다 온 듯하더니 또 꽃샘추위가 오고요. 오죽하면 봄이 온 줄 알고 속아 미리 피어난 매화나 목련 꽃잎들이 추위에 언 채 눈물되어 떨어지기도 했지 않습니까? 저의 삶과 사역의 겨울도 아직은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연합기관을 하나 되게 하는 사역을 쉬지 않고, 한국의 공교회를 위한 공적사역을 멈추지 않는 한 제가 걸어가야 할 겨울 광야 길은 끝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겨울이 한 번도 쉽게 간 적이 없지만, 그 어떤 겨울도 가지 않는 적은 없었습니다. 아니, 아무리 매서운 겨울도 새 봄을 이기지는 못하죠. 그래서 저희 교회가 섬기는 전철 이미지 광고에도 이런 글자를 새겨놨습니다. “그 어떠한 겨울도 새 봄을 이길 수 없지요.” 그렇습니다. 겨울이 한 번도 쉽게 간 적은 없지만 한 번도 안 간 적이 없습니다. 아무리 추운 겨울도 새봄을 한 번도 이겨본 적이 없습니다. 지난 화요일 낮은 봄 날씨와 같았습니다. 그런데 저녁 산행을 할 때는 또 영하의 날씨가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만일의 경우를 생각해서 두꺼운 잠바를 가져가지 않았더라면 글을 쓰는 지금 감기와 싸우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 문구를 생각하며 산행을 하였기 때문에 두꺼운 잠바를 준비해 갔던 것입니다. 올해도 정말 봄 날씨인 듯하다가도 또 갑자기 영하의 날씨가 오곤 합니다. 어느 때까지 그런 날이 반복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분명한 사실은 아무리 추운 겨울도 새 봄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이 우리의 경험이고 확신입니다. 올해도 꽃샘 추위가 얼마나 기승을 부릴지 몰라도 새봄은 반드시 오고야 말 것입니다. 그런 것처럼 우리 앞에 있는 겨울 광야도 언젠가는 반드시 사라질 것이고 들녘에서 피어나는 푸른 잎새들의 잔인한 생명의 찬가와 합창소리가 대지에 메아리치는 날을 맞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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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2-02-13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문화의 파도를 타야 할 때도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고정관념, 자기 생각의 성에 갇혀 있을 때가 많습니다. 물론 사람이기 때문에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 성에만 갇혀 있으면 나만 옳고, 다른 사람은 다 잘못된 것처럼 보입니다. 또한 모든 것을 선악의 개념으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극단적으로 성과 속을 구별하고 분리시키며 남을 비난하고 공격하게 됩니다. 문화도 마찬가지입니다. 문화를 무조건 속된 것으로 여기며 대적하려고만 하면 안 됩니다. 물론 사탄의 문화, 반기독교적 문화는 대적을 해야죠. 그러나 일반 사람들도 수용하고 좋아하는 대세적인 문화예술은 우리가 부딪치고 싸우려고만 하지 말고 때로는 문화의 파도타기를 하며 선용할 필요도 있습니다. 아니, 어떤 면에서는 일반인들의 자발적 참여나 공유의 플랫폼을 만들기 위해서는 문화의 파도타기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어령 교수 역시 최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예술가들이 경계와 장르를 허물어야 하고 AI, 메타버스 같은 기술과 경쟁하지 말고 올라타야 된다”고 했습니다. 또한 다사카 히로시가 쓴 책 ‘슈퍼제너럴리스트’에 보면, 등산의 전략사고와 파도타기의 전략사고가 나옵니다. 과거는 등산의 전략사고 시대였습니다. 지도를 펼쳐놓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한 번 정한 루트를 통해 정상을 향해 무조건 돌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시시각각으로 급변하는 시대이기에 파도타기의 전략사고가 필요합니다. 가는 길이 옳은 길인지, 잘못된 길인지 시대 변화와 흐름에 따라 루트를 새롭게 설정하는 전략적 반사신경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내가 가는 길이 너무 무리한 루트는 아닌지, 돌아오지 못할 콰이어강을 건너는 것은 아닌지 순간순간 파도를 타면서 돌아봐야 한다는 것이죠. 왜 숭고한 신앙의 가치와 정신을 가진 청교도인들이 역사의 유적으로 자취를 감추고 말았습니까? 그들이 세상과 구별되어 경건한 삶을 산 건 분명합니다. 그러나 극단적 분리주의에 빠져 문화의 파도타기를 못했던 것입니다. 자기들만의 성안에 갇혀서 계속 분리주의의 삶을 살다 보니까 진정한 생명력을 상실해 버린 것입니다. 오히려 세상의 문화를 선용하여 거룩한 문화의 파도를 일으켰으면 좋은데 벽만을 쌓고 차단하다가 잔물결이 되고 거품이 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것입니다. 자신들만의 형식, 전통, 관습의 카테고리 안에 갇혀버린 것이죠. 그러니까 사회 문화의 변화하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 것입니다. 지금 한국교회나 목회자, 교계 지도자들에게도 문화적 폐쇄성이 있으면 정말 곤란합니다. 자기만의 성 안에 갇혀서 성과 속만을 분리한 채 독선적 고정관념에 머물러서 정죄만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저 사람은 안 돼, 저 사람은 나빠, 저 사람은 정말 타협주의자야.” 그러나 우리는 사회와 소통하고 공감하기 위해서라도 문화와 맞서 싸울 것이 아니라 문화의 파도타기를 해야 합니다. 때로는 문화를 적극 수용하고 역이용 할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문화의 파도타기 안에는 반드시 복음의 생명력이 있어야 합니다. 복음의 강력한 파워가 있어야 합니다. 이럴 때 오히려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고 많은 사람과 소통할 뿐만 아니라 공감을 일으키고 감동을 주며 거룩한 파문을 일으키게 되는 것입니다. 형식적으로는 문화의 파도타기가 될지 모르지만 그 안에 강력한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력이 있고 복음의 파워가 역사할 때, 거룩한 파동과 역전과 반전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문화라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존 스토트가 말한 대로 분명히 이 세상에는 두 세계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세상이라고 하는 공간에서 같이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결코 문화를 배격할 수가 없단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시대의 문화를 선용할 뿐만 아니라 파도타기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럴 때 복음의 능력과 생명력이 우리만의 울타리 안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큰 파도가 되어 확장되고 증폭 되게 될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문화 파도타기의 목적이 하나님 나라의 확장과 복음전파에 있어야 합니다. 그 진정성만 가지고 있으면 우리는 얼마든지 문화의 파도타기를 하며 복음의 생명력과 능력을 세상에 확장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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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2-02-06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아쉬움은 그리움을 불러 올 때가 있어요.”
    저는 지난 화요일 남서울 밀알학교에서 열린 창조문예 300호 출간과 시상식에서 설교를 하였습니다. 거기에는 문학으로 말하면 대선배, 큰 어른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그래서 설교를 좀 빵빵하게 준비해 갔습니다. 새로운 관점 뿐 아니라, 고급스러운 언어와 현란한 단어들을 쓰려고 노력 했습니다. 설교 제목은 ‘사과나무 아래서 쓴 연서’였습니다. 유대전통에 의하면, 술람미는 솔로몬의 사랑을 거절하고 도망갔습니다. 그러다가 지쳐 사과나무 아래에서 쉬고 있을 때 솔로몬이 다가와 땀을 닦아주며 마음을 전하자 술람미가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술람미가 솔로몬왕의 부인이 된 이후부터는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사과나무 아래에서 연서를 쓰는 입장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술람미 여인처럼 사과나무 아래에서 연서를 쓰는 마음으로 시를 쓰고 글을 써야 한다고 했습니다. 첫째 주님을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연서, 둘째 본향을 향한 근원적 사랑과 향수의 글, 셋째 영혼을 향한 사랑과 그리움의 글, 넷째 그러나 때로는 시대와 역사를 깨우는 희망과 선지자적이고 선포적인 글을 써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제가 느끼기에도 그렇고, 문학계 대선배들이 “역시 시인 목사이고 전문가 뺨치는 문학적 소양과 자질도 갖추었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특별히 발행인이신 임만호 장로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임 장로님은 80세가 넘으신 분이신데, 그분이 인사 말씀을 하시면서 느닷없이 자기 고향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 자기는 어린 시절 초등학교를 오가는 길에서 손양원 목사님 노래를 많이 불렀다는 것입니다. “낮에나 밤에나 눈물 머금고 내 주님 오시기만 고대합니다...(생략) 먼 하늘 이상한 구름만 떠도 행여나 내 주님 오시는가 해 머리 들고 멀리멀리 바라보는 맘 오 주여 언제나 오시렵니까...” 그때 자기는 “어쩌면 이렇게 손양원 목사님은 문학적 소양이 깊으실까”라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사실 지금 불러 봐도 가사가 참 신앙심뿐만 아니라 문학적 소질을 가지고 썼다고 느껴집니다. 요즘 음악의 패턴이 좀 달라지긴 했지만, 저희 세대만 해도 그 노래를 많이 불렀거든요. 그런데 임 장로님은 손양원 목사님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면서 “나도 이런 문학인이 되고 싶다. 나도 이렇게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라는 꿈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글을 쓰고 또 쓰고 습작을 하고 또 하면서 시인이 되고 문학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얘기를 듣고 나니까 저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았습니다. “나도 좀 고급스러운 언어의 설교보다 저렇게 소박한 이야기를 할 걸” 그런 아쉬움이 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저도 교회를 나갈 때 신앙심을 가지고 나간 게 아니거든요. 그냥 우연히 후배 따라 한 번 나간 것입니다. 그것도 제가 다니던 군산제일고등학교를 비하한다는 여학생들을 혼내주러 갔다가 그만 교회에 깊숙이 들어가 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 저를 교회에 깊숙이 들어가게 했던 매혹적인 이벤트가 있었는데, 그게 ‘문학의 밤’이었습니다. 저는 그 문학의 밤을 준비하고 또 문학지를 만드는 과정에서 문학적 소양을 발휘해 시를 써서 발표했거든요. 그러다가 교회에서 주목을 받고 인기 만점 소년이 됐습니다. 그후로 주님을 향한 연서도 쓰고 또 주님 앞에 받은 은혜를 간증하기도 하는 과정에서 하나님께 소명을 받고 오늘의 목사가 된 것이죠. 그리고 성경을 보니까 시편뿐만 아니라 선지서까지도 시적 은유와 운율을 갖추고 있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어릴 때의 소질을 살려 시인이 되고, 그냥 시인이 아니라 11권의 시집을 낸 중견 시인이 된 것입니다. 이런 간증을 하면서 문학적인 얘기를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하는 굉장히 아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강단에 올라가서 설교를 다시하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였습니다. 저는 행사를 끝까지 다 참석하지 못하고 도중에 교회로 오면서 내내 아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쉬움은 그리움을 불러오는 것입니다. 어느덧 제 마음은 고교 학창 시절로 다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기숙사 2층, 3층에서 뛰어내려 사감 몰래 교회를 가던 일, 까까머리 청순한 소년이 여학생들과 남학생들에게 잘 보이려고 시를 써서 발표하던 일, 그리고 마침내 주님께 소명을 받고 집에서 쫓겨나 신학교 가던 일... 정말 다시 생각해 봐도 저의 젊음은 소중하고 아름다웠습니다. 그 후로 수십 년이 흘렀습니다. 그런데 그 까까머리 소년의 청순함과 순수함은 지금도 내 마음속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 순수함과 청순함의 진정성으로 지금도 저는 순수시대를 꿈꾸며 시를 쓰는 목사가 되었으니 말입니다. 그날 설교에 아쉬움은 좀 있었지만 그 아쉬움 때문에 옛날의 그리움을 불러오기도 했습니다. 글을 쓰는 지금도 그 일을 생각하면 아쉬움과 그리움이 제 마음속에 여전히 공존하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들도 그런 걸 느낄 때가 있을 겁니다. 아쉬움이 있긴 하지만 그 아쉬움이 그리움을 불러온다는 걸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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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2-01-23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VISION 2022년, 한국교회가 희망입니다”
    [2021년 12월 31일 중앙일보 송년특집]으로 게재되었던 내용을 재게재합니다. 정호승 시인의 ‘고래를 위하여’라는 시를 아십니까? “푸른 바다에 고래가 없으면 / 푸른 바다가 아니지 / 마음 속에 푸른 바다의 / 고래 한 마리 키우지 않으면 / 청년이 아니지 / 푸른 바다가 고래를 위하여 / 푸르다는 걸 아직 모르는 사람은 / 아직 사랑을 모르지 / 고래도 가끔 수평선 위로 치솟아 올라 / 별을 바라본다 / 나도 가끔 내 마음속의 고래를 위하여 / 밤하늘 별들을 바라본다.” 고래는 얕은 호수나 시냇물에 살 수 없습니다. 아무리 거대한 아마존 강이라 할지라도 고래는 강물에서도 살 수 없습니다. 고래는 드넓고 깊은 바다에서만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정호승 시인은 그 푸르고 드넓은 바다를 우리 마음으로 연결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고래가 없으면 바다가 아니듯, 우리 마음의 푸른 바다에 고래 한 마리를 키우지 않으면 청년이 아니라 늙어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고래 한 마리가 바다를 푸르게 할 뿐만 아니라, 바다 역시 고래를 위하여 푸르다고 노래합니다. 이걸 아직도 모르는 사람은 사랑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시인은 위대한 반전을 이루며 하루하루 현실과 타협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푸른 바다가 되라고 권면합니다. 그럴 때 우리 마음의 깊은 바다에서 거대한 고래를 만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고래는 우리의 꿈, 이상이거나 사랑과 자유일 수도 있습니다. 아니, 우리 안에 꿈틀거리고 있는 위대한 생명일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또 한 번의 시적 이미지의 상승을 시도합니다. 그것은 고래도 가끔 수평선 위로 치솟아 올라 별을 바라본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별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꿈 너머의 꿈, 이상 너머의 이상, 아니, 우리가 한 번도 닿지 못한 초극적 희망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고래가 가끔 수평선 위로 치솟아 별을 바라보는 것처럼, 우리도 마음속의 고래를 위하여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우리의 가슴을 시리도록 감동을 주는 시입니까? 한국교회 역시 대한민국을 푸른 바다로 만드는 거대한 한 마리의 고래였습니다. 구한 말 조선이라는 나라는 온갖 미신과 우상, 가난과 차별로 가득한 나라였습니다. 그런 조선 땅에 선교사들이 와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을 뿐만 아니라 학교와 병원을 세우며 희망의 등불을 밝혔습니다. 스크랜톤 여선교사는 이화학당을 세웠으며, 언더우드 선교사는 연희전문학교, 아펜젤러는 배제학당을 세웠습니다. 또한 베어드 선교사는 평양이라는 불모지에서 숭실학교를 세웠습니다. 뿐만 아니라 게일 선교사는 성경을 우리말로 번역하였을 뿐만 아니라 한글 학습 교재인 유몽천자를 저술하여 조선인에게 한글을 가르쳤으며 한국의 문학을 외국어로 번역을 해서 세계에 알리기도 했습니다. 헐버트 선교사는 ‘사민필지’를 저술하여 세계의 역사와 지리를 한글로 설명했습니다. 이처럼 푸른 눈의 선교사들은 한 알의 밀알이 되었고, 한 마리의 위대한 고래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선교사들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한국교회는 3.1운동의 기수가 되었고 독립운동의 선구자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해방을 맞았을 때, 대한민국 건국위원들은 기독교 정신 위에서 나라를 세웠다. 당시 대한민국이 세워졌지만 아직 정부의 힘이 없을 때는 한국교회가 문화, 체육, 교육 등을 맡으며 유사정부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 얼마나 아름답고 푸른 희망의 역사입니까? 그러나 언제부턴가 한국교회가 물량주의와 성장주의에 편승을 하게 되었고, 불행하게도 교회만의 카르텔을 쌓고 이너서클화 되기 시작하면서 사회적 비난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전대미문의 코로나 사태 앞에 큰 상처와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2021년도 저물고 대망의 2022년이 밝았습니다. 다시, 한국교회가 대한민국을 푸른 바다로 만드는 고래가 되어야 합니다. 다시 아브라함처럼, 요셉처럼 밤하늘의 별들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별이 안 보이더라도 구름 너머에 있는 꿈의 별들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럴 때 한국교회는 이 시대를 푸른 바다로 만드는 희망의 고래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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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2-01-16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간절함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을까요”
    중국 사마천이 쓴 ‘사기’라는 책에 보면 ‘이장군 열전’ 편이 있습니다. 이 장군은 이광 장군을 말하는데, 화살을 쏘면 백발백중 시키는 신궁으로서 흉노족을 물리치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장군입니다. 어느 날 그가 사냥을 하는데 바로 앞에 호랑이가 나타난 것입니다. 얼마나 절박했던지 온 힘을 다하여 호랑이에게 활을 쐈습니다. 호랑이는 화살 한 방에 쓰러져 버렸습니다. 그런데 가서 보니까 호랑이가 아니라 불그스름한 바위였습니다. 활을 얼마나 세게 당겼던지 화살촉이 바위에 꽂혀 있었습니다. 자기도 놀라 다시 한 번 바위를 향해 화살을 쏘아 보았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꽂히기는커녕 화살이 바위를 맞고 그냥 튕겨져버리는 것입니다. 그때 이광은 화살도 간절함을 가지고 쏘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사석위호(射石爲虎)’ “간절하면 못할 게 없다”는 의미의 사자성어가 나온 것입니다. 이러한 이야기를 매일경제 장박원 논설위원이 글로 쓴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나라의 ‘활’이라는 영화에서도 “바람은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극복하는 것이다”라는 명대사가 나오지 않습니까? 현재 세계 육상 100미터 달리기 최고 기록은 우사인 볼트가 세운 9.58초입니다. 육상선수들이 0.1초를 단축하기 위해서는 피 말리는 훈련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프리카 초원에서 한 소년이 놀다가 갑자기 사자가 나타나자 살려고 전력질주를 하며 도망갔습니다. 그런데 그 달리는 속도를 재보니까 9.58초보다 더 빨랐다는 것이 아닙니까? 그만큼 우리의 삶 가운데 간절함과 절박함이 소중하다는 교훈이지요. 이번에도 저는 송구영신예배와 신년축복성회를 앞두고 잠을 못 이뤘습니다. 얼마나 긴장을 해버렸는지 수면제도 안 통할 정도로 불면과 싸웠습니다. 오후 3시, 8시, 11시, 그 다음에 0시, 네 번으로 나누어서 송구영신예배를 드리는데 성도들이 어디서 그렇게 모여드는지 예배마다 꽉꽉 차는 것입니다. 영신예배 같은 경우는 늦게 온 성도들을 비전홀로 가도록 하였습니다. 이번에 네번 예배를 다 합치면 지금까지 모인 그 어떤 예배보다 더 많은 성도들이 모였습니다. 코로나 전에 본당에 접이의자까지 놓고 아무리 꽉꽉 채웠어도, 이번에 네 번으로 나누어 드린 예배 숫자를 능가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성도들이 정말 어떻게 그토록 모일 수 있었을까” 다시 생각해 보아도 대단했습니다. 저는 예배 전에는 전 대로 긴장을 하며 간절한 마음을 가졌고, 예배 후에는 후 대로 너무 설레고 감동되었던 전율이 잔상으로 남아 마치 경조증 환자처럼 잠을 못 이룬 것입니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재정적 헌신의 수치를 보고받아 보니까 적은 차이이기는 하지만 작년보다 못한 것입니다. 어떻게 보이는 숫자와 헌금으로 성도들의 헌신도를 측정할 수 있겠습니까만 그래도 측정 가능한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죠. 정말 이해가 안 되는 건 작년에는 본당에 19명밖에 못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제가 송구영신예배를 8번으로 나누어서 화상줌을 통해서 인도했습니다. 오전에는 성도들을 그냥 단면으로만 화상줌으로 비추어 주었지만, 오후부터는 대기조가 있어서 1조가 화상에 뜬 다음에 다시 2조가 들어왔습니다. 그렇게 해서 예배 때마다 적게는 300~400명 많게는 1천 명이 계속 들어오는 것입니다. 이때 저는 화상줌으로 들어온 성도들을 일괄적으로 기도해 주지 않고 모든 가정마다 부모와 자녀의 이름까지 부르며 간절하게 축복기도를 했습니다. 물론 즉시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 분은 옆에서 담당 교구 교역자가 이름을 귀띔해 주었기에 일일이 이름을 다 불러가며 기도를 해 드렸습니다. 그러니까 성도들이 얼마나 감동을 받아 버렸는지, 그 감동은 얼마나 간절하고 절박한 마음으로 연결이 되어 감동 받은 대로 즉시즉시 온라인으로 헌금을 보냈습니다. 아니, 많은 분들이 예배 사이사이에 교구 교역자들에게 비표를 받고 본당으로 들어와 저에게 기도를 받았습니다. 그때 목돈을 가지고 와서 헌신기도를 받는 분들의 절박한 모습들이 지금도 제 눈에 가시지 않고 있습니다. 보통 절박하고 홀릭이 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저도 성도들을 만나고 싶은 간절함이 가득하였고 성도들 역시도 교회 현장으로 오고 싶은 절박함이 통했던 것이었지요. 평상시에는 느낄 수 없는 사석위호와 같고 사자에게 쫓기는 소년과 같은 간절함과 절박함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번 송구영신예배와 신년축복성회의 간절함도 위대했지만, 그래도 맘먹으면 누구나 다 올 수 있고,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2020년도에는 누구도 올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 그 뜨거운 간절함과 절박함이 폭발적인 헌신의 역사로 나타났던 것입니다. 마치 화살이 빗발치는 사선을 넘어 기도를 받으러 온 광인적 열정으로 말입니다. 우리에게 이러한 간절함보다 더 소중한 것이 어디 있을까요. 하나님께서는 코로나를 통하여 교회를 향한 간절함, 예배를 향한 간절함, 하나님을 향한 간절함이 그 무엇보다 소중하다는 시그널을 주셨던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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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2-01-09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크로노스, 카이로스 무엇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우리에게는 두 가지 시간이 있습니다. 하나는 ‘크로노스’고 하나는 ‘카이로스’입니다. 크로노스는 인간의 시간이고 카이로스는 하나님의 시간이죠. 카이로스는 우리가 만들 수 없는 시간입니다. 물론 크로노스는 카이로스 안에서 우리가 만들고 조정할 수가 있습니다. 예컨대, 1년 365일 안에서 우리가 “언제 식사 한 번 하자” 이런 것은 인간적으로 볼 때 우리가 만들 수 있는 시간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 해를 보내고 한 해를 맞는 것은 절대로 우리가 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만드시고 하나님이 주신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절대로 조정하거나 바꿀 수 있는 시간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카이로스의 절대적 시간을 무의미하게 보내면 안 됩니다. 절대의미가 있는 카이로스의 기회를 놓쳐서도 안 됩니다. 작년에는 제가 송구영신예배를 7번으로 나누어서 했습니다. 그런데 예배 중간 중간에도 기도 받으러온 사람들이 줄을 이었습니다. 또한 바깥에서는 부목사님들이 자동차 스루사역도 했고, 교회 안에 들어오지 못한 성도들을 위해 바깥에 헌금함을 두어서 예물을 드리고 부목사님들께 기도를 받고 갔습니다. 특별히 저는 화상 줌에 들어온 수백 명의 성도들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다 불러가면서 허리가 끊어지고 탈진 할 정도로 축복안수기도를 다 했습니다. 정말 제가 영신예배 안수기도까지 다 하고 나니까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한 이유는, 제가 카이로스의 절대 가치와 절대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그 결과 우리 교회는 올해도 초연결, 초비상 신앙을 가지고 계속 교회를 세워 갔습니다. 성경을 보거나 또 교회 역사를 보면 하나님이 세우는 교회가 있는가 하면 하나님이 무너지게 하는 교회도 있습니다. 또 살려주는 교회가 있는가 하면 버리는 교회도 있습니다. 이걸 계시록에서는 촛대를 옮기는 교회라고 했지 않습니까? 이것은 교회 뿐만 아니라 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하나님의 시간 안에서, 하나님의 관점으로 한 해를 보내고 맞는 변곡점을 앞두고 있습니다. 한 해가 지나가 버리면 2021년도는 이제 돌이킬 수가 없습니다. 또 하나님이 주시는 절대적 카이로스의 시간을 무의미하게 붙잡지 못하면 절대기회를 헛되이 보내 버리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 모두가 송구영신예배를 드리자는 것은 공간이나, 인간적인 시간에 얽매이자는 말은 아닙니다. 카이로스의 절대적 기회를 붙잡자는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송구영신 예배를 하나님이 주신 절대기회로 삼아야합니다. 다시 말하면 송구영신예배를 통해서 2021년의 삶을 그리스도 안에서 잘 보내고 2022년을 새롭고 의미 있고 가치있게 맞아야 합니다. 아니, 2022년도에 주실 위한 축복의 세계를 미리서 약속받고 맛보고 선험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때가 때이니 만큼 이번 송구영신예배는 3시, 8시, 11시 20분, 세 번을 드리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사람이 모이는 곳에 오는 것이 부담이 되는 분들을 위해서는 유튜브 생중계를 해 주고 자동차스루와 교회 주차장 입구에 헌금함을 마련할 겁니다. 그리고 부목사님들이 돌아가면서 기도를 드릴 겁니다. 우리가 언제 이런 때가 올 줄을 알았습니까? 누가 예언을 하고 예견이라도 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작년에 비하면 올해는 얼마나 좋습니까? 작년에는 성전에 고작 19명 밖에 못 들어왔지 않습니까? 그런데 올해는 70%까지 들어올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11시 20분에만 몰리지 마시고 나누어서 오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우리 성도들을 배려하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코로나가 언제쯤 종식될지는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어느 정도 종식 되더라도 후유증은 반드시 있게 될 것입니다. 후유증이란 무서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후유증이 너무 오래 가면 안 됩니다. 오히려 후유증을 회복을 위한 도움닫기로 선용하고 빠른 회복탄력성으로 반전시켜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 모두는 초비상 신앙으로 돌입해야 됩니다. 그럴수록 우리는 방역을 잘 지키면서 예배회복운동과 말씀운동, 그리고 기도운동과 영적 갱신 운동을 통해서 신앙의 본질을 회복해야 합니다. 이번 송구영신예배는 하나님이 주신 절대기회입니다. 이 기회를 살리기 위해서는 우리가 송구영신예배를 대수롭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송구영신예배야 말로 하나님이 주신 카이로스의 기회요, 2022년의 축복을 선점하기 위한 절대기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방역을 잘 지키면서 송구영신예배에 반드시 성공해야 합니다. 초비상 신앙으로 하나님이 주신 기회를 붙잡아야 합니다. 교회를 오시지 못하더라도 우리 교회가 유튜브로 만들어준 플랫폼 교회에서 송구영신예배를 꼭 드려야 합니다. 크로노스적 시간은 흘러가지만 하나님의 카이로스적 송구영신의 때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선택하시겠습니까? 크로노스입니까? 카이로스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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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1-12-26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아직도 슬라이딩은 남아 있습니다”
    언젠가 강단에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생각할수록 임종웅 선교사님께 송구한 마음이 들곤합니다. 제가 광주신학교 다닐 때 해태타이거즈 붐이 엄청났습니다. 그때 임종웅 선교사님이 “무등경기장에 프로야구를 한 번 보러 가고 싶은데 돈이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그랬지요. “신학생이 그럴 시간에 성경 보고 기도를 해야지 무슨 프로야구를 보러 갑니까?” 저는 그때 당시에 오로지 영적인 면만 생각했지, 일반 은총 영역에서의 정서적이고 감성적인 부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오로지 기도만 하고 성경만 봐야 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세월이 흘러 제가 중견 목회자가 되었고, 대중을 움직이려면 인문학적 소양과 문화예술적 감성, 심지어는 스포츠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으로 알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왜냐면 대중이 좋아하고 공감할 수 있는 언어와 감성을 갖출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말 그릇을 키우는 것이죠. 김윤나 씨가 쓴 <말 그릇>이라는 책에 보면 말 그릇이 큰 사람은 사람들에게 평안함을 주고 안정감을 준다는 것입니다. 저는 많은 분들로부터 마음의 그릇도 크지만, 말 그릇이 크다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사실 저도 신학교 들어가기 전에 정말 야구를 좋아했습니다. 야구장을 안 가도 라디오로 야구 중계를 많이 들었거든요. 그때 군산상고, 선린상고, 광주일고, 경남고 등 고교 야구 인기가 대단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저는 군산상고에 가장 애착을 가졌습니다. 특히 군산상고는 황금사자기, 봉황기대회 등에서 경기에 지고 있다가 마지막에 극적으로 역전승을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역전의 명수, 군산상고’라는 닉네임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야구에서는 역전 홈런이 가장 큰 희열이고 짜릿한 황홀함을 가져다줍니다. 그 맛으로 야구를 보는 거죠. 그런데 역전 홈런 못지않게 관중들을 스릴과 서스펜스, 엑스타시로 이끄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슬라이딩 점수입니다. 야구는 선수가 1루, 2루, 3루를 거쳐서 홈으로 들어오면 1점이 나는 경기입니다. 그런데 가장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극적인 점수가 바로 슬라이딩으로 따는 점수입니다. 여유가 있으면 선수가 그냥 편하게 걸어서 홈으로 들어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는 선수가 정말 죽기 살기로 홈으로 달려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죽기 살기로 달려도 안 될 것 같을 때 선수가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슬라이딩입니다. 발이 먼저 닿든지, 엎어져서 손이 닿든지 죽어라 뛰다가 마지막에 슬라이딩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관중들은 그냥 걸어서 들어오는 점수보다, 선수들이 이를 악물고 혼신의 힘을 다해서 달려와 마지막에 슬라이딩으로 따는 점수에 열광적인 환호를 보냅니다. 팀의 승리를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던져서 슬라이딩을 하는 선수의 투혼에 박수를 보내며 열광하는 것입니다. 걸어서 들어오나, 달려서 들어오나, 슬라이딩으로 들어오나 같은 1점이긴 하지만, 가장 감동적이고 열광적인 점수는 슬라이딩으로 얻은 점수입니다. 저도 한 해를 돌이켜 보니까 슬라이딩의 은혜와 축복이 너무 많았습니다. 코로나 초기에 확진자와 차를 마신 안수집사님 부부 때문에 마음을 조리고, 자녀들이 확진이 된 여전도사님 때문에 애태우고, 확진자와 같이 식사까지 했던 부목사님... 그런데도 하나님은 다 지켜주셔서 음성이 나오게 하시고 우리 교회를 보호하여 주셨습니다. 최근에 저도 어느 단체에 설교를 하러 가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정말 너무 바빠 사정을 하고 양해를 구해 다른 분이 설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설교 하러 간 분이 하필이면 그 기관의 대표가 확진자여서 설교자도 코로나에 걸려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만약에 제가 설교를 하러 갔었다면 그분과 악수하고 대화를 하는 순간에 확진이 될 수도 있지 않았겠습니까? 제게는 이것도 슬라이딩의 은혜로 느껴졌습니다. 특별히 제가 올해 한국교회 공적 사역과 연합기관 통합 사역을 하면서 아직 100%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진짜 슬라이딩의 순간을 너무나 많이 경험했습니다. 물리적 연합을 추구했다면 이미 하고도 남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의 연합도 중요하기 때문에 서로 아우르고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면서 진행해 갈 것입니다. 우리 교회를 볼때 전도도 그렇고, 예배 회복도 그렇고, 재정 부분도 그렇고 슬라이딩의 은혜가 너무나 많았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아직도 슬라이딩 은혜가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아직도 우리에게는 역전할 수 있는 슬라이딩이 남아 있습니다. 저 역시 연합기관 통합사역이 완전히 물 건너간 줄 알았는데 마지막 순간에 슬라이딩의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이제 겨우 2주간의 시간 밖에 안 남았는데, 우리도 마지막까지 슬라이딩의 은혜를 기대해야 합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죽을 힘을 다해 달려도 안 되면 마지막 슬라이딩을 해서라도 반드시 역전의 은혜, 승리의 축복을 누려야 합니다.
    • 칼럼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1-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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