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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바람의 언어를 듣겠습니다.”
    지난 수요저녁예배를 마치고 모처럼 곤지암 기도원에 올라갔습니다. 다음 날 특별한 손님 몇 분이 오셔서 밤을 줍는다고 하셔서 미리 간 것입니다. 원래 전날이나 그날 오후에 한번 기도원을 다녀오려고 했는데 도저히 시간이 안 나서 늦은 밤에야 고성능 플래시를 가지고 밤이 얼마나 떨어져 있는가, 밤나무에 밤이 얼마나 달려 있는가를 확인했습니다. 제법 산 깊은 곳까지 가서 확인을 했습니다. 플래시가 워낙 고성능이어서 땅에 밤이 얼마나 떨어져 있고 밤이 얼마나 달려 있는가가 다 보였습니다. 그렇게 확인하는 중에 밤이 하나씩 떨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밤 떨어지는 소리가 그날따라 너무 신기하게 들렸습니다.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뉴턴보다 더 신기하게 들렸습니다. 더구나 아직 채 익지 않은 밤이 익는 소리까지 들리는 듯했습니다. 방에 들어와서 왜 그런 소리가 들리는가 생각해 보았더니, 그걸 들리게 하는 것은 바로 바람의 언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람의 언어는 벌써 단풍을 물들게 하는 소리까지 들려주었습니다. 아직은 숲이 파릇파릇한데 그 바람의 언어가 단풍 만드는 소리를 들려준 것입니다. 창문을 열어놨더니, 계속해서 바람의 언어에 동글동글 여문 밤알들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습니다. 머지않아 가을바람에 우수수 떨어질 가랑잎들은 떨어진 밤알들을 덮어줄 것입니다. 그리고 또다시 바람의 언어는 꿈을 꾸는 밤알들에게 내년 봄 나무의 새싹으로 태동하게 될 것입니다. 저는 그날 밤바람의 언어를 들으며 잠이 들었습니다. 잠이 든 후에 꿈속에서도 떨어지는 밤알과 바람에 굴러가는 마른 잎새들이 나의 삶과 같다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그런 꿈을 꾸다가 아침에 일어났습니다. 약속한 대로 특별한 손님들이 기도원을 방문하였습니다. 정신없이 밤을 줍기 시작했습니다. 어린 시절에 산에서 밤을 주웠던 추억이 아련하게 스쳐갔습니다. 그리고 밤을 줍는 순간에도 밤알이 이따금씩 툭툭 떨어졌습니다. 어제저녁 들었던 바람의 언어가 생각이 났습니다. 그 바람의 언어는 장석주 시인의 ‘대추 한 알’이라는 시 구절이 생각나게 해주었습니다. 저는 장석주 시인의 시를 마음속으로 바꾸어 보았습니다. “저 밤이 저절로 익을 리는 없다 / 저 안에 태풍 몇 개 / 저 안에 천동 몇 개 / 저 안에 벼락 몇 개 / 저게 저 혼자 둥그러질 리는 없다 /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숱한 밤들 /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 저 안에 초승달과 보름달 몇 날...”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순간에도 붉은 태양 아래 아직 채 익지 않는 밤알이 익어가고 있었습니다. 아직도 저들은 땡볕과 무서리를 더 맞아야 하는 것 같습니다. 얼마만큼 밤을 줍고나서 바비큐 런치를 즐겼습니다. 우리 교회 김요한 집사님이 오셔서 천막을 설치해 주어서 특별한 분위기를 느꼈습니다. 천막을 안 쳐도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지만, 천막을 쳐 놓으니까 가을 소풍을 온 것 같고, 잔칫집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 주었습니다. 어린 시절 가을 소풍의 추억이 떠오르며 동심 세계를 이루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손님들과 자리를 함께했던 부목사 몇 분들도 같은 느낌이라고 했습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 순간에 바람의 언어가 제 귓전을 스쳐갔습니다. 다음에 오면 저 나뭇잎사귀들은 단풍이 될 것이며 한동안 단풍잎으로 온 산은 불타오르는 모습이 될 것이라고 말입니다. 서로의 삶의 얘기를 나누는 즐거운 시간도 지나갔습니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죠. 아니, 만날 때부터 헤어질 결심을 하고 만나는 것이 우리의 삶이지요. 아직은 땡볕이 맹렬히 타오르는 여름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조금 있으면 밤 떨어지는 소리도 그칠 것이고 나뭇잎들이 밤알들을 소복소복 덮고 말 것입니다. 그리고 그 위에 하얀 눈이 소복소복 쌓이게 되겠죠. 겨울이 오면 저는 또 다른 바람의 언어를 들어야 합니다. 그 바람의 언어는 다름 아닌 성령의 감동과 교훈의 말씀입니다. 이렇게 삶을 살다 보면 언젠가 궁극적인 인생의 겨울도 맞이할 것입니다. 삶과 죽음이 악수하는 그 겨울 말이죠. 그때 저는 바람의 영원한 새 언어를 듣고 저 산 너머에 있는 새로운 영토의 세계에서 다시 영원한 삶을 사는 꿈을 꿀 것입니다. 저뿐만 아니라 제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과 함께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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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2-10-02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지지 않겠다는 약속의 노랠 부릅니다”
    “눈물 나는데 / 슬퍼지는 이유를 몰랐던 건 / 나를 대신해 / 아파하는 너를 몰랐던 일 / 내 마음 내 어둠 무겁지만 / 내 얘기 내 노래 외롭지만 / 내가 미워한 세상 모든 것 / 어쩔 수 없다며 피하진 않아 / 나를 사랑한 너의 모든 것 / 이젠 내가 더 사랑할 수 있어.., (중략) 내가 방황한 세상 모든 것 / 어쩔 수 없단 말 하지 않아 / 나를 사랑한 너의 모든 것 / 이젠 내가 더 사랑할 수 있어” 이는 가객 이선희와 윤도현이 콜라보한 ‘지지 않겠다는 약속’의 가사입니다. 생태계 파괴로 인하여 상처받고 힘들어하는 고래들을 위로하고 함께 싸우며 지지 않겠다는 약속을 노래하는 것이죠. 제 마음도 푸른 바다의 고래처럼 눈물 나고 슬퍼지고 어둡고 외로울 때가 있습니다. 아니, 무언가 눌림이 있고 힘겨울 때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제 자신의 문제나 우리 교회의 문제보다는 총회와 한국교회를 생각할 때 찾아오는 고뇌와 눌림입니다. 총회 선관위원장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실 총회장을 할 때보다도 선관위원장을 할 때가 더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사인으로서 보다는, 공인으로서 총회 화합과 상생을 더 중요시하며 모든 것을 바쳤습니다. 사람들은 솔로몬의 지혜를 발휘하며 위기를 극복하고 총회를 화합과 상생의 길로 이끌었다고 하지만, 저의 마음은 얼마나 무겁고 힘들었겠습니까? 무엇보다도 한국교회 연합사역과 미래를 생각하면 암울해집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터널을 걷는 것처럼 막막하고 길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지요. 제 마음 속의 고래도 상처 받고 아파하고 슬픔의 바다에 잠길 때가 있습니다. 어쩌면 제가 할 일은 다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제 한국교회 현 지도부가 결단하고 동의하는 일만 남았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연합의 길이 묘연해 보이고 험난하게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너무나 안타깝고 아쉽기만 합니다. 그래도 지금 당장은 안 되더라도, 결코 지지 않겠다는 약속만큼은 할 수 있습니다. 아니, 하나님께서 저에게 결코 지지 않게 해 주겠다는 약속을 주시는게 더 중요합니다. 이미 그 약속을 받았기에 어려운 일이 생기고 길이 막힐 때마다 확인하며 지금까지 달려왔습니다. 그 약속이 여기까지 끝나는지는 모르겠지만 또 다시 연합의 깃발을 향하여 달려가야 할 시점에서 하나님의 지지 않겠다는 약속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저는 총회 때도 틈틈이 묵상 기도를 하며 지지 않겠다는 약속을 되새겨 보았습니다. 총회를 다 마치고 목요일 저녁에 홀로 산행을 하며 이 음악을 들었습니다. “... 부서지는데 / 무서워하는 법도 몰랐던 건 / 나를 위해서 / 기도하는 너를 몰랐던 일...”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로 알려진 유홍준 교수님은 “알면 보이고 보이면 사랑하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모르기 때문에 보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아니, 오히려 서로 미워하고 증오하며 파괴되어 가는 것입니다. 저 역시 이 노래를 통하여 환경 생태계의 중요성과 푸른 바다의 고래 이야기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가을이 깊어가는 저녁에 산에 오르니 고요한 풀벌레 소리가 저의 마음을 다독여 주었습니다. 마치, 결코 지지 않을 것이라는 약속의 노래를 들려주는 듯 했습니다. 저는 ‘지지 않겠다는 약속’을 노래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저에게도 저만의 노래를 들려주시기를 기도하였습니다. 어찌 하루아침에 모든 일이 이루어질 수 있겠습니까? 남북통일도 다 때가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지금까지도 최선을 다해왔고 큰일을 이루었지만, 그러나 더 큰 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또 다른 인내와 기다림, 때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때를 기다리며 저는 결코 지지 않겠다는 약속의 노래를 부르고 또 부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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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2-09-25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저는 끝까지 상생과 화합을 심을 것입니다”
    저는 요즘 염증으로 고생을 했습니다. 작년에 고 문정남 장로님의 장례를 치르고 나서 뒤통수에 염증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새에덴교회 개척에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가장 큰 공헌을 하신 문 장로님에 대한 예우를 갖추기 위해 제가 직접 상주가 되어 3일간 조문소를 지켰습니다. 그때 무리를 해서 그런지 뒤통수의 염증이 생기더니 사라진 듯하다가 재발하기를 몇 번 반복하면서 자그마치 세 번이나 수술을 했습니다. 뒤통수의 염증이 커질 때는 잠자는 게 너무 힘들었습니다. 허리나 등에 욕창이 난 것도 아닌데 뒤통수 작은 염증 하나가 온몸을 얼마나 힘들게 하였는지 모릅니다. 근래는 손톱을 너무 깊게 잘라가지고 염증이 생겨 통증이 보통 심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 조그마한 손톱 하나도 이렇게 온몸에 고통을 준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사실 1, 2주만 고생하면 되는데 염증이 난 손톱이 왜 그렇게 다치고 또 다치는지... 오른손과 세게 부딪쳐 다치고, 손을 씻고 수건으로 닦다가 다시 다쳐 손톱과 살이 붙어 있는 부분이 완전히 벌어져서 얼마나 아렸는지 모릅니다. 엎친 데 덮쳐서 이번에는 코에 또 염증이 생겼습니다. 코 염증 정도야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하고 무시하고 놔뒀더니, 코가 딸기코가 되고 밤새 아려서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다행히 이재훈 의료강도사님이 약을 잘 지어주어서 어느 정도 일단락이 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이번 일을 겪으며 저는 작은 염증 하나가 온몸을 너무나 힘들고 고통스럽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그 이유를 분석해 보면, 도가 넘는 스트레스로 몸의 면역력이 약해졌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최근 몇 주간의 제 삶을 돌아보면 총회 선관위 일로 보통 신경을 많이 쓴 게 아닙니다. 많은 분들이 “이건 솔로몬에게 주신 지혜입니다. 소 목사님이 아니면 결코 이렇게 처리할 수가 없는 일입니다. 정말 소 목사님의 지혜와 공명정대한 처사가 총회의 위기와 한국교회의 갈등을 중재하여 새 길을 열게 하였습니다”라고 칭찬과 격려를 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남들은 그렇게 쉽게 말을 하지만 저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신경 쓰고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모릅니다. 오죽하면 자다가도 그런 꿈을 꾸었습니다. 고린도전서 12장을 보면 몸의 각 지체가 서로의 역할이 있기에 함께 돕고, 몸의 다른 기관이 아프면 다른 기관이 도와야 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옛말에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때운다’는 말도 있지요. 그런데 현재 우리 교계 상황을 보면 그렇지 못합니다. 서로 협력하고 도와야 할 연합기관들이 여전히 분열되어 하나 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조직이나 공동체이든 미움과 증오를 심으면 또 다른 미움과 증오를 낳게 되어 있습니다. 증오를 심으면 결국 그 조직도 나중에는 증오의 단체가 되어 서로 미워하고 증오하다가 분열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사랑과 화목을 심는 조직과 공동체는 또 다른 사랑과 화목의 열매를 맺게 되어 있습니다. 저는 목회를 하든, 총회를 섬기고 교계를 섬기든 언제나 사랑과 화목을 심으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내 몸의 작은 상처도 온몸을 이렇게 힘들게 하고 고통을 갖다주는데 하물며 우리 총회이겠습니까? 우리 교계이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누가 뭐래도 미움과 증오가 아닌 사랑과 화목, 상생과 화합을 심을 것입니다. 부족하지만 저는 우리 교회 안에 이런 모습을 실천해 왔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개척 때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분란이 일어나거나 분열을 한 적이 없습니다. 우리 교회 안에서 작은 열매를 보인 것처럼 앞으로도 저는 끝까지 교계에 상생과 화합을 심을 것입니다. 한국교회 안에 미움과 증오의 가시덤불과 찔레가 가득해야 하겠습니까? 아니면 상생과 화합의 향기로운 꽃과 포도송이들이 가득해야 하겠습니까? 저는 사랑과 화목의 꽃씨를 심으며 앞으로도 끝까지 상생과 화합의 꽃밭을 일구어 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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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2-09-18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빗소리처럼, 풀벌레 소리처럼
    지난주 화요일 저녁에 몸은 피곤한데도 비를 맞고 산행을 하였습니다. 왜냐면, 우리 교단의 여러 산적한 문제를 풀어야 하는데 마음이 너무 무거워서 정서를 환기하려고 갔습니다. 저는 작년에 떠밀리다시피 총회 선관위원장을 맡았습니다. 그런데 우리 교단 목사님들과 장로님들이라면 다 알 정도로 목사 부총회장 후보 문제가 뜨거운 이슈가 되었습니다. 이미 한 분 목사님은 부총회장 후보로 확정되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한 분 목사님은 선거법 위반 문제로 계속 심의를 해야 했습니다. 선관위원들 중에서도 한쪽에서는 “분명히 위법이 있기 때문에 후보를 탈락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또 한쪽에서는 “위법이 있지만, 이분을 탈락시키면 교단에 너무나 큰 혼란이 온다. 그래서 확실한 사과문을 낸 후 후보로 올려야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계속 치열한 의견 대립을 하면서 결론을 내지 못했습니다. 헌법재판소나 대법원도 결국 다수의 의견으로 결정을 짓지 않습니까? 그래서 부득이하게 어느 목사님의 위법성 문제로 인해 후보를 탈락시킬 것인가, 아니면 올릴 것인가를 놓고 투표를 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저는 부위원장에게 사회권을 양보하고 이석을 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절대 나가면 안 된다고 붙잡아서 어쩔 수 없이 투표를 진행하게 된 것입니다. 물론 저는 위원장으로서 기권을 했고요. 그런데 어떻게 이런 결과가 나올 수가 있습니까? 7:7로 동수가 나온 것입니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정말 고민을 하였습니다. 한쪽 목사님은 40년 지기 친구고, 다른 목사님도 매정하게 내칠 수 없는 관계이니 말입니다. 더구나 한쪽을 내치면 총회는 겉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지게 된다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기 때문이죠. 그런데 마침 우리 총회 직원이 장로회 치리회 규칙 4장 85조 2항을 찾아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 조항에 의거해서 의장으로서 캐스팅보드 역할을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위법성이 있는 분이 기독신문에 사과문을 내면 후보로 확정하고 그렇지 않으면 탈락시키는 걸로 하자고 했습니다. 그러자 선관위원들도 만장일치로 의견을 모아주었습니다. 그런데 이 소식이 나가자 여러 억측과 소문들이 일파만파로 번져나갔습니다. 특별히 제가 월요일에 호남협의회에 가서 설교를 하였는데 설교가 끝나자 저를 앞에 두고 선관위를 향한 규탄 성명서를 발표한 것입니다. 물론 그 전에 저에게 양해를 구했지만요. 저는 그걸 보고도 “허허허” 너털하게 웃음을 지었습니다. “나 없을 때나 좀 하지...ㅎㅎㅎ” 그 순간 어느 정치인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정치란 짐승이 되는 비천함을 견디면서 야수의 탐욕과 맞서 싸워 성인의 고귀함을 이루는 것이다.” 그래서 저는 끝까지 인내심을 갖고 양쪽 목사님을 다 설득을 한 것입니다. 이런 마음의 부담감 때문에 산행을 갔는데 가을을 재촉하는 빗소리가 저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주고 풀벌레의 노랫소리가 가슴의 응어리를 풀어주었습니다. 고요한 빗소리와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사색도 하고 묵상도 하고 기도도 하였는데, 다음 날부터 어떤 역풍들이 순풍으로 바뀌고 파열음의 괴성들이 고요 속에 노래하는 풀벌레 소리로 바뀌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수요일 오후에 한 목사님은 양해서를, 또 한 목사님은 사과문을 내기로 한 것입니다. 총회 화합과 상생을 위하여 선관위에 양해서를 낸 목사님이 고맙기도 하고 송구스럽기도 했습니다. 마침내 목요일 오전에 “여러 문제가 있지만 모든 것을 법리로만 풀 수는 없다. 그 위법성에도 반론이 있고 상대성이 있을 수 있다. 우리가 정치적인 묘수를 발휘해서 화합과 상생으로 가자. 그러기 위해선 위법한 분에게는 사과문을 교단지에 게재하게 하고, 양해서를 보내온 분에게는 선관위가 감사의 글을 교단지에 게재하도록 하자.”고 결의를 한 것입니다. 저는 원래 목회자이고 교단 정치를 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누구에게 정치수업을 받은 적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어릴 때부터 어머니, 아버지가 싸울 때 항상 화합시키고 화해시키는 훈련을 받으면서 노하우를 축적해 왔습니다. 모든 문제를 다 정리하고 목요일 저녁에 산행을 하는데, 화요일 저녁에 들었던 빗소리와 풀벌레 소리가 떠오르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남들이 불필요한 오해와 공격으로 상처를 받을 때 거기 가담하지 않고 그에게 때로는 빗소리처럼, 때로는 풀벌레 소리처럼 작은 위로가 되리라.” 그리고 하나님께 이렇게 고백을 했습니다. “하나님, 저 역시 한동안 짐승처럼 비천한 적도 있었고, 오해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나 터무니없는 야수의 탐욕과 맞서 때로는 설득하고 때로는 싸우면서 화합과 상생이라는 고귀함에 이르게 되었네요.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앞으로도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총회 선거가 잘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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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9-0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매미처럼 처절하게, 풀벌레처럼 고요하게”
    화요일 저녁 모처럼 큰 마음을 먹고 산행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선광현 목사님이 조금 늦게 도착한다고 해서 혼자 먼저 걸어갔습니다. 그러던 중 교회로 오는 성도들을 만났습니다. 생각해 보니까 저녁 8시 기도회에 참석하기 위해 오는 분들이었습니다. 성도들과 마주치면서 인사를 하였습니다. “아, 기도하러 오시네요. 저는 오랜만에 산행을 하러 갑니다.” 그런데 순간 멈칫했습니다. 성도들은 기도하러 오는데 저는 산행을 가고 있었으니까요. 순간 “나는 뭐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중세시대 수도사 성 버나드가 말한 ‘하나님과 나의 합일의 4단계’가 떠올랐습니다. 첫째, 나를 위한 내 사랑의 단계입니다. 둘째, 나를 위한 하나님 사랑의 단계입니다. 셋째, 하나님을 위한 하나님 사랑의 단계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을 위한 내 사랑의 단계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과의 완전한 합일의 경지에서 나를 사랑하는 단계입니다. 주님과의 합일의 경지는 나를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 사랑이며 하나님 사랑이 내 사랑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코 하나님을 밟고 나를 사랑하자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숨 쉬고 먹고 마시는 것조차 주님과의 깊은 합일의 경지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 역시 “하나님을 더 깊이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며 산행을 할 거야”라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길을 걸으며 예수님을 태운 나귀를 생각했습니다. 이건 오리겐이나 이레니우스가 했던 풍유적 해석인데, 잠시 그걸 받아들였습니다. “내 한 발은 온유의 발이 되고, 내 한 발은 겸손의 발이 되리라. 내 한 무릎은 기도의 무릎이 되고, 내 한 무릎은 순종의 무릎이 되리라.” 그런 생각을 하면서 산을 올라갔습니다. 산에서는 풀벌레들이 얼마나 위대한 합창을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 순간 여름 내내 처절하게 울어대던 매미들이 생각이 났습니다. “1-2주 전만 해도 목이 터지도록 사랑의 연가를 불러대던 매미들은 다 어디로 가버렸을까...” 어느 순간 저의 기도는 잠시 멈추고 사색의 세계로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그 옛날 신학생 시절 무등산에서 기도했을 때는 왜 풀벌레 소리를 듣지 못했을까. 매미 소리도 기억이 나지 않는데...” 아마도 그때는 저의 인생이 매미처럼 처절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고요한 밤공기를 가르며 울려 퍼지는 풀벌레 소리가 하나님을 향한 기도 소리로 들리고 찬양 소리로 들리는 것입니다. 그만큼 저의 삶이 성숙해지고 감성의 지평과 사색의 여유가 생겨났다고 할까요. 저는 정상에 올라와 벤치에 앉아서 기도를 하였습니다. “주님, 고맙습니다. 이렇게 맑은 공기를 마시며 기도할 수 있어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살아있음이 너무나 행복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땀을 흘릴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풀벌레 소리와 함께 고요한 기도를 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언제까지 이렇게 땀을 흘리며 산행을 하고 또 이 땅에서 기도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살아있는 동안에 때로는 매미처럼 처절하게, 때로는 풀벌레처럼 고요하게 하나님 사랑의 연가를 부르겠습니다.” 기도를 마치자, 문득 산에 올라오다가 마주친 이주연 집사님이 생각났습니다. 그분은 저에게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소개해 주신 분입니다. 집사님은 기도하러 교회에 오는데 저는 산행을 하러 가서 조금은 겸연쩍은 마음으로 전화를 드렸습니다. “집사님, 우영우 드라마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기도는 잘하셨나요?” 그런데 집사님의 첫 마디가 저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고 눈시울을 뜨겁게 하였습니다. “목사님, 혼자 산에 가셔서 어떡해요. 신변 보호를 해 드려야 하는데... 우리 목사님 혼자 산에 가시면 어떡하냐고 집사님들과 걱정을 하였어요.” 순간, 이렇게 담임목사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걱정해 주는 성도들이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릅니다. 매미는 7-8년 동안을 땅 속에 있다가 성충이 되어 잘해야 1-2주를 산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세상을 떠나기 전에 어떻게든지 짝을 만나서 사랑을 나누고 2세를 준비하기 위해서 그렇게 처절하게 연가를 부르는 것입니다. 입추가 지나면 저녁에도 더 애처롭게 구애의 연가를 부르는 이유가 그 때문입니다. 저 역시 제 인생의 겨울이 오기까지 때로는 매미처럼 처절하게, 때로는 풀벌레처럼 고요하게 기도하고 사명의 노래, 목양의 연가를 부를 것입니다. 그런 묵상을 하는 동안, 선 목사님과 송 집사님이 뒤늦게 도착을 하였습니다. 그날 밤은 정말 산속에서 홀로 하나님과 독대하는 시간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고요 속에서 드린 목양의 연가요, 적요의 기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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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2-08-28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포스트 엔데믹, 교회 세움 프로세스
    LA의 한 목사님으로부터 광복 77주년 기념 감사예배 설교를 해줄 수 없느냐고 연락이 왔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목회자 세미나 좀 해줬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조금 더 생각해 보자고 답변을 하였습니다. 생각해 보니 주일예배를 빠질 일도 없고 해서 가기로 했습니다. 첫날 예상만큼 많은 분들이 오지는 않았습니다. 많이 모일 수 없는 이유를 듣고 보니까 이해가 됐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저의 광복절 메시지를 듣고 많은 분들이 큰 감동을 받은 것입니다. “유튜브나 다른 매체를 통해서 소 목사님에 대해 이야기를 들으면서 소 목사님은 그런 분이 아닐 텐데 하면서도 오해 아닌 오해를 할 뻔했는데 정말 애국적인 메시지를 듣고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건 물론이고 이렇게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애국자인지 몰랐습니다.” 광복절 감사예배가 끝나자, 주최 측에서 다음 날 목회자 세미나를 걱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말씀을 드렸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오늘 예배에 참석하여 말씀을 듣고 간 분들, 그리고 목회에 대한 목마름과 갈망이 있는 분들은 다 올 겁니다.” 정말 다음날 목회자 세미나에 많은 분들이 온 것입니다. 저는 오전 10시부터 12시가 넘도록 브레이크 타임 없이 그대로 강의를 했습니다. 주제는 ‘포스트 엔데믹, 교회 세움 프로세스’였습니다. 사실 이 주제는 이번 주에 나올 저의 책 제목이기도 합니다. 저는 코로나가 바로 시작했을 때 ‘포스트 코로나, 한국교회의 미래’라는 책을 이틀 만에 쓴 적이 있습니다. 이번 책도 실제로 제가 작업하는 것은 하룻밤을 날 새워 한 것입니다. 물론 문서 목사님께서 워드 작업을 하느라 아주 수고를 했지만요. 하지만 그걸로 다 끝난 게 아닙니다. 원고를 가져오면 보고 또 보며 보완 작업을 몇 번을 했죠. 책에 이런 내용을 기술하였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의 충격이 한국교회에 어떤 결과를 가져왔으며 앞으로 한국교회의 생태계도 녹록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을 하였습니다. 우리가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는 소극적이고 방어적 목회를 했지만 이제는 포스트 엔데믹 시대를 맞아 적극적이고 전략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교회가 지금까지 해왔던 것과 앞으로 엔데믹 기간에 뭘 해야 될 것인가를 설명하였습니다. 요지는 이렇습니다. “첫째, 신앙과 신학의 본질, 초대교회적 원형교회를 회복해야 한다. 둘째, 사즉생(死卽生)의 각오로 교회 세움에 올인을 해야 한다. 셋째, 주님의 강력한 임재와 운행하심을 회복해야 한다. 넷째, 폐쇄적 마인드를 극복하고 수용성을 가져야 한다. 다섯째, 교회 이미지와 브랜드를 복원해야 한다. 여섯째, 병원 같은 교회(교회의 메디컬화)를 준비해야 한다. 일곱째, 교회의 새로운 영토를 확장해야 한다.” 지면상, 강의 내용을 다 소개할 수는 없지만, 강의를 할 때 한 사람도 조는 사람이 없었고, 시종일관 집중해서 진지하게 듣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분들의 눈빛을 보니까 정말 교회 세움에 대한 갈망과 목마름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도 LA에 도착하자마자 광복절 집회를 인도하고 시차 때문에 잠도 설쳤기 때문에 조금은 쉬어가면서 적당히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목사님들의 강렬한 눈빛을 보니까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2시간 10분이 넘도록 열강을 했습니다. 사회를 보신 이성우 목사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소강석 목사님이 와서 이런 강의를 하실 줄 몰랐습니다. 어쩌면 이렇게 실제적이고 창의적인 강의를 하실 수 있는지 감동 받았습니다. 강의 용어도 생소하고 목회 콘텐츠도 새로운 발상과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너무 팬데믹에 갇혀 굳어 있었는데 다시 새롭게 한 번 해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 목사님께 기립하여 박수를 해 드립시다.” 저를 픽업해 주신 목사님이 준비위원장이셨는데 그분도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역대 LA 지역 목회자 세미나에 이렇게 많이 모인 적이 없습니다. 이민교회는 세미나를 해도 잘 안 모이는데 이렇게 많이 모여서 너무 해피하고 원더풀 합니다. 이민목회 역사상 목회자 세미나에 이렇게 많이 모인 건 처음입니다.” 그분들의 말씀을 들으며, 언뜻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 우리 교회에서 600명의 목회자를 초청하여 ‘위드 코로나, 우리 함께 갑시다’ 세미나를 한 적이 있잖습니까? 그런데 그분들이 세미나에 참석하여 도전을 받고 자신들의 지역에 가서 자발적으로 세미나를 열고 교회 세움 운동을 일으켰다는 것입니다. 저는 LA지역에서도 이런 역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글을 쓰는 지금 이 시간에도 그분들의 교회 세움에 대한 갈망과 목마름, 눈동자에서 나오는 강렬한 빛이 떠오르고 있습니다. LA 목회자 세미나에 참석한 모든 분들이 아름다운 교회 세움 프로세스를 잘 적용해서 이민교회가 살아나고 거룩한 나비 효과가 일어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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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2-08-21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어느 가시나무새의 목사 이야기
    지난 월요일 저녁에 내린 비는 비가 아니라 하늘로부터 떨어지는 물폭탄이었습니다. 저는 태어나서 이런 물폭탄을 처음 봤습니다. 다음날 수련회가 있어서 일찌감치 자려고 수면제를 복용했습니다. 그런데 잠이 안 와 이상하다 싶어서 시설관리팀장인 김요한 안수집사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물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도로에서 흘러내린 물이 교회 주차장에 흘러들어 와서 한강을 이루고 있고 엘리베이터 안까지 흐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제가 다른 직원들까지 전화해서 빨리 물을 퍼내라고 지시만 할 수도 있지만, 곧바로 내려갔습니다. 그랬더니 진짜 지하실이 한강이 되어 있었습니다. 이유를 알아보니까 우리 교회는 고지대에 위치하였음에도 죽전천이 넘쳐 하수구의 물이 내려가지 않으니까 길에 쏟아진 폭우가 우리 교회 지하주차장으로 흘러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저도 직원들과 함께 열심히 물을 퍼냈습니다. 워낙 주차장이 넓어서 각자 맡은 구역의 물을 한쪽으로 밀어내서 양수기로 퍼내야 하는데 정말 역부족이었습니다. 저는 몇십 분 만에 온몸이 땀으로 완전히 젖어 버렸습니다. 조금 전에 출장 드라이를 했는데 워낙 땀을 많이 흘려서 머리도 다 흐트러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수면제 기운도 온데간데 없어져 버렸고요. 그런데 저보다도 우리 교회 통제실 직원들이 더 열심히 하는 것입니다. 남수현 장로님도 주무시다 보고를 받고 금방 달려오셨습니다. 게다가 갑자기 우당탕탕 하고 뛰어 들어오는 애들이 있었습니다. 세상에 김요한 안수집사의 가족들인, 윤정순 집사님과 요셉이, 영생이, 영원이가 한꺼번에 오는 것입니다. 그 녀석들이 얼마나 일을 잘하는지 진짜 물이 금방금방 줄어들어 갔습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최성주 집사 아들 주영이까지 왔습니다. 저는 부목사들에게 전화를 해서 나오라고 할 수도 있었지만 다음날부터 수련회를 하기 때문에 지장을 받을까 싶어서 연락을 하지 않았습니다. 한참을 하다 보니까 너무 힘들어 땅에 주저앉아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다가 다시 반바지로 갈아입고 와서 또다시 물 퍼내는 일에 가담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갈등이 생겼습니다. 김요한 팀장의 말을 들으면 새벽기도회에 오는 분들을 위해 꼬박 밤을 새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밤을 새워버리면 다음 날부터 있을 수련회 집회를 망쳐 버리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직원들에게 특별한 격려를 하겠다고 약속을 하고 새벽 3시가 다 되어 제 방에 올라왔습니다. 그러고 나니까 수도권의 몇몇 대형교회가 생각이 났습니다. 혹시 다른 교회들은 이런 일은 없는지 연락을 했는데, 연락이 안 되는 걸 봐서 아무 일도 없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짧은 막잠을 자고 시간에 맞춰 오크밸리로 갔습니다. 개회예배 때부터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쏟아졌는지 모릅니다. 저는 수련회를 준비하면서 원고를 얼마나 많이 고치고 보완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도 준비된 원고보다도 훨씬 더 은혜로운 말씀을 순간순간에 터지게 해 주셨습니다. 어떤 손님이 와도 만나지 않고 대부분 집회가 끝나고 잠깐 인사만 나누었습니다. 왜냐하면 집중력이 흩어질까 싶어서입니다. 저는 낮에도 바깥에 나가서 밥 먹지 않고 그냥 옆방에서 해주는 밥을 간단히 먹고 계속 묵상하고 기도했습니다. 아직까지도 교회를 자기 몸처럼 사랑했던 직원들이 그렇게 고맙게 느껴졌습니다. 수련회 집회는 마지막 날 폐회예배에 이르기까지 들불처럼 산불처럼 타오르고 타올랐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진짜 저는 한여름에 매미 같은 목사였습니다. 불과 2, 3주를 노래하기 위하여 7, 8년 동안 땅속에 애벌레로 있었던 매미처럼, 또 한순간의 최절정의 아름다운 노래를 위하여 자신의 가슴에 가시를 찔러대던 가시나무 새처럼 저는 후회 없이 말씀을 전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개회예배와 폐회예배가 가장 뜨거웠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도 알파와 오메가의 하나님이시지 않습니까? 저는 3박 4일 동안 매미 목사였고 가시나무새 목사였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가시나무새처럼 죽지 않고 살아 있습니다. 저의 사명이 아직은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일 테죠. 그래서 저는 다가올 신년축복성회에 때도, 또 내년에 장년여름수련회에서도 언제나 가시나무새 목사가 될 것입니다. 교회에 어떤 일이 생겨도 지시만 하지 않고 솔선수범하여 앞장서겠으며 말씀을 전할 때는 마지막 우는 매미처럼,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가시나무새처럼 그렇게 말씀을 전하고 사자후를 토해 내겠습니다. 강단에서 그렇게 사자후를 토해내다가 가시나무새처럼 쓰러지면 더없는 영광일 거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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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2-08-1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매미목사가 들려주는 숲의 이야기
    우리 교회 장년여름수련회는 30년이 넘는 전통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해마다 여름이 되면 말씀을 준비하는 것이 얼마나 부담이 되는지 모릅니다. 오죽하면 장년여름수련회와 신년축복성회만 없어도 목회를 좀 쉽게 감당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할 정도이겠습니까. 그런데 코로나 때문에 교회에서 수련회를 하다가 3년 만에 오크밸리 리조트에서 하는데 새로운 설교를 창작한다는 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닙니다. 저의 서재에서 본당으로 가는 통로에 조그마한 공간이 있는데 주로 그곳에서 수련회 말씀을 준비하였습니다. 창문을 열어놓으면 새소리도 들리고 풀벌레 소리도 들리고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특별히 요즘처럼 폭염이 계속 될 때는 매미 소리가 얼마나 크게 들리는지 모릅니다. 매미는 일반적으로 알이 부화되고 나서 애벌레로 7년 정도 있다가 마침내 성충이 됩니다. 7년을 기다렸다가 겨우 1~3주 동안 울다가 장렬하게 생을 마치지요. 숫매미는 좀 크고, 암매미는 더 작습니다. 또 매미의 노랫소리도 다양합니다. 이들이 숲에서 아름다운 대합창을 이룹니다. 그럴 때면 마치 매미가 숲속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처럼 들립니다. 자기의 애벌레 시절부터 매미가 되어 숲에 나타나게 된 이야기까지 들려주려는 듯 노래하고 또 노래합니다. 매미에게는 시간이 없기에 어떻게든지 노래를 더 해야 합니다. 그런데 어떤 매미는 저녁에도 목청껏 노래를 하지요. 매미도 자야 되는데 마치 부르다가 죽을 노래를 부르는 것처럼 애절하고 처절하게 노래를 합니다. 저는 주로 숲속의 매미 소리를 들으면서 수련회 말씀 준비를 했습니다. 그래서 저 역시 매미가 숲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처럼, 3박 4일 동안 성도들에게 성경 숲 얘기를 들려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구속, 곧 하나님의 사랑 이야기를 말씀해 줍니다. 성경이라는 숲에는 다양한 하나님의 사랑이야기, 하나님의 은혜의 이야기가 원석으로 혹은 보화로 담겨 있습니다. 설교는 그 보화를 캐내는 것입니다. 보화가 원석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걸 잘 가공하고 세공을 해서 성도들에게 들려주는 게 성경의 숲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입니다. 이번 장년여름수련회의 주제는 ‘하나님의 시계를 선용하라’입니다. 룻기에 보면 하나님의 시계란 말이 전혀 나오지는 않지만 철저하게 하나님의 시간대로서 진행되는 것을 봅니다. 나오미가 모압에 가서 남편을 잃고, 두 자식도 잃었습니다. 아마 나오미의 시계는 멈출 정도가 됐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계는 멈추지 않고 그 시간대에 의해서 계속 가고 있었습니다. 룻기는 짧지만, 룻기만큼 하나님의 헤세드, 하나님의 인애와 사랑 이야기를 근원적으로 설명해 주는 곳이 없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번 수련회 때 하나님의 사랑의 숲, 하나님의 헤세드 숲 이야기를 노래하는 매미가 되리라고 결심했습니다. 3박 4일 동안 하나님의 구속과 사랑, 은혜의 숲의 이야기를 전달해 주는 매미가 되려고 합니다. 마치 매미가 마지막에 땅에 떨어지기 직전에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것처럼, 부르다가 죽을 노래를 부르는 각오로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그런 생각을 하니, 아일랜드의 전설에 나오는 가시나무새의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가시나무새는 뾰족한 가시나무만 찾아다니며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고 다닌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가장 뾰족한 가시나무가 보이면 그 가시에 자기 가슴을 콕콕 찔러서 피를 철철 흘리다가 죽습니다. 그런데 그 뾰족한 가시에 가슴을 찔러 죽을 때 가시나무새는 일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로 노래를 부른다는 것입니다. 저 역시 이번 장년여름수련회에 매미가 되고 가시나무새가 될 것입니다. 매미가 마지막에 땅에 떨어질 때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것처럼, 가시나무새가 가시에 찔려 죽을 때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것처럼, 다시 한 번 이번 여름수련회 때 매미 아니, 매미목사로 가시나무새처럼 쓰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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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2-08-07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꽃잎의 영혼들이여, 사무치는 이름들이여”
    미국 워싱턴에서 있는 한국전 참전용사 초청행사를 위하여 우리 성도들은 아시아나 항공으로 가기로 했고, 저는 대한항공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왜냐하면 아시아나 항공은 워싱턴에 운항하지 않고, 대한항공만 워싱턴으로 직항을 하기 때문에 대한항공을 타기로 한 것입니다. 그런데 나중에 아는 사실이었는데, 코로나 이후로 월요일에는 대한항공이 워싱턴으로 운항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과 몇일 전에야 워싱턴으로 가는 비행기가 아니라 뉴욕으로 가는 비행기를 탑승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 정보를 미리 알았더라면 성도들과 함께 아시아나 비행기를 타고 갔을 텐데 말입니다. 만약에 아시아나를 탔으면 그때 저희 교회 이원재 집사님이 기장으로 운항을 하였기 때문에 더 의미가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그것을 알게 된 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뉴욕으로 가서 뉴욕에서 다시 거반 6시간이나 차를 타고 워싱턴으로 왔습니다. 워싱턴에 오자마자 다큐멘터리 촬영을 하고 다음 날 오전에는 고(故) 웨버 대령 묘소에서 헌화를 하였습니다. 웨버 대령은 6.25 때 강원도 원주에서 북한군과 싸우다 포탄에 맞아 오른쪽 팔과 오른쪽 다리를 잃으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한국전 참전용사 메모리얼파크에서 한국전 참전용사 전사자들의 이름을 기록한 추모의 벽을 추진해 왔던 분이십니다. 그리고 스톰스 소령 묘지에도 헌화식을 했습니다. 이분은 장진호 전투에서 부하들을 살리고 혼자 중공군과 맞서서 싸우다가 전사하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장진호 부근에서 잠들어 있다가 2019년에야 유해를 찾아 알링턴 공동묘지에 안장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분의 묘지에 가서도 헌화를 하고 추모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저녁에는 팬타콘 호텔에서 400명의 참전용사와 그 가족들을 초청하여 선물과 만찬을 제공하였습니다. 만찬만 제공한 것이 아니라 그분들 대부분을 호텔에 투숙을 하도록 모셨고 전 비용을 저희 교회가 담당하였습니다. 특별히 30여명의 준비위원과 안내위원들이 와서 준비를 하고 안내를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초청받은 분들이 너무 감사하고 감동을 받으셨습니다. 다음 날은 한국전 참전용사 전사자 추모의 벽 준공식 행사에 참석하여 수천 명이 모여 있는 가운데 기념시를 낭독하였습니다. 수천 명의 청중 가운데는 연방 상하의원, 장차관들이 계셨고 우리나라의 이종섭 국방부 장관과 박민식 국가보훈처장도 참석을 하였습니다. 제가 민간인으로서, 아니 외국인 목사로서는 유일하게 강단에 섰습니다. 솔직히 저의 영어 발음이 콩글리시 수준입니다. 하지만 다른 순서들은 사람들이 웅성웅성하고 잡담들을 하는 분위기였지만 제가 강단에 섰을 때는 청중들이 몰입하는 분위기로 바뀌었습니다. 부족하지만 제가 하나님 앞에서 받은 사명이라고 생각하고 자신감 있게 기념시를 낭독하였기 때문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들어왔습니다. 끝나고 나니까 뒤에 앉아 있던 분들 중에도 한 사람도 잡담을 하지 않고 반응이 좋았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제가 앉은 자리는 메릴랜드 주지사 사모님이 앉은 자리인데 그분도 “정말 영어를 잘했다고, 감명 깊었다”고 격려를 해 주셨습니다. 제가 그 자리에 서게 된 것은 첫째는 하나님의 은혜이고, 성도들의 사랑과 헌신, 기도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김종대 장로님과 제니퍼 안 권사님이 애를 많이 쓰셨습니다. 기념시 ‘꽃잎의 영혼들이여, 사무치는 이름들이여’의 전문을 게재합니다. 6.25 전쟁의 화염 속에 타들어갔던 잿더미 한반도 그 폐허의 잔해 위에 전쟁의 폭풍이 몰아치고 있을 때 이름도 모르는 낯선 나라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거친 바다를 건너 총과 포탄을 실고 온 그대들은 포탄의 화염 보다 더 뜨겁게 타오른 불꽃이었으며 검은 잿더미 위에 낙화한 꽃잎의 영혼들이었거니 그 꽃잎에 촛농보다 뜨거운 눈물이 맺혔고 검은 재위에 꽃잎의 영혼으로 산화하였습니다 기억의 벽에 기록된 꽃잎의 이름들이여, 사무치는 이름들이여 피를 흘리고 상처를 입은 13만 5천의 꽃향기로 한미관계는 혈맹관계가 되었지만 그 피로 맺은 혈맹을 넘고, 경제군사동맹을 넘어 이제는 영적 동맹관계가 되도록 기도해 주소서 우리는 당신들을 잊지 않겠습니다 대한민국 사람들이 와싱턴에 오면 반드시 이곳에 들러 당신들의 이름을 기억하겠습니다 아, 가슴 절절히 외쳐 부르고 또 부르고 싶은 그 가슴 사무치는 꽃잎의 이름들이여 주님, 기억의 벽에 새겨진 자유와 평화의 수호천사들의 이름이 검은 폭풍이 몰아치는 휴전선 위에 사랑과 평화의 별빛으로 떠오르게 하소서 그 어떤 거친 바람에도 시들지 않을 자유의 꽃으로 피어나게 하소서 오늘 건립된 기억의 벽이 훗날 한반도 DMZ에서는 화해와 평화의 성막으로 드리워지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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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2-07-31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낮은 모습으로 하늘을 우러르겠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 건물을 준공한 이후부터 교회 안에 있는 서재 안 방에서 거해 왔습니다. 저희 집이 이사한 지도 1년이 다 되어 가지만 아직 집에 가서 하룻밤을 자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제 방은 동굴과 같습니다. 창문이 두 개가 있는데 둘 다 이중창으로 되어 있거든요. 그래서 어지간한 천둥이 쳐도 천둥소리가 안 들릴 정도입니다. 그렇다고 화장실 쪽에 있는 창문을 열어놓으면 자동차 지나가는 소리가 크게 들리고 반대쪽을 열면 환풍기가 있어 지하에서 뽑아 올린 좋지 않은 공기가 제 방으로 들어옵니다. 그래서 문을 닫고 환풍기로 강제 통풍을 시킵니다. 그러다 보니까 가끔 본당으로 가는 통로 쪽에 작은 공간이 있는데 거기서 글을 쓰고 설교를 준비할 때가 있습니다. 그곳에서 창문을 열면 뒷산의 맑은 공기가 그대로 들어오고 새 소리와 매미 소리도 들립니다. 그런데 하루는 그곳에서 여름수련회에서 할 설교를 준비하고 있는데 요란하게 “웨엥~~”하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입니다. 밖을 보니 누군가가 교회 벽 위에서 잔디를 깎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아무리 불러도 쳐다보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급히 비서까지 불러서 둘이 함께 소리를 쳤습니다. 그 이유는, 조금만 있으면 들꽃이 만발해 있는 곳까지 다 깎아버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목청을 다해 둘이 소리를 질렀더니 그제야 저를 쳐다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거기서부터는 풀을 깎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저렇게 예쁘게 피어있는 꽃들을 어떻게 잘라내려고 하십니까?” “저야 교회 요청에 따라 시킨 대로 일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제가 담임목사이니까 제 말을 따라주시면 고맙겠어요”. 그렇게 해서 다행히 들꽃들이 피어있는 곳은 깎지를 않았습니다. 저는 교회 담 위에 피어있는 꽃들의 이름도 몰랐습니다. 하얀 꽃이지만 손톱만 하게 피어있는 꽃이었거든요. 그러나 저 꽃들도 아름답게 피어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했겠습니까? 그런데 애처롭게 피어난 이름 모를 들꽃들을 제초기로 깎아버리면 얼마나 무참하게 쓰러져버리겠습니까? 꽃이란 유명하고 화사한 꽃만 소중한 것이 아닙니다. 이름 모를 들꽃이라 하더라도 꽃망울을 여는 순간 그리움이 되고 연인이 되는 것입니다. 연모함을 찬사하는 사랑이 되고 순결한 고백과 같은 존재이지요. 그러니까 꽃은 바라보기만 해도 애처롭거나 행복한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더구나 꽃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은 저에게 사랑의 손짓을 하는 모습과도 같이 느껴졌습니다. 며칠 후 다시 와서 보니까 꽃은 어엿하게 서 있습니다. 아주 작은 꽃이지만 그 난폭한 여름의 폭우를 맞고도 끝까지 고고하고 순결한 자태로 서 있었습니다. 물론 얼마 있으면 저 꽃도 지게 되겠죠. 하지만, 아직은 곱고 순결한 자태로 오롯이 서 있었습니다. 저 손톱만 한 하얀 꽃을 보노라니 가까이 가서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담벼락에 올라 깎여지지 않은 들꽃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가까이 가서 보니 어리고 여린 개망초 꽃이었습니다. 이름 모를 작은 들꽃도 있었습니다. 바람이 불었습니다. 꽃들이 흔들리며 저에게 이런 소리 없는 외침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당신 때문에 무참히 꺾이지 않고 이렇게 작지만 지금까지 순결한 모습으로 피어있습니다.” 저 여리고 한없이 부드러운 꽃을 꺾지 못하게 한 것이 무척이나 다행이라고 여겨졌습니다. 문득, 밤에 별빛을 사모하는 마음처럼, 아니 그 마음이 꽃잎에 어리는 듯했습니다. 갑자기 낮은 모습으로 하늘을 우러르고파졌습니다. 생각해 보면 이 지구촌 속에 저 역시 너무나 작은 존재에 불과합니다. 그렇지만 살아 있는 동안 이름 모를 저 들꽃처럼 바람이 불면 흔들리다가 아침이면 이슬 한 모금 축이며 저녁이 올 때까지는 작은 향기라도 풍겨내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 칼럼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2-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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