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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은 군답게 처신하라!
- 북한이 4일 원산에서 발사한 무기가 ‘북한판 이스칸데르 미사일’이 포함된 것이 유력하다고 다수 군사 전문가들의 분석이 나왔지만, 5일 오후 군(軍)은 거듭 “‘단거리 발사체’와 관련해서 정밀 분석중”이라고 밝혔다. 5일 오전 북한 매체들이 관련 사진들을 자체 공개한 이후 유엔 안보리 결의 정면 위반이라는 분석이 나온 상황에도 여전히 우리 군은 애매모호한 태도로, ‘낮은 자세’를 보이고 있다.도대체 왜 우리 군이 이렇게 되었는가? 강골이 없고, 초라한 정치군인들만 득실거리고 있는가? 청와대 행정관의 부름에 쪼르르 달려간 참모총장, 국방의 막대한 사명이 있음에도 백성들의 머리 위로 미사일이 날고, 수발의 포탄들이 발사되는데, 긴장감은 고사하고 제대로된 논평이나 대꾸한마디 못하는 이 불쌍한 군을, 이들이 과연 우리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줄 능력이 있는 것일까라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군인의 군인다움은 자신들에게 생명과 재산을 맡기고 있는 국민의 안전을 목숨으로 담보하는 것이며, 이를 위한 평시의 임전태세는 태산과 같아야 한다. 그런데 이들이 이런 일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권력의 향배와 권력의 관심과 권력의 목표가 무엇인지를 그 성능좋은 망원경으로 살피고 움직이고 있으니 진실로 한심한 노릇이요, 불쌍한 집단이다. 군이 군답지 못할 때 얼마나 초라해지고 못나 보이는지 아는가? 과거 군대는 쿠데타와 독재로 점절된 오명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때의 군 안에서도 그런 쿠데타와 독재에 저항한 군인다운 군인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 군대에는 그런 인물조차 찾아 볼 수 없다. 군의 명예가 짓밟히고 자존심이 뭉개지고 있는데도 아무도 나서는 이가 없다.박찬주 대장의 경우를 보라. 무죄 판결을 받은 이후 그의 일갈은 “적폐가 아니라 주류가 청산당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적폐를 명분으로 주류를 교체하고 있다는 그의 주장이 가슴에 서늘하게 와 닿는다. 그 사회의 주류는 좌도 우도 아닌 이 나라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세력이다. 그 세력은 위로부터 아래에 이르기 까지 골고루 분포되어 있다. 결코 청산당해서는 안되는 세력이다. 이것은 민주 사회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것이기 이 민주 사회의 주류가 청산되면 그 다음은 비민주 세력이 주류가 된다. 그 사회를 누가 감당할 수 있는가?그는 옥중에서 “마치 적국의 포로가 되어 적국의 감옥에 수감된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 이게 말이 되는가? 평생을 성실하게 복무한 군의 수장이 적국의 포로가 된 것 같다는 이 비정한 한마디가 우리에 던지는 멧세지는 무엇인가? 육군 대장이 수갑을 차고 포승줄에 매여 끌려 갈 때도 그 흔한 별들의 반응이라는 것이 참으로 비겁했다. 정말 비겁하고 옹졸했지만, 그가 무죄를 선고 받은 현실에서도 여전히 그들은 침묵하고 있다. 옷을 벗어야만 그런 말을 할 수 있다면 더 불쌍하고 무능한 군대다. 그런 그들을 믿는 국민은 없다.지금 이 군대가 전쟁을 수행할 수 있다고 보는가? 힘만 쎄 보이는 믿을 수 없는 전투력으로 포장된 덩치만 비대한 이런 군대가 정신력마저 엉망이니, 지구 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의 군대 앞에서 조롱을 받고 있는 것이 현실 아닌가? 북이 가지고 있는 핵무기의 위력에 기가 죽은 것인가? 그것을 없애는 가장 안전한 방법, 어떻게 해야 하는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길이 있는데 굳이 그 길로 가지 않으려는 이유가 무엇인가? 군도 그 길을 알고 있으면서도 왜 침묵하고 그 일에 동조하고 있는가?권력은 유한하고 국민은 영원하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그리고 우리 군이 지켜야 할 것은 권력이 아니고 국민이다. 왜 이 평범한 진리와 사실을 군이 굳이 외면하려 하지말라. 진심으로 군답게 정상으로 돌아왔으면 좋겠다. 그렇게 정치군인을 혐오하던 이 정권이 왜 이렇게 군인들을 정치 현장 맨 앞에 세우는지 모르겠다. 오늘 따라 군이 더 초라해 보이고, 그 별들이 창피스럽게 느껴진다.존재의 존재다움을 윤리라고 했던가? 군인이 군인다움이 군인윤리라면, 다시 한 번 우리 군대의 별들에게 당부한다. 정신차리라! 국민의 재산과 생명이 위협받고, 그 안전에 위태롭다. 당신들이 생명을 걸고 지켜야 할 이들이 그대들을 기다리고 있는데 그대들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그 별을 떼고 당당히 서민으로 돌아오겠다는 기세만 있다면, 이 군을 명예롭게 지킬 수 있다. 그대들이 그 잘난 보직에만 연연하여 비겁하다면 우리 국민은 여전히 적들의 칼날 앞에 포로처럼 떨며 사는 것을 보고도 칼을 뽑지 않는 만고 대역의 표식을 떼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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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은 군답게 처신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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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이 정치를 해야지…!
- 정치만큼 속물적인 것이 없어 경멸의 대상이 되는 것도 없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정치만큼 우리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도 없으니, 그래서 사람은 정치를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정치적 동물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모 목회자는 교회와 목회자들의 적극적인 정치 참여의 이유를 여기에서 찾고 있는 것도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정치는 목회만큼이나 수월하지 않는 분야라서 아무리 유능하셔도 겸직하기는 곤란하니 주의하시기 바란다.분명한 것은 정치는 고도의 기술과 전문성이 요구되는 분야이다. 인권 운동 조금하다가, 사회봉사로 이름을 얻고 NGO에 몸담아 명성을 얻었다고 불나방처럼 정치에 뛰어든 경우, 본래 그가 정치에 뜻을 두고 정치가로 입문하기 위한 과정이라면 모르겠거니와 순수한 운동가와 봉사자로 있다가 정치에 휘말리는 것이 바람직하지 못한 이유가 또한 여기에 있다. 여기에는 연예인이나 사업가 출신들도 같은 연장선상에 있다고 할 것이다.지금 한국 정치가 이렇게 엉망이 된 것도 비정치인 출신들의 전횡이 한몫하고 있음은 불문가지의 일이다. 순수이념지상주의 혹은 사상적 몽상가 성향의 인사들이 청와대 비서진을 이루고, 또 집권여당의 중심 축을 이루고 있다. 찬찬히 살펴보면 순수한 직업 정치인으로서 프로페셔날한 능력을 보유한 정치인이 손에 꼽을 정도이다. 지금 여당이 하는 일을 보면 그 폐해를 더욱 심각하고 이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라 생각하니 아프다.지금 정가의 최대의 관심 단어인 ‘패스트 트랙’은 국회법 제85조 2(안건의 신속처리)를 달리 부르는 말인데, 사안의 시급성에 따라 신속한 입법절차를 위해 만들어진 법이다. 그런데 지금 한국당을 뺀 4당이 추진하고 있는 ‘선거법 개정안’과 ‘공수처 설치법’이 과연 이 패스트 트랙에 합당한지를 따져야 한다. 건전한 상식인의 시각으로 볼 때 이것은 이해 당사자들끼리 수많은 토론과 토의를 거쳐 합의에 이르러야 할 권력 구조의 문제이며, 권력 감시 기구의 설치의 문제이다. 이것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인다는 것은 그 의지를 가진 집권세력의 무능이나 불순한 동기를 의심하게 하는 것에 더도 덜도 아니다.또한 이유야 어떠하든 제1야당이 이 두 안건의 패스트 트랙 처리를 결사적으로 반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1야당을 제쳐놓고 이것을 패스트 트랙으로 관철하겠다는 것은 이미 정치를 포기하겠다는 말과 같다. 아니면 원내 소수당인 야3당의 차기 총선 의석 확보를 위한 교두보 확보를 위한 당리당략, 여당은 안정적 의석 확보와 차기 총선과 대선의 승리를 위한 야합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정치가 아니다.필자가 전문 정치인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 여기에 기인한 말이다. 출신이야 어떠하든 상관없다고 치자. 적어도 정치의 기본인 양보와 타협은 완전히 상실되었다. 아니 아예 이런 것을 부담스럽게 여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어떤 뚜렷한 내적 목표, 아무리 저항이 심하더라도 반드시 관철시켜야만 하는 그 어떤 목표가 있기 전에는 절대로 지금처럼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미선 대법관의 비정상적인 재무 이력이라면 예전 같으면 벌써 날아갔을 후보가 버젓이 임용되었다. 그 이전에 임용된 다른 후보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다. 일단 앉히고 나서 여론을 무마하고 야당을 달래 보겠다는 것 자체가 정치를 정치답게 할 생각이 없다는 말이다.그렇다고 야당, 특히 제1야당인 한국당이 잘하고 있다는 말이 아니다. 이런 무능 무책임한 정권도 없는데 이것 하나 제대로 공략하지 못하는 못난 수구보수 꼴통짓을 그것도 나누어서 패거리고 하고 있으니 과연 이들에게 정치적인 미래가 있을까? 그나마 신선하게 영입된 황규안 대표에게 기대를 걸어보지만,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꼰대 이미지의 참모들로 과연 이를 돌파할 수 있을까? 근자에 벌어지는 한국당의 설화(舌禍)가 참으로 안타깝다. 어떻게 바른 말을 어떻게 저렇게도 못할까? 정치는 말이라는 데, 도대체 어디서 저런 말들을 배웠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정치가 정치다운 정치 윤리가 실종하면 민생이 괴롭다. 민생이 괴로우면 괴로움은 분노로 바뀐다. 그 분노가 쌓이면 역사의 물줄기가 뒤틀린다. 이 물줄기가 비틀리면 모두가 불행해진다. 현 정권의 도덕적 불감증, 무능함, 외교적 실책, 북핵 관리의 허상과 무대책, 이 모두가 아마추어들에 의해 진행된 불행한 귀결이다. 결국 이 정권은 북핵을 관리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삼척동자도 다 알고 있는데 평양도 알고 있는데 유독 꿈을 먹고 사는 그들만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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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이 정치를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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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의 이상과 현실, 그 화려한 딜레마
- 아우 아벨을 죽인 가인을 향하여 하나님은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낮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으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창 4:7)”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인간이 마음 중심에는 죄의 소원, 즉 죄를 향한 욕구는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서, 동시에 그 죄에서 벗어나고 죄를 멀리하려는 인간의 내적 갈등을 나타낸 말씀이다. 이것이 인간의 야누스적 성품이요 그에 따르는 고통이다.이런 인간의 감정은 누구도 예외없지만 특별히 정치인들에게 매우 강력하게 나타난다. 정치인치고 정당한 권력과 위국헌신을 위한 애국충정을 가지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렇지만 그것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권력을 지향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권력을 쟁취하고 그 권력을 유지하려고 한다. 이것이 정치인의 야누스적 성품이다.바로 이것이 정치인들의 과욕과 오판, 이로 말미암아 돌이킬 수 없는 역사적 죄인으로 만들고 만다. 우리 과거사에서 나라와 민족을 팔아먹은 매국노치고 애국과 애민을 내세우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절대로 그들은 사리사욕과 개인 영달을 위하여 그리하였다고 말하지 않는다. 오직 나라와 민족 그리고 백성을 위하여 그리할 수밖에 없었노라고 항변한다. 그러나 그들을 단죄되어 마땅하다. 이것이 모든 정치인 앞에 매설된 교묘한 함정이다.지금 집권여당과 정치인들을 보면 느끼는 감정이다. 이 사람들은 ‘한반도 비핵화’라는 거대한 성과와 열매를 자신들의 손으로 이루어내려는 야망에 불타고 있다. 그들이 ‘한반도의 영구적인 평화’라는 대의명분을 가지고 정권의 사활을 걸고 이 일에 올인한 까닭에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문제들이 ‘한반도의 비핵화’라는 유령의 포로가 된 듯하다. 이것만 이루어내면 그들의 장기집권은 따놓은 당상이며, 어떠한 정치적 도전도 이것을 넘을 수 없다고 믿는 듯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무지막지하게 모든 것을 포기하고 매달릴 수는 없는 일이다.‘한반도 비핵화와 영구적인 평화’는 5년 단임정권이 임기내에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기에 같은 정권이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논리가 곧 다음 총선과 대선에서 나올 것이다. 그 주장이 가능하도록 이 정권은 좌고우면하지 않고 오직 그 길로 매진할 것이다. 그러나 그 사이 우리는 자칫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다. 대책없는 ‘탈원전 정책’, 자유경제체제를 근본에서 뒤흔드는 ‘사회주의식 무상분배’, 한국 경제성장의 무모한 구조변경인 ‘재벌해체’ 등과 같은 일들이 서슴없이 진행되고 있다. 두려울 뿐이다.우리는 해방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경제와 사회 전반에 형성된 자유, 민주, 인권의 가치를 고양시키며, 자본주의 경제시장원리와 민주주의 정치 그리고 가치와 기회의 균등, 인권과 복지를 지향했다. 비록 이 과정에서 많은 시행착오와 적폐가 쌓인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을 기화로 그 자체를 허물어 버릴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런데 지금 정권은 소위 ‘적폐청산’이라는 미명으로 지금까지의 모든 성과를 부정하고 그들만의 이념에 부합하는 나라로 개조하기 위한 위험한 도박을 하고 있다.그들의 명분은 애국과 애민이며 이를 위한 것이 “한반도 비핵화”와 “한반도의 영구적인 평화”이다. 말은 맞지만 실천하는 방법은 틀렸다. 그들의 영구장기집권의 의지만 읽힐 뿐이다. 누구도 비핵화와 영구적 평화를 원하지 않는 사람이 없지만, 그것이 어떤 집단의 정권 창출과 유지의 수단이 되어서는 안된다. 나아가 그들 핵심의 사시사욕과 정치적 탐욕의 수단이 되어서는 더더욱 안된다. 국민을 미증유의 정치적 실험의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된다.지금 정권은 속히 정치적 야누스 성품을 벗어야 성공한 정권이 될 수 있다. 한반도 비핵화는 임기 4년과 5년의 미국과 한국 대통령이, 그리고 아무 것도 없는 평양 정권이 단기일에 해소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필자가 보기에 워싱턴과 평양은 이를 알고 있는 듯한데 오직 우리만 모르고 있는 것같아 안타깝다. 문제를 알고 접근하는 미북에게 항상 뒤통수를 얻어맞는 우리 정부의 처신이 딱하기도 하다는 뜻이다. 지금 문재인 정부가 성공하려면 자신들의 역할과 한계를 분명히 하고 그에 걸맞는 처신을 하는 것이 진정한 애국애민이요, 그 반대일 경우 매국매민인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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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의 이상과 현실, 그 화려한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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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류 ‘3S우민화정책’의 비극을 예언하며
- 소위 ‘3S우민화정책’은 2차세계대전 이후 일본 및 한국에서 Sports, Sex, Screen을 수단으로 정부에 대한 불만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는 정책 통칭이다. 12·12군사반란, 5·17쿠데타, 5·18무력진압으로 집권한 제5공화국의 취약한 정통성에 대한 저항의지를 좌절시킬 목적으로 시행된 것이다.당시 군부정권은 1981년에 ‘88하계올림픽’과 ‘86아시안게임’을 유치했고, 1982년 프로야구, 1983년 프로축구와 프로씨름, 농구대잔치를, 1984년 ‘한국배구슈퍼리그’를 출범시켰다. 1982년에 야간 통금을 시행 37년 만에 해제시킴으로 성매매 업소들이 급속히 늘어났으며, 대중적인 포르노 테이프 보급되고 에로 영화가 대거 제작되었다. 스크린도 예외는 아니었다. 1980년 컬러 TV 방송이 전국적으로 시작되었다. 당연한 사회적 발전현상일 수 있지만 군부는 우민화 정책이라는 의심을 피하지 못했다.이 3S 정책의 원조는 포르투갈의 총리이자 독재자였던 안토니우 살라자르가 시행한 3F 정책이다. 3F는 Futebol(축구), Fatima(포르투갈 카톨릭 성지, 신앙), Fado(포르투갈 유명 민속 음악)인데, 이는 이스타두 노부 시대 포르투갈의 우민화 정책이다. 안토니우 살라자르 총리가 1932~68년까지 의원내각제를 악용하여 독재정치를 펴는 동안에 활요한 것으로 한국 군부정권의 3S 정책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필자는 지금 사회를 뒤집어 놓고 있는 정준영 사건에 대하여, 이를 발본색원하고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처방이 나와야 함에는 이의가 없다. 그러나 이것이 국민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집권 세력이 불편한 부분을 감추려는 의도라면 신종 우민화 정책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지금 정부는 진퇴양란의 북핵문제, 드루킹 사건으로 인한 정권의 정통성 시비, 극단적인 경제불황으로 인한 서민경제의 침체 등등 실로 간과할 수 없는 중대한 정책적 실패에 의해 상당한 국민적 저항이 시작되고 있음을 알고 있을 것이다.이런 와중에 가장 자극적이고 감각적인 한류 스타와 그와 관계된 클럽의 패륜이 온 메스컴을 장식하고 있다. 한류의 정점에 있는 스타들의 일탈만큼 국민적 관심을 끄는 것은 없을 것이다. 그들의 퇴폐적이고 무례한 행동들과 이를 뒷받혀 준 경찰과의 컨넥션이라면 충분히 원만한 정치적 사건들을 묻어버릴 수 있는 폭발력이 있음도 사실이다. 가뜩이나 혼잡스러운 정치적 국면을 타개해 나가기 위해 시간이 필요한 정권으로부터는 더 이상 좋은 소재가 없을 것이다. 사실이라면 정당성을 가장한 위계요, 참담한 결과를 가져올 삼류정치의 전형이다.그런데 이 정부는 느닷없이 과거와 싸운다. 71년전 '여순사건'의 재심 확정되었다. 당연히 71년의 한은 풀어야 하나 시기가 절묘하다할 정도로 의심스럽다. 대통령은 친일과 빨갱이를 연결시키는 기묘한 화법으로 과거와의 싸움을 선도했다. 이 싸움은 백번싸워도 백번이기는 민족적 가치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 역시 3S정책의 또 다른 변형이다. 그러면서도 현재와의 싸움은 피했다. 서해호국 영령들은 외면하고 정치 일정을 소화했다. 한미동맹은 길을 잃고, 남북연락사무소 북측 인원이 철수해도 대책이 없다. 미세먼지 대책은 말과 시늉뿐이고 바람불기만을 기다리는 모습을 보면 그들의 주요 관심사는 아닌 것같다. 이런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 정치적 마약일거라는 추측이 그리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그러나 분명히 알 것이 있다. 마약은 투약 후 일정시간까지만 그 효력을 발휘하지만 그 시간이 끝나면 끝없는 후회와 무력감에 시달린다고 한다. 그 때문에 다시 마약을 찾고, 그렇게 그는 망가진다. 만일 정권이 그 잘못을 덮기 위하여 3S 같은 정치적 마약을 상습적으로 복용한다면, 이 정권의 종말이 처절하고 비극적일 것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언제나 독재자들의 정책은 당위와 필요로 포장된 현실로 나타난다. 정권이 이런 정책에 의존한다는 것 자체가 그들의 내부에는 치부와 썩은 오물들로 가득 차 있음을 자인하는 것이다.자신있다면 정직하게 나와야 한다. 자신들의 실패와 실정을 바로 알리고, 야당과 국민들의 매서운 문초를 감내한 다음 협력과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그래야 함께 사는 길이요, 그런 정부라면 아무리 야당이 물고 늘어져도 국민은 신뢰하고 따라갈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 반대로 허접하고 자극적인 것들로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고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려놓고자, 속이고자 한다면, 그 약효가 다하는 순간 무서운 국민적 저항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현 집권 세력이 정말로 명심해야 하는 것이 이런 필연적 사실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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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류 ‘3S우민화정책’의 비극을 예언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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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좌고우면하면 안된다
- 2013년 9월 초미세 먼지농도가 300㎍/㎥에 이르는 헤이즈(haze)라는 연무(煙霧)가 싱가포르 전체를 뒤덮었다. 마스크가 동나고, 초·중·고등학교에 휴교령이 내려졌고, 정부는 노약자들에게 안약, 비타민, 비상식량 등이 담긴 긴급 구호 물자를 제공하는 등 싱가포르는 국가적 비상사태에 직면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미세먼지의 발원지는 인도네시야였다. 오일과 펄프를 생산하는 기업들이 대규모 경작지를 개간하기 위해 보르네오와 수마트라섬의 열대림에 고의로 불을 지른 까닭이었다. 인구 600만명의 싱가포르에 비해 2억7천만명을 가진 인도네시아는 처음부터 싱가포르의 상대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싱가포르와 대국 인도네시아 사이에서 벌어진 미세먼지 싸움에서 싱가포르가 이겼다. 싱가포르의 정권은 자신들과 후손들의 미래를 위하여 좌고우면하지 않고 칭얼대지 말라고 빈정대는 강대국 인도네시아를 결국 굴복시켰다.지난 한 주간은 도저히 마스크를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미세먼지를 참기 힘들었고, 결국 마스크를 사서 쓰면서 치밀어 오르는 정부의 무능한 대응에 화를 낼 수 밖에 없었다. 최소한 이 미세먼지의 50%이상의 책임이 중국에 있는 것이 사실인데, 어떻게 중국을 향하여 말 한마디 못하는 이 정부는 어디에 관심이 있는가? 중국에게 일정한 책임이 있다는 우리 대통령의 말에 일개 중국 관리가 근거를 대라며 빈정거려도 대꾸도 못하는 참 비굴하고 못난 정권이다.어떻게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은 중국에 대하여 그렇게 호의적인가? 우리가 사드 때문에 그렇게 당하고 있을 때도, 미국과 정부를 나무라더니, 이제는 살인적인 미세먼지가 그곳에서 날아오는 데도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는, 그곳에서 밥도 제대로 얻어먹지 못하고 혼밥 외교 소리 듣는 중국에 뭐가 그리 아쉬워서 굽실거리는 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이 땅이 온통 중국발 미세먼지로 일주일 이상 경보가 발령되었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외교라인이 치밀하고 적극적으로 움직였고, 움직이고 있다는 소식을 들어본 적이 없다. 중국이 우리 대통령이 한마디 한다고 ‘네네’하고 나올 나라도 아니고, 어떻게든 면피하려는 북경의 멱살을 잡을 생각을 해야지, 말과 말 그리고 대책을 위한 대책으로 미세먼지가 막아지는 것은 아니다.필자가 가끔 중국에 들르면 공항에서부터 쌓여 있는 미세먼지는 정말 참기 힘들다. 그런 먼지가 그대로 날아들고 있는데, 이것의 근거를 대지 못해서 하급 관리로부터 대통령이 면박을 당해서야 되겠는가 하는 말이다. 도대체 우리 기상학자들은 뭘하고 있고, 주중 대사관은 또 뭘하고 있는가? 이 문제에 집권당은 꿀먹은 벙어리이고, 정부의 대책이란 것들이 가관에 가관이고, 여기에 대한 문책도 없고, 그냥 바람 불어 좋은 날만 계속되라고 빌고 있는가?중국은 우리 삶의 영역에서 어쩔 수 없이 같이 가야 하는 지정학적인 한계와 운명을 가지고 있다. 그러면 그들도 우리의 하늘에 대하여 책임이 있다는 당당한 따짐을 왜 못하고 있는가? 설마 그 하급 관리가 내놓으라는 과학적 근거가 미약해서인가? 그게 사실이면 중국에 대들지를 말든지, 그게 맞았다면 우리 대중 외교역량을 총동원하여 중국의 대책을 받아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진심으로 묻겠다. 지금 중국 눈치를 보아야 하는 이유가 북핵 때문인가?부탁인데 문재인 정부는 북핵 해결의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 우리 힘으로는 북핵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사실, 하노이 노딜의 30분전까지도 평화협정을 운운하는 그런 초라한 정보력과 신뢰도를 가지고 무슨 중재자 노릇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중재는 힘과 신뢰가 있어야 가능한 것인데, 청와대와 백악관이 엇박자를 낼 때부터 미국의 신뢰를 잃었고, 미국의 신뢰를 잃은 청와대를 평양은 신뢰하지 않는다. 거기서 무슨 중재자를 자임하겠다고 중국의 눈치를 보고 있는가?문재인 정부가 북핵 신드롬에서 벗어나는 순간, 더 대담해질 수 있고 당당해질 수 있다. 어차피 북핵은 한미가 협력하여 북의 동의를 받아내는 길밖에는 없다. 어차피 홀로 불가능한 일에 업적을 남기려고 애쓰지 말고, 후손들의 맑은 하늘을 위해 당장 특사를 파견하여 북경과 담판하라. 싱가포르의 사례가 시사하는 바가 많다. 국민의 안전과 행복을 위한 정부의 간절함이 상대가 누구든 이기게 할 것이다.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북핵, 오직 그 하나를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겠다면 우리는 문재인 정부의 북핵에 관한 근본적 입장을 의심할 수밖에 없음을 경고하는 바이다. 문재인 정부가 지금 좌고우면하면 우리 자손들의 미래가 너무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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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좌고우면하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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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토끼라고! 집토끼! 집토끼! 집토끼!
- 1992년 미 공화당 조지 부시 대통령이 재선에 도전하며 빌 클린턴과 맞붙었던 대선이 있었다. 당시 부시는 군수산업 불황 등 경기부진 등으로 실업률이 7%를 넘긴 상황에서도 특별한 경제비전을 제시하지 못했다. 반면 빌 클린턴은 버스유세라는 새로운 방식의 선거유세를 하면서 부시를 향해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It′s the economy, stupid!)’라는 슬로건으로 유권자들의 마음을 얻었다. 이 때문에 공화당의 너거티브 전략, 즉 클린턴의 주지사 시절 제니퍼 플라워스와의 성추문, 병역 기피문제, 마리화나 흡연 의혹 등을 집중 제기했지만 실패했다.‘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라는 단순하고 명쾌한 함의(含意)를 왜 우리 정부는 모를까? 노무현 대통령은 재임 중에 “남북문제만 잘되면 다른 모든 것은 깽판을 쳐도 된다”고 말해 논란을 일으킨 적이 있다. 물론 남북문제가 잘되면 모든 면에서 새롭고 긍정적인 페러다임이 형성되겠지만, 그것이 잘 되려면 가장 중요한 것이 경제임을 모르고 한 말이라면 그는 정말 바보다.김정은이 왜 싱가포르로, 또 3일이나 기차를 타고 하노이를 가는 원맨쇼를 했을까? 이유는 단 하나, 돈 때문이었다. 견딜 수 없도록 고통스러운 경제제재를 풀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만일 그들의 경제가 웬만했다면 그는 절대로 핵포기 운운하며 구걸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을 협상장으로 끌어낸 것은 우리의 경제력과 국제적 협력에 의한 강력한 제재 때문이다.만일 정부가 진정으로 북핵문제를 해결하기를 원한다면, 그 초점을 북핵에 맞추지 말고 우리 경제에 맞추고, 경제제재를 더욱 견고히 유지해야 한다. 만일 우리 경제가 흔들리고 제재의 틀이 흔들린다면 북한은 즉시 그들의 길을 갈 것이 명백한 사실이다. 북한을 협상장으로 끌어낼 수 있는 것은 무력도 외교도 아니다. 오직 돈이었다는 사실을 정부가 모를 리 없다.그래서 정부를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이다.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먼저 무엇을 주어야 한다는 말은 형식상 맞지만, 내용상으로, 현실적으로 또한 경험적으로 전혀 타당하지 않은 말이다. 지금 북한은 핵을 이용해 미국과 우리로부터 받아낼 무엇인가를 계산하고 있다. 그들이 핵이 필요한 이유도, 핵을 포기해야 하는 이유도 모두 생존을 위한 것이다. 그런데 핵을 포기하기도 전에 생존의 길을 열어준다면 핵을 포기할 이유가 없어진다. 이것을 모른면 바보다.정부는 국민적 지지와 사회적 안정이 있어야 북핵문제 해결이 가능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국민적 지지와 사회적 안정은 당연히 경제 성공에서 온다. 그런데 온 국민과 기업이 IMF 때보다 더 힘들다고 아우성인데 정부는 이들의 아픔과는 정반대로 가고 있으니 이해못할 일이다. 국민은 정부의 국정철학이나 통치이념이 무엇이든 그 결과가 자신들의 안정과 행복에 직결되지 않는 한 정부에 협조하지 않는다. 개인의 행복을 희생하면서까지 국정운영에 협조하던 시대가 아니라는 말이다. 결코 이것을 도덕적으로 문제있는 행동방식이라고 탓하면 안된다.정부는 지금이라도 경제정책 전반에 걸쳐 혁신적 수정과 일대 전환이 필요하다. 이 따위 아마추어적인 실험 경제로 인한 고통을 국민들이 참아내고 분담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이상주의자들의 실험성 경제 정책의 실패가 낳은 결과일 뿐이다. 노무현 정부 말기에 골퍼가 OB를 내도 노무현 때문이라는 말이 있었다. 국민적 정서가 그렇게 돌아가면 정부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식물정부가 된다. 그런데 정부는 그토록 중요한 경제성장과 사회적 안정을 제쳐두고 익지도 않은 북핵해결의 열매를 따려고 한다.경제가 망가지고, 기업이 정부를 믿지 못해 자구책을 마련하고, 수출이 둔화되고, 가뜩이나 힘든 데 숨조차 제대로 못쉬도록 미세먼지가 하늘을 뒤덮는데도, 정부는 오로지 북쪽만 바라보고 있다. 일의 선후도, 방법도, 생각도 모조리 이념주의자들의 이상적 아마추어리즘의 환영을 벗어나지 못하니 슬픈 일이다. 결국 이 모든 고통을 국민들이 감당해야 할 것을 생각하니 더 슬프다. 하기야 역사를 돌이켜 보면 국정혼란과 망국(亡國)의 사단은 위정자들이 만들었지만, 그 국난의 극복과 해결은 언제나 민초들의 몫이었다. 그래서 다시 허리띠를 졸라매고 스스로를 위해 출발의 행장을 다시 꾸리겠지만 그래도 소리치고 싶다.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It′s the economy, stupid!)’! 집토끼라고! 집토끼! 집토끼! 집토기! 바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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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토끼라고! 집토끼! 집토끼! 집토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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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하노이, 그리고 시작되는 핵 공포
- 27일에 베트남에서 김정은을 만나기로 한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15일 핵 협상을 서두르지 않을 것이며, 단지 북한이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실험을 원치 않는다는 충격적인 발언을 했다. 이것이 얼마나 많은 우려를 갖게 하는지 모르겠다. 지난 싱가포르에서 열린 제1차 북미 정상회담을 준비하면서 북한의 핵무기를 없앨 것이라고 호언장담하던 트럼프, 실제로 많은 전문가들이 그에 준하는 결과물을 낼 것을 예측했다. 그러나 막상뚜껑이 열린 회담결과는 북핵에는 손도 대지 못한 채, 한·미 연합훈련 축소와 같은 한미동맹에 균열을 가져왔다.그런 경험을 가진 우리로서는 시작부터 “단지 북한이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실험을 원치 않는다”는 그의 발언을 심각히 받아들이는 것을 터 잡으면 안된다. 기세등등하게 시작했던 1차 회담의 결과가 그렇게 참담했는데, 시작도 하기 전에 저런 입장이면 충분히 그 결과를 예견해 볼 수 있다. 우리가 기다리는 결과는 “북핵 핵심 시설들의 신고와 검증의 보장 그리고 명확한 시한”이다. 이것이 담보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단순한 정치 이벤트에 불과할 것이고, 그런 결과는 트럼프의 재선가도에 치명적인 결함으로 작동할 것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의 눈에는 트럼프가 자신의 재선을 위해 기묘하게 포장된 정치이벤트를 만들고 있는 듯이 보인다. 그는 단지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실험만을 막고 그것을 대선용으로 활용할 포장술을 구사하는 것 같다. 그것도 과대포장에 허위 내용물로 말이다. 정말 저급한 장사꾼의 속셈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을 필연적으로 북학의 핵무장을 정당화해주고 궁극적으로 핵보유국으로 가는 대로를 열어줄 것이다. 이것은 지금까지 핵개발에 성공했던 나라들 중에서 결국 핵보유국이 된 인도, 파키스탄의 경로와 거의 유사하다.더욱이 가관인 것은 이 회담을 지휘해온 폼페이오 장관이 이번 협상으로 남북교류의 물꼬를 터 줄 수 있을 것 같은 대북 유화발언이다. 미국이 폐기를 요구하는 영변 핵시설은 이미 그 수명을 다했다. 북한으로서는 버려도 전혀 아까울 것도 없고 더 이상 쓸모도 없는 연변 핵시설을 폐기대상으로 삼는 것은 미국의 중대한 실수든지 아니면 손쉬우면서도 허울좋은 전리품을 챙기려는 정치적 꼼수로 볼 수밖에 없다. 북한은 이미 버린 영변 핵시설을 내주고 미국의 힘으로 남북경제교류를 틀려고 한다. 전리품을 노리는 미국을 가지고 노는 현상이다. 결국 그렇게 될 것이다.왜냐하면 우리 정부도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이 속히 재개되기를 고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으로서는 전혀 거리낄 것이 없는 거래의 조건이다. 북한이 간절히 원하고, 남한이 미국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에서 미국은 영변핵시설 폐기라는 구체적인 결과물을 챙기고, 한국에 남북교류 OK 싸인을 주면 된다. 미국은 허울 좋은 성과물을 얻고, 한국은 북한에 자금줄을 대어 주고, 북한은 자금을 얻고 경제제재의 틀을 깰 수 있다. 누가 이 협상의 승리자인가? 결국 핵보유국으로 인정된 북한을 머리에 인 우리는 핵의 포로가 되어야 한다.트럼프의 장사꾼적 판단이 미국 정치에 그대로 적용되리라는 생각은 오산이다. 이미 그의 장사꾼적 정책들이 곳곳에서 파열음을 내며 미국의 위상을 흔들고 있다. 자국 경제를 살리고 자국의 이익만을 지키면서 동맹국을 위험으로 몰아넣은 정책은 미국과 국제 사회에 돌이킬 수 없는 불행을 야기할 것이다. 왜냐하면 미국의 국익은 단순히 미국 내 경제가 돌아가는 것으로 보장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의 이익은 모든 우방 동맥국들의 이익과 필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것을 간과하고 자기 이익만 챙기려는 트럼프를 장사꾼이라고 폄훼하는 것을 나무라지 말라. 한곳이 뚫린 제재는 더 이상 제재로서의 효과를 낼 수 없다. 북한이 협상으로 나온 이유가 제재 때문인데 어느 한 곳에서라도 생명수가 공급되면 북한이 비핵화를 서두를 아무런 이유가 없다. 적어도 핵은 자신들의 생존 수단이기에 미국의 정통한 정보통들은 북한은 결코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다. 이것을 백악관이 모를 리 없다.올해가 삼일독립운동 100주년이다. 그렇게 되찾은 나라이다. 이제는 정말로 아름답고 행복한 나라를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텐데,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담보할 세기적 담판에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 하기야 트럼프가 우리에게 역할을 주지 않으니 이를 어찌하겠는가? 일제의 폭압에서 벗어난 우리가 이제는 핵의 공포아래 살아야 한다. 화려한 TV쇼를 준비하고 있는 미국과 북한을 보면서 느끼는 씁쓸함이 가슴을 채우는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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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하노이, 그리고 시작되는 핵 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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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유공자 명단 공방, 5,18단체가 해결하라!
- 2019년 2월 8일 자유한국당 김진태 의원을 포함한 3명의 국회의원이 주최한 5.18민주화운동 관련 공청회에서 발생한 ‘민주화운동 모독 논란’이 확산되는 가운데 김진태 의원이 연일 ‘유공자 명단공개’를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그 속에는 ‘북한군 개입’이라는 듣기도 민망한 의심이 있고, 공개되지 않는 한 이 의심을 거둘 생각이 없고 점점 더 확신시키겠다는 의도를 감추지 않고 있다. 김 의원은 자신의 입장문에서 막대한 혈세가 들어가기에 알 권리 차원에서 5·18유공자 명단을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2일 자유한국당 제주도당 간담회에서도 “명단을 공개하지 못하는 이유를 알 수 없다”며 “명단 공개 거부가 의구심을 키우고 있다”고 주장했다.분명한 것은 김 의원이 정부가 이를 공개하지 못하는 합법적 이유를 알고 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공개를 집요하게 요구하는 배경에 대한 합리적 의심과 분석이 필요하다. 서울행정법원은 2018. 12월 채모 씨 등 102명이 국가보훈처를 상대로 낸 정보공개거부처분 취소 소송에서 “5·18 유공자 명단과 공적 사항은 유공자들의 개인정보로서 공개하지 않는 것이 적법하다”며 원고패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5·18 유공자, 유족 등 명단과 사망·행방불명 등 경위·원인에 관한사항을 일률적으로 공개할 경우 사생활의 비밀, 자유가 침해될 위험성이 크다”며, “5·18 유공자 외에 국가유공자, 고엽제 후유증 환자 등 다른 유공자의 명단도 공개하고 있지 않다”고 첨언했다.이를 김 의원이 모를 리 없음에도 집요하게 요구하며,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는 한 북한군의 5·18개입설을 기정사실화시키겠다는 위협을 노골적으로 확산시키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5·18의 역사적 의의와 가치를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 필자도 이 시기에 현역 군인으로 무전기를 들고 상황을 지켜보다 전역한 사람으로서, 이 시대의 역사가 북한군 개입 폭동으로 먹칠되는 것을 그냥 지켜볼 수는 없다.여하튼 정부는 법과 규정에 막혀 공개를 거부하고, 또 공개할 방법을 찾거나 강구하고 있지 않고 있다. 그러면 이 논쟁은 끝이 없을 것이고, 그 와중에서 국론은 분열과 대립을 면치 못할 것이고, 무익한 이념논쟁과 사실논쟁으로 국력의 피폐와 퇴보는 기정사실화될 것이다. 우리가 현대사에서 배운 것은 정부가 못하면 민간이 한다는 것이다. 이 난제도 정부가 풀 수 없으니 민간이 풀자. 현행법으로 안되니 국민적 합의와 당사자의 용기로 풀자.5년 전 국가보안법 철폐운동이 정점에 다다랐을 때, 필자는 당시 여당이던 한나라당을 향하여 그들이 종북좌파라 부르는 이들에게 시달리지 말고, 먼저 앞장서서 국가보안법의 수정을 발의하고 추진하라고 강권한 바 있다. 그 법의 정당성과 필요성을 떠나서 그 실체에 대한 또 다른 실체의 시비가 계속된다면, 당사자가 먼저 나서서 선제적으로 해당 문제를 다루는 것이 합법과 당위와 현실적 필요를 근거로 버티는 것보다 훨씬 더 안전하고 빠른 길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번 경우에도 같은 것이다.5·18 단체가 나서라. 이 운동이 민족적인 자부심과 명예로운 운동으로 남고, 북한군 개입설 같은 것으로 모독당하지 않도록 스스로 이 문제를 풀어내는 것이 가장 좋다. 모든 국민들이 5.18의 정신과 숭고한 희생을 귀하게 여기는 마당에 그 명단이 공개됨으로 당하는 불명예는 없을 것이고, 일부 고약한 세력들이 또 그 명단을 가지고 또 다른 시비를 걸겠지만 그 때부터는 국민적 나무람에 견디지 못할 것이다.필자는 5·18 단체의 침묵을 이해할 수 없다. 자신들의 공로와 명예가 이상한 것으로 매도당하고 훼손당하고 있고, 또 정부는 합법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데, 5·18 단체마저 그런 요구와 주장을 외면하고 정신나간 사람들의 일방적 시비로만 받아들인다면, 공격하는 분명한 실체가 있는 현실에서 5·18은 그 소중함에도 불구하고 끝없이 시비와 도전으로 정신과 가치가 훼손될 가능성이 충분하다.그래서 5·18 단체들이 이 문제를 정부와 여론에 맡기지 말고 자체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필자가 전역하면서 받은 국난극복기장이 부끄럽다고 느낀 것은 전역한 후 제법 시간이 흐른 뒤였다. 처가인 광주에게 미안하고, 역사의 현장에서 군복을 입고 있었던 것이 유감이었다. 그렇기에 광주는 스스로 이 역사적 왜곡을 가져오는 거친 올가미를 벗겨 줄 의무가 있다. 광주와 5·18 단체가 해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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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유공자 명단 공방, 5,18단체가 해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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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와 전적으로’의 수사학
- 최근 인구에 회자된 손석희 사장의 불미스러운 이야기가 몰고 온 엄청난 파장은 정말 이 시대의 지도자들에게는 누구나 할 것 없이 정신이 번쩍 들만한 충격이었을 것이다. 아직은 아무것도 밝혀진 것이 없고, 수사도 초기 단계이니 그 내막을 언급하는 것은 부당하고, 다만 추정에 추론을 통한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의심을 받기에는 충분한 조건을 갖춘 이 일을 보면서 적잖게 실망하는 이들이 작지 않음을 보고 있다.그 이름 하나만으로도 언론인들의 우상이 되고, 그의 보도에 무조건적인 신뢰를 보냈던 사람들은 물론 그에 대해 불편한 감정을 가졌던 사람들은 일제히 그를 향해 날을 세웠다. 손 사장은 모든 소문과 보도를 찌라시로 일축하며 법적 대응에 나섰지만,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곱지 않는 것은 그 만큼 이 일이 가진 파괴적 폭발력 때문일 것이다. 이 일이 사실로 밝혀지면 발생하게 될 사회적 파장에 대해 적지 않는 고민이 있는 것이 식자층의 걱정일 것이다.대부분의 유명인이 그러하듯 문제가 터지만 강력하고도 단호한 어조로 대응하고, 이어 법적 대응으로 그 일이 더 이상 확산되어 사회적 문제로 확장되지 않도록 차단하고, 가급적 법적에서 그 시시비비를 가리는 방법을 선택한다. 그래서 그들을 더욱 더 “절대로, 전적으로”라는 말을 앵무새처럼 되뇌인다. 이번에도 손석히 사장은 여지없이 이런 길로 가고 있다.이보다 앞서 발생한 손혜원 의원 사건에서도 비슷한 길을 가고 있음을 보고 있다. 그는 0.001%라는 표현을 썼는데, 그 표현을 쓰는 순간 생각이 있는 사람들의 표정은 모두 일그러졌다. “저 사람도 역시 그렇구나”라며 그의 유죄를 확신한 것이다. 지나친 긍정은 부정이라고 했다. 그렇게 말하지 말고 차라리 “부족한 사람이지만 한번 따져 봅시다.”라고만 이야기했다면 기다려라도 보겠는데 그의 단호한 일도양단의 어법이 그 인내초차도 잘라내고 말았다.그런데 어쩌면 목회자들이 가장 쓰는 말이 “절대로, 전적으로, 혹은 0.001%”가 아닌가? 절대주요 창조주인 하나님의 절대진리를 선포하고 가르치는 목회자가 당연히 이런 말을 쓸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유일신의 유일구원의 교리가 더욱 더 이런 단호를 선호하게 만들었다. 그러다 보니 목회자들이 설교와 성경공부의 영역을 넘어서서 모든 일상에 이르기까지 자신들의 주장에 대한 절대적 신임과 가르침에 대한 전적인 신뢰, 그리고 자신만의 거룩성을 내세워 0.001%의 완벽을 주장하고 있다. 이는 매우 위험한 일이다.어느 글에서 읽은 적이 있다. 한 목사님이 강단에서 하도 자기 자랑만 하기에 장로님들이 노회장에게 가서 대신 좀 말려달라고 부탁했더니, 그 목사님이 우연한 기회에 자기자랑만 일삼던 그 분과 식사를 하면서, “요즈음 목사들 중에서 강단에서 자기 자랑만 늘어놓은 사람들이 너무 많아”라고 에둘러 말했더니, 그 목사님이 무릎을 치며 하시는 말씀, “내 말이 바로 그 말이야. 도대체 왜들 그렇게 겸손하지 못한지 모르겠어. 감히 강단에서...!” 이런 발언에 노회장 목사님은 더 이상 말을 못하고 말았다고 한다.전두환 전 대통령이 연설문에서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가 “본인은”이었고 히틀러와 무솔리니 역시 “나”라는 주어를 그렇게 많이 사용했다고 한다. 이는 이들은 심리적으로 자신들의 힘과 권력을 과시하려는 욕심 때문이라는데, 이런 의식이 우리 교회와 목회자들에게는 없을까? 절대진리, 절대주를 선포하는 우리들이 어느 시점부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을 절대화하고 있지는 않을까하는 합리적 의심을 지울 수 없다.손석희 사장과 손혜원 의원 사태를 보면서 우리 목회자들이 얼마나 말과 행동에 조심해야 하는 지를 더욱 절박하게 느낀다. 성도와 교회를 위하여 목회자의 입은 더 무거워야 한다. 더 이상 세치 혀로 한국교회와 젊은이들을 힘들게 하는 못난 종은 되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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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와 전적으로’의 수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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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프리즘을 다시 열며…!
- 2004년 3월 22일자 “검증의 엄중한 책무”을 시작으로 기독 지성인의 시각에서 “임성택 교수의 시사프리즘”이라는 창을 통해 교회와 동역자들을 향하여 이야기하다가, 2010년 9월 9일 “시사프리즘을 닫으며”라는 글을 마지막으로 그 창을 닫았다. 그 이유는 부족한 사람이 소속한 대학의 총장에 선임되었기 때문인데, 이제 그 소임도 다하고 또 그 후의 개인적인 어려움을 해소한 이후, 이제 기독언론의 한 부분을 담당하고자 새로운 마음으로 이 창을 다시 열었다. 그 동안 수많은 분들의 격려와 도전을 받으면서 기독언론의 소중함을 경험하였으며, 건전한 기독지성의 비판과 대안제시가 한국교회를 새롭게 이끌어 가는 한 축이 되어야 할 것을 다짐하면서이다.“검증의 엄중한 책무”라는 글로 시작한 이 프리즘이 말하고자 했던 것은 각 분야 우리 사회 지도층이 얼마나 신중하게 처신해야 하는 지를 밝히고 싶었고, “Acid Test”라고 불리는 “가장 혹독하고 철저하게 학술적, 사회적, 역사적으로 어떤 대상을 검증하는 것”이 특별히 우리 교회에 적용되어야 한다는 심정으로 글을 써 왔다.개인이나 집단이 그 사회에서도 최고의 존경과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당대의 “Acid Test”를 통과해야 한다. 미국 의회 정치의 청문회 기본 정신도 여기에 기인하고 있을 뿐 아니라, 고위층과 사회 지도층에 대한 도덕과 윤리적 평판의 잣대로서는 법률에 의한 재판의 판결보다 더 권위를 가진다. 아무리 동료 의원이라도 비리 혐의에 연루되면 가차없이 체포동의안을 가결시키는 그들의 선진 정치의식의 배경도 바로 시민사회의 “Acid Test”를 의식한 것이다.주 사회의 지도계층의 생명은 능력보다도 도덕성이다. 도덕성에 기초하지 않는 능력은 위험하기 짝이 없는 것이며 그것은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가치일 수밖에 없다. 조선말기 뛰어난 인재들이 그 능력으로 나라를 매국하는 앞장섰던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는 가를 우리는 새삼 되새겨보아야 한다.이렇게 중요한 검증은 국회 청문회나 청와대 인사라인의 몫만은 아니다. 어쩌면 사회적 검증의 책무는 언론에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누가 뭐라고해도 검증의 중심에 언론이 있다. 언론은 집요한 추적과 비평과 여론의 집약으로 썩고 곪고 상하기 쉬운 사람과 구조에 대하여 현미경 같은 정밀함과 수술칼 같은 예리함으로 다가가야 한다. 언론이 이런 일들을 수행할 능력이 있고, 법적으로 그것이 실질적으로 보장될 때 비로소 정치 선진국이라 할 수 있다.하지만 언론이 주의하고 조심하여야 할 일이 있다. 무엇보다도 언론이 권력화 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며 실제로 현실이기도 하다. 그래서 특히 신문은 논리의 공교함만으로 멋부리는 글을 버려야 하고, 집단의 이익을 감싸는 필(筆)도 거두어야 하며, 야당이든 여당이든, 정부든 민간이든 가리지 말고, 광명한 미래를 위하여 정론직필(正論直筆)의 기치를 들어야 한다. 나아가 기독교 언론은 여기에 하나님의 나라의 실현이라는 기독교적 책무를 더하여야 한다.그러므로 논리적 허구를 쫓지 말고, 외부의 교활하고 무지한 힘의 논리에 휘둘리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만 이 검증의 엄중한 책무를 다할 수 있을 것이다. 언론은 누구를 감옥에 가둘 권한이 없지만 사회적, 윤리적 감옥에는 가둘 수 있으며 또 석방시킬 수 있다. 비록 법정이 무죄로 석방해도 결코 사회적으로 윤리적으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사람을 언론은 가두어야 한다. 아무리 실정법이 정죄해도 인간의 인간됨을 위해 투쟁한 사람은 풀어주어야 한다. 이것이 언론의 사회적 책무이다. 바로 이 시점에서 Acid Test의 주역들의 새로운 다짐과 결의가 있어야 할 것이다.이제부터 필자는 공허한 논리나 주장으로 글을 채우지는 않을 것이다. 구체적인 현실과 부딪히며 개인과 개교회 그리고 집단자체를 해부하고 논고할 것이다. 여기에서 아픈 이들과 억울하다고 하는 이와 토론하고자 한다. 그리고 결코 누구를 해하거나 폄훼하지 않을 것이며, 격려하고 세워주며, 함께 가는 동반자의 길을 고민할 것이다. 앞선 자가 아닌 동행자이며, 가르치는 자가 아닌 동역자의 길을 찾을 것이다. 이 글로 독자 제위와 다시 만나게 됨이 심히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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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프리즘을 다시 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