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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천지, 그리고 이태원의 그 클럽?
    누가 그런 농담을 했다. “이번 코로나19 바이러스, 참 대단해. 신천지를 박살내더니 이제는 동성애자들 다 잡네!” 누군가 장난스럽게 올린 댓글치고는 목회자인 필자에게 던지는 작은 울림이 있었다. 바이러스가 대구에서 신천지를 중심으로 급격히 퍼져나가고 있을 때, 그 엄청난 사회적 파장의 비난은 애궂은 교회가 직격을 당했다. 마치 교회가 바이러스 전파의 전적인 책임이 있는 것처럼 뒤집어 씌우며 사회적 거리를 명분으로 교회의 예배를 합법적으로 막았다.정권이 지목한 교회에는 수백명의 공무원을 그것도 일요일에 파견하며 감시 감독하던 이들이 그 때에도 여전했던 클럽을 포함한 유흥시설은 관리 흉내만 내고 있었다. 그렇게 극성을 부리던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잦아들 무렵 급기야 이태원 클럽에서 결국 대형사고가 다시 터지고 말았다. 그런데 이것이 참으로 묘한 흐름을 보여 주었다. 신천지 신도와 동성애자들의 공통점이 일을 키우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신분을 밝히기가 극히 곤란한 그들의 처지였다.신천지 신도들은 자신이 신천지 신도임을 밝혀지는 것을 극도로 꺼렸는데, 동성애자들의 노출은 신천지 신도들의 그것보다 더 극심하고 부정적이어서 어떤 불이익을 감수하고라도 더 깊이 숨어들 것이 분명하다. 이 때문에 이들의 동선 파악이 불가능함으로서 역할조사는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모르긴 몰라도 정부와 서울시가 아무리 위협을 가해도 그들은 점점 더 깊은 그늘로 숨어들 것이다. 이들을 끌어낼 묘안이 백출이지만 그 실효성은 의심스럽다.그런데 어제, 김경수 경남지사가 11일 자신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문승욱 국무조정실 2차장에게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의 발언을 지적하는 문자를 보냈다고 한다. 김 지사는 이날 문 차장에게 "좀 전 중대본 회의 시 보건복지부 장관의 이태원, 논현동, 익선동이 성 소수자들의 이동경로이니 적극 대응해달라는 발언은 대단히 위험한 얘기"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김 지사는 "성 소수자 차별일 뿐만 아니라 이태원 클럽 확진자 발생에 대한 정부 대응이 성 소수자를 타깃으로 하고 있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발언"이라며 "장관님 인식이 그렇다는 건데 걱정"이라고도 했다.중대본 회의에서 이태원, 논현동, 익선동 내 감염자 파악 및 방역 관리에 대응하면서 필연적으로 등장하는 동성애자들 문제를 두고 언급한 내용 중에서 동성애 관련 발언 자체를 막아버린 김지사의 모습에서 얼마 전 교회를 향해 인정사정 없이 퍼붓던 그들의 독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정권이 공정성을 잃어버렸다는 반증이며, 교회에 대한 그들만의 뚜렷한 목표가 있다는 가설을 증명하고 말았다. 실상 신천지를 제외하고 일부 교회의 일탈적 과도함이 빚어낸 것을 제외하고는 크게 무리를 일으킨 적이 없다.그러나 이태원의 클럽과 그 출입자들은 성질과 다르다. 클럽의 밀착성과 익명의 접촉이 가져올 참사에 가까울 전염, 그리고 그들 대부분은 젊은이들이고 그들의 왕성한 활동력은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을 것이니 그 전파력은 가히 설명하기 힘들다. 그 가운데 동성애자들은 자의든 타의든 신천지 신도보다 더 깊이 숨어들 것이고, 아마 그 추적이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그런데 이들을 건드리지 못하고 숨도록 도와줘야 한다는 취지로 들리는 김지사의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교회는 사태 시작부터 번지수가 틀렸다고 수없이 말해왔다. 유흥업소, 이곳에 가장 위험하고 사태 감당이 어려우니 이를 단속하라고 할 때도 그들은 오직 교회 예배만을 막는데 집중했고, 사태가 다시 벌어진 지금에도 그들은 여전히 특정인들을 감싸고 있다. 도대체 설명불가능한 이들의 언행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정말 정부는 교회와 대립각을 넘어 타도의 대상으로 보고 있는가? 동성애자들을 위하여 입조심을 하는 그들이 지금 교회를 향하여 쏟아내는 언행은 그대로 묵과할 수 있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정권의 설계된 모종의 의도가 있지 않고는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다.그러니 교회는 지금부터라도 정신을 차려야 한다. 비둘기의 순결을 지키기 위해 뱀처럼 지혜로워야 한다. 교회가 동성애자들을 적대시한다는 인상을 지워야 한다. 교회가 싸워야 할 것은 동성애와 동성애 옹호세력이지, 동성애자들이 아니다. 그런데 지금 사회는 교회가 동성애자들을 핍박한다고 몰아간다. 그들의 교묘한 말장난에 교회가 놀아날 이유가 없다. 이럴 시점에 굳이 이태원 클럽과 동성애자들에게 시비 걸 이유가 없다. 역으로 교회는 더욱 더 방역에 힘쓰고 예방 수칙을 준수해야 한다. 그리고 성도들을 독려하여 엉뚱한 곳에 출입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하며, 정부의 코로나19 이태원 사태를 어떻게 대응하는 지를 주도면밀하게 살펴야 한다. 그리고 사회와 정부에 빌미를 주지말고 이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교회다운 능력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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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5-15
  • 전투에 이기고 전쟁에 지다
    이번 4.15 총선의 과정과 결과는 승패를 떠나 보수세력들에게 많은 교훈을 남겼다. 선거 한달 이전에는 야당 통합과 줄이은 불출마 선언, 여당과 정부의 실정에 대한 국민적 비판과 초기 코로나19 사태의 대처 실패에 따른 분노로 야당의 압승을 예측할 정도로 분위기가 좋았다. 그러나 이것은 희망사항이었고 연이은 야당 지도부와 후보자들의 실수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로 이어졌다.이런 분위기를 망친 것은 전체적인 전략 부재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여당은 국민적 비난과 염치 불구하고 위성비례정당을 만들면서도 일사분란한 선거체제를 유지하면서 전략적 대처로 위기를 돌파해 갔다. 대표적인 것이 악재였던 코로나19가 세계적으로 확산되면서 오히려 우리나라가 잘 대응한 것으로 세계언론의 평가를 받자 이를 호재로 바꾼 것이다. 동시에 야당의 계속되는 막말과 혼란의 반사이익을 빠짐없이 챙겨 사상 유래없는 결과를 얻었다. 야당은 참 미숙하고 어리석고 난삽했다. 전략도 전술도 목표도 책략도 없었다. 국민이 뭘 원하는 지, 어떻게 하라는 지도 모르는 것 같았고, 만일 알고도 그랬다면 이들은 향후 수십년은 정권을 잡아서는 안될 집단이다.보수 야당의 최고의 실책 중에 하나인 막말(舌禍)는 차명진 의원의 세월호 관련 발언이며, 황교안 대표의 n번방 언급이다. 정말 이렇게도 국민 정서를 읽지 못할 수 있는가? 항간의 이야기처럼 세월호 사건은 해상 교통사고이며, 야당 주장대로 정부 여당과 관련 인사들이 지겨울 정도로 우려먹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본질은 그것이 아니다. 300명이 넘는 꽃같은 중학생들이 어른들의 무책임과 무능력으로 뱅골만 차가운 바다속에 수장되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군인 3만 아니 30만명이 전사한 것과는 비교도 안되는 참사이다. 알토란 같은 자식을 그렇게 고통스럽고 비참하게 그것도 아무런 의미없이 죽었고, 그 이유가 책임있는 이들의 무책임과 무능으로 죽었다면 이것은 그 당시 집권세력에게는 영원한 주홍글씨임을 왜 모르는가?여당은 줄기차게 이를 반복하고 반복하며 활용해도 절대로 손해보는 일이 없다. 그렇게 강력한 대선 후보였던 이회창 총재가 막상 투표에서 왜 두번이나 실패했는지를 잊었는가? 국민감정이 그렇다는 것이다. 내 아들이, 또는 내가 2년 혹은 3년 이상을 혹독하게 치른 군대생활을 고관대작의 자녀라고 면한 사실은 그 어떤 현실이라도 막상 투표장에서는 손이 가지 않는다. 이처럼 세월호는 모든 국민에게서 미안하고 안쓰럽고 고통스러운 것이다. 그래서 다른 원호대상이나 예우들보다는 비교도 안되고 말도 안되는 지원이 있더라도 그냥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다. 이것이 민심이다.그런데 이 일을 개인적 술자리나 식사자리가 아닌 공개석상에서 비난하고 흠잡으면 그 순간 중도민심은 본능적으로 돌아서고 여당은 박수치고 기뻐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 같다. 이는 중대한 전략적 실수이다. 야당은 지금이라도 세월호 사건을 여당의 전유물로 주지 않을 전략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야당은 당시의 집권당이었기에 지금 여당보다 세월호에 대하여 더 적극적이어야 한다. 도대체 국민을 상대로 정치를 한다는 야당의 이런 행태는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또 하나 황교안 대표의 n번방 사건 단순 관련자 홍호 발언은 그야말로 패배의 화룡점정이었다. 필자도 그 말을 듣는 순간, “아! 야당이 졌구나. 질 수 밖에 없구나!”하고 탄식했다. n번방 사건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어떠했는지 청와대 민원 청원숫자만 보아도 알 수 있는데, 거기에 호기심으로라도 접근했던 사람까지 엄벌해야 한다는 말을 못할지언정, 억울한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발언은 그야말로 국민적 감정에 기름을 퍼붓는 꼴이 되고 말았다. 황 대표는 “누구든지, 비록 단순히 실수로 관련된 사람들까지 검찰은 철저히 수사해야 한다”고 말해야 했다.야당은 소소한 전투에서 이긴 야당의 오만함과 자기지분 챙기기의 어리석음이 4.15전쟁에서의 대패를 가져왔다. 전략부재, 비젼부재, 인재부재, 리더쉽부재... 온통 부재 덩어리 군대를 이끌고, 우선 무턱대로 전장으로 떠한 오합지졸 앞에, 몇 번의 전투 패배를 반면거울로 삼아 잘 정돈된 여당의 정규군에게 완패했다. 어떤 것도 변명의 여지가 없다. 완전히 해체하고 완전히 새로운 당으로 다시 창당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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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성택시사프리즘
    2020-04-24
  • 비둘기의 순결을 지키기 위한 뱀의 지혜
    무서운 속도의 변화, 치열한 냉정함이 국제 무대를 휩쓸고, 벨트를 형성하며 이념대 이념으로 연대하여 농성하던 시대가 가고 있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 이제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우방도 없고 적국도 없이 오직 이익 중심의 합종연회의 새로운 국제질서에 우리가 살고 있다. 불투명한 미래, 현존하는 북핵의 위협, 일본의 도리질, 폭발해가는 내부 갈등, 점증하는 민심의 뒤틀림, 도대체 종잡을 수 없는 위정자들의 혼란함에 우리가 살고 있다.이 무서운 시대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빠른 속도로 적응해 가야 하는데, 참 한심한 선거법으로 참으로 딱한 선거법으로 괴상한 선거를 치러야 하고, 그 앞길을 코로나19바이러스가 막아서고 있어 진퇴양란이다. 이를 극복할 전문가들은 죄인처럼 숨죽여 사지에 내몰린 채 그나마 헌신하고 있는데, 대책없는 정치가들이 앞 다투어 표를 의식하며 갑론을박하는 현실이 너무 안타까울 뿐이다. 그래서 이런 졸렬한 환경에서도 선전하고 있는 방역작업의 일등 공신 우리 국민들이 대견하다.이렇게 무지막지하게 풀어대는 엄청난 돈의 후유증을 훗날에 어떻게 감당할지 나감하고, 이 짐을 져야할 자식들에게 미안한데도, 곡간을 마구 헐고 얻을 수 있는 빚이란 빚은 다 얻어서 우선 먹고 보자는 이 무대책의 대책 앞에 허둥대고 있으면서도 자화자찬 하는 위정자들의 무능함이 가슴저릴뿐이다. 그것을 선거 전략에 최대한 활용하는 저들의 선전선동 기술이 놀라울 따름이고 이에 동조하는 착한 백성들의 신세가 안타까울 뿐이다.그런데 그 반대편의 사람들은 뭘 하고 있는가? 뭐가 그리 지킬 것이 많아 아직도 여당 시절의 배부름의 한가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가? 여당의 독주에 제대로 되고 쓸만한 태클한번 걸지 못하고, 쓸데없는 오버 액션에 무의미한 삿대질과 보여 주기식의 농성이 전부였다. 그러고도 보수의 적자임을 자임하며 지키겠다는 그 배짱이 놀라울 따름이다. 그 놀라운 처세술과 적응력이 놀랍기는 하지만 그것이 자신의 존재기반을 스스로 허물고 있음을 알기는 알까?그래도 4.15는 어김없이 일정한 속도로 다가오고 있는데, 대안도 없고 방향도 알 수 없어 불안하기가 이를 데 없다. 예언도 없고 선지자도 없던 신구약 중간시대, 애매모호하고 석화된 율법해석서들이 난무하며, 로마의 정권과 친분을 유지하며 종교적 품위를 유지했던 회칠한 무덤 종교지도자들의 득세, 어찌 우리의 시대가 그 때와 비슷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무력한 교회, 침묵하는 목회자, 교회의 엄중한 무게와 복음의 순수함도 갖추지 못한 채 복음과 교회를 내세우는 사람들, 아무리 둘러보아도 우리의 안전과 생명 그리고 미래를 담보할 세력이 보이지 않는다.그래서 곰곰이 우리 역사를 돌이켜 보면 위정자들이 나라를 망치고 매국에 앞장설 때, 그래도 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켜낸 마지막 세력은 의병들이었다. 상황은 다르지만 운명은 같을 수 있기에 필요한 것이 이 시대 이 나라를 지켜낼 의병운동이다. 총칼을 들 수는 없지만 그것보다 더 무섭고 가한 것들이 많지 않은가? 순결함이다. 순수함이다. 오직 국민을 위하고, 자손을 위하고, 나라의 현실과 미래를 위하여 민주의 순결함, 지금 우리는 감속에 깊이 숨겨둔 진실과 순결함을 꺼내야 할 때다.그러나 비둘기의 순결함은 그냥 지켜질 수 없다. 왜냐하면 순결은 타자를 움직일 힘은 있으나 스스로를 지킬 힘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둘기의 순결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것이 뱀의 지혜다. 뱀의 지혜가 없으면 비둘기의 순결함은 아무 의미가 없다. 이 나라의 미래를 바꿀 힘은 우리 국민의 순결한 애국심, 순수한 민주의식에 있다. 이것을 사악한 무리들, 무능한 무리들, 저능한 무리들에 의해 농락당할 우리의 미래를 지켜내기 위해 뱀의 지혜를 모아 보자.힘 없는 평화는 굴종이며, 힘 없는 사랑은 무의미하듯이 힘 없는 순결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순결하기 위해서는 버려야 하고, 참아야 하고, 양보해야 하고, 주어야 한다. 그러나 순결하지 못한 자는 빼앗고, 화내며 덤비고, 훔친다. 그러나 그것이 칼이 되어 자신의 가슴을 찌른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에는 너무 늦다. 우리의 민주와 자유와 윤리를 위한 순결을 위하여 뱀의 지혜를 모으자. 우리 4.15 총선이 이 지혜의 집합이 되게 하자. 그리고 승리한 자의 축배로 의미없이 타오르고자 하는 불꽃을 조용히 끄도록 하자. 우리 그날!
    • 칼럼
    • 임성택시사프리즘
    2020-04-10
  • 그렇게 맑은 봄날이 서러운 이유
    9시 뉴스를 틀면 서울사랑교회가 온통 화면을 채운다. 그리고 각 교회의 오프라인 예배 ‘강행’이라는 자막들이 군데군데 보이며, 교회는 온통 코로나19바이러스 전파의 진원지로 도배되고 있다는 분위기, 아니 이런 분위기로 몰고가고 있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이때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대형사건 앞에서 책임을 벗어야 할 세력들이 희생양을 찾고 있는 분위기라는 표현이 적확할 것이다.고대 로마가 불타자 그 책임을 기독교인에게 뒤집어 씌웠던 황제 네로, 그의 간교한 술수와 비참한 말로를 오버랩 시키면서, 네로의 어리석고도 간교한 술수와 무식한 배짱이 만들어낸 대량 기독교인 학살로 인해 어쩌면 네로가 그 화재의 책임을 벗었는지는 몰라도 그가 전혀 상상할 수 없었던 곳에 계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진노로부터 피할 수는 없었다. 그가 백성을 만나 댓가를 치렀더라면 그래도 소망이 있었을 것이나, 그가 대신 선택한 예수는 적어도 그에게는 절망적이었다.하여간 필자는 코로나19바이러스 퇴치와 극복, 사회적 상처의 치유와 회복에 관한 한국교회의 눈물겨운 노력에 고마움을 표한다. 이렇게 심히 언론과 일부 세력이 기독교를 폄훼하고 난도질 해도 여전히 예배를 지키며, 지역 사회를 설득하고 협조하는 성숙한 모습이 자랑스럽다. 필자의 교회는 새벽기도부터 금요기도회까지 모든 예배와 집회를 평소와 다름없이 진행하고 있다. 다만 교회내 모든 공동식사와 행사와 셀모임과 각종 프로그램을 모두 중지키셨다. 비접촉 발열 검사기를 들고 서 있는 우리 교회를 방문한 시청 공무원이 잘 하고 계시다고 격려하고 돌아갔다.네로의 간교함과 어리석은 판단으로 저지르는 소행은 하나님께 맡기자. 누가보아도 의도를 가진 편집과 멘트로 교회와 예배를 공격하고 있는 언론을 탓할 것 없다. 때는 이때다 하고 교회로 덤벼드는 악질 안티 크리스천들의 시비도 그냥 받아 주자. 여전히 예배하는 교회를 백안으로 쳐다보는 지역 주민들에게 미안함으로 웃어주자. 우리는 예배를 멈추어 달라는 그들의 요청을 이해할 수 있지만, 그들은 우리가 예배해야 하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한다. 아니 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낮추고 미안한 마음으로 그들을 설득해야 한다. 절대로 이 일을 싸울 일이 아니다.또한 예배를 모두 폐한 교회와 모든 예배를 다 하고 있는 교회, 주일 예배만 드리고 모든 예배를 폐한 교회 등등, 그러나 이런 것으로 서로 정죄하고 싸우면 안된다. 주장은 분명히 하자. 그러나 그것은 주장이고 자신의 신앙이다. 그 주장과 신앙고백을 터잡아 싸우면 안된다. 이것은 사단이 지극히 기다리는 묘수다. 필자는 예배를 포기함의 여부가 알곡과 가라지를 구별할 시금석이라고 까지 주장했다. 그러나 이 역시 필자의 주장이다. 그것으로 누구를 정죄할 생각은 없다.우리 모두 교회를 사랑하고 예수 이외에는 구원이 없음을 고백하는 본질적 일치의 신앙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것은 서로 흉금을 터놓고 대화하고 논쟁할 일이지 정죄할 일은 아니다. 그럼과 동시에 모든 교회는 힘을 다해 상처받은 이 민족의 아픔을 어루만지고, 방역의 최일선에서 점염병과 싸우고 있는 의료인들을 격려하고, 가장 큰 타격을 입은 대구 경북을 위해 기도하고 무슨 방법으로든지 그들을 도와야 한다. 특별히 이 일고 고통받고 있는 개척교회들과 미자립 교회를 돕기 위한 중대형 교회들의 노력은 진실로 고마운 일이다.어제 일산의 하늘은 눈부시도록 맑았다. 모든 나무들이 겨우내 버티고있던 회색 껍질을 벗어내려는 통에 온통 화려한 잿빛이 수목을 덮고 있었다. 생명의 약동이 피부와 숨결로 느껴질 정도로 강인한 것이었지만, 그렇게 맑은 봄날이 시리도록 서러웠던 것은 무슨 까닭이었을까? 봄을 채 느끼지도 못한 어느 새 내 곁에 와 있는 봄빛과 색깔을 보면서 환하게 웃을 수 없는 현실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힘을 내야 한다. 우리가 봄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더 힘차게 모여 기도해야 한다.사회적 거리두기가 예배를 폐하는 조건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는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시는 분이시오, 그로 인하여 우리는 외양간에서 뛰어나온 송아지처럼 뛸 것이다. 우리가 그의 말씀과 계명을 지키며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면, 그는 치료하는 하나님이시라, 우리 곁에 계신 그 분의 긍휼에 찬 위로를 받을 것이다.
    • 칼럼
    • 임성택시사프리즘
    2020-03-27
  • 공권력은 예배에 간섭하지 말라!
    지난 7일 국회에서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종교집회 자제촉구 결의안’을 의결하였다. 명백히 폐쇄된 공간에서 예배하는 교회를 향한 것인데, 마치 예배가 코로나19 바이러스 전염에 책임이 있는 것처럼 들리는 말이라, 이미 상당한 시간과 준비를 거쳐 이에 대응하고 있는 교회로서는 매우 유감이다. 교회는 이 질병의 위험성과 사회적 파장을 고려하여 나름대로 철저한 방역과 온라인 예배를 곁들인 자구 노력을 통해 국민의 보건과 건강을 지키는데 전력하고 있다.그런데 같은 날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종교집회 전면금지 긴급명령 검토’를 언급하고 나섰다. 개인의 페이스북을 통한 의견 개진이었지만, 무식하다고 해야 할지, 오만하다고 해야할지는 모르겠으나 무식하고 오만하기가 이를데 없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일개 지방자치단제창이 헌법에 보장된 종교의 자유를 손댈 수 있다는 초헌법적 발상이 가련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의 정치적 쇼맨십이 도를 넘은 듯하니, 더 이상 가벼운 입놀림으로 허물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교회의 예배는 종교의식이나 행사가 아니고, ‘하나님의 생명예전’이다. 분명히 하자. 예배는 하나님 앞에 선 자의 현실이다. 교회의 모든 예배는 교회의 존재이유이며, 성도됨의 이유이며, 전도의 목적이며, 충성의 궁극이다. 그 어떠한 이유로도 예배를 중단하거나 포기할 수 없다. 누구에게도 그럴 권리가 없다. 예배의 주체는 하나님이시다. 그가 받으시는 예배는 그가 정하신다. 예배학의 기본이다.예배하지 않는 자는 성도가 아니다. 예배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생명을 제대로 공급받지 못한다. 육의 생명을 위해 하루 세끼를 원하는가? 그럼 영을 위하여서는 얼마나 많은 예배 곧 영적 양식인 찬양과 기도와 말씀이 필요할까? 그것을 일주일 한번 예배로 충분하다고 할 수 있는가? 이는 예배를 한갓 종교 행사로 보는 자들의 교만함이며, 생명에 대한 잔인함이며, 용서받을 수 없는 무례함이다.이런 유약함으로 박해시대가 도래하면 견딜 수 있을 것이며, 중국처럼 법으로 예배를 금하는 사태가 올 때 응전할 용기나 있을까? 신사참배를 받아들인 목회자들의 변명이 얼마나 신앙적이고 고상했었는지 아는가? 눈물겨울 만큼 애닮을 정도였다. 그런데 지금 그 때의 변명들이 유령들처럼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는 것 같아 온몸이 저려온다. 목회자가 예배를 포기하거나 소중히 여기지 않으면 성도들의 영이 죽는다. 혹자는 전면적인 인터넷 예배를 권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보조수단으로는 유효할 뿐이다. 설교가 예배의 전부인가? 설교라면 유튜브에 유명인들의 설교가 차고 넘친다. 성경공부, 특강, 간증 등등 필요한 모든 자료들도 넘친다. 그러나 예배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 경배하고 찬양하고 기뻐하며 감사하는 인격적 만남이다. 거룩한 만찬이 있고, 성도의 귀한 교제가 있다. 이런 다양한 예배의 요소 중 단 하나라도 인터넷 예배가 충족할 수 있는가? 사이비 모조품을 만들어놓고 진품이라고 우기지 말라! 그 입술이 참담하다.문제는 목회자들의 유약함에 있다. 대형교회 목회자들이 이런 예배의 소중함과 원리를 모를 리 없다. 그러나 알고도 정부의 포장된 압력에 굴복하고 있다. 그들이 굴복하니 중,소형 교회들은 알아서 예배를 닫는다. 아마 정부도 ‘교회의 사회적 책무’ 등 그럴 듯한 이유 하나로 예배를 이처럼 쉽게 중단시킬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을 것이다. 아마 지금 즈음 교회를 골치 아파하는 이들은 눈을 부릅뜨고 이 현상을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방법을 찾았을지도 모른다.기억하라. 그 날이 가까우면 곳곳에 큰 지진과 기근과 전염병이 있겠고 또 무서운 일과 하늘로부터 큰 징조들이 있으리라고 했다. 이럴 때 교회가 할 일은 변명할 것을 미리 궁리하지 말고 대적이 능히 대항하거나 변박할 수 없는 구변과 지혜를 주실 주님을 의지하며, 그로 말미암아 주의 이름 때문에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머리털 하나도 상하지 아니하겠다는 그 말씀을 의지하고, 우리의 인내로 우리 영혼을 얻어야 할 것이다(눅 21:11-19).동역자들이여! 어떤 경우에도 예배를 닫지 말라! 그대가 진정한 목자이거든 ‘예배는 하나님을 향한 성도의 생명 예전임’을 잊지 말라! 목숨을 내어 놓고 모든 예배를 지키라! 물러서거나 놀라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그는 치료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아멘
    • 칼럼
    • 임성택시사프리즘
    2020-03-12
  • 이인영 대표는 온건한 교회까지 나서기를 부추기는가?
    최근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총선이 시장·종교·언론 등 분야의 기존 패권이 재편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귀를 의심할 만한 발언을 했다. 총선을 불과 몇 개월 앞두고 한국 정치의 일번지의 위상을 가진 정당 그 핵심에 서 있는 사람, 그것도 고도의 정치적 감각을 가졌다는 이대표가 자신의 발언이 몰고올 파장에 대해 충분히 계산했을 것이기에 더욱 귀를 의심한 것이다. 저 발언이 저절로 개편이 될 것이라는 희망담은 전망인지, 아니면 그렇게 할 집권당의 프로그램이 있다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정치인의 입에서 종교 재편을 거론하는 것 자체로 이미 그는 대부분의 교회들이 어떻게든 들고 나설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고 말았다.그는 교회의 현재를 말하면서 온건한 교회라는 표현을 썼다. 그러면 지금 이 대표가 말하는 온건한 교회란 광화문에 몰려가 있는 정광훈 목사의 광야교회가 아닌, 행동하지 않는 다수의 교회를 지칭한 듯하다. 그러면 언필칭 온건한 교회들은 집권당에게 비교적 우호적이라는 뜻으로 들리는 데, 만일 이런 생각이 맞는다면 그는 집권당 대표로서의 자질은 물론 그 처신과 언행에서도 일반 상식인에도 못미치는 것임을 한탄하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이 대표는 무엇을 근거로, 기준으로 온건한 교회와 거친 교회를 구분하고 있는가? 자신들의 편에 들지 않으면 모두 거친 교회들이고, 고분고분 말을 잘 듣는 교회는 온건한 교회인가?그의 말을 듣고 있으려니 그가 지칭한 온건했던 교회들조차 모욕감을 느낀다고 하는 것을 보면, 어쩌면 이 대표의 발언을 기점으로 온건한 교회들이 지금 왜 온건하게 처신하고 있었는지 그 이유를 가르쳐 줘야 할 것같다는 생각이 든다. 묘하게도 이 대표는 지금 온건한 교회를 거친 광야로 불러내고 있다. 사법부를 완전히 장악한 집권당이 패스트트랙의 탈법적 운용으로 공수처와 선거법을 통과시켜 경찰과 검찰 그리고 무력한 야당을 결박시키더니, 이제 그들의 마지막 저항 세력으로 남아 있는 교회를 손보겠다는 뜻으로 들리는데, 가소롭기가 그지없고, 오만하기가 짝이 없다.종교와 정치의 분리의 주체는 종교임을 이 대표는 아는가? 이 정교분리는 국교 금지를 근간으로 하는 것으로, 정치의 종교 간섭을 배제하는 데서 출발한 사상이다. 그런데 지금 이 아둔한 자들이 정교분리의 원칙을 종교의 정치 간섭을 배제하는 것으로 거꾸로 이해하고 있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정치는 절대로 종교의 간섭을 벗어날 수 없다. 왜냐하면 한 국가의 통치권은 하나님에 의해 위탁된 것으로 그 권세에는 마땅히 모든 국민들은 순응하여야 한다. 성도들이라고 다른 것이 아니다.그러나 교회는 이 정치가 하나님이 주신 통치권이 제대로 집행되고 있는 지에 대한 감시와 지도의 의무가 있다. 그들이 바르게 권력을 사용하면 적극 협조하고 순응하며 따라갈 것이지만, 그 권력을 주신 하나님의 듯을 가스려 반인권, 반인류, 비양심적 행태를 일삼는다면 교회는 단호하고도 분명하게 그 정권을 응징할 책무가 있다. 비록 이 응징이 무력이나 폭력을 사용한 것이 아니고, 또 권력자의 칼에 죽을 수도 있지만 그것은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다. 다윗왕의 말 한마디면 목이 날아갈 나단 선지자가 그 위세에 굴하지 않고 다윗을 찾아가 “바로 당신이 그 사람”이라고 소리칠 수 있었던 것은 정치에 대한 종교의 중대하고도 막중한 간섭의 의무를 저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다.이 대표는 대답해야 한다. 정말로 정권이 기독교 재편의 시나리오를 가지고 있는가? 그렇다면 작전대로 시행하라. 그러면 온건한 교회들이 거기에 어떻게 응답하는 지를 똑똑히 보게 될 것이며, 그에 따르는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할 것이며, 하나님의 거룩한 교회를 손댄 것에 대한 하나님의 응징은 단지 그에게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아니면 단순한 말의 실수인가? 그렇다면 정중히 한국교회 앞에 사과하고 그 말의 허물을 바로 잡으라. 그렇지 아니하면 이번 총선은 물론 차기 대선 그리고 그 다음 모든 선거에서 온전한 교회들의 치열한 응징의 벽을 넘어서지 못할 것이다.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이 대표가 이 말을 한지 몇 일이 지났는데 침묵하는 초라한 교회 지도자들의 옹졸한 행색이다. 어찌 분노하지 못하는가?
    • 칼럼
    • 임성택시사프리즘
    2020-02-14
  • 자유민주주의를 위한 투쟁
    일부 시민들은 “적화(赤禍)는 이미 되었고 통일(統一)만 남았다”는 참으로 듣기 민망한 이야기를 서슴없이 한다. 사회주의로 향한 집권 여당의 노골적 행보가 너무도 거침이 없고 당당한 까닭에 당황하다 못한 국민들이 내뱉은 자조 섞인 한탄이다. 지금까지 어느 정권도, 심지어 쿠데타로 집권한 정권조차도 이처럼 무모하고 무도함을 당당히 저지른 정권이 없었다.검찰총장의 손발을 잘라내는 것도 모자라 물론 아예 수사 자체를 방해할 뿐 아니라, 기소된 인사가 여전히 청와대 권력 중심에서 버젓이 근무하고 있다. 대통령의 아바타 법무장관은 그 수하들을 통해 아예 검찰총장을 패싱하며 무력화시키고 있다. 어서 공수처를 설치하여 윤석렬 총장을 기소하겠다는 말을 공공연히 하고 있다. 일부 정치 검사들은 재빠르게 이 흐름에 호응하고 있고 기개있는 검사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검찰을 떠나고 있다.필자가 언젠가 말한 적이 있다. 군부 독재는 그 정통성문제 때문에 언제나 국민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고, 그 약점을 무마하려고 적당한 선에서 야당에게 양보하고, 대북 강경책을 취함으로 국정안정을 도모하였다. 그런데 이렇게 일명 촛불이라는 민심을 근거로 정권을 차지한 정권은 정통성이라는 정치적 윤리를 무기로 거칠 것이 없이 질주하고, 애통하게도 이를 견제할 세력이 없다. 유일한 견제 세력인 검찰을 장악하기 위해 정권은 여론을 내세워 검찰을 해체하고 있는 사이, 자유주의는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이제 누구도 막지 못하는 독재가 시작되었다. 이번 선거에서 야당이 개헌저지의석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합법적으로 자유주의 대한민국은 사회주의 대한민국으로 가는 길이 열린다. 그 후에는 법과 힘에 의한 급속한 자유주의 해체작업은 대상을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진행될 것이다. 이것을 막을 힘은 없고, 있다한들 만들어진 헌법과 법률에 의해 철저하게 제압당할 것이다. 교회도 결코 자유로울 수 없고, 언론이라고 봐줄 이유가 없다. 어쩌면 이에 저항할 수 있는 유일한 세력이 교회인데 교회마저 사분오열, 지리멸렬한다면 더 이상 가망성이 없다.그러므로 이번 4월 선거는 정치적 명분이나 슬러건은 중요하지 않다. 보수대통합이니 하는 따위의 이념 논쟁을 할 때가 아니다. 명분은 오직 개헌 저지의석 확보이다.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인물 중심의 당선 가능성에 공천의 최우선을 두어야 한다. 일단 개헌 저지의석을 확보해야 나라가 살 수 있다. 보수 세력이 이러저러한 이유로 분열하고, 그래서 한 지역구에서 여러 세력이 동시 출마하여 일여(一與) VS 다야(多野) 구조가 되면 모든 것은 끝이다.분열로 여당에 의석을 갖다 바치는 망국적 갈등이 없어야 한다. 오직 하나의 목표, 개헌저지의석 확보라는 명분을 범 야당들은 공유해야 한다. 이것이 이번 선거의 선악 가름돌이 되어야 한다. 지금 범야권의 치밀한 개헌전략 진행 과정을 보라. 무섭도록 빠른 속도와 잔인함과 힘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따라서 관망하는 범야권 세력들은 사태의 엄중함을 깨닫고 현장으로 나서, 유권자들에게 호소해야 한다.사람들은 민심이 변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니 크게 걱정말라고 한다. 그런데 이런 거 아시는가? 일부지만 이상하게 투표장에만 들어가면 머리와 손이 따로 노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 대통령을 거품을 물고 비판하지만 정착 투표소에서 도장을 찍을 때 어느 새 손이 그쪽으로 가 있는 경우, 이것을 지방색이라 해도 좋고, 성향이라 해도 좋다. 지금 대통령 지지율을 조작이라고 몰아붙이지만 그렇게 안이하게 보다가 당한 경험이 한두번이 아님을 새겨야 한다.모든 야권 정치세력들에게 호소하고 당부한다. 강조하거니와 이번 공천의 제일 조건은 당선 가능성이다. 다른 정당의 현란한 개혁 쇼에 현혹되어 미래를 망치지 말고 대세를 거스르지 말고, 오직 개헌저지 의석 확보라는 데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 이에 실패하면 다음 대선도 그 다음도 지금 야권에게는 미래가 없을 지도 모른다. 이 일에 교회와 모든 지도자들은 깊은 관심을 가지고 기도해야 한다.
    • 칼럼
    • 임성택시사프리즘
    2020-01-31
  • 의로운 검사의 사표 “비겁하다”
    사표는 합법적으로 조직을 떠나는 것으로, 통사 두 가지의 의미를 담고 있다. 하나는 새로운 자신의 계획을 가지고 몸담았던 조직에 고마운 마음을 담고 떠나는 것이다. 이런 사표는 격려받아야 하고, 유능한 인재를 보내는 조직이 힘들겠지만 역시 많을수록 바람직한 현상이다. 또 다른 형태의 사표는 그 조직에서 자기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에 대한 조금이라도 과오를 감당하려고 하는 양심적 행동이다. 소위 문책성 혹은 책임성 사표로서 조직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무겁고 누군가 십자가를 진다는 의식이 있다.그런데 이 둘과는 무관한 사표가 있다. 소위 항의성 사표, 상관의 부당한 지시나 구조적 모순에 적응하지 못한 경우, 또 한번도 접해본 적이 없는 현실적 변화에 적응하기를 거부하는 경우 등인데, 이런 사표는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 항의성 사표라면 무책임하고, 구조적 모순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이라면 사회적 도태일 뿐이며, 새로운 현실적 변화에 적응을 거부하는 것은 너무 독선적인 처사이다. 절대로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다.그런데 몇일 전 ‘검사내전’ 저자로 잘 알려진 김웅(49·사법연수원 29기) 부장검사가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에 올린 ‘사직 설명서’를 통해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옛 노예무역선 ‘아미스타드’에 비유하고 “국민에게는 검찰개혁이라고 속이고 결국 도착한 곳은 경찰공화국”이라며 “검찰개혁이라는 프레임과 구호만 난무했지, 국민이 이 제도 아래에서 어떤 취급을 당하게 되는지, 이게 왜 고향이 아니라 북쪽을 향하는지에 대한 설명은 전혀 없었다”며 사표를 던졌다.김 부장검사가 사표를 던지는 이유와 문제점들에 대하여 만인이 충분히 공감할 만한 근거와 당위성을 제기했다. 그의 사법적 분노를 이해하고 현실적 안타까움을 수긍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런 그가 왜 검찰을 떠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수긍하지 못한다. 이런 현실이 오기 까지 그대는 책임이 없는가? 분명 김 부장검사의 사표는 새로운 출발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러면 그대의 사표는 이런 사태에 책임지는 양심적 사표인가? 아니면 스스로를 문책하는 사표인가? 필자는 아무리 보아도 그것은 아닌 것 같다.그렇다면 김 부장검사의 사표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없다는 부적응의 뜻인가? 그렇다면 그 사표는 어쩔 수 없다. 아니면 문재인 정권의 부당한 사법파동에 대한 항의성 사표라면 진실로 무책임하다. 또 구조적 모순에 저항하지 못하고 스스로 사회적 도태를 택한 경우라면 진실로 비겁하다. 더불어 새로운 현실적 변화에 적응을 거부하는 사표라면 김부장의 독선은 지나치다. 정리하면 김 부장검사의 주장이 정당하다면 그는 사표를 던져서는 안된다.이런 와중에 사표를 던지면 가장 좋아할 사람이 누구이겠는가? 안그래도 채워넣을 자리가 부족한 현 정권에서 부장검사 자리는 너무 반갑고 기쁜 소식일까! 이에 대하여 깊은 고민을 해보셨는지 모르겠다. 지금 소신있는 검사들이 할 일은 사표를 던지는 일이 아니다. 사표는 책임지는 가장 소극적 방법이다. 진정한 책임은 잘못된 현실을 바로 잡고 기관이 정상적으로 국민에게 봉사할 수 있도록 만드는데 있다. 김 부장검사는 경찰개혁을 할 것이라는 정부 입장에 대해 “사기죄 전문 검사인 제가 보기에 그것은 말짱 사기”라고 했다. 그렇다면 그대는 사기범을 잡기 위한 검사의 칼을 들어야지 사표를 드는 것은 경우에도 맞지 않다.‘검사내전’에서 생활형 검사라고 지칭하던 그는 스스로를 “평생 명랑한 생활형 검사”라고 했다. 그런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사표뿐이라니, 스스로를 비루하고 나약하지만 그래도 좋은 검사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고 하는데, 그대의 결정이 너무 경솔했다.이제 필자는 국민적 명령어 형태로 말한다. 전국 현직 검사들은 “결국, 우리는 이름으로 남는다, 살아있는 권력과 맞서 싸워 국민의 훈장을 받은 이때, 자부심을 품고 떠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하다”는 김 부장검사의 말에 대해 공동으로 책임을 져라. 지금 그 검사의 자부심을 위해 홀로 싸우고 있는 총장의 곁을 떠나는 것을 어찌 국민에게 감사할 수 있는가? 국민은 그 감사를 받을 생각이 없으며, 그대의 경솔함을 탓할 뿐이다. 지금이라도 돌아갈 수 있으면 돌아가고, 이런 생각으로 가슴 아픈 검사들을 마음과 생각을 다잡고 다시 한번 정의의 칼을 어떻게 써야 할지를 고민하는 진정함 검사가 될 것을 요청한다.
    • 칼럼
    • 임성택시사프리즘
    2020-01-16
  • 아마추어 정치 전성시대
    급기야 자유한국당이 4·15 총선을 앞두고 준(準)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대응 카드로 창당하려는 비례 자매정당(Schwesterpartei)의 이름을 '비례자유한국당'으로 확정하고, 이를 곧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창당준비위원회 결성 신고서를 제출할 것으로 알려졌다. 총선에서 비례대표만 공천한 후 정당 지지율 투표에서 득표하고 총선 후 즉시 합당하여 의석수를 극대화하고 제1당을 회복하자는 선거 전략적 차원이라고 한다.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골자로 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통과된 직후부터 시작된 창당작업이 이제 당내에선 일부 현역 의원이 비례자유한국당으로 당적을 옮겨 정의당을 포함한 다른 군소 정당들보다 기호 앞 번호를 받는 방안까지 논의 되고 있다고 한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권모술수에 꼼수정치라고 정면으로 비판했다. 민주당은 대변인을 통해 비례위성정당 창당을 시대착오적인 추태라며, 새 선거법의 혜택만 가져가겠다는 생각을 접고, 국민이 열망하는 선거제 개혁에 실천으로 동참하기 바란다고 했다. 그런데 정말 민주당은 지금의 모양으로 이번 총선에 깨끗하게 나설 수 있을까?역사적으로 들여다보면 비례대표의 출현과 그 성격이 참으로 묘한 것이다. 전문성이 강조된 것이지만 거슬러 올라가면, 박정희 정권시절이었던 1972년 유신헌법에 따라 국회의원 정수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수의 국회의원을 대통령이 추천하면 통일주체국민회의가 승인·선출한 유신정우회가 그러하고, 그 후에 여야가 이를 나눠가져 오늘의 비례대표가 되었다. 형식상으로 전문가들의 정계진출을 위한 것이기는 하나 내용상으로는 집권당 혹은 집권자의 홍위병 역할이었고 나중에는 정치자금 모금 창고 내지는 당 총수의 당 장악의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그런 비례정치인들은 그야말로 비례로써 지역 투표를 통해 들어온 의원들과는 그 위상부터가 달랐다. 다를 수밖에 없다. 그들에게 정치적 자산은 없으며, 오직 자신들의 사회적 경력과 지위 외에는 없다. 이것이 정치 역량으로 발휘되려면 국회에서 상당한 선수를 쌓아야 하는데 비례대표를 거쳐 지역구 의원으로 거듭나는 데는 수많은 난관이 있고 그것에 성공하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으며, 오히려 망가져버린 사람들이 더 많다는 사실이 그들이 정치적으로 철저하게 아마추어라고 하는 것이다. 정치만큼 고도의 기술과 기법을 요하는 것도 없다. 그래서 정치는 자기 분야의 전문성을 가지고 덤벼드는 곳이 아니다.정치는 전무분야의 식견보다 전체를 바라보는 통찰력과 역사적 책임의식과 소명의식을 필요로 하고, 여기에 정무적 감각과 대중적 설득력을 지닌 리더쉽이 필요하다. 이것은 전문가의 개념과는 다르다. 정치인은 전문가가 아니라 리더이며, 활동가가 아니라 전략가이며, 기술자가 아니라 기획가이다. 이런 분야에 전문 활동 기술자들을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뽑아 그들을 정치 전면에 내세우는 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어리석은 일인가를 모른다면 곤란한 일이다.정치가는 분야 전문가들이 마음대로 능력을 발휘하도록 입법을 통하여, 그 입법의 집행을 감시하는 기능을 통하여 그 장을 만들어 주는 일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거꾸로 가는 것도 아니고 아예 방향을 잃어버리고 어느 방향을 가고 있는 지 이 정치적 혼란은 끝을 모르고 있다. 집권 세력을 지금 아니면 기회가 없다는 식으로 나중에 산수갑산을 가더라도 지금 끝장을 보겠다는 결의로 밀어붙이고 있다. 선거법과 공수처법의 위헌성은 아예 염두에 두지 않는 듯하다. 누가 위헌 소청을 내면 다시 헌법재판소 동지들의 협력을 확신하고 있는 듯하다. 협치는 당분간 불가능한 듯하고, 정치적 협상은 아예 테이불이 접혀 버렸다.조만간 우리는 대량의 아마추어 국회의원의 탄생을 지켜보아야 한다. 뭘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지만 확실한 것은 이 집권당과 청와대의 위험한 독주는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더 이상 제어되지 않는 권력은 폭력이다. 세계 10위권의 자랑스러운 조국이 지금 이렇게 주저앉거나 무너지는 것을 그냥 두고 볼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리의 근성과 저력이 조금은 윤택해진 경제력 때문에 무뎌진 것은 아닌지, 지금의 이것들을 지키기 위해서는 시들어져 가는 야성을 다시 세울 다짐이 필요하다. 그래서 이번 4.15 총선에서 민의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려주는 계기로 삼아야 하고 이 땅에서 좌든 우든 독재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표로서 엄중히 보여 주어야 할 것이다. 여기에 아마추어를 극복하는 프로 국민들의 정치의식이 있다.
    • 칼럼
    • 임성택시사프리즘
    2020-01-06
  • 국회의장 총리, 당대표 장관이라! 소인배들
    국가 원로라 함은 전직 대통령과 총리를 포함한 삼부요인 출신들과 그에 준하는 국가적 인물을 말한다. 그야말로 당대의 최고위직에 올랐을 뿐만 아니라, 그 명성 자체로 국민적 권위와 품격을 인정받은 자리요, 활동 당시의 정치적 성향과 개인적 성품에 상관없이 국가적 존경과 예우를 받은 국민적 인물을 말한다. 그런 그들은 더 이상 나아갈 공직은 없고 나아가서도 안된다. 전시와 같은 비상한 상황이 되어도 그들은 현직의 배후에 서서 그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며 국민적 단합을 초당적으로 이끌어내고 국력을 결집시키는 동인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마땅한 처신이요. 품격있고 권위있는 지도층의 모습이다.지금까지는 우리나라는 이런 면에서 비교적 자랑스러웠다. 그런데 얼마전 문재인 대통령이 여당 대표를 지낸 추미애 의원을 한갓 법무장관직에 지명하더니, 어제는 느닷없고 어이없이 전직 국회의장을 총리로 지명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정세균 전 국회의장은 의장을 마치고도 물러나지 않고 현역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더니 급기야 문재인 정부에서의 차기 국무총리로의 지명을 수락했다. 행정부를 엄중하게 견제하는 입법부 수장이 행정부 2인자로서 들어가겠다는 그의 초라한 굴신이 가소로울 뿐이다. 또 이런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는 문 대통령의 처지가 딱하고 어눌해 보인다. 오죽하면 이런 인사 밖에 할 수 없을까? 무능한 것인지, 고집스런 것인지, 아니면 자신이 삼권을 모두 장악하고 있는 제왕적 대통령임을 보여주겠다는 시위인지 정말 알 수 없는 슬픔이 복받쳐 오른다.여당 대표를 지닌 추미애 의원의 법무장관 지명은 아무리 생각해도 민주당의 자존심을 현저히 짓밟는 무지막지한 처사인데 민주당의 침묵이 더 어색하다. 당과 청의 관계가 밀접하고 치밀한 것은 사실이나 엄연히 역할이 다르고 위상이 다른데, 총리급 당 대표가 장관급으로 급을 낮추겠다는 발상은 무슨 의미인지를 모르겠다. 자칭 자존심과 결백성을 무기로 하는 당이 이런 굴신에 벙어리가 된 의도를 모르겠지만 이는 더 이상 권위나 품격은 아랑곳 하지 않고 오직 집권 연장과 패거리 권세 독점의 소아적인 정치적 패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사람들이 이 두 사건에 대하여 사람들이 특별히 관심을 갖는 것은 단순히 국회수장이 총리가 되고, 당 대표가 장관으로 가는 웃기는 현상에 대한 냉소적 시선 때문만이 아니다. 여기에는 많은 의구심과 불안한 심리가 반영되어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것은 집권 초기 백원우 전 의원이 재선 국회의원의 경력에는 결코 어울리지 않는 청와대 비서관에 들어갔을 때 고개를 갸웃거렸던 것과 연관이 있다. 그 때에는 큰 비중을 두지 않았으나 지금와서 보니 그의 역할이 하도 엄청나서 이 정권의 허물이 모두 그로부터 시작되었을 수 있다는 불안한 예감을 지울 수 없게 되었다. 바로 이런 연장선상에서 두 사람의 입각을 바라보면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겠다는 불편함이 자리잡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아무리 개인적 역량이 뛰어나고 이 시점에 적합한 인물이라 하나, 이 사람들은 국정운영의 인재풀에서 제외되어야 한다. 원로는 원로답게 국정을 자문하고 흔들리는 민심을 붙잡고 불안한 사회적 경향의 사표가 되어야 한다. 이는 원로의 역할은 뛰어난 인재가 현장에서 뛰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국가 원로의 역할을 결코 가볍게 보아서는 안된다. 그런데 그나마 얼마 남지 않은 원로들을 이런 식으로 모두 현직으로 차출하면 도대체 이 나라의 정신적 정치 지도자는 누구가 되고, 사회적 원로석에는 누가 앉아야 하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대통령은 미래나 사회 통합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위기 탈출 밖에는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결코 추미애 의원이나 정세균 의원을 개인적으로 비난할 생각은 없다. 두분 모두 탁월한 정치가로서 나름대로 정치적 지분을 가지고 있고, 원로 대접을 받을 만한 분들이다. 그렇기에 그들 스스로도 그런 요청을 대승적 차원에서, 현실적 차원에서, 미래적 차원에서 결코 받아들여서는 안된다. 두 분이 이렇게 초라한 소인배로 분류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면 그 직을 받는 순간 국가원로의 자리에서 스스로 내려오는 것이고 다시 오를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더욱이 하마평에 오르내리던 사람들의 대타로 품격과 체면도 다 버리고 오직 자리와 자리를 주고받는 이 추한 거래에도 그 누구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 현실이 너무 싫다.
    • 칼럼
    • 임성택시사프리즘
    2019-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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