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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대면 예배”를 결정한 못난 목사의 호소
    오늘 우리 교회는 ‘비대면 예배’라는 매우 생소하고 어색한, 한번도 경험한 적이 없는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어찌 되었든 이 비대면 예배는 아무리 공교한 논리와 우리가 처한 어쩔 수 없다는 상황으로 변명하고 포장하여도 옳지 않는 예배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 모든 성도들의 영적 예배와 그 삶을 책임진 담임목사로서 하나님 앞에서 돌이킬 수 없는 결정을 내린 허물을 책임질 것입니다. 기독교 전설에 의하면 주님을 배반한 베드로가 새벽에 닭이 울 때마다 마당으로 뛰어 나가가 통곡하였다고 하듯이, 저도 이 허물에 대하여 죽을 때까지 새벽마다 회개할 것이며, 훗날 하나님 앞에서 그분의 질책과 처분을 달게 받을 것입니다. 거듭 말씀드리거니와 하나님과 성도, 성도와 성도의 인격적 교제가 없는 예배는 예배가 아닙니다. 비대면 영상예배는 물리적으로 예배에 참석할 수 없는 분들을 위한 보조수단이며, 회의와 성경공부의 수단이 될지언정, 보조수단이 필요없는 분들에게는 적용할 수 없는 예배형태입니다. 사단은 끝없이 우리의 예배와 모임을 방해합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연약한 우리를 향하여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히 10:25)”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비대면 예배’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언론을 통해서 알려진 바, 이번 COVID-19 재확신의 상당한 책임이 교회에 있음도 부정할 수 없지만, 그것보다 지금까지 교회가 사회의 지탄을 받는 것은 고사하고, 하나님이 받으실 수 없는 예배를 드린 한국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분노에 찬 경고, 즉 “내가 너희 절기를 미워하여 멸시하며 너희 성회들을 기뻐하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내게 번제나 소제를 드릴찌라도 내가 받지 아니할 것이요 너희 살진 희생의 화목제도 내가 돌아보지 아니하리라(암 5:21-22)”라 하시는 하나님의 일갈 앞에 아모스의 심정으로 제물을 들고 엎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더불어 직장 생활에서 예배를 드리고도 드리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해야 하거나, 예배드린 사실을 숨겨야 하는 성도들이 당할 고통을 생각해 달라는 착한 주의 백성들의 호소를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이 못난 목사에게는 그들을 향하여 당연히 “무슨 말을 하느냐? 쫒겨나더라도, 사표를 쓰더라도 당당히 신앙의 지조를 지키라”고 말할 용기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것 때문에 교회안에서 성도간의 분열과 다툼은 우리에게 더 힘든 고통을 안겨줄 것이고, 이것이 사단이 노리는 간교한 술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지금 교회를 향하여 광풍처럼 몰아치는 대면 예배 금지 요구 앞에서 하박국 선지자가 느꼈던 그 떨림을 느끼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선지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인하여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내 뼈에 썩이는 것이 들어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도다(합 3:16)”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기 전 닥칠 환란을 몸으로 느낀 선지자의 말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초래한 것은 이스라엘 자신이었고, 그 심판은 이방의 침략으로 이스라엘이 초토화되는 것입니다. 구약 끝에 서 있는 하박국은 주전 586년 바벨론에 의해 망한 남유다의 마지막을 바라보며 전율합니다. 그들이 여호와 유일 신앙을 버리고 이방 신들을 겸하여 섬긴 영적 타락과 필연적으로 뒤따르는 이방 세계와의 혼합에 대한 하나님의 응징이었습니다. 이제라도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예배조차 자기들 뜻대로 주장며 하나님을 향하여 목을 곧게 세운 이 정권을 이상하게도 하나님은 두 번씩이나 COVID-19를 통해 살려 주셨습니다. 저는 이 현상을 매우 엄중하게 보고 있습니다. 이는 아직 우리가 맞아야 할 매가 남아 있다는 뜻이고, 매를 든 주님께서는 우리가 울며 미스바로 나아가 주의 긍휼을 구하기를 기다리신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구약을 살피면 하나님의 백성이 울어 긍휼을 얻는 순간, 주께서 회초리로 사용하셨던 그 이방과 권력을 온전히 남겨 두신 적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한국교회는 어설픈 보수정치 투쟁을 덮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울어 그의 용서와 긍휼을 구할 것을 눈물로 호소합니다.
    • 칼럼
    • 임성택시사프리즘
    2020-08-31
  • 미래통합당은 뭐가 부족한지 알고 있는가?
    결국 더불어민주당이 상임위원장 자리 17개를 독식했지만, 통합당은 마땅한 대여(對與) 견제 전략이 없다는 것이 현실이다. 결국 갈 바를 잃은 통합당은 민주당이 일방적으로 진행하는 국회를 방관할 수 없는 딱한 처지에 놓여있다. 민주당의 민주 독재에 응전하는 무능한 야당의 대응책이 없다는 현실이 가슴아프다. 더 한심한 것은 국회의장은 통합당 의원 전원을 상임위에 강제 배정하고, 통합당은 전원 사임계로 반발한 코메디를 보는 것이다. 비판조차도 아까운 이 두당의 행태를 보면서 슬픈 생각이 든다.정부가 시급하다고 하는 3차 추경, 심각한 위기로 다가온 대북 정책, 엉망진창의 정의기억연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문제 등등, 결과 간단하지 않은 문제들이 산적해 있는데 여당은 거대 의석의 힘으로 제 맘대로 하겠다고 하고, 막아야 할 야당은 여당의 폭주를 막을 방법도 능력도 의지도 없어 보인다. 겨우 할 수 있다는 것이 잘못된 국정 운영의 책임 전부를 민주당이 지게 하는 여론전이라고 하니, 슬픈 생각이 든다.민주당이 개원 전 공언한 법안 국회 개혁·권력기관 개편·공정경제·부동산대책·국방개혁 등 5대 분야 80개에 이른다. 경제계에서는 특히 민주당이 추진 중인 '공정거래 3법'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민주당은 일하는 국회를 내세워 일사분란하게 자신들의 정책을 관철하고 야당을 무시할 것이 분명하다. 여기서 느끼는 통합당의 무기력함을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겠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점에서 통합당은 명심하며 돌아볼 것이 하나 있다. 과거 소위 민주화 세력들의 정치적 입지가 지금 통합당에 비하면 말도 안될 정도로 열악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투쟁력은 당시 거대 여당 집권 세력을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다. 지금 정의당의 한자릿수 의원을 가지고도 집권 여당을 쥐락펴락하며 그들의 데스노트의 힘을 자랑했다. 무엇이 이 힘을 주고, 어디서부터 이 힘이 왔을까? 지금의 그들이 그렇다고 말할 수 없지만, 당시 운동권의 생명은 순수한 의지와 정직한 교과서적 투쟁이었다. 인권과 정의와 평화는 이들이 선점한 이슈였고, 이것은 개발경제의 논리와 겨루며, 또 개발경제의 과실을 누리면서 그것을 짚고 정치적 성장을 거듭한 결과였다.그러면 지금 통합당의 무력함과 좌충우돌은 바로 정치 세력으로서의 가장 기본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기존의 질서를 부여잡고,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몸부림이 안쓰러울 정도였다. 그들의 의원직은 지역감정과 연고에 의한 것이 대부분이다. 도덕적으로 국민적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 도덕적으로 그들보다 앞선다는 국민적 평가는 아직 없다. 꼰대 정당의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했고, 능력을 주장하나 이미 그마저 국민적 심판을 받았다. 그러나 머리를 깍고 단식하고 거리를 누벼도 냉냉한 반응이 그 이유이다.지금이라도 늦지 않다. 통합당 의원들의 무감각한 현실감각, 꼰대기질, 반개혁적 성향을 버려야 한다. 무엇보다도 도덕성 회복이 시급하다. 오랜 집권 경력과 가진 자 편에 섰던 기간 동안에 몸에 밴 귀족 의식을 버려야 한다. 그 따위 상임위원장 자리를 다 줘버려도 된다. 지금 통합당이 찾아야 하는 것은 이런 환골탈퇴의 혁명적 사고 전환과 자기 혁신이다. 과거 천막 당사에 버금가는 자기 버림과 채찍이 있어야 한다. 국민들은 현 정권의 좌파행보와 일방통행식 정치행보에도 그들을 나무라지 않는 이유가 바로 통합당의 도덕적 취약성과 반개혁적 꼰대 기질을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는 넋두리보다 상임위원장 자리를 잃어버리고 얻은 소득으로 여기면 좋을 것이다. 국민들은 그런 야당을 기다린다. 도덕적으로 우월하고 깨끗하며 헌신적이고 충성스러운 일꾼을 말이다. 여전히 지방색으로 보호색으로 삼고 기득권으로 그 힘을 유지하려는 천박한 정서를 버리지 않는 한, 지금 정부 여당이 아무리 많은 실책을 하고 오류를 범하고 사회주의적 정책을 시행해도 국민든 그들의 손을 들어 줄 수밖에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
    • 칼럼
    • 임성택시사프리즘
    2020-07-07
  • 버리면 남북관계의 주도권을 쥘 수 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언제부터 잘못된 것인가? 6.25전쟁의 교훈과 아직도 전쟁의 참혹한 기억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살아있고, 그들보다 압도적인 경제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왜 이렇게 쩔쩔매는지 정말 알 수 없는 일이다. 달라는 것에 덤을 더 얹어 주고도 자기들 뜻과 맞지 않으면 참으로 듣기 민망한 막말을 시도 때도 없이 해대는데도, 여전히 굽신거리는 우리 정부의 처신을 이해할 수가 없다. 그런데 어차피 친북 좌파 정권이라고 규정받으면서도 오직 북한에 모든 것을 걸고 있는 정부는 그렇다치자.그런데 이런 굴욕적 사황에서도 국민적 자존심은 고사하고 오히려 북한을 역성들며 우리 내부를 공격하는 이들은 도대체 무엇을 생각하는 사람들인가? 지금 북한이 구사하는 용어가 시정잡배나 불량배들의 극단적인 용어들이지 어디 외교적이거나 정치적인 표현이 있는가? 이런 원색적인 비난과 조롱에도 웃고 있는 그들은 도대체 누구인가?탈북자들은 사선을 넘어온 투사들이다. 이유야 어떠하든 그들은 북한의 실상을 외부에 알렸고, 외부의 사정을 북한에 알리려는 사람들이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을 그들 스스로의 힘으로 하고 있는데, 왜 그렇게 모진 대접을 받아야 하는가? 이 땅의 언론과 의사 표현의 헌법적 자유가 북한 김여정의 한마디에 모두 고개 조아려야 하는 이 비참한 모습에도 민주주의적 분노가 없는 이 상황을 무엇으로 표현해야 하는가?자유는 그 자유에 걸맞는 희생을 담보로 한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자유는 6.25전쟁이라는 엄청난 비용을 치르고 얻은 것이다. 그런데 우리 현실이 이런 자유를 위협하는 것이라면 향후 우리의 자유를 위해서 치러야할 또 다른 대가가 있다. 북한의 망동에 대한 정부의 무기력 무능력한 대처는 국민으로 하여금 새로운 대가를 치러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필자는 개성공단이나 금강산 관광이 갖는 의미나 가치를 폄훼하는 것이 아니다. 남북군사합의나 남북공동연락사무소의 역할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들은 북한정권유지를 보장해 주겠다는 우리의 성의요 나름의 조치인데 이것을 들고나와 협박하는 이 행태를 바라보면 그 저의를 따지기 이전에 남북의 기본 틀을 다시 놓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지난 4일 김여정은 담화에서 '인간추물' '똥개' '쓰레기'라는, 도저히 정치 지도자가 쓸 수 없는 용어들로 원색적인 비난을 퍼부었으며, 대남보복조치로 개성공단 완전철거, 남북군사합의 폐기를, 다음날 5일에는 통전부가 남한이 몹시 피로해 할 일을 준비하고 시달리게 해주겠다고 위협하며 그 첫 순서로 남북 공동 연락사무소를 결단코 철폐할 것이라고 했다.이 위협에 기겁을 한 남한 정부와 청와대는 반응이 없다. 아무리 모르는 사람이라도 생각해보면 개성공단을 완전철거하면 누가 손해인가? 우리 기업의 손해는 입을 대로 입었고 나름대로 극복했다. 남북군사합의가 폐기되면 우리의 군사적 대응에 맞설 여력이 있는가? 남북 공동연락사무소가 우리에게 그리 실익이 있는 것이 아니다.그런데 그들이 이토록 기고만장한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이것들은 모두 문재인 정부가 그 동안 남북관계 업적으로 알린 내용들이다. 즉 북한이 터 잡은 것은 이 정권이 치적으로 홍보한 것들을 그들 말대로 죽탕쳐버리겠다는 위협으로 우리 정부의 멱살을 제대로 잡아보겠다는 말이다. 그래서 정부와 청와대는 진퇴양란에 답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러나 이 시점에서 청와대가 과감한 결단을 한다면 업적은 업적대로 인정받고, 국민의 자존심을 지켜줌으로 남북관계의 주도권을 쥘 수 있다. 버리면 얻는다. 최후에는 북한을 버릴 각오로 이것들을 먼저 버릴 수 있다는 결단을 갖는 순간, 정부는 그토록 원하던 남북관계의 주도권을 쥘 수 있다. 그렇지 않는 한 우리 정부는 불량배에게 소위 삥을 뜯기는 돈 많은 얼치기 신세를 면하지 못한다.
    • 칼럼
    • 임성택시사프리즘
    2020-06-12
  • 눈물짓는 늙은 어미, 우리의 슬픈 자화상
    윤미향, 참 딱한 이 인사의 모습이 이용수 할머니의 폭로에 대해 해명한지 8일이 지나도록 공식석상에서 안보인다. 21대 국회의 불체포 특권이라는 국민이 준 보호막아래 숨으려는 사악한 판단의 처신일까? 늙은 어미의 절규가 온 땅을 흔들고 있는데도 그녀의 흔적은 찾을 수가 없다. 자랑스러울 21대 국회 초선 당선자 의정 연찬회장에 마련된 그녀의 자리가 비었다. 그녀를 위한 의원회관 530호가 분주해야할텐데 아직도 20대 방 주인 사람들이 머물고 있단다.윤미향의 침묵 의미는 무엇인가? 정의연 관계자조차 최근 불거진 여러 의혹과 관련해 제발 공식 입장을 내 달라고 읍소하면서 답답해하고 있다. 무덤덤하던 민주당 지도부 인사들도 윤 당선자 관련 언급을 피하면서 윤 당선자가 빨리 해명하고 결단을 내릴 것을 압박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14일 윤 당선자를 두둔하는 공동 성명에 참여했던 남인순, 강창일 의원 등도 국회의원이 되기 전에 이용수 할머니가 지적한 문제를 해명하고, 국민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정작 민주당의 딱한 처신을 보면 그 나물에 그 밥을 어쩔 것인가?이용수 할머니의 폭로가 나오자 친 정부 지지자들은 할머니를 갑자기 ‘토착 왜구’로 몰며 조롱하고 있다. ‘치매’로 정신상태를 문제 삼다가, 너무도 또박또박한 기자회견을 보고서는 ‘조종’받고 있다고 몰아세웠다. 야당 의원과 연계되었다는 가짜 뉴스, '국회의원 윤미향'을 질투한다는 참 가소로운 모멸까지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반응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런 그들이 과거 이용수 할머니를 대했던 언행들을 돌아보면 이건 소위 양아치들도 하지 않는 배신과 음모를 할머니에게 가해함으로 이제 할머니는 일제가 아닌 친정부 인사들로부터 모욕받고 있다.친정부 인사들은 위안부 피해자들을 신주 모시듯 그들을 대변했던 사람들이다. ‘위안부’는 반일 프레임의 강력한 동인이었고, 문 대통령은 방한한 트럼프 대통령의 국빈 만찬에 이 할머니를 초청했고, 위안부 피해자 행사 때는 휠체어의 할머니의 손을 잡았다. 할머니 이야기를 다룬 영화를 보며 울던 그들이 진실을 밝히는 할머니를 향해 '친일파'라고 공격한다. 그렇게 다정했던 청와대도 국정과 관계가 없다며 청와대를 끌어들이지 말라고 한다. 대통령의 만찬장과 행사장은 국정 현장이 아닌가?철저하게 이용당한 할머니, 그 늙은 어미의 눈물어린 모습이 왜 우리의 자화상처럼 보일까? 할머니는 그들에게 '명분'이었고 이용하기 매우 적합한 대상일 뿐이었다. 그처럼 우리 착한 국민들도 그들을 믿고 촛불을 들어 ‘적폐청산’의 명분을 주었다. 그들 손에 쥐어진 촛불은 그야말로 조자룡의 헌칼이었으며 전가의 보도였다. 그들의 화려한 공연에 매혹당했고,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는 백척간두의 험지에 되돌아가기도 힘든 좁은 길에 멈춘 버스 모양이 되어 버렸다. 뛰어내릴 수도 없고 돌아갈 수도 없는 절체절명의 현실이인데도 이 정부는 그러니까 계속 가야한다고 협박한다.참 초록동색(草綠同色)이라도 이 정도면 곤란하다. 윤 당선자가 결단을 내리지 못한다면 당이 해결해야 한다. 당은 윤 당선자 개인을 보지 말고 정의연의 반일(反日) 위안부 운동의 30년 자산을 생각해야 한다. 만일 윤 당선자를 정리하지 못하면 정의연의 공든탑은 하루 아침에 무너진다. 친일파 토착왜구가 누구인가? 민족을 해하고 왜(倭)를 돕는 사람이다. 지금 이 사건으로 가장 신난 사람이 일본 아베 총리와 그 나라의 극우세력인데, 그러고 보면 윤미향과 그를 두둔하는 모든 인사들이 지금 이 시대의 가장 악랄한 토착 왜구들이다.반일(反日)로부터 시작된 극일(克日)을 거쳐 그 옛날 우리에게 문화와 예술을 배워가던 섬나라 일본을 앞서가는 궁극적인 선일(先日)의 날이 올 때까지 토착 왜구는 척결되어야 하고 이 땅에 설 수 없게 해야 한다. 그래서 친 정부세력들이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했던 반일정서가 국민적 지지를 받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이번 일의 미온적인 처신과 어설픈 해결 시도 그 자체로 반일정서의 가장 큰 표적이 될 수 있음을 왜 모르는가? 온 국민은 이용수 할머니의 눈물어린 호소에서 우리의 자화상을 그리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 칼럼
    • 임성택시사프리즘
    2020-05-28
  • 신천지, 그리고 이태원의 그 클럽?
    누가 그런 농담을 했다. “이번 코로나19 바이러스, 참 대단해. 신천지를 박살내더니 이제는 동성애자들 다 잡네!” 누군가 장난스럽게 올린 댓글치고는 목회자인 필자에게 던지는 작은 울림이 있었다. 바이러스가 대구에서 신천지를 중심으로 급격히 퍼져나가고 있을 때, 그 엄청난 사회적 파장의 비난은 애궂은 교회가 직격을 당했다. 마치 교회가 바이러스 전파의 전적인 책임이 있는 것처럼 뒤집어 씌우며 사회적 거리를 명분으로 교회의 예배를 합법적으로 막았다.정권이 지목한 교회에는 수백명의 공무원을 그것도 일요일에 파견하며 감시 감독하던 이들이 그 때에도 여전했던 클럽을 포함한 유흥시설은 관리 흉내만 내고 있었다. 그렇게 극성을 부리던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잦아들 무렵 급기야 이태원 클럽에서 결국 대형사고가 다시 터지고 말았다. 그런데 이것이 참으로 묘한 흐름을 보여 주었다. 신천지 신도와 동성애자들의 공통점이 일을 키우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신분을 밝히기가 극히 곤란한 그들의 처지였다.신천지 신도들은 자신이 신천지 신도임을 밝혀지는 것을 극도로 꺼렸는데, 동성애자들의 노출은 신천지 신도들의 그것보다 더 극심하고 부정적이어서 어떤 불이익을 감수하고라도 더 깊이 숨어들 것이 분명하다. 이 때문에 이들의 동선 파악이 불가능함으로서 역할조사는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모르긴 몰라도 정부와 서울시가 아무리 위협을 가해도 그들은 점점 더 깊은 그늘로 숨어들 것이다. 이들을 끌어낼 묘안이 백출이지만 그 실효성은 의심스럽다.그런데 어제, 김경수 경남지사가 11일 자신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문승욱 국무조정실 2차장에게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의 발언을 지적하는 문자를 보냈다고 한다. 김 지사는 이날 문 차장에게 "좀 전 중대본 회의 시 보건복지부 장관의 이태원, 논현동, 익선동이 성 소수자들의 이동경로이니 적극 대응해달라는 발언은 대단히 위험한 얘기"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김 지사는 "성 소수자 차별일 뿐만 아니라 이태원 클럽 확진자 발생에 대한 정부 대응이 성 소수자를 타깃으로 하고 있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발언"이라며 "장관님 인식이 그렇다는 건데 걱정"이라고도 했다.중대본 회의에서 이태원, 논현동, 익선동 내 감염자 파악 및 방역 관리에 대응하면서 필연적으로 등장하는 동성애자들 문제를 두고 언급한 내용 중에서 동성애 관련 발언 자체를 막아버린 김지사의 모습에서 얼마 전 교회를 향해 인정사정 없이 퍼붓던 그들의 독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정권이 공정성을 잃어버렸다는 반증이며, 교회에 대한 그들만의 뚜렷한 목표가 있다는 가설을 증명하고 말았다. 실상 신천지를 제외하고 일부 교회의 일탈적 과도함이 빚어낸 것을 제외하고는 크게 무리를 일으킨 적이 없다.그러나 이태원의 클럽과 그 출입자들은 성질과 다르다. 클럽의 밀착성과 익명의 접촉이 가져올 참사에 가까울 전염, 그리고 그들 대부분은 젊은이들이고 그들의 왕성한 활동력은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을 것이니 그 전파력은 가히 설명하기 힘들다. 그 가운데 동성애자들은 자의든 타의든 신천지 신도보다 더 깊이 숨어들 것이고, 아마 그 추적이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그런데 이들을 건드리지 못하고 숨도록 도와줘야 한다는 취지로 들리는 김지사의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교회는 사태 시작부터 번지수가 틀렸다고 수없이 말해왔다. 유흥업소, 이곳에 가장 위험하고 사태 감당이 어려우니 이를 단속하라고 할 때도 그들은 오직 교회 예배만을 막는데 집중했고, 사태가 다시 벌어진 지금에도 그들은 여전히 특정인들을 감싸고 있다. 도대체 설명불가능한 이들의 언행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정말 정부는 교회와 대립각을 넘어 타도의 대상으로 보고 있는가? 동성애자들을 위하여 입조심을 하는 그들이 지금 교회를 향하여 쏟아내는 언행은 그대로 묵과할 수 있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정권의 설계된 모종의 의도가 있지 않고는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다.그러니 교회는 지금부터라도 정신을 차려야 한다. 비둘기의 순결을 지키기 위해 뱀처럼 지혜로워야 한다. 교회가 동성애자들을 적대시한다는 인상을 지워야 한다. 교회가 싸워야 할 것은 동성애와 동성애 옹호세력이지, 동성애자들이 아니다. 그런데 지금 사회는 교회가 동성애자들을 핍박한다고 몰아간다. 그들의 교묘한 말장난에 교회가 놀아날 이유가 없다. 이럴 시점에 굳이 이태원 클럽과 동성애자들에게 시비 걸 이유가 없다. 역으로 교회는 더욱 더 방역에 힘쓰고 예방 수칙을 준수해야 한다. 그리고 성도들을 독려하여 엉뚱한 곳에 출입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하며, 정부의 코로나19 이태원 사태를 어떻게 대응하는 지를 주도면밀하게 살펴야 한다. 그리고 사회와 정부에 빌미를 주지말고 이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교회다운 능력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 칼럼
    • 임성택시사프리즘
    2020-05-15
  • 전투에 이기고 전쟁에 지다
    이번 4.15 총선의 과정과 결과는 승패를 떠나 보수세력들에게 많은 교훈을 남겼다. 선거 한달 이전에는 야당 통합과 줄이은 불출마 선언, 여당과 정부의 실정에 대한 국민적 비판과 초기 코로나19 사태의 대처 실패에 따른 분노로 야당의 압승을 예측할 정도로 분위기가 좋았다. 그러나 이것은 희망사항이었고 연이은 야당 지도부와 후보자들의 실수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로 이어졌다.이런 분위기를 망친 것은 전체적인 전략 부재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여당은 국민적 비난과 염치 불구하고 위성비례정당을 만들면서도 일사분란한 선거체제를 유지하면서 전략적 대처로 위기를 돌파해 갔다. 대표적인 것이 악재였던 코로나19가 세계적으로 확산되면서 오히려 우리나라가 잘 대응한 것으로 세계언론의 평가를 받자 이를 호재로 바꾼 것이다. 동시에 야당의 계속되는 막말과 혼란의 반사이익을 빠짐없이 챙겨 사상 유래없는 결과를 얻었다. 야당은 참 미숙하고 어리석고 난삽했다. 전략도 전술도 목표도 책략도 없었다. 국민이 뭘 원하는 지, 어떻게 하라는 지도 모르는 것 같았고, 만일 알고도 그랬다면 이들은 향후 수십년은 정권을 잡아서는 안될 집단이다.보수 야당의 최고의 실책 중에 하나인 막말(舌禍)는 차명진 의원의 세월호 관련 발언이며, 황교안 대표의 n번방 언급이다. 정말 이렇게도 국민 정서를 읽지 못할 수 있는가? 항간의 이야기처럼 세월호 사건은 해상 교통사고이며, 야당 주장대로 정부 여당과 관련 인사들이 지겨울 정도로 우려먹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본질은 그것이 아니다. 300명이 넘는 꽃같은 중학생들이 어른들의 무책임과 무능력으로 뱅골만 차가운 바다속에 수장되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군인 3만 아니 30만명이 전사한 것과는 비교도 안되는 참사이다. 알토란 같은 자식을 그렇게 고통스럽고 비참하게 그것도 아무런 의미없이 죽었고, 그 이유가 책임있는 이들의 무책임과 무능으로 죽었다면 이것은 그 당시 집권세력에게는 영원한 주홍글씨임을 왜 모르는가?여당은 줄기차게 이를 반복하고 반복하며 활용해도 절대로 손해보는 일이 없다. 그렇게 강력한 대선 후보였던 이회창 총재가 막상 투표에서 왜 두번이나 실패했는지를 잊었는가? 국민감정이 그렇다는 것이다. 내 아들이, 또는 내가 2년 혹은 3년 이상을 혹독하게 치른 군대생활을 고관대작의 자녀라고 면한 사실은 그 어떤 현실이라도 막상 투표장에서는 손이 가지 않는다. 이처럼 세월호는 모든 국민에게서 미안하고 안쓰럽고 고통스러운 것이다. 그래서 다른 원호대상이나 예우들보다는 비교도 안되고 말도 안되는 지원이 있더라도 그냥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다. 이것이 민심이다.그런데 이 일을 개인적 술자리나 식사자리가 아닌 공개석상에서 비난하고 흠잡으면 그 순간 중도민심은 본능적으로 돌아서고 여당은 박수치고 기뻐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 같다. 이는 중대한 전략적 실수이다. 야당은 지금이라도 세월호 사건을 여당의 전유물로 주지 않을 전략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야당은 당시의 집권당이었기에 지금 여당보다 세월호에 대하여 더 적극적이어야 한다. 도대체 국민을 상대로 정치를 한다는 야당의 이런 행태는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또 하나 황교안 대표의 n번방 사건 단순 관련자 홍호 발언은 그야말로 패배의 화룡점정이었다. 필자도 그 말을 듣는 순간, “아! 야당이 졌구나. 질 수 밖에 없구나!”하고 탄식했다. n번방 사건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어떠했는지 청와대 민원 청원숫자만 보아도 알 수 있는데, 거기에 호기심으로라도 접근했던 사람까지 엄벌해야 한다는 말을 못할지언정, 억울한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발언은 그야말로 국민적 감정에 기름을 퍼붓는 꼴이 되고 말았다. 황 대표는 “누구든지, 비록 단순히 실수로 관련된 사람들까지 검찰은 철저히 수사해야 한다”고 말해야 했다.야당은 소소한 전투에서 이긴 야당의 오만함과 자기지분 챙기기의 어리석음이 4.15전쟁에서의 대패를 가져왔다. 전략부재, 비젼부재, 인재부재, 리더쉽부재... 온통 부재 덩어리 군대를 이끌고, 우선 무턱대로 전장으로 떠한 오합지졸 앞에, 몇 번의 전투 패배를 반면거울로 삼아 잘 정돈된 여당의 정규군에게 완패했다. 어떤 것도 변명의 여지가 없다. 완전히 해체하고 완전히 새로운 당으로 다시 창당되어야 한다.
    • 칼럼
    • 임성택시사프리즘
    2020-04-24
  • 비둘기의 순결을 지키기 위한 뱀의 지혜
    무서운 속도의 변화, 치열한 냉정함이 국제 무대를 휩쓸고, 벨트를 형성하며 이념대 이념으로 연대하여 농성하던 시대가 가고 있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 이제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우방도 없고 적국도 없이 오직 이익 중심의 합종연회의 새로운 국제질서에 우리가 살고 있다. 불투명한 미래, 현존하는 북핵의 위협, 일본의 도리질, 폭발해가는 내부 갈등, 점증하는 민심의 뒤틀림, 도대체 종잡을 수 없는 위정자들의 혼란함에 우리가 살고 있다.이 무서운 시대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빠른 속도로 적응해 가야 하는데, 참 한심한 선거법으로 참으로 딱한 선거법으로 괴상한 선거를 치러야 하고, 그 앞길을 코로나19바이러스가 막아서고 있어 진퇴양란이다. 이를 극복할 전문가들은 죄인처럼 숨죽여 사지에 내몰린 채 그나마 헌신하고 있는데, 대책없는 정치가들이 앞 다투어 표를 의식하며 갑론을박하는 현실이 너무 안타까울 뿐이다. 그래서 이런 졸렬한 환경에서도 선전하고 있는 방역작업의 일등 공신 우리 국민들이 대견하다.이렇게 무지막지하게 풀어대는 엄청난 돈의 후유증을 훗날에 어떻게 감당할지 나감하고, 이 짐을 져야할 자식들에게 미안한데도, 곡간을 마구 헐고 얻을 수 있는 빚이란 빚은 다 얻어서 우선 먹고 보자는 이 무대책의 대책 앞에 허둥대고 있으면서도 자화자찬 하는 위정자들의 무능함이 가슴저릴뿐이다. 그것을 선거 전략에 최대한 활용하는 저들의 선전선동 기술이 놀라울 따름이고 이에 동조하는 착한 백성들의 신세가 안타까울 뿐이다.그런데 그 반대편의 사람들은 뭘 하고 있는가? 뭐가 그리 지킬 것이 많아 아직도 여당 시절의 배부름의 한가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가? 여당의 독주에 제대로 되고 쓸만한 태클한번 걸지 못하고, 쓸데없는 오버 액션에 무의미한 삿대질과 보여 주기식의 농성이 전부였다. 그러고도 보수의 적자임을 자임하며 지키겠다는 그 배짱이 놀라울 따름이다. 그 놀라운 처세술과 적응력이 놀랍기는 하지만 그것이 자신의 존재기반을 스스로 허물고 있음을 알기는 알까?그래도 4.15는 어김없이 일정한 속도로 다가오고 있는데, 대안도 없고 방향도 알 수 없어 불안하기가 이를 데 없다. 예언도 없고 선지자도 없던 신구약 중간시대, 애매모호하고 석화된 율법해석서들이 난무하며, 로마의 정권과 친분을 유지하며 종교적 품위를 유지했던 회칠한 무덤 종교지도자들의 득세, 어찌 우리의 시대가 그 때와 비슷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무력한 교회, 침묵하는 목회자, 교회의 엄중한 무게와 복음의 순수함도 갖추지 못한 채 복음과 교회를 내세우는 사람들, 아무리 둘러보아도 우리의 안전과 생명 그리고 미래를 담보할 세력이 보이지 않는다.그래서 곰곰이 우리 역사를 돌이켜 보면 위정자들이 나라를 망치고 매국에 앞장설 때, 그래도 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켜낸 마지막 세력은 의병들이었다. 상황은 다르지만 운명은 같을 수 있기에 필요한 것이 이 시대 이 나라를 지켜낼 의병운동이다. 총칼을 들 수는 없지만 그것보다 더 무섭고 가한 것들이 많지 않은가? 순결함이다. 순수함이다. 오직 국민을 위하고, 자손을 위하고, 나라의 현실과 미래를 위하여 민주의 순결함, 지금 우리는 감속에 깊이 숨겨둔 진실과 순결함을 꺼내야 할 때다.그러나 비둘기의 순결함은 그냥 지켜질 수 없다. 왜냐하면 순결은 타자를 움직일 힘은 있으나 스스로를 지킬 힘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둘기의 순결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것이 뱀의 지혜다. 뱀의 지혜가 없으면 비둘기의 순결함은 아무 의미가 없다. 이 나라의 미래를 바꿀 힘은 우리 국민의 순결한 애국심, 순수한 민주의식에 있다. 이것을 사악한 무리들, 무능한 무리들, 저능한 무리들에 의해 농락당할 우리의 미래를 지켜내기 위해 뱀의 지혜를 모아 보자.힘 없는 평화는 굴종이며, 힘 없는 사랑은 무의미하듯이 힘 없는 순결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순결하기 위해서는 버려야 하고, 참아야 하고, 양보해야 하고, 주어야 한다. 그러나 순결하지 못한 자는 빼앗고, 화내며 덤비고, 훔친다. 그러나 그것이 칼이 되어 자신의 가슴을 찌른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에는 너무 늦다. 우리의 민주와 자유와 윤리를 위한 순결을 위하여 뱀의 지혜를 모으자. 우리 4.15 총선이 이 지혜의 집합이 되게 하자. 그리고 승리한 자의 축배로 의미없이 타오르고자 하는 불꽃을 조용히 끄도록 하자. 우리 그날!
    • 칼럼
    • 임성택시사프리즘
    2020-04-10
  • 그렇게 맑은 봄날이 서러운 이유
    9시 뉴스를 틀면 서울사랑교회가 온통 화면을 채운다. 그리고 각 교회의 오프라인 예배 ‘강행’이라는 자막들이 군데군데 보이며, 교회는 온통 코로나19바이러스 전파의 진원지로 도배되고 있다는 분위기, 아니 이런 분위기로 몰고가고 있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이때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대형사건 앞에서 책임을 벗어야 할 세력들이 희생양을 찾고 있는 분위기라는 표현이 적확할 것이다.고대 로마가 불타자 그 책임을 기독교인에게 뒤집어 씌웠던 황제 네로, 그의 간교한 술수와 비참한 말로를 오버랩 시키면서, 네로의 어리석고도 간교한 술수와 무식한 배짱이 만들어낸 대량 기독교인 학살로 인해 어쩌면 네로가 그 화재의 책임을 벗었는지는 몰라도 그가 전혀 상상할 수 없었던 곳에 계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진노로부터 피할 수는 없었다. 그가 백성을 만나 댓가를 치렀더라면 그래도 소망이 있었을 것이나, 그가 대신 선택한 예수는 적어도 그에게는 절망적이었다.하여간 필자는 코로나19바이러스 퇴치와 극복, 사회적 상처의 치유와 회복에 관한 한국교회의 눈물겨운 노력에 고마움을 표한다. 이렇게 심히 언론과 일부 세력이 기독교를 폄훼하고 난도질 해도 여전히 예배를 지키며, 지역 사회를 설득하고 협조하는 성숙한 모습이 자랑스럽다. 필자의 교회는 새벽기도부터 금요기도회까지 모든 예배와 집회를 평소와 다름없이 진행하고 있다. 다만 교회내 모든 공동식사와 행사와 셀모임과 각종 프로그램을 모두 중지키셨다. 비접촉 발열 검사기를 들고 서 있는 우리 교회를 방문한 시청 공무원이 잘 하고 계시다고 격려하고 돌아갔다.네로의 간교함과 어리석은 판단으로 저지르는 소행은 하나님께 맡기자. 누가보아도 의도를 가진 편집과 멘트로 교회와 예배를 공격하고 있는 언론을 탓할 것 없다. 때는 이때다 하고 교회로 덤벼드는 악질 안티 크리스천들의 시비도 그냥 받아 주자. 여전히 예배하는 교회를 백안으로 쳐다보는 지역 주민들에게 미안함으로 웃어주자. 우리는 예배를 멈추어 달라는 그들의 요청을 이해할 수 있지만, 그들은 우리가 예배해야 하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한다. 아니 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낮추고 미안한 마음으로 그들을 설득해야 한다. 절대로 이 일을 싸울 일이 아니다.또한 예배를 모두 폐한 교회와 모든 예배를 다 하고 있는 교회, 주일 예배만 드리고 모든 예배를 폐한 교회 등등, 그러나 이런 것으로 서로 정죄하고 싸우면 안된다. 주장은 분명히 하자. 그러나 그것은 주장이고 자신의 신앙이다. 그 주장과 신앙고백을 터잡아 싸우면 안된다. 이것은 사단이 지극히 기다리는 묘수다. 필자는 예배를 포기함의 여부가 알곡과 가라지를 구별할 시금석이라고 까지 주장했다. 그러나 이 역시 필자의 주장이다. 그것으로 누구를 정죄할 생각은 없다.우리 모두 교회를 사랑하고 예수 이외에는 구원이 없음을 고백하는 본질적 일치의 신앙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것은 서로 흉금을 터놓고 대화하고 논쟁할 일이지 정죄할 일은 아니다. 그럼과 동시에 모든 교회는 힘을 다해 상처받은 이 민족의 아픔을 어루만지고, 방역의 최일선에서 점염병과 싸우고 있는 의료인들을 격려하고, 가장 큰 타격을 입은 대구 경북을 위해 기도하고 무슨 방법으로든지 그들을 도와야 한다. 특별히 이 일고 고통받고 있는 개척교회들과 미자립 교회를 돕기 위한 중대형 교회들의 노력은 진실로 고마운 일이다.어제 일산의 하늘은 눈부시도록 맑았다. 모든 나무들이 겨우내 버티고있던 회색 껍질을 벗어내려는 통에 온통 화려한 잿빛이 수목을 덮고 있었다. 생명의 약동이 피부와 숨결로 느껴질 정도로 강인한 것이었지만, 그렇게 맑은 봄날이 시리도록 서러웠던 것은 무슨 까닭이었을까? 봄을 채 느끼지도 못한 어느 새 내 곁에 와 있는 봄빛과 색깔을 보면서 환하게 웃을 수 없는 현실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힘을 내야 한다. 우리가 봄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더 힘차게 모여 기도해야 한다.사회적 거리두기가 예배를 폐하는 조건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는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시는 분이시오, 그로 인하여 우리는 외양간에서 뛰어나온 송아지처럼 뛸 것이다. 우리가 그의 말씀과 계명을 지키며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면, 그는 치료하는 하나님이시라, 우리 곁에 계신 그 분의 긍휼에 찬 위로를 받을 것이다.
    • 칼럼
    • 임성택시사프리즘
    2020-03-27
  • 공권력은 예배에 간섭하지 말라!
    지난 7일 국회에서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종교집회 자제촉구 결의안’을 의결하였다. 명백히 폐쇄된 공간에서 예배하는 교회를 향한 것인데, 마치 예배가 코로나19 바이러스 전염에 책임이 있는 것처럼 들리는 말이라, 이미 상당한 시간과 준비를 거쳐 이에 대응하고 있는 교회로서는 매우 유감이다. 교회는 이 질병의 위험성과 사회적 파장을 고려하여 나름대로 철저한 방역과 온라인 예배를 곁들인 자구 노력을 통해 국민의 보건과 건강을 지키는데 전력하고 있다.그런데 같은 날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종교집회 전면금지 긴급명령 검토’를 언급하고 나섰다. 개인의 페이스북을 통한 의견 개진이었지만, 무식하다고 해야 할지, 오만하다고 해야할지는 모르겠으나 무식하고 오만하기가 이를데 없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일개 지방자치단제창이 헌법에 보장된 종교의 자유를 손댈 수 있다는 초헌법적 발상이 가련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의 정치적 쇼맨십이 도를 넘은 듯하니, 더 이상 가벼운 입놀림으로 허물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교회의 예배는 종교의식이나 행사가 아니고, ‘하나님의 생명예전’이다. 분명히 하자. 예배는 하나님 앞에 선 자의 현실이다. 교회의 모든 예배는 교회의 존재이유이며, 성도됨의 이유이며, 전도의 목적이며, 충성의 궁극이다. 그 어떠한 이유로도 예배를 중단하거나 포기할 수 없다. 누구에게도 그럴 권리가 없다. 예배의 주체는 하나님이시다. 그가 받으시는 예배는 그가 정하신다. 예배학의 기본이다.예배하지 않는 자는 성도가 아니다. 예배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생명을 제대로 공급받지 못한다. 육의 생명을 위해 하루 세끼를 원하는가? 그럼 영을 위하여서는 얼마나 많은 예배 곧 영적 양식인 찬양과 기도와 말씀이 필요할까? 그것을 일주일 한번 예배로 충분하다고 할 수 있는가? 이는 예배를 한갓 종교 행사로 보는 자들의 교만함이며, 생명에 대한 잔인함이며, 용서받을 수 없는 무례함이다.이런 유약함으로 박해시대가 도래하면 견딜 수 있을 것이며, 중국처럼 법으로 예배를 금하는 사태가 올 때 응전할 용기나 있을까? 신사참배를 받아들인 목회자들의 변명이 얼마나 신앙적이고 고상했었는지 아는가? 눈물겨울 만큼 애닮을 정도였다. 그런데 지금 그 때의 변명들이 유령들처럼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는 것 같아 온몸이 저려온다. 목회자가 예배를 포기하거나 소중히 여기지 않으면 성도들의 영이 죽는다. 혹자는 전면적인 인터넷 예배를 권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보조수단으로는 유효할 뿐이다. 설교가 예배의 전부인가? 설교라면 유튜브에 유명인들의 설교가 차고 넘친다. 성경공부, 특강, 간증 등등 필요한 모든 자료들도 넘친다. 그러나 예배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 경배하고 찬양하고 기뻐하며 감사하는 인격적 만남이다. 거룩한 만찬이 있고, 성도의 귀한 교제가 있다. 이런 다양한 예배의 요소 중 단 하나라도 인터넷 예배가 충족할 수 있는가? 사이비 모조품을 만들어놓고 진품이라고 우기지 말라! 그 입술이 참담하다.문제는 목회자들의 유약함에 있다. 대형교회 목회자들이 이런 예배의 소중함과 원리를 모를 리 없다. 그러나 알고도 정부의 포장된 압력에 굴복하고 있다. 그들이 굴복하니 중,소형 교회들은 알아서 예배를 닫는다. 아마 정부도 ‘교회의 사회적 책무’ 등 그럴 듯한 이유 하나로 예배를 이처럼 쉽게 중단시킬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을 것이다. 아마 지금 즈음 교회를 골치 아파하는 이들은 눈을 부릅뜨고 이 현상을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방법을 찾았을지도 모른다.기억하라. 그 날이 가까우면 곳곳에 큰 지진과 기근과 전염병이 있겠고 또 무서운 일과 하늘로부터 큰 징조들이 있으리라고 했다. 이럴 때 교회가 할 일은 변명할 것을 미리 궁리하지 말고 대적이 능히 대항하거나 변박할 수 없는 구변과 지혜를 주실 주님을 의지하며, 그로 말미암아 주의 이름 때문에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머리털 하나도 상하지 아니하겠다는 그 말씀을 의지하고, 우리의 인내로 우리 영혼을 얻어야 할 것이다(눅 21:11-19).동역자들이여! 어떤 경우에도 예배를 닫지 말라! 그대가 진정한 목자이거든 ‘예배는 하나님을 향한 성도의 생명 예전임’을 잊지 말라! 목숨을 내어 놓고 모든 예배를 지키라! 물러서거나 놀라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그는 치료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아멘
    • 칼럼
    • 임성택시사프리즘
    2020-03-12
  • 이인영 대표는 온건한 교회까지 나서기를 부추기는가?
    최근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총선이 시장·종교·언론 등 분야의 기존 패권이 재편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귀를 의심할 만한 발언을 했다. 총선을 불과 몇 개월 앞두고 한국 정치의 일번지의 위상을 가진 정당 그 핵심에 서 있는 사람, 그것도 고도의 정치적 감각을 가졌다는 이대표가 자신의 발언이 몰고올 파장에 대해 충분히 계산했을 것이기에 더욱 귀를 의심한 것이다. 저 발언이 저절로 개편이 될 것이라는 희망담은 전망인지, 아니면 그렇게 할 집권당의 프로그램이 있다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정치인의 입에서 종교 재편을 거론하는 것 자체로 이미 그는 대부분의 교회들이 어떻게든 들고 나설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고 말았다.그는 교회의 현재를 말하면서 온건한 교회라는 표현을 썼다. 그러면 지금 이 대표가 말하는 온건한 교회란 광화문에 몰려가 있는 정광훈 목사의 광야교회가 아닌, 행동하지 않는 다수의 교회를 지칭한 듯하다. 그러면 언필칭 온건한 교회들은 집권당에게 비교적 우호적이라는 뜻으로 들리는 데, 만일 이런 생각이 맞는다면 그는 집권당 대표로서의 자질은 물론 그 처신과 언행에서도 일반 상식인에도 못미치는 것임을 한탄하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이 대표는 무엇을 근거로, 기준으로 온건한 교회와 거친 교회를 구분하고 있는가? 자신들의 편에 들지 않으면 모두 거친 교회들이고, 고분고분 말을 잘 듣는 교회는 온건한 교회인가?그의 말을 듣고 있으려니 그가 지칭한 온건했던 교회들조차 모욕감을 느낀다고 하는 것을 보면, 어쩌면 이 대표의 발언을 기점으로 온건한 교회들이 지금 왜 온건하게 처신하고 있었는지 그 이유를 가르쳐 줘야 할 것같다는 생각이 든다. 묘하게도 이 대표는 지금 온건한 교회를 거친 광야로 불러내고 있다. 사법부를 완전히 장악한 집권당이 패스트트랙의 탈법적 운용으로 공수처와 선거법을 통과시켜 경찰과 검찰 그리고 무력한 야당을 결박시키더니, 이제 그들의 마지막 저항 세력으로 남아 있는 교회를 손보겠다는 뜻으로 들리는데, 가소롭기가 그지없고, 오만하기가 짝이 없다.종교와 정치의 분리의 주체는 종교임을 이 대표는 아는가? 이 정교분리는 국교 금지를 근간으로 하는 것으로, 정치의 종교 간섭을 배제하는 데서 출발한 사상이다. 그런데 지금 이 아둔한 자들이 정교분리의 원칙을 종교의 정치 간섭을 배제하는 것으로 거꾸로 이해하고 있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정치는 절대로 종교의 간섭을 벗어날 수 없다. 왜냐하면 한 국가의 통치권은 하나님에 의해 위탁된 것으로 그 권세에는 마땅히 모든 국민들은 순응하여야 한다. 성도들이라고 다른 것이 아니다.그러나 교회는 이 정치가 하나님이 주신 통치권이 제대로 집행되고 있는 지에 대한 감시와 지도의 의무가 있다. 그들이 바르게 권력을 사용하면 적극 협조하고 순응하며 따라갈 것이지만, 그 권력을 주신 하나님의 듯을 가스려 반인권, 반인류, 비양심적 행태를 일삼는다면 교회는 단호하고도 분명하게 그 정권을 응징할 책무가 있다. 비록 이 응징이 무력이나 폭력을 사용한 것이 아니고, 또 권력자의 칼에 죽을 수도 있지만 그것은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다. 다윗왕의 말 한마디면 목이 날아갈 나단 선지자가 그 위세에 굴하지 않고 다윗을 찾아가 “바로 당신이 그 사람”이라고 소리칠 수 있었던 것은 정치에 대한 종교의 중대하고도 막중한 간섭의 의무를 저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다.이 대표는 대답해야 한다. 정말로 정권이 기독교 재편의 시나리오를 가지고 있는가? 그렇다면 작전대로 시행하라. 그러면 온건한 교회들이 거기에 어떻게 응답하는 지를 똑똑히 보게 될 것이며, 그에 따르는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할 것이며, 하나님의 거룩한 교회를 손댄 것에 대한 하나님의 응징은 단지 그에게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아니면 단순한 말의 실수인가? 그렇다면 정중히 한국교회 앞에 사과하고 그 말의 허물을 바로 잡으라. 그렇지 아니하면 이번 총선은 물론 차기 대선 그리고 그 다음 모든 선거에서 온전한 교회들의 치열한 응징의 벽을 넘어서지 못할 것이다.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이 대표가 이 말을 한지 몇 일이 지났는데 침묵하는 초라한 교회 지도자들의 옹졸한 행색이다. 어찌 분노하지 못하는가?
    • 칼럼
    • 임성택시사프리즘
    2020-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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