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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제독립교회연합회 칼럼] 박준형 목사의 ‘어둠에서 빛으로 인도하소서’ (시 107:10~17)
    “사람이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으며 곤고와 쇠사슬에 매임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지존자의 뜻을 멸시함이라”(10-11절) 밝고 환한 아이의 표정과 행동에 눈길이 가는 것은, 그런 모습이 아름답고 좋아 보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스스럼없이 즐거워하며 기뻐하는 모습 속에는 자유로움과 행복함이 들어있어 보입니다. 이러한 자유로움과 기쁨이 성도 안에 가득하기를 소망합니다. 이러한 분위기와 환경이 갖춰진 곳이 바로 천국이 아닐까요? 우리가 살고있는 이 땅에서도 천국과 같은 분위기, 천국과 같은 환경을 닮아갈 수는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세상살이를 오래 할수록 쓰디쓴 경험이 많이 쌓이게 됩니다. 야곱이 바로 왕 앞에서 그러한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바로가 야곱에게 묻되 네 나이가 얼마냐, 야곱이 바로에게 아뢰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하고”(창 47:8-9). 그렇습니다. 우리가 지나온 삶을 돌이켜 보면 고난의 여정이었으며, 험악한 세월이었습니다. 지난 2019년, 영국 런던 부근에서 냉동 컨테이너에 실린 트럭에 39구의 시신이 발견되었습니다. 이 집단사망 사건은 불법 이민을 시도하던 중 발생한 참사로, 사망자 전원이 베트남 사람으로 밝혀졌습니다. 사망자는 남성 31명, 여성 8명으로 모두 밀입국을 시도하던 중이었습니다. 냉동 컨테이너 내부 온도는 영하 25도 이하로, 최소 10시간 이상 밀폐된 채 갇혀 있다가 추위와 산소 부족으로 인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영국은 영어 사용과 일자리 기회가 많아서 불법 이민의 주요 목적지로 꼽히는 곳입니다. 보다 나은 삶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알아보다가 최고로 살기 좋다는 꿈의 나라로 향하기로 결정했을 그 젊은이들의 모습을 떠올려봅니다. 영국에서 일자리를 찾고 생활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영어도 좀 준비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영국으로의 불법 이민을 위해 상당한 금액을 브로커에게 지불한 것으로도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 젊은이들은 어째서 목숨을 걸고 그러한 길을 택한 것일까요? 비록 적절치 못한 불법적인 방법이지만, 더 밝고 환한 인생, 자유롭고 풍성한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요? 자신들이 처해있는 험악한 상황과 험악한 세월에서 벗어나고 싶었을 것입니다. 이 땅에 더 이상 이런 슬픈 일이 생기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그러기 위해 이 세상의 많은 젊은이들에게 인생을 밝게 해 줄 수 있는 유일한 빛이 비추어져야 할 것입니다. 그 빛은 예수님입니다. 사람이 어둡고 캄캄한 곳에서 살며, 고통과 쇠사슬에 매여서 사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가장 높으신 분의 뜻을 저버렸기 때문임을 성경은 우리들에게 말씀해 줍니다. 그러므로 죄악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자기는 물론, 가족과 연결된 모든 죄악의 사슬이 끊어지도록 하나님 앞에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드리고 고백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고통을 통해 우리를 낮추신 것을 깨닫고 속히 순전한 주님의 뜻을 사모하는 자세로 임해야 합니다. 그리고 고난 가운데서 주님께 부르짖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도우시며 그 곤경에서 구원해 주시는 분이십니다(13절). 우리를 어둡고 캄캄한 데서 건져 주시고, 얽어맨 사슬을 끊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난과 험악한 세월을 통과할 때, 온전히 하나님을 향해 외쳐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둠과 사망의 그늘에서 건져 주시며 새로운 소망의 빛으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한없는 주님의 은혜를 받아 누리는 여러분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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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0-02
  • [국제독립교회연합회 칼럼] 하미자 목사의 ‘세 가지 기도’(눅 11:2-4)
    기도는 하나님과 성도 간의 대화이자 영적 교제입니다. 그래서 “아버지여”라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름으로써 시작해야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은 거룩히 여김을 받아야 합니다. 그 이름 안에 모든 복음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거룩한 복음이 더럽혀지지 않도록 거짓된 교리와 부정직한 생활을 물리쳐야 합니다. 본문을 보면,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렇게 하라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우리에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소서 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예수께서는 세 가지 기도를 가르쳐주셨습니다. 첫째,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위한 기도입니다. 일용할은 꼭 필요한 우리의 양식을 의미합니다. 새번역은 “날마다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내려 주십시오.”라고 되어 있습니다. 양식을 위한 기도는 우리에게 필요한 육을 위한 기도이면서 우리 영의 양식을 위한 기도입니다. 우리는 육을 위한 양식도 필요하지만 영의 양식인 말씀을 먹어야 승리할 수 있습니다. 일용할 양식은 하나님의 선물로서 우리에게 매일 새롭게 주시는 것입니다. 일용할 양식을 달라는 기도는 우리의 현실에서 무슨 의미인지 살펴봅니다. 1) 내일에 대한 염려를 잊고 오늘 하루의 삶을 감사하고 만족하라는 것입니다.(마 6:34) 내일은 주님의 것이기에 매일 하루의 삶이 곧 하나님의 은혜임을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2) 하나님께서 우리의 육체적인 삶을 돌보신다는 것입니다. 이단 사상을 갖고 있던 영지주의자들은 영은 선한 것이고, 육은 악하고 무익한 것이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육체를 위하여 기도한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예수께서는 그런 잘못된 사상을 바로잡아 물질을 얻기 위해서도 기도하라고 가르쳐주셨습니다. 3) 양식을 위해 열심히 일하라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살후 3:1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일용할 양식은 노력해서 정직하게 얻어야 합니다. 4) 육의 양식뿐만 아니라 영의 양식까지도 포함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마 4: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5) 일상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포함합니다. 양식을 얻기 위해서는 건강해야 하고, 직장도 있어야 합니다. 학교 등록금, 병원비, 사업, 취직 등을 위한 기도는 일용할 양식을 위한 기도입니다. 6) 매일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일용할 양식이란 하루 먹을 양식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40년 동안 광야생활할 때 하나님께서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여주셨는데, 하루분만 거두도록 하셨습니다. 그래서 매일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하루분의 만나를 거두었습니다. 욕심 많은 사람은 많이 거둬서 쌓아두고 먹으려고 했지만, 그 음식은 하루만 지나면 부패되어서 먹을 수 없었습니다.(출 16:15-20) 둘째, 우리 죄를 용서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하나님께 용서받고 서로 용서하고 용서받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행하신 용서를 배워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십자가에서 못 박은 사람들을 위해 그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저 사람들은 자기네가 무슨 일을 하는지를 알지 못합니다.”(눅 23:3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엡 4:32)라는 말씀을 기억하며 실행해야 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죄뿐만 아니라 가족, 이웃, 민족 등 다른 사람의 죄도 같이 통감하며 회개해야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죄’란 사람이 하나님께 지고 있는 부채를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신다는 뜻은, 우리가 하나님께 빚지고 있는 모든 부채를 탕감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하나님께 빚진 죄인들입니다. 우리의 죄를 값없이 용서받아 영생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셋째, 시험에 들지 말게 간구하는 기도입니다. 즉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에서 벗어나지 않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우리는 생명을 주신 구원의 은혜를 기억하며 하나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당하는 시험은 다양합니다. 사탄은 우리를 항상 공격하며 넘어뜨립니다. 시험에는 test와 temptation이 있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시험은 ‘유혹’입니다. 유혹은 상대방을 멸망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죄에 빠지게 하는 시험입니다. 즉 구원의 은혜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지요. 가룟 유다는 마귀의 유혹에 빠져 예수님을 배반했습니다.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요 13:2)라고 알려주셨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유혹했습니다. 예수께서 장차 고난과 죽음을 당하시고 살아나실 것을 말씀하시자 베드로는 “주여 그리 마옵소서” 하며 예수님을 붙잡고 항변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라고 말씀하시며 물리치셨습니다.(마 16:21-23) 마귀는 가까운 사람들을 통해서도 유혹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신앙을 철저하게 지키며,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마 2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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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9-21
  • [국제독립교회연합회 칼럼] 박준형 목사의 ‘하나님이 세우시는 나라’ (시 127:1~5)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1절)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과 진정한 자유는 서로 다른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원하는 것을 하면 즐겁고 기쁘고 평안이 와야 되는데, 실상은 그 반대인 경우도 많습니다. 아이들이 자기가 원하는 대로만 사탕을 마구 먹으면 치아가 상하듯이, 원초적인 교훈이지만 어른들도 자기가 원하는 것만 먹거나, 행동하게 되면 반드시 쓴잔을 마시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우리의 삶이 되어야 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죄악과 타락으로 내쫓긴 후의 세상은 문명과 기술이 발전하긴 했지만, 사람은 여전히 이 땅에서 수고로 땀을 흘려야 먹고 살 수 있으며, 죽기까지 모진 고통을 만나며 살게 됩니다. 창세기는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는 아담과 하와에게 앞으로 임할 고난에 대해 말씀했는데, 그 말씀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창 3:16-18) 그러므로 사람은 어떤 일을 함에 있어, 자기가 작정하기 이전에 하나님께서 그 일을 허락하셨는지, 즉 하나님께서 작정하셨는지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것을 알기 위해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이 돼야 합니다. 특별히 예수님께서는 주의 말씀을 순종하며 따르는 사람들을 향해 그들은 더 이상 종이 아니고 친구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요 15:15) 그러므로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나 계획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을 알게 됩니다. 즉 믿음과 순종의 사람은 그의 기도가 공중을 맴도는 것이 아니고, 주의 뜻을 분별할 수 있는 힘이 됩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다는 말씀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지나간 삶에서 어느 정도로 기도했는가를 가늠할 수 있습니다. 기도 없이 집을 세우고, 기도 없이 결정하고, 기도 없이 돈을 쓰고, 기도 없이 계획을 세울 때가 너무나 많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도보다는 광고나 소문을 듣고 그에 따라 살아갑니다. 기도보다는 사람의 말을 듣고 결정할 때도 많습니다. 혹은 결정을 위해 사람을 의지할 때도 많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모습과 환경을 중심으로 자기의 인생을 비교하거나 재단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흔한 비교의식입니다. 심지어는 근면해서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는 사람일지라도 그 일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고 자기 욕심에서 나온 것이라면 이는 헛되다는 사실을 성경은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말씀에 비추어 보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토록 헛된 삶을 열심히 살고 있는지 깨닫게 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정욕이 이끄는 대로 하나님과는 상관없이 열심을 내다가 세상을 떠났으며, 지금 이 시간에도 그러한 삶을 여전히 유지하며 사는 경우도 많은 것입니다. 우리의 열심과 수고가 하나님의 뜻과 연결된 것이어야 할 줄 믿습니다. 우리의 열심과 수고가 어두운 곳, 땅속 같은 곳으로 빨려들어가지 않아야 합니다. 살아생전에 하나님을 기뻐하고 경배하며, 주님의 뜻을 나의 소망과 소원으로 받아 수행하기를 소원해 봅니다. 우리에게 새로운 기간과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주님의 뜻을 따라 세워져가는 삶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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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9-16
  • [국제독립교회연합회 칼럼] 하미자 목사의 ‘영생을 얻으려면’(마 19:16-22)
    그리스도교는 영생에 이르는 길을 가르쳐 줍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영생은 그리스도인의 신앙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영생을 얻게 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우선 하나님께서 주신 계명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본문을 통해 단순히 계명을 지키는 것만으로는 생명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영생을 얻으려면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라야 합니다. 본문을 보면, “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이르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네가 생명에 들어 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이르되 어느 계명이오니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라 그 청년이 이르되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온대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부자 청년은 예수께 와서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는지 질문하였습니다. 그는 영생을 주시는 분이 바로 예수이신 것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부자 청년은 예수께서 “네가 생명에 들어 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17b절)라고 말씀하셨을 때 어느 계명인지 다시 물었습니다. 그때 예수께서 십계명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부자 청년은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온대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20절)라고 말하였습니다. 부자 청년은 계명을 지킴으로써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예수께서는 영생을 얻는 길은 율법을 지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주님을 따르는 순종에 있다는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늘에서 보화가 주님을 따르는 자에게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21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부자 청년은 재물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영생을 포기하고 예수님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재물에 사로잡혀 있으면 주님을 따를 수 없고, 영생을 얻을 수도 없습니다. 영생을 얻으려면 하나님 말씀을 믿고,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따라야 합니다. 주님을 따르는 것은 앞서가시는 주님을 뒤따름으로써만 가능합니다. 예수님을 따를 때는 제자들이 결단한 것처럼 주저 없이 따라야 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따라 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곧 그물을 버려 두고 따르니라.”(막 1:17-1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부르신 목적은 그들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증인이 되어 하나님 나라를 증언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영생을 얻으려면 “나를 따르라”는 주님의 부르심에 즉각 순종하고 따라야 합니다. 즉 율법을 지키더라도 예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따르지 않으면 결코 영생을 얻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롬 3:2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라고 말씀하신 것은 우선 십계명을 지키는 것만으로는 영생에 이르는 데 부족하다는 뜻입니다. ‘온전하다’는 인격적인 온전함을 뜻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데’라는 뜻입니다. 영생을 얻으려면 단지 율법을 지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뜻을 따르는 데 있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나를 따르라”는 ‘함께 가다, 뒤따르다’는 뜻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평생 예수와 함께 가며, 예수를 뒤따르며 닮아가는 참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요 3:3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말씀에 순종하고 따르는 것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약 2:26)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영생을 얻으려면 “나를 따르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에 즉시 순종해야 합니다. 부족한 자를 믿고 불러주신 주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그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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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9-08
  • [국제독립교회연합회 칼럼] 박준형 목사의 ‘바리새인 벗어나기’ (눅16:10-16)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사람 앞에서 스스로 옳다 하는 자들이나 너희 마음을 하나님께서 아시나니 사람 중에 높임을 받는 그것은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것이니라”(15절) 한 계단을 올라간 사람은 그 다음 계단도 올라갈 수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사람은 큰 것에도 충성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사람은 큰 것에도 불의하다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마음가짐 하나, 행동 하나 하나는 모두 중요하다고 하겠습니다. 우리의 마음과 행동이 모두 하나님의 순전한 것으로부터 나오는 마음과 행동이 되도록 해야겠습니다. 주님께서는 세상의 재물은, 하늘의 보화 즉 복음에 비하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적은 것임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 말씀 안에는 재물의 가치를 너무 절대적인 것으로 간주해서 그것을 의지하지 말라는 의미가 들어있습니다. 그러나 현대의 자리로 오면, 재물에 몰입하는 정도가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인간의 ‘두 주인’을 재물과 하나님으로 보고 있습니다. 과연 말씀대로 사람은 두 주인을 섬길 수 없습니다. 반드시 한쪽으로 심히 쏠리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허락된 모든 것은, 그것이 물질이라도 궁극적으로는 그것이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맡겨주신 모든 것을 정욕적이거나 이기적인 목적으로 사용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러한 자세가 바로 청지기적인 자세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환경과 건강과 물질과 명예 등 모든 것을 활용하고 운용하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위한 것임을 반드시 염두에 두고 살아야 합니다. 그게 그리스도인다운 삶입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어서, 진리의 말씀이지만, 현실과 사뭇 동떨어져 있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만큼 우리는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사는 사람이 드문 현실에 살고 있습니다. 본문에서도 그러한 모습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14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들이라 이 모든 것을 듣고 비웃거늘”. 돈을 사랑하고 하나님보다 귀히 여기는 사람은 이와 같은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진리의 말씀, 하나님의 말씀일지라도, 그것이 재물에 대한 교훈일 때, 즉시 그 말씀을 듣고 속으로 비웃는 경우가 있는 것입니다. 바리새인이 이러한 동작을 했다는 것에 유의해야 하겠습니다. 주님께서 바리새인들을 향해서 하신 말씀들은 오늘날 대부분의 교인들을 향해서 하시는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사람 앞에서 스스로 옳다 하는 자들이나 너희 마음을 하나님께서 아시나니 사람 중에 높임을 받는 그것은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것이니라”. 자기 스스로를 옳다 여기는 마음은 자만함에서 교만함으로 이어지는 마음입니다. 잠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잠 16:18).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면 겸허와 겸손의 마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 스스로를 옳게 여기거나 두 주인을 섬기려는 마음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을 자세히 아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사람들에게 높임 받음으로 하나님께 미움받게 된다는 말씀에 유념해야 할 것입니다. 겸손함으로 살아가며 오직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가치를 가장 귀하게 여기며 생활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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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9-01
  • [국제독립교회연합회 칼럼] 하미자 목사의 ‘예수님의 치유 사역(눅 18:35-43)’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의 치유 사역 열여덟 가지를 알 수 있습니다. 나병환자 치유, 백부장 하인 치유, 두 눈먼 사람 치유, 손마른 자 치유, 간질병 환자 치유, 여리고 눈먼 사람 치유, 중풍병자 치유, 거라사 광인 치유, 회당장 딸 치유, 12년 된 혈루증 여인 치유, 수로보니게 여인의 딸 치유, 귀먹고 말더듬이 치유, 벳새다 눈먼 사람 치유, 귀신들린 아들 치유, 바디매오 치유, 안식일에 수종병 치유, 열 명 나병환자 치유, 38년 된 병자 치유입니다. 본문을 보면, 예수께서 여리고 가까이 이르셨을 때, 어떤 눈먼 사람이 “예수님 나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라고 외치면서 예수님을 뒤따라왔습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내가 네게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느냐?”라고 물으시자, 그는 “주님, 내가 볼 수 있게 해주십시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예수께서는 그에게 “눈을 떠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라고 말씀하시자 그는 곧 보게 되었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서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그 사람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병고침 받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사람들의 불규칙적인 생활, 과식과 과로 등 무질서한 생활이 질병을 일으킵니다. 질병은 우리가 범하는 죄 때문에 오기도 합니다. 예수께서는 38년 된 병자를 고쳐주시고 “보아라. 네가 말끔히 나았다. 다시는 죄를 짓지 말아라. 그리하여 더 나쁜 일이 너에게 생기지 않도록 하여라.”(요 5:1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질병에서 벗어가는 길은 주님께 나아와 죄를 회개하면 됩니다. 회개는 이제부터는 주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주님의 통치를 받겠다고 결단하는 행위입니다. 회개하면 우리의 영혼육이 새로워지고, 편안한 은혜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행 3:19) 모든 질병이 다 사람의 죄 때문에 온다고 할 수 없습니다. 죄와 상관없이 올 수도 있습니다. 요한복음 9장을 보면, 제자들이 예수께 눈먼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은 누구의 죄 때문이냐고 물었습니다. 예수께서는 누구의 죄 때문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들을 드러내시려는 것이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이처럼 질병은 주님의 뜻을 나타내시기 위해서 허용되기도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질병은 마귀의 억눌림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부어 주셨습니다. 이 예수는 두루 다니시면서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억눌린 사람들을 모두 고쳐 주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행 10:3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마귀에게 틈을 주지 않도록 항상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우리 죄를 자기의 몸에 몸소 지시고서, 나무에 달리셨습니다. 그렇게 하신 것은, 우리가 죄에는 죽고 의에는 살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께서 매를 맞아 상함으로 우리는 나음을 얻었습니다.(벧전 2:24) 그래서 우리가 질병으로 소망을 잃어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질병과 아픔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함께하시면서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그 고통에서 건져주시는 것을 믿기 바랍니다. 주님을 경외할 때 치유받을 수 있습니다.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할 것이니 너희는 외양간에서 풀려 난 송아지처럼 뛰어다닐 것이다.”(말 4:2)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의로운 해는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로 구원받았으니 질병 중에도 주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자유를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모든 병은 다 치유받을 수 있을까요? 주님은 모든 병을 고치실 수 있는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그렇지만 주님은 뜻에 따라 치유를 허락하지 않으시기도 합니다.(고후 12:9) 그래서 질병 치유를 위한 기도가 생각대로 응답받지 못하더라도 끝까지 주님을 신뢰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의 질병이 치유되지 않을 때 그 사람의 믿음이 부족하거나 죄 때문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바울은 몸에 가시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 질병을 위해 세 번이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의 기도는 응답받지 못했습니다. 바울의 믿음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바울에게 주님의 은혜가 충만하게 드러나고 교만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그 가시가 자기를 겸손하게 하기 위한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크게 기뻐하였습니다.(고후 12:7-10) 우리도 질병이 낫도록 간절히 기도했지만, 치유받지 못하더라도 감사해야 합니다. 그것이 주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살전 5:1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모든 일에 감사할 때 주님께서 가장 선하게 인도해 주실 줄 믿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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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8-26
  • [국제독립교회연합회 칼럼] 박준형 목사의 ‘행복으로 가는 길’(시 32:1~6)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마음에 간사함이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본문은 신앙의 교훈이 담긴 다윗의 시입니다. 잘못을 용서받고 하나님이 죄를 덮어 주신 사람은 행복하다는 내용으로 말씀이 시작됩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의 잘못을 용서받을 수 있을까요?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은 이후에도 죄의 문제는 늘 사람을 따라다닙니다. 가인의 경우를 그 예로 들을 수 있습니다. 가인은 하나님을 알았으며, 하나님과 대화하는 관계에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않으셨습니다. 가인이 이에 대해 안색이 변하고 몹시 분해하자,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창 4:7). 그러므로 성도는 평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하는 긴박감에 놓여 있습니다. 사람이 용서받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의 죄가 떠올라야 합니다. 자기의 잘못이 생각나지 않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지른 죄가 있는데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은 그것을 자기 내면에 방치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죄는 문득 문득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죄가 떠오르는 것, 자기의 잘못이 떠오르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 순간 그 사람에게 그 사람의 죄를 떠올려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은혜이며 축복이라 할 수 있습니다. 냄새의 원인을 잡으면 그 냄새를 없앨 수 있습니다. 통증의 원인을 찾으면 통증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된 것이며, 질병의 원인을 찾게 되면, 질병을 근절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자기의 죄를 깨닫게 되어 회개하게 되면, 어둠의 권세가 더 이상 그 사람을 잡고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죄의 고백과 회개는, 그래서 치유이고 회복이며 자유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죄 없는 자로 여겨주시는 그 사람, 즉 마음에 속임수가 없는 그 사람은 복되고 복되다고 말씀합니다(2절). 천국 백성이라 함은 반드시 진실함의 문을 통과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이 다른 사람들을 대하며 관계할 때도 와 비슷한 상황들이 펼쳐집니다. 진실한 사람을 인정하게 되고 진실한 사람을 믿게 됩니다. 사람이 자기의 죄를 고백하지 않았을 때에는 그 인생에 무언가 신호가 옵니다. 소화가 잘 안 된다든지, 잠이 안 온다든지, 마음이 무거워 괴롭다든지 기타 원인 모를 일들이 펼쳐지게 됩니다. 다윗은 자신의 죄를 고백하지 않을 때 종일 신음하다가 지치게 되었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에게서 죄가 회개되지 않고 남아있으면 반드시 티가 나는 법입니다. 다윗은 이렇게 표현합니다. “밤낮으로 주의 손이 나를 무겁게 누르시므로 여름의 뙤약볕에 물이 말라버리듯 내 기력이 쇠하였습니다.”(4절) 즉 자기의 죄로 인해 하나님께서 자기를 짓누르시며, 고뇌와 환난이 다가오고, 기력이 완전히 다 쇠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여기서 놀라운 고백을 합니다. 자기가 자기의 죄를 고백하기로 결심하고 자신의 잘못과 죄를 숨김없이 다 털어놓았더니, 하나님께서 자기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죄는 감추거나 다른 사람에게 투사하는 방식으로 다루게 되면, 그러한 삶은 자기에게 계속 남아있는 죄로 인해 죄에 찌든 모습으로 전락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모든 경건한 사람들은 주를 만날 수 있을 때에 주께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환난의 홍수가 밀어닥칠지라도 그들에게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의 허물과 죄를 주님께 고백하여 우리 삶에 은혜와 소망이 가득 넘치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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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8-19
  • [언론회 논평] 방송법 개정이 정치적 중립인가? 악법인가?
    2일, 국회 과방위(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위원회에서는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방송의 지배구조를 변경하는 소위 ‘방송3법’(방송법, 방송문화진흥회법, 한국교육방송공사법)을 통과시켰다. 이 법은 공영방송인 KBS, MBC, EBS를 겨냥한 것이다. 현행 KBS 이사는 11명에서 15명으로, MBC와 EBS는 9명에서 13명으로 늘리는 것이다. 그런데 이 중에 국회 추천은 물론, 시청자위원회, 방송 종사자, 학회, 법조계를 포함시키는 것으로 되어 있다. 거기에다 공영방송과 보도 전문 채널(YTN, 연합뉴스TV)의 보도 책임자를 임명할 때, 직원 과반수 동의를 받도록 되어 있다. 그리고 사장을 임명할 때도 새롭게 구성된 이사 5분의 3 찬성으로 통과하도록 규정하는 내용이다. 결과적으로 방송의 지배구조를 현 정권과 노선을 같이하는 노조와 그 세력들이 방송을 지배하도록 하는 구조로 변경하려는 것이 아니겠는가? 지금도 한국의 공영방송은 일방적으로 치우친 이념과 사고(思考)를 가지고 있는데, 이것도 모자라 방송을 현 정부와 여당이 영구적으로 차지하며, 장악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더불어민주당이 방송3법을 강행으로 처리하려는 시도는 벌써 세 번째인데, 이미 두 차례는 국회를 통과했지만,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으로 국회에서 폐기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하여 ‘방송3법’을 개정하려는 민주당의 의도는 무엇인가? 방송3법 개정은 여러 가지 문제점을 담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방송의 정치적 중립을 보장할 수 있는가이다. 진영 성향이 강한 시민단체나 노조가 다수를 점하는 이사회의 지배구조로는 이를 담보하기 어렵다고 본다. 또 다양한 의견이라며, 공영방송의 조직과 운영이 비효율적으로 잘못 나갈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방송의 공정성과 다양성과 객관성과 진정성은 보장되기 어렵다고 본다. 더불어민주당측에서는 ‘방송이 정권에 의해 좌지우지된 시대를 쐐기 박고, 국민 참여로 방송이 온전하게 운영될 수 있도록 역할을 하겠다는 취지’라고 한다. 그런데 그 말을 믿을 사람이 얼마나 될 것이며, 진심인가? 오히려 외형적으로는 다양성을 갖췄다고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편향과 왜곡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더 힘을 얻는다고 본다. 어느 권력이든 언론의 독립성과 자주성을 보장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정치의 개입 차단을 막겠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언론들이 독립과 공정성을 지키고 있는가? 이를 믿는 국민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이런 식의 방송법 개정으로는 오히려 국민들에게 괴리감(乖離感)만 더할 뿐이다. 이제라도 정치권은 자기들 입맛에 맞는 ‘방송 길들이기’를 위한 입법을 강제할 것이 아니라, 국민들이 사랑하고, 인정할 만한 방송이 되는 길을 보장하도록 힘써야 한다. 다수의 권력으로써, 억지로 방송법을 바꾸려는 태도는 오히려 방송을 망치려는 책동으로 보는 국민들의 시선이 많다. 이것이 잘못된 판단인가? 지금은 방송법 개정이 시급한 것이 아니라, 방송의 공정성 담보를 위한 거대 여당의 노력이 훨씬 중요하고 필요하다. 정치권이 방송을 내 편으로 만들려고 억지를 부릴 때, 방송의 순기능은 죽는 것이며, 국민들로부터 방송을 아예 빼앗아가는 악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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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7-28
  • [언론회 논평] 방송법 개정이 정치적 중립인가? 악법인가?
    2일, 국회 과방위(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위원회에서는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방송의 지배구조를 변경하는 소위 ‘방송3법’(방송법, 방송문화진흥회법, 한국교육방송공사법)을 통과시켰다. 이 법은 공영방송인 KBS, MBC, EBS를 겨냥한 것이다. 현행 KBS 이사는 11명에서 15명으로, MBC와 EBS는 9명에서 13명으로 늘리는 것이다. 그런데 이 중에 국회 추천은 물론, 시청자위원회, 방송 종사자, 학회, 법조계를 포함시키는 것으로 되어 있다. 거기에다 공영방송과 보도 전문 채널(YTN, 연합뉴스TV)의 보도 책임자를 임명할 때, 직원 과반수 동의를 받도록 되어 있다. 그리고 사장을 임명할 때도 새롭게 구성된 이사 5분의 3 찬성으로 통과하도록 규정하는 내용이다. 결과적으로 방송의 지배구조를 현 정권과 노선을 같이하는 노조와 그 세력들이 방송을 지배하도록 하는 구조로 변경하려는 것이 아니겠는가? 지금도 한국의 공영방송은 일방적으로 치우친 이념과 사고(思考)를 가지고 있는데, 이것도 모자라 방송을 현 정부와 여당이 영구적으로 차지하며, 장악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더불어민주당이 방송3법을 강행으로 처리하려는 시도는 벌써 세 번째인데, 이미 두 차례는 국회를 통과했지만,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으로 국회에서 폐기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하여 ‘방송3법’을 개정하려는 민주당의 의도는 무엇인가? 방송3법 개정은 여러 가지 문제점을 담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방송의 정치적 중립을 보장할 수 있는가이다. 진영 성향이 강한 시민단체나 노조가 다수를 점하는 이사회의 지배구조로는 이를 담보하기 어렵다고 본다. 또 다양한 의견이라며, 공영방송의 조직과 운영이 비효율적으로 잘못 나갈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방송의 공정성과 다양성과 객관성과 진정성은 보장되기 어렵다고 본다. 더불어민주당측에서는 ‘방송이 정권에 의해 좌지우지된 시대를 쐐기 박고, 국민 참여로 방송이 온전하게 운영될 수 있도록 역할을 하겠다는 취지’라고 한다. 그런데 그 말을 믿을 사람이 얼마나 될 것이며, 진심인가? 오히려 외형적으로는 다양성을 갖췄다고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편향과 왜곡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더 힘을 얻는다고 본다. 어느 권력이든 언론의 독립성과 자주성을 보장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정치의 개입 차단을 막겠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언론들이 독립과 공정성을 지키고 있는가? 이를 믿는 국민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이런 식의 방송법 개정으로는 오히려 국민들에게 괴리감(乖離感)만 더할 뿐이다. 이제라도 정치권은 자기들 입맛에 맞는 ‘방송 길들이기’를 위한 입법을 강제할 것이 아니라, 국민들이 사랑하고, 인정할 만한 방송이 되는 길을 보장하도록 힘써야 한다. 다수의 권력으로써, 억지로 방송법을 바꾸려는 태도는 오히려 방송을 망치려는 책동으로 보는 국민들의 시선이 많다. 이것이 잘못된 판단인가? 지금은 방송법 개정이 시급한 것이 아니라, 방송의 공정성 담보를 위한 거대 여당의 노력이 훨씬 중요하고 필요하다. 정치권이 방송을 내 편으로 만들려고 억지를 부릴 때, 방송의 순기능은 죽는 것이며, 국민들로부터 방송을 아예 빼앗아가는 악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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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7-28
  • [국제독립교회연합회 논평] 하미자 목사의 ‘마땅히 할 일’(신 30:14)
    우리가 마땅히 할 일은 첫째,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어서 우리를 변화시키기 때문입니다.(히 4:12) 둘째, 사람들에게 율례와 법도를 가르쳐야 합니다. 말씀 속에 깨달음과 길이 있기 때문입니다.(시 119:32) 본문을 보면, “오직 그 말씀이 네게 매우 가까워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는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말씀은 바로 우리의 입에 있고, 마음에 있어서 실천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주의 계명의 길로 달려가야 합니다. 구약의 율법은 수만 가지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들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처럼 여겼습니다. “수만 가지 율법을 써 주었으나, 자기들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것처럼 여겼다.”(호 8:12)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윗은 그 많은 율법 중 우리가 마땅히 지켜야 할 것을 열한 가지로 말합니다. 주님의 장막에서 주님과 영원토록 함께 살 자격이 있는 사람은, 1) 깨끗한 삶을 사는 사람, 2) 정의를 실천하는 사람, 3) 마음으로 진실을 말하는 사람, 4) 혀를 놀려 남의 허물을 들추지 않는 사람, 5) 친구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사람, 6) 이웃을 모욕하지 않는 사람, 7)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자를 경멸하는 사람, 8) 주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을 존경하는 사람, 9) 맹세한 것은 해가 되더라도 깨뜨리지 않고 지키는 사람, 10) 높은 이자를 받으려고 돈을 꾸어 주지 않는 사람, 11) 무죄한 사람을 해칠세라 뇌물을 받지 않는 사람입니다. “주님, 누가 주님의 장막에서 살 수 있겠습니까? 누가 주님의 거룩한 산에 머무를 수 있겠습니까? 깨끗한 삶을 사는 사람, 정의를 실천하는 사람, 마음으로 진실을 말하는 사람, 혀를 놀려 남의 허물을 들추지 않는 사람, 친구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사람, 이웃을 모욕하지 않는 사람,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자를 경멸하고 주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을 존경하는 사람입니다. 맹세한 것은 해가 되더라도 깨뜨리지 않고 지키는 사람입니다. 높은 이자를 받으려고 돈을 꾸어 주지 않으며, 무죄한 사람을 해칠세라 뇌물을 받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영원히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시 15:1-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답게 정의와 진리와 이웃사랑을 실천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면 이웃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이웃과의 약속을 쉽게 파기하거나 뇌물을 받지 않습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도 영원히 흔들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사야는 그 율법을 여섯 가지로 말합니다. 1) 의롭게 사는 사람, 2) 정직하게 말하는 사람, 3) 권세를 부려 가난한 사람의 재산을 착취하지 않는 사람, 4) 뇌물을 거절하는 사람, 5) 살인자의 음모에 귀를 막는 사람, 6) 악을 꾀하는 것을 보지 않으려고 눈을 감는 사람입니다. “의롭게 사는 사람, 정직하게 말하는 사람, 권세를 부려 가난한 사람의 재산을 착취하는 일은 아예 생각하지도 않는 사람, 뇌물을 거절하는 사람, 살인자의 음모에 귀를 막는 사람, 악을 꾀하는 것을 보지 않으려고 눈을 감는 사람”(사 33:15)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지키는 사람들에게는 안전과 먹거리가 끊어지지 않게 된다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바로 이런 사람들이 안전한 곳에 산다. 돌로 쌓은 견고한 산성이 그의 은신처가 될 것이다. 먹거리가 끊어지지 않고, 마실 물이 떨어지지 않는다.”(사 33:1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미가는 그 율법을 세 가지로 말합니다. 1) 공의를 실천하며, 2) 인자를 사랑하며, 3) 겸손히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입니다. “너 사람아, 무엇이 착한 일인지를 주님께서 이미 말씀하셨다. 주님께서 너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도 이미 말씀하셨다. 오로지 공의를 실천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 6: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주님 뜻대로 정의와 사랑을 실천하며, 세상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겸손하게 살아가라는 말씀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박국은 그 율법을 한 가지로 말합니다.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마음이 한껏 부푼 교만한 자를 보아라. 그는 정직하지 못하다. 그러나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합 2: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폭력과 다툼과 불의가 판을 치는 상황 속에서 하박국이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할 때 주신 말씀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의 말씀을 굳게 믿고 끝까지 믿음을 지키라는 말씀입니다. 믿음이 있어야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히 11:6) 믿음은 하나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믿음 없이는 죄 사함을 받을 수 없고,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행 16:31) 그래서 우리는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이신 예수를 바라보아야 합니다.(히 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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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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