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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론회 논평] 이단이 극성을 부리는 것은 종말의 현상이다
    최근 국민일보에서 보도한 바에 따르면, 충청지역의 대표적인 국립대학인 충남대에서 신천지(신천지예수교증거장막, 교주:이만희, 이하 신천지)가 수년간 동아리 전체의 임원진을 독식하면서 그 영향력을 미쳐온 것에 대한 보도가 있었다. 신천지는 충남대에서 총동아리연합회를 장악하여 그 활동력을 넓혀 왔는데, 학생들은 신천지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저들의 포교전략에 넘어가, 이 시대에 가장 지독한 이단에 빠졌을 것으로 본다. 그런데 신천지의 이런 악행은 충남대뿐만 아니라, 충청지역의 우송대, 한남대, 한밭대 등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또 과거에는 역시 국립대학인 공주대와 전남대를 포교 대상으로 삼았던 일도 있어, 경악을 금할 수 없다. 대학 생활 가운데 동아리 활동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대학생들은 동아리 활동을 통하여 활력을 얻고, 선후배가 함께 어울려 학과에서 배우지 못하는 것을 나누고 경험하는 소중한 기회이다. 그런데 신천지가 대학의 청춘들까지 자신들의 영향 아래로 끌어들이는 것은, 그들의 꿈 많고 건강해야 할 대학 생활을 망치는 꼴이 된다. 참으로 개탄을 금할 수 없다. 학교 측은 그 실태를 낱낱이 파악하여 국립대학교가 불건전한 이단들의 포교의 온상이 되지 못하도록 발본색원(拔本塞源)하여야 한다. 이단들은 결과적으로 사람의 몸과 마음과 영혼을 망가지게 할 뿐, 건전한 종교 생활에 훼방을 놓을 뿐이다. 부모들이 자녀들을 어렵게 양육하여 대학에 보내는 것은 그들이 한 인격체로 성장하여 국가와 사회, 이웃과 혹은 가정을 위하여 선(善)한 기여(寄與)를 위함이다. 그런데 기독교에서 이단으로 규정하였는바, 신천지의 문제점은 그동안 저들에게 속아서 살았던 사람들이 얼마나 괴로움과 고통을 당했는가는 탈퇴자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충분히 알 수 있다. 신천지가 대학까지 파고 들어가 젊은 청춘들의 일생과 영혼까지 망가트리려 하는 것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 이에 대하여 각 대학 측과 학부모들과 학생회 측과 지역 기독교연합회 측이 공동으로 조사하여, 이단들의 발호(跋扈)를 막아야 한다. 또 학생들도 이런 이단의 활동으로 기존의 건전한 동아리, 특히 종교동아리, 그중에서도 기독동아리의 정상적 활동에 장애를 주지 않도록 조치하여야 한다. 지금은 종말의 때이다. 그런 현상은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다. 현상으로는 미혹과 배교와 불법의 사람과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는 시기이다. 그런 모든 자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결코 피하지 못할 것이다. 성경에서 경고하고 있다.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들로 하여금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살후2:12) 우리 자녀들이 이단에 빠져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자리에 나가게 해서는 절대로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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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교회언론회 논평
    2024-12-18
  • [언론회 논평] 결혼은 소중한 것이며, 가정은 축복의 장소이다
    우리나라는 출산율 저하로 해마다 인구가 줄어드는 추세이다. OECD 국가들의 출산율 가운데 1.0명 이하인 나라는 우리나라 밖에 없다.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0.6~0.7명대를 오르락 내리락하는 상황이다. 지금 추세대로 간다면 2072년에는 인구 3,600만 명으로 자녀 1명이 4명의 부모 세대를 부양해야 하는 심각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세계 인구는 이때가 되면 102억 명이 넘는데 유독 우리나라만 인구 감소를 하게 된다. 한 마디로 가임(可姙) 세대가 자녀를 낳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에서도 출산율을 높이고, 부족한 인력 문제를 해결하려고 애쓰고 있으나, 그러는 사이 혼외자는 계속 늘고 있다. 최근 유명한 남자 배우가 아이를 낳았는데, 여자 모델 사이에 ‘혼외자’라고 한다. 그는 자기 아이임을 확인하고서도 상대방과 결혼하지는 않겠다니, 공인(公人)의 책임 의식이 아쉽다. 우리나라에서는 출생율 저하와 함께 신생아의 숫자도 크게 줄고 있다. 지난 2013년에는 신생아가 43만 7,000명이었는데, 지난 해에는 23만 명으로 절반 수준으로 뚝 떨어졌다. 그런데 혼외자는 오히려 늘어나 1만 9,362명으로 4.7%를 차지하여 역대 최다를 기록하고 있다. 물론 다른 나라들과 비교하면 낮은 편이지만, 결코 권장할 일은 아니다. 자녀는 정상적인 혼인 관계에서 낳아 길러야 한다. 그것이 태어나는 아이들에게도, 또 가정을 통해 자녀를 주시는 생명의 주권자인 하나님께도 합당하고 바른 일이다. 그런 측면에서 사회적으로 공인된 사람들부터 결혼과 출산의 축복된 모습을 솔선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최근에 우리나라에서는 이민정책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이민청’을 신설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 대한 이민자의 증가율은 전년도에 비하여 50.9%가 늘어나(2022년에는 5만 7,800명인데, 2023년에는 8만 7,100명) OECD 국가 가운데 2위를 기록하고 있다. 그만큼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좋아지고, 선호도도 늘어난 것이다. 그러나 정부의 이민정책은 산업 분야에서 인력난을 해소하려는 ‘고용 위주’가 대부분이다. 그래서는 양질의 인력을 받아들여 국가 발전에 도움이 되기가 어렵다고 본다. 과거 중세기 유럽에서는 이민정책으로 성공한 나라들도 있었지만, 20세기에 이민정책을 폈던 나라들에서는 ‘다문화 정책은 실패 했다’는 선언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그 이유는 이슬람이라는 특정 종교 세력들에 의한 것이 가장 심각한 문제가 된 것으로 알려진다. 국가는 저출산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출산율을 높이는 문제나, 혹은 양질의 이민자를 받아들이는 문제를 신중하게 다뤄야 한다. 거기에다 혼외자(婚外子)가 증가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서라도 출산율을 높이려는 우(愚)는 범하지 말아야 한다. 우선 국가의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교회로부터 바른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사랑하여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낳는 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며, 축복임을 자꾸 가르쳐야 한다. 그리고 비혼에서 나타나는 ‘혼외자’나 태어난 아이를 물질로써 책임만 지면 된다는 비뚤어진 의식을 버리도록 해야 한다. 성경은 바른 결혼 과정과 그 가정에서 태어나는 자녀들을 축복한다. 그리고 태어나는 자녀들도 양쪽 부모의 사랑과 관심과 기도 속에서 태어나고 자랄 권리가 있다. 그런 사회를 만드는데 온 국민들이 동참해야 하고, 특히 교회가 앞장서서 힘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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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교회언론회 논평
    2024-12-18
  • [언론회 논평] KBS의 여전한 동성애 사랑과 방송물 방영
    지난 14일 공영방송 KBS 1TV에서는 동성애를 알리는 방송을 하였다. KBS는 다양한 가족을 알린다며, 미국에 있는 동성애 가족의 일상사를 방송하였다. KBS는 ‘다큐인사이트’를 통하여 이 방송을 했는데, 한국인 남성과 일본인 남성이 동성 결합을 하여 살면서, 두 쌍둥이 여자 아이를 키우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 아이들에게 엄마는 없고, 아빠와 대디만 있다. 사실 인정받지 못하는 동성애로 산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으리라 본다. 그렇다면 남성 동성애 가정에서 자녀들을 키우는 것이, 여느 가정들처럼 자녀를 가지고 싶어 하고, 가족을 갖기를 원하는 것이 충족되겠는가? 또 그들을 통하여 양육되는 아이들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여기에 나오는 한 사람이 말하기를 ‘사랑하면 아이를 낳고, 가족을 이루고 싶다’고 한다. 그러나 그 사랑이라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의 자녀를 낳을 수 없다는 한계에 부딪치게 되는 것이 너무나도 분명하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런데도 공영방송인 KBS가 국민들의 수신료를 통하여 이런 방송물을 내보내는 것은 동성애를 지지하는 것이고, 또 조장하고 홍보하는 꼴이 된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일들이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용인되지 않는 동성애 가정을 방송한다는 것은, 곧 KBS가 우리 사회를 혼란에 빠트리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더군다나 이들은 대리출산으로 아이들을 갖게 된 것도 방송 내용 가운데 나온다. 물론 미국에서 일어나는 일이고, 그러한 제도가 있는 미국의 어느 주에서는 허용이 되는지 몰라도, 우리나라에서는 절대 허용되지 않는 내용까지 슬쩍 끼워서 방송한 것이다. 이 방송에서 동성애자의 친척이 왔다 돌아갈 때, 아이들이 공항에서 엄청 울어서 공항 직원까지 나와서 ‘엄마가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바로 그것이다. 아이에게는 반드시 엄마가 있어야 한다. 이것이 인륜이고, 천륜이다. 그것을 KBS는 간과(看過)하고 있다. KBS의 이런 방송은 결과적으로 한국에서도 다양한 가족의 형태라는 빌미로,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과 비슷한 사례들을 만들어 내는데 일조할 것이다. 한번 생각해 보자. 아이들에게도 ‘아빠’와 ‘엄마’를 가진 가정에서 태어나야 할 권리가 있지 않겠는가? 왜 ‘아빠와 아빠’ 혹은 ‘엄마와 엄마’라는 비정상의 가정들을 만들어 내는데 공영방송 KBS가 앞장 서야 하는가? 거기에다 KBS는 가톨릭 성당에서 아이들이 세례를 받는 모습을 방영한다. 동성애는 종교적 영역에서도 인정해야 한다는 암시를 주고 있다. 그러나 함부로 종교를 끌어들여, 간접적으로 이를 반대하는 기독교를 비난하지 말아야 한다. 동성애는 성경에서 허락하지 않는 행위이기에, 이를 따르는 것이다. KBS는 이런 방송물을 제작한 관계자들을 엄중히 문책할 것이며, 다시는 이렇듯 동성애를 위한 방송물을 내보내지 말아야 한다. KBS는 방송 말미에 이런 방송물은 국민들이 낸 ‘수신료로 제작한다’는 문구를 빼놓지 않는다. 너무 뻔뻔하다. 언제 국민들이 KBS에게 동성애를 지지하는 방송물을 제작하라고 수신료를 낸단 말인가? KBS는 그동안 편파와 왜곡과 불공정의 대명사처럼 여겨져 왔다. 그런데 사장이 바뀌고 나름 대로 개혁을 하는 줄 알았는데, 이런 방송물을 내보내다니 크게 실망이다. 국민들은 KBS가 가정과 우리 사회를 해체시키는 동성애 방송을 하는 것을 결단코 원치 않는다. 공영방송 KBS, 아직도 건강한 가정, 건강한 사회, 미래•발전적인 국가를 만들어 가는데 방송의 역할이 무엇인지 모른단 것인가? 이미 국민들은 동성애 옹호나, 동성애자들이 가정을 이룬다는 식의 허황된 말들에 아주 식상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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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교회언론회 논평
    2024-11-20
  • [언론회 논펴] 나라를 위태하게 하고 국민을 무시해도 되나
    최근 우리 사회를 돌아보면, 매우 위험하고 무서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발견하게 된다. 지난 9일 민주노총은 서울 도심에서 윤석열 퇴진 집회를 열고, 이를 제지하는 경찰과 충돌이 있었다. 이 과정에서 경찰 105명이 부상을 당하는 등 쌍방의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민주노총이 현재 하고 있는 집회도 국민들을 무시하는 행위이다. 대통령은 국민들이 뽑은 국가의 지도자이다. 그런데 자신들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그리고 세력만 믿고, 대통령을 퇴진하라는 것은 국민들과 헌법을 무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민주노총이 시위를 할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다. 지난 6일 간첩 사건에서 4명에 대한 1심 판결이 나왔는데, 그 중에 대표적인 사람은 징역 15년의 중형을 받았다. 다른 사람은 각각 7년과 5년의 형이 선고되었다. 그중에 총책을 맡은 사람은 노동계에서 오랫동안 암약해 왔는데, 평택 미군기지, 오산 공군기지, 평택화력발전소, LNG저장탱크창고 배치도 등 국가 기간망 마비를 위한 북한의 지령에 따라 활동해 왔다. 그런데 이들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에 몸담고 활동하였다. 이곳에서 조직국장, 기획국장, 교육국장, 조직쟁의국장, 보건의료노조 조직실장, 금속노조 부위원장 등 핵심 직책을 가지고 대남혁명을 대행해 온 것이다. 노동자를 대변한다는 민주노총이 북한 정권을 대리로 하여, 국가 전복과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것을 국민들이 인정할까? 또 우려스러운 일이 있다. 현재 야당 대표가 여러 가지 범법의 의혹을 받고 재판 중에 있는데, 그의 무죄 판결을 촉구하는 서명이 지난달 8일에 시작하여 한 달이 조금 지난 이달 11일 100만 명이 넘었다고 한다. 야당 대표에 대한 1차 판결은 이달 15일쯤 나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는데, 그를 무조건 지지하는 사람들이 사법부를 위협하는 행동은 옳지도 정당하지도 못하다고 본다. 우리나라는 ‘법치주의’ 국가이다. 누구라도 범법을 하게 되면, 그에 상응한 대가를 치루게 된다. 만약 야당 대표에게 죄가 없다면 법정에서는 무죄를 선고할 것이고, 죄가 성립된다면 벌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그런데 극렬 지지자들이 나서서 무죄 판결을 촉구한다면 사법부가 왜 필요하며, 법은 왜 있어야 하는가? 우리는 정치 지도자에 대한 지지도 필요하지만, 결격사유가 명백히 있는 사람이라면 무조건 그를 지지하고 감싸서는 안 된다. 그런 일들을 국민들이 걸러내지 못한다면 이 나라는 망하는 것이고, 심각한 독재자가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이 땅에서 자유민주주의를 꽃피게 하는 것은, 당연히 국민들의 몫이다. 국민들조차 정의와 공정을 무시한다면, 결국 국가는 국민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갈 수가 없게 된다. 우리 국민은 120만명의 민주노총이나 특정 정당에게 일방적으로 끌려가서는 안된다. 국민들의 바른 목소리를 통하여 잘못된 길로 가는 나라를 바로 잡아야 한다. 법의 잣대가 일정하지 않으면 그 법은 선량한 사람들을 보호하지 못하고, 권력자들에게는 오히려 도피처가 됨을 알아야 한다. 정치의 수준은 국민의 수준과 같다는 것을 우리는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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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교회언론회 논평
    2024-11-20
  • [언론회 논평] 노벨문학상 작품이면 청소년들에게 다 필요한가?
    지난 10월 초에 한국의 여류 작가가 2024년 노벨문학상을 받으면서 한국 사회가 시끌하다. 한국인으로 처음이고, 동양 여성 처음으로 그의 수상 소식이 알려지면서, 불과 수일 만에 100만 부가 넘는 책이 팔리는 등 노벨문학상이 갖는 파급력은 대단하다. 그러나 이런 유명세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에 대한 평가는 호불호가 분명해졌다. 어떤 이들은 ‘문학의 고급화를 상징하는 봉우리 같은 것’이라고 극찬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청소년의 영혼을 비릿한 정O 냄새로 타락시키는 패륜의 문학’이라고 부정한다. 거기에다 교육감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진보 계열의 모 교육감은 ‘치열한 역사의식과 문화·예술적 감수성을 키울 수 있는 교육’으로 그 작품을 평가한다. 그러다 보니 일부에서는 국민신문고를 통하여 그 여류 작가의 책을 초·중·고교 도서관과 공공도서관에 비치해 달라는 민원을 제기했다고 한다. 또 다른 차원에서는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품의 번역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그래서 평론가들 사이에서도 ‘의역과 오역의 합리적인 절충점을 찾는 것이 한국 여류 작가의 노벨상이 남긴 또 다른 과제’라는 말도 나온다. 이 작가의 작품들이 남긴 과제는 두 가지인 것 같다. 하나는 전국 학부모 단체가 주장하는 ‘학생들의 발달 단계에 맞지 않는 도서이기에 학교 도서관에 비치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 나오고 있다. 또 하나는 역사적인 소재를 가지고 소설을 구성했는데, 그것이 실제적 진실과 다르며 소문으로 떠돌던 내용들까지 표현하여 역사적 왜곡까지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이다. 어찌 되었든 이런 염려는 충분히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세계인들이 언제 한국의 근·현대사에 대하여 관심을 갖고 있을까? 그런데 소설적 서술들이 역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기에, 그것을 한국적 역사 상황으로 인식할 수 있는 개연성이 매우 높다. 소설이 역사 교과서보다 더 확증을 발휘할 위험이 있다. 그렇다면 아이들이 보고 그대로 믿을 수 있는 작품을 학교의 도서관이나 공공도서관에 비치하는 것은 안 된다고 본다. 소설과 역사를 다른 것으로 구분할 정도로 학생들이 분별력을 갖추기에는 이르다고 본다. 작가가 표현한 약자들의 트라우마는 결국 강자들이 입힌 폭력이며, 용서받지 못할 행동인 것으로 각인된다. 그러나 역사의 소용돌이와 국가를 지키려는 군인과 경찰을 ‘악마’로 만들어 간다면, 국가에 대한 부정과 반발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가볍게 보면 안 된다. 그런데 올해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미국 메사추세츠공과대학의 대런 애스모글루 교수와 사이먼 존슨 교수, 그리고 시카고대학의 제임스 로빈슨 교수는 세계 최빈국에서 50년 만에 선진국으로 도약한 한국의 경제 상황을 연구하여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그들은 한반도의 두 체제, 우리 대한민국과 북한 체제의 경제적 상황을 설파하였다. 그들은 2020년 기준으로, 한국과 북한의 국내총생산(GDP)을 조사했는데 한국은 1,933조 2,000억원이고, 북한은 34조 7,000억원으로 북한은 남한의 1.8%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지리적 위치, 천연자원, 문화적 특성에 의한 것이 아니라, 순전히 남과 북이 정치, 경제 제도를 다르게 선택한 결과인 것이다. 북한이 선택한 공산주의 체제는 소수 엘리트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착취적 제도’였으나, 한국은 전 국민이 참여하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였다. 이것이 한국을 세계적 경제 강국으로 만든 원동력이 된 것이다. 2024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은 한국의 여류 작가의 작품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말들이 많다. 그런데 세계적인 경제학자들이 오늘날 한국이 세계 속에서 성공하고 강대국이 된 것은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에 의한 것이라고 명백하게 밝히고 있다. 이 여류 작가가 이런 소설을 마음 놓고 쓸 수 있었던 것도 이런 국가 제도와 이런 제도를 과감히 받아들인 지도자들의 결단에 의한 뒷받침 때문에 가능했다. 물론 문학과 경제는 다른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한국인으로 느끼는 자긍심은 사뭇 다르다. 우리나라 사람이 받은 상에서는 논란이 생기고, 외국인들이 한국의 상황을 바탕으로 연구한 결과로 받은 상에서는 오히려 자긍심이 생긴다. 그래서 노벨상 수상작이라고 하여 무조건 어린 학생들에게 읽혀야 된다는 생각은 미처 양생(養生) 되지 않은 콘크리트에 또 다른 복층을 연거푸 쏟아부으려는 무리함으로 보인다. 이것은 아이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어른들의 잘못된 욕심이기에 자제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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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교회언론회 논평
    2024-11-19
  • [언론회 논평] 탁류(濁流)는 청탁(淸濁)을 가리지 않고 무너뜨린다
    지난 7월 대법원에서의 동성 파트너에 대한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한 아주 잘못된 판결이 결국 동성애와 이를 지지하는 세력들에게 큰 힘을 실어줄 것이라는 우려는 현실이 되고 있다. 일부 진보 진영의 시민단체와 이를 지원하는 변호사 모임 등이 지난 10일부터 나서서 동성 커플 22명에 대하여 ‘동성결혼 법제화 소송’에 나선다고 발표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헌법에서 동성 간 결혼은 허용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 법을 잘 알고 있는 일부 법조인들이 이런 일에 앞장선다는 것은 우리나라의 법의 체계를 무시하고 결국은 법의 보호 속에서 지켜온 가정들을 무너뜨리고, 우리 사회를 혼란하게 하려는 책동으로 보인다. 동성애자나 동성 간 파트너로 지내는 사람들이 극히 일부 있다는 것과 이를 법제화하겠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이렇듯 동성애를 차별하지 말고, 동성 간 결혼의 합법화를 주장하는 것은 지난 십수 년간 우리 사회를 뒤흔들고 있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근원지이다. 또 이들에게 논리를 제공하는 것은 김대중 정권 때 만들어진 국가인권위원회법 때문이다. 동성 간 결혼을 주장하는 세력들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낙태, 인권, 차별금지 등 온갖 방법으로 우리 사회의 근간이 되는 가정의 소중함을 파괴하고, 생명을 살상하며, 더 나아가 가정이 중심이 되어 모이는 교회의 존립에 악영향을 주려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이런 잘못된 흐름이 있게 된 것에는 일부 몰지각한 목회자들과 신학생들, 이것에 동조하는 진보 성향의 기독인들의 동참이 문제이다. 이들은 마치 타락한 도덕의식인 마른 장작에, 동성애라는 기름을 끼얹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동성애 옹호를 하면서 반대로 동성애 반대자들을 효과적으로 억압하기 위하여 만들려는 차별금지법은 뜻 있는 국민들의 노력으로 절대로 성공할 수 없게 해야 한다. 한국교회가 이런 악한 현상들을 물리치고, 가정과 교회를 지키기 위한 10월 27일 “한국교회 연합예배의 날”은 매우 긴박한 필요성을 가진다. 지금 전 세계는 동성애로 몸살을 앓고 있고, 양심과 신앙을 지키려는 사람들에게는 무서운 시련과 도발이 되고 있다.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 되어야 하고, 도덕은 하나님이 허락한 양심에 거리끼지 않아야 한다. 그렇다면 동성애는 인간의 가장 기본인 양심과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도덕과 사회 구성원 서로 간에 질서를 지키고, 피해를 막아주는, 안전장치인 법률마저도 무력화시키려는 것이 아닌가. 이를 막는 역할이 한국교회에 주어진 시대적 큰 사명이 되고 있음을 절실하게 느끼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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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교회언론회 논평
    2024-10-22
  • [언론회 논평] 한반도의 통일은 북한 주민을 살리는 길이다
    최근에 정치권의 한 인사가 갑자기 ‘통일을 포기하자’ ‘두 국가 체제를 수용하자’는 발언을 하였다. 그리고 우리 헌법을 고치고,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고 통일부를 정리하자고 하였다. 너무나 뜬금없는 말이며, 무책임한 말이다. 그는 다름 아닌 문재인 정권에서 대통령비서실장을 지냈고, 1980년대부터 ‘통일운동’을 주창해 온 임종석 전 의원이다. 그가 9·19평양공동선언 6주년 기념식에서 한 말인데, 이것은 문재인 정부와 김정은 사이에 맺어진 선언이다. 그런데 북한은 지난해 11월, 이를 전면 폐기한다는 선언으로 그 합의는 완전히 무의미해졌다. 그런데 이처럼 아무 쓸모도 없는 선언을 자기들끼리 6주년 행사를 한다면서, 뚱딴지같은 발언이 나온 것이다. 문제는 이런 주장이 북한의 주장을 맹신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의 김정은은 지난해 12월 당 중앙위원회 전체 회의에서 ‘북남 관계는 더 이상 동족 관계, 동질 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관계, 전쟁 중에 있는 두 교전국 관계로 완전히 고착됐다’고 발표하였다. 그리고 우리 헌법 제3에 명시된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로 한다’는 것을 문제 삼았다. 임종석 전 의원은 1980년대 전대협 의장으로 임수경 전 의원을 밀입북시켜 북한에 들어가게 했었고, 2018년에는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장을 맡았던 인물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평화를 지키고, 통일을 위하여 수많은 희생을 치루면서 기다려 왔다. 그런데 이것을 깡그리 무시하는 발언을 해도 되는 것인가? 그럴 리는 없지만, 임종석 전 의원의 발언이 매우 위험한 것은 우리가 두 국가 체제로 가게 되면, 북한이 급변 시에 북한의 주민들을 구해줄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또 북한 지역의 우리 영토에 대한 권리도 주장할 수 없게 된다. 학생운동을 했었고 1999년에 정계에 입문한 임 전 의원이 통일의 중요성을 모를 리가 없다. 그런데도 북한 당국의 주장을 그대로 따라 하는 것은 정치가로, 국민으로서도, 그가 20대부터 해 왔던 통일운동에 대한 진정성을 모두 부정하는 꼴이 되었다. 임 전 의원은 1980년대 학생운동의 대표 주자로 보고 있으며, 소위 말하는 386세대의 핵심으로 불린다. 이 세대는 아직도 한국 사회의 주류이다. 지난 제22대 총선에서 386세대로 구별되는 1961년부터 1969년생까지의 국회의원은 전체 300명 가운데 178명이나 된다. 그중에 더불어민주당은 자그만치 117명에 이른다. 김대중 전 대통령에 의하여 정치계에 본격적으로 입문한 386세대의 이런 행태는 우리 미래를 암울하게 만든다. 1999년 임 전 의원과 정치계에 함께 입문했던 우상호 전 의원은 최근 그의 책을 통하여 ‘총론으로 보자면 그룹으로서의 386세대는 성공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고 하였다. 그들은 지금도 80년대식 사고에 갇혀 있고, 진정으로 민주화를 위하여 정치권에서 제대로 기여하지도 못하는 불완전한 모습이 아닌가. 40여 년을 우리 사회에서 활동하는 386세대의 잠꼬대 같은 소리를 정말 듣지 않았으면 좋겠다. 국가의 미래와 바른 자유민주주의 발전을 위한 것에는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면서 사회적 혼란만을 가중시키니 말이다. 우리가 통일을 포기하면 북한 주민의 생존과 인권을 포기하는 것이 된다. 또 헌법에 명시된 국가의 주권을 버리는 것이 된다. 그래도 되는가? 그러려면 왜 통일운동을 해 왔는가? 통일은 현실을 외면한 환상이 되어서도 안 되지만, 힘들고 어렵다고 포기할 사안도 아니다. 북한의 2,000만 주민들의 생명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불행이 이제는 멈추도록 해야 하는 것이 통일의 목적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황당하게도 북한의 3대 세습 독재자의 말에 휘둘리는 정치인의 주장은 공허하게 들리고, 일고(一考)의 가치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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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교회언론회 논평
    2024-10-16
  • [언론회 논평] 한국교회 회복을 위한 거대한 기도의 불을 지피다
    “한국교회”라고 하면 기도로 세워진 교회이며, 기도로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고, 기도로 부흥하였다. 또 기도로 교회를 지키고, 수많은 변화를 주도하였다. 1970년대 여의도광장에서 최대 100만 명이 모여 기도한 것은 전무후무한 연합 기도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 후에 한국교회는 산에서, 기도원에서, 교회에서 새벽 시간과 금요 철야기도로 성령의 불이 꺼지지 않는 열정적인 교회였다. 그와 비례하여 교회들이 부흥하고, 국가적으로도 크게 발전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로 인하여 선교 대국이 되는 기록을 남겼다. 그런데 이런 기도가 식어지므로 국가의 위기가 찾아오게 되었다. 북핵으로부터 꾸준히 위협을 받는 것은 물론, 천문학적인 국가적 부채, 개인 부채의 증가, 세대 간, 지역 간, 진영 간 갈등과 정치권의 전혀 생산적이지 못한 극단적 대립과 팬덤 정치는 국민들까지 분열시켜 서로 마음 편할 날이 없다. 또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산율로 인하여, 국가 소멸의 위기까지 접하고 있다. 그뿐인가,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위협과 국가 정체성의 심각한 훼손을 당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창조의 신앙과 종교의 자유가 크게 위협받아 가정과 교회의 붕괴가 빨라지고 있다. 이럴 때 우리가 가장 확실하고 분명하게, 시급하게 연합으로 해야 할 것은 기도의 제목을 가지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것뿐이다. 주님여 우리의 허물과 죄를 용서해 주시옵소서, 이 나라를 살려주시고, 백성들의 죄를 용서해 주시옵소서,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게 하옵소서, 사람들의 생각과 마음과 정신과 영혼을 빼앗는 악한 것들로부터 가정과 교회와 청소년들과 미래 세대를 지켜주시옵소서, 평화적이고 복음으로 남북 통일을 이루게 하소서 등 수많은 현안을 놓고 간절히 기도해야 한다. 다행히 이런 위기감을 느끼고 한국교회가 이곳저곳에서 마음을 찢는 기도를 하려고 한다. 10월 3일에는 안양의 은혜와진리교회(조용목 목사)에서 동성애와 차별금지법, 마약과 중독 문제를 극복하고 코비드19로 무너진 교회 역할과 회복을 위한 기도회를 개최한다. 또 10월 27일에는 한국교회 성도 200만 명이 서울 광화문, 시청, 남대문 일대에 모여 온·오프라인으로 모여, 전환기 앞에 선 대한민국을 위하여 종교개혁 정신으로 대한민국에 다시 기적을 베풀어 주실 것을 사모하고 기대하는 대규모 기도회를 연다고 발표하였다. 이것이 지금 위급한 상황에서 한국교회가 최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다. 기도는 하나님을 의뢰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능력을 불러들이는 것이고,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경험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다.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역대하 7:14) 이런 기도회를 통하여 한국교회에 성령의 강한 치유와 회복의 은혜가 불일 듯 일어나며, 수많은 영혼들이 소생하게 되며, 국가의 지도자들에게 변화의 바람이 불기를 바란다. 또 모든 국가와 사회의 현안들에 하나님의 긴급하고도 강한 회복의 바람이 불어, 국가 전체가 하나님의 용서하심과 바르게 됨과 복주심이 임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한국교회의 기도를 통한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얼마나 클지는 아무도 예단하지 못하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기도를 좋아하시며, 기다리시며, 많은 변화를 일으키신다는 것이다. 이에 모든 한국교회와 지도자들과 성도들이 함께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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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교회언론회 논평
    2024-09-16
  • [언론회 논평] 새 역사 교과서, 바른 교육의 시작이 되기를
    내년 신학기부터 사용될 새로운 역사 교과서가 검정을 통과하여 선보였다(중학교 7종, 고등학교 9종) 교육부가 30일, ‘2022년 개정 교육과정’에 따른 검정교과서 심사 결과를 공개했다. 그중에 역사 교과서에 대한 관심이 컸는데, 결과적으로는 좌편향에서 조금은 돌아섰다는 평가이다. 일선 학교에서 가르치는 역사 교과서의 좌편향 문제는 어제·오늘이 아니라서, 박근혜 대통령 시절에는 국민들의 여론에 따라 아예 ‘국정교과서’를 만들려고 하였다. 그러나 무리한 탄핵으로 인하여 물러나고,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불과 수일 만에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검정교과서’로 바꾼 것이다. 거기에다 당시 현직인 문재인 대통령까지 교과서에 실리는 일까지 있었다. 그래서 교과서가 아니라, ‘국정홍보용’이라는 비난도 있었다. 아무튼 이번에 새로 나온 교과서는 그런 불신을 약간은 불식시켰다고 하지만, 지나치게 멀어졌던 좌편향을 완전히 극복한 것은 아닌 것으로 알려진다. 우리가 보통 말하는 편향성은 무엇을 말하는가? 첫째는 국가의 정체성이다. 우리나라는 ‘자유민주주의’국가이다. 그런데 기존의 교과서에는 진보·좌파들이 사용하는 ‘민주주의’라고만 표기했었다. 둘째는 건국과 그 대통령에 대한 부정이다. 우리나라는 수천 년 동안 왕정·전제주의 국가였다. 국민은 왕의 지배를 받고, 왕을 위한 백성들이었다. 그러나 이승만 대통령은 미국에서 민주주의를 공부하고 와서, 이 나라에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세웠다. 이는 건국으로 보기에 충분하다. 셋째는 북한이 상투적으로 주장하는 일방적 내용을 표기한 것이다. 북한이 주장하는 ‘내재적 접근’은 그들의 선전·선동에 불과한 것이다. 넷째는 6.25전쟁을 포함한 북한의 남침 행위와 북한 정권의 참상을 제대로 서술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 발간되는 7종의 중학교 교과서에서는 연평도 포격 사건에 대하여 7종이 서술하였다. 또 보수 정권의 경제 발전에 관하여 6종이, 천안함 폭침에 대하여 2종이 서술하였다. 반면에 대한민국이 한반도 유일한 ‘합법 정부’라는 것은 1종만이, 또 북한의 지독한 3대 세습에 대해서는 한 곳도 언급하지 않고 있다. 다섯째는 보수 정권의 공적(功績)은 무시하고, 진보 정권의 치적만을 부각시키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의 정체성 확립, 6.25 남침의 절체절명에서 국난 극복, 근대화, 경제 발전, 외교적.국제적 위상, 심지어 정치민주화 시작 등도 보수 정권에 의하여 되어진 것이다. 그런데 이런 ‘공’은 빼고, 오직 부정적인 것만 강조해 왔었다. 그런데 새로운 역사 교과서에서도 그런 측면을 완전히 해소했다고 보기에는 미흡하다. 앞으로 만들어질 역사 교과서에서는 반드시 우리나라의 ‘건국’과 보수 정권의 절대적인 ‘공’과 북한 체제의 잘못됨을 분명히 서술해야 한다. 뿐만이 아니라 오늘날 자유대한민국이 탄생하고 유지되어 온 것이 이웃 나라의 큰 도움으로 된 것에 대해서도 진솔하게 넣어야 한다. 우리 역사 교과서는 정치적 지형에 따라 너무 많이 한쪽으로 쏠림현상을 가져왔다. 역사는 후대 사람들이 선대에 일어났던 것을 기록하는 것이니만큼, 가슴에 손을 얹고 바르게 기록해야 한다. 그래서 바른 역사를 기록하면 교육이 되고 교훈이 되지만, 이를 의도적으로 뒤집고 비틀면 역사의 큰 죄인이 되는 것이다. 학교에서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어떤 공부보다도 바른 역사를 가르치게 되면 사회적 갈등이 줄어들고, 자라나는 세대의 역사관과 인성을 함부로 도둑질 해가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역사를 담은 교과서는 공정과 진실적 서술이 매우 중요하다. 이제 내년부터 사용될 새로운 교과서에서 모든 것을 한꺼번에 충족시키기는 어렵지만, 그나마 국민들과 학부모들의 뜨거운 관심을 통하여 나타난 역사 교과서가 바른 역사 교육의 시작이 되어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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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교회언론회 논평
    2024-09-09
  • [언론회 논평] 교육의 최고 모범을 보여야 할 교육감들의 불명예
    29일 대법원의 판결로 서울시에서 3선을 한 조희연 교육감이 유죄를 받아 교육감직에서 물러났다. 조희연 전 교육감은 재선을 앞둔 지난 2017부터 2018년 사이에 전교조로부터 전교조 출신 퇴직 교사 5명을 특별 채용해 달라는 요구를 받고, 주변의 강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심사위원들에게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까지 전교조 해직 교사들을 교육감 재선 후에 채용했었다. 그리고 이 문제는 지난 2021년 12월 기소되기에 이른다. 그럼에도 조희연 전 교육감은 2022년 세 번째 교육감에 출마하여, 소위 보수 후보의 단일화 실패로 38.1%의 낮은 지지율로 당선되었다. 사실 자신이 기소 중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직자에 출마한다는 것이 옳은 일인가? 결과적으로 2008년 서울시에서 교육감 직선제가 도입된 이후 4명의 교육감이 선출되었지만 4명 모두 유죄를 받아 중도에 물러나거나 불명예를 안게 되었다. 교육의 최고 수장(首長)으로 누구보다도 모범을 보여야 할 서울시의 교육감이 이런 식으로 중도하차 한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이다. 특히 지난 16년 동안 14년을 서울시 교육을 책임졌던 인사들이 진보·좌파였는데, 진보·좌파의 도덕성을 잘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교육감의 직선제는 지난 2006년 도입이 되었는데, 그 동안 선거 과정에서 많은 문제들이 노출되었다. 첫째 교육감들은 교육의 중립성 때문에 정당의 공천이나 도움을 받기 어렵다(그러나 정치색은 분명히 드러난다) 그러다 보니 수십 억원이 들어가는 정치자금을 스스로 마련해야 하는데, 이런 것들이 여러 가지 부작용을 만들어 낸다. 실제적으로 교육감은 시도단체광역단체장보다 선거 비용이 많이 든다고 한다. 둘째는 교육감은 교육 분야나 교육 행정 경험이 있어야 하기에 교사 출신이나 교수 등이 주로 출마하는데, 유권자들은 그들이 누구인지 알 수가 없다. 따라서 교육감 선거는 정치색만 따져서 ‘깜깜이 선거’를 통해 뽑기에 교육 수장의 자질을 제대로 검증하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하루 속히 각 시·도교육감 선출 방식을 바꾸어야 한다. 시·도지사와 ‘런닝메이트’ 방식으로 하여 아예 정치색을 띤 후보로 뽑든지, 아니면 시·도지사가 임명을 하게 해야 한다. 아니면 각 시·도 의회에서 교육감을 따로 선출하는 방식 등을 고려하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직선제로 선출되는 교육감마다 서울시의 경우처럼, 중도에 탈락하는 일이 다반사가 될 것이다. 현재 다른 지역 교육감들도 선거법의 판결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여럿 있다. 사실 교육감의 권한은 막강하다. 서울시교육감은 1,280개의 공립학교 교사 4만 3,000명과 교육 공무원 7,000명 등 5만 명의 인사권을 가지고 있다. 또 서울시교육청의 한 해 예산 11조 원이 넘는 것을 집행하는 자리이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교육감 선출 방식이 부실한 것은 큰 문제이다. 조희연 전 교육감이 물러난 후 올 10월로 보궐선거가 예고되자, 자천타천으로 출마하겠다는 사람들이 나오고 있다. 그런 인사 가운데는 교육보다는 자신의 명예와 권력을 위하여 교육자의 기본 자질도 안 되는 사람들이 있다. 또 교육 목표를 위해 후보 단일화를 할 때, 이를 깬 사람들도 있다. 이런 사람들은 학부모 단체나 시민 단체 등이 철저하게 걸러 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 교육감들은 상당히 정치적으로 이념적으로 경도된 사람들이 많다. 교육의 본질과 자라나는 학생들의 교육적 성취와 인성 발달보다는 자기들의 기울어진 정치색을 교육 현장에 마구잡이로 실현하려고 한다. 이래서는 안 된다. 유권자들은 그런 사람들도 확실히 가려내야 한다. 교육감의 교육 비전이나 정책은 다른 정치인들의 정치 행보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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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교회언론회 논평
    2024-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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