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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자기고] 송덕 목사의 '목회성공과 교회부흥의 그 비결 27
    제2장 목회자의 자비생활 11. 감사생활 평생요청 (2) 예증으로 본 감사생활 "범사에 감사하라"(살전 5:18). 여러분, 위 성경구절을 아신다면 감사하지 않고는 안될 것이다. 왜? 하나님의 말씀이 범사에 감사하라고 했기 때문이다. 범사는 한자로 "凡"(무릇 범), "事"(일 사)요, 영어로는 "all circumstance"로 어떤 처지이든지 감사하라는 것이다. 여러분, 괴로우나 즐거우나, 환란이나 평안이나 범사에 감사하시길, 햇빛 볼 때는 감사하고, 비 올 때는 불평일까. 하나님이 계신 저 하늘을 쳐다보라!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거기로서 감사할 평화가 내려오네, 인간 역사에 감사치 못한 자들 너무 많지 않은가. 여기에서 인간 비극이 발생한다. 이 세상 비극은 어데서 오는가? 감사할 줄 모른 데서 온다. 에수님 시대가 이를 증거하지 않든가. 열 문둥병자 고쳐줬지만 사마리아인 한 명만 감사했다. 남은 아홉은 인사도 없어! 그러기에 감사생할 논하려면 사전에서나 찾으라고! 그리스의 입법학자 라이커큐어스 왈, "하나님께 감사치 못하고 산 사람은 하나님이 직접 쳐버린다"고 했다. 이 사실은 성경도 증언한다(롬 1:18-23). 모 교회 어느 교인 이야기. 얼마나 인색한지 생활의 여유가 있었음에도 감사생활 나는 못해 하고 놀아나더니, 남편은 다른 여자와 살림 차리고, 그런대로 운영되던 실 공장은 빚더미가 다 가져가고, 자신은 살길 막막 삯월세방에 중병들어 통곡하니, 있을 때 감사생활 왜 안했던고! 감사생활 못한 자들 장담을 마오. 어떤 교회 36년 간 손 벌리고 찾아온 어려운 교회들, 기관들, 힘을 다해 정성 다해 도와 줬건만, 감사의 말 한 마디, 감사의 편지 한 장 없었다 한다. 미국 변호사 사무엘 이브워치도 78명 중죄인을 변호해 구해 줬어도 어느 한 사람 감사한 자 없더라고 했다. 하나님도 이런 세상 다 아시고 계신다. 소원의 바구니 든 그 천사는 가득가득 넘치게 채워 왔으나, 감사의 바구니 든 그 천사는 감사를 담지 못해 그냥 갔다네! 혹시 우리의 감사 없어 못 담았을까? 감사하라. 감사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감사에 번영 축복, 감사에 문명 대국, 감사에 빛을 발한 세계를 보오. 아프리카 나이지리아 사무엘 이드자이 크라우드의 고난 중에 배운 감사생활이 교회 설립, 학교 설립, 전도하고 교육하며 19세기 신생 문명국가 이뤘으니, 한 사람의 감사생활 그 열매가 이렇게 큰데. 미국을 보라. 11월 하순 국정감사일. 그러기에 세계 일등의 문명 대국, 세계역사 속에 입성한지 오래로서 국가적 감사! 우리의 기원함도 국정의 감사, 불란서도 노동현장 감사의 기도 밀레의 그림 한 폭이 보여주고 있다. 그리스 철학자 탈레스도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생활로 그리스를 빛나게 했다고 하고, 한국의 손양원 목사도 순교의 두 아들 영결식 때에 아홉 가지 감사로 온 세상을 감동케 했다. 세계를 더 넓게 보시라. 영국의 크롬웰이 지도하던 교회는 교인들 모두가 감사생활 했다 한다. 왜? 그곳 교회 목회자가 감사생활 목자니까! 세계적인 삼중불구자 헬렌켈러도 일생을 감사로 살았다 한다. 하물며 불구 중에도 그런대 건강한 우리는 왜 못하리요. 오래전 들은 이야기, 세브란스병원에서 어느 교회 목사사모님이 암수술 하다가 불가능 판정을 받고 의술로는 못 고치나 한 가지 방법 뿐, 집사인 의사 왈, 감사할 것 찾아 노트에 기록하고 그것을 계속해서 새김질 감사하라 했다 한다. 여러분, 그 사모님 죽었을까, 살았을까? 감사새김질, 감사새김질, 그 의사 말이 헛튼 소리였을까. 지금도 신유은사는 작용하는가, 어떤 박사 말대로 사도 시대에 끝난 것인가? 감사새김질 5개월 만에 완치되어 살아났단다. 이걸 못 믿겠으면 예수 믿음 걷어치워야! 현대 신유 부인한 그 박사 동료될라. 하나님의 헌금 먹고 살면서 신학도 안한 그 의사만도 못해서야, 약방의 감초는 빠질지언정 목자들 새김질 감사생활은 계속돠어야 한다. 짐승도 주인 은공 다 안다는데!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시 50:23).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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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6-14
  • [독자기고] 송덕 목사의 '목회성공과 교회부흥의 그 비결 26'
    제2장 목회자의 자비생활 11. 감사생활 평생요청 (1) 뜻으로 본 감사생활 목회자의 목회성공과 교회부흥에는 감사생활이 요청된다. 하나님은 모든 목회자들뿐 아니라 성도들에게 이를 명한다. 살전 5:16-18,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여러분, 감사는 하나님의 뜻이란다. 하나님의 뜻이란? 하나님이 진정으로 바라고 원한다는 것, 그것을 말한다. 고로 목회자의 감사생활은 얼마나 중요한지! 왜냐면 하나님이 바라고 원하는 것이니까. 감사생활은 예배 들릴 때도(시 50:14), 성문에 들어 갈 때도(시 100:4), 기도할 때도(빌 4:6), 항상 어느 때든지(살후 1:3) 감사할찌니. 성경 전반에 약 71회를 언급하고 있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우리가 어떠한 감사함으로 보답할꼬"(살전 3:9)라고 한다. 사실 감사할 문제는 너무나 많다. 감사생활에는 감사의 강줄기가 변함없이 흐르고 있다. 여러분, 감사의 강줄기를 아실까? 이제 들어보라. 우리의 몸과 영혼, 생기 호흡은 누가 주셨는가? 내 자신은 전혀 알지도 못한 일인데, 하나님이 흙으로 육체를 창조하시고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창 2:7), 하나님께서 "우리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창 1:26), 육체도 주신 하나님, 생기 호흡도 주신 하나님, 나라도 주시고, 일용할 양식도, 자손도, 목회처소도, 장차 하늘나라도 주신 하나님이시다. 이렇게 감사할 것이 이처럼 많고 많다. 그러면 감사의 의미는? 한자로는 "感"(느낄 감) "謝"(사례할 사), 영어로는 "thanks, gratitude, appreciation" 등이요, 헬라어로는 "유카리스티아, 유카레스텐, 유카리스토스" 등이요, 히브리어로는 "야다, 아싸, 라카, 도다" 등이다. 종합적 뜻은 어떤 사람이나, 사건 또는 사물에 의해 마음이 감동 받을 때 그에 대한 마음의 답례 인사, 그것을 감사라 한다. 여러분, 마음이 감동 받을 때 그 감사함의 표정은 어떤가? 아마도 천사의 모습 같을 께다. 그러기에 공자 왈 "관대하면 지지 받고, 신의가 있으면 믿고 맡기고, 민첩하면 공을 이루고, 감사함 베풀면 사람을 부린다"고 했다. 실로 감사라는 명사는 "기묘"한 언어이다. 감사하면 불평이 없어지고, 감사하면 분쟁이 떠나가고, 감사하면 하나님 영광 받고, 감사하면 기적이 일어나고, 감사하면 감동 주고, 감사하면 인격 존중, 감사하면 감사 회귀, 감사하면 칭찬 축복, 감사하면 만사 평안, 감사하면 번영 초석, 감사하면 신앙 척도! 그럼에도 왜 이 감사생활 못하는가? 불의하고 경건치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롬 1:18-22), 이런 자는 감사함을 모른다고 했다. 짐승도 감사할 줄 아는데! 감사생활엔 제왕도 부러워 한다. 여러분! 영국 왕 루이스에 대한 성가도 있지 않든가. "세상 사람 날부러워 아니하여도 영국 왕 루이스가 날부러워 하네." 무슨 이야기인고 하면, 루이스 왕이 목사들을 초치한 자리에서 목사님들이 참 부럽다고! 항상 감사하면서 사는 목사님들의 그 경건생활이 부럽다고 한데서 나온 노래이기 때문이다. 감사는 하나님도, 온 교인도, 제왕도 감동한다. 여러분, 김삿갓 이야기 아실까? 김삿갓은 감사하지 못한 자로 불공한 자 되어 얼굴 들고 살 수 없어 삿갓 쓰고 지팡이 하나 들고 영원한 방랑길에 올랐다 한다. 김삿갓 본명은 김병연인데, 1807년(순조 7년) 3월 13일 당시 권문세가 아름난 장동(莊洞) 김씨 집안 둘째 아들로 경기 양주 출생이다. 그는 모친과 함께 황해도 곡산에서 살았는데, 20여세 때 우연히 읍내 동헌(東軒) 백일장에 지원했다. 백일장 시제(詩題)는 "홍경래의 난에 용맹다해 투쟁 순절한 가산군수 충절찬양, 비겁항복 신천부사 김익순 규탄"이었다. 이때 김삿갓 왈, "한번 죽음 가벼우며 만번 죽어 마땅"하다며, 신천부사 김익순을 매도하는 글을 써 장원포상으로 상품을 받아 모친께 드리면서 사연을 말했다. 그 말을 들은 모친이 까무러침에 그 이유를 알고 본즉, 김익순은 바로 자신의 조부라! 김삿갓이 역적 자손임을 들키는 날엔 사형감이라 모친이 여태껏 아들의 신분을 몰래 숨겨왔던 것, 이때 김삿갓은 (1) 조부 욕한 역대의 죄인 (2) 역적 자손 발각되면 사형 (3) 선조의 은덕에 감사는 커녕 저주했으니, 고로 삿갓에 지팡이 하나로, 끝없는 방랑의 길을 떠났다 한다. 여러분도 김삿갓 될라 조심 또 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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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4-22
  • [독자기고] 송덕 목사의 ‘목회성공과 교회부흥의 그 비결’ 25
    제2장 목회자의 자비생활 10. 손님대접 정성 요청 여러분, 손님대접이 목회성공과 교회부흥이란 말 들어봤는가? 못 들어봤으면 잘 듣고 따뜻한 마음, 정성 다해 내 집에 오신 손님대접에 힘쓰라(롬 12:13). "손님대접 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 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히 13:2)고 한 것 아니냐! 왜 손님대접 권고인가? 그것이 항상 인간의 도리요, 은혜의 소득 가득하기 때문이다. 맹자 왈, "愛人者 人恒愛之, 敬人者 人恒敬之"(애인자 인항애지, 경인자 인항경지) 라고 했다. 남을 사랑하는 자는 항상 남이 그를 사랑하고, 남을 공경하는 자는 항상 남이 그를 공경한다는 말이다. 고로 손님대접 잘 함은 미풍양속, 미덕 중의 미덕 아닌가. 뿐만 아니라 철학계의 거두 플라톤도 왈, "남을 대접한 자는 그도 대접 받고, 남을 대접한 것만큼 그도 그 만큼 대접 받는다"고 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가?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이니라"(마 7:12)고 했다. 이 성구절을 '황금률'(The golden rul"이라 한다. 왜 황금률인가? 황금같은 법칙으로 전 구약성경의 총 대지요, 도덕의 가장 귀한 원칙이요, 인간과 신자생활의 최고 법칙이므로, 이것을 율법이요 선지자라 한 것이다. 이 황금률, 도덕의 최고 법칙은 있으나 마나,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그런 법칙이 아니다. 남을 대접하고, 또 대접을 꼭 해야 할 황금률, 성경의 최고의 도덕률이다. 손님대접은 그 만큼 귀중한 도덕률인데, 그 실천을 그냥 무시할 수 있는 것인가? 내 집, 내 교회에 찾아 온 손님대접은 어느 시대나, 동양이나 서양이나, 예수님이나 모든 성인들이나 다 모두 동일하니, 미풍양속 미덕 중의 최고의 인간 도덕임은 틀림 없다. 한학에도 왈, "황금 천량 미위기, 득인일어 승천금"(黃金千兩 未爲貴 得人一語 勝千金)이라 했다. 인간 도덕에 황금 천량이 귀한 것이 아니요 사람의 좋은 말 한 마디 듣는 것이 천금보다 낫다는 뜻이다. 나그네에게 '식사라도 하고 가세요' '하룻밤이라도 유숙하고 가세요' 라는 한 마디가 황금 천냥보다 더 귀하고 또 귀한 것이다. 잘 들어두시라, 목회자들이여! 그러면 손님대접 그 의미는? 한자어로는 '客' 손님 객, '待' 대접할 대, '接' 대접할 접이요, 헬라어로는 '필로네시아'요, 히브리어로는 '아짜르 혹은 솨안'이다. 그 뜻은 내 집 찾은 손님께 식사와 유숙을 편안하게 제공하는 것, 그것을 손님대접이라 한다. 여러분! 손님대접할 때에 감사했던가. 이 사람이 왜 왔는고 그렇게 짜증이던가? 여기에 귀하의 도덕생활 인격을 재는 시금석이 있느니라. 왜 왔는고, 짜증, 불평, 원망이라면, 아직도 도덕 기준 당당 멀었네, 아직도 광대 쓴 사람, 손님대접 귀인들은 여기에 있다. 가난한 어느 교인은 손님대접에, 어려워도 실천하여 훗날에 방직공장 사장님 되고, 훗날에 학교 설립 교육가 되고, 훗날에 고층빌딩 사업가 되고, 총회도 봉사한 인물 됐다오. 또 어느 가난한 전도사님, 흙벽돌로 일군집 방 두 칸에, 손님오면 마다 않고 대접을 하니, 비록 저의 힘은 옥수수죽 이것 뿐이나, 다른 집에 가지 말고 우리 집에 오셔서 옥수수죽 같이 먹고 유숙하고 가라고 권한다. 이렇게 손님대접 지성이신 전도사남, 그 아내로 양처 맞아 아들 삼형제 낳아 교양하더니 그 삼형제 모두 다 성공했다오! 그 자녀들 모두 다 효자로서 칭송받고, 그의 부모 해외여행에 존경과 높임 받고 살고 있다오! 여러분, 하나님 말씀 그대로 믿고, 손님대접 정성에, 또 정성에, 흙벽돌집 옥수수죽 그 정성으로, 아브라함을 생각하라. 롯도 생각하라. 수넴 여자를 생각하라(왕하 4:8-37). 마노아 내외도(삿 13장), 황해도 이창영 장로도, 이태리 앗시스의 성 프란시스도 생각하라. 너무 가난해 손님대접 어렵다면은 물끓여 밥 한 그릇 풀어넣으면 여러 그릇 죽으로 나눌 수 있다오. 또 다시 기억할 것은 손님대접 하다가 천사를 만났다오(롬 12:13, 히 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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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4-10
  • [독자기고] 송덕 목사의 ‘목회성공과 교회부흥의 그 비결’ 24
    제2장 목회자의 자비생활 9. 위로생활 행함 요청 많은 세상 사람들에게는 위로가 필요하다. 또한 위로 받기를 원한다. 심지어 인도인들 중에는 고행으로 죄업 해탈 하고자 땅에 누워서 몇 백리씩을 등미리를 한다하며, 손을 쳐들어 팔이 상향으로 굳어진 채로 있다가 종생 위로 받지 못하고 번뇌 중에 죽는 자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참 위로는 주 예수 하나님께만 있다. 목회자는 이 위로의 사신이다. "너희 하나님이 가라사대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사 40:1)고 했다. 목회자의 생활 중에 위로생활 그 역시 목회성공과 교회부흥 한편을 차지한 교사임은 틀림 없다. 위로목회는 어느 목회자가 잘하던가. 살펴서 거울 삼으라. 옛날 당나라 태종 왈, "동으로 거울 만들면 의관(衣冠)을 바로 잡고, 옛날을 거울 삼으면 흥망성쇠 알 수 있고, 사람으로 거울 삼으면 득실을 알 수 있다" 하였으니, 위로목회자 찾아 거울 삼아 득실이 많게 하라! 현재도 훗날도, 소득이 많을 게다. 위로목회는 빠른 심방을 요한다. 우선 방문을 요한다. 하루 이틀 다른 일 본 후엔 때가 늦을지 모른다. 공자 왈, "어진 사람은 어렵고 슬픈 일 앞서 처리하고, 이익된 일은 후에 처리한다." 공자의 말도 기억하면 도움이 클 것, 본체만체 하지 말고 앞서 처리로! "예수께서 가라사대... 와서 보았느니라. 목마를 때에, 나그네 되었을 때에, 벗어을 때에, 주릴 때에, 옥에 갇혔을 때에 찾아 본 목회자는 양(羊)이 되고 준비된 보상이 크다. 그러나 모른 척 한 자 염소 되고, 염소된 자 심히 불행의 증거라. 귀하들은 아무쪼록 '양'같은 목회자, 그 목자만 되시라. 목회성공 교회부흥 위하여서(마 25:31-46). 여러분! 목회자 발길을 기다리는 자들, 두손 모아 두손 모아 기다리는 자들, 이 구역 저 구역에 수없이 많다. 아시는가? 여러분, 미국의 토크쇼 진행자 오프라 윈프리를 아시는가? 그녀는 미국 텔레비전 토크쇼의 탁월한 진행자로 2004년 유엔이 선정한 세계 지도자상을 받은 훅인여성이다. 그러나 그의 어린 시절, 위로가 그립고 그립던 시절, 위로가 필요하고 필요한 시절, 부모의 이혼으로 오갈 데 없어 이곳저곳 전전하며 남의 신세에, 엄마 아빠 부르면서 흐느껴 울며, 어린 시절 비참하게 고생할 때에, 위로 한번 못 받았네, 그 위로를! 여러분, 어찌 오프라 윈프리 뿐이리요. 하나님의 사랑하는 목회자 여러분! 설교 시간 강단에 서지만 말고, 시간 남아 밖으로만 돌지를 말고, 위로 받을 교인들 찾고, 위로 받을 자 누구인가 주변을 살피라. 그리고 위로의 10개 방법을 지참하라. 옛날 문헌에 10개 위로 그 교훈 여기 있다. (1) 격려하려고 하지 말라. (2) 기분을 전환시키려 하지 말라. (3) 슬픔 속 살아온 생애를 말하고 거기에 또한 동정하라. (4) 눈물을 흘릴 수 있게, 감동된 말을 하라. (5) 위로 받는 스스로가 말하게 하라. (6) 슬픔과 좌절에서 회복할 수 있게 하고, 언쟁은 절대 금물이다. (7) 혼자있게 두지 말고 자주자주 접촉하라. (8) 구체적으로 실제적으로, 행동할 수 있게 하라. (9) 슬픔과 좌절에서 일어서도록, 뒤를 밀고 또 도와주라. (10) 주 하나님을 적극적 의지케 하라. 상황 따라 예배가 가능하면 좋고, 차선으로 성경의 한 구절, 기도는 어떨까? 이도 아니라면 형편에 따라서 위로 하라. 그러면 위로란 무엇인가? 한자어의 '慰' 위로할 위, '勞' 위로할 로이다. 헬라어는 "파라켈레오", 히브리어는 "나캄"이다. 이 뜻은 "주 하나님 곁에 붙어 동거하며, 따뜻하게 동정하고, 괴로움을 잊고 살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위로는 기독교의 다른 덕목 못지않게 중요한 부분이다. 성경의 위로자들, 주 하나님, 선지자, 사도들, 이스라엘 백성들도, 예수 그리스도도 위로하고 위로 했느니라. 에브라임이 그 후손 잃고 슬퍼할 때도(대상 7:22), 욥이 가족과 재산 모두 잃고 슬퍼할 때에도(욥 42:10-11), 그 뿐인가? 예수 그리스도도, 그 어머니 마리아도 초상집에 조문 가서 눈물 흘려 나사로 자매를 위로 했느니라(요 11:17-44). 기독교는 여러 면의 아주아주 중요한 덕목 많지만, 위로의 종교됨도 아주 중하다. 위로의 목자는 많은 자 얻고, 그 많은 자 품안에 찾아 온단다.! "그럼으로 이 여러 말로 서로 위로하라"(살전 4:18). 눈물과 위로의 그 목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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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2-04
  • [독자기고] 송덕 목사의 ‘목회성공과 교회부흥의 그 비결’ 21
    제2장 목회자의 자비생활 7. 온유생활 행동 요령 (2) 예증으로 본 온유생활 필자가 아는 주변 두 집에 각기 새엄마들이 들어왔다. 그들이 행하는 것을 보면서 인생사 배우고 느낀 바 많아 먼저 이를 전한다. 앞동네 새어머니는 차갑고 냉정하고 억세고 딱딱하고 쌀쌀하고 사납고 인정조차 없더니, 자신이 낳은 자식 아니라고 어미 잃은 불쌍한 어린 것들을 매질하고, 두 손 들어 벌 세우고, 또 추운 겨울철에도 빨래하게 하고, 더 나아가서 학교 갈 아이들에게 아침밥 굶기고 점심 도시락도 싸 주지 않아 점심 시간이면 먹을 것이 없어 학교 담벼락이나 버드나무 그늘에서 눈물로 보내도 아무도 이를 모르네. 체육 시간 달리기엔 배고파서 뛸 수가 없네. 언제나 꼴등. 끝내 영양실조에 쓰러진 채 양호실에 실려가기 일쑤. 견디다 못한 한 애는 한강 투신 했으나 순찰대에 발견되어 구사일생 살아나고, 또 한 애는 배고파 학교 중단하고 공장 향해 떠나가고, 남은 애들은 너무 어려 갈 바 모르니, 밥 굶고 매 맞으며 당하고만 있네! 앞서간 엄마가 보고 싶어서 밤마다 얼싸 안고 흐느껴 울며, 서로서로 위로하여 울지 말라고. 보고픈 우리 엄마 다시 올 거야! 네가 매 맞는 건 내가 맞을 께, 이불 속 속삭임 그 속삭임 죽지 말고 죽지 말고 살아가자고! 아 불쌍하다. 저 어린 것들 무슨 죄가 그리 많아 학대하는고, 어른 된 자 여러분! 그 후 그 새엄마는 망했지만, 배고프고 매 맞던 그 애들은 모두 다 성공했단다. 하나님 은혜로! 뒷동네 새엄마는 어찌됐는고? 그 새엄마, 자신은 자녀를 낳지도 않고 이 자녀들 하나님께서 내게 줬으니 나는 이 많은 자녀를 축복으로 받았도다. 있는 정, 고운 정, 다 받쳐서 희생 헌신 아끼지 않고, 학교길 뒷바라지 고생고생에, 모두 다 잘 키워 시집 장가 보내니, 손자 얻고 손녀 받아 그들의 공경, 우리 엄마 우리 엄마 우리 할머니, 효자 효부 효녀 효서 후손들 효도! 따뜻하고 부더러운 가슴 다 열었더니, 한고음 행복으로 교훈한다네. 다시 들으라! 따뜻하고 부더러운 이 온유를 어떻게 하는가에 승패가 있다. 하물며 교인들 거느린 목회자들이랴! 예수의 온유하심은? J.P 리차드와 프랑스 나폴레옹 증언이다. 리차드 왈, "프랑스는 육지, 영국은 바다, 독일은 공중을 차지했으나 예수 그리스도는 온 세상 땅을 다 차지했다." 하였고, 나폴레옹 왈, "나는 유럽 천하를 무력으로 정복했으나 다 실패하여 망했는데, 예수 그리스도는 창검 하나 없이 십자가 사랑으로 온 천하를 정복했다" 하고, 세인트 헤레나에서 영국병사 감시하에 눈을 감았다. 사실 리차드와 나폴레옹의 증거가 맞는 말 아닌가? 온유함으로 온 세상을 유업으로 받은 자들은 또 있다. 둘째는 모세일 거다. 바위를 두 번 쳐서 하나님의 거룩성을 욕되게 했다고 비스가 산 꼭대기에서 가나안 땅 바라만 보고 죽었지만, 모세 후손들 가나안 땅 차지했으니 결국 모세가 차지한 것 아닌가.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더라"(민 12:3). 셋째는 영국의 청교도일 거다. 저들은 영국 정부 핍박과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믿음의 오래 참음, 온유함으로 1620년 저들 120명 그 후손들이 세계에서 제일 좋은 땅 북미 대륙을 기업으로 받아 살아가고 있다. 넷째는 호주일 거다. 켕거루와 타조로 평화와 온유를 상징한 호주는 대양을 기업으로 차지했다고 본다. 다섯째는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일 거다. 그는 ㅤㅍㅑㅇ생을 예수의 산상수훈을 애독하면서 영국에 무저항주의 온유로서 인도를 기업으로 차지했다. 세상 사람들은 무력과 강포라야 땅을 차지하는 줄 알지만 하나님은 정 반대다. 하나님은 "유능승강(柔能勝强)"의 하나님이시다. 바람과 해의 신사 외투 벗기기 내기를 보라. 바람이 이길 것 같았으나 따뜻하고 부더러운 해가 이기지 않든가. 필자는 목회 중에 성질 부리고 화도 내고 온유함에 불합격, 고로 지극히 작은 연립집 하나밖에 못 받았다. 온유햇어야 했는데!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마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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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2-04
  • [독자기고] 송덕 목사의 ‘목회성공과 교회부흥의 그 비결’ 23
    제2장 목회자의 자비생활 8. 겸손생활 평생 요청 (2) 예증으로 본 겸손생활 여러분, 겸손의 중심 인물이 누구인 줄 아는가? 이제 보라!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며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5-8). 여기에 인간 세계, 인간 역사에 겸손의 최고 최대 대표적 중심이 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최상의 비하요, 자신을 낮춘 최저의 겸손임을 설명한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 앞에 문장 쓰지 말라. 자신의 겸손 자랑치 말라. 옛날 러시아 니콜라이 황제처럼 겸손하라. 그 황제가 호위병을 거느리지 않은 채 변복하고 외진 산길 산책 중 길을 잃었다. 마침 산속 부대 한 군인을 만나 길을 물은 즉, 그 군인, 담배를 입에 문채 배를 내밀며 아주 거만한 어조로 가르쳐 주니, 황제는 고맙다며 그 군인의 계급을 물었다. 그 군인 왈, "자네가 한번 맞춰봐?"라고 했다. 황제는 아주 겸손한 자세로 "상사인가요?" "아니 그보다 위일세." "그러면 중위인가요?" "아니 그보다 위일세." 그러면 대위인가요?" "그래 대위일세"라고 했다. 그리고 황제가 돌아가려는데, 그 대위가 황제에게 "자네도 무슨 계급이 있는가"라고 물었다. 황제가 장난끼가 발동해 "대위님도 한번 맞춰보세요"라고 했다. "그래 상병인가?" "아니 그 이상입니다." "그러면 소위, 중위, 대위인가?" "아니 그 이상입니다." 그러자 그 대위는 피우던 담배를 재빨리 버리며 두려운 목소리로 "그러면 소령, 중령, 대령이십니까?'라고 했다. "아닙니다. 그 이상, 소장 중장 그 이상입니다." "그러면 대장이신가요?"라며 벌벌 떨었다. "아니 대장이나 원수 그 이상입니다." 그 때 그 대위는 즉시 황제인 줄 알아채고 새파랗게 질려 떨면서 엎드려 죽을 죄를 지었다고 용서를 빌었다고 한다. 자, 여러분 같으면 어떻게 했을까? 황제 왈, "나나 네나 다 한 가지다. 우리 위에 상전은 하나님이시다. 우리를 내려다보시는 하나님이 계신 줄 알고 겸손한 자 되어 나라에 충성하자"라며 충고해 보냇다 하지 않든가. 그래도 옛날 러시아가 번영했던 것은 리콜라이 황제 같은 겸손한 자들 때문일 게다. 하나님을 상전으로 모시는 겸손한 자 말이다. 또한 스웨덴 구스타브 아돌프 6세 국왕처럼! 국왕은 자신을 낮추어 겸손생활 실천으로 자주자주 왕궁 고급 전용차 대신 평민과 함께 버스를 탔다 한다. 겸손생활의 위인들, 또한 이조 중종 때 선조의 외조부 안단대 대감은 선조의 외조부라 사람들이 높일까 봐 출입도 억제하고, 의복도 비단옷 대신 무명베옷으로 살았다 한다. 여러분! 스스로 자신을 높이지 말라. 어떤 자들은 남보다 좋은 대학에, 박사학위에, 또 거기다 강단 예배는 목사까운이면 족한데 박사까운을 입고, 나는 박사요 하며 설교 강단을 휘젓고 있으니, 장로는 박사까운 없을까? 성가대, 안내원, 헌금위원 중에도 박사학위 가진 자들이 있다. 그들도 박사까운 입으면 안될까? 주보에는 아무개 목사이면 족한데, 거기에 무슨 대학, 무슨 박사, 무슨 지위가 왜 필요한가. 여기에 겸손은 매장되었네! 주님을 부끄럽게 하지 말라. 단테의 신곡을 다시 읽고서 허리 굽혀 겸손하게 돌짐을 져라. 고구려 26대 영양왕 시절, 수나라 100만 대군을 물리친 장군, 개선장군 을지문덕은 겸손했단다. 이 역사도 배우면 하오! 토마스 아켐퍼스도 말햇다는데, "겸손하면 감화 주고, 겸손하면 높임 얻고, 겸손하면 사람 얻고, 겸손하면 성공 하고, 겸손하면 의인 되고, 겸손하면 인정 받는다고. 뿐만 아니다. 스코틀랜드 사람 안드르 머리는 "겸손은 미덕의 모친, 겸손은 인간의 의무, 겸손은 성결의 꽃과 향기"라고 했다. 겸손은 온통 비단옷이로다. 옛 성인도 '屈己者 能處重"(굴기자 능처중). "자기를 낮추고 굽히는 자는 중요한 자리에 능히 오른다"는 뜻이다.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눅 18:14). 여기에 겸손의 진수가 보인다. 바리새인처럼 높이지 말고, 세리처럼 낮추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에게는 은혜를 베푸시느니라"(벧전 5:5, 약 4:6, 잠 3;34). 주님 또한 가라사대 이 겸손을 내게 와서 배우라 했으며(마 11:28-30). 하나님의 요청도 이 겸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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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2-18
  • [독자기고] 송덕 목사의 ‘목회성공과 교회부흥의 그 비결’ 20
    제2장 목회자의 자비생활 7. 온유생활 행동요청 (1) 의미로 본 온유생활 필자가 목회성공과 교회부흥을 거론하다보니 사랑하는 목회자들이 너무나 짠하고 안스럽기만 하다. 왜? 세상 사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하고 싶은 말, 하고 싶은 생활을 향유하고 살지만, 목회자는 하나님을 위하여 살아야 하기 때문에,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기 때문에(롬 8:13), 그리고 모든 욕망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어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 온유생활 요청함도 이런 면이 없지 아니하다. 하지만 목회자로서 성공하고 교회부흥의 길을 가려면 이 험산준령들을 날마다 반드시 넘지 않으면 안된다. 온유에 대하여 공자가 하는 말 들어보라. 공자 왈, "산(生) 사람은 부드러우나, 죽은(死) 사람은 굳어지고 뻣뻣하다. 고로 굳고 뻣뻣한 사람은 죽은 사람의 생활이요, 부드러운 사람은 산 사람의 생활을 의미한다" 하였다. 여러분! 목회자로서 산 생활을 하려니까 부드럽고 온유한 생활을 해야 되지 않겟는가? 온유한 생활을 한 목회자는 산 목회자다. 호주의 육해공군 국장(國章)의 국기는 '켕거루와 타조'라고 한다. 켕거루와 타조는 온유한 동물이기 때문이란다. 사실은 호주 뿐만 아니라 온 세계 평화인들은 온유한 자들을 원할 것이다. 괴롭고 힘들지만 목회자만은 온유의 길을 가야 한다. 그래야 참 목자로 존경받고 성자로 대우 받는다. 그러면 온유란 그 의미는 무엇인가? 온유란 한자로 "溫柔"요, 영어로 "gentleness"이요, 헬라어로 "프라우스"요, 히브리어로 "아브나"이다. 요한 칼빈은 이를 종합한 뜻으로 온유란 "부드러운 태도에서 살며, 모해에 쉽게 노하지 않으며, 타인의 자신에 대한 악의에 오래 참는 것"이라 하였다. 좀더 구체적으로는 헬라어 "프라우스"는 사람을 대하는 선의와 하나님을 높이는 것이요, 히브리어 "아나브"는 마음의 온화함, 마음의 가난함, 마음의 거룩함, 마음의 겸손함, 마음의 비천함 등을 일컫는다. 그러므로 온유하려면 자신이 고통을 받음으로 가능하며 "마음이 고통 받음"이란 뜻까지 포함한다. 화가 나고, 성질이 나고, 기분 나쁠 때도 자신을 억제하여 온유하려니까 마음이 고통을 받는 것이다. 동시에 한자의 '溫柔'도 영어와 마찬 가지로 사람을 대할 때 따뜻하고 부드러운 마음과 태도를 갖는 것, 그것을 온유라 한다. 고로 목회자는 항상 위로 하나님께는 높임을, 옆의 사람을 대할 때는 따뜻하고 부드럽지 아니하면 안된단 걸 잊지 말라! 우리교회 목회자 하나님 높인 목회자, 우리교회 목회자 항상 따뜻하고 부드러운 목회자로! 그러므로 목회자는 언제나 세상 사람과, 또 교인들과도 달라야 한다. 여러분! 유사 이래 온유한 자 어떤 자일까? 첫째는 예수님일 거고, "나는 온유하고"(마 11:29), 둘째는 모세일 거고,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함"(민 12:3), 셋째는 청교도일 거고, 넷째는 인도 마하트마 간디일 거고, 다섯째는 호주인으로 볼 수 있지 아니할까? 여러분! 이 사회를 보라. 냉혈처럼 차고 냉정하고 거친 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런 자는 반드시 사고를 친다. 사람이 따르지 않고 떠난다. 만일 부모가 이렇다면 그 자녀는 가정을 다 떠나지 않던가. 마찬가지로 따뜻하지 못하고 부드럽지 못한 지도자 밑에서는 누구도 거하지 못한다. 하물며 그런 목회자 밑에 교회이랴! 어린애가 엄마 품을 좋아하는 것은 언제나 따뜻하고 부드럽기 때문이 아닌가. 목회 성공하려면 따뜻해야 한다. 여러분! 뒷전의 교인들이 하는 말 들어봤는가? 저 목회자 가시고 부드럽고 따뜻한 목회자 좀 오셨으면? 잘 듣고 기억하여 어린애를 품에 안은 따뜻하고 부드러운 엄마처럼 따뜻한 목회자가 되라. 여자가 몸이 차면 임신이 어렵다 하고, 지도자가 맘이 차면 사람이 붙지 않는다 하며, 목회자가 냉혈처럼 차면 교인이 떠난다 하더라. 여러분! 사람이 모이는 리더, 사람이 따르는 리더는 말하는 법이 다르단다. 부디 따뜻하고 부드러운 목회자 되기를! 목회성공 교회부흥 위하여! 옛 성인들의 말에도 "凡事 留人情 後來 好相見"(범사에 유인정이면 후래에 호상견이라)는 말이 있다. 모든 일에 인정이 머물게 하면 훗날에 서로 좋은 것을 보게 된다는 뜻이다. 이런 책도 있다. "사람이 모이는 리더, 사람이 떠나는 리더". 이 책을 권하면서...(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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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0-17
  • [독자기고] 송덕 목사의 ‘목회성공과 교회부흥의 그 비결’ 21
    제2장 목회자의 자비생활 7. 온유생활 행동 요령 (2) 예증으로 본 온유생활 필자가 아는 주변 두 집에 각기 새엄마들이 들어왔다. 그들이 행하는 것을 보면서 인생사 배우고 느낀 바 많아 먼저 이를 전한다. 앞동네 새어머니는 차갑고 냉정하고 억세고 딱딱하고 쌀쌀하고 사납고 인정조차 없더니, 자신이 낳은 자식 아니라고 어미 잃은 불쌍한 어린 것들을 매질하고, 두 손 들어 벌 세우고, 또 추운 겨울철에도 빨래하게 하고, 더 나아가서 학교 갈 아이들에게 아침밥 굶기고 점심 도시락도 싸 주지 않아 점심 시간이면 먹을 것이 없어 학교 담벼락이나 버드나무 그늘에서 눈물로 보내도 아무도 이를 모르네. 체육 시간 달리기엔 배고파서 뛸 수가 없네. 언제나 꼴등. 끝내 영양실조에 쓰러진 채 양호실에 실려가기 일쑤. 견디다 못한 한 애는 한강 투신 했으나 순찰대에 발견되어 구사일생 살아나고, 또 한 애는 배고파 학교 중단하고 공장 향해 떠나가고, 남은 애들은 너무 어려 갈 바 모르니, 밥 굶고 매 맞으며 당하고만 있네! 앞서간 엄마가 보고 싶어서 밤마다 얼싸 안고 흐느껴 울며, 서로서로 위로하여 울지 말라고. 보고픈 우리 엄마 다시 올 거야! 네가 매 맞는 건 내가 맞을 께, 이불 속 속삭임 그 속삭임 죽지 말고 죽지 말고 살아가자고! 아 불쌍하다. 저 어린 것들 무슨 죄가 그리 많아 학대하는고, 어른 된 자 여러분! 그 후 그 새엄마는 망했지만, 배고프고 매 맞던 그 애들은 모두 다 성공했단다. 하나님 은혜로! 뒷동네 새엄마는 어찌됐는고? 그 새엄마, 자신은 자녀를 낳지도 않고 이 자녀들 하나님께서 내게 줬으니 나는 이 많은 자녀를 축복으로 받았도다. 있는 정, 고운 정, 다 받쳐서 희생 헌신 아끼지 않고, 학교길 뒷바라지 고생고생에, 모두 다 잘 키워 시집 장가 보내니, 손자 얻고 손녀 받아 그들의 공경, 우리 엄마 우리 엄마 우리 할머니, 효자 효부 효녀 효서 후손들 효도! 따뜻하고 부더러운 가슴 다 열었더니, 한고음 행복으로 교훈한다네. 다시 들으라! 따뜻하고 부더러운 이 온유를 어떻게 하는가에 승패가 있다. 하물며 교인들 거느린 목회자들이랴! 예수의 온유하심은? J.P 리차드와 프랑스 나폴레옹 증언이다. 리차드 왈, "프랑스는 육지, 영국은 바다, 독일은 공중을 차지했으나 예수 그리스도는 온 세상 땅을 다 차지했다." 하였고, 나폴레옹 왈, "나는 유럽 천하를 무력으로 정복했으나 다 실패하여 망했는데, 예수 그리스도는 창검 하나 없이 십자가 사랑으로 온 천하를 정복했다" 하고, 세인트 헤레나에서 영국병사 감시하에 눈을 감았다. 사실 리차드와 나폴레옹의 증거가 맞는 말 아닌가? 온유함으로 온 세상을 유업으로 받은 자들은 또 있다. 둘째는 모세일 거다. 바위를 두 번 쳐서 하나님의 거룩성을 욕되게 했다고 비스가 산 꼭대기에서 가나안 땅 바라만 보고 죽었지만, 모세 후손들 가나안 땅 차지했으니 결국 모세가 차지한 것 아닌가.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더라"(민 12:3). 셋째는 영국의 청교도일 거다. 저들은 영국 정부 핍박과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믿음의 오래 참음, 온유함으로 1620년 저들 120명 그 후손들이 세계에서 제일 좋은 땅 북미 대륙을 기업으로 받아 살아가고 있다. 넷째는 호주일 거다. 켕거루와 타조로 평화와 온유를 상징한 호주는 대양을 기업으로 차지했다고 본다. 다섯째는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일 거다. 그는 ㅤㅍㅑㅇ생을 예수의 산상수훈을 애독하면서 영국에 무저항주의 온유로서 인도를 기업으로 차지했다. 세상 사람들은 무력과 강포라야 땅을 차지하는 줄 알지만 하나님은 정 반대다. 하나님은 "유능승강(柔能勝强)"의 하나님이시다. 바람과 해의 신사 외투 벗기기 내기를 보라. 바람이 이길 것 같았으나 따뜻하고 부더러운 해가 이기지 않든가. 필자는 목회 중에 성질 부리고 화도 내고 온유함에 불합격, 고로 지극히 작은 연립집 하나밖에 못 받았다. 온유햇어야 했는데!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마 5:5).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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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0-17
  • [독자기고] 내 부모를 섬기듯이
    사상유래 없는 코로나19라는 질병으로 인하여 1년 반이라는 기간 동안 전세계가 대 홍역을 치르고 있다. 그로 인하여 수많은 존귀한 생명을 잃고 이 질병이 갈수록 변의를 일으켜 사람들을 공포속으로 몰아넣고 있으며 이 코로나19가 언제 종식이 될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이미 코로나에 관한 상황은 수많은 전문가들과 언론매체를 통하여 언급되었기 때문에 필자가 같은 상황을 놓고 언급하고자 할 생각은 없다. 필자가 몇 일전 TV뉴스를 보면서 어떻게 저런 일이 있을 수가 있는가. 다 시 한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동안 어린이집에서 교사들이 겨우 엄마 아빠 말하는 어린아이들을 폭행하는 일이 잊을만하면 폭행 뉴스가 터지곤 하였지만 앞서 언급한 뉴스 내용은 요양보호사가 자기 어머니 같은 분을 폭행이라고 해야 할지 물건다룬 듯이 해야 될지 모르겠으나 어떻게 저런 행위를 할 수 있겠는가 싶어서 가슴이 아팠다. 코로나19로 인하여 부모간의 1년 반 가까이 면회 한번 못하다가 1~3개월 전부터 가림 막을 치고 10분 남짓 면회하고 오는 상황이 얼마나 가슴 아픈 상황인가. 필자의 노모도 구순이 되셨는데 하나님께서 건강주셔서 집에서 생활하시게 하시니 얼마나감시한지 모른다. 만약 제 어머님이 저런 일을 당하셨다면 얼마나 분노가 치오를까 싶었다. 숨결이 스며 있는 사시던 집이며, 장농과 그릇이며 다 놔두고 병들고 늙어 어쩔 수 없이 그곳에 (모셔둔 자녀들이 그장면을보고 얼마나) 가슴이 미어지고 집에서 모시지 못한 죄책감에 시달렸는가를 생각하면 결코 남의 일 같지가 않다. 문제는 요양병원이 최고책임자가 인력관리를 부실하게 한데 대해 1차적인 책임이 있는 것이다. 문제는 최고책임자가 직원교육을 부실하게 하였기에 때문에 이런 일들이 심심찮게 일어나고 있다. 환자를 돌보고 케어 하는 기관은 사람들을 바로 현장에 투입할 것이 아니라 단, 1주일간이라고도 교육을 시킨 후 현장에 투입시켜야 한다. 필자가 이런 글을 쓰는 것도 노모님이 계시기 때문에 남의 일 같지가 않기에 쓰는 것이다. 이런 일을 재발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인성교육이 어쩠는지 파악하기가 어렵고도 어렵겠지만 이력서 받아 면접만 보고 채용하여 바로 현장에 투입을 할 것이 아니라 철저한 인성교육을 시키고 나서 현장에 투입을 시켜야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도 요양보호사로 종사하는 자들이 수없이 많을 것이다. 물론 믿는 사람이고, 믿지 않는 사람을 떠나서 그 사람인성의 문제에 매여 있지만 믿는 사람이라고 하여 무조건 인성이 올바르게 된 사람들만 있다고 생각지 않는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말씀을 가슴에 아로새기고 내 부모같이 한분 한분을 대하며 이번과 같은 일이 발생되지 않기를 바라며 특히 우리 믿는 자들 가운데서는 이런 그릇된 행위로 뉴스에 나오질 않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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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7-20
  • [독자기고] 송덕 목사의 ‘목회성공과 교회부흥의 그 비결’ 18
    제2장 목회자의 자비생활 6.구제생활 실천요청 (1) 뜻으로 본 구제생활 목회생활에 구제생활 힘쓴 목회자, 분명히 목회성공과 교회부흥에 틀림없는 목회자 된다. 그 목회는 좋은 목회요, 물질 선용법을 아는 목회다. 또한 그는 꼭 있어야 할 소중한 목회자이다. 목회자 여러분! 구제생활에 앞장 서 보라. 복회성공과 교회부흥은 자동 케이스다. 또한 내가 베푼 그 사람, 나에게 구제받은 그 사람, 평생 나를 잊지 못하며, 또한 나의 사람이 된다. 어떤 상황에서도! 아니 나의 교인이 된다. 여러분 목회자들이여! 구제생활에 앞장 서 봤는가? 혹여 내게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에게 문전박대는 안했는가? 부디 권하노니 교회재정, 나의 생활비 중 구제사업에 많은 예산 세워 실천해보라. 목회가 첫째는 복음전파요, 둘째는 구제사업 목회되도록! 이런 목회자 성공 못한 사람없고 실패한 목회자 없더라. 그러면 구제(救濟)란 뭣인가? 궁핍하고 어려움 당한 자에게 동정과 자선과 자비로 관대하게 아낌없이, 값없이 베풀어주는 것이다. 여러분! 궁핍하고 어렵고 불쌍한 자들을 보고도 구제하지 않고 외면한 자들이 어찌 된줄 아는가? 신 15:9, "여호와께서 그가 호소하면 네가 죄를 얻을 것이라." 마 25:1-46, "내가 주릴 때에... 목마를 때에... 나그네 되었을 때에... 벗었을 때에... 병들었을 때에... 옥에 갇쳤을 때에, 모른체 하고, 돌보지 않은 자는 저주를 받을 자들...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지옥불에 들어가라"고 했지 않은가. 조심하라! 지금 조심해야 한다. 약 2:13, "긍휼을 행하지 아니한 자에게는 긍휼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궁핍하고 불쌍한 자를 돌보지 아니함은 무엇 때문인가? 궁궐같은 내 집, 호의호식 연락생활, 고급승용차에 명예와 지위유지, 통장에 가둔 재물욕망, 마귀가 유혹한 욕망의 덫에 걸렸기에 남의 사정을 살펴볼 마음의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내 자신의 생활이 가난하여 못함이야 어쩔 수 없지만, 호의호식 생활은 서민생활로 좀 낮추면 된다. 잘 들어라! 어려운 사람 구제는 성경이요, 하나님의 명령이요, 예수님의 엄명이다. "귀를 막아 가난한 자의 부르짖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면 자기의 부르짖을 때에도 들을 자가 없으리라"(잠 21:13). 여러분! 1923년 미국 시카고 에지워터 비치호텔에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부호들, 세계적 재벌들 9명이 모여 세계경제를 논의한 회합을 잘 아실게다. 그들은 세계 강철회사 사장 챨스 슈압, 세계 최대 전기회사 사장 사무엘 인설, 세계 최대 가스회사 사장 하워드 합슨, 세계 최대 소맥회사 사장 아더 카튼, 뉴욕 증권회사 사장 리차드 휘트니, 월스트리트 주식거래 사장 제씨 리브모어, 특허공사(전매회사) 사장 이버 크레이커, 국제은행(산업은행)장 레온 후레이저, 정부 경제관료(내무부장관) 엘버트 휠 등인데, 그후 25년이 지난 1948년경 그 부호들이 어찌 된줄 아는가? 챨스 슈압은 빚더미에 눌려살다 죽고, 사무엘 인설은 법에 쫓겨 살다가 무일푼 객사, 하워드 합슨은 정신병자로 사망, 아더 카튼은 부채로 도망다니다 병사, 리차드 휘트니는 부정사건에 연류되어 뉴욕형무소에서 기억상실증을 앓다가 사망, 제씨 리브모어와 이버 브레이커와 레온 후레이저는 자살, 엘버트 휠은 부정사건으로 감옥에서 사망했단다. 하나님의 섭리도, 불쌍한 자 구제도 아무것도 모르고, 오직 돈과 명예와 지위 그리고 호의호식, 부귀영화만 쫒다 25년 후를 생각지 못한 자들의 말로를 보라! 손에 가졌을 때, 높은 자리에 앉았을 대, 생명의 호흡이 있을 때, 불쌍한 자들 구제에 힘썼더라면 저들의 말로도 자자손손 천추에 이르도록 번영으로 서광이 빛났을 터인데! 모든 인생들은 들으라. 이는 저들의 인생사만 아니란걸! 들으라. 내일을 아는가? 1년 또는 5년 후를 누가 아는가? 몇년 후엔 이 땅위에 없을지도 모른다. 숨쉴 때 구제하고, 손에 쥘 때 구제하시라. 가난하고 불쌍한 자들의 아버지가 되시게! "환상 중에 밝히보매... 천사가 가로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행 10:1-4). 우리교회 목회자, 한국교회 목회자, 그 기도와 구제도 상달 상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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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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