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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와 윤동주 시인, 그리고 시집
- 2월 16일은 윤동주시인 서거 73주년이 된다. 오늘도 우리는 시대의 아픔을 안고 해방을 꿈꾸며 밤하늘에 별빛같은 삶을 산 시인 윤동주와 시를 다시 기억하게 된다. 윤동주 시인이 시인으로 자리한 것은 문학에 심취해 1935년 10월에 발간된 『숭실활천(崇實活泉)』제15호에「공상(空想)」을 발표하게 되는데 이 시는 최초로 활자화 된 것으로 황순원의 시와 양주동박사의 글이 함께 게재되며 주목받게 된다. 윤동주시인은 1941년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면서 자선시집을 77부 졸업기념으로 출판하려 했다. 시집 제목을「병원」으로 하려고 했을 만큼 일제 치하에서 고통받고 있는 우리 민족에 대한 치유와 위로의 심장이 간절했던 것같다. 그러나 은사이자 멘토인 이양하 교수는 일제의 출판 검열을 통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충고했고, 또 출판경비를 조달하기도 만만치 않아 출판을 포기하고 말았다. 대신 친필로 쓴 시작 노트 세권을 만들어 그 중 한권을 이양하 교수에게, 또 한권은 후배 정병욱에게, 그리고 나머지는 본인이 소장했다. 그러나 끝내 두권은 사라졌고 다행히 정병욱에게 준 한권만 남게 되었다. 악랄한 일체 치하에서 사상범으로 몰려 후쿠오카 감옥에서 억울하게 죽어간 위대한 시인의 존재와 그가 남긴 명시들이 하마터면 문학사에서 영원히 사라질 뻔한 것이다. 윤동주의 시가 본격적으로 알려진 데는 연희전문학교 친구였던 강처중의 역할이 컸다. 윤동주는 일본 유학중 강처중에게 편지와 함께 시를 적어 보내었고 해방후 경향신문 기자로 있던 1947년 2월 13일자 경향신문 4면에 윤동주의 시 <쉽게 쓰여진 시>를 발표하였다. 윤동주 시를 소개한 이는 정지용 시인이었다. 그것도 윤동주 생전에 가장 존경하던 시인 경향신문 편집국장 정지용주간의 해설까지 붙여서 실은 것이다. 사후 첫 활자화된 시로 그 해 3월1일자 김용호가 발행한「문화창조」(2호)에 윤동주의 시 <무서운 시간>이 함께 발표된다. 1948년 1월 30일 정음사에서는 유진오의 시집 「창」과 윤곤강의 「피리」를 출판하느라 분주한 가운데 정병욱이 가진 노트의 26편과 강처중이 받은 원고 5편을 모은 31편의 시로 유고시집을 긴급 제작 발간하게 된다. 추모식용으로 벽지표지로 만든 유고시집 「하늘과 별과 시」가 추모식에 10권이 나옴으로 죽었던 시인이 다시 시로 부활하게 된다. 유고시집 「하늘과 별과 시」은 정지용의 서문과 강처중의 발문으로 세상에 첫 얼굴을 내밀었다. 결국 이 모든 일이 시인과 그의 시를 기억하던 정병욱과 강처중, 그리고 정지용, 윤동주의 친동생 윤일주의 공로로 이루어졌다. 그야말로 역사적 성과가 아닐 수 없다. 그만큼 역사의 기록은 소중하고 신성하다. 이 시집과 더불어 1948년 백민문화사에서 3월 1일자 발행한 「백민」잡지에 고 윤동주 라는 이름으로 <슬픈족속>이라는 시가 발표되고, 이후 1953년 9월 시와 평론집 「초극」에 윤동주 시에 대한 최초의 본격적인 비평 「윤동주의 정신적 소묘」가 고석규에 의해 발표된다. 시인으로서 대중성을 확보하며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시집을 정음사에서 보급용 초판으로 2종을 출간한 1955년 2월 15일 10주기 추모식 때이다, 이때 유고본에 실렸던 정지용의 서문과 강처중의 발문은 제외된다. 편집은 정병욱의 자문을 받아 윤일주가 하고 표지화를 김환기가 담당했다. 이때 윤동주 시인의 동주 윤혜원이 월남하면서 가지고 온 노트의 80편의 시를 추가하므로 111편의 시가 수록되게 된다. 1967년에는 백철, 박주진, 문익환, 장덕순의 글을 책 말미에 추가 수록하고 판형을 바꾸어 재 간행하게 된다. 그후 그동안 게재 유보되었던 시 작품 23편을 추가하여 출판하게 된다. 1972년「현대시학」1월호는 윤동주 시집 46편이 수록되면서 시인의 시와 시세계에 대한 재평가 작업을 계속하였다. 그러나 시인의 시와 죽음을 공공연히 비하하던 소리가 있어 왔으나 1977년에 시인의 죽음에 대한 ‘일경의 극비문서 전문’과 ‘재판 판결문’등이 공개되면서 다시 윤동주 시인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키게 되었다. 1980년대 후반 중국의 개방 개혁의 물결을 타고 연변대 교수로 부임한 와세다 대학 오오무라 마쓰오(大村益夫) 교수가 용정의 동산중앙교회 묘지에 가서 40년간이나 잡초에 묻혀있던 윤동주의 무덤을 찾아내고 평전을 써서 세상에 알린다. 그러자 대한민국 정부는 이런 윤동주 시인의 공훈을 기려 1990년 8월 15일 대한민국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하게 된다. 지난해 연말 ‘별이 된 윤동주시인 탄생 100주년 기념전시회’를 열었다. 크리스천 시인이자 민족저항시인이었던 윤동주 시인의 시 정신을 기리며 두주간동안 인사동 갤러리에서 전시회를 가졌다. 크리스천만이 일반인들 특히 시인, 주부, 교수, 수녀, 승려, 학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층의 수천여명이 넘는 발걸음이 이어졌다. 전시회는 윤동주 시인이 태어난 만주 북간도를 중심으로 시작해서 그의 사후 출판된 유고 시집과 육필원고 그리고 추모 기념 작품들까지 300여점의 작품통해 처절했던 시인의 삶의 궤적을 소개하였다. 이 전시회에서 참석자들은 1948년 유고시집과 1955년 발행된 초판시집, ‘별헤는 밤’, ‘십자가’ 등 캘리그라피로 쓴 시 작품 등을 주목하였고, 기념강연과 시낭송 시음회를 통하여 시인의 정신을 되새겼다. 모두들 왜 그렇게 윤동주 시인을 좋아하느냐고 묻는다. 기독교장로교 출신에다 북간도에서 태어나 주변인물이기에 무관심해왔던 한국교회는 가슴을 넓히고 깊이를 더해야 하겠다. 윤동주 시인은 사실 한국교회의 보배이자, 자랑이다. 윤동주 시인은 식민지 시대의 지성인으로 마땅히 감당해야할 고뇌와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맑은 영혼과 깨끗한 시심으로 자기 십자가를 지고 그 수난의 가시밭길을 걸어갔다. 그리고 죽음을 맞았다. 그러나 잠시 죽은 것 같았던 그 죽음이 죽음으로써 끝나지 않고 다시 시로 부활하여 한국인에게 가장 사랑받는 시인 윤동주로 살아 오늘도 울림이 있는 감동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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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와 윤동주 시인, 그리고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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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가 풀어야 산다’
- 얼마 전 한목협에서 2017년 ‘한국인의 종교생활과 목회자 의식조사’를 통해 전국의 담임목회자 507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실시했다. 그중 한국교회가 개혁해야할 부분으로 ‘신앙의 실천부족(26.6%)’과 ‘지나친 양적성장(23.6%)’, ‘목회자의 자질부족(19.1%)’, ‘개교회주의(11.3%)’, 교회양극화현상(5.7%)’을 들고 있다.이 다섯가지는 목회자 스스로 진단한 것이기에 그 의미가 더 크다. 특히 주목하게 되는 부분이 ‘지나친 양적성장’과 ‘개교회주의’, ‘교회양극화현상’은 같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교회가 급성장해야 하고, 우리(?) 교회만 성장해야 하고 주변교회나 지역을 돌아볼 여유가 없을 정도의 의식이라면 함께 미래를 열어갈 수 있을까?교회의 급성장주의는 그만큼 교회가 성장한만큼 후유증도 동반하고 있다. 1970년대 산업화와 80년대 피터 와그너의 교회성장은 경영전략에 기인한 측면이 크다.한국교회는 대형교회만 바라보고 있고, 중형 교회, 중견 목회자들이 수수방관 할 것이 아니라 역할감당으로 적극 나서야 한다. 어찌보면 저수지는 물을 가두는데 목적이 있지 않다. 흘려보내지 않으면 그 많은 물은 재앙이 될 날이 온다. 한쪽에서는 가뭄으로 고통당하는데 둑이 무너질 정도로 물을 가두어 두고 흘려보내지 않는 저수지가 있다면 모두를 불행하게 할 것이다. 어느 정도 성장하고 웬만큼 자립한 교회 정도라면 그동안 쌓아둔 것을 흘려보내서 새로운 에너지를 만들어내야 한다. 그것이 건강한 교회와 더불어 사는 한국교회를 만들어 낼 것이다.요즘은 한경직 목사님같은 분열의 상처를 감싸고 치유하며 소외된 자를 품는 통합형 지도자가 그립다. 한국교회 전체를 읽고 사회와 소통시키며 미래로 이끌 다음 지도자가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역사와 미래, 세상과 사람을 품고 양극화를 치유하며 한국교회 미래를 열어보려는 노력도 보이질 않는다.한국교회 양극화, 정말 심각하다. 대형교회와 작은 미자립교회 갈등과 격차, ‘이건 아니다’싶을 정도로 심각하다. 신음소리가 커져만 간다. 한국교회의 가장 큰 현안은 80%에 달하는 농․어촌교회와 작은 미자립 교회들이다. 대형교회는 점점 몸짓이 커져가고 농․어촌교회나 작은 미자립교회는 점점 힘을 잃고 사라져 가고 있다. 어렵게 공부시킨 청년들은 대학가고 취직하면서 다들 도시로 나갔다. 도시교회는 넘치고 시골 농어촌교회는 노인들뿐이다. 그래서 목회자는 자녀 공부시키는 것도 어렵다고 한다. 그렇다고 도시교회가 자녀 장학금이라도 한번 보내지 않는다.농어촌 미자립교회나 목회자의 인내와 눈물이 한계점이 달하고 있다. 그런데도 한국교회가 그들에게 도움도 희망도 되어주지 못한다면, 그들을 품고 위로도 격려하지 못하고 방치하면서 어떻게 지도자라고 어찌 한국교회의 미래와 희망을 논할 수 있을까?한국교회 양극화, 풀어야 할 숙제이다. 양극화가 심한 곳이 교회이다. 한국교회 양극화, 풀어야 산다. 강한 자만 살아남고 살아남은 자만 사는 것이 아니라 그래도 함께 상생하는 교회가 그래도 생명력이 있다. 양극화를 극복하려면 농어촌 미자립교회를 찾아가고 부축하고, 건강한 교회로 세워가는 일에서부터 자립의 길을 찾아야 한다. 보아스가 룻을 위해 일부러라도 이삭을 떨어뜨렸듯이 이 시대에 농어촌과 작은 미자립교회, 특별히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목회자들에게 배려의 손길이 필요하다.양극화 극복하고 함께 상생하며 미래로 나가려는 대안 있는가? 한국교회, 미래로 가기위해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양극화의 대안이 있다면 ‘성장제일주의’가 아니라 '건강한 교회‘세우기운동이다. ‘건강한 교회‘가 해답이다. ‘건강한 교회’= ‘거룩한 교회’가 해답이다. 이제 한국교회는 ‘건강한 교회’ 운동을 통해 세상 속에 교회의 교회다움을 회복하며 세상속으로 들어가 빛과 소금이 되는 교회의 영광을 다시 드러내야 한다.도농교회가 자매결연을 맺고 농수산물을 수매하여 판매하는 등 농어촌를 지원하여 함께 상생하는 프로젝트를 전개하는 것도 좋은 방편이 될 것이다. 사실 물량적 지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한국교회가 함께하는 동료이자 동역자라는 메시지와 따뜻한 손길을 펼치고, 마음을 전하는 일이다. 이렇게 전개해온 것이 설과 추석에 ‘고향교회 방문하는 캠페인’이었다. 이렇게 귀하고 복된 나눔과 배려의 손길을 펼 때 손 마른 병이 고치지고 ‘건강한 한국교회’의 희망을 볼 수 있다.그러면 교회와 동역자님은 한국교회 양극화를 극복하고 상생하려는 어떤 대안이 있는가? 의지나 그런 관심과 청사진을 가지고 있는가? 전략과 이를 실천할 마음이 있기는 한 것인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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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가 풀어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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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은 다시 일하기 위한 조용한 준비입니다
- 먼 길을 단숨에 가는 방법은 없습니다. 인생은 더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사명은 삶에서의 순종입니다. 영적 쉼에 대한 조용한 준비는 힘을 더하는 또 하나의 사역입니다. 어느새 찾아온 100세의 삶, 그것은 얼마나 쉼이 필요한 것인지를 깨닫게 합니다. 가끔은 모든 것을 알고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의 오만함이 쉼을 부끄럽게 합니다. 평생목회를 꿈꾸며 원로목사님들을 만납니다. 오직 주님의 복음 하나로 일생을 바친 위대한 전도자의 주름진 손을 잡아봅니다. 아직도 따뜻한 열정이 가슴으로 흐릅니다. 말도 느리고 발음도 꼬이지만 하나님의 숨결 같은 호흡입니다. 서로 함께하는 친구들과의 조용한 만남도 믿음과 동행하는 자리입니다. 비오는 날의 우산처럼 모두가 필요한 동역자들 입니다. 아내도 아프고 누가 누구를 보살펴줄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하늘을 보고 살았던 존엄처럼 거룩한 자리를 펴는 것입니다. 한국교회는 은퇴하신 교계의 원로목회자를 존경과 명예로 예우해야 합니다. 그 분들이 다시 교회를 위해 일할 수 있는 자리도 마련해 드려야 합니다. 흔히 “목회는 은퇴해도 사역에는 은퇴가 없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사회에서도 직장을 은퇴하면 자신의 전공과 경험을 살려서 지속적인 활동을 하려고 노력합니다. 원로라는 단어는 호칭의 문제를 떠나 더 큰 명예의 의미가 있습니다. 근대 문명의 황혼을 비판적으로 묘사한 토머스 스턴스 엘리엇의 ‘문명 비판적 세계관’ 만큼이나 내 아픔에 대한 정리는 바로 쉼이 아닌가 쉽습니다. 흘러간 과거 속에도 손을 잡고 함께 웃고 울었던 많은 사람들이 생각나고 하나님을 향한 죽음의 순종도 떠오릅니다. 원로목사님들의 현재는 그렇게 이루어진 쉼입니다. 이제 당당한 걸음을 걸으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주님이 주신 소명과 사명을 평생목회로 이어갈 수 있는 원동력입니다. 역사는 현재를 지배합니다. 몰락한 제국의 역사가 오늘의 현실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볼테르의 독설이 자기를 낳아준 아버지에 이르면 패륜이 됩니다. 그에게 따뜻한 손이 없었던 모양입니다. 아마 영성깊은 쉼을 찾지 못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겸손과 절제는 사라지고 과도한 확신이 남은 상처입니다. 이제 원로목회자님들의 쉼을 마련하는 한국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황혼에 지는 해를 바라보며 다시 내일 떠오르는 태양을 상상하는 거룩한 의자를 놓았으면 합니다. ‘종로에 나오면 목자카페가 있어 참 좋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그 분들의 더 큰 쉼을 위해 우리는 일어서야 할 것입니다. 그곳에서 내일을 꿈꾸고 준비하는 노병의 미소는 내일의 우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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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은 다시 일하기 위한 조용한 준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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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인 과세 시행, “아직은 이르다”
- 지난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가 종교인 과세를 내년에 시행하겠다고 답변을 했다. 또한 한승희 국세청장 후보자도 국회에서 시기를 정해주면 시기에 맞춰서 집행하겠다고 하면서 과세 대상자 규모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는 정확한 통계 추측이 어려지만 문화체육관광부 통계에 따르면 20여만 명으로 추측된다고 답변을 했다. 그러나 실제 종교인과세를 시행하기에는 과세당국이나 종교단체 모두 종교인과세의 기준과 범위의 한정 등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따라서 철저한 준비와 상호 이해 그리고 협력을 통해 이러한 문제점들을 보완하여 시범 운영 후 실시해야 조세 저항 없이 종교인 과세 문제가 연착륙 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대선 때 각 당 대선후보들은 헌법에 명시한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고 정교분리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조세저항과 사회와 국가적인 혼란과 국론분열을 일으키지 않도록 종교의 역할과 중요성을 감안하여 종교인과세를 2년간 유예하겠다고 약속 한 바 있다. 종교인 과세가 47년 만에 시행되기 때문에 종교의 고유한 역할과 사명을 간과한 채 만약 일방적으로 과세를 시행한다면 많은 문제가 나타날 것으로 예상되므로 공공정책개발연구원은 지난 2014년 국회토론회 개최를 비롯하여 꾸준하게 종교인 과세문제에 대한 문제점과 대안을 정부와 교회에 제시해 왔다. 이제 2018년 종교인 과세 시행을 앞두고 전혀 준비되어 있지 않은 과세 당국과 종교단체간의 현 상황을 고려하여 지난 6월 19일 제5차 ‘종교인과세대책을 위한 컨퍼런스’를 통해 한국기독사회의 여론을 수렴한 바 있다. 종교인과세에 대한 교파를 초월한 목회자들과 교회 관계자 등의 의견을 모아 다음과 같이 제안한다. 종교의 자유는 대한민국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불변의 가치이며 어떤 경우에도 침해될 수 없는 천부적 가치이다. 종교의 특성과 목회자 사역의 특수성을 반영하지 않은 정부의 종교정책은 갈등과 혼란을 야기할 뿐이다. 때문에 전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당국이 종교인과세를 일방적으로 추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우리 대다수 종교인들의 입장임을 밝히고자 한다. 우리는 2018년 1월 시행을 앞둔 종교인과세가 종교의 특성을 도외시한 가운데 일반적인 사회의 기준과 잣대로 시행되는 과세정책이라는 데 깊은 우려를 표하면서, 정부당국에 과세 시행시기의 유예를 포함한 세부과세기준 수립 및 납세절차 등 정책의 중점고려사항에 대한 정책 수정을 강력히 요구하는 바이다. 종교간, 종단 및 종파간의 상이한 특성을 정책에 반영하지 않은 종교인과세를 무리하게 강행할 경우, 국가와 사회공동체의 갈등과 분열, 조세 저항으로 인한 혼란을 초래할 뿐이다. 종교인과세 시행의 중요한 본질은 정부당국과 교계와의 충분한 합의와 공감대가 조성되어야 한다는 데 있다. 나아가 각 교단의 헌법과 각 교회의 운영정관과 재무회계시행세칙 등 교회자치법규가 존중되는 가운데 과세의 명확한 기준과 범위가 한정된 후에 추진되어야 한다. 우리 종교인들은 회계나 세무관련 지식과 경험이 극히 부족하다. 뿐만 아니라 교회 내부적으로는 각종 회계처리시스템이나 세무교육체계 등 관련 인프라가 거의 갖추어져 있지 않다. 따라서 종교인과세 정책은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당사자를 설득하고 상호 협의를 통한 이해와 협조를 통해 시행해야 한다. 그리고 시행에 앞서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과세방안을 준비하고 계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첫째, 종교인 과세 시행의 주체인 정부 당국과 납세 당사자인 교회, 이 양자간에는 전체적으로 과세 시행에 필요한 준비가 절대 부족하고 미흡한 상황을 감안하여 2018년 1월로 예정되어 있는 과세 시행시기를 추가로 유예할 것을 정부 당국에 강력히 촉구한다. 둘째, 어떤 경우라도 종교인과세를 빌미로 교회와 목회자에 대한 세무조사나 세무사찰을 단호히 배격하며, 사회체계와 크게 다른 영적 구도집단인 교회가 종교인과세에 연착륙 할 수 있도록 정부가 교계대표들과 지속적으로 대화하고 소통하는 협의 창구를 개설할 것을 촉구한다. 셋째, 이제라도 종교인과세의 불합리한 부분과 미비점이 보완 개선되어야 한다는 점을 역설하면서, 정부당국은 각 교단의 헌법과 교회자치법규를 존중하고 각 교단의 의견을 골고루 수렴하여 누구나 공감하고 지지하는 과세정책을 수립하여 추진할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 넷째, 종교간, 종단 및 종파간 예산 수입 및 지출항목 등의 처리방법이 상이하고 교회안에서 정확한 기준이 마련되지 못한 현실을 반영하여 교회의 예산결산항목 중 ‘사례비’에 과세를 시행하는‘종교인과세 범위의 한정’과 “원천징수에 의한 납세”절차의 수용을 정부당국에 건의한다. 이제 한국기독교계는 사회적 공공성과 공교회성 강화를 통해 각 교회가 내부적으로 철저한 재정운영의 투명성 확립과 회계구조시스템, 세무인프라를 구축하는데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교회재정운영이 적법성, 정당한 절차, 공정성을 견지할 때만이 교회는 사회적 책임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이다. 예산의 확보와 집행과 결산 등 투명한 재정행위로 종교인 과세를 연착륙시켜 국가 공동체의 통합과 화합을 이끌어내는 종교 본연의 사명을 완수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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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인 과세 시행, “아직은 이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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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 로즈마리
- 양지바른 베란다의 주인 잃은 화초를 돌아보다 그윽한 향기에 넋을 잃을 뻔했다. 아내가 무척이나 아끼며 가꾸었던 화초들, 그 중에 유독 두 그루에서 풍기는 진한 향기가 코끝을 자극하면서 마음속을 휘젓는다. 나보다 화초를 더 사랑하는가 싶어 내심 못마땅해 그 사람의 화초 사랑에 무심했던 게 후회막급으로 가슴을 저리게 한다. 회한과 그리움에 아침저녁 화초를 찾아 인사를 하고 나들이가 없는 날에는 수시로 베란다에 나가 향기를 맡으며 못 다한 이야기를 나눈다.그 사람이 남기고 간 것들이 아직도 집안에 그대로다. 주방기구며 사진은 항상 웃는 모습 그대로 말이 없다. 옷, 장신구, 신발, 책들과 메모장들은 생명이 없어 정체된 상태이다. 화초들은 돌봐주는 대로 잘 자라면서 꽃을 피어주고, 그윽한 향기를 내는 식물은 아내의 변신인 양 “나 여기 있어요” 라며 향기로 다가선다. 이에 나는 이전보다 진지하게 “여보 생전에 당신이 아끼고 사랑하던 화초에 관심을 갖지 않았던 것이 참 미안하구려. 요즘은 향기 내는 식물을 당신의 분신으로 알고 잘 보살피고 있으니 섭섭했던 마음일랑 날려버리세요.”라고.봄가을로 정성 들여 화초에 분갈이를 하던 모습이 선하다. 지난 겨울 동짓날 이 세상을 떠났는데 엊그제 하지를 맞으면서 벌써 반년이 지났다. 올해는 봄 분갈이를 못한 채 메마른 여름 더위 속으로 힘없이 빠져 들고 있다. 그리움에 지쳐가는 내 자신을 추스르며 화초들이 가을철 분갈이를 할 때까지 잘 자라도록 가꿀 참이다.언젠가 아내가 호주에 먼저 가있고 한 달 후에 내가 갔을 때가 생각난다. 출석하는 루터교회의 호주인 목사가 내 아내를 ‘로즈마리’라고 부르는 것이었다. 왜 그런 호칭을 갖게 되었는지 궁금했는데 그간 아내는 그곳에 가 있을 때마다 주일날이면 교회에 나가 자원봉사를 했던 것이다. 독일계 호주인들이 감동을 받아 감사와 애정의 뜻을 담아 ‘로즈마리’라는 호칭을 부여했던 것이다. 나는 30여년이 넘도록 목회를 하며 같이 살다가 간 아내가 좋아하는 화초의 이름을 제대로 몰랐다. 외로운 마음을 달래는데 좋다는 반려식물에 관한 이야기를 듣다가 향기를 내는 것이 ‘로즈마리’라는 것을 알았다. 꽃이 피는 것을 보지는 못했지만 항상 푸른 잎으로 향기를 뿜어내는 게 아내의 삶과 고운 자태를 대변해주는 것 같다. 이에 ‘나의 반려식물이 이거로구나’ 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더욱이 아내가 호주교회에서 그리스도인의 향기를 아름답고 겸손하게 실천한다는 뜻으로 얻어진 이름이 ‘로즈마리’여서 어느 화초와 비교할 수가 없다. 이전에 나는 베란다에는 화초보다 토마토와 몇 가지 채소를 심었으면 했다. 하지만 아내는 그런 것들은 마트에서 얼마든지 사다 먹을 수 있다며 정성껏 화초를 가꾸었다. 거기다 봄이면 부활절, 가을이 되면 추수감사절 준비를 한다며 나를 운전시켜 양재동 화훼시장으로 갔다. 나는 무슨 꽃을 고르든지 사가지고 가자는 대로 뒷좌석과 트렁크에 가득 싣고 향기를 내는 화분을 끌어안고 옆에 앉아 “여보 미안하지만 조심해 가주세요”라던 모습이 애잔하게 떠오른다. 아내는 호스피스 자원봉사자였다. 수원기독호스피스병원에서 10여 년간 지망생들 교육과 말기암 환자들을 맡아 임종 시까지 돌봐주는 봉사를 ‘로즈마리’ 향기처럼 진하게 했다. 반면 나는 산이 좋아 멀리 등반 여행이나 하고 문학공부를 한다며 서울 나들이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지냈다. 이제는 혼자서 어떻게 할 수가 없어 고아가 된 느낌에, 등받침대가 빠져버린 의자에 앉아있는 것 같고 벽이 허물어지고 없는 느낌이다. 늘 당신의 노후 뒷바라지는 걱정 말라던 사람이 먼저 가버린 것을 생각하자니 괘씸하다는 마음이 들고 배신을 당한 기분이다.월요일 아침이면 의례히 나는 문학공부를 하러 서울로, 아내는 호스피스 봉사를 하러 나가기 위해 바빴다. 아내가 아침을 준비하면서 “여보 미안하지만 호스피스용 앞치마 좀 다려주세요”라고 하면 나는 의례껏 다리미질을 했던 게 바로 엊그제처럼 눈앞에 선하다. 사후 수목 장을 바랐던 아내의 뜻을 이행하려고 여러 각도로 생각을 거듭했다. 국가유공자인 나와 국립현충원에 안장되기 위해 그 사람의 분골에 그간 모아둔 내 머리털과 손톱, 발톱을 섞어서 일부를 정리해 두고 나머지를 기념이 될 만한 곳의 소나무아래 묻었다. 그윽한 향기를 뿜는 영원한 ‘로즈마리’로 고이 잠들기를 바라는 나와 자녀들의 간절함에서다.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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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 로즈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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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태 규 목사(서광교회)
- 5월 가정의 달을 보내고 있다. 교회서는 어린이주일. 어버이주일. 부부의 날을 지키면서 한 달을 보낸다. 우리교회는 가정의 달 새벽기도회 때 행복하게 하소서, 건강하게 하소서, 인가귀도 되게 하소서, 3가지 제목으로 합심기도를 드린다. 그러나 성도들 가정을 보면서 정말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생각해 본다.이 세상 모든 사람은 하나같이 축복된 가정을 꿈꾸며 살아간다. 가정은 하나님께서 직접 만들어주신 신성한 곳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 가정 안에서 모든 인간이 참 삶을 얻으며,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시고 계시다.어떤 이는 오늘의 가정을 풍자하여 집은 있으나 가정이 없어져가고 있다고 말한다. House는 있으나 Home은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바쁜 산업사회의 영향과 향락주의 때문에 그 현상은 점점 더해가고 있다.가정은 역사를 형성하는 핵 세포이다. 가정은 모든 조직의 기초이며 행복의 근원이며 삶의 에너지가 되는 것이다. 가정이 강하고 생동력이 넘쳐흐를 때 학교와 직장, 교회와 국가가 강해지고 활발해진다. 가정은 성취가 아니고 과정이다. 항상 성숙한 단계로 성장하여야 하는 것이다.가정은 신성한 것이다. 그래서 사탄은 우리의 가정을 최대 공격 목표로 삼고 있다. 우리는 가정을 지켜 가정으로 가정되게 하여야 한다. 건강한 가정의 15가지 특징을 소개한다.1) 모든 것을 이야기하고 들어준다. 2) 다른 이를 인정해 주고 잘 돕는다. 3) 다른 이에 대한 존경심을 잘 가르친다. 4) 신뢰의식을 잘 키운다. 5)유머와 오락을 즐긴다. 6)책임을 공개적으로 함께 나눈다. 7) 가정의 의식과 전통을 강하게 지킨다. 8) 가족관계를 골고루 지니고 산다.9) 옳고 그름을 바르게 가르친다. 10) 종교와 신앙을 함께 나눈다. 11) 남의 인격을 서로 존중한다. 12) 남을 돕고 봉사하는데 비중을 먼저 둔다. 13) 시간과 대화를 함께 나눈다. 14) 여가 선용을 잘한다. 15) 어려운 문제를 함께 보고 듣는다.이상과 같은 건강한 가정은 물질이나 경제적인 여건보다 모두가 정신적이며 인간적 관계가 앞서 있음을 보게 된다. 결국 모든 것이 함께 짐을 질 때 행복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진정한 행복이 이론으로 채워질 수 있을까?내가 격은 일화를 소개하려고 한다. 과거 초교파 목회자 세미나에 참석을 하였다. 미국에서 오신 감리교 목사님이 가정세미나를 시작하기 전 “축복된 가정” 노래를 불렀다. 나는 무심코 그 노래를 따라 부르다가 마음이 얼마나 뜨겁던지 한없이 눈물을 흘린 적이 있다.그때 나에게 임한 그 은혜가 모든 이에게 임하길 바라면서 소개한다.복음 송 “낮엔 해처럼 곡”에 가사는 아래와 같다.1. 우리 주께서 그 분 안에서 우리를 만나게 했네당신을 보고 따뜻한 마음 입어 당신을 사랑하게 되었네예수님 사랑 우리를 묶어 축복된 가정 주셨으니우리 부부가 주님 모시고 천국 이루어 살렵니다.우리 주님을 정말 사랑하면서 그 사랑 가지고 살리라나는 당신을 사랑하렵니다. 주님 품안에 안 길 때까지2. 우리 주께서 그 분 안에서 사랑의 선물 주셨네아들딸들을 품에서 키워갈 때 정말로 당신사랑 알았네예수님 사랑 우리를 묶어 축복된 가정 주셨으니우리 가족이 주님 모시고 천국 이루어 살렵니다.우리 주님을 정말 사랑하면서 그 사랑 가지고 살리라우리 가정을 사랑하렵니다. 주님 품 안에 안길 때까지칸트는 행복의 3가지 조건을 말하였다. 첫째는 할 일이 있고, 둘째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셋째는 희망이 있다면 그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라고 하였다.최근 한국고용정보원이 우리나라 621개 직업종사자 1만912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만족도 높은 직업으로 1위에 판사, 2위에 도선사, 3위에 목사가 올랐다.나의 아버지는 한국경제가 어려웠던 시절 주로 농촌에서 목회를 해오셨다. 그러나 돌아 가시기전 하신 말씀이 내 가슴에 새겨있다. “하나님의 은혜로 주의 종이 되어 행복하게 살았네. 우리 가족은 아버지의 거짓 없는 이 고백을 100% 믿고 그 뒤를 따르고 있다. 가정의 달에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가정, 복을 담고 사랑을 나누는 넉넉한 가정들이 되어 모두가 행복하기를 기도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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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태 규 목사(서광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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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성 만 본부장
-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그 빛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 사람은 누구도 하나님께서 ‘창조’하시는 것을 직접 본 사람은 없다. 다만 성경에 기록을 남겼을 뿐이다.현대인들은 천재지변만을 보고 살아서 그런지 ‘저절로’라는 말에는 아주 익숙해져있다. 아름다운 자연을 보면 하나님의 창조물이라는 사실을 부인도 시인도 하지 않고 온몸으로 감탄만 할 뿐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로마서 1장 20절로 하나님의 신성과 능력은 우주 만물을 보면 창조물이라는 사실을 바로 알 수 있다고 하셨지만 더듬어 볼 문장을 지금까지 찾지는 못하였으나 필자는 이신칭의 생활문화를 보급과정에서 찾았다.바로 자연(自然)과 자기(自己)라는 한자의 형상이 그것이다. 코를 상형화한 ‘스스로 자(自)’자이며 고한글이다. 옛사람들은 인간과 자연이 하나님의 창조물이라는 사실을 자연(自然)이라는 단어에 새겨 놓았다.하나님은 오늘의 이 순간을 미리 예견하시고 로마서 1장 20절을 말씀하신 것만 같다. 창조 현장을 직접보지 못한 인간들을 위하여 누구나 말씀의 진리를 더듬어 보도록 한 말이 로마서 1장 20절이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 할지니라”.인간과 자연 모두가 하나님의 피조물이라고 성경 곳곳에 기록이 있지만, 직접적인 관계가 없으면 적당히 넘기려는 사람들의 본성 때문에 깊이 생각하지 않고 그냥 지나치는 것이다. 우리는 자연(自然)의 ‘自’(자)자와 자기(自己)의 자(自)자를 똑같은 글자로 쓰면서도 왜 ! 똑같은 자자를 쓰는지 알려고 들지도 않았고 남들이 쓰니 그냥 따라만 했다. 성경과 일상생활과 연관시키지 못했던 것은 한자는 무조건 유 불교라는 고정관념도 강했지만 더 큰 문제는 유교적 폐쇄성이다. 성리학(性理學)이외의 다른 종교와 이념은 무조건 이단시하고 무시해버렸기 때문에 다른 시도(試圖)는 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직도 성리학의 잔재가 생활에 남아있어 신앙의 장애물이 된다.뜻밖에도 하나님은 시 공간을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통로로 자연(自然)이란 고한글의 自(자)자로 열어놓으셨다. 自(자)자는 ‘저절로’와 ‘스스로’ 둘이지만 실은 동일한 뜻이므로 하나의 문자를 공동으로 쓰는 것이다. 생명체는 ‘스스로’, 사물과 풍광(風光)은 “저절로”로 쓰는 것이다. 이는 누구나가 알기 쉽게 식별하고자 소리만 조금 달리 낼뿐이다. 뜻과 글자가 똑같은 동일한 고한글이다.또한 自(자)자의 형성 과정도 역시 하나님 창조에 근본을 두고 있다. 이를 확실하게 뒷받침 하는 것은 창세기 2장 7절이다. 하나님은 우주 만물을 먼저 창조하시고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바로 생명이 들어간 코를 형상화 한 상용문자가 바로 自(자)자인 것이다. 중국의 허신도 설문해자에서 분명히 사람의 코를 형상화 했다는 기록을 남겼다. 이는 자연공간의 순리와 아담과 하와, 생활까지를 하나로 묶어서 더듬어 볼 수 있도록 한 문자가 바로 自(자)자가 아닌가? 또한 중국의 문헌과 역사에 까지 기록을 남겼으니 객관성까지 더하는 것이다.성경에서도 ‘스스로’(출3:14)와 ‘저절로’(겔44:31, 행12;10)를 사용하고 있다. 오늘날 사람들도 하나님이 생존해 있다는 사실을 더듬어 알도록 한 것이 로마서 1장 20절 말씀이다. 제 아무리 인공지능의 최첨단기술이라고 할지라도 수 천 수 만년 전의 일을 이보다 더 정확하게 밝히 수 있는 것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이런 이치를 못 깨우치다보니 때로는 당황도 하고 의심이 생길 때도 있었지만 이제는 제대로 성경을 삶으로 살아 낼 수 있는 것은 오직 이신칭의(以信稱義) 생활문화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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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성 만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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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소서 은혜의 성령님, 하늘 가르고 임하소서!
- 금년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여 초기 한국교회에 임한 성령의 역사를 다시 조명해 본다.한국교회는 1907년 평양 대부흥운동을 기억 하고 있다. 그러나 이보다 앞서 1903년 하디 선교사로부터 원산 대부흥운동이 시작되었음은 누구도 부인 할 수 없는 사실이다하디는 1901년 강원도에 지경터 교회를 설립하였고 다음해 목사 안수를 받았다. 그 곳에서 교인을 얻고 장년 15명에게 세례를 베풀었다. 그러나 자신의 사역 속에 회심 자를 얻지 못한 것에 대해 근심과 무력감에 빠지었다.그래서 하디는 갈급한 마음을 갖고 성령을 의지하게 되었다. 1903년, 때마침 중국에서 일하던남 감리회의 여선교사 미스 화이트가 원산을 방문하는 것을 계기로 8월 24-30일까지 선교사 6~7명이 합숙하는 성경공부와 기도회가 열렸는데, 기도회 인도를 부탁 받은 하디는 요한복음14장을 읽게 되었고 본인이 성령 충만하게 되었다.그 는 요14:12~17,16:23~24을 중심으로 ‘효과적인 기도의 세 가지 본질’을 강의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날 하디는 강의를 준비하면서 그렇게 살지 못한 자신을 깨달았다. 성령의 임재가 필요함에도 구하지 않은 자신의 부족함을 알았다. 성령께서 그의 실패의 원인을 밝혀 주는 듯 했다. 하디는 이때 자신의 모습을 숨김없이 내놓고 회개하여 선교사들에게 은혜를 받게 되었다. 그리고 기도회 이후 주일 아침 예배 때 원산교회 교인들 앞에서 받은 은혜를 간증했다.즉 자신의 실패한 원인이 자신의 무능과 부족 때문임을 고백했을 때 교회의 교인들 역시 큰 은혜를 체험했다.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를 알아야 한다. 그것은 회개 했기에 성령이 임한 것이 아니고 성령의 역사로 인해 회개가 일어났고 부흥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당시 유명했던 ‘윤승근의 양심전’을 소개한다. 1903년 여름 원산에서 시작한 부흥운동은 회개와 중생의 체험을 수반했다. 이 무렵 윤승근의 회개와 배상에 선교사들은 깊은 감명을 받았다.본래 윤승근은 ‘난봉군 소리를 들었던 인물이었으나, 1897년 남감리회 전도인 김주현과 김흥순의 전도를 받고 새사람이 된 후에, 고양읍교회의 창립멤버가 되었다.그 러던 중에, 그는 1903년 여름 하디가 인도하던 원산부흥회에 참석하였다가 ‘회개와 중생’의 체험을 하게 되었다. 한번은 과거 선교사 밑에서 매서인으로 일하면서, 조금씩 돈을 빼돌린 것이 7달러에 달했다고 자복했다. 그는 이 돈을 돌려주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대로 했으며 부흥회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줄곧 기도했다. “주여, 나로 하여금 과거에 모든 지은 죄를 기억나게 하사 남김없이 회개하게 하소서.” 그리고 길을 걷는 중에도 과거에 지은 죄가 생각나면, 그 자리에 꿇어 엎드려 통곡하며 자복하는 기도를 드렸다.그 러다가 10여 년, 인천 주전소에서 근무할 때 횡령한 돈이 생각났다. 그 때 한번은 회사에서 급여 계산을 잘못해서 그에게 두 달분 월급이 나왔는데, 그것을 되돌려 주지 않고 착복했던 것이 생각난 것이다. 그는 쓸 것을 쓰지 않고 돈 20원을 모아 인천 주전소를 찾아갔다. 그러나 화폐개혁으로 인천 주전소는 폐쇄되고 없었다. 그는 주전소의 기능을 흡수하여 국가재정을 흡수하는 탁지부로 가서 사정을 말하고 돈을 내 놓았다. 사정을 들은 탁지부 관리는 “다 지난일”이라며 갚지 않아도 된다고 하였다. 그러나 윤승근은 양심상 갚지 않으면 안 되겠다“며 받아줄 것을 요구 하였다. 탁지부 관리가 고민하게 되었다. ”대저 나라 돈이면 없는 구실을 대서라도 빼내가는 것이 세상인심인데, 어찌하여 예수교인은 아니 갚아도 될 것을 갚겠다고 하는가?“하며 탁지부 관리는 그 돈을 받으면서 영수증 항목을 ‘양심전’이라 썼다. 그 영수증은 하디가 기념으로 가져갔다. 훗날 과거 한국교회에 임했던 성령의 역사를 증거로 언론에 영수증을 공개하기도 했다.이 렇듯이 1903년 원산에서 시작하여 1907년 평양에서 초기 부흥운동으로 성령을 체험한 한국인들에게, 내외적 변화가 일어났다. 신분과 출생지, 나이와 환경이 달랐지만 성령을 체험한 그들에게 나타난 공통적인 현상은 ‘자신이 죄임임을 깨닫고, 자기 죄를 공개적으로 시인 하였으며, 자복 후에는 평안과 기쁨을 누리고, 회개 후에는 양심에 따라 살아가는 변화된 삶을 보여 주었다’는 점이다. 이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회개와 중생과 성화의 체험이다.지금 우리는 사순절을 보내고 있다. 부활절을 맞은 후에 성령강림절이 찾아온다. 종교개혁을 본받자는 겉만 요란한 행사위주의 요식행위보다는 내면적으로 과거 한국교회에 임한 성령의 역사함을 그리워하며 사모하자. 사회적인 오늘의 현실은 암흑과 같지만 하나님을 바라보면 새 희망을 꿈꾸게 된다.그러므로 우리 온 그리스도인들은 “오소서 은혜의 성령님, 하늘 가르고 임하소서! 이러한 기도를 하나님께 드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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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소서 은혜의 성령님, 하늘 가르고 임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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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고향교회 방문은 건강한 교회로 가는 첫걸음
- 한국교회 양극화가 정말 심각하다. 대형교회와 작은교회, ‘이건 아니다’ 싶을 정도로 심각하다. 한국교회의 가장 큰 현안은 80%에 달하는 농어촌교회와 작은 개척교회들이다. 대형교회는 몸집이 커지고, 농어촌교회나 작은교회는 점점 힘을 잃고 사라져 가고 있다. 그런 양극화를 극복하고 건강한교회로 나아가는 해답이 있는가? 해답을 찾는다면 미자립교회를 자립할 수 있도록 부축하고 건강한 교회로 세워가는 일에서부터 찾아야 한다. 양극화 극복의 대안은 ‘성장제일주의’가 아니라 ‘건강한 교회’를 세우는 운동이다. ‘건강한교회’가 해답이다. 이제 한국교회는 ‘건강한 교회’ 운동을 통해 세상 속에 교회의 교회다움을 회복하며 빛과 소금이 되는 교회의 영광을 다시 드러내야 할 때이다. 설이나 추석에 고향교회나 작은교회 방문운동은 한국교회 전체가 건강한 교회로 가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한국교회만이 아니라 한국사회가 함께 경제적으로나 인적으로 어려움을 당한 농어민들과 그들과 함께 하는 작은교회가 일어설 힘이 도저히 없을 때, 스스로 일어서거나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없을 때, 그들을 일으켜 세워주는 격려와 배려, 이것이 이 시대에 먼저 선 자립교회와 도시교회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선물일 것이다. 매년 설이 지나면 상계감리교회 서길원 목사의 경우 전국의 1,000여명의 목회자를 초청하여 격려하고 매년 100여개의 농어촌 미자립교회를 인적 물적으로 지원하는 작은교회 리메이크를 통해 목회 생태계를 다시 복원하고, 건강한교회의 가치를 창출해, 한 교회의 선한 영향력이 작은교회를 넘어 전국적 네트워크를 가져올 정도로 퍼져 나가고 있다.성경에 보면 보아스가 곡식을 벨 때에 룻을 위하여 이삭을 주울 수 있도록 배려하므로 룻과 나오미가 생계를 유지한 것을 볼 수 있다. 이 땅 백성들이 암울한 오늘에서 더 암울할 것 같은 내일을 바라보며 한 숨 쉬고 있을 때, 참다운 신앙이라면 반드시 그들에게 희망과 용기와 기쁨을 불어 넣어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도 한국교회가 그들에게 희망이 되어주지 못한다면, 그들을 품고 격려와 위로도 하지 못하고 방치한다면 그런 지도자들로 어찌 한국교회의 미래와 희망을 논할 수 있을까?또 산정현교회 김관선 목사는 고향교회 방문하기 캠페인을 꾸준히 전개하고 있다. 김관선목사는 “어찌보면 저수지는 물을 가두는데 목적이 있지 않습니다. 흘려보내지 않으면 그 많은 물은 재앙이 될 날이 옵니다. 한쪽에서는 가뭄으로 고통당하는데 둑이 무너질 정도로 물을 가두어 두고 흘려보내지 않는 저수지가 있다면 모두를 불행하게 할 것입니다. 섬기는 교회를 포함해서 웬만큼 힘을 가진 교회나, 한국교회는 그동안 쌓아둔 것을 흘려보내서 새로운 에너지를 만들어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건강한 교회와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들어 낼 것입니다.”고 전했다. 한국교회가 건강한 교회로 미래를 열고, 보다 건강한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 농어민과 그들을 돌보는 시골 농·어촌의 고향교회, 그리고 작은 개척교회 목회자들에게 깊은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배려하고 격려하는 넉넉한 마음이 절실하다.감리교회의 존경받는 지도자 대치동 성은교회 김인환 목사도 2007년부터 설이나 추석 명절을 즈음해 '고향 교회 방문하기'라는 이색 캠페인을 10년째 펼치고 있다. 소속 교회 성도들이 저마다 고향교회를 찾아 어려운 교회에 힘을 실어주자는 것. 김인환 목사는 평소 "어려운 여건 속에서 꿋꿋이 고향을 지키는 교회와 목회자들을 찾아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우리 신앙의 '못자리'같은 농어촌 교회를 가슴으로 보듬자"고 강조하고 있다.한국교회의 신앙의 못자리이자 신앙의 뿌리는 시골의 농·어촌교회와 작은 개척교회였다. 그런 저 낮은 곳에서 사랑을 실천하는 사마리아 사람들과 그런 교회들로 채워질 때 한국교회미래는 희망이 있다. 이제 여리고 언덕에서 강도만나 경제적으로 육신적으로 사회적으로 소외당하는 이 땅 백성의 억울한 자리로 가까이 다가가서 그들의 아픔을 함께 나누고 상처를 치유해주며, 그들에게 참된 기쁨을 되돌려주는 선교가 절실히 필요하다. 사실 이 시대에 농어촌의 작은 교회, 특별히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고향교회와 목회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한국교회가 함께한다는 그 마음을 전하는 일이 아닐까 싶다. 이 귀하고 복된 나눔과 배려가 있을 때 ‘건강한 한국교회’의 희망을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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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고향교회 방문은 건강한 교회로 가는 첫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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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아가는 작은 이유
- 새벽 일찍 깨어나 엎드려 묵상 기도를 합니다. 주님! 지금껏 살아오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제가 살아가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라는 생각을 하다가 문득 오늘은 호스피스 봉사하러 가는 날이지. 그래 오늘도 내가 할 일이 있고 나를 기다리는 분들이 계신다는 것이 내가 살아가는 작은 이유일거야. 부지런히 준비를 하고 호스피스센터로 향합니다. 아침 예배를 마치고, 주의 사항을 듣고 각자에게 맡겨진 일을 시작합니다. 3층 병실로 가서 봉사자들을 살피고 오늘은 2층 임종실 환우를 돌보기로 했습니다.202호에 환우의 가족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오늘 봉사자입니다. 혹시 제가 도와드릴 일이 있을까요?” 임종이 가까워진 환우의 메마른 입술에 물젖은 거즈를 붙여드리고 간단한 발 마사지를 해드렸습니다. 목욕을 못한 것 같아 가까이 있는 봉사자와 함께 손과 발을 닦아드리면서 환우에게 “물이 따듯하지요.” 가족(따님)과 함께 온몸을 닦아드린 후에 새 옷으로 갈아 입혀 드렸습니다. 그때 따님이 우리 아빠가 눈물을 흘리셨다고 기뻐했습니다. 환우의 귓가에 대고 “박00님께서 지금 가시는 길은 우리가 도와 드릴 수가 없는 하나님의 영역입니다. 아침저녁 예배를 드리면서 만난 그 예수님만 믿고 가셔야 합니다.”기도를 해드릴까요? 가족들에게 양해를 구한 후 기도를 했습니다. “사랑하시는 주님 지금까지 박00님을 지켜 주시고 이곳까지 인도해주심을 감사합니다. 육신의 고통으로 많이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하늘나라로 가는 길을 활짝 열어주시고 행여 악한 영들이 틈타지 못하도록 막아주십시요.. 남은 가족들도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게 해주세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가족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나누게 했습니다.환우의 모습이 이상했습니다. 원장 선생님이 오시고 가족이 바라보는 가운데 박00님은 잠자는 듯이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함께 있던 가족들이 슬퍼하는 가운데도 따님은 마지막이지만 자녀로서 아버지에게 작은 도리를 했다는 듯 “아까 우리 아빠의 눈물을 보셨지요” 라며 위로를 받고 싶은 눈빛이었습니다. 그 딸을 꼭 안아주면서 등을 다독여 주었습니다. 잠시 후 흐느끼던 따님이 고개를 들며 “오늘 너무 고맙고 행복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이 함께 하셨다는 것이 믿어졌습니다”라고 감격해했습니다.모든 뒷마무리가 끝나고 봉사를 마친 후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생각을 했습니다. “주님, 오늘의 일들이 제가 살아가는 작은 이유일까요..” 감사합니다.2016년 10월에 씀.메모 : 이융재 사모는 수필가 최건차 목사의 아내로 지난 12월 19일 71세를 일기로 하늘나라에 갔습니다. 위의 글은 고 이융재 사모가 수원기독호스피스센터에서 16년간 자원봉사자로 수고하면서 떠나기 두 달 전에 마지막으로 남긴 글입니다. 고인은 생전에 말기암 환자들을 위해 봉사하며 임종을 거두어 주곤 했는데, 자신이 2016년 12월 1일 담낭암 말기로 바로 그곳에 입원하여 19일 만에 생을 마감했습니다. 참으로 길지도 않고 짧지도 않은 아름다운 삶이었기에 남은 가족과 친지들 그리고 같이 봉사했던 이들은 이럴 수가 라고 믿기지 않은 듯 금방 다시 돌아올 것만 같다고들 하지만. 이 땅에서 다시는 만나 볼 수가 없는 이융재 사모는 사랑하는 가족과 친지, 지인들에게 애틋한 그리움을 한 아름 안겨주었습니다. <최건차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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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아가는 작은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