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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을 전도했으면 좋겠어요
- 어떤 스님이 시주를 얻으려고 다니다 한 장로 댁 마당으로 들어섰다. 마침 장로님이 마루에 앉아 있다가 스님이 마당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스님이 말했다. “시주 얻으러 왔습니다.”그러나 장로님은 못들은 척하고 눈을 감아 버렸다. 스님은 목탁을 두드리며 주문 아닌 주문을 외웠다. “가나바라 가나바라 가나바라 가나바라.”그러자 장로님도 버티기에 들어갔다. “주나바라 주나바라 주나바라 주나바라.” 했다.유도에서 나오는 굳치기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한다. 이런 모습은 그분 내면의 깊은 곳에 자리잡은 종교적인 이해 부족 에서 나온 것이라 본다.내가 목회하는 지역에는 하나님의 교회(일명/안상홍증인회)가 위치하고 있다.이들은 구약의 안식일을 지키다 보니 토요일에 모이고 오후에는 흩어져 전도를 다닌다.어느날 우리교회 입구에 여자들이 서서 목사인 나에게 ‘어머니 하나님을 믿으라’고 말한다. 그 순간 나는 기분이 좋지 않아 나도 모르게 여기 서광교회 목사라고 하였다. 그들은 당황했던지 아~ 그러시냐고 말 하고는 더 이상 말이 없었다.토요일 주일 설교준비를 위해 목양실에 앉아있는데 계속 그 일이 떠오르며 내가 목사로써 좀더 신중하지 못한 것이 후회되었다. 조금 더 넓은 마음으로 다가서지 못한 나의 행실이 부끄러웠다. 신앙은 달라도 전도하는 사람까지 미워한 나의 모습을 주님이 어떻게 보셨을까. 요즘 우리사회는 종교적인 분쟁의 조짐이 여기저기서 솔솔 일어나고 있다. 지난 연말 각 방송사들이 분야별 수상식을 하는데 과거에는 크리스천 수상자들이 사회자가 상을 받는 소감을 물으면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린다는 신앙의 표현을 하는 것을 자주 보았다. 또한 믿는 자녀들이 상을 받으면 나도 함께 기뻐하였다. 그런데 지난 해는 그런 모습들이 현저히 줄었다. 이유를 알고 보니 타 종교에서 방송사에 종교적인 문제로 오해 받을 수 있으니 그런 표현은 삼가는 것이 좋겠다는 협조요청 공문을 보냈다는 것이다. 하나님만 아시는 거지만 몹시 아쉽고 궁금하기만 하다. 인생을 지으신 목적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인데, 개인의 신앙의 표현 까지 막는다면 거기에 무슨 신앙의 자유가 있단 말인가! 우리교회에 믿음이 신실하고 똑똑한 0집사님이 계시다. 그의 아들은 명문대학교를 나와 좋은 직장에서 근무하고 있다. 나는 그를 볼 때 자랑스러운 생각이 들어 가끔씩 집사님은 자녀의 복을 많이 받으셨다고 하였다. 명문대학교는 아무나 가느냐고 하면서 말이다. 그때마다 그는 명문대학교 나왔다고 다 똑똑한게 아니라며 하나님의 은혜지요. 라며 겸손해 하셨다. 어느날 그의 아들을 중매 서려고 물으니 아들이 누구와 사귀고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사귀는 여자의 아버지가 스님이라며 그 일로 새벽에 작정기도를 한다고 하였다. 그는 직장 일로 피곤한 가운데서도 아들 문제를 놓고 열심히 새벽기도회를 드렸다. 그가 작정기도 하는 동안에 내 마음속에는 내심 결혼이 성사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다. 이유는 스님의 딸이라는 나의 종교적인 편견 때문이다. 그 많은 사람 가운데서 스님의 딸이라니~ 그것도 명문대학교까지 나온 재원인데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문제에 개입하지 않고 너희가 알아서 하라는 것 같다. 개야 짖어라 기차는 간다는 말과 같이 결국은 결혼을 하게 되었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이 이 일을 두고 하는가 보다. 신부의 부모도 출가외인이라며 결혼을 허락 해 주었다. 결혼식 당일에는 아버지가 모자를 쓰고 입장한다고 하더란다. 흔한 일은 아니다. 결혼식을 올리고 신혼여행을 다녀와 교회에 나온 며느리를 보니 얼굴이 예쁘고 인상도 좋고 천생 연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은 이들 부부에게 빠르게 아들을 선물로 주셨다. 이름이 뭐냐고 물으니 동휘라고 한다. 순간 나는 선교로 유명한 전주 안디옥교회 이동휘 목사님이 떠올랐다. 어린 동휘도 빨리 자라서 이동휘 목사님처럼 선교에 생명을 건 훌륭한 주님의 종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생기면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숨어 있음을 깨달았다.얼마 전 선교지에 있는 나의 쌍둥이 손자들이 유치원에 입학했다는 소식과 이들의 소망은 빌리그레엄과 같이 세계를 다니며 복음을 전하는 쌍둥이 부흥전도자가 되는 것이라고 하였다. 집사님은 곧바로 내게 답장을 보내주었다.네, 목사님 손자들은 몇 개 국어 언어에 능통할거고요 세계적으로 주님께 크게 쓰임 받을 줄 믿습니다. 동휘도 주님께 귀히 쓰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스님을 전도했으면 좋겠어요.낼 사돈 만나요 기도해 주세요. 가능성이 보인다. 이제야 나의 부족함을 깨닫게 된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믿음의 사람 우리 0집사님을 통해 스님 가정이 복음을 듣고 주님을 구주로 영접 하고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그날이 오기를 오늘도 기도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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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을 전도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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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하나님 덕분입니다
- 수년전 결혼기념일을 맞아 제주도로가려고 지하철을 탔다. 어느 부부가 내발산역에서 내리면서 내게 어떤 장소를 묻는다. 처음 본 이들은 외국에서 온 사람들 같은데 얼굴이 선하게 보였다. 나는 옆에 있는 아내에게 말했다. 이들이 외국에서 한국에 들어와 일하는 사람들 같은데 얼굴이 선해 보이지 않느냐? 아내는 순간, 빨리 전화번호를 물어보라는 것이다. 나는 아내의 말을 듣고 급히 일어나 명암을 주면서 나는 목사인데 전화번호를 가르쳐 주겠냐고 하였다. 그는 아무 생각 없이 내게 전화번호를 불러주었다.제주도 일정을 마치고 돌아와 나는 그에게 전화를 하였다. 그는 광명에 살고 있어 우리 교회가 위치한 보라매역과는 가까운 거리였다. 훗날 만나서 이야기 해보니 하남시에서 일을 하다가 손을 다쳐 지금까지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아왔는데 회사에서 치료비가 중단되어 병원에서 나가라 하여 본사를 찾아 가던 중에 우리를 만났다는 것이다. 나는 그를 평소 알고 지내는 의사에게 데려가 치료와 상담을 받게 해 주었다.그로부터 이들 부부가 우리교회를 나와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으며, 지난해 남편은 집사 임명을 받았다. 그리고 새해 들어 그의 큰딸이 결혼예식을 올렸다. 나는 교우들에게 외국에서 왔으니 더욱 관심을 갖고 많이 참석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평소 다른 결혼식보다는 성도들이 많이 참석하여 축하하였다.이번 예식을 보면서 나라마다 약간씩 결혼풍습이 다른 것을 알게 되었다. 중국은 신랑이 결혼예식 비용을 다 낸다고 한다. 또한 예식도 정한 시간보다 2분 전에 시작하며, 예식시간도 10분 전후라니 나는 혼인서약과 주례사만 아주 짧게 할 수밖에 없었다.짧은 결혼식을 준비하면서 하나님은 순간 나에게 고린도전서 13장 13절을 주셨다. 우리 인생이 살아가면서 항상 있어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해준다.나는 주례자로 이런 말을 전하였다. 외국속담에 거친 바다로 나갈 때는 한 번 기도하고, 전쟁터로 나갈 때는 두 번 기도하며, 결혼식에 나갈 때는 세 번 기도 하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은 정말 행복하십니까? 이 물음에 행복하다고 대답한 사람은 17%라는 통계가 나왔습니다. 오늘 결혼예식을 하는 신랑신부가 여기에 들어가길 바랍니다. 성경에는 믿음과 소망과 사랑은 항상 있을 것이라 하였고,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주례자로써 결혼생활에 꼭 필요한 행복한 가정의 비결 하나를 알려 드리겠습니다. 특별히 신랑은 더욱 깊이 마음에 새기고 결혼생활을 시작하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신랑은 소를 다섯 마리만 키우시기 바랍니다. 신랑만 주례자를 따라해 보세요.1) 내가~ 졌소~2) 당신이~ 옳소~3) 당신~ 맘대로 하소~4) 나를~ 용서 하소~5) 밥만~ 주소~잘 따라 하던 신랑이 갑자기 미소를 짓는다. 이상 주례사를 마친다고 하니 신부의 아버지가 벌떡 일어나 뒤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으면서 박수를 유도한다. 결혼식이 요지경이다.이번에 깨달은 것은 요즘 현대인들이 좋아하는 건 무엇이든 짧게 하는 걸 좋아한다는 사실이다. 보통 충청도 사람은 느리다는 선입견을 갖고 있다. 그런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보통 춤추러 나갈 때 오늘밤 우리 춤추러 갈까요 라고 한다. 그러나 충청도 사람들은 짧게 한마디 던진다. “출껴.” 이 얼마다 짧고 분명한가! 어째든 신부측 부모가 흡족해 하는 것 같아 편안한 마음으로 부흥집회를 하러 내려갔다첫날 집회를 마치고 문자를 보냈다. 이 집사님! 오늘 성대하고 깔끔하게 잘 치루셨고 사위도 잘 보셨어요, 식사도 좋았습니다. 가정에 큰 축복이 임하길 기도합니다. 그는 내게 답을 보내왔다. 다 하나님 덕분입니다. 목사님, 교인들 오셔서 더욱 빛이 났습니다, 감사합니다.그는 결혼식에 참석한 교우들 이름을 내게 보내왔다. 전화번호를 알려주면 인사를 드린다고 하였다. 나는 목회자로 부름 받았지만 돌아보니 전도를 많이 못했다, 그러나 지하철에서 만난 이집사 부부 덕에 조금은 나의 체면이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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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하나님 덕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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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여! 변화의 주역이 되자-김사철 장로
- 대망의 2016년도가 밝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다짐을 하기 위해 산으로 바다로 가서 새해 해뜨는 광경을 봅니다. 환호를 울리며 자연의 위대함에 경외감을 갖습니다. 참으로 장쾌한 순간입니다.사실 새해 첫 날의 해돋이는 새해 첫날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늘상 있어 온 것입니다. 다만 인간이 정한 시간에 따라 1년을 365일로 정하고 그 시간이 지나면 새로운 날이 시작되는 것으로 약속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자연의 일상은 변함이 없는 것입니다.중요한 것은 우리 자신의 변화입니다. 마음의 변화입니다. 한 해가 지나고 새로운 한 해를 맞는 우리 자신의 변화입니다. 지금까지와 같은 일상을 산다면 거기에는 변화가 없고 발전이 없습니다. 개인의 변화가 없이 사회의 변화도 없습니다. 끊임없는 변화를 추구하는 자는 발전할 수 있고 성공할 수가 있습니다. 새해를 맞아 변화의 물결이 도도히 흐르기를 바랍니다.우리는 자유민주주의 사회에 살면서, 발전된 제도 아래 살면서 자유와 문명의 이기를 누리며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의식이 변화되지 못해 제도와 문명의 이기를 제대로 향유하지 못하고 있음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우리의 의식이 아직도 전근대적인 사고에 사로잡혀 있다면 민주주의의 꽃은 제대로 필 수 없습니다.시민의식 공동체적 의식의 발로야말로 공동체나 국가의 발전에 원동력입니다. 우리나라는 시민혁명에 의해 이루어진 나라가 아닙니다. 오랜 왕권주의 아래서의 복종과 긴 식민지 통치 아래서의 굴종으로 시민의식이 생성될 기회를 갖지 못한 상태에서 얻어진 독립은 민주주의 제도에의 숙련을 거치지 않았습니다.서구 사회의 200년, 300년에 걸쳐 쌓아온 민주의식을 불과 수십년에 갖기란 너무 짧은 기간입니다. 그래서 해방 이후 끊임없는 갈등과 소란 속에 혼란을 거듭하고 있고, 특히 분단의 현실은 그 도를 심화시키고 있습니다. 해방 70년! 이제 우리의 올바른 의식이 방향지워져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우리나라를 이상적인 선진국가로 만드는가를 고민하고 개발하며 실천해야 합니다.서구의 시민의식이 반드시 전적으로 좋은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의식, 한국적 시민의식을 지도자들은 개발하고 교육해야 할 것입니다.여기에 기독교의 역할이 필요합니다. 과거 기독교는 우리 사회를 지도하고 민족을 계몽했습니다. 민주주의와 시민의식도 심어 주었습니다.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타락과 사명 결여는 이제는 더이상 사회를 지도하지 못하고 오히려 사회에 끌려가면서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내부의 부단한 개혁이 없이는 외부로부터의 도전에 응전할 수 없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요. 하나님의 가르침입니다. 한국의 기독교는 시급히 거듭나야 합니다. 개혁되어야 합니다. 개혁의 목표는 교회가 성경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한국교회가 성경대로 행할 때 세상의 빛이 되고 소금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한국교회여, 다시 일어나라! 새 일을 행하라! 이것이 오늘 한국교회에 지워진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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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여! 변화의 주역이 되자-김사철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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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 응봉산에서 세계 일주
- 울진 응봉산은 초행이다.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산들은 유명세를 타고 있지만 도립공원이나 군립공원으로 분류된 산들도 그에 못지않은 데가 있는 것 같다.응봉산은 울진군의 군립공원이라지만 덕구온천장 뒤로 오르는 능선에 보기만 해도 상쾌해지는 소나무가 빽빽하고, 원탕이 있는 곳으로 내려오면서 온천수로 발을 씻고 계곡에 놓여있는 여러 나라의 다리들을 건너게 된다.솔 향기가 진하게 느껴지는 솔밭에 들어섰다. 검푸른 머리칼에 늘씬한 몸체의 붉은 빛이 나는 솔밭 사이를 걷는다. 마치 제왕이 되어 미녀군단을 사열하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설렌다. 며칠 전 동해의 투타산과 청옥산을 오르다 무릉계곡을 보고 눈이 마냥 즐거웠을 때와 다른 느낌이다. 7부 능선부터 펼쳐지는 관목들도 소나무들 사이로 오색의 수를 놓고 있어 늦가을 정취가 한결 조화롭다.동해 바다가 훤하게 바라보이는 응봉산 998.5m라는 표지석을 확인하고, 온천수가 솟는다는 원탕의 계곡으로 내려가려는데 발걸음보다 마음이 앞선다.등반을 하다 보면 그 지방의 형편을 가늠하게 된다. 요즘 각 지자체들은 자기 지역의 산으로 등산객을 많이 유치하기 위해 힘을 쓰고 있어 외지인들의 호감을 사고 있다. 응봉산군립공원은 질 좋은 소나무에 송이버섯이 나고 온천수와 계곡에는 세계의 유명한 다리들까지 있어 자연의 혜택에 가미된 걸작이다.내게는 울진에 대한 남다른 추억이 있다. 홍천에서 군복무를 하던 1968년 1.21사태로 전국이 발칵 뒤집혔고 그 해 늦가을 120명의 무장공비가 울진으로 침투했다. 내륙으로 잠입한 놈들을 소탕하느라 나는 5분대기 전투소대장으로 밤낮없이 산에서 지내야 했다. 완전 소탕이 되기까지 2개월여 동안 험한 산들을 수색하고 다니느라 부산에서 갓 결혼식을 하고 올라온 아내는 혼자서 지내야 했다.능선이 끝나고 계곡 쪽으로 상당한 규모의 철재교량이 보인다. 제13번째 교량 영국의 ‘포스교’ (Forth Railway Brldge 1890)라고 적혀있다. 여기서부터 세계 10여 개 국이 독특하게 디자인한 다리들을 구경하면서 건너게 된다. 전국에 있는 군립공원으로 지정된 산들의 규모와 시설들을 대강 짐작하게 되는데 응봉산은 특별한 것 같다. 협착한 산골짜기에 많은 다리를 세우게 된 동기가 궁금해진다.지자체들마다 선호하는 케이블카도 아닌 철교를 왜 세우게 되었을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 원탕에 도착했다. 이곳으로부터 4킬로에 걸쳐 있는 12개의 다리를 역방향으로 건너볼 참이다. 그 첫 번째는 12번째 교량으로 세워진 중국 최대 협곡의 ‘장제이교’(Jiangjiehe Bridge 1995)다. 계곡에서 제일 높고 전망 좋은 곳에 근위병처럼 키 큰 소나무가 버티고 서있는 ‘취향교’를 건넜다. 고종황제가 1873년 명성황후를 위해 경복궁 향원정에 세웠고 황제와 황후가 즐겁게 건너다녔다는 목재다리다. 취향교는 응봉산 계곡에 8번째로 세워진 교량이다. 국운이 쇠하여 황후를 비명에 잃었던 고종을 위로하고, 대한민국을 탄생케 한 대한제국의 취향교가 대영제국의 포스교보다 17년 앞섰다는 것을 돋보이려는 것 같다. 더불어 주변의 다리들은 이제는 우리의 국력이 그 나라들과 어깨를 겨루고 있다는 상징이기도 하다.매의 형상이라는 응봉산의 정기와 울진의 힘이 계곡에 집결된 것 같다. 먼 바다 로 비상하려는 것 같고 결전을 벌이려는 미래지향적인 표상이기도 한 다리를 다 건넜다. 이곳에 세워진 전체 교량 중에 내가 현지의 실재 다리를 건너본 곳은 세 곳이다. 첫 번째 교량으로 세워진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Golden Gate Bridge 1937년)와 4번째 교량으로 세워진 시드니 ‘하버교’(Harbor Bridge 1932년), 그리고 2번째 교량으로 1995년 한강에 세워진 1,320m 길이의 ‘서강대교’이다.응봉산 계곡에서 11번째 교량 일본 사이타마현에 있는 ‘도모에가교’, 10번째 교량 잉글랜드 맨체스터주의 ‘트리니티교’(Trinity Foot Bridge), 7번째 교량 스페인 세빌레에 있는 ‘알라밀로교’(Alamillo Bridge), 제6번째 교량 스위스의 ‘모토웨이교’(Motorway Bridge), 5번째 교량 독일 뒤셀도르프의 ‘크네이교’(Knee Bridge), 3번째 교량으로 프랑스의 노르망디 만에 있는 ‘노르망디교’(Normandy Bridge)까지 다 건넜으니 울진 응봉산을 등반하면서 세계를 일주한 셈이다.통념을 깨고 협착한 계곡에 세워진 유명한 다리들의 나라에는 한류바람이 불고 있다. 이제부터 응봉산 계곡은 전 세계인들이 즐겨 찾는 유명 관광지가 될 것이다.노천 온천수로 등반객들을 위한 세족장을 만들어 놨다. 흘러가는 물가에 앉아 발을 씻고 물기를 닦도록 마른 수건이 즐비하게 걸려있다. 천연온천수에 느긋하게 발을 담갔다가 씻고 흐르는 찬물에 행구고 나니 피로가 싹 가시고 생기가 넘친다. 솔향기 그윽한 능선과 계곡의 풍요로움에 마음이 사로잡혔다.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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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 응봉산에서 세계 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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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는 행복의 열쇠
- 유대인의 인생 교본인 탈무드를 보면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배우는 사람이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감사하는 사람이다”라는 말이 있다. 감사하며 사는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훨씬 건강하고 행복하다고 한다. 신체는 감정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감사하면 맥박이 고르게 흐르고 위장의 활동을 도와 소화력을 증진시킬 뿐만 아니라 기분까지 상쾌하게 만들기 때문에 건강하게 된다는 것이다. 반면 불평은 혈액순환을 방해하여 맥박을 급하게 하는 동시에 위장의 운동을 정지시켜 뱃속으로 들어 온 음식의 소화를 거부해 건강에도 어려움을 겪게 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소유의 유무와 환경의 조건에 상관없이 감사하는 사람은 행복한 인생을 살게 된다는 것이다. 언젠가 세계 54개국 국민들을 대상으로 행복 지수를 조사해 발표했는데 행복지수가 물질적 소유나 환경의 조건에 반비례 하게 나타나 행복의 척도를 생각해 보았다.가장 행복한 나라로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예상을 깨고 최빈국들이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는 보고였다. 그런데 그런 나라들의 대부분은 인간관계의 끈끈한 정이 삶의 행복의 척도인 반면 선진국의 사람들은 오히려 인간관계에서 비롯한 소외감과 소유의 비교에서 오는 상대적 빈곤감 때문에 불행을 더욱 심하게 느낀다고 한다. 이처럼 행복지수는 객관적인 조건이나 지표 보다는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람의 주관적인 생각에서 오는 것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실 행복에는 객관적인 조건이나 지표보다는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람의 주관적인 생각에서 차이를 보인다. 사람이 얼마나 행복한 가는 그의 감사의 깊이에 달려 있다. 요즘 오랜 가뭄으로 충청도를 위시해서 전국에 물의 부족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땅이 갈라지고 매말라져 가는 현실을 보면서 가슴이 아픔을 느낀다. 생명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고귀한 하나님의 선물인 생명이 연장되어 오늘의 아침을 맞는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눈으로 만물을 볼 수 있고, 내 코로 신선한 공기를 마실 수 있고, 내 귀로 온갖 아름다운 소리를 들을 수 있으며, 내 입으로 마음에 품은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 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가!지난주에는 경기도 이천에서도 인적이 드문 곳 조금만 비가와도 진창이 되어서 다니기에도 힘든 곳 친척되는 형이 이곳에 들어가게 된 것은 이단집단에 빠졌다가 성경에서 이탈하여 잘못된 교주의 소행을 보고 나오기로 작정 했으나 마땅한 곳을 물색 중에 폐가가 되다 시피한 집을 수리하여 정착하여 사는 곳이다.별 할 일이 없어 벌을 치면서 보람있는 여생을 보내면서, 이 목사 시간 나면 한번 다녀가라고 해서 낯선 길을 찾아가 보니 과연 자연에 파묻혀 자연과 호흡하며 생활하시는 모습이다.어디를 보나 현대화된 가정의 분위기는 찾아보기 힘든 소박하고 단조로운 삶이지만 그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하다. 금년에도 들깨며, 상수리 도토리, 고구마와 호박을 챙겨 주시며 함께 나누어 먹으라고 전갈하신다. 인가와도 동 떨어져 있고 이웃도 멀리 있지만 자연과 가까운 곳 그곳에서 참 삶의 보람을 느끼시는 것이 확연하다.이 목사! 나는 여기에 더 머물러 있고 싶어도 큰 자제가 집을 마련해 놓고 노년에 편히 쉬라고 한다고 한다. 욕심을 다 묻어두고 자연과 벗하며 웃음과 희망을 저 버리지 않은 형의 내외에게 하나님은 노후 에 좋은 삶의 터를 마련해 놓으셨다고 생각되어진다.벌을 키우기는 어려움도 많지만 벌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고 한다.어떤 어려움이 부딪쳐도 단결하는 협동심이나 함께 단체로 협력하여 그들 나름대로 뜻을 이루어 가는 것 등 참으로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고 한다.그 동안 목회를 하면서 얼마나 성도들에게 감사생활을 권했지만 본인은 얼마나 그러한 삶을 살았던가 부끄러운 마음이 서려온다.종종 아프리카 지역에 비가 오지 않아 오래 동안 땅이 갈라진 마른땅을 방송에서 보게 된다. 내 영혼이 감사가 메마르면 영혼의 가뭄이 들면 심령이 갈라지고 메마르지 않기를 기도드린다. 연료 없이 자동차가 달려갈 수 없고 음식을 통해 영양분을 섭취하지 않으면 육체가 지탱할 수 없듯이 믿음 생활도 감사가 메마르면 지탱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감사는 최후의 보루다. 우리의 믿음이 감사가 무너지면 다 무너지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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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는 행복의 열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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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하는 날
- 소로우라는 작가는 미국 메사추세스에서 태어나 20살에 시인 에머슨을 알게 되어 그의 집에 3년 동안 머물면서 ‘초월주의자 운동’에 가담하게 된다. 마침내 26살이 되던 해 소로우는 호반으로 들어가 손수 통나무로 집을 짓고 최소한의 짐만 지니고 2년 6개월 동안 은둔 생활을 하게 된다. 그가 후에 남긴 말이 많지만 그 중에 기억하고 싶은 말이 있다.“내가 숲 속으로 들어간 것은 생을 음미하며 유유하게 살고 싶어서였다. 죽는 순간에 헛된 삶을 살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기 위해서였다. 인생이란 너무나 소중한 것이기에 참된 삶이 아닌 것은 살고 싶지 않았고 참 삶이 아닌 것은 모두 뿌리치고 최소한의 것만 갖고서 살아 봄으로써 참된 삶의 의미를 찾고 싶었다.”주님은 아름다운 돌과 최상의 재료로 꾸며진 화려한 성전을 보면서 사람들이 감탄해 하자 그 화려한 성전이 어느 날 한꺼번에 무너지고 말 것임을 예언한다.주님은 왜 이러한 말씀을 하셨을까? 그것은 주님이 머무시는 곳은 화려한 궁궐 같은 전이 아니요 바로 우리들의 영혼임을 말씀하시기 위함이 아닐까?예수께서는 아름다운 돌과 화려한 것들로 성전을 꾸미기 보다는 우리들의 영혼을 아름답게 그리고 화려하게 가꾸시는 것을 더 원하신다는 말씀으로 이해한다. 그렇다. 우리들의 몸과 마음이야말로 주의 성령이 머무시는 거룩한 성전이다. 이 혼탁한 시대에 우리는 소로우처럼 정신의 숲속으로 들어가 헛된 욕망과 탐욕보다는 주님께서 머무시는 몸과 마음의 통나무집을 가꾸어 생명이 살아 숨 쉬는 아름다운 공간을 마련하기를 원하신다.생각해 보면 한동안 머물던 서울을 떠나 천안으로 이사를 하게 되는 것은 복잡한 서울을 떠나 새로운 자연의 의미를 체험하라 하시는 주님의 음성이 들려오는 듯하다. 지난주 이사를 위해 책을 정리하다 보니 생각보다 많은 양임을 발견하고 본인도 놀랄 정도였다. 일부는 00대학교에 보내고 나머지는 가지고 가기로 했다. 책을 모으기에 사모와 가족이 느꼈을 불편과 경제적인 어려움을 안겨준 점은 미안함이 금할 수 없으나 많이 이해해준 아내와 가족에 감사를 드린다.책을 정리 하며 공상에 젖어본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무엇을 내 놓으셨나?당신의 모든 것을 내 놓으셨다. 생각해 보면 내가 갖고 있는 모든 것들이 누구로 부터 받았는가? 주님께로 부터 받은 것이 아닌가? 이사할 집에 공간이 넉넉지 못해 책을 정리해야 하는 아픔을 경험 하면서 이런 적은 것을 가지고도 내놓기가 어려운 일이라면 주님은 나를 위해 모든 것을 내어 주셨다. 언제 가는 주님이 내어 놓으라고 하시면 다 내어 놓아야 할 것들이다. 그것들은 영원히 소유 하고 살 수 있는 것들이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나에게 허락하신 시간도, 재능도, 물질도 결국 나 자신만을 위해 쓰라고 주신 것은 아닐 것이다. 누구든지 자신만을 위해 살려는 사람은 죽을 것이고 주님을 위해 살려는 사람은 영원히 살 것이다.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나 자신을 주님께 내놓는 것 뿐 아니라 내가 갖고 있는 것들을 나눔으로써 이웃 사랑을 실천 하는 것은 당연한 의무가 아니겠는가? 그것은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친절, 관심, 용서, 나눔 등이 우리 자신들이 나눌 수 있는 방법들이다. 이웃과의 관계를 잘 맺는 것, 사랑을 실천하는 것, 마음에 품고 있는 것이 있다면 용서로써 깨끗이 지워버리자. 하나님께서는 그 어떤 잘못도 남김없이 모두 다 용서해 주셨다. 우리도 그렇게 용서해야 되지 않겠는가? 그것이 진정 내 놓는 삶이 아닐까? 이러한 생각 속에 한 길만 걸어왔고 그동안 몇 교회를 섬기면서 교회의 터를 장만하고 떠나온 일이며 교회를 건축한 일에 스스로 자위도 해보지만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부끄러움이 앞선다.이제 책을 정리한 분량 이상의 것을 정리해야 할 처지가 되었다. 이제 세속의 때를 보혈의 샘에서 씻어내자. 어지러워진 심신을 씻어버리자. 부질없는 삶은 십자가에 못 박고 번민의 골진 이랑을 닦아내고 싶구나. 주여! 온갖 잡것들로 채워진 마음을 깨끗하게 수리하고 주님이 오실 마음의 공간을 마련하게 하옵소서. 이제부터 더욱 보람 있는 있는 삶의 둥지를 꾸며 가리라 다짐 하며 이사 준비하는 일이 힘들지만 희망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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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하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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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토재의 추억
- 나는 젊어서부터 고독을 즐기는 성격을 갖고 있었다.언제부터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생각건데 여섯 살 때 아버지와 네명의 누나들이 병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면서 부터가 아닐까 생각한다. 나의 어릴 때 성격은 매우 쾌활했고 누나들을 웃기고 울리기도 잘했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자라 나면서 고독을 즐기고 혼자 있기를 좋아했으며 밤길을 걸으며 명상하는 것을 취미처럼 즐기고 있었다. 캄캄한 밤에 혼자 길을 걷다 보면 수많은 철학적 종교적 명제들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인생이란 무엇이며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가, 인간의 목적은 무엇이며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같은 상념에 사로잡힐 때가 많았다.나는 한 때 허무주의에 빠져 들어가고 있었다. 인생이란 뜬구름이요, 스처가는 바람이며 흘러가는 강물이요 일장춘몽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나는 ‘키’없는 배처럼 물결따라 어디론가 떠밀려 가고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지만 기독교에 입문하면서 이 허무주의를 조금씩 극복할 수가 있었다. 성경에서 키워드(Key Word)를 찾게 된 것이다. 그러나 지금도 혼자 밤길을 걷는 취미는 버리지 못하고 있다.1959 년에 있었던 이야기다. 이 때 나는 경남 하동군 청암면 평촌리에서 개척교회 전도사로 봉사하고 있었다. 때는 6월 중순쯤 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들녘에는 모심기가 한참이었다. 나는 하동군 북천면 서황리 중촌에 있는 고향집에 가서 다음 날 모심기를 돕기 위해 오후 늦게 청암에서 출발했다. 물새들도 집을 찾아 산속으로 날아 들고 농부들도 일손을 놓고 마을로 들어오는 저녁 때에 나 혼자 집을 나서고 있었다. 밤에 황토재를 넘으면서 옛 추억을 되새기며 깊은 명상에 빠져 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내 담력도 시험해 보고 싶었다.대낮에도 혼자 이 험한 재를 넘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기에 야밤에 황토재를 넘는다는 것은 보통 심장을 가지고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유유히 흐르는 청암강을 따라 8Km 거리의 비포장 자갈길을 한시간 반쯤 걸어서 횡천면 횡천리에 도착했다. 거리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겼고 마을에는 희미한 초롱불이 여기저기에 켜져 있었다. 황토재가 시작되는 여의리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땅거미가 짙게 깔려 있었다.황토재가 시작되는 길목에 이르자 웬 젊은 여성이 혼자 서성거리고 있었다. 인적이 끊긴 재밑에 혼자 서 있는 여성을 보는 순간 수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그 사연을 물어 보았다. 그는 이 재를 넘어야 하는데 용기가 나지 않아 망설이고 있다고 하면서 같이 동행을 하자고 했다. 젊은 여성과 함께 그것도 야밤에 험준한 재를 넘는다는 것은 위험하고 부담스러운 일이기는 하지만 거절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그 여성과 함께 재를 넘기로 했다.나는 먼저 나의 신분을 밝히고 주소지를 알려 주었다. 그러자 여자분 역시 친정집이 북천면 00리에 있다고 했다. 우리는 같은 면 내에서 태어나고 자라났다는 점에서 서로가 안도감을 가질 수 있었다. 우리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황토재의 중간 지점에 이르렀다. 그 곳에는 옛날 한 비단장수가 재를 넘다 강도를 만나 비단봇짐을 빼앗기고 죽임을 당했다는 전설이 있는 곳이다. 그곳에는 이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주인공의 무덤이 있다. 우리가 이 무덤곁을 지날 무렵 나를 뒤따라 오던 여자분이 무섭다며 나에게 바싹 다가와 나의 팔을 붙들었다. 이 순간 나는 귀신보다 여자가 더 무서웠다. 제우스가 남자를 벌 주기 위해 여자를 만들었다는 옛 그리스 신화의 판도라 이야기가 머릿속을 스쳐갔다. 그러나 무섭다며 다가서는 여자를 밀쳐 버릴 수도 없는 터였다.그리고 다음 코스는 황토재에서 가장 가파른 언덕길을 올라가야 한다. 그 때 길가 가까운 덤불속에서 노루가 왝 소리를 지르며 도망을 치자 이에 놀란 여자분은 언덕길에서 미끄러져 넘어졌고 나는 부축했다. 이런 위험하고 아슬한 순간을 반복하면서 황토재의 정상에 이르렀다. 긴호흡을 내 쉬며 안도감을 되찾았다. 밤은 더욱 깊어 지고 있었다. 풀벌레들의 울음소리가 아름다운 선율로 들려왔다. 부엉이가 울어댄다. 짝을 찾는 소리인지 고독을 달래는 노래인지 알 수 없었다. 밤이 깊어지고 있다는 신호가 틀림 없다. 하늘 가까이에서 반달이 미소를 지으며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이제 우리는 서로가 헤어져야 하는 지점에 도착했다. 황토재가 끝나는 지점이다. 그런데 이 여성은 헤어지기가 아쉬운 듯 머뭇거리더니 뜻밖의 고백을 했다. 자기는 평소 나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나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다면 쉽게 동행을 하겠다고 나서지를 못했을 것이라 했다. 나는 이 여성의 말을 듣는 순간 오늘 밤 내가 큰 시험을 치루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나는 나의 담력을 테스트해 보기 위해 밤중에 황토재를 넘어 보기로 한 것인데 뜻밖에 인격시험을 치룬 것이다.인격시험이란 아무도 보는 이가 없을 때 자기 양심에 따라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를 지킬 수 있는 의지가 어느 정도인지를 시험해 보는 것이다. 아무리 지력(知力)과 학력(學歷)이 뛰어난 사람이라고 해도 인격점수가 낙제점이면 쓸모가 없어진다.나는 지금도 모든 사람들이 깊이 잠들어 있는 시간에 홀로 산책할 때가 많다. 인생은 캄캄한 밤에 홀로 험준한 재를 넘어야 하는 나그네라는 사실을 잊지 않고 싶어서다. 그리고 인생의 가는 길은 언제나 밝은 가로등이 내려 비취는 아스팔트길만 계속될 수 없다는 사실도 마찬가지다.인생이 별빛 달빛도 없는 어두운 밤에 산악재를 넘을 때 때로는 좋은 길동무를 만날 수도 있겠지만 포악한 짐승같은 사람을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좋은 사람을 만난다고 해도 갑자기 악마로 돌변할 개연성은 얼마든지 있다고 보아야 한다.그래서 사람은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이 나를 지켜 보고 있다는 신전의식(神前意識)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리고 좋은 동반자를 만나 칠흑같은 밤중에 산악재를 함께 무사히 넘었다고 해도 언젠가는 헤어져야 하고 먼 길을 혼자 떠나야 하는 것이 인생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예나 지금이나 그 연습을 계속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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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토재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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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 얼마 전 세인의 관심을 끌었던 두 사건을 접하고 참 다행이라는 생각도 잠시, 엄청난 실망에 허탈해 한 일이 있었다. 형을 마치고 출소하는 기업의 총수가 성경책을 들고 나오는 모습은 나의 시선을 고정시키기에 충분하였다. 성경을 많이 읽었으니 이제 많이 달라졌겠지, 앞으로 더 두고 볼 일이지만 언론으로 듣는 말은 하루가 멀다 하고 면회객을 맞이하느라 성경을 얼마나 읽었겠는가? 좀 더 진지하게 자신의 ‘소위를 살피고’ 성서의 교훈에 흠 뿍 빠져보는 기쁨을 누렸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가시지 않는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옥토의 교훈을 주실 때, 어떤씨는 길바닥에, 또는 돌밭과, 가시밭에, 뿌려졌다고 한다. 그러나 옥토에 떨어진 씨앗만이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얻는다고 하셨다.이 말씀 후 예수는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막4:23) 하였는데 “아하 들을 귀가 따로 있구나” 하는 생각이 떠오른다.오늘 한국에는 많은 교회들이 있고 수없는 말씀의 씨가 뿌려지고 있지만 말씀을 듣고 있지 만 말씀을 듣는 자는 얼마나 되겠느냐? 는 음성으로 들려오는 듯하다. 한국 교회는 1960대를 지나면서 수량적으로 급속한 성장을 이루었다. 이제 교계의 현실을 직시해 보면 들여다보면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자랑스러운 몸집을 불렸지만 실망감도 감추기 어렵게 되었다.개 교회들이 교세가 교단의 힘을 능가 한다는 점은 부인 할 수 없게 되었다. 교단이나 교계 단체가 대형 교회들의 재정을 기대고 장소와 시설을 빌려 교인 동원의 신세지고 있다. 이렇게 개교회주의가 성행 하면서 상납금에 의존하는 연합사업은 대 사회적인 사업에 소극적일 수 밖에 없다. 연합사업은 사회와 교계에 공인 받아 위상을 높이는 한편 타 교단과 교류 협력함으로써 자 교단의 발전을 모색해 가야 한다.이러한 현실은 연합사업 안에도 부정적인 요소가 끼어들기 마련이어서 금번 총회에서 드러 난 연금 재단의 영구화 술책이 시행 전에 들어난 사실만 보아도 부인할 수 없게 되었다.세속적인 방법과 수단으로 자격 미달의 인사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경우도 있어 심심치 않게 물의를 일으키는 경우는 하루속히 시정되어야 할 사항이다.선한 양이 분별없이 푸른 초장만을 탐하여 덤벼드는 것과 같이 인간이 선, 악의 구별이나 참 과 거짓의 판별도 없이 이기심만을 충족시키기 위해 재의 그 물 속으로 뛰어드는 불나방과 같이 참으로 신앙의 위기요 교회의 파멸을 부르는 듯하다.언제 부터인가? 한국 교회는 재벌의 힘이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도록 배려되고 있다. 진실의 자리는 사라지고 재력과 명예만이 판을 치게 하는 오늘 교회 안은 눈물겨운 영혼들이 고개를 돌리고 있는 현실의 왜 보지 못할까?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오늘의 교회는 진리의 터 위에 서기 보다는 세속적인 부에 편승하여 보다 편하고 보다 귀족적이 되려고 하는 것 아닌가. 비신앙적이고 비민주적이고 비합리적인 것의 본산이 교회가 아닌가 착각할 정도라고 지적한 언론인의 말에 많은 젊은이들이 공감을 보내고 있다. 예수께서는 돈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단언하신다. 돈 많은 부자 젊은이가 예수를 떠날 때에도 예수는 그를 붙들지 않으셨다. 오히려 연민에 찬 눈빛으로 동정 하셨을 뿐이다. 교회는 금력의 힘 보다 진실이 우선되고 믿음이 우선인 천국 건설의 모형을 이루어 가는 믿음의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어린 목동에 불과한 다윗을 통하여 골리앗을 쓰러트린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따르는 이러한 교회야 말로 민족의 역사를 바꾸어 놓는 원동력으로 쓰임 받게 될 것으로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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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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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단상!
- 죽음에는 자연적인 죽음, 또는 형벌로서의 죽음이 있다. 죽음은 죄의 결과로 주어진 것으로 모든 육체적인 요소는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인간을 비롯한 모든 피조물의 죽음을 주관하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야훼께서는 사람의 생사를 쥐고 계시어 지하에 떨어뜨리기도 하시고 끌어올리기도 하신다.(삼상2:6)고 하여 하나님이 생명의 주관자이심을 말하고 있다. 아무리 죽음에 대해 초연한척 하여도 막상 내게 죽음이 다가오게 된다면 그것은 분명 기대 하지 않은 불청객으로 다가오게 된다. 그러나 사람은 죽음을 실감하지 못하고 죽는 순간까지 사는 것만 생각하고 노력하다 결국 죽음을 맞게 되는 것이 대부분이다.사람은 누구도 자기가 죽는다는 것만은 부인하지 못한다. 그것은 너무나도 확실하기 때문이다. 갖가지의 질병과 각종사고 그리고 전쟁과 천재지변 등으로 남녀, 노유,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때와 장소의 구별 없이 누구에게나 시도 때도 없이 평등하게 다가온다. 죽는 모양은 각각 다르겠지만 사람에 따라서 죽음을 맞는 태도는 각양각색이다. 불안과 공포가 없이 평화와 희망의 빛난 얼굴로 잠자리에 든 것 같은 죽음을 맞을 수 있다면 얼마나 복스러울까? 봄에 싹을 티 우고 여름에 무성 했다가 가을에 씨를 맺는 것과 같이 인생도 그때를 대비하여 푸름을 유지 할 수는 없는 것일까?그러나 잎만 무성해서는 안된다. 알이 차야한다. 알찬 영혼은 무르익은 실과 빛처럼 우아하고 고결한 법이다.생일 집에 가는 것보다 초상집에 가는 것이 낫다는 말씀이 있다. 생일 집에서 보다 초상집에서 인생을 알게 된다는 의미로 이해한다. 사람은 결코 밥만 먹고 사는 존재가 아니다. 사랑과 이해와 관심을 먹고사는 존재이다. 그러기에 사람은 정신적인 압박과 배신을 당하게 되면 괴로 와하는 것이리라. 그래서 타인의 은혜를 깨닫지 못한다든지 또는 배신을 하는 경우에‘짐승 같은 놈이라고 말하는 것도 이해할 만하다.얼마 전 서울 공원에서 사육사가 먹이를 주다 사자에게 물려 세상을 떠난 것이 떠오른다. 이 잔인한 짐승을 욕해서 무엇 하랴? 그 사자가 자기에게 양식을 먹여 주던 고마운 사육사를 왜 해쳤을까? 사실 우리들이 살고 있는 사회 속에서 진정 우리 자신을 돌아 볼 때에 너무나 부끄러움을 금할 길이 없다. 인간도 인간끼리 서로 물고 먹으면 희망이 없게 된다.거기는 오직 파멸만 있을 뿐이다. 우리가 서로 증오하고 배신을 일삼으면 결국은 총살된 사자처럼 자기 자신도 죽게 되는 것이 아닐까?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죽게 된다는 사실(갈5:15)분열 아집 편견. 죄로 얼룩진 '나'라는 무덤, 사랑과 평화가 사라져 가는 '가정이라는 무덤, 신뢰와 빛을 잃어가는 학원 이라는 무덤, 노사 분규로 증오와 불신이 팽배해 가고 '직장 이라는 무덤, 권모, 술수와 당리, 당략이 난무하는 '정치'라는 무덤, 경쟁과 폭력, 빈부 격차에 흔들리는' 자본주의라는 무덤, 물질주의에 발목 잡혀 세속화 되어가는 '교회' 라는 무덤 우리는 이런 무덤에서 부활을 체험하고 변화 시켜야 하며 오직 사랑과 용서와, 배려만이 우리들을 연합케 하는 줄이 되어야 한다. 그 길만이 나도 너도 같이 사는 길이기 때문이다. 지난주에는 평생 개척 교회를 섬기며 그 흔해 빠진 시찰 장, 노회 장 한번 해 보지 못하고 자녀들에게는 제대로 익은 과실 한번 제대로 먹이지 못하고 키우고 조기 은퇴를 하였으나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서 사남 매가 잘 자라 큰 아들은 한 의사로, 둘째 아들은 의사로 딸은 교수부인이 되기까지 역경의 세월을 보내고 소천하신 목사님의 감동적인 일화가 감동으로 다가온다. 나는 어떠한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 생각하며 밤은 깊어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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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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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70주년과 기독교의 사명 - 이선규목사
- 광복 70주년 행사가 지난주 민족의 광장인 시청 앞에서 타 종교인들이 보란 듯이 많은 인파 가 모인 가운데 성대하게 진행되었다.행사를 마치고 SNS를 통해 전해오는 내용들은 대교회 목회자들 위주로 진행된 점, 기도시간이 적었다는 점과 심지어는 순서 맡은 자들 중에는 가톨릭의 사제 복장을 한 것도 지적하기도 했지만 모처럼 보수와 진보를 넘어 단합된 모습을 보였다는 점에서 나는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참여 하였다.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대한민국은 해방 된지 어언 70주년이란 세월이 흘렀으니 너무 무나 신속히 자나 갔다는 느낌을 금할 수가 없다.8,15 민족 해방을 주신 하나님은 동시에 남, 북 분단의 시련을 우리에게 주셨다. 우리 대한민국은 그동안 분단의 시련과 동족간의 대결 그리고 전쟁으로까지 이어졌던 지난 70년은 꾸준히 나라를 지켜 오면서 경제, 정치, 문화 등 모든 분야에 부흥과 발전을 거듭하여 이제 선진 대열에 진입하게 된 것을 국민으로서의 긍지를 가지게도 된다.우선 우리는 민족 적으로 하나님께 감사의 찬양을 드리는 바이다.유독이 지구의 동반구 맨 끝 쪽에 위치해 있으며 그것도 남, 북으로 갈라져 있는 대한민국 에서 기독교인의 인구가 성장해 왔다는 사실은 과히 기적의 역사라 하기에 과언이 아니다.지난 70년의 역사가 우리나라의 정치사가 어두운 터널을 지나 왔다는 사실을 인정 하면서 도 그 과정이 오늘을 낳아준 모태요 오늘의 현실을 항상 보게 하는 거울이요 미래로 나아 가게 하는 새로운 길목이었음도 부인할 수 없다.밝은 마음과 아름다운 백성으로서의 한 동족이 자신도 모르게 남과 북으로 갈렸고 그래서 서로 미워하게 되었지만 이렇게 끝까지 간다면 양쪽 다 불행을 자초하지 않는다고 장담 할 수 없을 것이다.주여! 하나님 지으신 이 민족의 소원은 통일입니다. 북에서도 원하고 남에서도 원합니다. 그런데 방법이 다릅니다. 북에서는 무력으로 통일 하려하고 남에서는 대화로 하려 합니다. 우리는 화해를 원하지만 막상 실천에 옮기려면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님을 우리는 뼈아프게 겪은바입니다. 상대 적으로 경제적 풍요와 정신적 여유를 즐기며 사는 남쪽이 먼저 북쪽을 안아 주려 할 때 더욱 그러 합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자칫 북으로 하여금 의도하지 않은 오해만 더 쌓이게 하 고 결국은 화해를 내민 손이 거센 저항에 부딪칠 수도 있습니다. 화해를 내미는 손은 언제나 화해를 갈망하는 진정한 마음이 담겨 있어야 함을 압니다. 북한 당국은 지난 세월도 그러한 태도를 보여 우리 마음을 안타깝게 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 옵니다. 그러나 우리의 처세도 한번 돌아보게 하소서.우리 주변에는 남과 북 화해의 필요성을 절감하는 모습들이 적지 않다. 그러한 모습들 가운데 특히 북한 이탈 주민들과 남 북 이산가족의 삶 그리고 북한 주민의 실상은 남 북 화해의 주체인 우리가 꼭 알고 이해해야 하는 중요한 부분들이다. 이들 삶의 실상에 대한 서로 다른 판단과 이해의 실태도 주목해야 할 부분 들이다.역사를 보면 한 나라의 발전과 성장은 대개 1세기동안 걸렸음을 알 수 있다. 이제 한국 교회는 풍요의 잠에서 깨어나야 한다. 갑자기 한 민족의 위상이 높아지고 물질적인 풍요를 통해 불법과 사치로 치닫고 있으며 무절 제하에 달려가는 민족을 일깨우고 갈라진 교계가 복음 안에서 하나의 교회를 이루어 나갈 때 민족 화해의 통일의 과제도 능히 해결 되리라고 확신한다. 한국 교회가 이웃과 아픔을 나누어 희망이 되고 가진 자는 나눔을 실천하여 진보와 보수 세대 와 계층 간의 갈등을 치유하는 사명을 잘 감당하는 교회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주여 전쟁 없는 통일 국가 이루어 주소서 일제 치하의 40년 공산치하 40여년 자유를 모른지 수많은 세월들 너무 길지 않습니까? 하나님 밤낮 부르짖는 주의 사랑 하는 자녀들의 기도 소리 들어 주소서 분단 70년의 의미를 깨닫게 하소서. 더 이상 아픔을 아픔으로 갈등을 갈등으로 원한을 원한으로만 보지 말라 그 속에 있는 뜻 그래도 너는 평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음성이 들려오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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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70주년과 기독교의 사명 - 이선규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