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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용호 칼럼] 7. 새 언약 — 하나님이 마음에 기록하신 법
    성경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하나님이 인간에게 여러 차례 언약을 주셨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아담에게 주어진 삶의 질서, 노아에게 주어진 무지개의 약속,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후손과 복의 언약, 모세를 통해 주어진 율법, 그리고 다윗에게 주어진 왕권의 약속까지 성경의 역사는 하나님이 인간과 관계를 맺어 가시는 언약의 역사였다. 그러나 이 언약의 역사 속에서 한 가지 반복되는 모습이 나타난다. 하나님은 말씀하시지만 인간은 그 말씀을 온전히 지키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이 점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하나님은 율법을 주시고 그 길을 따라 살면 복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사람들의 마음은 쉽게 변하지 않았다. 하나님을 따르던 백성도 시간이 지나면 다른 길로 돌아섰고, 왕과 지도자들조차 하나님을 떠나는 일이 반복되었다. 이것은 단순히 이스라엘 민족의 문제만이 아니다. 성경은 인간의 마음이 얼마나 쉽게 하나님을 떠날 수 있는지를 보여 준다.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다시 자기 중심으로 돌아가기 쉬운 존재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통해 새로운 약속을 말씀하셨다. 그 약속이 바로 새 언약이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하나님이 앞으로 이루실 새로운 관계에 대해 이렇게 전했다.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내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예레미야 31:31–33) 이 말씀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이전의 언약이 주로 돌판에 기록된 율법과 같은 외적인 기준이었다면, 새 언약은 사람의 마음에 기록되는 법이라는 점이다. 즉 하나님은 단순히 규칙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 자체를 새롭게 하시는 관계를 말씀하신 것이다. 구약 시대에도 하나님의 말씀은 분명했다. 그러나 그 말씀은 종종 사람들에게 외적인 계명처럼 느껴졌다. 사람들은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 그 길을 온전히 따르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선지자들은 여러 차례 같은 메시지를 전했다. 하나님은 단순한 종교 행위를 원하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형식적인 제사보다 하나님을 향한 마음을 원하신다고 말씀하셨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새 언약의 약속은 매우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하나님은 이제 인간에게 단순히 무엇을 하라고 명령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속에서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신약성경은 바로 이 약속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졌다고 설명한다. 예수님은 마지막 만찬에서 제자들에게 잔을 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잔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다.” 이 말씀은 십자가 사건과 새 언약이 깊이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 준다. 십자가는 단순한 고난의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이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시는 자리였다. 예수님의 십자가 이후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는 새로운 단계로 들어간다. 이제 하나님은 단지 외적인 계명을 통해 인간을 이끄시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통해 인간의 마음속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하신다. 그래서 신약성경은 성령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이라고 설명한다. 성령은 단순히 특별한 능력을 주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새롭게 하는 하나님의 임재이다. 성경은 예수님이 더 좋은 언약인 새 언약의 중보자(히 8:6)로 오셨다고 기록한다. 이 점에서 새 언약은 단순한 신학적 개념이 아니라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가 변화되는 새로운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신앙은 단순히 규칙을 지키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삶이 된다. 하나님은 멀리서 명령하시는 분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속에서 역사하시며 새로운 길을 열어 주시는 분이 되신다. 그래서 새 언약의 핵심은 외적인 종교 형식이 아니라 마음의 변화이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완벽한 종교 제도를 요구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마음을 원하신다. 하나님은 인간이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기를 바라신다. 이렇게 보면 성경의 이야기는 하나의 방향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창세기에서 시작된 약속은 십자가에서 새로운 의미를 얻고, 새 언약을 통해 인간의 마음속에서 시작된다. 그래서 성경의 메시지는 단순한 종교 규칙이 아니라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살아 있는 관계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새로운 관계는 인간의 마음에서 시작된다. 그래서 다음 질문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이 새로운 관계는 인간의 삶 속에서 어떻게 나타나는 것일까. 성경은 그 답을 ‘마음의 할례’라는 표현으로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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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5-18
  • [김철영 목사 오피니언] 한국교회, 공정선거로 신뢰 회복해야
    2024년 12월 3일 대통령 윤석열의 비상계엄선포와 탄핵 그리고 역사상 최초로 현직 대통령의 구속과 파면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한국 교회의 신뢰되는 크게 추락했다. 특히 비상계엄선포의 이유 중 하나로 ‘부정선거론’이 있었다. 공직선거에 대해 조금만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전 세계가 부러워할 만큼 탁월한 선거관리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대한민국 공직선거에서 ‘부정선거’가 횡행했다는 주장을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우상처럼 신봉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격을 주었다. 더군다나 제21대 총선 낙선자들이 부정선거라며 제기한 126 건의 선거무효소송을 대법원이 한 건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치국가에서 대법원의 판결을 대통령이 인정하지 않은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심지어는 계엄선포 당일 선거연수원에서 중국인 간첩 99여 명을 체포해 일본 오키나와 미군기자로 압송해 심문 과정에서 선거 개입 혐의를 일체 자백했다는 소설 같은 가짜뉴스가 확산되기도 했다. 인터넷에서 투표용지를 생산하는 기업이 투표용지를 홍보한 내용만 검색해 봐도 알 수 있는 데도 형상기억종이니 하면서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했다. 또한 시군 선거관리위원회에 문의하면 알아듣게 설명을 듣고 이해할 수 있을 텐 데도 맹목적으로 부정선거 음모론을 추종했다. 오죽했으면 보수 논객인 조갑제 전 <월간조선> 대표와 정규재 전 <한국경제> 주필까지 나서서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을 비판했겠는가. 특히 조 전 대표는 부정선거 신봉론자들의 확증편향의식이 종교적 신념으로까지 이어진 것을 우려한 것이다. 사이비신도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것을 지적한 것이다. 12.3비상계엄과 대통령 탄핵 반대와 부정선거 음모론을 지지하는 목회자와 기독교인들로 인해 한국 교회의 이미지는 크게 추락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이 지난해 ‘한국인의 종교 현황’ 조사 결과 비종교인 호감도 조사에서 불교 15%, 천주교 11%, 개신교 6%로 나타나 충격을 주었다. 특히 한국 교회 극우화 이미지도 문제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 지앤컴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1월 5일부터 10일까지 만 19세 이상 대한민국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한국교회 사회적 신뢰도 조사’ 결과, 한국교회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응답한 비율은 75.4%로 집계됐다. ‘신뢰한다’는 응답은 19%에 그쳤다. 이는 2020년 동일 조사에서 ‘신뢰’ 31.8%, ‘불신’ 63.9%를 기록한 것과 비교해 한국교회에 대한 사회적 신뢰도가 크게 하락한 수치다. 특히 응답자의 절반에 가까운 47.1%는 한국 교회를 ‘극우’ 성향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건전한 보수를 넘어선 ‘극우’라는 이미지가 한국 교회에 강하게 채색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는 극우와 극좌는 국민통합을 저해한다는 인식이 강하게 심어져 있다. 그 색깔이 강하게 비쳐질수록 한국 교회의 이미지와 신뢰도는 추락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더해 지난해 서울 서부지법 폭동사태는 한국 기독교 이미지를 더욱 악화시켰다. 한국교회는 오는 6월 3일 치러지는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신뢰도 회복의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 그동안 한국 교회가 주도적으로 전개해 온 포괄적 차별금지법 반대운동을 비롯한 반대를 외치는 캠페인은 긍정적 이미지를 심어주지 못한다. 기독교 가치를 지키기 위한 목적이지만, ‘네거티브 캠페인’은 찬성과 반대로 여론이 나뉜다. 한국교회의 신뢰도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우리 국민 모두가 인정하고 함께하는 포지티브(긍정적) 캠페인을 해야 한다. 그 중에 하나가 투표참여 및 공명선거 캠페인이다. 이 캠페인은 여야, 보수와 진보 모두 공감하고 호응한다. 세계성시화운동본부는 지난 2007년 12월 치러진 제17대 대통령선거를 시작으로 대선, 총선, 지방선거 때마다 투표참여 및 공명선거 캠페인을 전개해왔다. 2021년 4월 15일 실시된 제21대 총선에서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주관한 아름다운선거 협업사업에 KBS, 채널A 등 19개 단체 중 종교계로는 유일하게 선정되어 캠페인을 전개하여 우수단체로 선정됐다. 2022년 3월 9일 실시된 제20대 대통령선거에서는 9개 단체 중 하나로 선정되어 캠페인을 전개했으며, 2022년 6월 1일 실시된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6개 단체 중 하나로 선정되어 탁월하게 캠페인을 전개했다. ‘한국 교회 투표참여 및 공명선거를 위한 10대 지침’은 호응이 컸다. 10대 지침 중 ‘가짜뉴스와 허위사실 생산과 유포는 10계명 중 제9계명을 위반하는 것’이라는 효과가 컸다. SNS에서 무분별하게 올리는 허위사실로 인해 기독교가 ‘카톡교’라는 오명을 듣고 있는 현실에서 누군가로부터 받은 글을 공유하거나 자신이 쓴 글을 올릴 때 허위사실인지를 점검하고 올린다는 분들이 많아졌다. 이와 함께 교회 강단에서 목회자가 공직선거법을 위반하지 않도록 주지를 시켰다. 설교 중에 생각 없이 특정 정당이나 후보에 대한 지지 입장을 밝혔다가 그 발언을 취소한 목회자도 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몇 명의 목회자들이 교회 설교 강단을 정치오염화하면서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기독교 이미지는 더 추락할 수 없을 만큼 떨어졌다. 이와 함께 신천지와 통일교집단의 불법적 정교유착사건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민법 제37조와 38조 개정법률안이 국회에서 발의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오는 6월 3일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와 14곳에서 국회의원 재보궐선거가 실시된다. 이번 공직선거를 한국 기독교는 책임의식을 갖고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전국동시지방선거는 대통령선거나 국회의원 총선거에 비해 관심도가 덜해 투표율이 낮다.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 투표율 51.6%, 제5회 54.5%, 제6회 56.8%, 제7호; 60.2%, 제8회 50.9%로 지난 선거 투표율이 가장 낮았다. 지난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투표율 50퍼센트 이하인 지역은 충남 49.8%, 대전 49.7%, 부산 49.1%, 인천48.9%, 전북 48.6%, 대구43.2%, 광주 37.7%였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 내 교회가 소재하고 있는 지역을 보다 아름답게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좋은 지도자를 뽑아야 한다. 나의 한 표가 얼마나 힘이 있고 소중하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또한 목회자는 공정선거를 강조하여 교회는 불의를 미워하고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 공동체라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럴 때 한국 교회의 신뢰도와 호감도는 회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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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5-14
  • [박용호 칼럼] 6. 십자가 — 하나님의 언약이 이루어진 자리
    성경의 역사를 따라 읽다 보면 한 가지 흐름이 점점 분명하게 드러난다. 인간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은 계속해서 한 약속을 이어 오셨다는 사실이다. 창세기에서 하나님은 인간의 타락 이후 “여자의 후손”을 말씀하셨다. 그 약속은 단순한 말이 아니라 성경 전체를 통해 이어지는 하나님의 구원의 방향이었다. 인간의 역사는 수많은 사건과 인물들로 가득하지만, 성경은 그 속에서 하나님이 준비하신 구원의 흐름을 계속 보여 준다. 그 흐름은 아브라함의 이야기 속에서도 나타난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후손을 약속하시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한 민족만을 위한 약속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의 뜻이 담긴 말씀이었다. 모세 시대에는 율법이 주어졌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길을 가르쳐 주셨다. 그러나 율법은 인간의 마음을 완전히 바꾸지는 못했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하나님을 향한 순종과 동시에 반복되는 실패의 역사이기도 했다. 다윗 왕에게는 또 다른 약속이 주어졌다. 하나님은 그의 왕위가 끊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 약속은 단순한 왕권의 유지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왕이 나타날 것에 대한 예표였다. 이처럼 성경의 여러 사건들은 서로 흩어진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하나의 방향을 향해 흐르고 있다. 그 방향은 바로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시겠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뜻이 역사 속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 사건이 바로 십자가이다. 많은 사람에게 십자가는 고난과 죽음의 상징으로 보인다. 실제로 예수님의 십자가는 인간의 눈으로 보면 실패와 패배처럼 보이는 사건이었다. 당시 사람들에게 십자가형은 가장 수치스럽고 잔인한 처형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은 이 사건을 단순한 비극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오히려 십자가는 하나님이 오래전부터 준비하신 구원의 계획이 역사 속에서 이루어진 자리라고 말한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향해 가시면서 제자들에게 여러 번 말씀하셨다.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며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하셨다. 이것은 갑작스럽게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 속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라는 의미였다. 신약성경의 사도들도 같은 사실을 강조한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설명하면서 그것이 하나님의 미리 아신 뜻과 계획 안에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말한다. 인간의 악한 선택이 그 사건에 참여했지만, 그 뒤에는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이 있었다는 뜻이다. 십자가가 특별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십자가는 인간이 만든 구원의 길이 아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이 여신 구원의 길이다. 인간은 스스로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고, 인간의 노력만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완전히 회복할 수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을 포기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인간의 역사 속으로 들어오셔서 그 문제를 직접 담당하셨다. 그래서 십자가는 단순히 한 사람의 죽음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을 향해 행하신 사랑의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성경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셨다고 말한다. 이 말씀은 십자가가 하나님의 심판만을 보여 주는 사건이 아니라, 동시에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 주는 사건이라는 뜻이다. 십자가에서 하나님은 인간의 죄를 외면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동시에 인간을 버리지도 않으셨다. 하나님은 죄의 문제를 진지하게 다루면서도 인간을 향한 사랑을 포기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십자가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보여 주신 가장 깊은 사랑의 자리라고 할 수 있다. 이 사건을 통해 우리는 성경의 이야기가 어디를 향해 흐르고 있었는지 이해하게 된다. 창세기에서 시작된 약속,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언약, 다윗에게 주어진 왕권의 약속, 그리고 선지자들이 전했던 하나님의 말씀은 결국 하나의 사건을 향해 모여 있었다. 그 사건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이다. 십자가는 단지 과거의 역사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인간을 향해 어떻게 행동하시는지를 보여 주는 결정적인 장면이다. 하나님은 멀리서 인간을 바라보시는 분이 아니라, 인간의 역사 속에 들어와 직접 구원의 길을 여시는 분이다. 그래서 성경을 읽을 때 십자가는 단순한 종교적 상징이 아니라, 성경 전체를 이해하는 중심 사건이 된다. 창세기에서 시작된 하나님의 약속은 십자가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십자가 사건 이후 하나님은 새로운 약속을 말씀하신다. 바로 새 언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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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5-11
  • [이선규 칼럼] 언약을 이루기까지(창 30:37-43)
    사람이 환경을 만드는 것인가? 환경이 사람을 만드는 것인가? 하는 말은 전에도 있었고 앞으로도 풀리기 어려운 문제라이다. 이것은 사람이 끼치는 영향이 어느 정도인가를 말할 수 있는 문제이다. 사람이 보고 체험하는 모든 환경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역시 인간은 환경에 대해서는 역설적 존재라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복할 때 일이다. 이스라엘은 난공불락의 요새인 여리고성과의 전쟁을 치르지 않고 단번에 무너뜨리게 된다. 그러나 조그마한 성이라서 쉽게 생각했지만 아이성과의 전투에서 뜻밖에도 패전을 맛보게 된다.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한 사람의 실수로 인하여 많은 사람의 어려움을 겪는 경우를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백성이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거룩한 사업을 이루는 데에 실패란 있을 수 있나?를 묻게 되는 대목이다. 이 엄청난 사건 앞에서 여호수아는 하나님 앞에서 슬피 울며 기도한다. 여호수아가 절규하고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신다. “어찌하여 여기 머물렀느냐? 너희 중에 아간이란 한 사람이 내 명령을 거역하고 큰 죄를 범하였느니라. 이 때문에 너희가 이 성을 정복할 수 없었고 패배를 맛보게 된 것이니라.” 성경은 그 외에도 소돔과 고모라가 죄로 인해 망하는 사건과 요나의 사건 등에서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복 받는 사람의 주변 환경에도, 그 전답이나 소출에도 복을 주신다고 하셨다. 이것은 곧 즐거움을 누릴 것을 말한다. 한 문안에 유하는 객이나 복 받는 집에서 기르는 가축에게도 복을 주신다고 하셨다. 그래서 성경은 낙심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오늘 본문에 보면 라반의 집에서 머슴살이를 하는 조카 야곱의 이야기이다. 야곱은 기약도 없이 머슴살이를 하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에게 복을 주신다. 야곱을 통하여 라반의 집이 날로 모든 일에 형통함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우리 집안에 복 주시는 것을 알았으니 우리 집을 떠나지 말라고 당부한다. 본문에 하나님을 믿지 않았던 라반이 야곱을 알아본다. 그는 자기 조카이지만 머슴이다. 그러나 영적으로는 그를 두려워하고 그를 존경한다. “여호와께서 너로 인하여 내게 복 주신 줄을 내가 알았노니, 네가 나를 사랑스럽게 여기거든 유하라.” (27절) 여기서 중요한 말을 발견한다. “여호와께서 너로 인하여 복을 주셨다”이다. 라반은 원래 큰 부자가 아니었다. 그러나 야곱이 들어와 살면서 그의 재산이 불어나기 시작했다. 그러면 이런 현상들은 어디서부터 일어난 것일까? 야곱이 하나님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야곱에게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이 그와 함께하셨기 때문이다. 요셉의 경우도 그런 사람이었다. 요셉 한 사람으로 인해서 애굽이라는 나라 전체가 부국이 된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람 한 사람은 이같이 대단한 능력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예수님 한 분으로 인해서 인류 전체가 구원을 얻게 되었고, 바울 한 사람으로 인해 모든 이방인들이 구원 얻은 기초가 세워졌고, 모세 한 사람으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을 구출하는 능력을 발휘하게 된다. 그러므로 한 사람의 가치가 천하보다 귀하다고 말씀하셨다. 나 한 사람으로 인해 우리, 나아가 우리 지역이 바뀌어질 수 있다는 말씀이다. 우리 사회가 바뀌고 우리나라가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믿음뿐만 아니라 믿음의 실천이 중요하다. (29절)을 보자. “야곱이 라반에게 이르되 내가 어떻게 삼촌을 섬겼고 외삼촌의 짐승을 기르고 집을 관리하였는지는 삼촌이 아시나이다.” 이것을 보아도 야곱은 누가 보아도 최선을 다했으며 참 믿음을 가진 성실한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인격자로 일해 왔다는 것이다. (30절)에 “내가 오기 전에는 외삼촌의 소유가 적더니 번성하여 때를 이루었나이다.” 하는 말이나 “나의 공력을 따라 여호와께서 외삼촌에게 복을 주셨나이다.”라고 야곱이 말한다. 그렇다. 야곱은 장차 어떤 새끼양이 태어날지를 그의 현명한 판단과 계산으로 알았는데,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계시에 기초한 것이요, 하나님께로부터 전달받은 야곱은 그에 맞는 일을 하게 된다. 시작은 먼저 내가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것이고, 믿음의 사람, 진실의 사람, 화평의 사람, 기도의 사람 그리고 충성된 사람이 되면 환경이야 어떻든 문제가 아니다. 집에 있든 감옥에 있든, 가난하든 부하든, 역경이어도 순경이어도 좋다. 분명한 것은 그로 인하여 하나님은 그 환경까지 복을 주실 것이다. 그러기에 성도는 신앙을 지키고 어떠한 경우라도 믿음으로 해야 한다. 야곱과 같이 환경을 초월해서 놀라운 기적으로 함께해 주신다. 혈혈단신으로 밧단아람에 가서 이렇게 엄청난 복을 받게 된 것이다. 확실히 하나님은 벧엘의 하나님이 되신다. 벧엘에서 약속하신 대로 이루어주셨고 또한 남은 약속을 이루기 위해 야곱에게 고향으로 돌아가도록 지시하신 것이다. 야곱의 하나님은 바로 우리의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도 야곱의 하나님을 온전히 나의 하나님으로 모시고 승리하는 자 되기를 바라며 글을 마치며 우리에게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 무엇인가를 묵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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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5-08
  • [박용호 칼럼] 5. 여자의 후손 — 구원의 시작
    성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 보면 한 가지 질문이 떠오른다.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시겠다는 계획은 언제 시작된 것일까. 많은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구원이 시작되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십자가는 구원의 중심 사건이다. 그러나 성경을 자세히 보면 하나님이 구원의 길을 준비하신 이야기는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고 얼마 지나니 않아서 시작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시작이 바로 창세기 3장 15절에 기록된 한 구절의 말씀이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서 금하신 열매를 먹은 뒤, 인간의 역사는 근본적으로 바뀌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졌고, 인간의 마음에는 두려움과 숨음이 생겼다. 죄는 인간의 삶과 역사 속에 깊이 들어왔다. 그때 하나님은 뱀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창세기 3:15) 이 말씀은 성경 전체에서 매우 중요한 구절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타락 이후 하나님이 처음으로 구원의 방향을 말씀하신 장면이기 때문이다. 겉으로 보면 이 말씀은 단순히 뱀과 인간 사이의 갈등을 설명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성경을 계속 읽어 보면 이 구절이 단순한 설명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속 역사의 시작을 알리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하나님은 인간의 실패 앞에서 인간을 버리지 않으셨다. 오히려 인간의 역사 속에 “여자의 후손”이라는 한 약속을 심어 두셨다. 이 약속은 매우 독특하다.성경에서 보통 계보나 후손을 말할 때는 “남자의 후손”이라는 표현이 자연스럽다. 그러나 여기서는 “여자의 후손”이라는 표현이 사용된다. 이것은 단순한 표현이 아니라 앞으로 이어질 구속 역사의 방향을 보여 주는 단서가 된다. 성경의 이야기는 바로 이 약속을 따라 전개된다. 인류의 역사가 계속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등장하지만, 성경은 그 모든 인물을 동일하게 기록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의 이야기는 짧게 지나가지만, 어떤 사람들의 이야기는 길게 기록된다. 그 이유는 성경이 단순한 역사책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속 역사를 기록한 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경의 계보와 이야기를 따라가 보면 한 줄기의 흐름이 보인다. 아담 이후 셋의 계보가 이어지고, 노아의 가문을 통해 새로운 시작이 이루어지며, 아브라함의 가문을 통해 하나님은 한 민족을 세우신다. 그리고 그 민족 가운데 다윗 왕이 세워지고, 그 계보는 결국 예수 그리스도에게까지 이어진다. 이 흐름을 따라가 보면 성경은 하나님이 택한 특정 인물들을 통해 구원의 길을 기록한 책으로 보인다. 그러나 다말의 시아버지를 통한 기행, 라합 그리고 우리아의 아내, 마리아로 이어지는 성경의 서사를 따라서 행간을 읽게 되면 하나님이 처음 뱀에게 한 여자의 후손이라는 약속이 어떻게 역사 속에서 이어지고 이루어지는지를 보여 주는 책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것은 어떤 특정인에게 맡겨진 역사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존적 언약의 흐름 속에 있는 구원의 길이라는 것을 보게 한다. 그러나 이 과정은 결코 단순하지 않았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선택하신 계보 속에서도 수많은 갈등과 위기가 나타난다. 형제가 서로 다투고, 민족이 흔들리고, 때로는 하나님의 백성조차 하나님을 떠나는 일이 반복된다. 인간의 역사만 놓고 보면 그 약속이 계속 이어질 수 있을지조차 의문이 들 때가 많다. 그러나 놀라운 사실은 하나님이 그 흐름을 끊어지지 않게 지켜 오셨다는 것이다. 인간의 역사 속에는 수많은 실패가 있었지만, 하나님은 그 실패 속에서도 약속의 흐름을 이어 가셨다. 그래서 성경의 계보는 단순한 가족 기록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이 역사 속에서 이어진 흔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흐름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결정적인 의미를 갖게 된다. 신약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단순한 종교 지도자로 소개하지 않는다.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이 오래전부터 약속하신 그 구원의 길과 깊이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 준다. 그래서 마태복음은 예수님의 계보를 아브라함과 다윗으로부터 시작하여 기록하고, 누가복음은 그 계보를 아담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설명한다. 이것은 예수님의 이야기가 갑자기 시작된 것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하나님의 약속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보면 “여자의 후손”이라는 말씀은 단순한 상징이 아니라 성경 전체를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가 된다. 인간의 타락 이후 하나님은 인간을 포기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인간의 역사 속에 구원의 씨앗을 심어 두셨다.그리고 그 씨앗은 수많은 세대를 지나며 역사 속에서 이어져 왔다. 성경의 이야기는 바로 그 씨앗이 자라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창세기 3장에 등장하는 이 한 말씀은 성경의 첫 장면에 기록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성경 전체의 이야기를 향해 열려 있는 문과 같다. 이 문을 통과하면 성경은 단순한 종교 이야기나 역사 기록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을 향해 준비하신 구원의 이야기로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결국 한 사건을 향해 흐른다. 바로 십자가이다. 십자가는 갑자기 등장한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창세기에서 시작된 하나님의 약속이 역사 속에서 이루어진 자리이다. 그래서 성경을 이해하려면 이 첫 약속을 기억해야 한다. 여자의 후손이라는 말씀은 성경 전체 이야기가 어디서 시작되었는지를 보여 주는 하나님의 첫 구원의 선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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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5-08
  • [박용호 칼럼] 4. 에흐예 언약 — 하나님이 스스로 하신 선언의 약속
    성경을 읽다 보면 하나님이 인간에게 여러 차례 말씀하시고 약속하시는 장면들이 나타난다. 아담에게는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말씀이 주어졌고, 노아에게는 다시는 물로 세상을 멸하지 않겠다는 약속이 주어졌다. 아브라함에게는 후손과 땅과 복의 언약이 주어졌고, 모세를 통해서는 율법이, 다윗에게는 왕권의 약속이 주어졌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성경을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언약의 역사로 이해해 왔다. 이러한 이해는 분명히 중요하다. 실제로 성경에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말씀하시고, 인간의 삶과 역사를 이끌어 가시는 언약의 흐름이 분명히 나타난다. 그러나 성경을 더 깊이 읽다보면, 인간에게 주어진 언약의 역사 뒤에 더 깊은 차원의 하나님의 선언이 숨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 선언이 바로 출애굽기 3장 14절에 나오는 “ 에흐예 ” 의 말씀이다. 모세가 호렙 산에서 떨기나무 가운데 나타나신 하나님을 만났을 때, 하나님은 그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라고 명령하셨다. 그러나 모세는 두려워했다. 자신이 누구이기에 바로 앞에 서며, 이스라엘 자손을 이끌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서 하나님이 자신을 보내셨다고 말할 때, 그들이 “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 고 물으면 무엇이라고 대답해야 하느냐고 질문했다. 그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히브리어로는 “에흐예 아쉐르 에흐예” 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말은 보통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 또는 “나는 내가 될 자다”로 번역된다. 이 말씀은 단순히 하나님의 이름을 알려 주는 정보가 아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드러내는 자기 계시이며, 동시에 하나님이 어떻게 구원을 이루시는지를 보여 주는 매우 깊은 선언이다. 인간은 언제나 누군가에게 의존하며 살아간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부모에게 의존하고, 자라면서 환경과 사회와 관계 속에 기대어 살아간다. 사람의 존재는 본래부터 다른 것에 기대어 있는 존재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르시다. 하나님은 어떤 존재에도 의존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이며, 자신 안에 생명과 뜻과 능력을 가지신 분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처럼 외부 조건에 따라 움직이시는 분이 아니다. 이 점은 성경의 구원 이야기와도 깊이 연결된다. 인간에게 주어진 언약은 늘 인간의 반응과 실패를 동반했다. 하나님은 신실하셨지만 인간은 흔들렸고, 하나님은 약속을 주셨지만 인간은 그것을 온전히 지키지 못했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그 사실을 반복해서 보여 준다. 율법이 주어졌지만 사람의 마음은 변하지 않았고, 왕이 세워졌지만 하나님 나라가 완전하게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그래서 성경을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질문이 생긴다. 인간이 계속 실패한다면 하나님의 구원은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는가. 인간에게 주어진 언약만으로 구원이 완성될 수 없다면, 하나님은 어떤 길로 그 일을 이루실 것인가. 바로 이 질문 앞에서 “ 에흐예 ” 선언은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하나님은 마치 이렇게 말씀 하시는 것과 같다. 구원은 인간의 능력이나 인간의 완전한 순종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에게 달려 있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이며, 스스로 뜻을 세우시고, 스스로 그 뜻을 이루시는 분이시다. 그래서 “ 에흐예 ” 라는 이름은 단순한 존재의 선언이 아니라 구원의 선언이기도 하다. 하나님은 인간의 실패 속에서도 자신의 뜻을 포기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인간이 무너질 때에도 무너지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인간이 언약에 실패할 때에도 자신의 구원 계획을 포기하지 않으신다. 왜냐하면 그 구원은 인간의 손에 달린 것이 아니라, 스스로 계신 하나님께 달려 있기 때문이다. 출애굽 사건 자체가 바로 이 사실을 보여 준다.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의 노예였고, 스스로는 그 자리에서 나올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에게는 힘이 없었고 길도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부르짖음 속에서 기억하셨고, 자신의 능력으로 그들을 이끌어 내셨다. 출애굽은 인간이 이룬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루신 사건이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라” 고 말씀하셨다. 바로 이 “내가 함께한다” 는 말도 에흐예 선언과 연결된다. 하나님이 친히 함께하시며 친히 이루신다는 뜻이다. 이렇게 보면 성경의 언약 역사에는 두 층위가 보인다. 하나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말씀하시고 요구하시는 언약의 역사이다. 또 하나는 그 모든 인간의 실패 뒤에서 하나님이 스스로 이루어 가시는 더 깊은 구원의 역사이다. “ 에흐예 ” 선언은 바로 그 두 번째 층위를 보여준다. 이 점에서 “ 에흐예 언약 — 하나님이 스스로 하신 약속의 선언 ” 이라는 말은 낯설지만 매우 중요한 표현이 된다. 그것은 하나님이 인간과 무관하게 행동하신다는 뜻이 아니라, 인간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자신의 뜻을 끝까지 이루어 가신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향해 언약을 주셨지만, 동시에 그 언약이 결국 자신의 뜻 안에서 완성되도록 역사하시는 분이시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뜻이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 자리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이다. 인간은 구원의 길을 만들어 내지 못했지만, 하나님은 스스로 그 길을 여셨다. 인간은 죄를 해결할 수 없었지만, 하나님은 스스로 그 문제를 담당하셨다. 그래서 십자가는 단순한 비극이 아니라, 에흐예의 하나님이 자기 뜻을 역사 속에서 실행하신 사건이라고 말할 수 있다. 결국 “ 에흐예 ” 언약은 성경 전체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빛을 던진다. 성경은 인간의 종교적 노력의 기록이 아니라, 스스로 계신 하나님이 인간을 버리지 않으시고 끝까지 구원의 길을 이루어 가시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단지 약속을 주시는 분이 아니라, 자신이 하신 뜻을 스스로 이루시는 분이시다. 그리고 성경은 바로 그 하나님을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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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4-27
  • [박용호 칼럼] 3. 인류언약 —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약속
    성경을 읽을 때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이 여러 인물들에게 약속을 주셨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아담에게, 노아에게, 아브라함에게, 모세에게, 다윗에게 하나님은 말씀하셨고 그들에게 언약을 주셨다. 신학에서는 이러한 언약을 보통 언약신학이라는 틀로 설명해 왔다.성경의 역사를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언약의 역사로 이해하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성경에는 하나님이 특정 인물들에게 주신 여러 언약들이 나타난다. 예를 들어 하나님은 아담에게 말씀하셨다.“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이 말씀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맡기신 삶의 질서와 책임을 보여 준다. 또 가인의 사건에서도 하나님은 그를 완전히 버리지 않으셨다.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로 받을 것이라고 하시며 하나님은 인간의 생명을 보호하는 질서를 세우셨다. 노아에게는 더 분명한 약속이 주어졌다.홍수 이후 하나님은 다시는 물로 세상을 심판하지 않겠다고 하시며 무지개를 언약의 표로 세우셨다. 아브라함에게는 또 다른 언약이 주어진다.하나님은 그의 후손을 통해 큰 민족을 이루고, 땅을 주며, 모든 민족이 그를 통해 복을 받게 하겠다고 약속하셨다. 모세를 통해서는 율법이 주어졌다.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계명을 지키면 복을 받고, 떠나면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다윗에게는 왕권의 언약이 주어졌다.그의 왕위가 끊어지지 않고 하나님 나라의 모형이 될 것이라는 약속이다. 이처럼 성경에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여러 언약들이 기록되어 있다.그래서 많은 신학자들은 성경을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언약의 역사로 이해해 왔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언약의 흐름을 “인류언약”이라고 부르려 한다. 왜냐하면 이 언약들은 모두 인간에게 주어진 언약이기 때문이다.하나님이 인간에게 말씀하시고, 인간의 삶과 역사 속에서 이루어지는 언약이다. 그래서 우리가 교회에서 들어 온 대부분의 설교와 성경 이해는 바로 이 언약의 흐름 속에 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말씀하시고, 인간이 그 말씀에 응답하며 살아가는 이야기로 성경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을 계속 읽다 보면 한 가지 질문이 생긴다. 과연 인간은 이 언약을 온전히 지킬 수 있었을까? 이스라엘의 역사는 그렇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율법이 주어졌지만 사람의 마음은 변하지 않았고, 왕이 세워졌지만 하나님 나라가 완전히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성경은 인간의 실패를 숨기지 않는다. 오히려 그 실패를 통해 인간이 스스로 하나님 나라를 이루지 못한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그래서 성경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인간에게 주어진 언약의 역사 뒤에는 하나님이 스스로 이루시는 더 깊은 언약이 있기 때문이다. 그 언약의 단서가 바로 출애굽기에서 나타난다. 모세가 하나님께 이름을 묻자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히브리어로 에흐예(Ehyeh)라는 선언이다. 이 선언은 단순한 이름이 아니라 하나님이 스스로 이루시는 구원의 약속을 보여 주는 말씀이다. 그래서 성경의 이야기는 인간에게 주어진 언약의 역사에서 멈추지 않고 하나님이 직접 이루시는 더 깊은 언약으로 나아가게 된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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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4-20
  • [박용호 칼럼] 2. 언약 —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중심 주제
    성경에는 하나님이 인간과 관계를 맺으시는 독특한 방식이 있다. 바로 언약이다. 하나님은 인간과 관계를 맺으실 때 언제나 언약이라는 방식으로 말씀하신다는 점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신 후 인간을 향해 말씀하시고 인간과 관계를 맺으셨다. 그리고 그 관계를 언약이라는 형태로 나타내셨다. 구약 성경에는 여러 언약들이 등장한다. 하나님은 노아와 언약을 맺으셨고,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셨으며,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과 언약을 세우셨다. 이러한 언약들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약속이며 동시에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야 할 방향을 보여 주는 말씀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향해 “내가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될 것이라”는 관계를 선언하셨다. 이러한 언약들은 인간의 역사 속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하나님은 인간을 버려 두지 않으시고 계속해서 말씀을 통해 인간을 하나님께로 부르셨다. 노아의 시대에는 하나님이 세상을 심판하시면서도 다시는 물로 세상을 멸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주셨다. 아브라함에게는 하나님이 한 민족을 이루게 하시고 그를 통해 모든 민족이 복을 받을 것이라는 약속을 주셨다. 모세를 통해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세우기 위한 율법을 주셨다. 이러한 언약들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언약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사람에게 말씀하신 언약, 즉 인간을 향한 언약이다. 그러나 성경의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한 가지 반복되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하나님은 신실하게 약속을 이루어 가셨지만 인간은 그 언약을 온전히 지키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따르기보다 자신의 길을 선택하는 모습이 반복해서 나타난다. 이러한 모습은 단지 이스라엘만의 문제가 아니다. 인간의 마음 깊은 곳에는 하나님보다 자신을 중심에 두고 살아가려는 성향이 있다. 그래서 인간은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온전히 따르지 못한다. 성경은 이 문제를 인간의 죄성이라고 설명한다. 그래서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언약은 인간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거울이 되기도 했다. 하나님이 주신 말씀은 선하고 의롭지만 인간은 그 말씀을 끝까지 지키지 못했다. 그 결과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한계를 보게 된다. 인간은 스스로의 힘만으로 하나님께 온전히 나아갈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이러한 사실은 성경의 언약 역사를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가 된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언약을 주신 것은 단순히 규범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은 언약을 통해 인간의 상태를 드러내고 인간이 하나님께 돌아와야 할 필요를 깨닫게 하셨다. 그래서 구약의 언약들은 하나님의 구원 계획 속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말씀을 주셨고 인간의 역사 속에서 그 말씀의 의미를 드러내셨다.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은 인간의 실패를 통해 더 깊은 구원의 길을 준비하셨다. 신약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그 구원의 중심으로 등장한다. 예수님은 인간이 지키지 못했던 율법을 완성하시고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새로운 관계를 열어 주셨다. 그래서 성경의 언약 이야기는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언약은 단순한 규칙이나 종교적 제도가 아니라 인간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하나님의 역사였다. 하나님은 인간을 포기하지 않으셨고 인간이 하나님께 돌아올 수 있도록 계속해서 말씀하시며 길을 열어 주셨다. 성경을 언약의 관점에서 읽기 시작하면 하나님이 인간의 역사 속에서 어떻게 일하셨는지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된다. 인간의 연약함과 실패 속에서도 하나님은 계속해서 구원의 길을 준비하셨다. 그리고 그 길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의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래서 성경의 언약 이야기는 인간의 역사이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구원의 이야기이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언약을 주셨고 그 언약을 통해 인간을 하나님께로 다시 부르고 계신다. 이 언약의 흐름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인간을 향해 준비하신 구원의 깊은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구약의 언약 이야기는 단순한 과거의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한계를 드러내고 하나님이 준비하신 구원의 길을 바라보게 하는 역사이다. 그러나 성경을 계속 읽다 보면 한 가지 질문이 남는다. 인간이 하나님의 언약을 끝까지 지키지 못한다면 하나님은 구원의 길을 어떻게 이루실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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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4-13
  • [박용호 칼럼] 1. 성경은 왜 언약의 책인가
    성경은 어떤 책일까? 어떤 사람들은 성경을 종교적인 교훈이 담긴 책이라고 말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성경을 역사 이야기로 이해하기도 한다. 창조의 이야기로 시작하여 족장들의 역사, 이스라엘 민족의 여정, 예언자들의 외침,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까지 수많은 사건들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을 조금 더 깊이 읽어 보면 이 다양한 이야기들을 하나로 묶는 중심 주제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바로 언약이다. 언약은 단순한 약속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성경에서 언약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맺어진 관계의 틀이며, 하나님이 인간을 향해 펼쳐 가시는 구원의 역사이다. 그래서 성경의 이야기는 흩어진 사건들의 모음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과 관계를 맺어 가시는 언약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성경은 살아계신 하나님이 택한 사람을 통해 말씀하신 책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세상을 다스리는 하나님의 경륜은 창조부터 종말까지 쉬지 않고 운행되어진다. 구약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여러 차례 언약을 통해 인간에게 말씀하셨다. 노아와 언약을 맺으셨고,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셨으며,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셨다. 이러한언약들은 하나님이 인간을 향해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신지를 보여 주는 중요한 사건들이었다. 하나님은 인간을 버리지 않으시고 계속해서 관계를 이어 가시며 인간을 하나님께로 인도하셨다. 그러나 성경을 읽다 보면 한 가지 반복되는 사실이 드러난다. 하나님은 신실하게 언약을 이루어 가셨지만 인간은 그 언약을 끝까지 지키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그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 준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선택하시고 그들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을 세우고자 하셨지만, 이스라엘은 반복해서 하나님을 떠났고 자기 길을 선택했다. 이 역사는 인간의 본성을 드러낸다. 인간은 하나님을 향해 살아가도록 창조되었지만 실제 삶에서는 자신을 중심으로 살아가려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성경은 인간의 문제를단순한 도덕적 실패로 설명하지 않는다. 인간의 마음이 하나님에게서 멀어졌다는 더 깊은 문제로 설명한다. 이 때문에 성경의 언약 이야기는 단순히 인간에게 주어지는 외적 규범에 머물지 않는다. 하나님은 인간의 실패 속에서도 새로운 길을 준비하셨다. 그것은 인간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길이 아니라 하나님이 직접 이루시는 구원의 길이었다. 이 점에서 성경의 언약은 인간이 하나님께 드리는 약속이라기보다 하나님이 인간을 위해 이루어 가시는 구원의 계획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은 인간의 연약함을 아셨고 인간이 스스로 하나님께 돌아올 수 없다는 사실도 아셨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길을 준비하셨다. 그 길의 중심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있다. 신약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새로운 언약의 중심으로 등장한다. 예수님은 마지막 만찬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잔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라.” (누가복음 22:20) 이 말씀은 성경의 모든 언약 이야기가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래서 성경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 가운데 하나는 바로 언약이다. 성경의 이야기들은 서로 흩어진 사건들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준비하신 언약의 역사 속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다. 창세기에서 시작된 하나님의 약속은 긴 역사 속에서 이어지다가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결정적인 전환점을 맞게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성경은 단순한 종교 책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을 향해 펼쳐 가신 구원의 이야기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포기하지 않으셨고 인간이 하나님께 돌아올 수 있도록 계속해서 길을 열어 주셨다. 그 길을 성경은 언약이라는 방식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래서 성경을 읽을 때 우리는 이 질문을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한다. 하나님은 왜 인간과 언약을 맺으셨는가. 이 질문을 따라 성경을 읽기 시작할 때 우리는 성경 전체를 하나의 흐름으로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그 흐름 속에서 하나님이 인간을 향해 준비하신 구원의 깊은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 성경이 언약의 책이라고 불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성경은 하나님이 인간을 포기하지 않으셨다는 이야기이며, 하나님이 인간을 다시 하나님께 로 부르시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 언약의 이야기는 오늘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본 칼럼은 『성경의 대서사: 할례, 피, 언약으로 읽는 구속의 메시지』를 저술한 박용호 회장의 기고문으로 창세기부터 시작된 하나님의 언약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해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구속의 메시지를 전하는지 깊이 있게 조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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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4-06
  • [이선규 칼럼] 울음 끝에 주시는 하나님의 웃음
    사람과 동물이 다른 점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하나는 웃음이다. 동물에게도 기쁨과 같은 감정은 있지만 인간처럼 웃음을 표현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웃음은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이다. 창세기에서 이삭을 출산한 사라는 “하나님이 나로 웃게 하셨다”고 고백했다. 웃음은 기쁨이 있을 때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표현이다. 사람이 먼저 웃으면 주변 사람들도 함께 웃게 된다. 또한 웃음은 건강에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알려져 있다. 많이 웃는 사람이 장수한다는 말도 있을 정도로 웃음은 우리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이처럼 웃음은 인간의 삶에 반드시 필요한 요소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참된 웃음을 주시는 분이시다. 그러나 웃음에는 기쁨의 웃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비웃음도 존재한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백 세에 아들을 주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처음에는 웃었다. 그러나 그 웃음은 믿음에서 나온 웃음이 아니라 인간적인 생각에서 비롯된 의심의 웃음이었다. 하나님을 향한 비웃음은 우리 인생이 참된 웃음을 경험하지 못하게 만든다. 하나님은 그분의 말씀을 듣고 신뢰하는 자에게 참된 웃음을 허락하신다. 제1장 하나님의 말씀에서 오는 웃음 우리 인생의 웃음과 기쁨은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시작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으며 그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확신과 소망을 가질 때 하나님께서 우리 삶 가운데 참된 웃음을 주신다. 만일 지금 우리의 삶에서 웃음이 사라졌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멀리했거나 말씀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일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잃어버린 웃음을 다시 회복하게 하는 능력이 있다. 역사가들은 나폴레옹이 유럽을 초토화했을 때 그 시대를 미래 세대가 세계 역사상 가장 어두운 시기 중 하나로 기억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바로 그 시대에 태어난 어린이들 가운데 훗날 세계 역사에 큰 영향을 미친 인물들이 있었다. 아브라함 링컨, 윌리엄 글래드스톤, 알프레드 테니슨, 펠릭스 멘델스존과 같은 인물들이 바로 그들이다. 아브라함과 사라의 가정 역시 오랜 시간 동안 어둠과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이삭의 탄생으로 그들의 삶은 완전히 바뀌게 된다. 아브라함은 신중하고 조용한 반응을 보였지만 사라는 달랐다. 사라는 “하나님이 나로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라고 고백했다(창세기 21:6). 또한 “누가 아브라함에게 사라가 자식들을 젖 먹이리라고 말하였으리요. 그러나 내가 그의 노년에 아들을 낳았도다”라고 말하며 자신의 기쁨을 표현했다(창세기 21:7). 사라는 자신을 결코 실망시키지 않으신 하나님께 소망과 믿음을 두게 되었다.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을 완전히 이해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계시하시는 말씀을 신뢰하는 데 있다. 하나님은 약속하신 때에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약속의 자손을 허락하셨다. 아브라함은 여러 번의 연약함과 위기를 겪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언약의 후손을 주심으로 자신의 신실하심을 나타내셨다. 동시에 이것은 장차 만민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갈 구속사의 중요한 시작이 되었다. 폐경을 지난 사라에게서 약속의 아들이 태어나는 기적적인 사건이 일어났고, 이로써 구속사의 중심은 아브라함에서 이삭으로 이어지게 된다. 또한 약속의 자손을 보존하고 언약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아브라함의 실수로 태어난 이스마엘이 떠나게 되는 사건이 등장한다. 이 사건은 장차 여자의 후손으로 오실 그리스도의 계보가 이어지는 과정 속에서 언약의 계승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보여준다. 제2장 완전하지 않았지만 믿음으로 사용된 사라 사라는 위대한 믿음의 어머니였지만 완전한 사람은 아니었다. 이스마엘이 이삭을 희롱하는 모습을 본 사라는 두 아이가 계속 함께 자라는 것이 옳지 않다고 판단했다. 이 사건에 대해 다양한 해석이 있을 수 있지만 우리는 사라가 느꼈을 감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이 사건을 설명하며 “그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박해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다”라고 말했다. 결국 사라는 계집종과 그 아들을 내보내라고 요구했다. “계집종의 아들이 자유하는 여자의 아들과 함께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는 말과 함께였다. 이 사건은 하나님의 구속 역사가 하갈과 이스마엘이 아니라 사라와 이삭을 통해 이어질 것임을 보여준다. 제3장 울음을 들으시고 길을 여시는 하나님 하갈은 애굽 사람으로 사라의 몸종이었다. 사라의 배려로 아브라함에게서 아이를 낳게 되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의 위치를 잊고 교만해졌다. 결국 하갈과 이스마엘은 집에서 떠나 광야로 나가게 된다. 성경은 이 사건을 통해 인간이 받은 축복을 잘못 사용하면 결국 고통과 방황의 길로 들어설 수 있음을 보여준다. 광야에서 물과 양식이 떨어지자 하갈과 이스마엘은 큰 소리로 울었다. 그때 하나님은 그들의 울음을 들으시고 그들에게 샘물을 발견하게 하셨다. 이 장면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울음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들으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우리 인생 역시 광야와 같은 세상 속을 살아간다. 때로는 길을 잃고 방황하며 지치고 넘어지기도 한다. 영혼이 어두워지고 은혜에서 멀어지는 순간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울부짖는 자의 기도를 들으시는 분이시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양식과 물과 같다. 그러나 그것들은 언젠가 끝이 있다. 인생은 그림자처럼 지나가며 아침 안개와 뜬구름처럼 사라진다. 혹시 아직 가죽 부대의 물이 남아 있는 것처럼 세상의 자원에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방종과 낭비, 방황과 사치로 살아온 삶을 돌아보고 하나님 앞에 회개해야 한다. 지금 우리는 하나님께 “주여”라고 부르짖으며 간절히 기도해야 할 때이다. 오늘날 세계는 혼란 속에 들어가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두려움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때일수록 우리는 하나님 앞에 울며 기도해야 한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한다. 우는 자는 결코 헛되이 울지 않는다. 고난의 눈물 없이 영광의 면류관도 없다. 하나님은 우리의 울음을 보시고 샘물을 준비하시며 결국 우리에게 웃음을 허락하시는 분이시다. 결론: 울음 끝에 주시는 하나님의 웃음 지금 우리는 절박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해야 할 때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43장 18-19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라.”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울며 부르짖을 때 하나님께서는 광야에 길을 내시고 사막에 강을 내시며 마침내 우리 삶에 참된 웃음을 허락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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