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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 그리스도교 분파 이야기/강 춘 오 목사(발행인)-28
    시리아 정교회·콥틱 정교회·아르메니아 정교회 등 단성파 교단들 동양 정교회 (Oriental Orthodoxy)본 분파 이야기 6회(2019년 3월 22일) 단성론파의 분열을 다루었다. 그것은 단성론파의 네 지류, 즉 이집트의 콥틱파, 시리아의 야곱파, 레바론의 마론파, 아르메니아파가 그것이다. 이들은 고대 에큐메니칼 기독론 논쟁 당시 451년 칼케톤에서 모인 양성론 논쟁에서 단성론을 채택한 교회들이다. 이들을 동방 정교회와 구별하여 ‘오리엔트 정교회’(Oriental Orthodox Church) 혹은 ‘동양 정교회’(Oriental Orthodoxy)라고 부른다. 이 교회들은 칼케톤공의회의 그리스도는 참 하나님이시고, 또한 완전한 사람이라는 양성론(兩性論)을 부정하고, “그리스도의 인성은 신성에 흡수되었으며, 그리스도는 완전한 하나님이시다”라는 단성론(單性論)을 따른다. 그런 의미에서 단성론파의 분열과 꼭지를 달리하여 동양 정교회라는 이름아래 다시 정리하고자 한다.1. 시리아 정교회(Syriac Orthodox Church)시리아 정교회는 안디옥(오늘의 안티오키아)의 총대주교를 수장으로 하는 교회이다. 이 교회는 오랫동안 ‘야곱교회’ (Jacobite Church)로 불리우다가 2000년 교회 회의에서 ‘시리아 정교회’로 이름을 바꾸었다. 단성론파의 주교 야코부스 바라다이오스(Jakobus baradaios, 500-578)는 에데사 동부 델라에서 태어나 니시비스에 있는 파실타수도원에서 교육을 받았다. 그는 542년경 에데사 주교로 축성되었으나 단성론을 지지함으로써 이단으로 정죄되었다. 그에게 바라다이(누더기옷)라는 별명이 붙은 이유는 로마 군대의 체포를 피해 누더기옷을 입고 나일강에서 유프라테스강에 이르는 지역을 피신해 다녔기 때문이다. 그는 유랑생활을 하면서 설교를 하고, 수도원을 세우고, 사제를 임명했다. 시리아 정교회는 지정학적으로 동서 문명의 교류가 활발한 지역에 위치해 있어서 시, 찬송, 문학 등이 발달하고, 사제들은 독서와 기도와 명상 등 엄격한 수도원 생활을 수행하며, 시리아어를 예배용어로 사용하고 있다. 또한 중동의 이슬람과도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시리아 정교회는 1960년부터 WCC에 가입해 활동하고 있다.시리아 정교회는 시리아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인도 케랄라 주에도 시리아 정교회가 있다. 이를 말랑카라 시리아 정교회(Malankara Orthodox Syrian Church)라고 부른다. 이 교회가 고대 동방선교를 담당했던 사도 도마교회로 알려진 교회이다. 사도 도마는 1세기 중엽에 인도에 복음을 전파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도마는 처음에 북부 인도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후에는 인도 남부 케랄라 주 코친(Cochin) 근방에 상륙하여 선교했다. 코친에는 당시에 유대교 회당이 있었다. 그 때가 주후 52년경, 그는 그곳에서 주후 72년 순교할 때까지 20여년간 동방선교에 주력했다. 도마의 신앙을 따르던 인도의 기독교인들은 16세기 포루투칼 선교사들이 그곳에 도착할 때까지 그들의 신조를 유지했다. 그러나 교황의 통제 아래 있는 포루투칼은 인도 교회를 라틴 교회의 구조 안에 끌어들이기를 열망했다. 그리하여 포루투칼측은 1652년 3월 시리아에서 온 고위 성직자 아하탈라를 구금하고 고문했다. 이 일로 인도 교회 사제들은 1653년 1월 코친에 있는 마탄체리 성모교회에 모여 포루투칼 국왕의 지배에서 교회의 정신적, 행정적 그리고 자율성을 회복하기로 결의했다. 그것이 오늘날 말랑카라 시리아 정교회가 된 것이다. 이 정교회는 1948년부터 WCC에 가입했다. 2. 이집트의 콥틱 정교회(Copts)이집트의 콥틱 정교회는 주후 42년경 마가복음을 기록한 마가에 의해 설립된 교회로 전해진다. 그 때는 로마 황제 네로가 재위하던 시기이다. 마가는 처음에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했으나 차츰 이집트 원주민들이 복음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 이집트 원주민을 콥틱족이라 한다. 그들은 고대 파라오의 후손들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콥트(copt)라는 뜻은 ‘Egypt’를 이르는 말이다. 콥틱 정교회를 대표하는 총대주교좌는 알렉사드리아에 있다. 그는 ‘알렉산드리아와 아프리카 총대주교’라고 부르며 ‘교황’이라는 호칭을 갖고 있다. 콥틱 정교회는 세계적으로 약 2000만명 정도의 신자가 있으며, 이집트에는 약 1500만명 정도가 있고, 나머지는 미국과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프랑스, 독일 등에 흩어져 있다. 이들 중에는 지식인과 상업에 성공한 사람들이 많다. 이집트의 콥틱 정교회는 기독교 세계에 두 가지 큰 공헌을 남겼다. 초기 알렉산드리아 교리학교는 가장 오래된 신학교육 기관이었다. 이 교리학교는 주후 190년경 판타내우스의 지도 아래, 아테네의 아테네고라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 교부 오리게네스 등 성경 주석과 비교학 분야에서 특출한 신학자들을 배출했다. 이 학교는 단지 신학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고, 과학과 수학, 인문학 등도 가르쳤다. 다른 하나는 수도원이다. 3세기 안토니오(251-356)와 파코미오(290-346)에 의해 이집트에서 시작된 수도원은 사막 교부들의 교육과 저술 활동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639년 이슬람이 이집트를 침공해 정치적 격변기가 있었으나 이집트인들은 대부분 그리스도인으로 남았다. 이집트의 우마이야 왕조는 상인들이 이슬람교를 믿도록 유도하기 위해 세금정책으로 콥틱 교도들의 경제적 기반을 약화시켰다. 그러나 콥틱 교회는 사라지지 않고 이집트 국민의 약 15%에 이르는 최대 그리스도 교파를 형성하고 있다. 이슬람 점령 이후 현대 했기까지 많은 박해를 받은 교회이다. 콥틱 정교회는 1948년부터 WCC에 가입했다. 또 에디오피아 정교회는 본래 이집트의 콥틱 정교회의 지도를 받았으나, 1959년 콥틱 정교회 총대주교 키릴로스 6세에 의해 에디오피아 테와히도 정교회라는 이름으로 독자적인 총대주교좌를 갖게 되었다. 또 에리트레아에도 콥틱 정교회가 있다. 이 교회는 에리트레아 테와히도 정교회라는 이름으로 1994년 에디오피아 정교회에서 독립하여 총대주교좌를 가졌다. 에리트리안 정교회는 2003년부터 WCC에 가입해 있다. 콥틱 정교회, 에디오피아 정교회, 에리트레아 정교회, 이 세 교회는 오리엔탈 정교회들과 상호 성사 교류를 하고 있으며, 다만 알렉산드리아의 총대주교를 으뜸 주교로 인정하고 있다. 에디오피아(Ethiopia)에는 인구가 약 1억1950만명이고, 홍해를 끼고 있는 에리트레아(Eritrea)는 인구가 약 360만명인데, 에디오피아 교회는 교인수가 약 2900만명이고, 에리트레아에는 180만명 정도의 교인이 있다. 3. 아르메니아 사도교회(Armenian Apostolic Church)아르메니아 정교회라고도 불리는 이 교회는 사도 바돌로매와 다대오가 복음을 전했다는 전통에 근거하여 '사도 교회'라는 이름이 붙었다. 아르메니아는 계시자 성 그레고리우스가 주후 300년경 아르사키드 왕 타리다테스 3세를 개종시킴으로써 역사상 최초의 그리스도교 국가가 되었다. 아르메니아는 로마제국이 392년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하기 90년 전 주후 301년에 이미 기독교를 국교로 받아들였다. 이 교회는 처음에는 카파도키아의 카이사리아 교회의 지도를 받으며 시리아 문자를 사용했는데, 5세기에 이르러 성 메스로프가 아르메니아 문자를 만들고 성경을 아르메니아어로 번역했다. 이들은 506년 지방회의인 드빈 공의회에서 그리스도의 인격이 두 개의 본성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 칼케톤 공의회(451년) 의 결정을 반대했다. 그리스도가 오직 '말씀이 육신이 된' 한 가지 본성(신성)만 가졌다고 주장하는 단성론 입장을 견지한 것이다. 그리하여 아르메니아 교회는 정통파 가톨릭으로부터 떨어져 나가 이집트의 콥틱 정교회와 시리아의 야곱파 교회와 교제했다. 계시자 성 그레고리우스와 그를 계승한 처음 주교들은 에치미아진(Echmiadzin)에 총대주교좌 관구(교회 최고행정부)를 두었다. 그 후 485-927년까지는 드빈으로 옮겼다가, 그 뒤 여러 곳으로 전전했다. 아르메니아 정교회는 총대주교를 '가톨리코스'(katholikos)라고 부르는데, 가톨리코스는 보편적 교회를 뜻하는 가톨릭이라는 말의 어원이다. 아르메니아 정교회에는 교권과 정치적 이해 관계로 오늘날도 아르메니아 교회를 대표하는 두 명의 가톨리코스가 있다. 하나는 모든 아르메니아인들의 최고 가톨리코스로서 에치미아진에 관구를 두고 있고, 다른 하나는 시스(sis)의 가톨리코스로서 현재 레바논 안텔리아스(Antelias)에 관구를 두고 있다. 일반적으로 아르메니아 전체 교회의 수장으로 인정되는 사람은 에치미아진에 있는 가톨리코스이다. 그러나 아르메니아 민족주의자들은 레바논의 안텔리아스에 있는 가톨리코스를 지원한다. 아르메니아 교회가 총대주교좌가 둘로 나누어진 것은 정치적 문제와 연관이 있다. 전통적으로 에치미아진의 총대주교 가톨릭코스가 현재 실질적인 최고 의장 주교의 역할을 수행한다. 동로마 시대인 1293년 킬리기아 수도 시스로 가톨리코스 관구를 옮겼다. 동로마 제국 시대에 터키 동남부 킬리기아 지방엔 아르메니아인들이 많이 살았을 뿐 아니라, 한때는 그곳에 아르메니아 왕국이 세워졌다. 그래서 이곳에 가톨리코스 총대주교좌가 설치되었는데, 이후 1441년 에치미아진에 총대주교가 다시 선출되었다. 총대주교좌가 에치미아진과 시스로 나누어진 것이다. 그후 1894년부터 3년동안 계속된 오스만 제국의 박해와 1915년 터키의 인종청소로 아르메니아인이 100만에서 200만명이 학살당했다. 이로 인해 아르메니안 디아스포라와 함께 시스의 가톨리코스가 레바논 안텔리아스로 옳겨가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그리고 예루살렘과 이스탄불에도 총대주교청이 있다(사실상 총대주교가 넷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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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3-27
  • 특별기고/제103회 총회의 개정헌법 등 소고 ⑭
    「종용히」란 옛 표현 왜 「조용히」로 못 바꾸나?교인의 권리, 청원·소원·상소는 해도 고소는 못하나승전) 제3조 연구위원회 총회는 의안을 각 노회에 수의하기 전에 목사와 장로로 연구위원 15인 이상에게 위촉하여 1년간 그 수의건을 연구하여 보고하게 할 것이요, 연구위원은 한 노회에 2인을 초과하지 못한다. 제4조 소속노회 3분의 1 이상이 헌법을 개정하자는 헌의를 총회에 제출하면 총희는 그 의안을 각 노회에 보내고, 그 결정은 위의 제1, 2조를 준용한다. ⇒제4조 전국노회 3분의 1 이상 개헌 헌의 전국노회 노회수 3분의 1 이상이 헌법을 개정하자는 헌의는 총회 각 노회에 수의해야 하고, 그 결정은 제2~3조를 준용한다. 헌법적 규칙 제1조 미조직교회 신설립 일정한 구역 안에 예배 장소를 준비하고 장년 신자 15인 이상 합심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신봉하며 교회 신설(新設)을 원하는 때에는⇒ (일정한 구역 안에 예배장소를 준비하고 장년신자 15인 이상 (1976년 판의 오류)…15인 이상이 합심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신봉하며, 교회신설(新設)을 원하는 때에는, 다음과 같은 사항을 기록하여 그 구역 시찰회 경유(經由)로 노회에 청원하여 인가를 받는다⇒ (1964년 판의 오류) 노회에 청원하여 인허를 받는다. 만일 신자가 15인 미만 되거나 예배 장소가⇒ (1964년 판의 오류) 만일 신자가 15인 미만이거나, 예배장소를 준비하지 못한 때에는 기도의 처소로 하여 부근 어느 교회의 도움을 받는다. 1. 신설 교회 위치⇒ 신설교회 위치 7. 교회 유지 방법⇒ 교회 유지방법 제2조 교인의 의무 1. 교인은 교회의 정한 예배와⇒ (1964년 판의 오류) 교인은 교회가 정한 예배와, 교회 집회에 (교회집회)에 출석하여야 한다. 6. 교인은 진리를 보수(保守)하고 교회법규를 잘 지키며, 교회 헌법에 의지하여 치리함을 순히 복종하여야 한다⇒ (1964년 판의 오류)… 교회헌법에 의한 치리에 순복해야 한다. 제3조 교인의 권리 교회의 주권과 모든 권리는 교인에게 있다.1. 교인은 교회 헌법대로 순서를 따라 청원 소원(訴願) 상소할 권리가 있다⇒ (1964년판의 오류) 교인은 교회헌법대로 순서를 따라 청원, 고소, 소원(訴願), 상소할 권리가 있다. <이유> 소원은 행정처결의 시정과 변경을 구하는 것이고, 상소는 판결의 취소나 변경을 구하는 것인데, 행정처결의 시정 혹은 판결의 취소나 변경을 구할 수 있음 같이 판결을 구하는 고소권도 있는데, 왜 이것을 빼앗는가? 상소는 해도 고소는 못한다가 맞는가? 2. 교인은 지교회에서 법규대로 선거 및 피선거권이 있다. 그러나 무고히 6개월 이상 본 교회 예배회에 계속 출석치 아니한 교인은 위의 권리가 중지된다⇒ (1964년 판의 오류)…그러나 특별한 사고 없이 본교회 예배에 6개월 이상 계속 출석하지 아니한 교인은 위의 권리가 중지된다. 3. 무흠 입교인은⇒ (무흠입교인은) 성찬에 참례하는 권한이 있다. 4. 교인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분량(分量)에 따라 일할(奉仕) 특권이 있다⇒ 교인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받은 은혜와 은사에 합당하게 봉사할 특권이 있다. 제4조 주일 예배회⇒ (주일예배 의식) <이유> 예배모범 제2장의 규정도 「교회의 예배의식」이다. “회”보다 의식이 옳아 보인다. 1. 종용히⇒ (1976년 판의 오류) 조용히 묵도로 예배를 시작하며… 2. 이상한 동작과 경건하지 못한 태도로 찬송이나 찬양을 인도하여 예배의 신성함을 감손(減損)하게⇒ (훼손(毁損)하게 하지 말 것) 4. 주일 예배 시간에⇒ (주일예배 시간은 온전히 하나님께만 예배하는 성일이니) 어떤 개인을 기념, 축하, 위안, 치하하는 예배를 행치 말고 온전히 하나님께만 예배하여야 한다⇒ (…위안, 치하하는 일을 하지 못하고, 온전히…) 5. 주일에 음식을 사 먹거나 모든 매매하는 일은 하지 말며⇒(주일에는 매식(買食)하는 등 모든 매매하는 일은 하지 못하며, 연회나 세속적 쾌락을 삼가며⇒ (1964년 판의 오류) 연회나 세속적 오락을 구하지 아니하며(사 59:13~14), 힘써 전도, 위문, 기도, 성경과 종교서적⇒ (신앙서적)을 열람하는 일로 시간을 보내야 한다. 제5조 학습(學習)⇒ (학습문답) 1. 연령이 만 14세 이상 되고 믿은지 6개월이 경과되어 독실한 자는 학습인 고시를 받을 자격이 있다⇒ (1964년 판의 오류) 연령이 만 14세 이상이 되고, 6개월 이상 본교회 예배에 계속 출석한 자로 그 믿음이 진실하게 여겨지는 자는 학습교인 문답을 받을 자격이 있다. 제6조 성례(聖禮) 1. 신앙이 독실하고 학습원으로 6개월간 근실히 교회에 출석하면 세례 문답할 자격이 있다⇒ (1. 학습교인으로 6개월 이상 본교회 예배에 계속 출석한 자로 신앙이 독실히 여겨지는 자는 세례문답을 받을 자격이 있다. 2. 만 6세까지 유아세례를, 만7세 부터 13세는 어린이 세례를 줄 수 있으되, 부모 중 한 편만이라도 세례교인이면 (혹은 입교인이면) 줄 수 있고, 부모 부재시 당회의 허락으로 가능하다⇒ (2018년 제103회 총회 개정헌법이 오류) 만6세까지는 어린이세례를, 만7세부터 만13세까지는 아동세례를 줄 수 있으되, 부모 중 한편만이라도 세례교인이어야 한다. <이유> 유아란 젖먹는 아기를 가리키는데, 만6세까지 젖먹는 아기가 있는가? 그래서「어린이세례」라고 하고, 대개 12세까지의 아이를 아동(兒童)이라고 하니…(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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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별기고
    2020-03-27
  • 특별기고 / 신천지 예수교 증거장막성전(신천지) 이만희의 비성경적인 교리 ⑱
    ◎ 14만 4천인은 인(印) 맞은 자들이다. “내가 인 맞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맞은 자들이 십 사만 사천이니”(계 7:4) 1. 왜? 인침을 받아야 하는가?“저희에게 이르시되 땅의 풀이나 푸른 것이나 각종 수목은 해하지 말고 오직 이마에 하나님의 인 맞지 아니한 사람들만 해하라 하시더라”(계 9:4) 땅의 풀이나 푸른 것이나 수목은 해(害)하지 말고 라고 하였는데 풀이나 수목이란 무엇인가?“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 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니”(마 13:34) “이것을 비사로 너희에게 일렀거니와 때가 이르면 다시 비사로 너희에게 이르지 않고 아버지에 대한 것을 밝히 이르리라”(요 16:25) 때가 왔다면 비유로 기록된 말씀을 실상으로 알아야 한다. “모든 육체는 풀이요” (사40:6)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사40:7)“이 백성으로 나무가 되게 하리니”(렘 5:14)풀과 수목은 기록된 말씀과 같이 사람을 비유하였고, 푸른 풀과 푸른 나무가 건강한 것과 같이 영적으로 건강한 신앙을 소유한 백성을 푸른풀, 푸른 나무로 비유하였다.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 때에 인침 받은 푸른 풀(초로인생), 수목(명문 있는 신앙)은 인침 받은 자로서 창조이후 전무후무한 환난 때에(마24:21) 해(害)를 입지 아니한다는 것은 악한 자들로부터 상함을 받지 아니하는 축복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침 받은 자들은 환난을 피하기 위하여 밀실에 들어갈 필요도 없고 공중 휴거도 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겔9:4~6에 죽음의 사자에게 이마에 표가 있는 자들에게는 가까이 하지 말라고까지 하였다. ◎ 인침을 받는 자는 환난 때에 해(害)를 받지 아니하기 위하여 인침을 받는 것이다. 신천지 교인들은 5~6년 전 14만 4천이 차면 천국이 온다고 외치고 다녔다. 또한 이만희씨는 1987년 9월 14일 새 하늘과 새 땅 신천지가 온다고 예언하였지만 현재 신천지 신도들은 30만 신도로서 14만 4천의 배가 부흥했음에도 3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아직 천국은 오지 아니하였다. 이는 천당사기꾼에 해당한다. 2. 14만 4천에 대한 신천지의 모순된 해설이단 신천지의 거짓 증거각각 인맞은 목자(제사장), 죄 사함 받은 성도들이다.신천지는 14만 4천을‘각각 인 맞은 목자(제사장) 죄 사함 받은 성도들이다’라고 하였다. 14만 4천들만이 인침 받은 자들로서 그리스도의 나라에서 왕권 받은 자들이요,(계7:4~8, 계20:4) 천년왕국에 들어갈 자들이다. 그러나 예수의 피로서 옷을 씻은 성도들은 14만 4천 반열에 들어갈 수 없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계20:6) 그러므로 예수의 피로 옷을 씻은 성도들은 인침을 받은 14만 4천 반열에 들어 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예수의 피로 옷을 씻은 성도들은 인침을 받은 자들이 아니므로 그리스도 나라에도 들어갈 수 없다. 성경에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 된 자들만이 천년 왕국에 들어간다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노릇 하리라”(계20:6) 성경 기록에는 제사장들만이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년동안 왕노릇 한다고 하였기 때문에 인침을 받지 못한 평신도들은 제사장이 아니므로 천년왕국에 들어갈 수가 없다고 하였다.(계20:6) 그러나 신천지 교리는 14만 4천에 대하여 각각 인맞은 목자(제사장), 죄 사함을 받은 성도들이라고 하였으므로 성경적 거짓말을 한 성령을 거역한 죄를 범한 자들이 된다.(마12:31~32) 14만 4천이 죄 사함 받은 성도들이라고 주장하는 신천지는 성경에 반(反)하는 적그리스도의 무리들이다. 신천지의 교인들은 성도(거룩한 무리)가 될 수도 없지만, 비록 예수의 피로 옷을 씻은 성도들이라고 할지라도 14만 4천 외에 인침 받은 자들이 아니므로 제사장들만 들어간다고 한(계20:6) 천년왕국에 제사장이 아닌 일반성도는 단 한명도 들어갈 수 없다. 3. 이단 신천지의 14만 4천에 대한 모순된 해설이단 신천지의 모순된 해설계 7장과 14장의 십사만 사천 명은 계 6장과 같이 해·달·별(영적 이스라엘, 창 37:9-11 참고)이 심판받아 끝난 후, 씨 뿌린 밭(교회)에서 처음 익은 열매로 추수되어 새 언약의 말씀으로 인 맞은 영적 새 이스라엘 12지파의 새로운 제사장(목자)들이다(계 7:1-8).기록된 말씀은 계7장과 14장의 14만 4천 씨 뿌린 밭(신천지교회)에서 처음 익은 열매라고 하였는데, 성경의 기록은 씨 뿌린 밭 신천지 교회의 열매라고 기록된 말씀이 없기 때문에 거짓말을 한 것이다. 성경의 기록에는 14만 4천은‘사람 가운데 첫 열매’라고 기록되었다.(계14:4) 그러므로 신천지 이만희는 성경과 다른 새빨간 거짓말을 한 것이다. 딤전 4:1에서 거짓말을 하는 자는 귀신의 가르침을 받은 자라고 하였고,계22:15에서는 거짓말을 지어내는 자는 개들(사56:11)과 함께 성 밖에 있을 것이라고 하였고(계22:15)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고 하였다.(마8:12)※ 14만 4천의 인침 받은 자들은 어떤 자들인가? ① 14만 4천은 시온산에 어린양과 함께 있는 자들이라고 하였다.(계14:1)② 보좌와 네 생물 앞에서 새노래를 부르는 자들이라고 하였다.(계14:3)③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들이라고 하였다.(계14:4)④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들이라고 하였다.(계14:4)⑤ 사람 가운데서 구원을 받은 처음 익은 열매들이라고 하였다.(계14:4)⑥ 입에는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라고 하였다.(계14:5)1987년 9월 14일 신기원의 날 신천신지가 온다고 예언한 이만희 씨는 입에서 거짓말을 한 거짓 목자이므로 이만희를 따르는 자들은 단 한명도 14만 4천인 반열에 들어갈 자들이 없다. 4. 한입가지고 두 가지 소리를 하는 뱀의 소리다. 뱀은 한입의 혀끝이 둘로 갈라져 있기 때문에 여자에 대하여 선악과를 따먹어도 죽지 않는다고 거짓말을 하였고(창3:4) 뱀이 여자에게 선악과를 먹으면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분변 할 수 있다고 하였다.(창3:5) 뱀의 이 말은 참말을 하였으므로 뱀의 예언과 같이 선악과를 먹은 여자와 아담의 눈이 밝아진 것이다.(창3:7) ◎ 신천지의 이만희 씨의 두가지의 말인 맞은 14만 4천은 목자(제사장), 죄사함을 받은 성도들이라는 거짓말을 하였고, 또한 이 일 후(계7:9)을 인용하여 14만 4천명은 셀 수 없는 흰 무리와 같은 존재가 아님을 분명히 알 수 있다고 참말을 하였다. 이로서 신천지 교주 이만희는 참말과 거짓말을 하는 뱀의 혀 같은 존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백성을 인도하는 자가 그들로 미혹케 하니 인도를 받는 자가 멸망을 당하는도다”(사 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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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3-27
  • 세계 그리스도교 분파 이야기/강 춘 오 목사(발행인) -28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기본으로 한 회중교회주의 신앙선언 채택회중교회주의 Congregationalism회중교회(會衆敎會, Congregational Church)는 특정 지도자가 중심이 된 감독체제 교회(에피스코팔처치)나 교인 중에 지도자를 선택해 교회를 치리하는 대의제 교회(장로교회)가 아니라, 전체 회중의 의견에 따라 교회의 결정과 정치가 이루어지는 교회이다. 이를 조합교회(組合敎會)라고도 한다.회중교회주의의 역사회중교회주의는 17세기 초 영국에서 일어난 청교도운동의 한 부분에서 태동했다. 청교도운동의 목표는 영국 교회에서 종교개혁을 완성하는데 있었다. 이 가운데 회중주의자들은 종교개혁의 모토인 만인사제론을 실천하는데 큰 관심을 가진 자들이었다. 이들의 정치적 영향력은 만인사제론을 지지한 올리버 크롬웰의 후원으로 1650년대에 절정에 달했다. 그러나 1658년 크롬웰이 죽고 난 후 그 세가 급격히 기울어져 1660년 왕정복고와 함께 폐지되었다. 그후 1689년 윌리엄과 메리가 즉위하고, 신앙의 자유 법령이 통과되어 비국교도들과 함께 회중교회주의자들도 관용을 얻게 되었다.그러나 신앙의 자유를 위해 투쟁하는 과정에서 열정도 식어 18세기 전반에는 영국의 회중교회주의자들은 유명무실했다. 그러다가 18세기 중엽부터 시작된 복음주의 부흥운동의 영향으로 새로운 활기를 얻어 1832년 잉글랜드와 웨일즈의 회중교회연맹이 결성되는 중요한 전한점을 맞이했다.회중교회주의가 공적으로 큰 영향력을 발휘한 것은 미국에서였다. 회중교회주의는 식민지시대 초기에 두 가지 형태로 미국에 심어졌다. 하나는 플리머스 식민지의 순례자들로, 자신들의 교회정치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 영국국교회를 이탈한 사람들이고, 다른 하나는 국교회를 자기들의 이상에 따라 개혁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었다.미국의 회중교회는 다른 교회들과 연합에 힘썼다. 19세기 초에는 장로교도들과 연합하기도 하고, 1871년에는 ‘전국회중교회협의회’를 창립하기도 했다. 이 협의회는 1931년 ‘그리스도교회총회’와 연합하고, 또 1961년에는 복음주의 개혁파 교회와 연합하여 ‘연합그리스도교회’를 탄생시켰다. 이것은 독일 루터파와 개혁교회의 배경을 가진 강력한 공동체로서 유명한 현대신학자 라인홀드 니이버나 폴 틸리히 같은 걸출한 신학자들을 배출했다.회중교회는 전세계적인 교회로 발전하지는 못했으나 영어권의 모든 나라에는 전파되었다. 회중교회는 1925년에 캐나다 연합교회가 형성되는데 도움을 주었고, 1947년 남인도교회 설립에 역할을 했으며, 1970년대에는 ‘국제회중교회연합회’를 통하여 네덜란드와 스웨덴 등의 형제교회들과도 유대를 다졌다.회중교회의 질서와 원칙들회중교회는 성서에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을 교회의 본질적인 것으로 간주하여 선교에 항상 중요성을 둔다. 대부분의 프로테스탄트가 그렇듯이 세례와 주의 만찬 만을 그리스도에 의해서 제정된 성례전으로 간주한다. 또한 유아세례도 인정한다. 주의 만찬은 보통 한달에 한 번이나 두 번 행해지며, 설교와 성례가 하나로 합쳐지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회중교회는 다음과 같은 원칙들이 강조된다.1. 회중교회는 특수한 회중의 영적 자율성의 원칙을 중요시한다. 모든 신자들이 자발적으로 같이 모여 종교적 명령들을 지키며, 상호간의 교화와 거룩을 조장하며, 온 세상에 복음을 영존시키고 보급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예배를 증진시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또 신자의 각 단체가 이러한 것을 목적으로 모인 단체이면 그 단체는 올바른 그리스도 교회임을 믿는다.2. 회중교회는 신약성서가 명백한 성문의 형식으로, 또는 사도들과 사도적 교회의 모범과 실천사항들로서 믿을 수 있는 신앙의 조목들과 그리스도 교회를 다스릴 수 있는 필요한 질서와 원칙들을 담고 있다고 믿으며, 인간의 전통과 교부들과 회의들과 교회 법률과 신조들이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실생활에 대하여 아무 권위도 갖지 않음을 믿는다.3. 회중교회는 교회의 기초에 있어서 기본적인 요인으로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이라는 인식에 기초한다. 그리스도가 교회의 유일한 머리이며, 교회의 역원목회자 들은 그리스도 아래에서 그의 법을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하게 다스리도록 임명을 받았으며, 또 그들이 종교적 신앙과 실천에 저촉되는 모든 질문들에 있어서 호소할 곳은 성서뿐임을 믿는다.4. 회중교회는 신약성서가 개체 교회마다 그 자체의 역원들을 선택하며 그 자체의 모든 일을 처리하고, 교회의 머리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모든 권위에서 독립하며 또 모든 권위에 대하여 책임지지 않음을 믿는다. <중략> 10. 회중교회들은 회원들이 한 몸의 지체들로서 서로서로 친교를 나누고 확대한 사랑을 즐기며 그리스도인의 일을 추진하는 것이 교회들의 의무이지만, 어느 교회나 교회 연합이 어느 한 개체 교회의 신앙이나 기강을 방해할 권한을 갖지 않으며, 다만 신앙과 기강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으로부터 떠난 사람들을 분리시킬 수 있을 뿐이라고 믿는다.회중교회 신조1. 케임브리지 헌장(1648년) 케임브리지 헌장(Cambridge Platform)은 영국의 청교도 칼빈주의자들 중에서 회중교회 제도를 채택한 사람들이 영국의 식민지 뉴잉글랜드 주로 이민해온 회중교회 정치 헌장이다. 이들은 이민 와서 회중교회를 세우고 1646년 9월 1일 최초의 노회를 설립했는데, 그것이 케임브리지 노회이다. 이 노회는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을 그대로 받아 회중교회 신조로 삼았으나 교회 조직과 행정은 회중교회 형식을 취했다.케임브리지 헌장의 특색은 개체 교회의 자율성을 충분히 인정하고 있다. 개체 교회는 자발적으로 모여든 신자들의 자발적인 합의에 따라 조직되었는데, 그 합의를 계약이라고 불렀다. 이 계약은 단순히 계명에 따라 같이 예배하며 피차 형제애에 충실할 것을 담고 있다.개체 교회는 신앙고백이나 교리 문제에 있어 대체로 자유로워 타 교회나 노회의 간섭을 받지 않았고, 개체 교회의 행정은 완전독립에 가까운 것이었다.처음에는 직제를 목사, 교사, 장로, 집사로 했으나, 나중에는 교사와 장로의 직제가 없어졌다.이 헌장은 제1장 교회 행정 체제, 제2장 개체 교회의 공동교회적 본성, 제3장 지상의 가시적 교회, 제4장 가시적 교회의 체제와 교회 계약, 제5장 교회의 권의 주체, 제6장 교회직제, 제12장 회원의 교회 가입, 제15장 교회들 사이의 친교 등이 명시되어 있다.2. 사보이 선언(1658년) 회중교회는 일찍부터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부분적으로 수정하여 받았으나, 정치와 조직 면에서는 장로교와는 달리 개교회주의적 성격을 띠고 있었다. 그래서 1648년 케임브리지 헌장에 이어, 1658년에 런던의 사보이관에서 사보이 선언(The Savoy Declaration of the Congregational Church)을 발표했다.그 내용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20장에 “복음과 그 은혜의 한도”라는 제목을 첨가하고 또 몇 가지 조항을 수정한 것이다. 그래서 회중교회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34장으로 되어 있다.제20장 복음과 그 은혜의 한도에 관하여 ① 행위의 계약이 죄 때문에 파괴되어 사람에게 불리하게 되었으므로 하나님은 선택된 자를 불러서 신앙과 회개를 갖게 할 방편으로 여자의 후손인 그리스도의 약속을 그들에게 주기를 원하셨다. 이 약속에서 복음은 그 본질에 관하여 제시되었으며, 죄인들의 회심과 구원을 위하여 필요한 것이다.② 그리스도의 이 약속과 그로 말미암은 구원은 다만 하나님의 말씀 안에, 또 그 말씀을 통해서만 계시되었다. 자연의 조명만으로는 창조와 섭리의 역사가 그리스도와 그를 통한 은혜를 발견하게 해주지 못하고, 다만 일반적 혹은 애매한 방법으로밖에 조명할 뿐더러, 그 약속과 복음에 의한 하나님의 계시를 갖지 못하는 사람이 그것으로 구원의 신앙이나 회개를 얻기는 더욱 어렵다.③ 죄인들을 위하여 주신 복음의 계시는 그것을 받는 사람들에게 요구하는 복종을 위한 약속들과 교훈들을 포함하고 있다. 이것은 다 하나님의 주권적 의지와 선한 기쁨에서 나온 것이어서 인간의 자연적 능력을 적당하게 개선하기 위한 어떤 약속이나, 또는 자연적으로 받은 일반적 조명과는 혼동될 수 없는 것이다. ④ 복음이 그리스도와 구원의 은혜의 외견적인 방편이며, 또 아주 충족한 것이지만 죄 가운데서 죽은 사람들이 다시 태어나거나 살아나고 혹은 중생하여 하나님에게로 가는데 충분하고 유일한 방편은 성령의 불가항력적이고 효과적인 역사 뿐이다.한국기독교와 회중교회미국 회중교회는 교육에 깊은 관심을 갖고 하바드 대학교, 예일 대학교, 윌리엄스 대학교 등 유수한 대학들을 설립했다. 그러나 한국에 선교사를 직접 파송하지는 않았다. 다만 일본에는 1886년 회중교회가 창설되었으나 1904년 러일 전쟁 이후 일본 조합교회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리고 1910년 한일합방 조약 이후 조선을 전도지역으로 선정하고 서울과 평양에 조합교회를 설립했다. 이 조합교회는 조선총독부의 예산지원으로 유지되다가 1921년 다시 조선회중교회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조합교회의 친일 행위가 문제가 되어 1945년 해방과 함께 해체되었다. 오늘날 회중교회주의 정치원리를 가진 교회는 ‘회중교회’ 외에도 침례교회, 그리스도의 제자회, 그리스도의교회, 형제교회 등 다양한 교단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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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3-16
  • 목회성공과 교회부흥의 그 비결 2
    1. 목사의 성결과 자비의 생활(2)(1) 연락생활의 장사요청중국의 홍자성(수양서 저술가)은 말하기를 “향락은 일시적은 좋지만 결과는 슬픈 것이니 빨리 떠나라”했다. 빨리 떠나라, 빨리 떠나라 그 생활을!연락생활이란 무엇인가? 세상이 말한 주색잡기인데, 육신(육체)의 쾌락생활, 죄성을 가진 인간을 즐겁게 하는 생활, 그것이다. 이를 일락, 향략, 육신의 쾌락, 환락, 육체의 일, 육신대로 삶, 육신의 정육, 육신의 생각, 세상과 벗됨 등으로 설명한다. 이제 연락생활의 그 비참함을 보자? 삼손과 고멜, 탕자와 솔로몬, 은나라 주왕과 달기, 주나라 유왕과 포사, 오나라 오왕과 서시, 당나라 현종과 양귀비, 진나라 항우와 우미인, 미국의 마릴린 몬노 등등. 우리나라 안은 말하지 말자. 왜? 다 아니까? 이 연락생활을 성경의 주 하나님은 뭐라하신지 여러분은 알게다. 갈 5:19-21에 연락생활을 포함한 15대 악덕을 거론했는데, 이는 “썩어진 것을 거둔다”했다(갈 6:8). “살았으나 죽은자”(딤전 5:6), “유황불 붙는 곳에 가고”(눅 16:19~), “사망”이요(롬 8:6), “가난하게 된다”(잠21:17),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한다”(롬 8:8), “반드시 죽고”(롬 8:13), “하나님과 원수된다”(롬 8:7). 아! 그 결과가 이렇게 무섭고도 슬프구나! 실은 연락생활 자들의 말로가 다 그러했드니라! 그들의 말로는 “원수에게 피살됐거나, 자살자결을 했거나, 업부본무에서 쫓겨났거나, 다 망하고, 가족도 죽임당하고, 도망갔거나, 기둥에 메였거나, 목메였거나, 강물에 빠뜨려 죽였거나.” 이것이 연락생활의 결과였노라! 심각하게 권고한 하나님 말씀 롬8:13, 갈 5:21 꼭 펼쳐 읽어보시기를 권고드리노라! 목사로서 연락생활 할 자가 있겠는가? 하지만 미귀의 유혹과 덫이 곳곳에 숨어 있으니까 목회성공과 교회부흥 위하여 언제나 경성함의 요청!(2) 금전생활 투명요청목회성공과 교회부흥에 있어서 금전생활의 투명성 역시 매우 조심이 요청되는 부분이다. 교회의 공금(재정)과 교인(타인)과의 거래 중에 수입지출이 “선”하고 옮지 않으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 것을 우리는 누차 보아왔다. 상당수의 교회분규 사건이 금전문제에 있지 않던가? “우리가 빈손 들고 왔다가 빈손 들고 돌아가는데” 부당한 금전 때문에 지탄을 피하는 것이 목회성공과 교회부흥에 꼭 필요! 현재 먹고 입을 것 있으면 족한 줄로 알고(딤전6:7)! 여러분! 금전생활에 투명하고 선하게! 조심 또 조심할 일! 마귀의 덫이 어디서 언제 발생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엘리사의 종 게하시, 엘리 제사장 아들들(제사제물 불량취급), 가룟 유다, 과거 통합 합동 분열 직전 양성봉 장로의 신학교 재정보고 삼천만환 사건 등을 보시라! 게하시는 문둥이 됐고, 엘리 제사장 아들들은 아벡전쟁에서 하나님이 죽였고, 가룟 유다는 돈괴맡아 도적질과 선생님 예수팔아 번돈 목칼에 걸려 써보지도 못하고 자살, 양장로 신학교 재정보고 삼천만환 사건은 총회를 갈라놓지 않던가! 이 놈의 부정 맘몬(mammon)의 덫에 걸려 죽기도 하고 감옥도 가고 세상구경 많이 시켰느니라! 우찌무라 간조(일본)는 말하기를 “도적질과 낭비와 탐함이 절도나 강도만을 말함이 아니요 무릇 하늘이 내게 주지않는 것을 내 것으로 함을 말함이다”고 했다. 죠지 뮬러를 보라! 2~3천명의 고아를 동볼 때 공급집행에 양심의 가책이 없게 66년간을 아주 선하고 투명하게 운영했다. 그 모습을 보고 많은 곳에서 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아니했다고! 또한 5만 번이나 기도응답을 받은 것도! 그러기에 고아원의 수명도, 죠지 물러 목사의 사역의 수명도 길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선한 사업 잘하시다가 93세로 우리 앞서 하나님 부름받아 가셨다. 끝으로 시무목사로서 경계사항은 “겟”돈 놀이다. 교회 내에서 교인들끼리 모여하는 곗놀이나 이에 사모님께서 주장하거나 참여하는 일은 절대 금지사항이어야 한다. 목사가 이를 막지 못하면 차후에 결과의 화가 목회에 엄청나게 미칠 것이다. 지금까지 교회 내의 겟모임으로 분쟁없는 교회없고, 사모님께서 주장 내지 가담으로 목사의 목회 타격 주지않는 일이 없었던 것을 명심하라! 타격을 주되 크게 줬느니라! 목사가 열번 잘하다가도 한번 잘못하면 용서를 싫어하는 것이 현대교회의 정서이다. 목회성공과 교회부흥 위하여 빌며 몇 말씀드리니, 행 6:11-7, 딤전 6:10, 딤전 6:17 절을 꼭 찾아 보시기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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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3-02
  • 아버지 다윗 / 암논의 강간 사건(삼하13장) ②
    이제 다윗은 많이 늙었다. 마음이 약해지고 감정적으로 너무 약해 있어서 아들의 잘못을 책망할 힘이 없었다고도 볼 수 있겠다.다윗이 아버지 역할을 못한 아버지 부재(不在)의 모습은 다말사건에서도 나타난다. 다말은 이복 오라버니 암논에게 강간 당하여 버림받았을 때, 그 슬픔과 좌절을 안고 아버지에게로 가서 어떤 하소연이나 아픔을 털어 놓지 않았다. 다말은 동복 오라버니 압살롬에게로 가서 위로를 받고 지낸다.다말에게는 아버지 다윗보다 오라버니 압살롬이 더 가까웠고 친밀하였다. 자신의 수치와 슬픔, 마음의 상처를 내어놓을 대상은 아버지가 아니고 오라버니였다. 이는 평소에 아버지 다윗이 자녀들과의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해준다. 앞으로 전개되는 내용에서도 다윗의 아버지 부재 역할은 계속 반복된다. 그는 자녀들의 문제에 대해서 자녀들의 마음을 아비에게로 아비의 마음을 자녀들에게로 돌이키는 모습이 나타나지 않는다. 결국 가정은 저주가 임하고 가정의 몰락은 정치의 몰락을 가져오는 비극을 맞이한다.아버지 부재(不在)는 어느 시대이든지 그 시대의 가장 파괴적인 흐름이다. 아버지 부재 현상으로 인해 끔찍한 사건들이 가정과 사회 안에서 발생한다. 사회과학자들은 마약중독, 실업, 자살, 폭력, 정신병, 아동학대 등이 아버지 부재와 매우 관련이 있음을 발견했다. 죄의 뿌리에는 아버지의 부재가 자리 잡고 있다. 그러므로 죄 문제는 곧 아버지의 문제다. 인류의 죄는 첫 아담이라는 남자가 자신의 근원이자 아버지이신 하나님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아담은 아버지가 필요 없다고 판단하고 자신이 그 자리를 대신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그가 그렇게 믿는 순간 전 인류가 아버지이신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고 말았다. 하나님 아버지와 단절된 아담은 스스로 고아가 되고 그의 자녀들도 고아가 되었다. 아버지는 자기 아버지에게서 받은 것만 자녀에게 물려줄 수 있다. 아버지와 단절된 아담에게 아버지의 생명이 공급되지 않기에 죽음이 오게 되었다. 아담은 아버지를 거부함으로 후세대에게 죄와 사망, 즉 ‘아버지 없음’ 이라는 유산을 물려줄 것 밖에 없었다. 아담이 자진해서 아버지를 떠났다. 그리하여 아담의 후손인 인류는 고아가 되었다. “구원은 마지막 아담 예수께로 돌아가는 것”구원은 한 남자, 즉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님께서 고아가 된 인류에게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길을 열어 주심으로 얻게 된 결과이다. 예수님의 사명은 고아가 된 인류가 하나님 아버지께로 돌아가서 그 가족관계를 회복하게 하는 것이다(골 2:11~22).말라기는 세례요한이 메시아의 길을 예언할 때 이런 일이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않으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 (말 4:6).인류는 아버지 되신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했다. 세례 요한은 그들에게 절실히 필요한 하나님 아버지께로 인도해줄 메시야의 길을 예비하라는 사명을 받았다. 예수 그리스도는 아버지가 없는 인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 사실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 아담의 자손들은 그 어느 세대도 아버지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했다. 아담에게서 시작된 아버지 부재는 지금도 여전히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모든 지상의 남자들이 책임 있는 아버지가 된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모든 민족과 국가들이 치유 받을 수 있다.예수 그리스도는 아버지 없는 인류에게 아버지가 되사 자신을 통하여 인도하셨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1:12). 성부 하나님은 “내 사랑하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까지 성숙해 가라 그러면 진짜 아버지가 될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은 아버지가 되시고 우리는 그 분의 자녀가 된다. 자녀는 아버지의 정체성을 이어받는다. 남자에게 아버지의 역할보다 더 위대한 일은 없다. 창조주 하나님은 남자가 아버지가 되도록 만드셨기 때문에 아버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남자의 존재 목적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남자를 창조하실 때부터 ‘아버지’를 염두에 두고 계셨다. 그래서 모든 남자 아이에게는 아버지가 될 잠재력이 심겨져 있다. 하나님은 모든 남자 아이가 성장하면 아버지가 되도록 작정하셨다는 뜻이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기 때문에 아버지가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반영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남자 아이가 소년의 모습을 벗고 아버지가 되지 않으면 인생의 진정한 만족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아버지란 남자의 운명이자 완성이기 때문이다.남자가 아무리 많은 돈을 벌고 높은 지위에 올라도 하나님과 같은 아버지가 되라는 소명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한다면 실패자이다. 호화로운 저택과 엄청난 재산을 소유하고 명예와 권위가 있어도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소홀히 한다면 성공한 인생이라 할 수 없다. 한 남자의 성공여부는 그가 얼마나 경건한 아버지인가를 보면 알 수 있다. 아버지는 ‘남자다움’의 표상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남자는 어떤 존재인가, 곧 그리스도를 닮음(Christlikeness)이다. 그리스도를 닮음과 남자다움이란 단어는 동의어이다. 그리스도를 닮음과 여자다움(Womanhood)이란 단어도 마찬가지이다. 남자이든 여자이든 그리스도의 생명을 받으면 그들은 아주 높게 끌어올려진다. 그들의 인격과 성품이 충만히 성숙된다. 모든 개인의 최고선(最高善)은 예수님 같아지는 것이다.교회, 가정, 국가의 강성함은 남자의 강성함과 일치한다. 책임을 지고 이끌어가는 지도력은 남자의 몫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면에서 모든 남자들이 남자답기를 위하신다. 가정에서의 모든 문제는 아버지가 지도력을 발휘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 영적 미성숙 때문에 죄와 부도덕, 비윤리적 행실, 그리고 여자의 유혹에 빠질 수 있다. 왜냐하면 그는 말씀에 뿌리를 내리지 않을 뿐더러 우리를 지혜롭게 하고 어떻게 행동하고 어떤 말을 하며 어떤 마음을 품어야 할지 또 어떤 양심의 기초를 가져야 할 지 판단하게 해 줄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남자다움은 그리스도를 닮음의 동의어이다. 그리스도 닮음이란, 요셉이 보디발 장군 부인의 유혹을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까?(창 39:9)” 하면서 과감히 거절하였다. 하나님 앞에서의 거룩함이 그의 인생의 잣대였다. 이것이 남자다움(Manliness)이다. 인생에는 생명 그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용기, 책임, 사랑, 진실, 품위, 하나님의 영광 등이다. 이것이 남자다움의 특징이기도 하다. 아버지는 가정에서 제일 중심적인 위치에 있다. 가정의 머리이다. 지도자요 교사이다. 아버지는 하나님의 사랑을 부어주는 사랑의 왕이요 대제사장이다. 그래서 변화의 시작은 아버지로부터 비롯되어야 가족들도 변화된다. 아버지는 변화의 기준이다. 가족들의 경건한 삶의 모델이다. 요나단 에드워즈의 가정 1703년에 태어난 조나단 에드워드는 가정을 경건하게 이끈 왕이요 제사장이었다. 그는 아마도 미국이 낳은 최고의 지성이었을 것이다. 목사이자 저술가이며 나중에는 프린스턴 대학의 총장을 지낸 그와 아내는 열한 명의 아이를 두었다. 그의 남자 후손들 가운데 알려진 바로는 다음과 같은 아들이 있다. •300명이 넘는 목사와 선교사, 신학 교수가 있었고, •120명은 여러 대학에서 교수를 했고, •110명은 변호사가 되었고, •60명은 유명한 작가가 되었고, •30명은 법관이 되었으며,•14명은 대학의 총장이 되었고, •3명은 미국 상원 의원이 되었고, •1명은 미국의 부통령이 되었다. 조나단 에드워즈가 변화를 일으킬 수 있었던 것은 자기 아들을 구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아들들은 각기 자신의 아들을 구했고, 이들은 또 자라나서 자기 아들을 구한 것이다. 대대로 소년들이 구출되었다. 그는 한 사람이었지만 죽은 뒤에도 수백 명, 아니 수천 명의 후손에게 감화를 준 것이다. 에드워즈는 날마다 열세 시간씩 규칙적으로 공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또한 가르침과 저술, 목회로 인해 바쁜 일정에 시달렸음에도 불구하고 하루에 한 시간씩은 꼭 집에 와서 아이들과 함께 지내는 것을 일과로 삼았다. 에드워즈는 역사상 위대한 지성인 중 한 사람이다. 그러나 이 세계적인 학자는 일의 우선순위를 바로 알았다. 그는 단지 저녁 식사를 하러 집에 온 것이 아니라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 집으로 온 것이다. 에드워즈가 대대로 큰 영향을 줄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이자 남편으로서 하나님이 자신에게 맡기신 역할을 제대로 이해했기 때문이다.세대 간에 경건한 남자들이 계속해서 더욱 경건한 남자들을 낳는 고리가 있을까? 아니면 뚜렷한 역할 모델을 갖지 못한 남자들로부터 혼란스러운 리더십만이 대대로 이어질까? 그와 같은 미래 세대의 운명이 아버지의 손 안에 있다. 오늘 아버지가 내리는 선택이 앞으로 가계를 이을 세대들의 삶의 질을 결정할 것이다. 그것은 바로 한 사람이 변화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들을 구출한다면 이는 아버지 삶에서 가장 위대하고 만족스러운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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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3-02
  • 특별기고/제103회 총회의 개정헌법 등 소고 ⑬
    총회총대 될 장로 자격, 위임장로와 휴직장로상납금 받는 총회, 총대여비는 왜 노회로 미루나(승전) 3. 재정처리 ① 제직회는 교회에서 위임하는 금전을 처리한다⇒ (103회 개정헌법의 오류) 제직회는 교회에서 위임하는 금전을 처리하고 부동산은 노회소유로 한다. <이유> 부동산은 노회소유로 한다는 1922년 판의 원헌법 이래로 97년 동안이나 이어진 전통적인 규정에 뭐가 잘못인가? 원헌법인 1922년 판은 “…본교회의 가결과 노회의 허락이 없으면 전집출채(典執出債)하지 못하느니라” (원헌법 정 제6장 4)고 규정하였는데 전집이란 저당을 잡힌다는 뜻이요, 출채란 재산권을 내보낸다 함이니, 결국 매도(賣渡)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즉 본교회의 결의와 노회의 허락이 있어야 저당을 잡히거나 매도할 수 있다 함이니, 관리권을 가진 본교회 당회가 결의했어도 소유권을 가진 노회의 허락이 없으면 교회의 토지와 가옥에 대해서 저당을 잡히거나 매도하지 못하며, 소유권을 가진 노회가 결의했어도 관리권을 가진 교회 당회의 결의가 없어도 역시 그러하다 함이다. 그 후 1930년 판에 이르러서는 지금까지 이어온 그대로 “제직회는 교회에서 위임하는 금전을 처리하고 부동산은 노회의 소유로 할 것이니라(행 6:3~5)⇒ 1955년 판 (…노회의 소유로 한다”고 현행 규정 그대로 바뀌어 오늘에 이르렀다. 제3조 연합제직회 1. 조직 각 지방 내에 편리한 대로 연합제직회를 조직할 수 있다. 회원은 그 지방 내에 목사, 전도사와…⇒ (1930년 판의 오류) 회원은 그 지방 내의… 2. 직무 본회에 치리권은 없으나, 그 지방 내 합동 재정과 전도 기타 부흥 사업과…⇒ (…그 지방 내의 합동재정과 전도, 기타 부흥사업과…)… 남녀 전도사와 전도인을 선정하되, 전도사는 노회의 승인을 받는다⇒ (1930년 판의 오류)… 전도사는 소속당회의 승인을 받는다. <이유> 전도사는 어떠한 경우에도 당회 관할 아래 있으니. 제22장 총회총대 제1조 총회 총대 자격⇒ (총회총대의 자격) 1. (생략) 2. 새로 조직한 노회 총대는 개회 후 임원 선거 전에 그 노회 설립 보고를 먼저 받고 총대로 허락한다⇒ (새로 조직된 신설노회에서 파송된 총대는 총회 개회 후 임원선거 전에 그 신설노회의 설립 보고를 먼저 받고나서 허락한다.) 3. 총대 될 장로 자격은 그 회에 속한 장로 회원으로 한다⇒ (1993년 판의 오류) 총회총대가 될 장로의 자격은 그 회에 속한 위임장로와 휴직장로 이다. <참조>정문 93. 638문답 제3조 언권 회원⇒ (언권회원) 3. 본 총회의 증경 총회장과 부총회장⇒ (본 총회의 증경총회장과 증경장로부총회장<이유>목사 부총회장은 다음 해에 총회장으로 박수 추대하는 대상처럼 되었으나 장로부총회장은 더 올라갈 수 없는 마지막 직분이니 말이다. 4. 단, 총회에서 허락을 받아야 발언할 수 있다⇒ (제103회 개정헌법의 오류) 첫째로 단(但)서란 본문규정의 조건이나 예외 등 주(註)를 붙이기 위한 접속부사이다. 본문규정 없는 단서를 붙이다니 단서의 뜻을 알고서 그랬을까? 모르고서 그랬을까? 둘째로 언권을 허락을 받아야 발언할 수 있다고 함은 삼척동자도 헤아릴 줄 아는 회의의 상식, 이 규정이 회의정치 체제인 장로회 총회의 헌법규정이라니 너무나도 한심스럽지 아니한가? 제4조 총대여비⇒ (총회총대의 여비) 총대 여비는 그 노회에서 지급한다⇒ (총회총대의 여비는 총회가 지급한다) <이유> 총회가 전국 노회에서 상납금을 받는 것이 총회운영 경비로 여기지고, 따라서 총회의 구성요원인 총대들의 여비이니… 제23장 헌법 개정 제1조 정치 권징 조례 예배 모범을 변경하고자 할 때는 총회는 각 노회에 수의하여⇒ (1922년 판의 오류)⇒ 제1조 교회정치, 권징조례, 예배모범의 개정 교회정치, 권징조례, 예배모범을 개정코자 할 때에는 <이유> (장의 칭호가 「헌법개정」이요, 따라서 제2조, 제3조, 제4조가 다 “개정”이라 규정하면서 굳이 제1조만 “변경”이라고 할 이유가 없으니 말이다.) 총회는 각 노회에 수의하여⇒ 총회는 총회의 결의로 전국 노회에 수의하여, 노회 과반수와 모든 노회의 투표수 3분의 2 이상의 가표를 받은 후에 변경할 것이요⇒ (노회 과반수의찬동과, 전국노회의 총투표수 3분의 2 이상의 가표를 받아야 한다). 각 노회 서기는 투표의 가부를 총회 서기에게 보고하고, 총회는 그 결과를 공포 실행한다⇒ (1930년 판의 오류) 각 노회서기는 투표의 가부수를 총회서기에게 보고해야 하고, 총회는 그 결과를 공포 시행한다. <이유>법률을 공포한 후 그 효력을 발생케 함은 실행 아닌 시행(施行)이 옳은 표현이니 말이다. 제2조 신조와 요리문답을 개정하고자 할 때는 총회는 그 의견을 제출하고⇒ (제2조 신조와 요리문답의 개정 신조와 요리 문답을 개정하고자 할 때에는 총회는 그 의견을 제출하고, 각 노회에 수의하여 노회 중 3분의 2와 모든 투표수 3분의 2의 가표를 받고 그 다음 화가 채용하여야 한다⇒ (1922년 판의 오류) 전국노회에 수의하여 노회수 3분의 2 이상의 찬동과, 전국 노회의 총투표수 3분의 2 이상의 가표를 받고 그 다음 총회가 채용해야 한다.) 각 노회 서기는 투표의 가부수를 서면으로 총회 서기에게 보고한다⇒ (각 노회서기는 투표의 가부수를 서면으로 총회서기에게 보고해야 한다. 제3조 총회는 신조와 요리문답을 개정하는 의안을⇒(1969년 판의 오류) 신조나 요리문답을 개정하자는 의안을 각 노회에 보내기 전에 위원 15인 이상(목사, 장로)을 택하여 1년간 그 문제를 연구케 한 후 총회 때에 보고하도록 할 것이요, 그 위원은 1노회에 속한 회원 2인 이상됨을 금한다⇒ (1922년 판의 오류)(…2인을 초과하지 목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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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3-02
  • 특별기고 / 신천지 예수교 증거장막성전(신천지) 이만희의 비성경적인 교리 ⑰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저희가 굵은 베옷을 입고 일천 이백 육십 일을 예언하리라 이는 이 땅의 주 앞에 섰는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니”(계 11:3~4)이단 신천지의 거짓 증거두 감람나무는 주(영)를 모시고 증거하는 두 목자이다이단 신천지의 거짓 증거증인(證人)은 현장에서 사건을 보고 들은 사람을 말하므로 계 11장의 두 감람나무, 두 증인(證人)은 계시록의 사건이 성취될 때 그 사건을 보고 듣고 증거하는, 주(예수님의 영)를 모신 두 사람(목자)을 말한다.위에‘증인(證人)은 현장에서 사건을 보고 들은 사람을 말하므로’라고 한‘현장’이란 무엇인가? 이는 1980년 9월 14일 당시 과천의 유재열 증거장막성전의 교단이 경기도 시흥군 과천면 문원리 115-354 이삭중앙교회 당회장 오평호 목사(연세대 교수)에게 교권이 넘겨지는 날을 말한다. 이날 이·취임식의 행사를 신천지 교회에서는 현장의 사건이라고 한다. 이는 천벌 받을 신천지의 교리다. 계시록 11장의 두 증인은 예수의 증인이다. 신천지는 이단 과천 장막성전 유재열(유인구 아버지와 아들 유재열 두 증인 두감람나무)의 교권이 이삭중앙교회 오평호 목사에게 넘겨지는 현장을 본 이만희와 홍종효 두 사람이 교권을 넘겨받는 행사의 두 증인, 두 감람나무라고 말한다. 그러나 계 11:3~4 내용의 증인은 유재열 장막성전의 증인을 말한 것이 아니다. 계시록의 두 증인 두 감람나무는 예수의 증인이 된 두 감람나무의 사명자를 두고 기록한 내용인 것이다.만약 계시록 11장이 유재열 장막성전과 이만희 장막성전을 두고서 예언한 말씀이라면, 계시록 11장에 네 증인, 네 감람나무가 예언되어 있어야 한다. 유재열 증거장막성전과 이만희 증거장막성전이 계시록 11장에 예언된 두 감람나무 사건의 증인이라면 예수 믿을 필요가 있겠는가?<참고> 1985년 12월 12일 발행 이만희 저서‘계시록 진상’ p181~182에 이만희 를 유재열의 영적 아들로 비유하였다. ◎ 아버지 증거장막성전 두 증인 두 감람나무 유인구와 유재열◎ 아들 증거 장막 성전 두 증인 두 감람나무 이만희와 홍종효※ 계시록에 두 가지 증거 장막 성전이 계시록 11장에 예언되어야 하고, 네 명의 증인 네 명의 감람나무(유인구, 유재열, 이만희, 홍종효)가 성경에 예언되어 있어야 한다.이러한 모순 속에서 태어난 이만희가 보고 들은‘현장’이 계시록 11장 어디에 기록되어 있는가? 이만희는 말하라! 신천지 교인들이여 눈이 있으면 이 글을 읽고 이제는 정신을 차려라! 거짓말 하는 자는 귀신의 가르침을 쫓는 자라고 하였다(딤전4:1~2).이단 신천지 핵심 교리에 대한 반증신천지에서는 두 증인을 주를 모시고 증거하는 ‘두 목자’라고 하였는데 증인과 목자는 구분이 되며, 증인과 목자는 뜻도 다르고 사명이 전연(全然) 다르다.<국어사전> “증인이란?”= 보고 들은 것을 증명하는 사람을 말한다.“목자란?”= 양을 치는 사람을 비유하여 교인, 성도들을 양육하는 성직자 목사를 목자라고 하였다. 신천지는 계11:3을 자세하게 보라. 신천지가 말하는 두 감람나무는 두 증인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두 목자라고 기록된 말씀은 성경 어디에도 없다. 참 목자는 기도로써 하늘 문을 열고 복된 장마비를 내려(겔34:26-27) 곡식이 풍성한 열매를 얻는 것 같이 하나님의 백성인 양에게 꼴(말씀)을 먹이고 성장케 하는 사명자인데(시편23장), 계11:6에 보면 두 증인은 보고 들은 것을 증거하는 증인일 뿐이요, 목자가 아니기 때문에 성경 어디에도 양떼에게 꼴을 먹여 키우는 사명을 하지 아니한다.도리어(반대로) 두 감람나무는 하늘 문을 여는 자가 아니요, 하늘 문을 닫고(계11:6) 비(신32:2 말씀)오지 못하게 하며 물(요4:14 생수의 말씀)을 변하여 피 되게 하는 저주를 내리는 사명자가 두 감람나무다(계11:6). 모세가 애굽에서 바로에게 재앙을 내릴 때에 물을 피로 변하게 하는 재앙(출7:20)을 내리는 사명을 행하였다. 이와같이 계11:4~6에 두 증인 두 감람나무가 원하는대로 여러 가지 재앙으로 땅을 치리라고 하였으니 많은 사람을 죽이는 저주의 사명자로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뿐만 아니라 두 증인 두 감람나무는 단 한명이라도 구원하는 구원자로 기록된 곳이 없으며 두 증인 두 감람나무가 사명을 완수하였을 때에 계11:14에서‘둘째 화는 지나갔으나 보라 세째 화가 속히 이르는도다’하였다. 이는 두 증인 두 감람나무가 일곱 나팔의 사명자들이 출현하는 중에 여섯째 나팔의 사명으로 많은 사람을 죽임으로써 둘째 화는 지나갔으나 셋째 화가 속히 오리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계11:14을 보라!) 그러므로 두 증인 두 감람나무는 양떼를 먹이고 키우는 목자가 아니요, 성경에 기록된 둘째 화의 사명자이다(계11:14).계시록 11장에 기록된 말씀과 같이 두 증인 두 감람나무는 양떼들에게 꼴(말씀)을 먹이고, 키우는 목자의 사명자가 아니요, 사형을 집행하는 공무원처럼 사람을 죽이는 일만 하는 사명자이다. 성경에 예언된 여섯째 나팔 재앙의 사명자를 목자라고 하는 신천지는 성경을 성경으로 해석하는 참 증인의 자격도 없는 독사의 독을 가진 사명자라고 비유하여도 부족한, 성경을 대적하는 악한 일을 행하고 있는 자, 자칭 두 증인 두 감람나무가 된 이만희 씨와 홍종효 씨다. 또한 성경(계11:7-12)에는 두 증인 두 감람나무는 생사를 같이 하는 증인으로 기록되어 있는데(계11:10-12), 자칭 신천지의 두 증인 된 이만희와 홍종효는 서로 싸우고 갈라지고 나가서 두 증인 두 사람이 각각 다른 간판의 교회를 세우고 각각 두 명의 재림주가 되었다. 증인은 원고나 피고가 될 수 없다. 두 감람나무는 두 증인이다(계11:3). 무엇보다도 예수의 증인으로서 예수가 될 수 없다.“신천지 신도님들 생각하여 보시오!”성경의 두 증인이 어떻게 두 명의 하나님이 될 수가 있는가? 성경에서 두 감람나무는(계11:4) 두 명의 예수 증인은 될 수 있으나 이만희는 만왕의 왕, 홍종효는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이 되었으니 개(사56:11)가 들어도 비웃을 일이다. 이것이 신천지의 교리요, 괴변이다. 그들이 자칭 ① 만왕의 왕이 되고 ②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이 되었으니 성경에 기록된 두 증인이 맞는가?(계11:3). 이는 스스로 적그리스도라고 증거 한 것과 같다. 두 증인, 두 감람나무는(계11:3) 양을 키우는 목자의 사명자가 아니요, 형(刑)을 집행하는 저주의 사명자다. “신천지야! 저주의 사명자가 목자가 될 수 있다는 증거를 대라!” 재앙을 내리는 재앙의 사명자를(계11:6) 두 목자라니 말도 안 되는 말을 하였다. 성경 어디에도 두 증인 두 감람나무를 목자라고 기록된 곳이 없다. 두 증인 두 감람나무의 사명이 끝이 남으로써 ‘보라 셋째 화가 속히 이르리로다’라고 하였으므로(계11:14) 두 증인 두 감람나무는 둘째 화의 사명자인 것을 알 수 있고, 계11:15에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라고 하였으므로 두 증인 두 감람나무는 여섯째 나팔 저주의 사명자인 것을 성경에서 확인할 수가 있다. 원하는 대로 사람을 죽이는 재앙으로 땅을 치는 자를(계11:6) 신천지는 양떼들에게 꼴을 먹이고 키우는 두 목자라고 거짓말을 하였다. 딤전4:1~2에서 거짓말하는 자는 양심에 화인(火印) 맞은 자로서 귀신의 가르침을 쫓는 자라고 하였다. 다시 말해서 두 증인 곧 두 감람나무는 형(刑) 집행자이므로 두 감람나무의 사명자는 죽이는 일만 하며(계11:6) 단 한 명도 살리는 목자의 일을 하지 않는다. 성경의 기록에서는 두 감람나무 두 증인이라고 하였는데 신천지는 어째서 두 목자라고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고 있는가 말이다. 계11:1-13까지 두 감람나무의 사명이 끝이 났을 때, 계11:14에 둘째 화는 지나갔으나 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로써 두 감람나무 두 증인은 양에게 꼴을 주고 살리는 목자의 사명자가 아니요, 둘째 화(禍)의 사명자로서(계11:6, 계11:14) 많은 사람을 죽이는 일만 하는, 화를 내리는 사명자라는 것을 성경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이다. 증인이 감히 만왕의 왕 만주의 주 이름으로 출현할 수 있는가? 목자는 양들에게 생명의 꼴을 주는 자다. 성경에 기록된 두 감람나무는 생명의 꼴을 주기는커녕 도리어 화의 사명자로 기록되어 있을 뿐(계11:14) 두 증인은 예수의 증인이 되어야 하는데, 신천지에서의 두 증인은 장막성전 사건의 증인이 되었으니, 거짓 증인이 된 것이다. 거짓말쟁이(전문가) 화의 사명자로 온 가짜 감람나무 자칭 두 증인(이만희·홍종효)은 성경에 기록된 둘째 화의 사명자를 두 목자라고 거짓말을 하였으니 신천지 정통 교리 책자 3쪽에서 말한 대로 거짓말을 하는 자는 마귀의 씨이며 마귀의 양식이요, 귀신의 가르침을 받은 거짓말쟁이다(딤전4:1-2). 거짓말의 씨에서 난 신천지의 교인들은 마귀의 아들이 되어 틀림없이 지옥으로 가게 되는 큰 무리가 될 것이다(요8:44).이만희 씨! 자칭 만왕의 왕, 하나님의 자리에서 내려오시오! 성경에는 사람의 아들이 하나님이 될 수 없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민 23:19에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라고 하셨는데, 두 증인 두 감람나무가 된 이만희는 만왕의 왕이 되었고, 홍종효는 자칭 만군의 여호와가 되었으니 성경 어디에도 둘 중에 한 사람은 만왕의 왕이 되고, 다른 한 사람은 만군의 여호와가 된다고 기록된 곳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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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3-02
  • 목회성공과 교회부흥의 그 비결 1
    이 글을 쓴 동기는 후배 목사들이 모두 다 목회성공과 교회부흥 하기를 평소부터 간절히 열망한 것 때문이다. 이를 연속된 호에 의하여 다음과 같이 기술하여 거론코자 한다.1. 목사의 성결과 자비의 생활(1)목사는 이 사회에서 특별한 인물이다. 목사의 생활엔 항상 성결과 자비를 요한다. 왜냐? 주 하나님(시 33:13-15)과 세상만민이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다. 목사의 성결과 자비의 생활은 관속에 들어 천개를 덮는 날까지 그러하다. 목사의 생활이 성결하고 지바하면 교인도 성결하고 교회는 부흥된다. 목사가 거칠고 양의 탈을 쓰면 목회는 실폐요 교회는 문닫게 된다. 여러분 목회성공과 교회부흥을 원하는가? 그렇다면 성결과 자비의 까운을 입으라! 하나님은 이런 목사에게 목회성공과 교회부흥을 약속하며 천국열쇠를 맡긴다. 목사의 성결과 자비의 생활은 어렵고도 힘든 생활이다. 그러나 이 강을 건너야만 성공과 부흥이 오는 법이다. 명심하라! (1) 거룩한 생활의 요청거룩 거룩 거룩 전능하신 주여! “거룩”이란 무엇인가! “모든 불결함에서 분리한 것” 그것을 뜻한다. 레 7:2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살전 4:3 “하나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롬 12:1 “너희 몸을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하였다. 산제사란 살았을 때 일평생을 하나님께 완전히 바치란 뜻이다. 주후 3~4 백년 안디옥 출신 콘스탄틴대주교 대설교가 성서주해자 동방교부였던 Chrisoston 曰 거룩한 산제사란? “눈은 악을 보지말며 입은 비루한 말 대신 축복하고 손은 죄짓는 대신 구제하고 귀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라했다. 주후 2백년 경 헬라교부 오리게네스는 세속 밀리 그리고 거룩한 생활 위해 거제를 하여 고자로 살았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니라.” 일단 목회성공과 교회부흥을 원하는 목사에게는 거룩한 생활이 요청된다는 것, 그것을 명심해야! 묻노니 거룩한 생활을 원하는가? 그러면 불결한 자, 불결한 것에서 장사지내라! 이때부터 성공의 깃발은 휘날리고 교회부흥의 문이 열린 것을 귀하 자신이 볼 것이다.(2) 근신의 생활의 요청근신, 근신 특별히 목사들에 요청된 근신! “근신”이란 무엇인가? “정신 차리는 것” “절제한 것” “자제한 것.” 이것이 근신이다. 딛 2:12 “…경건치 않음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근신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벧전 1:13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 나타날때에…”, 벧전 4:7 “만물의 마지막 가까왔으니… 정신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벧전 5:8 “근시하라 깨어라 너희의 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세상 사람들은 세속의 종놈되어 본의를 망각하고 미친자처럼 정욕과 향락과 술취함과 방탕자로 바람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살지만, 목사는 목사로서 정신차려 깨어 생홀하라는 여기에 그 강한 권면이 있다. 마귀가 유혹할 때 다윗도, 가룟 유다도, 아나니아와 삽비라도, 게하시도, 사울도, 아간도, 아담과 하와도, 가인도 근신에서 낙제하고 다 넘어졌느니라! 목사 제위께서 근신생활 가볍게 보지말라! 근신에 자기 못지켜 그 좋은 교회 그 좋은 생활 그 좋은 지위 배설물처럼 다 버리고 하루 밤 사이 없어진 자 여러분은 못봤는가? 그 일은 남의 일이 아니란 것을! 삼손을 보고 근신하고, 웃시야를 보고 정신차리고, 사울을 보고 자제하고, 다윗의 실수에 절제하라! 효종이 북벌 만주를 쳐서 병자호란의 원수를 갚고자 이원을 불러 어영대군을 삼고 입정하라 할 때, 안주부인이 어영대군에 갑옷을 입히며 하는 말 “무사의 무장 군인장군은 무시무처 항상 갑옷무장을 해야 하오.” 하물며 십자군인 대장님들은? 양떼를 지켜야 하는 하나님의 사자들은? 정신 차리고 근시하여, 엡 6:11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서 교회를 수비하지 않으면 아니되리라! 이쯤되면 “용이라고도 하고 옛뱀이라고도, 마귀라고도, 사단이라”(계 12:9, 20:2)고도 한 이 못된 악마들은 도망, 하강한 천사들 수종, 성령은 충만, 교인들은 감동, 목회의 성공 교회부흥! 아아! 감격하도다. 목사가 그 힘들고 어려운 거룩한 생활, 근신의 생활, 생명강을 건너고 있으니! 사랑하는 성도들아! 목회성공 교회부흥 위하여 내 교회 목자 은혜의 이 강을 건너는데 위로하고 찬사하고 영육간 대접으로 힘주심이 어떠할까? 강 건너 불보듯이 구경만 하지 말고! 필자의 이 권고에 잘못됨은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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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2-17
  • ■아버지 다윗 암논의 강간 사건 / (삼하13장) ①
    최근에 어느 인기 방송 연예인이 불안 장애로 모든 방송활동을 중단한다고 했다. 그의 소속사는 보도 자료를 통해 “그가 오래 전부터 앓아 왔던 불안 장애가 최근 심각해지면서 방송을 진행하는데 큰 어려움을 겪어왔다”며 제작진과 소속사 및 방송 동료들과 상의 끝에 휴식을 결정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자신의 병적인 긴장감을 얘기하며 “매주 이런 느낌이 있지 않나. 협심증이 올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무섭다. 시청자분들은 아버지 같은 느낌이다. 평소에는 인자하시지만 가끔 때로는 무섭고, 그래서 긴장을 한다.”고 말했다.방송활동에서 시청자를 아버지같이 느끼며 아버지 같이 무섭게 자신을 바라보는 모습에 긴장을 느끼는 그 뿌리에는 아버지와의 관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아무래도 그의 아버지는 아들을 사랑해 주고 품어 주며 실수를 너그럽게 받아주는 아버지가 아니었음을 느끼게 해준다. 이렇게 아버지는 아들의 생업인 방송 활동을 중단할 만큼 정서적으로 중대한 영향력을 주는 존재이다. 그래서 C.S 루이스(Lewis)는 ‘남성의 포기’에서 “아버지 노릇이 우주의 핵심”이라고 언급했다.아버지와의 관계는 이 세상 모든 지혜의 근원이다. 존재의 가장 근본은 아버지노릇을 잘하는 것이다. 아버지가 자녀에게 주는 힘은 대단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본 글에서는 사무엘하 13장에서 18장에 걸쳐 등장하는 아버지 다윗 왕에 대해 살펴 볼 것이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마 1:1). 다윗 왕은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으로 거론된 하나님의 종이다. 그런데 그의 아버지 된 모습은 오늘 우리의 아버지 모습처럼 미숙한 부분을 조금도 숨김없이 보여주고 있다. 다윗 왕은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요 예표이지만 다윗은 많은 약점을 지녔고 흠이 많고 문제가 많은 인물이다. 암논의 다말 강간 사건 (삼하 13장)다윗의 딸 다말은 많은 남자들이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여자였다. 그녀에게는 배다른 오라버니인 암논이 있었다. 암논은 왕위 계승 서열 첫 번째인 다윗의 장자이다. 다윗의 장자인 암논은 언젠가는 다윗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르게 되어 있었다. 다윗은 암논이 맏아들이기에 무척 사랑하였다. 얼마나 사랑했는지 암논이 아픈 척하면서 누워있을 때 아버지 다윗이 병문안을 갔다. 그때 암논이 “아버지여! 원하건대 내 누이 다말이 와서 내가 보는 데에서 과자 두어 개를 만들어 그의 손으로 내게 먹여 주게 하옵소서”라고 요청했다. 다윗은 즉시 사람을 다말에게 보내어 암논을 시중들게 했다(삼하 13:6). 이에 다말도 아버지의 지시에 순종하여 즉시 배다른 오라버니 암논에게 가서 시중을 들었다. 이렇게 아버지 다윗은 아들 암논의 병문안 요청을 즉시 실행하는 데서 아들을 사랑하는 모습을 충분히 보여준다. 암논의 병은 배다른 여동생 다말에 대한 상사병이었다(삼하13:2). 전후 문맥을 보면 암논이 다말에게 갖고 있는 감정은 단순한 성적 욕망이었다. 욕망에 시달린 암논은 급기야 식욕을 잃고 여위고 창백해져 갔다. 암논의 창백한 낯빛과 줄어든 체중, 우울한 분위기는 곧 사촌이요 친구였던 요나답의 눈에 뛰었다. 요나답이 암논에게 물었다.“형님, 나날이 안색이 수척해지는데 무슨 일이 있습니까?”“나의 아우 압살롬의 누이 다말을 내가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오.”요나답은 아주 교활한 인물이었다. 그는 암논이 다말을 손에 넣을 수 있도록 사악한 계략을 제안한다. 요나납의 제안에 따라 암논은 병든 체 하다가 아버지의 문병을 받는다. 아버지 다윗의 명을 받은 다말은 암논이 병상에 누워 그가 보는 앞에서 음식을 만들어 그릇에 담아 오빠에게 갖다 준다. 그때 암논은 주위 사람들을 물러치고 다말에게 “내가 몸이 불편하니 가까이 와서 손수 나에게 먹여 다오!” 라고 말한다. 그녀가 침대 가까이 왔을 때 소리 내어 말했다. “나의 누이야 와서 나와 동침하자”(삼 하 13:11). 그러나 배다른 오라버니에게 성적인 쾌락에 몸을 맡기고 싶지 않았던 그녀는 암논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열정적이고 설득력 있는 주장을 펴며 필사적으로 그 순간을 모면하려 했다. 그러나 암논은 그녀를 쓰러뜨려 억지로 욕망을 충족시켰다. 욕망을 채운 암논은 심경의 변화를 가져왔다. “암논이 다말을 심히 미워하니 이제 미워하는 마음이 전에 사랑하던 사랑보다 더하여졌다”(삼하 13:15). 다말은 자기의 머리에 재를 뒤집어쓰고 채색 옷을 찢고 손을 머리에 얹고 크게 울부짖으며 오라버니 압살롬의 집에 기거하게 된다. 압살롬은 동복 남매였다. 다윗은 이 소식을 듣고 심히 노한다(삼하 13:21).여기서 우리는 다윗이 암논의 행위에 대해 책망을 하거나 수치를 당한 다말을 불러 위로한다든지 하여 아버지로서의 책임을 다하는 모습을 볼 수 없다. 성경은 이렇게 묵인된 상태에서 2년을 보내었다고 언급한다(삼하 13:23).다윗은 왜 암논의 강간 사건을 외면했는가?암논이 다말을 강간하고 내버린 사건에 대해 아버지 다윗은 아무런 수습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무엇을 보여주는 것일까?다윗의 자식들은 어릴 적에는 공공연한 악에 물들어 있지 않았다. 그들에게서 하나님의 제어하시는 손길이 떠나간 것은 그들의 아버지가 사악한 죄를 지은 후였다. 부모가 의의 길을 저버린다면 하나님이 그들의 자녀들로 하여금 그들과 같은 악을 행하게 하심으로써 그들을 징계하시리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어린 자녀들은 자기 부모들의 악한 행실을 구실삼아 자기들의 악행을 변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호와께서 밧세바를 간음한 다윗에게 나단을 통해 주셨던 무서운 경고를 행하시는 방식은 훈계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잘 보여 주었다. 그 경고는 다윗의 왕궁이 하늘에서 내려온 불로 전소되거나 큰 폭풍으로 철저히 파괴되는 식으로 이행되지 않았다. 또 그것은 그의 아들들 중 하나가 번개에 맞아 죽거나, 다른 아들은 지진에 의해 땅속으로 삼켜지는 식의 천벌이 실행되지도 않았다.아버지의 역할에서 가르치고 훈계하는 역할은 중요한 책임이다. 하나님은 부모들에게 그들의 자녀들을 적절하게 훈육할 것을 요구하신다.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엡 6:4). 다윗의 자녀에 대한 훈계를 간과한 모습은 마치 엘리 제사장이 실수한 모습과도 같다. 엘리는 자기 아들들이 저주를 자청하되 금하지 아니하였다(삼상 3:13). “응석받이로 자란 자녀들이 그들의 경건한 부모에게 시련거리가 되는 것은 분명하다. 그 부모들은 어리석은 애정 때문에 하나님에 대한 자신들의 의무를 무시한다.”아버지는 가르치는 사람이다. 자신의 씨를 통해 나온 이 들이 성장하며 발전할 수 있도록 영양분과 자원을 제공해 주는 존재이다. 자녀를 가르치는 일은 남자의 중요한 책무 중 하나이다. 남자는 가르치는 일에 적합하도록 창조되었다. 그래서 남성들은 본성적으로 가르치고 지시하기를 좋아한다. 아버지는 가르치는 본능을 타고 났기 때문이다. 남자는 누구나 가르치는 능력을 갖고 있으며 아버지라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녀를 가르쳐야 한다. 남자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지식과 명철을 얻을 때 정직과 성실로 가정을 이끌 수 있다.하나님 아버지의 가르치는 모습은 성경에서도 보여 준다. “대저 여호와는 지혜를 주시며 지식과 명철을 그 입에서 내심이며”(잠언 2:6). “지혜를 얻으며 명철을 얻으라. 내 입의 말을 잊지 말며 어기지 말라”(잠언 4:5). “내 아들아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그것이 네가 장수하여 많은 해를 누리며 평강을 더하게 하리라. “지혜를 얻은 자와 명철을 얻은 자는 복이 있나니”(잠언 3:1~13). “아들들아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명철을 얻기에 주의하라( 잠언 4:1).” “내 아들아 내 지혜에 주의하며 내 명철에 네 귀를 기울여서(잠언 5:1).“지혜로운 아들은 아비의 훈계를 들으나 거만한 자는 꾸지람을 즐겨 듣지 아니하느니라”(잠언 13:1). 다윗이 책임 있는 아버지의 역할을 잘했다면 암논을 불러서 책망과 훈계 그리고 적절한 징계를 했을 것이다. 그리고 다말에게는 아버지로서 아들을 잘못 키운 것에 대한 책임으로 딸에게 사과를 하고 위로가 될 만한 특별한 보상을 해주었을 것이다. 그런데 왜 아버지 다윗은 그 사건을 조금도 다스리지 못하고 2년을 침묵으로 일관햇을까? 침묵이라기보다 방임, 무책임으로 보냈다고 볼 수도 있다.그렇다면 아버지 다윗의 숨겨져 있었던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이미 다윗은 밧세바와의 간음 사건, 밧세바의 임신, 그 임신을 숨기기 위해 남편 우리야를 불러 들이고 밧세바와 동침을 유도하나 실패하자, 요압 장군에게 비밀서신을 보내 우리야를 최전방에서 죽게 하고, 밧세바를 자신의 아내로 맞이한다. 은밀하게 진행된 일에 철퇴를 가한 사람은 나단 선지자였다. 나단의 지적과 책망을 듣고 다윗은 침상을 적시며 회개한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면서 그 사건은 잊혀졌다. 그런데 다윗은 암논이 다말을 강간하고 어떤 책임도 지지 않고 내버린 사실을 듣는다. 마치 자신의 범죄 현장을 보는 둣했다. 아무 할 말이 없었다. 어쩌면 그 아들이 그 아버지를 쏙 빼 닮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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