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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나 때문이야
- 중학교 2학년 도덕 시간에 있었던 일이다. 무슨 잘못을 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데 선생님께서 “이건 내 잘못이다”라며 왼쪽 바지를 걷어 올리시곤 의자에 다리를 올려 놓고 막대기로 자신의 종아리를 계속 때리셨다. 반 아이들은 놀라서 어쩔 줄 몰라 하는데 반장(최덕애)이 “선생님, 그러지 마세요. 저희가 잘못했어요”라고 울며 말렸다. 지금 추측컨대, 선생님께서 당시 진실한 기독교인이셨나보다. 어릴 적 형제 자매들이 놀다가 다툴 때면 이를 참다 못한 어머니께서는 부엌에서 부지깽이를 들고 무조건 큰아이부터 때리셨다. 큰애도 아이인데 기대를 하셨기 때문에 억울하게 맞은 기억들이 있을 것이다. 지난 5~6월에는 생전 처음 들어본 메르스로 온 나라가 공포에 떨었고 100년 만의 극심한 가뭄과 퀘어 축제 동으로 온 나라가 곤혹을 치러야 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하나님께서 무척 화가 나셨나 보다. 어떤 사람에게 “교회 나가자” 라고 했더니 “난 교인들을 제일 싫어하는데 교회에 가면 그런 사람들뿐인데 왜 가겠느냐”고 해서 몹시 안타까웠다고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나라를 특별히 선택하시고 사랑하는 만큼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해 화가 나실 만도 하다. 이때 ‘나라를 위해 기도를 드려야지. 먼저 우리 기독교인들이 회개 하게 하소서’ 라고 하는데 ‘너부터 회개해. 남에게 회개 하라고 외치기 전에 네 자신에게 외쳐라. 그런 상태로 외친다고 듣냐? 네 목만 아프지’ 라는 마음의 음성이 들려 왔다. ‘그렇습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모두 저 때문입니다. 용서해 주세요’ 라며 늘 하던 대로 회개기도를 했다. 그러다가 '아직도 회개하지 못한 죄가 있다면 다 생각나게 해주세요' 라며 회개에 몰입을 했다. 그러면서 아주 어렸을 때의 기억들을 하나씩 떠올리자 얼마나 많은 죄를 지었는지. 그리곤 회개도 안하고 잘살아 왔으니 참 뻔뻔스러운 인간이다. 죄인 중의 괴수는 바로 나다. 알고 지은 죄, 모르고 지은 죄, 생각이 나지 않아 회개하지 못한 죄 등. '아버지 저 어떡해요. 제가 정말 잘못했습니다. 용서해주세요. 더 생각나게 해주세요. 더 없나요?' 라며 틈이 나는 대로 통회하고 자복을 했다. 출애굽기 40장을 통해 주신 말씀에는 '거룩' 7번, '명령하신 대로'를 8번이나 강조하셨다. 결국 주님께서 오늘 우리 각자에게 회개하고 정결하며 거룩하여 늘 명령대로 순종하길 원하신다. 우리나라를 위기에서 건져주신 것은 보이지 않는 곳곳에서 자신을 희생하며 작은 예수님의 모습으로 섬기는 신실하신 종들과 의인들의 기도 덕분이리라 생각된다. 어느 사모님의 꿈에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고 하셔서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라고 베드로처럼 고백을 했는데 “알긴 잘 아네~” 이 소리에 깜짝 놀라 일어나서 회개를 했다고 한다. 요즘엔 평신도들도 성경 지식이 해박하다 못해 넘쳐난다. 정말 알긴 잘 안다. 그런데 아는 만큼 행함이 따르지 못한다. 어떤 분에게 전도를 하니까 “난 교인들을 제일 싫어하는데 교회에 가면 교인들뿐인데 왜 가겠느냐”고 해서 민망했다고 한다. 흠도 많고 온전하지 못한 나 자신이 가증스러워 ‘이 죄인이 감히 어떻게 주님과 거룩한 교제를 나눌 수 있나요? 저는 못해요 저는 할 수가 없어요...'라고 계속 조아리는데, 10분쯤 흘렀을까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 이것이 나의 찬송일세' 이 찬양을 나도 모르게 부르고 있었다. 그런데 신기하게 참 평안이 몰려왔다. 서둘러 찬송 288장을 펴보니 구구절절이 내 마음을 옮겨 놓은 듯 했다. 그리고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찬양을 하루 종일 부르는 동안 마치 천국에 있는 것처럼 걱정 근심이 사라졌다. 그렇다고 당장 어려운 문제가 해결된 것도 아닌데 내 영혼이 편히 쉬고 있었다. 조 목사님께서는 아마 진정으로 회개를 해서 확실히 죄사함을 받았고 거듭나는 체험을 한 것이라고 말씀해주셨다. 어렵고 힘든 세상에서 우리를 도와주실 분은 주님 밖에 없다. 그러므로 환난과 고통을 해결하는 지름길은 각자의 위치에서 '제가 잘못했습니다. 바로 저 때문입니다'라고 진심으로 회개를 하면 용서하심을 받고 죄와 사망에서 자유케 되고 부요와 건강과 천국을 회복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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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나 때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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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의 묵상
- 무엇보다도 믿는 이들의 가장 행복한 순간은 삶에서 펼쳐지는 <바로 지금 이순간>의 성례일 것이다. 특별할 것도 없어 보이는 풀 한 포기에서도, 호박꽃 하나에서도 특별한 기적의 선물을 받는다. 딱이 영혼에 발맞추어 가지 않아도, 일상의 순간순간 그분께서 숨겨놓으신 암호 요 수수께끼 같은 신비를 만나게 된다. 그래서 우리의 삶은 순간 옷깃을 여기며 놀람과 경외로 성스런 예배가 된다.이번 여름에도 더할 나위 없는 만남이 이루어졌다. 만남은 결코 혼자 이루어질 수 없는, 너와 나가 있기에 더욱 그렇다. 그래서 가슴이 뛴다. 심장이 뛴다. 새삼 아직 살아 있음에 감사하게 한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보다 먼저 올 봄, 연두빛이 세상을 물들이던 때, 옛 영화 <마음의 행로>에서의 주인공 같았던 그 장소와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비가 내리고 있어서 더욱 그랬을까? 자신의 주머니에 들어 있는 열쇠가 궁금했던 주인공 남자. 희미하게 아물아물 기억이 날 것만 같은, 무언가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것만 같은, 그러나 생각나지 않는, 막연하게나마 호주머니의 그 열쇠가 그 모든 것을 열어 줄 열쇠라는 예감. 나 역시 그랬다. 한참을 마음의 열쇠를 주머니 속에서 만지작거렸다. 내 삶의 시간 속 골목 깊숙이 숨겨져 있는, 나 자신 알 수 없는, 그러나 확실히 실재해 있는 나. 그 무언가가 있었다. 그러나 선명한 답 없이 속절없이 계절이 바뀌었다. 한여름, 새벽. 그곳은 물안개가 곱게 피어나고 있었다. 하얀 백일홍나무 꽃과 호수는 벌써 몇 달째 손잡고 그들만의 삶을 보내고 있었다. 그들의 친구인 듯 팔뚝만한 잉어 한 마리가 솟구쳐 올랐다. 그 옆엔 오리가 물살과 함께 춤추듯 미끄러져 가고….다시 <마음의 행로>. 결국 그 열쇠의 비밀이 풀린다. 여주인공의 그를 향한 사랑과 헌신과 인내의 기다림은, 서서히 그로 하여금 잊었던 기억을 떠올리게 하고, 그 열쇠가 바로 둘이 행복하게 살았던 자신들의 집의 열쇠임을 알게 된다. 해피 엔딩의 참 예쁜 영화다.기억상실. 한번의 해리증상을 겪은 나로선 충분히 공감이 간다. 어떤 충격이 가해지면 일어날 수 있는 …. 그러나 공감 가는 것으로는 뭔가 부족하다. 그때다, 바로 그때.하늘수박꽃. 통상 박과의 호박꽃이나 수박꽃이 노란색인 데 비해 백색이다. 흰 실타래처럼 생긴 여러 가닥의 꽃실이 특이하게 붙어 있다. 언뜻 술패랭이 사촌 같기도 하다. 처음 보았을 땐 봉오리를 오므린 채 있었다. 입술을 꼭 다문 새침떼기 같아 말을 붙일 수 없었다. 타인들에게 보이지 않고 싶은 뭔가 있는 듯했다. 열려 있지 않은 마음, 그래서 그냥 지나쳤다.반전, 반전이었다. 새벽에 만난 하늘수박꽃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 오므렸던 입술을 온통 다 열어젖히고 드러내다 못해 다섯 갈래로 풀어헤쳐진 채 완전히 탈진되어 하늘 향해 누워 있었다. 아니 도대체 한여름밤에 뭘 한 거야? 남몰래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달빛이 너무 환했나? 별빛이 고혹스러웠나? 아님 찬 이슬에 기절했나? 그때 다시 호수에 신비한 색상을 띤 안개가 피어올랐다. “들어봐, 내 말이 들리지 않니? 내 목소리는 아주 세미해서 귀 기울이지 않으면 못 듣는단다. 그앤 이름대로 피어난 거야. ”어디선가 깊은, 그러나 생생한 노래가 떨림 속에 들려 왔다. 내가 그토록 찾던 열쇠의 답이다. 지금까지 나의 잊었던 기억을 스스로 되살리기까지 참고 기다려 주신 아버지, 그분의 음성이다. 서로 가슴을 주려무나. 서로 손을 잡고. 그러나 기대는 하지 마. 오직 너희를 지은 내 손길에게만 기대를 하렴. 올 한여름에 하늘호박꽃이 내게 선물로 들려준다. 한여름 밤의 꿈이 아닌 묵상이라며. 이것또한 아버지 그분께서 베풀어 주신 <바로 이순간의 성례>다. 그래서 늘 신비이신 분.다시 한여름 새벽에 하늘호박꽃이 말한다. “나도 너도 하늘 향해 열려 있어야 해. 왜냐하면 우린 서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나 많으니까…. 나처럼 봉오리를 오무리지 마. 그러면 호수를, 나무를, 하늘을 비추어내지 못해. 바보처럼 해가 진 뒤에야 깨달았단다. 얼른 내 몸을 영혼을 다 열었어. 그리고 뭐 했냐구? 하늘 향해 못다 한 춤추어댔어. 그 후 어느새 여러 갈래로 상하고 찢어져 가는 하늘 세마포 입은 거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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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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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사명의 자리에 있는가?
- 내가 어릴 때는 빨래비누로 머리를 감았다. 그러다 샴푸가 일반 가정에 공급이 되었지만 아주 귀했기에 아끼고 아껴 쓰곤 했다. 그러다 보니 그 당시 최고의 명절 선물 중의 하나가 비누 세트였다. 우리 집은 항상 ‘다이알’이라는 노란비누를 썼는데 가장 싼 비누였기 때문이었다. 그 비누, 향기도 별로고 품질도 별로였다. 사춘기의 예민한 여고생이었던 나는 명절의 비누 세트가 너무 좋았다. 선물 세트에는 ‘다이알’ 대신에 좋은 향기가 나는 비누들로 가득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교회 화장실의 빈 비누곽이 눈에 들어왔다. 한참 동안 비어 있었는데 관리집사님이 잊어버렸는지, 비누가 떨어졌는지 비누곽이 계속 비어있었다. 그 때 나는 비누를 가져다 놓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물론 내게 그 비누는 너무 소증 했다. 그렇게 향기 좋은 비누를 쓰려면 다음 명절 때까지 기다려야만 했고, 내 기억에 집에는 비누가 하나 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러나 교회 화장실의 비누가 없으니 내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집에 있는 비누를 교회에 가져다 놨다. 아마 어머니는 사라진 비누를 찾아 화장실을 꽤 뒤지셨을 것이다. 그만큼 나는 우리 교회가 너무 좋았다. 날마다 교회에 가고 싶었고, 이 세상에서 우리 교회가 제일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교회를 떠나는 것을 생각조차 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대학교 4학년이 되었을 때, 피아노 전공자들마저 봉사할 자리가 없을 만큼 일꾼이 넘쳐나는 우리 교회를 떠나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회는 너무 은혜가 넘치고 날마다 성장했다. 일할 사람도 너무 많았다. 그곳에서 나는 꼭 필요한 존재가 아니었다. 성령님께서도 교회를 떠나라고 권면하셨다. 그래서 기도하는 가운데 개척교회로 인도함을 받았고, 2년을 열심히 봉사하다 결혼을 했다. 담임 목사의 아내로 처음에 섬겼던 교회는 여러 면에서 부족한 부분이 많았다. 교회 건물도 낡았었고, 교육관도 없었다. 불철주야 열심히 전도해서 성도가 좀 많아진다 싶으면 교회를 떠나려고 하는 성도들 때문에 속상할 때가 많았다. 주변의 큰 교회들이 제공하는 많은 편의 시설 때문에 자신들을 키워준 교회를 외면하는 성도들이 너무 많은 것이 오늘날의 목회 현실이다. 이 때문에 작은 교회의 목회자들은 절망과 낙망으로 떨어지는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 한국교회가 힘을 잃어가기 시작한 시점과 대형교회들이 등장하기 시작한 시점이 맞물린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그런데 작금에 이르러 대형교회의 목회자들이 불미스러운 일들의 중심에 서는 경우가 종종 생기는데, 이 일련의 사건들은 교회와 성도들은 치명적인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 일의 책임은 당연히 목사에게 있겠지만 성도들의 책임도 없다할 수 없을 것 같다. 큰 교회, 매력이 넘치는 목회자를 찾아가는 성도들로 인해 목회자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교만과 자기중심적인 세계에 빠져들게 된다. 우리가 젊었을 때는 자신이 봉사할 것이 있는 교회를 찾았고,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을 찾는 성도들이 많았다. 그러나 요사이는 내가 누릴 수 있는 교회, 나의 필요를 채워주는 교회를 찾는 성도들이 많다. 그러다 보니 교회마저 빈익빈 부익부의 악순환에 시달리고 있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대형교회의 성도들은 자신들이 믿음이 좋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대형교회의 성도들은 작은 교회의 성도들을 만나면 자신들이 더 수준이 높은 것으로 여기기도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어느 정도 규모가 갖춰진 교회의 성도들은 개척교회나 작은 교회의 성도들 보다 더 편한 환경에서 신앙생활을 한다. 그러다 보니 큰 갈등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며, 봉사도 자기가 할 것만 하면 된다. 그러니 교회 규모와 성도의 신앙의 수준은 비례할 수도 있지만 반비례할 때가 더 많을 수도 있다.대구 대현교회에 있을 때, 서울의 모 대형교회에 다니던 권사님이 등록을 했다. 새벽기도도 빠지지 않고 나오셔서 너무 좋았다. 그런데 그 권사님이 등록한 지 일 년이 채 되지 않아 교회가 건축을 하게 되었다. 그 분이 재정적으로 꽤 넉넉한 분이셨기에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심방까지 가서 진심을 다해 건축헌금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드렸다. 하지만 그녀는 몇 주 지나지 않아 다른 교회로 옮겼다. 어느 정도 짐작은 했지만, 그녀의 신앙 수준 때문에 심히 안타까워했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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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사명의 자리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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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서 동성애를 사라지게 하려면...
- 6월은 메르스라는 독감 바이러스가 온 나라를 뒤덮고 공포의 분위기가 만연하였다. 또한 서울시가 허가해 준 ‘퀴어축제’로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은 걱정과 근심의 한숨만 내쉬는 날들이었다. 성경을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고 있는 우리는, 각 나라가 지나온 역사를 공부해 보고, 앞날을 예측하며 우리는 어떻게 자녀들을 키우고 살아가야 할지 판단하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미국은 건국 이래 모든 초등학교에서 성경과 기도, 음악 등을 가르쳤다. 그러나 1963년 최연소 Kennedy 대통령이 예산 적자라는 핑계로, 그동안 개척자들이 목숨처럼 여겨왔던 기도시간, 성경시간, 음악시간 등을 빼버렸다. 그 후 미국의 인성은 곤두박질 쳤으며, ‘명문 케네디 일가’는 ‘비운의 케네디 일가’로 변함은 미국 교육을 망쳐놓은 하늘이 내린 벌인가? 지난 6월 28일은 오바마 대통령이 동성 결혼을 인가했으나, 교회는 이번에도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무관심한 죄를 지었으니, 하늘의 노여움이 어떻게 나타날지 두려울 뿐이다.서양 역사에 보면 네로를 비롯하여 로마황제들 가운데도 동성애자들이 있었으며, 우리나라도 신라시대 때부터 동성애자가 있었음을 삼국유사가 기록하였기에 ‘왕의 남자’라는 동성애 영화가 인기를 얻었고, 어느 유명한 영화감독이 동성애 결혼을 공공연히 한 후, 우리나라도 더 심각해 진 것 같다. 구약성서의 롯과 두 딸이 거했던 ‘소돔과 고모라’를 보자. 천사가 방문한 것을 본 동네 남자들이 젊은이로부터 늙은이까지 롯의 집에 몰려와 ‘네 집에 온 손님을 끌어내라!’고 소리치는 장면이 나온다. 오늘 이 동네로 찾아온 남자들과 ‘우리가 상관하리라!’라고 한다. 즉 남자끼리 성관계를 하겠다고 호령하는 것이다. 성에 대한 기준이 없는 사람들이 자기네 마음대로 몸을 다루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들의 결말은 무엇인가? 결국 유황불에서 목숨을 건진 롯과 두 딸은 근친상간을 하여 자녀를 얻는다. 소돔과 고모라에서 두 딸이 자라나면서 보고 배운 것은, 근친상간과 동성애뿐이었기 때문이다. 롯과 두 딸의 후손은 암몬과 모압으로, 수천 년을 내려오며 이스라엘 백성을 괴롭힌 원수였고,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요르단’ 민족이 되었다. 동성애자들은 자신들은 태어날 때부터 동성애를 할 수 밖에 없는 DNA를 갖고 있다며, 미국의 해머 박사의 연구 논문을 통해 주장했다. 1993년에 해머 연구팀은, 동성애자들의 염색체는 다형질 유전자인 Xq28며, 이는 동성애의 본능과 욕구를 일으킨다고 발표했다. 물론 연구자인 해머 역시 동성애자였기 때문에, 사람들 앞에서 자기를 합리화 하려고 이치에 맞지 않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이 때문에 동성애는 더욱 늘어났다.그러나 1999년에 카나다의 라이스 박사 연구팀은, 더 많은 동성애자들을 대상으로 해서 Xq28 염색체 안에 존재하는 유전자들을 더 구체적으로 분석을 한 후, Xq28이 동성애와 전혀 관련이 없다고 결론을 내렸으며, 해머 박사의 연구가 완전히 잘못되었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미국의 뜻있는 기독교인들이 이제는 제대로 살아보자고 노력하고 있다. 그동안 아내와 남편을 버리고 다른 사람들과 성관계를 갖았더니, 얻는 것은 병과 가난뿐이고, 잃는 것은 소중한 가족과 자녀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아내들도 남편의 성 욕구를 잘 포용해 주어야 한다. 남자와 여자의 차이점을 인정하고, 남편이 성적으로 외롭지 않도록 돌봐야 한다. 엄마와 아빠가 다정하고 사랑하는 가정에서 자라는 자녀들은 결코 동성애자가 되지 않는다. 말투와 얼굴까지 차가운 엄마를 둔 아들은, 자라면서도 여자를 혐오하는 마음을 품게 되며, 여자가 두려워서 남자끼리 사랑을 나누게 된다. 또한 엄마나 딸을 함부로 대하고 성폭행 하는 아빠를 둔 딸들은, 남자를 증오하며 두려워하기에 레즈비언으로 변하기 쉽다. 그러므로 엄마는 따뜻한 가슴으로 아들을 대하고 다정한 말솜씨로 여성의 아름다움을 심어 주어야 하고, 아빠 역시 하나님을 대신하여 거룩함과 남성다움으로 딸들을 소중하게 키워주어야 한다. 부모의 부모다움이 이 땅에서 동성애를 추방하는 최선의 길임을 우리 모두는 명심해야 하며, 동성애를 이 땅에 사라지게 하려면, 교회는 깨어 이를 시시때때로 가르쳐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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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 거
- 아버지께서 폐암 진단을 받으셨을 때,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 아버지와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가장 먼저 한 일이 어릴 때 살던 동네를 찾아가는 것이었다. 부산시 동구 수정 4동 수정아파트!내가 어릴 때 살던 곳이다. 우리 네 남매와 부모님, 거기에 할머니와 고모가 같이 살았다. 고모가 시집을 간 후에는 삼촌이 함께 살았다. 그렇게 여덟 식구가 모여 살았던 아파트는 11평이었다. 요즘 생각하면 어떻게 살았을까 싶지만 신기하게도 그 좁은 집에서 살 때가 가장 행복했었다. 그래서 나는 남편과 함께 그 동네를 찾아가곤 한다. 수정아파트에 가보자고 하니 아버지도 좋다고 하셨다. 내 생각에 아버지도 그곳에서 살 때가 가장 행복하셨을 것 같아서 말씀을 드린 것이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아버지도 어머니도 그 때가 가장 행복했다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좁은 곳에서 온 식구가 사는 것이 뭐가 좋았을까 싶지만 무엇을 소유하며 사느냐 하는 것보다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집이 좁았기에 온 가족이 함께 하는 일이 많았다. 콩나물도 같이 다듬었고, 송편도 같이 만들었다. 명절에 할머니와 아버지가 조청을 서로 잡아당기기 시작하면 어느 새 엿가락이 되어 가는 장면을 지켜보는 볼 수밖에 없었다. 집이 좁으니 무엇을 하든지 함께 동참하게 되었고 그 와중에 많은 대화가 오갔다. 그런데 부모님은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될 수 있으면 칭찬을 하셨고, 격려를 많이 해주셨다.작은 음식이나마 무엇을 먹어도 다 함께 먹어야 했고, 놀아도 같이 놀아야 했다. 그렇다고 나만의 시간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한 여름 매미 소리를 들으며 나른하게 낮잠을 청하면 아련한 뱃고동 소리가 자장가가 되어주었다. 학교에 다녀오면 나는 복도 끝에 걸터앉아 몇 시간이고 바다를 내려다보곤 했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바다를 내려다 봤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오랜 시간 사색할 수 있었던 그 시간들은 내 정서의 자양분이 되어주었을 것이다. 입담이 좋은 경찰관 삼촌은 집에 올 때마다 수많은 무용담을 가지고 왔었다. 말솜씨가 얼마나 좋은 지 삼촌이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으면 모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다시 돌이켜 봐도 우리 가족 모두가 가장 행복했던 때였던 것 같다. 그렇게 좁은 집에서 아웅다웅 사는 것이 우리 집만은 아니었다. 대부분의 가정이 아주 좁은 집에서 많은 식구들과 함께 살았다. 그래서 출근 시간과 등교시간이 되면 무수한 사람들이 골목을 가득 메웠다. 수정아파트를 고향으로 여기고 일생 내내 그리워하는 것은 그 수많은 사람들의 부대낌과 사람 냄새가 가슴 시리도록 그립기 때문이다. 그 시절 내내 행복하다는 마음이 늘 자리했던 것 같다. 그래서 인지 나는 사소하고 작은 것에 감격하고 만족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가끔 나의 아이들에게 넌 행복하냐고 물어본다. 별로 행복하다는 것을 못 느낀다는 말을 들을 때 나의 자녀양육에 대해 반성을 하게 된다. 우리 아이들이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살지 못해서 그런 것은 아닌가 하는 미련을 갖기도 한다. 고도의 경제성장기를 거치면서 집의 크기는 커져가고, 결혼을 하면 분가 하는 자녀들이 늘어나면서 사람과 사람의 거리는 점점 늘어갔다. 그리고 사람과의 거리도 점점 멀어졌다. 그런 와중에 다시 부모와 함께 살고자 하는 신혼부부들이 늘어가고 있다. 부모와의 동거가 좋아서, 부모님을 사랑해서라기보다는 경제적인 이유 때문이다. 맞벌이를 해야 하는데 자녀를 맡길 때가 마땅치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분가할 만한 경제적인 힘이 없어서이기도 하다. 부모와 동거가 서로에게 불편하고 힘들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이왕 함께 살아야 한다면 불평보다는 감사의 조건들을 서로 찾아내는 것도 좋은 방법이 아닐까? 아이들의 정서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내 어릴 때처럼 온 가족이 함께 좋은 추억을 만들 수 있는 기회라 여겨도 좋을 것 같다. 부모와의 동거! 억지로 찾아보면 좋은 점도 많지만 독립하는 것이 훨씬 좋은 일이다.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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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그곳, 친구여
- 때는 2015년 유월 모날 모시, 보랏빛 날선 번개가 빨갛게 타오르는 칸나 꽃 위로 내려 꽂힙니다. 순간 하늘 사랑에 타오르는 심장을 가진 친구의 모습이 샤갈의 몽환적 그림처럼 시공간 속을 떠다닙니다. 그렇게 친구여, 초대받았던 성령강림주일 <그날>, <그곳>. 비로 인해 강물이 넘쳐나 연인 상드에게로 가지 못함을 안타까워하며 건반을 두드려댔던 쇼팽의 빗방울 소나타처럼, 지붕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에 맞춰 주님을 그리며 <다시 갈릴리>를 노래할 수 있었던 것은 제겐 또 하나의 큰 은총이었습니다. 게다가 그곳에 봄만 되면 나르시스가 물에 비친 자신의 아름다운 얼굴에 흠뻑 취하여 물에 빠져 노란빛 수선화로 피어나는 공곶이 마을이, 붉은 동백꽃의 꽃잎이 선혈처럼 흐드려져 있는 지심도가, 이 민족의 비극, 한국전쟁 포로수용소가, 천주교 순례길이 이웃하며 곁에 있다는 것 또한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그리고 뒤늦게 말씀드립니다. 아유타 왕국의 공주 허 황옥이 그날 그곳에 함께 했습니다. 그녀는 늘 제 삶의 숙제인 양 시간도 장소도 아랑곳없이 그렇게 불쑥불쑥 나타나곤 합니다. 2천 년 전 인도에서부터 신랑되는 가야 김수로왕을 찾아온 그녀는 겨우 불과 16세였다 합니다. 일설엔 도마의 제자였다는 말도 들려옵니다. 여하튼 그녀가 붉은 기 꽂고 거친 바다 파랑(波浪) 헤치며 오직 신랑 생각에 뱃길도 배도 좋지 못했던 그 시절에, 도마가 시킨 대로 파사의 돌 다섯 덩이 싣고 그 멀고 먼 험한 바다를 건너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가슴이 벅찹니다.그런데 참 신기하지요? 수로왕릉 납릉정문 문설주 위에 두 마리의 물고기가 서로 마주 보고 있는 문양이 있습니다. 또 풍랑을 잠재우기 위해 파사석탑이라 하여 돌 다섯 덩어리가 누각에 안치되어 있습니다. 무엇이 연상되는지요...친구여, 전 벳세다 들판의 오병이어를 떠올렸습니다. 동시에 이미 부활하시어 다시 갈릴리로 오셔서 제자들을 위해 하늘 숯불 위에 떡과 고기를 구워주시던 그분의 예표를 보았습니다. 여하튼 지금 잠자고 있는 허황옥 그녀 묘지 위는 참으로 쾌적합니다. 그 주변의 쑥, 씀바귀, 냉이, 미나리아제비, 민들레, 소리쟁이 등 그 줄기가 억세어지고 스러져 가며 말을 전합니다. “이미 봄이 저만큼 뒷전으로 물러났어요” 그 소리가 마치 친구가 언젠가 저를 가을, 그것도 황혼의 노인네로 부른 것과 같은 씁쓸함과 외로움으로 전해져 옵니다.그런데 친구여, 조금도 걱정 하지 않아도 됩니다. 곧 바로 제게 눈에 보이지 않는 봄날, 못다 핀 꽃 피우게 부채질하여 봄바람 보내 주겠노라는 친구의 바람에 이미 새로운 길을 걷고 있기 때문입니다.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오늘도 내일도/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하산길 돌아보면 별이 뜨는 가을 능선에 잘 가라 잘 가라 손 흔들고 서 있는 억새 때로는 억새처럼 손 흔들며 살고 싶은 것이다. / 가을 저녁 그대가 흔드는 작별의 흰 손수건에 내 생애 가장 깨끗한 눈물 적시고 싶은 것이다 - 윤동주 <새로운 길>-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 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친구여, 할 수만 있다면 십자가에 모가지 드리우고 피흘리겠습니다, 라고 고백한 윤동주 님이 마치 친구만 같습니다. 예수님의 심장을 품고 일어서는, 날선 검, 말씀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그런 로고스 시인 말입니다.아니 오늘은 한 번에 지구 반 바퀴의 거리를 날 수 있다는 날개 큰 알바트로스 새 같습니다. 아니 이것도 아닌 침묵하고 있는, 단단하고 품위어린 산봉우리 품속 같습니다. 아니 또 이것도 아닌 다시 갈릴리로 오라는 주님을 닮은... 그래서 잠자고 있던 영혼을 깨우고 소명을 다시 일깨워주는 진정한 스승 같습니다, 친구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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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그곳, 친구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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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자
- 지난 4월 11일 토요일 벚꽃이 만개한 자유로를 지나 해이리로 이사간 박강월 친구(주부편지 대표)의 집을 방문했다. 마침 12년 전 첫 수강생이셨던 조장희 목사님도 오셔서 무척 반가웠다. 그 당시 친구는 인천에서 선교문화센터를 운영했기에 목회자를 위한 강의를 하도록 문을 열어준 고마운 친구이다. 그런데 12일 주일 예배시간까지도 형언할 수 없는 희열이 사라지지 않는 것이었다. '왜 그럴까? 아버지 이 기분의 의미는 무엇이죠?' 라고 여쭙고 주보를 보니 말씀은 계2;1~7 설교제목은 '처음 사랑을 버린 에베소교회'였다. '왜 에베소 교인들은 처음사랑을 버렸지?'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혹시 나에게 하시는 말씀이신가?' 라는 의문이 들어 집중해서 들으며 적었다. 1주일 전에 계2장 큐티를 했는데 그때 2절과 3절(네 행위와 수고와 참고 인내한 것 다 안다...)에선 은혜를 받았지만 4절(그러나 너를 책망 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은 나와 무관하다는 생각을 했다. 나름대로 주의 일을 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문제였다. 첫사랑의 감사 감격도 없이 습관적으로 열심히 하는 것은 사탄에게 속은 것이다. 그것이 마치 주님을 사랑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기에 책망을 하신다는 이웅조 담임목사님의 말씀은 정말 큰 충격이었다. 집에 와서 '책망하다'를 영어성경에서는 어떻게 표현을 했을까 궁금해서 보는 순간 눈물이 쏟아졌다. NIV성경에 의하면 'Yet I hold this against you.' 여기서 '타이르다 나무라다'의 blame, scold, rebuke 등의 고상한 표현이 아니고 'hold against' 즉 '~에 대해 나쁘게 생각하다'는 표현을 썼기 때문이다. 77번씩 용서하라고 하신 주님께서 첫사랑을 버린 자들에게 배신감을 느끼고 계신 것이다 '아버지 제가 배신자예요 그런데 무엇에 쓰시려고 다시 살려 주시고 왜 이토록 사랑하십니까?'라고 얼마나 울었는지. 이 사역을 하면서 때로 귀한 만남으로 위로가 되기도 했지만 교계의 몇몇 목회자와 관계자들에게 상처를 받고 실망을 하여 다시는 목회자들에게 강의를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주님께서 노하신 것이다. 주님의 일을 마치 나의 일인 양 마음대로 하다니 그런 마음으로 기도를 한들 응답이 있을 리가 없어 답답하고 멀리 계시는 주님이 야속하기만 했다. 그러자 그 친구와 목사님을 만나게 하셔서 첫사랑의 그 감격을 불러일으켜 주시곤 주일예배를 통해 주님의 음성을 영어성경으로 보게 하신 이유가 있었다. 나는 물론이고 지금 한국교계의 여러 문제점들로 인해 크게 분노하고 계신 주님의 마음을 확인 시켜주신 것이다. 얼마나 외로우시면 나 같은 죄인에게 하소연을 하시다니 '아버지 제가 잘못했습니다. 용서해주세요. 첫사랑을 회복하는 의미로 무엇을 해드리면 좋으시겠습니까? 다시 목회자를 위한 강의를 하겠습니다.'라고 하자 '나는 네가 무엇을 하느냐(Do) 보다 어떻게(How) 어떤 마음의 자세로 임하느냐를 원하는 것이다.' '이 일은 너의 일이 아닌 나의 일이다'라고 하셔서 또 엉엉 울면서 나의 자존심, 건강, 명예를 내려놓고 순종하기로 했다. 아직 건강이 완쾌 되지 않아 주위에선 염려를 하지만 요셉이 아버지의 명령에 '내가 그리하겠나이다 very well'이라고 기쁜 마음으로 하다 보면 강해지리라 믿는다. 5월 28일 금요일까지도 이 칼럼이 마무리가 되지 않자 답답한 마음에 우연히 나의 작은 서재의 게시판에 써 놓고 잊어버린 기도의 내용을 보고는 너무나 놀랍고 흥분이 되어 여성칼럼 담당 차진태 기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랫동안 칼럼이 완성되길 기다렸지만 이토록 힘들게 써보긴 처음이며 질질 끌게 하신 이유가 있었다고. 10년 넘게 무료강의를 해도 예상보다 반응이 저조해 자존심이 무너져 내려 배척 당한 느낌과 경제적 압박으로 가족들에게 원망을 받게 되자 슬럼프에 빠졌었다. 차라리 인기와 수입이 많은 방송이나 계속할 것을... 이런 후회를 한적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아니야. 지금까지 내 힘으로 한 것이 아니다 분명히 강력한 주님의 이끄심이 있었다'. 그런데 목회자들의 마음이 열리지 않자 몇몇 지인들의 의견을 듣고 강의의 방향을 바꾸는 것이 주님의 뜻인 줄 잘못 알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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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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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을 닮은 우리집 식탁
- 온 동네가 알록달록 꽃으로 뒤 덥혀 아름다운 꽃 잔치를 하더니, 어느덧 나무마다 초록색이 힘차게 뿜어져 나와 가는 닿는 곳마다 초록으로 변하는 5월이 되었다. 봄에는 꽃들이 피어나 사랑스럽고 감사하고, 여름엔 뜨거운 태양이 있어서 감사하고, 가을엔 낙엽이 떨어지는 것을 보며 인생을 다시 생각할 수 있어서 감사하고, 겨울은 하얀 눈과 봄을 기다리며 추위를 이겨낼 수 있어서 감사하다.우리가 일본인들에게 나라를 빼앗겨 다시 자유를 찾고자 ‘대한독립 만세’를 부르짖던 1919년경의 우리나라 문맹률은 90%였으며, 평균 연령도 27세였었다. 그래서인지 일본 아베는 아직도 우리를 미개인으로 생각하고 있다. 화장실도 샤워시설도 없었던 100여 년 전, 세계에서 가장 가난했던 이 땅에 선교사들이 들어와 한글을 배워가며 생명을 바쳐 미개한 조선을 깨워주신 것은 하늘의 크나 큰 은혜다. 우리와 우리 후손들이 그들의 사랑과 은혜를 잊는다면 하늘은 노할 것이다. 그때의 옛날 어른들은 불행하게도 공자의 사상을 물려받았기에, 모든 일을 체면 위주로 처리했으며, 자신의 아내와 자녀들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를 알지 못한 채 무시하며 명령하며 함부로 손을 댔다. 그러나 이제 예수님의 사랑을 닮아가려는 우리 새 시대 부모들은 옛 조상들의 모습을 버리고 성숙한 모습으로 가정을 이끌어 나가야 한다. 가정생활에서 가장 소중한 시간은, 저녁에 일을 마치고 식구들이 둘러앉아 식사하는 시간이다. 내가 존경했던, 유대 교수님 가정은 저녁식사 시간이 되면 항상 전화를 자동응답으로 돌려놓거나 꺼놓아 두었다. 이는 아무도 그 소중한 시간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식탁위에는 촛불을 놓았기에 아름다운 예식을 위한 식탁처럼 보였으며, 조용한 클래식 음악을 잔잔히 틀어놓는 이유는 분위를 높이고 음식 소화를 돕기 위함이란다.식탁의 맨 끝 의자는 항상 비워 두었는데, 그곳은 그들의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서 오셔서 앉아 계시며, 식사 중 그들의 대화를 듣는 의자란다. 식사를 하기 전 아버지가 먼저 음식을 향해 축복기도를 한다. 모든 음식에는 물이 들어 있으므로, 하늘 아버지와 같은 이름을 사용하는 아버지의 축복 소리를 들은 음식은, 더욱 맛난 체질로 바뀐다는 것을 그들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또한 자녀에게 음식만 먹이면 밥통이 되어, 하나님, 부모와 이웃을 사랑할 수 없으므로, 사람답게 살라는 뜻에서 아버지의 목소리로 율법도 한절 읽어준다. 그 후, 아내를 향한 남편의 ‘나의 사랑하는 아내여 그대는 나의 면류관이요 보석입니다’ 라는 감사의 노래가 끝나면, 이어서 자녀들도 ‘내게 생명을 주신 어머니 음식도 주시니 참 감사합니다!’라는 찬미 후 식사를 시작한다. 이런 아름다운 찬송을 받는 유대인 어머니들은 어린 자녀를 놓고 절대 집을 나가거나 이혼하지 않으며, 오늘도 전 세계에서 가장 낮은 이혼율을 가지고 있으니, 가장 높은 노벨상과 최고의 부와 명예를 자랑함은 당연한 결과가 아닐까?식탁에서 우리도 서로 많은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으면 좋겠다. 식사 시간 남편과 아내의 흉이나, 교회식구들을 비롯한 남을 험담하는 부정적인 말은 절대 금물이다. 이는 자녀에게 음식과 함께 독을 먹이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외국 이민 생활은 외롭기 때문에 맘에 맞는 사람들끼리 주말에 모여 음식을 나누며 회포를 푸는 일이 많다. 내가 아는 권사님과 장로님은 사회적으로 큰 성공을 이루어냈지만 자녀 양육에는 실패하고 말았다. 집에 도둑이 자꾸 들어와 경찰이 도둑을 잡고 보니, 바로 자신의 아들과 그 친구들이었다. 부모의 물건을 쳤더라도, 부모가 빌며 보석금을 내놓더라도, 교도소로 끌려가는 것이 미국의 무서운 법이다.그 교인들 중엔 7명의 의사 부부들이 있었는데, 주말마다 모여서 식사를 나누었다. 대화의 내용은 주로 자신들 교회의 목사가 얼마나 나쁜지, 그 사모는 얼마나 촌스러운지를 아이들 이 듣고 있음을 상관치 않고 자주 이야기 했다. 10년이 흐른 후, 그 자녀들은 하나같이 성공적으로 자라지 못했음을 보며 땅을 치며 후회했지만, 세월은 흘러갔고 자녀들의 어긋난 인성은 돌이킬 수 없었다.그러므로 내 마음이 우리 가족들 때문에 얼마나 기쁘고 행복하지, 그리고 오늘 하루도 내 자녀가 어떤 생활을 하고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어떻게 즐겁게 보냈는지,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식탁에서 함께 나누자. 우리 가정은 천국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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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을 닮은 우리집 식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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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아, 청년아!
- 올해 대학을 졸업한 딸이 취직을 했다. 학과에서 1등을 해서 학장상도 받을 만큼 최선을 다해서 공부했고, 실력도 뒤지지 않건만 임금이 열악하기 그지없다. 임금의 문제가 어찌 우리 딸만의 문제이겠는가? 지금 온 세계가 겪는 재앙이다. 지난 해 임금 상승률은 50대 이상은 7% 증가한 반면 20-30대의 임금은 0%의 증가에 머물렀다. 이런 현상에 절망하다 못해 분노까지 치미는 이유는 이 시대의 청년들만큼 열심히 산 청년들이 일찍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학원을 돌며 공부만 해야 했고, 대학 때도 학점 관리와 더불어 여러 가지 자격증을 따놓아야 했으며, 영어 실력도 탁월하다. 하지만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좁은 취업문과 도무지 가정조차 꾸릴 수 없는 열악한 임금이다. 청년 시절에만 누릴 수 있는 열정과 낭만, 그리고 자신의 이상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는 치기어린 선택도 해보지 못한 이들이다. 이들이 처한 환경을 생각하면 이 땅에 거대한 저주가 내린 느낌이 들 정도이다. 사실 이런 문제로 심히 오랫동안 고민해왔다. 일 년에 수만의 직업이 없어지고, 수만의 직업이 새로 생기는 이 시대에 우리의 자녀들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국민소득은 높아진다는데 서민들의 생활을 더욱 어려워져만 가는 현실, 이 일을 해결할 수 있는 Key를 쥐고 있는 가진 자들은 정부의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기득권을 내려놓지 않으려 한다. 이런 조짐들 때문에 십 수년 전부터 심히 고민을 해왔고, 오늘날은 마침내 현실이 되어버렸다. 이 땅의 절망적인 현실 앞에서 때로 눈물을 쏟으며, 또한 가슴을 치며 기도해왔다. 그리고 최악으로 치닫는 이 순간, 마침내 학개서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응답을 받았다. “너희는 씨앗을 많이 뿌려도 얼마 거두지 못했으며, 먹어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셔도 만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품꾼이 품삯을 받아도, 구멍 난 주머니에 돈을 넣음이 되었다” “나의 집은 이렇게 무너져 있는데, 너희는 저마다 제집 일에만 바쁘기 때문이다” 그동안 나는 문제의 해결을 정부와 기업이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기업의 욕심과 정부의 무능 앞에서 가슴이 무너졌고 절망을 넘어 두려운 마음까지 들었다. 그러나 답은 하나님께 있음을 보여주셨다. 실제로 오늘날 교회는 힘을 잃어가고 있는데, 열악해진 생업의 환경 때문에 성도들은 자신들의 미래를 준비하는 데 몰두하고 있다. 이 말씀을 남편과 함께 나누며 성도들이 교회에 더 헌신할 때가 된 것은 아닌지 남편에게 물었다. 그 때 남편은 한 마디로 말했다. “평생을 수고하고 헌신해 온 성도들에게 더 이상 헌신하라고 할 수 없소.” 그랬다. 119년 된 우리 교회의 성도들은 힘에 지나도록 교회에 헌신해 왔다. 이제 연로하고 지쳐있는 성도들에게 더 이상의 헌신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가 될 수 있다. 그 때 나는 깨달았다. 이제는 청년들의 헌신이 필요할 때라는 것을. 50대 이상의 성도들은 젊었을 때 참으로 힘에 지나는 충성을 했었다. 밥을 굶어가며, 추위와 더위를 견디며 봉사를 했다. 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편견과도 많이 싸워야 했다. 지금이야 술, 담배를 하지 않는 것이 좋은 것으로 여겨지지만, 얼마 전까지도 술, 담배를 하지 않는 크리스챤은 핍박을 견뎌야 했다. 요즘은 토요일이라도 쉴 수 있지만 그 때는 토요일도 직장에 가야했고, 그나마 오후에는 교회에 와서 주일 준비를 했다. 일 년 내내 거의 쉬는 날 없이 교회를 섬겼다. 그 수고의 보람은 있었다. 교회가 크게 부흥했었다. 그렇게 가진 것 없이 교회 봉사를 했지만 하나님께서 오늘날까지 인도해주셨고, 50대의 임금 상승률은 젊은 층을 능가하고 있다. 우리들에 비해 지금의 청년들은 교회에 대한 헌신도가 현저히 떨어지고, 자신에 대한 투자를 많이 하는 편이다. 청년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나 역시 교회를 섬기는 일과 자신의 미래에 대한 투자 사이에서 수없이 갈등을 했었다. 그러나 그 때도 ‘학개’서의 말씀이 나를 인도했었다. 나 자신의 앞날에 투자하려다가도 학개서를 읽으면 교회를 외면할 수 없었다. 교회 봉사만 하다 보니 실력도 갖추지 못하는 것 같고, 물질도 전혀 없어서 앞날이 심히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죽으면 죽으리라는 결단이 필요했다. 하지만 죽으면 산다. 죽음까지 각오하고 교회와 하나님을 섬길 때 삶의 길이 열리고, 환경의 축복이 오는 것이다. 하나님은 청년들이 먼저 하나님의 집을 세우길 원하신다. 주의 전을 먼저 세우면 은혜와 축복을 경험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50대가 되었을 때 또 다시 그들이 자녀들에게 교회를 먼저 세워야 한다는 믿음의 유산을 물려주게 되리라! 아, 그리하여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은 찬란한 하나님의 집들이 대대로 아름답게 수놓아져 갈 것이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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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아, 청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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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에 춤추는 술람미 - 이미옥
- J 선생님, 그렇게 훌쩍 떠나신 지 벌써 삼십년이란 시간이 흘렀다니 믿어지지 않습니다. 삼십년. 굳이 공자의 삶의 확고한 뜻을 세운다는 삼십이립(三十而立)을 들먹이지 않는다 해도 삼십년이란 세월의 나이는 참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스무 살 즈음에 잉게보르크 바하만의 를 읽으며, 그 삼십세가 나하곤 아주 먼 나이먹은 여인의 격정으로 느껴지면서도 공감했던 적이 있었는데 정말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주인공이 자신의 학문이나 명예가 사랑하는 한 남자를 위해 요리하나 못 해 주는 현실에, 실상 자신은 한낱 고깃덩이에 불과하다는 거친 언어들에 몰입되기도 했지만, 지금의 를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습니다. 오히려 바벨론 포로였던 슬픔의 퇴적더미 텔아비브(그발강가)에서의 에스겔의 . 그 삼십세가 번개처럼 영혼에 꽂혀 옵니다. 짙은 잿빛 먹구름 속에 광채가 번쩍이고 하늘이 열리는, 절망 속에 희망을 봅니다. 하나님의 보좌가 땅이 아닌 하늘에 있음을, 그 보좌는 늘 살아 움직이고 있음을 봅니다. 잊혀졌던 주님께서 주신 비전이 영화의 필름처럼 스쳐 지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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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에 춤추는 술람미 - 이미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