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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특집 / 개혁하는 교회 : 종교개혁은 끝나지 않는다 -10
    1부 성경에 기록된 신앙개혁의 역사10. 히스기야와 요시야의 개혁 이야기엘리야 당시 아합은 북방 이스라엘의 왕이었다. 남방 유다에도 신앙적으로 선한 왕 보다는 악한 왕들이 더 많았다. 유다의 열 두 번째 왕 아하스의 통치 기간 중 유다의 배도와 타락은 극도에 달했다. 이전에 우상숭배에 저항해 오던 많은 사람들까지도, 심지어는 제사장들 중에서도 아하스의 권력과 위협에 굴복하여 우상숭배에 적극 가담하므로 하나님 예배를 가장한 거짓된 의식을 통하여 유다를 타락의 골짜기로 몰아가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 타협하지 않고 그들을 견책하며 하늘의 메시지를 전한 선지자가 바로 이사야였다. “너희 소돔의 관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너희 고모라의 백성아 우리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사 1:10~12). 오늘날에도, 신실한 믿음 없이 친교를 위하여, 사업상 거래를 위하여, 사회활동의 하나로 교회를 출입하는 교인들에게도 해당되는 말씀이다.이러한 배도와 타락을 주도한 아하스 왕의 아들이, 아이러니하게도 유다의 개혁에 앞장섰던 히스기야 왕이다. 그러나 히스기야를 이어 왕이 된 그 아들 므낫세는 할아버지 아하스의 기질을 받아서 또 다시 유다를 타락시킨 대표적인 왕이 되었다. 므낫세의 아들 아몬 왕도 여전히 악한 왕이었으나 그 다음 대(代)에 또 이변이 일어났다. 므낫세의 손자 요시야는 유다를 가장 성공적으로 개혁하고 부흥시킨 대표적인 왕이 되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아버지를 닮지 않은 두 아들, 히스기야와 요시야의 개혁 이야기를 정리해 보고자 한다. 히스기야의 예배 개혁 사업북방 이스라엘이, 배도와 타락의 결과로 하나님의 채찍을 맞아 앗수르에게 지속적인 공격을 받으면서 국운이 쇠하고 있었다. 이러한 현상을 바라본 히스기야 왕은 북방 이스라엘과 같은 운명을 피하기 위하여 혼신의 힘을 다하여 국가의 부흥과 개혁을 착수하였다. 우선 그는 하나님을 섬기는 성전 봉사의 회복을 위하여 다음과 같은 말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의 협력을 요청하였다. “우리 열조가 범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하나님을 버리고 얼굴을 돌이켜 여호와의 성소를 등지고”(대하 29:6) 우상을 섬기는 일에 몰두하고 있으니 “이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로 더불어 언약을 세워 그 맹렬한 노로 우리에게서 떠나게 할 마음이 내게 있노”(대하 29:10)라.왕의 이러한 요청과 독려에 힘을 얻은 유다의 경건한 지도자들은 즉시로 힘을 모아서 성전의 문들을 고치고 제단을 보수하고 성전의 거룩한 도구들을 제 자리에 놓고 하나님께 제사하며 예배할 수 있는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 그리고, 왕과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은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속죄하는 제물을 드렸고, 먼저 자신들의 죄악과 함께 온 이스라엘의 죄를 용서해 주시도록 간구하였다. 성전 문들이 닫혀있는 어두운 세월동안 희망을 잃고 하나님의 법도를 떠나서 방황하던 백성들은 지도자들의 이러한 모습을 보고 감동하였고 적극적으로 호응하여 온 나라가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회개의 부흥이 일어났다. 백성들은 모두 기뻐하였고 지도자들을 용기를 내어, 여러 해동안 지키지 못했던 국가적인 유월절 축제를 다시 열었다. 수많은 백성들이 예루살렘으로 모여들었고 북방 이스라엘에서도 뜻있는 사람들이 함께 동참하여 다시 한 번 하나님께 헌신하며 그의 언약에 충실할 것을 다짐하였다. 예루살렘은 완전히 새로운 분위기로 전환되었다. “예루살렘에 큰 희락이 있었으니 이스라엘 왕 다윗의 아들 솔로몬 때로부터 이러한 희락이 예루살렘에 없었더라”(대하 30:26). 지도자의 책임과 사명옛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백성들의 운명은 왕에게 달려 있었다. 선하고 영성이 있는 왕을 만난 백성들을 행복하였고, 악한 왕을 만난 국민들은 불행하였다. 그만큼 지도자의 정신과 영성과 능력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나 지도자가 되려고 하면 안 된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목사가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교회의 상태가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나 목사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 한 사람의 인품과 신앙과 능력이 수많은 사람들의 삶의 질과 운명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지도자는 우선 자신이 하나님 앞에 바르고 정직하고 경건하게 서야 한다. 지도자나 목사들은 백성들에게 영적으로나 도덕적으로 본을 보이며 따라오게 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어떤 의미에서 개개인의 영생과 영멸에 영향을 주는 목사의 역할은 이 세상에서 가장 두렵고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목사나 교회의 지도자가 되려는 사람들은 그 길을 선택하기 전에 매우 심사숙고 해야 할 것이다. 목사가 된 이후에도 순간순간 자아를 살피며, 자신이 이 일에 적합한 사람인지를 살펴야 한다. 목사는 대접을 받는 직업이 아니라 섬기는 종의 모습으로 예수님 가신 길을 따라 가는 것이다. 양들을 위하여 목숨까지 버릴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요시야의 율법회복 개혁요시야는 8세의 어린 나이에 왕이 되었으나 그는 어린 시절부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공경하는 심성을 가진 신앙심이 깊은 왕이었다. 8년 후 16세가 되었을 때에 그는 평생동안 하나님의 말씀에 충실히 순종하며 살 것을 결심하였다. 20세가 되면서부터 요시야는 예루살렘을 정결하게 하기 위하여 전국을 순회하면서 “산당들과 아세라 목상들과 아로새긴 우상들과 부어 만든 우상들을 제거하여 버”(대하 34:3)렸다. 그리고 그 제단의 “제사장들의 뼈를 제단 위에서 불살라 유다와 예루살렘을 정결하게”(대하 34:5) 한 다음 예루살렘으로 돌아 왔다.요시야가 26세가 되었을 때 성전 수리를 시작하였다. 성전 보수 공사를 하던 중 제사장 힐기야가, 오랫동안 잊혀진 바 되었던 율법책을 발견하였다. 100여 년 전 히스기야의 개혁을 통하여 유월절을 지키기 시작했을 때에 매 절기마다 백성들에게 율법책을 읽어주는 법이 제정되었다. 히스기야의 체세동안에 나라가 번영했던 것은, 백성들이 율법책을 읽고 들으며 그 언약의 책에 주어진 법도를 즐겨 순종한 결과였다. 그런데, 므낫세가 그 모든 규례와 법도를 버렸고, 그의 부주의와 태만 때문에 율법책의 사본을 잃어버렸다. 이리하여 백성들을 그 귀중한 교훈을 더 이상 들을 수 없게 되었고, 여러 가지 우상들을 만들어 숭배하는 죄악에 빠지게 되었다. 힐기야가 발견한 율법책을 서기관 사반에게 주어 왕에게 전달하였다. 왕의 요구에 따라 사반이 그 율법책을 읽기 시작하였을 때 왕은 자기의 옷을 찢으며 부르짖었다. “우리 열조가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고 이 책에 기록된 모든 것을 준행치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쏟으신 진노가 크도다”(대하 34:21).요시야는 유다와 예루살렘의 모든 장로들을 긴급하게 소집하여 성전으로 올라갔고, 그 때에 모든 주민들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도 모두 함께 모였다. 왕이 직접, 성전에서 발견한 율법책을 읽으면서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여호와를 순종하고 그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지켜 이 책에 기록된 언약의 말씀을 이루리라”(왕하 34:31)고 천명하였고 백성들은 모두 이 말씀을 따르겠다고 응답하였다. 왕의 결심과 결단으로 유다 나라에 감동적인 개혁의 물결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요시야가 사는 날에 백성이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 복종하고 떠나지 아니하였”(대하 34:33)다. 오늘날 한국 기독교의 선두에 서서 교단과 각종 조직체를 지도하는 지도자들이, 교회의 성도들을 목양하는 목회자들이, 요시야의 정신으로 개혁사업을 시작한다면 한국 기독교회는 수년 내에 큰 부흥과 개혁의 역사가 시작될 것이다.
    • 지난 칼럼
    • 종교개혁500주년 특집
    2017-06-09
  •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특집 / 개혁하는 교회 : 종교개혁은 끝나지 않는다 -9
    1부 성경에 기록된 신앙개혁의 역사09. 불후(不朽)의 개혁자 엘리야 [3]갈멜산의 대결 소식을 들은 아합 왕의 아내 이세벨은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분노가 치솟았다. 특별히 그가 아끼고 사랑하는 바알과 아스다롯의 제사장들 850명이 몰살당했다는 소식은 이세벨의 이성을 잃게 만들었고 당장 엘리야를 잡아 죽이려고 하였다. 갈멜산에서 바알신이 처절하게 패배한 소식도 들었을 것이고, 엘리야의 기도로 하늘이 열리고 이미 비가 쏟아지고 있었지만, 사탄에게 완전히 사로잡힌 이세벨의 마음에는 도무지 회개하는 심령이 없었다. 오히려 자신이 믿는 신, 바알을 압도적으로 패망케 한 엘리야와 하나님에 대한 원한이 극도에 달한 나머지 사신을 엘리야에게 급히 보내어, “내가 내일 이맘 때에는 정녕 네 생명으로 저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생명 같게 하리라 아니하면 신들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림이 마땅하니라”(왕상 19:2)라고 최후 통첩을 보냈고, 엘리야는 낙심천만하여 극심한 우울증에 빠졌다. 엘리야의 인간적 면모완악한 이세벨에게 갈멜산의 이야기나 하늘이 열리고 비가 오는 일은 감동적인 사건이 아니라, 옛날 애굽의 바로 왕처럼 그의 마음을 더욱 강팍하게 할 뿐이었다. ‘감동’이 아닌 ‘감정’이 치밀어 오른 이세벨이 엘리야를 죽여 버리겠다고 협박을 하자, 엘리야는 이세벨의 의외의 반응을 보고 매우 당황했었던 것 같다. 갈멜산의 대승리 이후 어쩌면 인간적인 면에서 약간은 우쭐해 졌을지도 모르는 엘리야는 이세벨의 말 한마디에 바닥으로 추락하였고, 자신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 길에 올랐다.하나님과 분리된 인간은 참으로 연약한 존재에 불과하다. 엘리야 같은 믿음의 거장도, 인간적인 위협에 잠시 믿음의 끈을 놓친 순간 하나님이 보이지 않았고 연약한 자신을 보게 된 것이다. 만약 엘리야가 이세벨의 협박에 두려움 없이 이전처럼 단호하고 당당하게 대처했었더라면, 하나님께서는 천사들을 통해서 그의 생명을 보호했을 것이고, 이스라엘 땅에는 더 신속히 효과적인 개혁이 이루어졌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세벨에게 겁을 먹은 엘리야는 죽을 힘을 다해서 약 150㎞를 도망하여 남방유다 국경 근방인 브엘세바에 이르렀다. 유다 땅에 들어와서도 엘리야는 여전히 불안감을 느끼고 하루 길을 더 걸은 후에야 조금 안심이 되어 쉬다가 잠이 들었다. 천사가 그를 깨웠고 음식을 준비해 주었다. 참으로 자상하신 하나님의 손길이다. 하나님을 등지고 도망가는 엘리야를 나무라지 않으시고 먹을 것을 주시고 더 도망할 수 있는 힘을 주시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보라. 음식을 먹고 힘을 얻은 엘리야는 일어나서 다시 300㎞ 이상을 걸어서 호렙에 도착하였다. 지칠대로 지친 엘리야는 그야말로 죽을 지경이었다.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그가 호렙산의 한 동굴에 들어가서 신세 한탄을 하면서 절망 중에 앉아 있을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였다. “너는 나가서 여호와의 앞에서 산에 섰으라”(왕상 19:11). 잠시 후, 크고 강한 바람이 지나갔다. 바람 후에 지진이 있었다. 다시 불이 일어났다. 그러나 여호와의 음성은 들리지 않았다. 불이 지나간 후에 세미한 소리가 들렸다. 그것이 하나님의 음성이었다. 참된 개혁이란 요란한 구호와 과격한 행동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마음에 감동이 일어나고 심령의 변화가 나타나서 그것이 개혁으로 연결되는 것은 전적으로 성령의 조용하면서도 능력 있는 역사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세미한 음성으로 조용히 말씀하셨다.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왕상 19:9). 엘리야는 하나님께 떼를 쓰듯이 이렇게 말했다. “온 이스라엘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단을 헐고 주의 선지자들을 죽이지 않았습니까? 그런 와중에도 저는 정말 하나님 사업을 위하여 열심히 일했습니다. 사실 저 혼자 남은 것 같은데, 이제 저까지 죽이려고 합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꾸짖지 않으시고 다시 조용히 말씀하셨다. “엘리야, 너 혼자 남은 것이 아니야. 바알에게 굴복하지 않고 바알의 편에 기울어지지 않은 사람이 아직 7천명이 남아 있으니까, 너무 실망하지 말고 다시 힘을 내서 내가 지시하는 일들을 이루도록 할 것이니라.”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은, 갈멜산의 승리 이후 기고만장했던 엘리야의 분위기를 가라앉히고, 성급한 성격의 엘리야에게 차분하고 겸비한 심령을 일깨워 주셨다.엘리야는 하나님께서 주신 마지막 지시(왕상 19:15~17)를 받아서 수행한 후에 그의 후계자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사명을 인계한 다음, 죽음을 맛보지 않고 불병거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신비한 경험을 통해서 지금은 하늘에서 하나님과 함께 살고 있다. 엘리야의 마지막 사명에 대한 상세한 이야기는 열왕기상 20장부터 기록되어 있다. 이제 엘리야의 이야기는 여기에서 마무리하고 그의 삶을 통해서 오늘날 현대교회의 지도자들이 배워야 할 교훈들을 몇 가지 살펴보고자 한다.엘리야의 경험에서 배울 교훈들구약시대가 끝나면서 하나님께서는 말라기 선지자를 통해서 의미심장한 말씀을 하셨다.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말 4:5)낼 것이다. 여기에서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라고 하는 것은 두 가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예수께서 초림하시는 날’, 그리고 ‘예수께서 재림하시는 날’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스도 초림 전에 엘리야와 같은 사명을 가진 선지자가 나타날 것을 말씀하신 것인데, 그 엘리야가 세례(침례) 요한임을 예수께서는 친히 언급하셨다. “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진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마 11:14). 세례 요한의 사명은 예수의 오시는 길을 평탄케 하여 백성들이 예수를 맞이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일이었고 그의 메시지의 핵심은 “회개하라”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예수의 재림 직전에도 엘리야와 같은 사명을 가진 개혁자들이 나타나야 할 것이고 그들이 전하는 메시지의 핵심 역시, 예수의 재림을 맞이할 수 있도록 성도들을 정결하게 준비시키는 일이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종말의 시대에 엘리야의 사명을 가진 자들은 어떤 사람들이며 무엇을 해야 하는가? (1) 마음이 순수하고 불의와 타협하지 말아야 한다.-구약의 엘리야나 신약의 엘리야 세례 요한이나 모두 산 속 아니면 광야 같은 시골 출신이다. 그만큼 세속의 때가 묻지 않고 순수했다는 것이다. 개혁자의 사명을 완수하려면 세속화 되지 않은 순수함이 있어야 한다.(2) 자신이 먼저 하나님을 대면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다른 사람을 “회개하라”고 외치려면 자신이 먼저 하나님 앞에 철저히 회개하여 정결함을 받고 날마다 자아가 깨어지고 죽어서 굳건한 믿음으로 자신의 신앙을 떳떳하게 지켜야 한다.(3) 죄를 죄라고 지적할 수 있는 담대한 용기가 필요하다.-엘리야가 아합 왕의 부패와 타락을 지적했듯이, 세례 요한이 당시 헤롯 왕이 동생의 아내를 취한 것을 죄라고 지적했듯이, 현대의 엘리야도 엄연한 죄를 눈 감고 지나가지 말고 죄를 죄라고 지적할 수 있어야 한다.(4) 칠전팔기(七顚八起)의 정신이 있어야 한다.-개혁자는 옳은 일을 위해서라면 백절불굴(百折不屈)의 의지를 가지고 끈기 있게 일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엘리야는 지치고 탈진하여 넘어졌지만,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다시 일어나 전진하였다. 이것이 개혁자의 정신이다.(5) 주변의 상황을 보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한다.-엘리야가 이세벨이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그 “형편을 보고 일어나 그 생명을 위하여 도망하”(왕상 19:3)였다. 그때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바라보았다면, 도망하지 않았을 것이다.오늘 이 시대에도 엘리야가 필요하다. 아무리 교회가 세속화 되고 타락하였어도 하나님께서 숨겨 두신 현대판 ‘7천명’이 남아 있다. 이 시대의 엘리야들이 함께 뜻을 모으고 힘을 합하여 하나님께 나아가면, 예수의 재림 전 또 다른 개혁의 역사가 시작될 것이다.
    • 지난 칼럼
    • 종교개혁500주년 특집
    2017-06-02
  •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특집 / 개혁하는 교회 : 종교개혁은 끝나지 않는다-8
    1부 성경에 기록된 신앙개혁의 역사 8. 불후(不朽)의 개혁자 엘리야 [2]성경에 ‘엘리야’라는 이름은 104회 나타난다. 성경의 유명한 사람들 가운데 그 이름이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인물 중의 하나이다. 그리고 그의 이미지는 매우 강직하고 용감하고 단호하면서도 때로는 아주 유약한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특이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그가 풍기는 분위기는 전형적인 개혁적 성향을 가진 선지자임이 분명하다. 시기적으로 이스라엘이 가장 타락한 시대에 부름을 받은 선지자였기 때문에 어쩌면 불가피하게 꼴 지워진 모습일 수도 있고, 아니면 하나님께서 그 시대에 그런 성향을 가진 선지자가 필요했기 때문에 그를 선택하셨을 가능성도 있다. 어쨌든 그는 불후의 개혁자였다. 사르밧 과부의 믿음엘리야는 아합 왕궁을 황급히 떠난 후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그릿 시냇가에 있는 산 중에 숨어서 기적적인 생활을 하고 있었다. 하나님께서 까마귀를 통해서 그에게 먹을 음식을 날라다 주셨다. 그러나 계속되는 한발(旱魃)로 인하여 시내의 물이 말라서 더 이상 그 곳에 머물 수가 없게 되었다. 엘리야는 다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시돈 땅에 있는 사르밧이라는 곳으로 이동하여, 여전한 가뭄의 결과로 양식이 다 떨어지고 이제 마지막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나무를 줍고 있는 한 과부를 만나게 된다. 엘리야는 그에게 물과 떡 한 조각을 요청하였다. 평상시 하나님을 신뢰하며 선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왔던 이 과부는 엘리야의 말, “…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는 다하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왕상 17:14)는 약속을 믿고 마지막 떡 한 조각을 지나가는 나그네와 나누어먹는 믿음을 행사하였다. 그 후 놀라운 축복이 사르밧 과부의 집에 임하였다. 개혁의 사명을 받은 자는 그 사명을 완수할 때까지 하나님이 돌보신다. 하나님의 신실한 종을 공궤하는 가정도 하나님께서 보살피시어 복을 내리신다. 아합 왕과 엘리야의 만남이스라엘을 황폐케 했던 가뭄의 기간이 끝나가고 있었다. 하나님께서 다시 엘리야에게 임하시어 말씀하셨다. “너는 가서 아합에게 보이라 내가 비를 지면에 내리리라”(왕상 18:1). 선지자가 사마리아로 아합을 만나러 가는 그 같은 시간에 아합 왕은 궁내 대신 오바댜를 데리고 친히 물 있는 장소를 찾아 나섰다. 서로 방향을 달리하여 물을 찾고 있던 중, 오바댜가 길에서 엘리야를 만났다. 엘리야가 그에게 말하였다. “가서 네 주에게 고하기를 엘리야가 여기 있다 하라”(왕상 18:8). 오바댜는 기절초풍할 노릇이었다. 만약에 그 말을 전했다가 엘리야가 나타나지 않으면 즉시로 죽음을 면치 못할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선지자는 그를 안심시켰고 오바댜는 함께 나왔던 아합 왕을 찾아서 그 일을 고했다. 드디어 아합 왕과 엘리야의 극적인 대면이 이루어졌다. 아합 왕은 두렵고 떨리는 음성으로 이렇게 말했다.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여 네냐”(왕상 18:17). 적반하장과 같은 이 말에 대하여 엘리야는 담대하게 왕을 꾸짖었다. “내가 이스라엘을 괴롭게 한 것이 아니라 당신과 당신의 아비의 집이 괴롭게 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명령을 버렸고 당신이 바알들을 좇았음이라”(왕상 18:18). 오늘날 이와 같은 개혁자가 필요하다. 갈멜산에서 벌어진 세기의 대결엘리야가 아합에게 긴급동의를 하였다. 바알의 선지자 사백오십 인과 아세라의 선지자 사백 인을 갈멜산으로 데리고 와서 바알과 하나님 중에서 누가 참 신(神)인지 대결하자는 제안이었다. 엘리야의 위엄에 압도된 아합은 즉시로 그의 제안을 받아들여 제사장들을 갈멜산으로 소집하였다.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도 이 세기의 대결을 구경하기 위해 갈멜산으로 모여들었다. 엘리야가 거기에 모인 백성들에게 큰 소리로 외쳤다.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을지니라”(왕상 18:21). 제사를 통해서 누가 참 신인지 확인하는 대결이 시작되었다. 바알의 제사장들이 단을 쌓고 제물을 올려놓았다. 불은 지피지 않고 자기들의 신에게 불을 내려 줄 것을 간청하여 불이 내려오게 하는 방식으로 참 신(神)을 가려내는 대결이었다.바알의 제사장들은 아침부터 정오를 지나 오후 늦은 시간까지 바알신인 태양을 향하여 괴성을 지르고 옷을 찢고 칼로 몸을 상하게 하면서 불을 내려줄 것을 기도하였다. 태양 자체가 불덩어리였지만 바알신은 묵묵부답이었다. 850명의 제사장들이 목이 터지라고 불을 간구하였으나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제 엘리야의 차례가 되었다. 850:1의 싸움이었다. 엘리야는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홀로 이 일을 진행하였다. 제단을 쌓아 그 위에 나무를 펼쳐놓고 제물의 각을 떠서 올린 다음, 물 12통을 제물 위에 들어부었다. 제단 둘레에 파놓은 도랑에까지 물이 가득 고였다. 엘리야가 이렇게 물을 퍼부은 것은 하나님께 대한 믿음 때문이었다. 비록 제물과 나무가 흠뻑 젖어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불이 그 모든 것을 순식간에 태울 수 있다는 믿음에서 나온 과감한 행동이었다. 믿음은 언제나 상식을 초월하는 것이다.그리고 엘리야는 침착하게 조용히, 그러나 힘 있는 믿음의 기도를 드렸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 되심과 내가 주의 종이 됨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날 알게 하옵소서 여호와여 내게 응답 하옵소서 내게 응답 하옵소서 이 백성으로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저희의 마음으로 돌이키게 하시는 것을 알게 하옵소서”(왕상 18:36, 37). “이에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은지라”(왕상 18:38). 여호와 하나님 신(神)이 대승리를 거두는 통쾌한 장면이었다. 백성들은 두려움과 놀라움으로 그 장면을 바라보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지시를 따라서, 즉시로 백성들에게 명하여 그들을 기만하고 거짓되고 망령된 길로 인도한 바알과 아세라 제사장들을 모조리 잡아서 죽이도록 하였고, 분노에 찬 백성들은 그 명령을 따라서 거짓 제사장들을 기손 시내로 끌고 가서 일망타진 하였다. 이런 인물이 필요하다개혁자에게는 백절불굴의 의지와 용기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보다 더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절대 믿음’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반드시 성취될 것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 믿음이 필요하다. 믿음으로 대승리를 거둔 엘리야는 아합에게 “큰 비의 소리”(왕상 18:41)가 있으니 이제는 왕궁으로 가서 먹고 마시라고 권면하였다. 아직 하나님으로부터 아무런 지시가 없었지만 엘리야는 그분의 약속이 성취되는 장면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확신에 찬 말로 왕에게 비 소식을 전하였다. 그리고 엘리야는 곧바로 한적한 곳으로 가서 하나님께 비를 주실 것을 간절히 기도하였다. 일곱 번의 기도 끝에 3년 이상 굳게 닫혀있던 하늘이 열리고 비가 쏟아지기 시작하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다시 한 번 뼈저리게 실감하고 감동하는 순간이었다.오늘날 세속화되고 타락하고 부패한 이 교회에 엘리야가 필요하다. 물질이나 인맥에 매매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타협하지 않는 ‘곧은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마음이 진실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전하므로 성도들의 양심을 일깨우고 마음을 쪼개어 회개케 하는 직설적인 설교를 할 수 있는 목사가 필요하다. 현시대에 기독교가 허약해진 이유 중의 하나는 목회자들이 성도들의 비위(脾胃)를 거슬리지 않는 위로의 설교, 기복설교, 번영을 약속하는 설교를 주로 하기 때문이다. 교회가 개혁되려면 엘리야처럼 죄를 죄라고 부르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담대한 목사가 많이 나타나야 한다. 하늘이 무너질지라도, 옳은 편에 굳게 설 수 있는 그런 용기 있는 목회자들이 있어야 한다. 누가 이 십자가를 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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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교개혁500주년 특집
    2017-05-19
  •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특집 / 개혁하는 교회 : 종교개혁은 끝나지 않는다-7
    1부 성경에 기록된 신앙개혁의 역사7. 불후(不朽)의 개혁자 엘리야 [1] 서언죄된 본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인간들의 집단은 끊임없이 죄악으로 기울이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인류의 역사는 언제나 배도와 타락의 늪으로 빠져든다. 그래서 성경의 역사를 통해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하나님의 요청은 “회개하라” “개혁하라” “돌아오라”는 것이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요청을 왕과 백성들에게 전하는 것이 주된 ‘사명’이었다. 이스라엘과 유다 나라에 등장했던 많은 선지자들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개혁자를 꼽으라면 주저 없이 엘리야를 생각하게 된다.솔로몬의 신하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으로 시작된 북왕국 이스라엘의 일곱 번째 왕, 아합의 시대에 있었던 이스라엘의 배도와 우상숭배는 가히 극도에 달하였다. 시돈 사람의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을 왕후로 맞아들인 아합은 그 아내의 영향력에 거의 노예가 되다시피 하여 하나님의 법도를 떠나 온 나라를 우상숭배의 소굴로 만들어 하나님의 진로를 격동시키고 있었다. 이러한 시대에 요단강 동편 길르앗의 깊은 산 속에 한 경건한 기도의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 엘리야였다. 그는 어떤 특별한 직책을 가지고 공식적으로 일을 하지는 않았지만, 하나님을 공경하고 백성들을 사랑하는 신실한 하나님의 종이었다. 엘리야는 이스라엘이 우상숭배에 깊이 빠져들어 가는 모습을 보고 마음에 극심한 고통을 느꼈으며, 평소에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분의 말씀에 견고한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던 그의 마음에, 아합 왕의 타락과 국가의 배도에 대하여 불타오르는 의분을 느끼며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었다. 엘리야의 믿음과 용기이스라엘의 상태에 대하여 하나님의 단호하고 신속한 조치를 기다리며 기도하던 엘리야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였다. 엘리야는 주저함 없이 담대하고 당당한 모습으로 왕궁으로 직접 들어가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을 전하였다. “나의 섬기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 년 동안 우로가 있지 아니하리라”(왕상 17:1). 갑작스러운 엘리야의 출현과 그가 경고한 재앙에 대하여 황당해하며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아합 왕을 뒤로 하고 엘리야는 급히 왕궁을 빠져 나왔다.산천초목이 우거지고 늘 풍부한 물이 흐르고 있던 이스라엘 땅에 갑자기 수년 동안 비가 오지 않을 것이라는 경고는, 큰 비를 전혀 경험해 보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홍수로 세상이 멸망할 것이라는 노아의 메시지 만큼이나 생소하고 믿을 수 없는 예언이었다. 그러나 엘리야는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반드시 성취될 것을 믿었고, 그 믿음에 기초하여 곧바로 왕에게로 달려가서 그 소식을 전하였던 것이다. 그러니까 개혁자의 매우 중요한 특성은 예나 지금이나 하나님의 말씀을 100% 신뢰하고,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일이지만 믿음의 눈으로 그 성취를 미리 바라보고 확신을 갖는 것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히 11:1)이라는 말이 바로 이런 상황에 적용된다.태양이 주신(主神)인 바알 숭배는 이방 여자 이세벨에 의해서 이스라엘 땅에 만연된 신앙이다. 바알 신을 숭배하는 자들은 초목과 각종 곡식과 식물(植物)들이 자라나는 것은 태양신이 내려주는 축복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비와 이슬을 내리지 않는 재앙을 통해서 저들이 믿는 신(神)이 아무 것도 아닌 헛된 신임을 깨닫고 천지만물을 지배하시는 참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계획하신 것이다. 더욱 강팍해진 아합과 이세벨비가 오지 않는 기간이 점점 길어지면서 이스라엘 땅에는 극심한 가뭄현상이 일어났다. 비옥했던 이스라엘의 토지는 풀포기 하나 찾아볼 수 없는 삭막한 땅이 되었고 ,짐승과 가축들은 먹을 것이 없어서 죽어가고 있었다. 백성들의 아우성이 왕궁에까지 들려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합은 회개하지 않았고 돌이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마음은 더욱 강팍해졌다. 니느웨 사람들과 그 나라의 왕은 이방인들이었지만 요나의 경고를 듣고 회개하였으나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왕은 회개하지 않았다. 태양 광선이 진흙에 닿으면 흙이 딱딱하게 굳어지지만 구두약이나 왁스 같은 물질에 닿으면 그것이 액체로 녹아지듯이, 인간의 마음 상태에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하는 모습은 전혀 다른 양상으로 나타난다.여전히 바알 신을 철저하게 믿고 있던 아합과 이세벨은, 비가 오지 않는 것은 하나님이 경영하시는 일이 아니라 엘리야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엘리야만 죽이면 비가 올 것이라고 판단하여 엘리야를 찾아서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다. 국내 뿐만 아니라 이웃 나라에까지 연락하여 엘리야를 찾아 줄 것을 호소하였으나, 하나님이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엘리야를 찾아내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바알의 제사장들이 비를 오게 하려고 바알 신에게 수많은 제사를 드리고 빌고 간청하여 현 사태를 반전시켜보려고 온갖 노력을 해 보았으나 허사였다. 오히려 그들이 섬기는 태양은 더욱 강렬하였고 온 대지를 초토화시키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여전히 태양을 저들의 신으로 섬기기를 포기하지 않았던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인간의 고집과 편견과 우매함을 보게 된다. 하나님을 부인하고 믿지 않는 사람들, 하나님을 믿기는 하지만 그의 존재만 믿을 뿐, 그분의 말씀을 불신하고 불순종하는 사람들이 바로 이러한 부류에 속한다. 그래서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시 14:1)고 한다. 악은 악을 낳고 선은 선을 낳는다엘리야를 찾아서 죽이려는 노력이 아무런 성과 없이 수포로 돌아가자, 화가 치밀어 오른 이세벨은 이스라엘 나라 안에 있는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모두 색출하여 죽이려고 결심을 한다. 아마도 그 당시에는 바알의 제사장들도 많이 있었겠지만, 하나님께 충실한 선지자들도 많이 있었던 것 같다. 어떤 사람들이 선지자 부류에 들어갔는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어쨌든 암암리에 백성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뜻을 전하면서 회개와 개혁을 촉구하는 선지자들이 상당수 있었던 것만은 확실하다. 이세벨은 이러한 선지자들을 찾아내어 죽이면서 그 분한 마음을 달래고 있었던 것이다. 악에서 돌이키지 않으면 계속해서 다른 악을 생산하여 점점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어가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는 것이고, 마침내 멸망을 초래한다. 이것이 악의 속성이고 결말이다.그런데, 이 사건 속에서 한 특출한 인물이 등장한다. 아합 집에 궁내 대신(大臣)이면서 하나님께 충실한 인물 오바댜라는 사람이다. 이세벨이 이스라엘의 선지자들을 죽이려는 계획을 추진할 때에, 그 사실을 미리 알았던 오바댜는 “선지자 일백 인”을 선별하여 “오십인씩 굴에 숨기고 떡과 물을 먹”(왕상 18:4)여 살려냈다. 참으로 놀라운 믿음과 용기의 사람이다. 발각되면 즉시로 자신이 죽을 일인데, 그런 일을 감행한 것을 보면 오바댜라는 인물은 하나님 보시기에 매우 유용한 청지기였던 것 같다. 사람이 선을 행하여 선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선한 사람이 선한 일을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사람이 변화되려면 마음의 샘이 바뀌어야 한다.개혁자들 중에는 그 성향에 따라서 두 부류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선두에서 일하는 엘리야 같은 개혁자가 있고, 드러나지는 않지만 마치 소금처럼 백성들 속에 섞여서 주변을 변화시키고 개혁시키는 오바댜 같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사실상 이러한 부류의 인물들이 많이 있어야 진정한 개혁이 지속적으로 일어날 수 있다. 큰 목소리를 내고 개혁을 외치는 사람들과, 조용히 그러나 분명한 모습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신령한 감화력을 통해서 개혁을 이루어가는 사람들이 조화를 이루면 진정한 개혁이 일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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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교개혁500주년 특집
    2017-05-08
  •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특집 / 개혁하는 교회 : 종교개혁은 끝나지 않는다 -6
    1부 성경에 기록된 신앙개혁의 역사6. 반면교사(反面敎師)로서의 솔로몬서언역사는 반복된다. 이 말을 성서적 관점에서 풀이해 보면, 죄악적 성향을 가진 인간들이 하나님의 뜻을 깨달은 후에 그 말씀의 법칙과 원칙을 따라서 살다가, 어느 정도의 세월이 지나면 다시 옛 습관으로 돌아가 육적인 욕망과 세속적인 경향을 따라서 방종하고 타락한 삶을 살게 된다. 그러다가 어떤 계기를 통해서 특별한 깨우침이나 부흥과 개혁의 경험을 하게 되면 또 다시 하나님의 법도 안으로 들어가 살게 되는 패턴이 반복된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구약에 나타난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전형적으로 이러한 패턴의 역사가 반복된다. 이 세상에 존재했던 인물들 중에서 가장 지혜가 많았고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최고의 복을 누렸던 솔로몬의 인생도 역시 이 패턴의 틀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보게 된다. 그가 왕위에 즉위한 초기에는 아버지 다윗 왕의 신앙을 본받아서 하나님을 절대 신뢰하는 충성된 종이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께로 받은 바 지혜와 부(富)와 권력과 명예를 가지고 부강한 나라가 되었을 때에 그 모든 결과들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고 자신의 업적과 영광으로 자랑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을 때에 타락과 부패의 일변도(一邊倒)로 치닫게 된다. 이러한 이유에서 반면교사로서의 솔로몬의 인생을 살펴보는 것은, 오늘날 종교나 신앙의 타락과 부패의 원인과 개혁의 정도(正道)를 찾아내는 일에 상당히 큰 유익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솔로몬 왕의 초기 정신다윗은 그의 아들 솔로몬에게 왕위를 물려주는 유언을 통해서 “사람을 공의로 다스리는 자,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다스리는 자”(삼하 23:3, 4)가 되라고 권유하였다. 이러한 정신을 이어받은 솔로몬은 그의 통치 초기에, 그의 왕위를 보좌하도록 선택함을 받은 대신들을 대동하고 “천부장과 백부장과 재판관과 온 이스라엘의 각 방백과 족장들”(대하 1:2)과 함께, 광야에서 건축된 성소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던 기브온에 가서 겸비한 심령으로 자신을 성별하는 제사를 드렸다. 그는 자신의 모든 신하들과 방백들에게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여 그분이 주시는 지혜와 명철로 백성들을 잘 치리할 것과 모두가 한 마음으로 연합하여 하나님께 가납하심을 받는 정치를 하도록 요청하였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지혜를 주셨고, 솔로몬은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공의롭고 자비로운 통치를 하면서 백성들은 그를 크게 높이고 존경하였으며, 나라는 매우 부강하게 되어 주변 이방 나라들의 찬사를 받으며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고 하나님의 뜻과 그분의 영광을 온 세상에 드러내는 일에 큰 역할을 하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지혜를 주시면서 당부한 말씀은 그의 평생에 걸쳐서 간직해야 할 중요한 지침이었다. “네가 만일 네 아비 다윗의 행함같이 내 길로 행하며 내 법도와 명령을 지키면 내가 또 날을 길게 하리라”(왕상 3:14). 그런데 불행하게도 솔로몬은 자신의 통치하에 있는 이스라엘이 번영하고 부강해짐에 따라서 이 귀한 교훈의 말씀을 잠시 잊어버렸다. 솔로몬의 타락과 배도이미 수백 년 전에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장차 이스라엘의 왕 위에 오를 자들을 위하여 내려주신 교훈이 있었다. “그가 왕위에 오르거든 레위 사람 제사장 앞에 보관한 이 율법서를 등사하여 평생에 자기 옆에 두고 읽어서 그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며 이 율법의 모든 말과 이 규례를 지켜 행할 것이라 그리하면 그의 마음이 그 형제 위에 교만하지 아니하고 이 명령에서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리니 이스라엘 중에서 그와 그의 자손의 왕위에 있는 날이 장구하리라”(신 17:18~20). 이스라엘의 왕들이 장구한 세월 동안 번영을 누릴 수 있는 길이 분명하게 제시되어 있었다. 어떤 경우에든지 하나님의 법도를 떠나지 말고 그 원칙을 따라서 통치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오늘 교회의 모든 지도자들도 따라야 할 명백한 교훈이기도 하다. 오늘날 이 교회와 성도들이 세속화 되고 타락한 원인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의 원칙을 멀리 떠난 결과이다. 솔로몬은 번영 중에 하나님의 주신 이 통치의 원칙을 무시하고 잊어버렸다. 그는 자기와 친밀한 교제를 나누기 원하는 주변의 이방 나라들과 동맹을 맺음으로 이스라엘을 더 부강한 나라로 만들고 싶은 욕망이 일어났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이방 나라들의 힘을 이용하여 더 강한 나라를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방 나라들의 공주들과 정략결혼을 하게 되었고, 하나님의 나라 이스라엘은 이방 나라에서 들어온 왕비들로 인하여 그들이 섬기는 우상 숭배에 물들기 시작한 것이다. 솔로몬은 이방 나라들과 이러한 교제를 시작하면서, 그들을 끌어들여 하나님을 믿게 하고 개종 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확고한 믿음을 가진 인물이라 할지라도 그는 여전히 죄된 본성을 가진 연약한 인간이기 때문에, 죄악적인 풍습이나 그러한 습성에 물들어 있는 사람들과 깊은 교제를 나누게 되면 오히려 그들의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이 다반사이다. “솔로몬의 나이 늙을 때에 왕비들이 그 마음을 돌이켜 다른 신들을 좇게 하였으므로 왕의 마음이 그 부친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아니하여 그 하나님 여호와 앞에 온전치 못하였으니 이는 시돈 사람의 여신 아스다롯을 좇고 암몬 사람의 가증한 밀곰을 좇음이라”(왕상 11:4,5). 이리하여 이스라엘을 개혁한 솔로몬이 개혁의 대상이 된 것이다. 반면교사 솔로몬에게서 얻는 교훈우리는 솔로몬의 삶과 경험을 통해서 매우 귀중한 몇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① 현재 아무리 믿음이 좋고 위치가 확고해도 누구나 다시 타락할 가능성이 있으니 항상 깨어서 기도하며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던 빛나는 지도자들이 이성 문제나 돈 문제에 연루되어 맥없이 무너지는 현상을 보면 인간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를 실감하게 된다. 요셉이나 다윗이나 다니엘처럼 초지일관 하나님의 말씀 위에 굳건하게 서서 변절치 않는 영성과 신앙으로 주변을 변화시키고 개혁하는 지도자들이 필요하다. ② 인간의 죄악적 본성 때문에 악(惡)은 언제나 선(善)보다 전염성이 강할 수밖에 없으므로, 악을 선으로 끌어들여 선으로 바꾸고자 하는 시도는 매우 위험하고 무모한 일이다. 역사적으로도 교회가 이방종교나 세상의 정치와 타협을 시작하면 반드시 타락하고 배도하는 역사가 있었다. 로마 천주교회가 로마 제국의 정치와 결탁하였을 때 배도한 교회로 변질되었고, 미국의 개신교회가 현재 국가의 정치적 세력과 결탁하면서 교회는 영적 힘을 잃어버리고 배도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도 여전히 정교분리(政敎分離)의 원칙이 지켜져야 하는 것이다. 교회가 국가의 정치적 권력이나 개인의 영향력에 의존하여 이득을 보려고 하는 것은 변질과 배도의 문을 여는 것이다. ③ 교회 지도자들에게 자만과 교만심은 나병(癩病)처럼 피해야 할 해독이다. 솔로몬이 이방나라들과 교제를 시작한 것은, 현재의 국가적 번영과 영화에 대한 자만심 때문이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그러한 자리에 이르게 되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그 모든 결과들을 자신의 업적으로 착각한 것이다. 교회가 정화되고 개혁되고 사회로부터 신뢰를 받으려면 교회 지도자들이 돈과 명예에 대한 욕심과 욕망을 포기하고 겸손한 모습으로 자신을 희생하면서 교회와 사회를 위하여 헌신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세상을 개혁한 예수님의 모습니다. 다행히 인생 만년에 회개하고 새로운 개혁을 시도한 솔로몬이 내린 인생의 마지막 결론은 역시 하나님의 말씀이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전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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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교개혁500주년 특집
    2017-04-21
  •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특집 / 개혁하는 교회 : 종교개혁은 끝나지 않는다-5
    1부 성경에 기록된 신앙개혁의 역사5. 개혁의 기준은 ‘하나님의 법’이다 서언‘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라는 말이 있다. “옛 것을 공부하면 새 것을 알게 된다”는 뜻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책, 성경을 연구해보면 오래 전 옛적에 하나님께서 인간(죄인)이 죄를 해결하고 구원받을 수 있는 이치와, 구원을 받은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 그 원리를 상세하게 말씀해 놓으셨다. 그런데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변동될 수 없는 성경의 진리나 원리가 왜곡되고 변질되어서, 성경이 가르치는 원래의 뜻을 벗어난 교리나 관행이나 제도들이 만들어지고 그것들이 교회에서 통용되면서 수많은 부작용을 낳게 된 것이다.엄밀히 말하면, 중세교회의 말틴 루터의 개혁이라는 것도, 어떤 새로운 교리나 제도나 체제를 만든 것이 아니라, 당시 성경에서 크게 벗어나 있는 로마교회의 왜곡된 교리나 제도를 성경의 원안대로 돌려놓고자 하는 시도였다. 그래서 그의 개혁의 모토는 ‘오직 성경’이었다. 그러므로 기독교에서 말하는 ‘개혁’이란, 변할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에 가감했거나, 사람들 마음대로 고친 것들을 원상대로 복구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구원의 원리를 회복해야 한다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구원’이다. 그런 의미에서, 성경을 기초로 하는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 다음의 세 가지 사항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첫째, 죄인이 어떻게 죄를 해결하고 구원을 받는가? 들째,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셋째, 그리고 실제적인 구원과 영생은 언제 어떻게 시작되는 것인가? 하는 것이다.이 원리와 방법은 사람이 연구하여 만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받은 이스라엘 민족들이 출애굽 하여 광야생활을 시작하면서 먼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교육을 받았다(신 5:15 참조). 6일 동안 내리던 만나가 7일째에는 멈추었고, 그 날 안식일에는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도록 되어 있었다. 그리고 광야생활을 시작한 지 3개월 만에 시내산 앞에 도착하여 그곳에서 엄청난 일들이 일어났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에게 직접 현현(顯現)하시어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요구 사항을 집약한 십계명을 선포하신 것이다. 얼마 후 십계명이 기록된 두 돌비를 보관하는 법궤와 함께 성소가 건축되었는데, 그 성소의 구조와 제도 안에 구원의 원리, 성도의 생활, 그리고 궁극적인 구원의 상태가 설명되어 있었다.(1) 뜰에서 이루어지는 구원(칭의)-성소는 뜰, 성소, 지성소. 이렇게 세 부분으로 되어 있다. 첫 번째 장소인 뜰에서 죄인이 제물(양)에게 안수하므로 자신의 죄를 전가(轉嫁)한 다음, 죄를 뒤집어 쓴 양이 번제단에 불태워지는 의식을 통해서 죄인이 의롭게 되는 절차가 이루어진다. 이렇게 자신의 죄를 죄 없는 의인에게 전가시키므로 자신이 타의에 의해서 의롭게 되는 것을 칭의(稱義)라고 한다. 뜰의 번제단과 성소의 입구 사이에 위치한 물두멍은 제사장이 성소를 출입하며 손과 몸을 씻는 곳인데 영적인 의미로는 침례(세례)를 표상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뜰은 죄인이 어린 양이 표상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는 장소이다.(2) 성소에서 구현되는 그리스도인의 삶(성화)-성소 안에는 떡상과 향단과 촛대가 있다. 뜰에서 구원을 경험한 성도의 삶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떡상)을 양식으로 삼고 살아야 한다. 그리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기도(향단)를 통한 성령의 능력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이다. 촛대 안에 들어 있는 기름은 성령을 상징하는 것이고, 기름을 연료로 해서 타오르는 촛불은 성령의 역사로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통해서 변화되는 모습으로 이웃들에게 빛이 되는 참 그리스도인의 모습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오늘날 교회와 성도들은 대체로 이 성소의 단계에서 좌절하며 실패를 거듭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성화(聖化)의 신앙이 심히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종교개혁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신앙개혁을 통한 그리스도인의 삶이 변화되어 예수를 닮는 것이다. 이것이 개혁의 기초를 이룬다.(3) 지성소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경험(영화)-지성소에는 법궤가 있고 법궤 위에는 쉐키나 영광의 형태로 하나님께서 임재하고 계셨다. 1년에 하루 7월 10일 대속죄일에 대제사장은 지성소에 들어가서 하나님을 대면하였다. 인간이 하나님을 대면한다는 것은 감당할 수 없는 일이지만, 성경에 수백 번 언급된 주님의 재림의 날에, 구원받은 성도들은 그분을 대면하여 보게 될 것이다. 사도 요한은 그 날에 우리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요일 3:2)이라고 하였고, 사도 바울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재림을 통하여 주님을 대면하게 되는 순간, 즉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고전 15:51)될 것이라고 하였다. 성도들이 장차 하나님을 만나서 살게 될 영광스러운 변화를 ‘영화’(榮化)라고 한다. 이것은 ‘개선’이나 ‘개혁’을 넘어서는 ‘개벽’이다. 개혁의 지표-계명위에 언급한 성소 제도의 전반적인 의미는 이렇다. 뜰에서 이루어지는 칭의는 한 순간에 일어나는 일이며, 이것은 구원을 받는 일에 있어서 인간은 오직 믿음만 행사하면 되는 것이지, 인간측의 어떤 노력이나 공로가 필요치 않다는 것이다. 재림 시에 있게 될 영화 역시 순식간에 일어나는 변화이다. 그러나 ‘성화’라고 하는 것은 그리스도인 삶에 있어서 평생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일이다. ‘칭의’가 갓난아이로 태어난 상태라면 ‘성화’는 그 아이가 자라나는 과정이다. 그러니까, 구원이란 ‘이미 얻은 구원’(already)을 기초로 해서 자라나며 성숙해지다가 ‘장차 얻을 구원’(not yet)의 영광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벧후 3:18)고 권면하였다.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이 이 자라나는 과정에서 지향(志向)해야 하는 지표는 무엇인가?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임재(쉐키나), 혹은 존재의 기초(시 97:2 참조)로 자리 잡고 있던 지성소의 법궤 속에 들어있는 십계명(도덕법)이다. 어떤 이들은 예수께서 오셔서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십계명은 폐하고 ‘사랑’으로 대치되었다고 말하는데, 위험천만한 발상이다. 개혁교회 신앙의 근간이 되고 있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19장 ‘하나님의 율법’ 5항에는 “그리스도께서는 복음으로 도덕법의 이 같은 의무를 전혀 폐하지 않고 오히려 더욱 강화시킨다”고 되어 있다. 예수께서도 친히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마 5:17)고 하셨고,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요 14:15)고 말씀하셨다. 한 부자 청년이 구원에 대하여 질문하였을 때,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마 19:17)고 권면하신 바 있다.필자가 ‘개혁’과 관련하여 ‘율법’ 혹은 ‘계명’을 강조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교회나 성도들의 생활이 늘 변질되고 부패하여서 ’개혁‘이 필요한 근본 이유는 하나님의 법도를 떠나서 자의(自意)대로 살아가는 것이 쉽고 편한 인간의 죄된 본성 때문이다. 그리고 교회 지도자들이 인간적인 방법으로 교회를 치리하기 때문이다. 구약에서 이스라엘의 왕들 가운데 과감한 개혁을 시도한 왕들은 모두 성전에서 율법책을 발견하고 그 율법을 기준으로 나라와 백성들을 바로 가르쳤던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도 교회와 성도들의 삶을 개혁하려면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명하신 법도와 계명을 깊이 살펴서 그 원칙을 회복하고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 것이 급선무일 것이다.
    • 지난 칼럼
    • 종교개혁500주년 특집
    2017-04-14
  •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특집 / 개혁하는 교회 : 종교개혁은 끝나지 않는다 ④
    1부 성경에 기록된 신앙개혁의 역사4. 이스라엘과 애굽의 대결구도서언인간 세계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세상에 전하기 위하여 집단적으로 택함을 받은 민족은 이스라엘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역사를 세밀하게 살펴보는 것은, 흑암의 세상과 하나님의 사역이 충돌할 때에 어떤 현상이 일어나고, 이를 대처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이 무엇인지, 그 구도와 성격의 원리를 이해하는 데 매우 요긴한 일이다.주지하는 바와 같이 이스라엘의 민족적 역사는 애굽에서 시작되었다. 초기 역사에서는 애굽의 총리로 있던 요셉 덕분에 이스라엘 민족이 비교적 우대를 받으면서 좋은 여건에서 생활하였으나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나서 애굽을 다스리”(출 1:8)기 시작하면서 이스라엘은 고난의 길을 가게 된다. 이러한 두 시대를 놓고 볼 때에 초기 시대에 등장하는 대표적인 인물을 요셉이고, 후기 시대에 등장하는 불세출의 인물은 모세이다. 이 두 인물의 자질과 당시의 상황을 연구해 보면 소위 ‘개혁’이라는 낱말의 또 다른 측면을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요셉의 성품과 개혁 성향요셉에 대한 형들의 시기와 질투의 결과로 그는 어린 나이에 애굽으로 팔려갔다. 애굽으로 팔려가는 노정(路程)에서 요셉은 참으로 많은 생각들을 하였을 것이다. 처음에는 두렵고 참담한 심정이었을 것이나,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심리적으로 안정을 찾은 요셉은 어린 시절부터 배워온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아무도 의지할 수 없는 그 막막한 상황 속에서 요셉은 하나님과 깊은 대화를 나누며 자신의 미래에 대하여 새로운 비전을 꿈꾸며 모종의 확실한 결심을 하였을 것이다. 그 결심이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하나님의 앞에 순결하고 정직한 심정으로, 매사를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정할 때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로 했을 것이다.그는 애굽의 보디발 장군의 집에서 노예로 애굽생활을 시작하였으나 그의 유능함과 성실하고 정직한 인품은 보디발 장군에게 깊은 감동과 영향을 주었고 마침내 그는 그 가정의 총무가 되었다. 후에 보디발 아내의 어처구니없는 고발로 요셉은 감옥생활을 하였으나 그런 환경 속에서도 그의 신앙과 인품은 요지부동이었다. 결국 그는 간수장이 되었고, 감옥에 들어온 왕의 신하와 인연이 되어 마침내 왕의 꿈을 해석하는 자리에 서게 되었다. 이 자리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선 요셉과 애굽이 맞선 구도였다. 요셉이 바로 왕의 꿈을 해석한 결과, 애굽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7년의 풍년과 7년의 흉년은 기정사실화 되었고 그 해법으로 제시된 요셉의 아이디어는 애굽의 향후 14년의 운명을 뒤집어 놓았다. 외관상으로는 비교적 조용히 진행된 일처럼 보이는 사건이었지만, 이것은 이방 나라 애굽이 하나님의 사람 요셉의 통치를 받게 되는 대역전의 순간이었다. 엄청난 대변혁이 순식간에 일어난 것이다. 이 사건을 통해서 우리가 마음 속 깊이 새겨 두어야 할 교훈은, 하나님의 섭리와 능력이 순결하고 정직하고 진실하고 능력 있는 인물과 결합이 되면 사람이 예측할 수 없는 대개혁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애굽을 뒤엎어 놓은 개혁자 모세바로의 궁전에서 40년간 문무(文武)교육을 받고 광야에서 40년 동안 영성훈련을 받은 모세는 마침내 준비된 지도자로 바로 왕 앞에 서게 되었다. 애굽 땅에서 노예로 전락하여 견디기 힘든 고통 중에 신음하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해방시켜 달라는 모세의 요청은 바로에게 엄청난 도전이었다. 그가 이러한 요구에 순순히 응할 리가 없었다. 마침내 애굽은 하나님의 막대기로 심판을 당하기 시작하였다. 온 백성이 참을 수 없는 재앙이 전국의 땅을 덮쳤다. 한 두 번의 재앙으로 끝난 것이 아니고 10회에 걸친 끔찍한 재앙이 쉴 새 없이 퍼부어졌다. 그 재앙들은 단순히 애굽의 바로 왕과 그 백성들을 힘들게 하고 괴롭히는 재앙이 아니라 애굽에 만연해 있던 각종 잡신들을 소탕하는 재앙이었다. 내용은 이런 것이다.① 피 재앙(나일강 신 닐루스신과 하피신을 공격함) ② 개구리 재앙(재생산의 여신 헥트신) ③ 이 재앙(땅의 신인 겝신, 또는 셉신) ④ 파리 재앙(신성한 투구풍뎅이인 케페라신) ⑤ 생축 악질(신성한 숫소 아피스신과 신성한 암소 하토트신) ⑥ 사람과 짐승에게 내린 독종(악한 눈을 가진 튀폰신) ⑦ 우박 재앙(대기-大氣-의 신 슈신) ⑧ 메뚜기 재앙(메뚜기로부터 곡식을 지켜주는 세라피스신) ⑨ 흑암 재앙(태양신인 라신) ⑩ 사람과 생축의 장자 죽임(생명의 신인 프타흐신)이다. 모세는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애굽의 잡다한 신(神)들을 초토화시킨 다음에 참신이신 하나님의 백성들을 이끌고 극적으로 애굽을 탈출하여 광야로 나오게 되었다.광야에서 시작된 개혁사업오랜 애굽 생활을 통해서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우상 숭배에 익숙해진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대대적인 개혁이 요구되었다. 우선 시급한 것은 하나님께 대한 예배의 회복이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너를 거기서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를 명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신 5:15). 이 말씀에 의하면 일단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은 백성들에게 예배의 회복을 요청하셨다. 안식일을 준수하며 예배를 회복하는 것이 구원의 조건이 아니었다는 말이다.얼마 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정립하고 사람들과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건전하고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하며 살도록 하기 위하여, 그러한 삶의 기준이 되는 십계명을 내려주셨다. 이 모든 원리와 원칙이 고스란히 설명되어 있는 장치가 바로 성소(聖所) 제도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은 바로 그 기준에 의하여 변화되고 개혁되어야 하였다. 그러니까 예나 지금이나 ‘개혁’이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가르쳐주신 구원의 원리를 믿음으로 받아들인 다음, 구원받은 자들의 삶의 원칙으로 제시해 주신 ‘말씀’에 순종하여 자신의 삶을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 고치는 것이다. 개혁이란 중단 없이 계속되어야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하나님의 현현(顯現)을 목도하였고, 홍해의 기적, 만나의 기적, 바위 물의 기적 등을 경험하면서 매일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통해서 신의 손길을 경험하며 살았던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일에 집단적으로는 실패하였다. 심지어는 시내산에 나타나신 하나님의 영광을 온 백성들이 목도한 후에, 모세가 십계명을 받기 위해 산에 올랐던 40일의 기간도 참지 못하여 송아지 우상 신을 만들어 경배하는 참사를 일으켰다. 이것이 유약하고 죄많은 인간의 모습이다. 그만큼 진정한 개혁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비유를 하자면 이런 것이다. 펄펄 끓던 죽에서 열을 제하면 즉시 식어져서 딱딱한 꺼풀(막)이 생기고 죽은 속에서부터 상하기 시작한다. 죽을 계속 끓게 하는 방법은 열을 지속적으로 가하는 것이다. 개혁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의 말씀을 원칙으로 세우고, 교회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성도들이 성령께서 주시는 지혜와 능력을 의지하여 지속적으로 그 말씀의 원칙을 따라 살기 위해 개혁을 실천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잠시 후, 죽의 꺼풀처럼 신앙의 형식만 남고 내부적으로는 부패와 세속화의 바람을 막을 수 없게 된다. 그러니까 진정한 개혁이 일어나려면, 요셉이나 모세처럼 인품이 탁월하고 영성이 충만한 지도자가 출현하여 개혁의 깃발을 높이 세우고 모든 백성들이 지속적인 개혁을 실천할 수 있도록 강력한 지도력을 발휘해야 한다. 그러므로 개혁은 주님 오실 때까지 끝날 수 없는 숙제이기도 하다.
    • 지난 칼럼
    • 종교개혁500주년 특집
    2017-03-31
  •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특집 / 개혁하는 교회 : 종교개혁은 끝나지 않는다 ③
    1부 성경에 기록된 신앙개혁의 역사3. 개혁자 인품의 모델-아브라함서언성경이 말하는 ‘개혁’의 진의는 무엇인가? 개혁의 대명사로 일컬어지는 말틴 루터는 무엇을 개혁한 것인가? 성경에서 벗어난, 성경의 이론과는 틀린, 성경의 가르침과는 다른 형태로 꼴 지어진 로마 가톨릭 교회의 성경적 오류에 대하여, 특별히 ‘면죄부 판매’에 대하여 저항을 시작한 것이다. 그러니까 종교나 신앙과 관련된 개혁이란, 성경의 원칙대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한다. 성경이란 인간의 건강과 행복과 영생을 위하여 기록된 책이며, 그 책의 모든 내용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기 때문에 그 책은 일반 서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다.성경의 내용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최대의 문제인 죄를 어떻게 해결하고 어떤 모습으로 살다가, 마침내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과 어떻게 영원히 함께 살게 되는지 그 원리와 절차를 설명하는 책이기도 하다. 그래서 성경이 말하는 개혁이란 하나님의 뜻으로부터 벗어나서 굴곡지고 왜곡된 상태를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 원래의 모습대로 변형 혹은 변화시키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개혁자가 되려면 자신이 먼저, 하나님의 뜻과 의지를 기록해 놓은 성경의 원칙에 충실하여 하나님과 건전하고 올바른 관계를 맺고 있어야 한다. ‘인권’을 외치려면 자신이 먼저 남의 인권을 존중할 줄 알아야 하고, ‘부정부패’를 척결하려면 자신이 먼저 깨끗해야 하듯이, 하나님의 뜻을 좇아서 종교개혁, 혹은 신앙개혁을 하려면 자신이 먼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택하신 이유홍수 심판 이후에 태어난 노아의 후손들은 한 동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경건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여러 세대가 지나면서 조상들이 전해주는 홍수 이야기는 별로 실감이 나지 않고 마치 먼 나라의 전설처럼 들려지는 시대가 되었을 때에 사람들은 다시 죄악적 성향에 노예가 되어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동을 일삼게 되었는데, 바벨탑 사건이 그 시대의 상황을 대변하는 가장 대표적인 사례이다. 사람들이 “성과 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자기들의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창 11:4)기 위하여 벽돌을 굽고 거대한 성채를 쌓으며 하늘로 올라가고 있었다. 하나님 앞에 참으로 가소롭고 어이없는 일을 자행했던 것이다.하나님께서는 인부들의 언어를 혼잡시키는 방법으로 공사를 중단시키시고 사람들을 홑어 놓으셨다. 그리고 드디어 창세기 3장 15절에 약속된 ‘여자의 후손’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내려 보내시기 위하여 한 씨(혈통)를 선택하셨는데, 그 선택에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 바로 아브라함이다. 하나님께서는 왜 그를 선택하여 불러 내셨는가?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내 법도를 지켰음이니라”(창 26:5). 이것이 바로 아브라함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였다. 그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이 우상을 숭배하고 온갖 죄악에 빠져 방종하는 인생을 살고 있을 때에,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법도와 율례를 따라서 경건하게 살고 있었다. 그는 손님 대접하기를 즐거워하였고 그의 종들에게 후대하는 너그러운 사람이었다.아브라함의 인품과 신앙아브라함에 대한 이야기는 성경에 비교적 길게 기록되어 있어서 그의 인품과 신앙의 면면을 여다 볼 수 있는 꽤 정확한 자료들이 풍부한 편이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서 목적지도 제대로 모르고 출발할 때에 그의 조카 롯도 함께 따라 나섰다. 후일에 그들의 재산이 증가하여 짐승들이 큰 떼를 이루고 종들의 수가 많아지고 살림살이가 커져서 함께 기거하기가 어렵게 되어 불가피하게 서로 헤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 때에 아브라함이 자기보다 나이 어린 조카 롯에게 건넨 관대한 제안은 오늘날까지, 이기심으로 가득한 인생들에게 여전히 귀감이 되는 말씀이다.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창 13:9).하나님께서 죄악으로 가득한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기 위하여 세상으로 내려오셨을 때에 아브라함은 부지중에 하늘에서 온 손님들을 대접하게 되었고, 소돔 고모라의 멸망 계획을 듣게 되었다. 그 때 아브라함이 조카 롯과 소돔의 거민들을 살려내기 위하여 하나님과 나눈 대화는 유명한 일화로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주는 노하지 마옵소서”(창 18:32) 라고 말하면서, 소돔에 의인이 열 명 정도라도 있다면 그들을 구원해야 되지 않겠느냐고 탄원하는 모습은 마치 인류를 구원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심정을 표상하는 듯 하다.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가나안 땅 헤브론에서 죽었을 때에 헷 사람들에게 매장지를 구입하려고 하였다. 그 때에 헷 족속이 아브라함에게 한 말은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가는 곳마다 세상 사람들로부터 들어야 할 평가이기도 하다. “내 주여 들으소서 당신은 우리 중 하나님의 방백이”(창 23:6)십니다. 오늘날 기독교와 교회 성도들이 사회를 개혁할 명분을 상실하고 신뢰를 잃어버린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인가?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법도를 따라서 살지 않았고 세상 사람들에게 빛과 소금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은 당대에 주변의 모든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신망을 받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헷 족속들은 그들이 존경하는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의 매장지를 무상으로 주려고 하였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몸을 굽히고 그들에게 말”(창 23:7)하면서 반드시 값을 지불하고 매장지를 사겠다고 간청하였다. 이러한 아브라함의 태도는 ‘선물’을 넘어 ‘뇌물’까지 받으려고 애쓰는 요즘 세상 사람들에게 회초리 같은 느낌을 준다. 마침내 아브라함은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매장지를 구입하여 뒷말을 듣지 않게 되었다. 개혁자의 조직력과 정직성아브라함 당시의 주변 나라 엘람 왕 그돌라오멜을 중심으로 한 연합군이 그 대적들과 전쟁을 하게 되었고,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살고 있던 소돔의 왕과 고모라 왕도 그 전쟁에 가담하여 싸우다가 패망하였다. 결국 롯의 가족과 재산까지 모두 적군의 손으로 넘어갔다. 이 소식을 들은 아브라함은 평소에 자기 집에서 훈련시키고 예비해 두었던 군사 318명을 거느리고 적군을 급습하여 “모든 빼앗겼던 재물과 자기 조카 롯과 그 재물과 또 부녀와 인민을 다 찾아왔”(창 14:16)다. 참으로 놀라운 성과였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법도를 따라 살았던 아브라함의 준비성과 조직력을 보게 된다. 전쟁에 필요한 것은 군사력과 전략이다. 이렇게 원상태로 회복하는 것이 바로 개혁의 근본이다.더 나아가, 우리는 이 이야기를 통해서 아브라함의 정직성과 고결함을 다시 한 번 보게 된다. 아브라함 덕분에 목숨과 재산을 다시 찾게 된 소돔 왕이 너무나도 감사한 나머지 아브라함에 이렇게 제안한다. “사람은 내게 보내고 물품은 네가 취하라”(창 14:21). 이 때에 아브라함이 취한 태도는 후대의 개혁자들이 영원히 간직해야 할 모습이기도 하다. 아브라함은 소돔 왕에게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여호와께 내가 손을 들어 맹세”(창 14:22)한다고 전제하고, 실오라기 하나 거저 취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였다. 재물과 명예에 탐닉하며 살아가는 오늘날 우리 인생들에게 얼마나 찔림을 주는 말씀인가? 이것이 바로 개혁자의 인품이다.
    • 지난 칼럼
    • 종교개혁500주년 특집
    2017-03-24
  •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특집 / 개혁하는 교회 : 종교개혁은 끝나지 않는다-2
    1부 성경에 기록된 신앙개혁의 역사 02. 성경에 나타난 ‘남은 자’ 개념■ 서언“인류는 발전하지만 인간은 동일하다”는 말이 있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죄된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인류 역사는 언제나 더 깊은 죄악의 수렁으로 빠져든다. 역사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고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통치하시는 것이 사실이지만, 인류의 역사에 영향을 미치는 매우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는 인간의 ‘자유의지’라고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존중하신다. 그런데, 이 ‘자유의지’를 사용하는데 있어서 성령의 역사와 사탄의 영향력이 끊임없이 작용하고 있는데, 불행하게도 인간의 죄된 본성 때문에 사탄의 영향을 더 쉽게 더 많이 받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인류 역사를 살펴보면 돌이킬 수 없을 정도의 깊은 죄악의 수렁에 빠져드는 일이 반복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 상황, 즉 그대로 방치하면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시는 구속(救贖) 사업이 실패로 돌아갈 것 같은 최악의 상태가 되면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특정한 인물을 통하여 역사를 반전시키는 일을 수행하신다. 그 특정한 인물들이란, 하나님의 말씀과 법도를 따라서 충실하고 경건하게 살아가는 당대의 의인들이고 그들을 ‘남은 자’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 ‘남은 자’들을 다른 용어로 표현하자면 소위 ‘개혁자’들이다. 성경에 나타난 사례들을 보면 대체로 그 과정은, 완전타락 -경고를 통한 개혁 시도- ‘회복’ 아니면 ‘심판’의 과정으로 이어진다. 이것이 성경에 나타난 인류의 역사에 여러 차례 나타나는 반복된 패턴이다. 큰 패턴이 있고 작은 패턴도 있다. 우선 대표적인 큰 패턴과 작은 패턴을 하나씩 소개하고자 한다. ■큰 패턴 -노아와 홍수 심판아담의 범죄와 타락 이후의 역사를 살펴보면, 역시 인류는 점차로 악해지다가 마침내 돌이킬 수 없는 죄악의 늪으로 빠져든다. 그 죄악의 상태가 얼마나 극도에 달했든지,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창 6:5) 한탄을 하실 정도였다. 홍수 심판의 결말을 보면, 그 당시 노아의 집 외에는 모든 인간들이 완전히 타락하여 돌이킬 수 없는 상태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노아의 가족들마저 타락해 버리면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시는 계획에 동참하여 일할 수 있는 사람이 한 명도 없게 되어 결국 하나님의 구속 사업이 실패로 끝날 수밖에 없는 위기의 순간이었다. 하나님께서 인류의 역사에 개입하시어 그 흐름을 반전시키는 일은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 이루어진다. 이 절벽의 찰나에 하나님께서 그 당시의 ‘남은 자’인 노아를 불러내시고 그를 개혁자로 삼으신 것이다. 성경의 기록에 의하면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였고 “하나님과 동행하”(창 6:9)는 사람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개혁의 메시지를 주셨다. “모든 혈육 있는 자의 강포가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창 6:13). “내가 홍수를 땅에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식 있는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니 땅에 있는 자가 다 죽으리라”(창 6:17).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이십 년이 되리라”(창 6:3). 이것은 일종의 경고였고 개혁의 메시지였다. 성경에 나타나는 ‘개혁의 메시지’에는 언제나 ‘그렇지 않으면’이라는 단서가 붙는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 “이 선지자의 메시지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 다음 단계는 심판과 멸망이 온다는 메시지이다. 노아는 하나님의 지시를 따라서 방주를 짓는 동안 세상 사람들을 향하여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메시지를 전하였다. 누구든지 그 메시지를 듣고 홍수가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진심으로 회개하고 삶을 개혁하여 방주 안으로 들어가면 용서를 받고 살 수 있었다. 노아는 이 메시지를 120년 동안 외쳤다. 그러나 노아의 외침은 마이동풍(馬耳東風)이었다. 아무도 노아의 말을 유념하여 듣지 않았다. 결국 노아의 집 여덟 식구에 외에는 지구상의 모든 죄인들이 홍수로 멸망을 당하였다. 사실상 홍수 사건의 결과를 보면, 120년이라는 유예기간은 필요치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노아가 120년 동안 경고의 메시지를 외쳐도 한 사람도 회개하여 돌아오지 않을 것을 분명히 아셨을 것이다. 하나님 입장에서는 바로 홍수로 심판을 해도 하자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유예 기간을 주신 것은, 그분의 사랑과 공의를 드러내기 위함이었다.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 주시고 사람들이 오해하지 않도록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120년의 시간을 낭비하신 것이다. 이 홍수 패턴에서 보면, 인간은 늘 죄악으로 빠져들고, 극소수의 ‘남은 자’들이 하나님께로부터 메시지를 받아 개혁을 외치지만 좀처럼 돌이키지 않는 다는 것이다. ■작은 패턴 - 니느웨의 회개니느웨는 고대 앗수르 왕국의 수도였다. 니느웨는 바벨탑 사건 이후에 흩어진 사람들 중에서 티그리스강 유역의 비옥한 땅에 정착한 사람들에 의해서 건설된 도시로서 여러 세기를 통하여 지속적인 발전을 하게 되었고 매우 큰 성읍이 되었다. 요나서에서는 당시의 니느웨를 “극히 큰 성읍이므로 삼일 길이”(욘 3:3) 되었다고 묘사한다. 어느 시대든지, 어느 곳에서든지 사람이 많이 모이고 세속적으로 번영하고 경제적으로 부유해지면 죄악도 비례하여 증가한다. 니느웨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 나훔 선지자는 그 성에 대하여 “피 성이여 … 궤휼과 강포가 가득하”(나 3:1)다고 묘사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이 도성에 경고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하여 선지자 요나를 택하셨다. 우리는 이 요나의 이야기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 이야기의 깊은 실상보다는 그저, 요나는 큰 물고기 뱃속에 들어갔다가 3일 만에 살아나온 특이한 경험을 한 선지자 정도로 기억에 남아있을 뿐이다. 요나가 니느웨 성에 들어가서 회개를 촉구하는 메시지를 외쳤다. 회개하고 개혁하지 않으면 40일 후에 니느웨 성이 무너질 것이었다. “회개하라”는 메시지는 언제나 개혁자들의 사명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 개혁의 메시지에 효력이 나타났다. “니느웨 백성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무론 대소하고 굵은 베를 입”(욘 3:5)고 회개하였다. 이 소문이 왕궁에까지 전파되었고, 왕도 “보좌에서 일어나 조복을 벗고 굵은 베를 입고 재에 앉”(욘 3:6)아 회개하며 온 백성에게 금식하며 회개할 것을 권하였다. 마침내 하나님께서 뜻을 돌이키시고 예정되었던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셨다. 이 니느웨 성의 이야기는 개혁이 성공한 사례 중의 하나이다. ■ 개혁자의 신앙과 인품‘남은 자’로서 당대의 개혁자인 노아는 평소의 생활 속에서 언제나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그분이 내려주신 법도를 지키며 살았던 의인이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며 순종하는 믿음의 사람이었다. 바로 이러한 그의 신앙 때문에 하나님의 택하신 그릇이 된 것이다. 홍수를 경험해 본 적이 없었던 시대에, 홍수가 있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지시를 따라서 마른 땅에 방주를 지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조롱과 멸시와 핍박이 있었겠지만 개의치 않고 묵묵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다. 하나님의 지시를 따라 큰 배를 만드는 조선(造船) 사업에 자신의 전 재산을 바쳐서 희생하고 헌신하는 사람이었다.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히 11:7)다. 이것이 바로 이 시대의 개혁자들이 본 받아야 할 정신이다. 노아가 사람의 눈치를 보며 명예를 탐하고 물질의 욕심이 있었다면 하나님의 지시를 따르지 못했을 것이다. 오늘 이 시대에도 노아처럼 오직 “말씀”에 충실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에 자신을 희생하며 헌신하는 개혁자들이 필요하다.
    • 지난 칼럼
    • 종교개혁500주년 특집
    2017-03-17
  •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특집 / 개혁하는 교회 : 종교개혁은 끝나지 않는다-1
    01. 빛과 어두움의 충돌사람이 범죄하므로 죄인이 되는 것인가? 아니면 죄인이기 때문에 범죄하는가? 다윗은 인간의 출생에 대하여 매우 분명한 정의를 내린 바 있다.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시 51:5).인간은 누구나 예외 없이 죄의 유전적 기질을 가지고 태어난다. 태어나면서부터 속절없는 죄인이라는 것이다. 사도 바울도 이 점에 대하여 이렇게 탄식하고 있다.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롬 7:18,19). 이와 같은 인간의 선천적인 죄악성 때문에, 아담과 하와의 범죄 이후 대부분의 인간들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일보다 죄된 본성의 지배를 받으면서 악행을 일삼아 살아가게 된다. 결국 사람의 죄악적인 상태는 극도에 달하였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창 6:5) 한탄하실 정도가 되었다.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일하시는 하나님 측에서 볼 때에 ‘개혁’은 불가피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최초의 개혁자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 바로 노아였다. 그 이후 인류의 역사를 살펴보면, 타락과 개혁 사이를 오고가는 단진자(單振子, Simple pendulum: 좌우로 흔들리는 추)운동을 보게 된다. 노아 이후의 부흥기에 뒤따른 바벨탑 사건, 아브라함에 의해서 형성된 이스라엘 백성의 배도와 타락, 그리고 예수 제자들의 출현, 제자들에 의해서 부흥했던 그리스도교가 후일에 타락한 결과로 역사에 등장한 것이 로마 가톨릭교회이고, 이에 저항하여 일어난 종교개혁자들의 프로테스탄트교회, 그리고 지금은 종교개혁의 여파로 발생한 개신교회조차 타락하면서 그 단진자 운동처럼 반복되는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따라서 교회의 개혁은 끝나지 않고 계속되어야만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교회의 개혁은 중세의 종교개혁으로 완성된 것 아니라, 역사 속에서 계속 ‘개혁하는 교회’이어야 한다. 그동안 역사를 통하여 반복된 단진자 운동에 의하면, 지금은 어떤 주체에 의한 또 다른 의미의 개혁이 일어날 시기가 된 것이다. 종교개혁에 의하여 성경을 중심으로 한 교리나 신조가 완성되었다면, 이제 우리가 기대하는 개혁은 그 바로 세워진 진리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므로 나타나게 되는 신앙의 개혁, 혹은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개혁이다. 필자는 이러한 관점에서, (1) 중세의 종교개혁이 일어나기까지 그 배경의 역사, (2) 종교개혁의 발단과 그 결과, (3) 당면한 제2의 종교개혁의 과제에 대하여 고찰해 보고자 한다. 성경에 나타난 이분법적 개념성경의 내용 전체는, 인간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사역(使役)과 그 구속의 역사를 방해하는 사탄의 궤계가 부딪히면서 일어나는 투쟁의 역사로 요약될 수 있다. 하나님의 선(善)과 사탄의 악(惡)이라고 하는 두 개의 큰 축이 성경 전체의 흐름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 속한 ‘선’은 의(義), 사랑, 구원, 알곡, 양(羊), 성령 등의 용어들과 함께 한 꾸러미를 이루고 있고, 사탄에게 속한 ‘악’은 불의(不義) 혹은 불법, 미움, 멸망, 쭉정이, 염소, 악령 등의 요소들로 또 다른 하나의 꾸러미를 형성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예수님께서도 이 문제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눅 11:23). 이러한 이분법적 논리를 대표할만한 중요한 대립 용어 중의 하나는 ‘빛’과 ‘어두움’이다. 예수님께서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 8:12)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 사울을 불러내어 그의 사도로 삼으시면서 사도 바울에게 주신 사명은, 사람들의 “눈을 뜨게 하여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행 26:18) 하는 것이었다. 후에 사도 바울도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두움에 속하지 아니”(살전 5:5)한다고 언급하면서 ‘빛’과 ‘어두움’의 개념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와 같은 성경의 이분법적 논리에 의하면, 개혁이란 ‘어두움’ 속으로 ‘빛’이 들어가는 것이고, 그 빛이 간직하고 있는 열기에 의해서 주변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데, 빛을 싫어하는 어두움의 속성 때문에 빛과 어두움이 충돌하면 투쟁이 일어나게 되어 있다. 사도 요한은, 빛이신 예수님께서 이 어두움의 세상에 오셨을 때,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요 3:19)하는 것에 대하여 언급하였다. 개혁의 참 의미는 ‘빛’을 따라 사는 것성경에서 ‘빛’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창세기 1장의 창조 시에 나타나는 빛은 물리적 빛을 말한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물리적 빛 속에 생명력이 있다는 것이다. 태양에서 발산되는 빛에는 식물을 자라게 하는 생명력이 있다. 그래서 생명의 원천이신 예수를 ‘빛’으로 비유하고 있다. 그리고 그분의 말씀인 성경도 ‘빛’이라고 하였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 119:105). 어두움에서 불려 나와서 빛으로 들어온 사람들은 빛을 따라 살아야 한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두움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라”(요 12:46).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엡 5:8). 빛을 따라 산다는 것은 그 의미가 명백하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 때에 그 빛을 유지할 수 있고 어두움이 침범하지 못한다. 그러니까 기독교의 타락과 부패는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멀어진 신자들이나 교회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미 언급한대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죄된 인간의 속성을 따라서 살기 때문에 이 어두움의 세상에서는 언제나 죄악의 세력이 크고 강력하다. 이러한 연유로 이스라엘의 역사에서도 어두움의 세월이 훨씬 깊고 길었고, 빛의 근원이신 예수님께서 유대 땅에 오셨을 때에도 사람들은 예수를 몰라보고 싫어하였다.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요 1:5). 그래서 빛 즉 말씀의 능력에 의한 의로운 힘이 나타나기 시작하면, 어두움이 즉시로 대결하여 싸워서 그 힘을 소멸시키려 하기 때문에 이 죄악 세상에서 ‘개혁’이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투쟁과 피흘림이 없이는 개혁의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이 인간 사회의 실상이다. 어떤 의미에서 기독교 역사는 “말씀이 살아 있느냐 죽었느냐?” “말씀에 순종하느냐 불순종하느냐?”에 의해서 그 운명이 결정되어 왔다. 필자는 이번 종교개혁 특집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인간들의 반응이 인류 역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으며, 기독교가 종교개혁의 정신을 계승하여 부활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 살펴보려고 한다.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어두움이 빛을 이기지 못한다”는 것이다. 결국에 가서는 ‘진리’가 승리하는 것이 이 드라마의 엔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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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교개혁500주년 특집
    2017-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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