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10-12(토)

지난 칼럼
Home >  지난 칼럼  >  영성논단

실시간뉴스

실시간 영성논단 기사

  • 온전한 교회, 행복한 세상-19
    최근 한 교회에서 은퇴한 목회자와 교회 간에 전쟁이 발생하였다. 권력의 자리에서 은퇴한 목회자에게 그동안 억압되었던 신도들의 반격이 시작된 것이다. 이 목회자의 은퇴식은 마치 왕의 퇴임식 같았는데, 왕좌에서 내려오자마자 전쟁이 일어난 것이었다. 흔히들 권력의 이동이 일어날 때마다 일어나는 현상이긴 하지만 지나치게 요란하다. 마치 한국교회의 모퉁이 기둥이 꺾기는 듯하다. 지금까지 찬란했던 한국교회의 영광은 이미 쇠퇴의 길로 접어든 것이 더욱 확실하다. 우리에게 더욱 절망적인 것은 기독TV에 출연하고 있는 스타들마저도 바로 그 뒤를 연이을 것이란 추측 때문이다.이러한 소식이 한국 교계에 들려질 때마다, 모세가 느보산에 올라가 가나안을 내려다보는 장면이 나의 눈에 영화장면 같이 선하게 떠오른다. 모세는 눈도 밝고 치아도 건강하고 마음마저도 총기가 쇠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부귀영화는 물론 명예와 권력을 모두 여호수아에게 넘기고, 느보산에 올라 이 땅을 미련 없이 떠나갔기 때문이다. 모세의 삶을 오늘 또 다시 되새김은, 과거 우리가 가난할 적에 느끼던 느낌과는 달리, 문명이 발달하면서 그가 더욱 놀라운 인격을 갖추었음이 두드러지게 나타기 때문이다. 모세는 불행한 삶을 경험한 사람이다. 그는 왕의 무덤이나 도시를 짓는 히브리노예 가운데서 태어났고, 태어나자마자 노예 인구소멸정책으로 인해서 죽음의 위험도 있었다. 그러나 다행히 이집트 궁의 공주에게 건짐을 받아 양육되었다. 태중에서 어머니가 느끼던 불안감과 두려움, 사람들의 환영도 받지 못한 긴장상태에서 제대로 울어 보질 못하였다. 아마도 모세가 말을 어눌하게 하게 되었던 이유를 알 것 같다. 아주 취약한 공포의 상태에서 숨을 죽이며 아이를 키우던 그의 어머니는 아이의 울음소리가 점점 더 크게 되자, 아이를 단념하고 광주리에 넣어서 나일 강에 띄어 보낸다.모세는 여러 번 버림을 받았다. 생모로부터의 버림받음, 양육한 어머니와 주변의 가족들과 함께 공부한 동료들로부터도 떠나야 했다. 모세가 그의 안락한 이기적인 삶에서 그의 바깥 주변의 노예들에게 까지도 시선을 돌리기 시작한 때는 40이 되어서야 비롯되었다. 링컨대통령은 40이 넘어서면 자신의 얼굴에 대해서는 더 이상 부모 탓으로 돌릴 수 없다고 하였다. 자신의 내면의 모습이 곧 얼굴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모세가 새로운 세계관을 갖게 되면서 그가 처한 세상에 도전하였지만 불행하게도 개인적인 변화만 있었을 뿐, 더 이상 진전하질 못하고 미디안 광야로 잠시 빗겨날 수밖에 없었다.모세에게서 진정한 삶의 변화는 광야에서 빚어졌다. 흔히들 광야에서 인물이 난다고 하질 않던가? 모세는 양을 치다가 불타는 떨기나무 앞에서 야훼하나님을 경험한다. 그는 인생 80의 나이였으나 비로소 하나님의 지팡이를 잡고 다시 일어서서, 노예로 신음하는 치유 받지 못하고 있는 땅을 향해서 나아간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종교가 정의를 바로 잡질 아니하고 권력의 시녀 노릇만을 한다면 그 종교는 흔히들 말하는 정적인 권력자의 탐욕의 도구일 뿐이다.어디 이 뿐인가? 모세가 광야에서 단련된 지도력이 발휘되길 시작 하였다. 그는 궁궐에서 많은 실력을 갖춘 자이긴 하였어도, 그가 발휘하는 능력은 세속적인 지식의 활용이 아닌, 하나님과의 조우에서 얻어진 지도력이었다. 하나님의 능력을 열개로 나눠서 효율적으로 활용하는데, 얼마나 그 펀치가 절제가 있던지, 이집트의 군사력이 당해내질 못하였다.지도력은 전쟁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모세의 백성들은 노예출신이라서 상처가 치유되질 아니하여서 성격화된 데다가, 부정적 사고와 행태는 도저히 하나님나라를 세울 형편이 못되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는데도 실패를 하질 아니하고 백성들과도 거리감을 두질 아니하였다. 그에게서의 카리스마란 겸손과 온유함에서 더욱 빛이 나는 것이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그가 백성들 가운데에 있는 장막에, 하나님도 내려오신 것이었다. 모세는 자신의 백성들이 성숙하여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38년의 광야생활이 막바지에 이를 즈음에 그의 행렬은 모압과의 경계지점에 다다르고 있었다. 우물 하나를 발견하였지만 메마른 우물이었다. 그런데 백성들이 둘러서더니 합창을 시작하였다. ‘우물물아 솟아나라’. 경이로운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거룩과 성장이 지도자에게서 백성들에게로 옮겨간 것이었다. 모세는 더 이상 이 세상에 연연하질 아니하고 느보산에서 그를 보냈던 아버지께로 돌아갔다.
    • 지난 칼럼
    • 영성논단
    2015-07-23
  • 온전한 교회, 행복한 세상-18
    발달심리학의 입장에서 신도들의 신앙발달이나 도덕발달 등에서 나타나는 법칙을 보면, 발달단계에서는 결코 월반이라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발달단계는 점진적인 발달 과정을 통해서 이뤄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발달단계의 특성상, 각 사람의 인격발달 단계의 처한 위치가 저마다 다를 수 있기 때문에 개개인의 특성을 존중해야 하고, 인격적으로 만나지기 위해서도 획일적으로 수련생들을 다뤄서는 더더욱 아니 될 것이다.우리 교계는 여름철이 다가오면 심신 수련을 위한 프로그램들이 다양하게 구성되고, 교회들이나 단체별로 저마다 진행되어지는데, 진행 단체의 구성원들의 관심은 모두다, 행사에 참여한 수련생들로 하여금 지금의 현재 상태에서 보다 더 높은 단계로 나아가도록 자신을 돌아보는 깊은 성찰과, 성찰로 인해서 깨닫게 된 더 나은 가치관의 발견, 그 새롭게 발견된 가치관의 의미와, 완성을 향해서 새롭게 나아가게 하는 동기를 부여하고, 새로운 동력을 얻게 하는데 있을 것이다.바울에게 있어서 그가 사람들에게 주려하는 선물들이 그의 서신들에서 발견되는데, 아주 명백하게 나타나는 선물들은 세 가지다. 하나는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이고, 또 하나는 성령의 은사들이고, 다른 하나는 복음과 은사가 역학적으로 작용해서 개개인과 교회 공동체에 구체적으로 나타나는 성과인 성령의 열매들이다.이 모두가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실천,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승천에 모두 내포되어 있다. 신도들의 신앙발달 단계가 저마다 다르기 때문에, 그리스도와의 만남의 체험이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신도들 중에 어떤 이는 치유를 받지 않으면 더 이상의 단계로 나갈 수 없는 고착 상태에 머무른 이도 있을 것이고, 어떤 이는 자신만의 세계에서 벗어나질 못하여서 그리스도마저도 자신의 아집과 욕구의 도구로 이용되는 어둠에 머무른 상태로 있을 수 있고, 또 어떤 이는 자신의 이기적인 껍데기를 깨트리고 과감하게 새로운 광명의 세계를 맞이하려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신도들이 저마다 성장하기 위해서, 개개인이 자숙하는 시간과 공간을 향해서 나아간다면, 마땅히 환대를 받아야 할 것이리라. 그런데 우리 개개인이 저마다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가려 해도, 우리가 처한 사회적 문화적인 수준이, 개개인의 변화를 존중하고 이해하며 수용할 만큼 그릇을 크게 갖추질 못하였다면, 사회적 구성원의 수준은 전체적으로 그들을 구성한 사회적 문화적인 틀을 넘어서질 못한다. 종교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종교는 세상에서 그 어느 것 보다도 보수적이고 경직되어 있어서, 그 패러다임이 넉넉하질 못하고, 사회적 변화에 적응력도 게으르기 때문에, 변화하려는 세상을 억압하려고 할 뿐 아니라, 오히려 세상에 역기능적인 방해기제로 전락될 수 있다. 그 병폐적인 사례들이 중세기의 종교 활동에서 충분하고도 확실하게 나타난 바 있다.무엇보다도 먼저 인지해야 할 것은, 교회가 새로운 틀과 새 부대를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그 구성원들은 모두다 이 낡은 부대를 터트리고서 빠져 나가 버릴 것이다. 이미 2,000년 이전에, 예수께서 건물 성전을 헐고, 삼일 만에 새로운 성전을 건축하지 아니하셨던가? 예수께서는 부활 승천하신 이후에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성령을 받아 우리에게 부어주심으로서, 이제는 우리 공동체가 그리스도의 몸이 되었고, 성령이 거주하시는 거룩한 처소가 되어 진 것이다. 이 성령의 역사는 그리스도 이전과 뚜렷하게 달랐다. 성령이 한 사람에게만 임하신 것이 아니라 구성원 모두에게, 개개인에게 다양하게 부어 진 것이다.교계의 지도자들은 이제 교인들 하나하나가 모두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 설 수 있도록 하는 마음가짐부터 추슬러야 할 때이다. 우리 교회가, 신도들이 왕 같은 제사장이 될까 보아서 여전히 두려움에 떨고만 있다면, 우리 영적 지도자로 일컫는 이들은 옛날 제후들과 왕들이 버림을 받고 처형되었듯이, 그렇게 되어 질 확률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TV매체에서 서비스를 하는 일은 재고되고, 본을 보이는 프로그램으로 재편성되어야 할 것이다. 아놀드 토인비가 유니온신학교에서 강연한 것 같이, 오늘의 기독교 문제는 설교자들의 부재가 아닌, 순교자들의 부재에서 비롯된 것이다. 바울은 성령을 소멸하질 아니하고 고린도교회를 효율성 있는 그리스도의 몸으로 재구성하였다. 더 나아가서는, 말로서는 다 가르칠 수 없는, 신앙의 본을 꾸준히 보임으로써 거룩한 신부로서의 교회를 세울 수가 있었다.
    • 지난 칼럼
    • 영성논단
    2015-07-08
  • 온전한 교회, 행복한 세상-16
    지난 5월 4일, 바레인에서 입국한, 메르스 질병에 노출된 내국인에 의해서 질병이 여러 지역으로 확산 된지 53여일이 지났다. 다행하게도 당국의 부단한 노력과 시민들의 대처로 인해서 질병의 세력이 소강상태에 이른 것 같아 시민들의 마음도 안정되는 것 같다. 우리가 메르스 질병을 실제로 겪어보니 그렇게 무서운 질병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이 질병의 발생국인 중동에서 조차도 자료가 빈곤하였고, 우리 또한 처음이었다. 초기 대응이 민첩하진 못하였으나 잘 대응한 것 같다.우리는 바로 지난해에도 학생들이 타고 가던 세월호가 바다에 드러누우면서 엄청난 슬픔을 맞이하였다. 이웃나라인 중국에서도 세월호와 비슷한 사고가 양쯔강 중류에서 일어났지만, 우리와는 전혀 다르게 사건이 수습된 것이었다. 우리의 이웃이지만 달라도 너무나 다르게 사태가 수습되고 마무리된 것이다. 우리는 지난 70년 가까이, 뒤도 안돌아보고 앞만 보고 달려왔기 때문에, 이만큼 민주국가로 성장한 것이다. 정부가 국민을 하늘처럼 무서워하게 되었고, 국가 발전이 조금은 더디더라도 국민을 챙기는 것을 보노라면 얼마나 놀라운지......,세월호 뿐만 아니라, 지난날의 IMF, 태안 앞바다에서의 기름 유출, 대구 지하철 참사, 성수대교 붕괴 등, 우리 국민들은 끊임없이 수많은 위기들을 겪어야 했다. 이러한 위기들이 안 일어날 수도 있으련만, 우리가 걸어온 과정에서 통과예식 처럼 크나큰 사건들을 치러야만 하였다. 6.25 동란 같이 국가가 통째로 침몰할 수 있는 경험을 하였을 때에는, 우리 민족은 그 때에 끝이 온 줄로만 알았는데, 이웃 국가들이 발 벗고 나서서 우리의 불행에 참여해줌으로서 비로소 해결될 수 있었다. 얼마 전 참전용사가 한국을 방문하며, ‘그때 우리가 이 땅을 떠날 적에, 이 땅이 회복되려면 수 백 년이 걸릴 것이다.’라고 말했었다고 한 것을 되새겨 보면, 우리는 극한위기 가운데서도 행운을 거머쥔 백성이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IMF 때에도 우리 국민들은 장롱 안에 숨겨두었던 은금과 목걸이, 손가락에 끼고 있던 반지도 아낌없이 벗어서 국고에 채워주었다. 이러한 우리의 광경을 보고서 세계인들은, 이 세상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광경으로써, 한국인의 모습은 경이롭기까지 하였다고 했다. 우린 위기를 쉴 새 없이 많이 겪어보았지만, 그 때마다 그 위기들을 잘 견뎌내었다.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다시금 이러한 일은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건만......,우리가 조상 때부터 자리를 잡아 살고 있는 이 삼천리반도는, 지형적인 위치가 특이하게도 팔레스타인 같은, 주변 강대국들의 대국굴기의 교두보로 이용되는 위치이다. 이러한 지형적인 조건에서 국제적인 이슈나 현안들이 시기적절하게 맞물리게 되어서 뇌관이 촉발된다고 하면, 지금까지 경험된 아픔과 상처들을 모두 합해놓은 것보다도 더욱 감당하기 어려운 재앙이 되어 질 것이다. 지금의 러시아는 냉전시대 이후 가장 강력한 리더십으로 무장된 군사력과 정치력이 팽배된 상태이고, 중국 또한 세계 제2위의 국력을 확보하더니, 이제는 1위를 넘어서려는 의기가 지나치다. 일본 역시 ‘天津條約’을 맺고 조선에 진출하던 시기와, 작금의 ‘미일방위협력지침’이 이뤄진 시점이 얼마나 유사하던지......, 이를 예지한 미국 역시 일본을 앞세워서 동북아지역에서의 우월한 위치를 점유함에 관해서 우린 벙어리가 되고 말았다. 러시아의 동해지역은 겨울에 모두 얼기 때문에, 북한지역의 항구를 이용하지 않으면 무역이 부진할 수밖에 없고, 중국 또한 지형 상 러시아와 북한 땅이 붙어있기에, 동해로 진출하려면 북한의 항구를 확보해야하는 것이 불가피한 상태이다. 오늘 동북 국경지역에서의 과도한 군사력 증강이 이를 뒷받침하는 이유이다. 이러한 이해관계가 맞물린 상태에서 현재의 북한 정세의 불안은 100년 만에 다시 찾아온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어서, 일본은 이를 직시한 듯, 부랴부랴 전쟁을 할 수 있는 국가의 기반을 법적으로 마련한 것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우리는 앞으로 물밀 듯 밀려들어오는 위기를 운명에만 맡길 수는 없는 터이다. 독일처럼 갑작스레 통일이 밀려온다 해도 그 경제적 부담은 자칫 커다란 짐이 되기에, 마치 세월호나 메르스를 대처하던 식으로는 했다가는 자못 국가적 재앙이 될 수도 있고, 만에 하나 전쟁이 터져서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가 북으로 군대를 들여놓는다면, 우리 민족은 돌이킬 수 없는 후회와 한을 또다시 품게 될 것이다. 늦은 감이 없진 않으나 전술전략가 경제 정치가들, 종교인들을 비롯한 온 국민이 믿음과 지혜와 능력을 총괄해서 적극적인 대비를 단단히 갖춰야 할 것이리라.
    • 지난 칼럼
    • 영성논단
    2015-06-29
  • 온전한 교회, 행복한 세상-16
    엘리야, 엘리사 이후 그 땅에 남은 종교란 게하시 종교였다. 꿩 대신 닭으로 대치된 모양새였다. 선지자 적인 모세의 종교가 급격하게 금송아지를 숭배하는 정적인 아론의 사제종교로 전락하였듯이, 엘리사의 종교도 역시 게하시의 종교로 전락한 것을 우리는 성경의 역사에서 볼 수 있다. 이렇게 역사가 보여주는 교훈이 명명백백하지만, 이러한 종교의 왜곡된 역사가 오늘의 지성인들 집단에서 조차도 바르게 잡히질 않고 지속되고 있다.사도시대의 원 교회 이후, 교회의 주도권을 잡기 시작한 제도권의 지도자들은, 엘리사 같은 선지자들이기 보다는 왕권에 빌붙어 사는 게하시 같은 부류들이었다. 저들의 신도 수가 수만 명 있었다하더라도, 그 당시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부와 권력과 명예와 지식을 독점한 5%의 계층의 입맛에 주문된 자들일 뿐이었다. 우리가 왜곡하고 있는 지식 중에, 르네상스가 모든 국민에게서 일어난 운동인양 착각을 하고 있으나, 그 운동마저도 그 사회의 독점세력 5% 내에서 일어난 저들만의 운동일 뿐이었다. 종교개혁도 마찬가지이다. 칼뱅의 교회당에 모인 시민들이 그 시의 지배계층이었고, 일반 서민들까지 앉을 수 있는 좌석은 없었다. 오늘날 교황이 높은 창 발코니에서 군중들에게 잠간 강론을 하는 것은, 그 시민들을 그들의 미사에 모두 들일만한 공간이 없기 때문이고, 서민이나 낮은 계급이 성당문턱을 넘을 수 없었던 이유는, 수문장이 출입자를 걸러내느라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루터가 온갖 역경을 경험한 개혁자이긴 하나, 그 또한 그를 후원한 제후의 세력에서 벗어나질 못하지 않았던가?설교를 공공연하게 만인이 들을 수 있게 된 시기는 조지 휫휠드가 야외에서 하나님나라를 선포할 때부터일 것이다. 더 자세히 말한다면, 국민이라면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말씀을 가까이할 수 있었던 시기는, 하늘의 음성과 양심의 소리에 예민한 선각자가 자국어로 성경을 번역하여 목숨을 바친 시기부터이다. 그리하여 그 성경을 읽을 수 있도록 교회에서 주일학교, 혹은 교회학교를 열어서 누구든지 성경을 읽을 수 있도록 모국어를 가르쳐 주었기 때문이다. 그 이전까지는 가정교회라면 몰라도, 콘스탄틴 황제 이후 돌로 지어진 교회당에서의 정기 예배에 서민들이 들어간다는 것은 불가하였다. 이미 관료들과 지배층이 자리를 채웠고, 그들의 가족들이 모두 들어가기에도 좌석수가 부족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권력층과 이(利)를 따르는 계층들로 구성된 자리에서, 그들로부터 녹을 먹고 있는 설교자가 그들의 철학이나 가치관을 초월한 가르침을 선포할 수 있었겠느냐는 것이다. 차라리 강론은 축소시키고 전례를 화려하게 하는 것이 편안하였을 것이리라. 그래서 저들은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소홀이하고, 성령과의 조우는 생략하였던 것이다. 저들은 나사렛 사람 예수가 산과 들과 해변에서 설교한 뜻을 알아차렸어야 했다.엘리사와 게하시의 차이점은 오늘의 지성인 이라면 능히 분별해 낼 수 있다. 엘리사는 저를 방문한 아람나라의 국방총리 나아만을 버선발로 나가서 맞이하여 주질 아니하고, 오히려 문전에서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씻으라고만 하였다. 국빈 환대와 예절을 떠나서, 한 영혼을 살리려는 예리하고도 섬세한 통찰력을 읽을 수 있다. 저가 나아만을 직접 고쳐주었더라면 치료비 명목으로 후한 접대는 받을 수는 있었어도, 저의 영혼 구원은 이루지 못하였을 것이다. 나아만이 병에서 회복되어 사례하기 위해서 돌아 왔을 때에도, 선지자는 또다시 저를 돌려보냈다. 하지만 게하시는 그의 스승이 거절한 사은품에 욕심내어, 저에게 달려가서 금과 은을 취하고, 명품양복 두벌도 얻어냈다.진정한 선지자라면 게하시가 하는 것을 모를 리 없다. 누구라도 엘리사의 영성을 가진다면 게하시가 지금 하나님나라를 망치고 있다는 것은 다 인지할 것이다. 저는 엘리사의 흉내도 내질 못하였다. 선지자의 손에 물을 붓던 여호수아나 엘리사는, 모두가 성령을 받아서 그 시대의 사명을 잘 감당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그 좋은 기회를 모두 놓치고 임금의 설거지나 하는 자로 전락하였다. 엘리사 주검의 뼈에만 스쳐도 죽은 자가 살아나건만, 선지자가 마지막 떠나면서 그렇게 넘겨주려고 한 영적 유산에는 게으르고, 눈앞의 재물과 권력과 명예만 탐하였다. 엘리사가 떠난 이후, 그 시대에 밀려오는 난제들을 극복할 능력이 게하시에게는 부재하였다. 선지자가 위로부터 오는 성령의 능력을 입질 못하였으니, 마치 엘리사제가 법궤를 빼앗기어서 하나님의 영광이 그 땅을 떠난 것처럼 되어 진 것이었다.
    • 지난 칼럼
    • 영성논단
    2015-06-18
  • 온전한 교회, 행복한 세상-15
    얼마 전 지인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기성 교인들이 이단이라는 단체에 들어가서 교육을 받으며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그 곳의 가르침이 재미있고 귀에 쏘옥 들어온다는 것이다. 요즈음 세인들이 필요로 하는 바에 답을 주고, 사람들이 원하는 바에 시원하게 행복을 안겨주는 비결을 저들이 갖고 있었기 때문일까?요즈음 젊은이들이 몰리는 강좌들이 여기저기 눈에 띤다. 강사가 시원시원하게 강론할 뿐 아니라, 강의를 듣는 젊은이들도 상당히 운집되어 있다. 교회에서 빠져나간 젊은이들에게 성경과는 거리가 먼 동양철학과 경교회(네스토리안)를 혼합하여 강론 하는데, 듣는 청중은 그 강의가 정말 성경 강론인줄로만 알고 듣는 것이었다. 우리 한국교회가 지금의 시점에서, 교회 바깥의 젊은이들에게도 길과 진리를 보여주고 생명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지성과 영성을 갖춘 지도자들을 제대로 훈련시켜야 하지 않을까? 오늘의 우리 교계의 구조는 젊은 지도자들이 일어서도록 하는 기반이 매우 부실하다. 우리 기성세력들이 너무 오랜 기간 동안 구태를 벗어나질 못하고 권위적인 억압을 풀지 않아서, 신진들이 숨어버린 것은 아닐까?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어 주검을 맞이한 그 다음 날, 제자들은 지옥에 있는 것이나 다름없는 비통함에 빠져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스승을 세 번씩이나 부인함에 대한 좌절감, 자신에 대한 분노, 도저히 얼굴을 들 수 없는 부끄러움......, 그러나 삼일 후, 예수께서 부활하시자마자 제일 먼저 베드로를 찾아오셨고, 제자들에게 평안을 주셨다. 40일이 지나자, 승천하신 주님의 분부대로 베드로는 동료들을 추스르고, 함께 모여서 기도하였다. 저와 동료들이 힘을 내어서 기도할 수 있었던 동력은 무엇이었을까? 엘리사가 그의 스승이 하늘로 돌아갈 때에, 저는 애타게 갈급해하는 기도가 있었다. 엘리야는 바짝 따라붙은 제자 엘리사를 불편해하면서 “너는 여기에 잠시 떨어져 있어라.”는 말을 여러 번 하였지만, 저는 스승 엘리야를 끝까지 따라붙었다. “내가 무엇을 해주길 원하느냐?”라고 스승이 묻자, “당신의 영감을 갑절로 받길 원합니다.”라고 말했다. 하늘로부터 오는 것이라서, 원한다고해서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또한 주고 싶다한들 줄 수 있는 것일까? 그러나 우리 역사를 보면, 위에서 오는 것을 붙드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다. 예수께서도 세례요한에게 나아가서, 세례도 받고, 불과 성령도 받으시질 아니하였던가? 베드로도 동료들과 함께 전심으로 기도하다가 오순절에 성령의 불꽃을 받았다. 그의 머리에도 불이 당겨진 것이다. 과거에는 하나님의 신에 감동된 지도자들이 시대마다 ‘한 사람’이었는데, 이번에는 전과는 달랐다. 그 곳에서 함께 기도하던 이들 모두가 성령을 받은 것이었다. 어린아이, 노인, 젊은이, 남종, 여종, 할 것 없이 차별되질 않고, 기도모임에 참여한 이들은 모두가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하게 입혀졌다. 기도에 참여한 이들은 방언도 하고, 예언을 하고, 마치 모세의 동료 70인들이 능력에 취하여 쓰러졌던 것같이, 술에 취한 듯 하나님의 영에 흠뻑 취한 이들도 있었다. 에스겔이나 이사야, 요엘 선지자들이 증언하던 바와 같이, 지도자 한둘에게만 능력이 입혀진 것이 아니라, 예수를 믿고 따르는 이들 각 사람에게 주님의 성령이 임하신 것이었다.예수께서 열둘에게 능력을 입혀서 둘씩 세상으로 파송하실 때에, 비록 제자들은 훈련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고 땅으로 추락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예수를 따르는 제자들 각자가 위로부터 부어지는 성령을 받고, 권능으로 복음을 전하였으니, 세상이 구원을 얻고, 땅들이 요란하게 진동하였다. 악의 실체들이 결박을 당하고, 세상에서 패주하기를 시작한 것이다. 이 복음 선포가 이방인과의 접경에 이르자, 베드로는 인종과 문화를 넘어서는 성령의 역사에 참여한다. 그가 이방인 고넬료의 집에 초대를 받아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자, 성령이 그 이방인들 각 사람에게 내려오셨다. 여종이나 남종이나, 친구들까지도 모두가 성령을 받았다. 복음 전도자가 성령의 적극적인 인도에 민감하였을 뿐 아니라, 복음 선포가 명료하고 간결하였다. 이것이 다가 아니었다. 성령께서 복음을 전하는 분에게 권능을 입혀 주었고, 이방인에게는 통과제례가 복잡한 물세례뿐만 아니라, 성령의 불로서 이방인들에게 세례를 수여함으로써 교회의 새로운 막을 올렸던 것이다.
    • 지난 칼럼
    • 영성논단
    2015-06-10
  • 온전한 교회, 행복한 세상-14
    갈릴리 서민 태생 예수가 당시 교회의 권위를 거슬러서, 안식일에는 일하지 말라는 계율을 깨뜨리고, 회당이나 공고연한 장소에서 장애인을 치유하는 사역을 쉬쉬하질 아니하고 퍼포먼스를 벌리었다. 병아리가 단단한 벽을 깨뜨리지 않고서는 자신의 새로운 탄생을 취득할 수 없다고 헤르만 헤세가 데미안에서 말하였더라도, 기존의 고정관념을 부수고 새로운 세상을 여는 이야기는, 당시 사회에서는 죽음을 내걸고 해야 하는 모험이었다. 더더욱 일반 정치적인 문제나, 사회 관습을 깨는 것도 아닌, 종교의 계율을 무너뜨리는 행위라서 위험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예수운동에서 공공연하게 들어나는 것들은 단순히 안식일 준수와 관련된 것만이 아니었다.당시 사회계층의 서기관이나 제사장들 같은 지도자들에게 모욕감으로 공분을 사게 하였는데, 예수가 진정한 치료자요 구원자로서 세리의 집에 들어가서 저들의 친구들과도 식탁을 같이 하였을 뿐만 아니라, 창기들의 초대에도 응하였고, 저들은 예수의 환대를 받고서 예수의 추종자들이 되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예수가 성전에서 일으킨 퍼포먼스로 인한 두려움과 위협을 느낀 나머지, 성전을 기반으로 해서 종교적 권위와 경제적인 특혜를 누리는 제사장들과 서기관들 같은 이해집단들은 예수운동을 잠식시키기 위한 방안으로 예수를 십자가로 처형하는 계략을 내었던 것이다. 예수가 산과 들판에서 사람들에게 던진 가르침은 계율 같은 것이 아니었다. 오로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도록 몸을 깨웠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의 수용과 용서, 치유와 구원을 가져오고, 두세 사람만 모여도 그 자리에서 주의 이름을 부르면 어디에서든지 성령의 임재와 예배에 참여하도록 하였던 것이다.이렇게 예수가 30대의 젊은이로서 당시 기존 질서와 권위에 도전장을 내고, 서슴없이 새로운 세상을 여는 능력과 대담한 용기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이었을까? 당시보다 더 부패하고 세월호처럼 기울어진 오늘의 교계를 바로 잡을 수만 있다면, 예수가 보이신 방안들을 차용할 수는 없을까?예수께서 활동하시던 당시 이스라엘은 예레미야나 이사야, 에스겔 같은 선지자의 왕성한 활동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올바른 신앙이나 가치관을 보편화시키질 못하였다.바빌론 포로 생활에서 고국 팔레스타인으로 돌아온 유대인들은 옛날 다윗 왕조시대의 평화와 부귀를 새로이 꿈꾸었지만 매사 실패를 보고 말았다. 마카베오 형제에게 기대했던 조국의 주권 회복과, 더럽혀진 성전을 거룩하게 하는 일들이 또다시 좌절되었기 때문이다. 이들 형제 중에 하나는 통치를, 또 하나는 사제도 아니면서 대제사장이 되어, 모든 권력과 명예와 부를 거머쥐었기 때문이었다. 이같이 오염된 역사가 번복되고 누적되자, 다윗의 자손에게서 비롯된 메시아사상을 포기하게 되었고, 이 세상에서는 희망을 접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삼하 7:12,13,16). 인간의 혈통이나 지연, 학연에 연고를 두고 형성되는 집단들은 명예욕이나 권력욕이나 금욕에서 자유 할 수 없다. 이는 그들 역시 사사로운 이(利)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카베오 형제의 난 이후로 더욱 강력한 메시아사상이 발현되게 되었는데, 다윗왕조를 계승하는 메시아사상이나, 선지자들이 언급한 수난을 당하는 메시아사상이나, 성령으로 새로운 체계를 이룩하는 신학사상을 넘어서서, 다니엘서에서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나라의 통치를 이 땅에 세우실 메시아는, 위로부터 전권을 가지고 구름을 타고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라야 하였던 것이다. 마가, 마태, 누가, 요한복음이 보여준 바와 같이, 강력한 카리스마를 제대로 갖춘 통전적인 메시아를 필요로 한 것이었다.예수운동은 팔레스타인 바깥에서도 일어났는데, 이들은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그가 보여준 삶과, 십자가에서 드러낸 하나님의 의로우심에 가치를 두고 일어선 공동체였다. 갈라디아 공동체나, 여사도 뵈뵈가 로마로 가져와 보급한 바울의 복음서신을 보면, 저들은 오로지 예수 안에서 옛 아담 적인 이기적인 삶을 종료하고, 부활하신 예수 안에서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고, 자기 자신들을 선물로 세상에 내어주는 삶을 살았다. 지금의 한국교회에 절실히 요구되는 것은 무엇일까? 아마도 옛 질서와 권위를 깔끔하게 갈아 칠 수 있는, 오로지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만을 믿고 따르는 수련생들이 아닐까?
    • 지난 칼럼
    • 영성논단
    2015-05-27
  • 온전한 교회 행복한 세상 13
    요즈음 우리네 교계에서는 ‘사울 증후군’에 몹시 시달리는 계열이 있다고 하는데, 아마도 위임을 받고서, 특정한 위치에서 사역을 하고서 은퇴한 교역자들 가운데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것 같다. 어떤 이들은 사울 증후군을 비교의식으로 인해서 비롯된 증세로 간단하게 처리하려고도 하지만 그렇게 가볍게 넘길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왜냐하면 일반 사회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문제이긴 하지만, 교계에서는 꽤 무게가 있는 카리스마적인 지도자들에게서 나타나는 증상으로서, 개 교회나 한국교회에 치명적인 손상을 가져오고 있기 때문이다. 한 예로, 그는 TV에도 매주 강연을 하는 설교자이기도 하다. 그가 이룬 업적은 그가 속한 도시나 그가 몸을 담은 교단에서도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자이다. 그도 나이가 들어서 70을 맞이하게 되었고, 마침내는 손에 쥐고 있던 모든 권한을 내려놓아야 했다. 허지만 그가 이 모든 것을 내려놓기에는 그의 몸값이 너무 큰 나머지, 그가 벌려 놓은 일거리들 때문에 실제로는 내려놓은 것이 아니었다. 그의 뒤를 이어 부임한 후임자는 그의 뒷받침을 하기에는 너무 버거운 나날을 보내야만 했다. 새로운 출발을 하기에는 이미 과부하 상태였던 것이다. 얼마가지 않아서 후임자는 재판에 회부되는 일을 당면해야만 하였다. 곳곳에 벌어지고 있는 사울 증후군 현상은, 마치 중심을 잃고 바다 한 가운데에서 넘어진 세월호처럼, 수많은 교회들과 신도들의 생명을 희생시킬까 보아서 두렵기만 하다. 사울은 그의 주변 사람들보다도 머리 하나가 더 높은 훤칠한 사람이었다. 오랜 세월동안 주변의 적들에 노출된 이스라엘은, 주변국들과 같이 왕을 요청하는 목소리가 높아만 갔다. 이러한 요청에 의해서 기름부음을 받고 왕이 된 자가 사울이다. 이스라엘에 일어나는 모든 정황들이 그를 왕으로 추대하는 데에는 무리가 없이 척척 맞아 들어갔던 것이다. 그러나 블레셋 군단이 사울과 접전을 벌이려고 전선이 형성되고 있을 때에, 사울의 군대가 흩어지기 시작하자, 저는 급했던 나머지 사무엘이 도착도 하기 전에, 기다리질 못하고 제사를 집례 하였던 것이다(삼상 13:12). 사울은 ‘제사장 같은 왕’의 흉내를 내었으나, 웃시야 왕도 야훼의 향단에 분향하려다가 문둥병에 노출되어서 평생을 별궁에서 격리된 채로 있었듯이, 하나님과 백성들에게 거리낌이 되었다. 사울은 아말렉과의 전투에서도 하나님이 경계한 전리품들을 불법으로 챙겼다. 별 가치가 없는 것들은 그대로 행하였지만, 살지고 기름진 좋은 것들은 숨겨 두었던 것이다. 사울이 야훼의 말씀을 따르지 않은 것은 야훼를 위해서 그렇게 하였다는 것이었다. 하나님께 좋은 것들을 드리기 위해서 그렇게 하였다는 것이었으나, 예수께서는 이를 바르게 식별하시어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마7:23).’ 하였다. 사울의 이와 같은 행위를 못마땅하게 여긴 사무엘이 진영을 떠나려 하자, 사울은 그의 부하들 앞에서 체면을 구길까보아서 사무엘이 동행할 것을 요청하였는데, 그는 이렇게 행동으로도 사람들을 속일 수 있었다. 이러한 사울의 행위는 결국 그가 기름부음을 받을 때에 그에게 임하신 성령이 떠나가는 결과를 야기한다. 이렇게 성령이 부재한 껍데기만 그럴싸하게 자릴 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무엘은 성령의 지시를 받아 다윗이라는 양치기 소년에게 기름을 붓게 되고, 기름부음을 받은 다윗은 이날 이후로 주님의 성령에 감동되어 있었고, 그 시부터 새로운 리더십이 이스라엘에게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엘라 골짜기에 블레셋 군대와 맞서서 진을 친 이스라엘은 거의 전의를 상실한 상태였다. 이러한 정황을 우연찮게 보게 된 다윗은 적장 골리앗과 직면하여 겨루게 되었고, 드디어 시민들이 ‘사울과 함께한 자는 천천’이지만 ‘다윗과 함께한 자는 만만’이란 노래가 불리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명성과 백성의 마음이 사울에게서 떠나 다윗에게로 넘기어 가자, 사울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다윗을 죽이려 하였다. 다윗은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서 피신을 할 수 밖에 다른 방책이 없게 되었고, 사울은 군대를 이끌고 다윗을 찾아 이 골짜기 저 골짜기를 샅샅이 뒤지며 다윗을 옥죄었던 것이다. 오늘에도 한국교회는 사울과 그가 이끄는 군대를 피해서 몸을 낮추고 숨기는 후임자들이 적지 않다. 저들이 숨은 동굴을 거미조차도 안쓰러운 듯이 거미줄을 쳐서 보호하였다는데, 오늘의 한국교회의 미래지기들이 다윗처럼 살아남을 수 있다면 좋으련만......,
    • 지난 칼럼
    • 영성논단
    2015-05-14
  • 온전한 교회 행복한 세상 12
    예수께서 산헤드린 교회에서 정죄를 받을 당시, 그 죄 몫이 ‘성전을 부수고 사흘 안에 짓는 자’이다. 마가복음 14:58; 15:29, 마태복음 26:61; 27:40에서 시사 하듯이,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이유가 유대인의 성전을 헐고 다시 세우려 한다는 두려움에서 비롯된 처사이었음을 완곡하게 드러내다가, 복음서로서는 제일 나중에 기록된 요한복음서에서는 작심하고 복음서의 서두에서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고 선포하였다. 예수가 나무에 매어달린 이후 요한의 복음서가 기록된 그 때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한 신학이 발전되고, 그리스도가 죽음으로서 무엇을 이루어 내셨는가에 대한 확실한 답을 좀 더 명백하게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교역자이든지 평신도이든지 막론하고, 21세기 현대 교회를 섬기는 왕과 같은 제사장들로서 그렇게 오랜 세월 유대인들의 정신사에서 지켜진 예루살렘성전을 그리스도께서 허물려는 이유를 보다 더 확실하게 인지할 필요가 있다. 무너진 예루살렘성전을 다시 세우려는 시도는 스룹바벨 뿐만 아니라, 그 이후로 현재에 이르기 까지 항상 성전을 재건하려는 시도만큼은 게을리 하지 않았다. 저들은 전쟁을 치르면서도 성전을 복구하는 데에 전심하였다. 오늘에 와서도 예루살렘성전을 다시 세우려는 시도를 하겠지만, 도저히 다시 세울 수 없는 딜레마 상태에 있는 것은, 이미 그 장소에 무슬림의 성전이 들어서 있기 때문이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성전을 세우려는 시도가 우리 한국 땅에서도 지속되고 있으나, 성전이 완성되기도 전에 하나님아들이신 그리스도의 교회가, 이름하여 ‘하나님의 교회’라는 곳으로 팔려나가는 일이 발생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타 종파로도 넘어가는 상황들도 어렵지 않게 보게 되었다. 이와 같은 현상들은 우리 한국에서 보다 먼저 유럽교회에서 이미 일어나고 있는 사례들이었다. 이러한 정황에서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세우려는 성전은 무엇인지를 자문해 보아야 한다. 돌로 세우려는 성전이든지 돌이 아닌 다른 어떠한 것으로 세우려 하던지, 그 성전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임을 찾아내어서, 예수가 부수려한 성전은 무엇이고, 예수가 다시 세우려는 성전은 무엇인지를 명료하게 분별하여서, 함께 비교하여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사람들이 세워놓은 성전을 목숨을 내걸고 허물어낸 역사를 갖고 있다. 이 시도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일 먼저 시도하셨고, 마틴 루터와 칼뱅도 뒤를 이었다. 그러나 과거의 성전을 제대로 무너뜨려야 새로 짓는 성전이 탄탄하게 지어질 것이 아닐까? 허지만 루터와 칼뱅 이후, 저들이 무너트린 성전이 도처에 궁전처럼 다시 지어져서 도시마다 번쩍이고 그 세를 위시하고 있으니 아이러니하기가 짝이 없을 정도이다. 요즈음 세상을 개혁하자고 권력을 부여 받고, 칼을 그 칼집에서 꺼낸 자가 사정의 칼날을 휘두르기도 전에, 오히려 그 자신이 그 칼날에 제물이 되는 것을 보았다. 갑옷을 입었다고 골리앗을 쓰러트릴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면 오산일 것이다. 다윗이란 자는 허름한 일상 옷차림만으로도 물맷돌로 단숨에 적을 쓰러트렸으니 말이다. 오늘의 한국교회는 칼뱅이 무너뜨린 교황의 성전을 도처에 다시 세웠다. 예수께서 무너뜨린 성전을 그의 제자라고 스스로 일컫는 자들이 버젓이 다시 세운 것이다. 그리스도론이 교회론에 포로가 되고, 성령론이 교회론에 포수가 된 것만이 아니다. 실체로 ‘오직 주님!’이란 표제가 무색할 정도로 교회의 머리되신 그리스도가 그의 교회의 사제들에게 포로가 되어 있는 것이다. 성령도 그의 처소가 된 성전에 나타나시질 않으신 것이다. 교회가 성령을 훼방하고 모욕하여 내어 쫓아내었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교회가 로마교회 같이 자만에 빠져서 성령을 모욕하는 일을 멈추질 아니한다. 어느 신학자는 이를 빗대어 성령께서 수줍음을 타셔서 오늘의 교회에는 들어오시길 꺼려하신다고 한다. 이와 관련하여 바른 신학과 가이드라인을 제시 했어야 할 신학자 자신들이 골리앗의 위세에 움츠러들어서 나무 밑에 납작 엎드려 몸을 숨긴 사울의 군대같이 전의를 빼앗겨서인지 아무도 나서질 않은지 오래다. 혹자들은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면서, 루터나 칼뱅이 로마교회를 바르게 청산하지도 못한 과제를 바르게 처리하려고 하거나, 오염된 교회를 청결하게 씻어내자고 할지 모르겠다. 허지만 복음서의 예수의 성전 사건을 부분적으로 보고서 성전청결이라고만 칭하던 신학에서 떠나, 요한복음서에서 옛 성전을 척결하고 새로운 성전을 건설하시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전심하여야 할 것이다.
    • 지난 칼럼
    • 영성논단
    2015-05-07
  • 온전한 교회 행복한 세상 11
    바울이 로마로 보내는 서신을 마감하면서 상당히 많은 인물들이 거론되었다. 이들 중에는 교회의 유력한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이들은 이미 로마 바깥에서 거류할 때에 바울을 만나서 비로소 복음을 접하였거나, 이미 로마에서 추방되기 이전에 복음을 접하였지만 바울을 만남으로 인해서 복음을 명료하게 인지한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이들은 로마의 황제 네로가 등극하면서 다시금 유대인들을 로마로 들어오도록 조치를 취하였는데, 이때에 다시 로마로 입국한 자들이었다. 이들이 로마에 다시 들어갔을 때에는 이미 유대인이 아닌 여러 계층으로 이뤄진 크리스천들이 상당히 많은 세를 이루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볼 때에 유대 크리스천들은 그곳에 이미 기득권을 가진 이방인 크리스천들과의 어울림에서 약자의 위치에 처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유대주의자들과 유대크리스천들은 이미 로마시 안에서도 박 터지는 갈등을 야기하였지만, 추방 이후 로마 시 바깥에서도 지독한 충돌을 경험하였던 바이었다. 이들은 로마에 재입국하면서도 복음과 율법의 문제뿐 아니라 새로운 이방인 크리스천 집단과 합류하게 되었는데, 그 과정과 사회적 환경에서 명예 문제나 사소하고 미묘하게 차별을 두는 일들이 발생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가운데에서 공동체 구성원의 복음의 인지도를 재점검하고, 복음의 명료성을 갖추게 할 가르침의 권위, 그리고 리더십을 발휘할 뿐만 아니라 복음적인 삶에 본보기적인 됨됨이를 갖춘 인물을 필요로 했던 것이다. 당시 발견된 랍비문서를 보면, 유대 랍비의 서신을 갖고서 멀리 떨어진 유대인 공동체에 보냄을 받는 사신들은, 그 서신을 보낸 랍비와 대등한 질적 권위를 함께 갖추고 있었다. 바울은 그의 복음을 효율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복음사도를 로마 시에 입국한 이들에게서 고르질 아니하고, 오히려 로마 시 바깥에 있는 겐그레아의 뵈뵈집사를 선택하였다. 바울의 서신을 갖고서 보내어지는 사도들은, 바울의 복음에 학습된 명료한 지식을 갖추고 있었을 뿐만이 아니라, 복음에 적합한 행동과 인격과 영성, 성령의 나타남을 바울과 대등하게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비록 나이가 어리다든지, 남성이 아닌 여성이라 할지라도 복음을 깊게 이해하고 있었음은 물론이고, 복음의 질에 맞먹는 인격의 품질이 복음을 손상시키지 않았던 것이다. 뵈뵈집사가 로마 시에 가져온 바울의 복음은 마침 시기에 적절하게 적용되었다. 오늘날 많은 여성 지도자들이 남자 교역자들과 대등한 위치에서 TV 연사로 등장하는 것을 보면, 저들의 인격이나 영성이 복음의 질을 넉넉하게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안도감마저 드는 것은 마땅한 처사일 것이다. 한국교회가 고정관념과 편견을 깨고 여성들에게 안수를 하게 된 것은 매우 잘 한 일이란 마음이 든다. 과거 여성 지도자를 어느 교단보다 먼저 배출한 곳은 감리교이다. 교회에서 여성을 차별하는 것을 멈추고 장려함으로써 여성 지도자 풀을 넉넉하게 갖추게 되었고, 국가가 여성일군을 필요로 할 때에 저들이 선뜻 나설 수 있었던 것이다. 오늘의 우리교회가 교회 안에서 명예와 권력, 금권의 문제가 끊임없이 대두되고 있지만, 원시교회에서도 오늘의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하나님나라는 성령 안에서 의로움과 화평과 희락임’을 충분히 숙지한 뵈뵈는 분열의 조짐이 멀리서도 인지되던 로마교회를 손수 감싸 안고 효율적으로 치료하게 되었던 것이다. 교회가 세상 집단과 다른 것은,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모여 한 성령을 마시고, 같은 떡과 잔을 나누고, 한 하나님을 섬기는 공동체이기 때문에, 그리스도가 머리이시고, 교회는 그리스도의 유기적 공동체로서의 몸을 이룬다. 그러므로 이러한 다양성을 한 몸으로 세워 가려면, 지도자의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해야만 가능한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고 높여주는 풍토가 자연스럽게 일어나기까지는 조직을 성급하게 구성해서는 아니 된다. 단체마다 모임을 가지면 회장이나 총무를 뽑아 조직하는데, 이는 명예나 권력, 이기적인 이익에 고착된 나머지 더 나은 공동체로 나아가질 못한다. 진정한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공동체란,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공유하고, 성령의 각양은사들과, 희생적인 본보기로 오랜 시간 신뢰를 쌓아가야만 비로소 유기적 공동체를 이루게 되기 때문이다. 뵈뵈집사는 공동체마다 가서, 가슴 떨리게 로마서 서신을 낭독하고, 가르치며, 협력을 얻어내어서, ‘성령 안에서 의로움과 화평과 기쁨의 하나님나라’를 이뤄내었던 것이다.
    • 지난 칼럼
    • 영성논단
    2015-04-22
  • 온전한 교회, 행복한 세상 10
    고린도전서를 읽노라면 어느 서신에서 보다도 사람냄새가 물씬 나는 복음서임을 독자들은 느끼게 될 것이다. 아마도 오늘의 잘 구성된 교회를 갖춘 입장에서, 교회론적인 안목으로 보게 되면 누구나 그렇게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허지만 사회학적인 입장에서 고린도교회의 사정과 형편을 살펴보면, 세상에서 이렇게 혁신적이면서 전에는 꿈도 꾸어보질 못한 새로운 사회집단을 형성하는 역동을 볼 수 있다. 당시 사회는 5%의 소수 특정한 집단이 모든 사회를 통제하고 독점하던 시기였다. 엄격한 상하 남녀노소의 차별과 자유인이 있는가 하면 노예들이 있었고, 글을 아는 그룹이 형성되어 있었으나 진리를 알려하는 이들에게 폐쇄되어 있었고, 그 지식마저도 독점되고 있었다. 이러한 사회적 환경에서 모든 사회적 집단으로서의 가치관을 내려놓고, 오로지 하나의 가치관을 가지고서 자율적으로 모여드는 집단이 있었는데, 바로 그 모임이 크리스천의 교회였다. 이들의 공통점을 말하려면 한 복음을 듣고 믿으며, 한 성령을 받아 마시고, 누구에게나 차별을 두지 않는 똑같은 세례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교회 바깥세상에서는 신분과 계급과 종교와 소유와 지식 유무로 인한 차별을 받는 이들이었다. 그 안에는 로마 시민권자도 있었고, 자유인들도 있었고, 귀족도 있었고, 지혜자들도 있었고, 개종한 유대인들도 있었고 노예들도 있었다. 그런데 이 집단에서 누가 크냐? 누가 더 좋은 은사를 받았느냐? 하는 문제들이 일어나서 소란스러워졌고, 그 염려스러운 상황은 부랴부랴 바울이 보낸 일차, 이차, 삼차 서신으로서 질서를 바로 잡기에 이른 것이었다. 그런데 이 혼란스럽게 보이는 교회를 바르게 균형 잡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도의 태도를 보면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세상의 모든 특혜를 거머쥔 5%의 그룹에 속한 이들이 그 안에 없을 리가 만무하였고, 큰 저택의 거실을 교회에게 내어준 이들이 있었는가 하면, 저녁시간에 모일 때에 식탁의 교제를 갖기 위해서 넉넉한 식사량과 포도주를 갖고서 참석한 이들이 있었으나, 반면에 주인 밑에서 잔일을 모두 설거지하고 늦게 참석하느라고 식사도 하질 못하고 예배에 참석한 노예들도 많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가진 자들이 가난한 자들을 배려하는 것이 부족하다는 것을 지적 받기도 하였다. 이러한 고린도교회의 현상을 주의 깊게 들여다보면, 그 지역의 가진 자들이 가난한 자들을 소외시키는 일들이 바로잡히질 아니하고 지속적으로 진행되었던 것에는 부자들의 이기심 때문에 비롯된 것만은 아니었던 같다. 당시 사회적으로 억압되고 불이익을 당하고 부자유하게 살던 이들 중에, 성령의 나타남이 그들 중의 어떠한 사람보다도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경우가 항상 있어왔기 때문에, 이들이 사회적으로 중요시 되고 과시될 수 있는 존재감을 성령의 은사에서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출애굽기나 사도행전에서 보면, 당시 최고의 지식인이 성령에도 충만하였음을 모세에서 보여 졌고, 스데반은 초대교회 교인들 대표성을 가질 뿐만 아니라 산헤드린을 압도하는 능력과 성령의 지혜를 갖춘 것과, 지식인들이 은사에도 뒤지지 아니하고 영성과 열매에 앞서있었던 사례가 사도바울에게서도 나타난 바이었다. 그러나 성령은 교회제도권의 권위와 질서에 맞추어서 운행하시질 않는다. 성령이 교회제도에 맞추어서 운행하도록 규제한다면, 성령을 교회제도 안에 가두는, 성령을 소멸하고 훼방하는 죄를 서슴없이 짖게 되는 결과를 야기하기 때문이다. 세속적 구조에서 이미 5%의 집단은 모든 사회에 영향을 끼치는 집단이다. 그런데 이 5%의 집단이 교회에도 들어와서 로얄패밀리로서의 대접을 기대했으나, 오히려 소외감을 느끼게 되어서인지 가난한 자들을 배려하질 못하고 괴롭혔던 것이다. 바로 이러한 성령의 나타남으로 인한 충격에서 서로를 낮추어보고 무시하는 일들이 한동안 비롯되었던 것이다. 고린도 교회의 이러한 현상이야말로 얼마나 신선하고 새로운 혼란인가? 5%만이 독점하는 것이 당연시되던 세상에서, 세속적 가치관과 구조가 새로운 그리스도의 통치의 질서에 합류하기 시작한 것이다. 얼마나 경이롭고 놀라운가? 부자들도 지식인들도 권세자들도 성령의 인치심을 받고 경험하였기 때문에, 고린도교회는 그 5%가 세워놓은 기성질서에 순응되질 아니하고 새로운 질서를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바로 성령론적인 교회로서의 질서였다. 오늘날 성령의 나타남이 흔적도 없이 이 땅에서 떠나가 버리고, 금권과 지식과 사회적 명사가 로얄패밀리로 자리 잡아 제도화된 교회들로 점령된 것은 무엇으로 설명되어야할까?
    • 지난 칼럼
    • 영성논단
    2015-04-09
비밀번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