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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의 문제는 사람이다 - 배성산목사
    세상에 태어나 살아가는 세상살이는 말도 많고 탓도 많은 게 세상의 일이다, 텅 빈 허공 속을 뛰어 다니며 모으고 움켜쥐고 소리 지르며 싸우고 미워하지만 이게 모두 환영(幻影)이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이가 몇이나 될까. 욕심을 내면 낼수록 힘겨워 지고 쌓으면 쌓을수록 무거워 지는 삶. 무소유(無所有)의 삶으로 가볍게 머물다 홀연히 떠나는 것이 기쁜 삶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이가 있다면 몇이나 될까? 산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을 살게 하는 것일까? 화들짝 피였다가 떨어지는 꽃잎처럼 풀잎에 맺어있는 이슬처럼 바람 앞에 떨고 있는 낙엽처럼 그렇게 잠깐 머물다 그렇게 가는 것이 사람의 삶의 모습인 것을 알아차리는 이 몇이나 될까? 생각하면서 "삶의 문제는 사람이다"라는 삶의 결론을 내린다. 세상사는 삶의 지혜 중에 수류거(隨流去)란 말이 있다. 물을 따라가라는 말이다. 산골짜기에서 길을 잃었을 때 물을 따라가다 보면 사람 사는 곳이 나온다는 말이다. 물이 흐르다가 막히면 돌아 나가고 가득 고이면 흘러 넘쳐흐르게 되는 자연의 법칙이다. 살다가 보면 이 단순한 자연의 법칙을 모르고 뛰어 넘으려고 다른 이보다 빨리 가려고 월권을 하기도 하고 자신을 보호하려고 벽을 쌓아 올려 이웃과 단절을 하기도 한다. 생각해 보며 채근담을 살펴보면 사람들이 "마음먹기에 달려있는 세상 일"을 알게 한다. 즉 세상일이란 마음먹기에 달려있다. 슬프게 보면 모두가 슬프고 웃으며 바라보면 모두가 즐겁다. 괴롭고 즐겁고 곱고 미운 것이 다 제 마음 탓이다. 한 사람의 마음이 화평하면 옆의 사람까지도 부드러워진다. 즐겁게 살고 싶거든 먼저 웃으면서 사는 마음을 기르라. 즐거운 마음은 괴로운 마음속에 있다. 괴롭다고 해서 희망을 버려서는 안 된다. 실의(失意)의 슬픔은 득의(得意)한 가운데 있다. 성공을 하였다고 하여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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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성산
    2014-06-09
  • 삶의 문제는 사람이다 1 - 배성산목사
    세상에 태어나 살아가는 세상살이는 말도 많고 탓도 많은 게 세상의 일이다, 텅 빈 허공 속을 뛰어 다니며 모으고 움켜쥐고 소리 지르며 싸우고 미워하지만 이게 모두 환영(幻影)이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이가 몇이나 될까. 욕심을 내면 낼수록 힘겨워 지고 쌓으면 쌓을수록 무거워 지는 삶. 무소유(無所有)의 삶으로 가볍게 머물다 홀연히 떠나는 것이 기쁜 삶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이가 있다면 몇이나 될까? 산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을 살게 하는 것일까? 화들짝 피였다가 떨어지는 꽃잎처럼 풀잎에 맺어있는 이슬처럼 바람 앞에 떨고 있는 낙엽처럼 그렇게 잠깐 머물다 그렇게 가는 것이 사람의 삶의 모습인 것을 알아차리는 이 몇이나 될까? 생각하면서 "삶의 문제는 사람이다"라는 삶의 결론을 내린다. 세상사는 삶의 지혜 중에 수류거(隨流去)란 말이 있다. 물을 따라가라는 말이다. 산골짜기에서 길을 잃었을 때 물을 따라가다 보면 사람 사는 곳이 나온다는 말이다. 물이 흐르다가 막히면 돌아 나가고 가득 고이면 흘러 넘쳐흐르게 되는 자연의 법칙이다. 살다가 보면 이 단순한 자연의 법칙을 모르고 뛰어 넘으려고 다른 이보다 빨리 가려고 월권을 하기도 하고 자신을 보호하려고 벽을 쌓아 올려 이웃과 단절을 하기도 한다. 생각해 보며 채근담을 살펴보면 사람들이 "마음먹기에 달려있는 세상 일"을 알게 한다. 즉 세상일이란 마음먹기에 달려있다. 슬프게 보면 모두가 슬프고 웃으며 바라보면 모두가 즐겁다. 괴롭고 즐겁고 곱고 미운 것이 다 제 마음 탓이다. 한 사람의 마음이 화평하면 옆의 사람까지도 부드러워진다. 즐겁게 살고 싶거든 먼저 웃으면서 사는 마음을 기르라. 즐거운 마음은 괴로운 마음속에 있다. 괴롭다고 해서 희망을 버려서는 안 된다. 실의(失意)의 슬픔은 득의(得意)한 가운데 있다. 성공을 하였다고 하여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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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성산
    2014-06-05
  • 믿음으로 생명의 은혜 - 배성산목사
    ‘세상만사 새옹지마(塞翁之馬)라’하는 것은 인생살이에 길흉화복은 예측할 수 없이 고통과 슬픔이 항상 뒤따른다고 한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인생은 더욱 아름다울 수 있는 것도 알게 하지만 보는 것으로만 살지 말고 서로 관계를 맺음으로 상관하며 살도록 하는 세상사는 삶의 지혜가 필요함을 알게 한다. 이 세상은 사방을 둘러보아도 세상은 첩첩산중 같아 지금까지 온 길은 천리인데 갈 길은 만리 같이 더 멀다는 마음으로 살아간다. 그러나 군자는 이런 때 마음을 맑게 하고 덕으로 세상 만물을 바라보아 자신을 더욱 선하고 아름답게 삶을 가꾸는 법을 깨우친다. ‘세상’을 세계라 한다. 물론 세계라 하면 온 지구를 가리킨 말이다. 세계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산도 있고, 들도 있고, 나무도 있고, 풀도 있고, 금수도 있고 온갖 것이 다 있어 자연 그대로를 말한다. 그 위에 사람이 있어 함께 살아간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계를 사랑하신다. 세상를 사랑하신다는 말은, 그 속에 있는 모든 생명을 사랑하신다는 말이다. 생명은 누구든지 그 사랑으로 서로 관계하며 공동체적 삶을 유기적으로 관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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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성산
    2014-05-29
  • 존재는 생명이어야 한다 - 배성산목사
    생명에 생명이 없으면 죽은 삶이다. 삶은 생명이어야 한다. 생명은 소유가 아니다. 겉으로 나타낸 모양도 아니다. 생명이 생명 안에 있어야 한다. 내 속에 생명이 있는지를 아는 것이 생명의 가치를 나타낸다. 그럼으로 성서는 천하를 얻고도 생명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 했다. 그러면 그 생명은 어디에 있는가? 생명은 있는 것인가? 그렇다 생명은 살아있는 사랑의 힘이다. 존재는 본디 그대로의 사랑의 본연(本然) 이다. 생명과 사랑은 하나이다. 그리하여 생명은 사랑을 찾아야 존재함을 갖는다. 생명이 사랑을 잃어버리면 죽음이다. 곧 존재는 사라진다. 삶은 생명의 힘으로 살아간다. 생명은 생명을 낳는다. 그렇다면 생명의 주인은 누구신가?. 예수는 내 생명의 주인이시다. 그리하여 우리는 그를 주님이라 한다. 그로 말미암아 그는 우리의 길이 되시고, 진리가 되시고, 생명이 되심을 알게 한다. 내 존재에는 주님의 생명이 있다. 이 생명으로만 삶이 존재한다. 주님의 것으로 주님의 나라가 땅에 심어 거두는 사랑의 농사를 짓게 한다. 그리하여 주님의 나라가 이 땅에서 이루어지기를 우리는 바란다. 그 존재(存(在)로서 인간(人間)’은 ‘사람’으로 다듬고, ‘육체(肉體)’는 ‘몸’이나 ‘몸통'으로 다듬으며, ‘영혼(靈魂)’은 ‘넋’이나 ‘마음’으로 다듬는다.그리하여 “산다는 것”을 “존재”한다고 말한다.독일의 철학자 는 "인간은 던져진 존재"라 했다. 어디서 어디로 던져졌을까? 인간은 그저 이 세상에 던져진 존재일 뿐 미래에 대한 예측을 하지 못한다고 했다. 보편 타당성이 있는 말이라 생각하지만 사람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 살아가는데 한 가지 일이라도 경험하지 못하면 한 가지 지혜도 자라지 못한다고 했다. 기왕 이 삶의 자리에서 한 평생 살아간다면 한 가지 일이라도 경험하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존재는 생명이어야 한다" 숨쉬고 먹고 자고 배설하는 것만으로 만족한다면 짐승이나 다를게 없다. 보다 높은 가치를 찾아 삶의 의미를 순간순간 다지고 드러냄으로써 사람다운 사람이 되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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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성산
    2014-05-22
  • 부모의 자리 - 배성산목사
    하나님은 혼자사는 아담에게 부인을 주어 한 쌍의 부부로 탄생케하여 한 생명을 이룬다. 이러한 부부(夫婦)를 부모(父母)라 한다. 처음 사람 아담에게 보내주신 부인이 자신의 뼈이며 살이라 하신다. 이들이 한 쌍이 되어 벗은 몸을 볼지라도 부끄러워 하지 않는다. 이는 한 몸으로 다시 살게 하신 하나임을 알게 한다. 이는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신다. 여기에 맞추어진 우리의 믿음도 그리스도와의 신앙의 관계가 ‘이제는 전에 멀리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하시고’(엡2:13-14) 말씀하시며 그리스도의 몸 된 공동체를 알게 하시는 것도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고전12: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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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성산
    2014-05-14
  • 안전불감증은 죽음이다 - 배성산목사
    모든 생물뿐만 아니라 인간도 본능이 있다. 그런데 이해가 되지 않는 유형의 본능이 삶에 나타나 욕구가 삶에 문제로 나타나 사회 전반을 만연케하고 끝내는 삶을 종식(終(熄)한다. 이는 형질(形(質)을 가진 존재가 살아남아서 사업이나 인생살이에 나타나 본능적인 욕구 행동이 강한 사람과 이성의 지배력이 높은 사람은 습관적인 행동뿐만 아니라 판단력에서도 큰 차이가 있어 인생의 삶에 그 모습도 많이 달라진다. 그러면서 생각하는 것은 본능에 따른 행위는 무조건 잘못된 것일까? 도대체 본능은 왜 우리 뇌 속에 강하게 프로그램 되어 있는 것일까? 하는 문제를 '세월호'의 참상에서 그 전모를 보게 된다. 매 슬로우는 조직에서의 과업행동뿐만이 아니라 일반적인 인간행동의 동기에 관해 설명하였는데, 이를 욕구계층이론(needhierarchy theory)이라고 한다. 그의 설명체계는 다음과 같은 기본 전제를 바탕으로 한다. 우선, 인간은 항상 무엇인가를 필요로 하는 결핍의 존재라한다. 즉, 인간은 충족되지 못한 어떤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동기가 유발 된다고 한다. 그리고 인간의 욕구는 생리적 욕구, 안전의 욕구, 소속 및 애정의 욕구, 존경의 욕구, 그리고 자아실현의 욕구로 나누어지는데 이들 5가지 욕구들은 서로 유기적인 연관성을 갖으면서 욕구발로의 우선순위에 따라 계층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일단 하위의 욕구가 충족되면, 충족된 욕구의 동기 유발력은 현저히 감소되거나 잠재화 되고, 그 대신에 차상급의 욕구가 지배적인 동기요인으로 부각된다는 것이다. 나아가서 모든 인간은 자아를 실현하는 건강한 심리상태(eupsychia)에 도달할 수 있는 존재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매슬로우의 욕구계층이론은 사회 조직에서의 과업행동뿐만이 아니라 일반적인 인생 삶의 동기에 관해서도 설명하는데, 이를 욕구계층이론(need hierarchy theory)이라고 한다. 우선, 인간은 항상 무엇인가를 필요로 하는 결핍의 존재이라는 것이다. 즉, 인간은 충족되지 못한 어떤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동기가 유발된다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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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성산
    2014-05-02
  • 십자가 지는 복음 - 배성산목사
    예수님의 삶의 교훈은 언제나 주의 십자가를 통한 구속의 역사를 전제로 한다. 즉, 그 예로써 성령으로 거듭나 하나님의 생명을 가진 자들에게만 적용될 수 있는 교훈이 산상수훈이다. 따라서 예수님의 교훈은 언제나 제일 먼저 어떻게 거듭날 수 있는지를 가르친다. 그것은 “마음이 가난하여지는 것”이다. 이 과정을 지난 후에야 주의 교훈은 우리에게 실제적인 의미가 있게 된다. 이것은 하나님 나라의 형편을 알게 하는 복음서에서 산상수훈은 인간이 지켜야 할 규범이나 율례가 아니라 성령께서 거듭난 주의 백성의 삶을 인도하실 때 나타나는 삶의 현상들에 대한 진술이다. 이는 롬:11;6에서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라”한다. 과연 `거듭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먼저 거듭남의 의미는 문자 그대로 하면 `위로부터 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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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성산
    2014-04-10
  • 그리스도인의 고난의 믿음 - 배성산목사
    물질만을 요구하는 현대 자본주의가 생산해 낸 교회의 자본화와 그리스도인의 삶이 갖는 성화(聖化)대신 평안과 행복만을 추구하는 오염된 믿음을 보면서 교회가 인간적인 방법으로 교회부흥을 기획하지만 사실은 성령이 메마른 교회가 되어 가고 교인 수의 증가를 위한 비즈니스적인 사업만으로 성장을 도입한 회개를 모르는 그리스도의 삶의 신앙체험으로 길들어 가고 있음을 본다. 더구나 신학이 없는 믿음과 죽은 교리와 정통만을 간직한 채 하나님을 만난 뜨거운 감격이 없는 믿음으로 전락한 현 시대의 믿음의 허상을 보고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의 신앙인들은 평안과 안일만을 추구하고 세상의 축복 일색으로 믿음이 길들어 가고 있다. 이러한 믿음의 풍토로 기성화 되어 가고 있음에 참 믿음의 모습을 보여 줄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을 갖는다.
    • 지난 칼럼
    • 배성산
    2014-04-03
  • 시대를 보는 예레미야 ① 배성산목사
    인생의 목표의식과 방향 감각처럼 중요한 것은 없다. 여기에 삶의 보람이 있고 삶의 의미가 있다. 이것이 삶의 길이다. 현대는 행동 기준을 상실한 시대이다.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느냐에 대한 명확한 답을 잃어버린 시대이다. 초고속으로 달려가는 현대문명 앞에 과거의 삶의 의미와 가치관에 의미를 가졌던 낡은 윤리체계와 행동기준은 무너지고 거기에 대처할 새로운 윤리체계와 행동기준이 아직 확립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대의 윤리적 불행한 상황이다. 그러나 우리는 현대적 윤리와 카오스(chaos) 속에서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지 아니하면 안 된다. 인류 역사는 사회 집단의 확대의 역사다. 인간은 가족이나 민족이나 마을의 공동체나 폐쇄된 좁은 지역 사회에서부터 점점 발전하여 민족, 국가의 대규모의 근대적 사회 집단을 거쳐서 오늘날 세계와 인류와 국제사회의 단계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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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성산
    2014-03-06
  • 삶의 순리가 역시되는 세상 - 배성산목사
    올 해의 사자성어로 교수신문에 "도행역시(倒行逆施)"를 갑오년의 사자성어로 선정했다. 교수들이 올 한해를 특징짓는 사자성어로 '순리를 거슬러 행동한다'는 뜻의 '도행역시'를 꼽았다. '도행역시'는 '사기(史記)에 실린 고사성어로, 춘추 시대의 오자서가 그의 친구에게 '도리에 어긋나는 줄 알면서도 부득이하게 순리에 거스르는 행동을 했다'고 말한 데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춘추전국시대의 초(楚)나라의 오자서(伍子胥)는 아버지와 형이 초평왕에 살해되자 오나라로 도망친다. 이후 세력을 키워 원수를 갚고자 초나라를 침공한다. 그러나 초평왕은 이미 죽어 그 무덤을 파헤쳐 시체에 매질을 가 한다. 그 행동이 지나쳐 보여 친구가 질책을 하자 여기서 유명한 고사성어가 탄생한다. ‘일모도원 도행역시(日暮道遠 倒行逆施)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멀어 부득이 순리에 거스르는 행동을 했다'.고 변명한데서 생겨났다. 이는 순리를 거슬러 잘못된 길을 고집하거나 시대착오적으로 나쁜 일을 꾀함을 뜻한다. 이를 "삶의 순리가 역시되는 세상"을 고발하는 것이다.
    • 지난 칼럼
    • 배성산
    2014-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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