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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독교인의 행복론 - 68
    신자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것이 행복이다. 나의 어머니는 27년간을 하루같이 새벽 기도를 다니셨다. 내가 갓난아이 적에는 나를 포대기에 싸서 업고 새벽 기도를 다니셨다. 나의 다리가 O자 형으로 휘게 된 것은 어머니의 새벽 기도로 인하여 생긴 신체 변화이다. 어머니의 새벽 기도를 통해서 내가 알게 된 것은 하나님의 자녀인 어머니를 성령이 인도하신다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보통 인간으로서는 흉내낼 수 없는 자녀 사랑이 매우 진하셨다. 내가 첫 직장에 출근할 때부터 어머니는 대문 앞에서 내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나를 위해 기도하셨다. 그리고 어머니가 심근경색증으로 자주 쓰러지시는 것을 염려하여 승용차를 구입하였을 때 어머니는 남다른 내공을 발휘하셨다. 매일 새벽마다 아들 모르게 혼자서 아들의 차를 세차하셨던 것이다. 내가 그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아주 추운 날 차창이 두텁게 얼음으로 덮여져 있어서였다. 알고 보니 어머니가 영하 20도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물을 끓여 세차를 하셨는데 그게 금방 얼어버리는 바람에, 어머니는 물을 끓여 바께스로 아파트에서 차에까지 나르고 나르면서 차를 닦고 또 닦으셨던 것이다. 나는 그런 어머니에게서 남다른 모성애를 감지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나도 아내에 대한 사랑으로 어머니의 사랑 흉내를 내려 한 적이 있어 소개한다. 시속 140킬로미터. 우리 나라에서는 어느 고속도로에서도 규정을 벗어난 속도입니다. 일반적으로 한국의 고속도로는 시속 100, 아니면 110킬로미터가 규정 속도입니다. 이걸 어기면 CC TV에 찍혀 벌금을 물게 되지요. 그러나 1980년대에는 CC TV가 널리 유포되어 있지 않던 때라 벌금 낼 확률이 높지 않긴 하였지만, 보편적으로 운전자들이 시속 110킬로미터를 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나에게는 살아오면서 딱 한 번 교통 법규 규정 속도를 어긴 적이 있습니다. 삼십 대 초반에 주말 부부였던 적이 있습니다. 아내가 직장에서 원주로 발령이 나는 바람에 우리 부부는 주말마다 한 번씩 만나는 부부가 되었습니다. 주말이면 아내가 집에 와서 아들을 보고 가거나, 아니면 내가 원주로 차를 몰고 아내가 근무하는 병원의 기숙사로 다녀와야 했습니다. 원주로 내려가는 때면 그곳의 이름난 맛집을 찾아다니며 식도락을 즐기기도 하였습니다. 미나리에 얇게 썬 소고기를 싸서 구워먹는 고기말이나, 닭고기에 맛있는 양념을 입혀 구운 P치킨, 미꾸라지를 갈아 만든 추어탕 등은 지금도 침이 감돌 만큼 인상적이었습니다. 가끔 아내의 근무지가 있는 Y시에서 탁구장에 가기도 하였습니다. 운동을 좋아하는 아내에 비하여, 나는 운동 신경이 둔하였습니다. 게임도 하였는데, 처음에는 그래도 남자라며 자신만만하였던 나는 시간이 흐를수록 큰 스코어 차로 지기 일쑤였습니다. 그래도 아내는 모처럼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냈다며 해해거렸습니다. 그런 아내와 주말에만 만나는 것은 매우 괴로운 일이었습니다. “보고 싶다. 나 오늘 밤 당신 보러 가야겠다.”“아니. 내일 모레면 집에서 볼텐데, 밤 늦게 뭣 하려고?”“으응. 아무튼 나, 지금 출발한다.”시계를 보니 밤 10시가 넘었습니다. 더구나 추운 겨울이어서 곳곳에 빙판이 널려 있었습니다. 중부 고속도로를 타고 톨게이트에 들어설 때 조금 망설여졌습니다. 날씨가 눈발까지 날릴 정도로 좋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다시 차를 돌리기도 마땅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감기려는 눈을 몇 번이나 똑바로 뜨고 차를 몰았습니다. 계기판을 보니 차는 시속 140킬로미터를 달리고 있습니다. 사랑에는 국경도 없다지. 문막 근처에서 긴 다리를 지날 때쯤에 도로 한복판에 희뿌연 것이 보였습니다. 빙판 같은데 그리 넓어 보이지는 않았지만 브레이크를 밟았습니다. 그러자 차가 미끄러지면서 난간 근처에서 겨우 멈춰섰습니다. 예상했던 대로 빙판길이었던 것입니다. 정신을 수습하고 아내가 근무하는 병원의 위병소에서 밤 늦게 당도한 이유를 대충 둘러대고 아내를 불러냈습니다. 아내는 계속 삼 일 후에 볼 건대 왜 왔냐고 투덜댑니다. 그 날 따라 대입 예비고사 전날이라 모텔엔 빈 방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욕실도 없는 여인숙의 빈 방을 잡아 겨우 아내와 사랑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9개월 후 예쁜 딸이 태어났습니다. 부부의 사랑이 참으로 예쁜 아기를 탄생시킨 것이지요. 그 딸아이가 무럭무럭 자라서 예쁜 처녀가 되고, 전자 공학 박사 학위를 받은 신랑을 만나 미국에 가서 잘 살고 있습니다. 시속 140킬로미터를 달려간 사랑이 아름다운 가족 한 쌍을 이루어낸 것이지요. 그 딸이 성인이 되어 행복한 가정을 이룬 걸 보면, 시속 140킬로미터 속도는 생애 딱 한 번 내 볼 만한 것이었습니다.
    • 지난 칼럼
    • 기독인의 행복론
    2018-03-07
  • 기독교인의 행복론 - 67
    오늘도 아파트 단지 안을 감도는 이름 모를 새소리에 잠이 깼다. 잠에서 깨기 전 매일 새벽마다 영감을 가져다 주시는 그분의 배려에 고마움을 느끼며 컴퓨터를 켠다. 오늘도 나는 살아 있으며, 나만의 할 일이 있는 것이다. 내가 그분에게 고마움을 느끼는 것은 매일 새벽마다 그분이 영감의 만나를 내려주시는 것 하나만이 아니다. 그분은 나에게 말씀을 주셨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로마서> 8:15-16). 그분은 나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셨다. 나는 한때 성담론을 연구하였다. 그것은 성의 부정적인 면만을 부각시켜 사회적으로 금기시하지 말고 성의 긍정과 부정, 곧 성의 본질을 알아 몸의 말초적인 것을 극복하자는 취지에서 시작한 것이었다. 그러나 성에 관한 책을 들여다보면 볼수록 거기에는 나 자신도 주체할 수 없을 정도의 에너지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가령 S. 프로이트가 말하는 리비도(Libido)는 성적 욕망 등을 포함한 여러 가지 에너지를 가지고 있었고, C.G. 융이 말하는 그림자 현상(The Shadow)에는 창작열과 같은 에너지도 있지만 부정적인 에너지도 강하게 작용한다는 것을 알았다. 김동인의 「아라삿버들」(<신소설> 1930)을 보아도 그랬다. 김장의네 집에서 머슴 일을 하는 최서방은 마흔두 살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착한 사람이었다. 그는 일도 부지런히 하였고, 솔직하여 김장의의 신임을 얻었다. 최서방은 버들 한 가지를 “어디서 얻어다가 자기 방 앞에 심었”다. 그것이 무럭무럭 자라서 지붕마루를 덮을 만큼 크게 자랐다. 버드나무는 새끼까지 쳤다. 그것을 보고는 김장의가 최서방에게 결혼을 하라는 운을 떼었지만, 최서방은 부끄러워서 차마 결혼하고 싶다는 말을 꺼내지 못하였다. 하지만 최서방은 버드나무가 새끼를 쳤다는 말을 자주 하여 김장의여자를 골라 주기를 은근히 기대하였다. 그러는 동안에 최서방의 성욕은 더욱 부풀어올랐고, 그의 성욕은 동네 처녀들에게 몰래 욕을 보이고 살인을 할 정도로 주체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그리고 이웃 동네에까지 그의 광란이 계속 되었다. 그 행위는 신문에까지 오르내렸고, 결국 그는 색마의 행위를 벌이다가 경찰에 덜미를 잡히게 되었다. 서술자는 최서방이 “사형대 위의 이슬로 사라졌”음을 알리면서 이렇게 정리하였다. “그에게 일찍 한 마누라를 주어서 그로 하여금 그런 광포성을 발휘할 기회를 없이하”였더라면 좋았을 것이라고. 나는 이 작품을 읽으면서 개인에게 나타나는 그림자 현상-The Shadow, 가면적 인격인 퍼소나(Persona) 밑에 감추인 어두운 측면의 심리 현상-을 다스리기가 그리 쉽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가끔 신문 기사를 보면 사회적으로 위엄이 있다고 정평이 난 사람이 간통하다가 들켰다는 기사가 나오기도 하였다. 개인에게 색욕이 아예 안 생길 수는 없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욕망을 극복하기 위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아를 가지고 성본능을 자제한다. 그러나 성적 욕망은 엄청난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때론 그것이 자아를 뚫고 나와 일을 저지를 때도 있는 것이다. 이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나는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그것을 이겨낼 수 있었다. 곧 음란함 등 어둠의 유혹이 밀려올 때 나를 그 유혹에서 이길 수 있게 해 주신 분이 성령이었다.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로마서> 8:4). 바울이 한 이 말은 나의 뇌리를 때렸다. ‘이거구나’ 하는 깨달음이 나를 환하게 미소짓게 하였다. 그것은 바로 나를 내가 아닌 성령이 인도하시게 하는 믿음이었다. 성령이 나를 이끄시어야 사탄 마귀와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성령이 내 안에서 인도하시니 나의 성적 욕망은 가정의 테두리 안으로 가라앉을 수 있었고, 창작열과 같은 긍정적인 데로 나의 정신적 에너지를 활용할 수 있었다. 성령이 인도하시자 내 안에는 음란함에 관심을 두지 않고 어린 아이와 같은 순수가 자랄 수 있었고, 사물의 긍정적인 면을 보고 문학 단체 활동을 하면서도 기발한 아이디어를 낼 수 있었다.성령의 인도하심은 나의 간절한 간구도 있었지만 그분이 나를 찾아오심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분은 나를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하여 주셨고, 그에 맞는 행동을 하게 하셨다. 그분이 인도하신 행동은 내가 율법의 노예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정언에 따라 율법을 다스리게 하는 것이었다. 그분이 내 안에 오심으로 말미암아 나의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고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 수 있었다. 그리고 성령이 내 안에 계시면 나의 죽을 몸도 살리셔서 영원으로 나아가게 하실 것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오늘도 아파트 앞에는 전동차가 쏜살같이 지나가고 사람들은 여행 가방을 들고 여행을 간다. 그분들에게도 성령이 임하시기를 기원한다.
    • 지난 칼럼
    • 기독인의 행복론
    2018-02-22
  • 기독교인의 행복론 - 66
    ‘백짓장 차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 발만 나서면 사물의 본질에 다다를 수 있는데, 조금 더 나아가면 꿈을 이룰 수 있는데, 그렇지 못했을 때 아쉬움을 남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한 발은 오랜 시간과 정성을 들여 이룩한 성과입니다. <300>이라는 영화의 원작자이기도 한 세계적인 소설가 스티븐 프레스필드(Steven Pressfield)는 한때 백짓장을 넘지 못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는 청년 시절에 소설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글 쓰는 재주가 있었던 그는 결혼하면서 아내에게 말하였습니다. “이 소설만 완성되면 좋은 집에 살며 좋은 차를 타고 잘 살게 될 거야.” 그는 꾸준히 글을 쓰며 작품이 완성될 날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그의 소설은 5년이 지나도 완성되지 못하였습니다. 그가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지지부진한 상태로 글쓰기에 계속 매달리자, 가능성 없는 그의 꿈에 지친 아내는 집을 떠났습니다. 아내가 떠난 그의 상황은 더욱 고달팠습니다. 가난으로 더 이상 살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고, 집에는 낡은 타자기 한 대와 봉고차, 고양이 한 마리만 남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그는 좋은 소설을 창작하고야 말겠다는 꿈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낡은 타자기 한 대와 고양이를 싣고 길을 떠났습니다. 소설을 완성하기 위한 장소를 찾으며 여섯 달 동안 길 위에서의 생활을 계속하다가 캘리포니아의 조그만 마을에 있는 레스토랑에 취직하여 웨이터로 일하였습니다. 그는 웨이터로 일하면서도 꾸준히 소설을 썼습니다. 그러나 그는 걸림돌이 하나 있었습니다. 소설을 마무리해야 할 시점에서 한 발짝도 더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그는 글의 마지막 장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그 걸림돌이 무엇인가를 연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소설가의 자질이 있는가를 자문해 보고 소설의 결말을 짓지 못하는 이유를 분석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소설을 완성하겠다는 욕망이 강할수록 이를 저지하려는 걸림돌도 강한 힘을 발휘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그 걸림돌을 넘어서려는 의지를 불태웠습니다. 그는 그 걸림돌 가운데 자신의 작품에 대한 자조감, 작품이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구심 등이 놓여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가 그 걸림돌을 이겨냈을 때 그의 소설은 드디어 완성을 보게 되었습니다. 나도 작가이기에 이와 같은 경험을 숱하게 겪었습니다. “글을 써서 돈이 나와, 밥이 나와?”, “글 써 가지고 돈 좀 벌어와 봐.”, “허무맹랑한 짓 하는 거 아니야?” 등등등. 남자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잔소리를 수없이 들었습니다. 글을 쓴다는 지인들도 “직장 생활을 하면서 글을 쓸 수도 있잖아?” 하며 내가 내가 글 쓰겠다며 명퇴를 선택한 것에 우려를 표시한 이도 있었습니다. 날마다 사색을 하며 글쓰기에 매달렸지만, 뚜렷한 성과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기대했던 책이 팔리지 않았고, 문예지에서 보내 주는 원고료도 신통치 않았습니다. 문예지 기획자들은 나의 책을 출판할 수 없다는 답신만 보내왔습니다. 나의 작가로서의 존재감도 위기에 처하였습니다. 책도 안 팔리는 무명 작가, 문단에서 알아 주지 않는 미미한 작가로 취급될 수도 있었습니다. ‘내가 꼭 이 길을 걸어야 되나?’ 하는 회의감도 들었습니다. 남들처럼 여행이나 다니며 편안히 지낼 수도 있었습니다. 그저 지인들 만나 가벼운 대화나 나누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편히 지낼까 하는 생각도 없지 않았습니다. 35년을 별러 온 작가의 꿈이 물거품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새벽마다 일어나서 노트 위에 ‘내가 작가 맞아?’ 하는 질문을 수없이 되뇌었습니다. 나는 작가가 그 누구도 알아 주지 않는 고독과 친구가 되어 살아가는 직업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 혼자만이라도 ‘작가’라는 자부심이 없다면 나는 별 볼 일 없는 백수에 불과할 것입니다. 나는 이 길이 주님이 계획하신 일인가를 수없이 물어 보았습니다. 작심하며 다니엘 세이레 새벽 기도회에도 참석하였고, 주님께 작가로서의 진정성을 갖게 해 달라고 수없이 기도하였습니다. 나는 나 자신을 작가로 인정해 주는 주님을 만나기를 고대하였습니다. 올해에도 봄이 왔고, 벚꽃과 진달래가 진 다음 영산홍이 피었습니다. 가끔은 까치가 나뭇가지 사이로 날았습니다. 겨우내 헐벗었던 나무에는 푸른 빛이 돌기 시작하였습니다. 따뜻한 봄바람과 함께 미진도 하늘을 잔뜩 흐려 놓았습니다. 여전히 전동차는 철길 위를 지나갔고, 아파트 단지 앞에는 정해진 노선 버스가 지나갔습니다. 주일에는 교회에서 찬양을 드렸고 예배도 보았습니다. 같은 선교 회원들과 차를 마시며 일상에 관한 얘기도 주고받았습니다. 일상은 늘 똑같은 방식으로 하루를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변화가 한 가지 있었습니다. 그것은 주님이 나를 작가로 인정해 주신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나는 여전히 독자를 감동시키는 글을 쓸 것이고, 거기에 그분이 동행하실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나는 그분과 함께 독자를 감동시키는 글을 쓸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분이 함께 하시는 동안 나는 열심히 글을 쓸 것입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분이 인정하는 온전한 작가가 될 것입니다.
    • 지난 칼럼
    • 기독인의 행복론
    2018-02-09
  • 기독교인의 행복론 - 65
    요즘 들어 진리는 죽지 않는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진리라고 생각되는 것에 대한 신념을 가지고 그것을 지켜내려고 합니다. 따라서 진리도 많은 사람에게 공감되는 진실로 인정받아야 바로 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때론 진리가 다수로부터 인정을 받는 권력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나는 베이비 부머 세대입니다. 이 땅의 베이비 부머들은 고생을 많이 하였습니다. 젊었을 적에는 민주화와 근대화를 이루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야 했고, 해마다 봄과 가을에 연례 행사처럼 치러지는 위수령 등으로 인하여 강의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레포트 제출로 학점을 받아야 하는 때가 많았습니다. 그 때문에 교수들이 삼사십 년간 연구 결과물을 직접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적었고, 개인의 학문적인 체계도 개인이 도서관에서 일일이 자료를 찾아 챙겨서 정리해야 할 만큼 열악한 환경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대학 4년 동안 배운 것이 직장 생활을 하는데 평생 유용하여야 할 터인데, 민주화를 이루느라 대학 강의를 직접 듣는 시간이 별로 많지 않다 보니 아쉬움이 남을 때가 많은 것입니다. 한때 대학 교문을 군인들이 지키고 있던 때가 있어서 대학물을 적게 먹긴 하였지만, 우리들의 젊은 날은 결코 헛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부조리한 현실을 타개하려는 몸짓은 그 나름대로 의의가 있기 때문입니다. 젊은 시절 데모 얘기를 해 보겠습니다. “유신 철폐를 위한 데모가 있으니 B탑 앞으로 모이세요.”총학생회 임원인 K가 여러 강의실을 돌아다니며 외쳤습니다. “나가자.” 과 대표인 희찬의 외침과 함께 우리들은 가방을 챙겼습니다. 학교 중앙에 있는 B탑 앞에는 이십여 명 정도가 모여 있었고, 여기저기서 학생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우리는 탑 앞으로 가서 모여 있던 학생들과 합류하였습니다. K가 4열 종대로 스크럼을 짜서 돌자고 해서 “유신 철폐 민주 수호”를 외치며 다섯 바퀴를 돌자, 어느새 탑 앞에 모인 학생 수는 수백 명을 헤아렸습니다. 주요 일간지 완장을 찬 기자들이 탑 앞으로 속속들이 모여들어 데모 현장 사진을 부지런히 찍고 있었습니다. “유신 철폐, 민주 수호” “유신 철폐, 민주 수호”라는 외침이 남산 중턱을 넘어설 듯이 커졌습니다. 이제 학생들은 장충단 공원이 있는 정문쪽으로 나아갔습니다. 학생들은 8열 종대로 질서정연하게 행진하였습니다. 그러자 교문이 닫히고 자물쇠가 채워졌습니다. 그리고 교문 앞에는 경찰들이 빽빽이 막아섰습니다. 누군가가 일단 앉자고 소리쳤습니다. 학생들은 차분히 앉아 다음 행동을 준비하였습니다. 따가운 초여름의 햇살이 우리들의 이마와 등에 내리꽂히자, 수학교육과의 강**가 큰 주전자에 물을 담아와 학생들에게 나누어 주었고, 우리 과 여학생 감**이 유신 체제의 부당성을 적은 원고를 낭랑한 목소리로 읽어 나갔습니다. 그리고 십여 명의 학생이 운동장에서 끌고 온 농구대를 교문에 밀어붙이며 밖으로 나갈 통로를 확보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학생들이 길거리로 질주하였고, 경찰과 몸싸움을 벌였고, 최루탄 냄새가 눈과 코를 찔렀습니다. 산소 마스크를 쓴 기자들이 팔을 더 높게 쳐들라고 하였고, 대열 앞에 서 있던 나와 우리 과 학생들은 팔을 높이 쳐들며 “유신 철폐, 민주 수호”를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기자들은 연신 셔터를 눌러대었습니다. 데모가 있은 지 일주일 후, 사범대학 건물 현관 게시판에는 붓글씨로 쓴 공고가 나붙었습니다. ‘교육학과 정** 제적수학교육과 강** 자퇴’우리들은 황당하였습니다. 단지 정**은 강의실을 돌아다니며 데모 소식을 알리고, 데모 학생들에게 물을 떠다 준 일밖에 없는데, 두 사람의 얼굴이 그 후로 학교에서 안 보였습니다. 며칠 후에야 나는 정**가 군대에 가게 되었고, 강**이 형사들의 강요에 의해서 자퇴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날 데모 현장이 한교 정문 옆에 있는 A호텔 빌딩 옥상에서 누군가에 의해 상세히 비디오로 촬영되었고, 그 때문에 한때 직장을 잡기가 그리 쉽지 않았습니다. 사십여 년이 지난 지금 생각하여 보아도, 내 안에 있던 숨겨진 진실은 결코 죽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내가 요즘 문단의 어떠한 모임에 가서도 불의와 부조리를 용납하지 않고 돌직구를 날리는 것도, 따지고 보면 젊었을 적에 가졌던 용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 세계 문화 유산에 등재될 만큼 한국인의 자부심을 느끼게 하는 보물입니다. 그 실록이 나오기까지에는 사관들의 목숨을 걸고 쓴 사초가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사관들은 그 실록을 쓰고 나면 사초를 물에 씻어 지워버렸습니다. 나는 젊었을 적에 내가 가졌던 진실을 향한 용기가 지금도 내 가슴에서 용트림치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 지난 칼럼
    • 기독인의 행복론
    2018-02-01
  • 기독교인의 행복론 - 64
    그 날 예루살렘에서 10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엠마오를 향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두 제자가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에서 벌어진 사실을 말하였습니다. 나사렛 예수는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이시다. 그러나 대제사장과 관리들이 그를 법정에 넘겨 사형 판결을 받게 하여 그가 십자가에 못 박혔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이스라엘을 속량하여 주기를 바랬다. 그가 죽은 지 사흘이 되었을 때에 그를 따르던 여자들이 우리를 놀라게 한 일을 보았다. 여자들이 그의 무덤에 갔다가 시체가 없어진 것을 알게 되었고, 그 무덤에 나타난 천사들이 “그가 살아나셨다”(<누가복음> 24:23)고 말하는 것을 보았다. 그리하여 우리의 동료 제자들이 무덤에 가서 확인하여 여자들이 말한 것을 확인하였느나 예수는 보지 못하였다. 이 말을 들은 예수는 당신이 고난받고 영광의 자리에 가는 것을 선지자들이 그토록 말하였는데도 더디 믿느냐면서 성경에 나와 있는 그리스도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셨습니다. 그러자 두 제자는 날이 저물었으니 자신들과 함께 묵고 가자고 그리스도에게 강권하여 함께 머물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는 가지고 있던 떡을 떼어 기도하시고 그들에게 주셨습니다. 그러자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리스도가 직접 보이지는 않았으나, 그들과 함께 한 분이 그리스도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다시 예루살렘에 가서 열한 제자와 함께 머물러 있는 사람들을 보니, 그곳에 있던 사람들이 주께서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보이셨다는 말을 하였습니다. 이에 엠마오를 갔다 온 두 제자도 그들이 길에서 일어난 일과 “예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것을 말하”(<누가복음> 24:35)였습니다. 이와 같은 엠마오 사건을 보면, 주께서 우리와 동행하시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주님은 굉장히 멀리 떨어진 별에 계신 것이 아니고 바로 우리와 함께 동행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내가 태어나서 현재까지 살아오는 동안에도 우리와 함께 하시고 앞으로도 함께 동행하실 겁니다. 우리가 선택해서 주님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우리를 선택해서 함께 하시는 것이지요. 주님은 당시 이스라엘 민중에게 왕따를 당하던 세리 삭개오의 집에 거하셨습니다. 중풍병자와 소경과 문둥병자를 고치셨으며, 물을 포도주로 만드는 표적을 보이셨습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셨으며, 죽은 후 사흘만에 부활하셨고, 부활 후 제자들에게 나타나셨고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에게도 동행하셨습니다. 주님은 나의 젊은 시절에도 나와 함께 하셨습니다.나의 아버지는 1970년대에 42년간의 교직 생활로 얻은 퇴직금을 사기꾼에게 다 날린 후 기존의 살던 집을 팔고 변두리로 이사를 갔습니다. 그곳은 서대문구에 있는 ‘기자촌’이라는 곳이었는데, 높은 산을 깎아 만든 마을이어서 비탈길이 가팔랐습니다. 형제들이 거의 결혼하여서, 그 집에는 연로하신 부모님과 시집 안 간 막내 누님과 총각인 내가 살고 있었습니다. 버스 종점에서 내려 종종 걸음으로 올라가도 20여 분이 걸리는 산 중턱에 있던 집은 넓은 마당을 가지고 있었고, 산꼭대기에서 불어오는 산들바람이 적막감을 더해 주는 곳이었습니다. 전화기가 드물던 때라 직장에서 호출하는 비상 전화는 옆집에서 전달받아야 하였습니다. 아버지는 사업 실패에서 오는 좌절감을 침묵으로 달래셨고, 나는 쥐꼬리만한 봉급을 쪼개어 집안의 생계를 이어갔습니다. 하지만 내가 작가로서의 꿈을 접고 묵묵히 직장 생활을 하였던 것은 주님이 나와 동행하신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나는 집 없이 공생애의 길을 걸어가신 주님과 복음 사역을 위해 개인의 안일에 머물지 않았던 사도들의 생애를 묵상하면서, 현재의 고통은 단지 지나가는 풍경에 지나지 않을 거라는 신념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돌이켜 생각하여 보면 젊은 시절에 내가 당하였던 고통은 주님이 나를 하나님의 자녀답게 연단시키시기 위하여 사탄과의 영적 전쟁을 감당하게 하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쇠는 뜨거운 불에 달구어져 많이 칠수록 단단하여 집니다. 주님은 구원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겪는 시련을 몸소 십자가 보혈로 체험하셨습니다. 이는 죄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보여주는 사건이기도 합니다. 또한 죽음 뒤에 영생이 없다면 인간의 삶은 매우 허망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몸소 부활하셔서 우리들이 영생으로 나아가는 존재임을 제자들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세상에서 살아갈 때에는 하나님 나라와 의가 있음을 믿고 사탄과의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주님이 우리와 동행하시기를 기도하여야 할 것입니다. 나는 개인에게 닥친 시련과 고통을 충분히 이겨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내 옆에 주님이 계시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분은 나보다 더 심한 십자가에 못박히는 고통을 당하셨고, 이를 통해 인류를 향한 사랑을 실현하셨습니다.
    • 지난 칼럼
    • 기독인의 행복론
    2018-01-18
  • 기독교인의 행복론 - 63
    젊었을 때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떨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마침 기독교 도교 유교 불교 등에 나타난 죽음을 연구하던 중이었는데, 그것에 관한 책을 보면서 타나토스(Thanatos, ‘죽음에 대한 본능’을 일컫는 정신분석학적 용어)에 휩싸인 적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심장이 갑자기 멈추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죽음에 대한 반동 형성에서 생긴 열정적인 행동, 무덤을 영원한 안식처라 하면서 죽음을 집으로 돌아가는 것에 비유하였던 노자, 오로지 눈 앞의 현실만을 생각하라 하였던 공자, 열반으로 나아갈 것을 권면한 석가모니 등의 생각이 눈 앞의 벽처럼 다가왔습니다. 그때 나에게 빛으로 다가온 생각이 있었습니다. 부활을 몸소 보여 주시며 영원으로 나아가셨던 그분이 나에게 다가와 나의 어깨를 감싸 주었습니다. 살고 죽는 것은 나의 뜻이 아니라 그분의 뜻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삶과 죽음을 주관하시는 그분께 가까이 가고 싶었습니다. 나는 그분이 나에게 주신 믿음으로 그분을 만나기 위한 길을 떠났습니다. 어쩌면 아주 오랜 시일이 걸릴 지도 모릅니다. 어느 날 꿈 속에서 오래도록 만나기를 기다리던 그분을 만날 수도 있을 것이고, 아니면 길을 가다가 그분의 형상을 만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아마도 나의 생명이 유지되는 한 나는 그분을 만나리라 확신합니다. 내가 그분을 따르는 것은 당신이 세상의 넓은 영토를 가지고 있어서가 아닙니다. 또한 그분이 정치인과 같은 인기를 누려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보다는 그분이 하지 않은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하지 않은 일이 있습니다. 그분은 로마 황제처럼 군림하지 않았고, 이스라엘 왕처럼 굴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좋은 집을 구하려 하지 않았고, 화려한 옷을 입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아름다운 요람에서 태어나지 않으셨고, 세상의 명예로운 직업도 가지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누구나가 박사학위를 따지 않았고, 생계를 위해 안정적인 공무원 시험을 치르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집도 없는 나그네 길을 걸었지만 가난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우주를 품에 안고 영원으로 나아갔습니다. 나도 그분처럼 하지 않은 것이 많습니다. 대기업 회장이 되어 영화를 누리지 않았고, 세계 곳곳을 여행하지 않았습니다. 멋진 스포츠카를 소유하지 않았고, 웅장한 집도 가지지 않았습니다. 미스 코리아와 결혼하지 않았고, 사업을 해서 큰 돈을 만지지 않았습니다. 비싼 와인을 들며 스테이크를 먹지 않았고, 분위기 좋은 곳에서 아름다운 여인과 차를 마시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세금을 꼬박꼬박 냈고, 교통 법규를 지켰으며, 가족을 위해 기도하였습니다. 엊그제 저녁에는 병원에서 삼교대로 근무하는 아내와 식사를 맛있게 하였고, 건강을 챙기라는 아내의 말에 귀기울였습니다. 생일날에는 아들이 케이크를 들고 와 축하해 주었고, 미국에 사는 딸아이가 바람막이 옷을 선물하였습니다. 아침마다 베란다에 사는 첨지(똥개)의 똥을 치우고, 화초에 물도 줍니다. 매 주 화요일이면 재활용 쓰레기를 분류해서 버리고, 동네 단골 슈퍼에서 필요한 생필품과 과일을 삽니다. 매일 끼니 때마다 설거지를 하고, 아침이면 창문을 열고 집안 청소를 합니다. 오후에는 빨래를 해서 건조대에 넌 후 산책을 합니다. 아파트 단지 중앙에 있는 사백 년 된 느티나무를 보며 줄기 한쪽이 움푹 패였는데도 생명이 유지되는 걸 봅니다. 향나무와 주목나무가 길게 늘어선 아파트 단지 안을 천천히 걸어 봅니다. 벚꽃과 진달래가 지니 영산홍이 고개를 내밉니다. 그 옆에서 이름 모를 화초와 풀들이 생긋이 웃습니다. 온갖 화초들을 바라보며 걸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눈으로 바라보고 귀로 듣고 팔다리를 휘저을 수 있는 것도 다 그분의 은혜입니다. 그분이 내 옆에 동행함으로 나는 살아 있음을 느낍니다. 이 글을 쓰고 난 후 산책을 할까요, 집안 청소를 할까요? 내일은 선교회원들과 바다낚시를 갈까요, 아내에게 함께 가자고 권해 볼까요? 올해에는 산문집을 출간할까요, 평론집을 낼까요? 매 순간마다 그분과 대화를 나누어 봅니다. 그리고 감사의 마음을 적어 봅니다.대통령이 되어 탄핵을 당해 보지 않아서 감사합니다. 정치인이 되어 전국으로 유세를 다니지 않아서 행복합니다. 대기업을 운영하느라 돈 버는 데 신경쓰지 않아서 감사합니다. 돈을 많이 벌어서 세금 적게 낼 궁리하지 않아서 감사합니다. 매일 적당한 영감을 내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굶지 않고 살아가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건강하게 움직일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마태복음 6:25-26).
    • 지난 칼럼
    • 기독인의 행복론
    2018-01-04
  • 기독교인의 행복론 - 62
    그분이 오십니다. 멀리서 오시고, 가까이서 오십니다. 아침 산그늘과 함께 안개 자욱한 들길을 걸어서 오시고, 날마다 장터로 정을 실어 나르는 장돌뱅이가 넘던 고개를 넘어 오십니다. 어제는 너와집의 굴뚝 위로 피어오르는 연기가 고갯마루를 넘더니, 오늘은 아지랑이가 영산홍 앞에서 하늘거립니다. 나는 그분을 만나러 잠시 읽던 책을 덮고 묵상에 잠깁니다. 묵상의 고갯마루에서 그분을 만나고 내 안을 찾아오신 그분을 만나기 위한 예를 갖춥니다. 그분이 나무로 된 문을 두드리실지, 마음 문을 똑똑 두드리실지 나는 자세히 알 수 없지만, 와이퍼가 빗물을 걷어내듯 나는 환하게 웃으시는 그분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분이 광야로 나아가자 그분을 시험하는 자가 있었습니다. 사탄. 그는 일찍이 뱀의 유혹으로 시험을 이기지 못하고 낙원을 쫓겨났던 아담과 하와가 경험하였던 존재였습니다. 그가 바로 그분을 시험하려 하였습니다. 그는 세상의 부귀영화를 보여 주며 그분의 초능력을 시험하려 하였습니다. 그분은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인지라 생리적으로 배가 심히 고프셨습니다. 허기진 자에게 필요한 것은 음식이었습니다. 음식은 살아 있는 생물에게는 생명을 유지하는 필수적인 조건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음식을 구하는 것은 그분의 능력으로 능히 감당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사탄은 이를 이용하여 그분을 시험하려 하였습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그분은 이를 능히 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사탄이 당신을 시험하려 한다는 사실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이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마태복음 4:4). 그분은 성경 말씀을 꿰고 있었습니다. 이 말씀은 천지 창조 때부터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기도 하였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요한복음 1:1-3). 하나님이 하신 말씀은 그대로 우주의 진리가 되었습니다. 그분은 말씀이시므로 말씀대로 이루셨습니다. 십자가에 못박혀 죽음으로 인류를 대신한 희생양이 되셨고, 이를 통해 죄에 허덕이는 인간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분은 인류를 행복하게 하기 위한 사랑을 하셨습니다. 아무도 그분의 흉내를 내지 못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이 하신 일은 죽음을 넘어서 부활로 나아가는 길이었으며, 천국으로 나아가는 길을 여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자녀의 행복을 위하여 목숨까지도 내어 놓으셨으며, 성령으로 언제나 함께 하셨습니다. 그분은 당신의 피와 살을 자녀에게 나누어 주셨고, 영원으로 나아가는 길 위에 있음을 자녀들에게 알려 주셨습니다. 마귀(사탄)가 그분을 두 번째로 시험하였습니다. 사탄은 그분을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웠습니다. 그리고 성경 말씀을 가지고 그분을 시험하였습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성경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지 않느냐.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사탄은 말씀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가 말한 말씀은 그분을 시험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말씀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을 이용하여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그분은 말씀하신 대로 말씀하십니다.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마태복음 4:7). 그분은 사탄의 의도를 충분히 알고 있었습니다. 사탄이 당신을 시험하기 위해 말씀을 예로 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분은 시험을 이겼습니다. 그것은 상대의 의중을 앎으로써 이긴 것이었습니다.마귀(사탄)가 세 번째로 시험하였습니다. 그는 그분을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주며 말하였습니다.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그러자 그분은 말씀하셨습니다.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마태복음 4:10). 그분은 말씀이십니다. 그분은 말씀으로 사탄을 이기셨습니다. 그분은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하나님만 섬기는 것이 진리임을 알고 계셨습니다. 이와 같이 그분은 세 번의 시험을 모두 이기셨습니다. 사탄이 말씀을 이용하여 그분을 시험할 때에도 그분은 말씀으로 사탄을 이기셨습니다. 그러자 마귀가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들었습니다. 얼마나 멋있는 일입니까. 그분은 사탄의 시험을 이기셨고, 삼위일체로서의 본분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인간의 몸을 통해서도 ‘말씀’을 이루셨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도 주님이 말씀을 통해서 사탄을 이길 수 있는 지혜를 주시기를 기원합니다. 사탄을 이기는 멋진 삶을 살아가기를 기원합니다. 말씀이 살아 있는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 지난 칼럼
    • 기독인의 행복론
    2017-12-22
  • 기독교인의 행복론 - 61
    발자크의 <사라진>(1830) 줄거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자정을 알리는 종소리가 멀리서 들리는 어느 날 밤, 란티 가문의 대저택 안에서는 파티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밖으로 솟아나온 창문턱에 걸터앉아 비단커튼 주름 뒤로 몸을 감추고 서술자는 시끄러운 파티의 한가운데서 몽상에 빠집니다. 밖에는 죽음의 춤이 어른대는 어둡고 앙상한 정원이 보이고, 안에는 파리 최고의 가문과 재산을 자랑하는 상류사회 사람들의 호화스런 파티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오른쪽엔 춥고 음울한 영상과 왼쪽에는 호사한 삶의 영상이 공존하는 가운데 서술자는 한쪽 발은 추위에 떨리고 다른 쪽은 열기에 차 있음을 느낍니다.무도회의 넘치는 풍요와 미, 그리고 마담 란티의 두 자녀의 교양과 미모에 대한 찬사 속에서 사람들은 란티 가문의 근거와 재산에 대해 의문을 던집니다. 이때 딸 마리아니나가 지독히 늙고 추한 모습의 노인을 앞세우고 나타납니다. 차가운 불협화음을 몰고온 노인은 좌중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며 나의 파트너인 마담 로체피트를 두려움으로 떨게 합니다. 노인의 모습과 대조적으로 아도니스의 초상화는 아름다웠습니다. 그 초상화에 경탄을 금치 못하는 서술자의 파트너에게 서술자는 알려 줍니다. 서술자는 그 초상화가 원본이 아닌 어느 여자의 조각을 본뜬 것으로 그 여자는 마담 란티의 친척이라고 말합니다. 마리아니나는 노인을 뒷문으로 내보냅니다. 젊음과 미모로 나를 애태운 마담 로체피트는 노인에 대한 비밀을 당장 알고 싶어하지만, 서술자는 다음 날 그녀의 방에서 단둘이 된 후에야 이야기를 꺼냅니다.법률가의 아들로 태어난 사라진은 공부를 많이 하여 훌륭한 법관이 되기를 원했던 아버지의 바람에 걸맞지 않는 괴상한 성품의 소유자였다. 어릴 적부터 반항적이고 몽상적이었던 그는 언제나 복잡한 생각들로 머릿속이 가득차 있었다. 그리고는 두 개의 서로 상반되는 성향이 야성적으로 폭발되는 충동적인 성격이었다. 공부 시간에는 선생의 모습을 벽에 그려 놓기 일쑤였고 예배 시간에는 괴상한 조각을 새기곤 했다. 드디어는 방자한 그리스 도상을 새긴 죄로 학교에서 추방된다. 그의 예술적 재능과 폭발적 열정은 마침내 파리에서 유면한 스승을 통해 갈고 닦여 22세에 대상을 받고 로마로 유학을 가게 된다.조각만이 삶의 모든 것이었기에 세상사나 사교에는 어두웠던 사라진이 로마의 어느 극장에서 쟘비넬라의 노래를 듣게 되는 것은 그의 운명에 커다란 전환점을 마련한다. 그녀의 미모는 조각가가 평생을 찾아 헤매던 이상이었고 그녀의 노래는 예술가의 열정에 기름을 붓는 신비 그 자체였다. ‘그녀의 사랑을 얻든지, 아니면 죽으리라!’ 고통과 기쁨이 교차되는 열정으로 그는 그녀의 모습을 상상 속에서 수없이 그려내며 조각으로 새긴다. 매일 극장에 출근하다시피 하며 쟘비넬라의 모습과 노래에 도취되던 사라진의 열정은 드디어 인정을 받은 듯, 그는 그녀의 파티에 초대된다. 그날 밤 사라진의 구애를 거절하는 쟘비넬라의 말과 행동은 역설적으로 더욱 그를 자극한다. 그녀를 납치할 계획을 세운 사라진에게는 로마 왕자가 귀띔하는 진실조차 귀에서 멀었다. 그녀는 여자 역할을 하도록 길러진 거세된 남자 배우라는 것이다. 납치한 쟘비넬라의 입에서 사라진은 처음의 만남이 그의 순진성을 놀려 주려 한 주위 사람들의 계획에 그녀가 동의한 데서 비롯되었음을 듣는다. 절망 속에서 그는 그녀의 동상을 쳤으나 실패했고 다시 그녀를 죽이려 할 때 후견인이 보낸 잠복자들에 의해 살해된다.사라진이 죽자 쟘비넬라의 후견인은 그녀의 동상을 가져다 대리석에 새겼다. 란티 가문은 화가 비엔으로 하여금 그것을 다시 본떠서 아도니스의 초상화를 그리게 하였다. 쟘비넬라는 바로 그 늙고 추한 노인으로 마담 란티의 아저씨이다. 그래서 란티 가문은 그들의 과거를 숨기는 것이다. 여기까지 들은 마담 로체피트는 충격 속에서 돌연 세상을 부정적이고 회의적인 시선으로 봅니다. 오늘날엔 더 이상 그런 불행한 연애는 없다는 의도로 들려 주었노라는 서술자의 달램도 그녀를 혐오감에서 건지지 못합니다.이 소설에서 인지하게 되는 것은 사람들이 ‘아도니스의 초상화’의 진실을 모른 채 그 표면만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발자크는 발단 부분에서 빛과 어두움, 창의 안과 밖 등 양 면을 다 제시하였던 것입니다. 쟘비넬라가 거세된 남자 배우였음이 밝혀지는 것은 한 인간의 겉과 속이 다를 수 있는 양면성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양면성을 알지 못한 채 어느 한 쪽만을 보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발자크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어느 한 쪽만을 편향되게 바라보지 말라는 얘기겠지요.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오셔서 사람들의 편견을 불식시키는 일도 하셨습니다. 그것은 행복이 권력자나 부자의 전유물이 아니라, 가난하고 소외받는 자에게도 있다는 것이지요. 중요한 것은 모든 인간의 근본적인 불행은 죄의 굴레에 갇혀 있다는 것이지요.
    • 지난 칼럼
    • 기독인의 행복론
    2017-12-14
  • 기독교인의 행복론 - 60
    "그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예수께서 한 어린 아이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마태복음 18:1-5)‘어린 아이’는 순수하며 정직합니다. 그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자기를 낮”춥니다. 예수님은 ‘어린 아이’를 비유로 해서 천국에 들어갈 자의 자격을 말씀하십니다. 니체도 『짜라투스트라』에서 ‘어린 아이’를 말하였습니다. 그는 정신이 성숙하여 가는 변화의 과정을 세 가지로 말하였습니다. “나는 너희들에게 정신의 세 가지 변화를 말하리라. 즉 정신이 낙타로, 그리고 이 낙타가 사자로, 그리고 이 사자가 마침내 어린이가 되는 사정을’(『짜라투스트라』, 제1부, [세 가지 변화에 관하여])”. 먼저 ‘낙타’의 상태를 생각하여 봅시다. 낙타란 본래 위대함이란 존재 방식에서의 현존재를 의미합니다. 신의 우위와 도덕 법칙의 숭고함 앞에서, 그 몸을 굽히고 엎드려서 큰 중량을 자진하여 부담하는 크나큰 외경의 인간을 의미합니다. 낙타는 용이치 않은 상태에 있고자 하며, 비속한 일상 생활의 안이함을 경멸합니다. 그는 자기가 확증될 만한 과제를 가지고자 합니다. 그는 우리에게 용이한 일이 아니고 심한 압박이 될 만한 어렵고 엄격한 명령을 완수하려고 합니다. 그는 자기의 의무를 의욕하고, 다시 그것을 넘어서 보다 그 이상의 것에 의욕을 가집니다. 그는 신의 뜻에 따라 자기의 숙명으로서 정해진 생의 의미에 복종하려고 합니다. 순종과 복종이란 점에서 이 외경으로 채워진 정신은 그 독특한 위대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확고한 가치체계에 둘러싸여서 그는 헌신적으로 자진하여 ‘너는 해야 한다’는 명령에 따릅니다. 다음으로 ‘사자’는 무거운 짐을 지고 사막을 달리는 낙타는 거기서 바로 그의 사자에로의 변화를 체험합니다. 무거운 짐을 견디어 내는 외경으로 가득찼던 정신은 ‘사자’로 변신합니다. 그는 자기를 ‘밖’으로부터 압박하고 제압하고 있던 중량을 벗어던집니다. 그는 그의 ‘최후의 신’인 객관적 도덕과 싸웁니다. 그는 그의 지금까지의 자기 소외를 인식하고, 객관적으로 현전하는 것처럼 보이는 가치들과 싸웁니다. 이상주의적인 도덕에 대하여 그 초월적인 기초 놓음, 그 ‘예지계’, 그 신의 의지까지 포함해서 사자의 자격으로 싸움으로써 자유를 획득합니다. 그는 자기 속에 잠자고 있는 자유를 해방하고, 자유가 근본적으로 상실되어 있는 입장을, 즉 미리 주어진 것으로서 받아들여져야 할 생의 의미에 의하여 생을 규제하는 입장을 초극합니다.세번째는 ‘어린 아이’입니다. 낙타를 지배하고 있는 ‘너는 해야 한다’에 대하여 사자는 주인답게 자기의 ‘나는 하고자 한다’를 맞세우지만, ‘나는 하고자 한다’ 속에는 너무 과도한 긴장과 방어의 자세가 있고, 과도한 반항과 자기 경직이 있습니다. 이 새로운 의지는 아직 고의적이며, 그것은 아직 창조적인 의욕으로서의, 또 새로운 가치들의 새로운 투기로서의 참된 자유자재함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어린 아이’가 비로소 그것을 가지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는 無垢합니다. 하나의 새로운 시작, 유희, 스스로 회전해 오는 차륜, 제 일 운동, 성스러운 긍정입니다. 정신은 이제야 스스로의 의지를 의지한다. 세계를 잃었던 정신이 스스로의 세계를 획득합니다.세 사람의 인물상이 위의 3단계에 대응합니다. 자기를 인간을 능가하는 어떤 위력의 통로로 삼는다는 의미에서 최대의 봉사적 인간인 천재는 낙타에 대응합니다. 비판자이고 부정자이며 미지의 먼 해안을 향한 대담한 항해자인 자유 정신은 사자에 대응합니다. 그리고 긍정자이고 새로운 가치들의 정립자인 짜라투스트라 자신은 유희하는 어린 아이에 해당합니다.‘어린 아이’의 위치에서 하나님을 따르는 신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자신들이 따르던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는 것을 보고 상심해 있던 두 제자를 생각해 봅니다. 엠마오는 예루살렘 북서쪽에 있던 마을의 이름입니다. 그곳은 예루살렘에서 1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엠마오로 가면서 많은 것을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살아왔는데 앞으로 무슨 일을 해야 하나, 향후 사람들에게 무슨 말을 전해야 하나, 영적 세계를 어떻게 전해야 하나 등으로 고민이 많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들과 동행하시나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면서 “모세와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누가복음 24:27)셨습니다. 주님은 성경에 나오는 말씀대로 이루신 후 부활하셔서 하늘 나라에 가셨습니다. 그리고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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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독인의 행복론
    2017-12-07
  • 기독교인의 행복론 - 59
    하루 만 원으로 일상의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은 행복입니다. 청년 시절에 단돈 천 원이 없어 하루종일 방 안에서 사색하여야 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한겨울인데도 햇볕이 기분 좋게 내리쬐는 가운데 다사로운 기운이 가져다 주는 분위기를 느끼며, 카알 힐티의 『행복론』을 읽으며 언젠가 찾아올 행복을 마냥 기다리던 때도 있었습니다. 그때에 비하면 현재의 나는 너무 행복합니다. 적어도 만 원으로 한 끼의 식사를 해결하고 교통비까지 감당할 수 있다는 걸 생각하면, 입가에 미소가 저절로 지어지기도 합니다. 그 해 겨울 소도시 전주에도 눈이 많이 내렸습니다. 함박눈이 정원의 과실나무들을 솜이불처럼 덮었고, 온 도시가 하얀 눈으로 칠해졌습니다. 우리집에서 백 미터 떨어져 있던 D교회는 전주역 가는 길목에 있었습니다. 벽돌집으로 지어진 예배당은 고딕 양식의 높다란 창문이 있었고, 뾰족 첨탑 위의 하얀 십자가가 멀리서도 보일 만큼 우뚝 솟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배당 옆으로 목조로 된 종탑이 있었는데, 거기서 커다란 종이 새벽에 울릴 때마다 어머니는 종종 걸음으로 예배당으로 발길을 옮기곤 하였습니다. 어머니의 신앙심은 가족에게도 전해졌고, 3남 4녀의 형제들은 모두 교회에서 성가대나 교사로 활동할 만큼 신앙심이 깊었습니다. 우리 형제들은 다가올 크리스마스날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12월이 되면 어린이들은 성극이나 성극, 성경 암송 등을 준비하느라 분주하였고, 우리 형제들은 제각기 칸타타나 성경 암송 등을 저녁 늦게까지 연습하였습니다. 초저녁에 저녁을 먹고 나면 여섯 살 배기인 나도 초등학생인 누나들을 따라 예배당에 갔습니다. 소도시 교회인지라 우리를 지도하는 교사 J는 칸타타 연습을 끝낸 후 아이들을 모아 연습시키곤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J선생이 나타나기 전의 한 시간 가량은 아이들의 놀이 시간이었습니다. 아이들은 교육관 마룻바닥 위에서 술래잡기도 하고, 공기 놀이도 하였습니다. 나는 착한 아이여서 누나들과 벤치에 앉아 있었습니다. 내 옆에는 단발 머리를 한 영희가 다소곳이 앉아 있었습니다. 그녀는 유치부 어린이로서, 전주 형무소에 가서 공연할 성경을 암송하는 나의 단짝이었습니다. 나는 누나들 옆에서 그녀와 나란히 앉아 있다는 게 너무 좋았습니다. 그리고 혼자서 얼굴이 예쁜 여자 아이한테는 어떻게 내 마음을 표현해야 하는가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한참을 생각한 끝에 서양화에서 반바지를 입은 소년이 예쁜 여자 아이의 볼에 뽀뽀를 하는 모습이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얼굴이 예쁜 영희의 볼에 그만 나도 모르게 뽀뽀를 하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갑작스런 뽀뽀 세례를 받은 영희가 마구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이 모습을 본 누나들이 깔깔대고 웃었습니다. “너, 왜 그러냐? 좋으면 좋다고 말로 헐 것이지.”누나들은 영희를 달래느라 눈깔 사탕을 구해다 주었습니다. 영희는 그 사탕을 볼에 가득 담고 울음을 그쳤습니다. 세월이 흘러 나는 서울로 올라와 S고에 입학을 하였고, 공부도 열심히 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나에게 편지 한 통이 집으로 배달되어 왔습니다. 여학생에게서 온 편지였는데, 나는 여학생이 먼저 편지를 보낸 사연을 발신자에게 당당히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여학생은 J중학교 졸업 앨범을 보고 내 주소를 찾아냈다며, 나와 펜팔로 교제하기를 원한다고 하였습니다. 편지가 몇 차례 오가는 가운데 나는 그 여학생이 어릴 적 영희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편지 교제가 일 년이 지난 즈음 영희에게서 소식이 뚝 끊겼습니다. 나는 영희가 어디로 이사라도 갔나 싶어 궁금하였지만, 대학 입시를 앞두고 있던 터라 영희가 공부에 방해가 될까 봐 편지를 끊었나 보다고 생각하며 공부하는 데로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그런데 학교에서 나와 단짝이던 K가 하숙집 여학생을 소개시켜 주겠다며 집에 놀러 오라하였습니다. 그리하여 K의 하숙집에 놀러갔지만 어른들의 감시가 심해서 그 여학생과 직접 만나 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러자 K는 영어 단어를 외워야 한다면서 쉬는 시간에도 책을 들고 다녔고, 얼마 후에는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나와의 절교를 선언해 버렸습니다. 나는 K의 갑작스런 절교에 당황스러웠지만, 입시를 앞두고 있어서 그냥 공부에만 매달렸습니다. 고교를 졸업한 후, K는 동창회 모임에도 영 얼굴을 내밀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친구들 사이에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K가 병태의 펜팔 친구를 빼앗아 결혼해 버렸대.”나는 그제서야 고교 시절 K가 나에게 갑자기 절교를 선언한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K는 나의 펜팔 친구였던 영희와 결혼하게 되어 삼십 년 이상을 동창회에 나오지 못했던 것입니다. 나는 속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자식. 그럼 진작 나한테 고백을 할 것이지.’요즘도 K는 동창회에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진작에 K를 용서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나에게 가족과 함께 만 원의 행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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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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