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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독교인의 행복론 - 58
    작가가 되고 나니 지인들이 우려의 시선을 보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봉급을 받는 직업을 안 가졌으니 생계를 어떻게 유지하는가, 하루 온종일 글만 쓸 수도 없을텐데 심심하지 않겠는가 등으로 작가로서의 삶을 염려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들과 생각이 다릅니다. 남이 나를 작가로 알아 주지 않는다 할지라도 나에게는 나의 삶에 동행하는 그분이 계십니다. 그분이 나를 작가로 인정하는데, 더 이상 작가를 알아 달라고 할 필요가 없는 것이지요. 이것이 내가 고독의 상황에서 그분을 통해서 얻은 지혜입니다. 나는 영원 위에 남는 흔적을 위해서 상상하고 글을 쓰는 자유가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자유를 위해서 나에게 하루에 필요한 돈은 만 원입니다. 만 원은 개인이 하루의 일상을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돈입니다. 오늘날 세계 각국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고 나라간의 경계가 생기고 있는 상황에서, 그것을 뛰어넘을 탈경계적 사고를 통해서 개인이 행복을 추구하여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개인이 일상의 행복을 영위하는 데에 하루 만 원이 꼭 필요합니다. 그것도 몸이 건강한 상태에서 아침과 저녁 식사를 집에서 해결할 수 있어야 가능한 돈이지요. 우선 노년의 경우를 생각하여 봅시다. 65세 이상은 교통비가 안 들기는 하지만, 요즘처럼 50대에 은퇴하는 베이비부머 세대에게는 한 달 평균으로 잡아서 적어도 하루 3000원 정도는 교통비로 들어가지요. 그걸로 동묘역 옆의 풍물 시장 구경도 할 수 있고, 동쪽으로는 춘천, 서쪽으로는 인천, 남쪽으로는 온양, 북쪽으로는 소요산까지 다녀올 수 있습니다. 점심은 그 지역에서 유명한 춘천 막국수나 해물 짬뽕으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굳이 멀리 가지 않아도 집 근처의 공원이나 천변을 얼마든지 산책할 수가 있지요. 만 원은 내가 생존하고 있다는 근가가 되는 돈이고, 나의 일상을 행복하게 보낼 수 있는 돈입니다. 만약 하루에 쓸 돈이 너무 많다면 나는 좋은 차를 굴리며 여행하는 데 시간을 다 소비할 터이지만, 만 원은 내가 작가로서 하루의 품위를 유지할 수 있는 딱 적당한 돈인 것입니다. 하루 만 원은 내가 허황되지 않고 겸손하게 일상을 유지할 수 있는 돈이며, 자그마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멋진 돈입니다. 간혹 영화를 감상하고 싶다면 낙원상가 4층에 있는 영화관에 가서 이천 원짜리 명화를 볼 수도 있고, 그 근처에 있는 카페에 가서 이천 원 짜리 팥빙수를 맛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일 년에 한두 번 정도는 그 근처의 이발소에 가서 3500원 자리 이발을 할 수도 있습니다. 은퇴한 이발사들이 소일거리로 나와서 일하는 곳이기에 그 이발 솜씨가 꽤 괜찮습니다. 간혹 개인이 노년이 되면 경조비가 상당히 들어갈 것입니다. 인간 관계에서 축하나 위로를 받았으니, 그 정을 생각해서라도 지인의 애경사를 모른다고 할 수는 없지요. 그럴려면 하루 일당을 아끼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습니다. 일주일 동안 집과 공원을 오가며 산책하며 지내면 됩니다. 집에서는 무얼 하냐고요. 책을 보든가 글을 써야지요. 글을 아무나 쓰냐고요. 아무나 쓸 수 있습니다. 개인이 지나온 삶을 뒤돌아 보면 얼마든지 쓸 얘기가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어릴 적 고향에서 어머니의 사랑을 받으며 친구들과 소꿉장난하던 얘기도 있고, 젊은 시절 연애하던 때의 심정도 있고, 중년에 전문가의 입장에서 전문 분야의 노하우를 쌓던 얘기도 있을 겁니다. 평범하게 살아온 인생이어서 쓸 얘기가 전혀 없다고요. 있습니다. 개인이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축복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 이야기를 하지요. 과거 유대 민족은 남성이 중시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오천 명의 무리에게 떡과 물고기를 나누어 주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그 자리에 참석한 남성만 센 숫자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에 네 명의 여성이 등장합니다. 다말은 남편과 그 형제마저 세상을 떠나자 창녀 복장을 하고 들에 나가 있는 시아버지 유다와 관계를 맺어 대를 이었습니다. 라합은 여리고성에서 자기 민족을 배반하고 이스라엘 백성이 된 이방인이었습니다. 룻은 이방인인데도 불구하고 보아스와 결혼하여 대를 이었습니다. 우리야의 아내는 장군인 남편을 죽인 다윗과 결혼하여 솔로몬을 낳았습니다. 이는 죄인도 얼마든지 구원의 길에 들 수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 줍니다. 우리 인생은 앞에서 열거한 여자들보다도 훨씬 더 규모 있게 살았습니다. 사회 규범을 따르며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었고 자녀를 낳아 잘 키웠습니다. 이는 개인이 각기 다른 환경에서 자라서 최선을 다하여 살아온 결과입니다. 개인은 자식들을 건사하였고, 가정을 통해 행복을 만들어 갔습니다.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하여 생명을 유지하고 있고, 70억 인구 가운데 한 사람으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볼 수 있는 눈을 가졌고,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졌으며, 마음껏 움직일 수 있는 팔다리를 가졌습니다. 빈 몸으로 와서 어느 정도의 재산을 일구었고, 굶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키워 왔습니다.
    • 지난 칼럼
    • 기독인의 행복론
    2017-11-16
  • 기독교인의 행복론 - 57
    BC 6세기 이전부터 그리스에서는 연극이 성행하였습니다. 디오니소스 축제일이 다가오면 희곡을 공모하고 거기서 뽑힌 작품을 가지고 제작자를 공모하여 원형극장에서 공연을 하였던 것이지요. 마이크 시설이 없던 시절에 배우들이 어떻게 수천 명의 관객을 상대로 공연할 수 있었을까요? 초기에는 코러스(합창단)를 동원하여 노래를 통해 연극의 줄거리를 알려 주기도 하였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배우가 전면에 나서게 되지요. 대개 희랍 신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 많아서 관객들은 관객석에서 도시락을 먹으며 연극을 관람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배우의 역할이 크게 작용하게 되는데, 그들은 멀리서도 관객에게 잘 보이도록 하이힐을 신고 망토를 둘렀으며 가면을 쓰기도 하였습니다. 그 가면 위에 등장인물의 성격이 잘 표현되어 있었기에 관객의 주목을 받을 수도 있었습니다. 요즘에도 표정이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을 때가 있는데, 나는 노래할 때 표정을 살려서 노래하는 편입니다. 내가 코미디언 이주일을 좋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이주일(본명: 정주일)은 1940년 10월 24일 강원도 고성군 거진에서 5대 독자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1960년 ‘문선대’에서 코미디를 시작하여, 1965년 ‘샛별악극단’ 사회자로 연예계에 데뷔를 하였습니다. 한국 코미디계의 대부 김경태 PD에게 발탁되어 1980년 TBC의 <토요일이다 전원 출발>로 본격적으로 방송 데뷔를 하며, MBC <웃으면 복이 와요>로 늦깎이 인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못 생긴 얼굴로 인하여 정상적인 방송의 데뷔가 어려웠던 그는, 자신의 단점을 그 자신만의 개성으로 끌어내어 1980년대를 주름잡는 ‘코미디의 황제’로 군림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못생겨서 죄송합니다"로 대표되는 여러 개의 유행어를 남겼고, 수지큐(Susie Q) 음악에 맞춰 추던 그의 특유의 엉덩이를 흔들며 뒤뚱뒤뚱 걷던 '오리춤'은 오랫동안 어린이들에게 모방되었고, 코미디언 이상해씨와 콤비를 이루며 묘기 아닌 묘기에 도전하면서 코미디 프로의 절정에 오르기도 하였습니다. 2001년 11월 17일에 폐암 말기를 선고 받은 후 끝내 폐암을 이겨내지 못하고 2002년 8월 27일 오후 3시 15분 경 국립암센터에서 6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내가 이주일 코미디언으로부터 배운 것은 표정 연기였습니다. 그의 우는 표정은 슬픈 듯하면서도 그 슬픔을 극복하는 웃음이 담겨, 시청자들에게 고난을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었습니다. 그는 그 표정에 배어 있는 그대로 어려웠던 시절을 웃음으로 극복하며 살았습니다. 그리고 대중의 인기를 얻은 후에도 외아들의 죽음을 겪으며 찾아온 여러 가지 고통에도 그는 오뚜기처럼 일어서 대중을 웃기는 자신의 소명을 다하였습니다. 또한 그의 코미디가 빛을 발한 것은 1980년대 암울한 시기였습니다. 신군부권력의 욕심으로 생긴 제5공화국에서 개인의 자존심이 매우 위축되어 있을 때에 그는 대중에게 위기와 고통을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는 웃음을 선사하였습니다. <웃으면 복이와요>(MBC, 1979), <일요일 밤의 대행진>(MBC, 1981년)으로 서민들의 지친 삶에 활력을 불어넣었고, 1990년대 민주화 과정에서 그는 <이주일의 투나잇 쇼> (SBS, 1996~1997), <이주일의 코미디 쇼> (SBS, 1997~1998) 등을 통해서 그는 웃움이 행복의 조건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 놓았습니다. 나는 이주일 코미디언을 통하여 나에게도 길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곧 언어 예술을 통하여 대중에게 역경을 극복할 수 있는 꿈과 의지를 심어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꿈과 의지는 웃음을 통하여 대중에게 확산되고, 대중의 자존심을 세워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사이의 <강남 스타일>에 나오는 말춤이 2억 뷰 이상의 접속을 가능하게 한 것도, 병자호란 때에는 50만 명 이상이 청나라에 포로로 끌려가고, 근대에도 한국 전쟁을 치르는 등 수많은 내우외환을 겪어오면서도 한국인 본연의 생명력으로 위기를 극복해 온 우리들의 자신감에 찬 웃음이 자신감을 한 몫을 하였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 웃음은 자손들만은 자신과 같은 고생을 겪지 않게 하겠다는 선조들의 의지에서 생긴 것이었으며, 붕당 제도로 인한 부조리를 풍자와 해학을 통해 극복하는 지혜의 결과였습니다. 얼마 전 S문인회 시낭송회에서 ‘이주일’ 흉내를 내며 김동규의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원곡: 시크릿 가든(Secret Garden)의 「봄을 위한 세레나데(Serenade to spring)」를 불러 보았습니다. 마치 사랑하는 남녀가 서로의 사랑을 고백하듯이 노래 가사에 감정을 실어 표정 연기까지 해 보았더니, 나의 음치가 커버되며 사람들을 빨아들일 듯한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이는 이주일 코미디언이 나에게 심어 준 자신감의 발로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시낭송회가 열리는 곳을 찾아다니며, 이 노래를 표정 연기까지 섞어 가며 부르곤 합니다.
    • 지난 칼럼
    • 기독인의 행복론
    2017-11-03
  • 기독교인의 행복론 - 56
    작가가 된 후 나의 삶에 변화가 생긴 것이 있다면 고독을 즐기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명퇴 후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하루 반나절을 사색으로 시간을 보냅니다. 아내는 이런 나를 보고 쓸데없는 짓으로 건강을 해칠지 모른다고 염려하지만, 사색에는 나만의 즐거움이 있습니다. 혼자서 역사 속의 인물이 되어 보거나, 사건 현장을 더듬어 나가는 추리와 상상을 해 보는 것도 겪어 보지 않는 사람은 모르는 크나큰 즐거움입니다. 후줄근한 옷차림에 의미 없는 잡담을 늘어 놓다가, 날카로운 질문으로 간담을 서늘하게 만드는 LA 경찰청의 형사 콜롬보. 드라마 도입부에 살인범이 먼저 밝혀지고, 범인의 완벽한 계획 범죄가 콜롬보에 의해 밝혀지며 사건이 해결되는 형식의 형사 추리물인 <형사 콜롬보>(리처드 레빈슨 등의 각본, 피터 폴크 출연)는 미국 NBC 방송에서 드라마로 1971년 9월 15일부커 2003년 1월 30일까지 방영되었고, 한국에서는 KBS TV에서 1974년 4월 6일부터 9월 28일까지 방영되었습니다. 가령 모 건설회사 부사장이 자신의 아내를 의도적으로 살인하고 건설 현장에 묻은 후 바닥 콘크리트를 쳐 버립니다. 콜롬보는 아내가 실종되었다는 부사장의 실종 신고를 받고 출동하여, 부사장 집의 현관 바닥에서 진주 목걸이로 추정되는 진주를 발견합니다. 콜롬보는 부사장이 일하는 건설 현장을 자주 들러 콘크리트 타설 광경을 자주 목격합니다. 그리고 현장 경비로부터 부사장이 밤에 들른 적이 있다는 목격담을 확보합니다. 물증을 확보한 콜롬보는 부사장이 살인했다는 증거를 확보하기 위하여 그의 집에 들릅니다. 현관에서 부사장에게 두 사람 사이의 부부 관계가 최근 들어 좋지 않았다는 이웃 주민의 얘기를 하면서, 현관 우산 꽂이대에 있던 우산에 자신이 증거물로 가지고 있던 진주를 톡 쳐넣습니다. 얘기 도중 부사장이 부부 사이가 좋지 않았다는 증거를 대 보라고 하자, 슬쩍 우산을 치켜듭니다. 그러자 진주 한 알이 바닥에 떨어지고, “이게 증거죠.” 하면서 사건 당일날 부부 싸움이 심하게 있지 않았느냐고 되묻습니다. 그리고 콜롬보는 왜 부사장이 콘크리트 타설을 하기 전 날 저녁에 공사 현장에 갔었는가를 묻자, 부사장은 울음을 터뜨리며 자백을 합니다. 이와 같이 후즐근한 바바리 차림으로 건성건성 말하는 듯하면서도, 완벽한 알리바이를 들이대는 사회 저명 인사를 꼼짝 못하게 하는 콜롬보의 끈질긴 추리에 시청자들은 통쾌함을 맛보게 됩니다. 겉으로는 어리숙하면서도 냉철한 판단력으로 악인을 단속하는 드라마 속의 콜롬보는 내가 살아오면서 가장 닮고 싶은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었습니다. 나는 우둔하여 평론을 집필하면서 사물에 대한 판단력이 더디긴 하였지만, 끈기 있는 독서 생활로 글의 주제에 걸맞는 논리적인 체계를 구축하여 갔던 것입니다. 이러한 노력 때문인지, 아내는 내가 우둔한 데 비하여 무던히 노력하는 편이라고 평가를 하기도 합니다. 살아오면서 사람마다 각기 다른 달란트를 조물주로부터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 달란트를 최선을 다하여 다듬어 나갈 때 좋은 결과도 나타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30여 년을 꼬박 글쓰기에 매달렸더니, 최근에는 나에게 어느 정도의 필력이 생긴 것 같습니다. <교회 연합 신문>에 40개월 이상 수필을 연재해 오고, 여러 문예지에 꾸준히 글을 발표하는 것도, 작가로서의 끈기가 있기에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얼마 전에는 강릉에서 H시인협회 세미나 발표가 있었습니다. 김동명 문학관을 돌아보고 점심으로 80여 명의 시인들이 순두부를 맛있게 먹은 후, 세미나 발표장인 녹색체험센터로 갔습니다. 조가비 모양의 디자인으로 이루어진 세미나장은 확 트인 산야와 더불어 파아란 하늘을 담도 있는 듯 깨끗해 보였습니다. 세미나장은 무대와 조명 시설이 잘 되어 있고, 2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아담한 곳이었습니다. 강릉 출신의 시인들이 시낭송을 하고 난 후 세미나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때 나는 기발한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것은 세미나 발표를 굳이 앉아서 할 게 아니라, 서서 하면서 ‘형사 콜롬보’ 흉내를 내고 싶었습니다. 시낭송가들의 낭송이 끝나고, 내 차례가 되었을 때에 나는 자리에서 일어서서 탁자 앞으로 갔습니다. 가슴 속에서는 ‘형사 콜롬보’처럼 논리적으로 사건을 추리하여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습니다. “1980년대의 현실은 언로가 탄압되는 가운데 위정자의 위선이 만연한 시대였습니다. 이러한 가운데서 시도 세 부류로 나누어집니다. 개인의 자아를 확대하여 불의한 권력에 맞서는 서정주의시, 부조리한 현실에서 위정자의 독재에 항거하는 현실주의시, 다양한 표현 기법으로 현대의 상황을 돌파하려는 모더니즘시 등이 그것입니다. …”. 오 분 이상을 나는 무대 위를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콜롬보처럼 손짓을 해 가며 서두를 이끌어 갔습니다. ‘아, 내 콜롬보 흉내가 성공하였나 보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 한 시인이 불쑥 말하였습니다. “앉아서 하세요.” 물론 서서 하든 앉아서 하든 발표하는 건 발표자의 자유지만, 콜롬보 흉내 내기 참말 어렵데요.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 지난 칼럼
    • 기독인의 행복론
    2017-10-26
  • 기독교인의 행복론 - 55
    가끔 새벽 하늘이 물감을 풀어 놓은 듯이 아름다울 때가 있습니다. 이른 새벽 남빛이었다가 포도주빛으로 변하면서 해가 뜰 즈음해서는 옅은 하늘빛을 띠는 과정은 그야말로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하지요. 그 하늘 아래 있는 정경도 어둠을 말갛게 씻어낸 듯이 아름답지요. 그럴 땐 순수했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나에게도 삶의 새벽이 있었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다섯 살 때인 1960년대에 전주에서 Y초등학교 교감을 하신 아버지를 따라 학교 앞의 관사에서 생활한 적이 있습니다. 옆집의 교장 관사와는 돌담을 사이에 두고 쪽문이 나 있어서 교장 선생 사모님인 장여사가 가끔 놀러오곤 하였습니다. “아이고. 사십대 중반에 웬 막내다요. 부부 금슬이 좋으신가 봐.”그러면 어머니는 살포시 미소를 지으며 “서름여덟에 난 막내지요.“ 하며 웃으시곤 하였다. “얘. 막내야. 춤 좀 춰 봐라. 옛다 춤값이다.”그러면서 백 원짜리 지폐를 앞치마에서 꺼내면 어머니는 ‘애 버릇 없어진다’며 극구 사양을 하였고, 서로 주고 떨치고 하다가 결국 오십원 짜리 지폐로 낙착을 봅니다. 그러면 어머니는 차이코프스키 Pyotr Ilyich Tchaikovsky의 「백조의 호수」가 들어 있는 레코드판을 턴테이블 위에 올려 놓고 레코드플레이어를 작동시켰습니다. 그러면 나는 어머니와 장여사 앞에서 새처럼 날아오르고 나비처럼 내려앉는 동작을 하며 춤을 추곤 하였습니다. “야 잘 춘다. 멋진 구경 하고 가네요. 쟤는 발레리노 시켜도 되겠다.”고 잔뜩 칭찬을 하고 가곤 하였습니다. 며칠 후에는 점심 때쯤 되어 학교 여선생들이 십여 명 우리집으로 몰려왔습니다.“갑자기 웬일이라요?”“아드님이 아주 무용을 잘 한다면서요. 그래서 구경 왔어요.”“아이고 집이 지저분헌디 워쩐대.”“괜찮아요. 아드님 무용만 잠간 보고 들어가려고요.”“아이고. 얘는 정식으로 무용을 배운 것도 아니고, 그냥 전축을 틀어 놓으면 저 혼자 춤을 추는디.”“예. 그것 좀 보려고요.”그리하여 어린 나는 여선생들 앞에서 쑥스럽기도 하고 해서 엄마 품에 달려들어 그 젖무덤에 얼굴을 파묻었는데, 어머니는 “얘. 착하지. 니가 평소에 하던 대로 한 번 해 봐.” 그래서 한참을 어머니 가슴에 얼굴을 대고 있다가 겨우 일어나 춤을 추었습니다. 새처람 날아오르고, 나비처럼 내려앉으며 팔을 흔들고를 반복하며. 그러자 무용을 전공하였다는 여선생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아드님은 정말 무용에 재주가 있습니다. 무용학원에 다니지 않았는데도 저토록 기발한 안무를 하는 것은 천부적 재능이 아니고는 불가능합니다. 발레리노를 시켜도 될 것 같습니다.”“아이고, 그런 건 생각해 보지도 않았는디.”이런 일이 있은 후로 어머니는 만나는 지인들마다 “야는 무용에 천부적 소질이 있대야.”라는 말을 반복해서 말하였습니다. 나의 춤사위가 있고 난 일 년 뒤, 장여사의 부군은 K군의 교육장으로 발령나고, 아버지 역시 K군 초등학교 교장으로 발령나, 부모님과 나는 식구들과 떨어져 초등학교 뒤에 있는 관사로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이사를 간 며칠 후 눈발이 진하게 흩날리던 날 어머니는 곱게 한복을 차려 입고 읍내에 있는 교육장 관사를 찾아갔습니다. 그 집은 일본식 집이어서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서면 마당과 넓은 툇마루가 있는 거실이 있었고, 방은 다다미 방이었습니다. 다다미방 위에서 장여사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아이고, 내 정신 좀 봐.” 하면서 곶감을 한 접시 꺼내왔습니다.“야가, 그 춤 잘 추던 막내둥이 아니여?”“야. 너 인사 잘 드려야지.” 하면서 어머니는 손으로 내 뒷덜미를 누르며 더 정중히 인사하게 하였습니다. “아, 괜찮혀. 아직 어린앤디, 뭘.”그러면서 두 사람은 그동안 못했던 얘기를 한참동안 늘어놓는 사이에, 나는 접시 위에 있는 다섯 개의 곶감을 다 먹고 한 개를 남겨두었습니다. 한참동안 얘기를 나누던 장여사가 말했습니다. “아니, 왜 곶감을 한 개만 남겨놨다냐. 이거 마저 먹어라이.”그래도 나는 “아니예요.”하면서 끝내 먹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장여사는 “야가 다과를 내어 놓으면 어른들이 조금 남겨 놓는 것을 많이 봐서 그러는 거구먼.” 하면서 고개를 뒤로 젖히며 한껏 웃었습니다. 어머니는 그 집을 나와 집으로 걸어가면서도 “야가 어른들이 음식을 앞에 놓고 예의를 차리는 모습은 언제 배웠다냐?”면서 몇 번이나 살포시 미소를 지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어머니와 내 앞으로 눈발이 더 많이 휘날렸지만, 날은 그다지 춥지 않았습니다.
    • 지난 칼럼
    • 기독인의 행복론
    2017-10-13
  • 기독교인의 행복론 - 54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마태복음> 19:24). 여기서의 부자는 물욕에 가득찬 부자를 말합니다. 곧 맘몬의 노예가 된 자들을 말합니다. 물질은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하나님 나라로 나아가는 축복이지만, 맘몬의 노예에게는 천국으로 가는 길을 막는 방해물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로서 주님이 주신 물질을 잘 다스리는 청지기의 삶을 살면서 하나님 나라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럼 하나님의 자녀는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할까요?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베드로전서> 4:8-10). 우리에게는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달란트가 있습니다. 나에게 주신 하나님의 달란트는 창작입니다. 새벽마다 내리는 이슬처럼 하나님께서 나에게 영감을 주십니다. 그 영감으로 아침을 열고 묵상을 합니다. 그러면 좋은 글감이 무화과 나무 열매처럼 나의 뇌리에 맺힙니다. 나의 어머니 얘기를 하겠습니다. 나의 어머니는 이십 대에 꿈속에서 웬 노인이 “예수를 믿느냐?”고 물어 본 것을 계기로 믿음을 가진 후, 무려 27년을 새벽 기도를 끊이지 않았습니다. 어머니의 기도는 나의 어린 시절 추억의 한편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우리집은 전주 한옥 마을의 ‘경기전’ 뒤쪽의 마당이 넓은 집이었습니다. 88평의 대지에 40평의 예쁜 한옥이 있던 우리집 마당에는 수많은 과실수와 화초들이 심겨져 있었고, 겨울에 눈이 소복히 쌓인 날이면 크리스마스 카드를 연상케 할 만큼 雪國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면 나는 툇마루에서 마당까지 발자국을 내 놓고 새벽 기도를 다녀오는 어머니를 기다리곤 하였습니다. 기다리면서 나는 천지 가득한 눈발처럼 사랑과 온정이 가득한 고향 풍경을 상상하곤 하였습니다. 나에게 어머니는 세상을 헤쳐 갈 수 있는 원기였고, 주춧돌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가 한때 중풍으로 쓰러지셨을 때에는 매일 한 시간씩 어머니의 팔다리를 주무르며 간병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 효심 덕분인지 어머니는 내가 성년이 되어서도 아낌없는 사랑을 퍼 부어 주었습니다. 내가 출근할 때면 내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대문 앞에 서서 아들의 안녕을 위하여 기도하셨고, 내가 연로하신 부모님의 응급 상황에 대비하여 승용차를 구입하였을 때에는 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새벽마다 몸소 세차를 해 주었습니다. 내가 청년 시절 주일학교 교사로서 열성을 다하여 신앙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어머니의 자식을 위한 새벽 기도와 사랑 덕분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어머니의 사랑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조금이나마 상상할 수 있었습니다. 사랑과 온정과 화평이 가득한 그 나라를 상상하며 나는 주님 앞에서 예쁜 모습을 취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주일날 찬양대에서 노래할 때면 주앞에서 예쁜 짓을 통해 경배와 찬양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예쁜 표정도 지었고, 노래에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도 담았습니다. 그러면서 나는 하나님 나라에 가까이 다가서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경배는 일상에서도 이루어졌습니다. 주님이라면 내 앞에 놓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실까 하는 기도와 교제가 이루어졌습니다. 내 앞에 주어진 시간을 주님은 어떻게 운용하시겠습니까. 주님이라면 이 시간에 수필을 쓰실까요, 평론을 쓰실까요. 그리하여 수필을 쓰라 하면 수필을 쓰고, 평론을 쓰라 하면 평론을 썼습니다. ‘수필을 쓴다면 어떤 내용을 담을까요?’ 등으로 주님과의 교제를 통해서 나의 삶에 동행하시는 주님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나아가 어머니가 나를 위해 하신 기도처럼, 나의 자녀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었고, 그들도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행복을 느끼기를 기도하였습니다. 죄문제로 인한 고뇌에서 벗어나 믿음으로 성령이 함께 동행하심을 느끼는 아이들이 되기를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나 자신이 먼저 주님 앞에서 신실해지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주님 앞에서 행동하는 나는 시인들 앞에서 몸시 공연도 멋있게 할 수 있었습니다. 김동규 노래의「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를 멋진 표정으로 부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것처럼 눈을 지그시 감고 사랑하는 이의 손을 잡는 시늉도 해 봅니다. 젊은 시절 배운 무용 실력을 발휘합니다. 무용이 끝난 후에는 남저음의 목소리로 자작시를 읊어 봅니다. “도둑이야 소리치면 바보가 되는 도시/ 걸망 지고 오솔길로 차마 들지도 못해/ 어설픈 미망의 순수 말뚝에다 묶고 있다.// 산과 산이 이어진 우뚝한 등성이/ 햇빛은 그런 곳에 내려앉아 노닥거리고/ 단단한 고백의 숲에 머리 풀고 살고 싶다.// 혈색 좋은 아이의 부라리는 저 눈망울/ 모든 것이 가능한 만물상을 띄워 놓고/ 후미진 그늘을 오르며 산의 흉내 내고 있다.”( 졸시, 「자연」전문)
    • 지난 칼럼
    • 기독인의 행복론
    2017-09-29
  • 기독교인의 행복론 - 53
    인간에게는 진실과 거짓, 선과 악, 미와 추 등 서로 상반되는 것들이 놓여 있습니다. 그래서 퍼소나(Persona, 가면적 인격) 밑에 감추인 그림자 현상(The Shadow)-마음의 어두운 면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본능적 충돌들-도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 한 곳에 자리잡은 욕망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까요. 기독교에서 ‘사탄의 장난’이라고 규정되는 죄를 어떻게 다스려야 할까요. 이에 대해 성경에선느 성령의 도우심을 받도록 권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로마서>를 읽으면서 이에 대한 해결책이 생겼습니다.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라”(<로마서> 8:4). 곧 하나님의 자녀가 성령이 나를 주관하시도록 기도하고 믿으면 주님이 나를 어두움 가운데 내버려 두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당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로마서> 8:35-37). 그렇습니다. 주님이 나를 사랑하여 죄악 가운데 빠지지 않게 인도하실 것을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는 사탄과의 영적 전쟁에서 넉넉히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그 자녀로 택하셨습니다. 성령이 나를 죄악의 구렁텅이에 빠지지 않도록 인도하시는 것은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느니라”(<로마서> 8:39). 주님의 사랑이 있기에 나는 온전히 가족과 이웃을 사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의 십자가 보혈이 크시기에 나는 주님의 사랑을 흉내낼 수 있습니다. 주님의 사랑이 영원 위에 존재하므로, 나는 그 사랑 안에서 행복할 수가 있습니다. 주님의 사랑이 내 옆에 있기에 나는 시를 쓰고 멋을 부릴 수가 있습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로마서> 10:9-10).주님은 나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고 다시 부활하셨습니다. 이는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빠져 헤매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받아 천국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확실한 증거입니다. 나를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것은 내 의지가 아니라 하나님의 권리입니다.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로마서> 9:16). 나는 주님이 나를 긍휼히 여기실 것을 믿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히브리서> 11:1-3).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하나님이 “보여 줄 땅”으로 나아갔으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음으로 요셉은 종의 신분에서 총리의 신분으로 상승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주님이 나를 진정성 있는 작가로 세워 주실 것을 믿습니다. 나로 하여금 주님이 동행하시는 믿음을 가지게 하시고, 사탄과의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게 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나는 이렇게 찬양합니다. “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 데서 맑은 가락이 울려나네 하늘 곡조가 언제나 흘러나와 내 영혼을 고이 싸네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덮으소서”(W. D. Cornell 작사). 나는 매일 아침 산택을 하면서 주님이 나와 동행하심을 느낍니다. 주님이 원하시면 어려운 이웃을 찾아가 위로를 할 수가 있으며, 주님이 나의 언행에 대하여 “애썼다”&#8228;“잘 하였다”고 칭찬을 해 주십니다. 주님은 나에게 적당한 때에 영감을 주시고, 문학을 향한 열정을 가질 수 있도록 기운을 불어넣어 주십니다. 주님이 계시기에 나는 세계가 하나님 나라로 나아가리라 믿습니다. 주님이 함께 하시면 이데올로기나 권력에 의하여 생긴 경계를 넘어설 수 있을 것입니다. K-Pop이 아시아와 유럽을 넘어 땅끝까지 나아가고, K-Poem이 유럽과 미국을 넘어 땅끝까지 이를 수 있을 것입니다. K-Art 안에 담긴 영혼과 감동이 국가간&#8228;빈부간에 갈등을 넘어 세계에 평화를 가져다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의 계획하심에 의하여 남북간의 분단의 경계를 넘어 소통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 지난 칼럼
    • 기독인의 행복론
    2017-09-21
  • 기독교인의 행복론 - 52
    아이들 앞에서는 말 한 마디, 행동 하나에도 조심해야 합니다. 김동인의 「김연실전」(<문장>, 1939.3)을 보면, 어렸을 적에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인 체험이 어른이 되어서도 작용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주인공 연실은 신학문도 배운 여성이었으나, ‘자유 연애를 자유로운 성교性交’로 착각하여 문란한 생활을 합니다. 그녀가 그렇게 된 데에는 어렸을 적에 체험이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어릴 적에 그녀는 어머니의 꾸중을 듣고 첩과 살고 있는 아버지 집에 갑니다. 그 날 저녁 그녀는 잠을 자다가 아버지의 추태를 목격하게 됩니다(김동인,「김연실전」참조). 이와 같은 사건은 평생 그녀의 뇌리를 떠나지 않고 잘못된 편견을 심어 놓습니다. 그녀는 일본 유학까지 다녀오며 자신이 신여성임을 자부하지만, ‘남녀간의 육체적인 관계가 자유 연애’라는 편견에서 벗어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정 아름다운 사랑은 멋진 남자와 아름다운 여성이 만나 평생 가정을 이루며 인간미 넘치게 사는 것이지요. 곧 하나님이 맺어 주신 짝을 통하여 아름다운 사랑을 나누고 멋진 가정을 이루며 해로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는 ‘부자는 행복하고, 서민은 불행’할 것이라는 막연한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없지 아니합니다. 행복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자의 몫인데도 말입니다. 행복은 먼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 안과 옆에 있습니다. 기독교인 중에도 천국은 죽어서나 가는 곳이고, 현실은 고해苦海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지 아니합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하여 보면 예수님은 인간이 죄의 굴레에 얽매여 고통받는 일이 없도록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시기 위해 몸소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곧 인간이 행복으로 나아가는 길을 열어 주신 것이지요. 그래서 가난한 자에게는 떡과 물고기를, 병든 자에게는 치유를, 죽음을 앞둔 자에게는 부활을 보여 주셨지요. 이는 서민에게도 얼마든지 행복이 있음을 인지하게 하신 것입니다. 골목길엔 한가한 미로가 많다끈적끈적한 정을 대문간에 붙이고주차 구역의 정해진 행보 앞에서후덕한 마음을 촘촘히 엮는약국 아주머니의 수다에 녹는 동네 사람들세상의 무딘 소식이 미끄럼을 타고잘난 사위 강남 갔다고 너스레 떠는자전거포 주인이 꿈의 페달을 돌리고거리로 나선 사내가이래저래 먹고 살기는 하나 본데푸른 하늘에 연처럼 띄워진 시장통의 외로움씽씽 달리는 자전거의 짐칸 위에서장바구니가 시원한 낮잠을 자는 사이에행복을 전하는 배달꾼의 오토바이가휘파람처럼 골목을 휘젓는다 -「골목길」전문행복은 나와 떨어진 곳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 안에도 있고, 내 옆에도 있습니다. 그래서 일상의 행복을 형상화한 시를 많이 발표하여 왔습니다. 「골목길」도 여기에 해당하는 작품입니다. 가족과 이웃과 평범한 사람 들이 모여 사는 곳에도 행복이 있습니다. 개인은 누구가 행복이 있는 것입니다. 개인의 탄생·연애·결혼에서부터 가정과 국가와 세계에 이르기까지 보편적인 경험 양식이 자리잡고 있고, 그 가운데에서 인간미도 피어나는 것입니다. 심지어 개인의 고독에도 행복이 스며 잇습니다. 개인이 혼자 있을 때에 주님과의 동행이 이루어질 수 있고, 자신의 참모습을 거리를 두고 바라볼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골목길을 산책하기를 좋아합니다. 거기에는 이웃과의 다정한 소통이 자리잡고, 온정이 담긴 이야기들이 집집으로 전달되기도 하니까요. 그래서 나는 평범한 일상에 동행하시는 당신을 바라보게 됩니다. 기도하고 말씀 보며 찬양하는 것도 삶의 기쁨이며 활력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내 안의 이타적인 유전자를 주신 분께 감사하며 가족과 형제들을 위해 기도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분명 낙원으로 나아가는 길이 있음을 상상하게 됩니다. 낙원은 먼 데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분은 말구유에 나셔서 세상 사람들의 가난을 익히 체험하셨으며, 집이 없다고 낙담하지 않으셨습니다. 우주에는 언제든지 필요하면 채울 수 있는 사물들이 널려 있었기 때문이지요. 주님은 가난한 자와 병든 자에게 눈높이를 맞추셨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며 ‘일 對 일’ 관계를 챙기셨습니다. 십자가를 몸소 지시고 인간의 죄를 벗어나는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으며, 가난 속에서도 풍요롭고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분은 자신의 살과 피가 영혼의 양식이 되게 하셨으며, 세상 어느 곳에도 존재하는 신이 되셨습니다. 그리하여 성령은 우리와 함께 하며 우리의 영혼을 맑게 하셨으며, 사랑을 나누는 행복을 만끽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행복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 지난 칼럼
    • 기독인의 행복론
    2017-09-11
  • 기독교인의 행복론 - 51
    오늘도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를 다섯 번 돌았습니다. 개나리가 꽃봉오리를 피워올리고 있었고, 벚꽃도 제법 꽃잎을 벌리고 있었습니다. 단지 안은 정오가 가까운 때인지라 한가롭게 거니는 몇몇 사람을 제외하곤 적막이 감돌고 있었습니다. 미세 먼지로 인하여 하늘은 거무튀튀하였지만, 그나마 햇빛도 나무 그늘 사이를 비집고 들어섭니다. 오늘도 나는 살아 있습니다. 건강을 위하여 일정한 보폭으로 걸을 수 있고, 눈으로는 나무들 사이를 건너가는 까치도 볼 수 있습니다. 손가락을 움켜쥐기도 하고, 팔을 힘차게 저을 수도 있습니다. 직장에 출근 안 한다고 나무라는 사람도 없으며, 형사 죄를 지어 법정에 갈 일도 없습니다. 세금은 제 때 냈으며, 마음만 먹으면 가까운 지인들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이제 내 나이 예순을 넘겼지만, 서재에서 언제든 필요한 책을 꺼내 읽을 수 있으며, 한가한 때를 만들어 한천 가를 산책하며 벚꽃을 구경할 수도 있습니다. 새벽에는 차를 몰고 우이동에 있는 W교회에 가서 기도를 드리고, 아들의 취업과 딸의 임신을 위해 기도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가족이 믿음과 건강과 행복을 가지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직장을 은퇴하였으니 각종 문학 단체에서 얼마든지 열심히 일할 수가 있습니다. J낭송문학회에서는 춤과 노래와 시낭송이 어우러진 ‘몸시’ 공연을 하였고, H시인협회 임원회에서는 한 해의 마스터플랜과 로드맵을 제시하였으며, 기독문인단체에서는 협회의 발전을 위한 아이디어도 내놓았습니다. 글쓰기를 좋아하는 K동호회에서는 시창작 강의를 하였고, P동호회원들과는 전주 문학 기행을 다녀왔습니다. 전주 문학 기행에서는 한옥마을에 들러 경기전을 둘러보고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보았으며, 돌담길 안과 밖을 걸으며 여행객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경기전 뒤편의 고향집도 둘러보았습니다. 현재는 삼층 건물이 들어서 있어서 옛 한옥의 모습을 볼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어린 시절을 추억하며 옛 풍경을 그려보았습니다. 큰누나가 매형과 데이트하던 동문 사거리의 제과점 ‘조화당’을 떠올려 보았고, 명절이 다가오면 어머니가 떡가래를 뽑아달라 했던 방앗간을 그리며 옛 동무들을 그려보기도 하였습니다. 고향의 옛 자취가 사라진 것을 보면서, 딸아이가 결혼해서 미국에 가서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아내와 아들이 매일 직장에 출근하는지라 가끔 거실 안이 공허해 보일 때도 있습니다. 한 달 전만 해도 직장 동료들과 어울려 지내다가 집에 있으려니 해야 할 일이 있을 것 같아 몇 번이나 수첩을 뒤적여 봅니다. 다음 주에는 탈장 수술을 받은 매형 병문안을 가야 하고, 11일에는 P시인 시비 제막식에 참석해야 하는군요. 22일에는 종로3가에 있는 C홀에서 ‘몸시’ 공연을 하기로 되어 있고, 27일에는 H시인협회 세미나에 가서 주제 발표를 해야 합니다. 이를 보면 작가 생활이라는 것이 바쁘기도 하고, 공허하기도 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아내는 “당신 그렇게 공부를 많이 하고도 아깝지 않아?” 하면서 은근히 직장 생활을 더해 주기를 바라는 것 같고, 얼마 전 잠깐 귀국했던 딸아이는 “아빠를 보면 박지원의 『허생전』에 나오는 ‘허생’이 생각나.” 하면서 실용성이 부족하였던 양반에 나를 빗대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주변의 시선으로 인해 34년을 직장 생활하여 가족을 먹여 살렸던 나를 백수로 취급하는 것 같아 한편으로는 서운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그렇지 않은 것은 나와 동행하시는 주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내 심령에 이르기를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 그러므로 내가 그를 바라리라 하도다”(<예레미야 애가> 3:24). 주님은 내가 고달플 때 “애썼다”며 위로해 주시고, 내가 외로울 때 동행해 주시며, 내가 힘들 때 강한 기운을 불어넣어 주십니다. 주님은 내가 눈 앞의 안위를 도모할 때 영원을 보게 하시고, 죄로 인해 괴로워할 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십니다. 내가 작가로서의 진정성을 도모하는 것은 주님이 나와 동행하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나에게 주께서 주신 달란트로 기독 시학을 정립하라 하시고, 날마다 영감을 주시면서 멋과 낭만이 있는 푸른 초장으로 나를 이끄십니다. 주님은 주일날 예배 시간에 내가 애교를 부리며 부르는 찬양을 열납하시고, 나를 ‘일 對 일’로 만나 주십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기업이 내가 하는 일이 되고, 행복한 작가가 되어 행복하게 일하게 하십니다. 나는 그 여호와의 기업이 이 땅에서 빛을 발하게 하기 위하여 나의 달란트를 최선을 다하여 활용합니다. 주님이 동행함으로 나는 사람들 앞에서 배꼽춤을 출 수가 있습니다. “다윗이 여호와 앞에서 힘을 다하여 춤을 추는데 그 때에 다윗이 베 에봇을 입었더라”(<사무엘하 6:14). 다윗은 “하나님의 궤”와 함께 함에 너무 기뻐 춤을 추었습니다. 나 역시 주님이 동행하심을 찬양합니다.
    • 지난 칼럼
    • 기독인의 행복론
    2017-08-24
  • 기독교인의 행복론 - 50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마태복음> 19:24). 여기서의 부자는 물욕에 가득찬 부자를 말합니다. 곧 맘몬의 노예가 된 자들을 말합니다. 물질은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하나님 나라로 나아가는 축복이지만, 맘몬의 노예에게는 천국으로 가는 길을 막는 방해물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로서 주님이 주신 물질을 잘 다스리는 청지기의 삶을 살면서 하나님 나라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럼 하나님의 자녀는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할까요?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베드로전서> 4:8-10). 우리에게는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달란트가 있습니다. 나에게 주신 하나님의 달란트는 창작입니다. 새벽마다 내리는 이슬처럼 하나님께서 나에게 영감을 주십니다. 그 영감으로 아침을 열고 묵상을 합니다. 그러면 좋은 글감이 무화과 나무 열매처럼 나의 뇌리에 맺힙니다. 나의 어머니 얘기를 하겠습니다. 나의 어머니는 이십 대에 꿈속에서 웬 노인이 “예수를 믿느냐?”고 물어 본 것을 계기로 믿음을 가진 후, 무려 27년을 새벽 기도를 끊이지 않았습니다. 어머니의 기도는 나의 어린 시절 추억의 한편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우리집은 전주 한옥 마을의 ‘경기전’ 뒤쪽의 마당이 넓은 집이었습니다. 88평의 대지에 40평의 예쁜 한옥이 있던 우리집 마당에는 수많은 과실수와 화초들이 심겨져 있었고, 겨울에 눈이 소복히 쌓인 날이면 크리스마스 카드를 연상케 할 만큼 雪國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면 나는 툇마루에서 마당까지 발자국을 내 놓고 새벽 기도를 다녀오는 어머니를 기다리곤 하였습니다. 기다리면서 나는 천지 가득한 눈발처럼 사랑과 온정이 가득한 고향 풍경을 상상하곤 하였습니다. 나에게 어머니는 세상을 헤쳐 갈 수 있는 원기였고, 주춧돌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가 한때 중풍으로 쓰러지셨을 때에는 매일 한 시간씩 어머니의 팔다리를 주무르며 간병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 효심 덕분인지 어머니는 내가 성년이 되어서도 아낌없는 사랑을 퍼 부어 주었습니다. 내가 출근할 때면 내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대문 앞에 서서 아들의 안녕을 위하여 기도하셨고, 내가 연로하신 부모님의 응급 상황에 대비하여 승용차를 구입하였을 때에는 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새벽마다 몸소 세차를 해 주었습니다. 내가 청년 시절 주일학교 교사로서 열성을 다하여 신앙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어머니의 자식을 위한 새벽 기도와 사랑 덕분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어머니의 사랑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조금이나마 상상할 수 있었습니다. 사랑과 온정과 화평이 가득한 그 나라를 상상하며 나는 주님 앞에서 예쁜 모습을 취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주일날 찬양대에서 노래할 때면 주앞에서 예쁜 짓을 통해 경배와 찬양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예쁜 표정도 지었고, 노래에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도 담았습니다. 그러면서 나는 하나님 나라에 가까이 다가서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경배는 일상에서도 이루어졌습니다. 주님이라면 내 앞에 놓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실까 하는 기도와 교제가 이루어졌습니다. 내 앞에 주어진 시간을 주님은 어떻게 운용하시겠습니까. 주님이라면 이 시간에 수필을 쓰실까요, 평론을 쓰실까요. 그리하여 수필을 쓰라 하면 수필을 쓰고, 평론을 쓰라 하면 평론을 썼습니다. ‘수필을 쓴다면 어떤 내용을 담을까요?’ 등으로 주님과의 교제를 통해서 나의 삶에 동행하시는 주님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나아가 어머니가 나를 위해 하신 기도처럼, 나의 자녀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었고, 그들도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행복을 느끼기를 기도하였습니다. 죄문제로 인한 고뇌에서 벗어나 믿음으로 성령이 함께 동행하심을 느끼는 아이들이 되기를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나 자신이 먼저 주님 앞에서 신실해지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주님 앞에서 행동하는 나는 시인들 앞에서 몸시 공연도 멋있게 할 수 있었습니다. 김동규 노래의「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를 멋진 표정으로 부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것처럼 눈을 지그시 감고 사랑하는 이의 손을 잡는 시늉도 해 봅니다. 무용이 끝난 후에는 남저음의 목소리로 자작시를 읊어 봅니다. “도둑이야 소리치면 바보가 되는 도시/ 걸망 지고 오솔길로 차마 들지도 못해/ 어설픈 미망의 순수 말뚝에다 묶고 있다.// 산과 산이 이어진 우뚝한 등성이/ 햇빛은 그런 곳에 내려앉아 노닥거리고/ 단단한 고백의 숲에 머리 풀고 살고 싶다.// 혈색 좋은 아이의 부라리는 저 눈망울/ 모든 것이 가능한 만물상을 띄워 놓고/ 후미진 그늘을 오르며 산의 흉내 내고 있다.”( 졸시, 「자연」전문)
    • 지난 칼럼
    • 기독인의 행복론
    2017-08-11
  • 기독교인의 행복론 - 49
    한때 성에 대하여 탈경계적으로 바라본 적이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성적인 욕구를 절제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성욕이 불일 듯 일었습니다. 심리학을 연구하면서도 퍼소나(Persona) 밑에 감추인 그림자 현상(The Shadow)-마음의 어두운 면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본능적 충돌들-을 극복하는 것이 관건이었습니다. 그런데 <로마서>를 읽으면서 이에 대한 해결책이 생겼습니다.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라”(<로마서> 8:4). 곧 하나님의 자녀가 성령이 나를 주관하시도록 기도하고 믿으면 주님이 나를 어두움 가운데 내버려 두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당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로마서> 8:35-37). 그렇습니다. 주님이 나를 사랑하여 죄악 가운데 빠지지 않게 인도하실 것을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는 사탄과의 영적 전쟁에서 넉넉히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그 자녀로 택하셨습니다. 성령이 나를 죄악의 구렁텅이에 빠지지 않도록 인도하시는 것은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느니라”(<로마서> 8:39).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므로 나는 주님이 원하는 선한 일을 하게 됩니다. 내가 작가로서 기독교적 세계관을 형상화하는 일에 골몰하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사랑을 느끼기에 주님이 원하시는 일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나는 아내를 사랑하고 가족을 사랑합니다. 그래서 아내가 원하는 집안일을 도울 수가 있고, 자녀가 원하는 소원을 들어 줄 수가 있습니다. 이와 같은 이치만 보아도 주님이 나를 사랑하므로 나는 주님께 간구할 수가 있고, 주님이 나의 소원을 들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나는 내가 구원받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로마서> 10:9-10).주님은 나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고 다시 부활하셨습니다. 이는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빠져 헤매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받아 천국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확실한 증거입니다. 나를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것은 내 의지가 아니라 하나님의 권리입니다.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로마서> 9:16). 나는 주님이 나를 긍휼히 여기실 것을 믿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걸르 얻었느니라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히브리서> 11:1-3).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하나님이 “보여 줄 땅”으로 나아갔으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음으로 요셉은 종의 신분에서 총리의 신분으로 상승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주님이 나를 진정성 있는 작가로 세워 주실 것을 믿습니다. 나로 하여금 주님이 동행하시는 믿음을 가지게 하시고, 사탄과의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게 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주님은 나를 한때 미천한 자의 길을 걷게 하시고, 이제 주님이 동행하시는 거룩한 길로 나아가게 하십니다. 청년 시절의 나는 가난에 허덕이는 문학 청년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고추를 심하게 조여 오는 여자 청바지를 입고 대학 4년을 버티게 하셨으며, 믿음으로 열심 있는 신앙 생활을 하게 하시고, 멋있는 변사 연기로 낭만적인 일상을 살아가게 하셨습니다. 주님은 나로 하여금 착한 아내를 만나행복한 가정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주님은 나를 <교회 연합 신문>에 수필을 연재하도록 인도하셨고, 신앙심이 묻어나는 글을 쓰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찬양합니다. “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 데서 맑은 가락이 울려나네 하늘 곡조가 언제나 흘러나와 내 영혼을 고이 싸네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덮으소서”(W. D. Cornell 작사). 주님은 오늘도 나를 사랑하시고 나와 동행하십니다. 나에게 샘물처럼 솟아나는 영감을 주시고, 나의 건강을 유지시켜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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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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