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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독교인의 행복론 - 100
    지난 몇 년 동안 나는 당신을 찾기 위해 노력해 왔다. 성경은 물론 수많은 문학 작품과 철학 서적을 읽었고, 수천 시간을 사색해 왔다. 당신을 찾기 위하여 집안 구석구석을 정리하였고, 2500여 권의 문예지와 전집들을 버리고 서가를 정리하였다. 제법 널찍한 벽면을 채운 가로 세로 30칸의 책장에 그동안 흐트려져 있던 책들을 분류하여 넣었다. 우선 가운데 제일 윗 칸에 신학 서적을 꽂은 후 그 아래에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는 철학 서적을 채워 넣고, 그 좌우 옆 줄에는 소설집과 시집들을 꽂았으며, 가장자리에는 역사서와 수필집, 희곡집과 비평과 문학사 관련 서적을 넣었다. 그리고 그 책들을 읽어 나갔다. 칸트에 관한 책을 읽은 후, 구약사와 신약사, 그리고 수많은 성경 인물들을 섭렵하였다. 그러면 나는 당신을 찾을 줄 알았다. 그러나 당신은 나타나지 않았다. 당신을 찾기 위하여 인터넷에서 천문학에 관한 지식도 쌓았다. 은하수에는 보통 2천억 개 이상의 별들이 모여 있었고, 그런 은하단이 또 수천억 개 더 있었다. 그 많은 별들 가운데서 지구는 한 점 먼지에 불과하였다. 그리고 그 지구 안에 이루 셀 수조차 없는 생물들이 살고 있었고, 인간도 그 중 한 종에 해당하였다. 그리고 인류가 나오기 수억 년 전에 맘모스가 살고 있었고, 그 이전에는 공룡이 살고 있었다. 몇 번의 빙하기에 그 많던 생물들이 다 죽었고, 또 생겨났다. 성경에서는 말하였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었다고. 그리고 당신이 빛과 어둠,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 뭍과 바다를 만들고, 식물과 생물을 만들고, “당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다고. 그리고 일곱째 날에 하시던 일을 마치고 안식하셨다고. 그래도 나는 궁금증이 가시지 않았다. 도대체 저 수많은 별들을 만든 당신의 크기는 얼마이며, 홀로그램처럼 몸을 자유로이 할 수 있는 존재인가를 끝없이 질문하였다.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부활하신 것을 제자들이 보았다고 하는데, 그리고 성령이 그 제자들에게 임하였고, 그 자녀들에게도 임하신다고 하는데, 나에게는 임하셨는가를 자문하여 보았다. 나는 당신을 직접 본적은 없으나, 청소년 시절 혼자 집을 지키고 있을 때 털수건을 둘러쓴 천사를 본 적은 있다. 그는 내 온몸이 빨려들어갈 것만 같고 세상의 어느 누구도 그토록 맑을 수 없는, 크고 파아란 눈을 가지고 있었는데, 나는 당신 앞에서 무릎을 꿇지 않았다. 그때는 내가 믿음이 없던 때였으니까. 그리고 당신이 대문을 나선 후 곧바로 천사임을 확신하고 뒤따라 나갔을 때에 당신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 후로 또다시 천사가 나타난다면 나는 내 정성을 다하여 그에게 무릎을 꿇으리라 다짐하였지만, 아직까지 그는 나에게 직접 모습을 보여 주지는 않으셨다. 그 후로 나는 당신이 임재하심을 몸소 체험하고 싶었다. 그래서 당신을 찾고 또 찾았다. 나는 당신이 나에게 어떻게 역사하시는가를 몸소 느끼고 싶었다. 그것이 당신을 찾는 방법의 하나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나는 당신이 존재한다고 믿으면 당신이 나의 소원을 들어주리라고 생각하였다. 특히 『마가복음』9:23에 있는 말씀이 나에게 다가왔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이 말씀을 따라서 나는 열심히 연구하여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당신의 능력이라면 능히 하시리라 믿고 대학 교수직에 도전하였다. 학위를 받은 후 10년 동안 스무 군데 이상의 대학에 이력서를 내 보았으나, 모두 허탕이었다. 내가 믿음이 부족해서 그런가 하고 도전하고 또 도전하였으나, 돌아오는 것은 좌절과 절망뿐이었다. 나는 문을 두드렸는데 왜 안 열리나 하고 의구심도 가져 보고, 한 가닥 희망을 놓지 않고 계속하여 문을 두드렸다. 그래도 열리지 않았다. 나의 실망은 너무 컸다. 그래서 나는 교회에 나가지 않고 그 시간에 열심히 책을 읽고 글을 썼다. 그 생활이 5년간 지속되었지만, 그 문은 그때까지 열리지 않았다. 그때 직장 선배가 나에게 다가왔다. “하나님이 형제의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형제의 마음을 바꾸어 다른 기도를 하게 하실 것입니다.” 나는 그 얘기를 듣고 교회에 다시 나갔다. 그리고 나는 예배 시간에 찬양을 열심히 불렀다. 처음에는 내가 30년 이상 해 온 찬양 실력을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은 생각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당신께 정성드려 찬양을 드렸다. 어린애가 예쁜 짓을 해야 그 부모가 더 잘 해 주지 않던가. 그러는 사이에 당신과 나 사이에는 변화가 일어났다. 분명 그것은 믿음의 성장이었다. 작가로서 주위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는 마음이 없어지고, 내가 십 년 이상 줄기차게 연구하였던 성담론에 관심이 없어졌다. 그리고 아침마다 영감이 생겨 즐거운 마음으로 신앙 칼럼을 집필할 수 있게 되었다.
    • 지난 칼럼
    • 기독인의 행복론
    2019-03-21
  • 기독교인의 행복론 - 99
    중국을 개방 경제로 이끈 등소평은 모택동과 달리 실용주의자였다. 그의 사상을 잘 표현하는 말이 “흰 고양이든 검은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라는, 이른바 ‘흑묘백묘(黑猫白猫)’론이다. 이와 같은 정책은 사마리아 땅에서 복음을 전파하시던 예수 그리스도의 전도 방향을 생각나게 한다. 사마리아인은 직접적으로는 이스라엘 남북왕조시대에 존재했던 북왕국 이스라엘의 후손들이다. 북왕국 이스라엘은 기원전 722년경에 앗시리아에 멸망당했다. 이후 남왕국 유다에서 정체성을 계승한 유대인들은 정체성 상실을 이유로 사마리아인들을 차별화하고 무시하였다. 그러나 사마리아인들은 사마리아 히브리어와 아람어는 사마리아 문자를 사용한 아람어를 썼는데, 이는 초기 히브리 문자로부터 이어져 온 문자이기도 하다. 예수 그리스도는 갈릴리로부터 사마리아를 거쳐 예루살렘으로 복음 사역을 해 나가셨는데, 특히 사마리아 지역에서 비유로 말씀하신 경우가 많았다. 강도를 만난 유대인을 도운 착한 사마리아인 비유가 그렇고, 다섯 남편을 둔 사마리아 여인에게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 비유를 말씀하신 경우가 그러하다. 예수 그리스도가 비유를 많이 사용하신 것은 하나님 나라를 직접적으로 설명하면 사람들이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를 대비해서 세상 돌아가는 이치로 쉽게 이해시키기 위해서 그리하셨던 것 같다. 이를 보면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해서 하나님 나라의 언어만을 사용하신 것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마태복음>을 기록한 마태도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인생을 특별하게 산 여인들을 올린 것도 ‘흑묘백묘(黑猫白猫)’를 생각나게 한다. 다말은 시아버지 유다와 관계를 맺어 베레스와 세라로 이어지게 하였으며, 라합은 여리고성 사람이면서도 그들 편에 서지 않아 보아스를 낳았으며, 룻은 이방 여자였지만 다윗의 할아버지인 오벳을 낳았고, 우리야의 아내는 자신의 남편을 죽인 다윗의 아내가 되어 솔로몬을 낳았다(<마태복음> 1:3-6). 이는 유대인의 관습을 어긴 죄 많은 여인도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오를 수 있다는 비유를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죄인일지라도 하나님과 화목해져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깨닫게 한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새신자를 전도할 때에는 새신자가 믿음이 부족하다며 경계를 하기보다는, 그들도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되어 얼마든지 큰 일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 두어야 할 것이다. 초기 기독교 시대에 만일 야고보와 요한이 기독교인을 한때 핍박하였었다는 이유로 바울을 차별을 하였다면, 기독교 교리가 정립되고 세계 선교가 이루어지는 쾌거를 보지 못할 수도 있었다. 당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와 사도들은 이방인에게 할례를 시켜야 할 것인가, 이방인과 식사를 같이 할 것인가, 이방인과 결혼해도 되는가 등으로 갈등을 겪고 있었다. 그리하여 A.D. 49년에 예루살렘에 모여 이방계 그리스도인들에게 모세 율법을 적용시킬 것인지를 논의하였다(사도 15:1-35 참조). 여기서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을 먹지 않는 등 몇 가지 외에는 다른 짐을 지우지 않기로 결의함으로써 그들이 모세 율법에 구속되지 않음을 명백히 하였다. 주목해야 할 것은 교회의 주요 결정에 성령께서 도우신다는 점과 이방계·유대계 양 그리스도인들 간의 일치를 도모하자는 등의 의견을 도출하였는데, 이는 이방인들에게 사역하던 바울의 의견이 많이 수용된 것이었다. 이 회의 이후 이방인이나 여자나 노예들도 공동체 식사에 함께 참여할 수 있게 되어 기독교가 빠른 속도로 전파되어 갔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의 오심과 하나님과의 화목을 이루게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등이 공관 복음과 바울 서신 등을 통해 정립되어 갔던 것이다. 이렇게 볼 때에 오늘날 새신자들을 전도할 때에 너무 온실 속에서 착하고 온유함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사탄과의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영적 능력을 가지게 하는 것이 중요함을 알게 된다.‘순진한 강아지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는 속담이 있다. 성직자들이 교인들에게 진실과 선함만을 가르친다면, 신자들이 교회 안과 밖에서 따로 행동하는 이중성을 가지게 될 것이 뻔하다. 그러므로 성직자들은 교인들에게 사탄과의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믿음을 가르쳐야 할 것이다. 오늘날 많은 교인들이 교회 안에서만 선데이 교인으로 머무는 것은 하나님 나라를 교회 안에서만 볼 수 있다는 편협한 기독교 세계관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교인들이 교회 밖에서도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언행을 하게 하는 것은 AI 시대에 매우 필수적인 교육이 되어야 할 것이다. “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롬 15:1).
    • 지난 칼럼
    • 기독인의 행복론
    2019-03-07
  • 기독교인의 행복론 - 98
    바야흐로 4차 산업 혁명 시기가 도래하였다. 이에 따라 성경 속의 인물도 4차 산업 혁명 시기에 걸맞는 인물들이 네티즌들의 호응을 많이 얻을 것 같다. 대홍수 속에서 방주 속의 삶을 통해서 건재한 노아,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새로운 세계로 나아간 아브라함, 장자의 직분을 얻기 위해 아버지를 속이고 도망간 야곱, 고난을 이기고 애굽에 가서 총리가 된 요셉, 애굽에서 탈출하여 광야를 거쳐 가나안으로 가자고 한 모세 등은 새로운 세계를 열망하는 네티즌들에게 새로운 세계에 대한 희망을 가지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신약 시기에는 단연 바울의 급진적인 사고가 네티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제시한 급진적인 담론은 예수님이 십자가 보혈을 이루신 후 성령이 오셔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임하신다는 것이었다. 그는 율법 중심의 전통을 이어가려는 바리새파 교인들과 갈등을 겪기도 하였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부활을 믿되 할례나 유대인들과의 공동체적 식사 문화, 유대인끼리의 혼인 관습을 이어가자는 것이 바리새파 출신 교인들이 주장하는 교리였다. 그들은 구약 시대의 하나님이 신약 시대에도 임재하심을 받아들이면서 예수 그리스도가 율법을 부정하지는 않았음을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하였다. 이에 대하여 바울의 주장은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신 후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성령으로 오신 것이 유대인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이방인에게도 오시므로 할례를 받았든 안 받았든 상관 없고, 유대인과 이방인이 함께 식사하는 것이 문제 될 리 없다는 것이었다. 당시 사도와 장로들은 A.D 49년에 예루살렘에 모여 이들의 주장을 어떻게 정리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놓고 격론을 벌였다. 누가는 그 회의에서 율법 문제로 격심한 논의가 있었음을 행15장에 기록하여 놓았다. “바리새파 중에 어떤 믿는 사람들이”“이방인에게 할례를 행하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는 것이 마땅하다”고 주장하자, 베드로와 야고보가 각각 결론을 내리게 된다. 먼저 베드로의 답변은 이러하다.“형제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오래 전부터 너희 가운데서 나를 택하시고 또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그들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언하시고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깨끗이 하사 그들이나 우리나 차별하지 아니하셨느니라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받는 줄을 믿노라”(행15: 7-12).이는 이방인도 구원받을 수가 있으며, 제자들에게 모세의 율법을 철저히 지키라는 멍에를 씌우지 말라는 것이었다. 이에 야고보는 “선지자들의 말씀”을 인용하며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그러므로 내 의견에는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하지 말고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옳으니 이는 예로부터 각 성에서 모세를 전하는 자가 있어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그 글을 읽음이라 하더라”(행 15: 19-21).야고보는 이방인도 기독교인이 될 수 있으며, 모세의 율법 중 식사 문화나 결혼 문화에서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는 것은 받아들이자고 주장하였다. 이를 정리하여 보면 베드로는 이방인을 받아들이되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받았음을 믿는 것이 중요하고 모세의 율법이라는 멍에를 제자들에게 씌워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 데 비하여, 야고보는 식사 예법과 결혼 예법은 전통을 따르는 것이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들을 받아들이는 데 유효하다는 주장을 하게 된다. 그러나 바울은 유대인과 이방인이 함께 식사하는 것을 허용할 뿐만 아니라, 식사 예법도 유대 문화 것을 온전히 따르지 않고 이방인에게 할례를 강요하지도 않았다. 바울은 성령의 인도하심이 모세 율법보다 상위에 있음을 기독교 교리로 정립하는 급진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그의 이러한 견해는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데 유효하였고, 제자들의 공동체 식사 문화를 활용하여 이방인이나 여자나 노예 들도 다 식사에 참여할 수 있음을 전통으로 세워 놓았다. 이는 후에 로마에 복음이 전파되는 데에 큰 역할을 하게 된다. 곧 바울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귀족이나 노예나, 남자나 여자가 다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될 수 있다는 평등 사상을 가지고 죄수의 신분으로 로마에까지 갔던 것이다. 이는 오늘날 성직자나 장로들을 통해서만 축복받는 것이 아니라, 개인도 얼마든지 성령이 임하셔서 축복받을 수 있음을 교인들이 인지하는 평등사상으로 나타난다. 이제 4차 산업혁명 시기가 도래하였다. 선진국 뿐만 아니라 많은 나라들이 사물 인터넷이나 인공 지능의 혜택을 누리는데, 아직도 북한 사회는 왕조 체제의 고립된 섬에 갇혀 있다. 그들에게도 인터넷과 SNS를 통하여 4차 산업혁명 시기에 걸맞는 문화가 전해지고, 자유로운 인권이 보장되는 날이 오기를 기원한다.
    • 지난 칼럼
    • 기독인의 행복론
    2019-02-22
  • 기독교인의 행복론 - 97
    예수님이 공생애 기간에 구약 시대의 율법에 젖은 유대인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알린다는 것이 그리 쉽지 않았을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 가운데 비유가 많은 것은 아마 이와 같은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비유는 원관념과 보조 관념을 한 문장 안에 놓는 표현 방식이다. 가령 ‘A는 B다.’,‘A는 B와 같다.’와 같은 방식이다. 중고등학교 국어 시간에 교사들은 전자를 은유라 하고, 후자를 직유라고 가르친다.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에 해당하는 원관념을 그대로 표현하면 세상 사람들이 이해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보조 관념에 해당하는 보편적인 일화를 예로 들어 하나님 나라를 이해시키셨다. 복음서에는 예수님이 갈릴리에서 사마리아를 거쳐 예루살렘으로 나아가는 과정이 나온다. 그 중에 사마리아 땅에서 예수님이 비유로 말씀하시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선한 사마리아 인의 비유에 관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강도를 당해 쓰러져 있는 유대인을 보고 제사장도, 레위인도 그냥 지나갔다. 그러나 그 당시 유대인이 천시하던 사마리아인은 그를 여관에 데려가 치료하고 그의 숙박비까지 내 주고 간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시키기 위한 비유다. 하나님의 그 자녀에 대한 사랑이 원관념에 해당한다면, 선한 사마리아인의 행위는 보조 관념이다. 율법과 형식에 얽매이지 않은 선한 사마리아인의 아름다운 마음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그 자녀에 대한 사랑을 유추해 볼 수가 있다. 예수님이 사마리아 땅에서 비유를 많이 사용하신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사마리아인에게 구약시대부터 내려온 역사나 율법이 굳어진 언어를 사용하면, 그들이 이해를 못하거나 식상해 할 수도 있다. 그래서 비유로 말씀하신 것 같다. 예수님은 당신이 하나님과 그 자녀를 화목하게 하기 위해 희생양 역할을 해야 하고, 이는 하나님의 자녀에 대한 사랑에 바탕한다는 말을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말해 봐야 설득력이 없다고 보신 것 같다. 그래서 사마리아인들의 일상에서 흔히 보고 들을 수 있는 이야기로 그들에게 다가갔다.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가 그것이다. 하나님의 인류 구속에 대한 원대하신 계획을 그들에게 어떻게 이해시키겠는가. 그래서 선한 사마리아인이 강도 만난 유대인을 도왔듯이, 사랑이란 상대방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을 몸소 행하는 것임을 비유로 말씀하신 것이다. 때는 바야흐로 4차 산업혁명의 시기다. 이와 같은 시기에는 사람과 사물과 세계가 초연결 네트워킹으로 이어지고, 융합형 메이커(maker)가 혁신적 파괴를 통하여 세계를 바꾸어 나간다. 3차 산업혁명이 정보화를 통해 개인이 스마트폰을 통해 정보를 자유자재로 이용하였다면, 4차 산업 혁명 시기에는 인간과 로봇의 구분이 모호해지고 멋과 놀이가 있는 공간으로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된다. 앞으로 20년 후 AI 등을 활용한 기술적 특이점이 지나면 영구 에너지나 친환경 에너지가 생산되고, 융합 과학의 발달로 바이오 특이점이 지나면 뇌와 췌장을 제외한 신체의 장기들이 개인의 신체에 들어와 생명을 더 길게 연장시킬 수가 있다. 이와 같은 시기에 절실하게 요구되는 것은 융합형 인재들을 교회에 끌어들이는 것이다. 기독교는 초기 교회 이후 2천 년 이상을 발전하여 왔다. 이와 같은 발전은 각 시대마다 그 시기의 상황을 혁신하여 가는 인재가 있어 가능한 것이었다. 구약 시대에는 아브라함·이삭·야곱·요셉·모세·여호수아·다윗·솔로몬 등의 수많은 인재가 하나님 나라가 있음을 증명하였고, 신약 시대에는 베드로·바울·어거스틴·마틴 루터·장 칼뱅·존 웨슬리 등 수많은 인재들이 교회 부흥을 이루는 초석이 되었다. 한때 로마 카톨릭은 마틴 루터라는 인재로 인하여 그 강성함이 쇠하여졌고, 세계 강국이었던 스페인은 펠리페 2세의 신교도 탄압 정책으로 인하여 수많은 인재들이 네델란드로 건너가는 바람에 패망하게 되었다.그런데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율법의 틀에 사로잡혀 인재를 제대로 발굴하지 못하고 있다. 교회 새신자부에서는 기독교의 참된 본질을 적용하기보다는 자신들이 정해 놓은 율법의 틀 안에 새신자들이 합류하기를 기대한다. 바울은 그러지 않았다. 그는 할례와 유대 교인끼리의 결혼과 유대 교인들만의 식사 문화를 강조하기보다는 성령이 기존의 율법을 무너뜨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진정한 가르침을 제시할 것임을 믿었다. 그리하여 유대 교인만의 공동체 문화를 넘어서 이방에까지 복음을 전파하였다. 이와 같은 인재는 과거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21세기에는 새로운 세기에 걸맞는 인재가 있다. 사람들이 IT 혁명으로 인하여 현실과 가상 공간, 현실과 환상을 자유자재로 넘나들어도, 기독교는 새로운 상황에 걸맞는 진리로 자리잡게 될 것이다. 이는 이 천지가 하나님에 의해서 창조되었기 때문이고, 예수님은 물을 포도주로 만드는 표적들과 함께 부활의 실체를 보여 주셨기 때문이다.
    • 지난 칼럼
    • 기독인의 행복론
    2019-02-14
  • 기독교인의 행복론 - 96
    종교나 학문은 진실과 선과 행복을 추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래서 플라톤은 이데아를 상정하였고, 공자는 중용과 덕을 강조하였다. 4차 산업 사회에서 사람들은 편리와 편안을 공유하면서 행복을 추구한다. 그만큼 행복은 다양한 곳에 숨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공리주의, 자본주의, 민주주의, 포스트모더니즘 등 다양한 사조를 훑어가며 진실과 선과 행복을 찾아나선다. 이러한 가운데서도 기독교는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의 양식으로 전파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기독교는 시대가 바뀔 때마다 항상 복음으로 다가섰다. 기독교가 유대교와 맞서 승리하는 과정을 살펴보면 매우 흥미로운 면이 있다. 1세기 이후 유대교인들은 하나님 나라를 인정하면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성령의 임재하심을 인정하지 않고 선민 의식에 가득차 있었다. 그러므로 사도들은 하나님이 인도하여 오신 역사를 인정하면서,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하나님과 그 자녀의 관계가 화목하게 되었고, 주님이 부활하셔서 성령으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임하심을 선포하여야 했다. 그리하여 베드로는 환상을 통하여 성령의 계시를 받아 이방인에게도 복음을 전하게 됨을 알렸으며, 스데반은 “지혜와 성령으로”(<사도행전> 6:10) 유대인과 이방인에게 하나님이 인도하신 이스라엘의 역사와 함께 설교하다가 순교를 당한다. 이어 바나바가 자신의 밭을 팔아 사도들에게 내놓으며(<사도행전> 4:37) 나아가 기독교 복음을 이방인에게 전파하였으며, 교회를 박해하던 사울이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주님을 만나(<사도행전> 9:5) 회심하게 된다. 이를 보면 성령이 오순절 날 제자들에게 임하였을 뿐만 아니라(<사도행전> 2:4), 4차 산업 사회에 사는 신자들에게도 임하심을 알 수가 있다. 기독교가 예수 그리스도를 사람으로 취급하려는 이단들을 물리치면서 삼위일체론을 정립하게 된 것도 따지고 보면 성령의 인도하심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이렇게 볼 때 바울이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사도행전> 19:21)며 기독교 교리를 정림한 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는 3차에 걸친 전도 여행을 하면서 자신이 예루살렘에 가면 박해를 당할 것을 알고 있었다.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사도행전> 20:23). 그러면서도 그가 가야만 했던 것은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이방인도 얼마든지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으며, 할례를 받지 않았다 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못 되는 것은 아님을 유대인들에게 알릴 필요가 있었다.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셨으며 성령이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임하심은 기독교의 핵심이었고, 이를 제대로 전파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유대교와 기독교의 차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그리하여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가서 대제사장을 비롯한 유대인들에게 자신에게 성령이 임하여 어떻게 변화되었는가를 당당하게 변론하였다. 그리고 죄수의 몸으로 로마에 가면서 그는 <로마서>에 나오는 기독교 교리를 정립하게 된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하나님과 그 자녀들의 관계가 회복되었으며, 십자가 보혈을 믿음으로 의롭다 칭함을 받아 구원에 이르게 되며, 율법에 얽매이기보다는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행함으로써 율법에서 자유로울 수 있음을 사람들에게 알렸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함으로써 넉넉히 이기는 생활을 할 수 있다고 전하였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로마서> 8:38-39).하나님의 자녀는 주 안에서 행복하게 살 수가 있다.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진정으로 사랑하시기에 가능한 것이다. 혹자는 말한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가려는데 왜 이렇게 고난이 심하냐고. 이에 대해 바울은 말하였다.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로마서> 5:3-5). 주님은 우리가 고난중에도 함께 하신다. 그리하여 인내하게 하시고 연단을 받아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소망을 가지게 하신다. 필자가 미국 앤아버에 와서 알게 된 것은 수많은 교회들이 예배당이나 건물을 빌려 예배를 드리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느 목사 부부는 습기가 많은 지하에서 세들어 살다 보니 사모의 팔에 곰팡이로 인해 생긴 피부병이 오랫동안 낫지 않아 고통을 겪는 경우도 있었다. 그나마 허름한 예배당을 대출받아 인수한 경우에도 수리해야 할 데가 많아 교인들이 직접 에어컨 공사나 난방 공사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 지난 칼럼
    • 기독인의 행복론
    2019-01-31
  • 기독교인의 행복론 - 95
    이제 4차 산업 시대가 도래하였다. 공장에서는 사무직과 노동직이 유기적으로 융합되고, 시장에서는 생산자와 소비자가 맞춤형으로 연결되며 ICT에 의하여 다품종 소량 상품이 빠르게 유통된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교회도 그 역할이 다변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인터넷을 통하여 다수에게 감동을 주는 설교가 빠르게 유포되고 있으며, 개교회에서도 만사(서로 만나고 사랑하는 모임)를 통하여 맞춤형 전도 방식이 제대로 활용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ICT를 활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교회 재정이 든든해야 한다. 재정이 든든해야 복음이 제대로 전파될 수 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가 직접 실천하신 방식이기도 하다. <누가복음>의 흐름을 살펴보자. <누가복음>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갈릴리에서 사마리아를 거쳐 예루살렘으로 가는 과정이 잘 나타나 있다. 그리고 예루살렘에 들어가기 전에 여리고에서 삭개오를 만나게 된다. 그는 세리라는 직업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로부터 소외당하는 위치에 있었다. 그러한 삭개오에게 주님은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고 말씀하셨다. 이에 감격한 삭개오가 말하였다.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여기서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은 주님은 공생애 기간 동안 성인 남자 오천 명이 먹고도 남는 음식을 주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온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기도 하는 등으로 물질면에서 여유로운 모습을 보이셨다는 점이다. 그리고 예루살렘에 들어가기 전에는 그야말로 풍족한 나눔의 모습의 보여 주셨다. 삭개오를 통하여 백성들을 구제하는 길을 열어 보이심도 그러하다. 이와 같은 넉넉함은 주님의 베푸시는 이미지를 확고히 하여 급기야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라는 칭송을 받게 된다. 이와 같은 모습은 “성전에 들어가 장사하는 자들을 내쫓”을 정도로 당당한 권위를 가지게 된다. 이와 같은 재정의 넉넉함은 제자와 사도 들의 전도 활동에서도 나타난다. 그들은 성령의 임하심을 체험한 후 재정적인 면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소유를 팔아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춘”(<사도행전> 5:1-2) 행위로 인해 죽게 된 것도, 성령이 제자들의 재정에 신경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다. 바울과 전도 여행을 갔던 바나바도 비교적 경제적 여유가 있었던 사람이다.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그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사도행전> 4:36). 그의 조카 마가는 그 다락방에 120명의 기독교인이 모여 기도할 정도로 큰 저택을 가지고 있었다.제자들의 지원을 받아 전도 여행을 하던 중 의견 차이로 인하여 바나바와 바울이 갈라섰을 때에도, 바울은 천막 일을 하며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오히려 바울은 이스라엘에 심한 흉년이 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전도 여행지에서 구제 헌금을 거두어 예루살렘 성전에서 헌금할 정도였다. 바울의 재정은 바울을 심문하던 벨릭스 총독도 그것을 탐낼 정도로 풍성하였다.“동시에 또 바울에게 돈을 받을까 바라는 고로 더 자주 불러 같이 이야기하더라”(<사도행전> 24:26). 또한 그가 죄수의 몸으로 이달리야로 가는 배를 탔을 때에도 죄수들을 호송하던 아구스도대의 백부장 율리오가 함부로 하지 못할 정도였다. “이튿날 시돈에 대니 율리오가 바울을 친절히 대하여 친구들에게 가서 대접받기를 허락하더니”(<사도행전> 27:3).필자가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와 제자와 사도들(베드로, 바나바, 바울, 마가 등)의 재정이 튼튼하였음을 정리한 것은, 4차 산업 시대에 재정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20세기 말까지만 하여도 한국의 성직자들은 성령이 신자들에게 물질적 축복을 주심을 강조하였다. 그리하여 가난을 면한 교인들은 배고픔을 면한 것이 주님의 은혜라고 생각하였다. 이제 재정은 새로운 변화를 맞게 된다. 21세기의 4차 산업 시대에 신자들은 재정을 어떻게 운용하여야 할까. 맞춤형 재정 운용이 필요한데, 바울이 그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그 후에 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러 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한 사람을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 고로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야로부터 새로 온지라 생업이 같으므로 함께 살며 일을 하니 그 생업은 천막을 만드는 것이더라 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사도행전> 18:1-4). 바울은 생업의 현장이 복음 전파의 생생한 교회였다. 이는 오늘날 신자가 어떠한 방향으로 전도를 해야 하는가를 잘 알려 준다. 곧 주일날 교회에서만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직장이나 생업 현장도 복음 전파의 터전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만사 운동’(만나서 사랑하며 복음을 전파하는 운동)은 그 일환이 될 것이다.
    • 지난 칼럼
    • 기독인의 행복론
    2019-01-17
  • 기독교인의 행복론 - 94
    바울은 자신이 예루살렘에 가면 박해를 받을 것을 예감하였다. 당시 권력을 잡고 있던 유대교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성령이 사도들에게 임하였음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었다. 유대교인들은, 바울이 “이방에 있는 모든 유대인을 가르치되 모세를 배반하고 아들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말고 또 관습을 지키지 말라 한다”(<사도행전> 21:21)며, 시비거리를 만들어 놓고 있었다. 그래서 사도들은 대책이 필요하였다. 그들은 하나님 나라와 의를 인정하면서,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셨고 성령이 임재하심을 그들에게 분명히 선포하여야 했다. 그리고 선민 의식을 가지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성령이 이방인들에게도 임하심을 알려야 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동시에 알려야 하는 복음 사역이 그리 녹록하지 않았다. 그래서 바울의 형제들-제자들과 사도들-은 묘안을 짜낸다. 이방인 사역으로 박해를 받을 수밖에 없는 바울, 기독교인을 박해하던 자가 회심하여 기독교 이론을 정립하는 위치로 바뀐 바울을 박해자들로부터 구할 방법은 무엇인가. 그때 예루살렘에는 기독교인이 되겠다고 서원한 네 사람이 있었다. 그래서 바울의 형제들은 바울이 성전에서 그들에게 결례를 행하고 머리를 깎게 하여 유대인의 율법에 결코 저촉되는 일이 없었음을 보이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바울은 그들을 데리고 성전에 들어간다. 그러자 “아시아로부터 온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바울을 보고” “모든 무리”에게 충동질을 하였다. “이 사람은 각처에서 우리 백성과 율법과 이 곳을 비방하여 모든 사람을 가르치는 그 자인데 또 헬라인을 데리고 성전에 들어가서 이 거룩한 곳을 더럽혔다”(<사도행전> 21:28)며, 바울을 비방하였다. 그리하여 바울과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들과의 긴 논쟁이 시작되었다. 결국 바울은 죄수의 몸으로 로마에까지 가는 과정에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오늘날의 기독교 이론을 정립하게 된다. 필자가 방점을 두는 것은 바울이 죄수의 몸으로 배를 타고 갈 때 겪은 고난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바울이 로마로 압송되는 과정에서 배를 타고 가는 장면을 보자. 이는 <사도행전> 27장에 잘 나타나 있다. 바울은 다른 죄수 몇 사람과 이달리야에 가기로 작정되었다. 아구스도대의 백부장 율리오란 사람이 그들을 호송하였다. 그는 “구브로 해안을 의지하고 항해하여 길리기아와 밤빌리아 바다를 건너 루기아의 무라 시에 이르러”“이달리야로 가려 하는 알렉산드리아 배를 만나” 그들을 오르게 하였다. 그 배가 그레데 해안 미항이라는 곳에 이르니 “금식하는 절기가 이미 지났으므로 항해하기가 위태”로웠다. 이때 바울은 “이번 항해가 하물과 배만 아니라”“생명에도 타격과 많은 손해를” 끼칠 정도로 위험하다고 말하였으나, 율리오 백부장은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고 항해를 강행하였다. 그리하여 맞게 된 것이 “유라굴로라는 광풍”(<사도행전> 27:14)이다. 이로 인해 사공들이 배의 “짐을 바다에 풀어 버리고”“배의 기구를” 내버리는 등의 “타격과 손상”을 입게 된다. 물론 이와 같은 일은 바울의 말을 율리오 백부장이 안 들었기에 생긴 일이었다. 그로 인해 바울도 유라굴로 광풍을 거쳐야 했다. 그럼 우리 인생에서는 유라굴로라는 광풍이 없는가. 인간은 누구에게나 이와 같은 광풍이 없지 않다. 필자도 여러 차례 광풍을 맞은 적이 있었다.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서 한동안 교수 임용이 되지 않아 힘든 적도 있었고, 작가가 되고나서 베스트셀러를 꿈꾸었으나 그게 그리 쉽지 않아 좌절을 느낀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광풍을 하나님의 의대로 해석하였을 때 심오한 뭔가를 깨달을 수 있었다. 내가 제목을 ‘고난이 축복인 이유’라고 잡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고난이 축복이 될 수 있는가.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의대로 생각하면 될 수 있다. 이 고난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접할 수가 있기에 축복이다. 이 고난이 없었더라면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참사랑을 진하게 느낄 수 없었을 것이다. 내가 좌절과 절망과 고독에 처해 있었을 때에 나는 비로소 주님을 만날 수 있었다. 주님이 내 고난의 짐을 대신 지고 걸어가셨다는 사실을 인지할 수 있었다. 주님이 나에게 주신 사랑은 이러하다. 성령의 인도하심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롬 8:2) 나를 해방시키셨다. 그리하여 나는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롬 8:4) 길을 걸어갈 수가 있었다.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말미암아 나는 하나님의 자녀임을 알게 되었으며,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나는 넉넉히 이길 수가 있었고,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롬 8:39) 거할 수가 있었다. 곧 나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영적 전쟁에서 이길 수가 있었고, 주님의 사랑 안에서 행복할 수가 있었다. 그러므로 주의 은혜 안에서 행복한 나는 예배를 통하여 찬양을 열심히 부를 수가 있게 되었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 수가 있었다.
    • 지난 칼럼
    • 기독인의 행복론
    2019-01-03
  • 기독교인의 행복론 - 92
    일연의『삼국유사』를 보면 이런 얘기가 나온다. 선덕여왕 때 일이다. ‘여근곡(女根谷)’이라는 곳에 겨울인데도 개구리들이 우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개구리는 겨울에 동면한다. 그런데 겨울인데도 개구리가 우는 거예요. 겨울에 이런 일이 일어나니 민심이 흉흉해졌다. ‘무슨 민란이 일어날 징조다’, ‘염병이 돌지도 모른다’, ‘다음 해에 태풍이 올 징조다’ 등으로 소문이 퍼져, 선덕여왕의 귀에도 들어갔다. 여왕은 이것이 어디서 나는 소리인가를 보고하라 하였다. 그랬더니 바로 ‘여근곡(女根谷)’에서 들린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여왕은 대신 회의를 열고 결정을 내렸다. “이는 백제 군사가 그곳에 숨어 들었다는 얘깁니다.” 그러고는 두 각간으로 하여금 각각 오백 명과 천 명의 군대를 지휘하게 하고는 여근곡을 포위해서 백제 군사를 물리치라는 어명을 내렸다. 각간들이 여왕의 말대로 군대를 거느리고 가 보니, 과연 여왕의 말대로 백제 군사들이 숨어 있었다. 그래서 그곳을 포위해서 백제군을 섬멸하고 돌아와서 어떻게 여왕이 그곳에 백제군이 숨어 있는 것을 알았는가를 두 각간이 물었다. 그러자 여왕이 하는 말, “여근곡(女根谷)은 그 지명을 풀이하면 여자 인체의 뿌리가 되는 계곡이라는 얘긴데, 그런 곳에 남자놈들이 들어왔으니 별 수 있겠냐?”는 거였다. 대신들이 여왕의 진한 농담에 웃은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 이야기가 단순히 과거에만 속하는 야사(野史)것일까. 분단 현실도 이러한 지혜로 풀어 봤으면 좋겠다. 조선조에 광해군이 명·청간에 전쟁이 일어났을 때에 명나라에 원군을 보내고나서 바로 청나라에 투항하게 하여 멋진 외교 전략을 펼친 적이 있다. 근본으로 돌아가서 지혜를 발휘하여야 할 때가 바로 이때이다. 인간 심리에 카인 콤플렉스라는 것이 있다. <창세기>에 나오는 가인이 야훼께서 아벨의 제사만 받은 것에 불만을 품고 동생을 죽였다. 이와 마찬가지로 인간에게는 형제 등 가까운 사람에게서 느끼는 질투심이 있다. 이를 선의의 경쟁으로 유도하는 것도 인간의 능력이다. 북한이 더 이상 핵무기를 통해 우(愚)를 범하지 않도록 지혜를 발휘해야 할 때이다. 그래서 필자는 <탈경계의 시학>(시문학사, 2015)을 통해서 우리 사회에 탈경계의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이제 시대는 융합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탈장르로 장르간에 경계도 없어졌다. 사물 인터넷 시대에는 사물과 사물, 인간과 사물, 존재와 존재 간에 탈경계가 요구된다. 경계를 넘어서려면 경계의 안팎에 있는 여러 현상들을 포괄적으로 보는 시선이 필요하다. 그 시선으로 사물의 본질을 추구하는 것이다. 지금 세계는 여러 가지 경계가 횡행하고 있다. 같은 이슬람 국가에서도 시아파와 수니파간에 갈등이 있고, 신자본주의가 부자와 빈자간에 새로운 경계를 그어 놓고 있다. 이와 같은 경계를 푸는 해법은 사물의 근본으로 돌아가서 포월적 시선으로 문제를 들여다봐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기독 계통의 신문들에서 독자들이 식상해 하는 것도 집단들간에 너무 경계를 지으려 한다는 것이다. 기독교의 본질인 말씀에서 해법을 찾기보다는 말씀에 대한 서로 다른 해석으로 갈등을 빚는다든가, 하나님의 의나 사랑보다는 율법에 치우쳐 서로 갈라서는 경우가 많이 있다. 이럴 때 예수 그리스도는 어떻게 해결하셨을까를 하나님의 편에서 해석하면 화해나 조화로 나아갈 수도 있다. 교회에서도 여러 기관이나 사람 사이에 경계가 없지 않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각자에게 주신 주님의 달란트를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바탕으로 해결책을 찾아야 할 것이다. 필자는 교회에서 성가대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는 주님이 나에게 주신 달란트라고 생각하면서 말씀 보고 찬송하고 기도하면서 신앙 생활의 멋을 연출하기도 한다. 가족과 형제와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멋진 일이다. 그래서 주님은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창세기> 12:1) 하셨다.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행복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시선을 확보하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창세기> 13: 14,15) 그렇다. 기독교인은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아야 한다. 그때 주님이 함께 하시는 행복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나는 한때 교회를 다니지 아니한 적이 있었다. 그러다가 선배 교사의 권유로 다시 교회에 나가게 되었는데, 한동안 교회 다니는 생활이 무의미하다고 느껴진 때가 있었다. 그것은 아는 사람이 별로 없어 서먹서먹한 데다가, 주님의 동행하심이 실감되지 않아서였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내 안에 계시는 주님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그분은 나에게 즐거움을 가지고 신앙 생활을 할 것을 권하셨다. 기도하고 찬양하고 말씀 나누는 일을 주 안에서 자유롭게 즐기라 하셨다. 그래서 나는 찬양도 감정을 넣어 멋있게 하고, 기도도 작가로서의 달란트를 살려 멋있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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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독인의 행복론
    2018-12-14
  • 기독교인의 행복론 - 91
    한때 성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금기시된 적이 있었다. 위정자는 성을 매춘이나 병과 연관지어 그것이 군중들로부터 부정한 것으로 인식되도록 하였다. 특히 귀족들 사이에 스캔들이 생기는 것은 위정자로서는 매우 불쾌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이정자는 궁중들로부터 사회가 안정되어 있다는 소리를 들어야 하는데, 스캔들은 사회가 불안하다는 소문이 퍼지게 하여 위정자의 지위를 흔들 수도 있었다. 그리하여 위정자는 성을 아예 금기시함으로써 귀족들의 스캔들에 관한 소문을 막았다. 심리학에서 외디푸스 콤플렉스라는 것이 있다. 어린 아이가 처음 세상에 나와서 본 여성이 엄마이다. 그래서 엄마를 매우 좋아하며 잘 따른다. 나아가 “나, 커서 엄마하고 살 거야.”라고 말하는 아이도 있다. 그러나 여덟 살 이후가 되면 엄마에 대한 사랑을 포기하게 된다. 왜냐하면 자신보다 엄마와 더 가깝고 건장한 아빠가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엄마에 대한 사랑을 포기하고 효도로 승화하게 된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아이가 성년이 되어 상대를 고를 때 엄마를 닮은 여성을 아내로 선택하는 것이 보편적인 현상이다. 그래서 신혼 부부 집에 가 보면 부부가 서로 닮아 있는 것을 많이 보게 된다. 아들이 엄마를 닮은 것과 마찬가지로 아내가 시어머니를 닮았으므로 얼굴이 비슷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서로 닮은 여자끼리 한 남자를 두고 더 사랑받으려고 하다 보니까 고부간에 갈등이 생기는 것이다. 내가 아는 여류 시인 H는 신혼 시절에 거의 평생을 과부로 산 시어머니가 부부 방에 와서 같이 잤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인간이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외디푸스 콤플렉스로 인해 일어난 일이다. 이를 보면 하나님이 그 자녀에게 배필을 정하여 주셨다는 말씀이 맞는 것 같다. 저희 부부도 결혼 후 삼십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한결같이 서로 사랑하고 있으니까. 세월이 흐르고나서 생각해 보아도 주님이 어쩜 이리도 섬세하게 배필을 정하여 주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이를 보면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계획에 의해서 진행되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을 것 같다. 성경에 이렇게 적혀 있다. “모든 생물의 생명과 모든 사람의 육신의 목숨이 다 그의 손에 있느니라”(<욥기> 12:10). <창세기> 38장에는 유다와 다말 이야기가 나온다. 다말은 윤리적으로 보면 말도 안 되는 행위를 한 여자이다. 그녀는 유다의 며느리로 들어가 첫 번째 남편과 사별하였다. 그리하여 유대 민족의 관례에 따라 남편의 동생과 결혼하였으나, 그도 역시 세상을 떠났다. 이에 유다는 셋째 아들 셀라가 있었으나 셀라도 “그 형들 같이 죽을까 염려”하였다(<창세기> 38:11). 그리하여 시아버지 유다는 다말에게 “수절하고 네 아버지 집에 있어 내 아들 셀라가 장성하기를 기다리라”고 명하였으나, 셀라는 장성하여도 결혼시키지 않았다(<창세기> 38:11). 그러자 다말은 창녀 복장으로 변장하고, 유다가 “자기의 양털을 깎으려고” 간 곳(딤나)의 길목에 있다가 그와 관계를 맺어 쌍둥이 아들 베레스와 세라를 낳았다. 이는 역사상 윤리적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나, 다말은 <마태복음>에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에 오를 정도로 귀한 사람이 되었다. 성경 기록자는 세상 윤리로 보면 문제가 있는 다말을 왜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올렸을까? 그것은 죄인이 구원으로 나아가는 문이 열려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사례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그렇다 하여도 성 문제는 소돔과 고모라성 사람들의 문란함은 말할 것도 없고, 초기 기독 교회에서도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 이 문제를 바울은 어떻게 해결하였을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신자에게 성령이 임하시면 얼마든지 성적 욕망을 해결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곡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로마서> 8:26-28)성령은 “우리의 연약함”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으므로, 신자가 구할 것은 성령이 우리 마음을 인도하셔서 사탄과의 영적 전쟁을 이기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들이 성적 욕망과 유혹으로 인하여 넘어지기도 한다. 그러한 유혹이 신자의 믿음을 시험하고, 죄의 구렁텅이에 빠지게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때 구할 것은 무엇보다 기도이다. 기도를 통하여 성령이 우리 마음을 주관하시도록 하면 유혹이 물러가고 성적 욕망이 사라질 것이다. 그러므로 성적 욕망을 개인의 의지로 다스리기보다는 성령이 욕망을 다스려 주시도록 기도해야 할 것이다. 오늘도 많은 선남선녀들이 직업상이나 지인 관계로 만난다. 이때 구할 것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것이다.
    • 지난 칼럼
    • 기독인의 행복론
    2018-11-30
  • 기독교인의 행복론 -90
    이제까지 살아온 삶을 되돌아보면 주님이 나를 “갈고 닦은 화살로 만”들어 “화살통에 감추”어 오셨다는 것을 알게 된다. 특히 유신 체제하에서 민주화를 위하여 투쟁하며 살아온 때가 그러하다. 유신 체제하에서 박정희 정부는 국가 위기 상황이란 명분으로1974년부터 1979년까지 9차례에 걸쳐 긴급 조치를 선포하여 국민의 인권을 제한하고, 유신 반대운동을 탄압하였다. 박정희 정부는 1975년 남베트남이 공산화되자 국민의 안보 불안을 이용하여 반공 분위기를 강화하는 한편, 반유신 운동 세력을 탄압하고자 긴급 조치 9호를 선포하였다. 긴급 조치 9호는 유신 헌법을 반대하거나 부정하고, 헌법의 개정을 요구하거나 이를 보도하면 영장 없이 체포, 구속, 압수, 수색이 가능하도록 하였으며, 민간인도 비상 군법 회의에서 처벌하도록 하여 국민의 기본권을 심하게 제약하였다.1978년 총선거에서 야당인 신민당이 여당인 민주 공화당보다 높은 득표율을 획득하고, 1979년 제2차 석유 파동이 일어나면서 정권의 위기가 표면화되었다. 이러한 가운데 박정희 정부는 신민당사에서 농성 중인 YH 무역의 여성 노동자들을 폭력적으로 진압하여 야당과 크게 대립하였고, 신민당의 김영삼 총재를 제명하였다.1979년 10월에는 부산과 마산에서 격렬한 반독재 민주화 시위가 일어났다(부·마 민주화 운동). 박정희 정부는 군대를 동원하여 이를 진압하였다. 그러나 이에 대한 대책을 둘러싸고 정권 내부에서 대립이 발생하여, 박정희 대통령이 피살됨으로써 유신 체제도 막을 내렸다(10·26 사태).유신 체제하에서는 개인의 권리와 자유에 대한 탄압도 있었다. 길거리에서 전경들이 여성들의 핸드백을 조사하는가 하면(거부하면 경찰서로 데려감), 학생들의 지갑을 검사하기도 하고, 학생들이 봉사 활동을 위하여 운영하려던 ‘1일 찻집’을 불허하였다. 여기서 오는 답답함을 학생들은 청바지와 통기타와 장발 등으로 표현된 낭만을 추구하려 하였지만, 이 또한 장발 단속 등으로 자유롭지 못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도 학생들은 “유신 철폐”를 주장하며 꾸준히 데모를 하여 유신 체제의 불합리함을 알렸다. 나도 이러한 데모에 몇 번 참여하여 위기를 맞은 적이 없지 않았다. 그 날 나는 사범대 강의실에서 <국어학> 강의를 기다리던 중이었다. 근데 그곳에 총학생회 간부가 운동장에 모여 데모에 참여해 달라는 전갈을 해 왔다. 나를 비롯한 과 동기들은 잠깐 고민을 하였다. 그동안 몇 차례 데모로 인하여 학교에 휴교령이 내려진 것이 매 년 반복되던 터였다. “이러다가 또 휴교령이 내려지는 거 아니여?”충청도 출신의 창수형이 근심어린 시선을 보냈지만, 과 학생들은 벌써 가방을 챙기고 일어섰다. 근데 너무 일직 나섰는지 운동장에 나가자 제일 앞줄에 서게 되었다. 학생회 훈련부장이 4열 종대로 맞추어 달라고 해서 서로 어깨 동무를 하고 운동장을 돌다가 시계탑 앞에 서서 “유신 철폐” 구호를 외치는데, 갑자기 완장을 두른 신문 기자들이 나타나 손을 더 크게 들라고 소리쳤다. 그래서 손을 높이 들고 구호를 외쳤는데, 그게 그만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나오고 말았다. 그리고 후에 아는 교수로부터 학교 근처의 고층 빌딩에서 기관원이 우리들을 찍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데모가 끝난 지 며칠 안 되어서 사범대학 현관 게시판에 대문짝만한 공고문이 붙었는데, 그 날 데모대 옆에서 주전자에 담긴 물을 나누어 준 P 여학생은 자퇴, 데모대를 이끌었던 학생회 간부는 휴학 처리 되어 군대에 징집되어 갔다는 사실이 나붙었다. 그것은 더 이상 데모를 하면 우리도 같은 처지가 될 수 있다는 압박이기도 하였다. 학과 교수들도 데모 광경을 찍은 동영상을 보이며, 우리 과 학생들도 경찰의 견제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귀띔해 주었다. 그래도 데모는 계속 되었고, 그로 인한 휴교령으로 대학 4년간 강의를 들은 날이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한 데모의 힘이었는지 졸업 후 직장에 다닐 때에 10.26 사건이 일어나 유신 체제는 종식되었지만, 또다른 군부 세력이 나타나 민주화 투쟁은 후배들에 의해서 지속되었다. 오늘날의 민주화가 되기까지에는 학창 시절의 투쟁이 한 몫 하였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그 이면에 나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었음을 감지할 수 있었다.나는 요즘 오로지 집필 생활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이는 내가 청년 시절부터 하고 싶은 일이었다. 그리고 집필을 통해서 나는 나에게 주어진 달란트를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 이는 주님이 나를 “갈고 닦은 화살로 만”들어 “그의 화살통에 감추”어 오셨다는 사실로 느껴질 때가 많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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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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