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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독교인의 행복론 - 89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니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노근으로 채찍을 만드사 야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히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이에 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예수께 말하기를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요한복음> 2: 13-21)예수님이 성전에서 장사하던 사람들을 내어쫓으시던 일화가 담겨 있다. 어느 시대든지 경제력을 가진 사람들을 무시할 수가 없다. 역사적으로 전쟁은 경제력을 가진 사람들의 후원 아래 이루어졌다. 경제가 어려우면 전쟁에서 승리하기도 어렵다. 경제력은 현대 사회에서도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물신주의에 빠지기도 한다. 예수님은 그런 물신주의에 지배된 장사아치들을 성전에서 내어쫓으셨다. 이 사건은 후에 장사아치들이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을 꼬드겨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게 되는 데 한 몫 하게 된다. 이때 예수님의 심정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예수님은 성령이 임하시는 우리 안에 물신주의가 판치는 것을 싫어하신다. 때론 물신주의가 사탄과 한 패가 되어 괴롭히는 때가 있다. 나도 젊었을 때에 가난으로 인하여 괴로울 때가 있었다. 그것은 사탄이 나에게 가해 온 시험이었다. 퇴직금을 사기꾼에게 고스란히 날린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심한 구박을 받고 살았다. 어머니는 툭 하면 아버지에게 나가서 돈 벌어 오라는 말을 자주 하였고, 아버지는 어깨를 움츠리고 밖에 나갔다가 저녁 어스름이 내려앉을 때에 돌아왔다. 그동안에 아버지는 정씨 문중에도 다녀오고, 난 화원을 하는 친구 집에도 다녀왔다. 한 번은 문중 어른 C가 소개하여서 출판사에 다녀왔다며 서예 전집을 들고 들어왔다. 출판사 사장인 K는 예서체, 전서체 등 12권으로 된 서예 전집이 요즘 잘 팔린다며 당신더러 팔아 보라고 했다는 것이다. K는 아버지로부터 27만원을 받은 후 50만원자리 책이니 동창들에게 팔아 보라고 권하였다는 것이다. 27만원은 당시 대기업 회사원 봉급이었다. 어머니는 혹 떼러 갔다가 혹 붙이고 왔다며 비아냥거렸지만, 아버지는 그걸 팔 자신이 있어 했다. 아마도 십여 년 간 어머니 몰래 모아 두었던 아버지의 비상금을 몽땅 털어 그 책을 산 모양이었다. 아버지는 그 후 여러 친구들을 만나러 다녔지만, 하루에 열 잔 이상의 차를 얻어 마신 후 배만 잔뜩 불려서 귀가하곤 하였다. 그 즈음에 서독에 가 있던 누나가 휴가를 얻어 집에 들렸다. 누나는 여행용 가죽 가방에 전자 계산기와 햄과 담배와 양주 등을 잔뜩 넣어 가지고 와서 식구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대학생인 내가 외출할 대 옷이 별로 없어 와이셔츠와 바지한 벌만 줄창 입고 다니는 것을 보고는 자신이 입고 있던 청바지를 벗어서 입어 보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서독에선 젊은이들이 신사복 대신 청바지를 입고 다니는 경우가 많다며 서구에서 유행되는 옷차림도 곁들여 설명하여 주었다. 누나는 청조끼도 입고 있었는데, 그게 너무 멋있어 보였고 한국에서도 곧 유행할 거라는 감이 왔다. 누나가 준 초록색 청바지를 입어 보니, 가랑이 부분이 너무 조여 거시까가 아프기가지 하였지만, 누나는 잘 맞는다고 계속 우기더니 자신이 입고 다니던 푸른 색 청바지 한 벌을 더 내놓았다. 그러나 바지 길이는 맞는데, 그 거시기 부분이 매우 아팠다. 곁에서 이를 지켜 보던 어머니도 “어쩜 저렇게 딱 맞느냐”며 거들었다. 이렇게 해서 나의 청바지 생활은 시작되었다. 나는 친구들에게 요즘 서구에서는 청바지가 유행이라며 여자용 청바지를 자랑스럽게 입고 다녔다. 그러면 친구들은 하기야 청바지는 남녀 구분 없이 입을 수 있는 옷이라며 위로하기도 하였고, 옷가게하는 형을 두고 있던 친구는 청바지도 남녀 구분이 있어 여성용은 남성용보다 가랑이가 2.5인치 더 올라간다는 귀띔을 해 주는 친구도 있었다. 그래도 6개월을 계속 청바지만 입고 다니자 거시기 부분이 아픈 것도 조금 가셔졌고, 대학 4년을 견딜 수가 있었다. 요즘도 그때 일을 생각하여 보면, 내 안에 있는 물신주의를 물리치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당시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 나는 조그만 개척 교회에서 주일학교 교사와 성가대 지휘를 하며 어려움을 극복하였었다. 아이들을 사랑하고 주님께 정성드려 예배드리는 생활을 지속할 때 물신주의가 끼어들지 못하였다.
    • 지난 칼럼
    • 기독인의 행복론
    2018-11-08
  • 기독교인의 행복론 - 88
    얼마 전 종로 3가에 있는 H음식점에서 열린 이희국 시인의 북-콘서트에 갔다. 손해일 국제 PEN 한국본부 이사장을 비롯한 시인들이 100여 석의 좌석에 앉아 시인의 시를 감상한다. 유명 낭송가들이 시인의 「다리」·「아버지」등의 작품을 낭송한다. “섬으로 가는 다리가 놓이고/ 사람들은 걸어서 바다를 건넜다/ 어린 시절 그런 대교 같은 선생님은/ 나의 다리였다// 밤늦게 집으로 돌아오시던 부모님/ 나는 어둑할 때가지 교실에 남아 책을 읽었다// 창밖에 눈이 내리던 날/ 어깨를 감싸는 따뜻한 손,/ 국어 선생님은/ 내 손을 잡고 교무실로, 집으로 데려가 주셨다// 외진 구석에 피어 있던 꽃, 어루만지며/ 목말까지 태워주신 사랑은/ 겨울에서 봄을 이어주는 다리였다// 창밖에는 그날처럼 눈이 내리고/ 꼬리를 문 차들이 어둠을 밝히며 영종대교를 지나고 있다// 바닷길 위에 길이 훤하다”(이희국,「다리」전문). 어릴 적 시인의 외로움을 달래 주던 선생님의 다사로운 정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수천 명의 불임 여성을 임신하게 한 일로도 유명한 그는 약사 시인이다. 아마도 어릴 적 자신의 외로움을 감싸주었던 “국어 선생님”이 있었기에 그가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았는 지도 모른다. 그는 약국을 운영하여 많은 소외된 자들에게 희망의 싹을 심어 주기도 하였다. 필자가 이 북콘서트를 소개하는 것은 바로 그와 비슷한 문화를 영위해 가는 시인들의 삶을 소개하기 위해서다. 아직도 많은 시인들이 자비를 들여 시집을 상재하고 북-콘서트를 연다. 유명 가수가 노래를 하고, 낭송가들이 장내 분위기를 압도하는 낭송을 한다. 그리고 거기에 모인 사람들이 시의 세계를 통해 감동의 전율을 느낀다. 그렇다. 그렇게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또하나의 시의 바다를 항해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시를 영위하는 기쁨을 가족이나 지인들이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어쩌면 그들이 추구하는 세계는 시를 모르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허당일 수도 있다. 그래도 그들은 외로움의 바다에서 자신만의 항해를 계속한다. 누군가가 알아 주지 않아도 좋다. 어차피 외로움은 시를 통해서 진리를 만나는 순간이니까. 낭송회가 끝나면 끼리끼리 낭만적인 분위기를 찾아서 간다. 나도 K시인, Y시인과 함께 전종안 시인의 카페로 간다. 서울역 11번 출구에서 나와 한적한 공원과 고층 빌딩들 사이를 지나 조그만 3층 건물의 지하로 내려가면 그의 카페가 있다. 크럼펫과 드럼 등의 악기들이 무대와 한 쪽 모서리를 차지하고 있다. 녹음실처럼 방송 시설도 그럴 듯하다. 서로간의 악수를 나누고 우리는 시낭송회를 시작한다. “우이동 골짜기에 비가 내리고/ 산골짜기 내려오는 심포니 5번/ 안개는 등성이에서 미끄럼타면서/ 바이얼린 현을 추스린다네// 창문 열고 바라보는 비에 젖은 山/ 흥분한 낙수물은 클래식 되어/ 땅 밑으로 숨은 수줍음 찾아/ 하나 되어 만날 날을 기다립니다// 낙상을 염려하는 한 떨기 음악/ 수백 년 뛰어내린 꿈을 낚으리/ 비는 물길 따라 도시를 적시는데/ 저렇게 많은 현을 어찌하리오/ 첼로와 하프까지 가세하여서/ 바순이 걸러내는 도시의 방귀/ 당신의 입술을 기다리면서/ 벗겨낸 권태를 떨구렵니다// 넉넉한 시인의 훈훈한 입김/ 당신의 귓바퀴는 낙조가 되고/ 전등처럼 매달린 꿈의 청춘은/ 환하게 웃을 날을 기다립니다”(정신재,「비오는 숲속에서」전문)이렇게 도시의 먼지가 걸러지고 순화된 정서를 수놓으면, 또하나의 아름다운 세계가 펼쳐진다. 그래서 우리는 낭만에 젖고 그동안 찌들렸던 스트레스를 단숨에 날려 버릴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시도 인간미를 찾아 진실된 존재로 나아가는 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본다. 자신을 어둠으로부터 건져줄 구원의 문이 될 수 있다면, 남들이 알아 주지 않은들 무슨 상관이랴. 그리하여 시 감상은 개인의 순수성을 회복할 기회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시를 생각한다면 순수는 어린 아이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어른에게도 있다. ‘순수’는 ‘순진’과는 다르다. 순진은 사람들이 상대가 뭘 몰라도 한참 모를 때 비아냥거릴 때 하는 말이다. 그러나 순수는 진실이나 믿음과 통한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마태복음> 18:1-5)‘어린 아이’는 순수하며 정직하다. 그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자기를 낮”춘다. 예수님은 ‘어린 아이’를 비유로 해서 천국에 들어갈 자의 자격을 말씀하셨다. 어린 아이는 무구(無垢)하다. 하나의 새로운 시작, 유희, 스스로 회전해 오는 차륜, 제 일 운동, 성스러운 긍정이다. 정신은 이제야 스스로의 의지를 의지한다. 세계를 잃었던 정신이 스스로의 세계를 획득한다. 시가 죄악으로 오염된 존재에 순수를 회복시켜 줌으로써 구원의 문을 열게 해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서 나는 오늘 순수를 되찾을 수 있는 영감의 이슬을 찾아 도시로 나아간다. 행복하시라.
    • 지난 칼럼
    • 기독인의 행복론
    2018-10-26
  • 기독교인의 행복론 - 87
    그 해 겨울 소도시 전주에도 눈이 많이 내렸다. 함박눈이 정원의 과실나무들을 솜이불처럼 덮었고, 온 도시가 하얀 눈으로 칠해졌다. 우리집에서 백 미터 떨어져 있던 D교회는 전주역 가는 길목에 있었다. 벽돌집으로 지어진 예배당은 고딕 양식의 높다란 창문이 있었고, 뾰족 첨탑 위의 하얀 십자가가 멀리서도 보일 만큼 우뚝 솟아 있었다. 그리고 예배당 옆으로 목조로 된 종탑이 있었는데, 거기서 커다란 종이 새벽에 울릴 때마다 어머니는 종종 걸음으로 예배당으로 발길을 옮기곤 하였다. 어머니의 신앙심은 가족에게도 전해졌고, 3남 4녀의 형제들은 모두 교회에서 성가대나 교사로 활동할 만큼 신앙심이 깊었다. 우리 형제들은 다가올 크리스마스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12월이 되면 어린이들은 성극이나 성극, 성경 암송 등을 준비하느라 분주하였고, 우리 형제들은 제각기 칸타타나 성경 암송 등을 저녁 늦게까지 연습하였다. 초저녁에 저녁을 먹고 나면 여섯 살 배기인 나도 초등학생인 누나들을 따라 예배당에 갔습니다. 소도시 교회인지라 우리를 지도하는 교사 J는 칸타타 연습을 끝낸 후 아이들을 모아 연습시키곤 하였다. 그러므로 J선생이 나타나기 전의 한 시간 가량은 아이들의 놀이 시간이었다. 아이들은 교육관 마룻바닥 위에서 술래잡기도 하고, 공기 놀이도 하였다. 나는 착한 아이여서 누나들과 벤치에 앉아 있었다. 내 옆에는 단발 머리를 한 영희가 다소곳이 앉아 있었다. 그녀는 유치부 어린이로서, 전주 형무소에 가서 공연할 성경을 암송하는 나의 단짝이었다. 나는 누나들 옆에서 영희와 나란히 낮아 있다는 게 너무 좋았다. 영희는 이 세상 어떤 여자애보다도 예뻤다. 계란형의 얼굴에 눈이 큰 영희는 내 마음을 쏙 빼앗아, 나는 그녀의 눈빛 속으로 속 빨려들어가는 듯한 기분을 느낄 때가 많았다. 그녀만 생각하면 수많은 공상이 천장 위에 떠다니는 것이었다. 빨간 오픈카를 타고 그녀와 함께 갈대밭 사이를 달리는 광경이 떠오르고, 아주 예쁜 침대 위에서 공주가 된 그녀와 달콤한 잠을 자는 모습이 그려졌다. 나는 얼굴이 예쁜 여자 아이한테 어떻게 내 마음을 표현해야 하는가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한참을 생각한 끝에 서양화에서 반바지를 입은 소년이 예쁜 여자 아이의 볼에 뽀뽀를 하는 모습이 생각났다. 그래서 얼굴이 예쁜 영희의 볼에 그만 나도 모르게 뽀뽀를 하고 말았다. 그러자 갑작스런 뽀뽀 세례를 받은 영희가 마구 울음을 터뜨렸다. 이 모습을 본 누나들이 깔깔대고 웃었다. “너, 왜 그러냐? 좋으면 좋다고 말로 헐 것이지.”누나들은 영희를 달래느라 눈깔 사탕을 구해다 주었다. 영희는 그 사탕을 볼에 가득 담고 울음을 그쳤다. 세월이 흘러 나는 서울로 올라와 S고에 입학을 하였고, 공부도 열심히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나에게 편지 한 통이 집으로 배달되어 왔다. 여학생에게서 온 편지였는데, 나는 여학생이 먼저 편지를 보낸 사연을 발신자에게 당당히 물었다. 그러자 그 여학생은 J중학교 졸업 앨범을 보고 내 주소를 찾아냈다며, 나와 펜팔로 교제하기를 원한다고 하였다. 편지가 몇 차례 오가는 가운데 나는 그 여학생이 어릴 적 영희임을 알게 되었다. 편지 교제가 일 년이 지난 즈음 영희에게서 소식이 뚝 끊겼다. 나는 영희가 어디로 이사라도 갔나 싶어 궁금하였지만, 대학 입시를 앞두고 있던 터라 영희가 공부에 방해가 될까 봐 편지를 끊었나 보다고 생각하며 공부하는 데로 마음을 다잡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나의 짝꿍인 K가 나와 거리를 두기 시작하였다. 나는 그가 영어 단어를 외워야 한다면서 쉬는 시간에도 책을 들고 다니기에 입시에 대한 압박감에서 그러는 줄 알았다. 고교를 졸업한 후, K는 동창회 모임에도 영 얼굴을 내밀지 않았다. 그러자 친구들 사이에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K가 병태의 펜팔 친구를 빼앗아 결혼해 버렸대.”나는 그제서야 고교 시절 K가 나에게 갑자기 절교를 선언한 이유를 알게 되었다. K는 나의 펜팔 친구였던 영희와 결혼하게 되어 삼십 년 이상을 동창회에 나오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속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자식. 그럼 진작 나한테 고백을 할 것이지.’요즘도 K는 동창회에 나오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K와 친한 H에게 전갈을 보냈다. ‘나는 이제 K를 용서하였으니, 이제 동창회에 나와도 된다는…’ 그러나 K는 동창회에 나오지 못 할 것이다. 나보다도 다른 동창의 따가운 눈초리를 거스를 수 없을 것이다. 아마도 K는 평생토록 나에게 죄의식을 느낄 수도 있었다. 이제 머지 않아 또 겨울이 찾아올 것이다. K가 내 앞에 나타난다면 겨울이 되면 내리는 함박눈처럼 나는 그를 용서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생각난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마태복음> 12:20). 주님이 죄인들의 죄를 사해 주셨음을 믿으면 구원받는데,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어둠 가운데 헤매이고 있다.
    • 지난 칼럼
    • 기독인의 행복론
    2018-10-19
  • 기독교인의 행복론 - 86
    남자는 황금빛 연애 시절이 있고, 결혼하여 가장으로서 대접받을 때가 있고, 장년에 전문가로 활동할 때가 있으며, 노년에 가정에 봉사할 때가 있다. 요즘 퇴직하여 집 안에 틀어박혀 있는 남자들을 보면, 처량함이 느껴질 때가 있다. 남자가 젊은 시절에 가족을 위하여 직장에서 눈칫밥 먹으며 열심히 일했던 때를 아내는 생각 안 하는지, 집에서 삼식이 노릇 하지 말고 나가서 단돈 백 만원이라도 벌어 오란다. 이를 보면 이것이 남 얘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이 있다. 물론 아내가 폐경기를 지나게 되면 여성 호르몬이 줄어듦에 따라 자연히 남성 호르몬이 많아지게 되어 남자를 압도하는 야성적인 힘이 넘치는 건 이해한다. 그러나 가끔 아내의 행동을 볼라치면 이건 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될 때가 많이 있다. 그 남자는 신혼 시절을 생각해 낸다. 밥상을 물리고 나면 아내가 예쁜 쟁반 위의 작은 접시에 사과를 내 온다. 예쁘게 벗긴 사과 껍질이 토끼 귀 모양 예쁘다. “당신도 들지 그래요.”“난 나중에 들테니 먼저 들어요.”아내의 말이 매우 공손하다. 그 남자는 신문을 들여다 보면서 포크로 사과를 찍어서 입에 갖다 댄다. 아랫목에 앉은 그 남자의 모습은 제법 의젓하다. 신혼 시절 이후 삼십 년이 지났다. 저녁 식사 후 아내가 소파에 걸터앉으며 말한다. “여보. 사과 좀 깎아줘요.” “음? 으응.” 그 남자가 허공을 바라보며 눈을 동그랗게 뜬다. “껍질째 먹을 테니까 수세미로 박박 밀어 깨끗이 씻어요.”그 남자는 고개를 갸우뚱해 본다. 내 신세가 왜 이렇게 되었지? 그 남자는 어느 순간 바뀌어 버린 부부의 위상을 헤아려 본다. 그때가 아마 아내의 폐경기가 지났을 때부터인 것 같다. 그 남자에 대한 아내의 말투가 명령조로 바뀌어 있다. “나도 당신 만큼 직장 생활 했으니까 우리 집안 일은 반반씩 나누어서 합시다.”아내의 말이 맞기는 하지만, 이건 이제까지의 관습에 비하면 좀 심하다. 아직도 많은 가정에서 아내가 가사(家事)를 책임지는 편이다. 대개 아내가 요리를 하고, 청소와 세탁과 설거지도 한다. 그것이 남편이 삼십 년 이상 직장 생활을 열심히 하면서 가정을 책임진 데 대한 보상이다. 그런데 그 남자가 은퇴를 하고 나니 아내의 태도가 달라졌다. 그것도 많이 달라졌다. 은퇴 후, 아내가 그 남자에게 내민 것은 앞치마 두 벌이었다. 그것도 전철 안에서 산 비닐로 된 앞치마였다. 하나는 빨간색, 다른 하나는 군청색. 그 남자는 그걸 받아들고 뻘쭘하였다. 그리고 못내 섭섭하였다. 이건 아니다. 여기서 물러섰다간 앞으로 가정에서 아내의 노예가 될 지도 모른다. 그 남자는 단호히 일어섰다. 그리고 그의 대부 역할을 하는 형님인 S의 집으로 달려갔다. 그 남자는 최근 그의 집안에서 일어난 일들을 상세히 구체적으로 알렸다. 그 남자의 말을 듣는 S의 태도가 자못 진지하였다. ‘아아, 형님이 내 편이 되어 주려는가 보다.’ S는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듯 오랫동안 침묵의 시간을 가졌다. 그 남자가 S에게 귓속말로 물었다.“형수씨는 형님한테 그러지 않지요?”형님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도 나이가 들어 보니까 남자가 바싹 아내 앞에 바싹 엎드려지내야겠더라. 아마 여성이 폐경기가 지나면 남성 호르몬이 많이 생겨 강해지나 봐.”그 얘기를 듣고 그 남자는 묵묵히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서재에 들어가 아내의 구박을 제압할 만한 묘안을 모색하였다. 이제 와서 힘으로 밀어붙일 수도 없고, 아내를 황홀하게 해 줄 정력도 남아 있지 않다. 아내와 말다툼을 하자니 위아랫집에 소음 공해를 유발할 수도 있다. 아무래도 묘안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 남자는 집을 나왔다. ‘이대로 가출해 버릴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잘 꾸며진 아파트 정원을 산책하고, 중랑천을 따라 죽 이어진 산책로를 걸어도 아내를 이길 방책이 생각나지 않는다. 천변에 있는 느티나무와 산수유 나무, 계수나무 들이 무럭무럭 잘 자라 산책하는 이들에게 그늘을 만들어 주고 있다. 줄기도 제법 굵어져 사람 허벅지 넓이로 자란 나무도 있었다. 관리인이 따로 물을 주지 않는 데도 나무들은 어느새 숲을 이루고 있었다. 하늘을 쳐다 보니 제법 두터운 뭉게 구름이 파아란 하늘과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그 남자는 결혼하여 미국으로 간 딸아이를 생각하였다. 평소 말이 없는 그 남자에게 식사 때마다 말동무가 되어 준 아이였다. 이제는 가정 생활도 열심히 하여 얼마 후면 아이도 출산한단다. 그토록 취업이 안 되던 아들놈도 계약직으로나마 취업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이제 집에는 부부만 있을 때가 많다. 집 안은 언제나 고요하다. 아내의 잔소리마저 없으면 공허감이 몰려 올지도 모른다. 주변의 친구 중에는 아내가 없어 외로워 하는 경우도 있다. 그 남자는 생각한다. 그래, 이제 가족을 사랑해 주자. 남자가 다시 집으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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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독인의 행복론
    2018-10-05
  • 기독교인의 행복론 - 85
    혼자 사색하는 시간에 이렇게 기도하여 본다. 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며 세세무궁토록 영원하실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주님이 베푸신 은혜가 비올라 현처럼 북한산을 타고 내려오고, 우이동의 새소리가 교회 종탑을 간질입니다. 이 시간의 기도가 주님이 원하시는 뜻대로 이루어지게 하시고, 성령이 저희 영혼의 문을 똑똑 두드리실 때에 마음 문을 활짝 열고 주님을 영접하도록 인도하소서. 이 시간 베드로에게 꿈을 주시고 세계 선교의 비전을 허락하셨던 주님이 저희에게도 세계적인 비전을 내리실 줄 믿습니다. 주님이 원하시면 저희 가운데서 인간미 넘치는 신자가, 세계적인 성직자가, 세계적인 작가가, 세계적인 기업인이, 세계적인 학자가, 세계적인 법률가가, 세계적인 의사가, 하나님의 계획대로 나오게 될 줄 믿습니다. 주님이 원하시면 북한의 김정은과 주민들이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되는 역사가 일어날 줄 믿습니다. 하나님 나라 높은 보좌에서 세상의 낮은 자리에 오셔서 가난하고 아프고 소외된 자들의 구세주가 되셨던 주님, 십자가 보혈을 이루시고 부활하셔서 성령이 임하시고 구원으로 나아가는 길을 열어 주신 주님이, 이 시간 찾아 오셔서 “그동안 믿음 지키느라 애썼다”며 위로하여 주실 줄 믿습니다. 저희를 빛나고 뾰족한 화살처럼 연단시키셔서 하나님 나라와 의를 주님의 계획대로 이루실 줄 믿습니다. 주님이 저희를 부르실 때에 ‘오! 주여 제가 여기 있나이다. 저희가 주님이 원하시는 소명을 감당하게 하소서’라며 믿음으로 일어설 줄 믿습니다. 저희가 기쁨으로 기도와 찬양과 말씀을 감당할 때에 저희 삶이 복될 줄 믿습니다.두세 사람이 모여 함께 기도하는 곳에 주님이 함께 하심을 믿습니다. 저희가 믿음의 삽을 퍼올릴 때 주님께서는 항공모함과 같은 은혜를 베풀어 주실 줄 믿습니다. 이 시간 아름다운 리브가를 신부로 맞기 위하여 황혼녘의 황금빛 햇살을 머릿결에 받으며 기다리는 이삭과 같이 주님의 말씀을 기다리오니, 성령이여 오셔서 저희와 동행하여 주시옵소서. 저의 삶이 사건을 멋있게 해결해 가는 콜롬보처럼 멋있게 필력을 휘두르는 작가가 되게 하소서.이 시대에는 콜롬보가 필요하다. 콜롬보가 나타나서, 사회 각 계층에 쌓여 있는 부조리를 날카롭게 파헤치고, 이 사회의 정의를 바로 세워 주었으면 좋겠다. 교계든, 정치권이든, 법조계든, 콜롬보가 필요한 것이다. 가령 모 건설회사 부사장이 자신의 아내를 의도적으로 살인하고 건설 현장에 묻은 후 바닥 콘크리트를 쳐 버린다. 콜롬보는 아내가 실종되었다는 부사장의 실종 신고를 받고 출동하여, 부사장 집의 현관 바닥에서 진주 목걸이로 추정되는 진주를 발견한다. 콜롬보는 부사장이 일하는 건설 현장을 자주 들러 콘크리트 타설 광경을 자주 목격한다. 그리고 현장 경비로부터 부사장이 밤에 들른 적이 있다는 목격담을 확보한다. 물증을 확보한 콜롬보는 부사장이 살인했다는 증거를 확보하기 위하여 그의 집에 들른다. 현관에서 부사장에게 두 사람 사이의 부부 관계가 최근 들어 좋지 않았다는 이웃 주민의 얘기를 하면서, 현관 우산 꽂이대에 있던 우산에 자신이 증거물로 가지고 있던 진주를 톡 쳐넣는다. 얘기 도중 부사장이 부부 사이가 좋지 않았다는 증거를 대 보라고 하자, 슬쩍 우산을 치켜든다. 그러자 진주 한 알이 바닥에 떨어지고, “이게 증거죠.” 하면서 사건 당일날 부부 싸움이 심하게 있지 않았느냐고 되묻는다. 그리고 콜롬보는 왜 부사장이 콘크리트 타설을 하기 전 날 저녁에 공사 현장에 갔었는가를 묻자, 부사장은 울음을 터뜨리며 자백을 한다. 이와 같이 후즐근한 바바리 차림으로 건성건성 말하는 듯하면서도, 완벽한 알리바이를 들이대는 사회 저명 인사를 꼼짝 못하게 하는 콜롬보의 끈질긴 추리에 시청자들은 통쾌함을 맛보게 된다. 이와 같이 멋있는 콜롬보처럼 나의 삶이 좀 멋있으면 좋겠다. 우리 사회 서민들의 고충을 널리 알리고, 그들이 행복하게 웃는 모습을 보고 싶다. 하늘 나라의 높은 보좌에서 내려와 지상의 낮고 천한 곳에 와서 가난하고 아프고 소외된 자에게 구원의 메시지를 전한 예수 그리스도처럼, 서민들이 인간답게 살아가는 꿈을 꾸어 본다. 물신주의의 옷을 벗고 인간미가 돋보이는 옷으로 갈아 입고 싶다. 그러려면 콜롬보가 필요하다. 퍼머 머리에 의안을 기고도 얼마든지 멋있게 행동하는 의인 콜롬보가 필요하다. 콜롬보가 나타나서 세상의 온갖 비리와 죄악을 파헤쳐서 순화된 사회를 만드는 것을 보고 싶다. 아니, 세종대왕이라도 좋다. 이순신 장군이라도 좋다. 그런 의인이 이 땅에 다시 나타나기를 기대하여 본다. 나, 또한 풍자와 해학으로 독자들을 웃기고 감동시키는 작가가 되도록 기도한다. 이는 나만이 할 수 있는 개성적인 작업이다. 행복하시라.
    • 지난 칼럼
    • 기독인의 행복론
    2018-09-20
  • 기독교인의 행복론 - 83
    너의 표정은 독특하다. 네가 다소곳이 웃는 모습은 엄마 품에 안겨 한없이 편안함을 느끼는 천진난만한 어린애 같다. 네가 우는 표정으로 노래부르는 모습은 영락없이 뮤지컬 배우와 다를 바 없다. 너는 때로 춤춘다. 팔은 천장을 찌르듯 높이 쳐들고, 허리는 뱀처럼 또아리를 튼다. 몸을 오십 센티미터 위로 떠오르게 하고, 머리를 사물놀이할 때처럼 흔든다. 얼굴은 엘비스 프레슬리처럼 활기차게 돌리고, 팔은 풍차 돌리듯 마구 흔들어 댄다. 너는 대형 무대에 설 필요가 없다. 너의 일상이 곧 무대요 활동 영역이다. 너는 언제 어디서든 마음만 먹으면 노래 부를 수 있고, 춤출 수가 있다. 그것이 너의 개성이니까. 너는 그분 앞에서 노래한다. 그분은 너의 어머니요 아버지니까, 너는 그분에게 예뻐 보일 필요가 있다. 가령 어린 아이가 엄마에게 맛있는 걸 사 달라고 졸라댈 때 안 사 줄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그래, 너는 그분 앞에서 어린 아이가 되어도 좋다. 너는 그분의 자녀이니까. 그리고 “하나님, 저 예뻐요?”라고 속으로 되뇌어라. 그분은 너의 믿음을 가상히 여기실 것이다. 그리하여 너는 그분 앞에서 자유로울 수가 있다. 죄악에 빠지는 건 염려하지 마라. 그분이 네 마음을 주관하시니까, 너는 사탄과의 영적 전쟁에서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 다만 그분이 너와 동행하신다는 것을 잊지 마라. 그분의 의에 따르는 한 너는 안전하고 평화로울 것이다. 그분은 너에게 “변화산”과 아름다운 곳도 보이셨다. 그분은 베드로가 “여기가 좋사오니”라고 고백할 만큼 나름다운 곳에서, 세상의 그 어떤 세탁업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흠결 없는 옷을 입으신 네 앞에 나타나셨다. 너는 우주의 한 곳에 서서 네 안에 죄의 티끌이라도 있을까 봐 얼마나 조마조마했다. 지나온 과거가 그분이 인정할 만큼 깨끗하였는가를 되뇌어 보았다. 그러나 염려하지 마라. 네가 회개하고 그분이 구원의 문으로 안내하실 것을 믿는 이상, 너는 의인이라 칭함을 받을 것이다. 변화산에서 천사들이 수종드는 그 거룩한 모습을 기억하라. 그분은 변화산에만 계시지 않았다.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것만 보아도 그분은 우리 옆에 계신다. 마리아가 옥합을 깨트려 수백 데나리온에 해당하는 향유를 부어 그분의 발을 씻겨 드리신 것만 보아도 그분은 분명 현실에 분명히 계셨다. 그분은 하나님 나라에만 계시는 것이 아니다. 그분이 네 안에 계시다는 것은 온 세계가 하나님의 계획과 의지에 의해서 이루어짐을 잊지 마라. 가끔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서 일탈을 꿈꾸면서 조금 색다른 상상을 해 보곤 한다. 너는 시인들의 출판 기념회를 찾아다니며 노래를 불렀다. 너는 남산에 있는 문학의 집, 종로에 있는 H관, 서대문 역사 박물관, 안산에 있는 S카페 등에서 노래를 불렀다. 주로 네가 사회자에게 다가가서 축가를 부르겠다고 신청해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다행히 너의 제자가 반주 MR을 만들어 준 덕택에 거기에 맞추어 노래를 부를 수 있었다. 수필가 K는 사회를 보면서 네가 축가를 부르겠다고 자청해서 순서에 넣었다고 청중들에게 알리는 바람에, 장내가 웃음 바다가 되기도 하였다. 그러는 사이에 너는 자신감이 쌓였고 ‘KBS 전국 노래 자랑’ 1500회 특집에 출연 신청을 하였다. 대개 신청한 사람들이 대중 가요를 좋아하는 사람들인데, 너는 김동규의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를 들고 예심장에 나갔다. 600여 명의 신청자 가운데서 네가 본선에 뽑힌 것은 순전히 너의 표정 때문일 거다. 너는 오십 대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십대의 표정을 짓는 괴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16명이 본선에 오르는 무대에 네가 뽑히게 되었다. 그 중 한 명은 “딩동댕”이 아닌 “땡”으로 처리될 예정이었지만, 너는 거기에 들지 않기 위해서 밤새도록 박자와 음정을 표정까지 머릿속에 그려가면서 외웠다. 그 덕에 너는 특집의 여덟 번째 순서에 노래를 하여 텔레비전에 나왔다. 그러나 너는 노래의 질보다도 표정에 신경을 쓰다 보니까, 노래가 자연스럽지 못했다. 그래도 “땡”으로 처리되지 않은 것은 천만 다행이었다. 너는 주위의 지인들에게 1월 31일에 방송되니 시청하라고 대여섯 번씩 문자를 보냈다. 지인들은 평소에 노래를 잘 부르지 못하는 네가 나온다니까 그냥 인사치레로 전국 노래 자랑을 시청하기로 하였다. 드디어 너의 순서가 되자 너는 온갖 인상을 써 가며 노래를 불렀다. 지인 한 사람이 친구 병문안을 갔다가 병실에 있는 텔레비전을 틀어 너의 노래 부르는 장면을 보았다. 그러자 병실에 있던 환자가 투덜댔다. “저 사람은 왜 저렇게 힘들여 노래 부르지. 보는 나도 힘드네.” 그 얘기를 듣고 너의 지인은 얼른 병실을 나와 버렸다. 그렇다. 너는 노래 부르기를 좋아한다. 너는 이제 너의 달란트를 찬양을 통해서 발휘해라. 진지하고 거룩하게, 친근하고 온유하게 노래 불러라. 그분이 너의 예쁜 모습을 보고 ‘그놈 참 귀엽다’는 혼잣말을 되뇌이도록. 그러면 너는 축복받은 것이다. 그러니, 네 하고 싶은 대로 해라.
    • 지난 칼럼
    • 기독인의 행복론
    2018-08-30
  • 기독교인의 행복론 - 82
    그분이 내 안을 다스리신다. 그분은 타자로서 나의 편협한 생각을 해체하고, 보다 너른 세계를 바라보게 하시며 믿음의 길을 걸어가게 하신다. 그분으로 인하여 나는 마음과 우주 사이를 오가며 영혼의 여행을 하게 된다. 그분은 인간의 몸으로 오셔서 낮은 곳에 머물러 소외되어 있는 사람들에게 친구가 되어 주시고, 심령이 가난한 자에게 복이 있음을 알려 주셨다. 나는 그분으로 인하여 내 안에 완악하고 음흉한 마귀들이 있음을 알게 되었고, 그들을 퇴출시켜 달라고 기도하였다. 그러자 그분은 나에게 강한 의지와 인고(忍苦)의 힘을 주시며 나를 단련시키셨고, 물신주의보다 우위에 있는 하나님 나라를 보여 주셨다. 나는 그분이 함께 하심으로 하나님의 의를 실천하려는 용기를 얻었고, 그분의 자녀가 되는 행복을 얻었다. 나는 그분의 자녀가 됨으로 행복하였던 것이다. 애굽땅에서 총리가 된 요셉이 생각난다. 그는 아버지 야곱의 심부름을 하러 형들에게 갔다가 그 형들의 질투로 인하여 큰 웅덩이에 빠지게 되었고, 지나가던 상인들에 의해 발견되어 애굽에 팔려가 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서 집사로 일하면서 출중함을 보였다. 그의 주인인 보디발은 자신의 집 모든 행사를 다 맡겼다. 그러다가 보디발의 아내가 용모가 준수한 요셉에게 다른 마음을 품고 동침하기를 요구하였다. 어느 날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에게 다시 동침하기를 요구하였으나 요셉이 이를 뿌리치고 달아나는 과정에서 요셉의 옷을 보디발의 아내가 취하게 되었고, 보디발의 아내는 이를 가지고 오히려 요셉이 자신을 욕보이려 했다고 남편에게 고함으로써 요셉은 모함을 받아 왕의 죄수들이 거하는 옥에 갇히게 되었다. 이는 요셉에게 꼬이는 일이었다. 그러나 요셉에게도 기회가 왔다. 그가 옥에 갇혔을 때에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이 애굽 왕에게 범죄하여 친위대장의 집 안에 가두니, 그곳은 요셉이 갇힌 곳이었다. 요셉은 거기서 술 맡은 관원장의 꿈을 해몽하여, 그 관원장이 다시 복직할 것을 예언하였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말하였다. “당신이 잘 되시거든 나를 생각하고 내게 은혜를 베풀어서 내 사정을 바로에게 아뢰어 이 집에서 나를 건져 주소서. 나는 히브리 땅에서 끌려온 자요 여기서도 옥에 갇힐 일은 행하지 아니하였나이다” (<창세기> 40:14-15). 그러나 술 맡은 관원장은 요셉을 기억하지 못하고 잊고 있다가, 만 이 년 후에 바로가 자신의 꿈을 해석할 사람을 찾자 요셉을 추천하였다. 요셉은 바로의 꿈을 제대로 해석하여 애굽땅에 칠 년은 풍년이 들고 그 다음 칠 년은 흉년이 들므로 “명철하고 지혜 있는 사람을 택하여 애굽 땅을 다스리게 하”(<창세기> 41:33)라고 권합니다. 그리하여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될 수 있었다. 요셉에게 일어났던 꼬이는 일과 축복받은 일은 얼마든지 우리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이를 하나님의 편에서 해석하는가, 세상 편에서 생각하는가에 따라 개인의 삶이 달라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요셉은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하나님의 의로 해석함으로 말미암아 축복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나에게는 하나님 나라와 의를 사모하는 마음이 있다. 그것은 내가 그분의 자녀임으로 가능한 것이었다. 나의 아버지시요 절대자이신 그분은 나를 행복의 세계로 이끄셨다. 그분은 남을 배려하는 삶이 멋짐을 알려 주셨고, 배려로 인하여 생긴 기쁨을 나의 것이 되게 해 주셨다. 그분은 나에게 생긴 기쁨을 예쁘게 보아 주셨고, 나는 그분 앞에서 더욱 멋진 삶을 살겠다고 다짐하였다. 그분은 죄를 씻는 길을 열어 주셨고, 내 안에 있는 사탄을 몰아내고 나로 하여금 의인의 옷을 입게 하셨다. 그리하여 나는 의인으로서의 멋을 알게 되었고, 열심히 찬양하고 기도하고 묵상함으로 그분의 나라를 더욱 사모하게 되었다. 나는 내 안에 있는 하나님 나라를 사모함으로 행복하였고, 나에게 주어진 행복을 가족과 이웃에게 나누어 주었다. 나는 지난 생애가 그분의 계획에 의해 진행되었음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믿음이 있는 이상 삶은 더 이상 내 것이 아니라 그분의 것이었다. 나는 그분이 이 나라를 평화의 세계로 이끄실 뿐 아니라, 세계 평화의 계획도 가지고 계심을 알게 되었다. 어린 시절 그분은 나에게 순수를 선물로 주셨고, 청춘 시절에 열정의 물을 부으셨으며, 장년 시절에는 유우머가 있는 세계를 보여 주셨다. 그리하여 나는 나의 삶을 재미있고 진지하게 보낼 수 있었다. 그분은 사랑이 무엇인지, 그게 왜 아름다운지를 알게 하셨고, 몸소 최고로 아름다운 사랑을 보여 주셨다. 그분은 내가 경험하지 못한 세계를 표적으로 보여 주셨다. 오천 명이 먹고도 남을 음식을 여러 자리에서 제공하셨고, 죽은 자를 살리셨으며, 소경과 미친 사람을 치유하셨다. 그분은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셨고, 부활하셨고, 성령으로 오셔서 우리와 동행하신다. 할렐루야.
    • 지난 칼럼
    • 기독인의 행복론
    2018-08-23
  • 기독교인의 행복론 - 81
    다윗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영토를 많이 확장한 왕으로 꼽힌다. 그는 성전을 건축하는 데 사용할 백향목이나 대리석 등 최고급 건축 자재를 그의 재임 시기에 이미 구비해 놓았다. 그러나 다윗을 비롯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성전 건축 꿈은 솔로몬왕 때에 가서야 이루어지게 된다. 학자들은 이를 두고 역사는 ‘하나님의 때’에 의해서 진행된다고 고증하였다. 최근 들어 황혼 이혼을 하는 부부가 없지 않다. 일본에서는 노년의 여성이 남편의 퇴직 때를 기다려 이혼하고 위자료를 받아 작은 가게를 운영하며 노년을 보낸다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노년이 되면 남자들의 신세가 이렇게 되어야 하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그 남자가 사는 곳은 요즘 재개발 붐이 한창이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아파트와 오피스텔의 건물들 층수가 뚝딱 하고 올라간다. 건물 외벽이 4층이 되었다가 10층이 되었다가 어느새 고층 건물의 뼈대가 완성된다. 버섯이 자라는 모양이 속성 사진으로 찍힌 것처럼, 고층 건물들이 빽빽이 들어선 다가구 주택들의 밀림 사이로 해가 바뀔 때마다 솟아난다. 그 남자는 버섯 모양 솟은 고층 건물과 앉은뱅이처럼 낮은 다가구 주택 사이에서 산다. 그 남자가 산보를 하다 보면 그는 마치 20세기와 21세기 사이를 롤러코스트 타는 기분이 된다. 그 남자의 아파트는 높은 빌딩과 낮은 집들 사이에 있다. 조금 오래 된 아파트 입구부터 중앙 광장에 이르는 길가에는 제법 우람한 측백 나무들이 도열해 있고, 여러 색깔의 영산홍이 정원 울타리처럼 길게 이어져 있다. 그 남자는 길을 따라 가다가 광장의 400년 된 느티나무를 지난다. 나무 한 쪽은 어린 아이가 들어앉을 만큼 커다란 구멍이 나 있다. 나무도 나이 든 티가 난다. 그러고 보니 그 남자도 전철을 타면 경로석을 기웃거릴 만큼 나이가 들었다. 하지만 마음은 아직 젊어 예술가들의 모임에서 새 날개짓 모양의 무용을 하긴 한다. 그건 순전히 그 남자의 마음에서 형성된 주관적인 몸짓이지, 전문적인 예술가의 공연은 아니다. 하기야 예술가의 무대라고 따로 한정된 것은 없다. 그 남자에게도 청춘이 있었고, 장년이 있었다. 그 남자는 신혼 시절을 생각해 낸다. 밥상을 물리고 나면 아내가 예쁜 쟁반 위의 작은 접시에 사과를 내 온다. 예쁘게 벗긴 사과 껍질이 토끼 귀 모양 예쁘다. “당신도 들지 그래요.”“난 나중에 들테니 먼저 들어요.”아내의 말이 매우 공손하다. 그 남자는 신문을 들여다 보면서 포크로 사과를 찍어서 입에 갖다 댄다. 아랫목에 앉은 그 남자의 모습은 제법 의젓하다. 신혼 시절 이후 삼십 년이 지났다. 저녁 식사 후 아내가 소파에 걸터앉으며 말한다. “여보. 사과 좀 깎아줘요.” “음? 으응.”그 남자가 허공을 바라보며 눈을 동그랗게 뜬다. “껍질째 먹을 테니까 수세미로 박박 밀어 깨끗이 씻어요.”그 남자는 고개를 갸우뚱해 본다. 내 신세가 왜 이렇게 되었지? 그 남자는 어느 순간 바뀌어 버린 부부의 위상을 헤아려 본다. 그때가 아마 아내의 폐경기가 지났을 때부터인 것 같다. 그 남자에 대한 아내의 말투가 명령조로 바뀌어 있다. “나도 당신 만큼 직장 생활 했으니까 우리 집안 일은 반반씩 나누어서 합시다.”아내의 말이 맞기는 하지만, 이건 이제까지의 관습에 비하면 좀 심하다. 아직도 많은 가정에서 아내가 가사(家事)를 책임지는 편이다. 대개 아내가 요리를 하고, 청소와 세탁과 설거지도 한다. 그것이 남편이 삼십 년 이상 직장 생활을 열심히 하면서 가정을 책임진 데 대한 보상이다. 그런데 그 남자가 은퇴를 하고 나니 아내의 태도가 달라졌다. 그것도 많이 달라졌다. 은퇴 후, 아내가 그 남자에게 내민 것은 앞치마 두 벌이었다. 그것도 전철 안에서 산 비닐로 된 앞치마였다. 하나는 빨간색, 다른 하나는 군청색. 그 남자는 그걸 받아들고 뻘쭘하였다. 그리고 못내 섭섭하였다. 이건 아니다. 여기서 물러섰다간 앞으로 가정에서 아내의 노예가 될 지도 모른다. 그 남자는 단호히 일어섰다. 그리고 그의 대부 역할을 하는 형님인 S의 집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최근 그의 집안에서 일어난 일들을 상세히 구체적으로 알렸다. 그 남자의 말을 듣는 S의 태도가 자못 진지하였다. S는 다소 신중한 태도로 그 남자의 이야기를 끝까지 다 들어 주었다. 그 남자는 S에게서 명쾌한 대답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 남자가 S에게 귓속말로 물었다.“형수씨는 형님한테 그러지 않지요?”형님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도 나이가 들어 보니까 남자가 아내 앞에 바싹 엎드려지내야겠더라. 아마 여성이 폐경기가 지나면 남성 호르몬이 많이 생겨 강해지나 봐.”그 남자는 생각을 정리하였다. 남자가 나이 오십이 지나면 아내 말에 잘 따라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인가 보다. 그 후 그 남자는 가사(家事)를 열심히 하였다.
    • 지난 칼럼
    • 기독인의 행복론
    2018-08-09
  • 기독교인의 행복론 - 80
    나에게도 행복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받음으로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어린 시절 나에게 주어진 현실은 그리 좋지 않았다. 그 시절은 한국 전쟁의 후유증으로 인하여 정치적으로 부패가 심한 시기였다. 1960년 4.19가 일어났다. 이승만 정권의 부정 선거에 분노한 마산의 학생·시민들은 부정 선거 반대를 외치며 시위를 하였다. 경찰이 과격한 폭력으로 탄압하자 시위대의 행렬은 약간 움츠러드는 듯하였다. 그러나 4월 11일 최루탄이 눈에 박힌 김주열(당시 마산 상고 1년, 17세)의 시체가 마산 앞바다에서 발견되면서 민중의 분노는 다시 폭발하였다. 이승만 정권은 마산 시위를 “공산당이 들어와 뒤에서 조종한 혐의가 있다”고 몰아붙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중의 저항이 누그러들지 않자 이승만 정권은 정치 깡패를 동원하여 4월 18일 평화 시위를 마치고 귀가하는 고려대 학생들을 구타하였다. 그러나 혁명의 불길은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전 날의 테러에 분노한 서울의 학생·시민들은 광화문 일대를 가득 메웠고, 분노한 시민들은 마침내 경무대(지금의 청와대)로 몰려가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당황한 경찰은 시위대에게 무차별 총격을 가하여 ‘피의 화요일’을 만들었다. 그 뒤 항쟁은 부정 선거 반대를 넘어 이승만 퇴진 운동으로 발전하였습니다. 이 혁명은 학생과 시민 들이 광복 후 한국 사회에 쌓여온 모순에 맞서 싸운 것이기 때문에 독재 정권의 타도에 그치지 않고 민주·자주 운동으로 발전하였다. 어머니 얘기를 해 보겠다. 나의 어머니는 원래 기독교 신자가 아니었다. 어느 다사로운 봄날 어머니는 꿈을 꾸었다. 미국의 그랜드 캐년처럼 넓은 들판에서 어머니는 공룡 비슷한 괴물에게 쫓기고 있었다. 그러다가 막다른 낭떠러지에 다다랐다. 앞은 깊은 계곡이요, 뒤는 괴물의 커다란 입이 버티고 있었다. 이 순간 어머니는 사생 결단을 해야 했다. 낭떠러지를 뛰어내리느냐, 괴물에게 물맷돌을 던져 정식으로 맞서느냐. 그때 하얀 두루마기를 입은 노인이 나타났다. 노인은 세상에서 가장 자애롭고 선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노인은 어머니 앞에 서더니 괴물을 향하여 장풍을 휘날렸다. 그러자 괴물의 형체가 모래알들처럼 잘게 부서지며 없어졌다. 어머니는 그 노인의 초능력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노인이 물었다. “너는 교회에 다니느냐?”어머니가 고개를 가로젓자, 노인은 한참을 묵묵히 서서 생각하더니 사라졌다. 잠에서 깨어나서도 어머니는 노인이 했던 “교회에 다니느냐?”라는 말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주일날이 되자 어머니는 집에서 가까운 남원 동부 교회에 나가서 예배에 참석하여 보았다. 교인들은 선량해 보였고, 목사님은 경건한 어조로 설교하였다.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에베소서> 1:11). 목사님의 설교에 의하면 하나님은 그 자녀에게 각각 계획하신 뜻이 있고, 그 뜻에 따라 그 자녀들의 숙명이 진행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목사는 신자가 따라야 할 것은 하나님 나라를 믿고 하나님의 의를 실현하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예배가 끝난 후 어머니는 새신자실로 가서 목사님을 뵙고 지난 밤 꿈 이야기를 하였다. 그러자 목사님은 그 꿈을 통하여 주님이 일하셨다면서, 죄인이 죄의 쇠사슬을 풀고 어떻게 하나님 나라로 나아갈 수 있는가를 알려 주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이면서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내려와 마땅히 치러야 할 죄인들의 고통을 대신 체험하시면서 십자가 보혈을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느껴 보기를 권하였다. 그리하여 어머니는 우리 집안에 처음으로 교회로 가는 길을 열어 놓았다. 어머니는 술고래셨던 아버지의 가슴에 손을 대고 새벽마다 기도하였고, 시아버지에게도 꿈 얘기를 하면서 전도하였다. 이제 행복 이야기를 해보겠다.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가. 결론부터 말하면 행복은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받은 데서 온다. 그럼 나는 행복한가. 행복하다. 왜.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자녀인 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자랐다. 나는 기독교인인 어머니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유아 세례를 받는 기회를 얻었다. 그리하여 나는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이제까지 살아왔다. 소년 시기에는 순수를, 청년 시기에는 열정을, 장년 시기에는 여유를 주님으로부터 선물로 받았다. 예수님이 어린 아이를 안고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지 않고는 천국에 들어올 자가 없느니라. 나는 어린 아이처럼 순수하게 하나님 나라를 이해하였고, 어려운 고비를 연단을 받으며 사탄 마귀와 영적 전쟁을 하여 왔다. 이와 같은 순수야말로 주님이 나에게 주신 선물이다. 무엇보다도 고마운 것은 내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살아왔다는 것이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나쁜 길에 빠지지 않았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유혹을 물리칠 수 있었으며,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작가로서의 길을 걸어왔다.
    • 지난 칼럼
    • 기독인의 행복론
    2018-07-25
  • 기독교인의 행복론 - 79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가. 나는 행복을 찾아 긴 여행을 떠나기로 하였다. 그동안 여러 번 행복을 찾아나섰었다. 행복을 찾는 일이 그리 쉽지는 않았다. 여행을 다니며 사물을 관찰하기도 하였고, 철학 서적을 통하여 행복을 말하는 학자들의 이야기도 읽었다. 물질적 부를 좇아다니기도 하였고, 문우들과 담소를 나누기도 하였다. 그러나 행복이 손에 꽉 잡히지 않아 나름대로 고민하였다. 왜 나에게는 행복이 없는가. 국민 소득이 그다지 높지 않은 네팔 사람들도 행복지수가 높다는데. 행복을 찾아 집을 나선 후 첫 번째 고개에서 나는 물질적 부를 내려다보았다. 커다란 저택에서 멋있는 오픈카를 타고 나가 편백나무가 늘어선 시골길을 달리는 광경도 그려보았다. 세월이 흐른 후 실제로 어느 정도 경제적 여유가 있는 곳까지 올라가 보기도 하였다. 그러나 물질은 나를 일정한 채움으로 만족시켜 주기는 하였지만, 영원에까지 나를 데려가지 못하였다. 물질은 여전히 어느 곳에 놓여 있을 뿐이고 영원까지 가지고 갈 생명수가 되지는 못하였다. 그래서 나는 고개를 내려와 여행을 다녀 보기로 하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토록 선호하며 권하는 여행은 새롭고 아름다운 풍경들로 인하여 나의 눈을 맑게 씻어 주었다. 수천 개의 석회암이 돌출해 있는 베트남의 하롱베이에도 가 보았고, 버스를 타고 달려도 달려도 2천 미터 이상의 고산이 연속적으로 이어져 있는 로키 산맥도 구경하였다. 여행사를 통해서 전국 방방곡곡의 명승지를 가 보았지만, 한 번 다녀온 산야는 기억에만 남아 있을 뿐 더 이상 나를 영원에까지 데려가지 못하였다. 물질과 여행의 고개를 넘어온 나는 그렇다고 영원으로 가는 길찾기를 멈출 수는 없었다. 수천 권의 책과 논문을 발췌해서 읽었고, 멋진 시를 읊조리며 낭만 가객의 역할을 해 보았다. 여러 시낭송회에서 시를 읊조리면서 인간미가 있는 존재를 모색하기도 하였다. 시를 짓는다는 것은 나를 멋있는 세계로 나아가게 하는 활력소가 되었다. 다만 나에게 수천만의 독자를 감동시킬 작품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 안타까왔다. 물론 나는 요즘도 계속 사색하고 작품을 창작하는 일에 매어달리기는 하지만, 그 일이 나를 영원에 데려다 줄지는 아직 모를 일이다. 좋은 시는 시인의 의지만으로 되는 게 아니어서 줄기차게 내 가슴을 울릴 만한 담론과 이미지를 찾기에 골몰하여야 했다. 나는 머리도 식힐 겸 잠시 시 짓는 일을 놓아 두고 다시 행복의 길을 찾아나섰다. 길을 걸어가면서 나는 강원도 밤하늘의 별무리도 바라보고, 몽골 초원을 달리며 고독의 시간을 가져 보았다. 고독은 나에게 나 자신과 대면할 기회를 가질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나는 그분이 성직자에게만 임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도 동행하실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때 삭개오 이야기가 나에게 다가왔다. 주님은 삭개오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셨다. 그는 이스라엘의 세리였다. 당시의 세리는 백성들로부터 세금을 거두어 로마제국과 이스라엘 분봉왕에게 납부하여야 했다. 그러니 자연스레 백성들로부터 원망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그로 인하여 백성들은 과중한 세금을 매기는 세리들을 비난할 뿐만 아니라 왕따시켰다. 삭개오 역시 왕따를 당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로부터 왕따를 당하던 그는 군중들에 둘러싸인 예수님을 먼 데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는 자신과 같은 사람에게 예수님이 찾아오리라는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다만 세상의 구세주로 오신 예수님을 알고 싶었다. 예수님은 물을 포도주로 바꾼 표적을 보였을 뿐 아니라, 병자를 치유하고 죽은 자를 살리며, 배고픈 자에게는 오천 명을 먹이고도 남는 음식을 제공하셨다. 풍랑이 심하게 이는 호수 위를 걷기도 하셨다. 뭇백성들로부터 왕따 당하는 사람에게 여러 표적과 말씀으로 군중을 감동시키는 주님이 찾아오시는 것을 삭개오는 전혀 예상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그는 주님의 실체를 보기 위해서 뽕나무 위에 올라가 멀리서 주님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주님을 알고 싶은 그의 소망이 통했는지 뜻밖의 일이 일어났다. 주님이 삭개오를 바라보더니 말씀하셨다. “삭개오야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너의 집에 묵겠다”. 내가 행복이 있는 길을 찾아나서면서 삭개오 이야기를 접하게 된 것은 나에게 매우 뜻깊은 행운이었다. 나는 이 이야기를 접하면서 나에게도 삭개오와 같은 외로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학식과 경험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었다. 나는 그분이 나의 집에 방문하실 것이라는 기대를 하지 않고 마음에 빗장을 걸어두고, 나만의 철학적 체계와 아름다운 글을 모아두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서가에 꽂힌 책처럼 장식만 되어 있을 뿐 내 안에서 생동하지 못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분이 오셨다. 그분은 마음의 집 마당에서 미적 감각과 정서를 담고 계셨고, 성령의 모습으로 나에게 오셨다. 그리고 나에게 영원으로 가는 길을 열어 주셨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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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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